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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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벚꽃이피는4월,어느덧3학년이되어계속해서끝나지않을것같은학창시절의끝 이다가오고있었다서늘했던날도이제는완연한봄이되어가벼운가디건한장만으로 도춥지가않다학교화단에는작은벚꽃나무들이심겨있었는데,운이좋게걸린창가 자리에앉아바깥을내다보면눈처럼흩날리는벚꽃잎을바라볼수가있었다.새로운학 기가시작된설렘,성큼앞으로다가온졸업으로인한두려움이뒤섞여어수선한교실의 소음을한귀로흘리며아무생각도없이그저흘러가는구름을바라보았다3학년이되 었으니무얼해야겠다는자각도없이새삼스러운감상도딱히들지않았다아,이런인 생으로괜찮은걸까.별다른목적의식도없고,하고싶은것도없고.멍하니바라보던바 깥으로누군가지나가는것이눈에띈다.삐죽삐죽하게묶은갈색머리,건들건들한걸음 걸이그다지특별할것없는평범한아이중하나였지만,어쩐지그애가이쪽을바라보 던순간,아,눈이마주쳤다라고이유도알수없이그런느낌이들었다 아토하루키는성실하게관계를쌓는타입은결코아니었다 노력은하고있어,라고 입버릇처럼말하고있지만아무도믿지않았으며자신도변명이라는걸알고있었다.딱 히먼저말을거는일없이온종일창밖이나보고있더라도말을걸어오는아이는꾸준 하게있었다그차분한분위기가오히려사람을홀린다던가단정하고곱상한외모덕에 오히려신비해보인다는말을들었던적이있었다매년,매학기먼저말을걸어왔다가 선명하게느껴지는벽에아무도말을걸지않게되는일이반복되었다 너는사람을좀폭넓게사귀어야할필요성이있어 나도노력은하고있다니까 입에침이나바르고거짓말을하지그래. 음…그래도루이가있으니까괜찮잖아 상대가한숨을쉬어도그저웃으며넘길뿐이었다.하루키본인도그것이그렇게좋지

밴드부를만들게된건작년말,한학년아래인시나노에이지의제안으로이루어진 일이었다.밴드부,만들지않을래요?처음에야물론들은체도하지않았으나조름에못 이겨결국두손두발을들고말았던게의외로흥미가붙어버렸다.시나노가좋아하는시 끄러운음악은잘모르겠다,역시그렇지만가끔기분전환삼아듣기에는나쁘지않았 다 비록부원수가시나노와하루키,둘뿐이라서정식동아리로인정받지도못했지만

아무래도서양록같은건유행이아니니까요아이돌이나힙합같은걸요즘애들은좋 아해요.제기타를매만지며시나노가푸념처럼늘어놓은말이었다.너도요즘애들이잖

밴드부를하고있어,라고말하면의외네,라는반응이돌아왔었다 대체로말할일이 별로없긴하지만단지옆에있다가질문이날아올때도있었고아무튼,도무지밴드하 고는어울리지않는차분하고묘하게어른스러운분위기를가진게아토하루키라는아이 였다.밴드라고하면좀더열정적인분위기잖아.그런말을들으면그러게,하고웃을뿐 이었다.저도제가어울리지않는사실쯤은알고있었으니까.

방과후가되면구교사의음악실에서동아리활동을했다신축건물을지으며구교사는 이제쓰지않게되었지만,단지낡았다는것뿐이고큰문제는없으므로밴드부활동을허 락받기도어렵지는않았다.사실하루키는새로지은건물보다도구교사를더좋아했다. 낡은나무창틀이뒤틀려잘열리지않고,겨울에는바람이새어난방을틀어도춥긴했 으나사람이별로다니지않아타박타박소리가울리는복도라던가,뒤편에야트막한언 덕이있어푸릇한나무들이보이는게좋았다도시에서그런녹색을보기는생각보다쉽 지않기도하고.

않다는걸알고는있었다.하지만당장절실하게느껴지지않는걸어떻게하란말인가. 타인이라는미지의영역은항상어렵게만다가왔다저사람이나를어떻게생각할까혹 시내가이런행동을하면저애가싫어하지는않을까?사람은쉽게호의를가지기도 했지만그만큼이유도없이누군가를미워하기도했다그러니차라리처음부터아무것도 기대하지않으면실망할일도없다고.처음부터포기하는것처럼보이기도했다.아토하 루키는관계에있어서다소겁쟁이같은면모를보이고는했으니.

“그런거야?”

언젠가의점심시간에나누었던대화였다

학교곳곳의게시판들에는시나노가직접만든홍보지가붙어있었다.알록달록한펜으 로열심히그린다소조잡한홍보지는작년부터꾸준하게자리를지키고있었지만,사실 학교게시판같은걸주의깊게보는아이들은별로없었기에그다지효과를보지는못 했었다밴드부자체에흥미를느껴견학오는아이들이없었던건아니었다하지만대 개는두사람밖에없다는사실에실망하고돌아가거나,좀더다른 .이를테면재즈같 은걸기대하고오는바람에음악적방향성이다르다며돌아가는경우가대다수였다.두 사람다실력이능숙하기라도하면몰라시나노야이전부터쭉쳐왔던기타를능숙하게 연주했지만,음악을시작한지몇달밖에되지않은하루키는아직도뚱땅거리는수준에 서벗어나지를못했다 손가락은자꾸만미끄러지고,엉뚱한줄을울려탁한불협화음을 내는일이부지기수였다.이전부터몸을움직이는일에는영소질이없었는데,고작손가 락을움직여연주하는일에도해당하는걸까.이런걸정말밴드부라고불러도되나?이

“응,선배는은근무르니까요.”

“왜루이한테는나한테한것처럼조르지않아?”

*

“그런가 .”

“그야선배는조르면넘어와줄것같은데,오토와선배는아니잖아요.”

아.그건그렇지만요.루이도함께할래?오랜친구에게도제안했었지만,학생회로도충분 히바쁘다며단칼에잘렸다

아무런대답도돌아오지않자조금쯤당혹스러운기색으로흘끔,돌아가는눈을보았다 곧정신을차린시나노는거의천장에닿을듯이펄쩍뛰며소년을맞이했다. “맞아요!밴드부!헐,어떻게왔어요?진짜밴드부찾아온거맞아요?”

똑똑열려있던문을가볍게노크하는소리에시선이돌아갔다집중이풀리자바로틱, 하고기타줄을튕기던손이빗나갔다.문에서있는건갈색꽁지머리를한소년하나. 날카로운눈매와꾹다문입매가선뜻다가가기힘든분위기를풍겼는데,그러나잘살펴 보면삐딱한자세에비교해교복은흐트러진곳없이단정해서고작해야목덜미부근의 단추를하나풀어놓은것뿐이었다 직전까지도그렇게나바라던신입부원의기회일지도 모르는데예기치못한방문객에바로대응하지못하고잠시간얼어붙어버렸다

“여기가밴드부인가요.”

“대박!가입하러온거예요?그런거예요?제발그렇다고해주세요!” 사람을보고신난강아지처럼왈왈왈떠들어대는시나노의머리를하루키가뒤에서꾹, 눌렀다.

“...잘못왔나요?”

“예?예 밴드부.”

걸 .동아리라고할수있나?자꾸만드는의심을떨치기가힘들었다.그래도이번에는 새학기니까,신입생이들어올지도몰라요 시나노가희망차게외쳤던말이었다 옆에서 복잡한악보와씨름하며골머리를앓던하루키는그말을듣고서는글쎄,하고조금쯤회 의적인감상을가졌으나굳이입밖으로내는실수는저지르지않았다

특별할것없던그대화에서하루키가할말을잃었던건,그에게얽혀있는과거때문 이었다.무심결에내려간시선끝에있던명찰에선명하게쓰여있던이소이레이지,라는 그이름을그저태연하게받아넘길수는없었다.저를빤하게바라보는그얼굴에서제가 아는그어떤익숙한모습도찾아낼수없었지만잠시멈칫한뒤에아무렇지도않은태 연한얼굴로미소지었기에상대가그찰나를눈치채지는못했을터였다아마도아무튼, 아토하루키는제마음을숨기는건자신이있었다특유의그린듯한미소로,꾸며낸다 정한목소리로.실제로는어떻든간에.

“아,그래이소이 이소이?”

“이소이레이지임다.”

웃기지도않는만담같은대화였다 마주보고서니소년은제키보다도한참낮아서, 아,작네하고실례일지도모르는감상을품었다부장이라는직함을가져간건시나노 였지만,오랜만에본새로운부원(일지도모르는) 사람을보고너무흥분해서달려들지 도모른다고생각했다 일단은3학년이기도했고 머리를좀식힐수있게시나노를잘 앉혀두고그때까지묵묵하게서있던그아이에게말을건넸다

“좀진정해,시나노민폐잖아.”

