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유학 활동수기수상작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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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벌써 5년이나 사는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2013 전라북도 농촌유학생활 이렇게 했다.

덕치는 사람을 잡아놓는 곳이다. 매년 똑같은 풍경이 아니다. 봄에 피는 벚꽃모양도 다르고, 겨울에 내리는 눈도 다르다.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있다 보니까 벌서 5년이 된 것이다.

우수상 이지형 덕치유학센터


전라북도 농촌유학생활수기공모 _ 우수상

나의 제 2의 고향 이지형 _ 섬진중학교

내가 처음 시골로 전학 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별로 아무 감도 오지 않았다. 6~7개월만 살다가 온다는 엄마의 말에 별로 대수롭지 않았던 모양이다. 할머니네 집에 놀러 가는 것 정도 일줄 알았다. 짧게 반 년정도 있을 거란 계획을 세웠던 우리 부모님은 시골 생활에 굉장히 만족했던 모양이 다. 이젠 거의 정착해서 사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물론 나도 시골 생활을 매우 좋아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덕치로 오는 결정을 내리기 까지 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특히 엄마는 우리 삼 남매의 교육에 대해 걱정이 많으셨다. 그런 작은 학교에 가서 지내다 보면 경쟁력도 떨어지고 사교육을 시킬만한 학원들도 없어 공부 농촌유학생활의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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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부족할거라 생각하신 모양이다. 하지만 엄마는 시골의 좋 은 환경과 풍경에 반하셨다. 전학을 오기 전 늦겨울에 집을 보기위해 시골에 잠깐 내려왔었다. 우리는 '물우리'라는 동네 의 작은방에서 살게 되었다. 집 앞의 풍경은 강이 흐르고 있 고 강 옆에는 갈대가 자라고 있는 아주 아름다운 풍경이다.


2013 전라북도 농촌유학생활 이렇게 했다.

엄마는 그 운치 있는 풍경에 반하신 모양이다. 그 풍경은 아직 도 여전하다. 집 앞에는 작은 텃밭이 있고 집 옆에는 솔밭이 있어 풍경이 아주 좋은 집이었다. 집에는 이름도 있었다. 옛 날에는 식당으로 사용된 건물이라고 했다. 간판에는 '월파가 든' 이라고 써져 있어 우리는 항상 그 집을 월파가든 이라고 부 른다. 지금은 학교 관사로 이사 했지만 그 집은 그대로 남아 있 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고 교회 봉사자들이 오는 양로원이 되었다.

벌써 5년이나 지났지만 내가 처음 시골로 이사 오던 날을 난 생생 하게 기억한다. 짐은 많지 않았다. 집이 좁은 원룸일 뿐만 아니라 아빠는 도시에 남기로 하셔서 많은 짐을 가지고 올 필요가 없었다. 아빠는 시골에 이사 오지 않고 직장을 계속 다니기로 하셨다. 시골에는 마땅한 일자리를 얻 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주말마다 오셔서 시골에서 주말을 보내 신다. 처음에 나는 시골에 오는 것을 못마땅해 했다. 친구들, 가족과 헤 어지는 게 싫었었다. 좀만 참자, 참자 이 생각하다가 시골생활에 재미를 제대로 붙였다. 오자마자 인상 깊었던 것은 덕치초등학교의 아름다운 풍 경이다. 덕치초등학교의 운동장은 천연잔디가 있고, 그 주위로 오래된 벚꽃나무들이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다. 봄만 되면 벚꽃나무에서 벚꽃 잎 이 눈 내리듯 떨어지는 풍경은 정말 최고다. 나는 덕치초등학교의 벚꽃 나무를 매우 좋아한다. 봄에는 벚꽃이 아주 예쁘게 피고 눈처럼 떨어지 는 장면이 매우 아름답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된다. 가을에 지는 낙


엽도 정말 분위기 있고 멋진 풍경이다. 겨울의 눈이 많이오 는 날의 아침은 정말 눈이 부시다. 운동장에는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이 쌓여있고, 벚꽃나무에서는 눈꽃이 핀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들 때문인지 덕치초등학교에는 관광객이 정말 자주 온다. 계절 상관없이 날씨만 좋은 주말에는 관광 객들이 꼭 있다. 나랑 내 동생은 어떤 사진작가 아저씨의 부 탁을 받아 사진 모델이 된 적도 있다. 임실에는 눈이 정말 많 이 온다. 나는 눈이 많이 오는 것이 좋지만, 아빠는 눈이 많 이 내리는 날이면 주말마다 눈을 치우느라 바쁘시다. 눈 치 우느라 힘들다고 불평을 많이 하시지만, 겨울에 제일 신나 는 사람도 아빠다. 아빠는 눈썰매 타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 신다. 비료푸대는 시골의 묘미 중 하나이다. 입장료도 필요 없고, 플라스틱으로 된 눈썰매도 필요없다. 준비물은 튼튼한 비료푸대와 든든하게 차려입은 옷, 비탈진 언덕만 있으면 된 다. 눈이 무릎정도 오면 항상 타러가는 비료푸대이다. 약간 의 노하우도 필요한데, 그냥 비료푸대는 엉덩이가 아프니 눈 을 약간 넣어서 타면 정말 재미있는 눈썰매가 된다. 나는 이 농촌유학생활의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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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거창하지 않은 눈썰매를 정말 좋아한다.

