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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섬 1 죠디가 바로 전, 조금 전에 양아버지의 서재인 방으로 들어간 것은 갑자기 마음속에 떠오른 운명적인 예감 같은 것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미인 콘테스트에서 두 번이나 입상하고, 소속한 어느 그룹에서나 남자 회원들의 우상이 되어 있는 로셀이 가죽을 입힌 골동품인 책상에서 장부를 보고 있다. 로셀은 여동생이 들어온 것을 모르는 체했지만, 그렇지는 않고 일부러 예의에 벗어나게 행동하고 있다고 죠디는 생각했다. 그것도 오늘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고 예의에 벗어나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보였다.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어요? 메어리가 그러던데." 죠디는 문을 열자마자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지만 결코 걸터앉으려고는 하지 않았다. l2 년 가까이나 살았는데도 남의 집에 온 것 같은 불안한 기분이었다. "무슨 중대한 일이라도?"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한 것도, 조금 전에 메어리가 뜰에 나와서 불안한 것처럼 이마에 주름살을 지으며, "로셀 씨가 당신보고 서재로 와 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분은 오늘 몹시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더군요. 빨리 가보는 게 좋겠어요." 라고 하길래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좋을 것 같지 않은 불안감을 가지고 여기로 왔기 때문이다. 그때 메어리는 말하고 나서도 아직도 무엇인가 덧붙이려는 것 같았지만, 죠디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재빨리 뒷문에서 부엌으로 들어와 버렸다. "메어리가 왠지 흥분하고 있는 것 같아요." "메어리에게 일 개월 휴가를 주겠다고 했거든." 로셀이 황급히 초조한 듯이 말문을 열었다. "정말…!" 죠디는 무척이나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 로셀…" "곧 알게 될 거야." 로셀의 아름다운 푸른 눈이 아직도 순진하고 귀여운 데가 있는 죠디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듯이 힐끗 쳐다보았다. 무슨 이유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로셀의 눈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빛이 감추어져 있다. 그것이 모처럼의 눈의 아름다움을 해치고 사람을 사로잡아 버릴 것 같은 웃고 있는 얼굴의 진의조차 의심하게 한다. 필립과 모니카, 핸들릭스 부처가 그녀에게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는 가치있는


빅토리아 왕조풍의 집과 대지도, 내부의 재산 모두를 두 양녀 중에서 나이가 많은 쪽으로 물려주었다. 죠디의 마음에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언니 로셀은 양친과 이야기를 하는 것도 상담하는 것도 같은 방법으로 행동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죠디는 언제나 소외당하고 따돌림받고 있었다. 또한 그것도 자신은 훨씬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매우 예사로운 일로써 받아들이고 있었다. 언니처럼 양부모가 정말 한가족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진실로 애정을 느껴 보았던 어슴푸레한 기억조차도 없다. 특히 요사이 대개 태어나면 즉시 양녀로 받아들여, 열한 살이나 되려고 하는 어린아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양녀 한 명을 맞이하려고 하는 양부모들의 생각이 죠디는 원망스럽게조차 생각되었다. 양녀가 왔을 때, 죠디는 불과 여섯 살이었지만, 맞아들이는 로셀이 두려울 정도로 질투심을 나타내고 있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오싹오싹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죠디를 귀여운 여동생으로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양부모의 애정을 서로 싸워 빼앗는 적으로 맞이하는 태도였다. 로셀은 그의 나이로써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교묘하게 행동하여 함께 있을 때는 선량한 보호자인 언니처럼 가장하여서 양부모의 눈으로부터 적개심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죠디는 세 사람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태도를 보고도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현재까지는. "나 말이야, 이 집을 팔기로 결정했어." 로셀의 저음의 허스키인 목소리는 엄숙했다. 수없이 많은 그녀의 주변 인물들과 이야기할 때에는 결코 들어본 적도 없는 목소리였다. "조그마한 아파트를 살 예정이야. 침실이 하나 있는…" 동생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냉정하게 웃음을 띠면서 의미있는 말을 덧붙였다. "모든 것이 정리되려면 2 개월 정도 걸릴 거야. 그러니까 네 앞으로의 생활 터전을 정리하는 데에는 시간이 충분히 있어. 이 집이 곧 팔릴 수 있다는 보증을 부동산 소개업자로부터 받았거든. 그러니까 당장이라도 아파트로 옮길 수 있지. 이 주위에서는 이런 집을 얼마나 많이 요구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을 테지." 처음부터 불안한 얼굴로 죠디는 무척 오랫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하니 로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목이 메인 듯한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에게는 아무 것도 물려 주시지 않고 양친이 언니에게만 거의 모든 것을 남겨 주신 것은 어째서인지 잘 모르겠어. 나에게는 아무 것도…"


"너는 양친의 일에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남겨 주시지 않았어. 이유는 그것 때문이야. 아버지를 도와서 장부를 만들거나 사무소를 운영해 온 것은 나란 말이야." 물론 그것은 사실이었다. 로셀은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자마자 그녀의 재기발랄한 두뇌는 부친 회사의 최고의 마스코트로서 도움을 주어왔다. 사업의 운영도 실제로 맡아 했기 때문에 아버지 필립은 안심하고 사무소를 로셀에게 맡길 수 있었고, 그래서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휴가를 내어 극동의 작은 섬에서 며칠을 보낼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그리고 나서 비행기가 추락하고 비행기에 탄 전원과 함께 사망하였다. 이것은 육 주일 전의 일이었지만, 유언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죠디는 언니의 태도가 돌변하여 오만해지고, 무엇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음을 보아왔다. 드디어 폭탄이 터질 때가 왔다. 죠디는 집을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안개처럼 어렴풋한 기억 속의 그분으로부터 크고 작은 여러 사건들이 떠오른다― 소외당하던 비애, 사랑의 결핍, 그래도 불완전하나마 이럭저럭 가정생활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 가정 그 모든 것이 이복언니의 것으로 돼버렸다. 게다가 집까지 자신의 소유라고 내쫓으려 한다. 죠디는 눈물로 얼룩진 눈으로 언니를 쳐다보았다. "로셀, 당신이 혼자서 사무소를 척척 꾸려나가고 있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은 나보다 다섯 살이나 연상이잖아요. 아버지께선 당신이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서 실무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도 잘 알고 있어요." "너에게 열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사회로 나온다는 것이 가능한 줄 알아?" 로셀은 얕보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너에게는 그럴 정도의 머리가 없단 말이야." "이제 곧 상급과정의 시험을 치를 거예요." 죠디는 벌컥 성을 내며 말했다. "시험을 칠 거라고?" 로셀의 아름답게 생긴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시험을 치지 못할 거야. 내가 아버지께 말씀드렸단 말이야. 너를 언제까지나 학교에 보내는 것은 시간과 돈의 낭비라고 말야. 가게나 기타 어디엔가에서 일을 시키면 좋겠다고 말야. 실제 사회의 경험이 이런 때에는 유익한 거야." "아버지께선 당신만큼 나를 좋아하시지 않았어요." 눈물을 흘리며 하는 항의는 노기가 자욱이 서려 있었고, 아무리 양친의 처사를 원망해 본들, 양친이 급사해 버린 데 의한 타격을 회복할 수는 없었다. 가슴에 멍하니 뚫린


상처가 아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로셀은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탄식의 말 한마디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런 주장은 너에게 있어 완전한 공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아." 로셀은 매우 준엄하게 부정했다. "그렇다면, 왜 유언을 남겼을 때 우리들 두 사람을 똑같이 생각해 주지 않았을까?" 죠디는 흐느껴 울었다. "양친이 지금 계시지 않는데,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무척 어리석구나." 로셀은 넓은 이마에 그림자가 드리워질 만큼 인상을 찡그리며 죠디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죠디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현재 처해진 입장의 두려움이 빙글빙글 돌아 다가왔다. 불과 열여덟 살에 집에서 쫓겨난다. 거의 무일푼으로 조금 받은 유산으로는 아무래도 작은 아파트조차 살 수가 없다. 있는 돈을 모두 털어 아파트를 빌리고 가구를 갖추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리고 나서 앞으로는 어떻게 하나? 죠디는 여지껏 학교를 다니고 있고, 상급과정을 이수하고, 그것을 마치면 비서 양성 학교에 갈 예정이었다. 이런 인생계획은 그녀의 양 부모들이 생각한 것으로 그녀도 그것에 찬성하고 있었다. 그래서 늘 우선 양녀에게 베풀어 주신 것에, 다음에는 그 이후 이런 계획을 가지고 길러 주셨던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도 이렇게 일찍 돌아가시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셨겠지." "그러셨겠지." 로셀도 차갑게 동의했다. "우리들도 그랬다고 생각해." 한 번 더, 죠디는 똑바로 로셀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슬픔에 잠기고 말았다. 세상에 자기 혼자 내버려져 있음을 알고는 슬픔이 공포로 변했다. 마음이 절망의 늪으로 가라앉으면서, 손이 닿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구하려고 발버둥치며 매달리려고 하고 있는 자신의 장래의 모습이 두려웠다. 아무 말도 없이 서재를 나왔다. 죠디는

잃어버린 모든 것― 양친과 언니의

사랑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만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죠디와 로셀은 집도 사업에서 얻어지는 수익도 서로 나누어 가지고, 함께 살며, 서로 위로하며 살겠지. 또 양친을 잃음으로써 두 사람의 끊기 어려운 유대는 더욱더 강하게 되었을 것이 틀림이 없다. 죠디는 갑자기 메어리의 일을 생각했다. 핸들릭 집안에 이십 년 이상이나 일해 온 메어리도 죠디와 똑같이 이 세상에 의지할 데가 없다. 메어리는 이제 벌써 중년을


넘었지만, 검약하여 저금을 갖고 있다. 언제인가 그녀는 장래의 꿈을 죠디에게 말한 적이 있다. 시골에서 조그마한 집을 지니고, 꽃을 심고, 야채와 닭을 기르며 생활하고 싶다고. 벌 할아버지와 똑같은 생활이다. 말끔하게 깎아 손질된 잔디를 밟으며, 정원의 모퉁이, 이웃집과의 경계에 가까운 나무숲 속의 조립식 조그마한 집으로 발길을 향하면서 죠디는 생각했다. 온화한 오후의 석양이 정원의 나무숲의 그림자를 조립식 조그마한 집에 드리우고 있다. 칙칙한 회갈색 벽에는 습기에 의해서 얼룩이 져 있고, 창틀은 조금 휘어져 있다. 벌 할아버지는 열려진 문 밖에다 거칠게 다듬어진 나무벤치를 꺼내놓고 앉아서, 한 손에 신문을 얼굴에서 멀치감치 떨어뜨려 들고, 한쪽 손을 힘없이 축 늘어뜨리고 있다. 죠디는 아직 벌에게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죠디는 벌의 발 밑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 필립이 버린 마직 구두를 신고 있지만, 구두코에는 엄지발가락이 엿보인다. 시선을 위로 향하면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희고 반은 엷은 갈색으로, 가운데로 가르마를 타서 길게 늘어뜨리고, 한참 동안 감지 않은 것 같다. 벌 할아버지는 2 개월 후면 칠십육 세가 된다― 어차피 은퇴할 나이지만, 이제부터는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시게 될까? 그렇다. 벌 할아버지라고 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시는 데에 특별한 지각이 필요할 리가 없다. 불쌍하다는 기분이 파도처럼 밀려와 죠디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벌 할아버지께서 신문 위로 이쪽을 바라보는 안경을 보고, 죠디는 마음이 누그러짐을 느꼈다. 안경은 한쪽 렌즈가 부서져 있고 언제나와 같이 코 앞쪽으로 매우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벌 할아버지는 가까이 가자 조용한 얼굴에 방긋 웃음을 지으셨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죠디는 커다란 둥근 돌에 걸터앉았다. 도저히 움직일 것 같지 않은 물건이라 생각했지만, 몇억 년이나 걸려 산에서 떨어지고 빙하에 떠밀려 흘러온 돌이다. "오늘은 계란을 몇 개 낳았어요?" "여덟 개." 라고 말씀하시고, 벌 할아버지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 "죠디야, 오늘은 안색이 좋지 않구나. 무슨 일이 있었니? 벌 할아버지한테 말해 보렴." 죠디의 커다란 갈색 눈동자에 흥분이 감돌았다. "할아버지께서도 안색이 안 좋으시네요. 무슨 곤란한 일이라도 있었나요?" 벌은 조금 지나서 어깨를 움츠렸다. "로셀이 이 집을 팔았다는구나. 나는 나가지 않으면 안 돼." 눈물로 죠디의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입술이 흔들리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알고말고, 물론…"


목구멍에 치밀어오르는 것을 삼키기가 고통스럽다. "로셀이 나가기 때문에 아무래도 어쩔 수 없지. 그렇지만 새롭게 이 집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메어리보다도 네 편이 도움이 될 거라고는 여겨지지 않는구나. 하물며 너는 아직 어린 처녀 아니니?" 그의 목소리에는 매우 걱정하고 있는 여운이 있었다. 벌과 죠디는 언제나 사이가 좋고 서로를 신뢰하며 동정해 왔다. 두 사람은 모두 애정에 굶주려 있었고, 죠디에게 있어서 무엇인가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에 도피할 데는 역시 벌 할아버지의 작은 집이었다. 양부모의 사망 소식을 듣고, 죠디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파묻고 마음껏 울었던 것도 벌 할아버지의 어깨였다. "부모님은 그런대로 나에게 잘해 주셨어요." 그때 죠디는 그다지 깔끔하지 않는 것도 잊고 벌 할아버지의 웃옷에 매달렸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단 말인가!" 벌 할아버지는 다정하게 위로하며, 어루만져 주었다. 어색하긴 했지만, 키스까지 해 주었다. 죠디의 마음에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가? 그 때문에 로셀의 애정이나 이해심이 적은 것을 그다지 신경을 써본 적은 없었다. "나도 나가지 않으면 안 돼요." 죠디는 띄엄띄엄 중얼거렸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다지 로셀의 욕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도저히 처음부터 좋아지지 않았어. 그 아이는 내가 원래 부랑자로, 갈 데 없는 사람이었음을 결코 잊지 않았지. 어느 날 내가 현관을 두들겨, 정원의 잔디를 깎게 해 달라고 부탁했을 때, 일을 준 사람은 핸들릭 씨였다. 이전에 정원사 한 명이 있었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서 나에게 시켰었지. 잔디를 깎자, 핸들릭 씨는 몇 실링을 주었지…" 벌 할아버지는 추억을 회상하는 것처럼 말을 잠시 끊었다. "나는 다음 주에도 오겠다고 하고 또 왔어. 그러나 핸들릭 씨는 앞으로 계속 정원 일을 해 주겠느냐고 물었었지. 그 후 조립식 조그만 집을 지어 주어서 나는 닭과 집오리를 키웠단다." 벌 할아버지는 또 말을 끊었다. 잠시 죠디도 슬픔을 잊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굴뚝과 강낭콩의 아름다운 열, 기세 좋게 무성한 감자 잎사귀 위를 시선이 왔다갔다했다. 그 앞의 모퉁이에는 작은 닭집이 있고, 그 옆에 병아리가 벌레나 모레를 쪼아먹고 있다. 집오리는 가늘고 긴 정원의 반대 끝의 연못에 있고, 여기까지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죠디는 물 속에서 낳아 떨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알은 잃어버리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학교를 그만두어야 해요." 죠디는 중얼거렸다. 집 뒤편에서 내프킨을 끈에 걸어 말리고 있는 메어리의 모습을 보며, 생각은 현실로 되돌아왔다. "무사히, 상급 과정은 즐겁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죠디의 눈에 어두운 그림자가 서렸다. 그것을 보자 벌 할아버지는 그녀의 마음에 끊임없이 엄습하고 있는 공포감을 간파했다. "돈이 있으면 좋을 텐데…" 벌 할아버지가 이런 얘기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매주 얼마나 받고 있는지를 죠디는 알고 있다. 겨우 개미 눈꼽만큼이지만, 닭과 밭이 있기 때문에 만족하고 있었다. 야채와 닭을 가계에 보탬이 되게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할아버지 혼자의 생활에 조금 남을 정도의 여유를 주는 데 불과하다. "돈이 있으면 너에게 조그마한 집을 사줄 텐데…" 목소리는 작아져 끊어졌고, 이마엔 주름살이 열십자 모양으로 세워졌다. 벌은 거칠고 울퉁불퉁한 손으로 팽팽한 털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흔들었다. "곤란하게 되었구나, 아가야." 죠디는 눈을 꼭 눌러 감고서, 스며나오는 눈물을 참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나에게는 중대한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했는데…" 벌 할아버지는 생각에 깊이 빠진 것 같은 얼굴 표정이 되었다. "역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게 좋겠군." "어머, 안 돼요!" 죠디는 비애의 눈물을 가득히 머금고서 외쳤다. "할아버지, 이제는 그럴 나이가 아니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 반문하는 벌의 상태는 침착하고 평온하며, 철학자의 말 같았다. "나는 그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거기에 대해 불평을 한 적이 있었니?" 눈물이 넘쳐 흐르고, 죠디의 볼에 옮겨져 떨어졌다. "할아버지는 나라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요. 알고 계시죠?" "자선 말이냐?" 벌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나에게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나는 다른 곳으로 가겠어. 나에게도 자랑할 것이 있겠지."


벌은 안경 너머로 죠디를 보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죠디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 로셀 놈." 잠시 지나서 벌은 토해내듯이 말했다. "나가라고 하는데 빙빙 돌려서 말할 것은 없잖냐 말이야. 마치 나를, 발 밑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는 벌레처럼 취급하는 것 같군!" 이때에도, 죠디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벌이 말하는 대로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셀은 언제나 벌 할아버지에 대해서 부랑자로 변변치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경멸하고 있었다. 그러나 죠디는 할아버지가 운이 나빴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벌 할아버지는 열두 살 때에 고아가 되어 숙부에게서 길러졌지만, 숙부는 가업인 석탄판매에 혹사시키고, 아직 나이도 차지 않은 어린아이 때부터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지기도 했다. 거의 이 년 후에 벌은 도망을 쳐서 한때는 배를 탄 적도 있지만, 병이 들어 거의 반은 죽게 되었을 때부터 산과 들을 헤매며 다녔다. 어느 날, 한 농부가 창고에서 자고 있는 벌을 발견하고, 그 농부의 처가 벌에게 침대와 식사를 주어 돌보아 주었다. 그곳의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에 벌은 행복했지만, 농부도 점점 나이를 먹어 마침내 농장을 팔게 되었다. 농장을 산 사람은 그곳에 남아 사는 것을 원치 않아서, 창고라도 좋으니까 잠자게 해 달라는 벌의 간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벌은 또 방랑의 여행을 나서게 되고, 생활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그 자유를 즐기며 지냈다. 그리고 마침내 필립, 핸들릭의 정원사가 되어 지붕 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지붕 밑이라 해도, 어떤 것은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아주 빠듯한 것뿐인 거의 무일푼의 생활이었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면 모니카도 필립도 죠디도 선물을 했다. 선물은 모두가 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때로는 부엌용품도 있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죠디는 밝은 푸른색의 테이블크로스를, 어머니 모니카는 나이프 세트와 조미료 병을 선물했다. 이제 벌 할아버지는 이런 물건들을 전부 놓고 떠나가야만 한다… 또 역시 산과 들을 헤매며 다니는 것이다. 칠십육 세라는 연세로… "적어도

부모님이

유산의

절반을

나에게

나누어

주었더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할아버지를 이곳에 머물 수 있게 해드릴 텐데." "유언의 내용을 알았을 때에는 깜짝 놀랐겠구나. 그렇지만 너는 언제나 로셀의 그늘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재산에 대해서도 이렇게 되리라고 각오하고 있어야 했을 것을." 벌 할아버지는 이모저모로 죠디의 어려운 처지에 대한 동정이 느껴졌다. "부모님은 자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결혼하리라고 생각하고 계셨어요."


"보통 때라면 네가 생각한 대로 되었겠지만, 양친도 여러 경우를 생각하여 결정해 두지 않으면 안 되었겠지."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벌?" 몇 가지 생각이 죠디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예전에 '가정부'라고 불리던 일을 택하여 누구네 집으로 입주하여 하녀일을 하거나, 또는 호텔의 종업원이 되어 숙박비를 월급으로 받았다. 그러나 남의 집에 들어가 살며, 고용되어 생활한다는 것… 그러면 자신의 노동에서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단지 살아갈 수 있게만 되는 것이 아닌가. 벌 할아버지가 앉아서 졸고 있다고 여겨져 쳐다보자, 미끄러져 내려온 안경의 위로부터 엷은 자줏빛 눈으로 방의 한 모퉁이를 꼼짝 않고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죠디는 살짝 일어나서 말없이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로셀은 일 주일의 휴가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을 할 수 없게 된 친구가 부탁하여, 그 대신에 가는 것으로 급히 결정되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너의 신변정리에 대해 생각해 두길 바라겠어." 로셀은 경고했다. "이제 집은 팔렸고, 앞으로는 등록을 기다릴 뿐이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로셀, 나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내가 알 바가 아니잖아." "당신은 나의 언니가 아니야?…" "이상한 말은 하지 말아 줘. 완전히 분명한 남이야." "그러면 어떻게 되더라도…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신경쓰지 않겠다는 거야?" 죠디는 자신이 용기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더욱 강하고, 더욱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문제에 집요하게 물고늘어져 다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용감하게 승리를 쟁취할 때까지. 그러나 용기를 가지고 자기 권리를 주장하려고 해도 아무래도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방해를 한다. 벌 할아버지도 말했듯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새로운 집주인이 삼사 주 내로는 오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저렇게도 아니다, 이렇게도 안 된다며 계속 생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해야 하나를, 왜 내가 생각해 주지 않으면 안 되지?" 로셀이 인상을 쓰는 것을 보고, 자신의 일을 걱정해 주고 있다면, 죠디는 일순간의 희망을 갖게 되지만, 그 환영은 남김없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죠디, 나는 내 자신의 생활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 돼. 지금 나는 놀고 있지만, 다음의 일을 찾기까지 잠시일 뿐이야. 더구나 새로 산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방을 단장하거나 가구를 사거나 해야만 해. 그렇기 때문에 알겠지. 자신의 일로도 힘이 벅찬데, 아무런 관계도 없는 어린애의 일까지 책임을 져야 하겠니?"


죠디는 아무 말없이 있었다. 더 이상 말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무엇을 말해 봤자 소용없다. 말하는 것만큼 헛수고다. 그렇지만 아직 로셀이 자기 방에서 방금 사갖고 온 참신한 옷 상자 두 개에 짐을 꾸리고 있는 곳으로, 죠디는 살그머니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이복 언니의 성질 어딘가에 있는 약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 서둘러서 말을 꺼냈다. "언니, 언니의 아파트에 살게 해 주지 않을 테야? 내가 시험을 치고 졸업할 때까지면 좋겠어. 그렇게 하면, 나는 일을 찾아서…" "이미 말했잖아. 아파트에는 침실이 하나밖에 없단 말야." 퉁명스러운 어조에는 경멸과 참을 수 없다는 조소가 담겨 있다. "너는 이제 열여덟 살이 아니니!" 로셀은 화사한 면 드레스를 얌전하게 손질하며 옷상자 바깥의 옷 위에 겹쳐 놓으면서 계속했다. "너 나이의 여자아이로 자립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단 말야." "그것은 알고 있어." 죠디도 동의했다. 그러나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않았고, 어떤 일을 하기 위한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고 계속 말했다. "나같이 아무런 경험도 없는 사람을 고용해 줄 사람이 있을까?" "그럼." 로셀은 탁한 소리를 간간이 내며 대답했다. "모두 너 자신의 일이잖니. 그러면 이제 나가줄 수 없겠니? 내가 짐을 꾸릴 수 있도록. 앞으로 세 시간 안으로 공항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단 말야!" 삼십 분 후, 벌 할아버지는 로셀이 휴가는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다. "포르투칼이에요. 나도 외국에 가고 싶어요." 부러운 듯한 목소리가 죠디 얼굴의 긴장감을 없애 주었기 때문에, 노인은 안심을 하였다. 훨씬 이전에 벌은, 죠디는 로셀보다도 미인이 될 거라고 예언했지만, 이제 미인이 될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갈색의 아름다운 눈은 구부러져 올라간 짙은 속눈썹으로 돋보이고 있다. 비단결 같은 머리카락도 아름답게 살짝 웨이브지고, 고상하게 생긴 목에 하늘하늘 걸쳐 있다. 그녀의 얼굴형은 어느 쪽인가 하면 고전적으로, 벌 할아버지는 그리이스의 여신상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리는 흠이 하나도 없는 대리석과 같이 희고 투명하여 관자놀이의 혈관이 파랗게 비춰 보이고 있다. 죠디는 장미빛 입술의 가장자리를 벌려 미소지으며, 몇 번이나 끄덕거렸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지금에서야 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태양빛에 천천히 꽃봉오리가


벌어지는 장미처럼, 그녀의 아름다움은 마음속 깊은 것으로 오래 계속될 것이다. 로셀의 아름다움은 표면뿐인 부서지기 쉬운 얼음처럼 초조한 것이다. "벌, 무엇을 생각하고 계세요?" 죠디는 의자에 다가가서 앉았다. "네 일이지." 벌 할아버지의 대답은 매우 짧았다. "그래요. 물론 내가 이제부터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겠죠." 벌은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앉아서 서로의 장래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무엇인가 일어날 거야." 노인은 중얼거렸지만, 죠디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 것도 일어날 수 없음에 대한 한숨이었다.

그러나

벌의

말이

무서운

기세로

효과를

나타내고,

더구나

실현되리라고는 죠디도 생각하지 못했다. 편지가 온 것은, 로셀이 떠나고 불과 이틀 후의 일이었다. "변호사한테서네." 죠디는 무서운 것을 보는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리고 망설이면서 봉투를 뜯었다. 십 분 후, 죠디는 전화를 걸어 편지에 적힌 대로 했다고 대답하고, 그리고 나서 십오 분 후에는 가파르지 않은 잔디 위를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달리고 있었다. "할아버지!" 산들바람 속에서 편지를 펄럭펄럭 흔들며 숨을 헐떡거리며 외쳤다. "할아버지, 하늘이 우리를 도와 주셨어요! 내가 아일랜드에 있는 성의 반을 상속받게 되었대요. 말씀하신 것이 일어났어요. 나에게는 아일랜드인의 피가 섞여 있대요! 어머니 쪽인가 봐요. 벌, 듣고 계세요?" "아아, 죠디야, 듣고 있다고도 할 수 있고, 듣지 않고 있다고도 할 수 있구나. 성의 반이란 것은 상속할 수 없잖니. 성이 하나라든가, 전혀 없다라든가 하면 알겠지만 말야. 자아, 여기에 앉아서 숨을 진정시켜라." "또 다른 사람이 다른 반을 갖고 있는 거예요. 호텔의 공동 경영자래요." "호텔이라니?" "성이 몇 년 전에 호텔로 개장되었대요. 제가 그것의 반을 갖는 거래요! 오전 열 시에 변호사를 만날 거예요. 오오! 벌, 당신이 틀림없이 무엇인가가 일어날 거라고 예언하신 것, 기억하세요?" "기억하구말구. 그러나 단지 갑자기 말해 보았을 뿐인걸."


"그래요. 그것이 실현되었어요! 할아버지도 나와 함께 아일랜드로 가세요. 성에는 틀림없이 당신의 마음에 드는 것이 많이 있을 테니까요!" "아마, 나는 그 또 한 사람에게 마음에 들지 못할 것 같애." 죠디는 얼굴을 들었다. 공동소유자이다. 변호사는 확실히 그렇게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한 명의 상속인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없이 벌과 함께 아일랜드로 가도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2 차는 속력을 떨어뜨리고 문 앞에 멈추었다. 문기둥의 하나에 붙어 있는, 푸른 바탕에 금빛의 훌륭한 간판에 <랏슈우드 성 호텔>이라 적힌 것을 읽고 죠디는 마음 깊은 곳에서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 샤른 공항에서 타고 온 택시의 좌석에서, 죠디는 옆의 벌에게 조용히 물었다. 벌 할아버지도 불안과 걱정으로 진정되지 않아 대답하지 못하는 동안에, 제복을 입은 종업원이 담쟁이 덩굴이 기어가는 석조건물 속에서 나타나, 호텔에서 묵을 예정이냐고 물었다. "저는 죠디 핸들릭입니다. 이쪽에서…" 죠디는 열려진 창으로 얼굴을 기울여 햇빛에 그을린 남자의 얼굴을 보려고 했다. 종업원은 갑자기 방긋 웃더니 호기심을 나타내며 죠디의 얼굴을 보았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핸들릭 양." 문이 커다랗게 열리고, 성으로 통하는 구부러진 길에 나무가 늘어서 있는 길로 들어갔다.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벌?" 죠디는 이제까지의 흥분에 불안한 기분이 재빨리 그림자를 드리우고, 위의 근육이 딱딱하게 오그라들고, 덩어리처럼 되는 것을 느꼈다. 시트의 구석에서 몸집이 작아진 노인은 여전히 대답이 없다. 그는 멋있는 양복을 입고서 뼈가 앙상한 손가락을 몇 번이나 새하얀 와이셔츠의 깃에 넣고서는 오직 침묵으로 표정도 없이 앉아 있었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있던 한 시간 동안도, 마치 몸에 꼭 끼는 옷을 입어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식으로 똑바로 긴장한 채 몸을 도사리고 앉아 있었다. "나에게 말을 시키지 마라, 별로 하고 싶지 않구나." 차가 골프장을 돌아가는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길을 커다랗게 활이 굽은 듯이 나아갈 지점에 이르러 겨우 벌은 입을 열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골프장에는 밝은 햇빛을 받고, 화려한 경기옷을 입고 머물은 손님들이 플레이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넓은 토지의 어느 곳에서나 커다란 나무들이 무성히 우거져 있고, 차가 웅장한 성에 다가가자, 서쪽의


콘네마라 산맥을 등에 업은, 섬을 아로새긴 크리브 호수의 빛나는 수면이 보였다. 죠디는 바짝 긴장했다. 벌 할아버지조차도 그 경치의 아름다움에는 감동을 받은 모습을 보였다. "도무지 현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죠디는 숨을 헐떡거리며 현실의 무엇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핸드백을 꽉 잡았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몰라. 벌, 믿어져요?" 차는 반짝반짝 빛나는 개천에 걸려 있는 돌다리를 건너, 망대가 있는 높은 성문을 빠져 나가, 화려한 성의 정면 현관 앞의 미끄러운 주차장에 정차했다. "필시 나도 이곳이 마음에 들을지도 모르겠어." 벌은 알아차렸지만, 그 목소리에는 어딘가 무리하고 있는 것 같은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러나 죠디야, 하루나 이틀 만이라고 하면서 나를 동행한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구나." "혼자서는 어쩐지 마음이 안 놓여서요." 죠디가 말하는 것도 당연하다. "더구나 변호사인 소프 씨도 누군가와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어요." "로셀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함께 왔으면 좋았겠지요. 로셀이라면, 이곳 아일랜드인과 대화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무적 재능도 있었을 테니. 전통 아일랜드인은 야만적으로 여자를 억압하고 있대요. 요즘이 여성해방의 시대라고 하는데도 말이에요.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그런데다가 나는 호텔의 나머지 반을 갖고 있는 자가 아가씨라고 생각하여 나를 위협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 사람은 꼭 여자의 파트너, 더구나 나와 같은 젊은 아가씨의 파트너 따위는 좋아하지 않아 결정해 버리겠죠!" 그때는 갑자기 편지가 날라들어와, 생각지도 않게 죠디가 성의 절반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우물쭈물거리고

있다가는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재빨리 척척 충동적으로 행동해 버렸던 것이다. 그런 어수선한 기분일 때 로셀의 귀가를 기다린다는 생각은 일어날려고도 하지 않았다. 불쌍한 벌 할아버지. 택시가 멈추자, 죠디는 자갈길에 내려서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벌은 억지로 부탁을 받고서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그는 죠디와 똑같이 이제까지 비행기를 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장래에 살 집과 노후의 생활을 보장하겠다고 고집스럽게 요청을 받고서 마침내 승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벌에게 양복을 입혔을


때는 우스꽝스러웠다. 공동소유자와 만나더라도 부끄럽지 않도록, 유산의 일부에서 산 양복을 벌에게 주었을 때의 일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뒤돌아보니, 벌은 차에서 내려 호텔 로비로 통하는 현관의 떡갈나무로 된 큰 문 쪽으로 걸어오는 참이었다. 벌의 주위에는 무엇인가 서글픈 분위기가 감돌고,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려는 파란 눈에 비애를 나타내고 있다. 그 위에 번쩍번쩍 하는 새 구두가 맞지 않아 약간 절름거리고 있다. "옷을 갈아입을 수 없겠니?" 벌 할아버지는 조금 전에 산 옷상자를, 운전수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한쪽 눈으로 보면서 물었다. "나는 내 옷을 입는 편이 좋겠구나." "아직 옷을 갈아입어서는 안 돼요." 죠디는 쌀쌀맞게 거절했다. 지금에 와서는 낡은 옷을 모두 갖고 오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와 마찬가지로 벌도 완강했다. 마지막에는 마침내 낡은 옷을 갖고 가게 해 주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까지 협박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도록 했다. 죠디는 택시 운전수에게 요금을 지불하고, 잠시 멈춰 서서 탐색하듯이 주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들어 우뚝 솟은 장대한 성이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일종의 두려움이 감싸는 것이었다. 성은 아름다웠지만, 오래된 것은 극히 일부분이란 것을 곧 알았다. 몇 번이나 증축이 이루어져 있지만, 모두가 섬세하고 교묘하게 수리를 했기 때문에 구조상으로나 형태상으로나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슴이 설레이는 커다란 기쁨이 용솟음쳐 오고, 불안한 생각을 싹 씻어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가치있는 건물의 절반이 자신의 소유가 되었다고 하니, 여전히 믿을 수 없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소프 씨는 확실하게 그렇다고 말했다. "짐을 운반하는 사람이 짐을 갖고 갈 거다." 벌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죠디는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서 제복을 입은 남자의 뒤를 따라 로비로 들어갔다. 로비의 우아하고 화려함에 어지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장래에 살 집도 있고, 생활의 안정도 있음을 확실하게 현실로써 알고 나서는 무엇인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호화로움에 기가 죽는 일도 볼 수 없게 되었다. "핸들릭스 양, 브레이크 씨는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접객 담당자는 잠시 말을 끊고, 확실히 기분 나쁜 듯이 한쪽 발을 들어 다른쪽 발의 장단지에 대고서, 한쪽 발로 서 있는 벌 할아버지의 주름살투성이인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았다. "이분이 당신과 함께 오신 분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스테펜슨 씨입니다. 나의 변호사로부터 친구를 데리고 가라는 전화가 있었어요. 미안합니다만, 곧 이분을 방으로 안내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즉시 안내하겠습니다, 핸들릭스 양." 접객 담당자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런데요, 그 전에 당신께서 도착하시면 즉시 브레이크 씨의 방으로 안내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스테펜슨 씨는 다른 사람에게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는 성의 썩 넓은 방이었던 우아하고 아름다운 방에 있자, 바보처럼 보이는 벌 할아버지를, 접객 담당자는 얼굴의 근육 하나도 움직이지 않은 채 보고 있었다. "고마워요." 죠디는 말하고, 벌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곧 편안히 쉴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옷을 바꿔 입으시면 방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괜찮지요?" "그런 것은 알고 있어요― 자신의 옷과 구두로 갈아입는다면." 그의 눈이 번쩍이는 것을 보고, 죠디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설마 언제나 신고 있던 그 낡은 구두를 갖고 온 것은 아니겠지요?" "그것은 신기에 무척 편해요. 발 앞에 구멍이 나 있지만 말야." "이쪽으로 오세요, 핸들릭스 양. 브레이크 씨가 계신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죠디는 벌 할아버지에게 한 마디 주의를 주고 주춤 돌아서 접객 담당자의 뒤를 따라 넓은 방을 가로질러 넓은 복도가 다다르는 문으로 향했다. 접객 담당자가 막다른 곳에 이르는 옷장식이 달린 커다란 문을 노크하자, 죠디의 심장은 또 격렬하게 뛰었다. "들어오세요." 접객 담당자가 문을 열었을 때, 죠디는 자신이 완전히 동요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급히 후들후들 떨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발을 꽉 버티고 서서 걸어들어갔다. 접객 담당자는 죠디의 이름을 알리고는 물러갔다. 공동소유자가 되는 사람에 대해, 죠디는 이것저것 상상하여 교양이 있는 상류계급의 신사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었지만, 용모나 체격이 이 정도로 뛰어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였다. 코너 브레이크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깜짝 놀랄 것 같은 커다란 키로 브레이크가 내려다보자 그녀와의 사이에 떡갈나무로 된 책상 등이 있지 않은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남자로서 자신만만하고 누구에게나 우월할 것 같은 분위기에 기가 죽어, 죠디는 당황하여 신경질적으로 침을 꿀꺽 삼키고 남자가 이야기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남자는 비바람을 맞은 운석처럼 검은 눈에 비치는 죠디의 모든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죠디의 섬세한 얼굴형, 시원한 넓은 이마 구부러져 올라간 짙은 속눈썹으로, 가장자리가 쳐진 커다란 갈색 눈의 모든 것에 대해 코너브레이크의 눈이 핥듯이 천천히 자신의 몸의 곡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죠디는 냉정하게 살피는 눈빛으로 마주 쳐다보면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다. 죠디는 남자들과 익숙하지 않다. 더구나 흥미를 받게 되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다. 마치 벌거벗고 있는 느낌이 들어 아슬아슬하게 창가로 다가서서 벨벳의 커튼에 몸을 감싸고 남자의 탐색하는 듯한 시선으로부터 숨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죠디는 거꾸로 완벽하게 맞춤 옷인 회색 슬랙스와 그것과 딱 어울리는 캐주얼한 웃옷에 둘러싸인 늠름해 보이는 신체를 자신의 쪽에서도 살피는 듯이 보고 있었다. 햇빛에 그을은 얼굴은 짙은 브론드색, 튀어나온 광대뼈에서 조금 움푹 들어가고 탄탄하고 팽팽한 얼굴의 아래쪽에서 강한 의지를 나타내듯이 튀어나온 턱의 선은 끌로 조각하여 잘라낸 것처럼 아름답게 윤곽이 뚜렷하다. 짙은 갈색머리 속에 몇 가닥의 백발이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몇 개일까? 조금 열중해서 보니까 29 세나 30 세일 거라고 여겨졌다. 의자의 등에 놓은 손은 힘줄과 뼈가 억세 보이면서 피아니스트처럼 섬세한 점도 있고, 웃옷의 소매에서 나와 있는 눈같이 하얀 와이셔츠 소매와 눈을 크게 뜨게 하는 색의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분명하게 보고 싶은 것은 모두 다 보았다. "핸들릭스 양, 내가 코너 브레이크입니다." 그는 손을 내밀고 악수를 했다. 부서질 정도의 강한 악수는 손을 뗀 후에도 몇 초 간을 죠디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한덩어리로 달라붙게 해버릴 정도였다. "런던으로부터 항공여행은 즐거웠으리라 생각됩니다." 부드러운 아일랜드 말투는 생각지도 않은 아름다운 울림을 지니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전신을 애무받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남자는

두려운

상대임에는

틀림없다고 마음속에 느끼고 있지만 아름다운 목소리… 그렇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사랑을 받으며 이해할 수 없는 힘으로 강하게 끌려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고맙습니다…" 죠디는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런던에서는 두 시간 늦어졌지만 무척 편안한 여행이었습니다." "앉으시죠."


