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ston Life Story - November

Page 1

December. 2016

Photo by Soo Rey Yoo


Photo by Soo Rey Yoo


Contents 보스턴 소식 보스턴한국의날, 멈추지않은우리의행진 살포시접은보자기에서고향의추억을꺼내보다 한국의맛과멋을소개해드립니다 보스턴최초의한인호텔문열었다 선배정치인들에게길을묻다 “생일 마늘밭에서 재외동포문학상대상수상 다문화선교회”효도잔치”열렀다

보스턴 풍경 비내리는가을밤보스턴에서치맥이생각날때 시몬좋으냐? 낙엽밟는소리가

이야기 마당 생일, 마늘밭에서... 흔적

보스턴 사람들 미칠 수 있어 불행하지 않은 “방알자의 혼” 유수례 화가 IT 대박남 김계남, 보스턴에 둥지 틀다.

보스턴 이야기 로드아일랜드한인회 가을산행 이야기 보스턴턴 총영사관 전시회 “Nostalgia” 따뜻한 정이 넘치는 “보스턴 사랑방” 이야기 깊어가는 가을밤 보스턴한미예술협회 후원의 밤 이야기 보스턴 어르신들의 “뉴욕 나들이” 이야기 다문화선교회 “효도잔치” 이야기

한국학교 이야기 뉴잉글랜드한국학교, 한국동화구연 및 시 낭송 대회 밀알한국학교, 교내 번역대회 및 인문학 강의

[특집] 우리들의 추수감사절...


보스턴 한국의 날 !

매년 10월 1일은 “보스턴 한국의 날”이다. 이는 작년(2015년) 보스턴 한인회의 노력으로 보 스턴 시가 보스턴 한국의 날을 지정한 데서 비롯되었고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2016년 올해 처 음으로 보스턴의 중심 “보스턴 커먼”에서 제1회 보스턴 한국의 날 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한인회는 하루 종일 내리는 빗속에서 이번 행사를 취소해야 할지 강행해야 할지 어려운 결정 을 해야만 했다. 결정은 “비가 와도 우리는 간다”였다. 처음으로 열리는 “한국의 날”인 만큼 비 때문에 행사를 취소한다는 것은 역경을 헤쳐나가는 우리 민족의 정기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의지였다.


멈추지 않은 우리의 행진...

그 의지가 모든 한인들에게 전달된 것일까? 비 가 오는 와중에도 “보스턴 한국의 날”을 기념하 기 위해 우리 한인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비로 인해 조용했던 보스턴 커먼이 우리 한국인 들로 그리고 태권도의 함성으로 들썩이기 시작했 다. 지나가던 관광객도 빗속에 무슨 일인가 하고 우리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보스턴 한국의 날” 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 되고 있었다.


악천후 속에서 강행된 한국의 날 행사,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신 돋보여… 진위원회 김영환 위원장, 미주언론인협회 정금연 회장(뉴욕일보 대표) 등 많은 내외 귀빈들이 참석 한 가운데 쉼없이 내리는 빗속에서도 보스턴 한국 의 날은 날씨에 굴함 없이 화려하게 개최되었다. 악천후 속에서 강행된 한국의 날 행사,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신 돋보여…

끊임없이 내리는 빗속에서도 새로운 한인사 회의 역사를 여는 우리의 행진은 멈추지 않았 다. 지난 10월 1일 보스턴 한국의 날을 기념하 기 위해 보스턴한인회에서 준비한 제1회 보스 턴 한국의 날 및 추석 대잔치 행사가 보스턴의 상징인 보스턴 커먼에서 그 화력한 막을 올렸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내리는 빗속에서 이번 행 사를 기념하기 위해 모여든 한인들과 보스턴총영 사관 엄성준 총영사 및 관계자들, 민주평통 보스 턴협의회, 보스턴 한미노인회, 뉴잉글랜드 다문화 선교회, 보스턴 재향군인회, 보스턴 한미예술협회, 뉴잉글랜드 한인미국 시민협회, 재미한국학교협 의회 뉴잉글랜드쳅터, 월드옥타 보스턴지회, 보스 턴 체육회, 보스턴 야구협회 등 많은 한인 단체들 과 보스턴대학 K-Pop 동아리 소리안, 노스이스턴 대학 독도사랑회 메케니, 칸타타 미주공연팀, 민 유선의 살며사랑하며 독자모임 등 학생, 민간단 체들 그리고 태권도 시범을 위해 참가한 전미태 권도교육재단 소속 USTC 태권도 시범단 학생 및 학부모들 마지막으로 띠또잭슨 보스턴 시의원 및 시 관계자들, 멀리 뉴욕에서 보스턴 한국의 날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미주 한식세계화 추

이날 보스턴한인회 김경원 회장은 굳은 날씨 를 탓하지 않고 오히려 내리는 비가 우리 한국 의 날을 축복하기 위해 내리는 비 임을 강조하 며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분들이 함께 한국의 날 을 축하하고 어울려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과 함께 개회사를 시작했다. 김회장의 개회사 화두는 “시작이 반이다”라 는 표현이었다. 비록 악천후 관계로 예정되었 던 몇가지 행사가 취소되고 예상했던 인원보다 는 적게 모여 아쉬움은 있지만 보스턴에서 한 국의 날을 기념하는 대형 행사의 발판을 마련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고 싶다고 전했다.


또한 우리 “한국의 날” 행사가 2회, 3회 해를 거듭할수록 규모나 내용의 발전을 통해 Japanese Day나 China Day를 능가하는 보스턴의 대 표적 행사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것이며 이를 위해 향후 자신 이 보스턴 한인회장의 임기를 마치더라도 한인회 가 주최하는 한국의 날 행사에 아무 댓가 없는 전 미태권도교육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날 띠또잭슨은 보스턴한인회 김경원 회장에게 보스턴 시에서 발부하는 공식 한국의 날 선언문을 전 달하며 보스턴 시와 한인사회가 함께 노력하여 가장 모범적이고 살기 좋은 시를 만들어 가자고 부탁했다.

한편 축사 말미에는 공화당 대선후보 도날드 트럼 프의 반 이민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며 보스턴 시는 모든 이민자들에게 어떠한 차별도 규제도 없이 문 이어 축사에 나선 엄성준 총영사는 보스턴 한인 호가 활짝 개방되어 있다며 이러한 정책이 바로 미 사회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됨을 축하하며 “민간외 국을 이끌어 나가는 정신임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교 차원에서 대한민국의 국위 선양에 앞장 서 주는 한인회와 한인사회 모든 구성원들에게 정부를 대 악천후 속에 전개된 제1회 보스턴 한국의 날 행 신해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 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축제의 한 마 굳건한 한미동맹의 근간은 바로 미국에 있는 우리 당 그 자체였다. 비록 내리는 비로 인해 전기 음향 동포 들이라며 정부는 이 근간을 바탕으로 확고한 한미동맹의 체계를 유지하고 끊임없이 도발해 오는 북한의 위협에 강력히 대응해 나갈것을 천명했다. 이어 2016년 한국의 날을 공식 선포하고 한 국의 날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띠또잭 슨 보스턴 시의원은 축사를 시작하기 전 “끊임 없이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 없이 축제의 분위 기를 이끌어 내는 한국인들을 보며 태권도 정 신에서 나오는 한국인의 의지와 힘을 느낀다” 고 전하고 이런 한국을 자신은 사랑하고 존경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며 축사를 시작했다.


장치를 사용해야 하는 몇몇 공연 들이 감전 등 안전사고를 예방하 기 위해 취소 되어 아쉬움이 남 기는 했지만 학생들의 태권도 시 범은 강행 되었다. 빗속에서 어 린 학생들이 태권도 시범을 보일 때 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이 어졌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두꺼 운 송판을 격파할 때는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오기도 하였다. 기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또한 행사 말미에는 K-POP 이날 시범에 참석한 한 학생은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미 “한국의 날이라는 행사에 참여 국 학생들이 한국어로 한국의 가 하여 내가 배운 태권도를 선 보 요를 멋지게 부를 때 마다 행사 이게 되어 큰 영광”이라며 “태권 에 참여한 한인들은 놀라움을 도를 통해 한국을 알게 되고 한 감추지 못했고 이를 지켜본 윤 국을 좋아하게 되었다”라는 말 미자 한인회 수석 부회장 겸 한 을 남기며 이번 행사를 한껏 즐 국의 날 행사 추진위원장은 다 음 한국의 날 축제에는 좀 더 체계화된 K-POP경연대회를 개 최할 의사를 밝히기도 하였다. 한 마디로 이번 한국의 날 행 사는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축제 의 한 마당이었으며 향후 보스턴 을 대표하는 우리 한국인들의 가 장 큰 행사를 위한 발판을 마련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는 행사였다. (bostonlifestory.com)



보스턴의 가을 단풍

뉴잉글랜드의 가을 단풍은 그야 말로 숨막히는 절경을 그 자체이다. 10월부터 뉴잉글랜 드 곳곳에서 물들기 시작해 10월 중순까지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탈만큼 숨막히는 장관 을 이룬다. 이곳 뉴잉글랜드 단풍여행의 매력은 정해진 루트가 없다는데 있다. 지나가 는 길에 호수가 있다면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단풍의 반영을 기대해 볼 수도 있고, 높은 언덕에 올라 알록달록 다색으로 물든 풍경을 감상해도 된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가 잠시 멈춰 선 곳에 작은 집 하나가 있는 그림 같은 순간을 마주하거나 스쳐 지나 는 마을의 오래된 집들 사이로 예쁘게 물든 단풍나무가 있는 거리의 느낌이 사랑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뉴잉글랜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 지붕이 있는 다리도 다른 지 역에서는 보기 힘든 특별한 풍경이다.



살포시 접은 보자기에서 고향


향의 추억을 꺼내보다….

가을비가 걷히고 청명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보스턴총영사관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연린다는 소식에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보스턴총영사관은 우리 한인들에게 문화쉼터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한인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자 몇 해 전 부터 총영사관 내에 작은 전시관을 운영하면서 수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올 들어 네번째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Nostalgia” 즉 고향의 향수였다. 전시작품은 한인 여류화가 유수례화백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 향수어린 작품과 한국의 전 통 보자기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으로 승화한 김정임 작가의 작품이었다. 마치 살포시 접은 보 자기에서 옛 고향의 추억과 향수를 끄집어 내어 보는듯한 정감어린 전시회였다. ​ 보스턴 한인들은 수시로 열리는 최고 수준의 전시회, 음악회, 공연 등을 만끽하며 격조 높은 문화, 예술 생활을 즐길 수 있다. 그 중심에는 보스턴한미예술협회나 화음보스턴오케스트라 , 보스턴한미문화재단 등 각종 민간 문화,예술단체들과 뉴잉글랜드 음악학교(NEC), 버클리 음대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대학 한인 교수, 학생들이 있다. 물론 보스턴총영사관의 아 낌없는 지원도 빼 놓을 수 없다.