시골에 살면서 우리는 시골의 혜택을 정말 많이 봤다. 오빠는 부스럼이 있었는데, 피부과에서 약을 받아 치료해 봐 도 잘 낫지 못하였다. 하지만 시골에 온 이후 피부과에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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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했는데 오빠의 부스럼이 정말 깨끗하게 나았다. 나는 시골에 전학 와서 요즘 애들 다한다는 사교육도 받지 않았다. 아빠가 학원 국어 선생 님이었고, 오빠는 수학과 과학을 잘하기 때문에 딱히 사교육이 필요도 없었던 걸 수도 있다. 우리 중학교 선생님들은 우리보고 정말 고마운 줄 알아야 된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다 방과 후도 무료로 배우고, 현장학습도 거의 무료로 많은 지원을 받았다. 전주만 해도 방과 후 공부 하려면 돈 내고, 현장학습도 몇 십만원 내야 된다고 한다. 내가 용인에 사는 사촌 동생 집에 갔을 때, 사촌 동생의 방과 후 신청 안내문 을 본 적이 있다. 사촌 동생은 고작 초등학생인데, 난 그때 정말 깜짝 놀 랐었다. 바이올린 수업료가 50만원인 데다가 악기는 개인 준비였다. 나 는 지금 방과 후로 바이올린을 무료로 배우고 있는데, 악기도 학교에서 제공해주는 것이다. 나는 시골에 전학 온 이후 방과 후 활동에 돈을 낸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도 바둑과 피아노를 공짜로 배웠고, 현장학습도 항상 무료였다. 한달전에도 2박3일 현장학습을 다녀왔는데, 무료로 다 녀왔다.

몇 달 전에도 굉장한 혜택을 받았다. 도시지역 아이들을 뽑아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성균관대에서 과외를 받게 해주는 것이다. 무료였다. 삼성드림캠프라는 이름의 캠프였는데 정말 최고의 캠프였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시골아이들을 뽑아서 데려갔는데, 모두 친근한 멘토 선생님들 이었다. 그 캠프에서는 유명강사 초청 강연도 하 고, 영어 수학 과외를 받았는데, 내가 시골에 살지 않았더라면 그런 기


나의 제 2의 고향

회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시골에 오지 않았다면 받을 수 없는 혜택들이다. 나는 이런 혜택들을 받게 돼서 정말 행 운이라고 생각한다.

시골유학의 장점은 정말 많다. 유학생들은 친환경적 인 생활을 매일한다. 내가 인천에 살 때는 다슬기가 뭔지도 모르고, 어디 사는 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주말 여름밤 마다 가족들이랑 다같이 다슬기를 잡으러 간다. 나한테 다 슬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지현이다. 세명 뿐인 반에 는 여자애가 나와 지현이 밖에 없었다. 나와 지현이는 초등 학교 생활 내내 붙어다니는 단짝이 되었는데 여름이 되자 지 현이와 나는 강으로 물놀이를 하러 갔다. 강으로는 물놀이를 처음 와보는 내가 가만히 있자 지현이는 나에게 다슬기 잡는 판을 하나 주었다. 다슬기 잡는 판은 책받침 크기로 생겨서 플라스틱판이 있고, 옆에는 잡은 다슬기를 넣을 수 있게 된 바닥에 구멍이 뚫린 바구니가 있다. 이 판을 강 표면에다가 대면 물속이 마치 수경으로 보는 것처럼 잘 보인다, 맨 눈으 농촌유학생활의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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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보면 물결 때문에 잘 안보이지만 투명한 판을 대고 보면 물속이 잘 보인다. 물속을 잘 관찰하다 보면 다슬기들이 보 이는데, 그 다슬기를 잡아서 옆에 바구니에 넣으면 된다. 낮 에 잡는 다슬기는 먹으려고 잡는 것 보다는 심심풀이로 잡는 것이다. 낮에 나오는 다슬기들은 매우 작다. 밤에 나오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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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들은 굉장히 크다. 큰 것들은 밤에 잡는 것인데, 밤에 강가에 가보 면 사람들이 손전등을 들고 다슬기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낮에 잡은 것들은 집에 가져가면 엄마가 다슬기 국이나 다슬기 수제비를 끓여주시 는데, 다슬기는 영 내 입맛에 맞지 않지만 잡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어서 잡는 것을 좋아한다.