코너는 죠디의 대답을 흘려 들으면서 의자를 권했다. 죠디는 그 끝에 조금 걸치고 양손을 모아 무릎에 얹어 놓았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서로 이야기하실까요?" 그는 말하면서도 책상을 마주하는 의자에 앉았다. 저런 식으로 탑처럼 우뚝 솟아 아래로 굽어보고 있으니 용기가 꺾여 버린다. 로셀이라면 틀림없이 이 사람을 맘에 들어했을 테지. 로셀 자신이 평균보다는 키가 크기 때문에 키가 큰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선 처음에 꼭 말씀드려 놓고 싶은 것은 이 호텔처럼 값어치 있는 것의 절반을 상속받기에는 당신은 굉장히 어린 분 같군요." "저는 열여덟 살입니다." 그 대답이 어색하고 부적당하다고 인식하면서 말했다. "열여덟 살이라고요?" 눈썹이 치솟아 올라간 상태는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쨌는지 재미있어하고 비웃는 것처럼 들려 죠디는 눈을 내리깔았다. 로셀이었다면 이런 경우를 어떻게 잘 타개해 주었으리라 생각되어, 충동에 사로잡혀 서둘러서 와버린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래요, 열여덟 살이든 몇 살이든 당신과 나는 공동소유자입니다." 코너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고 있는 듯이 보였지만, 죠디는 그 기분은 잘 알고 있었다. "이 호텔을 경영하는 데에 제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용기를 쥐어짜서 말해 보았다. "지금 있는 직원들과 함께 실제로 잘 해가고 있습니다. 여기의 경영에 대해서는 당신에게 무엇을 요청할 필요는 없지." 갑자기 무뚝뚝한 말에서 아일랜드식 말투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변호사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코너는 물어보듯이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계속 말했다. "당신의 큰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계속 변호사 소프 씨와 연락을 취해 왔소. 사실을 말하면 오스틴 오를르케 씨가 랏슈우드 호텔의 재산을 상속하고 싶다고 여기고 있던 부인을 찾는 데에 소프 씨를 고용한 자는 바로 나입니다. 오스틴 씨에게 질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아이인지 어른인지 아무 것도 몰랐고, 그러나 당신은 금방 찾을 수 있었지요."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은 저의 성장 배경을 알고 계시단 말이군요? 저는 굉장히 여러 가지 일을 소프 씨에게 얘기했는데, 소프 씨는 전부를 당신에게 말씀드린 것이겠지요?" 코너 브레이크는 끄덕거렸다.


"당신이 소프 씨의 편지를 읽고 만나러 간 날에 우리들은 전화로 오랫동안 서로 이야기했지." 코너는 그답게 말하고, 말을 끊더니 조금 볼에 주름을 지었다. 죠디는 벌 할아버지가 공동소유자라서 싫다며 협박하여 내쫓아 버릴지도 모른다고 예언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가 그녀에 대해 불쾌하게 여기거나 위협하려는 듯한 징조는 어느 곳에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제까지의 인상으로 그는 큰할아버지인 오스틴 오를르케와는 대단히 친한 사이로, 그런 까닭에 그 상속인에 대해서도 다정하게 해 주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현재로서는 당신은 영국에 있고, 경영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반 년마다 배당금을 보낼 예정으로 있지요. 그러나 당신이 집을 나왔을 때의 사정을 보면 당신도 여기에 와서 사는 것이 제일 좋으리라 여겨지는군. 당신은 오스틴의 개인 방이었던 스위트룸을 인수받아도 괜찮아요. 이 건물이 바라보이는 끝에 있고, 호수와 호수에 떠 있는 섬들을 멀리 바라다볼 수 있어 틀림없이 마음에 들 겁니다. 이 호텔 안에서도 가장 호화롭고 매력적인 방입니다. 그러나 내가 처음에 한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소프 씨는 당신에게 무엇을 이야기했던가요?" "제 어머니의 큰아버지와 당신의 아버님께서 훨씬 오래 전에 성을 샀는데, 그 때부터 지금의 호텔로 되었다고 말해 주셨어요." "그대로입니다." "마침내 당신의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당신이 나의 큰할아버지의 공동소유자가 되었고, 또 소프 씨의 이야기로는 큰할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만년의 오 년 동안은 실제의 경영은 당신이 맡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스틴은 위대한 노인이었어요. 불쌍하게도, 좀더 빨리 연락이 취해졌다면 좋았을 텐데, 당신도 양녀로 간 곳에서 생활하기보다는 그와 함께 지내는 편이 좋았음에 틀림이 없어요. 그러나 오스틴은 당신의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코너는 재빨리 말을 끊고 인상을 썼다. 여러 가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것을 죠디는 남몰래 감사했다. 그녀가 불과 다섯 살 때에 돌아가셨다고 하는, 불쌍한 아버지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않는 것이 고마웠다. 죠디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일 년도 못되어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큰아버지에 대해서 죠디에게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죠디는 의지할 곳이 없다고 생각되어, 양녀로 가게 된 것이었다. "큰할아버지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요." 중얼거리듯이 말한 죠디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후회하는 울림이 있었다.


"고독한 노인이었어요…" 그렇게 말을 꺼내고서, 그는 또 입을 다물었다. "자, 이제 모든 것은 과거 일이오. 더구나 적어도 당신은 이제부터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잠시 동안 코너는 죠디에 대해서보다 서류 쪽으로 흥미가 있는 듯한 모습을 하여 죠디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죠디가 또 핸섬한 남자의 아름답게 조각된 얼굴, 늠름하고 팽팽한 턱의 선, 속눈썹이 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갑자기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시선을 눈치챈 듯이 코너는 눈을 들었다. 죠디는 어렴풋이 얼굴을 붉혔지만, 그의 표정에는 그것을 알아차린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당신의 양부모들이 당신의 언니에게는 많은 유산을 남겼는데, 당신에게는 거의 남기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서, 죠디는 단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양부모들이 결정한 대로, 저는 따를 수밖에 없군요." 그 목소리에는 미워하는 기색은 없고, 슬픈 울림이 있음을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책상을 마주하고 듣고 있는 쪽은 느껴졌다. 그래서 그것이 걱정이 되어서 코너를 응시하는 시선은 더욱 탐색적이 되고, 죠디는 당황하여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음, 그렇다면 당신의 괴로움은 이제는 모든 것이 해소된 듯하니 다행이군요." 코너는 겨우 원래의 아일랜드식으로 말했지만, 매력적인 목소리 속에는 처음에 품었던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끝났음을 유감으로 여기는 듯한 실망한 모습을 보였다. 잠시 생각한 후에 죠디는 말했다. "제가 방해를 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브레이크 씨. 당신이 이제까지 해오신 대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에 대한 모든 것을요." 따뜻한 것이 흘러 그녀의 볼을 어렴풋이 물들였다. 무엇인가 그릇되게 말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어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더 이상 말없이 끝났다. 그가 화제를 바꾸어, 언제부터 성에서 살 예정인가를 물었기 때문이다. "소프 씨에게서 당신이 살고 있던 집이 이미 팔렸다고 들었는데요?" "그렇습니다. 앞으로 몇 주일 이내에 새로운 주인이 이사오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저 스위트룸이 급히 필요하게 되겠군요. 내부장식을 다시 해야만 하기 때문에 방을 보고, 어떤 색조로 할 것인지 결정해 주세요. 이번에는 며칠 동안 이곳에서 머무를 예정입니까?" "하룻밤이나 기껏해야 이틀 밤을 묵을 예정으로…"


죠디는 그런 말을 해도 될지를 망설이는 듯이 코너의 얼굴을 보았다. 코너는 미소를 지으며, 대등한 소유자이므로 주저하지 말고 좋아하는 대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꼭 말씀을 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브레이크 씨. 저와 함께 온 벌 할아버지에 대한 일입니다만, 벌 할아버지라는 분은, 그러니까, 일종의 부랑자 같은 분이셨지만, 이전에는…" "떠돌이라고요?" 깜짝 놀란 듯이 일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죠디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나는

그분에게도 여기서

살도록 해드렸으면

해요.

노인이

되었지만,

무척

일을

잘합니다." 그의 눈과 마주친 죠디의 갈색 눈은 진지하고, 걱정하는 것 같았다. "벌 할아버지는 닭의 사육이나 정원의 손질을 할 수 있습니다." 죠디의 시선은 창 쪽으로 향해졌다. 거기에서 넓게 펼쳐진 잘 다듬어진 잔디를 경계로 한 화단, 관목의 수풀, 깔끔하게 손질된 산책길이 보인다. "물론, 정원의 일부분뿐이지만, 그리고 여기에선 야채도 가꾸고 있습니까?" "네네, 가꾸고 있구말구요." "그렇다면 벌 할아버지는 기쁘게 거들어…" 그의 표정을 보고, 또 그녀의 목소리는 가늘어져 없어졌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 같군요?" 죠디는 이마에 주름살을 지었다. 이 재산의 공동소유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한 것인가 어떤가를 헷갈리고 있었다.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그… 벌 할아버지란 분은." "이제 곧 일흔여섯 살이에요. 그렇지만 아직 일할 수 있어요. 그러니 브레이크 씨, 벌 할아버지도 오게 해 주세요." 죠디는 간단히 벌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코너의 얼굴이 조금 부드러워졌기 때문에 겨우 안도의 숨을 쉬었다. "괜찮습니다. 오시도록 하세요." "그러면 벌 할아버지가 살 곳도 부탁드립니다. 작은 방이나 무엇이라도 괜찮습니다." "하나 정도 빈 방은 있을 겁니다. 찾아보죠." 코너는 초조해 하는 듯이 보였는데, 그것은 벌 할아버지 때문일 것이다. 그는 본심으로는 할아버지 따위를 오라고 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러나 일단 인정한 이상, 그로서도 앞으로는 번복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벌 할아버지가 새로운 일에 익숙해지고, 그녀의 양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잘 융화되어 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다.


"누구에게 당신의 방으로 안내하도록 하겠어요." 코너는 이제 책상 위의 벨을 누르면서 손목시계를 보았다. 죠디는 문득, 당신 따위에겐 용무가 없다고 하는 듯한 흥이 깨진 분위기를 느꼈다. 3 로셀은 다음 주 토요일 오후 세 시 반 경에 여행에서 돌아왔지만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죠디가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굉장한

뉴스가 있어요,

로셀!

내가

아일랜드에

있는

성의

공동소유권의

절반을

상속받았어요!" "옛날 이야기 따위를 들을 기분이 아니란 말야." 로셀은 택시운전수가 현관에 내려놓은 옷상자의 하나를 집어들면서 딱 잘라 말했다. "비행기가 지독했어. 오랫동안 흔들리기만 하고. 차를 끓여 주지 않겠어? 옷을 바꿔 입고 내려갈게." "정말로 성의 절반을 상속받았단 말예요." 이삼십 분 후, 죠디는 홍차를 따라 컵을 로셀에게 주면서 말했다. "당신이 떠나고 이틀째 되던 날 편지가 왔어요. 이거예요. 읽어봐요." 죠디가 편지를 건네주자 로셀은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을 아름다운 눈에 가득 채우고, 눈썹을 찡그리며 받아들였다. "나는 전화를 걸어 변호사 소프 씨를 만나러 갔어요." 로셀이 다 읽고 나서 편지를 돌려주자, 죠디는 계속했다. "엄마의 큰아버지가 이 성의 절반을 갖고 있고, 그분이 어머니에게 유산으로 남겼기 때문에 나한테로 돌아온 거예요." 죠디는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그 때부터 이후의 일을 로셀에게 이야기했다. 로셀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죠디는 알지 못했다. 동작에도 표정에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타내는 적이

없었다.

그러나 특히

공동소유자인 코너

브레이크에 대해선 굉장한 흥미를 보였다. "그 사람은 독신으로, 너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핸섬하니?" "그분은 특별해요. 이야기하는 투― 무척 매력적인 아일랜드식으로― 더구나 그 정도로 핸섬하고 눈에 띄는 사람인데도 조금도 잘난 척하지 않는… 그래요, 어쨌든 멋있는 분이에요." "그러면, 그 사람이 너의 파트너가 되는 거구나." 부드럽고 수수께끼 같은 어조다. 왜인지 모르며, 설명을 할 길도 없지만, 죠디는 위 속의 신경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로셀을 쳐다보았다.


로셀은 탈바가지처럼 무표정했지만, 갑자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그 웃는 얼굴에 따라서 죠디의 위도 속에서 진정되었다. "그는 이제 나의 파트너가 되었어요. 아아 로셀,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내게는 무척 아름다운 침실이 있어요. 이틀 밤이나 거기에서 묵었어요! 더구나 브레이크 씨는 나에게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었어요! 두 번째 밤도 우리들은 아름다운 가구와 아일랜드의 명물로 둘러싸인 유리로 된 산데리아가 있는 멋있고 커다란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어요! 더구나 식사는, 그렇게 근사한 만찬은 먹어본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물론 랏슈우드 성 호텔의 요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고말고요!" 죠디는 잠시 쉬었다. 눈을 반짝거리고 있지만 듣는 자의 커다래진 눈 속의, 차가운 질투의 빛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는 성 안을 구석구석까지 보여주었으며, 전 세계로부터 온 유명한 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주로 미국인이 많은데, 미국인의 조상은 아일랜드인이 많기 때문이래요. 언니도 상상이 가능할지 몰라요. 나는 큰할아버지의 개인용 스위트룸을 물려받기로

되어

있어요.

거실과

침실이

있고,

어느

쪽이나

창에는

호수가

바라다보여요!" 죠디는 부드러운 벨벳 같은 수면에 나무가 울창한 섬이 점점이 있는 크리브 호수의 크고 신비로운 광경이 내려다보이는 창을 꿈처럼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석양이 지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연보라빛에서 짙은 자줏빛,

더구나 장미빛에서

검붉은

빛으로

변화하는

콘네마라 산맥의 아름다움을 꿈을 꾸듯이 기억하고 있었다. 죠디는 또 밤의 쌀쌀한 태양빛을 받아 밝고 조용히 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이 빛나고 있는 호수를 기억하고 열정적으로 덧붙여 말했다. "아일랜드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에요!" "그 성의 절반이 네 것이구나." 로셀의 목소리는 낮게, 혼자말처럼 말했다. "틀림없이 몇 억이나 되는 가치겠구나." 죠디는 곧 끄덕거렸다. "어느 대의 소유자가 그 때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증축했대요. 더구나 브레이크 씨가 말해 준 것이지만, 그 중의 두 방은 영국의 왕폐하가 행차하시거나, 성에 일 개월 고스란히 머무르게 되었을 때에 증축되었다고 하던데요." "그러면 굉장히 유명한 성이로구나." "그렇게 들었어요." 죠디의 목소리는 자랑으로 가득찼다. "그 성 꼭 보고 싶어."


로셀은 열심히 계속했다. "넌 언제부터 그곳에 살 거니?" "이 주일 후에요. 벌 할아버지는 벌써 갔어요. 나 혼자서 가기는 싫기 때문에 함께 갔어요. 벌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로셀의 심술궂은 표정을 보았기 때문에, 죠디는 조심스럽게 계속했다. "벌은 처음에는 무척 두려워하였고, 그가 거기에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었으므로, 작은 초가지붕의 멋있는 돌로 된 집을 보여주고 그곳에 살아도 된다고 말했더니, 즉시 결심했어요. 내가 돌아올 때도 이제 돌아올 생각은 전혀 안하더군요. 벌의 신변 물건을 갖고 가서는 안 되지만, 별로 없어요. 모두 상자에 담아 초과화물로 갖고 갈래요." 죠디가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로셀은 커다란 푸른 눈으로 물끄러미 죠디의 눈을 쳐다보고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자 놀란 것처럼 천천히 말했다. "죠디야, 너도 어른이 되었구나. 너는 자신이 무엇을 하면 좋을지 분명히 알고 있었어. 게다가 가장 효과적으로 그것을 실행하고 있구나." "난 자신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어. 소프 씨와 이야기하고 살 집과 생활의 안정이 마련됐음을 알게 되자마자, 조금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애. 또 이틀 성에 있는 동안에 완전히

자신이

생겼어.

브레이크

씨는

나에

대해

무척

맘에

들어하고,

그래,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대등한 공동소유자로서 대우해 주어 장부까지 모두 보여주었어. 그리고 나의 경리를 돌보아 주는 계리를 부탁하듯이 충고해 주었어. 브레이크 씨와 나의 큰할아버지는 의견이 틀린 적이 없었던 것 같애. 그래서 그는 나의 후견인이 되어 줄 예정이야… 음, 이것은 나의 인상이지만." 죠디의 눈은 꿈을 꾸는 듯이 커다랗게 떠지고, 귀여운 미소가 입술 주위에 맴돌았다. "브레이크 씨는 영지 안을 안내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켜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자신이 직접 안내해 주었어. 무척 많은 구경거리가 있어. 로셀, 당신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을 거야. 그리고 생각해 봐, 그 절반이 내 것이란 것을." 죠디는 말을 중단하고 침을 삼켰다. 감동이 심해,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일순간 곤란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적 같아." "정말이야." 로셀은 컵을 들어올려 홍차를 마시면서 표정을 감추었다. "너의 미남자인 공동소유자에 대해 조금 더 들려 줘." "브레이크 씨에 대해?" 죠디의 눈은 빛났다.


"무척 바쁜 사람인데도 나를 위해 긴 시간을 할애해 주었어요. 이 사업을 어떤 식으로 시작했는지, 성 안의 무척 많은 부분을 새롭게 한 이야기, 성의 역사 속에 일어났던 여러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어요. 저곳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이 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예요. 저렇게 아름답고 호화로우며, 멋진 조각이나 골동품과 회화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고말고요…" 죠디의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지더니, 잠시 말을 끊었다가 겸손하게 덧붙였다. "이런 이야기라면, 몇 시간 이야기해도 끝나지 않아요." "너의 파트너에 대해서 묻고 있는 거야." "아아, 그렇지요." 죠디의 눈은 생기를 띠며, 수정처럼 번쩍번쩍 빛났다. "그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자상한가는 이야기했어요. 다 털어놓으면, 첫째로는 그가 굉장히 멋쟁이라서 압도당했어요. 그렇지만 나중에는 그쪽에서 나의 기분을 즐겁게 해 주었어요. 그리고 저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식사할 무렵에는 완전히 점잖아요. 어떻게 해서 나는 이렇게 핸섬한 신사와 정원이나 크리브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창 아래의 은밀한 특별석에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지 이상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어. 마치 옛날 이야기 같은 것이구말구요." "벌 할아버지가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이 싫다고 말하지 않았니?" "아니요. 실제로 두 사람은 만나서 서로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브레이크 씨는 정원수 한 사람에게 작은 집을 안내하게 했어요. 몇 주간이나 비어 있었기 때문에 즉시 살 수 있게끔 되어 있지 않았지만, 가구만은 갖춰져 있었어요. 그러자 벌 할아버지는 옷상자를 가지고 곧 이사를 했어요." 죠디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계속 말하다 보니 로셀이 갈 곳이 없는 벌 할아버지를 내쫓으려 했던 일이 생각나서 어쩔 수 없이 생각나지 않도록 감정을 억눌렀다. "브레이크 씨가 벌 할아버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니, 도저히 생각할 수 없어. 할아버지가 되어서 어떤 이득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니냐 말야. 그런데도 브레이크 씨는 벌에게 작은 집을 제공했다는 거야?" "그럼요." 죠디는 처음의 것을 무시하며 대답했다. "영지 속에는 무척 많은 작은 집이 있어요. 대부분은 원래 사슴 사냥터였던 곳으로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있어, 호텔의 종업원, 주로 정원사가 쓰고 있어요." "정원사라고." 로셀은 혼자말을 했다. "내 아파트에는 정원조차 없는데 말야."


"그렇지만 언니, 앞으로는 정원도 가질 예정이 아닌가요? 그렇지 않으면 집을 팔고 아파트을 사는 따위는 하지 않았겠죠." 로셀은 어깨를 움츠리고 한숨을 쉬었다. 이때, 마음속에는 작은 아파트가 아니라 백 에이커라는 아일랜드의 조용한 전원에 우뚝 솟은 성에서 뛰놀고 있었다. "아파트는 아직 잠시 동안 살 수 없어요." 아파트에 대해서는 이만큼밖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성 아까도 말했지만 보고 싶어. 네가 갈 때 함께 가도 좋을까? 일 주일 간 휴가를 얻을 수 있어." "오오 로셀, 가고 싶어요?" 죠디는 두 사람의 유대가 새롭게 강하게 결합되기를 기대하고 말했다. "기뻐요." "그러면, 결정했다." 로셀이 이겼다는 듯이 저절로 웃음을 지었다. "재빨리 나가서 새 드레스를 사와야만 해. 세계에서 가장 호화롭고 가장 유명한 호텔에서 머무를 테니까." 로셀이 눈에 띄고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앞에 코너 브레이크와 식사를 한 것을 어느 정도 행복하게 여기고 있는 죠디는 자신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처럼 느껴지고, 양초의 불빛 속에서 식사를 즐기는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속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두 사람과 융화되지 않고, 오고가는 대화에도 따라가지 못하여, 비참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죠디는 요리를 장난감삼아 뒤적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동석하고 있는 두 명 중의 어느 쪽도 그녀가 식욕이 없음을 알아차려 주지 못하는 것이 무정했다. 혹은 자기만 그렇게 생각하여,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동정심을 키우고 있는 것인가… 요전에 왔을 때는 만 이틀 동안 자기에게만 모든 주의를 기울여 준 코너 브레이크 씨가 나흘 전 로셀과 어울리자마자 나를 따돌리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는 탓인지 나의 눈에는 로셀은 언제나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코너를 만나자 곧 그의 마음을 포로로 사로잡은 것처럼 보인다. 남자들은 모두 여왕벌에게 모여드는 숫벌처럼 로셀의 주위에 모여드는 것이다. 그러나 로셀 쪽은 처음부터 말하고 있었다. 나의 선택의 기준은 엄격하다라고. "재산, 용모와 지위― 내가 바라는 것, 그리고 나를 바라는 남자." 언제였던가? 로셀은 죠디에게 이렇게 말했었지. 코너 브레이크가 이 세 조건 모두를 갖추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을 거라고. "죠디, 당신은 아직 생선을 먹지 않고 있군요."


코너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마치 강요하는 듯한 울림이었다. 죠디는 자신이 조금 더 나이를 먹을 때까지, 그가 후견인노릇을 하려는구나 하고 느꼈던 첫 번째 인상을 기억해 냈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요." 로셀은 죠디를 보고 간사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안색이 나쁘구나. 죠디야, 일찍 자는 편이 좋겠어. 그렇게 생각지 않으십니까, 브레이크 씨?" 코너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로셀의 제안에는 동의한 것 같지 않아서 죠디는 안심하였다. "메인 요리가 맛있었기 때문에 만족하셨지요." 라고 싱글벙글거리며 말했다. "물론 먹고 싶지 않으면 남겨도 돼요." 그날 밤 늦게, 코너가 두 사람에게 잘 자라고 말하고 간 후, 죠디가 자신의 거실에 있을 때에 로셀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로셀은 가볍고 부드러운 쿠션의 소파에 망설임없이 앉아서 이브닝 드레스의 옷자락을 걷어올리고 우아하게 감싸여 있던 아름다운 다리를 포개었다. "너, 아직 자지 않았구나?" 로셀이 말하자, 죠디는 식사 때 일찍 잠자는 편이 좋겠다고 충고하던 것이 기억이 났다. "이제 곧 자려고 생각하던 참이에요." "제안할 것이 있어." "무엇인데?" "나의 아파트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거야. 기억하고 있겠지? 여러 가지 정리되어야 할 것이 있어. 조금 시간이 걸리나 봐. 그래서 앞으로 이삼 주간 여기에서 머무르려고 생각해. 이 스위트룸은 넓어 충분히 두 사람이…" "침대가 하나밖에 없어요." 죠디는 서둘러서 가로막았다. "물론 그래. 그렇지만 너의 침실은 무척 넓으니까, 싱글베드를 두 개 놓을 수 있을 테지?" 로셀은 사람을 매혹시키는 웃음을 띠고 솔직하고 친밀감이 가득한 푸른 눈을 큼직하게 떴다. "너에게는 친구가 필요해요. 이곳에서는 그다지 할 일이 없으니까 말야. 코너도 말했잖아. 자기 혼자서 충분히 이 호텔을 경영할 수 있다고. 너에게 참견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단 말야. 그래서 내가 함께 있어 주겠다고 제안했단 말야. 어때?"


또다시 경계심을 품게 하려는 듯한 웃음과 친절한 눈길을 보내며. 죠디는 입술을 깨물었다. 불과 이삼 일 전, 로셀의 제안을 우정을 굳게 다지는 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어 환영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분명히 다르다. 죠디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로셀이 이 방으로 오게 되면 반드시 모든 것에 대해 일일이 참견하고 자신이 앞장서서 나가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나는, 당신이 여기로 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때때로 휴가 때 놀러오는 것은 괜찮지만. 그런데다 언니는 이사할 준비도 해야 되잖아요. 이제 등기도 끝났을 때라고 생각돼요. 집을 산 사람들도 빨리 자기집으로 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몰라." "물론 그럴 거야. 그렇기 때문에, 역시 나는 이곳에 있고 싶은 거야. 내가 저 집을 나오게 되면 갈 곳이 없잖니." 갈 곳이 없다… 죠디가 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 로셀이 그런 것은 알 바가 아니야, 라고 했던 것은 바로 얼마 전 일이었다. 죠디는 똑바로 로셀의 얼굴을 쳐다보고 딱 잘라서 거절했다. "나는 언니와 이 방에 있고 싶지 않아요. 기분 나쁘겠지만 어쩔 수 없어요, 로셀. 나에게는 놀아 줄 상대는 필요하지 않아요. 이곳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살펴야만 해요. 레스토랑의 테이블 하나의 배치는 말할 것도 없고, 방이 많기 때문에 신경을 쓰는 것만으로도 큰일인걸요." "그러면 너는 내가 없어도 된다는 얘기니?" 죠디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눈썹을 찡그리며 로셀이 긴장한 상태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코너 씨 때문이 아니니? 코너가 나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지." "뭐라고요?" 왜인지 마음이 에이는 듯하여 죠디의 호흡이 갑자기 빨라졌다. "그는 나에게 끌리고 있음이 분명해." 거드름을 피우며, 로셀은 말을 계속했다. "내가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을, 그는 기뻐하고 있을 거야." "그가… 그렇게 말했어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상이 죠디를 엄습하여 어쩐 일인지 본능적으로 손바닥으로 심장을 눌렀다. 어째서인지, 자신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했어요?" 다시 한번 묻자, 로셀은 쩔쩔매었다. "그렇다니까. 그가 그렇게 말했어." 한 번 더, 조금 틈을 두었다.


"그는 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내가 이곳에 있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 "언제까지?" "이삼 주간, 나의 아파트가 마련될 때까지." 죠디는 로셀을 쳐다보았다. 마치 이 스위트룸이 자신의 것인 양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나의 공동소유자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는 관심이 없어요, 로셀. 미안하지만, 나는 언니가 처음에 결정했던 대로 일 주일 이상 여기에 있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이런 생각은 변함이 없음을 말해 두겠어요." 그렇게 잘라 말하고, 죠디는 문 앞으로 다가서서 문을 열었다. "로셀, 나 지금 몹시 피곤해요. 부탁이니 혼자 있게 해 주어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미안해요." "사과하는 거라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로셀은 이를 갈면서 말했다. 평소에 늘 경멸해 온 어린애에게 자존심을 상처받게 되니, 매우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사실상 나가라고 명령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시커먼 증오의 독(毒)이 몸에서 타올랐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죠디는 자기 스스로 냉정하고 침착해 있음에 몹시 놀라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유감이지만…" 문에 손을 갖다댄 채 로셀이 서서 천장이 높은 아름다운 방을 걸어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언니는 사실은 나 같은 것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어요. 내가 이 호텔을 상속하기까지는, 나 따위는 있거나 말거나 어느 쪽이라도 좋았단 말이에요. 인정해요?" 로셀은 소리를 내며 이를 악물었다. 멈춰 서서 적의를 노골적으로 나타낸 후에, 옷자락과 레이스로 바람을 일으키며 앞을 스치며 지나가 복도로 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분노로 새파래져 있었다. "코너를 만날 테야. 그가 결정해 줄 거야!" 결국 로셀이 코너에게 이야기하지 못한 것은 저절로 명백해졌다. 왜냐하면, 다음날 두 사람이 아침식사 테이블에 이르자, 코너로부터 죠디에게 보낸 메모가 기다리고 있었다. 메모에 따르면 더블린에 소유하고 있는 또 하나의 호텔로 가서, 일 주일 정도 머물다가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로셀의 입이 힘없이 쳐지고, 눈에는 생기를 잃는 것이 보였다. "호텔이 하나 더 있다고, 너는 말하지 않았잖아." 로셀이 말한 것은 이것뿐이었다. 죠디는 메모를 치웠다.


"다른 호텔을 갖고 있었다니, 나는 전혀 몰랐어요. 그는 아무 것도 말해 주지 않았어요." "말할 필요가 없었겠지. 어차피 너와는 관계없는 일이었을 테니까." 죠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시룸 슬라이스(참고로 서양 식용버섯을 얇게 썬 조각들)를 곁들인 베이컨에 그의 무척 많은 아침식사를 말끔히 먹어치운 데에 놀라고 있었다. 그런데 반대로, 로셀쪽은 거의 식욕이 없는 듯하다. "하나 더 있는 호텔이 더블린에 있구나." 로셀은 중얼거렸다. "코너 브레이크는 억만장자를 몇 명이나 합친 만큼의 큰 부자임에 틀림없어. 그밖에도 호텔이 몇 개 또 있을지 모르지."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거야?" 죠디는 일부러 로셀의 말을 무시하고 물었다. "아침식사가 식잖아요." 로셀은 그릇을 쳐다보았지만, 음식에는 흥미가 없다는 것이 죠디에게 간파되었다. 음식이 아니라 마음을 스쳐가는 생각은 코너 브레이크의 부가 어느 정도일까, 라는 생각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날 로셀에게 집을 사려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등기가 끝났으니 가능한 한 빨리 인수하고 싶다. 그것도 시급하게라는 것이다. 이것으로 로셀은 예정했던 날에 돌아갔다. 죠디는 마음속으로 이것이 로셀을 만나는 마지막이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다. 가까운 친척을 애지중지하는 기분은, 로셀이 죠디에게 보여주었던 태도로 깨졌을 뿐 아니라, 그녀가 코너 브레이크에게 관심을 가짐으로써 이중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버렸다. 왜 로셀이 코너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지 죠디는 몰랐다. 죠디는 코너 브레이크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무어라 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의리로 죠디는 계단에 서서 손을 흔들며, 로셀이 택시 타고 가는 것을 전송했다. 그리고 나서 넓은 잔디를 가로질러 몇 개나 있는 정리된 정원 사이를 통과하여, 수정같은 물이 태양을 받아 무지개 빛으로 흔들리는 아름다운 분수의 옆을 통과하며 걸었다. 옛날 사슴 사냥터 안에서, 작은 자신의 밭에서 김매기를 하고 있는 벌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그날이 할아버지의 휴일이었음이 기억났다. "야! 잘 지냈니, 죠디야?" 벌 할아버지는 죠디를 보자 기뻐하며, 아름답게 두 줄로 늘어선 상치의 어린 싹 사이의 땅을 평평히 고르고 있던 모종삽을 놓아 두고 일어섰다. "자 앉아라. 차라도 타 줄까. 로셀은 어떻게 되었니?"


"집으로 돌아갔어요." 죠디는 벌이 직접 만든 작고 둥근 나무의자에 앉았다. 로드아일랜드(참고:미국 동북부의 주) 레드 종(種)인 네 마리의 닭이, 가까이 있는 노란 망의 울타리 속에서 지면을 할퀴거나 쿡쿡 쪼거나 하고 있다. "당신도 모든 것이 안정된 것 같아요, 벌! 저 닭은 어디에서 손에 넣었나요?" "성 밖 농가에서 샀단다. 모두 달걀을 낳을 거야." "그러면 자신이 먹을 달걀은 있겠군요. 게다가 머지않아 직접 먹을 야채도 수확하게 되겠지요." 죠디의 눈은 작은 밭을 둘러보았다. 종류별로 나뉘어 열을 지어 있는 무나 당근과 양파의 잎은 모두 싱싱해 보여, 발육이 좋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받을 수 있는 야채는 받고 있지 않는 거예요?" "물론, 필요한 것은 모두 받고 있지만, 뒷문에 가꾸고 있는 적은 양보다 좋은 것은 거의 없단다." 벌의 주름살투성이의 얼굴은 쭈굴쭈굴거리며 웃었다. 그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만족할 만한 기분 좋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다. 죠디의 엷은 갈색의 눈은 슬픔을 나타내며, 벌이 지금에야 누리고 있는 새로운 생활을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벌은 적절한 일거리를 가지고, 특별임금을 받으며, 또 아담한 작은 집에 살고 있다. "죠디야,

나로서는

굉장히

오래간만이구나.

너는

로셀이

이곳에서

주일이나

머물렀다고 말했었지?" "그래요, 일 주일간 있었어요." 대답하는 목소리가 쉬어 있었기 때문에, 노인은 다시 물었다. "어딘가 불편한 데라도 있는 거 아니야? 죠디야, 너, 평상시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벌은 문을 열고 있었지만, 대답을 기다리며 조금 멈춰 있었다. "아무 데도 없어요." 죠디는 완강히 말했다. "로셀이 너를 위협하기라도 했니? 어느 정도 말을 했겠지. 그녀를 이곳에는 데리고 오지 않는 편이 좋았을걸." "말했어요. 그렇지만 이미 그 때는 늦었어요. 로셀이 와버린 후였으니까요." "이곳에 오고 싶다고 너에게 부탁한 것이 아니냐?" "사실은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죠디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로셀이 매우 열심히 나와 함께 이곳에 와보고 싶다고 해서, 우리 둘 사이가 이번 기회를 통해 사이좋게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거예요." "내가 예상했던 이상으로 상처를 받았지요." 벌 할아버지는 화가 난 듯이 말참견을 했다. "그녀를 이곳으로 오도록 몰아세운 것은 호기심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네가 알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네가 상속받은 재산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니겠니. 그리고 이것에는 나의 마지막 l 페니까지 걸어도 좋지만, 로셀은 샘이 나서 기분이 상했을 거야." 벌은 죠디의 눈동자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너는 또 브레이크 씨에 대해서 로셀에게 이야기를 했겠지?" "물론이고말고요. 로셀은 나의 공동소유자가 되는 브레이크 씨에 대해서 미주알 고주알 물었어요." 벌은 가느다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그의 작은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바라보는 듯한 눈매가 되었다. "죠디야, 너는 무엇 하나도 이야기하지 말았어야 했구나. 그 아이는 나쁜 아이야. 언제나 자신의 형편만을 생각하고 있지. 그녀가 브레이크 씨를 항상 따라다니고 있다는 소문도 있어. 언제인가 브레이크 씨가 정원을 거닐고 있으니까 쫓아 달려가서, 성 안을 안내해 달라고 졸라대고 있었다며, 로셀은 미인계를 쓰며 브레이크 씨를 감쪽같이 속이려 든다고 토미 오도노반이 말하더라. 토미라는 자는 젊은 정원사인데, 로셀을 지독히 싫어하고 있지. 어느 날 로셀은 토미에게 굉장히 건방진 태도를 취하면서, 손님이 있는 앞에서 성 앞의 풀을 뜯는 일 등을 하지 말라고 하였단다. 토미는 풀뽑기 따위를 하고 있지는 않았지. 약해서 말라죽은 나무를 흔들어 뽑고 있었을 뿐이야. 그것도 정원관리장이 말해서 했던 것이지. 명령에 따랐을 뿐인데도 말야. 토미에게 말하기를 이 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죠디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듯한 태도였다는 거야." "로셀이 그렇게 말했다구요?" 죠디의 갈색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어쩌면, 뻔뻔스럽군요. 좀더 일찍 들었더라면 좋았을걸!" "그럴 테지. 그러나 이제는 다 끝난 일이야. 그렇게 신경을 쓸 것은 없어요. 자! 나는 차를 타 가지고 올게." "도와 드릴까요?"


"안으로 들어가서 내가 새로이 만든 의자나 보고 있어. 팔걸이가 달려 있어서 앉으면 기분이 좋아요. 어제 콩그에서 샀는데, 즉시 보내 주었더군. 죠디야, 마음이 내킬 때에 쓸 수 있는 돈이 호주머니에 있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고말고. 너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벌은 목구멍에 무엇인가 덩어리라도 걸린 듯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허둥지둥 나가 버렸다 … 마치 표정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이 … 혹은 할아버지의 작은 눈으로부터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억제하려고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온몸이 다정한 감정으로 싸여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벌 할아버지는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다. 무엇인가 좋지 않은 일이 있는지 물어보는 친구 … 오늘도 그렇다. 로셀과 택시를 함께 타고 공항으로, 그리고 집으로 가는 것을 배웅한 후에 곧 벌 할아버지를 찾았다. "멋진 의자로군요!" 쿠션 위에 앉아서 죠디는 큰소리로 말했다. "앉으니까 잠이 올 것 같네요!" "맘에 들었니?" "최고예요!" "앞으로 이삼 주일만 더 일하면 방에 어울리는 쇼파를 살 수 있을 거야." 벌이 사기 그릇의 달가닥달가닥 떨리는 소리를 내고 드디어 나왔을 때, 죠디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벌은 부엌에서부터 번쩍거리는 컵 두 개와 잘 어울리는 설탕 그릇과 크림이 든 그릇을 담은 쟁반을 들고 있었다. "어머나…?" "이건 말야?" 죠디가 놀라는 것이 벌을 즐겁게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아일랜드 도자기란다. 토미의 부인이, 자기 어머니를 만나러 리멜릭으로 갔을 때, 사가지고 왔다는구나. 그녀의 이야기로는 새로운 이웃에게는 가정을 따뜻하게 할 것 같은 선물을 주는 것이 아일랜드 풍습이라는군. 그래서 이것을 갖다 주었는데, 그밖에 접시가 두 개, 디저트 그릇이 두 개 딸려 있어요. 나는 태어나서 이만큼 이렇게 좋은 도자기를 가진 적이 없었단다!" 벌 할아버지는 정원으로 나가고 죠디도 뒤를 따라 나갔다. 죠디의 눈꺼풀 속에는 눈물이 송글송글 솟아났다. "차 맛이 굉장히 좋아요." 무엇인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죠디는 어색하게 말했다. 죠디는 둥근 커다란 벤치에 앉고, 벌은 낮은 삼각 의자를 끌어당겨 쟁반을 놓았다. "다음에는 저금을 해서 양탄자를 살 거야."


