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마음 지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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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본문은 The Whole Works of the Rev. Mr. John Flavel, Late Minister of the Gospel at Dartmouth, Devon (London: W. Baynes and Sons, 1820)의 417~509쪽에

실린 A Saint Indeed: Or, the Great Work of a Christian, Opened and Pressed를 번역 한 것입니다.

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부흥과개혁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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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지킴

전자책 발행일 2025년 5월 5일

지은이 존 플라벨

옮긴이 이심주

펴낸이 김은주

펴낸곳 부흥과개혁사

편집 권대영 디자인 박슬기 기획 이승영 마케팅 권성직

판권 Ⓒ부흥과개혁사 2025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6길 9-20, 2층(서교동)

전화 Tel. 02) 332-7752 Fax. 02) 332-7742

홈페이지 http://rnrbook.com e-mail rnrbook@hanmail.net

전자책 ISBN 979-11-94295-72-3 (05230)

등록 1998년 9월 15일 (제13-548호)

전자책 정가 18,000원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 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잠 4:23)

나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다트머스에 있는 그리스도의 양 떼인

여러분을 감독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건전하게 이치를 판

단하고 진실하게 열심을 내며 흠 없이 정결하기를 바라면서 사랑하

고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띄웁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우리 눈을 통해 쉴 새 없이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애석한 광경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곳곳에 사탄의 형상을 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며 방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사실입니다. 겉으

로 드러난 삶을 보면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쉽게 알 수 있

습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

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

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18~19 ). 그들은 일상

에서 진노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두 번째는 거짓으로 자신을 꾸며

놀라우리만치 정교하게 성도로서 행동하는 저주받은 위선자가 너

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은 위선자에게는 구원받는 작용과 유사

하나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시지만, 성도에게는 구원하시는 효과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분별력 있는 성도조차 전자를 후자와 혼동하곤 합니다. 위선자가 말하고 기도하며 심지어 자기의 부패함을 슬퍼하

고 간증하는 것을 듣습니다. 사람은 이런 위선자를 보면 그가 신실 한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물론 그런 마음까지 가졌다고 쉽사리 믿습

니다. 위선자가 자기 눈과 손, 입으로 그리스도인처럼 습관적으로 행

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은 저 사람이 기도하고 심지

어 자기 부패함을 고백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외양

만 성도와 비슷할 뿐 절대 성도가 아닙니다. 세 번째는 진리의 영을 가졌으나 남아 있는 부패함이 작용하여 깨어 마음 지키는 것을 게

을리하고 부끄러운 행실에 자주 넘어지는 참 신자가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위선자가 아님에도 위선자처럼 보입니다.

언급한 세 가지 모습을 보면 정말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얼 굴이 강이고 눈이 눈물의 샘이라면 그런 모습을 보고 눈물을 한없

이 흘리며 울 것입니다!

첫 번째 경우의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살다가 반드시 영원한 저

주를 받을 터인데, 이를 생각하면 애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

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

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 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살후 1:8~9; 참고. 고전 6:9 ).

두 번째 경우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슬플 뿐 아니라 두렵기까지

합니다. 외식 가운데 머물다가 결국은 두 배로 저주를 받기 때문입

니다.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마 24:51 ).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성도들을 생각하면, 앞선 두 경우에 못

지않게 탄식하게 됩니다. 비록 그들은 구원받을지라도 그들이 남긴

행실 때문에 사망의 끈이 앞선 두 경우의 사람들을 더욱 단단히 묶

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

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 18:7 ). “너는 은밀히 행하였

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

이다 하니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

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

으리이다 하고”( 삼하 12:13~14 ).

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대신 피를 흘려 준 영혼들에게 다시

피 흘리는 일을 만들어 줍니다! 그리스도가 그토록 상냥하게 대우

한 영혼들을 그들은 잔인함으로 대우합니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그

렇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일이 사실상 비일비재합니다.

