Bostonlife feb 201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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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S Vol.4. February. 27. 2017

Photo by Soo Rey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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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뉴스 뉴햄프셔, 설날을한국의날로선포 민주평통보스턴협의회 신년하례식 엄성준 총영사, 한국전통 보자기예술 확산방안 논의 우리문화의 멋을 통해 한인들의 자존감 높였다 따뜻한 정이 오간 국제선 후원의 밤 엄성준 총영사, 뉴햄프셔 포츠머스시장 예방

유수례 화가의 Photo Essay 보스턴 사람들 다문화 선교 교회, 김동섭 목사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나는 그 사랑을 섬길 뿐이다”

이야기 마당 장용복의 영시 산책 하늘의 시 이야기 김란의 테이스티 로드 마이클 리의 모게지 이야기 에듀웰보스턴의 교육 이야기 장우석 변호사의 법률 칼럼


뉴햄프셔 주지사, 설날을 “한인의 날”로 선포! 우리의 명절 설날이 뉴햄프셔의 “한인의 날”로 선포되었다.

“뉴햄프셔주지사가 설날을 “한인의 날”을 선포하였음을 알리고 있는 조은경 회장” 2017년 1월 5일에 뉴햄프셔 주지사로 임기를 시작한 Christopher T. Su-

첫째, 새로 임기를 시작한 주지사가 당

둘째, 뉴햄프셔주에서 주지사가 “한인

nunu 뉴햄프셔 주지사가 1월 28일을

면한 여러가지 현안에도 불구하고 취임

의 날”을 선포한 것은 한인들의 미주 이

“한인의 날”을 선포하였다는 것은 두가

과 동시에 “한인의 날”을 선포하였다

민 100주년이 되는 해인 지난 2003

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는 점이다.

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동안 뉴햄프셔


주지사로 재직한 이들이 민주당원이건 공화당원이건 해마다

인들이 개척자 정신을 가지고 이민생활 속에서도 한인으로

뉴햄프셔한인들의 신년하례식 날을 함께 축하하며 “한인의

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주류사회와의 교류를 통해 한인들

날”로 공포하고 한인사회의 공로를 치하하였다는 점이다.

의 고유문화와 바람직한 전통을 나누어 왔으며, 이는 미국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에 큰 몫을 하고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는 뉴햄프셔의 한인사회가 정치성향과 관계없이 초당적으 로 미 주류사회 및 주정부 관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

또한 이러한 일들을 위해 “뉴햄프셔 한인회가 하는 역할과

해 왔음을 단적으로 보여주

기능을 높이 인정한다”고 밝

는 일례일 것이다.

히고, 한인 이민자들이 자긍 심을 가지고 함께 역동적인

뉴햄프셔한인회는 주청사에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

서 “한인의 날” 선포식을 하

는 모습을 높이 산다고 치하

였고, 신년하례식 자리에서

하였다.

다시 한 번 주지사가 우리의 명절인 설날을 “한인의 날”로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

공포한 사실을 알리며 참석

주류사회에서 당당히 인정받

한 한인동포들과 함께 기쁨

는 한인들, 그 한 지표가 되

을 나누었다.

는 것이 “한인의 날” 선포식 이다. 불과 올1월에 새로 임

뉴햄프셔 한인의날이 선포됨

기를 시작한 주지사가 곧바

에 따라 주청사에 우리의 자

로 “한인의 날”을 선포하고,

랑스러운 태극기를 하루 종

한인들이 미국사회에 미치는

일 게양할 수 있고, 주류사회

긍정적인 영향을 위와 같이

에 우리의 저력도 보여줄 수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주청

있을 만큼, 뉴햄프셔에서 한

사에서 선포식을 가지고 함

인들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

께 축하하는 것, 그리고 그

다.

러한 의미있는 선포식이 해 마다 가능하다는 사실은 뉴

한가지 아쉬운점은 평일에

햄프셔 한인들 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의 많은 한인동포들

뉴잉글랜드 지역 동포들에게

이 주청사에 모인다는 것이

도 시사하는 바가 크며, 동포

현실적으로 쉽진 않기에 올

들이 이민생활을 하는데에도

해도 약식으로 “한인의 날”

큰 힘이 될 것이다.

공포식을 거행하였다는 것이 다.

우리 한인동포들이 최

앞으로도 우리의 한인동포

소 50여명만 참석할 수 있

들이 미 주류사회에서 인정

다면 주청사에서 더욱 격식

받고 존중받으며 이민생활을

있고 화려하게 “한인의 날” 공포식 및 축하행사를 치를 수

영위할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의 차세대가 동포사회와 주

있을 것이다. 한인동포들의 위상을 드높이는 이러한 의미있

류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

는 행사에 대한 한인들의 참여가 더욱 절실해 지는 대목이다

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펼치겠다고 뉴햄프셔한인회는 전하 였다. ​

이날 “한인의 날” 선포장에서 크리스 스누누 주지사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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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 보스턴협의회, 신년 하례식 가져 지난해 활동 보고 및 공로장 수상식 이어져…

민주평통 보스턴 협의회 (회장 한선우)

황우성 간사는 지난 2016년 9월 전

화 통일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천명하

는 지난 29일 렉싱턴 소재 다빈 레시

체회의 이후 평통 보스턴협의회의 자

였고 본국의 국방부와 함께 통일안보

토랑에서 신년하례식을 겸한 전체회의

세한 사업 내용과 1월 15일 본국 사무

비젼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평통

를 소집하여 지난해 보스턴협의회 활

처에 전달된 재정보고 사항을 보고하

보스턴 협의회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동보고 및 본국 사무처 전달사항을 공

고 올 상반기 사업에 대한 보고를 진

고 전했다.

지했다.

행하였다. 또한 “협의회는 한인회 주최 ‘한국의

이날 행사에는 뉴잉글랜드 전역의 많은

사업보고 후에 한선우 회장은 인사말을

날’ 행사참여는 물론 노인들을 위한 효

위원들이 참여하여 설을 맞은 신년 하

통해 “지난 한해 보스턴 협의회의 많은

도 잔치 개최 등 많은 활동에 동참하거

례식 분위기에 맞게 많은 덕담을 주고

활동에 적극 동참해 주신 위원들의 노

나 주도적으로 행사를 진행하며 보스턴

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의

고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

한인사회의 화합과 발전에도 앞장서 왔

를 진행하였다.

지난해 평통 보스턴 협의회는 북핵 도

다고 전하고 모든 활동에 적극 동참해

발에 대한 규탄대회와 성명서 발표, 그

주신 협의회 위원들에게 다시한번 감사

리고 수차례의 안보강연 등을 통해 평

의 인사를 전했다.

먼저 국민의례로 시작한 전체회의에서


이날 공로장 수여식에서 이현경 홍보위

참여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인사말 후에, 한선우 회장은 본국 사무

원장은 민주평통협의회 활동이 대내외

처와 미주회장단 운영회의 참석결과를

적으로 잘 소통 되도록 노력한 공로가

전체회의와 수상식 후에는 위원들이 저

보고했고 이에 따른 전체 민주평통의

인정되어 김기철 미주민주평통 부회장

녁식사를 함께하며 신년 하례식의 분위

결의내용을 전달했다.

의 공로장을 수여받았다.

기를 마음것 즐겼다.

간단한 인사와 사업보고 후에는 민주평

한편 민주평통자문회의 의장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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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공로장 수여식이 진행되었다.

김현주 부간사는 지난달 갑작스러운 타 주 이주로 인해 이날 수상식에는 직접

미주민주평통부회장의공로장을수여받은이현경홍보위원장(좌)


엄성준 보스턴총영사 한국 전통 보자기 예술 확산 방안 논의

엄성준 총영사는 2월 7일(화) 로드아

고 있다.

일랜드 디자인 대학 (RISD) 박물관,

술인이 10년 동안 학생들을 지도해 오 고 있다.

자연연구실, 면직예술 작업실을 방문하

자연 연구실 (Nature Lab)은 다양한

고, 향후 한국의 전통 보자기 예술의 확

동식물의 표본을 보관하고 있으며 예술

RISD 학교 측은 많은 한인 학생들이

산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적인 호기심과 창작 욕구를 키우기 위

RISD에서 공부하여 예술 분야에서 활

하여 대학생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

동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엄 총영사는

RISD 박물관은 140년의 오랜 전통을

도 방문하여 창의적인 교육을 받는 장

박물관 관계자 및 이정희 예술인과 앞

가진 유서 깊은 박물관으로서 이집트,

소이다.

으로 한국 보자기 예술을 통한 문화협

그리스와 로마, 유럽 등 세계적인 유

력 확대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물과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아시

면직예술 (Textile Art or Fiber

아관에는 중국, 일본, 인도, 동남아 등

Art) 작업실은 면직물을 이용해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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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고대와 근대 전통 예술품을 비치하

활동을 하는 곳이며, 이정희 보자기 예



우리 문화의 멋을 통해 한인들 자존감 높였다.