벌 할아버지는 만족해 하며 말했다. "너도 알고 있듯이 양탄자를 가져본 적이 없었지. 토미 부인이 차를 태워 리멜릭까지 데리고 가주겠다는구나. 무엇인가 싸고도 좋은 것을 발견할 수 있겠지." "생신 축하로 제가 사드려도 될까요?" "죠디야, 네게는 너무 비싸요." 죠디는 웃었다. 목장에서 울려퍼지는 양의 방울소리처럼 높고 날카로운 웃음소리였다. "제가 부자라는 사실을 잊으신 것 같군요." "그렇구나. 잊고 있었다. 너는 언제나 적은 돈을 저축해서 나의 생일과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하던 녀석이었는데. 그래, 네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준다고 하는 것이라면 나는 거절하지 않을 테야. 그렇다면 나는 침실의 커튼을 칠 수 있겠구나. 토미 부인이 좋은 천을 골라줄 거야." "토미와 그의 부인은 무척 좋은 분들 같아요. 어디에 살고 있나요?" "바로 저쪽 숲 속이란다. 어린아이가 두 명 있고, 때때로 놀러온단다." "할아버지 집을 찾아오는 손님이네요." "그렇고말고. 나는 어린아이를 좋아하잖니…" 벌의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졌다. 한숨이 나와 그 이상의 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밖에 무엇인가 당장 필요한 것은 없나요?" 죠디는 돌아가기 전에 물었다. 작은 집안의 가재도구 모두를 새것으로 사드리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벌은 전에 살았던 사람이 남기고 간 조금뿐인 물건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고 한다. "나는 자신의 힘으로 사서, 조금씩 늘려가고 싶어." 벌은 핑계를 대듯이 죠디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 쪽이 훨씬 즐거움이 많아. 커다란 만족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 고맙다, 죠디야. 지금 당장 필요한 물건은 아무 것도 없어. 브레이크 씨가 사용하고 있지 않은 낡은 텔레비전을 말해 주더군. 보고 싶다면 아직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 나에게 주겠다고 말야." "할아버지, 정말로 행복하지요. 그렇지 않아요?" 죠디는 소중히 여기면서 말했다. "이제까지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라고는 없어." 벌은 일어서서 걷기 시작했다. "가까운 사이에… 만약 로셀이 또 오겠다는 편지를 보내면 와서는 안 된다, 라고만 답장을 써서 보내라!" "그렇게 할게요."


죠디는 훈훈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돌아왔다. 4 코너 브레이크는 예정보다 이틀이나 일찍 돌아왔다. 죠디는 너무 기뻐서 가슴이 뛰면서 감동으로 온몸이 떨렸지만, 한편으론 가슴이 아파지는 듯한 경험으로 자기 스스로도 놀랐다. 코너 브레이크가 남과는 다른 깊은 영향을 죠디에게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신경이 쓰이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영향인가 분석하려고 해도 분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죠디는 그것을 분석하려는 따위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고, 그가 지켜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으로부터 지켜주는지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신뢰할 수 있었다. 때때로 죠디 자신도 두서도 맥락도 없는, 아주 어린아이의 꿈과 같은 생각에 스스로 이상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죠디는 크리브의 라운지에서 한 부인 여행자와 식사 전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손님은 아일랜드의 옛 수도원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 콩그에 온 것도 조사가 목적이었다. 혼자 여행하는 손님임을 발견하고, 조금이라도 안락하게 해드리려고 상대 역할을 했다. 죠디는 그분의 이야기에 무척 흥미를 가지고 듣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코너가 라운지로 들어와 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코너는 조각되어 있는 떡갈나무로 만든 난로 앞에서, 그날 도착하여 앞으로 이 주일간 머무를 예정인 미국인 일행 네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이쪽을 쳐다보았을 때, 죠디도 코너를 보고 방긋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즐거운 하루를 보냈는데, 그 위에 코너까지 얘기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라함 부인의 대화를 거들어 주었다. 코너는 세 사람분의 음식을 주문하고, 그라함 부인의 계획에 커다란 흥미를 나타냈다. "콩그에 관한 책이라면, 저도 몇 권 갖고 있습니다." 그라함 부인이 적어도 앞으로 일 주일 동안은 호텔에서 체재할 예정이라고 듣고, 코너는 말했다. "제 서재에 있습니다만, 당신의 연구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빌려 드리겠습니다." 그라함 부인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책은 아무쪼록 소중히 다루겠다고 말했다. "당신이 일찍 돌아와 주셔서 기뻐요."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레스토랑의 한 모퉁이인, 현재는 그의 자리임과 동시에 그녀의 자리이기도 한 테이블에 도착하자, 죠디는 생각했다. 코너 브레이크는 결코 어느 자리에 앉으라고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꽃과 반짝거리는 나이프와 포크와 크리스탈 컵을 촛불이 비쳐 주는 테이블에서, 자기 세상인 양 행세하는 로셀을 빼고 앉을 수 있다는 것이 어째서 멋진 것일까. 긴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온 것이 기뻤다. 평직으로 짠 비단 드레스는― 로셀은 좋지 않다고 말했지만― 죠디는 드레스에 잘 어울리는 하얀 샌들과 머리에 장식하는 작은 비단으로 된 하얀 장미를 샀다. 정장을 입을 때는 즐겁다. 더구나 그런 기분이 들면, 매일밤 정장을 해도 괜찮다. 디너 때에는 대개 부인들은 롱 드레스를 입고, 남자들은 넥타이를 하고 양복 웃도리를 입고 오도록 요구받고 있다. 코너는 체격이 좋아서 진주처럼 빛나는 회색 양복에 엷은 블루 셔츠를 맵시있게 입어 완벽했다. 태양에 그을린 피부는 번들번들 윤기가 나고, 백발이 여기저기 빛나는 머리카락은 흐트러짐없이 단정하게 빗질을 하여, 넓은 이마로부터 뒤로 곱게 매만져 있다. 눈에 두드러진다! 부드러운 듯한 시선이 젊은 여성으로부터뿐만 아니라, 연배의 부인들로부터 죠디에게 쏠려진다. 죠디는 코너가 미소를 지을 때마다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이곳에 온 지 이제 사 주간 이상이 되었는데도, 자신의 마음에 코너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거의 없었던 것을 이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로셀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 쓸쓸했겠어요?" "쓸쓸하지 않았어요. 나는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많이 찾았거든요. 그렇지만 당신이 돌아오시니 무척 기뻐요, 브레이크 씨." 죠디의 풍부한 눈이 코너의 눈과 마주쳤다. 그리고 부드러운 아일랜드풍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에 와인 담당의 급사가 에어콘의 옆에 서서, 얼음 속에 떠 있는 샴페인의 뚜껑을 벗기려 했다. 코너는 급사에게 조금 후에 오라고 했다. "이제 당신도 나에게 코너라고 불러도 좋을 시기라고 생각하는데요?" 코너는 죠디의 볼이 갑자기 빨개지는 것을 즐거운 듯이 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죠디는 눈길을 돌리지 않은 채, 아름답고 싱싱한 목소리로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나, 그렇게 하겠어요… 코너." 볼의 홍조는 더욱 짙어져 갔다. 코너의 웃음소리는 다정했지만, 죠디는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그가 자신의 보호자처럼 행동해 주어 기쁘다고 생각하는 반면, 어린애로 취급받는 것이 무엇보다 싫다는 기분이 서로 뒤섞여 복잡한 심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죠디는 경영에 대해서는 책임질 것을 요구받게끔 되고 싶었기 때문에 호텔의 경영상태를 잘 관찰하고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죠디의 자신감은 종업원들의 존경의 눈길에 힘입어 날로 날로 증가해 갔다. 죠디는 젊었지만 종업원들은 순수하게 받아들여 주고, 어떤 것일지라도 바라는 것은 전화를 걸 뿐으로, 조금도 늦는 일 없이 그녀의 스위트룸으로 배달되었다.


그러나 그 특권을 활용할 만큼 사용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로셀이 있었을 때, 언제나 그녀의 방에 와서 음식이나 스넥을 주문시킬 따름이었다. "죠디, 메뉴는 보셨나요?" 코너가 침묵을 깼다. "아니요. 라운지에 있을 때 갖고 와서 보여주었지만, 그라함 부인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부인은 콩그 수도원에 대해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셨어요. 로셀과 내가 두 번이나 수도원에 갔었어요." "로셀은 그런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나요?" 죠디는 조금 망설였지만, 솔직히 대답했다. "그 정도는 아니예요. 그렇지만 나를 따라와서 중앙 정원이나 고딕풍의 입구를 사진으로 몇 장인가 찍었어요." "그렇다면 그녀는 그라함 부인처럼 정말로 수도원에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군요?" "흥미 같은 건 없어요. 그러나 그라함 부인이 쓰는 것에는 흥미가 있는 것 같아요." 코너는 그 얘기를 흘려들으면서 메뉴를 보는 데 열중했다. 죠디는 그가 로셀에 대해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 기뻤다. 그는 로셀을 여자로서 보고 있지 않다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린 소에게 머시룸을 곁들인 것을 추천하겠어요." 코너는 메뉴에 눈길을 보낸 채 말했다. "백포도주로

쪄서 크림소스를 끼얹어,

누우들(참고:달걀과

밀가루로 만든

서양식

국수)과 함께 나와요. 좋다면 거기에 믹스 샐러드를 주문하면 괜찮아요." 코너는 메뉴를 내리고, 입 가장자리에 미소를 띠우며 죠디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나타내고 있음은 그의 눈을 보면 분명하였다. 죠디의 모습에 새롭게 칭찬할 거리를 발견했다는 듯한 표정이 보였다. 죠디는 그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가슴이 설레이고 눈이 어지러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미술품으로 장식된 성의 근사한 촛불이 비쳐 주는 온화하고 밝은 식당의 옛날 이야기 같은 안락한 분위기, 성으로 이어지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길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 돌다리 밑에 튀어오르는 개천의 흐름, 성의 파수병처럼 별 있는 밤하늘에 우뚝 솟은 가늘고 키 큰 소나무, 뜨거운 태양빛을 받아 신비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슴 사냥터. 이 부근 일대가 여전히 야만적인 토지로 조야한 민족을 왕이 통치하고 있었던 오랜 옛날 일을 생각하자, 죠디는 그러한 민족의 자손의 한 사람인 것이다… 자신의 공상에 미소를 지었던 죠디에게는 앞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자신이 어느 정도 젊고 매력적인 여자처럼 보이고 있는가 전혀 알지 못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성숙하고 경험 풍부한 남자는


예상 외로 젊은 여자와 공동소유자가 되고, 처음부터 보호자의 입장에 서려고 결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것은 큰할아버지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겠지. "자!" 코너는 재촉했다. "메인코스로는 무엇을 선택하고 싶어요?" 죠디는 즉시 대답했다. "디저트는 바나나, 리셋. 지난 주에 먹었더니 무척 맛있었어요." "그럼 결정됐군." 코너가 아무렇게나 손을 들어올리자 웨이터가 왔다. 주문이 끝나자 곧 지껄이기 시작하여, 그는 더블린에 대해 이야기하고, 죠디의 연달은 빠른 질문에 차례차례 답해 주었다. 그는 끝으로 또 말했다. "내주에도 한 번 갈 예정인데, 어때요, 당신도 함께 가보지 않을래요? 더블린은 꼭 봐 두는 편이 좋을 거예요. 좋은 도시예요. 무척 멋진 도시랍니다." "더블린이 대도시라서…" 죠디는 중얼거리며, "여자는 모두 예쁘겠네요." 라고 말하며 웃었다. 코너는 예를 들려고도 하지 않고 아름다운 눈의 광채에, 마음속에 이끌려지는 것같이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지만, 드디어 가볍게 눈살을 찡그리며, 손을 흔들어 와인 담당 웨이터를 불렀다. 죠디는 그가 시선을 피한 것은 무엇인가 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권유에 대답하지 않았음을 생각해 내고 생각이 변하기 전에 서들러서 말했다. "더블린에 데려가 주어요, 코너. 당신의 호텔에 묵었으면…" "물론이오. 달리 머물 데가 있겠어요?" "호텔은 어디에 있어요? 시내 한가운데?" "음, 스트스테픈의 그린파크가 내려다보이는 양쪽에 나무가 늘어서 있는 길에 있어요. 틀림없이 당신 마음에 들 거라고 생각해요." "이름은 뭐예요?" "그린우드." 죠디는 코너가 나머지 몇 개의 호텔을 갖고 있는지, 로셀이 굉장히 신경을 쓰던 것을 기억해 내고, 주저하면서 물었다. "그 외에도 호텔을 갖고 있어요, 코너?" "음, 두 개 되지요. 하나는 코크 시(市)에, 하나는 워터포트 시(市)에 있지요."


"네 개나 있군요." 죠디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큰소리로 말했다. "무척 바쁘시겠군요." 코너는 금속과 같은 광택을 뿜어내는 눈으로 즐거운 듯이 미소지었다. "아니요,

그렇게는 바쁘지는 않아요.

다른

호텔은

각각 뛰어난

지배인에게 맡겨

운영하니까요." "그러면 때때로 가보겠군요?" "물론이죠. 잘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지 보러 가야죠." "로셀이 틀림없이 흥미를 보일…" 죠디는 도중에 그만두었다. 그녀라면 이런 경우 어떤 식으로 말했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로셀?" 코너는 수상한 얼굴을 했다. "그녀가 어떻게 했어요?" "아아… 아니요… 아무 것도 아니예요." 말했지만, 가로막은 그의 부드러운 아일랜드식 말에는 집요함이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말할 것은 없잖아요. 죠디, 분명하게 설명해 보세요." 죠디는 인상을 찡그리며, 무심결에 마음속에 그렸던 것을 말해 버렸음을 자책했다. 코너의 표정은 엄격하고 그의 눈은 분명하게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고 있다. 죠디는 어깨를 수그리며, 발뺌하는 것은 헛수고라고 생각하여 자백했다. "당신이 호텔을 몇 개 갖고 계신지 로셀이 무척 신경을 쓰고 있었어요― 더블린에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죠." "그녀가 어째서 그런 일에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군. 관계없는 일 아닌가요?" 갑자기 코너의 태도가 쌀쌀맞게 변했다. 죠디는 참을 수 없어 말을 하고 말했다. "당신… 로셀 같은 여자, 좋아해요?" "로셀 같은?" 부드러운 수수께끼 같은 목소리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든 표정으로 어울려져 있었다. "당신이 로셀을 좋아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 적이… 그러니까 매혹되어 있는 듯한…" 침묵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때 웨이터가 샴페인을 갖고 와서 어색함이 해소되었다. "필시…" 잠시 있다가, 겨우 코너는 담담하게 말했다. "대개의 남자들은 당신의 이복언니를 매력적이라고 하겠지요."


묘하게 빙빙 돌린 말투였기 때문에, 죠디가 무엇인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다음의 말은 그녀로서는 말하기 힘든 것이었다. "로셀이 말했어요.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러 있는다면 당신이 기뻐할 거라고요." "로셀이…" 그의 검은 눈 속에 분명히 나타난 당혹한 표정을 보고, 죠디는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릴 것까지도 없이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알았다. "죠디, 당신은 오해하고 있었군요. 그런 것은 로셀의 입에서 당신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은 틀림없어요." "내가 틀렸던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죠디는 거짓말을 했다. 이런 화제를 먼저 꺼내고 싶어하는 기분이 있음을 알아차려 용기를 내었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입 밖에 낸다는 것이 거리낌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말하지 않았지만, 로셀의 말은 의심할 만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죠디가 이제 이 화제를 중지하기를 바라고 있음을 살피고, 코너는 화제를 가벼운 세상이야기로 바꾸었다. 식사가 끝나자 두 사람은 따뜻한 식당을 나와서 크리브 호수의 라운지로 갔다. 그곳에서 죠디는 주류를 처음으로 즐기고 나서, 아직 일 개월밖에 안 되었지만, 코너가 커피와 함께 한 잔 어떠냐고 묻자, 즉시 수락했다. 리큐르(참고:정제된 알콜에 설탕, 향료를 넣은 혼성 주의 일종)를 다 마셨을 때, 아직 10 시 15 분 전이었다. 코너는 성의 정원을 함께 산보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죠디의 마음이 붙어 있던 닻을 떼어낸 것처럼 떠오르고, 눈이 생생하게 빛나는 것을 코너가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코너 자신의 죠디를 내려다보는 눈은 더욱더 검게, 정감이 가득차 왔다. 죠디는 방에서 두 사람만이― 점차로 느끼는 자력이 강해져 오는 것처럼 생각되어지는 남자와 두 사람만의 고요함이 바싹바싹 몸 주위로 다가옴을 느끼고 있었다. "음… 저도 산보하고 싶어요." 급히, 기쁨과 흥분이 뒤죽박죽 섞어져 감정이 산란하여 겨우 숨이 곧 끊어질 듯이 대답했다. 이상스런 일로써, 어째서 이런 감정이 생기는지 이유를 발견하게 해 줄 것 같은 의식이 마음 한구석에 떠다니고 있다. 두 사람은 커다란 돌로 된 다리를 건너, 콩그 강가를 따라 걸었다. 모든 것이 정적 속에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면과 몇 천이나 빛나는 수정과 같은 하늘의 광점(光點) 속에서 느긋하게 흔들리는 키 큰 소나무의 가지 외에는 모든 것이 가만히 정지해 있다. 시간조차도 흐름을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 멀리 지나가 버린 과거의 존엄과 우아함을


갖추고, 전설의 아름다움을 가득 채운 비현실적인 세계에, 어떻게 하여 자신이 오게 되었는가 아직까지 이상스럽게 생각되었다. 만족의 작은 한숨소리가 새어나오자, 그것을 코너가 물었다. "어째서 한숨 같은 거를 쉬는 거요, 죠디?" 그의 부드러운 아일랜드 말투에, 죠디는 가슴이 설레어 몸이 떨렸다. "모든 것이 이렇게 평화롭고 조용히… 결국은…"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고 그의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햇빛에 타서 늠름해 보이고 선명하게 선을 그린 신체에 손을 대보고 싶다는 원시적인 욕망이 격렬하게 용솟음친다― 손에, 저 갈색의 손에, 조금이라도 닿는다면… 바로 눈앞에 있는 저 손에. "당신은 시골에 익숙하지 않지요?" 죠디는 빅토리아풍의 집을 생각하면서 끄덕거렸다. 확실히 우아한 집이었다. 그러나 쭉 집이 늘어서 있고, 그것들도 계속해서 아파트로 변신하여 몇 세대 가족들이 동거하게 되어간다. 도시가 비좁고 번화되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아침이 되면 수천이나 되는 사람들이 카운터나 작업대나 책상 앞에서 하루종일 붙들어 매여 돌진해 간다.

중 어느

것이 본래

그녀가

걸어야

운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믿기 어려운 상속에 의해 인생이 백팔십 도 바뀌어 버렸다. "익숙하지 않아요. 이제 당신의 도시, 현재는 이 시골이 아닌걸요. 그렇지만 원래는 시골이었겠죠. 훨씬 전부터 커다란 도시로 넓어져 갔겠지요." "당신, 시골은 좋아합니까?" "원래부터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이곳은…" 깊이 만족하는 한숨이 나온다. "이곳은 내가 이제까지 상상하고 있었던 것 이상이에요. 코너, 당신의 것은 너무 아름다워요." 코너의 입술 가장자리에 천천히 미소가 떠올랐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말하면서 흘끗 죠디를 바라보자, 비단의 후광을 받은 것 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정교한 죠디의 얼굴의 윤곽이 나타나 보였다. "마음에 들어서 기뻐요, 죠디. 당신도 알고 있는 대로 이것은 당신의 나라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당신의 할머니는 코크 출신의 토박이 아일랜드인인걸요." "그래요. 내 속에 아일랜드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러나 이 호텔 같은 이런 굉장한 재산을 남겨 줄 큰 부자 친척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정확히 말해서 그는 당신에게라기보다 당신의 어머니에게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요. 당신의 큰할아버지는 그밖에도 많은 재산이 있었지만, 모두 자선사업에 기부해 버렸어요. 그는 많은 자선단체와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때때로 그는 자선사업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던걸요." "무척 훌륭한 분이셨군요." "가장 훌륭한 분이셨지요." "외로우셨나요?" "음, 늘 상대가 없었으니까요. 나는 자주 그의 방으로 가서 체스를 하기도 했어요. 그다지 계산에는 구애받지 않는 분이었어요." 코너는 추억에 깊이 잠겨 말이 없었다. 죠디는 그 회상이 개인적인 것으로 방해받고 싶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여,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개천의 제방을 걸었다. 밤바람은 따뜻하여 기분이 좋다. 한쪽에 개울이 밝게 빛나고, 다른 쪽의 삼림지대에는 달빛이 반사되고 있다. 멀리 별이 아로새겨진 하늘에는 은백(銀白)의 빛 속에서 야성적인 자연의 창조물인 콘네마라 산맥이 수십 년에 걸친 인정사정없는 바람과 비와 얼음의 공격을 참아내어 검게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다. 전세계에 죠디와 옆에 서 있는 남자 외에는 누구도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우주가 기쁘다. 옆의 남자의 매혹적인 미끈한 몸, 고귀하고 엄격하며, 때로는 불손하게 보기 힘들지 않은 조각한 듯한 얼굴 생김새, 불손하게 보는 것은 그녀의 잘못인가? 사실, 그는 죠디에 대해서 오만한 태도를 보인 적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불손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은 아니잖는가? 코너는 회상에 잠겨 있던 감상에서 깨어나 자신을 올려다보는 죠디에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돌아가는 편이 좋겠지. 삼림 속의 오솔길을 통해 갑시다. 아마 당신도 삼림에는 많은 오솔길이 있다고는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자연적으로 생긴 길이오." "오솔길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속으로 들어간 적은 없어요." 다시 찾아온 침묵은 죠디가 지상으로 나온 나무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듯이 되어, 코너의 웃옷을 붙들고 늘어져 찢어졌다. "어멋… 미안해요!" 본능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그러나 서둘러서 떨어지려 하는 죠디를 코너의 힘센 팔이 확 끌어당겼다. 턱 밑에 갖다댄 그의 손이 죠디의 얼굴을 꽉 붙잡고… 그리고서 머리를 숙였다. 그의 맨 처음 키스는 다정하고, 죠디는 비틀비틀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침착한 가쁜 숨은 죠디의 감상을 어지럽게 하고 이성적인 생각을 구름으로 감싸는 듯한 신비적인


키스였다. 그의 끌렸던 몸에 닿아 억제하고 있지만, 정감이 가득한 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겹쳐지는 것이 이렇게도 전신에 울려퍼진다. 죠디에게 있어서 첫 번째 경험으로 처음으로 느끼는 혼란이었다. 몹시 거칠게 흘러가는 조류에 몸을 맡기고 도취되어 부드럽게 몸을 의지하여 양손은 새하얀 견 셔츠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여서 그의 목 위로 휘감았다. 숨을 멈추고 새빨갛게 된 죠디의 얼굴은 그의 얼굴이 있는 곳까지 들어올려지고 깜빡거리지도 않는 눈과 아름답게 반쯤 열린 입술이 젖어 빛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순간 그는 놀라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갑자기 냉담함이 흐른다는 생각에서, 죠디는 작은 양손을 코너의 딱딱한 가슴의 근육을 밀며 발버둥치며 도망가려 했지만, 그의 가슴속에 사로잡힌 몸은 아무래도 안 된다. 이리하여 두 번째 그의 입술이 내려왔을 때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새로운 감동이 밀어닥쳐, 죠디는 그의 사랑에 부응했다. 존대(尊大)한 요구에 응하고, 감정의 지배에 몸을 맡겼다. 몹시 거칠고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욕망이 다른 모든 본능을 지워 버렸다. 그가 죠디의 목을 애무하자 전신에 전율을 느꼈다. 그의 손은 날개처럼 살짝, 맨살의 팔을 더듬어 내려가고, 죠디의 민감한 육체는 바르르 떨었다. 한 번 더 그의 팔의 올가미로부터 벗어나려고 비틀어댔지만, 그러나 그것은 마음속 진정한 것은 아니고 점차로 안으려는 힘이 강해져 오는 지금, 도망칠 수 있는 전망은 거의 없다. 그는 한 손으로 꽉 죠디를 껴안고, 또 한쪽 손으로 몸을 이리저리 애무하며, 손가락 끝이 강하게 요추를 눌렀다. 확 불이 타오르는 듯한 황홀감이 몸안을 에워쌈과 동시에, 그의 입술이 여전히 자신의 입술에 겹쳐져 있음을 깨달았다. 강인하게 자신의 입술을 밀어 여는 데에 전율을 느끼고, 그의 혀가 자신의 혀에 닿는 것을 느끼자 전신이 환희로 떨었다. 겨우 코너는 죠디를 밀어 팔의 길이만큼 떨어져 홍조가 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은 찰싹 몸에 달라붙은 보디스의 밑으로 숨을 쉬며 피어올라 있는 가슴의 주위를 헤맸다. "당신은 정말로 귀여운 아이야." 코너는 중얼거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죠디는 이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가 자신의 언동을 후회하고 있음을 알았다. 부끄러움과 굴욕감이, 그는 두번 다시 이런 나약함을 보여주는 일은 없을 거라는, 구제할 수 없는 비참한 기분이 교대로 가슴속을 왔다갔다한다. "갑시다." 코너는 재촉하며 우아하게 팔을 팔꿈치 밑으로 갖다댔다. "이미 늦었어요. 이제 자지 않으면 안 돼요."


"네… 네… 틀림없어요…" 죠디는 항의하는 것 같은 눈길을 위로 치켜들었다. 속눈썹이 달라붙어 젖어 있었다. "코너, 당신, 나에게 키스한 것을… 후회하고 있지요?" "정말로 후회하고 있어요!" 코너는 마치 엄하게 꾸짖듯이 말했다. "모든 의미에서 나에게 허용될 수 없는 일이오. 지금 있었던 일은 잊어버려요! 앞으로 두번 다시 이런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5 오스틴 오를르케도 자신의 호텔의 공유권이란 유산을 물려받은 소녀가 공동소유자인 코너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을 틀림없이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코너도 죠디를 돌보아 주고 보호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처럼 여기고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침내 충돌에 휩싸여 죠디에게 키스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허용될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여 자신에게 화를 내며 후회하고 있다. 코너에게 보호받아 얻은 안정감은 이제와서 언제라도 빼앗겨 버릴 것 같은 불안정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의 안정은 경제적 입장의 극적인 변화보다도 코너와의 관계에 따라 지켜질 수 있음을 알았다. 코너는 죠디의 지주였다. 그녀의 안전은 유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주문에 꼼짝 못하게 됨으로써 지켜지고 있었다. 만약 무엇인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약화시킬 일이 발생한다면, 그녀는 모든 지주를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이 되는 것이 틀림없다. 점심식사 때에 만나면 어떤 태도를 취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필시 나를 피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자, 그는 여느 때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죠디는 자신이 뿌린 향수의 향내를 그가 알아차려 줄까 하고 생각했다. 그것은 프랑스의 유명 브랜드의 굉장히 비싼 향수로, 사용할 때마다 왠지 몹시 분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훨씬 전에 로셀이 갖고 있던 적이 있었다. 로셀이 필립의 책에 대한 일을 도와 준 사례로 받았던 것이었지만, 죠디가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사용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여 거절당한 물건이다. 그때 로셀이 향수라는 것은 상대방인 남자를 위해 뿌리는 것이기 때문에, 너에게는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오전 중에 혼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코너는 자신의 의자에 앉으면서 물었다. "꽃을 장식하고 있었어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어요. 이런 일, 나는 무척 좋아해요…"


라고 하면서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어젯밤 열심히 그의 키스에 응했던 것을 기억해 낸 것이다. "당신은 실지로 꽃꽂이 솜씨가 훌륭해요." 코너는 칭찬했다. "그러나 콩그의 화원 사람들은 당신에게 일을 빼앗겨 그다지 기뻐하지 않을 겁니다." "꽃을 장식하기 위해 이제까지 누군가에게 부탁했나요?" "물론 그렇고말고요." "나빴을지 모르겠네…?" "걱정을 할 것은 없어요. 이곳에서는 온실에서 상당한 양의 꽃을 가꾸고 있어요. 어차피 모두 사용해야만 되니까요."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잠시 있다가 죠디가 물었다. "언제나 똑같지요. 서재에서 일하고 있었지요." "당신에게 비서가 있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주 최근까지 있었지만, 오스트레일리아로 간 약혼자가 있는 곳으로 가버렸어요. 육 주일 전의 일이지만, 아직 대신할 사람이 없어요."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구할 예정이겠죠?" "구하지 않으면 안 돼요." 코너는 잠깐 생각했다. "그래서 가까운 시일 안으로 비서를 고용할 거요." 또 죠디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어느 새인가 자신이 새로운 비서로는 중년의 결혼한 부인이 좋다고 바라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또 벌 할아버지의 비번 날이 왔다. 죠디는 자신에게 부과한 일을 마치면 곧 디너 테이블에 장식할 꽃을 준비하고,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벌의 작은 집으로 향했다. 벌은 정원에 있었다. 마침 일어서서 새롭게 일군 아름다운 밭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참이었다. 땅이 쟁기로 뒤집어졌기 때문에, 죠디의 눈에는 자그마한 덩어리 하나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의 일에 넋을 잃고 있군요, 벌." 눈에 웃음을 가득 담고서, 죠디는 가까이 가면서 손으로 밭을 가리켰다. "새롭게 파서 쟁기질을 한 땅은 기분이 상쾌하단 말야." 벌은 태평스럽게 말했다. "양배추의 종자를 뿌리려고 팠단다. 어제 빠디에게 종자를 받았지." "빠디 씨는 상당히 여러 가지로 당신의 밭에 도움을 주고 계시네요."


빠디는 랏슈우드 성의 정원 담당장으로, 처음에 만났을 때부터 벌 할아버지에 대해서 맘에 들어하였다. "빠디는 우리들에게 무척 친절해요." 이렇게 말하며 뒤돌아보는 벌 할아버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양탄자도 어제 배달되었어. 그리고 토미가 까는 것을 도와 주었단다. 안에 들어가서 보려므나." 앞장서서 걷는 벌의 발걸음은 양아버지의 정원에서 일하고 있을 때보다도 매우 가벼워져 있다. "할아버지, 몇 살이나 더 젊어진 것 같아요." 죠디는 생각한 대로 말했다. 그것과 동시에 벌이 이제까지보다도 훨씬 겉모습에 신경을 쓰게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머리는

산뜻하게

단발하여

있고,

입고

있는

셔츠도

청결했지만, 아직 구두만큼은 전의 앞에 구멍이 난 것을 신고 있다. "우와! 믿을 수 없네요. 완전히 변했잖아요!" 죠디는 거실 문에 서서 눈을 크게 뜨고 큰소리를 질렀다. 벌은 빨간 양탄자를 고르고, 커튼은 꽃무늬로 선명한 빨간 작약의 모양이 눈에 띄고 있다. 키가 높은 팔걸이 의자는 텔레비전과 마주보게 놓여 있다. 난로 옆의 장작을 쌓아 둔 받침대에는 휴지조각과 나뭇가지가 정돈되어 놓여 있거나, 한편에서는 정확히 자른 통나무가 쌓여 있다. 작은 창의 하나로부터 오후의 부드러운 태양 빛이 한꺼번에 비쳐 들어와 작고 아담한 방안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멋져요, 벌! 꼬리가 두 개 있는 개처럼 기쁘네요!" "그렇게 말하니 백만장자 같다." 시정한 벌의 목소리가 급히 부드럽게 되었다. "모두 너의 덕분이란다, 죠디야." 벌은 그렇게 말하고 얼굴을 외면했다. 가슴이 벅차서 그 이상은 말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근처의 사람들이 모두 친절해서 좋아요." 죠디는 말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리사가 만든 이 커튼, 무척 잘 만들었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이번에는 침실의 손질된 것을 보려므나." 벌은 급히 말을 끊고, 퇴색한 입술을 굽어 웃는 얼굴을 하였다. "가서 보렴, 전부 만들었을 때와 비교가 될 테니." "정말 지독하군요!" 죠디는 벌을 따라 안방으로 갔다.


"왜 나에게 도와 달라도 하지 않으셨어요, 벌?" "직접 하고 싶었지, 아가씨야. 나는 자신이 사는 집을 갖는 일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어. 전부 스스로의 힘으로 했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싶어서지. 집을 쌓아올리는 동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멋진 점이 있는 것이 아니냐?" 죠디는 끄덕거렸다. 벌 할아버지처럼 일생을 열심히 일하고, 간신히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목구멍에 무언가 치밀어오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그는 안주할 땅을 얻었다. 죠디는 나중에는 그가 만수무강하여 오랫동안 이 행복을 즐기길 바란다고 기도할 뿐이었다. 요즈음 벌이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것을 사실이지만, 죠디가 보고 있는 대로 계획을 세워 실행해 간다는 그의 새로운 흥미가 순조로이 진행해 가고 있기 때문에 원기왕성히 회춘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벌은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드시 실현하려고 결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은 벽지를 바를 거예요, 벌?" 죠디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물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조금 습기가 있어요. 토미는 종이가 달라붙을 거라고 하는걸." "습기가 있어요? 습기가 있는 방에서 자면 안 돼요." 죠디는 걱정하여 말했다. "나는 들판에서 잠잔 적도 있어요." 벌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의 일이나 습기에 대한 것까지 신경써 주는구나." 죠디는 밝고 작은 중앙정원으로 나왔다. 그곳도 벌은 꽃이 피는 식물과 벽을 기어가는 담쟁이덩굴로 장식하고 있었다. 중앙 뜰에는 줄무늬 모양의 삼베스를 덮은 정원 의자가 두 개 있다. 햇빛에 그을려 색이 바래 있지만, 앉으면 무척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톰이 저 의자를 주었어요?" 죠디는 알고 싶었다. "지하감옥 속에 있었다는군." "지하감옥? 그것은 어디에 있어요?" 죠디는 눈을 깜박거렸다. 물론 호텔에는 '지하감옥'이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은 주로 역사적인 것, 비밀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미국인 관광객을 노리고 붙인 이름이다. "이곳에는 진짜 지하감옥 같은 것은 없어요, 벌. 옛날에 사람을 고문했던 것 같은 무시무시한 장소는 이곳에는 없단 말이에요.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는 랏슈우드는 그런 기분이 나쁜 역사는 없는 행복한 성이지요."


"아래쪽으로 어두운 곳이 있어요. 사실 말하면 나도 그곳은 단순히 지하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곳에서 나는 이 의자를 발견했지만 빠디가 가져가도 된다고 말했어요. 죠디야, 이 의자 맘에 드니?" 벌은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죠디가 앉았다. "이곳에 앉으니 가장 기분이 좋군요." 죠디가 등에 기대자, 벌은 차를 끓이려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를 이렇게 행복하게 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얼마나 적은 것인가, 죠디는 생각했다. 행복이란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지금은 훌륭한 것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그것들이 모두 그 자신의 소유물이다. 그날 밤도 평소 때처럼 코너와 식사를 했지만, 죠디는 테이블에 도착하자 곧 벌 할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침실의 습기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벌 할아버지가 류머티스에 걸리면 곤란해요." 죠디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든지 해드려야만 해요. 당신 좋은 생각이 없어요, 코너?" "대부분의 작은 집에는 습기가 있어요. 작은 집이 세워진 시대에는 방습벽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죠." "지금 벌 할아버지를 위해서 설치할 수 없나요?" "그렇게 급하게요?" 그는 입 언저리에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죠디는 마음이 괴로워 한숨을 쉬었다. "급해요. 그럼요. 코너, 벌 할아버지는 일흔여섯 살로 현재로써는 무척 건강해요. 지금 얼마나 행복해 하고 있는데 건강상으로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면 큰일이에요." 코너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매력적인 아일랜드풍으로 이야기한 것에 죠디는 깜짝 놀랐다. "좀더 벌에 대해 이야기해 봐요. 내가 텔레비전을 주겠다고 했을 때, 벌은 특별한 생일선물을 받게 되어 손꼽아 기다리는 어린애처럼 흥분하고 있었어요." 말투는 비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호기심도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 오싹오싹하는 기쁨을 죠디는 온몸에 느끼며 테이블 너머로 똑바로 그의 눈을 응시했다. 죠디는 벌의 이야기를 했다― 그의 성장배경에 대해,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고통에 대해. "그래서 나는 벌 할아버지를 이곳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했어요."