잠시 이 비뚤어지고 목이 굳은 사람들을 훈계하고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오! 그대는 어찌하여 다른 사람의 잘못된 모습에

영향을 받아 그대 영혼에 해를 끼치려 합니까? 다른 사람이 죄에 넘

어져 그대의 정강이를 치려 하니 그대도 넘어져 자기 목을 꺾으려

마음 지킴

합니까? 사람은 잘못된 모범을 따라 목이 굳어지고 영혼이 통탄할

상태에 빠지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혈안입

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다음 세 가지 질타에 답변하

기를 원합니다.

질문 1 기독교 신앙이 어느 모로든 신앙 고백자에게 죄 된 행실을

장려합니까? 아니면 도리어 공정하고 엄하게 그런 행실을 정죄합니

까? 신앙이 순결하고 깨끗하다는 사실은 기독교 신앙의 영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

는 그것이니라”( 약 1:27 ). 이보다 거룩한 교리도 없습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

을 밝게 하시도다”( 시 19:8 ). 이 교리만큼 경건한 삶을 예비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

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

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딛 2:11~12 ). 사

람의 악한 행실이 그가 지닌 원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 악한 행실은 사람이 고수하는 원리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교황주의자가 대담

하게 죄를 범한다면, 그의 행실은 그가 지닌 원리에서 비롯된 것입 니다. 그가 고수하는 원리가 하나님의 용서를 돈으로 거래하게 하여

방종의 길을 열어 주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아르미니우스주의자 가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겨 거만하게 자기 의를 내세운다면, 그가 지닌 원리가 그런 행실을 하게 만든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공언한 원리에 비춰 그런 행실을 정죄

하고 금지하더라도 똑같이 그런 행실을 범한 사람이 비난조로 그렇

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질문 2 다수의 신자가 걸어가는 경건한 삶을 가소롭게 여기면서

일부 신자의 부끄러운 행실을 이유로 들어 기독교 신앙을 욕한다

면, 이는 비이성적인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

는 사람이 다 방탕하고 부주의한 삶을 삽니까? 아닙니다! 그들 가운

데 일부는 신앙 고백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더욱 빛나게 하는 장신

구 역할을 합니다. 어찌하여 무고한 사람이 유책함으로 정죄를 받

아야 합니까? 유다 한 사람 때문에 나머지 열한 제자가 똑같이 비난

받아야 합니까?

질문 3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일부 사람이 부끄러운 행실로

산다고 하여 기독교 신앙을 비난하려 든다면, 그대는 세상 모든 종

교를 버리고 철저히 무신론으로 돌아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는

피할 수 없는 결론입니다. 무슨 종교가 존재하겠습니까? 종교를 고

백하는 일부 사람이 그 고백과는 다르게 사는데 말입니다. 그런 사

람이 없는 종교를 찾으려 한다면, 콘스탄티누스가 노바티아누스에

게 말했듯이, 그대는 사닥다리를 세우고 혼자 힘으로 하늘에 올라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런 답변이 기독교 신앙을 위한 변론은 아닙

니다. 기독교 신앙을 위한 변론은 신앙 고백자들이 실천하는, 눈에

보이는 개혁입니다. 개혁으로 기독교 신앙의 상처받은 명예를 치유

하고, 사람을 넘어지게 하여 사망으로 이끄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눈이 먼 세상이 그런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 영원히 파멸하

기 때문입니다.

개혁이 효과적으로 이행되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

람에게 그가 빠진 과오와 그 때문에 발생한 해악을 양심적으로 깨

닫게 하는 길입니다. 둘째는 그런 사람의 마음에 수술을 행하여 과

오가 발생하게 된 근원을 깨끗하게 제거하는 길입니다. 첫 번째 길

에서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유명하고 탁월한 한 사람이 최근까지

수고했는데, 그는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복음

이라는 깨끗한 거울을 비춰 그들에게 있는 과오가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만일 복음이라는 거울을 보고 읽는 사람이 그것을

숙고하고 적용하여 실천한다면, 복음은 분명 그를 구원으로 이끌 것입니다. 반면, 복음이라는 거울이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 어떤 선 한 영향조차 끼치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그것은 거울을 통해 복음

을 설명한 사람에게 하나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 길은 본서

를 집필하는 주된 방향이기도 합니다. 본서의 주제는 매우 중요하 고 하나님 백성이 일상을 사는 데 유용한 것입니다. 비록 이를 저술 하는 방식에 허물과 연약함이 많더라도 말입니다. 유익을 끼치는 사람이 다 탁월한 재능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본서의 집필 이유

여러분의 인내가 더 이상 길어지지 않게 본서를 집필하는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첫째는 본서를 출판해 세상에 내놓게 된 이유입

니다. 둘째는 본서의 독자를 특별히 여러분으로 택한 이유입니다.

