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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을 내리고 있는 그였다. "대략 일천종(一千種)…… 아니 일천 종도 훨씬 넘는 것 같다." 화천명은 기가 막히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툭툭 쳤다. "이 조그만 머리 속으로 그 엄청난 양이 들어가 있단 말이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몹시 대견스럽다는 듯한 표정이자 말투였다. 뒤이어 허공을 올려다 보는 그의 얼굴에는 왠지 기이한 미소가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실수하셨소, 저승(低僧)어른. 이 화천명…… 설사 무림에 나서게 되더라도 다른 무공은 일체 필요치 않은 사람이오. 그러니까 저승어른 당신은 말짱 헛고생만 하셨단 말이오. 후훗!" 괴소와 함께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내 가문의 절학(絶學)…… 비록 당신들에겐 잊혀진 것이겠지만 나는 그것을 찾아야 하오. 그리고 그것은…… 화씨 성(姓)을 가진 사람만의 뿌리칠 수 없는 숙명(宿命)이라오!" 베면 푸른 물기가 뚝뚝 떨어질 듯 파랗게 개인 창천(蒼天)에서 화천명이 시선을 거둔 것은 그로부터 꽤 지나서였다. "헌데 도대체 여기는……?" 화천명은 사방을 둘러 보았다. 보이느니 기암절벽에 울창한 수림(樹林) 뿐이었다. 길은 그 어디에도 나 있지 않았다. 허나 화천명은 곧 이 지형이 눈에 익음을 깨달았다. "이제 보니 군왕산 북쪽 기슭이었군." 최소한 금릉성 주위 백여 리 이내에는 손바닥 들여다 보듯 훤히 알고 있는 그였다. "회운산장과의 거리는 대략 삼십여 리. 길을 찾아 금릉으로 들어서자면 최소한 오십 리는 꼼짝없이 걸어야 할 판이군." 화천명은 혀를 끌끌 차더니 대충 방향을 잡아 휘적휘적 걸음을 떼놓기 시작했다. * * * "으음……." 가파른 계곡의 비탈길을 걷는 화천명의 귓전으로 이 신음소리가 들려온 것은 해가 중천에 걸려 있는 정오 무렵이었다. 음색(音色)으로 보아 여인의 그것이 틀림없는 이 신음소리는 좌측의 수림 속에서 흘러나왔다. '이런 산중에 여인의 신음소리가?' 화천명은 잠시 생각하더니 곧 수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까지 빽빽하게 메운 울창한 수림 속. 음습한 그늘이 드리워진 한 쪽에 한 여인이 쓰러져 있었다. 여인이 쓰러져 있는 주위의 수풀은 광란의 흔적처럼 마구 짓이겨져 있었다. "으음……." 삼단 같은 머리채를 어지럽게 풀어 헤친 채 온몸의 맥을 놓고 신음하는 이 여인은 기이하게도 먹빛 도포(道布) 차림이었다. "……." 화천명은 그녀의 옆구리에 걸린 한 자루 고색창연한 검(劍)을 힐끗 쳐다본 뒤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헌데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막상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화끈한 열기가 전신으로 끼쳐왔다. '음?' 화천명은 흠칫 놀라 우뚝 멈춰섰다. 놀란 눈으로 급히 주위를 둘러보자니 여인을 둘러싼 주변의 공기가 무섭게 들꿇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이 열기는 바로 여인의 몸에서 뿜어지는 게 분명했다. '어찌 인간의 몸에서 이토록 무서운 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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