“어른스럽게말해야지.”

“예.”

“그러니까 .”

“힝입니다.”

“힝.”

“좋아요.밴드부,마음에들어요.”

환호성을내지르는시나노를보며웃었지만,마음속은복잡했다환영한다는말은완전 히빈말은아니었지만,진심으로우러난말이라고하기에도어려웠다

그러한태도가가식적이라는비난도두어번들었던것같지만일단지금에서야누구도 딴지걸지는않을터였다몇학년이야?할수있는악기가있어?같은대화는물흐르 듯자연스럽게흘렀으며그애는밴드부에입부하겠노라말했다솔직히말하자면거절해 주기를바랐다부원이라고는네가보는둘이다야게다가둘다기타라서,네가베이스 를한다고하더라도밴드의구색도못갖출거야.같은이야기를구구절절늘어놓은건 무의식중의껄끄러움이었다.그렇군요,라며.동요하는기색도없이듣고있던이소이는 문득고개를들어하루키의눈을빤히바라보았다그리고묻는것이,“아토선배도밴드 부인거죠?”였다 고개를끄덕인긍정이그의마음에들었는지희미한미소가입가에 맴돌았다

할일이없을때해외밴드의공연을찾아보는건밴드부를하게된이후생겨난습관 이었다처음에는직접찾아보기는커녕시나노가보내주는링크나들어가보고는했는데, 점점아는곡이늘어나고아는밴드가늘어나니저도모르게아,그밴드좋았지 하고 동영상스트리밍사이트에검색하기시작했었다.명색은보컬겸세컨드기타니나름대로 참고삼아실력을늘리고자하는목적도겸사겸사생겨났고.

그아이를만나고난날의저녁하루키는불도켜지않은거실소파에드러누워멍하 니휴대전화를만지고있었다.습관처럼들어간사이트에서추천으로뜬영상하나를클 릭한다.이어폰너머로들려오는강렬한비트를들으면서저도모르게발끝을까닥였다. 고요한집안에서소란스러운것은오로지그뿐이다 시선은영상에고정하고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이소이레이지임다,라고그렇게말하던모습이자꾸맴돌고있었다 아토하루키,아토하루키.오늘부터너는아토하루키가되는거야.상냥하게그렇게

말하던목소리가귓가에맴도는것만같았다.어느새머릿속을가득채우던시끄러운연

주소리마저잊히고,차오르는생각속에함몰되어그어릴적의기억에얽매이고있었 다이미전부잊었다고생각한과거였다이제는다시떠올려도괜찮을것만같았다그 러나어떤가?아직도이렇게,하루키는다시금그때의어린자신으로되돌아가고있었다 내도록잠들지못하고뒤척이다가아침을맞이하여,전날의우울은다음날의아침까지 도영향을미쳤다 말간봄날의햇살은상쾌한아침을비추고있는데,거울에비추어진 얼굴은창백하기그지없어홀로겨울을맞이한것만같았다 아,루이가본다면걱정할 텐데어차피먹는다고한들속에서받지않아게워낼것이뻔하여아침은걸렀다사실 먹는날보다먹지않는날이더많기는했지만.평소보다이른기상에시간은남아아침 의고요속에서가만생각에잠겼다.두어시간의얕은잠이라도일단도움이되기는한 것처럼,어제저녁의복잡함은그래도많이가신터였다 레이지,레이지 이소이레이지 네가그이름을가지고있는게과연우연일까구태여물을용기는나지않으면서도신 경이쓰이는건어쩔수가없다오늘오후에다시만나게되면평범하게인사할수있으 려나.

“아,시간이.” 허둥지둥가방을챙기고,신발끈을맨후에대문을나서면그앞에서있는오토와루 이가보였다딱히그러기로말을한건아니지만어느순간부터그렇게되어있던일이었 다 이전에는방과후에도같이하교했는데,너는너대로학생회로바빠지고나는나대로 밴드부에들게되어함께집에가는날보다따로가는날이더많아졌다.뭐,네가학생 회로바쁘니나도달리할일을만들까싶어밴드부에들어가게된것도있지만. * 깨끗한새교과서를펼쳐놓고수업을들으면서도영마음은다른곳을가있었다.매일

스트라토캐스터냐,레스폴이냐하면의견이많이갈리긴하지만요.사실그냥취향에따 라고르면된다고생각해요.아,전개인적으로레스폴이더좋아요.그묵직함이멋있잖 아요?연한베이지색의기타를조율하며시나노는그렇게말했지만,하루키는스트라토 니레스폴이니전혀차이를알수가없었다모양이야좀다른것같긴하지만 종례가끝난뒤에도한참을교실에서미적거리다음악실로향했다.그애가어떤아이 인지도모르면서미리부터불편해하고,그런건좋지않지그래,어른스럽지못하게이게 뭐하는짓이야어차피앞으로보고지내야하는데마음을좋게먹어보자종이로커다 랗게밴드부,하고써붙여둔문을열면도란도란떠들고있는이소이와시나노가보였 다.

같이동아리활동을했으니오늘도그애가올텐데.이름탓이아니더라도애초에새로 운사람을상대하는일은피곤해지는일이었다 내가동아리활동같은걸하지않았던 애초의이유가뭐였는지다시금떠오르며교과서한귀퉁이에삐죽빼죽한낙서를그렸다 열린창문으로봄날의바람이불어와살랑거리는꽃잎한장이책상위에내려앉았다바 람결에는아주옅은풀내음이함께묻어와서,저도모르게사르르풀리는마음에뭐,괜 찮겠지.싶어진다.그러고보니일전에벚나무아래에서있던아이가그애였던가.이쪽 을바라보았을뿐일텐데,눈이마주쳤다고생각해버렸던그때 구교사음악실에놓인앰프라던가,보면대같은갖가지물품들은대부분시나노가가져 온것들이었다.그뿐만아니라하루키가연습하는검은색의기타또한마찬가지였는데,고 작부활동때문에악기를사는것도부담되실것같아서요그렇게말하며매끈한바디를 매만지던손길에는그야말로애정이듬뿍담겨있었다 그야첫악기니까 시나노는처음 기타를쥐었던그때의기쁨을기억하고있었다누르는손가락이아픈줄도모르고매일 매일연주했고,좋아하는노래마다카피하며홀로즐거워했었다.그렇지만역시함께해줄 사람이있었으면좋겠다.혼자좋아하는것보다는함께연주해줄사람이있었으면좋겠다. 그렇게생각해서밴드부를만들고싶었다게다가연주하는모습을보여주고싶은사람도 생겼으니까

아주다행히도시나노가종알종알발랄하게떠들어준덕분에함께있는시간이그렇게 어색하지는않았다아무생각도없이멍하니기타를조율하고딩,딩…이제는좀익숙 해진음계를짚던중,예상치못하게대화의주제가이쪽으로넘어왔다

“예.별로그런이미지로는안보이니까요.” “으음,아무래도그렇지…그냥시나노한테어울려주던것뿐이었는데,생각보다나쁘지

않아서계속하고있어.” 이미여러번나눠본문답이라익숙하게대답하며웃었다.시나노가아토하루키를밴 드부에영입했던건,딱히큰이유가없었다가깝게지내는사람들에게는전부권유했었

“응?나?”

“딱히멋지다고생각하진않지만 일단감삼다.”

“미안,종례가늦어져서….”

“그나저나아토선배는어쩌다가밴드부에?”

아무렇지도않은척대답하며저도기타케이스를내려놓았다 이소이는이쪽을한번 흘끗보더니,다시제가들고있던베이스로시선을돌렸다.무덤덤한표정으로는어떤 생각도읽어낼수가없었다.

“어,선배~왜이렇게늦게왔어요!”

“오,진짜?그거멋진데.”

“있잖아요,이소이군은이탈리아에서왔대요!굉장하지않아요?멋지지않아요?이탈 리아어도할줄안대요.”

아무래도좋을대화를두런두런나누다보면창밖에는어느새해가지고있었다각자 짐을챙겨들고나와운동장을가로지른다 햇볕이사라지니역시좀쌀쌀하다생각하며 가디건을여몄다.운동부는아직도연습을하나보네.그러게요,같은짤막한대화.다음 에시간이나면주말에도만나자는둥떠드는말들에대충고개를끄덕이며재게걸음을 놀리던때였다툭,하고제어깨위에얹어지는겉옷을보며하루키는머리위로물음표 를띄웠다

아닌게아니라기타를들고있는그의모습은언밸런스하게느껴지면서도어딘가사람 의심장을두근거리게하는면모가있었다하루키를열심히보컬로밀어붙인이유도그 때문이었고사람은역시잘생기고볼일인가봐요언제였더라따분한음계연습중,마 음대로되지않는기타를들고씨름하던하루키를멍하니구경하다툭,튀어나왔던말이 었다.잘생겼다느니하는말들을들으면하루키는괜히멋쩍어지고는했다.그야본인이 못생겼다거나하는생각을하진않았지만,그렇다고나서서잘난척을하는유형은더더 욱아니었으니까

“게다가역시밴드부에비주얼은필요하다고생각하니까요.”

