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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umofModernArt

WomenArtists:

WhitneyMuseum of

1550-1950

AmericanArt

SaatchiGallery

TateModern 1

dOCUMENTA Museum für Moderne Kunst

MoriArtMuseum TokyoPhotographic

ArtMuseum GuggenheimMuseumBilb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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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WA PICK 2016년 8월 29일 - 12월 31일

Text by 최유진, 이선주, 김은지 Copy-Edit 최유진 Design by 김예은 Published by ARTWA

copyright © ARTWA co., Ltd. All rights reserved


뉴욕 현대미술관 The Museum of Modern Art

5 19

휘트니 미술관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39

사치 갤러리 Saatchi Gallery

57

테이트 모던 Tate Modern

65

도큐멘타 dOCUMENTA

89

MMK 미술관 Museum für Moderne Kunst

99

모리 미술관 Mori Art Museum

119

도쿄도 사진 미술관 Tokyo Photographic Art Museum

131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Guggenheim Museum Bilbao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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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을 전시기획 Women Artists 1550 -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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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seum Moder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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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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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비즘과 추상미술 展> 포스터

** 세계적인 아트페어 아모리 쇼 the Amory Show 는 1913년에 시작되었다. 아모리 쇼는 유럽에서 일어난 새로운 미술 운동을 미국에 보급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모리 쇼를 통해서 유럽의 모더니즘이 처음 미국에 소개되었고, 이에 영향을 받아 미국의 현대미술이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세계 현대미술시장의 중심이다. 또한, ‘모마 MoMA’ 라는 애칭

으로 더욱 친숙하고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봐야 하는 미술관 중에 하나

이기도 하다. 뉴욕은 역사상 가장 높은 미술 경매가를 갱신하는 주요 도시이며 세계적인 명작을 만날 수 있으며, 전 세계 아티스트들에게는 꿈의 무대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세계 미술 시장에서 이렇게 큰 영향력을 차지하게 된 시기는 언제부터일까?

세계 1차 대전 이후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미국의 자본가들은 미술품들을 본격적

으로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소장품을 예술문화 발전을 위해 기부하였고, 그것을 기반으로 미국 현대 미술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 시작 에는 뉴욕을 대표하는 뉴욕현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MoMA) 이

있다. MoMA는 1929년에 아모리 쇼 the Armory Show 에서 유럽의 현대미술 작품을 대거 수집한 존 데이비슨 록펠러 John Davison Rockefeller 부인인

P. Bliss, 코넬리우스 설리반 부인 Cornelius J. Sulivan , 존 록펠러 주니어

부인 John D. Rockefeller Jr. 등 자선가 · 교육자 · 학예사 등 5 명의 구성원 이 중심이 되어 설립되었다.

MoMA의 정체성 확립에 있어서는 초대 관장이었던 알프레드 바 Alfred H. Barr,

Jr. 의 역할이 컸다. 그는 서양 근·현대미술사의 궤도를 그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가장 먼저 알프레드는 개관 초기에 유럽 현대미술품의 소장과 전 시에 적극적이었다. 당시 MoMA의 전시는 반 고흐 Van Gogh 와 고갱 Paul

Gauguin , 세잔 Paul Cézanne , 그리고 피카소 Pablo Picasso 와 마티스

Henri Matisse 등이 중심을 이뤘다. 또한 그는 1938년에 <큐비즘과 추상미술>

전시를 통하여 모더니즘의 탄생과 전개를 정립하여 대중에게 소개하였다. 인상파 이후 큐비즘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모더니즘은 추상미술로 확장하여, 1950년대 미국적 모더니즘의 탄생 배경이 된다. 가장 미국적인 현대미술이 세계적인 미술로 인정받으며 MoMA는 그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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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 A. 록펠러 Abby Aldrich Rockefeller 의 주도 아래 릴리 블리스 L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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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blo Picasso 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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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는 기증받거나 소장하고 있던 작품을 과감히 매각하여 그 수익으로 신작을 구입하고 있다. 이는 알프레드 바가 정한 원칙 이었다. 그는 기존의 소장품들을 판매 하여 MoMA 컬렉션 중 최고로 손꼽히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1907)’을

소장하

게 된다. 이 작품을 소장하기 위해서 1937년부터 1939년까지 2년 동안 걸쳐 공을 들 였다. 이러한 그의 추진력으로 MoMA는 세계적인 미술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렇게 MoMA는 전시뿐만 아니라 당대의 작품들을 소장하면서 미국적 모더니즘

확립에 큰 기여를 하였다. 초대관장이던 알프레드 바 Alfred H. Barr, Jr. 의 지휘 하에 1920-1940년대에 걸쳐 미국 추상미술 컬렉션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미국 미술

을 후원하였다. 또한 큐레이터 도로시 밀러 Dorothy Canning Miller 와 함께 동시대

미국 미술 - 팝아트, 추상표현주의 등 - 을 프로모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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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 밀러 Dorothy Canning Miller (중간) 과 <The New American Painting as Shown in Eight European Countries 1958– 1959> 전에 참여한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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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ark Rothko No.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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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Willem de Kooning Woman 1 3. Jackson Pollock No.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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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컬렉션을 기반으로 기획된 전시가 <The New American Painting as Shown

in Eight European Countries 1958–1959>이다. 이 전시에서 선보인 작가 는 MoMA가 발굴한 윌리엄 바지오테스 William Baziotes, 제임스 브룩스 James

Brooks, 샘 프랜시스 Sam Francis, 아실 고르키 Arshile Gorky, 아돌프 고틀리브

Adolph Gottlieb, 필립 거스턴 Philip Guston, 그레이스 하티간 Grace Hartigan, 프란츠 클라인 Franz Kline , 빌럼 데 쿠닝 Willem de Kooning , 로버트 마더웰

Robert Motherwel , 바넷 뉴먼 Barnett Newman , 잭슨 폴락 Jackson Pollock ,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테오도로스 스타모스 Theodoros Stamos, 클리포드

스틸 Clyfford Still, 브래들리 워커 톰린 Bradley Walker Tomlin, 잭 트월코프 Jack

Tworkov 이었다. 지금은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며 극찬을 받는 작가들

하였다. 일례로 1952년 마크 로스코의 작품 구입 건에 대한 언쟁 끝에 한 위원이 위원직을 사퇴할 정도로 수집 정책에 대한 반발이 심했다.

이 전시로 인하여 유럽 미술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미국 추상미술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MoMA의 컬렉션을 바탕으로 10년이 지난 뒤에야 기획한 이

뉴욕파 전시는 미국추상미술이 서양 미술사를 압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1958년 에서 1959년 사이 12개월 동안 모더니즘의 종주국인 유럽의 8개 도시를 순회한 후에

뉴욕의 MoMA에서 전시되었다. 특별히 이 전시는 바젤을 시작으로 런던까지 유럽 에서 먼저 개척자의 정신이 담긴 새로운 미국적 회화로 극찬을 받았다. 또한 해외 순회 전시를 먼저 진행하고 뉴욕에서 전시한 것은 처음 시도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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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만, 그 당시에는 이들의 작품을 소장하는 데에 있어서 이사회의 반대가 극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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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에서 전시 당시, 유럽 8개 도시에서 전시한 모습을 지도에 표현한 전시장 입구 벽면


1. 바젤 Basel Kunsthalle 1958.4.19 - 5.26 2. 밀라노 Millan Galleria Civica d’Arte Moderns 1958.6.1 - 6.29 3. 마드리드 Madrid Musco Nacional de Arte Contemporaneo 1958.7.16 - 8.11 4. 베를린 Berlin

Hochschule fur Bildende Kunste 1958.9.1 - 10.1

6. 브뤼셀 Brussels Palais des Beaux-Arts 1958.12.6 - 1959.1.4 7. 파리 Paris Musee National d’Arte Moderns 1959.1.16 - 2.15 8. 런던 London Tate Gallery 1959.2.24 - 3.23 9. 뉴욕 New York MoMA 1959.5. 28 - 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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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암스테르담 Amsterdam Stedelijk Museum 1958.10.17 -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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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 의 주요 소장품을 설명하는 책자 ‘MoMA Highlights’

MoMA는 설립 초기에 단 9점의 작품만을 소장하고 있었고, 컬렉션 보다는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장소의 성격이 강했다. 여러 차례 전시를 개최하면서 영구 컬렉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MoMA의 탄생에 큰 도움을 주웠던 애비 록펠러

Abby Rockefeller, 메리 퀸 설리반 Mary Quinn Sullivan, 릴리 블리스 Lillie Bliss 가 자신들의 소장품을 MoMA에 기증하면서 본격적인 컬렉션을 시작했다.

현재 MoMA는 200,000여 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컬렉션은 7개 장르 건축,

디자인, 드로잉, 필름, 미디어․ 퍼포먼스, 회화․ 조각, 사진, 프린트․ 삽화로 구성 되어 있다.

초대 관장이었던 알프레드 바는 기존의 소장품들을 판매하여 MoMA 컬렉션 중 최고로 손꼽히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1907)’

을 소장하였다. 또한 순수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상업적, 실용적, 대중적인 작품들까지 폭 넓게 수집한다. 당시에는

미술의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진, 건축, 디자인 등을 포괄하는 전시를 기획 하면서 작품까지 소장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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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MoMA의 컬렉션은 미술사에서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를 다루면서 현대미술의 경계를 넓혀갔다. 특히 산업 사회의 발달과 깊은 연관이 있는 매체들이 선택되었다.

1932년에는 건축·디자인 부서를 신설하여 관련 아카이빙을 시작하였다. 1940년 사진 부서의 설립은 모더니즘 미학을 수호하는 제도적 장치인 미술관에 의해 사진이 현대 미술의 한 분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으며 핵심적인 미술 장르로 자리

잡게 된 상징적인 사건이다. 특별히 필름 부서는 영화에 깊은 관심이 있었고, 이와 관련된 글들을 여러 편 쓴 바 있는 알프레드 바에 의해서 1935년에 신설되었다.

MoMA의 필름 컬렉션은 스틸 컷을 포함하여 무성영화까지 폭 넓게 수집하였다. 한국에서는 2013년에 CJ E&M이 한국영화 10편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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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국 영화 10편 기증과 함께 MoMA에서 열린 ‘한국 영화의 밤’ 행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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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YAP로 선정된 HWKN Matthias Hollwich and Marc Kushner, New York 의 Wendy

현재 MoMA의 미래는 MoMA PS1 (Public School No.1) 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이다. MoMA는 설립 당시 모더니즘을 정립하며 미국의 추상미술과 팝아트를 적극적

으로 홍보하였다면, 현재는 PS1을 통하여 실험적인 작품들과 다양한 장르의 동시대 미술을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다.

PS1은 1971년 미술과 도시 자연협회 the Institute for Art and Urban Re-

sources Inc. 의 엘레나 헤이스 Alanna Heiss 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버려져 있던

18C 공립학교를 젊은 아티스트들을 위한 스튜디오와 동시대 미술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재정비 하여 그 이름을 P.S.1 Contemporary Art Center 라고 하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동시대 미술을 위한 공간이었다. 학교라는 공간적인 특징을 십분 발휘하여 교실은 작은 갤러리가 되었고, 운동장은 퍼포먼스나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는 장소가 되었다. 이후 2000년에 MoMA와 결연을 맺고, MoMA PS1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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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은 젊은 작가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976년부터 들을 위해서 작업 공간을 제공해주고 그들을 지원해 주었다. 1996-1997년에는

한국에서는 최초로 오상길 작가가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이후 2003-2004년에는 사진작가 김옥선이 참여하였다. 또한 PS1은 MoMA와 공동 주최하여 ‘YAP (Young

Architects Program)’ 은 젊은 건축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해마다 여름에

미술관에서 열리는 ‘Warm Up 파티’를 위한 구조물을 만드는 데, YAP에 선정된 다섯 팀은 최종 채택 여부와 상관 없이 행사 기간 중에 그들의 설계안이 전시된다.

MoMA의 행보를 통해 한 순간의 영광이나 과거의 혁신적인 행보에 연연하지 않고

지속해서 동시대 미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현대 미술이 당장 답할 수 없는 Who’s next? 에 대한 해답은 MoMA의 사례를 거름으로 삼아서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text by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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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and International Studio Program’ 을 통해 전세계의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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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을 전시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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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 Artis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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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_첫 전시도록 출판 New York, Alfred A. Knopf, 1976 우_New York, Alfred A. Knopf, 1976, Reprinted


전시제목 _ Women Artists 1550-1950 큐레이터 _ Ann Sutherland Harris + Linda Nochlin 전시작가 _ 84명 전시작품 _ 12개 국가 총 204점 작품대여 _ 개인 소장가 19명 + 기업, 미술관 81곳 전시장소 _ 총 4개 도시의 미술관에서 전시

1976.12.21 - 1977.03.13 2. University Art Museum in Austin, Texas 1977.04.12 - 06.12 3. the Carnegie Museum of Art in Pittsburgh, Pennsylvania 1977.07.14. - 09.04 4. the Brooklyn Museum in New York, New York 1977.10.01. - 197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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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Califor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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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rooklyn Museum 전시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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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전시 소식을 접했을 때는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페미니즘 운동

이나 여성 인권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어서 1970년대 당시에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전시 정도로 받아 들였다. 하지만 1984년 재 출판한 도록을 읽고 조사하는 과정 속에서 그러한 생각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필자가 생각하는

(4W+1H) × ART = Exhibition 공식에 완벽하게 부합하여 성공적으로 진행된

전시였고, ‘사례 없는 사례’를 만든 기념비 적인 전시라고 생각한다. 이는 다분히 필자 개인의 관점이라는 것을 미리 밝힌다.

먼저, 전시를 기획하는데 있어서 장소의 문제 Where 는 상당히 중요하다. 전시한

장소에 해당하는 인근 지역 주민에게만 선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 장소 수 있을 것이다. 대중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작가에게는 서로 다른 관 점

에서의 평가와 전시의 해석을 접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아가서는 자연스럽게 예술을 사회적 산물로 사고하는 담론을 형성하고 미래에 남을 유산 으로써의 미 학 에 대 한 가 치 를 미 리 형 성 시 킬 수 있 기 도 하 다 . 이 러 한 선 구 자

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기획자에게 장소 선정은 그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 <Women Artists 1550-1950> 전시는 총 4개의 도시에서 2년간 집중적 으로 조명되었다. 아쉬운 지점은 미국 내에서만 선보였다는 것인데 1970년대 말의 미술 시장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진보적인 시도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미국 서부에서 북부를 아우르는 도시 (LA, 텍사스, 펜실베이니아, 뉴욕) 의 대표 미술관 에서 한 달 간격으로 릴레이 전시가 진행되었으니 사전에 준비한 기간도 상당했을 것 으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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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한 가지 주제를 더욱 폭넓게 대중에게 전달한다면 전시의 효과를 극대화 시킬


장소의 선정과 같은 맥락에서 어떤 주제와 형식 What 으로 선보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병행된다. 예를 들어서 작고 작가의 인생을 다시 되짚어보고 그들의 작품이 후대에 미친 영향과 미학적 가치를 재평가 하는 전시, 당대의 미술을 대표

하는 작가의 작품을 세계적으로 선보여 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함께

공유하는 전시, 신진작가를 위한 전시 등 무궁무진한 주제로 기획자는 대중과 예술품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Women Artists 1550-1950> 전시는 주제를 통해서 해당 작품을 섭외하여

선보인 기획전으로 총 18개 형식으로 나누어서 12개 국가의 여성 작가 작품 204 점을 소개했다. 이 전시는 지난 400년 역사 동안 남성 위주의 예술가들 속에서

숨죽이며 자신과 싸워 이겨낸 ‘여성 작가’을 재조명 했다. 그 전에도 없었고 이후 에도 없는 세계 최초 · 최대 규모의 ‘국제 여성작가’ 전시였다. 여기에 소개된 작가 중에서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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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필자가 생각하는 전시를 이루는 공식 (4W+1H) × ART = Exhibition 에서

<Women Artists 1550-1950>의 Where 와 What 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다음의 요소들도 함께 살펴보려 한다.

