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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우리 오늘 저녁 약속 취소하자. 지갑도 잃어버렸는데 기분 상하잖아." "지갑 잃어버린 것과 저녁 약속이 무슨 상관이니? 가자!" 그날 난 지갑을 잃 어버린 덕분에(?) 저녁을 거하게 얻어먹었다. 위기도 관리될 수 있다 '행복의 뒷면은 불행이다' 라는 말처럼 사는 동안 크고 작은 위기를 피할 수 는 없다. 지갑을 잃어버리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실직이나 질병, 사고 등의 개인 적 위기, 더 나아가서는 IMF 와 같은 국가적 위기에 이르기까지 그 위기란 것 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 '갑자기 찾아온다'는 속성 때문인지 사람들은 위기를 재난에 비유하곤 한다. 엄청난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살았던 1999 년, 나 역시 그 위기로 몸살을 치렀다. 그래서 가끔은 위기를 예방하는 백신을 발명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만화 같은 공상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피하려야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게 위기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매도 많이 맞으면 맷집이 생긴다는 말처럼 위기를 져다보면 나름대로 위 기 극복 노하우, 위기관리 능력이 생긴다는 점이다. 평생에 걸쳐 찾아올 위기가 한꺼번에 몰아닥친 듯했던 작년 여름, 나 역시 처 음에는 자신을 추스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사건과 부딪쳐나가면서 점차 위기 도 관리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 그리고 관리 능력에 따라 위기를 더 빨 리, 더 잘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위기의 실체를 파악해라 우선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위기의 실체부터 냉정하고 정확하게 파 악하라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특히 여성들은 위기가 닥치면 울고불고하면서 감정을 분출하거나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자신이 당한 불행을 하소연함으로써 심리적인 위안을 얻고자 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어떻게 되겠지 하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냥 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바로 이런 태도가 위기를 더 큰 위기로 몰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얄 한다.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아무리 따지고 억울해해도 문제해결 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자기 자신을 연민과 피해 의식에 빠뜨려 위기 극복에 필요한 자신감과 용기만 잃게 만든다. 위기라는 녀석에게 아무리 화를 내보았자, 그 녀석에겐 별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지난여름의 사건은 내게 '초특급' 위기였다. 사건의 발단은 PC 통신에 오른, 기 사라고 하기도 어려운 글이었다 처음 그 글을 읽었을 때는 어이가 없었지만 글 의 내용과 그 글을 올린 사람의 신원, 그의 글이 게재된 홈페이지의 성격, 몇 명의 네티즌이 그 글을 보는지, 그 글을 삭제하려면 어떤 경로를 거쳐야 하는 지 등등을 면밀히 검토해보았다. 그리고 변호사와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상의 했다. '이런 사람은 혼을 내야 돼' 라는 생각에 당장 고소하고 싶었지만 그 당 시로서는 고소가 상책이 아니었다. 고소를 하는 순간 지하에 잠복해 있던 헛소 문이 지상의 모든 제도권 언론으로 불거져 나와 소문을 모르던 사람(혹은 소문 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알려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단 소문이 확대 재생산되기 시작하면 사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의미도 없어 진 채 나 홀로 누명을 뒤집어쓰게 될 게 뻔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배부전이라는 사람을 찾아내 대응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아야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혹시나 제도권 언론이 기사화 할 것을 대비해 추후의 법적 대응책도 미리 검토해두었다. 배부전을 곧바로 고소하지는 않았지 만 그의 신원도 파악해두었다. 상황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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