죠디는 코너가 여전히 이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고 있음을 눈치채고 나서 만족해 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의 양아버지 집으로 와서야 겨우 행운을 잡았다고 벌은 말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만족할 만한 생활은 전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단지 비와 이슬을 피할 지붕이 있고, 굶지 않을 정도의 음식이 있었던 것이 그의 생활의 전부였어요." "그렇다면 이곳에서 벌은 무엇을 갖고 있나요?" 코너의 끌어당기는 매혹적인 얼굴에는 이야기에 흥미있음이 역력히 나타나 있다. 그리고 짙은 회색의 눈으로 물끄러미 죠디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집이 있지요, 코너. 집이 있다는 것은 지붕이 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거예요. 거실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어요. 당신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요! 나도 벌 할아버지가 저렇게 뛰어난 취미와 상상력을 가진 사람일 줄은 몰랐어요." 죠디는 잠시 말을 쉬었다. "가보지 않겠어요? 벌 할아버지는 당신이 손님으로 온다면 몸살나게 기뻐할 거예요." "당신의 말대로라면 당신의 친구는 내가 손님으로서 방문하는 것을 명예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네요.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나는 벌 할아버지보다 뛰어난 점이 아무 것도 없어요. 단지 운이 좋았다는 그것뿐이오." 죠디는 커다란 한숨을 쉬었다. 얼마나 멋진 인생관을 갖고 있는가. 이런 감정을 연애라는 것인가. 그는 나에 대해 보호해야만 할 어린애로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다만 내가 어리다는 것만이 아니고, 큰할아버지와 그가 굉장히 친한 사이였다는 이유 때문이다. 죠디는 잠시 공상에 젖을 수 있었다. 코너가 포도주 담당의 웨이터와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크고 긴 와인 리스트에서 최근에 더욱 새롭게 첨가된 드라이한 백포도주의 장점에 대해서 열심히 토론하고 있다. 죠디는 볼에 오른 열이 내려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예민한 코너가 즉시 이상한 것은 아닌가라고 반드시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어디 아프지는 않은가 등을 물으면 곤란하다! 겨우 포도주 담당자가 가버리고, 코너는 다시 주의를 죠디에게 되돌렸을 때에는 죠디는 간신히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벌 할아버지의 작은 집의 습기에 관한 일입니다만, 이미 완성한 집일지라도 방습층을 설치할 수 없나요?" "가능하리라 생각되지만 돈이 많이 들 거예요." 그는 물끄러미 죠디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죠디는 그가 비용에 대해 신경을 쓰리란 것조차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해 주시겠지요?" "물론이죠. 당신이 바란다면 말이에요." "내가요?" 어리둥절해 하며 죠디는 물었다. "그래요, 당신 말이오. 재산의 반은 당신이 갖고 있으니까." "아아, 네에 좋아요. 나는 자신이 공동소유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당신에게 상술이 없는 것은 확실해요." 작은 한숨이 코너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죠디는 싫으면서도 로셀에 대해, 로셀의 사무능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셀은 아직 열여섯 살이 되지도 않은 때부터 아버지의 장부 정리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로셀의 쪽이 매우 코너의 파트너로서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자신에게 자신감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생물 선생님은 언제나 말했다. 인간의 성격을 형성하는 것은 유전자의 작용이라고. "이제 좀더 나이를 먹으면 나아지겠지요." 죠디가 무심결에 말하자, 두 사람은 크게 웃었다. "그러면 당신 친구의 작은 집에 방습층을 달도록 합시다." 라고 코너는 말하고 화제를 바꾸었다. "다른 모든 작은 집에도 방습층을 설치해야 하는 의무를 우리들이 짊어져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요?" "네… 네에, 당신이 상관없다면 코너, 결국은 재산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 될 거예요." 물론 코너가 염려할 리는 없다. 코너는 일각도 지체하지 않고 이런 일에 관계하고 있는 업자에게 연락했다. "정말로 나는 건축업자가 집안을 뒤죽박죽으로 하는 것은 싫구나." 죠디가 가서 계획을 말하자, 벌이 말했다. "서투른 놈들만이 모여서 무엇이든지 뒤엎어 버리지. 어차피 습기라 해도 엄청난 일이고말고." "벽지를 바르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죠디는 말했지만 벌이 머리를 흔들었기 때문에 중단했다. "페인트 칠하는 것이 좋지." "그래요. 그러나 벽지 쪽이 훨씬 멋있어요. 더구나 당신의 건강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류머티스 등에 걸리고 싶지는 않겠지요?"


"내가 류머티스에 걸리다니!" 벌은 크게 웃었다. "나 같은 사람은 절대로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아요. 나에 대해 걱정해 주었군. 죠디, 너는 친절한 착한 아가씨야. 그러나 나에 대해선 지나친 걱정이에요." "이제 준비가 다 되어 있어요." 죠디는 단호하게 말했다. "방습층을 달아요.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죠디의 말은 중단되고, 볼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작은 집의 정원 앞문으로 통하는 작은 길에 토미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방해가 된 것은 아닌가요?" 문의 빗장을 들어올리면서 토미는 말했다. "핸들릭스 씨, 나의 작은 집 전체에 방습층을 달아 주신다니 사실입니까?" "네, 사실이에요. 당신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여기 벌의 집과 똑같이 저희 집도 습기가 조금 있어서요. 그것이 고쳐진다는 것은 멋있는 일이지요." "그렇죠?" 죠디는 의기양양해 하며 벌을 다시 보았다. "자, 조금은 생각이 바뀌었겠죠?" "벌은 승낙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토미는 요즘 벌 할아버지의 행동을 생각하고 웃었다. "벌, 당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틀에 끼어맞추는 생활을 강요당할까 봐죠? 그것도 불과

한때예요.

당신의

작은

집이

깨끗하게

되고,

산뜻하게

건조되기를

원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되는 것은 좋아요." 노인은 단념하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싫은 것은 건축업자 놈들이 악마같이 집안을 뒤죽박죽으로 해버릴까 봐지." "깨끗이 정리하는 것은 우리들이 도와 드릴게요." 토미는 죠디의 얼굴을 보면서 약속했다. "당신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정원의 일이겠지만, 문제없어요." "아니야, 엉망이 될 거야! 내가 현관에 심은 덩굴장미는 어쩌구? 그리고 이 창을 기어가고 있는 미국산 덩굴은?" "그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나도 인정해요. 그러나 곧 다시 심을 수 있어요."


벌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체념한 것 같았다. 작은 집이 깨끗하게 되고, 습기를 제거하는 것을 환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들릴 수 있게 크게 항의하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삼 일 후 코너는 더블린으로 간다고 말했다. 요전에 함께 데려가겠다고 말했지만, 이제 생각이 바뀌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갈 수 있으면 함께 가지 않겠어요?" 하고 물었을 때에는 희미하게나마 기쁜 충격조차 느끼고 있었다. "나…?" 기뻐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음, 물론 가고 싶어요!" 매우 크게 말했기 때문에 코너가 살짝 눈살을 찌푸린 것도 죠디는 알아차렸다. 그리고 갑자기 그는 시계를 삼십 초 정도 되돌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제안하지 않았던 것으로 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 제안했고, 지금에 와서 그만둘 수는 없다. "얼마 동안 갈 예정인가요?" "삼박 사일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어요." 코너는 죠디가 입고 있는 옷을 흘끗 보았다. "더블린에는 무척 멋있는 가게가 몇 개 있어요. 당신의 옷, 신발, 소지품 등을 사면 좋아요." 죠디는 방긋 웃으며, 쓸 수 있는 돈이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직도 꿈 같은 기분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만족한 듯이 웃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언제 떠날 건가요?" "수요일." 무엇을 갖고 가면 좋을까? 라는 것이 죠디의 다음 질문이었다. 거기에 대해서 코너는 갖고 가고 싶다면, 롱 드레스를 두 벌 정도 갖고 가도 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린우드 호텔은 초일류 호텔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최근에는 이브닝 드레스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군. 더블린의 부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세련되었지만, 그다지 디너에 드레스를 입고 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요. 소수 입고 가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주지는 않지만, 지금 말했듯이 구태여 갖고 갈 필요는 없어요."


죠디는 중용을 택하여 리멜릭에서 산 라테일 드레스를 두 벌 갖고 가기로 결정했다. 한 벌은 캐시미어로 된 것이고, 한 벌은 면으로 허리에 자수를 놓은 것이다. 두 벌 다 세련되어 외출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며, 어느 것도 아직 입어본 적이 없었다. 여행은 코너의 재규어(Jaguar)로 죠디가 무심결에 무릎 밑의 시트를 잡을 정도의 스피드로 달렸다. 그러나 아일랜드 도로는 스피드를 올려 멀리까지 달릴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아서, 이윽고 속도를 떨어뜨려 평온한 드라이브가 되었다. 죠디는 아름다운 모든 것에 흥분을 억누를 수 없었다. 많은 아름다운 경치에 몇 번이나 크게 숨을 헐떡였다. 에메랄드의 섬― 정말로 완전히 아일랜드는 녹음 일색이었다― 굉장히 아름다운 푸르름, 때때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월트 디즈니의 만화에서 가져온 것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선명한 푸르름도 있다. "굉장한 경치네요!" 한숨 섞인 채 무심결에 말하고 싶어진다. "이런 멋있는 경치가 있는 곳, 세계 어디에 다시 이런 곳이 있을까요?" "확실히 여기는 특별해요." 코너는 조금 말을 쉬었다. "분수가 무척 많아요. 알겠지만, 이렇게 푸른 식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다량의 물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저렇게 폭포가 빛나고 있군요." "더구나 온화한 개천도 좋아요." 번화한 도시 더블린에 도착한 것은 오후 늦게였다. 공원이 많고, 죠지아 왕조풍의 우아하게 앞이 뾰족한 집들이 처마를 잇는 뒷면에 괴물 같은 콘크리이트의 추한 얼굴이 나타나 있는 것은 어느 근대도시나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건물을 창조한다는 예술정신이 상실해져 버린 것은 무정한 일이라고 죠디는 생각했다. 코너가 그라운드 길을 달팽이처럼 꾸물꾸물 차를 몰고 가고 있는 동안 죠디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길 가득히 차가 불규칙하게, 그 중에는 인도 위까지 주차하고 있다. 왁자지껄 떠들면서 휘청대며 걸어가는 소녀들의 복장은 밝고 세련되며, 머리카락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남자들― 특히 중역 타입의 남자들은 모두 진지한 얼굴로 예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생활이 안정된 듯한 남자 옆에는 얇은 서류가방을 손에 들고, 긴장하면서도 어딘가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세상 탓으로 이 세상의 괴로움을 모두 짊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코너는 주의깊게 보행자와 다른 차를 서로 지나가면서 오른쪽으로 구부러져 낫소로로 접어들고 한 번 더 오른쪽으로 굽어 도우슨로로 접어들었다. 이번에는 정면의 좌우 높은 건물

사이에 무성이 우거진 잎이 장애물이 되어

나타났다.

코너가

차를

몰아서


센트스테판 녹지로 향했을 때, 구름 뒤로부터 태양이 고개를 내밀어 공원의 나우들을 금색으로 빛나게 했다. 죠디는 변함없이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계속해서 둘러보았다. 도로는 수리중, 택시는 열을 짓고, 셀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승용차, 화물자동차, 트럭이 부주의하게 버려진 것처럼 주차하고 있다. 그것들 모두가 서로 겹쳐서 대혼란을 일으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리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어처구니없네요!" 주차금지의 지대에 이중으로 주차하고 있는 차의 열을 보고 죠디는 외쳤다. "단속하지 않나요?" "어디선가 단속하고 있을 거요." 코너는 태평하게 대답했다. "이 도시에서 일하려고 한다면 이런 것과 함께 생활해 가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돼요." 코너는 공원을 마주하고 있는 호텔의 현관에 차를 세웠다. "다 왔어요." 그가 말하고, 이윽고 나타난 포터에게 키를 건네주었다. 짐꾼은 차를 차고 쪽으로 몰았다. 로비에 들어서면서 죠디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랏슈우드 성 같은 눈에 띄는 호화스럼은 없지만, 그린우드 호텔에는 우아하고 조용한 세련된 분위기가 있어 거리의 소음 속에서 상담에 지친 비지니스맨이 천천히 편안하게 쉬려 할 것이라고 죠디도 쉽게 상상이 갔다. 죠디가 인상의 차이를 이야기하자, 코너는 말했다. "랏슈우드는

레저를 위한

호텔이지만,

그린우드는

실용적

목적을

위한

호텔이오.

비지니스맨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생겼어요. 물론 여행중인 사람이 하룻밤을 지내는 적도 있어요." 수부계(受付係)는 코너의 뒤를 바짝 달라붙듯이 하여 통과하는 죠디를 보고 수긍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코너는 호텔에 스위트룸이 있다고 말했지만, 그곳으로 발을 들여놓고 죠디는 꿀꺽 숨을 삼켰다. 거실은 가구로 장식되고, 벽에서 벽까지 꼭 들어맞게 깔린 두꺼운 카펫에, 호화스러운 커튼이 늘어뜨려지고, 마호가니로 된 난로 앞에는 마음이 편한 소파와 안락의자 몇 개가 있었다. 그리고 죠지아 왕조풍의 책상 앞에는 사무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거실에 이어져 침실이 두 개 있고, 코너는 원형의 더블베드가 있는 쪽을 죠디에게 사용하라고 말했다. 침실과 이어져 있는 욕실의 목욕탕은 형태도 크기도 침대와 같은


정도였다. 또 하나의 침실은 이것보다 조금 작지만 똑같이 호화롭고, 그곳에도 전용 목욕실이 있었다. "멋진 방이네!" 죠디는 실질적으로 호텔의 최고급 전부를 차지한 가장 좋은 스위트룸을 빙빙 돌아다녔다. 그날 밤 둘만이서 스위트룸에서 저녁을 먹었다. 유유자적하고 친밀감이 있는 식사에서 회화가 활기를 띠고, 죠디가 늘어져서 몇 번인가 하품을 하는 것을 코너가 알아차리고 이제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하…" 죠디는 한 번 더 하품을 하고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이것도 또 현실로 생각되지 않는 경험이라고 죠디는 생각했다. 코너와 스위트룸을 나누어 잔다― 마치 코너가 그녀의 남편인 것처럼― 저 커다란 베드에서 죠디 혼자서 자고, 코너 쪽이 마루로 향한 끝의 작은 침실에서 혼자 자는 일을 제외한다면… 다음날 아침, 죠디는 코너가 사업상의 회의에 출석하고 있는 동안 혼자서 도시를 걸어다니기로 하였다. "미아가 되지 않도록 해요." 코너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저녁 다섯 시 경에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요." 죠디는 우선 그라운드로의 패션 가게에 가고, 그 후는 흔들흔들 오컨넬로를 걸었다. 그것에서 고급 브띠끄를 발견하고 아름다운 스코치 투피스와 드레스를 샀다. 그리고 나서 박물에서 한 시간 정도 보내고 나서 센트스테판 녹지의 모퉁이에 작은 경양식당을 발견하고 스낵으로 점심을 먹었다. 가게는 혼잡하여 죠디는 생글거리는 코너와 똑같이 매력적인 목소리의 젊은 남자와 같은 자리가 되었다. "휴가 왔나요?" 청년은 죠디가 식사를 주문하는 것을 듣고 물었다. "아니요, 나는 아일랜드에 살고 있어요." "이 아일랜드에요?" 청년은 의자의 등에 몸을 기대며 웨이트리스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아뇨, 콩그에 있어요― 이요 郡의 서쪽이오." 죠디는 청년이 깜짝 놀라는 것을 보고 말을 중단했다. "콩그요! 그곳은 좁은 토지예요. 나는 콩그촌에 살고 있어요." "어머, 그래요?" "그래요. 나는 며칠 전에 휴가로 이곳에 왔어요. 휴가의 거의 반은 런던의 친척을 방문하고, 아직 일 주일 가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큰 도시로 오기로 결정했어요."


청년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왜 웃는지 죠디로서도 이해가 갔다. 아일랜드에는 대부분이 큰 도시란 없기 때문이다. "언제 돌아가시나요?" "아마 내일, 늦어도 모레." 청년의 푸른 두 눈이 흥미롭게 죠디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당신은 어떻게 아일랜드에서 살게 되었나요?" 죠디는 망설였지만 곧 웃으면서 말했다. "호텔의 소유 중 절반을 상속받았어요. 그래서 아일랜드에 영주할 결심을 한 거죠." "호텔 콩그의 주변에요?" 청년의 생기 도는 눈에 갑자기 묘한 표정이 나타났다. "랏슈우드 성 호텔이에요." 청년이 끄덕거리는 것을 보면서, 죠디는 말했다. "그러면 당신은 랏슈우드 성 호텔의 반을 오스틴 오를르케 씨로부터 상속받은 영국인 아가씨라는 분이군요." "어머, 알고 있었어요?" 청년은 새삼스럽게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모두 알고 있어요. 콩그는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누구의 일일지라도 잘 알지요. 일이 잘되는지 어떤지까지도요." 그리고 눈을 반짝거리며 덧붙였다. "그럼요, 알고말고요. 그리고 당신에 대해서 행운의 사람이라고 말하지요." "나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죠디는 빙긋 웃었다. "당신 파트너하고는 잘되고 있나요? 이런 일은 물어서는 안 됩니까?" 청년은 물끄러미 대충 평가하려는 표정으로 죠디를 응시했다. "당신은 멋지고 매력있는 여성이지만…" 청년은 뚜렷한 것 없이 죠디에게 발견했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덧붙여 말했다. "우리들은 완전히 의견이 일치해요. 코너 브레이크 씨, 그분은 굉장한 신사예요." "그러리라 생각했어요." "당신은 만난 적이 없나요?" 죠디는 놀라는 듯이 청년을 쳐다보았다. 호텔의 레스토랑은 일 년 동안 몇 번이나 숙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개방하고 있음을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당신 랏슈우드에서 식사를 한 적이 없나요?" "있어요. 식사를 한 적은 있지만, 브레이크 씨를 만난 적은 없어요."


웨이트리스가 메모와 연필을 갖고 테이블로 왔다. "오믈렛과 프렌치 포테이토." 청년은 주문했다. "언제나군요." 웨이트리스는 이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당신은 매일 여기에 오나요?" "싸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청년은 재미있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당신 같은 대부자인 젊은 아가씨가 이런 가게에 들르리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간단한 식사를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죠디는 이 집에서 만든 포도주 컵을 나눠 주고 있는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보내고 있는 청년을 은밀히 쳐다보고 있었다. 빛나는 살결, 볼의 건강미 흐르는 색깔, 정말로 아일랜드 인간 같은 ― 튼튼하며 오래 살 것 같은 전형적인 아일랜드인이다. 나이는 스물다섯쯤 되어 보인다. 신장은 표준보다 약간 큰 정도이고, 쾌활하고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은이로 필요한 때에는 보호해 주는, 의지할 만한 청년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죠디는 즐거워져서 방긋 웃었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이렇게 쉽게 이 청년과 친해졌는가 자신도 이상했다. "이 나라에서 사는 것이 마음에 듭니까?" 청년은 물었다. "아일랜드 서부는 일 년의 태반은 춥고 습기가 많기 때문에…" "내가 오고 나서부터는 훨씬 따뜻해지고, 날씨가 좋아졌어요. 더구나 저 아름다운 풍경과 조용한 성의 영지 안에서는 교통소음 따위를 들은 적이 없어요." "그것은 나도 인정해요." 라고 말하고 청년은 잠시 말을 쉬었다. "나의 이름은 터로우. 아주 옛날부터 있는 아일랜드의 이름이지요. 오닐 가와 오돈넬 가에 붙여진 이름이에요. 난 터로우 오닐." "나는 죠디." 하는 수 없이 말하면서, 아직 불과 몇 분 전에 만났을 뿐인데도 몇 개월 전부터 서로 알고 있는 듯이 이 청년과 친하게 이야기하게 된 것은 어쩐 일일까 하고 생각하여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좋은 이름이군요. 그렇게 불러도 되나요?" 죠디는 생각지 않고, "좋아요."


라고 말하고 나서 얼굴을 붉혔다. 6 둘이는 앉아서 태양이 비치는 연못에서 물새들이 능숙하게 깃털을 가지런히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죠디는 몰래 옆사람의 옆얼굴을 보고, 어떻게 그가 공원을 산책하자고 했을 때, 즉시 말하는 대로 따라왔는지를 생각했다. 식당을 나온 지 벌써 한 시간 이상이 된다. 풀숲과 나무들 사이의 약간 어두운 오솔길을 걸으면서, 서로 속에 있는 말을 나누고, 이곳에 이렇게 침묵하고 사이좋게 앉아 있다. 죠디는 어렸을 때, 양부모와 언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터로우는 양친에 대해, 여덟 명의 형제자매에 대해, 그 중 두 명은 아직 집에 있고 카멜과 토리아라는 이름이란 것, 토리아는 아직 열세 살이지만 여승이 될 예정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죠디는 또 벌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터로우는 노령의 큰아버지가 이전에는 땜장이 ―

영국에서는 짚시라고 부르는

방랑생활자였지만,

현재는

그의

양친에게

설득당하여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큰아버지는 절대로 집에선 살지 않겠다고 말씀하세요." 터로우는 슬프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포장마차에서 살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새로운 포장마차를 사드려 정원 구석에 설치하여 그곳에서 살고 있지요." "당신의 큰아버지와 벌 할아버지와 비슷하네요." 죠디는 웃었다. "두 사람을 만나도록 해드리죠." 즉시 터로우는 제안했지만, 죠디는 애매한 대답을 했다. "벌은 랏슈우드 영지에서 일하고 있고, 휴일에는 자신의 작은 집을 장식까지 해야 되므로 다른 일을 할 틈이 그다지 없을 거라고 생각돼요." "그래요. 그렇다면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나서 화제는 바뀌었다. 점점 이야기할 거리도 없어지고, 어느 쪽이나 할 말이 없어 벤치에 걸터앉아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죠디는 시계를 보고 놀라서 껑충뛰었다. "가야 해요, 터로우. 벌써 네 시네요. 코너가 다섯 시에 돌아오기 전까지 목욕하고 싶어요." "정말로 즐거운 한때였어요." 터로우는 말했다. "그래요, 저도 즐거웠어요." "때때로 콩그에서 뜻밖에 만나는 일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나는 좀처럼 마을로는 나가지 않아요." "내 전화번호를 가르쳐 드릴게요…" 터로우는 연필을 꺼내 무언가 종잇조각이 없는가 주머니의 여기저기를 뒤졌다. 죠디는 핸드백에서 수첩을 꺼내어 뒷페이지를 열었다. "여기에 써요." 라고 가리켰다. "무엇인가 용무가 있으면, 무어라도 좋으니까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여기로 연락해요." 터로우는 수첩을 되돌려 주었다. 죠디는 잠깐 동안 그가 쓴 번호를 보았다. "도움받을 필요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그것은 모르는 일이에요. 당신은 혼자서 그곳에 살고 있고― 벌 할아버지는 제외하고― 언젠가 틀림없이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을 거예요. 그때 내가 필요하게 되겠지요." "고마워요." 죠디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잘 기억해 두어요." 코너가 호텔로 돌아온 것은 여섯 시 조금 지나서였다. 죠디는 긴 의자에 푹신하게 앉아 거리를 걸을 때 산 책을 읽고 있었다. 그가 온 것을 보고, 죠디는 천천히 몸을 똑바로 가누었다. 그는 이상한 얼굴을 하고 물끄러미 그녀를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당신은 어린 고양이 같은 동작을 하는군." 코너는 그렇게 말하며 눈살을 찌푸리며 급히 저쪽으로 가버렸다. 꽤 동작이 빨랐기 때문에 죠디는 상처를 받았다. "일은 잘되었나요?" 죠디는 긴 의자의 옆에 일어섰다. 왜 그는 저렇게 말한 후 인상을 찡그렸을까? 그것은 단지 놀리는 것뿐이었을까? "모든 것에 대개 만족할 수 있는 결과로 되었어요." 그의 검은 눈이, 죠디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방황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지냈나요?" "그라운드 거리 가게에 들려 투피스와 드레스를 샀어요. 그 후에 점심을 먹고 나서 공원에 갔어요." 터로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래요, 즐거운 하루였군요." "무척 즐거웠어요. 그렇지만 당신이 없어서 쓸쓸했어요."


무심결에 그렇게 말해 버렸기 때문에 그의 눈썹이 꿈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얼굴이 빨개졌다. "알고 있을 테죠, 내가 하루종일 외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그의 핸섬한 얼굴에 조금 피곤하다는 표정을 나타내며, 물끄러미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다. 죠디의 맑은 눈의 깊숙이에 있는 것을 읽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들이마시는 숨을 참을 수 없어 토해내는 상태로 한숨을 쉬었다. "네, 알고 있어요, 코너. 그렇지만 당신과 함께 있었더라면 훨씬 기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죠디는 마음속에 있는 것을 숨김없이 말해 버렸다. "죠디." 엄숙한 어조로, 그러나 상냥하게 코너는 말했다. "생각해 두길 바래요. 우리들의 관계는 비지니스 상에서의 파트너예요. 그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예요." "무… 물론 알고 있어요." 죠디는 우물거렸다. "나, 나는 다른 사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좋아요." 그는 화제를 바꾸어 사온 것을 보여 달라고 말했다. 죠디는 침실에서 투피스와 드레스를 갖고 왔다. "맘에 들어요?" 죠디는 코너가 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하기를 기대하며 열심히 쳐다보았다. "내가 맘에 들어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요, 죠디." 라고 말하고서 죠디의 실망하는 표정을 보고, 덧붙였다. "그러나 무척 좋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취미는 무척 고상하다고 칭찬받을 만해요." 죠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상을 치우러 갔다. 이상한 공허함을 느꼈지만, 즉시 그것은 코너의 차가운 무관심 탓이라고 알아차렸다. 바보 같은 죠디,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거야? 그를 좋아하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그의 쪽에선 자신을 좋아해 주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있어 단지 사업상의 파트너로, 그가 보호할 의무가 있는 어린애에 불과하다. 죠디는 디너에 하얀 칵테일 드레스를 입고 갔지만, 조금 볼화장을 하고, 입술연지를 바르고, 광이 날 때까지 공들여 머리카락을 빗질했기 때문에 무척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거울 속의 모습을 보고 만족했다.


죠디가 침실에서 나오기를 코너는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죠디는 자신을 바라보는 코너의 표정의 움직임을 열심히 살펴보며 심장이 조금씩 빨라짐을 느꼈다. 그의 시선은 가물가물 움직이며, 산뜻한 허리에서, 미숙하지만 풍부한 허리의 섬세한 곡선으로 헤매인다. 그의 눈은 죠디의 얼굴에 와서 멈추고, 기쁨과 괴로움이 동시에 하나로 합쳐진 속에서 끌려지는 듯한 얼굴을 했다. "당신은 무척 귀여워." 코너는 마치 의지와는 거꾸로 아첨을 하고 있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을 매혹시키는 향수는 무엇이오?" "죠이예요― 고급 향수예요!" "그렇지만 그만큼의 가치는 있어요. 당신은 현재는 부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오." 그는 그녀 쪽으로 가까이 갔다. 죠디는 기대에 가슴은 두근거리며, 볼은 홍조를 띠고, 눈은 흥분하여 빛났다. 몸이 접촉을 요구한다. 이 의지가 어느 사이엔가 코너에게 전해져 주위를 둘러쌌다. 그의 흑발의 머리가 숙여져 입술 가득히 키스를 했다. 물결치는 산란한 감정 중에서도, 죠디는 따스한 습기, 가슴이 설레이는 것 같은 완강함,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오만한 자신을 지켜, 모든 저항을 허용치 않으려는 듯한 행동력을 생생히 느꼈다. 그의 입술이 떨어졌을 때, 그녀는 기다렸다. 숨을 죽이고 그의 반응이 이전과 똑같은가를. 그러나 달랐다― 반은 웃음을 지으며 그는 말했다. "가요. 당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빨리 디너를 먹고 싶어요." 커다란 식당 구석의 아름다운 화분 식물과 덩굴로 구분을 지은 작은 테이블 위에는 빨간 등잔 속에 양초가 켜져 있고, 얼음처럼 푸른 우아한 꽃병에는 작은 꽃이 피어 있었다. "멋지네요!" 죠디는 심어진 나무들 잎 사이로 볼 수 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신의 호텔 멋있어요, 코너." "내일, 나는 시간이 나는데." 코너는 죠디의 이야기를 얼버무렸다. "당신, 어딘가 가고 싶은 곳은 있어요?" "아직, 어디가 좋은지 잘 몰라서요." 죠디는 자신이 아직도 아일랜드에 막 왔을 뿐임을 상기시켰다. "그렇다면, 빠우스코트로 갑시다. 더블린에서는 그다지 멀지 않아요. 그 후에 당신이 좋다면 전원을 드라이브할까요?" "당신은 무척 친절하시군요." 죠디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은 당신 일은 아무 것도 없나요?" 코너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그의 관심은 이제 지금 막 손에 넘어온 포도주 리스트로 쏠려 있다. "내일은 아무 것도 없어요. 모레 아침은 회의가 있지만, 점심이 끝나면 곧 랏슈우드로 돌아갈 예정이오." 다음 날 아침 열 시에 출발하여 여가를 이용한 행락처럼 한가로운 스피드로 차를 달려서, 옛 세계의 마을 에니스케리로 향했다. 이윽고 자동차는 나무 수명이 이백 년을 넘은 거대한 너도밤나무 숲을 돌아가는 큰 길을 나아갔다. 너도밤나무는 어느 대저택의, 실제로 인상 깊은, 수년 전의 비극적인 화재로 인해 지독한 색상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우아한 벽은 남아 있고, 테라스가 있는 정원에 서서 그곳으로부터는 위크로 산맥의 고봉의 하나, 슈카로프가 아일랜드의 태양빛을 받아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인다. 아름다운 장식을 단 연못과 울타리로 둘러싸인 정원, 공중 높이 이십 미터나 물을 반짝반짝 뿜어올리는 분수가 있다. 그 가까이에는 또 명예와 승리를 상징하는 두 마리의 날개가 돋아난 말의 모습이 세워져 있다. 죠디는 주위의 경치의 아름다움에 몇 번이나 탄성의 소리를 질렀지만, 늘 동행자의 시선이 그녀를 쫓고 그 핸섬한 얼굴에 즐거운 것 같은 관용의 표정이 나타나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죠디가 가장 마음에 들은 것은 일본 정원이었다. 그곳에는 물이 쏟아져 내리는 바위를 오르거나, 아름다운 작은 다리를 건너거나, 사원(寺院)과 같은 정자에서 햇빛을 피해 낮잠을 한숨 잘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때요, 오늘은 즐거웠나요?" 호텔에 도착하자, 코너가 물었다. "굉장했어요. 고마워요, 코너. 이런 즐거운 때를 보내게 해 주셔서 말이에요." 죠디의 사랑스런 눈에는 넘쳐나는 성의가 나타나고, 조금 목소리를 낮추어 덧붙인 말에도 감사함이 넘치고 있었다. "이렇게 행복하기는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정말로, 어렸을 때부터 말예요." 두 사람은 거실에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뭐라고 헤아리기 힘든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그렇게 감사할 것은 없어요, 죠디." 그는 상냥하게 말했다. "나도 즐거웠어요. 완전히 기분전환을 할 수 있었고… 더구나 함께 갔던 것도."


죠디는 싱긋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는 양미간을 찡그리며 자기 자신에게 노하고 있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상당히 지나서 그녀에게 가서 디너를 위해 옷을 갈아입고 오라는 목소리에는 그 상냥함은 사라져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 한 통의 편지가 죠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편지를 종업원이 놓아 둔 책상 위에서 집어들었을 때, 죠디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로셀에게서 온 것이었다. 집의 새로운 소유자가 이사를 오겠다고 하는데, 아파트 쪽은 아직 살 수 있도록 돼 있지 않기 때문에 랏슈우드 성에서 약간 오랫동안 숙박할 예정이다. 이미 호텔에 예약을 하고 확인도 받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나를 친구로서 환영할 생각이 없더라도 나는 손님으로서 갈 거야. 만약 너의 스위트룸에 묵게 해 준다면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호텔의 공동소유자의 언니라고 한다면, 특별한 방으로 제공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더욱 무엇인가 쓰여 있었지만 화가 벌컥 치밀어올라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다. 언니라고! 수 주 전에, 시험이 끝날 때까지라도 좋으니까 아파트에서 살게 해 달라고 부탁하자 거절당했을 때부터, 이제 언니라고는 없어져 버린 것이다! 당치도 않다. 그때 로셀은 친척이나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말하며, 죠디를 조롱하지 않았는가! 죠디는 뒤에 쓰여 있는 것을 대충 읽고 나서 편지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몇 분 후, 코너의 서재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들어와요." 코너는 서류에서 얼굴을 들고 의아한 눈으로 죠디를 보았다. 죠디는 일순간 멈춰 서서 얼마나 미남자인가. 얼마나 모습이 고결하고, 말씨와 태도가 귀족적인가를 느꼈다. 창으로부터 비춰 들어온 태양이 그의 백발을 눈에 띄게 하고, 그것이 조각을 빚어 놓은 듯한 윤곽을 한층 고귀하게 보이게 했다. "어쩐 일이오, 죠디?" 죠디는 천천히 방으로 들어와서 책상 옆에 섰다. "로셀이 이곳에 와서 잠시 머무르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래요? 그것은 잘된 일이 아닌가요?" "나는 싫어요." 노골적으로 말했다. "언니와 나는 잘 맞지 않아요. 나… 열등감을 느끼고, 기분이 나쁩니다…" 죠디는 머리를 흔들며 무정한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부탁이에요. 오지 말라고 말해 주세요." "당신으로서는 무척 변한 태도군요, 죠디?" 코너는 펜으로 쓰기를 중단하고 의자의 등에 기대었다.


"이전에 이곳에 왔을 때, 당신과 로셀은 무척 사이가 좋은 것처럼 보였는데요." "그런 일 없어요. 로셀과 나는 한 번도 사이가 좋았던 적이라곤 없어요…" 죠디의 입술은 마음을 스쳐가는 기억에 부르르 떨었다. 자신은 늘 따돌림을 당하고, 로셀만이 언제나 칭찬받고, 주목받는 대상이 되어 왔다. 그것도 양아버지 필립으로부터 뿐 아니라, 양엄마로부터도 똑같이 취급을 받아온 것이다. 죠디는 언제나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였다. 언제나 그 집에선 잘못하여 양녀로 삼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은 모두가 로셀 중심이었다. 로셀은 양부모들의 자랑이며, 기쁨이며, 게다가 그것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죠디의 앞에서도 숨기지 않았다. 그들은 죠디를 먹여주고 옷을 사 입혀 주고 너그럽게 놓아 두었지만, 그것은 두 명의 양녀를 갖고 싶다는 약한 동기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양부모는 그녀에게 지붕이 있는 집을 제공해 주었지만, 사랑은 주지 않았다. 로셀은 자신의 입장은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 로셀이 죠디에게 기울이는 태도는 양부모가 그녀를 다루는 태도를 보고서 흉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녀는 종종 의심했던 적이 있다. 필시 양부모들이 그녀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었더라면, 로셀도 똑같이 사랑을 쏟았을 것이다. "로셀이 이곳에 오는 것을 거절하는 일은 당신으로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코너는 논리적으로 주장했다. "이미 숙박할 손님으로 예약했다고 그러는 거예요." "로셀이?" 다시 반문하고, 그의 눈썹이 움직였다. "그렇다면, 당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숙박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경우, 호텔은 손님에게 서비스를 거절할 권리가 없으니까요." "방이 가득찼다고 하며 거절할 수 있잖아요?" "그것은 이미 명백하게 늦었어요. 예약이 끝났다고 했잖아요? 그렇다면 이미 확인도 끝났을 테니까요." 죠디는 아플 정도로 꽉 입술을 깨물었다. 이 점이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선 단호하게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 호텔의 공동소유자예요." 온화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로서는 누구를 숙박시켜도 좋고, 누구는 숙박시켜선 안 된다고 말할 권리가 있잖아요?"


"로셀이 올 거라는 것을 당신이 훨씬 일찍 알고 있었다면, 내가 예약은 이미 가득찼다고 말해 줄 수 있었겠죠. 그러나 이미 늦었어요. 로셀이 이곳으로 오고 싶어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좀더 일찍 생각했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녀는 어느 정도 묵을 예정인가요?" 그의 눈에는 호기심이 보였다. 죠디가 로셀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그로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장기간 체재할 예정이라고 쓰여져 있었어요." 코너는 단지 어깨를 수그릴 뿐이었다. "아무 것도 그렇게 싫어할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당신들은 오랫동안 함께 생활해 온 사이가 아닙니까?" 죠디는 침묵한 채 끄덕거리며 문으로 향했다. 코너가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조금 걱정하는 것 같은 떨림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벌 할아버지 집으로 갈 거예요. 이제 곧 일도 끝나고 있을 테니까요." 죠디는 그렇게 말하고 시계를 보았다. "그렇게 염려할 일은 없으리라 생각돼요, 죠디." 코너의 목소리는 예리했다. 죠디는 어떤 이유로 두렵고 초조해 하는지 말할 수는 없었다. 벌 할아버지는 산뜻한 부엌의 스토브 앞에서 생선의 토막을 갖고 서 있었다. 그것은 창 밑을 지날 때에 보였다. 죠디가 노크를 하고 문의 빗장을 들어올리자 할아버지의 미소띤 얼굴이 곧 보였다. "헬로!" 벌은 인사를 했다. "더블린은 어땠어?" "무척 좋았어요." 벌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도 죠디는 놀라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가 할아버지에게 어떤 식으로 들리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곤란한가 보구나." 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무엇인가 곤란한 일이 생겼니, 죠디 아가씨야?" "로셀이 이곳에 와서 장기체류를 하겠대요." 벌은 후라이팬으로 버터구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 손은 갑자기 멈추었다. "장기간이라고? 그러나 너는 당연히 그만두게 할 거 아니니? 네가 좋다고 하는 이상 오래 머물 수는 있겠지만 말야." "아니요, 머무를 수 있어요."


죠디는 걱정스런 어조로 대답했다. "손님으로서 예약을 마쳤어요." 두 사람은 소리없이 잠잠히 부엌 안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서 있었다. "그 일, 브레이크 씨에게 말했니?" 겨우 벌 할아버지는 물었다. "이야기했어요. 코너는 자기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숙박을 예약해 버렸기 때문에 오는 것을 그만두게 할 수는 없고,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다고…?" 벌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시작하다

끄덕거리면서

그만두었다.

로셀이

어느

정도

양부모로부터 상속받았는지를 알고 있다. 그는 또 죠디와 같이, 로셀이 어느 정도 경영권을 팔았는지도 알고 있다. 그녀의 마음에 따라 영원히 랏슈우드 성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기억하고 있어요? 로셀이 코너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저절로 죠디는 부엌과 거실을 구분짓는 문으로 걸어가서 그곳에 섰다.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어두운 눈에는 마음속에 숨겨 있는 비참한 기분이 나타나 있었다. "기억하고말고. 끈쩍끈쩍하게 달라붙어 계속해서 추파를 던지고 있었지. 나쁜 여자야. 브레이크 씨도 알고 있는지 어쩐지 모르지만, 그분은 영리하게 때문에 로셀과 같은 여자의 생각은 곧 알아차릴 거야." "로셀은 무척 아름다워요." 죠디는 기억을 더듬어 요전에 로셀에 대해 코너가 이야기했을 때, 그가 차갑고 무관심한 태도를 나타냈기 때문에 자신이 겨우 안심했던 일을 상기했다. "나는 불필요한 걱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라고 덧붙여서 자신을 말했다. "로셀이 운이 좋게 브레이크 씨를 감쪽같이 속여서 결혼하게 된다면, 나의 입장은 우습지 않게 되리라고 생각해요?" "참을 수 없는 일이야!" 그 대답이 매우 빠르고 강했기 때문에 벌 할아버지는 문득 알아차렸다는 듯이 가는 푸른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무엇인가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지만, 곧 다물었다. 끊기 시작한 생선토막으로 버터구이 하는 일로 되돌아간 노인의 얼굴에는 슬프고 걱정스러운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죠디는 기분이 좋은 거실로 들어가서 창가에 섰다. 그리고 멍하니 손가락으로 새로운 커튼을 만지고, 빨갛고 커다란 작약의 무늬를 어루만졌다.