첫째, 본서를 출판하게 된 이유에 대해 간략하지만, 숨김없이 말

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는 본서의 주제로 나를 인도

했고 마찬가지로 본서의 출판도 피할 수 없는 일로 이끌었습니다.

나를 이끈 최초의 섭리는 가장 친한 지인이 마음의 특정한 혼란으

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나머지, 내게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면서

이에 대한 해법과 도움을 부단히 요청한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친구가 당한 특정한 상황을 생각하면서 같은 중요성을 가진

여러 가지 다른 상황도 숙고했습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친구의 경

우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잠언 4장 23절이

전체 강론에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본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

니다. 본서가 여러분이 보고 있는 분량이 되자 여러 친구가 복사본

을 요청했고 나는 그런 복사본에서 몇 가지 사항을 다루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본서 전체를 출판하기를 바랐습니다. 이는 불

가피한 일이었으나 사본을 만드는 수고를 덜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본을 만드는 일은 정말 고된 일입니다. 사본을 작성하기를 거의

끝마칠 무렵 예상하지 못한 출판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이렇듯 본

서의 출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의도를 뛰어넘어 이루어졌습니다.

반대 세상은 책이 넘쳐나고 있다. 비록 본서에서 다루는 강론이

필요하긴 해도 출판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답변 1 세상에는 책이 정말 많습니다. 다만 많은 책이 근본 진리

와 실제 경건은 다루지 않고 비실제적인 관념과 쓸데없는 논쟁에

지면을 많이 소비합니다. 다수의 책이 근본 진리를 공격하고 경건

마음 지킴

의 능력을 훼방합니다. 물론 일부의 책은 근본 진리를 풍성하게 하

여 복음이 전하는 중요한 진리를 명확하게 하고 알맞게 적용이 되

도록 돕기도 합니다. 영혼이 먹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식이 되게

말입니다. 서기관의 펜을 쥔 사람들이 세상에 무익한 책을 내놓는

일이 아닌 곳에 시간과 수고를 들였다면 좋았으리라 생각하지만,

후자의 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만일 농부가 곡식이

너무 많아 불평하는 일이 혹시라도 있다면, 그리스도인도 경건 서

적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게 하십시오.”

답변 2 만일 그대가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과신해 경건 서적이

필요 없다고 느낀 나머지 그것을 읽지 않고 놔둔다면, 비록 그 책이

그대에게 아무 해를 끼치지 않겠으나 영혼이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

들은 그 책 때문에 기뻐하고 그대가 멸시하고 버린 책 때문에 하나

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반대 본서에서 다룬 여러 가지 사례가 그대에게 해당하지 않는다

고 말한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답하겠습니다.

답변 1 그대에게 해당하지 않은 사례가 다른 사람이 겪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대가 삶이 편안하고 풍족하여 본서에서 제안한

것처럼 곤란에 처했을 경우 마음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도움이 필

요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해도, 다른 사람들은 믿음으로 사는 일에 매일 양식이 필요한 상황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대가 무

릎쯤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다면, 다른 형제들은 발아 래에 해당하는 섭리 속에 있을지 모릅니다. 고통받는 가련한 영혼

은 혹독한 섭리 아래 놓이면 극단적인 결론에 빠지기 쉽습니다. 반

면, 그대는 평온하고 평정을 잃지 않는 정신이 있어서, 그런 극단에

빠지지 않도록 제시된 조언들이 필요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

기 제시된 단 한마디의 조언이 가련한 영혼에게는 시기적절한 말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말했듯이 말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삼상 25:32~33 )