으며개중에지금까지꾸준히어울려줬던게하루키뿐이었을뿐이었다.

“...추워보이시길래.”

“어……고마워?” “앗,선배추워요?제것도드릴까요?” “아냐,괜찮아마음은고마워.” 얼떨결에옷자락을쥐긴했지만,솔직히좀어리둥절했다 그야쌀쌀하다싶긴했지만 그렇게티를내지도않았던것같은데묵묵하게앞을보며걸어가는옆모습을슬쩍보았 지만,여전히무슨생각을하는지는알수가없었다.

그와중에저를둘러싼가정환경도그렇게평탄하지만은못했다다정다감했던아버지 는어느날부터인가이유도없이차가워진태도로그를대했다.차라리처음부터미움받 았더라면이해할수는없어도그러려니받아들일수있었을텐데하루아침에돌변한태 도에영문을몰라눈치만보았었다새로태어난동생때문일까그애가더귀엽고예뻐 이제귀엽지않은나는싫어진걸까어쩌면,내가무슨잘못이라도한게아닐까아마 그런가봐어린마음에미움받고싶지않아서,무엇을잘못했는지도알수없으면서잘 못했어요,라며옷자락을잡았으나말없이내려보는눈빛에슬그머니손을풀었었다.홀로

2. 어린시절,하루키는꽤병약한편에속했다.지금도그렇게건강하다고하긴어려웠지 만,그때는정말로조금만무리를해도픽쓰러지기가일쑤였다찬바람이불어오기시 작하는계절이면그계절내내침대위에서빠져나가지도못했다몸이약하니어린이집 이나유치원에가기도어려웠고,초등학교에입학이후로도밥먹듯빠지며반아이들과 는서먹한거리감을유지할수밖에없었다.꾀병부리는거아니야?라는속닥임을들을 때마다어린마음에속상한적도가끔있었다.강아지한마리라도길렀으면좋았으련만. 아쉽게도그마저도체질에맞지않아결국친구라고는한쪽에놓인식물들밖에없었다

똑딱,똑딱시계소리만이흐르는방안에누워있으면가끔창밖으로아이들이웃고떠 드는소리가들려왔는데,그럴때면유리창너머로고개를내밀어지나는아이들을가만 바라보고는했다.그러다들키면찬바람이몸에좋지않다는걱정어린목소리를들으며 다시금문을닫았지만,제마음에뚫린허한구멍으로드나드는찬바람은막을수가없었 다

남은복도에서그저바닥만내려보았었다. 아마무슨사정이있었으려니생각은한다 아버지와어머니가다투기시작했던것도 그즈음이었으니그러나그것을,단지어렸을뿐인하루키가이해할필요는없을터였다 부엌에서언성을높이는소리가들려오면,그는어린동생을살살달래며괜찮아괜찮아, 라며웃어보였었다.그때의하루키도열살언저리의어린아이였는데.괜찮다는말은아 마스스로에게하고싶었던말일지도몰랐다 누군가가나를안아주며그렇게말해주길 바랐을지도몰랐다

홀로다른지역으로가게된건열두살이되던무렵이었다몸이약하니좀더시골에 서요양하면어떨까,하는이야기는그전에도종종들었었다.공기좋고차분한곳에서 지내면좀나아지지않겠냐는이야기.하지만그가가게될곳은생뚱맞게도도쿄라서, 아,이번에야말로내게질려다른곳에멀리보내버리려나보다하고혼자이불속에웅 크려생각했었다 슬프다거나그런생각은들지않았다 다만부모님이싸우는게아마 내탓인것같으니내가없어이가족이행복해진다면그걸로도괜찮았다 부모님이랑, 동생이랑.그렇게셋이서.그만없다면완벽했을그림이었다.이제야막가을로접어들던 계절의밤이었다.이불속에파묻혀있는데도왠지조금추워서,자꾸만자꾸만베개속에 얼굴을파묻었다

도쿄에전학을가긴했으나,본래지내던곳에서도내내겉돌던아이가갑자기다른사 람들과잘지내게되는것도무리였다.더군다나그때의하루키는음침한성격으로쉬이 호감을살인간형도아니라서,결국내도록따돌림과괴롭힘에시달리게되었다.어디서부 터시작되었는지모를악의적소문,책상위의낙서사물함을열면가득한쓰레기와아 무이유없는시비들그모든것들이그를지치게했다중학교에올라가고나서도괴롭 힘은끊이질않아서하루하루메말라가고만있었다 그대로말라죽지않을수있었던 건,오로지2학년무렵만난오토와루이의덕분이었다. 저를맡아돌봐주시던할머니가돌아가신후,하루키는주말마다아르바이트를시작했

다 그의앞으로남겨주신유산이꽤되는편이라당장의생활은문제가없었으나어찌 흘러가게될지알수없는게사람일이었다.혹여나큰돈이드는상황이생길지도몰랐

“...예에이곳에서일하시는줄은몰랐네요.” 다시침묵.하필이면다른손님도없어서매장에단둘뿐이었다.상황에맞지않는발 랄한사랑노래만이눈치없이재잘거리고,하루키는속으로한숨을삼키며예의친근한 목소리를꾸며냈다

“...아.”

“뭐마실래?이것도인연인데,내가사줄게.”

“...어.”

으며후에대학을진학한다면그를위한등록금이필요했다.여기저기면접을보고,겨우 일하게된곳은집근처의작은개인카페손님도그렇게많지않고점장님도푸근하고 좋으신분이라잘구했다고생각하고있었다 그가그곳에서아르바이트하는건당연히 시나노나루이도알고있던사실이었다딱히숨길만한일도아니었거니와어차피그애 들이라면말해주지않아도알아낼것같은기묘한확신이있었기때문에.게다가가끔같 은학교학생도몇번들릴때가있어서,익숙한면면이보여도그저집에가고싶다는 생각밖에하지않았었다아마오늘도비슷하게지루하고그럭저럭피곤한날이되겠구나, 싶었다경쾌한종소리와함께열린문으로이소이레이지가들어서기전까지는

서먹한침묵이감돌았다.미처이런곳에서만날줄은몰랐다는어색한눈맞춤.예상 치못했던습격과도같은만남에하루키는잠시아득함을느꼈다가,곧정신을차리며입 꼬리를올려웃었다

“..이런곳에서다보네,이소이군.”

“아뇨,그럴필요는 .”

“정부담되면저번에빌려줬던겉옷의답례라고생각해사실친해지고싶어서뇌물주 는거야.”

솔직히말하자면좋고말고오늘따라시나노가그립고간절했던적이드물었다.그의거 침없는성격이피곤할때도있었으나지금만큼은그가있어줬으면했다언젠가는이소

“진짜?에스프레소를?굉장하네….”

씁쓸한커피향이코끝에맴돌았다이런걸정말좋아한다고?그러고보니이탈리아 에서왔다고하던가이탈리아는커피의본고장이라고얼핏들은것같기도했다아메리 카노같은건용납할수없다든가,그런이야기.뭐,하루키는굳이따지자면커피보다는 홍차를더좋아하는편이라아무래도좋았지만.갓내려따뜻한커피한잔을바테이블 에앉은이소이앞에놓아주며쿠키두어개를같이내주었다 “아,감사합니다.”

“그런게아니라딱히단거안좋아하고원래자주마시던거라서요.”

“…….예,그럼에스프레소로….” 눈을굴리던이소이가마지못해대답하자,하루키는에,하며고개를갸웃해보였다 “에스프레소?그거완전작고쓸텐데.비싼거마셔도괜찮아.”

“이정도로뭘시나노도불러도좋겠네저번에다같이바깥에서한번보자고도했었 고난일해야해서같이어울려주진못하겠지만.”

“나랑?”

“어서오세요.”

3시가되어갈무렵이면다음타임의직원이온다.유니폼을갈아입고나오면여전히하 늘은밝아서,집에돌아가면할일을고민하게된다.빨래를걷어개고,청소를하고 .

이와도친해져서둘만남는다고하더라도편안할날이올지도모르지만,일단그게오늘 은아니었다

“으음,그보단사실,아토선배랑단둘이서얘기해보고싶었거든요.”