“고향의 향수(Nostalgia)” 느낀 전시회 살포시 접힌 보자기에서 고향의 추억과 향수를 꺼내 보는 소중한 시간 엄성준 총영사는 이번 전시회 를 통해 우리 한인들이 문화, 예 술적 공감대 위에서 상호 친교 의 폭을 넓혀 나가길 희망한다 며 앞으로도 총영사관은 이를 위 한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보스턴 총영사관이 주최하고 한미예술협회가 주관한 네번 째 전시회가 NOSTALGIA(고 향의 향수)라는 주제로 지난 10 월 13일 목요일 보스턴 총영사 관 겔러리에서 개막 행사를 가 졌다. 이날 겔러리에는 캐나다 에 거주하며 활동중인 김정임 작 가 (Textile Artist)와 뉴햄프셔에 서 활동하는 유수례 화가의 작품 들 전시되었다. 총영사관 겔러리 는 뉴잉글랜드지역 한인 예술인 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지역 한인

들에게 품격 높은 문화, 예술 서 비스를 제공하고자 지난 해 오픈 한 총영사관 내 전시 공간이다. 이날 전시 개막 행사는 엄성준 총영사와 김병국 한미예술협회 회장의 환영 인사말, 유수례 작가 의 작품 소개, 권현지 첼리스트의 특별 연주(바하 무반주 조곡, 카잘 스 민요, 아리랑)로 진행되었다.

살포시 접힌 보자기에서 고향 의 추억과 향수를 꺼내 보는 소중한 시간

인삿말과 축하인사 후에는 이 번 전시회 출품 작가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이어졌다. 먼 저 김정임 작가의 작품은 한국 의 전통 보자기에서 영감을 받 아 그 만의 Textile Art로 표현 된 작품임을 설명하였고 유수 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달동 네 시리즈를 통해 그리움의 정서 와 변화 그리고 개발에 따른 희 생 위에 피어나는 또 다른 희망 을 표현한 작품임을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를 참관한 뉴잉 글랜드한인미국시민협회 이경 해 회장은 “전시된 작품들을 통 해 두 작가가 느꼈던 따뜻한 한 국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며 보자기에서 영감을 받아 Felt 라 는 소재로 그만의 세계를 표현


한 김정임 작가, 그리고 한국 사 회 한켠에 자리 잡았던 달동네 를 통해 따뜻하고 희망적인 한 국을 기억하는 유수례 화가의 작 품들은 30년전 고국을 떠나 보 스턴에 정착하며 살아가는 나에 게 한국이, 그리고 고향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한번 더 생 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고 설명한 뒤 “마치 살포시 접힌 보자기에서 고향의 추억과 향 수를 꺼내 보는 소중한 시간”이 었다고 관람 소감을 표현했다. 전시회 개막식과 작품설명 후에

는 작가와 관람객들이 함께 대화 하며 총영사관에서 정성것 준비 한 만찬을 함께 나누기 도 하였 다. 한편, 이번 전시회는 2017년 1월 31일까지 진행 될 예정이다. ​ bostonlifestory.com


한국의 맛과 멋을 선

Korean Food Bazaar and Cultu


선물해 드립니다!

ural Activities”

울긋불긋 단풍으로 곱게 물든 뉴햄프셔 내슈아의 작은 마을에서 한국의 맛과 멋을 소개하는 “Korean Food Bazaar & Cultural Activities”가 열렸다. 뉴헴프셔한인회에서 올해 처음으로 시도하는 이번 한국음식 바자회가 조용한 시골도시의 아침을 밝힌 것이다. 이번 바지회를 위해 뉴햄프셔 한인회원들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안되는 한인들이 똘똘뭉쳐 몇몇은 음식을 준비하고 몇몇은 문화이벤트를 준비하면서 “한국의 맛과 멋”을 소개 하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한곳을 향해 달려간 것이다.


한국음식 바자회가 조용한 시골도시의 아침을 밝혀… 뉴햄프셔한인회, “Korean Food Bazaar & Cultural Activities” 울긋불긋 단풍으로 곱게 물든 뉴햄프셔 내슈아 의 작은 마을에서 한국의 맛과 멋을 소개하는 “Korean Food Bazaar & Cultural Activities”가 열렸다. 뉴헴프셔한인회에서 올해 처 음으로 시도하는 이번 한국음식 바자회가 조용 한 시골도시의 아침을 밝힌 것이다. 이번 바지회를 위해 뉴햄프셔 한인회원들은 분 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안되는 한인들이 똘똘뭉쳐 몇몇은 음식을 준비하고 몇몇은 문화 이벤트를 준비하면서 “한국의 맛과 멋”을 소 개하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한곳을

울긋불긋 단풍으로 곱게 물 든 뉴햄프셔 내슈아의 작은 마 을에서 한국의 맛과 멋을 소 개하는 “Korean Food Bazaar & Cultural Activities”가 뉴헴 프셔한인회 주최로 지난 10 월 15일 토요일에 열렸다.

향해 달려간 것이다. 바지회는 성공적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다소 생소한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접하기 위해 많 은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서로의 손을 잡고 모 여들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생 전 처음 접해보는 한국음식과 문화에 신기함을 감추지 않는 노랗고 파란 눈의 아이들의 모습 을 보면서 “한국의 맛과 멋”에 대한 자부심으 로“Korean Food Bazaar & Cultural Activities”는 시작되었다.

되었지만 행사 준비를 위해 이 곳 한인회원들은 이른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 식을 만들고 바자회장을 정비 하고 문화이벤트를 위해 테이 블을 세팅하면서 오늘의 행사 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 록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한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시작 곳을 보면서 함께하고 있었다.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접하 기 위해 외국인들이 속속 바자 회장을 찾기 시작하자 우리 한 인회원들의 발걸음은 더욱 분주 해 졌다. 호기심 가득한 외국인 들에게 준비한 하나하나의 음식 에 대해 설명하며 “한국의 맛” 을 전했고 종이접기, 한글이름 쓰기, 붓글씨 체험하기 등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다 가온 외국인들에게는 열심히 “ 한국의 멋”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날 뉴햄프셔에서 준비한 한 국음식은 비빔밥, 잡채, 불고기, 만두, 김밥, 김치 등이었다. 이 중 특히 비빔밥은 외국인들에 게 큰 인기를 얻었다. 헬시 푸 드라고 연신 설명하며 여러가 지 재료를 함께 비벼먹는 방법 까지 친절히 설명하느라 진땀 을 빼는 뉴햄프셔 한인회원들을 보면서 멀리 고국을 떠나 미국 에서 살면서도 우리의 음식, 우 리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잃 지않는 그들이 자랑스러웠다.

글이름쓰기 체험 등 한국 문 화체험을 위해서는 한국종이 접기문화재단 윤미자 보스턴 지부장과 재미한국학교협의 회 뉴잉글랜드쳅터 한순영 회 장 및 회원들이 수고해 주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조은경 뉴 헴프셔 한인회장은 처음 시도하 는 행사라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 오가 있었지만 모두가 한마음으 로 뜻을 모아 진행해 준 회원들 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특히 이번 행사를 위해 먼곳에서 달려와 준 윤미자 종이접기재단 보스턴지부장과 한국학교협의회 한순용 회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편 이날 종이접기체험과 한 전했다. 또한 이번 행사로 모아진

모든 수익금은 뉴헴프셔 한인회 관 건립과 한인회의 발전을 위해 요긴하게 사용할 것을 약속했다. 이날 뉴햄프셔 한인회에서 준비 한 “한국음식 및 문화체험” 행사 는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많은 인 원이 동원된 대형 행사도 아니었 다. 그저 동네 어귀 모퉁이에서 조 그만 터를 잡아 소박하게 진행된 행사였다. 하지만 이번 행사가 정 부나 한식세계화와 같은 대형단 체에서 진행한 행사보다 더욱 뜻 깊고 정감어린 이유는 어떠한 외 형적 포장없이 우리의 음식과 문 화를 가장 순수한 우리만의 마음 으로 전달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bostonlifestory.com


보스턴 최초의 한인 호텔 “PORTER SQUARE HOTEL”대문 활짝 열었다. 한인사회의 각종 행사를 위해 경제적으로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 약속

캠브리지 포터스퀘어에 자리 “PORTER SQUARE HOTEL”전경 캠브리지 포터스퀘에 위치한 한 인 최초의 호텔 “포터스퀘어 호 텔”이 많은 우여곡절 속에 모 든 공정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영업을 개시 한다고 전해왔다. 본 호텔의 건축을 위해 기존 건 물의 해체부터 땅을 파고 호텔을 한층, 한층 정성것 올리는 모든 일을 책임진 영컨스트럭션의 이

영호 대표는 “당초 예정했던 완공 일 보다 약 7,8개월 지연되었지만 모든 난제들 특히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일일히 설득하여 동의를 얻어 내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 었지만 결국 원만히 해결하고 드 디어 호텔 문을 열게 되어 기쁘 게 생각한다”며 “향후 호텔의 정 상적인 운영은 물론 보스턴에 세 워진 한인 최초의 호텔인 만큼 보

스턴 한인사회를 위해 호텔의 모 든 시설물을 효율적이고 경제적 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 지 원하겠다”는 말 도 잊지 않았다. ​ 하버드, MIT 등이 위치한 보스 턴 지역의 중심지 라고 할 수 있 는 캠브리지 매사츄세츠 에비 뉴 포터스퀘어에 위치한 이 호 텔은 지하1층 지상 5층의 건물


로 65개의 일반 객실과 8개의 스 위트 룸으로 이루어 졌으며 주 차시설은 물론 격조높은 레스토 랑과 연회실 등 부대시설이 완비 된 최고급 시설의 호텔이다. 또 한 호텔경영의 전문화를 위해 스 텝스톤이라는 전문 호텔경영회 사가 호텔영업은 물론 식당 등 각종 부대시설을 운영하게 된다.

아름다운 꽃들로 조경을 마무리 해 투숙객은 물론 일반 주민들에 게도 “도심속의 휴식처”를 제공 할 예정이라고 전하며 오는 봄을 기해 오픈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스턴에서 최초의 한인 호텔을 건설한 영컨스트럭션 이영호 대 표는 25년 이상의 건축, 건설 전 문성을 앞세워 미 주류사회 건설 특히 많은 공을 들여 조성하고 업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캠브 있는 호텔 공원은 많은 수목과 리지, 섬머빌, 뉴튼 등 보스턴 지

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주택단지, 주상복합시설 등을 건설해 오다 이번에 호텔을 건축하게 되었다. 한편 이영호 대표는 포터스퀘 어 호텔을 시작으로 현재 비컨 스트리트와 매스에비뉴에 2개 의 호텔을 신축 중에 있으며 나 머지 두 호텔이 완성되면 한인사 회에 더욱 폭 넓은 편의 시설을 제공하 게 될것이라고 밝혔다. ​ bostonlifestor y.com


선배 정치인들에게 길을 묻는다… 뉴잉글랜드한인미국시민협회, “2016 차세대 리더쉽 컨퍼런스” 성황리에 개최

컨퍼런스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이경해 시민협회 회장 뉴잉글랜드한인미국시민협 회 (회장,이경해, 이사장,김성 군. 이하 시민협회)가 지난 11 월 5일, 토요일 하바드 법대에 서 “2016 Young Leaders Symposium (차세대 리더쉽 컨퍼런 스)” 을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지난 2013년, 한인 미국시민으로 서의 정치력 신장을 위한 차세대 정치 리더 양성을 목표로 첫 행 사를 개최한 이래 올해로 네번째 를 맞이하는 이번 “2016 영 리 더스 컨퍼런스”에서는 매년 시민 협회에서 배출하는 학생 정치인

