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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노부는 바빠서 이만 실례하겠다." 그는 뒤퉁뒤퉁 백마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용천음은 그를 보며 물었다. "한데…… 노인장의 존성대명은 어찌 되십니까?" "자식, 문자 쓰네." "……?" "그냥 괴도(怪盜)라고만 알아둬." (괴도……?) 노인은 말고삐를 푼 뒤 커다란 보따리를 말 위에 척 올려 놓았다. "한데 걱정이란 말이야……" 노인은 말고삐를 잡아 끌며 산 언덕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수옥녀(素手玉女) 사유란(史瑜蘭)…… 그 계집의 고의를 어떤 방법으로 벗겨낸다지?" 노인은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계집의 고의만 벗겨내 상품으로 내놓기만 하면 최고의 인기를 누릴 텐데……" (소수옥녀 사유란……?) 용천음은 멀어져 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때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지만 워낙 천방지축 날뛰는 계집애라 쉽게 벗길 수가 있어야지. 어쨌든…… 미리 선포는 했으니 벗기긴 벗겨야지……" 노인의 모습은 달빛 저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소수옥녀 사유란. 무림이 좁다하고 천방지축 날튄다는 그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녀를 상대로 괴도는 과연 고의를 벗겨낼 수 있을 것인지…… (정말 변태같은 영감이로군.) 용천음은 쓴웃음을 지으며 문득 아직까지 손에 쥐고 있는 작고 예쁘장한 고의를 내려다 보았다. (버릴까……?) 하나 그러기에 왠지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남자가 여자의 소중한(?) 고의를 품 속 깊이 간직하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신주제일미 월영검희 영호수혜라고 했던가?) 용천음의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차후 그녀를 만나서 이 고의를 내밀면 그녀는 어떤 표정이 될까?) 무슨 뚱단지 같은 생각인가? 단칼에 목이 날아가고 싶은가? 용천음은 빙그레 웃으며 영호수혜의 고의를 달빛에 비춰 보았다. "얇아도 너무 얇군. 달빛이 그대로 들여다 보여." 무슨 말을 하자는 겐가? "이런 걸 입으면 입으나 마나지. 훤히 들여다 보이긴 마찬가질 테니까……" 용천음은 고의를 차곡차곡 접어 쓰윽 품 속으로 밀어 넣었다. "잘만하면 재미있겠어……" 그는 만면에 장난기 서린 미소를 지으며 팔베개를 하고 벌렁 드러누웠다. 드러누운 그의 입술 사이로 다시금 한 줄기 시(詩)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美人捲珠簾(미인권주렴) 深坐賓蛾眉(심좌빈아미) 但見淚痕濕(단견루흔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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