벌 할아버지에게 있어 가장 행운이었던 것은 작은 집에서 보이는 경치의 아름다움이다. 수풀로 에워싸인 정원 한구석에 고목을 베어낸 자국이 있고, 그곳에서 호수와 산을 바라볼 수 있다. 오늘 태양은 구름에게 정복당하여 산과 산 위에 잔뜩 비를 머금은 구름이 탑처럼 쌓여 있다. 구름의 회색은 황량하고 몸의 털이 곤두설 것 같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죠디의 기분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 부들부들 떨면서 한숨을 쉬었다. "로셀이 오는 날은 알고 있어요?" 다음날 오후, 크리브라우지에서 차를 주문하면서 코너가 물었다. 코너는 보통은 오후에 차를 마시지 않지만, 죠디에게 설득당하여 마주앉아 버렸다. 그것은 죠디에게 있어서 놀랍기도 했지만 무척 만족할 만한 일이었다. 그 날은 두 조의 관광단이 외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라운지에는 몇 명의 손님밖에 없었다. 그래서 코너와 죠디는 작은 탑이 붙은 성문과 개천에 걸려 있는 돌로 된 다리가 있는 정원의 일부를 바라보는 창가의 테이블에 떨어져 앉을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창으로부터는 크리브 호수가 보이고, 생생한 푸른 섬이 세 개, 천국을 집어다 놓은 것처럼 비단 같은 수면에 매치되어 있다. 그 맞은편에는 무서울 정도로 장대한 콘네마라 산맥이 맑은 하늘에 걸린 깃털처럼 하얀 적운 위로 우뚝 솟아, 푸르름을 띤 적회색의 봉우리들이 또렷하게 눈에 띄었다. "에스터에게 물으니까 로셀이 모레 온다던데요." 죠디의 목소리는 명랑함이, 눈은 광채를 잃고 있었다. 에스터는 접객 담당자의 한 사람으로 숙박의 예약이나 관광여행의 편성 등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이다. "앞으로 이틀 후…" 죠디는 말을 계속하다 멈추었다. 코너가 로셀이 성에 오는 것에 대해 느끼고 있는 그녀의 기분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로셀이 당신 방에 머무를 수 없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나요?" "네, 내 기분은 변함없어요." 죠디는 단호하게 말하고 창밖을 보았다. 그리고 화제를 바꾸고 싶어함을 그에게 어떻게 알리면 좋을까 생각했다. "오늘은 호수로 나가면 춥겠지요?" 호텔의

하얀 관광선은 상당히 출렁거리는

고통스럽지 않은 것 같다.

낚시의

기록을

듯했지만, 세우려고

낚시에

열심인 사람들에게는

낚시밥을

늘어뜨리고 있다. "약간 물결이 일어나는 정도가 낚시가 잘돼요." 죠디는 끄덕거리면서 그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다.

바꿔 달고는

실을


"호반을 산보하고 있으면 바람이 세게 불어요." "그래요, 그것으로 알았군요!" 그의 목소리도 눈짓도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산들바람이 죠디의 머리카락을 팔랑팔랑 휘날리며, 황갈색의 얼룩 모양으로 보이게 했다. 무심결에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려고 무익한 시도를 했다. "여기에 올 때 머리에 빗질하는 것을 잊었어요." 죠디의 마치 변명하는 듯한 어조에 코너는 즐거운 듯이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무척 매력적이야." 라고 말하며 빙긋 웃었다. 아첨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는 기분이 그녀의 눈에 나타나 있음을 코너는 알아차리고 있었다. 차를 담은 쟁반이 배달되었다. 코너는 죠디가 우선 그의 잔에 쏟아붓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는 케이크를 잘라 주었다. 죠디는 표현의 방법은 달라도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음을 느끼고, 어째서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파악할 수 없나 생각했다. 그가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되자 전신이 따뜻하게 감싸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갑자기 그가 언제나 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자, 오싹한 차가움이 느껴졌다. 언제인가 그녀는 무엇인가 그를 노하게 할 일 같은 것을 할지도 모른다. 그때 그가 변하는 것을 보겠지, 변하는 것은 그의 오만함이 원인일 것이다. 그녀는 알고 있다. 그가 이웃들 속에서 늘 숨겨져 있는 것이 오만한 태도인 것을, 그것은 그의 고귀한 선조부터 몇 대를 거쳐 전달된 특징이다. 코너는 또 로셀에 대해 다시 문제삼아 조용히 질문했다. "그러면 당신은 언니가 와도 상대하지 않을 예정이군.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 "로셀은 언니가 아니예요." 코너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죠디는 발갛게 피었다. 그렇다. 그는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를 어린애 같은 태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언니가 아닌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 그러면 로셀이 계속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둘 예정이오?" "나에게는 할 일이 있어요. 그것을 계속할 예정이에요." "일?"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떤 일 말이오?"


"꽃꽂이요."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매일 꽃을 꺾어 와서 호텔 안의 중요한 방에 아름답게 꽂는다는 우아한 일을 자신의 역할로써 열심히 해왔다는 것을. "아아, 그래요? 꽃꽂이 말이죠?" 코너는 컵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저런 냉담함! 죠디는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났어요." "그러면 알지 못하셨어요?" 죠디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무관심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보이지 않으려고, "알고말고요." 어조는 상냥했지만, 단지 친절한 마음에서 그렇게 말했을 뿐으로 실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죠디는 생각했다. 훨씬 전에, 아직 양부모네에 있었을 때 가끔 생각이 나서 들판에 꽃을 꺾어 보조병에 장식했던 일을 기억했다. 그 때도 만약 누군가가 알아차려도 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적었고, 더욱이 칭찬해 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꽃에 대해 말할 때는 시들었을 때로 엄마나 누군가가 말하는 정도였다. '저 꽃 버려요, 죠디! 물이 썩어 버릴 거야.' "요즘 벌은 어때요?" 두 사람 사이의 길고 얼어붙은 침묵을 깨고, 코너는 물었다. "방습층은 필요없다고 해요― 그것에 대해 당신에게 이야기했나요?" 코너는 끄덕거렸다. "그렇지만 작업을 시작했어요." "그는 여전히 불평을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를 위해선 방습층을 다는 것이 당연히 좋아요." 죠디의 상냥하고 따뜻한 음성에 깊은 자태로움이 울려온다. 코너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죠디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진정으로 벌을 생각해 주는군요?" "집에 있을 때, 나의 유일한 벗이었으니까요…" 말하기 시작하다 중단했다. 과거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너는 잠시 눈썹을 찡그리며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그래요? 당신은 양녀로 대우받을 정도였기 때문에 귀여움을 받았을 텐데?" 죠디는 질문을 잘 생각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겨우 분명하게 미소까지 지으며 말했다.


"내가 말한 의미는 말이죠. 집 밖에는 벌밖에 친구가 없었다는 의미예요." 코너는 예리하게 꿰뚫으려는 것처럼 응시했다. "당신의 양부모가 유산을 전부 로셀에게 물려주고 당신에게는 왜 아무 것도 물려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나요?" 그가 물어보자 죠디는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에 대해선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로셀은 머리가 좋아서 아버지의 일을 도와 드렸어요. 언니는 무척 영리해서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부터 벌써 장부 정리를 하고 있었어요. 아버지 필립이 건축업자였던 것은 이야기했었지요?" "네…" 코너는 생각에 잠겼다. "그래요. 로셀이 장부 정리를 했다. 그것도 열여섯 살 때부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상당히 경험을 쌓았겠네요." "네, 그럴 거예요." 죠디도 동의했다. "실질적으로 로셀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어요. 물론 사업 쪽에 관해서지만요." 코너는 그 이상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고, 한 조의 부인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중단되었다. 코너는 사라지기 직전에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디너의 한 시간 정도 전에 나의 스위트룸으로 와 주지 않겠어요? 당신과 계산을 하고 싶어요. 오스틴과도 사분기마다 조금씩 배당을 서로 나누고, 연말에 한 번 크게 배분하는 관습으로 하고 있어요. 당신의 배당을―" "그렇지만 나는 당신으로부터 돈을 받고 있잖아요." 죠디는 말을 했다.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이 받고 있어요!" 그것을 듣고 코너는 미소지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이제까지 드린 것은 이제부터 받을 것에 비교하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이제까지 받은 것은 당분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당연히 미리 지불한 돈이기 때문이죠. 그 몫은 이번 배당금에서 뺄 겁니다." 죠디는 돈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어 당혹했지만, 이런 이야기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몇 시에 방으로 가면 좋겠냐고 묻자, 그는 일곱 시 경이라고 대답했다. "가기 전에 옷 갈아입고 갈게요." 죠디는 방긋 웃었다.


다음날 밤의 디너에는 코너와 함께 식사하는 것이 그녀 혼자뿐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하다. 디너가 그녀의 하루 중에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대낮에도 때때로, 오늘밤은 어떤 식일까 생각했다 …

양초의 불꽃, 꽃,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유리 식기,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포도주, 굉장한 음식, 나무랄 데 없는 서비스… 그리고 함께 식사를 하는 상대로서 그녀가 선택한 유일한 사람은 코너 브레이크. 예의가 바르고 정중하며, 우아하고, 무한한 포용력이 있는 … 그러나 자신의 관대함을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때로는 아버지와 같은 태도, 그리고 또 때로는 말투가 예리하고, 어두운 금속적인 눈매로 쳐다보며 나타내는 엄숙함… 그런 면은 좋아하지 않으며, 연령 차에 의한 겁을 느끼게 한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에게는 두 사람을 멀게 유지시키는 장애처럼 보이는 것 같아 원망스럽다. 죠디는 때때로, 코너가 언젠가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본다. 그것은 기적이며 굉장한 일이고, 소름이 오싹 끼치는 일이다. 상상할 뿐인데도 언제나 그녀의 고동은 높아져 갔다. 무엇을 입고 갈까? 샤워를 한 후에, 몸에 타월을 두르고 거울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손으로 물들인 비단 이브닝 드레스를 갖고 왔다 ― 모슬린 천에 작은 꽃들이 염색되어 있다. 스타일은 단순하고, 목이 높고 뽕소매가 달려 있다. 죠디는 갖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드레스를 입어도 조금도 자신이 노숙해 보이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코너를 위해서 멋을 부린다… 언젠가 그 때도 그를 위해 의상을, 그가 그녀에게 끌리기를 바라면서 입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거꾸로 그런 기분을 알지 못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 언제나 자신이 어리둥절해 버린다. 코너의 스위트룸은 죠디의 것보다도 훨씬 간소했지만, 완전히 하나의 취미에 따라 통일되어 있었다. 거실의 한쪽 옆에는 하얀 대리석의 난로 앞에 안락한 소파가 있고, 반대편에는 소파에 어울리는 팔걸이 의자가 두 개가 있다. 높고 넓은 창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책상이 있고, 두 개 놓여 있는 옆 책상은 18 세기의 체르시 다비 제품의 한쌍이다. 샹들리아는 워터포드제 아일랜드 유리로 네 개 있는 벽에 붙은 등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짙은 푸른 양탄자가 마루 전체에 깔려 있고, 짙은 감색의 커튼은 양탄자까지 닿아 있다. 가죽으로 장정된 책, 말이 그려진 그림, 정말로 남자의 방이다. 또 하나의 벽에 모네와 드가의 작품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죠디는 그가 언제인가 인상파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


한점 트집잡을 데가 없는 이브닝 재킷에 하얀 주름잡힌 셔츠를 입은 코너는 즉시 앉으라고 권하지 않은 채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시선은 죠디의 얼굴부터 발끝까지 살피고 다시 얼굴로 되돌아왔다. "굉장히 아름다워요, 죠디." 그의 말은 마치 그의 의지와는 반대로 억지로 말이 꺼내지는 것 같아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용솟음치는 것처럼 들렸다. 죠디는 방안에 있었지만 문이 초록색으로 칠해져 굉장한 명화처럼 미소짓고 서 있었다. "나… 내가 너무 일찍 왔나요?" 죠디는 말이 막혀 우물거렸다. 그에게 이런 눈길로 쳐다봄을 당하자, 여느 때처럼 심장이 뛰고 맥박이 빨라지지 않도록 바라면서. "아니요, 조금도. 자, 들어와 앉아요, 당신." 당신이라고 그는 언제나 말한다. 그러나 왜인지는 모르지만, 오늘밤은 언제나와는 조금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업상의 파트너라는 관계 따위가 아니라, 깊은 피부로 느낄 수 없는 강한 연대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고 죠디의 긴장은 높아졌다. 천천히 이야기하는 대로 따랐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그가 가까이 다가와 잠시 말없이 다정하게 옆에 멈추어 서자 남자의 향기가 코로 흘러들어왔다. 얼굴을 들어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무엇인가 중대한 때를 잃어버렸다고 깨달았다. 서둘러서 그의 표정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면 무엇인가 좀더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게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무얼 좀 마시겠어요?" 코너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보통 때와는 전혀 다른 것처럼 생각되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눌렀다. "셰리를 마시겠어요." 죠디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마음속에 불타오르고 있는 것을 물어보게 하는 울림은 없었다. 이곳에는 지금 사업상으로 와 있는 것이다. 필요한 때에는 사무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어른이라는 사실을 코너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코너는 죠디에게 마실 것을 건네준 후에 자신도 한 잔 따라서 서로 마주보지 않았다. 그리고 오 분간 그곳 부근의 사업 전망과 이익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몇 가지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점이 있어, 그는 그 개혁에 동의하는지 어떤지를 물었다. 죠디는 그런 것은 모두 당신에게 맡겨요. 당신의 생각은 모두 좋아요, 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않으면

되었다.

사업능력이

있다는

것,

더욱


어른스럽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이야기하는 개혁안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드느냐고 물었다. 코너가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기 때문에, 죠디는 자신의 마음속이 읽혀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이제부터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작은 집을 개량하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흥미깊게 들으면서, 언뜻 로셀이 똑같은 입장에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코너는 당장 로셀에게 사무능력이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재정적인 면에서 보면, 이것은 당장에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리라고 생각해요." 라고 말하면서 일어나 책상 쪽으로 가면서 죠디에게 뒤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책상 위에 있는 보고서 전부를 설명하는 동안에 죠디를 책상 앞에 앉히고, 마지막에는 그녀 앞에 두 장의 수표를 내놓고, 이미 사인되어 있는 그의 사인 밑에 그녀의 사인을 하라고 요구했다. "봐요. 현재로서는 두 사람은 똑같은 금액을 받아 가졌어요. 이것은 보통 연말까지는 변함없는 거예요. 연말이 되어 두 사람의 이익을 더욱 상세하게 계산하기까지는 말이오. 모든 것을 알겠어요? 모르는 점이 있으면 말해 주어요, 죠디. 어떤 식으로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고 나서 받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니까요." 죠디는 얼굴을 들어 그의 눈을 쳐다보며 미소지었다. "이제 모든 것을 알았지요?" "물론이고말고요." 그는 펜을 건네주었지만, 죠디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 수표의 금액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이… 이것, 나의 것은 아니겠지요…?" 어지럽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엄청난 재산이군요!" 그의 입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당신은,

당신이

상속받은

재산을

충분히

평가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네요. 죠디, 당신은 이제 대부자인 젊은 죠디예요." 죠디는 자신의 앞으로 발행된 수표를 쳐다보고 있었다. "장사는 때로는 잘되지 않는 때도 있어요." 코너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자주 잘되지 않는 것은 아니죠. 랏슈우드는 수렵장으로 유명한 고승으로써 유럽 곳곳에 알려져 있고, 크리브 호수는 낚시터로 유명한 곳입니다. 필시


당신은 아직 여러 스포츠에 적합한 장소로써 랏슈우드의 특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알고 있어요. 하지만 똑바로 이해하고 있지 못할지도 모르죠." 낚시하기에 좋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고, 가을이 되어 계절이 시작되면 사냥 손님으로 혼잡을 이루게 될 것이다. 더구나 그렇다면 골프하기에도 물론 좋고, 테니스 하기에도 승마하기에도 적합할 것이다. "자." 코너는 즐거운 듯한 얼굴을 하고 아직까지 손에 펜을 쥐고 있는 죠디에게 말했다. "사인을 하겠어요?" 죠디는 끄덕거리며 사인을 하고, 펜을 책상에 놓았다. 코너는 그 한 장을 들어서 죠디에게 건네주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돈을 써본 적이 없음을 상기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로셀이 값비싼 의상이나 화장품을 사는 것을 옆눈으로 보고, 휴가 때에는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어떤 때, 로셀만이 많이 받고 자신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불공평하다고 항의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 때의 대답은, 로셀은 스스로가 벌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큰 부자… "돈을 쓸 일을 생각해 두어야 해요, 아가씨." 생각에 빠져 있는 죠디에게 코너는 말했다. "얼마간의 저축은 꼭 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럴 생각이 있다면 투자로 돌리도록 충고를 해 줄게요." 코너는 다른 서류를 들어서 서랍에 넣고 책상을 떠나갔다. 죠디는 열이 있는 사람처럼 수표를 축 늘어뜨리고 그 뒤를 따라갔다. "코너…?" "왜 그래요?" "나, 정말로 이것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기세가 꺾이는 기분이었다. 이제까지 다해 온 중요한 역할, 몇 분 전까지는 파트너로 관용과 이해를 가지고 그녀에게 다 해 주었던 중요 인물로서의 역할을, 무척 하기 불가능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저… 당신이 이것을 맡아 주지 않겠어요…?"


코너는 머리를 옆으로 저었기 때문에, 죠디는 비참한 기분으로 말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제

완전히

몸에

배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새로운

자신감이

없어져

가는

것을

후회하면서. "곧 돈을 갖는 것에 익숙해질 거요." 그는 상냥하게 말하고, 어리둥절해 하는 그녀의 표정을 알았다. "이리 와요… 어린아이…" 그는 힘껏 손을 쥐어 죠디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기분 좋은 웃음이 그의 입술에 나타났다. 죠디는 손가락을 그의 손에 휘감았다. 전신의 감각이 강하게, 어지러운 듯한 느낌으로 온몸이 떨리면서 그의 포옹 속으로 안겨져 갔다. "정말로 어린애이기 때문에, 너는…" 코너가 볼에 입을 대며 속삭였다. "언제까지나…" 라는 소리가 작아져 사라졌다. 죠디는 그의 얼굴을 보려고 얼굴을 들었다. 그의 목의 근육이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협소해진 시야 속에서 그의 입이 꽉 가늘게 다물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의 마음속에서 스스로 보고 자라고 결정내린 그가, 죠디의 입술을 빼앗고 싶은 기분과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 보인다… 무척 바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죠디는 떨리는 몸을 코너에게 밀어붙였다. 단지 하나의 욕망, 하나밖에 방법이 없는 유혹 ―

원래는 이브가 빠졌다는 유혹에 사로잡혀 있다. 양손을 그의 목에 감고,

보들보들한 몸을 바싹 기대어, 그의 딱딱한 근육질의 형체에 맞대어 끌어안았다. 죠디는 자신을 안은 그의 양손에 힘이 더해져 옴을 느꼈다. 자신의 부드러운 가슴이 그의 가슴 속에서 납작하게 짜부러져 있는 것을 그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죠디는 얼굴을 뒤로 젖혔다. 크게 뜬 눈은 맑고, 반쯤 열릴 부드러운 입술과 함께 유혹하고 있었다. "죠디…" 코너의 목소리는 희미해지고, 숨은 조각조각 끊어졌다. 그리고 그의 금속석의 빛을 내는 검은 눈에는, 이전에 그녀를 떨리게 하고 두렵게 한 원시적인 정열을 반영하고 있다. 죠디는 코너에게 무엇을 해버렸는가? 대답할 틈도 없이 그는 말했다. "당신은 이것을 바라고 있는 거지?" 죠디의 부드러운 감촉, 기쁨이 흘러나오는 입술, 그리고 단추를 풀고 셔츠 속까지 들어온 그녀의 달콤한 손의 유혹에 빠져들어, 코너는 자제력을 잃고 있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호기심에 사로잡혀, 죠디는 관능적인 실험을 구하며, 촉각의 기쁨을 탐구하려는 듯이


손을 짝 펴서 근육이 부풀어오른 가슴에 눌러대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손을 오므려서 철사처럼 검은 가슴털을 쥐었다. 죠디는 그의 몸이 일순간 힘이 빠져 버리는 것처럼 떨리는 것을 느꼈다. 관능의 환희가 경련처럼 그를 사로잡고, 일순간 울 안에 잡혀 있는 부드러운 생물 이외의 것을 생각할 힘을 빼앗아 버렸다. 죠디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환희의 절정, 인간의 근원적인 순수한 사랑의 기쁨이 욕망과 뒤섞이어 온몸을 만족시키고, 명철한 생각을 빼앗아가고, 더욱이 싸우고… 정복하려는 충동에 휘몰려 가는 것이다. 죠디는 부드러운, 끊어질 듯한 속삭이는 목소리가 자신의 어디에서인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들었다. 그의 길고 부드러운 손가락이 젖가슴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가만히 다음 동작을 기다린다. 얼어붙어 버린 신경이 환희의 심연에 있고, 손가락이 젖꼭지를 애무하는 황홀경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달래는 것처럼 잡았을 때, 전기충격처럼 전신을 관통하는 흥분으로 억누를 틈도 없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코너… 사랑해요…" 코너가 몸을 딱딱하게 한 것을 느끼고, 그가 그녀로부터 몸을 떼려고 하고 있음을 알고, 일순간 괴로움이 다가왔다. 왜, 왜, 마음속에 숨겨 놓은 비밀을 누설해 버렸기 때문인가? "디너에 내려갈 시간이오." 코너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친절함과 배려를 가지고 다정하게 천천히 속삭였다. 그의 눈은 이제까지보다도 더욱 검어져 있었다. 마치 고뇌와 후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처럼. 그는 죠디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거기에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를 슬프게 하고 있다. 아아, 가슴깊이 슬퍼하고 있다. 눈물이 죠디의 눈에 넘쳐 흘러, 속눈썹을 타고 볼로 떨어져 갔다. 아아, 시계를 되돌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코너, 나…" "울 건 없어요, 죠디!" 코너는 부드로운 감동을 담고서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큰할아버지의 일을 생각하고 일순간의 마음의 방황으로부터 일어난 실수,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가씨를 괴롭혔던 것을 용서 비는 마음으로 있을 거라고 죠디는 생각했다. "눈물을 닦아요." 코너는 손수건을 꺼내어 한쪽 손을 죠디의 턱 밑에 갖다대었다. 죠디는 깜박거리면서 가까이 다가오는 손수건과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나서 눈을 감고, 마음속 깊숙이서부터 끓어오르는 것처럼 흐느껴 울었다. 이것은 그녀로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괴로움이었다. 죽어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양부모님들과 로셀과 있던 시대로 되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의 이 고통과

비교하면,

옛날의

괴로움

같은

것은

하잘것없는

바늘에

찔린

정도의

것이었으리라! 7 아침식사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로셀의 얼굴을 바라본 죠디의 눈에는 결의의 빛이 나타나 있었다.

코너는 요

일간,

아침식사

자리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아침식사는 여자 둘이서만 먹고 있었다. 로셀은 일 주일 정도 전부터 와 있지만, 어제 돌로 된 벤치에 걸터앉아서 일광을 쬐며 경치를 바라보면서 쉬고 있던 벌 할아버지의 옆으로 가서, 주제넘게 명령을 했던 것이다. 그때 로셀은 보통 때의 교만한 태도로 벌에게 무엇을 하러 와 있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저곳 구석에 있는 잔디를 깎으러 왔어요." 벌은 이전처럼 정중한 말을 쓰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로셀은 말했다. "말한 것을 하세요. 급료를 받고 있을 테니까." 죠디는 벌 할아버지의 작은 집으로 가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즉시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어올라와 숨이 끊어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 때는 로셀이 눈앞에 있지 않았으므로 대면하여 따지는 일은 오늘 아침식사 때까지 보류해야 했던 것이다. "로셀, 전에도 말했었지만, 당신은 이곳에서는 단지 손님에 불과해요. 이 호텔의 종업원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수 있는 권리 같은 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그런 일은 삼가해 주길 바래요." "벌은 무척 게으름뱅이야!" 로셀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했다. "전부터 그가 일하는 걸 보아 와서 얼마나 게으른 자인지 알고 있단 말야! 집에서 일하고 있을 때에는 저런 식으로는 시키지 않았어. 이곳이라고 해서 어떻게 저렇게 게을러도 된다는 거야?" "미안하지만―" 죠디는 위엄을 보이며 말했다. "이곳에선 빠디가 정원 관리장이니까, 불필요한 지나친 말을 한다면 틀림없이 화낼 거예요. 빠디가 명령하는 거예요. 당신이 아니란 말이에요. 정원의 모든 일에 대해선, 나라고 해도 말을 할 수 없어요. 더군다나 코너일지라도 틀림없이 참견하는 말은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요. 감독으로서 고용한 자의 권위를 그는 존중할 테니까요."


죠디는 손을 뻗어서 토스트를 집었다. 처음부터 의연하게 로셀과 맞서서 대항한 죠디는 더욱더 성공하였다. 사실상 로셀은 이제까지의 오만함과 강력함으로 죠디를 압도한 적이 몇 차례나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좀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다. 로셀과 코너의 관계도 ―

그렇다. 이제까지를 살펴보면, 죠디로서는 불만은 없었다.

대낮에는 코너는 하루종일 일에만 매달리고 있었고, 저녁 무렵 디너 때에도 굉장히 예의바르고 정중하게 대했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로셀이 코너에게 가까이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몹시 화가 나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념하지는 않는다. 부도덕한 면은 감추고 자신의 매력은 남김없이 드러내 보이고, 코너의 경영수완에 이러쿵저러쿵 아첨을 떨고, 요 몇 년간 코너가 이룩한 개혁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애교있는 웃음을 짓고, 요염하고 성적 매력을 풍기는 눈짓을 했다. 그녀는 또한 형태가 예쁜 자신의 손을 이용하고 자신의 머리를 움직이는 방식도 잘 터득하고 있어서,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그 윤기나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옆에 있는 사람의 주위를 끌었다. "로셀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져요!" 죠디는 여러 번 혼자말로 이야기했다. "내가 벌 할아버지에 대해서 코너에게 말해 줄 테야." 이윽고 로셀이 말했다. "도대체 저런 남자를 고용하다니, 도대체 어떤 식으로 구워삶은 거야! 아주 옛날에 이미 벌의 인생은 끝났던 거야. 양로원이라도 들여보내는 것이 좋아." "벌은 양로원 같은 데엔 보내지 않을 거야!" 죠디는 단호히 말하고, 친구에 대해서 경멸하듯이 말하는 로셀을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로 매섭게 쏘아보았다. "내가 돌보아 드릴 거야! 벌이 나이가 들어 일할 수 없게 되고, 혼자서 작은 집에서 생활할 수 없게 된다면, 호텔의 방을 하나 드릴 거야." "너는 언제나 저 늙어빠진 부랑자에게 너무 다정하단 말야!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생각하는 것인데, 너의 선조도 혹시 부랑자가 아니었을까 하고 말야." 죠디의 얼굴이 서서히 울그락불그락해져 온다. 죽은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모독이다. 걷잡을 수 없이 불끈불끈 끓어오르는 분노는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의 일로 감정을 억제할 수 없다. 위장 속에서 딱딱한 덩어리가 생겨서 천천히 위로 올라온다. "당신에게 나가라고 요구하겠어." 죠디는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들에겐 공통점 따윈 없어요, 로셀. 거기에다 덧붙여 말하겠는데, 나의 육친에 대해서 비웃음을 당하거나 모욕받거나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의 아파트는 이제 곧 마련되겠죠. 그 때까지 그 근처의 호텔에서 묵는다면 좋지 않을까?" "내가 스스로 좋다고 생각될 때에 떠날게." 로셀은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때까지는 떠나지 않겠어. 나는 호텔의 손님이기 때문에 네가 나가라고 말하더라도 문제되지 않아. 전혀 따를 필요가 없으니까 말야. 아침식사가 끝나면 곧 코너에게 말해 주겠어." 코너가 죠디를 부른 것은 그로부터 삼십 분 후의 일이었다. 죠디는 로비에서 샹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도착한 두 그룹의 미국인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는 그들은 사진을 보고 이 성에 완전히 감격하고 있었는데, 실물을 보니 더욱더 감격했다는 것이었다. 로비를 가로질러서 몇 개인가의 공용의 방을 통과하여 코너의 사무실이 있는 복도로 갈 때까지의 동안에 그녀의 고동은 빨리 뛰기 시작했다.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는 발이 똑똑히 정신을 차리려는 탓인지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앉아요, 죠디." 코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로셀에게 이곳을 떠나가라고 했다는데, 어떻게 된 일이오?" "나를 모욕했어요!" 죠디는 응석을 부리고 있는 것처럼, 어린애처럼 초조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코너는 그렇게 이해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당신은 무척 로셀에 대한 일에는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지나치게 곤두세운다고 생각해요. 무엇이라고 모욕했다는 거요." 그의 목소리는 엄격했지만 호기심도 있었다. 마치 이미 결론은 나와 있지만, 들어나 보자 하는 식이었다. "제가 신분이 미천한 계급 출신이라고 했어요." "여자들끼리의 싸움이군! 그런 일을 내 책상에까지 갖고 오지 않도록 해 줘요!" 죠디는 눈을 떴다. 그 깊숙이에는 전투적인 빛이 빛나고 있었다. "나를 부른 것은 당신이에요! 당신에게 와서 말해 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어요!" "죠디!" 코너는 권위를 나타내며 말했다.


"그런 점이 언제까지나 당신이 어린애 같다는 거요.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은 머리에서 떨쳐 버리고 로셀과 사이좋게 지내려고 하세요." "당신은 로셀이 말하는 것만을 듣고 내가 말하는 것은 들어주지 않아요!"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다. 로셀에 대한 적대감정 탓으로 코너와의 사이까지 불화가 생길 것같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자 목이 메이는 것 같았다. "나는 로셀에게 떠나라고 하고 싶어요!" 코너는 커다랗게 한숨을 쉬며, 쥐고 있던 펜을 책상 위에 놓고 의자의 등에 몸을 기대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거요?" 그는 추궁했다. "로셀이 당신에게 있어서 그렇게 가시 같은 존재라면 당신이 가까이 가지 않으면 될 게 아니오." 분노와 고뇌가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다. 패배감과 고독감을 자근자근 씹으며 발을 억지로 끌고 가듯이 하여 입구로 걸어갔다. 그리고 또 뒤를 뒤돌아보았다.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조용한 체념한 것 같은 것을 주변에 풍기면서 방의 중앙으로 되돌아갔다. 코너는 일어서자 혼자서 움직여 버린 것처럼 책상을 돌아서 앞으로 나왔다. "부탁이에요, 코너." 죠디는 당부했다. "나에게 그런 태도를 나타내지 말아요. 당신과 내가 사이가 나빠진다는 것은 참을 수가 없어요. 내가 어떤 기분에 빠져 있는지 이해할려고조차 안한다면…" 생각보다 빨리 그녀는 코너의 팔 속에 달려들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죠디… 착한 아이야. 울지 말아요." 목소리의 상태는 다정하고 온화했지만, 그 밑바닥에 또 다른 후회와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로 물들어진 초조한 기분이 나타나 있었다. "내가 어떻게 했다고 하는 거요…?" 거의 무엇을 말했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속에서 죠디는 그 말만을 들었다. 서글픈 생각에 죠디는 그의 팔에서 떨어져 나왔다. 또 찢어져, 외톨이가 되었다고 느끼면서 …

갑자기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의 친구하고 얘기했던 터로우에 대해

기억하면서. 엷은 자줏빛 눈이 가늘게 좁아지며, 걱정스러운 듯이 죠디의 핼쓱해진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런 것은 믿을 수 없구나!" 벌 할아버지는 화가 난 나머지 거의 고함을 치듯이 말했다.


"그녀를 비서로 채용하다니, 브레이크 씨는 도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거야!" "내가 그녀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예요." 죠디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죠디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 할아버지는 시끄럽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언제나 엄청난 일에만 눈을 돌리고 있구나. 이번도 그렇구나!" "코너는 훨씬 전부터 비서가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그것이야말로 절대적인 동기예요. 그녀가 그것을 알고 달려든 거예요." 죠디는 후회로 몸을 부들부들 떨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계속 이곳에 있게 되겠구나! 샀다고 하던 아파트는 어떻게 되는 거지?" "모르겠어요, 그 일에 대해선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는걸요.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빌려주기로 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없어요." 죠디는 벌 할아버지가 납득할 수 있도록 로셀이 코너의 비서로 채용되었다는 일 등을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계속 이곳에 있을 거야?" "그럴 거야, 지금 있는 방에 계속 있으면 좋겠다고 코너는 말하고 있어." 이제 악의에 가득찬 로셀의 입에서 승리를 자랑하듯이 전해 들었을 뿐인 죠디의 입은 무거웠다. 그러나 로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로셀, 아무래도 떠나 줘야겠어. 당신은 나를 모욕하고, 벌 할아버지를 경멸하여 싫다는 생각을 들게 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내쫓고 있는 거예요. 허용할 수 없어요. 코너가 어떻게 말하든지 나는 내가 생각한 대로 하겠어요. 지체하지 말고 빨리 짐을 정리해서 떠나 줘!" "그래?" 로셀은 새빨간 혀를 낼름거렸다. "그래, 건방진 어린애야. 내일 아침 아홉 시에는 나는 너의 파트너의 비서의 지위에서 일한다는 것을 안다면 재미있겠구나!" 그 소식에 깜짝 놀라서 죠디는 숨이 끊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얼어붙은 손으로 심장을 꽉 잡아쥔 듯한 느낌이었다. 로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거짓말을 해도 아무 이득도 되지 않는 것이다. "죠디, 너란 인간은 너무 단세포적이야." 로셀은 즐거운 듯이 계속 비웃었다. "너는 코너를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었을 거야. 그렇지만 너는 코너에게 있어서 단지 어린애일 뿐이야. 더군다나 취하기에 부족한 존재야. 내가 이곳에 있지 않기를 바라는 유일한 이유는 내가 두렵기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아?"


"무… 무엇이 무섭단 말야?" 죠디는 입술이 새파래져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어요, 어린 아가씨! 너는 단념해라! 너같이 바보같은 어린아이 같은 여자가 나온다면, 저 사람은 언제나 곤란하기 때문이야!" 이제 서 있기조차 불가능하다고 생각이 들자 엷어질 수도 없는 비참한 생각으로 분노도 자신감도 쭈글쭈글 구겨져서 로셀의 곁을 지나간 죠디는 넓은 정원을 통과하여 쏜살같이 벌 할아버지의 작은 집으로 갔던 것이다. 이곳은 예전의 틀레하브 작은 집과 똑같이 그녀의 피난처였다. 벌이 말하는 대로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죠디는 그곳에서 마음껏 비참한 심정을 토해내었다. "내 생각인데…" 할아버지의 중얼거림이 죠디의 몽상을 깨웠다. "로셀은 브레이크 씨가 자신에게 넋을 잃었다고 여기는 것 같구나." "그것이 그녀의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말했던 것― 오전에 이곳에 왔을 때― 코너는 자기에게 마음이 있다고 말했어요." "브레이크 씨의 쪽은 어때?" "그는 그런 식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번은…" "필시 브레이크 씨는 로셀이 편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일 거야, 죠디야." 벌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에 위로하려 말했다. "브레이크 씨는 비서가 필요해요 ― 일 주일 전쯤에 그렇게 말했었잖아. 더구나 로셀의 사무능력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녀의 덕택으로 브레이크 씨는 지독한 양의 일이 덜어지겠지. 그녀를 고용했던 것은 마침 기회가 좋았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함께 있으면… 편지를 쓰거나 하며 함께 일을 하고 있으면, 그는 틀림없어…" 죠디는 계속해서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얼굴을 의자에 파묻고 심장이 터질 정도로 울었다. "나… 나 말이에요, 참을 수가 없어요… 그가… 그가 로셀과 결혼한다는 사실이!" "언젠가도 말했던 것처럼, 브레이크 씨는 로셀을 꿰뚫어보는 힘이 있는 사람이에요, 죠디. 나는 지금도 그것을 믿고 있어요. 로셀은 마음이 냉정한 고양이 같은 여자야. 그것에 브레이크 씨가 속아넘어가서 착한 아가씨라고 생각하게끔 되지는 않아요." "전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저녁 안개가 산을 덮고, 호수나 밝은 성의 벽에 떨어져 올 무렵, 죠디는 말했다. "그렇다면 돌아가지 말아요, 죠디. 이곳에 있어요. 나와 함께 식사를 하자. 대단한 것은 없지만, 야채는 신선하고 푸딩도 있어요. 통조림도 먹어요. 맛있고 영양가도 많아요."


죠디가 겨우 작은 집을 나선 것은 벌써 어둑해지고 나서였다. 로셀이 코너와 함께 죠디가 앉던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런 것도 모두 끝났다. 이제 둘이서만이 말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서로 함께 있다는 것을 기뻐하는 행복하고 친밀감있는 디너는 사라졌다. 벌 할아버지가 중간까지 데려다 주었지만, 먹처럼 새까만 수렵장을 통과하고 나서, 죠디는 그 뒤에는 혼자서 가겠다고 말했다. "호텔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런 그녀의 눈동자는 매일 밤 저녁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마시던 라운지의 한 창문으로 향해 있었다. 코너와 로셀이 그곳에 있고, 조용하게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그러나 죠디의 예상은 틀렸다. 앞 정원의 변두리까지 왔을 때, 우연히도 코너가 성의 중심이 되는 건물 쪽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과 만난 것이다. 발을 빨리하여 가까이 오고 있는 그의 이마에 주름살이 져 있는 것을 보았지만, 화가 나 있었는지 걱정하고 있던 탓인지는 알지 못했다. "도대체 어디에 가 있었던 거요?" 코너는 물었다. 양손을 그녀의 어깨에 갖다대고 무서운 형상으로 우뚝 솟은 것처럼 서서 말했다. "여기저기 샅샅이 찾았어요. 어째서 디너엔 오지 않았소?" 그는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죠디는 그는 틀림없이 자신의 볼에 따귀를 때린다면 무엇보다도 만족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벌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오는 거예요." 죠디는 턱을 들어올리고 도전하는 것처럼 말했다. "호텔에서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면 꼭 디너에 가야 될까요?" "나를 향해서 그런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잖아요, 죠디." 코너는 신경을 쓰면서 말했다. "당신이 벌의 집에서 디너를 들 때는 적어도 나에게는 미리 알리길 바래요." 죠디는 어깨를 움츠리며, 자기로서도 분별없는 행동에 놀라면서 반항적으로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지 당신에게 미리 알릴 필요는 없어요, 코너. 그러니까 당신이야말로 그런 태도를 취하지 말아요. 나를 향해서요!" "신경에 거슬리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요." 코너는 목소리를 거칠게 했다. "나는 당신에게 책임이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에겐 나에 대해서 책임 따위는 없어요. 나는 당신의 그런 태도가 참을 수 없단 말예요! 당신은 스스로 제멋대로 보호자가 되려고 하지만, 난 보호자 같은 것은 필요없어요. 정말이라니까요!" 죠디는 마지막 말이 얼마나 어린애같이 울려퍼지는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코너도 무척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재미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의 방으로 와요. 그곳에서 서로 이야기합시다." 그는 쌀쌀맞게 말하고서 죠디가 옆으로 피할 틈도 주지 않은 채 팔을 붙잡고 호텔 로비의 높고 넓은 입구로 끌어당겨 갔다. "바보같은 말은 하지 말아요." 그는 귀밑에서 말했다. "종업원들의 소문의 씨앗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꼴불견스러우니까 팔을 놔요!" 죠디는 날카롭게 다시 말했다. "그렇게 힘을 주어서 팔을 잡지 말아요! 나는 도망가지 않을 테니까!" "당신은 생각했던 것보다 고분고분하군." 코너는 몹시 화를 냈다. "그러나 신경을 쓰게 하면 엉덩이를 냅다 차버릴 테야." "정말… 당신이란 사람은…" 뜨거운 피가 확 볼에 솟아오른다. 몸을 비틀어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노력이었다. 코너의 거실에 들어가자, 죠디는 창가에 가서 그에게 등을 돌리고 서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있어도 전신의 조직의 하나하나가 그의 팔 안으로 뛰어들어 그의 따뜻한 입술, 그에게 포옹당하는 환희를 원하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내가 로셀을 비서로 채용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노하고 있군." 문을 닫고서 맨 먼저 코너가 말했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에요." "이쪽을 돌아보지 않겠어? 나는 사람의 뒷모습과 이야기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오." 그것이 그의 요구에 응하는 찬스였다. 죠디는 말하는 대로 몸의 방향을 바꾸고 침묵한 채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입술은 억제할 수도 없이 떨리고, 눈에 부드러운 음영이 얼굴을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도대체 그는 이런 나의 마음속의 파란 고통과 비애의 홍수를 얼마나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죠디, 나에게는 비서가 필요해요."