턴들과 미국 정치에 관심을 기울 이고 있는 보스턴 지역 대학생들 과 교수들 그리고 학부모 및 이 지역 단체장들이 대거 참여하 여 본 컨퍼런스의 강연자로 초 청된 미셀 우(보스턴 시 의회 의 장), 다니엘 고(보스턴시장 비서 실장), 케네스 안(EEOC : 연방 고 용차별 방지국 보스턴 지국장), 리사 손(콜롬비아대학 심리학 교 수), 리차드 킴(Boston College Law School, 시민협회 전 사무총 장), 아그네스 안 (OB/GYN physician)의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본 강연에 앞서 엄성준 주 보 스턴 총영사는 축사를 통해 “차 세대-지도자가 되는 길”을 주 제로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개 인적으로 그리고 공공분야에서 어떻게 지도자로 성공할수 있 는지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토 대로 심도있는 강연을 젊은 정 치 지망생들에게 들려 주었다. 시민협회 이경해 회장은 인사말 을 통해 “이번 컨퍼런스는 초청된 연사 각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 대로 우리 젊은 인재들이 구체적 으로 무엇을 준비하여야 자기분


​강연 및 패널로 참석한 다니엘 고, 리사 손, 미셀 우, 케네스 안 야에서 훌륭한 지도자적 역할을 수행할수 있는지를 알리고, 이에 대해 각각의 연사들과의 질의응 답 및 토론을 통해 차세대 리더 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데 도 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 라며 “이 자리에 참여한 많은 차 세대 리더들에게 유익한 컨퍼런 스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더쉽 컨퍼런스’가 많은 학생들, 지역 정치인들, 학부모들의 관 심 속에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며 시민협회는 미국사회의 한인 정치력 신장을 위해 최선의 노력 을 다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내년 2017년 차세대 컨퍼 런스에는 학생들이 “차세대 리 더쉽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이 김성군 시민협회 이사장은 “올 를 시민협회에 제출하여 선정 해로 네번째를 맞는 ‘차세대 리 되는 학생에게 소정의 장학금

을 수여하고 내년 컨퍼런스에 선 정된 프로젝트를 직접 프리젠트 하는 행사를 가지기로 하였다. 이번행사와 기타 자세한 내용 은 시민협회 웹사이트 www.kacl-ne.org에서 검색할수 있으며, 기타 행사에 대한 질문은 스티 븐 서 시민협회 사무총장 info@ kacl-ne.org 에게 문의하면 된다. ​ bostonlifestory.com

강연 후 함께한 단체사진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상 앤도버 거주 한인, 최정우씨, “생일, 마늘밭에서”

주보스턴총영사관(총영사 엄성 준)은 지난 11월 15일(화요일) 공 관에서 “제18회 재외동포 문학 상” 수필부문 대상을 차지한 앤 도버 거주 한인 최정우씨에게 상 패와 상금을 전달하였다. ​ 재외동포문학상은 재외동포재단 이 전 세계 재외동포의 문학적 창작활동을 장려하고 한민족 재 외동포 청소년들에게 모국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한편 한민족 공감대 형성을 위하여 매년 시행 하는 문학상으로 올해 18회째를 맞이하고 있다.

동포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최정 우씨는 “지난 여름, 5년만에 모국 을 방문하면서 시댁에서 있었던 일을 수필로 쓴 것인데 생각지도 못한 큰 상을 받게되어 영광”이 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기)은 제18회 재외동포문학상 수 상작 총 30편을 발표했다.

성인부문 대상 수상작으로 시 부 문 성백군 씨(미국)의 ‘어머니의 마당’, 수필 부문 최정우씨(미국) 의 ‘생일, 마늘밭에서’, 단편소설 최정우씨의 수필 “생일, 마늘밭 부문 배동선씨(인도네시아)의 ‘ 에서”는 심사위원들에게 “무더 지독한 인간’이 각각 선정됐다. 운 여름날 부모와 자식, 손주들 이 어우러진 마늘밭 풍경을 통해 수상자 30명에게는 상패와 각 우리가 놓치고 있는 미덕을 상기 50만∼300만 원의 상금이, 한글 시키며 가슴 찡한 여운을 남겼 학교 부문 2개교에는 상패와 200 다”는 평가를 받았다. 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 한편, 재외동포재단(이사장 주철 bostonlifestory.com


다문화선교회, “효도잔치” 열었다. “어르신들과 추수감사절의 분위기 함께 나누고 싶어 자리 마련”

다문화선교회(구 국제결혼가정 선교회, 회장 이은주)가 지난 11 월 16일 수요일 추수감사절을 앞 두고 북부앤도버 소재 다문화선 교 교회에서 보스턴한미노인회 회원 및 이 지역 어르신들을 모 시고 “효도잔치”를 벌렸다.

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날 “효도잔치”를 준비한 다문 화선교회 이은주 회장은 “어르신 들과 함께 추수감사절의 분위기 를 느끼고자 젊은 회원들이 직접 정성것 준비한 음식이니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 이날 효도잔치에는 엄성준 보스 란다”고 인사말을 대신했다. 턴총영사, 권성환 부총영사, 김경 원 보스턴한인회장, 안병학 월드 엄성준 총영사도 인사말을 통해 옥타보스턴지회장 등 주요 단체 “자신이 외교관으로 여러곳에서 생활해 보았지만 보스턴처럼 정 장들과 다문화선교회와 보스턴 이 넘치는 곳은 없었다”며 “특히 한미노인회를 후원하는 후원이 때 마다 어르신들을 위해 음식을 사들이 참석하여 어르신들과 함 준비하고 갖가지 행사를 진행하 께 추수감사절 음식을 나누며 즐 는 모습은 타 지역의 귀감이 될 만하다”고 전했다.

김경원 회장 역시 “어르신들이 부르면 언제 어디서든 달려가겠 다”고 말 하며 “어르신들을 위한 행사에 오면 마치 고국에 계신 부모님을 대하는 느낌이 든다”며 한인회 차원은 물론 개인적으로 도 보스턴한미노인회와 다문화 선교회를 중심으로 최선을 다해 지원하고 봉사할 것을 약속했다. 한편 이날 “효도잔치”에 참석한 어르신들은 노인회 회원들이 준 비한 사물놀이, 무용, 합창 등 갖 가지 이벤트와 노래자랑 시간을 통해 맛있는 음식과 함께 즐겁고 흐뭇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 bostonlifestory.com


비내리는 가을 밤, 보스턴에서 치맥이 생각날 때….

보스턴풍경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면 비내리는 창가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차들과 사람들을 안 주삼아 맥주한잔 들이키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게 된다. 한국에서야 집을 나서면 사방 천지가 술집이요 맛집이니 맥주 한잔 생각나면 근처 친구에게 전화하고 외투 걸쳐입 고 나서면 그만이다. 하지만 십년, 이십년을 살아도 내 동네, 우리 동네가 될 수 없 는 보스턴에서는 기나긴 가을밤에 분위기 잡아보며 간단히 맥주 한잔 하기가 만만치는 않다. 그저 냉장고에 오래 전 사 놓은 맥주 한캔 꺼내들고 잠 자려고 준비하는 와이프 옆구리 찔러 앉혀놓고 묵묵히 맥주를 마시는게 전부일 때가 많다.

이제 고향에서 즐기던 “치맥”이 생각난다면 동네 한바퀴 돌아보 자! 보스턴 동네 동네마다 소위 말 하는 선술집(동네 BAR)이 하나 씩은 꼭 있다. 물론 한국의 맥주 집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지만 일과 후 동네 사람들이 모여 커 다란 TV앞에 모여 보스턴 레드삭 스의 경기 중계를 함께 보며 식 사도 하고 술도 한잔 나누는 동 네 사랑방같은 분위기를 자아내 는 곳이다. 시끌 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뭐라 고 떠드는지 도통 알 수는 없지 만 달랑 맥주 한잔 시켜놓고 옆 사람들과 연신 신나게 떠들어 댄 다. 한국과 많이 틀린 점은 한 국은 대부분 함께 온 친구나 일 행끼리만 대화를 나누는데 이곳 은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도 말 을 걸어온다는 것이다. 조용히 혼자 마시고 싶을 때를 제외하곤 이들과 어울려 손짓 발짓 해 가 며 함께 떠들어 보는 재미도 쏠 쏠할 것이다.


​ 동네 바(BAR)는 주로 이탈리아 계나 아이리시계가 운영하는 경 우가 많아 다양한 안주와 요리 가 준비되어있다. 단지 술 만이 목적이 아니라면 한국에서는 고 급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는 고급 요리를 저렴한 가격에 접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일석이조 가 아닌가 한다. 간단히 먹고자 할때는 바싹 구운 치킨윙에 버 펄로, 하니머스타드 등 각종 소

스를 옆에 놓고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는것도 방법일 것이다. 참 고로 맥주 종류도 무지하게 많으 니 골라가며 맛 보는 재미도 적 극 추천하고 싶다.

함도 보스턴의 생할을 즐기는 낙 이 아닐까 한다.

단 보스턴에는 대리운전이 없는 대신 한국처럼 길을 막고 음주측 정을 하지 않으니 취할 정도가 깊어가는 보스턴의 가을 밤 사랑 아닌 기분 삼삼한 정도로 마시고 하는 와프와, 아니면 시시콜콜한 일찍 귀가 함도 와이프에게 사랑 이야기라도 즐겁게 함께 나눌 좋 받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은 친구와, 그것도 아니면 깊은 가을밤의 고독을 오롯이 혼자 느 bostonlifestory.com 껴보며 바삭한 치킨과 맥주 한잔


보스턴풍경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가을밤 어디선가 들려오는 구 르몽의 싯귀에 나는 대답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치우 느라 내 허리 휘는 소리가…” ​ 보스턴에 짙게 물들었던 가을 단풍이 서서히 지고 있다. 보 스턴의 가을 정취를 한껏 선사 했던 형형색색의 가을 단풍이 하나 둘 지면서 그 자리엔 여 지없이 낙엽이라는 잔재가 흩 어져 내리고 있다. 역시 자연 의 선물에는 공짜가 없다는 생 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

조용한 숲속 오솔길에 쌓인 낙 엽은 늦가을 마지막 정취의 표 상처럼 느껴지는데 내 집 앞마 당에 쌓인 낙엽은 나에게 더 이상 가을의 정취만은 아니 게 느껴지니 참 신기한 일이다.

