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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방을 새로 또 얻기도 그렇고, 꼼짝없이 오늘은 앉아서 자야겠구나.' 엽고운은 의자를 하나 당겨 앉고는 눈을 내리감았다. 내공 경지가 거의 극에 이르다 보니 자세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도 그는얼마든지 잠을 잘 수가 있었다. 그런데 막 잠이 들려는 그 순간이었다. '응?' 그의 눈썹이 움찔 했다. '누군가 이리로 오고 있다!' 과연 한껏 곤두세워진 엽고운의 청각에 누군가가 객방을 향해 다가오는 기척이 감지되었다. 그의 판단은 즉각적이었다. '발걸음이 불규칙하고 호흡이 가쁜 것으로 보아 상처를 입은 사람이 분명하구나.' 쿵! 바로 방문 밖이었다. 무엇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 것은. 엽고운은 전신에 내공을 일으킨 후 성큼성큼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짧게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엇!" 문 앞에 쓰러져 있는 자의 모습은 그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전신이 온통 피투성이로써 정체를 알 수 없는 복면인이었다. 남삼을 입고 있었으며 복면도 역시 남색이었다. "여보시오!" 엽고운이 급히 다가가 그를 흔들었다. "으음......." 복면인은 가느다란 숨결을 토해내긴 했으나 의식불명 상태였 다. 엽고운은 우선 그를 방 안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복면인은 가슴에 커다란 자색의 장인(掌印)이 찍혀 있었다. 그것도 정확히 명문혈에 찍혀 있어 더욱 치명적이었다. 엽고운은 의술과 독술에 관해서라면 이미 대가급 수준이었다. 따라서 그는 한눈에 상세를 알아보았다. '이것은 독장(毒掌)이다.' 엽고운의 눈살이 크게 찌푸러졌다. '지독하군. 더구나 이 자령나후독장(紫靈羅侯毒掌)의 독기가 심장까지 침투해 버렸으니....... 손을 쓰기엔 너무 늦었다.' 그는 탄식하며 복면인의 얼굴을 가린 복면을 벗겼다. 다음 순간, 엽고운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복면 속에서 나타난 얼굴은 더없이 영준하고도 비범하게 생긴 청년의 그것이었다. 나이는 대략 이십이, 삼 세 정도. 눈썹이 곧게 뻗어올라가 강직하고 굳건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한일자로 굳게 다물어진 입술에서도 역시 대쪽같은 성품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엽고운은 안타까운 심정이 되어 재빨리 남삼청년의 혈도를 몇 군데 짚었다. 그러자 청년은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을 떴다. 하지만 그는 엽고운을 알아보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누... 누군지는... 모르지만... 고맙소이다....... 끄르... 륵......." 청년의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심하게 났다. 그는 안간힘으로 말을 계속했다. "죄... 죄송하지만... 한 가지... 부탁......." 엽고운은 그의 귀에 들리도록 음성을 높여 말했다. "말해 보시오! 형장." 과연 청년은 그 소리를 알아들은 듯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강서성(江西省)... 경안... 현(京安縣)... 객점... 영락루(永樂樓)... 한 사람을... 찾아서......." "누구를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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