보스턴 미술관 음력 설날 축제 대성황, 많은 관객들 세배와 한복 소개에 큰 호응보내

보스턴 미술관(Museum of Fine Arts Boston)이 주최하고 한국, 중 국 베트남 문화단체들이 함께 참여한 음력 설날 축제가 지난 2월4일(토요 일) 9,690명(MFA통계)의 관객이 입 장한 가운데 풍성하고 화려한 잔치로 치루어졌다. 이날 행사는 오전 10시 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었고 미술 관 측은 무료 입장을 통해 미술관 전 체를 개방하여 방문객들은 명품 예술 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아시아 3개국의 설날 문화를 배우고 즐기는 유익한 시 간을 가졌다. 한국 측에서는 한미예술협회(회장 김 병국)가 주도하여 한국 설날의 세배시 연(Saebae demonstration)과 전 통음악 공연을 통해 미국 사회의 많은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조연민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세배 시범은 안길남,안동희씨 부부와 뉴잉 글랜드한국학교의 김진아,김희현 교사 가족이 시범을 보였으며, 이후에는 방 문객들이 한복을 직접 입어보고 절하 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날 세배시연을 참관한 외국인들은 특 히 한복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연신 사 진을 찍고 많은 질문을 이어갔으며 보 스턴에서 한복 구입이 가능한지 묻기 도 하였다. 이날 행사는 외국인들에게 는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과 풍습을 알 리고, 한인 자녀들에게는 세배에 대해 교육하는 뜻깊은 자리가 되었다. 특히 한국의 설날행사에는 엄성준 보

스턴 총영사가 참석하여 세배 시연을 방문하고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였으 며, 한국 문화가 표현된 달력, 복주머 니, 전통문양의 셀폰 고리 등 많은 기 념품 전달하여 방문객들로 부터 큰 호 응을 얻기도 하였다. 한편 음악 프로그램으로는 가야금 주 자 김도연과 피아니스트 체이스 모린 (Chase Morrin)으로 구성된 듀오 Gapi의 연주가 있었다. 동요 ‘까치까 치 설날’, ‘자장가’등 귀에 익은 멜로디 로 만든 즉흥곡 외에도 다수의 곡을 한 시간 동안 연주하여 400석의 레미스 오디토리움(Remis Auditorium)을 꽉 채운 관객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다. 보스턴 미술관에서 자원봉사 및 커뮤



니티 참여 디렉터로 일하는 린다 애플 (Linda Apple)씨는 전년도에 비해 방문객이 31%나 증가한 것에 큰 놀라 움과 만족을 표하며 한미예술협회와 한인 네트워크 및 커뮤니티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내년에도 이 행사를 계 속 지원할 계획임을 밝혔다.

김병국 한미예술협회 회장은 “가구 및 병풍을 운반하고 하루 종일 세배 시연 과 한복 입는 것을 도와준 많은 봉사 자들, 그리고 많은 한복을 대여해 주 신 뉴햄프셔 한인회의 조은경 회장님 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하였으

며, 이렇게 한국의 문화와 풍습을 자연 스럽게 미국 사회에 소개하고 교육하 는 것이 한인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미 국에서 살아가는데 작은 도움이 되기 를 바란다는 희망을 이야기하였다. Bostonlifestory.com


따뜻한 정(情)이 오간 국제선 후원의 밤 국제선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소중한 자리

국제결혼가정선교회(회장 김인숙)는 지난 2월 11일 북부 보스턴에 위치한 다문화 선교 교회에서 국제선 후원이 사들과 일반 후원자들을 초청하여 “ 국제선 후원의 밤” 행사를 개최하였다. 국제선 후원의 밤은 국제선 회원들이 국제선의 활동을 후원하는 모든 분들 을 모시고 지난 한해 국제선의 활동을 보고하고 올 한해 진행할 활동을 소개 하면서 국제선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소중한 자리이다. 이날 행사는 올해 새롭게 임기를 시작 하는 김인숙 회장의 인사말로시작되었 다. 김회장은 “아침에 내린 눈과 열 악한 일기 상황에도 많은 후원자들이 참석해 주어 감사한다”고 전하며 “국 제선은 지난 20여년간 국제결혼가정

의 어려움을 함께 위로하고 해결함은 물론 우리 사회의 불우한 이웃을 위해 홈리스 식사초대, 양로원 방문 등 많은 활동을 해 오고 있다”고 전한 뒤 향후 국제선의 보다 활발한 봉사활동을 위 해 후원자들의 끊임없는 지원과 응원 을 부탁하였다. 회장 인사말 후에는 지난 한해 국제선 의 활동을 되세겨 보는 영상보고 시간 이 이어졌다. 활동보고에 나선 이은주 전 회장은 영상 속 사진을 한장 한장 넘기며 국제선의 활동을 소개해 나갔 다. 센트루이스에 위치한 국제선 평 화의 집 소개부터 불우한 환경의 이웃 을 보살피는 봉사활동, 한인회 행사 참여 등 한인사회와의 협력활동 등 다 양한 활동을 소개해 나갔다. 특히 활동 영상보고 후에는 후원이사 및 후원자

들의 이름을 일일히 거명하며 국제선 활동 후원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 기도 하였다. 이어 엄성준 보스턴총영사와 김경원 전 보스턴한인회장의 축사가 이어졌 고 주종옥 국제선 후원이사의 인사말 후에 국제선 임원들의 소개가 이루어 졌다. 인사말과 임원소개 등 간단한 행사 후 에는 국제선 회원들이 정성스럽게 준 비한 음식을 함께 하며 국제선 임원들 과 회원들 그리고 후원자들이 함께 어 우러져 따뜻한 정을 나누었다. ​ bostonlifestory.com



엄성준 총영사, 뉴햄프셔 포츠머스 시장 예방 한미관계와 한-포츠머스 관계에 대해 설명

Jack Blalock 포츠머스 시장을 예방하고, 한미관계와 한-포츠머스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엄성준 총영사 엄성준 총영사는 2.23(목) Jack Blalock 포츠머스 시장을 예방하고, 한미관계와 한-포츠머스 관계에 대해 설명하였다. 이번 면담에는 조은경 뉴 햄프셔 한인회장, 박선우 뉴햄프셔 한 인회 고문, 유수례 갤러리 관장과 김병 국 보스턴 한미예술협회장과 회원들이 동참하였다.

엄 총영사는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굳 건한 안보 협력과 우호관계, 뉴햄프셔 주지사의 한인의 날 선포, 그리고 수례 갤러리를 통한 예술교류에 대해 소개 하였다. Blalock 시장은 총영사와 한 인대표들의 방문을 환영하고 포츠머스 의 역사적 의미와 발전에 대해 설명하

였다. 면담을 마친 후, 엄 총영사와 한 인 대표들은 수례 갤러리를 방문하고 1905년 포츠머스 조약을 협상한 역사 적 장소를 둘러보았다. ​ bostonlifestory.com



유수례화가의 PHOTO ESSAY 겨울의끝자락에서....

Photo by Soo Rae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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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나는 그 사랑을 섬길 뿐이다. 다문화 선교 교회 김동섭 목사를 만나다....


보스턴라이프스토리는 국제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있는 교인들을 중심으로 목회활동을 펼치고 있는 “다문화 선 교 교회” 김동섭 목사의 평범치 않은 인생 이야기를 듣기위해 보스턴 북쪽에 위치한 “다문화 선교 교회”를 찾아갔다. 이날의 만남은 김동섭 목사의 요구도 보스턴라이프스토리의 요청도 아니었다 . 김목사가 인도하는 교회의 신도들이 목사님이 너무 좋아서, 우리 목사님을 너무도 자랑하고 싶어서 목사님도 모르게 자리를 마련하고 기습적으로 목사님 을 초대해 이루어진 자리였슴을 밝히고 이야기를 시작해 나간다.

김목사와의 만남은 목사님의 근엄한 위 엄과 정제된 말씀을 늘 머릿속에 심고 있던 나의 고정관념을 깨는데서 부터 시작되었다. 환한 웃음이 얼굴에 가득 히 풍겨져 나오는 그의 첫 인상은 친근 함과 겸손 그 자체였지만 어딘지 모르 게 일반인들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꾸준 히 추구하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 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평범 이상의 특 별함이 엿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 어린시절, 변호사의 길…

그는 1976년 그의 나이 아홉에 부모님 을 따라 미국에 처음 도착했다. 누구나 마찬가지 였겠지만 그 역시 어린나이 에 미국에 와서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 고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던 그리고 무 엇보다도 동년배 미국 불량 학생들 무 리가 행하는 무시와 따돌림 속에서 많 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교회에 다니면서 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런 상황 속 에서 신앙이 자라났다고 웃음 짓는다. 그가 간직한 어린 시절의 추억은 특별 했고 그 추억이 지금까지 이어지며 자

신의 삶을 인도해 나간다고 말 한다. 그가 말하는 아홉살 소년의 특별한 이 야기는 무엇일까? 그날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홉살 소년 은 예배를 보고 있었다. 예배 중 누군 가가 양과 염소 이야기가 나오는 마태 복음 25장을 읽어 나가는 순간 갑자 기 주위의 모든것이 사라지면서 하나님 의 음성이 들려 왔다고 한다. “누가 나 를 위해 낮은 곳에 갈것이냐” 이 물음 에 그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제가 가겠 습니다.”