업복 차림으로 차고로 향한다. 참고로 보스턴을 포함해 미국에 사는 남자들에게 차고는 차고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 자들의 보물 창고라고나 할까? 집안을 손질하기 위한 각종 장 비나 도구가 쌓여 있는 곳이다. 일요일 늦은 아침, 기온이 뚝 떨어 ​ 진 탓일까? 아니면 평소 생활 습 한국에서 떠도는 우스게 소리가 성을 벗어나지 못해서 일까? 침 있다. 집안 서열을 따져 볼 때 남 대 속에서 눈만 깜박거리며 이불 자는 와이프, 자식들, 애완견 다 을 박차고 나설 용기가 나지 않는 음으로 그 서열이 가장 낮다고 그 때쯤 여지없이 그분의 목소리 한다.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 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 “여보 얼 다. 이런 남자들에게 차고는 아 른 일어나 마당 낙엽좀 치워요….” 무도 범접할 수 없는 온전한 안 어느 분의 명 인데 거역하랴…. 식처이자 작업장을 제공해 주니 ​ 그 얼마나 소중한 공간이겠는가? 부스스 몸을 추스리고 간단한 작


어쨋던 차고로 향한 나는 블로 워(Blower : 바람을 이용해 낙엽 을 치우는 기계)를 꺼내 들고 낙 엽이 소복히 쌓인 마당으로 향한 다. 강한 바람을 뿜어내기 위해 내는 요란한 모터 소리에 마지 막 남은 어설픈 선 잠의 여운이 말끔히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 하지만, 잔뜩 호기롭게 블로워 로 낙엽을 치워 보는데 이게 맘 처럼 쉽지가 않다. 남들이 하는 걸 보면 시원하게 낙엽이 바람에 날려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는데 이거 내가 하면 낙엽들이 왼쪽으 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 춤만 추지 좀처럼 한곳에 모이질 않는 다. 블로워 바람이 사람을 차별 하는 건지 아니면 앞마당 낙엽 들이 깊어가는 가을을 떠나기가 못내 아쉬워 발악을 하는 건지 도통 말끔히 치워지질 않는다. 결국 나는 블로워의 스위치를 끄고 갈쿠리를 집어 든다. 평 소 운동량이 적은 나에게 가을 공기 마시며 운동 좀 하라는 하 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낙엽을 긁어 모으기 시작한다.

​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낙엽들을 모두 한곳에 모으고 나니 등쪽 한켠에서 땀방울이 몽글몽글 피 어나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일요 일 아침운동으로 괜찮치 않나 생 각할 때 쯤 다시금 그분의 음성 이 들려온다. “여보~~ 커피 한잔 하고 해요….” 이거 수고했다거나 그만 하라는 소리는 아니고 일단 커피한잔 하라 하니 뭔가 찜짐함 을 뒤로 하고 아내가 내려준 따 끈한 커피를 목젖에 축여 본다. ​ 말끔하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낙 엽이 치워진 정원을 바라보며 아

내와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다가올 추수감사절에는 멀리서 공부하고 있는 딸 아이가 오니 반찬이며 음식이며 준비할 것이 많단다. 또 내년 의료보험 비가 많이 인상 된다는데 어떤 보험을 선택해야 할지 연구 좀 해 보란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 이 환절기에 감기 때문에 고생하 고 계시니 안부 전화 한번 넣자 고 한다. 향 짙은 커피를 앞에 놓 고 소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와이프와 함께 잠시나마 일요일 늦은 오전의 여유를 부려 본다. 따끈했던 커피가 식어가고 커 피를 담았던 컵의 바닥이 보일 때 쯤 와이프와의 대화를 대 충 정리하고 슬그머니 자리에 서 일어나 다시 침대로 갈까? 아니면 인터넷 연결해 세상 소 식이나 들어 볼까? 하는 고민을 하던 중 내 등 뒤로 비수와 같 은 그분의 한마디가 날아 온다. ​ “여보… 화단에는 아직 낙엽이 많이 쌓였더라….”


제8회 재외동포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수상작

생일, 마늘밭에서 최정우(앤도버)

​ 당초 시어머님이 내 생일을 기 애 억해 주시리라 기대하진 않았 다. 하지만 ‘내일은 마늘을 뽑으 러 가야 한다’는 시어머님의 말 에 남편이 냉큼 ‘그럼 저희도 같 이 가죠’라고 대꾸하자 나는 망 연해졌다. 옆자리에 앉아 간장 게장을 발라먹던 딸아이가 곁눈 질로 힐끔 내 얼굴을 살폈다. 눈 치 코치 없는 아들 놈은 한국 음 식이 입에 맞지 않는지 젓가락으 로 열무 김치를 깨작거리고 있었 다. 딸내미의 반응에 남편은 아 차하는 얼굴로 날 바라보았지만 이미 그는 주워담을 수 없는 말 을 내뱉은 뒤였다. 우리 가족은 내일, 나의 마흔 두번째 생일날 에 땡볕 아래서 마늘을 캐게 될 판이었다. 아버님의 기대와 어머 님의 정성을 듬뿍 받고 자란 충 청도 6쪽 마늘을. ​ 다음 날, 우리 가족은 귀와 목덜 미를 내리덮는 가리개가 달린 챙

넓은 모자, 팔꿈치까지 오는 팔 토시, 그리고 고무 장화로 단단 히 무장하고 집을 나섰다. 어머 님의 셔츠와 통넓은 바지까지 빌 려 입은 내 모습은 나무랄데없는 영농 후계자로 보였다. ​ 6월의 볕은 벌써 뜨거워지기 시 작해서 허투로 낭비할 짬이 없었 다. 아버님은 바다건너 온 실속 없는 일꾼들을 재촉해 차에 실었 다. ​ 마늘밭은 시댁에서 차를 타고 5 분쯤 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 다. 남편 말로는 거기가 시댁이 원래 살던 곳이라고 했다. 그 마 을에 저수지가 생기면서 시댁은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것 이다. 그래봤자 애들 걸음으로도 30분도 채 안 걸릴 거리였다. 그 런데도 남편은 마치 시골에서 서 울로 상경이라도 한 기억처럼 떠 들썩하게 그 때 일을 말했다. 별

일이군,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콧방귀를 끼며 대꾸했다. 이래저 래 뒤틀린 심사를 그렇게라도 내 보여야 속이 좀 풀릴 듯하였다. 5년만의 한국 여행이었다. 그 동 안 딸아이는 이마에 여드름이 송 송 맺힌 사춘기 소녀가 되었고, 응석받이 아들은 그럭저럭 소년 이 되어가고 있었다. 본인은 한 사코 부정하지만 남편의 이마는 그저 ‘넓다’라고 형용사로는 감당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리 고 이제 나는 그 무엇으로도 세 월을 지울 수 없는 중년의 아줌 마가 되었다. 아이들은 자라갔고, 우리는 늙어갔다. 그렇게 세월은 도무지 공평치가 않았다. 깊이 패인 주름살마저 밭고랑을 닮아가는 아버님과 ㄱ 자로 꺽인 허리를 곧추세울 때마다 느린 한


숨을 내쉬는 어머님에게 무정한 세월의 발걸음은 더욱 가파랐다. 깍이고 깍이는 바위처럼 두분의 육신은 닳아없어지는 것들의 곤 고함과 거룩함을 동시에 품고 있 었다.

고추밭이 끝나는 곳에 네다섯평 남짓해 보이는 자그마한 마늘밭 이 있었다. 올해는 마늘값이 아 주 좋다며 함박 웃음을 지으시던 시아버님을 보고 마늘 농사로 한 밑천 장만하시려나보다 짐작했 던 나의 예상이 무안해지는 크 기였다. 마늘값이 아무리 좋기로 그 작은 마늘밭에서 나올 마늘양 이 얼마나 될지는 뻔했다. 게다 가 서울과 대전 형님들, 고모댁 에 나눠주고 집에서 쓸 마늘을 남겨놓고 나면 뭐 어디다 내놓고 팔 것도 없어 보였다.

마늘밭까지 가는 동안 나는 두분 의 세월을 헤아리며 내 꼬인 심 사를 토닥이려 애썼다. 하필 불 의 성정을 가진 여자를 골랐으니 환란의 가시밭길은 당연히 남편 의 몫이었다. 하지만 나역시 물 처럼 덤덤한 남자를 택했으니 인 내의 불가마를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삶에선 도무지 공짜가 나는 내심 안심이 되면서도 왠지 없는 것 같았다. 아쉬운 기분이 들어 애매모호한 눈빛으로 마늘밭을 바라보았다. 자동차는 밭과 밭이 이어졌다 끊 겼다를 반복하는 좁은 시골 길을 시아버님이 가져온 연장을 한쪽 바둥바둥 달리다 문득 멈추었다. 에 부려놓는 사이 어머님은 아이 고추밭, 옥수수밭, 들깨밭, 참외 들과 남편을 데리고 마늘밭 너머 밭…. 갖가지 작물들이 자그마한 풀이 무성한 공터로 가셨다. 가 자리를 오손도손 차지하고 있는 만보니 그 무성한 풀 사이로 봉 곳 어디쯤에 시댁의 마늘밭이 있 긋 솟은 봉분이 두개 보였다. 시 다고 했다. 집온 지 10여년, 하지만 시댁에 서 머문 시간은 대략 보름이 될 차가 서자마자 아버님은 마늘 캘 까말까한 나로서는 처음 보는 봉 연장들을 챙겨들고, 어머님은 묵 분이었다. 직해 보이는 검은 비닐 봉지를 들고 밭고랑으로 들어섰다. 할아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인사는 버지 할머니 뒤를 따라 아이들은 드려야지. 니들 증조 할아버지 증 졸랑졸랑 고추밭 두렁을 걸어갔 조 할머니시다.” 다.

그렇게 말한 어머님은 들고 있던 검은 봉지에서 쑥개떡이 담긴 보 시기 하나와 소주 한병, 잔 두개 를 꺼내었다. 남편은 말없이 잔 에다 소주를 따라 쑥개떡 옆에 얌전히 내려놓았다. 우리 가족은 그 앞에 나란이 섰다. 그리고 바 로 조금 전까지 그 존재조차 몰 랐던 분들의 산소 앞에서 다같이 머리를 숙였다. 아이들은 눈치껏 산소에 큰절을 드렸다. 귀찮아하기 보다는 오히 려 한국 학교에 다니며 어설프 게라도 배운 것을 써먹을 수 있 어서 반가운 기색이었다. 낯설고 초라한 산소 앞에서 마치 큰 보 물이라도 발견한 것 마냥 눈을 반짝이는 딸아이를 보니 마음 한 자락이 아득히 멀리 흘러갔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를 기 억하는 호사를 아이는 여태껏 누 려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쩌 면 우리는 그렇게 이국땅에서 뿌 리도 없이 아슬아슬 살아가고 있 는지도 몰랐다. 간신히 뿌리내린 것들의 절박함을, 아이도 언젠가 알게 될까. 지나간 먼 시간 속 아 득한 핏줄의 근원을 향해 잠시 머리 숙이는 이 순간을, 아이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그리하여 문득 나는 그 자그마한 봉분 앞에서 한없이 간절해졌다.


아이들이 이 순간을 기억하기를. 언젠가 그들에게도 마치 허공에 발을 내딛는 것처럼 망망한 날이 찾아온다면, 이 작은 봉분과 아 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를 떠올 리기를. 그렇게 우리는 결코 혼 자일 수 없음을 떠올려주기를. 그 기억으로 잠시나마 위로받을 수 있기를…. 큰절을 올린 우리는 잠시 봉분을 뒤덮고 있는 잡초를 뽑아내고 마 늘밭으로 돌아갔다.