기획에 부합하는 작가 Who 의 작품을 선별하는 것은 먼저 조사와 분석의 과정에

이어서 해당 작품을 찾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작품을 찾았다 하더라도 전시에 선보일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 또한 설득과 비용이 필요한 부분

이다. 작가나 작품을 소장한 곳에서는 명분 없는 전시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작품의 안전을 보장하고 가치를 알아봐주지 않는 전시라면 그 누구도 동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Women Artists 1550-1950> 의 전시는 이미 작고하여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여성 작가를 조사하는 힘겨운 과정으로 방대한 자료를 수집 했을 것이다. 이 중에서

84명을 선정하여 그들의 작품을 찾을 수 있거나 대여가 가능한 개인 소장가 19명과 기업 또는 미술관 81곳에 협조를 구하는 지난한 노력과 인내의 시간을 가졌다. 무엇

보다 그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애초에 가능한 전시가 아니었다. 이렇게 12개 국가에서 모인 작품 204점을 순회하며 전시한 사례는 현재까지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왜 Why 기획자 앤 Ann Sutherland Harris 과 린다 Linda Nochlin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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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이러한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을까? 먼저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면 미국은 1960-70년대까지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여성 해방 Feminism 운동 시기라

할 수 있다. 여성이 능력이 있어도 가정에만 매여 있을 수밖에 없고, 직업이 있다 하더라도 임금이나 승진 등에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페미니즘의 시작은 1963년 베티 프리던 Betty Friedan 이 쓴 ‘여성의 신비 The

Feminine Mystique ’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미국적 사회의 범주 안에서 여성이

가정을 지키면서도 직장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중산 계급 여성을 대상으로 한 온건파 였다. 그들은 산아 제한, 낙태 허용, 공립 탁아소의 설립들을 요구했고, 1972년에는 ‘전국 여성 정치 회의’를 조직하여 여성의 정치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들이 완전한 자유를 가지기 위해서 기존의 모든 계급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사회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급진파가 등장

했다. 이 중심에 1970년에 ‘성의 변증법 Dialectic of Sex’을 쓴 슐라미스 화이어스톤

Shulamith Firestone 이 있다. 그녀는 성 혁명 Sexual Revolution 을 주장했다. 급진파는 남성과 여성의 완전 평등을 위하여 혼인계약 Marriage contracts 을

주장했다. 이러한 페미니즘 운동은 상당한 성과를 가져왔다. 여성의 교육 수준도 높아져 1970-1976년 사이에 여성의 대학 입학률은 46%가 증가했다. 더 이상 결혼을

위해서 대학을 진학하지 않게 되었다. 1974년에는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은 조건

으로 신용 카드를 발급받고, 은행 융자도 받을 수 있는 대출 기회 균등법이 제정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 40년 전만해도 자유민주주의를 선도한 미국의 현실이었으니 다른 국가에서 여성의 지위는 말 할 것도 없지 않을까?

1970년대 후반부터 여성 해방 운동은 이혼율 증가, 가정 파괴, 청소년 범죄의 증가 등의 부작용을 이유로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에 의해서 거센 저항을 받았다. 이들은 전통적인 여성상을 높이 평가하면서 양성 평등, 동성애, 낙태의 합법화에 반대했다.

필자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결과를 떠나서 여성에 대한 가치 평가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어 예술에 있어서도 특히 남성들로 점철되어 온 미술 분야에 여성 작가를 찾고 재평가 하려는 움직임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한다.

<Women Artists 1550-1950> 를 기획한 앤과 린다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여성 작가들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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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했고, 자녀를 공동으로 양육할 수 있는 확대 가정 Extended family 의 건설을


다음은 전시에 선보인 대표작가 20명의 작품이다. 아르테미시아 Artemisia

Gentileschi ( Italy 1593-1652/53 ) 는 당대에 명성을 날리던 화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 Orazio Gentileschi 의 딸이었다. 최초의 여류화가이며 17살 에 ‘수산나와 두 늙은이 Susanna and the Elders’ 라는 대규모의 작품을 완성했다.

그녀는 18살에 아버지의 동료화가 아고스티노 타시 Agostino Tassi 에게 강간당한다.

7개월에 걸친 소송 끝에 명예를 되찾았고, 그 당시 성폭행에 관한 최초·최대의 사건 이었다. 이후 피렌체로 이주하여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 등과 교류하고

코시모 메디치 2세 Cosimo II de’ Medici 의 도움으로 피렌체의 미술가 길드 Guild

겸 대학 Accademia di Arte del Disegno 에 최초로 가입한 여성 예술가가

되었고, 이탈리아 화가협회 디세노 한림원 Accademia delle Arti del Disegn 에

가입한 최초의 여성 직업 화가이다. 시대의 폭력성과 부당함을 예술로 승화한 그녀 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Judith and Maidservant with the Head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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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ofernes’ 는 살인 장면을 극명하게 묘사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Artemisia Gentileschi (Italy 1593-1652/53) Judith and Maidservant with the Head of Holofernes


1. Elisabetta Sirani (Italian 1638-1665) the Penitent Magdalene in the Wilderness in1660 2 / 3. Giulia Lama (Italian 1681-1747) the Martyrdom of St. Eurosia 4. Adrienne Marie Louise Grandpierre-Deverzy (French 1798-1869) the Studio of Abel Pujol in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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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lisabetta Sirami (Ilalian 1638-1665) Porcia Wounding Her Thigh 2. Elizabeth Vigee-Lebrun (French 1755-1842) Varvara Ivanovna Narishkine 3. Marie Genevieve Bouliar (French 1762-1825) Portrait of Adelaide Binart 4. Edith Hayller (British 1860~1948) A Summer Sh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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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Florine Stettheimer (American 1871-1944) Beauty Con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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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Marie Laurencin (French 1885-1956) At the Piano in 1914 7. Dorothea Tanning (American 1910-2012) Maternity 8. Gabriele Munter (German 1877-1962) Portrait of a Young Woman,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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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igia O’keeffe (American 1887-1986) 위_Lake George Barns in1926 아래_Ranchos Church, Taos, New Mexico in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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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lexandra Exter (Russian 1882-1949) Costume for the Protazanov film “Aelita” in 1924 2. Alice Trumbull Mason (American 1904-1971) l’hasard 3. Lyubov Sergeyevna Popova (Russian 1889-1924) Untitled (Human Bust) in 1912 4. Leonor Fini (French 1907-1996) the Angel of Anatomy in 1949 5. Nataliia Sergeevna Goncharova (Russian1881-1962) Portrait of Lario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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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 Kahlo (Mexican 1910~1954) Portrait of Frida and Diego,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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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필자가 생각하는 전시를 이루는 공식 (4W+1H) × ART = Exhibition 에서

마지막으로 1H (How) 가 더해져 예술이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 것인지? 무엇을 위하여 작가는 작업을 하고 기획자는 전시를 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작품을 어떻게 How 선보일 것인가의 문제는 전시의 형태와 구성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해결할 수 있다. 아무리 의미 있는 전시를 기획했다 하더라도 보여지는

상황에 따라서 양극으로 첨예하게 평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전시의 효과가 기획을 앞서는 경우도 있으니 그 중요성은 말 할 것도 없다.

기획자는 가장 먼저 작품이 펼쳐질 전시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공간은 늘 제한적이고 작품의 수량과 부피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사람이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동선을 계획하고 시선의 흐름도 파악해야 한다. 여기에서 동선

시선이 먼저 머무르는 곳에 강조하고 싶은 작품이나 강력한 의미 전달이 필요한 설명서

를 먼저 배치하는 것이 좋다. 만약 이러한 호흡으로 전시할 수 없는 협소한 공간 이라고 판단되면 다른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효과적인 디스플레이를 위한 다양한 연구는 기획자에게 필수적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인간과 작품이 놓여지는 거리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 거리는 입체적으로 공간에 적용된다. 다시 말하자면 입체적 공간에 대한 이해가

작품을 가장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열쇠가 된다. 이렇게 공간 속 작품이

펼쳐지는 흐름을 파악했다면 전시의 시작과 마지막에 선보일 내용에 대해서 기획 해야 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호기심과 결론을 내리는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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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숨을 쉬는 것처럼 움직임에도 강약이 있으니 관객을 유도하는 방향에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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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Women Artists 1550-1950> 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1970년대 후반

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표현면에서 지금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비교 할 수도 없고 미술관에서 진행된 전시인 만큼 보수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파티션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4개 도시 미술관의 디스플레이를 대부분 일치시키며 통일감을 주었다. 특히 필자가 극찬하는 부분은 아래와 같이 어떻게 보여줄 것 인지에 대한 확실한 콘텐츠 기획으로 그 순서에 따라서 전개 되었다는 것이다. 01) The Status of European Women in the Middle Ages Early Renaissance

02) Medieval Women Artists

03) Medieval Women Embroiderers

04) Medieval Women Illuminators

05) The Emergence of Women Artists in Renaissance Italy

06) The Status and Education of Women in Renaissance Italy

07) The Emergence of Women Artists in Flanders, 1550-1600

09) Women Still-Life Painters of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10) Women Artists and the Academies in the Eighteenth Centuries

11) Women Pastel Artists of the Eighteenth Centuries

12) Women Artists, 1550~1800: Conclusions

13) Women Artists after the French Revolution

14) The Nineteenth Century: England, France, and the United States

15) The Twentieth Century: Issues, Problems, Controversies

16) Women and the Decorative Arts

17) Women Artists and the Question of National Origin

18) The Issue of “Women’s Imagery”

이렇게 테마, 연대, 유형학적 분류, 중첩되는 의미 별로 구성된 콘텐츠는

그대로 전시 도록에 적용되어 현재까지 당시의 전시를 감상하지 못한 후대의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전달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번의 퍼포먼스로 끝나는 전시를 기록하는 도록의 중요성을 필자가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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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Women Artists in Italy in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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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Women Artists 1550-1950> 전시는 여성 작가에게 자양분이 되어

그들의 작품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 했다는 점에서 큰 역할을 했고 왕성한 활동을 보장받는 기회를 제공했다. 물론 이 전시에 소개되지 못한 수많은 여성 작가에게는 칠전팔기의 노력이 헛되지 않다는 희망을 안겨 주었으니 그 의미가 크다.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 여성 작가의 위치는 어떠한가? 의식의 흐름에

변화는 있었는가? 전시는 작품을 선보이는 것만으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유희만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의

생각은 테오필 고티에 Theophile Gautier 의 글로 대신한다.∎ text by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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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 고티에 Theophile Gaut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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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의 전쟁에서 가장 유일한 무기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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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ney Museum 41

of

Ameri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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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Henri Gertrude Vanderbilt Whitney 1916

미국에서 ‘미국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곳은 휘트니 미술관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이다. 휘트니 미술관의 설립자인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Gertrude Vanderbilt Whitney 는 뉴욕의 부유한 대재벌

가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할아버지인 밴더빌트는 미국의 철도왕으로 일컬어 지며 막대한 재산가였다. 이렇게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한 그녀는 1896년 21세가 되던 해, 예일대 출신의 변호사인 해리 페인 휘트니 Harry Payne Whitney 와

결혼을 하게 된다.

휘트니는 어려서부터 예술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예술 후원자이자 컬렉터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1901년 당시 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로 여행을 다니며 뮤지엄을 둘러보고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면서 조각의 매력에 빠졌다. 결국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뉴욕의 아트 스튜던츠 리그 The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 에서 수학했다. 특별히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François Auguste

René Rodin 의 밑에서 직접 훈련 받았다. 대리석 조각의 전통적 기법을 유지하는

그녀의 작품은 큰 호평을 받았다. 워싱턴 DC의 ‘타이타닉 기념비 Women’s Titanic

Memorial’ 와 팬 아메리칸 빌딩 Pan American Building 에 있는 ‘분수조각’으로 재능을 인정받게 되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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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ny Club 에서 미국의 동시대 사실주의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지원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미술에 대한 후원을 시작한다. 이어 1913년에는 그녀의 친구이자

‘아모리쇼 the Amory show ’를 기획한 아서 데이비스 Arthur Bowen Davies 를

통해 아모리 쇼의 재정적 후원을 하기도 하였다. 휘트니가 관심을 가지고 수집한 작품은 유럽 근대미술의 작품들 보다는 그 당시에는 별로 인정 받지 못했던 미국의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그녀의 앞서가는 신념과 확고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1918년에는 뉴욕 다운타운에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 Whitney Studio Club ’ 이라는 전시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 존

프렌치 슬로운 John French Sloan , 로버트 헨리 Robert Henri , 아서 보웬

데이비스 Arthur Bowen Davies 등 젊은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그녀의

‘스튜디오 클럽’은 미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고, 누구나 입회 가능한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야심찬 작가들이 대거 몰리게 된다. 이렇게 문을 연지 불과 10년 만에 400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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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1907년 콜로니 클럽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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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trude Vanderbilt Whitney Fountain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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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는 전시 후원 뿐만 아니라 작품 수집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그녀가 25년간 수집한 오백여 점이 넘는 회화와 조각 작품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에 기증할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거절당한다. 전통적인 미술품을

다루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정작 자국의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은 기증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자신이 직접 미술관 설립에 나서게 된다.

1931년 11월 8일 맨해튼 8번가 웨스트 10번지에 자신이 소유한 건물을 개조하여 미술관을 개관했다. 개관식 기조연설에서 휘트니는 “나는 충분히 미국 동시대 미술가 들에게 시간을 투자할 만하다고 믿었고, 미국의 창조적인 재능을 믿었기에 이들의

작품을 수집했다. 나는 오로지 미국 동시대 작품들을 다룬 전시를 선보이고 소장 하기 위해 미술관을 만들려고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그녀의 열정으로 미국 미술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이전에 휘트니 미술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은 생전에는 그녀의 소장품을 기증 받지 않았던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이 전시 공간 The Met Breuer 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1931년 개관 당시에는 휘트니가 소장하고 있던 약 600여 점의 작품이 컬렉션의 기반이 되었다. 미술관은 이후로도 젊고 유망 있는 작가들의 생계를 지원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작품을 소장하였다. 당시 휘트니가 지원한 작가들은 페기 베이컨

Peggy Bacon, 조지 벨로스 George Bellows, 스튜어트 데이비스 Stuart Davis,

찰스 데무스 Charles Demuth, 마블 드와이트 Mabel Dwight,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야스오 쿠니요시 Yasuo Kuniyoshi, 레지널드 마쉬 Reginald

Marsh, 존 슬로안 John Sloan 등이 있었다. 현재까지 22,000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 중에는 3,000여 명의 미국 작가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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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일 미술관은 맨하튼 첼시 Manhattan Chelsea 지역으로 이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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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Hopper A Woman in the Sun 1961 휘트니미술관 소장


특별히 에드워드 호퍼와 휘트니 미술관은 인연이 깊다. 그는 현대인의 고독함, 외로움,

상실감을 화폭에 담은 미국의 대표적인 화가

이다. 일생의 대부분을 뉴욕에서 보낸 그의 작품에는 도시 속 현대인의 일상이 담겨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재능을 알아본 휘트니 는 생전에 그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였다.

사망한 이듬해 2,500 점이 넘는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했다. 대부분 그의 초기 작품과 미공개

작품이었다. 이는 단일 작가로는 미국 미술관 역사상 최고로 많은 작품수가 기증되었다.