코너의 음성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다정했다. "로셀이 상당히 유능하다는 것도 확실해요. 그녀는 직업을 원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와서 일하는 것은 쌍방의 수요가 일치했던 것이라오." "그렇지만 나의 바람과는 일치하지 않아요. 그런 것은 상관없다는 건가요?" 죠디는 이런 말을 할 예정은 전혀 없었다. 더군다나 조금 전에 그가 하는 일 따위는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당신은 늘 그녀와 접촉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오." 코너는 변함없이 온화한 태도를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계속했다. 그의 부드러운 억양은 조금 전의 거친 태도보다도 더욱 죠디를 가슴 아프게 했다. 그는 나를 불쌍히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괴로운 분노가 천천히 조금씩 끓어오른다. 불쌍히 여기는 따위는 바라지도 않아! 그런 것은 필요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 터로우에게 전화를 걸어야지, 그는 필요한 때의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엇인가 후회할 일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이윽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 생겨, 죠디는 다시 생각이 되었다. 그것은 어느 날 밤의 디너 때였다. 언제 죠디가 앉는 코너와 마주보는 자리에 로셀이 앉았을 뿐 아니라 로셀에게 포도주에 대한 것에서부터 식욕을 돋구는 요리에 이르기까지 상담하면서 코너의 주의를 로셀이 혼자서 독차지해 버렸던 것이다. 더구나 식사하는 동안에 나누는 대화가 시종일관 로셀의 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 관점에서 검토해 주는 화제였기 때문에, 죠디는 여전히 대화의 밖으로 소외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죠디는 불유쾌해지고, 라운지에서 마시는 식후의 커피타임에도 서로 어울리지 않고, 거절하고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밤에 터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운이 좋게도 터로우는 집에 있었다. "야, 전화를 걸 기분이 되었군요! 이제는 걸려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죠디?" 생각해 두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을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나 말이에요… 그러니까… 단지 잠깐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나 할까 하고…" "무슨 일이 있군요?" 그는 일 초의 틈도 주지 않은 채 물었다. "아니요… 아무 일도 없어요. 정말이에요." "오늘밤

함께 나갈 수 없어요?

찾아봅시다." "좋아요."

차로

조금

달려서,

어딘가에서

식사할

곳을


즉시 마음도 가볍게 대답을 해버렸던 사실에 자신도 놀랐다. "몇 시에 만날까요?" "삼십 분 후에요." "도착하면 전화하겠소." 침묵, 죠디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 터로우의 차에 타는 것을 본다면, 코너는 뭐라고 말할까? "좋아요.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내가 입구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좋아요. 그러면 삼십 분 후에 만납시다!" 죠디는 잠시 동안 수화기를 든 채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일을 해버린 것인가? 더구나 어디까지 이른 것인가? 죠디는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놓고 거실에서 침실로 갔다. 정말로 이제부터는 더욱더 주의를 기울여야겠어. 그것보다는 지금은 터로우와의 첫 데이트에 무엇을 입고 갈까 선택하는 일에 열중해야지. 죠디가 로비에서부터 걸어나오자 터로우는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삼십 초도 되지 않은 사이에 차에 타고 있었다. 산과 호수 위에 걸려 있는 진주처럼 푸른 저녁 하늘 밑에 미끄러지듯이 드라이브를 하는 것은 멋진 기분이었다. 차가 수풀로 가까이 갈 무렵 주위가 어둑어둑해졌다. 그러나 철문을 통과하자, 또 경치는 황혼의 색조를 띠고 붉게 빛나고, 뚜렷이 윤곽을 나타내는 눈은 드디어 어둠이 깊어진 후에 은색의 빛을 넘쳐날 듯이 가득 머금고 있는 주위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무엇을 이야기할까요?" 터로우는 제안했다. 차는 성 부지의 양쪽의 황토색 벽에 심어져 있는 나뭇잎이 많은 좁은 길을 구불구불 달리고 있었다. 무척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들과 그 그림자들이 만들어내는 좁은 길은, 이 성과 영지의 본래의 소유자인 아일랜드 귀족과 부인이 생애를 통해서 아름답게 가꾼 덕분이라는 것을 여실히 말하고 있었다. "드라이브를 하고 있으니 즐거워요." 조금 있다가 죠디는 애매모호하게 대답했다. 터로우는 옆눈으로 그녀를 흘끗 쳐다보고 나서, 또 도로에 주의를 기울였다. "무엇인가 좋지 않은 일이 있어요? 당신의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죠디. 나는 그럴 예정으로 왔어요." 그 목소리는 낮고, 아일랜드풍 특유한 명랑한 리듬과 부드러운 발음은 매력적이었다. "괜찮다면 다 털어놓아요. 당신이 비밀로 하고 싶다는 것은 틀림없이 비밀로 지킬 테니까요." 죠디는 조금 망설인 후에 말했다.


"그것은 로셀, 나의 이복언니에 관한 일이에요. 요전에 나의 양친에 대해 말했을 때 말했었지만―" "기억하고 있어요. 내가 받은 인상은 당신과 그 언니와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걸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터로우는 차를 성벽 거의 가까이까지 왼쪽으로 몰아서 한 대의 차와 스치듯이 지나갔다. "로셀이 아파트가 준비될 때까지 잠시 동안 체류할 예정으로 랏슈우드 성으로 왔어요. 그녀의 아파트에 대해선 이야기했었나요?" "네, 들었어요. 틀림없이 당신에게 있어서 그 일이 기쁘지 않겠네요." "이미 당신도 알고 있듯이 우리들은 성격이 잘 맞지 않아요." "로셀과 있고 싶지 않다면, 이곳에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해 주면 되지 않습니까?" "말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코너 브레이크 씨는 지금에 와서 로셀을 비서로 채용해 버렸어요." 그녀의 끊어질 듯한 목소리는 잘 알아듣기 힘들었다. 터로우는 마침 차가 잘 교통할 수 있도록 확장한 곳으로 왔기 때문에 옆으로 몰아 정차했다. "그러니까, 로셀은 랏슈우드에 영주할 예정인가요?" 그가 양미간을 찡그리는 것을 보고, 죠디는 로셀이 한 일이나 그의 성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야기했는지 기억해 내려고 노력했다. "그래요.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어떤 사람이죠?" 터로우는 흥미진진한 듯이 물었다. "무척 아름다워요. 집에 있던 때에는 어떤 남자라도 그녀가 생각한 대로 되었어요. 그렇지만 그녀는 말하기를…" 죠디는 갑자기 말을 끊었지만, 터로우의 호기심이 가득찬 얼굴을 보고, 단념하고 말을 계속했다. "로셀은 핸섬하고, 지위와 재산이 있는 남성과 결혼하겠다고 언제나 말했어요." 터로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브레이크 씨는 그 조건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군요."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닙니까?" 생각지도 않은 무심결에 나온 질문에 죠디는 허둥댔다. 그리고 터로우의 입에서 새어나온 낮은 휘파람 소리에 새빨개졌다. "그런가요?"


반은 긍정하고 반은 질문하는 것 같은 말투였다. 잠시 동안 그는 흥이 깨져 있었지만 체념한 것처럼 조금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기 때문에 멍해졌다. "그렇게 묻더라도 놀라지 말아요. 브레이크 씨란 분은 흠잡을 데가 없을 만큼 매력적인 분이라고 하더군요." 죠디는 화제를 바꾸어 로셀이 벌 할아버지에게 보여준 태도에 대해, 그의 일에 대해 어떤 것을 말했는가를 이야기했다. "로셀이란 여자는 몹시 심술궂은 타입인 것 같네요." 터로우는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그러자 노인의 반응은 어땠어요?" "그다지 걱정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것을 나에게 말했기 때문에 나는 로셀에게 대들었지요. 그녀는 거만한 태도로 흘려들으면서 벌 할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내는 쪽이 좋겠다고까지 말했어요." "로셀은 브레이크 씨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나요? 결국 벌 할아버지를 해고시킬 수 있느냐는 의미입니다만?" "내가 랏슈우드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결의가 그녀의 말에 힘을 불어넣었다. "용감하군요! 그러나 당신은 아직 어려요. 더구나 이런 말을 해도 괜찮다면, 아직 경험도 자신감도 없어요. 내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는 당신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터로우는 죠디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의 성실한 인품이 그의 눈에도 목소리에도 나타나 있었다. 그는 걱정하듯이 말을 덧붙였다. "죠디, 주일에 한 번 정도 함께 밖으로 나오지 않겠어요? 그렇게 한다면 지금 찾고 있는 좋은 방법이 무엇인가 발견할 수도 있고, 당신도 괴로움을 남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니까, 로셀이 있는 높은 곳에서 힘이 있다는 지상으로 끌어내릴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언제라도 당신이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어려워 말고 전화해 주세요." 그는 잠시 틈을 두고 이그니송키를 돌았다.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하지 않겠어요? 적어도 주일에 한 번씩 함께 식사를 하지 않겠어요?" "좋아요, 찬성이에요, 터로우." 터로우는 차의 기어를 넣고 산울타리 옆으로부터 움직여 나왔다. "적어도 분위기가 좋은 식당이 있는데, 당신의 마음에 들면 좋겠어요." 그는 약간 어두운 차 속에서 빙그레 웃었다.


차는 순조롭게 달리기 시작하고 헤드라이트가 기분 나쁜 나무들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콩그의 삼 킬로 정도 앞에 마스크 호수를 굽어보는 절호의 장소에 있어요. 그 식당은 클롬바하우스라고 해요." "네, 마음에 들 것 같아요." "조금 이야기했더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훨씬 좋아졌어요. 고마워요, 터로우. 너그럽게 이해해 주어서." "됐어요!" 확인하는 것 같은 행위로써 죠디의 무릎을 다정하게 탁 쳤다. "내가 말한 것을 기억해 둬요. 어떤 일이든지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즉시 전화를 걸도록." 죠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외톨이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어 기뻤다. 터로우라는 좋은 친구가 생겼다. 가령 그가 눈에 띄도록 건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없다 하더라도 자기 혼자서는 견딜 수 없는 문제를 털어놓으면 동정을 품고 들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클롬바하우스는 터로우가 이야기한 대로 작고 분위기가 좋은 집이었다. 원래는 금갈색의 짚으로

지붕을 이은 아일랜드풍의 농가에

조금

손질을

하고,

조금

증축을

하여

경양식당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새로 장식은 했지만, 농가의 매력적인 장소는 구석구석 남아 있고, 마루와 똑같은 높이의 화로 마루 등도 그 하나였다. 언제나 이런 구들은 농가의 부엌의 중심이 되는 것이라고 터로우가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벽에 붙어 있고 방구석에 있는 일은 결코 없다고 말해 주면서. 벽은 견고한 돌이나 벽돌로 지어져 있다. 이탄(충분히 탄화되지 않은 채 땅 속에 묻힌 석탄)이 발하는 호박색의 빛을 받아 질이 좋은 모조 골동품인 테이블이 빛나고, 좋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구들의 부드러운 주홍색 빛이, 화로 위와 이전에 농가의 주부가 여러 가지 요리나 향기로운 보리의 소다빵을 굽는 한 벌의 주물 냄비에 발사하고 있다. "어때요!" 터로우가 테이블 너머로 죠디에게 미소를 지었다. 죠디도 미소로 답했다. "멋있어요!" 죠디는 무심결에 큰소리를 질렀다. "무척 친밀감이 있고, 따뜻함이 있어요." "랏슈우드 성의 레스토랑과는 매우 다르죠?" "정말이에요. 달라요. 당신은 이 매력적인 작은 레스토랑의 구석에 있으니 딱 어울려요."


요리도 근사하고, 죠디는 불과 몇 시간 전에 마스크 호수에서 잡은 농어를 먹고, 터로우는 똑같이 그 날에 잡은 연어를 먹었다. 디저트로는 입에서 군침이 도는 듯한 과자, 빵류가 손수레에 운반되고, 그 후에는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생각났어요. 나는 벌 할아버지에 대해 나의 큰아버지께 말했어요. 그랬더니 큰아버지는 꼭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얘기를 벌 할아버지께 전해 드릴게요." "쉐마스 큰아버지를 이곳에 모셔와도 좋고, 내가 벌을 큰아버지의 포장마차까지 모시고 가도 좋아요." "좋아요, 어느 쪽으로 하든지 내가 연락할게요. 그런데 벌은 마음이 내키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덧붙여서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지금 저 작은 집을 장식하고 정돈하는 데에 열중해 있기 때문에요." 더 이상 이야기할 시간은 없었다. 이제 문지기의 작은 집까지 오자, 문지기가 차의 불빛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 주려고 나와서 죠디에게 정중하게 경례를 했다. 강에 걸려 있는 다리를 건너 터로우는 차를 호텔의 정면 현관에 갖다대었다. 죠디는 터로우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매우 고마웠어요, 무척 즐거운 밤이었어요, 터로우. 또 만나기를 즐겁게 기다리겠어요." "그러면, 다음은 언제 만날까요? 아직 언제 만날 것인지 결정하지 않았어요." "목요일은 어때요?" 잠시 생각하고 나서 물었다. 토요일이 가장 좋지만, 터로우도 주말엔 다른 볼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좋아요." 터로우는 즉시 대답했다. "그 전에 연락이 없으면 다음 주 목요일 일곱 시 반에 기쁘게 이곳으로 오겠어요." 죠디가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서 내리려고 했을 때, 그의 팔이 돌아와서 부드럽게 관자놀이에 입맞춤을 했다. 어찌된 일로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무심결에 고개를 되돌려서 입술에서 떼었다. 왜였을까? 그 해답을 알았던 것은 그녀가 혼자서 침실에 들어가 산을 타고 내려가는 흩어지는 산들바람이 호수의 면에 살살 파도를 일으키는 데에 달빛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열어 놓은 창으로 보고 있을 때였다. 여러 갈래로 생각하며 마음속으로부터 해답을 끄집어 내려 노력했다. 그녀의 행동은 마음의 평온을 찾은 결과였다. 이제부터 맞서는 데에는 혼자서 맞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하였다. 8


태양빛의 엷은 금빛 화살이 미묘한 자작나무 잎사귀 사이를 꿰뚫고 지나 낮은 울타리에 뻗은 거미집에 고인 이슬방울을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리게 하고 있다. 좁은 길의 반대편은 콩그 강이 이른 아침의 햇살을 받으며 유유히 흐르고 있다. 백조의 일가가 우아하게 개울 위를 미끄러지면서, 마침 죠디가 다다른 깨어진 돌로 된 다리를 향하여 헤엄쳐 오고 있다. 죠디는 나무 그늘에 멈춰 서서 불과 이삼 주일 전에는 백조의 새끼들이 얼마나 작았는가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불과 작은 공 같았던 새끼들이 거의 어미 백조와 같을 정도로 커져 있다― 그렇지만 겉모습은 전혀 다르다. 새끼들의 깃털은 칙칙한 갈색이고, 여전히 상당히 폭신폭신한 털이 나 있는 데 비해서 어미 백조의 깃털은 매끈매끈 빛이 날 정도로 하얗다. 그래도 아일랜드에는 여전히 사람에게 더럽혀지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 물론 지역의 특성에 의한 차이는 있지만, 예전에는 이곳과 똑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과시했던 영국이 매장되어 있던 풍부한 석탄의 덕분으로 탐욕스런 인류의 자연 파괴에 대단히 힘을 기울여 왔는 데 비해, 다행히도 아일랜드에는 그런 꺼림칙한 검은 자연이 없었던 덕분이다. 이곳에는 콘네마라라는 원시적인 산맥이 있다. 오염되어 있지 않은 크리브 호수에는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울창한 성이 많이 떠 있다. 그것들이 모두 오랜 역사의 비밀을 새기고, 때로는 구전돼 오는 민화에 담겨 있다. 작은 성이 있는 곳에는 지금도 난쟁이나 요정이나

레쁠레콘(아일랜드의 요정)이

살고 있다고

하며,

어떤

곳은

작은 새나

야생동물의 성역이 되어 있다. 천천히 걷고 있으니 깊은 정적 속에서 시간도 흐르는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또 멈춰 서서 주위의 자연의 기이함에 둘러싸인다. 그때 죠디는 그를 보았다.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바지와 눈처럼 하얀 셔츠가 아름다운 용모를

유달리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머리카락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빛나고,

관자놀이에 몇 줄기 강철 같은 하얀 선까지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발의 보폭은 넓고 자신에 가득차 있으며, 전성기의 운동선수 같다. 심장이 꿈틀거리고 관자놀이의 혈관이 소리를 내며 박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손바닥에 축축히 땀이 밴다. 왜 이렇게 떨리는 것일까? 그것은 필시 로셀이 영주할 예정으로 이 성에 온 이래로, 분명히 두 사람만이 만났던 적이 없었던 때문이다. 코너는 일 미터 남짓한 곳에 멈춰 서서 느릿느릿하게 가까이 다가왔다. "무척 일찍 일어나서 걷고 있군." 그는 말하며 검은 금속성의 빛을 발하는 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유심히 쳐다보았다.


죠디는 슬랙스에 밝은 푸른색의 목이 터틀인 스웨터를 입고 있었지만, 빨아서 줄어들었기 때문에 젊고 탄력성이 있는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났다. "당신도 마찬가지네요." 냉정하게 자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일려고 하면서도 여전히 어색하다고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로셀이 오기 전까지, 죠디는 안정되고 자신감에 넘친 행동을 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종업원들에게 정중하게 명령하기 시작했고, 손님들과도 기분 좋게, 때로는 자신도 감탄할 정도로 막힘없이 대화를 나눴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코너가 어떤가 하면 서먹서먹한 태도로 대하는 것처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술술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친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은 점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침 일찍 산보를 자주 해요?" 코너는 궁금한 듯한 얼굴로 물었다. 죠디는 그가 왜 아침 일찍 산책하는 걸 궁금히 여기는 것인지 몰랐다. "가끔씩은요." 죠디는 발을 바꿔 밟았다. 테니스 구두의 천을 통해 습기가 배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척 조용하죠. 당신도 혼자서 산보하는 거예요?" 라고 말하며 고개를 드는 것을 보고, 코너는 그녀의 맑은 아름다운 눈이 슬픔으로 손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신은 이런 아침의 쓸쓸함을 좋아하나?" 죠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매우 좋아해요. 전 이 성의 생활이 무척 좋아요." 라고 말하고 나서, 오해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하여 서둘러서 덧붙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성이 반은 나의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당신과 똑같이 자연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즐거운 거예요. 옆에 강이 있고, 해가 떠오름에 따라 산도 그 그림자도 끊임없이 색을 변해 가는 속에서 백조가 헤엄치고 있으니 즐거워요." 조금 당돌하게 말을 맺었다. 볼의 색깔이 붉어진다. "나, 대성당에 갈 예정인데요…" 그녀의 눈은 필사적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갑시다, 죠디." 코너의 눈은 탄력있는 죠디의 모습을 살피며 폭포같이 늘어뜨린 갈색 머리카락에 잠깐 머물고 나서 얼굴을 돌렸다.


두 사람은 사이좋게 나란히 서서, 유유히 말없이 둑을 걸었다. 아마 같은 황갈색의 태양이 동쪽에 떠올라, 이전의 콩그에서 최고의 영광을 받은 왕립수도원에 비치고 있다. 대성당은 옛날에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던 아일랜드 대왕 타라끄 모오코너가 세운 것이다. "이제 영광은 모두 과거가 되었지만, 멋있고 아름다워요." 죠디의 음성은 낮고 경외심을 가득 담고 있었다. 코너와 나란히 가장자리의 이끼에 덮인 옛날 묘석 사이의 길을 걸어가면서 꿈꾸는 듯한 눈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보이는 묘석의 각각의 밑에 번성한 식물에 매몰되어 수십 개의 묘가 감춰져 있겠지요?" 죠디는 멈춰 서서 나란히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 도대체 이 사람은 말하지 않을 예정인가 긍금해졌다. "당신은 정말로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군, 죠디." 그가 조용하게 말하자, 그녀의 마음은 출렁거렸다. 죠디는 눈을 돌려 아래를 보며 발밑에 묻어 있는 검은 돌을 보았다. 멍하니 자신이 해독하기 불가능한 문자를 읽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세월과 비바람이 아주 오랜 옛날의 직인들이 땀을 흘려서 만든 노작들을 파손하고 있다. "저, 저곳까지 갈래요?" 죠디는 어색하게 물었다. "원한다면." 그는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손을 신중하게 만졌다. 코너의 손이 그녀의 작은 손을 포개는 순간의 감촉에 모든 것이 뒤엎어지는 것 같은 충격을 느끼고, 떨리는 미소가 그녀의 입술에 떠올랐다. "저 언덕을 기어올라가서 숲을 헤치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해요." 죠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팔백 년 이상 이전에, 그것보다 더욱 오래된 성( 聖 ) 페이틴 수도원의 부지 내에 세워진 대성당의 갈대에 뒤덮여진 페허에서 자신들 두 사람만이 서 있다는 비밀스런 상황을 조용히 음미하고 있었다. 둘은 폐허 속을 천천히 걸으면서 때때로 흥미를 끄는 것이 있으면 멈춰 서서 보았다. 코너가 그런 것에 대한 지식을 이야기하면, 죠디는 탐욕스럽게 받아들였다. "여행자들은 이런 작은 콩그 마을이 예전에는 세계 학문의 중심지의 하나였던 대성당을 갖고 있는 굉장히 중요한 장소였다는 것을 잘 모르고 지나치지." "세계의?" 죠디는 되물었다. 세계란 말은 아일랜드라고 말하려 했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요. 세계란 말이오, 죠디. 당신도 알고 있을 테지. 어거스틴 수도회가 미술과 문학의 분야에선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예전에 이 대성당에서는 한꺼번에 삼천 명이나 되는 학생을 수용하고 있었던 적도 있었어요. 아일랜드는 옛날에는 세계의 많은 나라들의 모범이 되는 문명지였어요." 잘 알고 있는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애국심과 자부심이 섞여 있다. 죠디도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육체 속에 흐르고 있는 아일랜드의 피를 자랑으로 느꼈다. 코너는 침묵하고 있는 죠디에게 미소지으며 손을 잡아당겼다. "자, 이곳을 통과하여 숲 속의 작은 길로 갑시다. 작은 다리까지 가는 길을 나는 제일 좋아해요." "네, 나도 대단히 좋아해요." 죠디도 열심히 말했다. "로셀과 온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죠디는 말을 계속하다 급히 중단했다. 로셀이 젖은 풀에 발이 미끄러 넘어져서 새 구두가 망가졌던 것을 불평했던 사실을 말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 코너를 독차지하고 있어, 이렇게 행복한 기분에 빠져 있는 이 장소에서 로셀의 이름이 침입한다는 사실이 싫었던 것이다 "뭐?" 그는 흥미진진한 것처럼 곁눈질을 하며 재촉했다. "로셀이 어쨌다고요?" "아무 것도 아니예요." 그녀는 대답했다. "로셀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아요." "아직도 그녀와 사이가 좋지 않소?" "우리들은 식사 때밖에 만나지 않아요. 그것도 언제나는 아니지만 말이에요." "언젠가 이야기할 때에 그녀는 말했어요. 당신이 의식적으로 그녀를 피하고 있다고." "그래요, 로셀이 말한 것이 맞아요." 죠디가 예전에 로셀과 자신이 진정한 자매처럼 친밀해지고, 각자가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대로 발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에 대해선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한 번 더 말하고, 손을 떼려고 했지만 코너는 그것을 예상하고 있던 것처럼 더욱 세게 손을 잡았다. "아직까지 불만을 잊지 못한다는 것은 불쌍하군." 코너는 말했다.


어딘가 그의 말투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자연히 죠디의 말투도 항의가 가득찬 어조였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양부모들이 한 것을 뿌리깊게 가지고 로셀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란 말이에요, 코너." "나는 그렇게 말한 기억은 없어요. 당신같이 몇 년이나 자매로서 함께 생활해 온 여자 둘이 지금에 와서 갑자기 완전한 남남처럼 되어 버렸는지 나로서는 완전히 모르겠어요." 죠디는 그의 손가락 끝이 손 속에서 꾸물꾸물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이 얼굴에 주름을 지었다. "그것은 로셀의 탓은 아니예요, 죠디. 이것에 대해 단단히 말해 두겠어요. 그녀는 몇 번이나

말했어요.

더욱

당신과

가까워지려고

생각했지만

어쩐

일인지

당신은

가까워지려고 하면 멀리한다고. 그래서 그 이상 가까워질 수도 없어 슬프고 쓸쓸한 생각이 든다고 말이오." 코너가 얘기하는 것을 듣고 있는 동안에 점점 죠디의 감정이 흥분하기 시작하는 것도 갑작스런 일이었다. 얼마나 위선자인가, 로셀은! 엄청난 거짓말쟁이! 죠디가 싫어하고 있는 모든 것이 끓어올라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죠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전의 경험을 통해 코너가 어떤 반응을 나타낼 것인지 뻔히 알고 있었다. 죠디는 매우 어렸을 때의 일을 기억해 냈다. 로셀은 새롭게 양녀로 삼은 작은 아이를 얼마나 귀여워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양친을 속였던가. 보호하고 귀여워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완전한 겉모습이고, 로셀의 본성은 그 뒤에 숨겨져 있음을 불과 여섯 살의 어린애가 간파할 수 있을 정도였었다. 언제나 그러했다. 그리고 지금, 또 로셀은 저 무서운 위선을 사용하여 코너에게 접근하려고 하고 있다. 코너가 두 여자의 사이에 따스함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화제로 삼은 것으로, 죠디는 그에 대한 의심을 짙게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근사한 산보네요. 이것이 저 다리로 가는 길?" 코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얼굴을 옆눈으로 쳐다보았다. "죠디, 당신은 로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이야기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당신들 둘이 사이좋게 되기를 바래요." "아무래도 불가능한 일이에요." 죠디는 함부로 말했다. "아니요, 중요한 일이에요. 대단히 중요한 일이에요." "왜요." 라고 물었지만 당장 그만둔 것은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중요한 일이죠, 코너?"


그 질문은 숨을 가빠하며 조각조각난 목소리였다. "당신, 그렇게 로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침묵의 시간이 자꾸자꾸 지나간다. 그러나 그 동안 죠디의 가슴은 기다리는 괴로움으로 꾹 쥐어짜는 상태였다. 그리고 전신의 피가 거꾸로 솟았다. 코너는 말했다. "그래요, 죠디. 나는 로셀이 무척 맘에 들어요." 죠디가 갔을 때, 벌 할아버지는 아직 작은 집에서 나가기 전이었다. 이렇게 일찍 방문한 것에 벌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호텔의 로비에서 코너가 죠디를 두고 사라지자, 곧바로 벌 할아버지의 작은 집으로 온 죠디는 그때 이후 그와 둘이서 어느 곳을 어떻게 지나쳐 돌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코너가 가든 가지 않든 아침식사를 먹으러 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였다. 식욕이 없었다. 잔뜩 잡아당기는 것 같은 위의 상태로는 식욕을 거론할 한가로운 형편이 아니다. "어쩐 일이냐, 죠디야?" 벌 할아버지는 걱정스러운 듯이 얼굴을 쳐다봤다. "또 로셀 때문이니?" "로셀이 이루었어요." 기운없는 목소리로 말하고 벌의 곁을 빠져서 거실로 들어갔다. "이제 막 코너가 말했어요. 로셀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것은 그러니까, 그가 그녀를 사,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요." "사랑하고 있다고?" 벌 할아버지는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믿을 수 없다! 브레이크 씨가 정말로 그런 말을 했니?" "그 말을 사용하진 않았어요." 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죠디는 덧붙여 말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그녀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까, 그는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 싫어요, 벌. 틀림없어요.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 사랑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러나 나는 믿지 못하겠어요." "벌, 당신은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에요." "물론이지. 브레이크 씨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예요." "로셀은 무척 아름답고, 무척 영리해요. 현재까지의 경험에서 보면, 당신도 그것을 인정하실 테죠."


"그러나 나는 로셀이 브레이크 씨 같은 사람까지 충분히 속일 수 있을 만큼 현명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아름다운 여자에게 남자는 저항할 수 없어요. 그것은 드문 일이 아니잖아요." 죠디는 팔걸이 의자에 앉아서 우연히 창밖을 보았다. 바로 정면에 있는 가장 커다란 탑이 붙은 성벽이 눈에 띄었다. "만약 그들이 결혼한다면 나는 떠나지 않으면 안 돼요. 도저히 나로서는 견딜 수 없어요, 벌." "네가 떠난다면 나도 떠나겠어." 벌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한 후에 말했다. "나는 이제 저런 여자의 명령은 듣고 싶지 않아요." 로셀이 내리는 명령은 오직 하나라고 죠디는 생각했다. 짐을 챙겨서 이 작은 집을 나가라고, 벌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소유가 된 작은 집을 나가라는 명령뿐일 것이다. 죠디는 목이 메어 말을 할 수도 없다. 잠시 있다 일어나서 지금 돌아가지만 저녁 때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식사만은 하고 가요." 벌은 제안했다. "이 문제를 좀더 이야기해 보자. 나는 아무래도 브레이크 씨가 로셀과 결혼한다는 사실만큼은 받아들이지 못하겠구나." 그러나 그 날을 보내고 있는 동안에 죠디는 코너가 로셀을 사랑하고 있다고 더욱더 강하게 믿게 되었다. 두 사람이 몇 번이나 함께 정원을 거닐면서 주위를 살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로셀이 양아버지 필립의 일을 유능하게 보좌하고 있을 때를 기억나게 했다. 한번 더 코너와 로셀이 단지 날씨가 맑다는 이유만으로 산보하러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로셀이 어떤 것을 그에게 요구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바짝바짝 타들어왔다. "더구나 내가 없었다면, 로셀은 코너와 만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목요일 클롱바하우스에서 터로우와 함께 한 저녁식사의 자리에서 죠디가 말했다. 터로우는 말하지 않고 있다. 무엇인가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겨우 그가 입을 열었던 것은 요전에 만났을 때 그가 말했던 것을 상기시키려는 것이었다. "생각하고 있겠죠, 죠디. 그녀가 매우 높고 강해졌다면 무엇인가 그녀를 지상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것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던 말을?" "네, 기억하고 있어요." 죠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당신의 약혼자 역할을 하면 안 될까요? 브레이크 씨도 그것을 싫다고 생각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당신이… 나의 약혼자로?" 죠디는 나이프와 포크를 떨어뜨리고 당혹스럽다는 듯이 터로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모르겠어요, 터로우. 그렇게 하면 무슨 이득이 있나요?" "그래요. 적어도 어느 정도의 효과는 올릴 거예요.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브레이크 씨를 자극시켜 생각을 고칠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아직 실제로는 로셀과 혼약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곧 혼약할 것 같다고 당신은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래요,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이 해볼 생각이라면 그가 로셀에게 프로포즈하기 전까지여야만 해요. 왜냐하면 브레이크 씨는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일단 말해 버렸다면 원래대로 백지화시키진 않을 테니까요. 어때요…?" 터로우는 무의식적으로 죠디에게 손을 갖다댔지만 그대로 잡고 있었다. "그렇게 됐을 때의 브레이크 씨의 입장을 상상해 봐요. 틀림없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경우의 결과는 생각할 거요. 나는 당신이 사는 곳으로 이사해 와서 공동소유자의 남편이 되면, 그의 경영방침에 이러쿵저러쿵 말참견을 할 것이라고…" "터로우, 그것은 당신의 억측이에요. 나는 코너에게… 그런 걱정끼칠 것 같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이대로 순순히 브레이크 씨가 로셀과 결혼하는 것을 손가락을 입에 물고 보고만 있다가 성을 나갈 예정입니까. 분명히 그가 로셀과 결혼한다면, 그 때에는 벌 할아버지도 나가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죠디는 입술을 빨았다. 터로우의 제안이 너무 당돌하게 나왔기 때문에 혼약한 체한다는 작전을 멍청하게 받아들였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확실히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는 그만해요." 죠디는 부탁했다. "나는 식사를 즐기고 있으니…" 그녀의 목소리는 그가 의심하는 것처럼 눈썹을 치켜올리는 것을 보고 떨리며 사라졌다. "당신은 조금도 식사를 즐길 만큼 편치 않아요, 죠디. 그렇지만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은 그만할게요. 오늘밤에 집에 돌아가서 천천히 조용히 나의 제안에 대해 생각해 봐요. 내가 말하는 것을 믿어주어요. 그리고 두 사람을 조금 떼어놓을 수 없어요."


식사가 끝나가 터로우는 차로 죠디를 성까지 데려다 주었지만 아직 열 시 십오 분 전이었기 때문에 호수를 등 뒤로 하고 숲을 향해 아름답게 손질된 정원을 산보했다. 날씨가 좋은 여름날 저녁에 날카로운 낫과 같은 초생달이 똑같이 예리한 실루엣을 그리는 산맥의 언덕에 걸려 있다. 호수의 면은 나른하게 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조용히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죠디는 멈춰 서서 눈을 들었다. 벨벳 같은 잔디, 그 앞의 테라스 위에 속세와 이별을 한 아름다운 성이 당당하게 우뚝 솟아 있고, 거기에다 성벽의 작은 탑에서 비추는 빛을 받아 완벽한 윤곽을 밤하늘에 또렷이 새기고 있다. "아름답죠?" 죠디는 성의 윤곽을 공중에 그리는 것 같은 몸짓을 하며 뒤돌아보았다. "이것들의 반을 내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몸이 막 떨려와요. 어떻게 이곳을 올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터로우?" 죠디의 목소리는 도중에 끊어져 그의 손으로 위로를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울지 말아요, 죠디. 당신이 이곳을 왔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이곳은 당신의 것이에요. 누구도 당신에게 나가라는 말 따윈 할 수 없어요." 라고 터로우는 친절하게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만약에 코너가 로셀과 결혼한다면…" "그래서 우리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막을려고 하고 있잖아요―" 터로우의 말은 갑자기 중단됐다. 그가 죠디를 밀어내어서, 웬일인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두리번거렸다. "코너!" 코너가 있었다, 로셀과 함께. 코너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요?" 코너는 터로우를 꾸짖었다. "죠디는…" 코너는 말을 하면서 죠디를 바라보고 그 새빨개진 얼굴을 보고 볼을 적시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죠디는 벌의 집에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었소." "나는 밖에 나가 터로우와 식사를 하고 왔어요, 코너. 이쪽은 터로우 오닐 씨예요. 터로우, 이쪽은 브레이크 씨예요." 두 남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코너는 괴로운 얼굴을 하고 터로우는 다음에 죠디가 무엇을 말할 것인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죠디는 늘씬하고 버들처럼 나긋나긋한 로셀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드레스가 번질번질한 잡지에서 본 적이 있는 모델이 입은 옷처럼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죠디는 침착하게 말했다. "로셀, 나의 약혼자를 소개하겠어요. 터로우 오닐 씨예요." "지금 뭐라고 말했소?" 코너가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불신과 노여움의 소리로 떨고 있었다. "당신의… 약혼자라고!" "그래요, 브레이크 씨." 터로우가 말했다. "죠디와 저는 얼마 전에 더블린에서 만나 그 이후로 친구로 지냈습니다. 나는… 에… 모든 사람과 사이좋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코너는

로셀의

옆에서

움직여

죠디의

옆으로

와서

찌르듯이

죠디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모두 오랫동안 말없이 있었다. 죠디의 심장이 크게 울리고 있었지만, 모두가 놀랄 만큼 표면은 평정을 가장하고 있었다. "정말인가요, 죠디?" 겨우 말한 코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죠디는 깊숙이 흐르고 있는 고통이 표면의 신경을 자극한 것처럼 느껴 얼굴을 찡그렸다. 고통? 그렇다. 필시 코너에게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만나 버린 탓에서 오는 고통일 것이다. 코너는 지금까지 보호자로 자처했기 때문에 죠디가 한 이와 같은 행동에는 간섭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 그것이 고통의 원인이야― 고통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어떤지 죠디에게 확신은 없었다. "그래요, 코너. 사실이에요. 터로우와 나는 결혼을 약속했어요."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의아스러웠다. 자신이 내딛어 버린 한 발자국이 앞으로의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생각한 대로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릴 것처럼 생각했다. "알았어요." 이를 악무는 것처럼 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러면 언제 결혼식을 할 예정인가요?" "축하해, 죠디." 코너의 침묵을 로셀이 깨뜨렸다. "처신할 방법이 결정돼서 무척 좋겠구나. 그것도 이렇게 매력적인 젊은이와 말야. 그렇지만 먼저 우리들에게 이야기해야 되지 않았을까? 그렇죠, 코너?"