고도 경쾌하게 마늘알을 돋궈올 리면, 그 곁에 앉은 어머님은 마 늘에 붙은 흙을 탈탈 털은 뒤 마 늘알이 한쪽으로 향하도록 나란 히 줄맞춰 놓았다. 평생을 함께 일해 오신 두분은 아버지가 쿵, 하면 어머니가 짝, 하는 식으로 경쾌한 리듬을 타고 움직였다. 나는 얼른 딸아이의 손을 끌고 그 옆 고랑으로 갔다. 그리고 짧 막하고 다부진 손잡이가 달린 삽 을 들어 땅속 깊숙이 찔러넣었 다. 그리고 삽날을 비스듬이 누 이며 손잡이를 힘껏 눌렀다. 끙,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지만, 너 무 깊이 박힌 삽날은 꿈쩍도 하 지 않았다. 아무리 손잡이에 힘 을 주어도 흙한줌 옴싹하지 않았 다. 그제야 나는 시아버지의 잰 손놀림 뒤엔 허다한 노동의 시간 속에서 체득된 빈틈없는 정확함 이 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태어나서 처음 마늘밭에 서 보기 는 지들이나 나나 마찬가지인 것 도 모르고, 아이들은 내게 마늘 을 어떻게 캐느냐고 물었다. 물 끄러미 서 있는 내 앞에서 남편 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미소 를 지으며 삽으로 어떻게 마늘을 캐는지 보여주었다. 마늘에 상처 를 내지 않으려면 마늘대에 너무 가깝지 않게 삽날을 꽂아야 한다 고 몇번이나 강조하면서. 내가 오도가도 않는 헛삽질에 힘 을 쓰는 동안, 옆 고랑에 앉은 남 어머님과 아버님은 벌써 고랑 하 편은 보란듯이 마늘알을 끌어올 나를 맡고 앉아 마늘을 캐기 시 렸다. 아들 녀석은 좋아라 소리 작하셨다. 아버님의 삽이 날렵하 를 지르며 마늘대를 쥐고 흔들었

다. 나와 딸아이는 번갈아 삽질을 하 며 느리게 마늘을 캐나갔다. 둘 이서 채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동안 어머님과 아버님은 벌써 고랑 하나를 끝내가고 계셨 다. 모자 챙 밑으로 땀방울이 흘 러내렸다. 딸아이의 보들보들한 손바닥은 그새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손바닥만한 밭이라 얕보 았던 기억은 맥없이 사라지고 앞 에 남은 고랑의 끝이 한없이 멀 게 보였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유월의 햇볕 아래 우리 가족은 귀한 6쪽 마늘 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해 사력 을 다하며 마늘을 캤다. 땅속에 서 추운 겨울을 나며 단단히 여 문 마늘은 딸아이의 손 안에 꽉 찰만큼 작았지만 야무지게 제몸 을 그러안고 있었다. 깊은 우물 속에서 물을 길어올리듯 공들여 끌어올린 마늘에 상처라도 나 있 으면 나와 딸아이는 발을 동동 굴렀다. 마늘 밭에서 시간은 그렇게 천천


히, 그 어느 곳에서보다 천천히 으셨다. 흘러갔다. 저녁 뉴스에선 장마전선이 제주 하지만 그날 우리는 반나절만에 도까지 올라왔다고 알렸다. 화사 마늘밭에서 철수해야 했다. 점심 한 원피스를 입은 어여쁜 기상 을 먹고 난 어머님은 차마 아이 캐스터는 다음 주엔 중부 지방까 들이 안쓰러워 볼수 없다시며 우 지 장마전선이 북상할 거라고 했 리를 쫓아냈다. 다. 어머님은 장마가 오기 전에 가까운 시내에 나가 바람을 쐬고 마늘을 다 캐서 널었으니 다행이 오후 늦게 시댁으로 돌아오니 대 라며 우리를 보고 웃으셨다. 문 앞 마당과 안뜰 가득히 마늘 이 널어져 있고, 집안엔 온통 칼 그 날 밤, 나는 기어코 한살을 더 칼한 마늘 냄새가 스며 있었다. 먹었다. 아버님은 마늘을 뽑은 자리를 새 로 일궈 콩 심을 준비를 하신다 세월은 결코 부질없지 않았다. 며 해가 다 지도록 돌아오지 않

우리가 견딘 시간만큼 우리는 단 단해져갔다. 낡고 닳아가는 것들 안에는 묵묵히 견고해져 가는 소 망이 있었다. 소망이 견고해져 가는 까닭은 종내는 닳아없어질 끝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 아니었 다. 그 끝 후에도 삶이 계속됨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소망은 내 가 사라져간 자리에 여전히 남을 누군가를 향한 것이기에 더욱 간 절하였다. 마흔 두 해 살이만큼의 단단함으 로, 나는 그 소망을 힘껏 끌어안 았다.


흔적 Hannah Yoon

주일 오후, 인근에 있는 초등학 교 뒷산 언덕길을 오르다 보니, 발 밑에 가랑잎이 구르고, 찬 바 람이 주름 진 얼굴에 스치고 간 다. 아직도 고운데 떠나야 하는 낙 엽들이 애처러워서, 오색 빛깔의 낙엽들을 책갈피에 소중히 말려 거실 fire place위에 붙여 놓고 바 라 본다. 또 가을이 가는구나! ​ 가을은 떠나는 계절이다. 지향 없이 구르는 낙엽, 낙엽을 몰고 가는 바람, 푸른 잎들도 가고, 사 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이번 겨 울 방학에는 어느 명승지에 가볼 까?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유학생이었던 남편 덕분에 이사 를 스무번이나 했는데도, 학회를 핑계 삼아 온 세계를 누비며 여 행을 많이도 다녔는데도, 가을이

깊어지면 또 어딘가로 낙엽처럼 막연히 떠나야 할 것 같은 생각 이 든다. 언제 부터인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혹시 집으로 다 시 돌아 오지 못해도, ‘내가 있던 자리가 부끄럽지 않게 정리가 되 어 있어야 할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이제는 언젠가 아주 떠나는 때 를 생각하며, 이제껏 살아 온 흔 적들을 정리해야 할 듯하다. 남 편과 41년을 함께 살면서도, 경 영학을 가르치는 남편이 학생들 에게 무엇을 강의하는지, 설명을 들어도 영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만 학위 논문 서문에 성경(전 도서) 말씀을 인용하여 “모든 것 에는 때가 있다.”는 말을 썼다는 그 이야기만 기억할 뿐이다. 한 평생 학자로 살아 온 남편의 논 문들을 모아서 은퇴하기 전에 책 으로 엮어 아이들에게 남겨 주고

싶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소소 한 일상을 쓴 글들, 편지, 그리고 아이들에게 남겨 주고 싶은 사진 들을 골라 또 하나의 책을 만들 기로 하였다. 논문집은 영어지만, 미국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 들이 한국말로 부모의 심정을 적 은 글을 얼마나 이해 할지 모르 니 사진들을 많이 넣기로 헀다. 소심한 성격 탓에 남은 사진들을 버리려니 우리의 지난 역사를 지 우는 듯 아프다. 우리집 작은 텃 밭의 오이, 호박, 고추들의 사진 들도 우리 가족의 이야기 책에 넣기로 했다. 빛 바랜 옛 사진들 을 보니 파노라마처럼 떠 오르는 일들이 있다. 대학 다닐 때, 가을 이면 친한 친구와 신촌역에서 교 외선 열차를 타고, 이름 모를 역 에 내려 갈대를 한아름 꺾어 안 고, 다시 기차를 타고 돌아 오면 서 갈대 향기 속에 얼굴을 묻은


사진들, 남편 따라 제주도로 신 혼 여행을 가서 신기하기만 하던 섬의 풍물과 수 많은 추억을 사 진에 담았던 그 때도 시월 말이 었다. 시월에 태어났기에 어렸을 적 생 일에 가장 받고 싶었던 선물이 홍시였다. 지금도 감이 익는 계 절 가을이 기다려 진다. 대학 3 학년 가을에 친구들과 ‘설뮈’라는 모임을 만들어 사진을 찍고 전시 했던 적이 있다. 전시했던 작품 들이 생각난다. 자그만 몸매에 잔주름이 푸근하고, 나와 가장 비슷한 모습이셨던, 묵주를 들 고 묵상하시는 외할머니의 사진, 허술한 옆집 담장을 넘어 넝쿨 째 넘어 왔던 귀여운 호박 사진, 그리고 고궁, 교정에서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들이 옛이야기를 들 려 준다. 결혼 후에는 나이 들어 가는 우리 부부와 커가는 아이들 의 사진들이 우리가 얼마나 애면 글면 맘고생하면서 살아 왔는지 를 보여 준다. 그리고 천진 난만 한 아이들의 모습이 지난날의 추 억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9순이 지나신 친정 어머니는 내 가 살았던 연희동 집 그 마당에 서 오늘도 빨래를 너시고 잡초를 뽑으신다. 재 작년 여름 친정집

거실에 쌓여 있는 사진첩을 정 리하고, 간직하고 싶은 사진들을 골라 가져 왔다. 내 아이들 보다 도 젊으셨던 고모, 삼촌들의 결 혼 사진들이 보존 되어 있었고, 훤칠하게 크시고 온화한 미소로 안아 주시던, 그 시대의 천재 학 자이셨던 아버지의 사진들이 그 긴 세월 속에도 여전히 그 자리 에 있다. 훗날 내 아이들에게 나 는 어떤 엄마로 기억 될까? 남편이 애쓴 덕분에 두 달 만에 편집이 거의 다 되었다. 이제 책 의 표지를 green(연두색)으로 하 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내 푸르 던 날 꿈 많던 시절, 중학교 국어 교사로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중학생들에게 매 달 새로운 시를 낭송해 주었던 기억이 떠 오른다. 그 중에 기억 나는 시다. 푸르른 날 / 서정주 (1915~2000)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SEACRET AGENT

Seung Joo Kim

seungkim8788@gmail.com

860-912-8788


PEOPLE Interview

보스턴 사람들

미칠 수 있어 불행하지 않은 “방랑자의 혼” 불운하지만 불행하지않은 화가 유수례


광화문 재개발 모습을 담은 그림 ‘광화문’ 천재적인 화가는 죽은 후에 날린 다지! 빈센트 반 고흐나 천경자 처럼…뉴햄프셔 라이(Rye) 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며 그림을 그리 고 있는 여류 화가 유수례(1958 년 생) 씨를 나는 감히 그 반열에 올린다. 가난하고 병든 ‘불운’ 속 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미 칠 수 있는, 그래서 불행하지 않 은 이 화가를 향한 바램이다.

다. 몽환적인 생명력, 그 안에는 늘 희망을 상징하는 새가 등장한 다. 작품의 변화를 위해 2004년, 뉴 멕시코를 여행하며 영감을 얻 어 그려낸 작품들이라고.

후원자였다. 몸이 허약하고 내 성적이었던 그녀는 그림을 그리 며 위안을 얻었고 그래서 행복했 다. 그리고 그림에서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다.

그녀가 한창 잘나가던 한국을 등 지고 작품의 변화를 꿈꾸며 미지 의 땅에 온 것을 후회하진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Dream Bird’ ​ 약속된 인터뷰를 위해 가을 단 풍이 한창인 I -93 를 타고 달리 는 동안 캔버스 가득 버밀리온 (vermilion)으로 채색된 그녀의 ‘Dream Bird’ 시리즈가 떠올랐

고맙지만 그리울 수 없는 이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그녀에게 가장 큰 아픔을 안겨준 사람이기도 하 다. 공사현장을 오가던 아버지는 집에 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그녀가 중학교를 다니던 어느날 부터 아예 발길을 끊고 집안을 돌보지 않았다.