휘트니 미술관의 컬렉션은 애쉬캔 파 Ashcan

School 작가들의 회화

(20세기 초 도시 생활의

현실을 그린 미국의 생활 풍경 화가들)

에서 시작

하여 20세기의 미국에서의 주요한 경향인 모더니즘, 리얼리즘,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작품들로 확장되었다. 생존한 작가를 중심으로 동시대 미국미술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을 목적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미술관은 항상 동시대 미술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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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인 조세핀 호퍼는 남편의 유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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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 The American Art

-Masterpieces of Everyday Life from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 전시를 통해서 처음으로 휘트니 미술관의 컬렉션이 국내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이 전시에서는 47명 작가의 작품 87점이 출품됐다. 출품한 작가를 보면 만 레이 Man Ray, 재스퍼 존스 Jasper Johns, 앤디 워홀 Andy Warhol, 클래스 올덴버그 Claes Oldenburg, 로이 리히텐슈타인 Roy Lichtenstein, 댄 플래빈

Dan Flavin 등이 있었다. 팝아트, 미니멀리즘, 네오다다, 극사실주의 등 현대

미술의 중요한 사조를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였다. 이 전시는 근·현대 미국 미술의 발전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주관적 엄숙성에 반대하고 매스 미디어와 광고 등 대중문화적 시각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에 적극적 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구상미술의 한 경향을 말한다. ** 미니멀리즘 : 제2차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시각 예술 분야에서 출현하여 음악, 건축, 패션, 철학 등 여러 영역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어에서 ‘최소한도의, 최소의, 극미의’ 라는 뜻의 ‘미니멀 Minimal ’과 ‘주의’ 라는 뜻의 ‘이즘 -ism’을 결합한 용어이다. ** 네오다다 : ‘새로운 다다이즘’ 이라는 의미의 이 운동은 모든 전통적 가치나 이성의 우위 및 예술의 인습적 형식에 도전하여 미 美 의 가치 체계를 바꾸려고 하였다. 제1차세계대전 후의 다다이즘이 이어 지는 것으로, 이미 이루어져 있는 미적 가치를 파괴하고 새로운 창조활동을 지향하려 하는 움직임이다. ** 극사실주의 :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주관을 극도로 배제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사진처럼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며, 아무 뜻 없이 장소 ·친구 ·가족 등이 다루어진다. 또한 감광제 感光劑 를 캔버스에 발라 직접 프린트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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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팝아트 : 1950년대 초 영국에서 그 전조를 보였으나 195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추상 표현주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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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미술관은 1931년 개관 이듬해인 1932년부터 미국 내 신진 작가를 발굴 하여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휘트니 미술제> 를 개최한다. 개관 초기부터 동시대 미국 미술에 관심을 기울이며, 그들의 창조적 재능을 믿었기에 전시의 기회를 준 것 이다. 이 전시는 “심사위원도 없고, 상도 없다 No juries, No prizes ”는 구호를

내세웠고, 작가들 스스로 전시회에 내걸 작품들을 선택하게 했다. 현재 <휘트니 미술제> 는 브라질의 상파울루 비엔날레,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와 더불어 세계 3대 비엔날레로 손꼽히고 있다.

193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는 일년에 2차례씩 봄에는 조각, 가을에는 회화 작품을 선보였다. 휘트니를 대표하는 작가인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는

제 1회에 참여하였다. 이 외에도 당대에 활발하게 활동하던 조지아 오키프 Georgia

O’Keeffe, 찰스 쉴러 Charles Sheeler, 라파엘 소여 Raphael Soyer 등이 출품

했다. 1946년에는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이 액션페인팅 작품을 선보여 ‘놀라운 모더니스트’ 의 감수성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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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harles Sheeler Amoskeag Canal 1948 2. Georgia O’Keeffe Red Canna 1923 3. Jackson Pollock Eyes in the Heat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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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_Barbara Kruger Untitled We Don’t Need Another Hero 1987 아래_Peter Campus third tape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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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부터는 일년에 한번씩, 회화와 조각을 번갈아 가면서 선보인다. 1960년대 말에는 체계적인 전시 기획에 대한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1969년에 휘트니 미술관 의 관장 존 바우어 John. I. H. Baur 도 이에 동의하면서 더 이상 객관적인 방식 으로 “창조적인 흐름의 단면을 대략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후에는 매회 하나의 테마를 정하게 되었다. 1973년부터는 조각과 회화를 합쳐서 2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비엔날레’ 형식으로 바뀌었다. 형식이 바뀌면서 그 규모는 커지게 된다. 당시에는 신진 작가이던 바버라 크루거 Barbara Kruger,

피터 캠퍼스 Peter Campus 가 참가하였고, 재스퍼 존스 Jasper Johns , 로버트

라우센버그 Robert Rauschenberg, 조안 미첼 Joan Mitchell, 로버트 마더웰

Robert Motherwell 등의 중견 작가들도 초대하면서 ‘미국 미술의 현재’를 조망

하였다.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소개하는 장르도 다양해 지기 시작했다. 1975년에는 처음으로 비디오 아트 작품을 선보였고, 1977년에는 영화를 선보였다. 이로써 디자인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 전시회의 성격으로 변모하게 된다.

대표적인 전시를 살펴보면 1981년 <휘트니 비엔날레> 는 다양한 매체의 재능 있는 작가들을 소개했다. 특히 사진작가 로버트 매플소프 Robert Maplethorpe , 행위예술가 로버트 윌슨 Robert Wilson, 화가이자 영화감독 줄리언 슈나벨 Julian

Schnabel 등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1983년 전시의 주축은 신표현주의 Neo-

Expressionism 와 구상화였으며, 영화와 비디오 작품이 총망라된 최초의 멀티

미디어 비엔날레이기도 하였다.

1987년 <휘트니 비엔날레> 에는 참여 작가의 24%만이 여성이었는데, 게릴라 걸스

Guerrilla Girls 는 이러한 세태를 꼬집으며 <게릴라 걸스가 평가하는 휘트니> 전을

열었다. 이 전시 이후, 여성들과 소수인종의 참여율이 높아졌으며, 그 결과 1989년 비엔날레의 참여 작가의 40%가 여성이었다.

** 게릴라 걸스 : 1985년 뉴욕에서 결성된 익명의 여성 예술가 모임. 미니스커트에 망사 스타킹을 신고 고릴라 마스크를 뒤집어쓴 채 공공장소에 나타나 문화 전반에 밴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각종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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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비엔날레> 는 회화와 조각 작품뿐만 아니라 설치 미술, 행위 예술,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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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비엔날레> 는 한국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1993년에 최초로 국경을 넘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개최된 곳이 바로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당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故백남준에 의해서 추진되었다. 해외의 비엔날레를 국내에 유치하는 것은 순탄치 않았다. 장소에 있어서도 故백남준은 예술의 전당

에서의 개최를 원했지만, 협소한 장소와 예산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의 故임영방 관장의 적극적인 러브콜로 성사될 수 있었다. 국립

현대미술관은 한국작가 10인의 작품을 포함하여 ‘경계선’이라는 주제로 진행할 것을

제안하였지만, 휘트니 측에서는 미국 내 신진 작가 발굴의 성격이 변질될 것을 우려 하여 이를 거절하고, 뉴욕에 출품된 작품들만 전시하기로 한다. <휘트니 비엔날레 몇몇 작품에 대한 자체적인 검열 때문에 국내에서는 61명 작가의 107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1993 휘트니 비엔날레> 는 당대 국제 미술계의 최신 경향을 대변했고 인종적, 민족 적, 젠더 상의 다문화주의적 접근방식을 적극적으로 실험한 대표적인 전시였다. 전시 내용에 있어서도 설치미술과 비디오 작품의 수를 대폭 늘림으로써 회화 중심

의 전시 패러다임에서 벗어났고, 작가들도 미국 내의 유색인종, 여성작가,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대거 포함시켰다. 15만 명이 참관한 이 행사는 우물 안 개구리

같던 한국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비엔날레’라는 용어가 일반인에게 알려졌고, 1995년 아시아 최대 미술 축제인 ‘광주 비엔날레’가 생기는 등 한국 미술 발전에 커다란 기폭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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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에서는 총 82명 작가의 150점이 전시되었지만, “한국적 정서를 고려한”


2000년 제 1회 벅스바움 상 Bucksbaum Award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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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PFEIFFER Fragment of a Crucifixion (After Francis Bacon) 1999

미국 신진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는 <휘트니 비엔날레> 의 취지는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97년에는 미국 시민권 자뿐만 아니라 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작가들에게도 그 문을 열어주었다.

2000년부터는 벅스바움 재단 Bucksbaum Family Foundation 과 함께 벅스바움 상

Bucksbaum Award 을 시작한다. 이는 미국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작가 중에서

미국 미술사에 항구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1명을 선정하고, 수상자에게 10만 달러의 상금을 수여한다.

<휘트니 비엔날레> 는 2008년에 재정 위기를 한번 겪으면서 침체되기도 하였지만, 2015년에 완공된 새로운 미술관으로 이전한 후 2017년 휘트니 비엔날레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크리스포터 루 Christopher Y. Lew 와 미아 락 Mia Lock 을

공식 큐레이터로 선정하였는데, 두 사람은 각각 중국계와 한국계 미국인이다.

아담 디 와인버그 Adam D. Weinberg 관장은 ‘당대의 미술계를 엄밀히 보고자

젊고 재능있는 큐레이터를 필요로 했다’며 ‘새로운 미술관에서의 첫 비엔날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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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 의하여 펼쳐지는 것을 매우 기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2017년 휘트니 비엔날레에는 한국인 최초로 2016년에 휴고보스상 Hugo Boss Prize 을 수상한 아니카 이 Anicka Yi 의 작품도 선보인다.

휘트니 미술관은 자국의 신진 작가들에게 전시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그들의 작품을 소장하면서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속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으로 세계적인 작가들이 탄생하면서 미술관 또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지금까지 휘트니 미술관의 설립취지와 족적을 살펴보면서 느끼는 바가 크다. 먼저

세계적인 작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미술을 사랑하고 향유하는 계층의 지원과

그들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2016년 현재 전례없이 세계 미술계의 이목이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페로탱 갤러리 Galerie Perrotin 서울 삼청동에 분점을 오픈하였고, 프랑스의 퐁피두 센터

Centre Pompidou 또한 한국에 분관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시기야 말로 한국의

신진 작가들에게 기회가 제공되고, 그들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이어질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한 때이다.∎ text by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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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atchi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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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갤러리의 첫 공간이 갤러리로 변모하기 전, 폐허로 남겨진 페인트 공장의 전경과 1985년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 전시장 전경


“영국에서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해외 작가 혹은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여 동시대 미술의 창조적 포럼을 제공한다.” The Saatchi Gallery aims to provide an innovative forum for contemporary art, presenting work by largely unseen young artists or by international artists whose work has been rarely or never exhibited in the UK.

약 30년을 이어오고 있는 사치 갤러리는1985년 챨스 사치 Charles Saatchi 가 영국

런던 북쪽, 세인트 존스 우드 St. John’s Wood 의 페인트 공장에서 자신의 콜렉션을

전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탬스강 옆 사우스뱅크 South Bank 를 거쳐 현재 첼시

Chelsea 의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최근 5년간 런던에서 가장 방문객 수가 많았던

20개 전시 중 15 개의 전시가 사치 갤러리의 전시이며, 매년 150만 명의 관람객 및 1천여 개의 학교 방문수업이 이루어진다. 사치 갤러리의 설립 배경은 다음과 같다.

1970년 후반 영국은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기존 산업의 붕괴로 인한 낮은 경제 성장률 및 인플레이션, 급격한 실업률 상승으로 인한 파업이 부지기수로

리즘 Thatcherism ’은 우선 기존 사회주의적 복지 정책의 근간을 철폐하며,

산업의 민영화 및 복지를 위한 공공기금 삭감과 세금 인하와 같은 대대적인 경제 개혁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마가렛 대처의 선거운동을 맡은 광고 대행사가 사치앤드 사치 Saatchi & Saatchi 이다. 이 광고회사를 설립한 로드 사치 Lord Saatchi 와

찰스 사치 Charles Saatchi 형제 중 찰스 사치가 사치 갤러리를 설립하게 된다.

‘노동계급은 아직도 일하지 않고 있다. LABOR STILL ISN’T WORKING.’ 선거운동

슬로건으로 마가렛 대처는 ‘영국병’을 겪고 있던 시민들에게 표를 얻게 되었다. 이렇게 사치앤드사치는 80년대 세계에서 제일 명성 있는 광고 대행사로 성장하게 된다.

10대 때부터 미국의 팝음악을 접한 사치는 음악 뿐만 아니라 팝 문화 전반에 대한

열정으로 사치앤드사치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주게 된다. 그는 미국의 팝 예술을 영국에 처음으로 선보였고, 이후 영국 현대미술의 대명사 yBa (Young British Artist) 를 탄생시키게 되는데 yBa는 영국 미술을 세계

미술시장과 겨룰 수 있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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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하였다. 영국 경제를 일으킨 마가렛 대처 Margaret Thatcher 총리의 ‘대처


2015년은 사치갤러리 3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수백 년의 미술사를 보유한 유럽

에서 30년이란 짧은 기간일 수 있지만 사치 갤러리가 그 기간 동안 이룬 성과는 아주 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공신화보다는 논란을 일으켰던 단편적인 사건들이

더 크게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는 미술을 비즈니스 마인드로 바라보는 찰스 사치의 전략에 의한 것이다.

브랜드 컨셉 : 창의적인 상업성으로 선정적인 개념을 팝아트와 접목 마케팅 : 비주얼 쇼크로 급속도의 미디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음 차별화된 콜렉팅 :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 전례 없는 작품의 콜렉션 및 빠른 매도로 새로운 단어 Specullector (딜러 Dealer + 콜렉터 Collector) 창조 경영인의 이미지 : 공식 활동을 하지 않고 미스테리한 캐릭터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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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사치갤러리의 독특한 경영방식은 찰스 사치가 처음 보여줬던 것은

아니다. 전편에 언급되었던 광고회사 사치앤드사치의 성공 이야기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사치갤러리 개관 30주년 특별전시 ‘샴페인 인생 (Champagne Life)’ 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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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뛰어드는 집단자살 쥐들을 이용한 시각적으로 충격적인 담배 광고 캠페인

1970년 사치 형제가 처음 기획했던 광고는 기존 영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시각적으로 도발적인 담배 캠페인이었다. 이 광고로 인하여 매스컴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면서 빠른 속도로 고객확보가 가능하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7개, 1980년대는 30개 이상의 회사를 인수하며 사치앤드사치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글로벌기업이 된다. 80년대 세계에서 가장 큰 광고회사로 기록된 이 회사의

발자취는 사치 갤러리의 성장과 놀라울 만큼 흡사한 점이 많다. 찰스 사치의 ‘컬렉터 광’이라는 이미지 이면에 이와 같은 행보가 지금의 사치갤러리를 탄생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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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평균 8,000 명의 관객이 몰려왔던 샤넬 특별전 <Mademoiselle Privé (2015)>의 외부 전경과 전시장 내부


TOP 10 LONDON - FREE EXHIBITIONS Daily

Total

8,040

160,792

Exhibition

Venue

Chanel : Mademoiselle Privé

Dates

Saatchi Gallery

13 OCT - 1 NOV

5,067

486,425

Post Pop : East Meets West

Saatchi Gallery

26 NOV - 3 MAR 15

4,693

112,639

Hermes : Wanderland

Saatchi Gallery

9 APR - 2 MAY

4,656

65,188

Skate Girls of Kabul : Jessica Fulford- Dobson

Saatchi Gallery

15 APR - 28 APR

4,604

55,212

Patek Philippe

Saatchi Gallery

27 MAY - 7 JUN

4,533

299,178

Dead : a Celebration of Mortality

Saatchi Gallery

26 JUN - 30 AUG 11 MAR - 17 SEP

4,094

781,963

Pangaea 2nd

Saatchi Gallery

3,469

329,556

BP Portrait Award 2015

National Portrait Gallery

18 JUN - 20 SEP

2,217

416,867

Disobedient Objects

Victoria And Albert Museum

26 JUL 14 - 1 FEB 15

2,170

193,780

Lynette Yiadom Boakye : Verses After Dusk

Serpentine Galleries

2 JUN - 13 SEP

2015년 관람객 수 TOP 10 중 상위 7위를 모두 차지한 사치 갤러리 자료 출처_The Art Newspaper: Visitor Figures 2015

그는 사치앤드사치를 다양한 방법으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사치갤러리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성장하게 된다. 특히 2006년 첫 선을 보인 웹 플랫폼 사치 온라인 Saatchi 판매 할 수 있고, 방송국과 함께 영국 미술학교 재학생 대상 공모전 Stuart 을 실시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던 사치 온라인은 2014년 미국 온라인 컨텐츠회사 Demand media 가 $ 17M

(약 200억원)

에 인수하면서 독립 법인이

되었다. 2016년 현재, 사치 갤러리는 런던에서 빠질 수 없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획전을 포함한 모든 전시가 무료이며, 2015년에는 방문객

수 기준 세계 35위를 차지하였고, 하루 관람객 4천명이 넘는 전시를 7개나 진행 하였다. 샤넬 Chanel, 에르메스 Hermès 등 과 같은 하이패션 브랜드의 기획전과

런던 패션위크 장소로도 사용되고 있다.