로셀은 비둘기와 같은 눈으로 코너를 올려다보고 속눈썹을 깜박깜박거리면서 재빨리 가까이 가서 손을 코너의 팔 아래로 감았다. "이 문제는 다시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죠디." 코너는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아침 아홉 시 반에 내 방으로 와 주시오." 그는 로셀이 말한 것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손을 흔들어 풀었다. "어떻습니까?" 터로우가 지금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모두가 안으로 들어가서 축배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다음에 합시다." 코너는 딱 잘라서 말했다. "이미 늦었어요, 죠디. 이런 시간에 밖에 나가 있어선 안 돼요. 내 말을 듣고 안으로 들어가세요!" "브레이크 씨!" 터로우는 침착하게 말했다. "당신이 취하는 태도를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산보를 끝마치고 죠디를 무사히 보내 주려고 오던 길이었습니다." 코너는 도전하듯이 그를 보았다. "오닐 씨, 나는 보호자예요. 죠디는 아직 미성년…" "그렇지 않아요." 죠디는 말했다. 똑같이 코너의 태도가 좋지 않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터로우에게 원조를 보낼 생각이었다. "나는 이제 열여덟 살이에요. 무엇이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요. 터로우와 나는 산보를 즐기고…" "우리들이 왔을 때, 당신들은 산보 따위는 하지 않고 있었어요." 로셀이 윤기있는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당신들은…" "죠디, 집으로 들어가요." 코너는 명령조로 말하고 죠디의 팔을 잡았다. 그것이 아파서 입에서 비명을 지를 것을 간신히 참았다. 터로우가 끄덕거리며 단념하듯이 말하는 것을 보았다. "죠디, 가는 편이 낫겠어요. 내일 아침 반지를 드릴게요. 잘 자요. 푹 자요."


터로우는 코너와 로셀의 얼굴을 마주보고, 또 한 번 잘 자라고 말하고 차를 세워 둔 쪽으로 걸어갔다. 9 벌 할아버지가 병이 났다! 부엌에서 꽃을 꽂고 있을 때, 그 소식을 갖고 온 사람은 토미였다. 프런트에 와서, 매우 황급히 죠디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에스터가 데려왔었다. 심각한 얼굴을 한 정원사로부터 벌 할아버지가 병이 났다고 하자, 죠디의 얼굴은 갑자기 파래졌다. "오늘 아침 일찍 나의 집으로 와서,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정원 관리장 빠디에게 조식을 전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알리자고 했더니, 막무가내로 안 된다고 하더군요. 핸들릭스 씨, 당신도 그 벌 할아버지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다시피 무척 완고한 사람입니다. 리사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했더니 화를 내더군요. 그래서 여덟 시 반 경에 리사가 죽을 갖고 갔을 때에 건강한 것처럼 보였습니다만 그로부터 한 시간 지나서 가보았더니, 마루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곧 들어서 침대에 눕혔습니다." 토미는 말을 다 끝내고 경련을 일으키듯이 침을 삼키는 것을, 죠디는 보았다. 벌 할아버지는 랏슈우드 성에 온 지 불과 얼마 안 되는데도 굉장히 많은 사람과 친하게 되었다. "빨리 가세요." 죠디 자신의 괴로움은 이 놀랄 만한 소식에 바람에 날라가 버렸다. "누군가 의사선생님께 연락을 했나요?" "우리들은 전화가 없어서요…" 말을 계속하다 멈추자, 죠디는 곧 의사를 부르겠다고 말했다. "심장발작이 아닐까요?"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물었다. "그런 것 같아요.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벌은 어디나 모두 건강한 것처럼 보이니까요." 벌 할아버지는 심장발작을 일으켰던 것이다. 죠디는 그대로 벌의 옆에 붙어 있었지만, 밤 여덟 시 반이 되었을 때 깜짝 놀라게도 코너가 작은 집에 와서 가볍게 문을 노크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토미와 리사는 죠디를 도와서 거실로 싱글베드를 한 대 운반해 왔다. 거실의 난로에는 불이 피어오르고, 방의 장식은 아직 완성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불빛의 그림자 때문에 침실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다. "병세는 어떤가요?"


코너는 걱정스러운 듯이 물으면서 침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벌 할아버지는 의사가 준 약을 먹고 깊이 잠자고 있었다. 호흡은 정상인 것처럼 들렸다. "코너, 전 오늘밤 이곳에서 자고 갈게요." 죠디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확고하게 들렸다. 그러나 코너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누군가 돌봐주러 올 거요, 죠디. 당신은 돌아가지 않으면 안 돼요. 당신이 이곳에 있더라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내일 또 올 예정이라면 쉬지 않으면 안 돼요." "부탁이에요, 나를 있게 해 주세요." 싸울 힘이 온몸에서 쑥 빠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 며칠 동안 코너를 만나면 종종 이런 기분이 들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주 주인처럼 행동하고 오만한 말들을 한다. 그녀의 쪽에서 보면, 오 일 전의 아침 그가 터로우와 결혼하겠다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던 이후로 사이가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녀가 반론을 제기하자, 그는 반미치광이처럼 거침없이 말했다. "당신은 그를 사랑하고 있지 않아요! 당신은 사랑할 수 없어요.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를 사랑할 수 없지 않겠소?" 죠디는 새빨개져서 얼굴을 외면했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아니잖아요. 당신도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아도 돼요." "그런 남자는 단념해요." 그는 명령했지만, 그녀는 고집세게 터로우를 만난 이후 이제는 코너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고 믿게끔 했다. 결국 그는 혼약을 강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리고 나서 두 사람 사이에 냉정한 틈이 생겼다. 로셀은 그것을 놓칠 리는 없었고, 죠디의 쪽도 이전 집의 중요한 일이나 가계의 일, 대담한 일을 하고부터는 가족이란 생각이 없어졌을 때와 똑같이 두 사람은 멀어져 있었다. 로셀은 이곳에서도 중심인물이었다. 사무소의 직원들도 그녀를 칭찬하고, 유능함을 찬양하고, 이제까지 그녀 없이 브레이크 씨는 어떻게 해왔을까 라고 말하는 형편이었다. "나는 당신을 이곳에 머물게 할 수 없어요, 죠디." 코너의 목소리가 죠디의 상상의 날개를 중단시켰다. 죠디는 베드 옆의 자리에서 고개를 들었다. "지금 곧 전화를 걸어 간호원이 오도록 하겠소. 그리고 그 때까지는 리사에게 이곳에 있어 달라고 부탁할 테니, 당신은 나와 함께 디너를 먹읍시다." "전 당신과 함께 저녁 같은 건 먹고 싶지 않아요."


요즈음 한 번도 함께 디너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 그가 그렇게 말했던 것에 놀라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 나는 혼자서 저녁을 먹지 않으면 안 돼요. 로셀이 감기에 걸려 누워 있으니까요." "로셀이요?" 기쁨이 치밀어오른다. 심술궂은 마음이겠지만, 죠디는 분명히 기뻤다. "그렇다면 당신과 식사를 하겠어요, 코너." 간호원이 오기로 됐지만, 올 수 있는 시간은 열 시 경이라고 말했다. 리사가 기꺼이 간호부가 올 때까지 돌보아 주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코너는 죠디를 데리고 나왔다. 두 사람은 완전히 침묵을 지킨 채로 수렵장을 지나 호텔의 정원으로 나왔다. 죠디도 코너도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사는 맥풀릴 정도로 지루했다. 식사를

마치자,

코너가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겠느냐고

했지만

죠디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전 자러 갈래요." 죠디는 말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벌 할아버지를 병문안 하러 가야 해요." "로셀의 형편이 어떤지 병문안하지 않을 테요?" "가지 않겠어요. 자고 있는 데에 내가 가면 방해나 되는걸요." "정말로 당신은 어린애요. 그리고 정말로 단순해요." 두 사람은 모두 테이블을 떠나려고 했지만, 아직 어느 쪽도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어린애가 아니예요."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은 언제나 하지 않겠어요!" "죠디, 당신이 로셀에게 보이는 태도는 어린애 같아요. 당신조차도 공평하게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요." "나는 로셀이 이곳에 온 것을 화내고 있어요. 내가 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왔단 말예요…" 죠디는 한 번 말을 끊고서 생각에 빠진 것처럼 다시 말했다. "당신은 아무 것도 몰라요, 코너. 그래서 당신은 내가 왜 이런 태도를 취하는지 알지 못해요. 그것을 안다면, 당신도 조금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왜 그것을 말하지 않나요?" 그는 물었지만, 어떻게든 대답을 들으려는 태도는 아니었다. 죠디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동시에 일어섰다.


"당신에겐 중요한 일이 아니예요." 그것만을 말하고,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 마지막으로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속눈썹에 넘쳐 흐르는 것을 참으면서, 헤엄치듯이 라운지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일단 방에 들어오자― 생각지도 않은 일이지만― 갑자기 로셀을 병문안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는 자신도 모르겠다.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감기에 걸린 정도이기 때문에. 로셀은 침대 위에 일어나 있었지만, 그녀의 목덜미가 크게 벌어진 디자인이 비춰 보이는 잠옷 입은 모습은 죠디조차 저절로 얼굴에서 밑으로 눈이 끌려갈 정도였다. "그러면, 죠디, 오늘밤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디너를 먹었군요." 로셀은 다이아몬드처럼 차가운 눈으로, 죠디의, 복사뼈가 감춰질 만큼 긴 산호색 나일론 저지의 매력적인 드레스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 천이 죠디 자신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의 젊고 싱싱한 몸의 선을 강조하고 있었다. 코너나 로셀의 눈을 끌고 있었다. "그래요, 코너와 함께 식사를 했어요." "내가 없었기 때문이었구나." 로셀은 손을 뻗어 휴지를 집어서 코를 풀었다. "나는 소외당하는 것이 싫어요, 로셀. 오랫동안 나는 소외받아 왔지만…" "그런 상상을 다하다니!" 로셀이 가차없이 차단했다.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언제라도 자신을 불쌍히 여기며 비뚤어지게 생각하는 거야!" "얼마나 불편한지 병문안하러 왔어요." 죠디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일부러 다른 이야기로 돌린 것에 대해 로셀이 화를 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거야?" 죠디는 어깨를 움츠렸다. "가는 게 좋겠어요." 이렇게 말하고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 늙은 부랑자 오늘은 어때? 죽기까지 얼마나 남았대?" 죠디는

소름이

쫙 끼쳤다.

폭발했다. "보기 싫은 사람!"

누르고

있던 용수철이

튀어오르듯이

한꺼번에

감정이


죠디는 몹시 독기가 서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을 하고서, 최근까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까지 사이좋은 자매이고 싶다고 바라고 있었던 여자를 매섭게 쏘아보며 외쳤다. "당신 같은 사람은 대단히 싫어요, 로셀. 당신에게는 동정심 같은 것은 전혀 씨알도 없어요. 코너가 결혼하고도 1 개월도 되지 않아서 후회하고 말 거예요!" "그래, 이제야 고백하는군. 너는 질투를 하고 있구나. 그렇지 죠디?" 사람의 마음을 바짝바짝 태우는 목소리에는 웃음과 경멸을 담고 있다. 죠디는 혼자서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코너와 나는 결혼할 거야. 그것만은 인정해야겠어! 듣고 있는 거야?" 죠디는 입술까지 새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문 쪽으로 한 발자국 떼었다. "내가 코너와 결혼하는 그 때에는 너는 이곳을 나가지 않으면 안 될 거야. 너는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너에게 이 호텔의 경영에 대해 말참견을 듣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너의 소유를 코너에게 파는 일도 생각해 두는 편이 좋을 거야!" 그 말을 듣고, 죠디는 침대에 있는 로셀을 쳐다보았다. "나갈 생각은 없어." 죠디가 로셀에게 한 말은 놀랄 정도로 확고하였다. "터로우가… 나의 남편이 될 거지만, 그가 랏슈우드 경영에 대해 조언하게 될 거야." "바보같은 아이…!" 가만히 무섭게 노려보는 로셀의 볼은 성이 나서 새빨갛게 되었다. "너는 코너가 제삼자에게 말참견을 하도록 내버려 둘 것 같니?" "터로우는 제삼자가 아니야. 그는 나의 남편이 될 거야. 코너와 결혼했을 경우의 너와 같은 입장이 되는 거야." 나오기 전에 협박과 같은 말을 하고 방을 나와, 곧바로 라운지 쪽으로 걸어갔다. 불과 몇 분 전에 코너를 남기고 왔었다. 그렇다. 그는 아직 라운지에 있고 죠디도 알고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두 사람의 손님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귀족적이고 매력적인 모습이 아플 정도로 눈에 어른거린다. 캘리포니아의 손님은 전에도 두 번 정도 성에 온 적이 있고, 이번에도 적어도 1 개월은 머무르고 있다. 죠디는 바의 옆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얼룩진 데가 하나도 없는 청결한 복장을 한 바덴이 손님용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리큐르(정제 알콜에 설탕, 향로를 섞은 혼성주의 일종)도 말쑥한 민트초콜릿도 마련되어 있다. 부드러운 몸에 이브닝 양복과 흰 셔츠를 입은 코너는 안락한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행동하고 있다.


코너의 용모는 유달리 눈에 뜨일 만큼 수려하고, 사람을 매혹시키지 않을 수 없는 남자다움과 경험 풍부한 호텔의 경영자로서의 우아함과 자신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저절로 죠디의 마음은 로셀에게 생각이 가버린다. 그 침착함과 자신감, 굉장한 계산력과 사무적인 판단력의 뛰어남은, 만약 코너와 결혼하기로 결정된다면, 의심할 여지도 없이 코너에게 있어 굉장히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녀의 성질의 또 한 면 ― 이익적인 계산에 지칠 줄 모른다는 그 면에선 비교할 바가 없는 면, 때로는 이익을 얻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음모를 꾸미는 점은 어떤가? 코너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일어섰기 때문에, 죠디도 가까이 다가가서 시간이 있으면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중대한 이야기인가, 죠디?" "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는 커피를 마신 후라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손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인사를 하며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나서 조금 후에, 죠디와 코너는 그의 서재로 갔다. "앉아요." 코너는 의자를 앞으로 내어 권했다. "걱정이 있는 것 같군. 무슨 일이오?" 죠디는 로셀의 방을 나와서 쭉 연습했던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코너의 눈 속에서 분노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지만, 죠디는 입술이 아플 정도로 깨물면서 끝까지 말했다. 그의 눈 속에서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노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급히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자신의 입장을 지키려고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때 분명하게 코너는 대등한 공동경영자라는 입장을 자각했다. 호텔의 경영에 대해선 그와 똑같이 말해도 되는 것이다. 로셀이 소유분을 코너에게 팔아넘길 것을 생각해 보라고 했기 때문에 이미 그녀는 분명히 적이 된 상태이고, 가능하면 로셀을 철저하게 때려 눕히려는 것이다. "코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적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려고 애쓰며 덧붙여 말했다. "터로우에게 나의 권한을 이양할 예정이에요. 그렇게 하면 그가 당신과 공동으로 호텔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겠죠. 그의 발언은 당신의 발언과 똑같은 효력을 갖는 거예요." 코너는 죠디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죠디가 그의 눈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이미 화는 지나서 몹시 놀라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로셀이 예상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코너도 그가 로셀과 결혼한다면, 죠디는 소유분을 팔아넘기리라 생각하고 있었을까?


"당신은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요?" 그의 표정은 또 변했다. 이번은 완전히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간신히 억제하고 있지만, 몹시 긴장해 있는 모습이다. "당신은 터로우라는 남자에게 이곳의 나의 일을 나누어 줄 예정인가요?" "만약 우리들이 결혼한다면 그에겐 할 일이 필요하게 되겠죠…" "만약 결혼한다면?" "결혼하고 나면이라고 한 거예요." 그 말끝에 그가 알아차리지나 않았을까, 라는 불안한 그림자가 있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을 생각하면, 그녀는 점점 진실이 아닌 곳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간다. 그녀에겐 터로우와 결혼할 의사가 없음을 감추기 위해서. 드디어 입을 연 코너의 목소리는 탁했다. "이 호텔의 경영에 대해선 나는 어떤 간섭도 허용하지 않겠어요. 당신이 결혼한다면, 당신의 남편은 어딘가 다른 일자리를 갖지 않으면 안 돼요." 코너의 검은 눈은 흐려지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가 어떤 자도 용서없이 위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자, 죠디는 갑자기 힘이 빠져 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용기를 내어 전투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대등한 공동소유자로서, 나에게는 앞으로 어떻게 해갈 것인가에 대해 대등한 발언권이 있어요. 나의 남편이 당신과 똑같은 책임을 지고 당신이 무엇인가의 결단을 내리려고 할 때에는 남편과 상담하라는 것이 나의 의사예요." 죠디는 분명하게 반항하는 눈빛을 나타내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더 이상 억압받고 싶지 않아요, 코너. 일찍부터 그것을 알고 있는 편이 서로를 위해서 좋을 거예요!" 그렇게 말을 끝내고 일어서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도대체 무엇이 당신에게 그런 태도를 취하게 만들었던 거요?" 코너의 목소리는 조금 부드러워지고 친밀감이 들어갔다. 그녀의 귀에는 매력적으로 들렸다. 죠디는 침을 삼켰지만 목이 타는 것 같아, 좀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결혼한다면, 사태가 변한다는 사실을 알기 바래요." "당신은 내 질문에는 대답하고 있지 않아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일어났음이 틀림없어요." 코너는 압도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것은 디너 후에 일어난 일이에요. 터로우와 이야기했소?"


"전화로?" 죠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조금 틈을 두었지만 코너도 평정을 잃어버린 것처럼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죠디는 조용히, "안녕히 주무세요, 코너." 라고 말하고 방을 나갔다. 다음날 아침 일곱 시 반에 죠디가 작은 집에 가보니 벌 할아버지 용태는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다. "어젯밤은 무척 편안히 잘 자더군요." 간호부는 짐을 챙겨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말했다. "얼굴도 씻어 드렸지만 아침식사는 들지 않았어요. 배고프지 않다고 해서요." "야아, 죠디 아닌가?" 벌은 인사를 했다. "일찍 웬일이냐. 잠잘 수 없었던 거 아냐?" "아니요, 잘 잤어요. 그런데 어쩐지 당신을 일찍 만나고 싶었어요. 건강상태는 어때요?" 죠디는 걱정스러워하며 그를 보았다. 적어도 이 작은 집이 있는 한, 벌도 편안히 청결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저 무뚝뚝한 간호원은 참을 수 없구나." 간호원이 나가자, 벌은 말했다. "오늘밤도 그녀가 또 오니?" "당신이 싫다면 부르지 않을게요." "토미와 리사는 밤에 내 곁에 있었단다. 누군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요." "안 돼요, 필요해요. 브레이크 씨가 어제 저녁 이곳에 와서 간호원을 불러 주었어요. 당신 혼자 이곳에 자게 할 수 없대요, 벌.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에 드는 다른 사람을 찾아야겠군요." 그러나 의사가 오자, 의사는 곧 벌을 입원하도록 제안했다. "그것은 좋아요." 노인은 곧 동의했다. 그러나 벌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죠디는 그가 모두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하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그것보다도 벌을 성 안으로 옮기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해요."


죠디는 조용히, 그러나 힘을 주어 말했다. 그 단호한 태도는, 만약 볼 수만 있었다면, 그녀의 양부모들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방은 많이 있고, 모든 면에서 가장 좋아요. 나로서도 언제나 들러서 도와 줄 수 있는걸요." "죠디야." 벌 할아버지는 애정이 넘치는 웃음띤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 "정말로 고마워요, 이 아가씨야. 그러나 나는 병원으로 가고 싶어…" "나는 당신을 무리하게 병원으로 모시고 갈 수는 없어요." 죠디가 가로막았다. "그렇지만 가주지 않으신다면 나는 마음이 아파요." "곤란하구나…"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벌은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하니 정말로 죽어 버린 것처럼 보인다. "곤란한 건 없어요." 죠디는 살며시 중얼거렸다. "당신을 병문안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병원까지 가야 한다면 상당히 큰일이에요. 그렇겠죠?" "그것도 그렇구나…" 벌의 목소리는 작아져 사라지고, 그 입술은 전보다 더욱 파랗게 된 것처럼 보인다. 죠디는 심란해져서 서둘러서 의사를 불렀다. "정말로 중태인가요?" 입술을 벌리지 않고 말하자,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끄덕거렸다. "그러면 성으로 모시고 가지 않으면…" 죠디는 속삭였다. "병원에서 죽게 할 수는 없어요!" 코너가 동의해 주어 죠디는 몹시 기뻤다. 벌 할아버지에게는 호수와 산이 보이는 일층 방이 주어졌다. "당신, 정말로 친절히…" 죠디의 목소리는 끊어지며, 목이 메이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나에게 있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당신은 모를 거예요, 코너. 벌과 나는 무척 오래 전부터 친구랍니다." 코너는 표정을 부드럽게 하여 죠디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무척 다정하군요."


다정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둘이 앉아 있는 라운지로 로셀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야기는 중단됐다. "무척 좋은 것 같군요. 그렇게 보여요." 코너는 미소지었다. "네, 고마워요, 코너. 무척 좋아요. 이제 일할 수 있어요." "오늘은 하루 쉬는 편이 좋아요. 현재로서 급히 해야 할 일은 없다니까요." "고마워요." 로셀은 아무 제안도 받지 않았음에도 자리에 앉아서 다리를 꼬았다. 스커트의 단에서 미끈한 정강이가 보인다. "오늘 아침 노인의 병세는 어때요?" 그녀의 눈은 코너를 쳐다보며 물었지만, 대답한 것은 죠디였다. "변함없어요." 죠디는 오히려 악화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벌이 완전히 나을 때까지 이 성에 머무르게 되었어요." "성이라고!" 로셀은 인상을 찡그리며 찬성하지 않는다는 표시를 했다. "호텔에 묵고 있다고?" "잘됐어요." 죠디는 이전엔 거만한 태도를 취한 것은 없었으며, 그럴 뜻도 없었지만, 이 때에는 오만한 울림이 음성에 나타나 있었다. "작은 집에 혼자 놓아 둘 수 없는 상태라면, 호텔에 두든가 입원시키든가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저 늙은 부랑자는 입원시키는 것이 적당해요." "부랑자라고?" 두 여자가 주고받는 대화를 아무 생각없이 흥미를 가지고 듣고 있던 코너가 로셀을 쳐다보았다. "당신은 그에 대해 그런 식으로 보고 있었나요, 로셀?" 온화한 느낌이 든 좋은 음성이었지만, 혀끝을 마는 듯한 아일랜드풍의 발음에는 그녀의 반응에 대한 놀라움이 나타나 있었다. 로셀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응석부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말해선 안 되겠지요. 지금은 이 성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그렇더라도 발작을 일으키기까지 일하고 있었다고 하는 평이 좋겠지요. 그렇지만 코너, 말씀드리겠는데요, 벌은 이제 저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물러나게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나는 몇 번이나 앉아서 쉬고 있는 것을 보고 피곤해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었어요. 어떤 사업이라도 일하지 않는 종업원은 쓸데없는 경비 지출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을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자는 곧 해고시켰어요." "벌 할아버지는 피곤해 하지 않아요!" 죠디가 고압적인 태도로 딱 잘라 말했다. 그 태도를 코너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나이에 비해서 굉장한 분이에요… 더구나 적어도 십 년은 건강할 텐데요!" "좋아요, 좋아요." 코너가 동조를 하였기 때문에 로셀은 몹시 당황했다. "그는 노은을 무엇인지 알고 있을 거요." 노병은 죽지 않고 … 그러나 벌 할아버지는 중병이며, 회복의 가능성은 그다지 없는 것 같다. 죠디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급히 눈을 깜빡거리며 눈물을 참았다. "토미의 집에 갔다올게요." 일어서면서 말했다. "벌을 데리고 올 때, 토미와 리사는 나에게 돕고 싶다고 말했어요." "내 차로 벌을 운반해 줄게요." 코너는 조용하게 말했다. "환자를 운반하기엔 토미의 차는 너무 작아요." 로셀은 힐끔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는 로셀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꽉 입술을 깨물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정말로 어리석군요!" 벌 할아버지를 무사히 호텔로 데려오고 안정시키고 나서, 잠시 후 죠디와 둘만이 남게 되었다. "벌이 죽었을 때 얼마나 많은 손님들이 불유쾌하게 여길지 생각해 봤니? 그것이 코너에게 얼마만한 폐를 끼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생각해 봤어? 나에게 발언권이 있다면 벌은 입원시킬 거야. 벌에겐 그것이 어울린단 말야!" "그런데 공교롭게도 당신에겐 전혀 발언권이 없어요."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목소리로 죠디는 다시 말했다. "벌 할아버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하는 것은 나예요." "어떻게 살살 구슬렸는지 알 수 없지만, 너의 어리석은 생각에 잘도 코너를 찬성하게 만들었구나. 그를 훨씬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여기고, 유치하고 머리가 나쁜 어린애가 말하는 대로 할 것 같은 사람일 줄은 생각지도 않았어!"


"머리가 나쁘다고?" 죠디는 흥분하여 격렬하게 노려보았다. "내가 머리가 나쁘다고 코너가 말했어요?" 잠시 주춤하다가 입술끝으로 조소하듯이 로셀은 말했다. "응, 말했어. 정말로 그랬는걸. 아버지는 즉시 그것을 알아차리셨지.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너에게 일을 거들어 달라고 하지 않으신 거야." "내가 당신보다 훨씬 어렸기 때문…" 죠디는 항의했다. 코너가 자신에게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였다는 사실은 마음에 크게 사무쳤다. "어떻게 일을 도와 줄 수 있겠어요?" "나는 열여섯 살 때부터 도와 드렸어."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반론한 것은 없다. 또 잠시 틈을 두다가 로셀은 조소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때, 너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을 테지?" "아무 것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조용히 위엄을 가지고 대답한 죠디에게 나이 많은 여자는 노골적으로 후회하였다. "좋다면 나는 벌 할아버지의 옆에 잠시 붙어 있고 싶어." "무엇인가 기적이 일어나 좋게 된다고 해도, 우리들은 벌이 직무에서 물러나는 것을 바라보게 되겠지." "직무에서 물러난다고…" 죠디는 분하여 볼을 붉게 물들이며 숨을 헐떡거렸다. "이제 한 번 더 당신에게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군요. 나는 이 호텔의 반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벌 할아버지의 신상 및 거취에 대해선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어요! 로셀, 당신에겐 전혀 말을 할 권리가 없단 말예요!" "곧 발언권을 갖게 될 거야!" "당신이…?" 질문이 입까지 나왔지만 로셀에겐 물어볼 수 없었다. 대신에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 아직 기억하고 있겠죠? 내가 결혼하면 터로우는 이 호텔의 경영에 대해 발언권을 갖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되면 당신이 코너와 결혼하게 된다고 해도 우리들 네 사람이 서로 토론해야 될 거예요." 로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꽉 다물고 분노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벌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잠시 있다 죠디는 계속 말했다.


"아직 당신으로선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이 이상 당신이 그에게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해요. 그에 대해선 멍청히 있어 줘요." "너, 정말로 벌이 소생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니?" 로셀이 경멸이 섞인 태도로 계속 말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만둬, 죠디. 언제나 너는 자신을 속여선 안 된다고 말했었잖아? 나와 똑같이 이제 벌은 가능성이 없다고 너도 알고 있으면서 인정하지 않는군." "살아 있는 동안은 희망이 있어요!" 죠디는 완강히 말했지만 벌 할아버지의 절망적인 상태로 인해 더 이상 바보취급을 받지 않으려고 큰 걸음으로 나왔다. 목요일에는 보통 때처럼 터로우가 왔지만, 오늘은 밖으로 외식하러 나가지 않고, 성에서 특별히 개최한 <중세의 연회의 시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것은 호텔이 주로 미국인 손님을 대상으로 여는 것으로 이백 명 이상 숙박객 전원의― 구할이 참가했다. "미국인은 이런 종류의 모임을 매우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중세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에스터가 그렇게 말했다. "열광적인 팬이 있습니다. 모두가 전통 의상을 입고, 각자가 중세 사람처럼 분장을 하는 거예요." 죠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든 손님에게 나누어 준 팜플렛에는 '연회에 참석하여 무언가의 역할을 연출하는 자는 적합한 의상이 준비되어 있다'고 쓰여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스톤에서 온 삐어스라는 손님은 부부가 남작 부부의 역에 뽑혔다. 다른 많은 손님들과 똑같이 아일랜드인을 선조로 가진 부부는 모두의 이름이 들어 있는 상자 속에서 자신들의 명찰이 나왔을 때에 대단히 기뻐했다. 남작 부부는 이런 모임에 사용되는 커다란 홀의 한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긴 테이블의 중앙에 정장하고 앉아 있기로 되어 있다. 그 테이블은 한 단 높은 단상에 있고, 이 가장 중요한 두 인물 외에 계단에 익숙한 상류의 한 신사 숙녀가 앉기로 되어 있다. 매우 갑작스런 일이지만 죠디와 코너, 로셀과 터로우도 이 높은 위치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 이외의 사람들은 조금 낮은 위치의 테이블에 앉았다. 시골 아가씨로 분장한 웨이트리스가 하얀 턱받이를 갖고 와서, 갈채와 폭소 속에서 손님들의 목에 꼭 묶어 주었다. 스프는 갈색 나무 그릇에 담아 나오고, 메인코스의 육류 요리는 나무 도마에 놓여 나왔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손님은 손으로 먹지 않으면 안 된다. 식사하는 동안 끊임없이 벌꿀주가 나오고 향기로운 붉은 포도주도 서비스되었다. 술은 마시는 대로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연회장에는 진정한 중세 같은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더구나 꽃을 곁들인 촛불에 비쳐진 작은 무대에서 중세의 고대의상을 입은 남녀


각각 두 사람과 네 명의 악사들이 연주하고 있는 하프와 광대의 분장을 한 코메디언도 웃음을 더해 준다. "멋지군!" 죠디는 언제나 레스토랑에 있을 때와는 마치 달라 보이는 아가씨들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무심결에 탄성을 질렀다. "코너, 이런 일은 종종 하나요?" "이전만큼 많이는 하지 않게 되었어요, 유감스럽게도." "이 주일에 한 번씩 해야겠어요. 그렇게 하면 모든 손님이 참가할 수 있게 되지 않겠어요?" "그렇죠. 정말로 당신이 말하는 대로예요." 터로우가 말하자, 로셀이 살짝 끼어들었다. "코너, 이런 개최는 그렇게 자주 한다면 가치가 없어져요. 더구나 비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세요. 이런 대연회를 하려면 보통 때 레스토랑의 메뉴를 낼 때보다 굉장히 많은 비용이 들 것이 틀림없어요." 죠디는 남작 부인의 옆좌석에 앉아 있었지만, 곁눈질로 로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런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던가! 양아버지 필립이 그녀에게 사업의 경영을 맡겼던 것은 굉장히 현명한 행동이었다. 돈도 시간도 무엇 하나 헛되이 쓰지 않는다. 로셀이 말한 대로

호사를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라고

그녀가 인정한

종업원은

모조리

해고되었다. 그것이 지금 돈을 절약하기 위해 이런 즐거운 연회를 줄이고 간격을 길게 하려고 하고 있다. "나는 죠디와 같은 생각입니다." 터로우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들은 이 주일에 한 번 정도 연회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더욱 많은 손님에게 참가할 기회를 줄 수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의견이 차이가 있는 것 같군요." 라고 로셀이 긴장해서 말했다. "코너,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다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코너는 손가락을 들어 평민의 아가씨 차림을 한 웨이트리스 한 사람을 불렀다. "남작 부인에게 좀더 포도주를 갖다 드려요." "알겠습니다, 즉시 갖고 오겠습니다." 소녀는 방긋 웃으며 무릎을 살짝 굽히고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정말로 유쾌하다."


고귀한 남작의 의상이 딱 들어맞는 삐어스 씨는 성의 주인이나 극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을 듣고 계시던 남작이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두드리자 하녀 한 사람이 뛰어와서, "전하, 무엇을 해드릴까요?" 평민의 언어로 물었다. "좀더 고기를 가져오너라!" 모두 와르르 웃었지만, 로셀만은 양미간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죠디는 그녀가 여전히 연회의 비용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디저트가 배달되고 사람들이 포도주 잔을 놓고, 이 연회를 위해 특별히 초청한 열 명 남짓한 예술가들의 쇼를 보고 있었을 때, 또 비용 이야기를 꺼냈다. "코너, 비용은 상당하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싱글벙글 웃고 있는데 로셀 혼자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 남작 부인이 힐끗 쏘아보자, 로셀이 얼굴을 붉혔다. "비용이 들어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 거예요." 터로우가 침착하고 예의바른 목소리로 말했다. "죠디와 내가 결혼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이런 연회를 더욱 자주 열 거요." 죠디는 숨이 막혔다. 힐끗 남작과 남작 부인을 보았지만, 두 사람 모두 가수가 노래하는, 제멋대로 밝고 명랑한 노래에 몰입해 있어,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안도의 숨을 쉬었다. 가수가 노래하면서 부인역을 하는 배우의 배를 두들기자 짤그랑짤그랑 하고 금속성의 소리가 나서, 손님들은 크게 웃으면서 한꺼번에 떠들어댔다. "그러면 당신은 이곳의 경영방침을 바꾸길 원하고 있나요?" 코너는 빈정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내가 인정하리라 생각하고 있는 거요?" "만약 내가 당신의 파트너의 남편으로서 성에 들어온다면 그럴 예정입니다, 브레이크 씨. 당신은 변경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코너의 입 주위에 붉은 힘줄이 솟아나왔다. 죠디는 터로우가 말한 것이 두려워서 서둘러서 그의 시선과 마주치려 했지만, 그는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이 피하는 것처럼 눈을 그녀의 쪽으로 향하지 않고 엷은 미소조차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는 모두 찬성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이 침체해 버립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당신, 조금 앞서서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로셀이 오만한 태도로 물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죠디와 당신은 아직 혼약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네, 한 거나 다름없어요." "그러면 죠디의 반지는 어디에 있나요?" "그 속에." 터로우는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말을 강조하려는 듯이 조용히 침묵했다. 코너는 모든 것을 초월하고 있는 것 같은 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앞으로 그가 독재 경영자가 못될 거라는 생각에 걱정이 되어 괴로워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죠디는

슬픈

듯이 양미간을 찡그리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터로우는

척척

일을

진행시킨다. 이제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을 고백하는 것 외에 난국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이런 책략이 장난이었다는 것을 알면, 코너는 어떻게 될까? 죠디로서는 생각하는 것조차 끔찍한 일이었다. "터로우." 겨우 그의 귀에 속삭일 기회가 오자 불안한 기분으로 말했다. "코너에게 그런 식의 말을 하지 말아요." "그렇게 생각해요." 젊은이는 얼굴에 무척 만족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밤은 사실은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연회가 끝나자, 곧 죠디는 모두에게 간단히 안녕히 주무시라고 말하고, 할아버지가 푹 잠들어 있는지 어떤지 보러 갔다. 죠디는 자신이 직접 벌을 돌보겠다고 말했지만, 코너는 아무래도 간호원을 고용해야 한다고 반대하였다. 그리고 벌의 방의 옆방에 간호원이 묵을 수 있게 했다. 죠디가 올라갔을 때는 늦었기 때문에 간호원은 이미 방에 돌아가 자고 있었다. 거의 소리나지 않게 문을 열고, 살글살금 양탄자를 밟아서 침대 옆으로 걸어갔다. 벌의 손가락이 커튼을 열어젖혀 있고, 달빛이 방에 넘쳐 흐르고 있다― 벌은 커튼이 쳐 있으면 갇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싫다고 하였다. 죠디는 자고 있는 노인을 내려다보고 몹시 비참한 기분에 둘러싸였다. 이미 십이 년 이상 동안, 그만이 유일한 친구였다 ― 랏슈우드에 오고부터는 새로운 친구 코너가 생겼고, 지금은 터로우도 있다 … 그러나 이제 코너는 확실한 친구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로셀과 결혼한다면, 어떻게 코너의 친구일 수 있을까? 벌 할아버지가 몸을 움직이면서 눈을 떴다. "죠디 아니니?" 벌은 가냘프게 중얼거렸다.


"지금 몇 시나 됐니?" "열두 시 넘었어요." "파티는 좋았니?" "멋있었어요. 모든 것이 나에게는 신기한 것뿐이었어요." "그렇다면서 슬픈 듯한 얼굴을 하고 있구나, 죠디야." "당신이 낫게 된다면 나도 나을 거예요." 죠디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노인은 미소지었다. "나는 열심히 힘을 내서 낫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그렇지?" "그래요. 힘을 내요, 벌." "잘 자라, 죠디야." 벌은 말했다. "푹 자요." "지금 괜찮아요?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무언가 마실 거라도 필요없어요?" 벌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아무 것도 필요없어요, 죠디. 잘 자요." 그가 흙으로 돌아갈려고 한다고 생각하자, 죠디는 갑자기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재촉받고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코너의 스위트룸으로 달려가서 문을 두들겼다. 코너는 곧 나왔다. 언제나처럼 키가 큰 핸섬한 얼굴에 걱정하는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벌 할아버지가…" 죠디의 목소리는 떨렀다. "벌이… 나빠요. 나는 그렇게 생각돼요." "가봅시다." 코너는 등 뒤의 문을 잠그고 말했다. "어째서 몸이 나빠졌다고 생각한 거요?" "나를 멀리하려는 모습이…" 코너는 눈썹을 올렸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것 아닌가요?" 그러나 죠디는 고개를 흔들었다. "침대에서 나오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쭉 침대에 있었던 것 같은 모습이었어요. 코너… 만약 말예요… 만약, 벌이 죽는 것은 아닐까요…?"


"죠디, 됐어요. 그런 도움도 되지 않는 추측을 하여 자신을 괴롭힐 것은 없어요. 벌 할아버지는 아직 살아 있어요. 전문가의 치료를 받고 있고, 설사 의사선생님이 고개를 젓는다 해도, 우리들이 희망을 걸어서 안 될 이유는 없어요. 알겠지요?" "우리들…" 갑자기 죠디는 눈을 반짝거리면서 아무런 주저함 없이 손으로 코너의 소매를 잡았다. "코너, 고마워요. '우리들'이라고 말해 줘서요. 그것은 당신도 벌 할아버지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인걸요." "물론 걱정하고 있어요." 코너는 말로 할 수 없는 다정함을 담고 대답했다. "벌 할아버지는 가장 매력적인 분이오. 이곳에 와서 곧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분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죠디는 한 번 더 말했다. 머릿속에는 노인에 대해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는 로셀을 가물가물 떠올리고 있었다. 10 여름 밤에 뜬 달은 하늘 높이 떠 있고, 죠디와 코너가 호반을 거닐면서 들이마시는 공기는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그러나

드넓게 펼쳐져

고요에

잠겨

있는

자연과는

대조적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두려움 정도로 코너의 모습에는 긴장감이 가득차 있다. 죠디는 칼날 위를 걷고 있는 심정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음에 일어날 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을? 텍사스로부터 왔다는 두 미국인 투숙객, 랜들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나눈 후에 왜 그는 죠디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는 것일까? 랜들 부부와 라운지에서 함께 식사 전의 술을 마시면서 잡담을 하고 있던 죠디와 코너가 저녁을 먹으면서 화제를 계속 이끌어감에 따라 두 테이블을 연결시키게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죠디에게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더구나 로셀은 잠자리에 들어가 있었다. 병의 증세는 고초병(枯草病)이었다. 벌 할아버지를 진찰해 본 뒤, 로셀의 희망으로 왔던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 병이 생각했던 것보다 무거웠으므로 로셀은 화를 내고 있었지만, 죠디로서는 그녀가 일어나서 참석하지 않은 것이 참으로 기쁜 일이었다. 애당초 로셀이 설쳐대는 모습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이던가! 그것이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죠디는 몇 번이고 로셀이 없는 테이블의 빈 구석을 쳐다보았을 정도였다. "죠디, 함께 산보하고 싶은데."