덕치초등학교하면 김용택 선생님으로도 유명하다. 김용택 선생 님은 선생님이 아니라 시인이다. 섬진강이라는 시도있고,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콩, 너는 죽었다'를 쓰신 시인이다. 김용택 선생님은 덕치 천담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덕치초등학교에 선생님을 하시다가 지금은 퇴직하셨다. 나에게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사람들은 다 김 용택 선생님 마을이 어디냐고 물어본다. 부모님이 유학을 결정하게 된 것도 김용택 선생님을 통해서 이다. 김용택 선생님은 덕치초등학교에서 인터뷰를 자주 하시는데, 나는 학교 옆의 관사에 살기 때문에 지나가다 가 같이 인터뷰 한 적도 있다,

지금 우리 집은 물우리의 월파가든이 아닌 학교 옆의 작은 관사이 다. 일년이 지나면서 꽤 짐이 많아져서 학교에 가까운 관사로 이동했다. 관사에 산다고 하면 부모님이 선생님 이시냐고 물어보는데, 덕치초등 학교 관사에서는 시골유학 온 사람들이 산다. 덕치초등학교에 시골유학 온 사람들이 꽤 많다. 내가 처음 왔을때는 관사가 세 채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두 채를 더 지었다. 한 채에는 한 가족이 살기도 하고 두 가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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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도 한다. 지금 관사 다섯 채에는 여덟 가족이 살고 있다. 이렇게 시골 유학생 가족들은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산다. 오래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아빠들은 원래 살던 곳에서 직 장생활을 하며 산다. 가끔 엄마들끼리 모임이 있는데, 아이 들은 신난다. 밤 늦게 까지 친구들과 놀아도 잔소리 듣지 않 는 날이기 때문이다. 관사 마을은 꽤 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지금 우리 집 뒤에는 꽤 큰 밭이 있다. 처음에는 텃밭으로 시 작해서 지금은 꽤 큰 밭이다. 나무가 두 그루 있고, 토마토나 고추, 옥수수나 상추 등을 주로 심는다. 그렇게 해서 기른 채 소와 과일들은 모두 우리가 먹는다. 농약도 치지않는 유기농 이기 때문에 몸에 좋다. 고기를 먹을 때는 뒷 밭에서 상추를 뜯어다 먹고 고추를 자기 밭에서 나는 것을 정말 맛있고 몸 에 좋다.

우리 중학교의 전교생은 60명도 안돼서 전교생이 서로 의 이름을 안다. 섬진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강진면의 갈담초등학교와 내가 나온 덕치면의 덕치초등학교 학생들이 농촌유학생활의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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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다. 거의 모든 학생들은 시골의 환경에 아주 익숙하다. 여름이면 강으로 물놀이 가고, 겨울에는 비탈길에서 썰매 를 타고, 전교생이 100명이 넘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물 론 나처럼 시골유학 온 애들도 있다, 시골에 적응하기 어려 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그 말을 아빠에게 똑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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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한 적이 있다, 아빠의 대답은 정말 인상 깊었다, 원래 인간은 자연 에서 자라고 살아온 존재라고, 콘크리트만 밟으며 사는 것보다는 흙 밟 으며 사는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하셨다. 아빠는 우리 삼 남매가 어려서 부터 이것 저것 과외하는 것이 안쓰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시골로 이사 하자! 했고, 아빠는 이사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별다른 사 교육을 하지 않아도 성적은 아빠가 엄격하게 관리했다. 오빠는 학원이 나 과외를 거의 받지 않았다. 오빠의 성적은 항상 우수했다. 오빠는 항 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오빠는 지금 섬진중학교를 졸업하고 익산 에 있는 전북 과학고등학교에 갔다. 아빠는 시골에 왔다고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을 봐주지 않으셨다. 항상 성적관리는 엄격하게 하셨다. 아빠는 종종 시골에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 공부하니까 잘되지! 라는 농담을 하 셨다. 맞는 말이다. 시골의 좋은 환경은 내 기분과 건강을 좋게 해준다. 서울의 공기와 시골의 공기는 다르다. 아파트의 아침 공기는 탁하다. 반 면에 시골의 아침 공기는 상쾌하다. 집 앞에 강이 있다 보니 안개가 자 주 끼는데 안개는 더 시원한 느낌이 든다. 안개속에 서서 숨을 들이쉬면 정말 상쾌하다. 시골로 요양 오는 이유를 알것 같다. 아빠는 나한테 시골에 오니까 좋냐고 자주 물어보신다. 나는 항상 좋다. 시골유학은 6~7개월 있다 가는 것이 아니다. 기본 일년은 있어봐 야 진심으로 좋다고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벌써 5년이나 사는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덕치는 사람을 잡아 놓는 곳이다. 매년 똑같은 풍경이 아니다. 봄에 피


는 벚꽃 모양도 다르고, 겨울에 내리는 눈도 다르다.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 라 좋아서 있다 보니까 벌써 5년이 된 것이다. 정말 시간가는 것도 모르고 시골에서 오래 살았다. 처음에 있었던 불만은 잊혀진지 오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밖에서는 풀벌레가 찌르르 찌르르 울고 있다, 이 풀벌레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 운 일이다. 풀벌레 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도 편해지고 생각이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가 편안함을 얻는 덕치는 내 제2의 고향이다.

농촌유학생활의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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