답변 2 지금은 아닐지라도 곧 그대도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습

니다. 그대의 산지가 강성하다거나 그대가 절대 요동하지 않으리라

고 말하지 마십시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오른손에서부터 변화가

오면 울타리 열매에 불과하던 진리가 은쟁반에 놓인 금 사과와 같

이 됩니다. 예레미야 33장 10~11절에서 선지자가 당시 자기 집에

거하던 유대인들에게 바벨론에서 그들의 신앙을 어떻게 지켜야 하

는지, 그리고 갈대아인들에게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교훈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갈대아인의 말로 기록되었습니다. 이상 본서를 출판

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다음으로 본서를 여러분에

게 헌정하는 이유를 말하려 합니다.

본서의 헌정 이유

1.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여러분과 이 세상에서 맺고 있는 관계입

니다. 나는 내 은사와 시간이 여러분의 것이라고 여깁니다. 부여받

은 모든 재능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남편과 사별한 여인은 남편의

법에서 자유로운 관계에 놓이지만, 나와 여러분의 관계는 그렇지

않아 여전히 지속되고 따라서 상호 간에 의무가 충실히 이행되어야

합니다.

2. 여러분과 떨어져 있는 상황으로 조금이라도 친교의 끈이 느슨

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떨어져 있는 벗끼리 친교의 끈을 유

지하기 위해 그렇듯이 나도 이 적은 노력을 통해 나와 여러분과의

친교를 보호하고 강화하려 합니다. 베스파시아누스가 두 명의 철학

자와 대면하기를 바라면서 아폴로니우스에게 말했습니다. “내 문은

철학자들에게 항상 열려 있으나, 내 마음은 그대에게 열려 있다네.”

섭리로 말미암아 안타깝게도 내 문은 여러분에게 항상 열려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 내 심장은 여전히 여러분에게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게 사랑스럽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3. 사실 진짜 동기이기도 한 또 다른 이유는 이 책이 다루는 진리

들이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유익하고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은 이 책의 내용이 계속 필요합니다. 본서의 내용을 기억할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나도 항상 여러분 곁

에서 본서 내용을 반복해 교훈할 수도 없습니다. 반면, 기록된 글은

여러분 곁에 남습니다. 이 책은 여러분을 향한 진실한 사랑과 염려

의 증거로서, 나는 이것을 여러분에게 유산으로 남기려 합니다. 내

가 여러분을 조언하고 인도하지 못할 때 본서가 내 역할을 대신할

것입니다. 추방을 당하거나 생을 마감하게 되면 나는 더 이상 여러 분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합니다. 반면, 책은 나보다 이 땅에 더 오래

남을 것이며, 오! 무덤에서 잠자는 나를 대신해 여러분의 영혼을 섬 길 것입니다.

세 가지 사항을 여러분에게 요청하며 조속히 결론을 내리려 합

니다. 이 요청을 거절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아니, 명령합

니다. 여러분이 위대한 목자 앞에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바라는

만큼 내 요청을 절대 경시하지 마십시오.

세 가지 부탁 사항

1. 세상에서 탐구할 수 있는 어떤 것보다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탐

구하십시오. 쓸데없고 무미건조한 논쟁을 벌이는 데 귀중한 시간을

소비하지 마십시오. 사실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벨라르미누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해집니다. “그는 경건의 맛이 모자란 스

콜라 신학에 염증을 내고 그것을 탐구하는 일에서 돌아섰다”( Quod a studiis scholasticae theologiae averteretur fere nauseabundus, quoniam succo carebant liquidae pietatis ) 1) 누군가 스윈크펠디우스에 대해 “그는 균형

잡힌 지성이 부족했지만 그렇다고 정직한 마음이 모자란 것은 아니

었다”( Caput regulatum illi defuit, cor bonum non defuit ) 라고 말했습니다. 나

역시 여러분에 대해 “이들은 지성은 균형 잡혔지만, 마음이 부도덕

한 사람이다”라고 하는 소식보다 벨라르미누스에 대해 전해진 말로

소식을 듣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내게 임한 은혜를

따라 여러분 가운데서 목사 직분에 있는 동안 수고하고, 실제적인

교리로 마음을 강건하게 하는 양식을 여러분에게 공급했습니다. 확

1) 야코부스 풀리가투스(Jacobus Fuligattus)가 벨라르미누스의 생애에 대해 한 말이다.

