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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명불허전이로구나!' 나천웅은 암암리에 내력을 양손으로 끌어올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때 적미노인은 비로소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더니 죽어있는 천마를 한 차례 훑었다. 순간 그의 안색이 찌푸려지며 한 차례 적미(赤眉)가 꿈틀거렸다. "네가 천마를 죽였느냐?" 한줄기 삭풍인 양 일체의 감정이 배제된 음성이었다. "그렇소!" 나천웅은 아랫배에 힘을 주며 딱 잘라 말했다. 적미노인은 약간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천웅은 적미노인이 무어라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되물었다. "당신은 천마십이성 소속이오?" "……" 적미노인은 한동안 아무런 대꾸도 없이 나천웅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천웅은 눈썹 하나 흔들림 없이 태산처럼 우뚝 선 채 그를 마주 정시했다. 순간이다. 적미노인이 갑자기 쩌렁쩌렁한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우하하하……!" 내력이 실린 그 어마어마한 웃음소리에 주위의 백설이 분분이 허공으로 흩날렸다. "노부는 천마십이성 중 열 두 번째인 혈랑신성(血狼神星) 천납도(天拉道)다!" 나천웅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설마했던 한가닥 희망이 여지없이 짓뭉개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마가천은 세상에 나오고 말았는가!' 혈랑신성 천납도는 서릿발같은 냉갈을 터뜨렸다. "천마는 우리 나습포찰의 일개 고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우리 나습포찰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인물…… 그런 만큼 천마의 원한을 풀어줄 의무가 노부에게 있느니라." 이때는 나천웅도 이미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의 신색이 엄중하게 변했다. "본 공자는 당신들 천마십이성의 중원 침입을 절대로 묵과할 수 없소. 당신들이 끝내 중원침입의 뜻을 꺾지 않는다면……" 나천웅의 두 눈에서 냉엄하기 그지없는 정광이 폭사되었다. "본 공자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당신들의 헛된 야욕을 분쇄할 것이오." 기개넘치는 나천웅의 결연한 어조였다. "흥!" 혈랑신성 천납도는 가소롭다는 듯 싸늘한 콧방귀를 날렸다. "네놈이 학선기의 제자라는 소문은 수차례 들었다. 허나 학선기 그놈조차도 우리 천마십이성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헌데 네놈같은 애송이가……" 혈랑신성 천납도는 비릿한 냉소를 날렸다. 실상 지금 혈랑신성의 눈에는 나천웅이 한낱 토끼같은 어린애로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나천웅의 준미한 두 눈썹이 꿈틀거렸다. 동시에 그의 두 눈에서 엄청난 살광이 폭사되었다. "뚜껑은 열어 봐야 아는 법!" 그는 천천히 천무진뢰검을 빼들었다. 우르릉! 굉음이 울리며 천무진뢰검이 검집 밖으로 빠졌다. 동시에 서릿발처럼 내뿜어지는 검기가 혈랑신성 천납도의 눈을 한 차례 흔들었다. '정말 훌륭한 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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