커피잔위로내리깔았던시선이올라와하루키를보았다.어쩐지그시선에조금긴장 이되어손을꼭,쥐었다단순히친해지고싶어서,같은의미는아닌것같아서너무과 도하게받아들이는걸까?이소이가막입을열려던찰나였다 짤랑,카페문이열리는 소리가들렸다

“네.”

하루키가손님을보며인사하자,이소이는다시입을꾹,다물며커피잔만감싸쥐었다. 네,스트로베리요거트프라페펄추가하시고요포장이세요?주문을받고음료를만든 다이제는눈감고도외울수있을만큼익숙해진과정을지나다시등을돌리면그애는 이미자리를뜨고없었다커피잔은비워진채였고,같이내어주었던쿠키도보이지않았 다.단걸좋아하지않는다고해서부러달지않은걸내어줬는데.그애입맛에맞으려 나.안녕히가세요,웃는얼굴로인사하면서도직전까지도그자리에앉아있던그애를 생각했다

하지만애초에마음이라는건제뜻대로되지않는법이었다하루키로서는이게최선 이었다.그러한껄끄러움을겉으로드러내지않게노력하는것만으로도힘이들었다.가끔 은너를좋아할수있을것같은기분도들었다.이소이레이지는좋은아이였고,그런 사람에게이런부정적인감정을품는게온당하지못하다고느낄때가있었다무뚝뚝한 어조속자상한배려를눈치채는일은그렇게오랜시간이필요하지않았으니하지만어 김없이마음은또뒤집히고뒤틀려서,또다시홀로된시간에끝도없이가라앉을뿐이었 다.모르겠다.귓속에물이찬것처럼먹먹한이명이들어차고개를세차게흔들었다.세

기타연습도좀더해야하는데.짧은손톱을매만지며생각을이어나간다.돈이얼마나 모였더라시나노의기타를계속빌려쓰기도미안한데어차피안쓰는거니까괜찮아요, 라고는했지만아무래도마음에걸리는걸어쩔수가없었다비싼걸살여유같은건 없으니가능하면3~4만엔선에서해결하고싶다숨만쉬고살아도사람은돈이들었다 무언가를하려고들지않아도,단지살아있기만하는것만으로도노력은필요했다.느릿한 눈짓으로주변을한번둘러보고서는,아까왔었던그아이가무슨말을하려했을지하루 키는잠시궁금해했다아마그렇게중요한말을하려던건아니었겠지카페의문을열 고나올적에,어쩌면기다리고있는갈색의머리카락을볼수있을지도모른다는생각이 이유도없이들었다그럴리가없는일이었고,실제로도그러했지만 텅빈현관에대고다녀왔습니다,하고의미도없는인사말을흘려본다 두사람분의 신발이한사람의것밖에남지않게된건그렇게얼마되지도않은일이었다그러나대 답이돌아오지않는다고해서새삼외로움을느낄정도는아니었다 야트막한발소리가 적막한집안으로퍼진다.씻고,옷을갈아입고.하루키는문득,이러한일련의행위들이 문득무척이나피로하다고느꼈다.살아있음을후회한적은없었다.그러나때때로찾아오 는무력감은온몸을나른하고무겁게만들어한발자국도떼기어렵게만들고는했다살 아가는의미,살아있음의의미이제는괜찮아졌다고생각했는데이렇게나눅눅하게늘어 지는건결국에는이소이레이지,그아이때문이었다그이름을가지고나타난너를단 지우연이라고생각해도좋은걸까.사실네게는아무런잘못도없다는사실을하루키도 알고는있었다.그이름을가지고있는게그아이의잘못도아니며단지그자리에있었 을뿐임을

* “그러면,이제드럼만있으면되겠네요!” 옥상에서올려보면하늘위로비행기가지나가는걸볼수있었다 철망에기대어탁 트인정경을바라보면막혀있던가슴도조금쯤개운해졌다딱히막혀있지않은만큼생

고요한집안에홀로누워있을때면예기치못한고독이자신을덮칠때가있었다하늘 이밝아조명도켜지않던낮이무심결에지나고,어느새어두워진거실에앉아있는나를 발견할때라던가특히나낮잠을자고일어난뒤에는묘하게속이메스껍고두통이일어 서괜히서러워지고는했었다.세상에온건하게나혼자남았다는느낌.누군가에게전화 를걸고싶어휴대폰을열었는데,걸만한사람이없다는걸깨닫고그저멍하니액정만 바라볼때의그기분외로웠지만,그외로움을누군가에게알리고싶지않아그저홀로 이불안으로파고들었던날들은시시때때로내게찾아들고는했다아마루이에게전화한 다면받아주겠지어쩌면시나노도아무렇지도않게받아줄지도몰랐다그러나그러고싶 지않다면.눈을떴을때누군가당연하게있어다정하게말을건네주던때를하루키는 문득그리워했다.예고도없이찾아온외로움은끝도없이속삭였다.두사람이살던곳 은혼자살기에는너무나도넓어서,하루키는조금울었다열아홉은아직,어른이되기에 충분한나이는아니었을지도몰랐다

각보다도아이들이자주찾는곳이라자주올라오지는않았지만.하루키는루이가챙겨준 도시락을꾸역입에밀어넣으며흘러가는하얀구름을바라보았다.옆에서는다른아이

상이어지럽게흔들리고,제대로걸을수없어비틀거렸다.이런기분을느끼게만드는 네가어쩔수없이미웠다결코좋아할수없을것만같았다해야할일이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밀린청소와빨래,매일매일의공부 그러나손가락하나까닥할힘도들지 않아하루키는그저,소파위로깊숙하게가라앉을뿐이었다

“고기를드세요제빵도드릴까요?”

“하루키,남기지말고먹어라.”

“더먹고싶지않은데….충분히배부르니까괜찮아.”

“딱히무시하는게아니라,그냥배가부른건데….” 글렀다전부한편이다내편은전혀없다하루키가못내내키지않는얼굴로남은 도시락을깨작거리는사이,시나노는딸기우유를입에문채로다시루이에게시선을돌 렸다

“오토와선배는여전히밴드부에들어오실생각은없는거죠?드럼만있으면딱인 데….”

들이조잘조잘떠드는소리가들려왔다.밴드부는물론,루이까지.본래도잘어울리던멤 버였으니새삼특별할건없었지만,이소이가입부한이후로는한명이더늘었다이소 이는도시락을가져오는대신매점에서산빵을야무지게입에넣고있었는데,손에들린 것외에도서너개는앞에쌓아두고있었다 시나노도이미매점에들렀다가온참인지 도시락을먹고도과자나사탕같은주전부리를끊임없이입에넣고있었다.자신이라면 하나만먹어도벅찰텐데.하루키는혀를내두르며생각했다.지금먹고있는도시락도슬 슬물려가던참이라슬쩍,뚜껑을덮으려하던때였다

“앗,맞아요!선배는좀많이먹어둘필요가있어요너무마른거아녜요?”

“무리다.”

“널위해서좋아하는반찬으로만준비한거니까먹어 성의를무시하는건좋지않은 일이야.”

“챙겨줄필요없다고해도말이야.”

“아아.중학교때부터알고지냈지.”

힝,하고시나노는시무룩해진표정을지었다하루키는그옆에서빵두개째를해치 우곤세개째를뜯고있는이소이의모습을경이롭게바라보며대체저게다어디로들 어가고있는걸까,골똘히고민했다.

“학생회로도충분히바빠게다가하루키를챙기는일도손이많이가니까말이야.”

“오토와선배랑하루키선배는꽤친해보이네요.”

“중학교때라… 처음봤을땐교복입은초등학생인줄알았다 흠,그때의하루키 는 .지금보다많이까칠했지.경계심많은고양이처럼보였어.그래도지금은많이유해

진편이라고할수있겠군.” “저기,당사자앞에서그렇게말하지말아줄래?” 도시락은아무도보지않는사이뚜껑덮어제쳐두곤,하루키가끼어들었다.한손에는 결국이소이가반강제로들려준빵을든채로 어쨌거나사춘기였던시절이었다 게다가

“그렇게딱잘라서거절하실것까진 .

“오,그러면중학교때아토선배는어땠어요?”

하여간자기가아빠나할아버지쯤되는줄안다고,하루키는투덜거렸다 루이는그저 잔잔하게웃을뿐이었다.확실히틀린말은아니긴하지.얌전하게야키소바빵을먹던 이소이가문득입을열었다.