이때 부터 그는 가난한 사람, 약한 사 람, 불편한 사람, 다시말해 하나님이 말 씀하신 낮은곳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들 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 기위해 많은 노력과 고민을 하게 되었 다고 한다. 아홉살 소년이 고민하기에 는 평범치 않은 문제였고 해결하기 쉽 지 않은 문제였지만 나름 어른들의 도 움으로 그 길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찾게 되었고 그 길이 바로 변호사가 아 닐까 하는 막연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그때 부터 그는 법대 진학을 목표 로 공부해 나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법대 진학 후 하나님과의 약속을 위해 그는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가난한 사 람들을 돕는 변호사들의 펀드같은 곳 에서 인턴쉽을 하며 집없는 가족들을 위해 일을 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회봉사단체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그들을 도우 면 도울수록 그는 무언가 한쪽이 비어 있는 느낌을 받아가고 있었다. 가난한 자들을 돕는것도 의미있는 일일 수 있 으나 그들이 왜 이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인지가 더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그 런 안타까움을 느끼면서 그는 생각했 다. “하나님이 나의 마음은 알아 주시 지만 제시해 주시는 길이 항상 나와 같 지는 않다”는 것을…. 이런 생각으로 그는 가난한자들을 맹목 적으로 돕는 변호사가 되기 보다는 그 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 는 사업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을 굳힌 다. 사업의 성장을 통해 낮은곳에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고 그들이 일하며 얻은 댓가로 스스로 설 수 있는 선순환적 구 조를 만들고 싶었고 그 일을 성공시키 는 유능한 변호사가 되기를 꿈꾸었다. 변호사로서의 성공과 또 다른 길로의 인도 사업변호사로 변신한 그는 승승장구 하 기 시작했다. 많은 사업들을 성공시키 며 그 사업을 통해 낮은곳의 사람들이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자신의 길 임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나 자신을 버리고 나 의 고객을 위해 섬기라”는 변호사의 직 업적 윤리가치가 너무 좋았다고 한다.


결론에 도달했을 때 하나님은 주저없 이 “이제 때가 되었으니 떠나라”라고 말씀 하셨고 그 말씀에 따라 아무 미련 도 후회도 망설임도 없이 로펌을 그만 두고 하나님이 인도하는 새 길을 찾아 떠났다고 한다.

신학도로서의 새로운 길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날 때 하나님 은 어디로 어떻게 떠나라는 말씀은 없 으셨다고 한다. 다만 이제는 좀 더 높은 곳에서 낮은곳을 바라보며 섬기라는 방 향만을 제시해 주셨다고 한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평범한 나로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라 그에 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졌다. “인생의 목표도 방향도 없이 잘나가던 변호사를 순간적으로 그만둔다는 것은 자신뿐 아 니라 가족들에게도 너무 무책임한 행동 아닌가?” 그의 답은 확신에 차 있었다. “내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가 주어지 면 다음 길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다. 내 스스로 인생의 목표를 두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고 하 나님이 계획한 길을, 그의 뜻을 자신은 묵묵히 따라가며 섬기면 되는 것이다” 라고 답한다.

자기 자신의 성공 보다는 고객의 성공, 고객의 목적달성을 위해 열심히 섬기는 일, 그 자체가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 한 길이라는 생각에 누구보다 열심히 변호사 일을 수행하였고 그 결과로 많 은 사업들을 성공시키면서 파트너 변호 사라는 타이틀도 얻고 여기저기 강연 도 나가면서 매스컴에 소개도 되는 성 공적인 변호사 생활을 해 나가게 되었 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변호사의 일 뿐 아니라 그가 원래 추구했던 낮은곳 을 바로보는 사회적 관계의 끈은 놓지 않았다. 로펌 변호사의 직업을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계속적으로 어려운 사람 들을 위로하고 꿈과 희망을 전파하기 위해 어렵게 사는 작은 마을들을 돌며 길거리 전도를 계속했고 엠마뉴엘 가스

펠선교센터의 문을 두드려 그곳에서 약 한자들을 위해 함께 일하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일련의 과정들 이 하나님이 또 다른 역할을 자신에게 부여하기 위해 준비시키는 과정이 아 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변호사로서의 일과 낮은 곳의 사회에 대한 섬김을 함께 이어가던 중 2009 년 급속한 경기침체로 인해 많은 사람 들이 실의에 빠졌고 직장을 잃는 두려 움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변호사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섬길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찾게 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길을 찾을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 가 왜 변호사로 불림을 받았나?” 하는 것이었다. 변호사가 된 이유가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함이었다는

물론 이러한 결정을 혼자 독단적으로 내리는 것은 아니다. 나와 부부의 연을 맺고 이제는 한몸이 된 나의 배우자와 오랜시간 함께 이야기 하고 기도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한다. 와이프가 반 대하는 일이라면 그 역시 하나님이 허 락한 길이 아닐것이기 때문이다. ​ ​사실 결혼전 와이프가 내게 내건 조건 이 두가지 있었다. 하나는 노래를 좋아 하는 내가 락밴드 가수가 되지 않는다 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목사가 되어서 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 조건 을 약속하고 결혼 했기에 나는 와이프 가 나의 길을 선뜻 허락하리라고는 믿 지 않았다. 나 또한 목사라는 길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변호사 일을 그만두 고 어렴풋이 하나님의 뜻이 목사가 되 어 낮은곳을 섬기라는 의미일지도 모른 다는 막연한 생각에 많은 핑계를 대며 거부했던 일이 생각난다고 한다.


“하나님 저는 아닙니다. 제 역량이 거 기까지는 미치지 못합니다.” 첫번째 거 부의 이유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변호사시절 내가 사업을 도왔던 한 고객을 우연히 만나면서 그가 미국교회를 소개시켜 주 었고 그 교회 목사님이 마침 동역자를 찾기위해 기도하던 중이라며 반가히 맞 아 주신다. 그곳에서 나는 목사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배워 나가게 된다. “하나님 저는 정식 신학교육을 받지 못 했습니다. 저는 아닌것 같습니다.” 두 번째 몸부림이었다. 하나님은 그것도 해결해 주신다. 변호사시절 가난한자

들을 위한 펀드 모임에서 함께 일했던 변호사 한분이 신학대학 학장의 친구 였다며 나를 추천해 주셨다. 뿐만 아니 라 결혼 전 목사라는 직업을 반대했던 나의 와이프 역시 아무 걱정 말고 신학 대학에 가란다. 내 핑계가 하나도 먹 히질 않는다. “하나님 알겠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세번째 핑계를 대 보았다. 역시 소용없었다. 신학을 공부 하면서 변호사로서의 내 재능을 활용 하여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장학금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목사 의 길을 거부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 다. 모든 어려움을 다 풀어주시고 내 갈 길을 인도해 주신다. 결국 자신은 이 때부터 목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말 한다.

목사의 길 그리고 다문화선교 교회와의 만남 신학대학을 졸업할 즈음 그는 목회활동 을 할 교회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알 아보고 있던 때라고 했다. 뉴욕의 큰 교회도 있었고 중국인들이 모인 규모가


큰 교회에서 자신을 불러주어 여러 고 민을 하던 중 우연히 오래전 부터 알고 지내던 한인 2세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국제결혼 하신 분 들이 모여 목회를 하는 작은 교회를 알 게 되었고 그때는 “아 그런 교회도 있구 나” 하는 정도로 지나쳤다고 한다. ​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작은 마을의 그 작은 교회가 자신의 마음에 자리를 잡고 떠나질 않았다고 말한다. 마치 9살에 하나님이 불러주실때 그 모 습으로 돌아가는 기분! 낮은곳으로 누 가 갈것이냐? 그 질문이 다시 한번 자 신의 마음속에서 울렸다고 한다. 약한자들, 힘든자들 그들이 누구일까? 어려운 시절 국제결혼을 통해 미국사회 도 아닌 그렇다고 한국사회도 아닌 양 쪽에 끼어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 경 제적 여유나 풍요가 문제가 아니라 마

음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분들… 그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내 가 작은 위로라도 할 수 있다면 그 길 이 바로 하나님이 나에게 부여해 준 길 이 아닐까? 이렇게 연을 맺으면서 하나님께서 나 에게 인도해 준 교회가 바로 “다문화선 교 교회”요. 하나님이 첫 목사로서 나 를 인도해 준 교회가 바로 다문화 선교 교회라고 그는 말한다.