어린 시절 수례에게 그림을 가르 쳐 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녀 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건축 설 계사였던 아버지는 그녀의 그림 재능을 알아 차리고 적극 권했던

엄마는 행상을 나가야 했다. 어 린 나이였지만 수례는 엄마를 도 와야 했다. 동네 아이들을 가르 치고 돈을 벌어 육성회비를 충


당하기도 했다. 그림을 그릴 재 료를 사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형편. 아이들이 그리다 망 쳐 버린 캔버스가 그녀의 캔버스 가 됐다. 어두운 현실은 그녀의 감성에 각인됐고 그녀의 그림들 은 주로 소외된 삶을 주제로 삼 게 됐다.

고상을 수차례 부수고 심지어 동 생의 손가락을 때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수례는 말없이 저항하며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시련은 늘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 다. 아버지는 병이 들어 집으로 돌아왔고, 머지 않아 세상을 떠 났다. 이어 미술대학 진학을 코 앞에 두고 큰 오빠도 세상을 떴 다. 당시 예고에서 실력을 인정 화가의길, 하지만 멈추지 않는 시 받았던 그녀는 명문 미대 진학을 련 염두에 뒀으나 포기하고 직장을 ​ 잡아야 했다. 학교에서 인정받은 그녀는 화가 가 되기로 결심하고 예고에 진학 “어려서부터 내 마음에는 근원 했다. 그리고 가계를 도와야 했 을 알 수 없는 슬픔이 있었어. 주 기에 집 한켠 조그만 공간을 화 체할 수 없을 때는 붓 대신 나이 실로 만들어 동네 아이들을 가르 프를 사용해 그림을 그렸지. 내 쳤다. 안의 슬픔을 도려내 캔버스를 채 우듯 나이프로 질감있는 작품들 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예체능 을 그려댔어”. 분야를 전공하는 것이 환영 받 지 못하던 때. 시대적 편견은 큰 그렇게 4~5년간 직장을 다니며 오빠를 비켜가지 않았다. 동생이 화실 운영을 병행하던 그녀는 꿈 그림쟁이가 되는 것을 어떻게든 에 그리던 미대 진학을 시도했다. 말리고 싶었던 오빠는 데생용 석

못이룬 꿈을 이루기 위한 이유도 있었고, 아무리 실력있고 인기있 는 화가라도 대학 졸업장이 수반 되지 않으면 화단에 발을 붙이기 가 쉽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하지만 자신만만했던 화가에게 날아온 것은 불합격이었다. 그때 만해도 혈기가 넘쳤던 그녀는 지 원했던 대학의 사무총장을 찾아 가 이유를 물었단다. 이유인즉, 입시제도가 바뀌는 바람에 내신 성적이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 “내가 다닌 데가 예고였잖아, 거 기서 내 실력을 인정했으니, 수 업을 뒷전으로 하고 그림을 그리 러 나가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 어. 성적이 들쭉날쭉할 수밖에… 하지만 후회는 없어, 거길 갔으 면 교수가 됐거나 학자가 됐을테 니… 난 그림쟁이가 좋아”. 이후부터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 고 작품생활에 매진하며 미대 입 시생들을 지도했다.

유수례화가의작업실


Long Walk Home 은 강사로도 유명세를 탔다. 당 시 그림을 배우던 포루투갈 대사 화가는 1989년 첫전시를 열게 됐 가 “포루투갈 대학에 와서 미술 다. 작품들은 어둡고 우울한 분 을 가르쳐 달라”고 제안했다는 위기, 고뇌하며 외로운 삶을 살 일화도 있을 정도. 아가는 모습을 담은 것들로 일관 됐다. 전시회는 성공적이었다. 고 때마침 광화문 인근에 재개발이 운보 김기창, 권옥연, 고 손상기 시작됐다. 화가는 작은 집들이 등 당시대를 풍미했던 화가들로 허물어지는 것을 매일 보며 달 부터 호평을 들었다. 동네 시리즈를 그렸다. “집을 잃 는 그 사람들이 꿈마저 잃지 않 전시회를 계기로 화단에 오른 화 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렸다”는 가는 고 손상기 화가와 공동작업 게 화가의 말이다. 을 하는 한편 여러 군데 화실을 오가며 유명 미대 합격률이 높 달동네 시리즈를 비롯한 그녀의 성공적인 전시회, 화가의 반열

작품들이 수차례 전시회를 통해 알려지자 그녀는 화가로서 명성 을 얻게 됐다. 하지만 가난은 쉽 사리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그 녀의 가난을 더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친구들이 그녀의 화실을 강남으로 옮겨줬다. 강남으로 옮기면서 수입이 늘어 났다. 달동네 그림들도 잘 팔리 기 시작했다. 화가는 생활고에서 자유로워졌고 비로소 마음에 여 유라는 게 생겼다. 절로 작품의 톤이 밝게 변하기 시작했다.


버밀리온 색채로 환상적인 생명력을 그린 Dream-Bird 뉴햄프셔로 날아온 새 ​ 한창 ‘달동네’ 시리즈로 주가를 올리고 있을 무렵 화가는 가슴 이 먹먹했다. 가난하고 우울했던 시절의 감성에 익숙한 화가는 ‘ 이건 뭔가 이상해’라며 풍족함이 낯설었다.

적인 작품은 예술성이 떨어진다 는 생각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어. 그때 하필이면 모 대학 에서 연락이 왔지 뭐야, 대학원 에 진학하라고…그길을 갔더라면 지금은 교편을 잡고 있을거야...”

가들이 살고 있다는 섬을 향해.

처음본 낯선 땅은 아름다웠다. 그림같이 바다를 끼고 있는 마 을은 곳곳이 나무며 숲이 어우러 져 신비로웠다. 더 이국적인 것 을 찾아 여행도 다녔다. 뉴멕시 잠시 고민하던 화가는 주저없이 코의 버밀리온에 매료된 것이 이 미국의 뉴햄프셔 주로 향했다. 시기. “내 작품은 내놓으면 잘팔렸어. 그때가 2003년경. 사촌동생이 전 근데, 그게 난 이상한거야, 대중 해준 미지의 땅, ‘타히티’처럼 화


찾아온 행운, 대책없는 그녀 ​ 뉴햄프셔에 화가들만 사는 섬같 은 건 없었다. NHIA(New Hampshire Institute of Art)에 적을 둔 그녀는 비자를 유지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게 현실 이었고, 찬란한 햇빛 아래 서있 는 섬 대신 어두운 집 지하실에

서 그림을 그려야 했다.

운이 찾아 온 것. 하지만, 영어가 자유롭지 않은데다 그림 작업에 갖고 온 돈이 학비와 생활비를 제한을 받는 것이 싫어서 마다했 충당하며 줄어들고 생활고가 다 다는 그녀. 대책 없는 화가다. 시 시작될 즈음 한국으로 돌아가 야 하나 고민할 때 NHIA에서 교 화려한 탄생, “아시아의 샤갈” 수직을 제안해 왔다. 당시 NHIA 에서는 그녀의 그림을 수업 교재 이때만 해도 그녀에게는 야성적 로 사용하곤 했을 정도라니, 행 인 패기가 있었다. 주변에 있던 뮤지엄(Coolidge Center for the Art)를 찾아 들어 가 한국에서 개최했던 전시회 팜 플렛을 들이 밀었다. 그정도면 그들이 관심을 가질 줄 알았다는 것.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시 답지 않았고, 수차례 찾아갈 때 마다 기다리라는 대답만 반복했 다. 화가가 지쳐갈 무렵 뮤지엄에서 연락이 왔다. NHIA 대학의 교수 들이 뮤지엄에 그녀를 추천한 것. 화가가 본격적으로 뉴햄프셔 지 역의 조명을 받기 시작한 때다. 미국에서의 첫 전시회는 성공적 이었다. 뉴햄프셔 바닷가를 소재 로 그린 ‘오션 댄싱’ 등 4작품이 전시되자 지역 언론사들은 앞다 퉈 그녀에 대해 다뤘다. 이때 포 츠머스 헤럴드는 그녀를 “아시아 의 샤갈”이라고 평했다. 이후 뮤 지엄은 수년간 그녀의 대작들을 전시했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전시회를 하던 화가는 2013년 뉴햄프셔 라 이(Rye)에 갤러리를 오픈해 또한 번 주목 받는다. 갤러리 오픈 소 식을 들은 뮤지엄 디렉터는 “너 때문에 우리는 곧 문을 닫게 될


거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고.

래도 돈을 벌어야 사니까 학생들 화가는 이제 담담히 삶의 노래를 을 지도하는 건 안간힘을 다했 붓으로 그릴 수 있게 됐다. 너른 하지만, 갤러리 운영은 돈이 되 지.” 바다 저멀리 펼쳐진 수평선을 넘 는 일은 아니었다. 지역 예술인 나들며 왈츠를 추고 나뭇잎을 간 들을 알리고 좋은 작품을 소개하 화가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지르는 바람에게 속삭인다. “난 는 통로는 됐지만, 생계라는 무 이때였다. 불운하지만 불행하진 않다”고. 거운 짐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 다. 갤러리 한 쪽에서 그림을 가 극심한 육체적 고통, 지독한 외 고흐만 미쳤을까? 르치기 시작했지만 가난은 지독 로움, 궁핍한 현실…. 이 모든 것 ​ 히도 그녀를 사랑했다. 보다 더 두려웠던 건 그림을 그 ‘공수레 공수거’를 말하며 결혼도 릴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는 위 마다하고 그림에만 매달려 욕심 교통사고, 사투, 후유증 기감이었으니까. 없이 살아왔던 이 화가가 딱 하 ​ 나 욕심을 부리는 게 있다. 애착 불운은 그칠 새 없이 화가를 따 “평소에는 기도를 안하는데, 아 을 갖고 있는 작품들을 한 곳에 라다녔다. 삶의 무게에 억눌려 플 때는 기도해 ‘하나님, 제가 손 모아 둘 뮤지엄을 갖는 일이다. 있을 때 교통사고까지 당한 것. 가락만이라도 움직이게 해주세 ​ ​ 요. 그림만 그릴 수 있게 해주세 자칫 교만하다는 오해를 살 수 신호를 받아 정지해 있던 화가의 요’라고.” 있어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차를 뒤따라 오던 트럭이 들이받 그림 팔기를 싫어하는, 가난하고 은 탓에 왼쪽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난 봄, 움직이지 못해 굳어있 병든 화가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온통 부상을 당했다. 타고 있던 던 왼쪽 팔의 근육들을 뼈에서 일이다. 하지만, 인터뷰 말미에 차는 완전히 폐차됐을 정도라니, 떼어놓는 수술을 받은데 이어 최 그녀가 한 말을 되뇌이며 그 소 그나마 목숨을 건진 것이 다행이 근 다리의 심한 통증을 가라앉히 원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바램 었다. 기 위해 척추주사까지 맞은 그녀 을 가졌다. ​ 는 다음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껏 3년째 수차례 수술을 거 “허허 너른 벌판에서 딱하나 커 쳐 치료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갤러리에 새로 선보인 ‘Winter of 다란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통증이 남아 있다. 비라도 오는 NH’는 지난 겨울, 팔/다리의 통 그리다 죽으면 좋겠어.” 날이면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 증과 치열하게 싸우며 그린 것이 로 심각하다. 라고. 그래서일까, 나뭇잎을 다 고흐만 미쳤을까? 떨군 채 눈밭에 서있는 나무들에 “팔이 아파서 파레트 들 수가 없 게서는 그 뒤로 스며드는 햇빛과 글/ 사진 : 김현천 어. 큰 캔버스를 사용할 수가 없 어우러져 강하게 꿈틀대는 생명 hhyuncheonkim@gmail.com 어서 작은 그림들만 그리는데, 력이 느껴진다. 체력이 금방 쇠진해지곤 해. 그


