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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하늘은 무한히 푸르렀다. 때는 팔월, 한여름이었다. 찌는 듯한 더위가 산천을 내리쬐고 있었으나 엽고운의 이마에는 단 한 방울의 땀도 맺히지 않았다. 이는 그가 이미 한서불침(寒署不侵)의 초절한 기학들을 두루 갖춘 때문이었다. 엽고운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왼손의 약초 바구니를 내려다 보았다. '오늘로써 무영사비를 치료한 지 두 달이 흘렀다. 이제는 거의 완치가 되고 마지막 대법만이 남았다. 앞으로 며칠 후면 이전의 상태로 회복될 것이다.' 그는 천천히 걸어 산을 내려갔다. '그 동안 용노제가 수고를 많이 해 주었다. 단혈맹과의 연락은 물론이거니와 그 외에도 다방면의 소식들을 전해 주었다. 역시 그는 기대만큼 역할을 잘 수행해내고 있다.' 엽고운은 지난 두 달 간 무영사비의 상세를 치료하면서도 무림의 동태를 관찰하는 일만은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대세가가 주축을 이룬 정도무림의 맹주인 만큼 그는 무림의 일에 이미 깊숙히 개입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엽고운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혈맹으로부터 전서구를 받았으며 용붕비를 통해 수시로 갖가지 안배를 마련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한 곳에 머무르면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지만 천하무림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히 알고 있었다. 엽고운은 걸음을 약간 빨리 했다. '치료가 끝나면 곧바로 절강성의 야우산으로 가야지.' 문득 그의 입가에 신비한 미소가 어렸다. '후후후... 마환(魔環) 목령비, 그 자야말로 내 계획에 있어 첫 상대다. 그 다음은.......' 엽고운이 막 산을 내려와 평탄한 길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 한 가닥 인기척이 감지되어 그를 멈칫 하게 했다. 더구나 그 음향은 너무도 경미해 무엇도 파악해 낼 수가 없었다. 어찌나 은밀한지 엽고운이 아니라 설령 천하제일 고수라도 따라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엽고운의 얼굴이 일순 무겁게 가라앉았다. '대체 누가 이런 비쾌한 몸놀림을......?' 그는 일단 심호흡을 한 뒤,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눈을 내리감고 한 가지 특이한 대법을 펼쳤다. 이름하여 견불무아신통대법(見不無我神通大法), 그것은 무명무아신승(無名無我神僧)의 비급에 기재된 불문이학(佛門理學)으로 고금을 통틀어 유일무이하달 수 있는 기공이었다. 일반적으로 소리를 감지하는 데 있어 최고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역시 천이통(天耳通)이다. 그러나 이 천이통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가령 인간이 한 가지 감각만을 최고치로 사용하고자 한다면 나머지 기관, 즉 오관을 비롯하여 그 밖의 신체의 기능까지 완전히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천이통에서는 바로 이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므로 정확히 백 장 이내여야만 음향을 탐지해낼 수가 있었다. 이에 비하면 견불무아신통대법은 한 차원 높다고 할 수 있었다. 일단 펼치기만 하면 귀를 제외한 일체의 감각들이 차단되어 오로지 듣는 것에만 공력을 집중시키게 되어 있다. 능히 오백 장 밖의 낙엽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것이 이 기공의 놀라운 묘용이었다. 그 대신 치명적인 약점도 있었다. 이것을 펼치는 동안 시전자의 신체는 외부에 대한 저항력을 모두 상실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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