“뭐,그런시기는누구에게나있는법이니까요~!그보다,다들아는드러머같은거없 어요?숨겨놓은사람같은거있으면꺼내봐요,빨리빨리.” 손에든딸기우유를붕붕휘두르며재촉하는말에하루키는그런게있을리가…라 며작게중얼거렸다.이대로도적당히괜찮지않나,하고.얼마전까지만해도기타만둘 이었는데이제는베이스가들어와기타와베이스의합주가가능해졌다.물론록!이라고 하려면분명강렬한드럼이있으면더좋겠지만,없는걸뭐어떡하겠나싶기도하고의 욕이라고는조금도보이지않는밴드부(와외부인한명)의반응에시나노는한숨을푹, 내쉬며자리에벌렁누워버렸다

“드럼없이어떻게밴드라고할수있어요!꼭필요하다구요,드럼은.”

“나갈수는있지.”

그때의나에게도여러가지사정이있었노라고,아무도첨언하지않았는데되레찔린하 루키가줄줄늘어놓았다

밴드부를만든게작년말이었고,올해신학기가시작되고도한달이지난무렵이었다 이제까지안들어왔다는건앞으로도가망이없다는뜻이아니려나 지긋하게바라보는 시선에못이겨손에들린빵을먹는둥마는둥하며하루키는생각했다

“바닥더러워일어나.”

“드럼이없으면축제공연에도못나가잖아요….”

“다들너무해~.나만진심이지,나만.”

“없는걸어떻게해?”

“히잉.”

* 드럼을배워볼까.동아리활동까지끝마치고집으로돌아가던길,시나노는무언가득도 한얼굴로중얼거렸다.어차피기타가둘이나되니한명은드럼을해도괜찮지않나싶 어서생각해볼수록나쁘지않은것같은데요드럼도솔직히박력이있어서멋있고… “그러면네가아니라내가드럼을해야지.”

“그럼제가드럼을할까요.”

하루키는못미덥다는듯눈을가늘게뜨고바라보는시나노의이마에꽁,하고딱밤을 놓았다아프지도않으면서아야야엄살을피우며시나노는볼멘소리를늘어놓았다 “선배는체력도약하잖아요.게다가밴드의비주얼인데,드럼을해버리면의미없구 .”

“에,그치만아토선배가드럼을하기엔좀….”

“아니,베이스도밴드의필수요소란말이에요.”

“그건그렇지마안…오토와선배,밴드부….”

“내가뭐어때서?”

“안한다.”

*

아토선배가오토와선배를어떻게든설득해주시면안되나요하고애처롭게바라보는 눈길을쳐내며하루키는고개를살래살래저었다그애가드럼을칠줄아는가는차치하 더라도하고싶어하지않는아이를억지로끌어들이고싶진않았으니까.

푸르스름한기운이남아있는이른아침학교도가지않는공휴일이지만몸에남은습 관으로깨어버린시간이었다좀더잘까,싶어도내키지않아멍하니창가에기대어바 깥을보고있노라면달력의붉은칠에도불구하고바쁘게걸어가는현대인들을볼수있 었다.내년이면나도저렇게되는걸까.아니지,대학생이니까여전히공휴일에는이렇듯 바깥이나내다볼수있게될까.이제는4월도다가고5월이되어올해의반이성큼지 나가고있었는데,나는여전히길을헤매고있었다 루이는탐정사무소를하는가업을 이을거라고하던데 함께하자는제의는기뻤지만역시그렇게까지배려를받는건좀 그렇지,싶은면이있어서식물을좋아하니꽃가게를해볼까매일같이파릇한풀잎들에 둘러싸여서그들을돌봐주는삶이란행복할것같은데.반쯤은졸음에겨운머리로멍하 니생산성없는생각을이어가던차,핸드폰의알림이울렸다.

“아카네?”

뭐,어차피정말로드럼을배울생각도없었지만요.하고푸념어린한숨을내쉬며시 나노는힘없이걸음을옮겼다올해축제까지남은기간은5개월그안에어떻게든드럼 을구하지않으면기타와베이스만있는상태로무대에올라가야했다 “내년에는선배가졸업해버리니까요.그래서가능하면올해안에해결하고싶어요.게다 가아카네도이번축제에보러온다고했는데 .”

“...어 .있어요.그런게.”

[좋은의견이네요.]

어떻게할까휴일이되면하는대청소라던가,밀려있던집안일들을생각하며망설인다 사실꼭하지않아도좋았지만,쉬는날인데오늘만큼은혼자만의시간을누리고싶기도 했고.게다가곧있으면중간고사가아닌가.어차피학교에가면다볼얼굴들인데,굳이 짬을내서만나야하나?게다가아무래도껄끄러운아이를휴일에도보고싶지는않아 서그러나바로거절할마음이들지도않아서톡,톡손으로창틀을두드리며생각에잠 겼다고작몇분의고민이었을텐데,재촉하는시나노의메시지가화면에올라온다 내키지않는다면거절해도좋을일이었다.그러나이리고민하게되는건오히려그아 이때문이었다.너무의식하는것처럼보이지않을까.내가피한다고생각하진않을까.사 실이아니라고할수는없지만결국좋은사람으로남고싶다는욕심은어쩔수가없다 게다가그애는아무잘못도없으니까어쩌면이기회에불편한감정을없애려고노력해 보자한참의고민끝에보낸답장은간결했으나,그아래에깔린상념들은길고복잡하 기만했다.

[그것보다돈독해지자는뜻이죠!]

[다들오늘뭐하세요??바쁘신가요??]

발신자는시나노에이지.밴드부의단체라인방이었다.그렇네,더이상1:1이아니구 나이소이가들어와3명이되었으니까벌써2주가훨씬넘었음에도새삼스러운감상을 품으며답장을보냈다한가하다는말이후로이어진말들을요약하자면,오늘바쁘지않 다면다같이모이자는말이다밴드부의친목도모를위해서라나뭐라나 [친목도모는평소에도하고있잖아.]

“그러게요.”

“날이생각보다덥네.”

5월,여름과봄의사이오늘도쿄의기온은23도청명한하늘아래사람들은바삐오 간다만나기로한시간이되었지만,약속장소에있는건어쩐지두명뿐늦는구나,시 나노 하루키는멍하니발밑의개미가기어가는모습을바라보았다 무슨말이라도해야 하나.

다시침묵번잡한거리에서들려오는소음들로도이사이의정적을채우기란역부족이 라,괜스레핸드폰만붙들었다다른사람과함께일때는잘도이어지던말이왜저아이 와함께있을때면나오지않을까?친근한말한마디는이렇게나어려울까.또다시속이 뒤집히기시작했다 감정하나제대로다스리지못하는본인에게느끼는한심함,제대로 거절하지못하고이자리에스스로끌려나온선택에대한후회잘도웃고떠드는사람 들이신기했다제대로나아가질못한채멈추어선건여기서있는나뿐인가싶었다 이젠나를괴롭히지도못할과거에사로잡혀서는죄도없는어린후배를미워하기나하는 나를비웃는소리처럼들리기까지했다.아,레이지.너는왜그이름을가지고있어?네 가레이지만아니었으면나는너를이렇게거북하게느낄필요가없었을텐데한없이가 라앉는정신을깨운건선배,하고부르는이소이의목소리였다 “괜찮으신가요.” 안색이좋지않아서요하고덧붙이는목소리는담담했지만,곧게이쪽을바라보는눈길 은염려를담고있었다.복잡한속내를억지로삼키며괜찮아,라고답하며웃었지만,이

소이는그렇게수긍하는눈치는아니었다.몇번더하루키를살핀그는더말을붙이지

는않은채휴대폰을들어하루키에게내보였다.시나노가보낸라인메시지가떠있었다.

[죄송해요!길을잃었어요!]

이전부터종종있던일이라새삼놀랍진않은일이었다이래서같이만나서오자고했 던건데,자신있는투로괜찮다고하길래수긍한게잘못이었다시나노가보내온사진 의장소를확인해보니이곳에서가자면30분은족히걸릴장소였다 더길을잃지않게 그곳에서기다리라며,데리러간다는답장을보내고서는걸음을옮겼다.함께걷는동안 할이야기가딱히생각나지않아결국에는공통적인대화소재인시나노이야기만자꾸자 꾸늘어놓게되었다처음그애를만났을때의이야기,기타를배우게된경위그애덕 분에노래도잘하지못하는데보컬을맡게되어곤란하다는말들생각나는대로아무렇 게나늘어놓는시답잖은대화지만그런말이아니면도대체무슨말을할수있겠는가 불편한마음은지나치게많은말들로이어졌다.예,그렇네요.짤막한대답만늘어놓으면 서도시선은이쪽을바라보며듣고있다는신호를보내온다차도와인접한길에들어서 면레이지는자연스럽게하루키의바깥쪽에서걸었다 그런자연스러운배려를깨달으며 또다시울렁거린다나는이렇게나좋은아이를사람이많은복잡한길목,인파에휩쓸려 갈뻔한하루키의손목을황급하게잡아채는따끈한손의온도가느껴졌다.그따뜻한체 온이순간적으로너무나불에덴것처럼뜨겁게느껴져서,하루키는저도모르게그손을 뿌리쳐버렸다당혹스러운침묵,물끄러미내팽개쳐진손을바라보는시선등줄기를타고 죄책감이흘러내렸다다른사람이내몸에손대는걸별로좋아하지않아서미안해변 명처럼중얼거렸지만,사실그건아무의미도없다는걸하루키본인이제일잘알고있 었다. 한층어색하고숨막히는분위기속에서,휴대전화의내비게이션을따라인적이드문 골목으로걸음을옮기던차였다

“업히십쇼.”