보스턴 사람들

PEOPLE Interview IT ‘대박남’ 김계연 보스톤에 둥지 지니네트웍스 보스톤 법인 GENIANS 설립

“NAC 보안용 소프트웨어로 세계시장재패노린다” 동부의 실리콘 밸리 보스톤 지역에 한 국 IT 기업 지니네트웍스(www.geninetworks.com) 가 둥지를 틀었다. 지난 1월 지니언스(Genians, www.genians.com 법인장 : 김계연)라는 이름으로 노스 앤 도버에 법인을 설립한 이 기업은 NAC (Network Access Control) 보안용 소프 트 웨어 개발업체로, 세계 시장 재패를 노린다. ​ 지니언스의 모태인 지니네트웍스는 지 난 10여년 간 한국의 NAC보안 소프트 웨어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다. 창업 첫해 10억 매출액이 지난해 170억을 달성하며 대박을 치고 있는 중, 세계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미국 공략부 터 시작했다. “한국의 전통적인 마케팅 방식을 벗어 나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고, 피드 백을 받고, 반영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이 라는 김계연 법인장(43세). 20대에 개발 한 PC 통신 소프트 웨어 ‘신세대’가 대박 났고, 야후 코리아 개발팀장을 거쳐 ‘어 울림 정보’를 창업해 대박을 터뜨린, 그 러나 수십억을 날리기도 한, 이력이 화 려한 남자다.

사진: 세계 시장 재패를 위해 보스톤에 진출한 지니안스의 김계연 법인장


사진: 김계연 법인장과 지니언스

공부는 열등, 프로그래밍은 대박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컴퓨 터를 한번도 만져본 적도 없는 김 법인장이 지금의 야심만만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된 것은 우 연과 필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 다. 그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며 “공부를 정말 못했다. 도 못갈 정도였다. 관심 없었고 그야말로 미래가 한 아이였다”고 말했다.

마침 학교 선배가 컴퓨터 판매점 을 오픈하는 바람에 인사하러 들 렸던 게 그의 운명을 바꿔 놓았 다. 선배랑 죽이 맞은 그는 선배 일을 돕는둥 마는 둥 짜장면을 같이 먹어가며 컴퓨터 게임에 빠 져 있었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 던 중 선배가 소프트 웨어 불법 다운로드 단속에 걸려 경찰에 구 속되고 만 것.

돌아보 전문대 분야도 불투명 김계연 씨는 선배가 없는 가게를 내버려 둘 수가 없어 가게를 지 켰으나 손님은 거의 없었다. 할 졸업 후 그는 전산 학원에 등록 일이 없어 심심했던 그의 눈에 을 하지만, 컴퓨터엔 관심도 없 선배가 보던 프로그래밍 관련 책 었다. 들이 들어왔다. 지긋지긋했던 학 교 공부와 달리 그 공부는 이상 “할 건 없고, 재수하기는 싫고 해 하리만큼 재미 있었다. 독학으로 서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이나 따 프로그래밍을 깨우친 그는 소프 놓자고 등록했다. 하지만 놀러 트 웨어를 만들어 보기로 마음 다닌 거”라는 그. 먹었다.

“무조건 만들어 봤다. 모르겠으 면 책을 보고 또 보고 했다. 밤을 새워가며 1,000페이지가 넘는 책 을 수십번을 보며 만들었다. 정 말 시간가는 줄 몰랐다”. PC 통신용 소프트 웨어 ‘신세대’ 가 그때 탄생한 거다. 신세대는 당시 PC 통신 하이텔, 천리안, 나 우누리에 올리자마자 다운로드 가 폭주해 대박을 쳤다. 필연의 시작이었다. 이를 계기로 실력과 자신감을 얻 은 그는 22세에 스카웃 제의를 받고 ‘한글과 컴퓨터’ 에 입사했 다. 최연소 입사자였다. 몇년 후 에는 10억대에 이르는 스탁 옵션 을 받고 야후 코리아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개발자가 아닌, 영 어를 한글로 옮겨 관리하는 야후 에서 그는 재미를 못느꼈다.


창업, 미친 시간들 그리고 수십억 창업을 제의한 동료들은 야후 앞 대 주주 카페에 진을 치고 지속적으로 시 위아닌 시위를 했다. 그들을 무 예전 동료에게서 창업 제의가 들 시할 수 없었기도 했지만 개발자 어왔다. 귀가 솔깃했지만 야후 코 의 끓는 피가 자꾸만 솟구쳐 올 리아에서 안정된 수입과 수십억 랐다. 대 스탁옵션으로 부를 계속 쌓아 ​ 갈 수 있었던 그는 쉽게 야후를 마침내 그는 수십억에 이르는 떠날 수 없었다. 스탁도 내팽개치고 ‘어울림 정보’ ​ 의 공동 창업자이자 개발자를 택

했다. 그리고 물고기가 물을 만 난 듯 미친듯이 일에 빠졌다. “하고 싶었던 일이라 거의 미쳤 다. 사무실 한쪽에 박스를 깔아 놓고 잠깐 눈 붙이고 일에만 전 념했다. 집에는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옷만 갈아입으러 들렸다. 어쩌다 자게 되더라도 새벽 3시 면 눈이 떠지고 ‘일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회사로 “제품은 그냥 다 있는데, 경영이 향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 힘 실패한 거다. 그 분야를 전혀 모 든 줄도 몰랐다” . 른 나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는 10년을 온통 쏟아부은 결과 그가 제품 개발에 올인하는 새 가 깡통으로 돼 버리자 허무함이 회사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첫해 제일 컸다고. 4억 수익을 내던 회사가 해를 이 어 40억, 120억, 200억으로 뛰어 그는 자신이 힘든 것보다 가족들 올랐다. 직원은 한달새 20~30명 에게 너무 미안했다. 미국 출장 씩 늘어났다. 5년 후 회사는 코 을 다니느라 임신중인 아내를 제 스닥에 상장됐고, 10년을 지나니 대로 돌보지 못한 것, 아들 덕에 개발 제품이 시장에서 1위를 차 부동산 장만의 꿈을 안고 한창 지했다. 김계연 연구소장은 수십 빌딩을 보러 다니시던 부모님… 억 대 주주가 돼 있었다. 그래서 삶의 변환을 꾀했다. “저 빈털터리 깡통 주식, 삶의 변환 녁이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작정했다는 것. 또한 취미로 목 급속한 성장 가도를 달리던 회 공을 시작했다. 그가 만든 ‘우드 사가 어느날 휘청였다. 창업 멤 워커’ 네이버 카페는 현재 18만 버들이 주가 조작혐의로 구속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만들면서 기 시작하더니 주가가 곤두박질 정보를 올리고 팁을 공유하다보 치기 시작했다. 멤버중 한 명이 니 이역시 대박이 났다고. 주식을 잠깐 빌려달라더니 팔아 버리고 미얀바로 잠적해 버렸다. 지니네트웍스로 재도전 김계연 씨는 다시 빈털텉리가 돼 ​ 버렸다. 프로그래머들은 쉽게 좌절하지 않는 걸까. 그는 프로그램을 하

듯 창업도 겁내지 않았다. 지니 네트웍스로 다시 일어설 때 그는 시행착오를 철저히 반영했다. 개 발 책임자이지만 경영에 적극 관 심을 뒀고, 시스템화에 주력했으 며, ‘정시 출, 퇴근’을 모토로 했 다. 그리고 회사가 아무리 성장 해도 10년 간은 상장하지 않겠다 고 마음 먹었다. 지니네트웍스는 내년 상반기에 코스닥 시장 상장을 추친할 계획 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제 2의 창업인 셈이다. “한국의 IT 기업들이 미국에서 성 공한 사례가 없다. 나는 실무자 로서 성공적인 롤 모델이 되고 싶다”며 글로벌 대박을 꿈꾸는 김 법인장은 보스톤 지역 IT 전문 가들과 편안하고 격식없는 모임 을 주최해 나갈 계획이다. 글/ 사진 : 김현천 hhyuncheonkim@gmail.com


보스턴 이야기 로드아일랜드 한인회, 붉게 물든 단풍 느끼며 가을 산행 다녀와...

October. 10. 2016

형형 색색 물들은 가을 단풍을 만끽하며 로드아일랜드한인회가 회원들과 함께 뉴햄프셔에 위치한 Mt. Cardigan으로 가을 산행을 다녀왔다. 가을비가 촉촉히 내린 후 라 하늘은 한없이 맑고 높았으며 하늘에서 쏟아 지는 따스한 햇볕은 우리의 산행을 밝혀주듯 더욱 더 선명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냈다. 특히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정상까지 쉼 없이 오른 노인회 회원들의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은 산행 이었다.

보스턴총영사관 네번째 전시회 “Nostalgia”

October. 13. 2016

가을비가 걷히고 청명한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보스턴총영사관에서 특별한 전시회가 연린다는 소식 에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보스턴총영사관은 우리 한인들에게 문화쉼터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한인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자 몇 해 전 부터 총영사관 내에 작은 전시관을 운영하면서 수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올 들어 네번째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Nostalgia” 즉 고향의 향수였다. 전시작품은 한인 여류화가 유수례화백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 향수어린 작품과 한국의 전통 보자기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으로 승화한 김정임 작가의 작품이 었다. 마치 살포시 접은 보자기에서 옛 고향의 추억과 향수를 끄집어 내어 보는듯한 정감어린 전시회였다.


보스턴 이야기 따뜻한 정이 넘치는 “보스턴 사랑방”이야기

October. 20. 2016

“백새시대” 이젠 더 이상 장수를 의미하는 특별한 표현이 아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백세를 사느냐, 못 사느냐 보다는 어떻게 행복한 백세를 맞이하며 살아가느냐가 우리에게 더 중요한 의미로 다가서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 보스턴! 많은 어르신들이 다 같이 행복한 백세시대를 맞이 하고 있는 특별한 모임이 있다. 바로 보스턴한미노인회에서 매월 2회씩 운영하고 있는 “사랑방 모임”이 그 것이다. 외로운 이민생활을 오롯이 자식들의 교육과 성공을 위해 아름다운 청춘을 희생하며 꿋꿋이 버텨온 보스턴의 어르신들이 지난 시절의 외로움을 함께 달래고 행복한 백세시대를 힘차게 맞이하기 위해 보스턴 의 사랑방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있다. 모임을 통해 어르신들은 서로간의 안부도 확인하고 다채롭게 준비 된 각종 프로그램으로 여가활동과 체육활동을 즐기며 따뜻한 정을 나누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밤과 함께한 한미예술협회 후원의 밤

October. 22. 2016

보스턴한미예술협회 후원의 밤 행사가 가을 단풍이 짙게 물들어 가는 웨슬리대학 교정, 컬리지센타에서 개 최되었다. 예술협회의 지난 한해 활동을 보고하고 새롭게 맞이 할 내년도 활동을 소개하는 자리로 마련된 이번 행사에 많은 예술인들과 이들의 활동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많은 후원자들이 함께 자리하여 깊어 가는 가을 밤의 정취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 환상적인 째즈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가을 단풍보다 더 짙은 레드와인을 손에 들고 단아하게 전시된 예술가 들의 작품을 음미하며 예술인과 후원자가 작품에 대해 함께 담소를 나누는 품격 높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보 스턴한미예술협회의 후원 만찬 행사는 멋지게 시작되고 있었다.