목사님! 목사님! 우리 목사님!!! 김동섭 목사와의 대화가 끝날 무렵 다 문화선교 교회의 신도들이 자리를 같이 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목사님에 대한 칭찬과 감사가 끊이질 않는다. “우리 목사님은요 더 크고 대우도 좋은 교회도 다 마다하시고 우리를 위해 와

주셨어요.” , “우리 목사님은요 설교를 얼마나 잘하시는 지 아세요? 그리고 매 주 설교를 위해 준비도 엄청 많이 하세 요.”, “우리 목사님은요 노래도 엄청 잘 하세요. 기타와 하모니카 하나로 우리 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 주시는데요…” 그들의 수다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 신도들의 수다 속에는 목사님에 대한 깊은 존경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 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목사님은요 좋고 화려한 꽃길을 마다하시고 우리에게 와 주셨어요. 너 무 감사해요” 라는 한 신도의 말에 김동 섭 목사는 조용히 대답한다. ​ “지금 제가 가는 이 길이 바로 꽃길입 니다.” ​ bostonlifestory.com (글 박진영)



장용복의 영시 산책

장용복 선생님은 지난 4년간 뉴잉글랜드 한인회보에 < 오페라 산책>, <서양 명화 산책>, <서양 고전 문학 산책 >, <한국 서예 산책> 등을 기고하여 독자들에게 유익하 고 재미있는 기사를 제공해 왔습니다. 작년(2016년) 말 에는 심장마비로 큰 수술을 받으셨는데 완쾌되기도 전에 집필하신 <장용복의 영시 산책>을 보스턴라이프스토리 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1회: 시는 영혼의 음악이다 왜 인류는 시인을 낳고 시인은 시를 쓰 며 사람들은 시를 읽는가? 시 속에 사 랑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되려면 사 랑에 빠지거나 불행해져야 한다. 그 사 랑에 빠져서 피워낸 한 송이의 꽃이 시 인 것이다. 이렇게 바이런(Byron)은 말했다. ​ 시는 영혼의 음악이다 (Voltaire). 강렬한 감정이 스스로 우러나온 글이 고 (Wordsworth), 가장 숭고한 마 음이 가장 훌륭하고 가장 행복한 순간 을 기록한 글이다 (Shelley). 즐거움 과 진실이 합쳐진 예술이고 (Samuel Johnson), 마음과 자연이 합쳐진 세 계 공통의 언어이다 (William Hazlitt). 이렇게 시는 사랑, 진실, 자연, 영혼, 마음, 감정을 다루고 있다. 시는 이러한 내용 즉 詩想을 간단하게 여러 줄로 표현하고 있다. 산문으로 쓰 면 여러 페이지에 써야 할 분량을 몇 줄 로 함축하였다. 그래서 소설 읽듯이 쉽 게 이해하기가 힘들 때가 많다. 따라서 이해하는데 노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영어로 된 시가 우리 말로 번역 이 되면 더 읽기가 힘들고, 원문의 뜻이 충분히 전달되지 못할 경우가 많다. 우 리 말의 情이라던가 恨이라는 뜻을 영 어로 번역하기 힘들 듯이, 영어를, 문 화와 습관이 다른 언어를 번역한다는 것은, 더구나 짧은 줄을 짧은 줄로 번 역한다는 것에는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 고 원래의 뜻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영시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우리 말로 번역된 시 만을 읽을 것이 아니라 영어로 된 원문을 제대로 해석한 후에 영어로 읽어야 할 것이다.

영어로 읽어야 할 이유가 또 있다. 음악 에 리듬이 있고 강약이 있듯이 영시에 는 韻律이 따르고 있다. 시의 뜻 말고 도, 읽는데 또 듣는데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영어로 읽고 또 읽고 외우듯 읽 어야 진국을 맛볼 수 있다. 시의 운율은 음악과 매우 비슷하다. 많 은 시들이 음악의 가사가 되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먼저 음악을 해부해 본다. 윤극영 작사 작곡의 <반달>을 골랐다. (윤극영 씨에게는 10년 위의 누님 한 분이 있었다. 누님은 시골로 시집을 갔 는데 가세가 기울어 늘 가난 속에서 힘 든 시집살이를 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 나고 말았다. 21살의 청년이던 윤극영 은 그 때 집 근처 공원으로 가서 밤새도 록 울었다. 새벽에 은하수 같은 엷은 구 름 너머로 반달이 걸려 있었고 그 멀리 로 샛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반달>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반달>은 두 절로 되어있는데 제1절은 다음과 같다. 푸우른 하아얀 계에수 토오끼 도옷대 사앗대 가아아 서어쪽

하아늘 쪼옥배 나아무 하안마 도오아 도오없 기이도 나아라

으은하 에에에 하안나 리이이 니이달 이이이 자알도 로오오

수우우 에에에 무우우 이이이 고오오 이이이 가안다 오오오

한 節은 여덜 줄, 전문어로 여덜 少節로 되어 있다. 모든 소절은 4마디로 되어 있고, 한 마디는 3拍子, 그래서 한 소 절은 12박자로 되어있다. 한 마디는 첫 박자를 강하게 그리고 나머지 두 박자 는 약하게 불러 ‘강약약’ 이 된다. 예로 ‘푸우른’ 에서 ‘푸’ 는 강하게 ‘우른’ 은

약하게 부른다. 그러니까 한 소절은 ‘ 강약약 강약약 강약약 강약약’ 이 되 는 것이다. 첫 소절과 세째 소절은 같은 ‘우’로 끝 나고, 네째와 여섯째는 ‘이’로, 다섯째 와 여덜째도 같은 ‘오’로 끝난다. 로제티(Rossetti)의 시 <기억해 주세 요> (Remember)를 읽어보자. Re - mem - ber me when I am gone a - way, Gone far a - way in - to the si - lent land; When you can no more hold me by the hand, Nor I half turn to go, yet turn - ing stay. 위의 한 聯(stanza)은 네 行(verse) 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연은 음악 의 절에 해당하고 행은 음악의 소절에 해당한다.) 각 行은 모두 열 音節(syllable)로 되어 있다. (음악의 박자에 해당한다.) 약한 音節 다음에 강한 音 節이 한 쌍이 되어 (음악의 마디에 해당 한다.) 다섯 번 반복한다. ‘약강 약강 약 강 약강 약강’ 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약강五步(iambic pentameter)라 고 부른다. <반달>은 ‘강약약’ 이 네번 반복하는데 (강약약 강약약 강약약 강 약약) 이런 경우를 강약약四步(dactyl tetrameter)라고 한다. 그러니까 ‘The Child is fa - ther of the Man’ 은 약강四步(Iambic tetrameter)라고 부를 수 있다. 시의 이런 여러가지 형태를 律(meter)이라 고 부른다. 제1행과

제4행은

‘에이’

(away,


stay) 로 끝나고 제2행과 제3행은 ‘앤 드’ (land, hand) 로 끝나는데 이를 脚韻(rhyme)이라고 한다. 類韻(assonance)이라는 것도 있는데 행의 가운데에서 같은 모음의 단어들을 쓰는 것이다 (bright, delight). 頭韻(alliteration)이라는 것도 있다. 같은 자 음으로 시작되는 단어들을 같은 행에 쓰는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소네트의 첫 행에서 me, marriage, mind 가 나오는 경우이다.) 특수 효과를 내기 위 하여 쓰고 있다. 시의 이런 음의 조화를 韻(rhyme)이라고 한다. 이런 韻과 律에 맞추어 詩作을 니까 알맞는 단어 대신에 어색한 를 쓸 때도 있고, 단어의 순서, (word order)을 문법에 맞추어 않고 바꾸어 나열할 때가 많다.

하려 단어 語順 쓰지

어순을 따르지 않은 예를 들어 보자. 쉐 익스피어 <소네트 116> 의 첫 연은 다 음과 같다: Let me not to the marriage of true minds Admit impediments. Love is not love Which alters when it alteration finds, Or bends with the remover to remove: 위의 첫 두 행을 어순에 맞추어 쓰면 아

래와 같다. Let me not admit impediments to the marriage of true minds. ..... 또 3행의 it alteration finds 는 it finds alteration 이 맞는 어순이다. 이렇게 바꾼 이유는 각운을 맞추기 위 함이었고 (minds 와 finds, love 와 remove), 두운도 맞추려 함이었다 (me, marriage, mind). 이 연이 어떻게 우리 말로 번역이 되었 는지 보자. (우리가 이 연을 읽을 때 알 아야 할 점은 그 당시의 교회 결혼 법이 다. 결혼하기 전에 미리 공고를 해서 하 자가 없어야 결혼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 교회법을 지키고 있다. 첫 행에 나오는 impediments 는 그런 하자를 뜻하고 있다.) 진실한 사람들의 결혼에 방해를 용납하지 않으리라. 변화가 생길 때 변하고 변심자와 같이 변심하는 사랑은 사랑 이 아니로다. (피천득) 진실한 마음을 가진 연인들의 결혼에 나는 결코 혼인장애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리라. 상황이 바뀌면 변하거나 강요에 굴복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김철수)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혼을 방해하지 말지니. 변할 거리가 생겼을 때 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지, 혹은 핑계가 있을 때 사라지는 것도 사 랑이 아니지. (오민석) 진실한 마음들의 결합에 부디 방해물을 허락지 마소서! 변화가 찾아왔을 때 돌아서거나, 떠나간 사람과 함께 단념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역자 미상) 이상과 같이, 시적으로 번역하려는 분 이 있는가 하면, 시적 표현보다는 원문 에 더 충실하려는 분도 있다. 영시 자체 가 애매할 때도 있고 여러가지 뜻을 내 포하고 있을 경우도 많기 때문에 우리 말로 번역된 시 만을 읽게 되면 진수를 놓칠 수 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앞으로 시를 소 개할 때 우리말로 번역된 시 밑에 영어 로 된 원본을 같이 실었고 주석을 많이 붙였다. 될 수 있는 한 영문학자들의 번 역을 실렸는데 번역이 없을 경우에는 필자가 번역했다.