30년의 시간 동안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사치갤러리가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필자는 한편으로 미술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무료 전시 및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현재의 사치 갤러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런던 시민들이 부럽다. 자국의 젊은 아티스트를 발굴하여 세계

적인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성공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한 찰스 사치의 뛰어난 기획력과 마케팅 방식은 국내에서도 연구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text by 이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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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ine 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볼 수 있었다. 아티스트가 직접 작품을 업로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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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e Mod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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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방향_Tate Britain, Tate Modern, Tate Ives, Tate Liver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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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수도 런던 중심에 위치한 테이트 모던 Tate Modern 은 16세기부터 동시대

까지의 영국 미술과 세계미술을 누구나 즐기면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립한 그 배경 부터 의미가 깊다.

18세기 초 영국 토마스 뉴커머 Tomas Newcomen 가 증기기관을 발명하면서 영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제조산업국가로서 앞서가게 된다. 그러나 19세기부터는

미국과 아시아로 제조업의 중심을 뺏기며, 금융과 같은 3차 산업으로 국가경제 단계가 전환되었고 영국의 도심환경 재정비가 시작되었다. 특별히 필자에게 인상

깊기도 하고 부러운 점은 이러한 과정에서 산업의 전환으로 죽어버린 제조업의 잔해를 영국 국민들은 가치 있는 문화유산으로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테이트 모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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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훌륭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설탕 제조로 부를 이룬 헨리 테이트 Henry Tate 가 1889년 자신의 미술 소장품들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테이트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다. 내셔널갤러리 National Gallery

소속으로 밀뱅크 갤러리 The gallery at Millbank 라는 이름이었던 테이트는

1932년부터 공식적으로 테이트 갤러리 Tate Gallery 이름을 가지고 1955년 내셔널 갤러리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1980년대가 되자 런던 이외의 타 지역으로도 테이트는 확장하게 된다. 리버풀 Liverpool 에는 도시의 창고를 개조하여 설립된 테이트 리버풀

Tate Liverpool 이 있고, 영국 남서쪽 끝에 위치한 세인트 이브스 Saint Ives 에는

해안가를 바라보고 있는 테이트 이브스 Tate St Ives 가 있다. 런던 중앙에 높은 굴뚝이 있는 미술관으로 아이콘화 된 테이트 모던은 이러한 테이트의 브랜드 중 하나 이며 세계 동시대 미술을 선보이기 위한 독립된 공간이 필요하여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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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테이트 모던 터번 홀 공사 전 사진


테이트 모던의 건물은 뱅크사이드 A Bankside A 라는 이름의 화력 발전소였고, ‘한국

전력’과 같이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공기업 시설이었다. 1891년 완공된 뱅크사이드 A는 지속되는 환경 이슈와 기름값 상승으로 1981년 문을 닫게 된다. 테이트 모던이

오픈하였던 2000년까지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화유산 보호를 위해 영국 에서는 건출물에 대하여 별도 목록을 작성했는데, 이 발전소가 목록에 오르지

못하게 되자 1993년 일부분이 철거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BBC 방송의 문화유산

보존 목적의 프로그램 ‘과거의 발자취를 따라 One Foot in the Past’에 보도되면서

영국 대중의 철거반대로 이어져 발전소 철거의 건이 이슈화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1994년 테이트가 이 발전소를 테이트 모던의 장소로 지정하게 되면서 발전소 건물은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현재 테이트 모던은 매년 약 500만명의 사람들이 방문한다. 20여년 만에 세계의 자리매김 했다. 이런 테이트 모던의 성공은 다음의 이유가 있다. 미술 애호가들이 사랑하는 유럽에 위치했다는 점, 다량의 작품을 소장하였던 콜렉터가 모든 작품을 공공의 목적으로 나라에 기증하는 것이 특징인 상류층의 필란트로피 Philanthropy

정신, 그리고 국가의 자산을 스스로 지키고자 실천하는 시민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다.

** 필란트로피 : 박애, 자선행위 등의 의미로 기업이 자산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정신을 바탕 으로 행하는 기업체의 여러 가지 사회적 공헌활동이나 각종 자선적 기부활동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 하거나 일반 국민의 생활을 향상되도록 하는 공익활동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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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방문객 수 10위 안에 들면서 동시대미술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미술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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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모던 건물은 천재적인 건축가 헤르초크 & 드 뫼롱 Herzog & de Meuron

이 설계한다. 발전소로 사용되었던 거대한 공장을 미술관으로 변모시키기 위하여 테이트 갤러리 Tate Gallery 는 1994년 건축 설계 국제 공모전을

열었다. 이 공모전에 세계 각국에서 총 148 개의 디자인이 참여하여 높은

경쟁률을 보여주었다. 최종 심사에 남은 6팀 중에는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 Renzo Piano, 일본 나오시마 섬으로 알려진 안도

타다오 Ando Tadao, 리움미술관을 설계한 렘 쿨하스 Rem Koolhaas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쟁쟁한 건축가들을 제치고, 1995년 헤르초크 & 드 뫼롱이 최종 우승자로 선정된다. 헤르초크 & 드 뫼롱은 당시의 일반적인 건축회사들과는 다른 과감 하고 신선한 감각의 디자인으로 포트폴리오를 쌓아가던 중이었다. 동시대 미술을 중점적으로 선보이는 새로운 미술관이 필요했던 테이트는 기존 미술관 과는 차별화되는 디자인을 원했을 것이다. 이러한 니즈가 있던 테이트는 미술 이론의 철학을 담고 있는 헤르초크 & 드 뫼롱의 제안을 최종적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이 회사의 공동 설립자이며 디자인을 총괄하는 잭 헤르초크 Jacques

공간을 공공의 목적을 가진 미술관으로 변모시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고 한다. 발전소로 사용될 당시에는 바닥도, 벽도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으며,

낡은 기계처럼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의 공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잭은 이곳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의 건물에 관한 철학을 더했다.

다른 건축가들은 공장의 굴뚝을 철거하는 등 예전의 흔적을 최대한 지우고, 새롭게 바꾸는 제안을 했지만 헤르초크 & 드 뫼롱은 기계생산의 상징물이었던

굴뚝조차 철거하지 않은 채 예전의 건물이 가졌던 의미를 잊지 않는 건축 외형 적으로 미니멀한 제안을 한다.

1

2 3

1. 테이트 모던 건축 공고문

4

3. 실제 제출되었던 제안서들의 표지

2. 최종 심사에 사용되었던 투시도 1994, 4. 최종 심사 전 테이트 관계자 및 상위권에 오른 건축사무소 팀들과 현장답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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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zog 의 말에 따르면, 도시환경 속에서 오랜 시간 산업시설로 사용되던


요셉보이스 Joseph Beuys 가 1979년 바젤 카니발에서 진행한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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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Beuys: Installations, Actions & Vitrines>

여기서 이야기하는 미니멀 Minimal 은 미술 사조에 등장하는 미니멀리즘 Minimalism 인데 헤르초크 & 드 뫼롱의 회사가 설립된 1978년부터 이어온 그들의 디자인 철학

중 하나이다. 자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건축계는 철학이나 미학과는 거리가 멀어

지면서 건축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사라 지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미술사조 미니멀리즘의 ‘최소’, 단순‘ 을 건축회사에서

받아들여 디자인에 반영했다는 것은 아주 새로우면서도 과감한 시도였다. 미국 미니멀리즘 작가 도널드 주드 Donald Judd 의 정형화된 직육면체의 작업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초창기 그들의 건축물을 보면 매우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그들은 스위스 바젤 Basel 에서 태어났다. 언제나 일상 생활 속에서 미술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처음 회사를 설립하였을 때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를 바젤로 초대하여 카니발에 참여시키고 바젤 시가 그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 힘쓴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그들은 첫 행보부터 미술과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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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웨이웨이 Ai WeiWei 와의 콜라보레이션 파빌리온 Serpentine Gallery Pavilion 2012

지내고 싶어하는 공간을 끊임없이 연구했다. 사람이 건물 속을 걸어가면 마치 아름 다운 시를 읽는 것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편안하게 공간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공공장소에 대한 철학은 생물학과 비교하기도

한다. 세포가 다른 세포와 유기적인 관계로 성장하며 어떠한 생명체의 일부로써 작용 하는 것처럼 건축 또한 사회에서 의미가 있고 다른 구성요소와 상호보완적인 존재 여야 한다는 것이다.

헤르초크 & 드 뫼롱은 미술관이라는 것은 미술작품이 전시가 되는 공간을 넘어서

사람이 공간을 경험하는 것 자체가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어야 하고 계단 하나도

허투루 설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테이트 모던은 성공적으로 런던의 랜드 마크로 자리잡았고, 2016년 개관한 신관 또한 예술의 경계를 유연하게 바라보며 발전하는 그들의 독창적인 에너지를 엿볼 수 있었다.

** 미니멀리즘 Minimalism : 미니멀리즘이란 세계2차대전 이후, 〈더 적은 것이 더 많다〉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는 심미적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는 예술전통을 말한다. 문학의 영역을 넘어 음악이나 미술 또는 조각이나 건축, 패션 에서도 매우 중요한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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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또한 건축물을 개별적인 객체로 보지 않고 인간의 삶이 있는 공간,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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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초크 & 드 뫼롱 Herzog & de Meu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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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 모던은 거대한 스케일의 현대미술을 실험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터바인 홀

Turbine Hall’을 가지고 있다. 2000년 이후 가장 많은 관람객 약 6천만 명 이상이

방문한 공간이다.

약 1천평 (3,300m2) 규모의 (가로 23m, 깊이 155m, 높이는 무려 35m) 터바인 홀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발전소로 이용되었을 당시 주요 발전용 기계들이 설치되었던 공간

이었다. 워낙 거대한 스케일을 요하는 설치물 작업을 보여줘야 하는 공간이기에 테이트 모던은 처음부터 기업의 후원을 통한 전시를 기획하였으며, 2012년까지는 자동차가 10년 동안 약 65억 원을 후원하는 커미션 공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규모의 터바인 홀 특별전은 매해 10월부터 다음 해

4월 경까지 전시가 진행된다. 지금까지 총 14번의 전시가 이루어졌고, 관람객은 눈으로 감상할 뿐만 아니라 강렬한 체험적 감상을 경험할 수 있어서 방문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미술관의 목적 중 하나인 ‘공공성’을 유지하며

터바인 홀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호기심, 즐거움, 혹은 놀라움과 같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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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레버 Unilever 사로부터 약 60억원의 지원을 받았다. 한국에는 2013년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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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_루이스 부르주아 <THE UNILEVER SERIES : I DO, I UNDO, I REDO> 의 전시전경 아래_ 아니쉬 카푸어 <THE UNILEVER SERIES : MARSYAS>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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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 터바인 홀의 첫 특별전은 거미조각가로 알려진 루이스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의 <나는 한다, 되돌린다, 재생한다 I Do, I Undo, I Redo > 전시였다. 작가는

자전적 의미가 강한 10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3개의 탑이 설치되었다. 관람객은 직접 나선형 계단으로 이 탑을 오를 수 있으며 위에 설치된 거울 앞에 앉아 작가의 의도를

경험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3개의 탑은 각각 I Do, I Undo, I Redo

의 이름이 정해졌는데, I Redo 는 마치 어머니의 자궁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하며 모성의 의미를 생각하도록 유도했다.

조형성으로 비현실적인 시각적 감동을 선사하며 세계적으로 알려진 그는 터바인 홀의 규모를 가장 잘 활용한 작가 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다. 3개의 거대한 철골 후프를 공중에 배치한 다음 PVC로 이어서 만든 이 작품은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한 눈에 작품을 감상 할 수 없다.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몸을 하늘로 승화

시키고 싶다. I want to make body into sky’ 라고 하였는데 핏빛과 유사한 검붉은

색의 표면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감동 으로 경험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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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의 <마시아스 Marsyas> 전시 또한 특별했다. 인공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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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라퍼 엘리아슨의 기상 프로젝트의 인공 해를 위에서 바라본 모습과 진짜 태양 아래에서 일광욕을 하는 것 같은 사람들


2003년, 울라퍼 엘리아슨 Olafur Eliasson 의 <기상 프로젝트 The Weather

Project> 에서는 터바인 홀에서 태양을 목격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수백 개의 거울과

조명으로 인공태양이 탄생하였는데 사람들은 일광욕을 하는 것처럼 누워있기도 하고 공원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앉아서 담소를 나누기도 하였다.

특히 맑은 날이 상대적으로 적은 영국에서 인공 태양이 설치된 것은 대중의 뜨거운

열광을 얻었고, 미술계 사람들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에게 테이트 모던을 알리게 되는 전시였다.

최초의 아시아 작가 전시는 2010년 11번째 특별전 아이웨이웨이 Ai Weiwei 의 <해바라기씨 Sunflower Seeds> 였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1억 개의 해바라기 씨가

터바인 홀에 가득 채워졌다. 중국의 전통 도자기산업의 쇠퇴를 알리고자 중국에서

었다. 관람객들이 직접 실물 크기의 해바라기 씨를 만져보거나 누워볼 수 있었지만

전시 도중 먼지가 많이 생기는 이유로 관람객들이 들어갈 수 없는 전시로 바뀌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1억 개가 넘는 해바라기 씨 모양의 도자기는 전시 이후 미술품 경매회사 소더비에서 29만 파운드 (약 5억 3천만 원) 에 낙찰되었다.

이 외에도 매년 새로운 전시를 선사하는 특별전은 기업의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개관 이후 12년 동안 유니레버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위에서 언급한 전시 이외에도 실험적인 퍼포먼스, 영상, 또는 소리예술 전시가 이 거대한 공간에 가득 채워졌다.

이처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규모로 관객의 예상을 뛰어넘는 터바인 홀의 특별전은 테이트 모던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동시대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든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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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으로 통용되는 해바라기 씨 모양을 전통 도자기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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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_중국 전통 도자기 공방에서 해바라기씨를 만드는 모습과 아이 웨이웨이의 전시 전경 아래_필립 파레노의 <언제 어디서든지> 전시 전경

음악, 영상, 떠다니는 풍선물고기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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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E 는 매년 웹사이트를 통해 연간 보고서를 공개한다.