얼핏잘못들었나?싶던목소리는다시한번확실하게들려왔다이소이도고개를두 리번거리는것이일단환청은아닌모양이었다.그렇게간곳에있는건왠사람이다.아 니,뭐.사람목소리를따라왔으니사람이없는게더무섭겠지만.아무튼,그애는다가 온우리를보더니반가운얼굴을하며손을흔들었다보아하니다리를다쳐일어나지못 하고있던것같았다

“오,다행이군.혹바쁘지않다면도움을주면고맙겠어.” 특이한말투를가진그아이는자기를아이바이부키라고했다늘어놓은사정을들어 보니높은곳에새끼고양이가올라가내려오지못하는것같아도와주려했는데,밟고 올라갔던담벼락이그만무너지며발목을다쳐버렸다고했다 휴대전화를챙겨오지않아 어딘가연락을하기에도곤란했고정작구하려했던고양이는알아서잘내려와어디론 가가버렸는데말이지살펴보니돌에깔리기도했던듯심하게까지고부어올라있어서, 보는쪽이더아프다며하루키는슬쩍눈살을찌푸렸다.

누가좀도와주시게!

“일단병원에가보는게좋을것같은데….” 이근방에병원이있던가.검색해보니다행히그리멀지않은곳에있는곳하나를찾 아낼수있었다

“죄송해요!그치만저도혹시늦을까봐30분정도여유있게나왔는데,길이너무어려 웠어요전철타는방향도헷갈리는바람에전혀모르는곳에서내려버려서무서웠단말 이예요이대로미아가되어서영영집에못돌아가면어떡하지,하고울뻔했다니까요?”

그를업은것까지는좋았는데,아이바가이소이보다한참키가커한껏구겨진모양새 가되었다 그모습을물끄러미바라보던하루키는조심스럽게제가업는게낫지않냐 제안했으나이소이는특유의담담한투로, “콩나물에겐무리예요.”라며거절해버려서하루키는잠시멍한표정으로서있었다저 기,콩나물이라니내얘기야?그럼누구얘기겠어요 왜콩나물?그냥그런느낌이라 아이바는도움받는처지에그저고마울뿐이라며웃었다.

* “아무튼,그런일이있어서말이야.이소이는좀늦을것같아.” 이소이는아이바를병원에데려다주고,하루키는먼저시나노를찾으러가기로결정을 내렸다.어딘가카페라도들어가있으면될텐데.시나노는벤치도아니고커다란가로수 아래울상이되어쪼그려앉아있었다.그러다하루키를발견하고선아토선배-하며뛰어 오길래,익숙하게옆으로비켜서피했다따지고보면모이자고했던시나노가오지않았 던게원흉이아니었던가 숨막히던어색함을견디기힘들었던하루키는할말없어? 라며,못마땅하게팔짱을꼈다

*

불쌍하게올려보는눈에하루키는한숨을내쉬며그이마에딱밤이나한대놓고말았 다어찌됐든,이미이렇게된건어쩔수없는일이었다이소이를기다리기위해들어 간카페에서,시나노가시킨5단파르페를보며하루키는이제그만집에가고싶다고생 각했다

“아뇨,그건아니었지만 .”

“그사람말인데요.드럼에흥미가있대요.” 아,하고다음날의밴드부활동중에이소이는말을꺼냈다드럼을어떻게하면좋을 지(시나노만의) 길고긴토론중나온말이었다그사람,이라고만하니당연히아무 도알아듣지못했으며시나노는눈을빛내며이소이에게와락달려들다하루키에게덜미 가잡혔다

“그애,우리학교였어?”

“아이바… 혹시어제그?”

“누구요?누구요??”

예,하며이소이가고개를끄덕이자하루키는놀란듯눈을동그랗게떠보였다.

“그,이름이뭐더라 .아이바라고했던가.”

“...그럼의미없는거아냐?”

“괜히기대했잖아요 .” 다시금축늘어지며시나노는한숨을푹,내쉬었다

그래도밴드라니,재미있을것같다고는하던데요앰프는연결하지않은채로착실하게 음계를연습하며이소이는어깨를으쓱해보였다.베이스기타를배운적은있지만사실 연주하지않은지꽤되었다고했다.그래서기초적인음계도조금헷갈린다며매일같이 기초연습에충실하고있었다

3.

5월이된다는건,곧중간고사가다가온다는뜻이었다벌써코앞으로닥친시험에쉬 는시간에도교실은조용했다물론시험에큰뜻을두지않은학생들도있었지만,그런 아이들은공부하는아이들의눈초리에떠밀려복도로나가거나제자리에엎어져잠이나 자고는했다.하루키는일단은,성적은챙기는쪽이었다.앞으로뭘할지모르겠다면공부 를우선시하는편이좋다고생각했으니까.학생의본분인학업조차제대로하지못하는 사람이무얼할수있겠는가동아리활동을시작한건좋지만그때문에성적에영향이 가는건좋지못한일이었다단발머리를귀뒤로넘기며연필을굴렸다사각사각,하는 소리는끊임없이이어졌다

기타도들고나오지않은하루키가그렇게말하자,시나노는에엥,하며내키지않는다 는듯한반응을내보였다.이소이는언제나그랬듯무덤덤하게그런가요,하고고개를끄 덕여보였을뿐이고.

내년이면너도3학년인데성적은잘챙겨야지.진로는정했어?밴드부도즐겁지만역 시학생의본분을지키며 줄줄줄이어지는잔소리를피하다못해가만있던이소이의 뒤로쏙,숨으며시나노는볼멘소리를내뱉었다

“그래,그럼잘하고있네 이소이는어때?진도따라가는게버겁지는않아?”

“그럼다같이공부할까?모르는게있으면가르쳐줄수도있을테고.” 좋아하지도않는상대에게굳이그런제안을할필요가있었을까?함께있으면불편한 건사실이었으나결국같은동아리활동을이어나갈사이였다.고작세명뿐인부원인데, 둘의사이가좋지않다면문제가있었다.그때이소이의손을뿌리친이후,그도하루키 가자신에게그다지좋은감정을품지않았다는사실을눈치챈모양이었다그럼에도그 는여전한태도를유지했으며하루키도별다른내색없이그전처럼그를대했다그속 으로는무슨생각을하고있는지몰라신경은종일곤두서있었지만제안에시나노는흔 쾌히고개를끄덕이며찬성했고,이소이는말없이하루키를가만보다가고개를끄덕여보 였다.

“나름대로…할만하긴한데이해가안가는것도있긴함다.”

“그래서말인데,이번주에는활동을쉬는게어떨까싶어.”

“에엥이아니야,에엥이.”

“나름대로성적은잘유지하고있다구요!치이.”

“아,선배저도이것좀알려주세요~!전혀모르겠어요

그래그래,자리에서일어나며아무렇지도않은척웃어보였다혹시선을눈치챘을까다 시금몰래눈짓해봐도변화없는표정으로는아무것도알아낼수가없었다.하루키는본

평소에는기타소리가울리던동아리방을사각거리는연필소리와간간이책넘기는소 리가채웠다집중하지못할것같던시나노는의외로문제를푸는일에만열중하여입을 열지않았고,이소이도묵묵하게제앞에놓인참고서를읽어내렸다오히려가장집중하 지못하는건공부를제안한하루키,본인이었다하얀종이위에써내려가는글씨가꼭 제것이아닌것처럼낯설었고,외우려했던단어는전혀눈에들어오지않은채제멋대 로춤을추었다.그저장소가낯설어그런가보다.한번씩공부가되지않는날이있는 데오늘이그날인건지도몰랐다평소에는익숙하기만하던긴머리도오늘따라왜이렇 게거슬리는지,모든감각이예민하게곤두서서…제앞에서공부하는이소이의작은손 짓하나하나마저눈에들어오고있었다저도모르게그저펜을움직이는손길에정신이 팔려있던때였다.