앤 브래드스트리트 (Anne Bradstreet 1612-72) 스트리트와 그녀의 남편 사이의 사랑도 청교도의 사랑을 근거로 한 것이지만, 속세의 성애와 하느님에 대한 사랑사이 에서 고민을 하였다. 한때에는 성욕을 없애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했고 천연두 가 걸렸을 때 이를 하느님이 주신 벌이 라고 생각하였다. 오늘 소개하는 <소중하고 사랑하는 남 편에게> (To My Dear and Loving Husband) 는 그녀가 죽은 후 에 발표된 시로서 지금도 결혼식에서 자주 낭독되고 있으며 인구에 회자되 고 있다.

1620년에 영국의 청교도(Puritans) 들이 메이플라워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매사추세츠에 도착하였다. 이렇 게 미국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로부 터 20여년 동안에 2만명 이상의 청교 도들이 이주하였고 이들은 ‘새로운 영 국’ (New England) 을 건설하기 시 작하였다. 이들은 남성 위주의 사회, 엄격한 청교 도의 종교관에 의한 사회를 이룩하였 다. 여성은 겸손하고, 온순하고, 덕이 있고, 복종하고, 친절해야 하며, 오로 지 아이 낳고 기르고 부엌 일을 하며 가 사를 돌보아야 한다. 참고 입을 다물어 야 한다. 결혼을 매우 중요시해서 한번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야하고 이혼이나 혼외 정사는 금물이다. 그리 고 결혼 생활을 통해 하느님에게 영광 을 돌려야한다. 이런 사회였기 때문에 부시 전 대통령 의 조상이 되는 앤 헛친슨 여사는 청교 도 교리에 어긋나는 교리를 여성들에게 가르쳤다고 교회에서 파문을 댕했고 보 스턴에서는 추방을 당했다.

미국 최초의 여류 시인 브래드스트리 트(Anne Bradstreet 1612-72)도 청교도로서 1630년에 남편과 같이 부 모를 따라 이주해 왔다. 그녀의 아버 지 더들리(Dudley)는 매서추세츠 주 지사를 여러번 하면서 보스턴과 케임브 리지 도시를 세웠고 하버드 대학 설립 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락스베리 라틴 스쿨(Roxbury Latin School) 설립 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브래드스트리트는 영국에서 자랄 때부 터 역사, 문학, 언어 분야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아 왔다. 죽기 몇 년 전에 집 에 불이 났을 때는 책이 9천 권이나 있 었다. 어려서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지 만 여성이 시를 쓰는 것을 용납하지 않 던 식민지 사회라서 전문적 시인이 될 수 없었다. 그녀의 첫번째 시집은 영국 에서 출판되었다. 그녀의 동생의 남편 인 목사가 그녀가 모아 놓은 시들을 가 지고 영국에 가서 그녀의 허락도 없이 출판사에 주었던 것이다. 브래드스트리트는 14살에 그녀의 아버 지 밑에서 일해 오던 청년을 사랑하게 되었고 2년 후에 결혼을 했다. 브래드

읽어 보자. 이 시에서 그녀는 자신이 남 편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또 남편 으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를 표현하고 있다. 자신이 아무리 남편 을 사랑해도 남편의 자기에 대한 사랑 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나머지를 하 늘이 보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두번 째 聯(stanza)에서 “나의 불같은 사 랑은 강물을 모두 합쳐도 끌 수 없겠고” 라 함은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 적으로 남편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 를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그 들의 사랑이 지상에서 뿐만 아니라 죽 어서도 영원히 지속되기를 염원하고 있 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동안 한 없이 사랑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脚韻(rhyme)을 살펴보면 aabb / ccdd / eeff 로 되어있다. 예로, 첫 연에서 처음 두 行이 we 와 thee 로, 마지막 두 행이 man 과 can 으로 끝 나고 있다. 頭韻(alliteration)은 11 행에서 볼 수 있다. live, love, let’s 가 연속으로 나온다. 律(meter)을 살 펴보자. 행마다 10개의 음절(syllable)로 되어 있는데 (약강 약강 약강 약강 약강) 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if ev er two were one then sure ly we). 영어 quench 는 extinguish 또는 satisfy 라는 뜻, ought 는 anything 의 고어이다. 브래드스트리트는 전형적인 청교도로


7 남매를 잘 키웠고, 자주 출장 다니는 남편을 잘 보살폈으 며, 모든 집안 일을 능숙하게 해냈다. 워낙 몸이 약했는데 말 년에 몸 일부가 마비되었고 폐결핵에 걸려 고생하다가 60 세에 세상을 하직하였다. 남편은 4년 후에 재혼하였다. 남 편은 재혼하기 전에 이 시를 읽어 보았을까? 무척 궁금하다.

Then while we live, in love let’s so persevere, That when we live no more we may live ever

결혼식에서 자주 낭송되는 시를 하나 더 소개한다. 중국 원 나라의 여류 화가 관도승(管道昇1262-1319)이 썼다. 원 제목 <아농사> (我儂詞) 는 영어로 <저와 당신의 노래> (Song of Me and You) 라고 직역 되었고 <부부의 사랑 > (Married Love) 으로 의역이 되었다. 농(儂)은 저라는 뜻으로도 당신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저와 당신은 너무 사랑하고 있어요. 불이 타오르는 사랑이지요. 진흙 한 덩어리를 빚어 당신과 제 모양을 만들어 그 불로 구어 냅니다.

관도승은 유명한 서예가인 조맹부(趙孟頫)의 부인이다. 남 편이 어느 여인을 사랑하여 그녀를 첩으로 들이려 하자 남 편을 나무라지 않고 대신 이 시를 읊어 주었다고 한다. 남편 은 부인의 시를 듣고 감동하여 첩을 두려던 뜻을 접었다. 남 편은 부인 관도승이 각기병으로 죽기까지 다른 여인은 두지 않았으며, 이후 3년을 더 홀아비로 살다가 죽었다. (계속) <소중하고 사랑하는 남편에게> (To My Dear and Loving Husband) 둘이 하나가 된다면, 분명히 우리일 것이고 남자가 부인의 사랑을 받는다면, 당신일 것입니다. 부인이 남자 품안에서 행복하다면, 여성들이여, 누가 나만큼 행복하겠어요. If ever two were one, then surely we. If ever man were loved by wife, then thee; If ever wife was happy in a man, Compare with me, ye women, if you can. 당신의 사랑은 모든 금광보다 귀중하고 동방의 모든 부귀 보다도 귀중합니다. 나의 불같은 사랑은 강물을 모두 합쳐도 끌 수 없겠고 당신의 사랑만이 내 사랑을 채울 수 있겠어요. I prize thy love more than whole mines of gold, Or all the riches that the East doth hold. My love is such that rivers cannot quench, Nor ought but love from thee give recompense. 당신의 사랑은 내가 보답할 수 없을 정도라서 하늘이 당신에게 몇 배로 보답해 주시기 기도합니다. 살아있는 동안 어떤 난관이라도 사랑으로 이겨내어 죽어서 영원히 살 수 있기 바랍니다. Thy love is such I can no way repay; The heavens reward thee manifold, I pray.

<저와 당신의 노래> (Song of Me and You)

You and I Have so much love, That it burns like a fire, In which we bake a lump of clay Molded into a figure of you And a figure of me. 그런 후에 두 인형을 부수어 가루로 만들고 가루를 물로 섞어 반죽해서 다시 당신의 모양과 제 모양을 만들면 저는 당신의 진흙에, 당신은 제 진흙에 섞입니다. ​ Then we take both of them, And break them into pieces, And mix the pieces with water, And mold again a figure of you, And a figure of me. I am in your clay. You are in my clay. ​ 살아서는 한 이불을 덮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히고 싶어요. ​ In life we share a single quilt. In death we will share one coffin. ​ <아농사> (我儂詞) ​ 你儂我儂 忒忒煞情多 情多處 熱似火 把一塊泥 捻一個你 塑一個我 將咱兩個 一齊打破 用水調和 再捻一個你 再塑一個我 我泥中有你 你泥中有我 我與你 生同一個衾 死同一個槨



하늘의 시 이야기

[시인 신영] 보스턴 에서 활동하는 신영씨는 “하늘”이라는 필 명으로 시, 칼럼, 여행사진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덜 외로운 사람

/신 영

가슴에 꼬깃꼬깃 접어놓은 그리움이 바람이 지날 때마다 일어서면 콕콕 찌르는 아픔에 울었습니다 이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서성거렸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당신도 외로움에 울먹인다는 것을 그리움에 못 견딜 가슴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외로움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은 덜 외로운 사람 그리움으로 남겨 놓은 외로움은 아직은 사랑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아파하는 사람은 아직은 덜 아픈 사람 아직도 사랑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작 노트^^ 우리 모두는 무엇을 얻거나 무엇이 부족해서가 아닌, 존재의 부재에 대한 상실감에 불안해 한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삶이길...


이런 날엔

/신 영 나, 이런 날엔 아무런 약속 없이 보고 싶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길 걷다 어느 가로등 불빛 가 하늘 눈 흐르는 그 자리 멈칫, 고개 돌려 바라보듯 내 등 뒤 걸어올 그 임 나, 만나고 싶다

시작 노트^^ 누구에게나 그리운 사람 하나쯤 가슴에 있지 않을까.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든 날엔 문득, 그리운 사람 생각난다.