보스턴 이야기 보스턴 어르신들의 “뉴욕 나들이”

November. 1. 2016

초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내린 후라 그런지 이젠 아침이면 쌀쌀함을 넘어 추위가 느껴지는 보스턴의 이 른 아침, 보스턴 한인회에서 준비한 뉴욕 나들이를 떠나기 위해 든든한 외투차림의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 여들고 있었다. ​

뉴욕은 보스턴에서 차로 약 네시간에서 네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에 있다. 미국에서 이 정도 거리면 혈기 넘치는 청춘들이야 맘 한번 크게 먹고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거리이지만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에게는 비록 아직 운전대는 잡는다 하더라도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운 거리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치자면 그 흔한 서 울 나들이 한번 하기가 만만치 않은 일인 것이다. ​ 이런 차에 보스턴한인회에서는 뉴욕한인회와 손잡고 어르신들을 위한 “뉴욕 나들이”행사를 준비하였다. 마 침 뉴욕에서 지난 추석때 계획했던 대규모 추석잔치가 날씨 등 여러 이유로 한달이 미루어진 지금 이루어져 나들이의 분위기를 한껏 더 고조시켰다. 모처럼의 뉴욕구경에 한국에서 온 연예인, 가수들의 공연도 함께 즐기고 뉴욕에서 대접하는 푸짐한 음식도 즐길 수 있어 먹거리, 볼거리에 행복했던 나들이가 되었다.

잔치 진치 열렸네... 효도잔치 열렸네...

November. 16. 2016

이른 아침부터 다문화선교회 회원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모여 음식을 장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고 향에 계신 부모님들을 생각하면서 이곳 어르신들께 추수감사절 음식을 대접하고자 터키를 굽고, 햄과 각종 소스를 준비하고 혹시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까 싱싱한 김치 겉저리까지 어르신들의 입맛을 세심하게 신 경쓰며 효도잔치를 준비해 가고 있었다. 음식준비가 무르익을 즈음 오찬을 함께 나누기 위해 많은 어르신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이 민시절 함께 울고 웃던 친구들과 음식을 함께하며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 그 자체가 이 곳 어르신들에게는 효도잔치이자 만남의 장인 것이다.



한국학교이야기

주옥같은 싯구와 재미난 동화로 열린 초겨울 아침 뉴잉글랜드 한국학교, 한글동화구연 및 동시암송 대회 개최

한글동화구연 및 동시암송대회 수상자 단체사진 뉴잉글랜드 한국학교(교장 남일, 학 부모회장 이미경, 이사장 윤경숙)는 지난 토요일 2016 년도 한글동화구 연 및 동시암송 대회를 개최했다. 긴장된 모습으로 자녀의 발표 모습 을 지켜보던 학부모들도 이어지는 재미난 이야기에 이내 미소와 뜨거 운 박수를 보냈고, 읊조리듯 조용한 목소리로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

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같 은 것’ 이해인 시인의 ‘황홀한 고백’ 이 낭송되고 이어 ‘나는 눈물이 없 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정호 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싯구가 마음에서 마음으 로 전해져 이내 강당을 넘어 짙푸른 하늘에 여운을 새겼다.

낭송에 이어 진행된 기초 및 초 급이상 참가자들의 해맑고 따뜻 한 느낌의 동시들이 낭송되자 청 중들은 “마치 다양한 시낭송회에 참석한 듯한 느낌을 받았고 감회 가 새롭고 기쁜 마음 가득 담았 던 시간”이라고 밝혔다.

고급과정 학생들의 주옥같은 시 이번 대회의 동화구연부문 전체


대상은 ‘야들야들 다 익었을까?’ 를 구연한 고려반의 이혜린 학 생이, 동시부문 전체 대상은 문 삼석 시인의 ‘개구쟁이’를 암송 한 백제1반 이준호 학생이 차지 했고 백두반 학생들은 한글창제 배경과 우리가 한글을 왜 배우고 지켜야 하는지를 ‘구룡이 나르 샤’라는 창작단편극으로 발표해 심사위원이 뽑은 최고 인기상을 수상했고 참가한 모든 학생들은 각 부문별로 상을 받았다. 이번 대회의 심사는 뉴잉글랜드 한국학교 박신영 이사,오인식 나 의꿈국제재단 이사 및 양원미 학 부모회 부회장이 맡았다. 양원미 부회장은 심사평을 통해 “고급과 정 학생들의 발표도 참 인상적이 었고, 어린 학생들도 짧지 않은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각 구절구 절을 어쩌면 저렇게도 또렷또렷 하게 잘 외워서 발표하는지 정말 대견하고 놀라웠다고 말하고 지 도해 주신 선생님들과 학부모님

한라반 이지윤 학생의 ‘황홀한 고백’ 시 낭송 께 감사한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 발표모습과 수상자 리 스트 등의 자료는 학교 홈페이지 (www.ksneusa.org)에 동영상 및 사진과 함께 올려지게 된다. 한편, 뉴잉글랜드 한국학교의 다 음 행사는 오는 12월 10일 한국 역사교육을 위한 역사골든벨 예 선대회가 있고, 17일에는 제16

회 뉴잉글랜드 한국학교 동요대 회를 가진 후, 2주간의 겨울방학 에 들어가며 2017년 1월 7일부 터 수업이 재개된다고 한다. 재 학생 및 신입생들의 2017학년도 봄학기 등록은 1월 7일부터 시 작되며 2세 교육에 함께 동참해 주시고자 하는 분과 등록 문의는 남일 교장 (전화 508-523-5389, ksneusa@verizon.net 또는 학교 홈페이지를 이용하면 된다.

백제2반 이지윤 학생의 ‘보름달’ 시 낭송


한국학교이야기

밀알한국학교 교내 번역대회, 인문학 강연 등 가을맞이 행사 개최 김밥 말기, 인문학 강연, 시 쓰기 수업 등 다양한 행사 함께 진행 밀알한국학교(교장,김현주 Chelmsford)는 지난 10월 23일 교내 번역대회를 개최했다. 작년 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번 번 역대회에서 유아반 아이들을 제 외한 전교생이 참여하여 고급, 중급, 초급, 기초반 등 수준 별로 출제된 한영, 영한 번역 문제를 열심히 풀어 냈다. 이번 번역대회를 통해 교사들은 “아이들이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 하는 것에 더 익숙함을 알았다.” 며 “이는 아이들이 한국어를 이 해는 하지만 이를 한국어 문장으 로 표현하는 능력이 영어에 비해 뒤떨어지기 때문인 것”같다며 향 후 한국학교에서 지도해야 할 부 분이 무었인지를 파악하게 하는 중요한 시간 이었다고 평가했다. 김현주교장은 “우리 한국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이중언어 구사 능력으로 인해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더욱 열심히 배우는 동기를 마련하기 위해 번역대회를 만들 었다” 라고 전하며 작년에 비해 아이들 실력이 많이 향샹되었다 며 뿌듯해 했다.

같은 날, 번역대회를 마친 아이 이어서 동시쓰기 강의시간에는 들은 활동수업으로 김밥 만들기 보통 아이들이 어렵게 생각하고 를 하였다. 자신없어하는 시 쓰기에 쉽게 접 근하는 방법을 아이들과 함께 문 아이들은 먼저 김밥을 스시라고 답식으로 풀어나가 한편의 시가 부르며 일본음식으로 생각하는 완성되는 과정이 펼쳐졌다. 자신 것은 잘못이고, 일본보다 훨씬 이 툭툭 던진 몇개의 단어가 이 앞서 우리나라에서 먼저 먹었던 어져 결국 멋진 시가 만들어지는 우리고유의 음식임을 배운 다음, 것에 학생들은 신기하고 흥미로 교사의 김밥말기 시범을 본 후, 운 표정이었다. 함께 강의를 들 유아반 아이들까지 모두가 참여 은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시 쓰 하여 즐겁게 김밥을 만들었다. 기를 가르칠 떄 고민을 해왔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유익한 시 또, 지난 6일에는 시인이자 간이었다” 며 감사의 뜻을 전했 메사추세츠 한국민간문화원장 다. 인 유희주선생님을 초청하여 학 부모 대상의 인문학 강연과 학생 김현주교장은 일련의 가을행 들을 위한 동시쓰기 수업을 펼쳤 사에 이어 12월 초에 있을 뉴잉 다. 글랜드협의회 주최 동요제에 대 ​ 비하여 준비하고 있고, 성탄절 발 <내일 죽어도 좋은 오늘>이라 표회 행사로서 고전연극 <별주 는 제목의 강연을 들은 학부모들 부전>을 공연할 예정이라고 전 은 “무의미한 일상의 틀에서 벗 했다. 밀알한국학교에서는 한글 어나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진지 교육에 관심이 있는 교사와 보조 한 고민을 통해 삶의 행복을 찾 교사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지원 자는 내용에 무척 공감을 느꼈으 하실 분은 교장( 678-516-4974, 며, 지금부터라도 정말 좋아하고 hkimpw@yahoo.com) 에게 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락을 바라고 있다. 봐야겠다” 라고 말했다.


번역대회 최우수상에 김지우, 김지은, 박도현, 박예준학생, 우수상에는 이윤지, 서재영, 성윤아, 박하랑, 박민준학생이 각각 수상했다.



보스턴에서 보내는 우리들의 추수감사절..... Photo by Suncha Baker


추수감사절(Thanksgiving)의 유래는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궂이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 처음 청교도들이 뉴잉글랜드 플리머스로 이주하여 인디언들로부 터 배운 경작법으로 옥수수를 재배하여 다음해 가을에 풍년을 거둬 수확에 대한 기쁨과 감사를 표 하고자 자신들에게 농사를 가르쳐준 인디언들을 초대하여 추수한 곡식과 야생 칠면조를 잡아 축제 를 벌였는데 이것이 최초의 추수감사절이다” 이를 시작으로 추수감사절은 미치 한국의 추석과 같이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칠면조요리를 함께 나누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 누는 가장 큰 명절중의 하나가 되었다. ​ 보스턴에 사는 우리 한인들도 추수감사절을 즐기고 있다. 가족 친지는 물론 고국을 떠나 외로운 이 민생활을 동거동락하며 함께 지낸 이웃들과 풍성한 음식을 마련하여 이민생활의 추억을 떠올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보스턴에서의 추수감사절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보았다.



광고문의 617-750-0207 이메일: bostonlifestory@gmail.com www.bostonlife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