“이문제,이해가좀안되는데요.” .”

“...왜그래?”

“하루키선배.”

“아.” 이소이가고개를들어,눈이마주쳤다하루키는어쩐지하면안될일을들킨것만같 아저도모르게화들짝놀라얼빠진소리를내어버렸다 비록아무도신경쓰지않았지 만,왠지심장이쿵,하고내려앉았다

인이저애를너무의식하고있다는사실을알았다.그럴필요가없는데도손길하나,말 한마디에도줄에당겨진사람처럼휩쓸려가고있었다 마음에들지않는일이었다 저 애는아무렇지않은데,혼자이렇게나전전긍긍해서는 “어떤게이해가안가?”

친절한목소리,다정한태도가식적인웃음나는이렇게나불편한데내가널마음에 들어하지않는다는사실정도는너도알고있을텐데.이소이는여전히아무렇지도않게 나를대한다.그사실이마음에들지않았다.결국어린아이처럼구는건나뿐인것같아 서차라리네가보이는대로불량하고거친아이였으면나았을지도몰랐다아주아주못 된아이라서,내가너를불편해하는게잘못된일이아니었으면했다그러나넌왜이렇 게좋은아이라서 나는널마음놓고좋아할수도없는데,그사실에죄책감을느끼게 하는질모르겠다.5월의찬란한햇빛이음악실안으로바스러진다.하늘은한없이푸르렀 으며초록으로물든나뭇잎들은싱그럽기만하다무채색으로시들어가는건나뿐이다그 건그누구의잘못도아니며,단지나의탓으로 나직하게설명하는목소리는남의것처럼아득하게들려왔다 시나노는설명을들으면 서도골머리를앓는눈치더니,별안간걸려온전화벨소리에후다닥휴대전화를들고잠 시통화좀하고오겠다며음악실을나선다.문을닫으면복도에서들려오는소리는차단 되어결국이공간에는둘만이남았다아무렇지않은것처럼문제집에시선을고정한채 로손안에서는볼펜을굴렸다연필소리,책장을넘기는소리참고서를살피는것같던 이소이는문득이쪽을보지도않고서하는말이, “굳이친절하게대해주시지않아도돼요.”라서.완전하게읽혀버린속내에확밀려드 는건수치심이다 갈무리하지못한어린감정들은그렇게나티가났던것이었다 모른 척하기힘들정도로 나름대로배려한답시고한말이었겠지만,그말에하루키는이대로 뛰쳐나가혀라도깨물어버리고싶었다귀끝까지빨갛게달아오른얼굴이홧홧했다하얗 게질릴정도로입술을꼭깨물었다가,겨우쥐어짜낸말이라고는그런게아니야,라는 우습지도않은거짓말이었다.

“그런가요그럼다행이네요.”

저애가유독내게만신경쓴다는사실을하루키는눈치채고있었다 제신경이온통 저아이에게쏠린것처럼이소이의시선도끈질기게하루키를좇고있었다몇번이고마 주치던시선을모르지않았고,아주사소한곳에서도이소이는하루키를우선했다.하루키 가견디기어려웠던건아마그때문에더욱그러했으리라.첫만남부터,그가본인을불 편해한다는걸눈치채고난이후까지도변하지않은그런태도때문에내뱉어진질문에 이소이는눈을깜박였다 어떻게말해야할지몰라고민하는듯잠깐의시간이흐르고, 이윽고느릿하게답변이흘러나왔다

흘긋이쪽을보는시선,담담하게흘러나오는어투.다시금내려앉은침묵속에서하루 키는참지못하고결국충동적으로입을열었다 “넌왜나한테잘해줘?”

“잘보이고싶으니까?” “...왜?” “...그냥요.” 저,사실밴드부도선배때문에들어온거예요밴드같은거관심도없었고여상한어 투로흘러나오는말들은하루키를전혀이해시켜주지않아서,엉켜버린머릿속은오히려 더어지럽기만했다.그전에우리가만난적이있었나?1학년과3학년이었으니오며가

“아닐걸요.” 모순이었다 만난적도없는나를어떻게알고밴드부까지?의문은가득했으나,그걸 풀기회는주어지지않았다.통화를마친시나노가문을열고들어왔으니까.시나노는둘 사이에흐르는미묘한분위기를아는지모르는지특유의발랄한톤으로조잘거리며제자 리에앉았고,하루키는가득한질문들을갈무리하여속으로삼킬수밖에없었다 3. 마땅한결론을내리지못한채그날의저녁은저물고다음날의아침은떠올랐다 문 바깥에서당연한듯서서기다리고있는루이의모습을보면어쩐지안도가되는것같 기도하고,마구화를내며그아이의험담을하고싶기도했다.꼭보호자라도된것마 냥행세를해.하루키는그게마음에들지않는다며투덜거리면서도정작루이에게많은 부분을의지하고있었다 루이가있으므로안심하여다른사람들에게소홀해지고있는지 도몰랐다저애만있으면되니까,나는새롭게부딪혀가며다른누군가를만나는건굉 장히피곤한일이었고,토모코씨도돌아가신지금하루키의유일한정신적지지대가되어 주는건루이뿐일지도몰랐다. 분주하게

함께등교하는시간은꽤이른편이라곁을지나는학생들은드문드문했다

며마주칠일같은게있을리없었다.적어도그의기억속으로는그랬다.하루키는혼 란스러운얼굴로차근차근생각을진행시키려애썼다 “우리가예전에,만난적있어?”

하루키가그아이를껄끄러워한다는것쯤오토와루이가모르고있을리가없었다.이 리저리말을돌리고회피하려다결국제감정을모두토로해버린게한참전의일이었으 니그렇게불편하다면밴드부를그만둬그렇게도넌지시말을했었다그렇다면마주칠 일도없을테고,더이상이렇게괴로워할필요도없을테니하지만그만두고싶지는않 았으니하루키는그저웃어보일뿐이었고,그이야기는더이어지지않았다그애가미 우면서도자꾸만마음이쓰이고,얼굴을보는게괴로우면서도그만두지는않았으면좋겠 다.꼭밴드를하고싶다면시나노의핑계를대자니,설명되지않는감정의잔재가남아 있다저자신도파악하지못한복잡하고어려운이야기를말로풀어놓을수없으니,그 저웃을수밖에없었다

아무튼,그이후로는처음꺼내는이야기였다.그애는왜그런말을했을까?왜그렇 게행동하는걸까.사실아무의미도없을수있는데도나는왜이렇게까지의미를파악 하려애쓰고있는걸까좀우습지제대로된마침표도없이주저리늘어놓는말들을묵 묵하게듣던루이는고개를저어보였다“난네가우습게행동한다고생각한적은한번 도없어.”여느때와다름없는진중한표정이었다아무튼,이라며루이는나직한어조로 차근차근하루키의말을되짚어보았다.주어진단서는고작하루키의말뿐이었다.루이가 이소이레이지와마주치는건점심시간,다같이모여식사할때뿐이었으며그때도그렇 게활발하게대화를주고받지는않는편이었다그러나가만생각해보면그때도그애는 하루키를바라보고있었다얕은기침이라도하면물을챙겨주고,햇볕이따가울때는하 루키가그늘진자리에앉도록했다그런눈에띄지않는사소한일들까지알고있는건 습관적인타인을관찰하는습성덕분이기도했지만,루이도하루키를챙기기위해상시 주시하고있기때문이기도했다.그런다정함은천성일수도있었다.하지만이렇듯들어 본다면,

“...첫눈에반했다거나?” 전혀농담같지않은담백한어조로내뱉는말에하루키는순간균형을잃을뻔했다.

오픈준비를하는가게들,일찍일어나조깅을하는부지런한사람들.하품하는하루키의 모습을보며루이는제대로잠을자지못했나봐,라며말을건네왔다 “이소이레이지라고했지.”

남은진지한데,그런말하지마.삐죽거리며핀잔을건네자루이는어깨를으쓱해보였다. “가능성은있지않나?”“전혀.”“단정지을필요는없을텐데.”설마진심으로하는말인 가,하고하루키는눈을가늘게뜨며루이를바라보았다 천연덕스러운표정은장난기를 띠고있지않아서,저도모르게그런가?하고설득될것만같았다잠깐그추측을머릿 속에서굴려보던하루키는코웃음을치며손을살래살래내저었다.다른건없어? “다른가설이라면,사실그애가정말네동생일수도있지.” 이건하루키도떠올려본생각이었다제기억속의조그마한동생의모습과그애의모 습은영딴판이었지만,자라면서너무나도변해버렸을가능성도없지는않았다하지만그 렇다면어째서타인인척하는걸까.제가본인을기억하지못할거라고여겨서그런건 지,다른이유가있는지.제대로알수있는게없으니그저갑갑할따름이었다.자박이는 발소리에만귀기울이며걷던하루키는이내기나긴한숨처럼말을흘렸다 “정말,그냥그만둘까봐밴드부같은거,원래하고싶었던것도아니고.”