라운지에서 커피를 다 마시고 랜들 부부가 지하로 내려간 뒤에 코너가 은밀한 어조로 제안했다. "좋아요, 코너." 죠디는 불안스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때 이미 함께 가자는 태도 속에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의도가 계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랜들 부부가 가버린 뒤 그의 변화는 눈에 뜨일 정도였다. 그것은 급히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태도가 담긴 심각한 얼굴이었다. 마치 무엇인가 굉장히 중대한 결정을 내리거나 엄청난 행동을 일으키려고 결의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밤의 대기 속으로 나오자, 미묘한 향내가 바람을 타고 감돌고 있다. 벌써 가을이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나타내는 나무들의 향내였다. 성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뒤로 하고 걸으면서 코너의 팔이 깃털처럼 가볍게 미끄러져 그녀의 팔을 잡아 감싸는 것을 느꼈다. 꽉 단단하게 이제는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듯이… 마치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처럼 단단하게 감싸쥐었다. "코너." 억지로 침묵을 깨려는 듯이, 마침내 우물쭈물하면서 죠디가 입을 열었다. "어째서 나와 함께 밖으로 나가고 싶었죠?" 코너는 흘끔 옆눈질을 했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심결에 일순간에 잡아쥔 손을 풀어 놓은 후, 한층 강하게 다시 쥐었을 뿐이었다. 죠디는 당혹해 하며 양미간을 찡그린 뒤 다시 정적을 깨뜨렸다. "듣고 있는데 대답해 주지 않을 거예요?" 나무로 뒤덮여서 밖에서는 전혀 누구도 보이지 않는 호수의 언덕에 오르자, 코너는 잡고 있던 손을 늦추며, 드디어 얼룩얼룩 그림자가 어려 있는 공터에 와서 멈추어 섰다. 달빛에 빛나는 크리브 호수는 수건에 은빛으로 빛나는 레이스 같은 주름과 별을 거울처럼 맑게 비추이고 있다. 경치 중에서 유달리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하늘에 그림자를 비추고 있는 산들이었다. 검은 산들은 오랜 옛날부터 우뚝 솟아 있지만, 오늘밤은 도깨비처럼 두렵고 조용하게 보인다. "죠디…" 코너의 목소리는 낮았으며 특히 아일랜드풍이 강했다. "당신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요 ―

그러나 짐작은

가리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죠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이 이렇게 바싹바싹 마르지 않으면… 신경이 이렇게 심하게 긴장되어 있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라고 바라면서. "네에, 그렇지만…"


"결혼이라니, 죠디 ―

정말 어리석어요! 당신은 터로우를 사랑할 수 없어요. 도대체

당신을 약혼에 동의하게 한 것이 무엇이냔 말이오?" "그를 사랑하고…" 그녀의 거짓말은 코너가 가볍게 그녀를 흔듦으로써 중단되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는 단호히 말했다. "당신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거야!" "나로서는 무슨 얘기인지 전혀 알지 못하겠군요…" 죠디는 우물우물거렸다. 당황한 나머지 그녀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당신,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고 있는 거예요?" "알게 해 주려고 하고 있어요. 어린애에게…" 죠디는 고함을 쳤다. 분노와 고통이 뒤섞여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에 대해 그런 식으로 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잖아요!" 코너는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죠디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래요. 당신은 이제 어린애가 아니오…" 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그의 손이 그녀의 몸의 선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고 따뜻하고 단단한 그의 몸으로 끌어안았다. 다정한 키스, 목에 스쳐 닿는 손의 부드러운 감촉. "손을 나의 머리 뒤로 돌려요, 죠디." "나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했었지요?" 죠디는 이제 한 번 더 물었다. 목소리는 눈물에 젖어 있었다. "말해요! 무엇인가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분명한 것을 얘기해요!" "너를 사랑해, 죠디." 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죠디는 몸을 뒤로 빼고 떨어져 섰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다리가 자꾸만 후들후들 떨려온다. 위신경까지 심장의 고동소리에 동조하여 흔들리고 있다. "나는 믿지 못해요." 죠디는 말을 시작하다 중단했다. 진정이 아니었다면 왜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을까? "당신의 기분을 나는 잘 알겠어요." 나지막하게 코너는 얘기했다. "처음에 당신을 만났을 때, 당신은 너무 어려서 믿음직스럽지 않게 보였어요. 나는 본능적으로 당신의 보호자 역할을 다 하려고 생각했었지. 당신의 큰할아버지께서도 그것을

기대하고 계셨으리라고 생각했었지요. 키스를

했던

것조차

그러한

신뢰를


배반하는 행위였다고 생각하니, 마음속 깊숙이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어요. 나는 처음부터 쭉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것을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당신이 터로우와 혼약하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였지. 그것을

듣자마자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었잖아요." 왜 자신이 그의 이야기를 가로막는지 알 수 없는 채로 죠디는 말했다. "한때의 감정이라고 생각했었지." "내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거죠?" 분노 어린 말이 항의하는 훌쩍거림으로 변했다. "그것은 인정해요." 코너는 다정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가엾게 생각되었기 때문에, 로셀에게 눈을 돌림으로써 당신에게 나에 대한 관심을 잊게 하려고 생각했던 거요. 그것이 당신을 치유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로셀이 무척 맘에 들었다고 이야기했던 거예요." "나를 이해시켰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정말로 로셀을 좋아한 것은 아닌가요?" 심장이 큰소리를 내며 뛰어, 주위가 너무 조용했기 때문에 틀림없이 심장의 고동소리를 그도 들었으리라 생각했다. "종업원으로서는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그가 말을 했다.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이 달빛 아래에서 보인다. "저런 타입의 여성에게는 나는 전혀 마음이 끌리지 않아요." "그렇다면 당신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나란 말인가요?" 대답 대신에 그는 그녀를 감싸안고 얼굴을 숙여서 그녀의 입술에 다정하게 키스를 했다. "정말로 그래요." 겨우 그가 대답을 하였다. 죠디는 감동에 겨워 전신의 감각이 마비되는 것만 같아 아무 것도 말할 수가 없었다. 한참 사이를 두고 코너는 말했다. "나와 결혼해 주겠소, 죠디?" 죠디는 얼굴을 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믿을 수 없어요." 가느다란 그녀의 몸이 그의 가슴속에서 떨고 있었다. 그는 마치 지켜주겠다는 듯이 감싸안았다. "진정이군요. 물론 예스예요.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말을 잇지 못했다. 부끄러움으로 나중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말 대신에 천사와 같은 미소지은 얼굴을 그에게 보냈다. "사랑해요, 죠디." 한 번 더 코너는 머리를 숙였다. 죠디는 그의 입술이 다정하게 미끄러지면서 자신의 입술이 하라는 대로 합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몸 속에서 욕정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마구 솟구치게 북돋우는 것이 자신의 부드러운 몸매라는 것을 알자 전신이 오싹오싹했다. 두 사람은 함께 오랫동안 조용히 서서 떨어질 줄 몰랐다. 코너의 손은 그녀를 애무하고 입술을 빼앗으며, 목소리는 서로의 애정을 몇 번씩이나 확인시켜 주었다. 마침내 그는 그녀를 밀어뜨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 그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언제 결혼해 주겠어, 베이비?" "언제라도, 당신이 좋은 때에…" 죠디는 급히 말을 끊었다. 그리고 매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터로우는 어떻게 할까요… 나의… 그러니까 피앙세는…" "그것은 중대한 문제는 아니오." 코너는 오랫동안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그와 결혼하려고 했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군. 꼭 그것을 설명해 줄 수 있겠지?" "그것은… 일시적인 위안이었어요."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일부러 그의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나는 몹시 …

당신이 로셀에게만 정신을 빼앗겨서 나를 무시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것만의 이유로 그와 결혼하려 했던 거요?" 그는 의혹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갑자기 걱정이 되어 죠디는 마침내 눈을 들어 쳐다보았다. "그래요. 이유는 그것뿐이에요."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만약 사실대로 말하면 그는 그녀를 경멸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당신은 그와 결혼하려고 했단 말이오?" "나는… 그래요…"


"죠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돼요!" 죠디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앞에 서서 입술 가득히 키스를 하여, 그의 마음속에서 터로우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기를 원했다. 그런 행동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동안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의 팔 안에 몸을 내맡기고, 가슴이 눌려져서 몇 번이나 황홀한 순간을 맛보며, 그의 따스한 팔 안에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고동은 더욱더 세차졌다. 죠디는 격렬한 황홀감이 홍수처럼 밀려와 전신을 휩쓰는 데에 적극적으로 몸을 내맡기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공포를 느끼고, 자신도 생각지도 않게 그를 밀치고 도망쳐 나왔다. 검은 눈이 그녀의 상기된 얼굴을 미소지으면서 내려다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은 나와 결혼해야 돼. 정말로, 당장 말야!" 그가 부드럽게 살짝 목에 키스를 하며, 그의 손이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곧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알겠지?" 죠디는 머리를 끄덕거렸지만, 즉시 생각을 벌 할아버지에 대한 생각으로 미치자 심각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만약, 벌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얼마 동안 결혼하기는 힘들어요, 코너." 그리고 걱정스러운 듯이 코너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이해해 주시겠죠?" "물론 이해하고말고, 당신." 그는 부드럽게 위로하듯이 죠디를 껴안았지만, 갑자기 그녀의 몸이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죠디, 분명히 벌은 나이가 많아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는 충분히 주의해서 돌보아 드리도록 합시다." "벌은 일하지 않으면 급료를 받을 수 없잖아요." "무엇인가 다른 일을 시키면 돼요." "무척 자존심이 강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주의하겠소." "당신이란 분은 정말로 멋있는 분이에요." 죠디는 희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말, 그렇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해요!"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코너는 다정함을 담은 목소리를 낮춰서 대답했다. 죠디에게 있어서 일생에 기억될 만한, 미치도록 기쁨에 넘쳐 흐르는 간막극은 마법과 같았다. "나의 베이비, 이제 당신을 데리고 돌아가야겠어요."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코너의 목소리가 뛰어들어왔다. 죠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코너는 그녀의 손을 잡고, 천천히 달빛이 흐르는 성을 향해서 걸어갔다. 죠디는 침실로 들어가기 전에 로셀의 일을 기억해 내고, 이 뉴스를 듣는다면 얼마나 깜짝 놀랄 것인가 생각했다. 미친 것처럼 화를 낼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녀가 성을 나가기까지는 코너에게 접근하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곧 나가 버릴까? 코너가 로셀을 해고하는 일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는 로셀이 말하고 있는 것을 무엇 하나도 알지 못하며, 그녀에게 있어서 지금이야말로 그것은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 죠디는 알고 있었다. 확실한 것은 코너는 로셀의 종업원으로서의 능력을 신임하고 있는 것 외에는 아무런 흥미도 갖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부러 알려 주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잠이 들지 않은 채 생각은 코너에 대한 일, 벌 할아버지에 관한 일, 로셀에 관한 일로 옮겨가고, 오늘밤에 일어난 일을 안다면 터로우는 얼마나 놀랄 것인가 등을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마침내 생각은 희미해져 잠이 들고, 아침의 태양이 커튼의 문틈으로 비쳐 들어오기까지는 아무 것도 모르고 푹 잠들었다. 죠디가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서 처음으로 한 일은 벌 할아버지를 병문안하러 가는 것이었다. 놀랐던 것으로 벌은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아서 간호원이 준 밀크죽을 먹고 있었다. "무엇을 깜짝 놀라서 보고 있는 거냐?" 벌은 낄낄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스스로 나아서 보일 거라고 말했었잖니?" "벌…" 천천히, 아연해진 표정으로 죠디는 침대로 다가갔다. "병은 어떠세요?" "어떻게 보이니?" 간호원은 포동포동하고 상냥한 아주머니로 얼굴에 미소를 가득히 담고서 들어왔다. "이제 곧 완전히 나을 거예요." 자신에 가득찬 목소리였다. "일백 살까지도 살 수 있을 거예요― 더 많이 사실지도 모르지만요." "기적 같은 일이에요!" 두 가지의 기적! 어젯밤에 있었던 코너의 사랑의 고백을 떠올리면서 죠디는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요." 벌은 또 낄낄거리고 웃었다.


"내가 이제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만해욧!" 죠디는 벌에게 급히 부탁했다. "아아, 그렇지만 정말로 기적 같아요! 코너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겠어요." 목소리가 작아져서 사라짐과 동시에 죠디의 볼에는 홍조가 증가했다. "벌… 나 코너와 결혼할 거예요. 어젯밤에 코너에게 결혼신청 받았어요." "브레이크 씨가?" 벌은 엷은 자줏빛 눈동자에 놀라움이 나타났다. "그러면 죠디 아가씨야, 네가 걱정하고 있던 것이 모두 사라져 없어졌니?" 죠디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든 것을 벌 할아버지에게 고백해 버리는 것에 망설임을 느끼면서. "글쎄요, 결국 그가 사랑하고 있던 사람은 로셀이 아니라 저였어요." "모두 바보 같은 짓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니? 브레이크 씨는 무엇이든지 꿰뚫어보는 사람이야." 굉장히 과장하며 말했다. 엷은 색의 눈동자는 생기를 나타내며 입술에는 미소를 떠올리고 있다. 간호원이 만약 없었다면, 벌 할아버지를 그녀는 안아주고 싶은 기분이었다. 행복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고작이다. "할아버지, 당신이 회복되었다는 좋은 뉴스를 모두에게 알려주고 올게요. 모두가 당신에 대해서 무척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특히 브레이크 씨와 토미가 더욱더 걱정했어요." "그러면 가서 모두에게 '노병은 죽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오너라." "코너도― 똑같은 말을 했어요."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죠디는 코너만큼 낙천적이지 못했다. 벌 할아버지가 완쾌되었다는 뉴스가 곧바로 퍼졌다. 의사는 들어와서 침대 옆에 서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분의 의지력이 이긴 겁니다." 성을 떠날 때, 의사는 코너에게 말했다. "실은 절대로 회복되지 않을 거라고 단념하고 있었거든요." "본인이 생각하고 있는 만큼 격렬한 노동은 확실히 불가능할 거예요. 그러나 그 사람은 가만히 눌러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도 말하고 싶었어요." 죠디가 걱정스러운 듯이 끼어들어왔다. "그에게 무엇인가 일을 시켜 주시겠죠, 코너?"


코너는 금방 빙긋이 웃었다. 아무래도 죠디가 말하는 것은 어떤 것일지라도 거절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무엇인가 쉬운 일을 찾아 주겠소." 코너는 약속했다. "그것도 호텔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로 말이오." 로셀이 아침식사 테이블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죠디는 어떤 상태인가 보러 가서, 아침식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물어보지 않으면 나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걸어 커피와 토스트를 주문해." 죠디가 물어보자, 로셀은 대답했다. "그리고 코너에게 오늘 하루만 쉬면 내일 아침에는 필시 나을 거라고 전해 주겠니?" "그래요, 그렇게 말해 놓을게요." "당장 코너도 병문안하러 와 줄 거라고 생각해. 어젯밤에 왔을 때 무척 걱정하고 있었어." "어젯밤이라고?" 죠디는 자신도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물어 버렸기 때문에 어떤 대답을 할런지 몹시 흥미가 일어났다. "잘 자라고 말하러 왔었지. 당연한 일이잖아." 이제 죠디의 귀도 몹시 익숙해진 저 오만스런 말투였다. 푸른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비웃고 있다. 죠디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는 로셀을 쳐다보았다. 이런 식으로 잠자리에 들어 있어도 그녀에게는 어느 곳인지 우아한 모습이 있다. "언제쯤 잘 자라고 말하러 왔었는데?"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음… 그러니까 10 시인가, 10 시 반 경이었던 것 같애." "그 무렵, 코너는 나와 함께 있었는데." 죠디는 태연하게 말하고, 로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조금 더 늦었는지 모르겠어." 불과 잠깐의 사이를 두고 로셀은 말했다. "커피와 토스트를 시켜 달라고 말했었잖아." 죠디는 수화기를 들어올려 룸서비스 담당자를 불렀다. "그밖에 무엇인가 시키지 않아도 돼, 로셀? 계란이나 베이컨은?" "필요없어." 로셀이 침대 위에서 몸을 뒤로 젖히며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 듯하며 죠디를 곰곰이 쳐다보았다.


"너, 오늘 아침 무척 만족스러운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구나. 무슨 일이 있었니?" "벌 할아버지가 용수철처럼 다시 건강해졌어요." "벌이…" 로셀은 눈을 크게 뜨고 눈썹을 찡그리며 입을 딱 벌리고 말했다. "정말이야? 이제는 절대로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더군다나 의사 선생님은―" "희망은 버릴 것이 아니야! 벌 할아버지는 앞으로도 몇 년이나 더 살 수 있어." "그래, 벌 같은 사람이 몇 년 더 이곳에 있다는 것은 곤란해." 로셀은 거리낌없이 말해 버렸다. "코너에게 충고를 하지 않으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코너는 사업경영을 잘 알고 있어요, 로셀. 그도 나도 이제 더 이상 당신의 말참견을 받고 싶지 않아." "주제넘게 말하지 말아! 네가 코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잠시 사이를 두고 조용하게, 자신만만하게, 더구나 약간의 악의도 느끼지 않게 죠디는 말했다. "코너는 이제 곧 나의 남편이 될 거야. 벌 할아버지가 생애를 마칠 때까지 이곳에 있기를 바란다는 것을 얼만큼 내가 원하고 있는지 코너는 잘 알고 있어요." "코너가 당장 너의 남편이 될 거라니?" 로셀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가만히 무섭게 쏘아보았다.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없어져 간다. "나를 향해서 그런 말을 했겠지. 코너는 너를 여자로서 보고 있지도 않아!" 말의 강함과는 반대로 그 상태는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 로셀은 말했다. "너가 말하는 것 따위는 믿을 수가 없단 말야… 이 거짓말쟁이 계집애야!" "거짓말 따위는 하고 있지 않아." 죠디는 침착하고 위엄을 가지고 다시 말했다. "코너는 나를 사랑하고 있어요.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어요." 코너와 혼약했다고 듣는다면 로셀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죠디는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표독스럽고 증오에 찬 표정을 그녀의 얼굴에 나타내리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간사하고 악독한 주름살진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것을 보고 가는 죠디의 전신에 오싹 한기를 느꼈다.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갑작스럽게 독기가 서렸다. 불안한 심정이 죠디의 등살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로셀이 생각하는 바를 이제부터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을 기다리며 죠디는 한숨을 쉬었다. 아름다운 입술이 비웃는 듯이 일그러지고 푸른 눈이 죠디의 몸을 파헤치는 듯이 구석구석 핥고 지나갔다. "그래, 그가 너에게 프로포즈를 했다고? 그가 그 정도로 어리석다고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어. 그는 지금 상당히 갈팡질팡하고 있구나. 누군가 모르는 자가 딴 곳에서 끼어들어와서 자신이 하는 일에 말참견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로셀은 말하는 것을 중지하고 이제까지의 일을 기억해 보려는 듯이 볼에 깊숙이 주름을 지으며 천천히 곧 무엇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몹시 걱정하게 된 적이 있었지. 다른 남자가 개입해 들어와서 이 호텔의 경영방침에 대해 말참견하는 것 따위를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고. 어쩌면 코너는 그런 일을 미리 막기 위해서 가장 좋은 해결방법을 생각해 냈던 것 같애." 업신여기는 듯한 웃음소리 뒤의 정적 속에서 죠디는 눈물 어린 목소리로 반론을 펴려고 했다. "거짓말이야! 샘이 나니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야. 코너는 그렇게 지독한 사람이 아니야…" "자신이 없겠지, 너는?" 로셀은 바보취급하며 경멸하듯 말했다. "너는 코너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겠지만, 이유가 분명한 거 아니야? 코너가 너와 결혼하겠다는 것은 터로우에게 호텔의 경영에 대해 참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일 뿐이야. 너를 아내로 삼는다면 무엇이든지 그의 생각대로 움직일 테니까―" "그만해!" 죠디는 소리를 지르며 문 쪽으로 뛰어나갔다. "그런 것은 모두 거짓말이야! 네가 말하는 모든 것은 다 거짓말이야!" "꼴좋게 코너의 입바른 소리에 넘어간 것 아니니?" 로셀은 천장을 바라보고 웃었다. "어리석은 천치야! 너에게는 머리가 없단 말야, 아버지께서 말씀한 그대로야!" "만약에 그렇게 생각했다고 해도, 그는 생각한 것을 그런 식으로 말할 사람은 아니야." "이제 그만 가주어. 너 같은 어리석은 아이하고 더 이상 이야기한다는 것은 이제는 넌더리가 나. 그리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결혼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야. 그래서 너의 신상과 너의 상속재산이 어떻게 되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라고!"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난 그 사람과 결혼할 거야."


로셀에게 반론할 틈도 주지 않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일 보 복도로 걸어나오자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로셀이 말하는 대로일 거야, 죠디야. 넌 커다란 바보야. 코너가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믿어 버리다니. 지금에 와서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무엇이든지 로셀이 말한 도식 그대로의 입장에 처해져 있음을 느꼈다. 죠디가 터로우와 결혼할 예정이었다고 생각했다고 하면 코너가 이런 식으로 처리하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이치에 닿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는 터로우와 결혼할 거라고 믿었는가? 코너에게 질문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 내며 그녀는 코너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터로우를 사랑할 리가 없다고 확신에 차서 그가 단정하듯이 말했던 것을 다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의심이 간다. 터로우를 만나서 이야기해 보려고 죠디는 그렇게 결심하고서 눈물을 닦고 전화가 있는 곳으로 갔다. 왜 갑작스럽게 만나고 싶어졌는지 물은 후에 터로우는 오후에 콩그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 일어나서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어졌어요." 전화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지만 그것이 터로우의 불만의 원인이 되었던 것 같았다. 죠디는 걸어서 마을까지 가, 터로우가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한 찻집에 들어갔다. 들어갔더니

터로우는

어떻게

일인가

추궁하는

듯한

눈으로

오랫동안

유심히

쳐다보았다. 죠디가 자리에 앉자, 터로우는 홍차와 버터 바른 둥근 빵을 주문했다. "코너에게 프로포즈를 받았어요." 죠디는 서론도 없이 곧바로 말했다. "어젯밤의 일이었지만…" "거짓말이다!" 터로우는 깜짝 놀라며 말을 가로막았다. "어떤 반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작전을 세웠지만 그런 방법까지 사용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지배권을 장악하려고 하고 있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개입하여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군. 그래요. 확실하게 우리들은 덫을 걸어 두었죠. 오직 한번만 그를 로셀로부터 떼어내려고 했었죠!" "당신… 그가… 단지… 호텔의 지배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서 나와 결혼할려고 한다고 생각해요?" 죠디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으로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자신이 떨고 있는 것이 눈에 띄고 있지는 않은가 의심했다. 마음은 납처럼 무겁다. 정신은 이것보다 더 떨어질 데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가라앉아 있었다.


"당연한 일이잖아요?" 침묵한 채로 죠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마나 바보천치 같은가! 너는 둔감하다고 말한 로셀의 말은 옳았다. 그리고 코너는 … 아무리 보아도 그런 일을 할 것 같은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 그렇지만 저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당신, 그와 결혼할 생각이에요?" 터로우는 성급하게 묻고, 죠디가 즉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의미 깊은 듯이 계속해서 말을 했다. "코너는 나에 대해서 무어라고 말하나요? 어쨌든 당신과 나는 혼약을 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말이오." "내가 당신과 헤어지리라는 것은 반드시 틀림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죠디로서는 그렇게 대답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런가요? 그러면 그와 결혼할 예정이었단 말이오?" 터로우는 다시 한번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부르르 몸을 떨면서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죠디, 당신은 그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한다면 간단해요." 터로우의 목소리는 그녀의 손 위에 포개어 놓은 그의 손과 같이 부드러웠다. "코너라는 분은 좋은 사람일 거요. 틀림없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거요."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만으로는 싫어요." 목소리가 부르르 떨리고 있다. "그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소?" "네." 죠디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말했어요." "그렇다면 틀림없이 그것은 진심에서 말한 것일 거요." 터로우는 이마에 주름을 지면서 생각에 잠겼다. 한참 뒤에 그가 입을 열었다. "이러한 국면이 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었는데, 그렇지 않아요? 호텔의 완전한 지배권을 지키는 것만이 목적일 거라는 결론에만 단순하게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군요. 우리들은 어찌됐는지 그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지배권을 쥐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말이오. 그러나 그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일까요?" 죠디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로셀이 말했던 그대로예요. 코너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나를 이용하려고 하고 있는 거예요." "로셀이라고?" 로셀이란 말에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듯 날카롭고 재빠르게 물어보았다. 죠디가 로셀이 이야기했던 것을 전부 이야기하자, 터로우는 양미간을 찡그리며 그의 주름살은 더욱더 깊어지고 입도 점차로 무겁게 닫혀져 가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있는 곳으로 왔던 것은 먼저 로셀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인가요?" "그래요.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게 되었어요." "그리고 로셀에 의해 이미 마음속에 심어져 있던 의혹이 더 한층 강렬하게 되었단 말이군요." 이때 터로우의 목소리는 분노가 피어올라 있었다. 그 자신을 향하여 일으킨 분노였다― 그러나 그의 분노도 이제 곧 사라지고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보통 때와 같은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로 되어 있었다. "코너와 결혼하세요, 죠디… 그리고 행복해질 겁니다."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믿을 수가 없어요!" "그와 결혼하겠다고 나에게 약속해 주세요." 터로우는 죠디의 가느다란 어깨를 꽉 눌러 잡았다. "약속해 줘요, 지금 당장에." 죠디는 잠시 동안 생각을 했다. 로셀이 나에게 불어넣은 악의에 가득찬 의혹의 그림자에 영향을 받아서 코너 브레이크의 프로포즈를 거절한다면, 그것은 로셀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약속하겠어요." 죠디는 결의를 가득 담고서 힘차게 대답했다. "정말, 나 그와 결혼하겠어요." "로셀, 내가 코너와 결혼하게 된다면 당신은 이곳을 떠나버릴 테지?" 죠디가 물었던 것은 로셀이 코너에게 사표를 제출할 거라고 강력히 기대하여 삼 일 간을 기다린 후의 일이었다. 죠디가 성벽의 골짜기에 있으면서 호수의 섬들 중의 하나로부터 마침 하얀 유람선이 출항하려는 것을 보고 있었을 때, 로셀을 만났다. "아니, 떠나가지 않을 테야."


라는

대답이

즉시

들려왔다.

그것도

의기양양하게

아주

오만한

태도를

보이며

내동댕이치듯이 내뱉아진 말이었다. 죠디는 적지않게 당황하여 마음이 동요하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만약에 코너가 너와 결혼한다고 해도 육 개월도 가지 못할 거야. 나는 곁에 있으면서 너희들의 파국을 지켜보아 줄 테야." 로셀은 조금 말을 끊고 다시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코너를 만나서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한다면, 아마 결혼은 취소되고 말 거야." "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다는 거야?" 아무 것도 거리낄 것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등 뒤에 공포감이 흐르는 것 같은 전율을 느끼며 죠디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으면서 허세를 부리는 듯한 점이 있었다. "너와 터로우는 코너와 나와의 사이를 떼어 놓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 아니야!" 갑자기 자제심을 잃어버리고 오로지 질투심과 증오의 감정으로 섞여 있는 로셀의 눈동자가 아주 새까맣게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인정하란 말이야!" 무시무시하게 위협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정하지 못하겠어? 너와 터로우는 처음부터 결혼할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고 말야. 너희들 둘이서 공모하여 억지로 코너에게 결혼의 약속을 하게끔 했던 거란 말야! 그렇다고 해도 터로우는 영리한 남자야. 당장에 이것은 그 남자가 꾸민 것이라고 알았단 말야― 그렇게 새빨간 거짓말쟁이가 된 거지, 이 어린 계집애가 말야! 너는 언제나 스스로 정체를 폭로해 버리기 때문에 그렇지 않니?" 로셀은 말을 중단했다. 감정이 너무 격렬한 나머지 입술이 원래의 모양으로 갖추지 못하고 일그러져 있었다. "코너를 위협해서 무엇인가 행동을 취하려고 한 음모란 말이야! 그는 나와 결혼할 예정이었어! 그런데 너의 음모 때문에 그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어. 그렇지만 너의 음모에 대해서 모두 말해 준다면, 다시 나와 결혼하게 되겠지." "당신… 정말로 말할 예정… 악랄하군." 죠디는 입술을 깨물며 부르르 떨었다. "코너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어. 그것은 틀림없이 진심이란 말이야―" "너와 결혼하겠다는 진정한 이유를, 그가 자기 입으로 말할 리는 없잖니. 그렇게 생각되지 않니?" "경영권을 혼자서 쥐겠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는 증거는 없어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코너같이 명예를 존중하는 고결한 사람이 그런 비열한 일을 생각할 리는 없다고 생각해."


"그는 가장 사업을 우선으로 삼는 사람이야.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너와 결혼하는 것―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러나 내가 너에 대해서 잔꾀를 부리는 비열한 여자였다고 말해 준다면, 코너도 너와 결혼 따위 같은 것은 단념할 거야. 어차피 너에게는 터로우와 결혼할 의리 같은 것은 없으니까." "상당히 잘 알고 있는 것 같군…" 죠디의 목소리가 깜짝 놀라서 중단되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성벽의 틈바구니의 그늘에서 코너가 나왔다. 그 얼굴은 분노로 굳어져 있었다. 로셀은 이겼다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그와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지만, 몸을 움츠리면서 벽으로 달라붙으며 몸도 마음도 공포로 짓눌려 손의 솜털까지도 쭈뼛거리며 거꾸로 서는 것을 느꼈다. 그의 분노는 그녀에게 향하여 있는 그것이 틀림이 없다는 비참한 기분으로 생각하면서 로셀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을 다 들었어요, 코너?" 그녀의 어조는 어렴풋이 불안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자 죠디는 퍼뜩 알아차렸다. 표면으로는 냉정하고 승리한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의기양양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역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녀가 지껄여댄 것을 전부 코너가 들었다고 한다면, 그녀도 곤란한 입장이 되지 않겠는가? "성벽의 틈새에 있었나요?" 키가 큰 코너는 아무런 느낌없이 로셀의 예쁘장한 눈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그녀의 눈빛 속에서 이제까지 소홀하여 놓치고 있었던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는 듯한, 이상스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잠시 지나서 그는 잠깐 이상스런 몸짓으로 딱 벌어진 어깨를 조금 움츠리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모든 걸 다 들었어요." 코너는 눈을 내리깔고 있는 죠디 쪽으로 다시 향했다. "죠디, 당신과 나와는 둘이서만 서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그렇지만 당신이 쭉 듣고 있었다면, 코너." 로셀이 입술에 승리를 과시하는 듯한 교만한 웃음을 담고서 말을 꺼냈다. "당신이 속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아셨겠죠. 모든 계획을 가까스로 더듬어서 밝혀냈어요. 그 결과로써 당신이 사실을…" "로셀." 코너는 무서우리만큼 조용한 어조로 말을 막았다.


"관습상으로 사전에 예고를 하지 않지만 당신을 해고하겠소. 삼십 분 후에 에스터를 만나러 가시오. 그녀가 1 개월 치의 급료를 모조리 지불해 줄 것이오. 저녁식사하기 전까지 이 성으로부터 나가 주시오." 코너는 이렇게 말하고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기 때문에 로셀의 아름다운 얼굴이 극도로 증오심과 질투심에 의해서 일그러지는 것을 본 것은 죠디 혼자뿐이었다. "죠디, 함께 갑시다!" 코너는 엄숙한 태도로 죠디에게 말했다. "나의 서재로 갑시다." 등 뒤에서 로셀이 울부짖었다. "말해 주어요, 코너. 당신과 어느 쪽이 더 지독한가? 당신은 무척 지독한 남자예요. 나를 기만했어요." 팽팽한 실이 뚝 하고 끊어지는 것처럼 로셀은 울면서 무릎을 꿇었다. "믿고 있었는데 어쩌면 … 적어도 나는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었어요 … 죠디, 똑같은 여자로서 충고하겠어. 남자란 모두…" 몇 분 후에, 코너는 조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는 사실이냐고 물었다. "책략 말이죠?" 죠디는 고개를 푹 숙이며 끄덕거렸다. "당신과 터로우는 전혀 결혼할 뜻이 없었단 말이지?" 질문은 하면서도 그것은 동시에 생각하고 있는 것을 누르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알겠어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목소리의 상태 속에는 무엇인가 죠디의 심장의 고동을 조금 빨리 뛰게 했다. 숙였던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자 코너의 얼굴에는 모든 분노가 사라져 있었다. 죠디는 당황해 하면서 물었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 몹시 분노를 느끼고 있지 않나요, 코너?" "말해 봐요." 코너는 질문을 얼버무리면서 말했다. "그런 책략을 세웠던 이유는 무엇이오?" "말해야만 되나요?" "해야 돼요, 죠디." 죠디는 한동안 말이 없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일이었다. 코너가 그녀를 자신이 바라는 대로 하게 하는 것을 만족해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로셀 때문이었어요."


죠디는 입을 열어 이복언니가 이제까지 말하거나 해왔던 것을 모조리 다 이야기했다. 로셀이 말한 여러 가지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터로우가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듣고 나서 멋진 묘안을 생각해 냈단 말이군. 그가 당신의 남편이 될 사람으로서 섬에 들어와서 호텔의 경영에 이러쿵저러쿵 간섭을 하겠다는 묘안을 생각해 냈군요." 코너는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후에 나지막하게 웃었다. 그러자 죠디는 한 번 더 물었다. "화나지 않으세요?" "이리 가까이 와요, 사랑스런 죠디…" 라고 말했지만, 움직인 사람은 코너 쪽이었다. 그는 양팔로 다정하게 죠디를 껴안았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진심이오. 사실이에요. 그러나 당신이 나의 동기를 의심했던 것도 분명해요." "그래요, 의심했어요."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셀이 언제나 그렇게 말을 했으며, 대체로 그녀의 추측과 판단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이해해 주세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그도 로셀과 똑같은 생각을 했었어요. 당신이 나와 결혼하겠다는 것을 경영의 전권을 쥐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처음에는 말이지." 코너는 다른 말은 묵살했다. "그래요. 그렇지만 차차 시간이 흐르자,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면 틀림없이 그것은 사실일 거라고, 당신은 무척 훌륭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내가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면 그는 약속 같은 건 하지 못하게 했을 거라고 생각돼요." "정말로 머리가 좋은 청년이군. 그에게는 특별히 감사를 해야만 하겠군." 코너는 말을 중단하고 키스를 하고 나서 이상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어째서 터로우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지 않았던 것일까?" "사실은 처음부터 그는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당신을 위로해 주는 것만을 위해 서로가 교제를 해왔다는 말이오?" 죠디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끄덕거렸다. "누군가 옆에서 있어 주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코너." 죠디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따돌림을 받고 있는 것처럼 쓸쓸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그런 일은 두번 다시는 없을 거요, 베이비!"


그는 차갑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고, 양팔은 다정하게 보호해 주는 것처럼, 부르르 떨고 있는 죠디의 몸을 껴안았다. "내가 로셀을 비서로 채용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당신이 왜 그토록 당황했었는가를 지금에 와서야 겨우 알겠소. 아, 나의 여인이여, 어째서 나를 신뢰할 수 없었다는 거요?" "그때 당신은 나에 대한 사랑과 싸우고 있었잖아요." 죠디는 추궁해 들어갔다. "만약 그 때에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물론 당신을 신뢰했겠지요…" 잠시 입을 닫고서 사랑스러운 미소로 얼굴의 표정을 바꾸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쭉 당신을 신뢰하겠어요. 무척 사랑하는 코너, 당신은, 또한 당신만이 나를 사랑해 주고 나를 이해해 주는 분일 테니까요." 그렇게 말했을 때 벌 할아버지의 완쾌를 기억하고서는 이중으로 축복을 받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에 사랑해 줄 사람이 나타날 거요." 코너는 부드럽게 확언을 하였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알아차리고서 볼이 엷게 물들어졌다. 어린 아이들, 코너와 그녀의 어린애들이 이 아름다운 무대에서 태어나는… 어린 아이들, 사랑받는 어린 아이들이. "벌 할아버지는 우리들에게서 어린애가 태어난다면 대단히 기뻐할 거예요." 라고 죠디는 중얼거렸다. "할아버지는 인생을 통해 얻을 수 없었던 것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요." "그렇고말고.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얻을 수 없는 것은 없을 거요. 모든 것이 다 신의 은총이오. 오늘 아침 전화를 일찍 했더니, 의사 선생님은 간호원이 말한 대로라고 말하더군요― 백 살까지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고요." 그런 후에 코너는 이제 벌 할아버지에 대한 것도 어느 누구에 대한 것도 모두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입술이 꼭 죠디의 입술을 눌러대면서 매우 거칠면서도 부드럽고 적극적으로 어딘가 경외하는 마음을 지닌 키스가 죠디의 온몸을 전율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그의 팔은 아름다운 죠디의 몸의 곡선을 애무하며 마침내 부서질 정도로 끌어안으며, 젊은 몸은 근육이 바위같이 단단한 그의 가슴에 바싹 포개어졌다. 무척 찰싹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에 죠디는 코너의 격렬한 욕구를 생생하고 절실히 느끼면서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몸을 뒤로 젖히고 서로 밀착하는 즐거움, 본능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사모의 정이 솟구쳐 올랐다.


다시 한번 그의 손이 움직이고 방황하는 그의 손길은 열심히 탐험하려는 듯하다. 그것이 죠디에게 있어서는 위험한 순간이기도 하다. 드디어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완만히 굽은 작고 딱딱한 가슴을 쓱 움켜쥐며 굴복시키려는 듯이 욕망이 마구 불러일으켜지고, 그의 지배에 굴복하면서 입에서는 저절로 황홀한 신음이 새어나온다. "사랑하고 있어…" 코너의 목소리는 나지막히 잠기고, 무겁게 죠디의 목구멍에 울려퍼지고 그의 손은 모든 것을 독점하려고 하는 듯이 움켜잡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죠디." 죠디의 유일하고 간단한 응답은 단지 속삭임뿐으로 거침없이 조리있게 말했다. "고마워요." 작은 숨과 함께 코너를 사랑하는 마음의 전부를 토해내고서 머리를 살짝 그의 가슴속에 갖다대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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