테이트 모던이 약 10여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방문객 수가 많은 현대미술관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것은 미술관의 기업형 매니징 전략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테이트는 2015년-2020년까지의 슬로건과 이를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을 발표하였는데 이는 어느 서비스 업계의 기업이 발표한 전략보다 구체적이고 면밀하게 짜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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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E VISION AND PLAN 2016-2019

슬로건은 ‘예술과 그 가치를 사회에 알리려 노력한다. Championing art and its

value to society ’이다. 이를 지키기 위하여 테이트는 총 9가지의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하는데 그 중 크게 아래와 같은 항목으로 나뉜다. 1. 소비자 경험 2. 성장

3. 지속가능 경영 4. 경쟁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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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자 경험 : 테이트의 커뮤니케이션 팀 Communication team 은 관람객들의

미술관 경험에 집중한다. 각자의 취향, 성격이 다르더라도 만족할 수 있게 구미에

맞는 다양한 컨텐츠를 제공하는데 이에 대한 노력의 결과치는 관람객의 재방문률로

가늠한다. 또한 일반 관람객 이외 유료 멤버쉽, 기업 후원 VIP 고객들에게는 보다 고급스럽고 특별한 경험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새로운 테이트 모던의

층수 별 안내만 보아도 멤버쉽 라운지, VIP 이벤트 홀 등의 공간이 전체 층으로 별도 운영되고 있다. 온라인과 앱 개발은 소비자 경험을 극대화시키려는 전략에서

빠지지 않는다.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파트너쉽을 맺고 홈페이지 개선과 앱 개발에 신경을 쓰고 있다.

- 성장 : 테이트는 다른 비영리 미술관처럼 작품을 판매할 수 없다. 하지만 2016년

테이트 모던은 수백 억원을 들여 기존 공간보다 60% 더 많은 전시 및 이벤트가

가능한 스위치 하우스 The Switch House 를 오픈하였다. 또한 매년 1천여 점이 넘는 작품을 전 세계에서 소장하고 있다. 공공 미술관이니 정부에서 대부분의

지원금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테이트는 관람객 수 당 낮은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자랑한다. 이와 같은 지표를 가지고 테이트는 적극적으로 기업과의 미술관을 운영한 자본을 만들어 나간다.

- 지속 가능 경영 : 테이트는 해외 파트너쉽의 중요성을 2020년까지 강조한다. 경제가 침체되고 정치적 불안정한 사건이 많은 요즘, 자국의 네트워크와 정부의

지원만으로는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해외 자본의 유입을 위하여 테이트는 강력한 컬렉션과 방대한 리서치 등을 가지고 해외에서도 특별전을 기획하고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러한 노력은 테이트의 비즈니스 네트워킹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며 경영진의 자립적 생존방침이 없다면 매해 1,000억 원이 넘는 운영 경비를 유지하기란 힘들 것이다.

- 경쟁력 강화 : 세계 최고의 미술관들과 경쟁을 하는 테이트의 자체 평가 지표는 어렵지 않다. 연 관람객 수, 재방문율, 온라인 방문객 수, 상품판매

(온/오프라인) ,

멤버쉽 증가율,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관람객 수 당 공적 자금 이용금액 Public

Subsidies per Visitor 등으로 누구나 온라인에 공개된 테이트의 연간 보고서와

같은 운영에 관한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명료한 비전과 이를 위한 명쾌한 방안, 이에 따르는 강력한 활동계획을 공개하는 것은 얼마나 조직이 탄탄하게 이루어져 있는지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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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쉽을 맺고 있으며 멤버쉽 관리 및 영업, 그리고 샵 운영을 통해 자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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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터너상 수상자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 와 수상작 Mother and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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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트의 활동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는 터너 상 Turner Prize 이라 할 수 있다. 터너 상은 1984년 테이트 브리튼 TATE Britain 으로부터 시작된 상이다. 50세

이하의 영국 작가들에게 주어지며, 1년에 한 번 4명의 후보 작가를 선정한 후,

몇 주 동안의 치열한 경쟁 끝에 최종 당선자 1명을 시상하는 방식이다. 이 시상식이 가능하게 만든 첫 후원사는 투자은행인 드럭셀 번햄 램버트 Drexel Burnham

Lambert 였다. 1990년 이 회사는 비리에 연루되어 파산하는 바람에 해당 년도

에는 터너 상이 진행되지 못하였다. 다행히 1991년부터 영국 공영방송국 채널4

Channel 4 가 후원했고, 2003년 까지 이 방송국은 터너 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다

1999년 후보자 트레이시 에민 Tracey Emin 은 세계 미술사에 등장하는 yBa (Young British Artist)

의 주역이다. 영국이 세계 동시대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시작한 것도 터너상이 큰 역할을 했다. 2004년부터는 영국의 진 Gin 브랜드 고든

진 Gorden’s gin 사의 후원으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서양이 동양에 비하여 후원문화가 발달해 있고 미술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성공한 미술관들은 그들의 운영방침을 면밀히 살펴보면 외부 조건을 떠나 내부적으로 수많은 전략과 노력에 의한 결실임을 알 수 있다.∎ text by 이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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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멘터리 및 시상식 방영을 하였다. 1995년 수상자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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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


‘카셀 도큐멘타’를 탄생시킨 아놀드 보데 Arnold Bode

영미권 문화에만 익숙했던 필자는 독일사람들로부터 출발한 창작물 자체가 생경 하였다. 세계 전쟁의 중심에 있었고, 지금은 경제대국으로 여전히 자리매김 하고 있는 독일. 격동의 시간을 경험한 나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작업에 독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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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이 분명이 있는 것 같다. 2017년 미술인들이 모두 기대하고 있는 <도큐멘타 14 dOCUMENTA 14> 는 더욱 기대가 된다.

1955년 독일 카셀 Kassel 지역의 작가이자 교수였던 아놀드 보드 Arnold Bode 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나치로부터 금기 되었던 예술을 재생하기 위한 고민의 일환 으로 20세기 미술을 선보이면서 독일을 세계 미술과 연결하려는 시도로 ‘도큐멘타’ 가 시작된다. 첫 전시는 포비즘, 큐비즘, 미래주의, 표현주의 등 현대미술의 굵직한 사조의 작품들과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막스 에른스트 Max Ernst,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와 같은 최고의 작품

들을 선보였다. 약 100일 간 진행되었던 첫 <도큐멘타> 는 세계 미술에 굶주렸던 사람들이 카셀로 몰려들면서 13만명 관객 수를 기록하게 된다.

5년에 한 번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는 언제나 100일을 넘지 않는 전시를 하기에 ‘100일의 미술관’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90만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한 ‘도큐 멘타13’ 이후로 2017년에 열리는 <도큐멘타 14> 는 카셀 외에도 그리스의 아테네 에서 동시에 개최될 예정이다. 특히 <도큐멘타 13> 의 예술 총감독 캐롤린 크리스

토프-바카르기예프 Carolyn Christov-Bakargiev 는 예술과 사회의 연결성을

주제로 다양한 전시를 보여주었고, 그 일환으로 독일의 경제 독점에 항의하는 시위도 허가하였다고 한다.


<도큐멘타> 가 처음 선보인 이유를 간략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예술 흐름과 그로부터 단절되어 있던 독일을 연결하고자 출발하였다고 소개되어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더 면밀하게 살펴보면 카셀은 장소적 특징과 그곳에서 태어난 카셀 ‘도큐멘타’를 탄생시킨 아놀드

18세기 카셀에서는 그림 Grimm 형제가 살았었고, 같은 시기에 유럽 최초의 박물관

Museum Fridericianum 이 건립되었으며, 20세기 아르누보 Art Nouveau 가 출

발한 지역에 속해 있었다. 이렇게 카셀은 독일의 어느 도시보다 문화적으로 발달한 곳이다. 안타깝게도 제 2차 세계대전 전쟁의 요충지로 90%가 파괴되었지만 카셀 특유의 문화적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지역 사람들의 의지까지 모두 파괴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시각예술 부흥의 중심에 있었던 아놀드 보데는 <도큐멘타> 를 설립하기 전, 이미

1929년 카셀에서 ‘오랑제리의 신예술 New Art in the Orangerie’ 의 총괄 디렉터로

임명되어 ‘신예술 New Art’ 을 소개한다. ‘도큐멘타’ 첫 전시에서 소개된 아방가르드 작가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파울 클레 Paul Klee, 오토 뮐러 Otto Mueller

를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이 전시는 카셀 ‘도큐멘타’의 시조라고 전해지고 있다. <도큐멘타> 가 탄생하기 19년 전, 이 조직의 중심에 있었기에 전후 독일의 끊어졌던 예술을 세계로 재연결하는 역사를 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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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데 Arnold Bode 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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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UMENTA 9 을 성공적으로 이끈 dOCUMENTA 9 의 총괄 디렉터 잔 호에 Jan H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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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 13회의 ‘도큐멘타’ 결과 수치를 보면 9회 째였던 1992년은 이상하리만큼 많은 관람객 수와 높은 예산편성이 눈에 들어온다. <도큐멘타> 역사상 가장 관심을 끌었던 해로 기록되는데,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도큐멘타’를 보기

위하여 카셀로 모여들었다. 7개의 추가 전시 공간을 지원받았으며 12회에 비하여 약 6배에 달하는 예산이 편성되었다. (현재 환율 기준 약 60억 원)

성공을 이끌었던 총괄 디렉터 잔 호에 Jan Hoet 는 미술사적 카테고리 범주 안에서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방식이 아닌 실험적인 작업을 대변하는 작가를 조명하 게 된다. 기존 <도큐멘타> 의 기획을 수용하면서도 동시대 미술의 실험 장소라

는 현재 <도큐멘타> 의 특징을 형성하게 되는 최초의 시도였던 것이다. 독일인이 아니라 벨기에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의 역량을 오프닝 전날까지도 의심하는 사람

들이 많았으나, 변화가 필요했던 ‘도큐멘타’를 성공적으로 이끈 디렉터로 기록된다.

에이즈와 같은 질병과 전쟁, 세계 기후 변화 라는 거대 공포의 확산을 마주한 사람

들에게 인간생존의 물리적 환경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관람자 참여 방식의 전시 방법은 재즈, 복싱, 야구와 같은 미술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기도

하고 다중채널을 이용하여 가상현실을 경험하게 하고, 세계 각 나라를 여행하며 미술 프로모터 Art Promoter 였던 호에는 아주 흥미로운 미술이 유럽 이외의 국가

들에서도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의 작가들을 초청하기도 하였다.

물론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100일의 전시가 대성공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약 20만 명의 인구가 사는 작은 마을에 3배가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던 그 해는 마을 주민들의 협동과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이 없었다면 이 전시는 혼란 속에서

전혀 다른 평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뛰어난 한 사람의 역할도 컸지만 주민들의 적극

적인 참여가 지금도 기록적인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 <도큐멘타 9> 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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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몸으로, 그리고 우리로 From body to body to bodies’ 라는 시적인 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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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than Borofsky, Man walking to the sky, 1990, Kassel, Germany 1992년 독일 정부에서 이 작품을 구입하여 현재까지도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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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큐멘타 14’의 총괄 아트디렉터 아담 Adam Szymczyk

카셀 <도큐멘타> 는 1955년 시작하여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글로벌 사회, 경제 이 슈 의 변 화 에 맞 춰 유 기 적 으 로 변 화 했 다 . ‘도큐멘타 14

최초로 독일 카셀 이외의 도시 아테네에서 와 함께 진행된다고 한다. ‘아테네

로부터의 교훈 Learning from Athens ’ 주제를 진행된다. 세계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독일과 세계 경제위기의 예시 국가인 그리스에서 선보이는 ‘도큐멘타 14’의 총괄 아트디렉터는 아담 Adam Szymczyk 이다.

아담은 2013년 11월 ‘도큐멘타 14’의 총괄 디렉터로 임명이 되었다. 그는 폴란드

출생으로 청소년기에 다다운동 Dadaism 을 접하면서 아방가르드 한 미술에 빠지게

된다. 그는 2003년부터 쿤스트할레 바젤 Kunsthale Basel 디렉터로 지내면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실험적인 작업을 큐레이팅 한다. 2007년

세계적인 미술 출판 ‘아트리뷰 ArtReview’ 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인 100에 선정되면서 세계 미술인들은 더욱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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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는

(2017년 6월 10일 -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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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공공프로그램 오프닝 현장

Opening of the Public Programs of documenta 14 at Parko Eleftherias

세계미술포럼에 참석하여 연설과 토론을 하기도 하고 그리스에서는 8번의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동시대 미술의 사회적 역할과 그 의미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며 발 빠르게 2017년 전시 준비를 시작했다. 또한 ‘South Magazine’이라는 그리스 정기 간행물

브랜와의 협업으로도 ‘도큐멘타 14’ 공식 출판을 맡고 있다. 국내 작가로는 백남준

(1977)과

육근병(1992) 이후로 20년만에 문경원, 전준호, 양혜규 작가가 초청이 되어

그들의 작품을 선보인다고 한다.

‘도큐멘타’는 전시공간에서 확장된, 위와 같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기에 5년마다

개최되는 100일의 전시 이외의 활동도 관심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카셀 도큐멘타는 미술이 개인의 심미적 취미를 넘어 사회 및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장르가 될 수 있도록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다.∎ text by 이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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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큐멘타 14’ 조직위원들은 2016년부터 그리스, 멕시코, 인도 등에서 개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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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Ăźr

Moderne

Kun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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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프랑크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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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4개 자유 도시 중 하나인 프랑크푸르트는 인구 66만이 넘는 대도시이며

현재는 매년 국제박람회가 열리는 독일의 경제·금융의 중심지이다.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문학가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

다. 프랑크푸르트의 정식 명칭은 마인 강 연변에 발달하였다 하여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Frankfurt am Main 이다. 이 곳에 독일을 대표하는 MMK 미술관

Museum für Moderne Kunst 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1980-1990년대 동안 이 도시는 미술관을 포함하여 무려 20여개의 박물관이 개관 되었다. 이렇게 이례적으로 많은 문화관련 공립건물이 설립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1960년대 독일은 ‘케인즈 주의 복지국가 Keynesian Welfare State ’ 의 막을

종료하고, 정부정책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며 자유경쟁을 외치면서 경제의 세계화에 대한 전략이 시행된 것이다. 제조와 수출

중심의 경제성장은 70년대에 이르러 생산량의 40%를 수출하는 성과를 이루게

된다. 수출과 함께 무역을 위한 기반시설인 공항과 철로가 함께 발달하면서 금융

Bankfurt 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유럽의 가장 큰 경제지구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시민들은 도시를 뱅크푸르트에서 크랑푸르트 Krankfurt 로 별명을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도시가 무차별적 난개발로 병든 것처럼 변하자 독일어 ‘아프다

Krank’를 붙인 것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3분의 2가 파괴된 도시는 외부에서 유입된 노동자들과 냉전 상태

였던 독일에 정착해 있던 미군들이 삭막한 건물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 당시 여론 조사에 따르면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가장 매력 없는 도시 1위로 뽑혔다고 한다. 이러한 프랑크푸르트가 지금의 문화중심도시로 변하게 된 배경에는 1977년

부터 1986년까지 시장이었던 월터 월만 Walter Wallmann 의 국제도시화사업

정책과 이를 지지하였던 도시 금융기관의 힘이 크다. 그는 프랑크프루트 시 전체 예산의 11% 를 문화, 예술 지원 사업으로 사용하며 도시의 이미지를 바꾸기 시작 한다. 약 1,200억 원이 투입된 도시 재건사업은 2차 세계대전으로 소실된 문화

유산의 복원 및 도시를 가로지르는 마인 강변으로 미술관을 건립하여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도시로 변모하는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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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본부들이 금융지구를 형성하였다. 그리하여 프랑크푸르트는 뱅크푸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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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는 마인강 주변으로 약 30여개의 미술관 및 박물관이 있으며,

매년 8월 마지막 주말에는 ‘MUSEUM EMBANKMENT FESTIVAL’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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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강 주변으로 추진된 문화재건사업은 ‘무제움스우퍼 Museumsufer ’라는 브랜드 명을 가졌으며 이 방대한 계획은 월터 월만 Walter Wallmann 시장과 문화

관광부의 힐머 호프만 Hilmar Hoffmann 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뮌헨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적은 예산으로 이 재건사업을 추진해야 했기에

건물을 새로 설계하기보다는 기존의 건물을 박물관으로 탈바꿈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 중 미술관과 건축박물관 설립은 1979년 안건이 통 과되면서 위치를 배정받았는데, 충분하지 못한 공간 때문에 초기 계획은 반려되었 다. 정부는 그 후 비평가이며 교수였던 피터 아이덴 Peter Iden 을 프로젝트 총괄 감

독으로 선임한다. 그는 1972년 카셀 도큐멘타 5 documenta 5 조직위원으로 선정

되며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담론과 그 가치를 창조하는 중심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덴 교수는 기존 미술관과는 다른 형태의, 보다 동시대적인 성격이 강한 있다.