산이야 언제나 그곳에 있으니 /신 영

봄이 오는 소리에 눈을 뜨니 이미 겨울 속에서 산속 생명들은 하나 둘 봄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산이야 언제나 그곳에 있으니 산 아래서 산 위의 것을 걱정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 마음 하나 챙겨 오르면 될 것을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저 먼 산만 바라보며 마음을 보채고 가슴을 조아리며 긴 겨울을 보냈습니다 산이야 언제나 그곳에 있으니 마음 안에서 가슴 속에서 염려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발걸음 옮기며 오르면 될 것을요 산 아래서 산 위의 것을 마음을 보채고 가슴을 조아리며 걱정하고 염려할 일이 뭐 있겠습니까 산이야 언제나 그곳에 있는 것을요

시작 노트^^ 거대한 너무도 언제나 사람은

자연을 만나며 나약한 인간을 생각합니다 산은 말없이 한곳에 있는데 이런 탓, 저런 탓으로 오늘을 삽니다.


RAN’S TASTY ROAD 김란의 테이스티 로드

첫번째이야기

Great Foods@The Salted Slate, Providence R.I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다운타운 을 걷다가 우연히 들르게 된 레스토랑 ‘The Salted Slate Restaurant’ 의 맛있는 음식들…티라미수 케익, 샐몬 사시미 샐 러드, 그릴드 씨배스, 스터프드 머쉬룸, 스트로베리 타르트


PHOTOGRAPHED BY RAN KIM.


EAT OUT~~ 어느듯 보스톤에도 봄이 가까이 와 있는듯 하다. 긴 겨울이 지나가 고 따뜻한 봄이 되면 하고 싶은 것이 있다.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긴 겨울동안의 얘기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것 같다. 보스톤에서 한시 간 조금 넘는 곳에 있는 로드 아일랜드 프로비던스 다운타운에 위 치한 The Salted Slate 레스토랑이 바로 그 곳인듯 싶다. 조금 은 복잡하게 느껴지는 하이웨이를 타고 가야 하지만, French 맛 과 Italian 맛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American Cuisine 레 스토랑 이다. ​ 로컬 레스토랑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의 실내에 들어서면 웨이트 리스의 친절한 메뉴소개를 시작으로 신선한 천연재료로 만든 정갈 하고 깊은 맛이 가득한 디쉬들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 특히 그릴드 씨배스(Grilled Sea Bass)는 특급호텔 레스토랑 의 그것에도 뒤지지 않는 환상적인 맛이었고, 샐몬 사시미 샐러 드(Salmon Sashimi Salad)도 신선하고 상큼한 회맛을 제대 로 느낄 수 있어 추천하고 싶은 디쉬이다. 사진에서는 소개하지 못 했지만, 친숙한 맛의 로스티드 본 메로우(Roasted Bone Marrow)와 이탈리안 스타일의 회무침인 하마치 쿠르도(Hamachi Crudo)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맛이었다. ​ 후식으로 곁들인 티라미수 게잌 과 향긋한 에스프레소 커피는 잔잔 히 흐르는 음악과 함께 나를 그곳에 마냥 앉아있고 싶게 만들었다. ​ 보스톤의 긴 겨울이 끝나면 프로비던스 타운의 봄을 찿아 나들이를 나설 것이다.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 중 ‘봄’ 의 악장이 들려오길 기다리며~~ ​ *레스토랑 이름 : The Salted Slate, *전화번호 : 401-270-3737 *주소 : 186 Wayland Ave., Providence, RI 2017. 2. .8

WRITTEN BY

김란


SEACRET AGENT

Seung Jo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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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912-8788


Michael Lee, Mortgage Story

Michael Lee | Loan Originator Norcom Mortgage | NMLS #1464242 Two Main Street, Suite 325 | Stoneham, MA 02180 P. 855-272-0400 ext.103 F. 888-444-1008 Licensed in MA.


Pre-Qualification과 Pre-Approval의 차이점

집장만, 더 큰집을 생각하고 계세요? 요즘은 구입자의 경쟁이 참으로 치열한 때입니다. 집주인들은 여러개의 오퍼를 받을테고 높은 오퍼만을 중요시 할것이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외 의 부분을 진행하며 클로징데잇을 맞추 지 못 하거나 융자가 나오지 않는등, 딜 이 틀어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조금 더 높은 가격으로 매매를 하려다 가 딜이 성사되지않고 결과적으로 낭패 를 보게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겠죠. 이런상황을 방지하기위해 많은 집주인 들은 먼저 융자를 받을 수 있는지, 클로 징 날짜에 착오없이 진행이 될 수 있는 지 제 3자의 의견 또는 약속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바이어들과 다 르게 앞서나가길 원한다면 꼭 알고 준 비해야하는 부분, 바로 프리퀄리피케이 션(pre-qualification)과 프리어프 로벌(pre-approval) 입니다. 먼저 Pre-qualification은 모기 지 브로커/오리지네이터에 의해 작성 이 됩니다. 대출인이 기본적인 정보를 구두로 주거나 애플리케이션에 기입하 는 정보만을 바탕으로 이러한 부분들 이 사실이라는 가정 또는 조건하에 대 출이 가능한 예상치를 알려줍니다. 대 출회사나 브로커에 따라 서류를 필요로 할 수 있지만 꼼꼼히 검토를 하기원하 는 브로커는 Pre-approval과 거의 동일한 서류를 필요로 하기도 하고 이 것을 field underwriting이라고 부 릅니다. Pre-qualification은 하루 정도의 짧은 시간안에 작성이 가능합니 다. 꼭 기억해야 하는것은 언더라이팅 의 심사를 거치지 않았기에 확실한 약

속은 아닙니다. 하지만 먼저 주어진 정 보를 바탕으로 몇가지 조건하에 예상치 의 융자가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니 특별한 변수가 있지 않다면 문제가 되 지 않습니다. ​ Pre-approval은 실제로 융자를 진 행하며 필요로하는 동일한 서류를 요구 하고 언더라이터의 심사를 거치게 됩 니다. 다만 정해진 부동산만 임의로 가 정을 하고 필요한 서류는 다음과 같습 니다. ​ -Credit Report -Tax Return -Pay Stub -Bank Statement ​ 가장 중요한 수입과 지출을 확인할 수 있는 정확히 신고가 된 서류들이며 대 출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닌 사실로 기록된 부분들만으로 판단을 내리게 됩 니다. Pre-approval은 이러한 서류 를 기반으로 언더라이터의 심사를 거쳐 서 나오는 약속된 결과물입니다. 그렇 기에 Pre-qualification과는 다르 게 더 긴 시간이 요구됩니다. 준비가 길 고 확실한 만큼 오퍼가 승낙된 후 더 빠 른 진행이 가능합니다. 모지기가 나오 지 않을까 마음조리는 일도 없고 준비 사항에 차질이 생겨 클로징 날짜를 미 뤄야 하거나 융자가 불가피하게 거절되 는등의 사건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대 비책입니다. ​ Pre-qualification과 pre-approval은 공통점도 있습니다. 소득,

집가격, 다운페이먼트 금액등 대출자 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바탕자료가 예 상이 아닌 실제금액이고 현재 부담하고 있는 부채(크레딧카드 메이먼트, 자동 차 융자비, 학자금 융자비 등)를 숨기 지 않고 공개한다면 사실상 모기지 브 로커의 field underwriting의 판단 과 언더라이터의 심사결과는 거의 동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짧은 시간안에 가 능한 Pre-qualification은 많은 분 들이 부동산에 오퍼를하기 전 급히 필 요로 하는때에 기본적인 서류들과 부채 에 대해 숨기지 않고 모든걸 공개한다 면 더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게 됩니다. ​ 대출자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수입이 충 분하다고 하더라도 실제적으로 인정되 지 않을 수 있는 부분들이 숨어있고 다 운페이를 하려고 하는 나의 돈이 융자 업계의 지침서에서는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면 내 생각과는 다르게 상 황전개가 가능할 수도 있고 다운페이 액수, 이자율도 단순한 숫자가 아닌 본 인의 상황과 계획에 따라 더 나은 방도 가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항상 느끼 는것은 모든 분의 상황이 너무나 다릅 니다. 어느 한 번 똑같은 상황에 똑같 은 가격의집, 동일한 액수의 다운페이 먼트, 대기업 은행 광고와 같은 이자율 로 결과가 나온적은 없습니다. 모두가 너무나 다르고 더 만족스러운 딜, 예상 치에 달하지 못 하는 딜에 실망하실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기 억해야 할 부분은 집을 찾고 오퍼를 하 기전 가능한한 미리 모기지 상담을 하 고 본인에게 맞는 방향으로 준비를 해 야만 시행착오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EduWell의 교육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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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는 그림은 ......... EduWell Boston, Ph.D 이주연 따사로운 봄볕 덕분인지 어김없는 자연의섭리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앞마당 잔디의 색이 하루하루 달라 져간다. 일상은 다시 되풀이되는 가운데 원하는 사립고등학교에 지 원해놓고 한껏 긴장 속에 하루하루 보내던 학생들은 좋은 소식과 안 타까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일생에 가장 큰 전쟁을 치룬 고교 시니어들 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으며 열심 히 여러 활동을 하며 학교생활과 대 학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의 마 음도 봄과함께 분주해지고 있다. 원하는 고등학교로 부터 입학허가 를 받은 학생들은 기쁨에만 들떠 있 지말고 다음단계를 설계해보는 시 간을 갖도록 하고 대기자로 또 다시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내야되는 학 생들과 원하는 학교가 안된 학생들 도 너무 실망 실망할 필요 없이 차 선책을 강구해 볼 소중한 때 인 것이 다. 또 고등학생들은 아직 대학입 시결과가 다 나오지 않은 상태이므 로 차분히 나머지 학교들에 대한 결 과를 기다리며 나머지학기를 잘 마 무리하도록 계속 자기관리를 하며 그동안 못 했던 일들에 매진해 볼 일이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 부모와 같이 준비해왔든 유학생으 로 혼자 준비해왔든 최선을 다한 그 들이기에 기쁨도, 실망도 클 수 밖 에 없다. 작금에 생각해보건데 모든 일이 마음먹은대로 되면 무슨 걱정 이 있을까만은 세상엔 공짜란 없는


법이다.