보지않는다면힘들지도않을테다.시나노에게는좀미안하지만,어차피본인은반드시 필요한포지션도아니고어쩌면본인보다나은새멤버가들어올수도있었다장황하게 늘어지는말은맥아리없이힘없이흩어졌다루이는딴지를걸거나맞장구도없이묵묵하 게들으며나란히옆을걸었다대화는가끔산으로흘러실없는농담이되기도하고,곧 다가올루이의생일에대한말도나왔다.네가주는거라면뭐든좋지.담담하게하는말 에아저씨복대같은건어떠냐며장난스럽게물으며웃기도했다.어느새저만치학교가 눈에들어오며잔잔해졌던감정의흐름이복잡해질때였다루이는문득,하루키,하고부 르며고개를돌렸다

가하고싶은대로해최고의문무양도탐정이될사람이지지하는데못할게뭐가있겠 나.”밴드부를관두면학생회에들어오는것도고려해보는게어떠냐며,씩,웃으며하는 말에하루키는어쩐지목이메는기분이라하던말을제대로맺지도못한채발끝만을

“난네가어떤선택을하든지지할사람이고,그걸항상염두에두고있었으면해.”

“뭐야,갑자기.”

“그냥그렇다는말이다나도그렇고,시나노도언제고너를지지하겠지그러니넌네

한결풀어진기분으로교실에들어선하루키는한번,기지개를쭈욱폈다꾸깃꾸깃아 무렇게나구긴종이뭉치같던정신까지쫙펴진기분이었다완전하게개운해지지는않 았으나그정도는스스로해결해야할일이었다.아직도이소이레이지의목적은모르겠 다그애가왜그이름을가졌는지도모르겠고,왜나에게접근하려고했는지도모르겠 다그러나그런게그렇게나중요한가?애초에,나는그애가왜그렇게불편하고껄끄 러웠는지되새겨보자면결국그애를보면떠오르는어린시절때문이었다잘묻어두었 다고생각했던과거가다시금떠올라나를삼켜버린탓이다.이제는그때의무력했던어 린아이가아닌데도.물론그몇마디의대화로그감정들을당장완전히떨쳐내는건무 리가있었다여전히외로움은오랜친구처럼어둠을틈타나를찾아올테고,그애를보 면반사적으로피하고싶을터였다그러나날떠나지않을친우를믿으니외로움은영원 하지않음을알며조금쯤은맞설용기를낼수있었다하루키는노력하기로했다당장 좋아할수는없더라도,그아이를신경쓰지않을수는있게.

* 볕이따가워질때쯤의계절이라이제는옥상에서점심을먹지않았다.그늘진벤치는 항상인기가많아자리를잡기가쉽지않았는데,행동이빠른이소이나시나노중하나가 먼저잽싸게선점을해놓으면다른하나는붐비는매점으로달려가빵이나샌드위치따위 를쓸어오고는했다일전에는매점에빨리가기위해창문을넘던이소이가선생님께걸 려혼이났던적도있었다시나노도겪어본적있는일이라창을넘는요령이나타이밍 따위를전수해주기도했다.그렇게빨리가지않으면인기없는맛없는것만남는다던가. 이를테면오이오이샌드위치라던가(정말마요네즈와오이만들어갔다),불닭주먹밥같은 거(이소이는나쁘지않다고했지만).그거라도남으면다행이지,가끔은정말아무것도안 남을때가있어요라며시나노가투덜거렸었다 하루키와루이가오자마자원군으로뛰쳐나갔던시나노는이윽고이소이와함께돌아왔 는데,품에는이번에쟁취한전리품들을한가득안고의기양양한모습이었다.테이블위로

바라보다조그맣게고마워,라는한마디를내뱉는게고작이었다.정말이지,루이는하루 키에대해서모르는게없었다

“아니뭐,축제공연때만~이라면괜찮지않나?하고.”안되나요,라며시나노는슬 쩍루이의눈치를보았다흐음,하며잠시생각하던루이는공연에는외부초청공연도 하니까괜찮을지도,라며고개를끄덕였다

“...그다지.”

“본래는안되는게맞아하지만눈감아줄순있지공연때만잠깐이라면.”

이소이는삐딱하게웃으며제몫의빵봉지를뜯었다반대편에서는시나노가오늘이 전리품들을얻는게얼마나힘들었는지고충을늘어놓고있었으며,루이는적당히맞장구 를쳐주는중이었다하루키는조금쯤못마땅해진기분으로도시락을 깨작이며이소이와 는애초부터상성이별로일지도모른다고생각했다 누군이렇게노력하는것도모르고 저번에했던말도역시그냥적당히한말아니야?괜히꿍얼거리며밥이나팍팍입에 넣었다.

가득쌓이는빵이며과자따위를하루키는질린눈으로바라보았다.그러다가당연하게 반대편에앉으려는이소이를보고다급하게고개를들어선,“레이지,”하고부르며손짓했 다부러루이와는마주앉으며옆자리를비워둔참이었다의아한눈빛을하면서도그는 순순하게손짓을따라빈자리에와서착석했다

“저,별로안좋아하시지않으셨던가.”

“근데,그아이바라는사람아직드럼에관심있대요?”문득생각났다는듯이시나노 가이소이를바라보며말을건넸다

“무슨심경의변화가있으셔서.”반대편에는들리지않을정도로이소이가나직하게속 닥였다

“안물어봐서모르겠는데요정말밴드에넣을생각임까?”

“아싸!그렇대요!아직관심있는지한번물어봐줄수있어요?”

“뭐,그렇긴한데요.”

“너야말로나한테잘보이고싶다면서그렇게말해도되는거야?”

“물어보는건어렵지않지만 .아,그러고보니까.”말없이얌전하게도시락이나파고 있던하루키에게로이소이가시선을돌렸다

“이소이군.”

“뭠까.”

“미워하기까지?그건몰랐는데.”표정에는한줌변화도없으면서,짐짓놀랍다는투로 이소이가말했다.아무튼,이라며민망한듯이헛기침을하며잠시망설이던하루키는곧 말을이었다.

“아이바군이감사인사를표시하고싶다던데요라인아이디알려줘도되나요.” “응?별로상관은없는데….난그닥감사받을일같은건안한것같은데.”실질적 으로병원까지옮겨줬던것도이소이였고,본인은그저옆에서얼쩡거리다가배웅이나한 게전부가아니었던가아무래도좋다며일단은선선하게고개를끄덕여보였다고작연 락처정도니까 곁에앉은이소이를흘끔보았다가다시금도시락위로시선을옮겼다 긴장했던만큼저아이를보는일이어렵지않았다 가볍게농담도할수있을정도로 모든순간아래일렁이던음울함은희미한그림자만남기고사라졌다.아마루이가함께 해준덕분이겠지.내가이대로붕떠날아갈것같을때마다이땅에붙잡아주는지지대 가되어주는사람은역시루이뿐이었다불어오는바람에살짝녹색을띤까만머리카락 이시선끝에서흔들렸다어느때보다도평화로운점심을맞이하고있었다 방과후,집에가는길 먼저갈림길에서헤어지는시나노에게손을흔들며하루키는 조용히입을열었다

느릿하게옮기는걸음너머로나란히그림자가드리워졌다.멋쩍어괜히길어지려는말

을스스로자각하여다시금입을다물었다가,흘끔이소이에게시선을옮겼다.이쪽을바

“그렇지만일단,너랑잘지내고싶긴해무슨목적인지도모르겠고,무슨생각을하는 지도모르겠지만일단나도밴드부…가즐겁기도하고.”

“내가널미워했던건사실이긴해.”

“예,저도요.저야뭐,어차피좋아할수밖에없고.”

“응?”

아,나진짜꼴사납네어른스럽지못하게귀까지빨갛게익어버린하루키는손을들어 얼굴을가렸다.이렇게나누군가의관계에있어고민해본적은거의처음이나다름없을 정도로간만이었다.민망하기도하고,부끄럽기도했다.여전히널볼때면싱숭생숭하겠 지만,지내다보면조금씩나아지겠지예의무덤덤한표정으로생각하나싶던이소이는, 이내씩웃어보이며대답했다

라보는그와눈이마주치고서는다시잽싸게정면을보긴했지만. “그러니까,미안?노력할테니까…새삼스럽지만…잘부탁할게.”

“그런게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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