MMK 미술관 Museum für Moderne Kunst 의 부지는 1982년 시청 신관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장소로 결정되었으며 건축 디자인은 1983년 공모를 통해 수상한

비엔나 출신 한스 홀라인 Hans Hollein 의 설계로 결정되었다. 한스 홀라인은 크게

2가지의 중요한 주제를 기반으로 미술관을 설계하였는데 첫째, 미술관이 지어질 장소의 특징, 즉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리적 요건과 환경을 염두해 두었다.

두 번째, 동시대 미술을 대중에게 선보일 MMK의 목적에 대해서도 설계에 반영하여

외부는 기묘한 삼각형 형태로 ‘케이크 조각 a Piece of Pie’ 이라는 별칭을 가진

독특한 디자인을 선보였고, 내부에 총 40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진 3층 건물이 세워

진다. 한때는 시의 문화 예술 기금이 줄어들면서 지연되기도 했지만 4년 간의 건설 기간과 약 380억 원의 예산으로 1991년 마침내 개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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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만들 계획을 세웠을 것이고 그 첫 행보는 미술관 건축에서부터 찾아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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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K 내부 전경


MMK 2관은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고, 이는 프랑크푸르트 기업과 개인의 도움으로 설립되었다. 1998년 고층건물 건설사업 TaunusTurm 이 시의

승인을 받았는데 이에 참여한 부동산 기업가들이 50년동안 무상으로 MMK에 건물의 한 층 전체 임대를 약속하였다. 또한 운영비는 MMK 2관 모금회원들로부터

지원받아 시의 재정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운영 중이다. MMK 3관은 MMK 본관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머징 해외작가 소개, 지역 예술학교 전시, 유르겐폰토 후원 Jürgen Ponto Foundation 전시 및 각종 강의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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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K의 탄생은 프랑크푸르트 도시가 문화예술 도시로 변신하려는 시의 노력에서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난관에 봉착하였지만 양질의 미술관을 만들려는 목적을 잊지

않고 영향력 있는 전문가를 총 책임자로 선임하는 정부의 신속한 결정이 없었 더라면 지금의 MMK는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의 확장은 이를 지원해 주었던 지역 기업의 후원과 시민의 힘으로 가능하였다. 현재 대한민국 전역 에서 들려오는 문화 콘텐츠 개발사업도 이처럼 정부와 기업 및 시민들의 참여로 단기적 이익보다 큰 미래의 가치를 보고 창출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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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_쟝 크리스토퍼 아만 Jean-Christophe Ammann 우_사진 찍는 아만 1986

쿤스트 바젤에서 라운드테이블을 제안하여 작가들과의 토론의 장을 열었다.

(왼쪽부터 : 안셈 키퍼 Anselm Kiefer,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쟈니스 쿠넬리스 Jannis Koune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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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조 쿠치 Enzo Cucchi)

MMK가 첫 개관한 1991년부터 2001년까지 11년간 디렉터로 지낸 쟝 크리스토퍼 아만 Jean-Christophe Ammann 은 MMK가 동시대미술을 조명하는 독일의

첫 미술관이 될 수 있게 만든 결정적인 인물이다. 그는 기존의 전통과 관습을 따르지 않고 젊고 새로운, 그리고 현재를 뛰어넘는 미술을 제시하였다. 또한 미술관

이라는 특성에 맞게 ‘공공성’을 부여하였다. 스위스 출신 아만은 1968년 스위스

루체른 미술관 Kunstmuseum Lucerne 에서 유럽의 최연소 총괄 디렉터 중 한 명으로 선출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후 아만은 해럴드 지만 Harald Szeemann

을 만나면서 1972년 카셀 도큐멘타 5 Kassel Documenta 5 운영위원으로 선출

되었다. 이후 70년대부터 독일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도큐멘타 5 이후, 지만은 10여년 간 공식 석상에서 자리를 비우게 되지만 아만은

끊임없이 새로이 창조되는 동시대미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대중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이를 이어나갔다. 그는 언제나 미술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

정신 Zeitgeist ’ 이 있고, 이 정신이 지역에 확산되려면 지역작가들이 중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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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아만은 쿤스트할레 바젤 Kunsthalle Basel 에서 1978년부터 1988까지

총괄 디렉터로 있으며 회화의 포스트모던을 가장 잘 해석하는 큐레이터로서 인정

받았으며 유럽에서는 생소하였던 미국의 신세대 작가들의 솔로 전시를 선보였다. 또한 원로 작가의 작품을 재조명하는 자리도 마련하였다.

1991년 MMK에서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아만은 거의 완공 단계였던 한스 홀레인 Hans Hollein 의 케이크모양 건축물이 너무 독특하여 전시가

어렵다는 컴플레인을 하였지만 독일인이 아니어서인지 미술관 담당 기관에서는

그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시장에게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8장 분량의 글을 보냈고, 시장은 미술관 방향성에 대한 회의 결과를 토대로 아만의 의견에 동의하였다. 아만은 이렇게 끈질기게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켜가며 11년 간 미술관의 성격을 확고히 만들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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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K의 개관전 <Eröffnungsausstellung (1991.6.6 ~ 1992.1.12)> 포스터


1991년 MMK 개관전에는 총 51명 작가의 작품을 선보였다. 앤디 워홀 Andy

Warhol, 도널드 주드 Donald Judd 와 같이 대중에게 친숙한 작업들이 있는가 하면 아만이 5년 전 출판한 저서 ‘공공장소에서 새로운 미술을 위하여 Pladoyer

für eine neue Kunst im öffentlichen Raum’ 와 연관성이 있는 시아 아르마자니

Siah Armajani 의 ‘사코와 반제티의 읽는 방 Sacco and Vanzetti Reading

Room’ 과 같은 개념미술 작품들도 함께 선보였다. 이 중 백남준의 ‘하나의 촛불

One Candle’ 도 그 중 하나였는데, 켜진 촛불에 삼원색 광원을 비추어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이다. 관객 참여 형 미디어아트였던 이 작품은 쟝 크리스토퍼 아만은 평생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의 작품을 소개함에 있어

최선을 다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일련의 활동이 전세계 미술관과 비엔날레에 영향을 주었고, 특히 그의 고향인 스위스를 세계 미술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로 성장시키는 커다란 역할을 했다. 지난해 9월 76세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그는 미술 관련 글을 쓰고 이머징 아티스트와 인터뷰를 하였다. 작가, 큐레이터,

콜렉터 등 많은 이들은 그가 고인이 된 것을 무척 안타까워 하였다. 이렇게

미술계 분야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평생 고민한 인물을 다시 찾기는 힘들 것 같다. 아만이 2001년 디렉터에서 물러난 이후부터 진행된 특별전시는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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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보수적인 성격이 강한 미술관에서 선보이기에는 아주 파격적인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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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ah Armajani Sacco and Vanzetti Reading Room #3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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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 Jun Paik One Candle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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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부터 4개월 동안 MMK에서 소개한 미국 출신 엘라인 프란세스 스튜어트반 Elaine Frances Sturtevant 의 <잔혹한 진실 The Brutal Truth> 은 미술에서의 진품·복제·생산과 같은 민감한 부분에 직설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앤디 워홀 Andy Warhol ,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 프랭크 스텔라

Frank Stella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아이콘과 같은 작품들을 복제하는

새로운 개념미술을 선보였다. MMK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미국 팝 아트 작품을 소장하는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그녀의 전시는 이슈화가 되었고, 흥행에 성공한 전시라 판단된다.

2005년 이후 중국 미술시장은 엄청난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2006년 뉴욕 소더비

Sotheby’s 옥션에서는 최초로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경매로 진행하였는데 중국

작가들의 작품이 대부분 낙찰이 되었고 약 130억 원이 판매되었다. 약 5천만 원으로

거래되던 정판쯔 Zeng Fanzhi 의 작품은 15억에 가까운 가격에 거래가 되는 등 엄청난 돈이 중국 미술시장에 유입되면서 전세계 미술시장의 이슈가 되었다. MMK

는 이러한 뉴스가 보도되는 2006년 중국을 독일에 알리는 전시를 수 차례 진행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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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_ 스튜어트 반의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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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_책 ‘40여년 중국의 락앤롤’의 표지

독일 출신 토마스 바일레 Thomas Bayrle 의 <40여 년 중국의 락앤롤 40 Years

Chinese Rock’n’Roll > 전시에서는 중국의 대량 생산, 사회주의적 획일성 등의

특징과 모습을 그만의 연속적인 패턴과 디자인적인 색감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전시와 같은 이름을 제목으로 아트 디렉터, 큐레이터와 함께 대담형식의 책을 출판 하여 더욱 확장된 영역으로 중국을 알리는 활동을 하였다.

이 전시 이후 독일 리포터 출신 바바라 클렘 Barbara Klemm 의 <1985년 중국

에서의 14일 14 Days in China in 1985> 는 80년대 격동의 시기 동안 중국의 생활

상을 보여주었다.

또한, 같은 해에 서지 스피처 Serge Spitzer 와 아이 웨이웨이 Ai Weiwei 의 <영역

Territorial> 은 테이트모던의 2010년 특별전 <해바라기 씨 Sunflower Seeds> 와

연관성이 깊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도자기의 깊은 역사를 아이콘으로 ‘복제’의

요소를 가미하여 중국사회의 경제발전의 핵심이었던 대량생산을 날카롭게 비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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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imaginare Museum> 전시 포스터

2016년 상반기에는 테이트 모던 TATE Modern, 퐁피두 the Centre Pompidou

미술관과 함께 프로젝트 전시가 진행되었다. 미술관의 역할이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전시의 형태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2052년 미래의 미술관을 소개

하였다. 이 전시 기간 동안, 관람객의 참여가 중요시 되었다. 기획자들에 의해 전시된 작품들을 감상한 후 참여자들의 기억에 의해서 작품들을 재배치하는 순서로

전시가 기획되었다. 이 일련의 순서는 사라져가는 미술 감상의 중요성을 관람객들 에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1 1. Allan McCollum Plaster Surrogates 1985 2. Attila Csörgö Clock Work 2011 3. Martin Kippenberger The Modern House of Believing or Not 1985 4. Daniel Spoerri Shower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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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MMK 20주년 특별전 인터뷰 영상에서 미술관을 설명하는 총괄 디렉터 수잔 게샤이머 Susanne Gaenshe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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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MMK는 디렉터 4명, 큐레이터 3명 등 총 33명의 스태프로 운영이 되고 있다.

1960년 이후 동시대미술 작품을 약 4,500여점 소장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20주년 특별전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MMK가 나아가는 방향성을 소개하였다.

첫째, 미술사에서 동시대미술 시작의 중심에는 미국의 팝 아트가 있으며 MMK는 이를 가장 잘 소개하는 유럽의 미술관임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둘째, 전시를 기획할

때, 큐레이터와 작가와의 관계를 중요시한다. MMK는 미술관이란 작품 전시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작품이 만들어지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디렉터와 큐레이터는 작가와 면밀한 계획을 통해서 공간이 100% 활용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한다. 셋째, MMK는 사람들에게 교육이 되고 의미가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운영한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와 미술 전문가들이 직접 설명하는 짧은 영상은 여타 수많은 돈을 들여 만든 홍보 동영상보다 훨씬 의미가 있으며 미술관이 고민하는 대중과의 거리를 좁혀가는 매개체로 이용한다. 이 일환으로

MMK에서 진행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보면 어린이들이 작품을 직접 체험하는

모습을 대부분 볼 수 있는데, 이는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작가들이 직접 제작하고 외부 디자인업체가 이를 조형적으로 배치한다. 여느 미술관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고루한 예절공부 및 실기학습과는 다르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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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특별전 포스터

지금까지 프랑크푸르트의 도시재생사업이 문화사업과 함께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정부에서 미술관 개관사업을 어떻게 추진하였는지를 알아보았다. 현재 미술 시장은 작품의 유통구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아트페어, 옥션하우스 등

의 이야기를 더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미술관의 중요성이 적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MK는 끊임없이 첫 개관부터 유럽 최고의 팝 아트

미술관 이라는 명성을 유지하면서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text by 이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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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Museum


일본을 대표하는 모리 미술관은 2003년 부동산 기업인 모리그룹이 건립했다.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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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인 건축가인 리처드 글러크만 Richard Gluckman 이 설계하였고, 롯폰기 힐즈의 모리타워 54층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미술관이다.

롯폰기는 잿빛 콘크리트 빌딩숲이 즐비한 지역으로 비즈니스 타운이었다. 그러나

2003년에 롯폰기 힐즈 속 모리 미술관이 들어서며 도쿄 미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지금은 모리 미술관뿐만 아니라 ‘도쿄 국립 신 미술관’, ‘21_21디자인 사이트’ 등을 만날 수 있어서 ‘롯폰기 아트 트라이앵글’ 이라고 불린다. 때문에 이곳은 일본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필수 여행 코스이며 일루미네이션을 감상하기 위해서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높은 곳에 위치한 미술관이다 보니 특이하게도 저녁 10시까지 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일본의 여타 미술관이 평균적으로 5시에 문을 닫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늦은 시간까지 열려있는 셈이다. 처음에는 단지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서 라고 생각했으나 저녁 시간이면 미술관에서 만나는 수많은 작품들만큼 도쿄의 멋진 야경이 눈앞에 펼쳐지니, 예술 작품을 하나 더 감상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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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미술관은 기획전 위주로 운영되고 있어 별도로 컬렉션을 상설 전시공간은 없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특별전에서부터 명작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획전까지 다양 하다. 2016년 9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카구야 공주 관한 기획전> 은 특별히 눈길을 끌었다.

(일본 전통 설화의 주인공) 에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롯폰기 힐스는 구상부터 완공까지 17년 간의 장기 프로젝트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가장 큰 규모의 민간 재개발 사업으로써 1986년 도쿄도가 롯폰기 6초메 지역을 재개발 유도 지구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주민들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비협조적이었다. 변화 보다는 안정적인 현재의 삶을 유지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를 중심으로

한 복합도시에 대한 설계’ 덕에 점차 호응을 얻었다. 장애우들을 초청하여 불편 함을 최소화하는 설계를 했고,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한 결과 모리그룹 은 성공적으로 롯폰기 힐즈를 완공했다. 더불어 ‘모리 프로젝트’는 상업시설과 함께

비영리기관인 미술관이 계획되면서 모리타워에 북적이는 인파가 자연스럽게 미술관

관객으로 흡수되도록 설계된 점이다. 미술관을 화이트 큐브의 문화공간으로 포장한 것이 아니라 도쿄에서도 가장 세련된 패션몰 꼭대기에 올려놓으면서 관객을 적극적 으로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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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미술관이 위치한 롯폰기 힐즈는 일본의 마을 만들기 ‘마치쯔꾸리 まちづくり’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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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_개관 기념전인 <HAPPINESS> 전시 포스터

아래_10주년 기념 전시인 <LOVE> 전시 포스터


2003년 모리미술관 개관전의 제목은 <HAPPINESS – 예술과 삶을 위한 서바이벌 가이드> 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3년, 모리미술관 10주년 기념 전시의 제목은 <LOVE - 아트로 보는 사랑의 모습> 이었다.