그리는거다.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데 누가 잘못했다고 지적할 이유도 모두에게 “그럴만한다”라는 인정을 없고 어떠한 제한도 있을 수 없다.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현 상 그러나 거기에 들이는 시간과 정성 태는 간과하고 노력은 안하면서 이 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리 나올 상만 높이 잡아 처음부터 비현실적 것이다. 임을 알고 있지만 주변가족의 기 대때문에 현실과의 괴리감에 고민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정형화된 틀 하다가 결과가 나오면 충격과 실망 을 마련해 놓고 따라 그리기에 여념 을 안겨주는 예를 종종 보게된다. 이 없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 지 그리고 있는 본인도 잘 알지 못 가족의 무관심이나 환경때문에 학 하며 왜 그리는지 이유도 분명치 않 습의욕을 잃은 학생들, 부모님 특 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부분도 히 한국에 있는 부모님의 미국 교 특화해서 나타낼 수 없다. 주변에 육시스템에 대한 정보부족을 내세 놓인 여러 재료들을 적절히 사용하 워 이미 중대한 것도 혼자 결정하는 는 여유 즉 창의력은 더욱 생각지도 것에 익숙해진 학생들의 주관적이 못한다. 고 미숙한 결정등이 여기에 해당된 따라서 그리는 중간중간 어느 목표 다고 보겠다. 물론 어려운 환경속에 에 가까와지고 있는지에 대한 보람 서도 긍정적이고 슬기롭게 대처해 이나 만족이 있을 수 없으며 절충되 나가는 의젓한 학생들도 많이 있다. 지 않은 수정작업과 함께 그저 맥 없이 그리는 자체에만 열중하다가 대학에서 보고자하는 면은 쉽게 말 싫증이 날 쯤이면 그냥 그냥 마무 해 ‘사람 됨됨이’다. 열정, 리더쉽, 리한다. 봉사,… 이것이 다 무슨 기준이 있는 건가? 아니다. 다 똑같이 받은 도 누구 그림이 선택될지는 안 보아도 화지위에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자명하다. 이를보고 앞으로 더 특별

하고 멋진 그림을 그릴수 있는 학생 을 가려내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는 쉬운 결론에 도달하면서도 막상 밑그림없이 그리는현실은 그 리 쉽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이다 . 그럴때 학교 카운슬러나 주 변 전문가의 조언과 풍부한정보가 필요한 것이다. 일단 구상을 하고, 생각하는 재료의 특성을 감안한다 면 거기에 걸릴 시간도 대략 예측 할 수 있으므로 시간을 갖고 여유있 게 나만의 그림을 그릴수 있게 되는 것이며 중간중간 다른이들과의 의 견 교환, 색다른 시도, 시행착오 나 우연한 실수가 결국 내 그림을 더 특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바 너무 두려워하지말고 과감히 그 려보라는 주문을 학생들에게 하고 싶다. 포부가 커야 설계도 하고 세 부적인 계획도 생각해볼 것 아닌가! 인생도 마찬가지이니 새 봄과함께 심기일전하여 희망찬 미래를 구상 해보자. 나의 혼이 담긴 그런 그림을 한번 정 성껏 그려보자…..



장우석 변호사의 법률칼럼

장우석 변호사 신용교정, 신용카드 빚, 의료빚, 파산, 교통사고, 상 해사고,파산보호, 추방, 민사 소송 T) 781-712-1706 67 South Bedford Street, Suite 400 West, Burlington, MA 01803


크레딧 교정 이해- 2 3월, 7 월, 11월 검토 그리고 Dispute 지난주에는 이 dispute 의 이해 를 돕고자 미국의 사법제도를 간략 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궁금하신 분 은 adversarial system으로 검 색을 해보시면 좀 더 많은 의견을 살 펴보실 수 있습니다. ​ 그러면, 이런 적대적 제도에서 사 는 우리들은 어떻게 목소리를 내어 야 하는가요? 여러가지가 있겠지 만, 나의 신용대출관련한 기록은, 크레딧 보고 기관에 연락하는 것입 니다. 크레딧 교정은 영어로 표현 을 빌리자면 dispute 입니다. 좀 더 전문적으로 말씀드리자면, Fair Credit Reporting Act에 의해 보장되어 있는 분쟁기회입니다. 많 은 여신 대출 기관에서 돈을 빌려줄 때 신용점수를 고려하다 보니, 이런 액트가 제정되어 졌습니다. ​ 그러면 무엇을 dispute 할 수 있 는지를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크레 딧 교정에 대해 이해를 하실 수 있 습니다. 크레딧 교정은 한마디로 정 리하자면 관련근거 입니다. 즉, 7년 간의 자료들을 통털어서 내게 안좋 은 영향을 미치는 부정적인 기록에 대해, 관련근거를 제시하라는 요청 을 하는것이고, 이에대해 제시를 하 지 못하면 삭제해야 합니다. 신용평 가기관에서는 각각의 렌더들로부터 관련 기록을 넘겨받아 기록을 관리 합니다. 일단 렌더들이 보고하는 내 용을 신속하게 반영하고, 차후에 분

쟁이 있으면 해당렌더에게 관련근 거제출을 요청하여 있으면 남겨두 고, 없으면 삭제하게 됩니다. 이러 한 절차가 Fair Credit Reporting Act에 명기되어 있습니다. 특 정한 근거없이 삭제를 거부할 수 없 게 되어 있으나, 세상만사가 개인이 뜻하는 대로만 움직이지는 않기에, 관련근거를 토대로 연방법원에 제 소를 해서 법원의 힘을 빌어 비로 소 삭제해야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도 합니다. 우리가 유의해서 살펴봐야할 부 정적인 크레딧 기록(Derogatory Summary)에는 차지오프 (charge off), 콜렉션(collections), 파산기록(bankruptcy account), 민사소송기록(public records), 연체기록(delinquency), 조회기록(inquiries)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들 을 신용점수 감점요인(negative items) 이라고 하며 감점요인이 많 을수록 당연히 크레딧 점수는 낮아 지게 됩니다.

천해 드립니다. 이렇게 검토하는 과정중에 이상함 혹은 부정적인 내용을 발견하면, 바 로 시작하면 됩니다. Dispute 편 지를 보내어 관련근거를 가지고 있 는지 확인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과 정은 법원의 절차를 따르는것이 아 니므로, 당사자가 직접 진행하여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걸 리는 일이기에, 이 분야의 일을 하고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진행 하는것도 좋은 선택입니다. 통상적 으로 분쟁편지를 접수하면 30일이 내에 회신을 받으며, 평균 3개월에 서 6개월 사이에 진행이 되고, 이중 성공적으로 분쟁제기해서 삭제하는 경우FICO 점수로는 50-100 점 정도 향상이 이뤄지게 됩니다. 이런 분쟁제기를 할 수 있는 기록으로는 콜렉션 기록도 포함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인 기록에 대 해 7년간 기록으로 남아 영향을 미 칠것이라 생각한다면, 그런 기록에 대해 분쟁제기를 하여 관련근거를 크레딧 교정을 위해서는 자신의 크 입증할 수 없는 기록은 삭제를 하 레딧 리포트를 주기적으로 검토해 도록 하는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 보는것에서 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 니다. 다. 관련근거에 의해 3대 크레딧 뷰 로에서는 1년에 한번 씩 무료로 리 법 칼럼 내용 관련 문의: 장우석 변 포트를 제공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호사 781-712-1706 (벌링턴 오 그래서 4개월마다 (예, 3월-에퀴팩 피스) 스, 7월-익스페리언, 11월-트랜스 유니온) 하나씩 받아 보시는것을 추


Kaay의 한국 이야기 나혜석을 탄생시킨 수원!

