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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화 • C U L T U R E

제89호•2013년 10월 11일

첨단과 자연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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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서울 구로구는 대한민국 현대사가 만들어 낸 피

기적의 변화는 2000년부터 시작됐다. 서울디지

해자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위해 온몸을 불살

털산업단지로 이름을 바꾸고 정부와 구로구의 각

랐지만 결국 남은 것은 ‘공단’이라는 오명이었다.

종 지원이 진행되면서 대기업 연구개발시설, 지식

“슬픈 고성방가 속에 스미는 삶의 불안. 드나드는

산업, 정보통신, 소프트웨어 기업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많아 잠글 수 없는 대문들.” 작가 신경숙

1999년 597개였던 입주기업수는 2011년 5월 현

은 자전소설 ‘외딴방’에서 구로공단 일대 ‘벌집촌’

재 1만개를 넘겼고 고용규모는 12만8000여명에

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지만 구로공단은 공해와

달한다. 특히 IT 기업이 전체의 80%에 육박해 대

빈민촌의 상징이라는 아픈 역사를 털어내고 첨단

구로디지털단지 전경

산업단지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민국 최고의 첨단 산업단지로 우뚝 섰다. 캄캄했던 과거 ‘공단’에서, 희망의 미래 ‘첨단’

아홉 노인이 장수했던 구로

으로 옷을 갈아입은 구로디지털단지. 그 역사를

구로(九老)라는 이름은 ‘옛날 이 지역에 아홉

통해 대한민국의 어제와 내일도 바라볼 수 있다.

노인이 오래 살았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국

꽃길 물길 되살아난 안양천

시대에는 본래 백제의 영토였으나 고구려의 장

구로구의 아픈 역사는 자연에도 담겨 있다. 서

수왕이 남하해 잉벌노현(仍伐奴縣: 지금의 시흥

울과 경기도의 13개 자치단체를 유유히 흐르고

시와 광명시 지역), 율목군(栗木郡: 지금의 과천

있는 안양천. 그 안양천도 산업화의 발길질을 피

시), 장항구현(獐項口縣 또는 古斯也沕欠: 지금 의 안산지역)을 설치했다. 통일신라의 신문왕이 9

해가지는 못했다. 각종 오염수를 다 받아내야 했 오염의 대명사였던 안양천이 13개 자치단체의 노력으 로 3급수로 거듭났다.

주제(九州制)를 정비하면서 이지역은 한산주(漢

던 안양천은 한때 오염과 악취의 대명사로 전락했 다. 다행히 13개 자치단체는 안양천의 재생을 위

山州)에 속했다. 고려시대에는 경기 10현 중의 하

전했다. 1970~80년대에는 신발, 의류, 중공업 등

해 힘을 모았다. 안양천수질개선대책협의회를 발

나인 수주현(樹州縣)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금천

을 중심으로 한 노동집약적 산업이 집중되면서 우

족해 안양천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 덕분에

현, 과천현, 금과현(衿果縣), 금양현(衿陽縣), 시

리나라 수출 산업의 전진기지로 자리잡기도 했었

안양천은 다시 주민들 곁으로 돌아왔다.

흥현 등으로 편입되었다. 영등포구에 속해 있다가

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기업들이 공장을 해외로

현재 3급수까지 회복된 안양천 둔치에는 각종

1980년 4월1일 구로구로 나눠졌다.

이주시키고, 3D 기피 현상이 확산되면서 공단의

운동시설이 구비되었으며 메밀꽃, 유채꽃, 꽃창

대한민국 최고 첨단 산업단지

공동화가 진행됐다. 1988년 40억달러를 넘겼던

포 등 각종 꽃길도 열려 주민들의 산책 및 휴식 공

구로구는 1967년 설립된 구로1공단과 함께 발

수출 규모는 1999년 15억달러로 급감했다.

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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