<HAPPINESS> 에는 180여명 작가가 참여하여 25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 초대형

전시였다. ‘행복’이라는 주제로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를 총망라하여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고 미래로 향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HAPPINESS>의 연장선상에서 10주년 기념 전인 <LOVE> 전은 ‘사랑’이라는 여러 각도에서 재조명하였다. 또한 이 전시는 2011년에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모리미술관이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이기도 하였다.

번화가에 위치한 모리미술관은 장소적인 이점을 통하여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어느 시대의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랑과 행복이라는 주제를 선택하였다. 대중 들이 어렵게 느끼는 현대미술을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보편적인 감정과 접목

시킨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모리미술관이 대중친화적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그들만의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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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를 통해서 연인간의 사랑, 가족간의 사랑, 사랑의 슬픔 등 사랑의 다양한 표정을


모리미술관이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난조 후미오 Nanjo Fumio 관장의

역할이 컸다. 2003년 모리 미술관의 개관과 더불어 부관장으로써 모리의 일원이 되었던 그는 지금은 관장으로써 모리를 진두지휘 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모리의 성공 비결은 ‘관람객의 편에 서는 것’이라고 한다. 전시 기간 중에는 미술관의 문을 닫지 않으며, 직장인이 퇴근 후에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오후 5시 이후에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강화하였다. 통계적으로 보면

저녁 7시에 관람객이 가장 많다고 한다. 사람들의 머릿 속에 밤 늦게까지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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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다는 것을 각인시킨 것이다. 단 하루 화요일은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데, 그날은 후원자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모리 미술관의 대중 친화적인 프로그램은 미술애호가들에게만 집중되지 않는다. 난조 관장은 운전기사 41명을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이를 통해 미술관에

대한 신선한 충격과 깊은 인상을 받은 운전기사들은 자연스럽게 승객에게 모리 미술관에 대하여 소개하게 되었다. 작품 설명 방식도 주입식 전달 방법이 아닌

도슨트가 작품에 대한 순수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관람객의 생각을 되묻는 방식 으로 진행한다. 이러한 역할은 의류회사 사장, 대학생, 신문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일반인 가이드가 하고 있다. 이는 미술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모리 미술관의 대중친화적인 접근 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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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예술전 (2016.7.30 ~ 2017.1.9) >의 전시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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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미술관을 대표하는 전시를 살펴보면 가장 먼저 러브콜을 보낸 2004년 쿠사마 야요이 Kusama Yayoi 의 <KUSAMATRIX> 전이다. ‘KUSAMATRIX’ 라는 전시

제목은 그녀의 성 姓 인 ‘KUSAMA’ 와 모체, 기반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 ‘Matrix’

의 합성어이다. 그녀의 작품을 총망라하는 대대적인 전시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2015년에는 또 한명의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인 무라카미 다카시 Murakami

Takashi 가 <오백나한도 五百羅漢圖 >라는 개인전을 선보였다. 이 전시에서는 무

라카미 다카시의 100m가 넘는 초대형 작품을 일본에서는 최초로 공개했는데, 오백 나한도는 동일본 대지진 후에 신속하게 지원해 준 카타르에 대한 감사를 담아, 지진 재해의 다음 해인 2012년에 도하에서 발표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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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_쿠사마 야요이 < KUSAMATRIX> 전시 리플렛

우_무라카미 다카시 <오백나한도> 전시 카탈로그와 미니어쳐 북

쿠사마 야요이와 무라카미 다카시 외에도 모리미술관은 다양한 작가들을 일본

대중에게 소개해 왔다. 2005년에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은 프랑스의 아네트 메사제 Annette Messager, 한국 작가로는 이불, 중국의 아이 웨이웨이 등

의 개인전을 진행하였다. 저명한 기성작가들뿐만 아니라 신진 작가들에게도 모리 미술관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신진 작가들에세 개인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MAM

Project

(2003~2014)’를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진행했고. 한국에서는 이창원 작가가 선정되어서 2012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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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LAB> 도록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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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_<우주와 예술> 전시 포스터

모리 미술관은 개관전과 10주년 기념전 이외에도 재미난 기획들을 진행 했다. <ARCHILAB> 전을 통해서 건축과 도시 그리고 예술에 관해서 소개하 였고, <MEDICINE AND ART> 전은 의학과 예술이 만나는 곳으로써 인체라는 주제의 전시였다.

2016년 7월 부터는 <우주와 예술> 전을 진행하고 있는데, 미래를 향한 우주관과 인간관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한다.

모리 미술관은 2003년에 개관하여 설립한지 올해로 13주년을 맞았다. 대중들이 어렵게 느끼는 현대미술만을 다루면서 단 10여년만에 자신들만의 색깔을 가진 미술관으로 성장하였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일본을 넘어서 아시아의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발돋움 하는 모리미술관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text by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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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_<MEDICINE AND ART> 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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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yo Photograph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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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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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도쿄도 역사문화재단 설립 이후,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고 풍부한 도시 지역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도쿄도에 다양한 미술관 및 박물관을 건립하기 시작

한다. 그 중 하나가 도쿄도 사진 미술관 東京都写真美術館 이다. 1995년 1월에 개관한 도쿄도 사진 미술관은 일본 최초의 사진영상 전문 미술관이다. 그동안

도쿄도 사 진 미 술 관 은 대 중 들 이 사 진 및 영 상 문 화 에 친 숙 해 질 수 있 도 록 노력해왔고, 2016년 현재 소장 작품 수는 33,393 점에 이르고 있다.

(국내 사진 작품

21,671 점, 해외 사진 작품 5,633 점, 영상 작품 자료 2,367 점, 사진 자료 3,722 점으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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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자끄 망데 다게르 와 다게레오 타입으로 제작된 ‘탕플대로 Le Boulevard du Temple (1838년경)’

먼저 사진 매체에 대해서 살펴보자. 1827년, 프랑스 석판 기술자이자 발명가

조세프 니엡스 Joseph N. Niepce 는 세계 최초로 현실의 사실적인 재현을

위한 사진술을 선보이게 된다. 그후 1839년 8월 19일, 프랑스의 루이 자끄 망데 다게르 Louis Jacques Mande Daguerre 의 ‘다게레오 타입

Daguerreotype ’의 국가적으로 공인되었고, 공식적으로 이 날이 사진의

미치게 된다.

사진은 처음부터 예술의 한 장르로써 인정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1800년대 프랑스 예술가들은 사진에 대해 “영혼이 없는 기계적인 공정일 뿐”이며,

“정성을 들여서 작가의 사유를 통해 제작되는 예술인들의 회화작품들과

비교할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하기도 하였다. 1862년의 프랑스

최고 법원은 ‘사진은 분명한 예술적 표현 수단이며, 저작권도 창작품으로써

인정된다.’고 판시함으로써 사진을 최초로 발명한 프랑스에서 23년 만에 사진의 예술성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 판결로 인해 다른 장르와는 다르게

법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은 유일한 예술장르라는 진기한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점차 사진은 확고한 예술의 영역을 구축해 가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러한 사진 매체에 매료된 일본은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카메라와 필름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의 카메라 생산은 1962년에 생산대수와

수출 모두 독일을 능가하면서 세계 최고의 수준이며, 사진 인구 비율도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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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일로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사진의 발명은 미술사에 커다란 영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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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개최된 <월간사진 파리 Le Mois de la Photo du Grand Paris>의 도록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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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 전국에는 수 많은 사진 갤러리가 있다. 미술관, 백화점 등에서 매월 500여 회의 다양한 사진 전시가 열리는 탄탄한 토양 속에서 일본 사진문화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도쿄도 사진미술관은 아시아에서 첫 번째로 건립된 공립 사진 및 영상 전문 미술관이라는 것에 그 의미가 크다.

도쿄도 사진 미술관은 1984년 도쿄 정원 미술관에서 개최된 <루오 Georges Rou-

ault> 전에 일본을 방문한 자크 시라크 Jacques René Chirac 파리 시장과 스즈키

당시 파리는 사진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1980년부터 2년에 한번씩 <월간사진

파리 Le Mois de la Photo du Grand Paris>을 개최하여 전세계 사람들이 몰려 들었으며, 1996년 개관한 유럽 사진 전시관 European House of Photography 의

기초가 되는 사진 작품 컬렉션이 시작되었다. 시라크 시장은 이러한 프랑스

분위기를 일본에 어필하면서 사진 컬렉션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였고, 당시 스즈키 도지사가 계획하고 있던 ‘마이타운 도쿄 My Town Tokyo’ 구상에 반영 하여 영상문화시설의 설립을 추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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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이치 Suzuki Shunichi 도쿄 도지사의 만남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1986년 11월에 발표된 도쿄도 제2차 장기계획 내용 중에 ‘사진문화시설’ 설립이 포함되었고, 1987년 도쿄도 종합 시설계획안을 통해 ‘사진 및 영상 작품과 주요 자료를 전시하고 보존하는 창조적 문화활동의 장’ 이라는 도쿄도영상문화시설

(가칭) 의 설립목표를 명시했다. 1990년에는 사진작품을 중심으로 한 전시공간을 1차로 개관하고, 1993년에는 사진과 영상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 영상문화시설을 개관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확정 발표하였다.

1987년 9월에는 도쿄도 생활문화국의 ‘도쿄도 영상문화시설설치계획위원회’가 발족되고, 이 위원회 안에 사진전문가들로 구성된 사진부와 영상전문가들로 구성된

영상부가 조직되어 구체적인 검토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내용을 기반으로 1988년 5월 발표된 ‘도쿄도영상문화시설

(가칭)

의 기본구상

(중간보고) ’

이 지금의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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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술관의 기틀이 되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일본 및 해외의 사진과 영상물을 폭넓게 수집하고, 어린이를 포함한 모든 도쿄 도민이 사진과 영상문화에 익숙해 질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전문적인 조사연구와 체계 적인 아카이빙을 구축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도쿄도 사진 미술관은 위의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전시, 교육, 작품 자료 수집, 조사 연구 등의 사업내용으로 나누어서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집중하고 분야는

작품 수집이다. 1989년 2월에 발표한 작품 수집의 기본 방침을 토대로 컬렉션 목표를 75,000 점 이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2016년 3월 당시, 수집한 작품의 수는 33,393 점이다.)

도쿄도 사진 미술관은 1989년 2월에 ‘도쿄도 사진 미술관 수집의 기본방침’을 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작품 수집을 이어오고 있다. 이 방침은 지속되다가 2006년에 새로운 지침을 추가하였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작품은 다음의 과정으로 소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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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작품수집의 기본방침에 따라서 학예 연구원이 수집의 이유와 근거를 제시 한다. 이를 기반으로 사업기획과장

(課長)

을 주축으로 컬렉션 전체의 균형이나,

보전의 필요성, 예산 등을 참고하여 조사한 후, 미술관의 각 분야에 걸친 위원회에

수집안이 상정된다. 여기서 가결되면, 도쿄도가 설립한 ‘도쿄도 사진미술관자료 수집위원회’에서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서 최종 결정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소장한 작품은 평가위원회에서 가격과 평가액을 조정한다. 구입

가격은 예산이 정해져 있고, 공립 미술관의 영구 컬렉션이 된다는 것을 갤러리나

아티스트, 작품 소장자에게 설명하여, 시장가격의 약 30% 정도 할인된 가격이나, 상당한 작품의 기증을 교섭하여 적정한 가격에 소장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도쿄도 사진미술관의 수집의 원칙이다.

까지만 해도 미술관에서 수집하고자 했던 1950년대 및 1960년대의 사진 작품들의

시장가격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사진을 회화나 조각 등과 같은

작품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판매하여 생활이 가능했던 사진 작가는 매우 드물었다. 대부분의 사진작가는 사진집이나 잡지, 포스터 등의 인쇄형태를

통해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한장의 프린트가 완성되면 작품이 되었고, 작품의 크기나 프린트의 퀄리티를 한정시켜서 각각의 작품을 에디션 으로 관리하였다. 이때부터 그 수는 적었지만 사진전문 갤러리가 등장한다.

도쿄도 사진 미술관은 1995년까지 총 15,032 점의 작품을 수집하게 된다. 일본 사진작가의 작품은 10,902 점이었다. 7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전쟁 이후의 일본 을 대표하는 사진가의 중요한 작품을 수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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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관 초기에는 이러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1980년대 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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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사진 미술관 건물 외관 모습

출처_http://www.japantimes.co.jp


도쿄도 사진 미술관 수집의 기본방침 (1989년 2월 3일 책정) 사진 작품 (오리지널 프린트) 을 중심으로 사진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을 폭넓게 수집한다. 사진 작품 1. 국제적인 관점에서 일본 국내외의 예술성, 문화성이 높은 작품을 폭넓게 수집한다. 2. 사진의 발생에서부터 현재까지, 사진사적으로 중요한 일본 국내외 작가와 작품을 체계적으로 수집한다. 3. 역사적으로 평가가 정해진 작품을 중시하는 한편 각종 전람회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작가와 작품의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수집한다. 4. 도쿄를 표현, 기록한 일본 국내외의 사진 작품을 수집한다. 5.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를 중점적으로 수집하여 그 작가의 창작활동의 전체상을 표현할 수 있는 수의 작품을 수집한다. 6. 기본방침 ‘사진 작품’ 5.에 따라 작품을 수집한 메인 작가 (17명, 가나다순) 가와다 키쿠지, 구와바라 키네오, 기무라 이헤에, 나가노 시게이치, 나라하라 잇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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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쓰 쇼메이, 모리야마 다이도, 시라카와 요시카즈, 쓰치다 히로미, 아키야마 쇼타로, 와타나베 요시오, 우에다 쇼지, 이시모토 야스히로, 하마야 히로시, 하야시 타아히코, 호소에 에이코, 후지와라 신야 사진 자료 1. 사진 문화에 관한 출판물 (사진집, 전문서, 잡지) 을 역사적, 계통적으로 수집한다. 2. 네거티브 필름 종류에 대해서는 작가와 작품 연구 등에 필요한 것을 수집한다. 3. 포스터 등 사진전의 부속 자료 (도록, 티켓 등) 를 수집한다. 4. 그 밖에 작가나 작품의 관련 자료, 주변 자료를 적절하게 수집한다. 사진 기자재류 1. 사진의 원리와 발굴의 역사, 창조성과 테크놀로지의 접점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전시에 필요한 것을 수집한다. 2. 체험학습 등의 사업 활동에 필요한 것을 수집한다. 영상 자료 1. 영상 문화사를 전시하는 데 필요한 영상 자료를 계통적으로 수집한다. 2. 체험형 전시를 위해 영상 장치 등의 복제품이나 모형을 계획적으로 제작한다. 3. 일본 및 아시아의 영상 문화사에 대한 조사 연구를 진행하고, 중요한 영상 자료를 수집한다. 4. 각 영상 장르의 대표적인 영상 자료 및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을 수집한다.


