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서론
저자 이 책의 저자 이름인 말라기는 “나의 사자”를 뜻한다. 이 책 3:1에 이 표현이 나오고, 또한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사자 ( 2:7; 학 1:13 참조 ) 라 불렸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말라기”가 전통적으로 저자에게 부여되었 던 호칭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은 70인역이다. 70인역은 1:1의 “말라기”를 고유명사로 취급하지 않고 “그의 사자”로 번역한다.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지만 말라기가 실제로 저자의 이름이었을 가능 성은 여전히 매우 높다.
배경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총독 스룹바벨의 통솔을 받고 학
한눈에 보기
개와 스가랴의 예언 활동에 고무되어 BC 516년에 성전을 완공했다. BC 458 년에 제사장 에스라를 비롯한 유대인 수천 명이 추가로 귀환함으로써 유대 공 동체는 더욱 공고해졌다. 바사 왕 아닥사스다는 에스라를 독려해 성전 예배 를 복원하고 ( 스 7:17 ) 모세 율법의 확실한 시행에 만전을 기하라고 했다 ( 스 7:25~26 ). 14년 뒤 ( BC 444년 ) 에 아닥사스다는 자신의 술 관원인 느헤미야에게 예 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벽을 중수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 느 6:15 ). 새로 부 임한 총독으로서 느헤미야는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한 개혁 조치를 진두지휘
저자 말라기 독자 유다에 살고 있는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 시기 BC 430년경
했고 ( 느 5:2~13 ), 백성들을 설득해 이방인과의 결혼을 피하고 ( 느 10:30 ), 안식일을 지키며 ( 느 10 :31 ), 십일조와 예물을 성실하게 바치도록 했다 ( 느 10:37~39 ). BC 433년 느헤미야는 바사 왕을 섬기러 돌아갔고, 그가 없는 동안에 유대 인들은 다시 죄에 빠졌다.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느헤미야는 백성들이 십
주제 말라기 선지자는 포로기 이후의 유대 공동체에게 메시아로서의 왕이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지만 또한 복을 주고 회복시키러 오실 것이라고 확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