수원행궁을 나와 나름 신여성이기 시인ᆞ 조각가ᆞ여성운동가ᆞ 사 를 표방하는 두여인(동행친구와 필 회운동가ᆞ 언론인이라 칭한다. 자)이 짠한 마음으로 어슬렁거린 거 리는, 나혜석거리이다. 필자의 어린시절 인기있던 TV드라 마중에는, 근대사인물들을 모티브 엄친딸’라는 말이 있다. 로하는 드라마가 많았다. 엄마친구의 딸... ‘엄친아’는 엄마 주인공으로 윤심덕ᆞ나혜석등의 신 친구의 아들을 일컫는다. 실제뜻은 여성은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였다. 모든조건이 잘 갖추어진 실력까지 있는 부러운대상을 의미하는데, 팔 그런 까닭에 사춘기시절ᆞ학창기시 자좋은 환경을 갖춘사람이라는 의 절 그녀들은 여성상위시대란 말과 미이다. 함께,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할 때 되새겨보는 출발점의 인물이었다. 나혜석(羅蕙錫, 1896년 4월 28일 ‘신여성’이란 단어만으로도, 도전이 ~ 1948년 12월 10일)은 당시 보 며 희망이며 성공이라는 이름이었 기드문 ‘엄친딸’로 용인군수ᆞ시흥 다. 군수 등을 지낸 아버지 나기정의 둘 째 딸로 태어나, 상류층의 전형적 딸 <매일신보>에 의하면 나혜석은 한 로 1920년대와 1930대를 풍미했 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로, 1921년 던 여성 서양화가이자 문필가이다. 서울경성일보사에서 첫 전람회를 열었는데, 이는 서울에서 열린 최초 한국여성 최초로 동경여자미술학교 의 서양화전시회로 관람객이 인산 에 입학하였으며, 최초의 여성서양 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필자는 먹 화가, 최초의 여류화가개인전 등 성 고 사는것조차 힘겨웠던 그시절 일 공가도를 달린 뛰어난 신여성이었 본유학이 가능했던 집안의 여성이 다. 역사는 그녀를 화가이자 작가ᆞ 선택한 학문이 미술이었다는 것에

주목했었는데, 억압된 시대상황상 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많은 것들 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화폭에 담 았을것이라 생각해 본다. 나혜석은 신문학을 존중하는 개화 된 가정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 나, 도쿄 유학중이던 오빠 경석의 권유로 1913년 도쿄 여자미술전문 학교에 입학하여 유화를 전공했다. 유학시절에는 최승구·이광수와 사 귀면서 동경유학생들과 교제하며, 여권신장을 옹호하는 글을 발표하 기도 했다. 1918년에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부로 돌아와 잠시 정 신여자학교 미술교사를 지냈으며, 박인덕 등과 1919년 3·1 만세 운동 에 참가하여 5개월간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그 뒤 1920년 김우영(金宇英)의 오랜 구애를 받아들여 1920년 이 례적으로 신식결혼식을 올리게 되 고 그를 따라 만주와 프랑스 등을 여행하였으며, 그림, 조각, 언론, 문 필, 시 등에서 활동했다. 1927년 유


럽과 미국시찰을 가게 된 남편을 따 라 여행길에 올라, ‘조선 최초로 구 미여행에 오른 여성’이 되었다. 나혜 석은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남 편은 영국에서 법학 공부를 했던 세 계여행은 그녀에게 신선한 영감을 주었고 서구여성의 진보된 지위 등 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프랑스에 체류하는 동안, 서구 미술 사조의 영향을 많이 받아와 국내창 작활동에 접목하였다.

비판’하였지만, 여성들에게 한 없는 의무만을 강요하던 그 시절 조선사 회에서 나혜석의 이러한 외침이 곱 게 받아들여 질 리가 없었다.

그녀는 단편소설 경희를 발표할 때 ‘여성도 남성이 하는 일을 다 할 수 있는 사람’ 이라며,여성의 인권 신장 을 주제로 내세웠다. 당시 여성상위 시대라는 표현은 여성이 우위에 섰 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하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이었을것이다. 여성상 파리에서 공부하는 동안 외교관 최 위시대의 표방이후 양성평등표방사 린(崔麟)과의 염문으로 인해, 남편 회로 이후 최근 역차별이라는 현시 김우영에게 이혼을 통보받게 되지 대에 이르기까지 그녀를 비롯한 신 만 훗날 최린에게도 버림받았다. 김 여성들의 외침을 밑거름으로 여성 우영과 최린 모두에게 버림받은 나 의 지위는, 향상되었다고 필자는 믿 혜석은 ‘이혼고백서’를 발표하게 되 는다. 는데, 이것이 바로 후세가 나혜석을 ‘불륜을 저지르고 이혼당한 부정한 그녀에게서 등 돌린 조선사회는 그 여인’으로 기억되게 만든 주요한 원 녀의 소품전 마저 외면하게 되었고, 인이 되었다. 그녀는 빈곤에 허덕이게 되었다. 생 활고의 고통 속에서 말년을 보내던 이혼고백서를 통해, 정작 ‘자신은 정 그녀는 결국, 서울의 한 무연고자 조관념이 없으면서 여성에게만 정조 병동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 나라에 를 요구하는 조선 남성들을 과감히 서 최초로 구미여행을 다닐정도의

부를 구가하던 삶에서, 무연고 병동 에서 삶을 마감한 나혜석의 삶을 어 떤이는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녀는 그녀가 스스로 선택했던 삶에, 충실했던 선각 여성이다.그녀는 임 종전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무어 라 평했을까? 나혜석의 비극은 너무나 명석했고 시대를 앞서간 그녀의 사상과 생활 방식이 그 시대 사람들의 공감을 이 끌어 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 나 80여년이 지난 지금, 고등교육 을 받은 신여성으로, 문학과 그림 모두 뛰어났던 예술가로, 여성인권 신장을 외친 여성운동가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1935년 정조 취미론을 발표, 순결 과 정조(貞操)는 ‘도덕도 법률도 아 닌 취미’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 의 아내,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순 결함을 요구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 내나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성욕 을 품는 한국 남자들의 위선적인 행 동에 대한 비판과 자유 연애론을 주


장하였고, 당사자들의 의견이 존중 되지 않고 집안의 뜻에 따라 결혼하 는 것에 대한 비판, 가정폭력을 일 삼는 남성들에 대한 비판 등으로 화 제가 되기도 했다.

가 ‘정월 나혜석’여사의 업적을 기 리기 위해 조성하였다. 약 300m 가량의 문화 거리로 문화예술회관, 효원공원, 야외 음악당 등을 연결하 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도로 내 분수대, 음악이 흐르는 화장실, 조경수가 잘 조성되어 있는 보행자 전용 도로로서 거리 공연과 같은 다 양한 볼거리, 주변의 전문식당가로 먹거리가 산재해 있어 많은 사람들 이 찾는 문화와 만남이 공존하는 거 리이다.

나혜석같은 신여성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시간, ‘여전히 바뀌지 않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우리가 어머니 에게, 아내에게, 직장의 여성 동료 에게, 길거리에서 만나는 여성에게, 이는 여성자신이 자신의 성에 대 심지어는 만나지도 못할 여자들에 한 주인공이 되어야한다는 ‘성적자 게 특별히 기대하는 ‘여자다움’이 사 기결정권’을 제시한 선구적 행동이 실상 모두 ‘여성혐오’에 해당된다’는 며, 양성평등적사고의 선언이었다. 최근의 세인들의 여성을 바라보는 뛰어난 미모와 함께 그림, 글, 시 등 패러다임이 변화된 세상은, 그녀들 다방면에 재주를 갖춘 근대 여성이 의 의지로 주어진 선물이다. 었으며, 여성 해방, 여성의 사회 참 여 등을 주장하였다. 박인덕, 김일 한시대를 풍미했으나, 거리의 노숙 주변에는 수원시와 경기도가 지역 엽, 허정숙 등과 함께 이혼 후 사회 자로 생을 마감한 그녀의 생애가 재 일부를 2006년에 음식문화 시범 생활을 하는 여성으로 유명하였다. 평가되고 ᆢ 거리로 지정, 삼계탕, 왕갈비, 냉면 등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는곳이다. 재주가 많으면 박복하다고 하던 그 역사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 필자에게 맛있는 음식이 몽땅 좋은 시절에 문재(文才)도 뛰어났으니, 동에 나혜석거리를 조성하여 그녀 안주로 보이는것은 시대의 풍운아 삶의 기폭이 후세의 필자에게 애절 를 기억하고 있다. 나혜석거리는 수 인 나혜석을 같은 여성으로서 한잔 하게 느껴지는걸까? 원 태생인 최초의 한국여성 서양화 의 술로 애도하고 싶은 까닭이리라.


한편에선 나혜석을 생각한다. 나혜석거리에서 직선으로 쭉 이어 진길을 어슬렁거리면, 문화의 거리 를 지나 수원역 건너편 먹자골목ᆞ 로데오거리로 이어진다. 퇴근시간 이 다가오고 해질무렵부터 모여드 는 인파들사이엔, 화려한 머리스타 일, 짧은 치마 ᆢ 자유분망한 젊은 여성들의 활보를 바라보며, 역사의

그리고 다가오는 가을날ᆢ 어느새 무상한 세월의 희비속을 머 어둠이 내릴무렵 낙옆지는 거리를 무르는 필자자신을 만난다. 수원성 어순렁거려보다!그 길 한편에서 한 의 호기찬 역사 깊은 성곽문화와 활 번쯤 나혜석을 만나러 떠나보자. 기찬 신세대문화가 어울어지는 현 재 수원의 모습도 옅보게된다. 나혜석거리 어슬렁 강추! 아쉬워하지말고 보내자!이 여름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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