작품 수집 목표_장기 수집 계획 75,000점 이상 내역 : 사진 작품 (일본 국내 및 해외 50,000 점 이상, 사진 작품 이외의 자료 25,000 점 이상) 2016년 3월 현재 수집 작품 수 33,393 점 내역 : 일본 국내 사진 작품 21,671 점 해외 사진 작품 5,633 점 영상 작품 자료 2,367 점 사진 자료 3,722 점 사진 작품 수집의 새로운 지침 (2006년 11월 13일 책정) 사진 작품 수집의 기본방침에 따라 사진 미술관 컬렉션을 더욱 충실하게 수집한다. 1. 여명기의 사진과 같이 희소가치가 있는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한다. 2. 사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인 작가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수집한다. 3. 1980년대 이후에 평가가 정해진 작가의 작품을 충실하게 수집한다. 4. 일본의 신진 작가전에서 다룬 작가나 일본 국내외의 주요 상을 수상한 작가, 일본 국내외 5. 사진 미술관의 전람회 (자체 전시회, 소장전) 에 출품된 작가의 작품을 수집한다. 기본방침 ‘사진 작품’ 5.에 따른 신규 메인 작가의 설정 (1)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일 것 (2) 일본 국내외에서 평가가 높을 것 (3) 일본의 사진 한 분야를 대표하는 작가일 것 (4) 일본 국내외의 주요 미술관에서 작품이 수집되어 개인전이 개최되었을 것 (5) 현재 대략 30~60대 작가를 기준으로 한다. (6) 수집할 때는 현재 수집 예산 및 시장가격의 급등을 고려하고, 구매 및 기증을 통해 약 200점의 소장을 목표로 한다. (7) 메인 작가에 대해서는 일본 국내외의 사진 및 미술의 동향을 고려하여 수시로 재검토한다. - 사진 작품 수집의 새로운 지침 7에 따른 작가 (21명, 가나다순) 고야마 호타로, 기타이 카즈오, 기타지마 케이조, 다무라 아키히데, 다카나시 유타카, 모리무라 야스마사, 미야모토 류지, 사토 토키히로, 스기모토 히로시, 스다 잇세이, 스즈키 키요시, 시노야마 키신, 시바타 토시오, 아라키 노부요시, 야나기 미와, 야마자키 히로시, 오노데라 유키, 이시우치 미야코, 하타케야마 나오야, 후루야 세이치, 후카세 마사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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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미술관의 전람회에서 다룬 작가 등 젊은 작가의 작품을 수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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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_호소에 에이코 <천체 사진 이원론 : 호소에 에이코의 세계> 전시 포스터 2006

우_요네다 토모코 <어두운 곳에서 섞으면> 전시 포스터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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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사진 미술관은 2014년 9월부터 약 2년에 걸친 대규모 리뉴얼 공사를 마치고

2016년 9월 3일에 재개관을 하였다. 아시아 최초의 사진 · 영상 전문 미술관으로써,

1995년 종합 개관 이후로 20여년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도쿄도 사진 미술관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도록 한다.

도쿄도 사진 미술관은 앞서 살펴 보았듯이 일본 국내외의 작품성이 뛰어난 사진

및 영상 작품을 소개 및 수집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교육 보급 활동이나 인재육성사업, 도서실 운영 등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체계적인 활동을 펼쳐 나가고 있다.

야마 다이도 Moriyama Daido, 아라키 노부요시 Araki Nobuyoshi 등 주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에 주력했다. 이와 동시에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여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전시를 마련해 주었다. 도쿄도사진

미술관이 주목했던 대표적인 작가는 유키 오노데라 Yuki Onodera, 요네다 토모코

Yoneda Tomoko 등이 있었다.

또한 도쿄도 사진 미술관은 사진이라는 장르가 대중들에게 작품으로써 인식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 사회적인 이슈였던 에이즈 AIDS 와 성 Gender 에 관한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일본에서의 사진의 역사를 정립하기 위한 연구도 함께 진행

하였다. 박물관과 정부 및 기타 기록 보관소에 연락하여 오래된 사진작품과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일본의 초기 사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연대별로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약 10년간 수행하였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중요한 사진을 대중들에게 선보였고, 사진술이 어떻게 일본에서 정착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살펴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한 결과물은 2017년 3월에 전시를 통해서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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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초기에는 호소에 에이코 Hosoe Eiko, 나라하라 잇코 Narahara Itko,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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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재개관 기념전인 스기모토 히로시의 <로스트 휴먼> 展 포스터


2016년 9월, 재개관을 기념하며 전시실과 홀 등의 공간 이미지를 새롭게 바꿨으며, 관람객의 편의를 위하여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카페와 숍을 신설하였다. 이로써

관람객이 더욱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재탄생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진과 필름이 빛과 온도와 습도의 변화로 쉽게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LED 조명 및 자동화된 환경 제어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개관전은 일본을 대표하는 사진작가인 스기모토 히로시 Sugimoto Hiroshi 의 <Lost

Human Genetic Archive> 전을 선보였다. 스기모토 히로시는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70년대 대형 카메라와 장시간 노출을 사용하여 거대하면서도

시리즈의 새로운 ‘폐허극장’ 뿐만 아니라 ‘부처의 바다’ 라는 제목의 설치 작품을 비롯한 신작을 만날 수 있었다.

도쿄도 사진 미술관은 아시아 최초의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미술관이다. 이들은 체계 적인 연구를 기반으로 작품 수집 및 교육 활동에 힘써왔고, 그들의 노력으로 사진은

대중에게 친숙한 매체가 되었다. 자신들의 원칙을 지켜가며 컬렉션을 구축하고,

충실한 연구를 토대로 진행되는 전시는 도쿄도 사진미술관을 일본 사진계의 주축이 될 수 있게 하였다. 앞으로도 일본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사진·영상 문화 를 창조하고 제안하는 미술관으로 진일보하는 이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text by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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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사진을 찍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그를 대표하는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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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eum Bilb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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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_1880년 경, 빌바오시 항구 전경 / 우_1950년 대, 빌바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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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빌바오에 위치한 세계적인 미술재단 구겐하임 미술관이 1997년 10월

프랭크 게리 Frank Gehry 에 의해 7년 만에 완공되었다. 후안 카를로스 에스파냐

국왕 Juan Carlos I 은 ‘20세기 인류가 만든 최고 건물’ 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는데 가보지 못한 나에게는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 같다. 그래서 미리 정보를 통해 공부해 보기로 한다.

먼저 구겐하임재단 Guggenheim Foundation 은 미국 철강계의 거물 솔로몬

구겐하임 Solomon R. Guggenheim 이 직접 소장한 미술작품들을 보관 및 전시

하고 미국이 미술 문화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1959년 뉴욕을 시작으로 베니스,

빌바오 그리고 현재 아부다비에 설립될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2006년부터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건립 계획을 발표했으나 무산되었다.

뉴욕 / FRANK LLOYD WRIGHT • ESTABLISHED IN 1939 • BUILT IN 1959 베니스 / LORENZO BOSCHETTI • ESTABLISHED IN 1951 아부다비 / FRANK GEHRY • CURRENTLY IN DEVELOPMENT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인간 환경의 95%가 건축이다.’ 라고 말한다. 도시의 경우는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이해했다. 하지만 95%라면 건축이 인간의 생활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더 말할 것이 없지 않은가! 이런 관점에서 빌바오에 구겐하임이 건립된 전후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한번쯤은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대해서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20세기부터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이슈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도심 속 숨은 공간이나 침체되어있는 지역을 선정하여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확산되는데 예를 들어 ‘주택지 재생을 통한 주거도시의 가능성 모색’, ‘대규모 공장 이적지의 계획적 도시재생’, ‘역세권 재생을 통한 도시의

허브공간 창출’, ‘상업지 재생을 통한 도심활성화의 시도’, ‘수변도시의 창출’, ‘기성 시가지 업무. 비즈니스 지구의 전략적 재생’등이 있다. 빌바오의 경우는 ‘대규모 공장 이적지의 계획적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성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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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 / FRANK GEHRY • ESTABLISHED IN 1991 • BUILT IN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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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리적 위치부터 확인해보자. 빌바오는 바스크 자치지방 Autonomous

Community 비스카야주(州)의 주도(州都)로써 네르비온 강에서 10km 내륙으로

들어간 곳에 위치한다. 항구 도시인 빌바오는 ‘산 아래에 있는 도시’라는 뜻으로 1300년경 이 도시를 건설할 때는 ‘아름다운 여울’이라는 뜻의 벨바오 Belvao 라고

칭했다 한다. 14세기에 시작한 이 도시는 19세기까지 바스크 지방의 중심지로 제철,

제강, 기계, 유리, 금속, 조선등 공업이 발달하여 영국을 비롯한 인근 여러 나라에

수출하는 손꼽히는 무역항이었다. 특히 19세기의 산업혁명은 빌바오를 철강 산업

의 주요 운송 창구이자 선박 제조의 중심지로 자리매김 했다. 20세기 초반까지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철강 산업이 쇠퇴하면서 수많은 항구와 공장은 잇달아 문을 닫으면서 도시는 서서히 그 활기를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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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는 문화도시로 전향하기 위해서 상징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하던 차에 당시 현대미술의 중심이었던 뉴욕에서 세계적인 입지를 구축한 구겐하임 미술관에 관심을

가졌고, 1991년 구겐하임의 토마스 크렌스 Thomas Krens 관장에게 문화예술

시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구겐하임은 그간의 인지도를 발판으로 유럽 진출을

모색 중이었지만 1980년대부터 심각한 재정 위기에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때 빌바오 의 제안은 충분히 검토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물론 문화 예술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빌바오는 작은 도시에 불과했지만 유럽진출과 재정적인 부분을 모두 고려하여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후 토마스 크렌스 관장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를

만나 자문을 구하여 현재 빌바오 도시의 관문인 네르비온 강 인근에 위치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부지를 최종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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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부지를 확보한 크렌스 관장은 하인리히 클로츠 Heinrich Klotz 에게 건축가

선정을 위한 자문을 받아서 미국, 아시아, 유럽을 대표하는 프랭크 게리, 아라타

이소자키 Arata Isozaki, 쿠프 힘멜브라우 Coop Himmelblau 를 지명 형식으로

초청하여 현상설계를 의뢰했다. 결과는 1992년 최종 심사를 거쳐 도시를 대표 하는 강력한 랜드마크로써의 상징성을 강조한 프랭크 게리가 선정되었다.

게리는 기존의 건축물과는 완벽히 다른 거대한 조각품 같은 디자인으로 멀리서

보면 네르비온 강에 정박한 미래의 ‘배’ 같기도 하고, 강에서 튀어나오는 ‘은빛 물고기’를 연상시키기도 한 대규모 건축물을 선보인다. 전체 길이 130m, 폭 30m의 외관을 티타늄 조각 수만 개로 연결하여 단일 형태로 완성했는데 이를 멀리서 보면 꽃봉오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메탈 플라워 Metal Flower ’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그의 혁신적인 상상력과 완벽한 기술의 조화로 완성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날씨와 태양빛에 따라서 티타늄 판의 색과 질감이 변하기 때문에 더욱 드라마틱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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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지난 1997-2015년까지 기획한 전시와 소장품을 살펴 보기로 한다. 다분히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전시와 소장품을 선택한 것이고 그들이 기획한 수많은 전시중의 일부임을 밝힌다.

먼저, 특징적인 전시는 매년 기획하는 <Learning Through ART> 이다. 6~12세 까지 구겐하임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들의 작품을 선정하여 전시한다.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빌바오 주민들은 어려서부터 다양한 미술 이론과 실기를 공부하고 세계 최고의 전시장에서 전시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어릴 때

부터 이러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미래도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입시 미술에 치우친 교육으로 지쳐있는 한국의 학생들에게도 언젠가는 이러한 교육과 환경이 제공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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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진행된

<Learning Through ART : A Year with Children 2016> 의 전시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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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The Guggenheim Museums and Art of This Century> 1992.6.22 - 1992.8.27 2. <China: 5,000 Years> 1998.7.18 - 1998.10.22 3. <Kimsooja: Thread Routes> 2015.3.12 - 2015.7.7 4. <Sugimoto: Portraits> 2000.3.5 - 2000.5.14 Berlin Deutsche Guggenheim 5. <© MURAKAMI> 2009.2.17 - 2009.5.31

3 4

2 5


<The Worlds of Nam June Paik> 전경 2001.5.22 - 2001.9.30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매년 5~7개 정도의 실험적인 전시 기획과 개인전을 유치하고 있다. 개관전은 1997년 10월부터 1998년 6월까지 8개월의 기간 동안

<The Guggenheim Museum and The Art of this Century>를 선보였다. 이 전시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컬렉션을 다수 선보이며 앞으로 빌바오 구겐하임이 지향하는 미술 컬렉션에 대해서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다. 동양의 미술과 작가를 적극적으로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알리고 이후 굵직한 아시아 작가의 전시가 진행되었다. 실례로 한국 작가는 현재까지 백남준 <The

Worlds of Nam June Paik>, 김수자 <Kimsooja : Thread Routes>의 개인전을

선보였고, 일본은 현재까지 스기모토 Sugimoto , 무라카미 Murakami 개인전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중국은 다수의 작가가 전시되었다. 동양에서 관광으로 빌바오를 찾는 수십만 명에게 자부심과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동서양의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 하는 전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빌바오 미술관이 지지하고 사랑하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그의 건축 세계를 한눈에 조망하는 전시가 진행되었고, 한국에서도 거미 조각으로 잘 알려진

루이스 부르조아 Louise Bourgeois 는 전 생애의 작품을 총 망라한 개인전을 선보이며 거미 작품을 소장했다. 제프 쿤스 Jeff Koons 는 두 차례에 걸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Tulips’, ‘Puppy’를 소장한다. ‘Puppy’는 영구 소장품이 아니었는데

빌바오 주민들이 사랑하고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자리매김 하면서 현재는 영구 설치된 작품이다. 또한,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사이 텀블리 Cy Twombly, 앤디 워홀 Andy Warhol 의

전시와 작품을 적극적으로 유치 및 소장했다. A R T 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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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전시는 특별히 중국의 5,000년 역사와 미술을 선보인 <China: 5,00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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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rank Gehry: Architect> 2001.10.31 - 2002.4.21 Guggenheim Museum Bilbao 2. <Jeff Koons: Easyfun-Ethereal> 2001.10.2 - 2002.1.20 3. <Louise Bourgeois 3> 2008.6.27 - 2008.9.12 New York Solomon R. Guggenheim Museum 4. <Mark Rothko: Walls of Light> 2004.6.8 - 2004.10.24 5. <Anish Kapoor> 2010.3.16 - 2010.10.12 5 1 6. <Cy Twombly> 2008.10.28 - 2009.2.15 2 7. <Andy Warhol : Shadows> 2016.2.26 - 2016.10.2 6

3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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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1. <The Art of the Motorcycle> 1999.11.24 - 2000.9.23 2. <Contemporary Photography: An Expanded View> 1999.7.24 - 1999.12.20 3. <German Painting after World War II> 2002.2.5 - 2003.2.16 4. <100% Africa> 2006.10.12 - 2007.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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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필자에게 이색적인 전시로 관심을 끌었던 기획전으로는 <The Art of the Motorcycle>, <American POP Art>, <Contemporary Photography>, <German Painting after World War 2>, <100% Africa>, <Surreal Things> 이

흥미롭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빌바오 구겐하임만의 독특한 기획전이었고 앞으로도 개인전 위주가 아닌 현대 미술가를 더욱 심도있게 연구하여 선보이는 이러한 형태의 전시가 더욱 풍성해 지기를 바란다.

현재는 <프란시스 베이컨> 전시가 지난 9월 30일 시작되었다. 2017년 1월 8일까지 진행되며 80여점의 유화 작품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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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BACON : FROM PICASSO TO VELÁZQUEZ September 30, 2016 – January 8, 2017 Francis Bacon Three Studies for a Crucifixion, March 1962 Oil with sand on canvas, three panels 198.1 x 144.8 cm (each)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64.1700 © The Estate of Francis Bacon. All rights reserved. DACS/VEGAP. Bilbao, 2015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전시에 의미를 부여하고 양질의 큐레이팅을 대중에게 선보일 책임이 있다. 공간을 채우고 빠른 유통에 급급해서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수많은 전시는 에너지만 소모되기 때문이다. 또한, 물리적

시간을 가진 만큼 당대 미술의 담론을 형성 시키고 작가와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엿보기는 여기까지 마무리 하기로 한다. ∎ text by 최유진

사진 출처_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공식 웹사이트 https://www.guggenhe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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