마음 지킴

실히 말하건대, 복음을 단순한 추론이나 메마른 삼단논법으로만 이

해하는 것보다 구원하는 은혜와 함께 복음 진리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여러분에게 훨씬 유익합니다. 쓸데없는 탐구는 시간이 남아돌

아 어떻게 선용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나 맡기십시오.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은 영원의 문턱에 서 있고, 해야 할 다른 일이 있습니다. 골방

에서 마음을 살피는 시간은 다른 어떤 시간보다 황금과 같고, 또 그

런 시간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달콤한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 내가 열왕기하 20장 2〜3절 본문을 바탕으로 본

주제와 관련해 전한 설교 내용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마음을 살피

는 일은 중요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의 실수로 여러분의 영혼이

희생당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아우구스티누스가 삼위일체 교

리에 대해 말한 것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 교리만큼 쉽사

리 또는 위험하게 실수를 범하는 것도 없다”( Nihilo facilius aut periculosius erratur ). 오, 그러니 마음을 탐구하십시오.

2. 생활 속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모든 길에서 온전하게 행 동하고 생명의 말씀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삶을 거룩하고 엄격하게

영위하여 원수가 볼 때 그대를 요동하게 할 것이 없게 하십시오. 명

심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은 마지막 날 세상을 판단하는 일에 증거

로 제시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고전 6:2 ).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 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지켜보는 눈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전지 한 눈으로 뜻과 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

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3 ).

사탄이 눈을 부릅뜨고 여러분을 지켜봅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

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

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

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욥 1:7〜

8 ). 원수들은 시기 어린 눈으로 여러분을 철두철미하게 살펴봅니다.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

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시 5:8 ). 또 여러분 가운데 누구도

양심의 예리한 눈에서 자신의 행실을 숨길 수 없습니다. “내가 그리

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

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롬 9:1 ).

오, 그러니 생활 구석구석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엄밀히 행하

십시오. 자기 방이건 가정이건 어느 곳에 거하든 경건의 능력을 유

지하십시오. 그러면 좀 더 공적인 직업과 생활에서도 경건의 능력

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자주 말했듯이, 복음은 최고의 부

모와 자녀, 최고의 주인과 종, 최고의 남편과 아내를 만드는 것을 그

영광으로 삼습니다.

3.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나는 내가 여러분 가운데 처음 오 게 된 것이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받았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고, 또

확신하기는 여러분 가운데 일부는 그렇다고 인정하리라 생각합

니다. 정말 그래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2절을 보십시오. “이르시

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나 역시 여러분의 기도

가 응답받아 내가 복음 사역에 인도받았다고 확신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에베소서 6장 18~19절을 보

십시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

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나는 여러분의 기도로 히

브리서 13장 18~19절과 빌레몬서 22절에 언급된 은혜를 더욱 덧

입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

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 히 13:18~19 ).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

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몬 22절 ). 내가

여러분을 위해 자주 기도했으니, 여러분도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

이 공평한 일입니다. 강단과 집, 골방이 나를 위해 증언합니다. 여러

분을 위한 간구를 중단하는 것은 주님께 죄를 짓는 것이므로 내게

는 불가한 일입니다.

이는 여러분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는 일입니다. 곧 여러분이 하나

님에게서 나를 위해 어떤 자비를 얻든지 그것은 여러분에게 유익입 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면, 그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복음 사역자가 은사와 은혜를 더 많이

누리면, 그것은 그가 섬기는 양 떼에게 더 많은 유익이 됩니다. 하나

님이 내게 많이 주실수록 나는 여러분에게 더 많이 나누어 줄 수 있

습니다. 더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내가 보여 준 이 큰 사랑

의 증언을 받아 상황에 맞게 활용하기를 원합니다. 본서를 신중하

고 순종적인 마음으로 읽으십시오. 책의 꾸밈새나 문체가 아닌, 읽

는 내용이 지닌 중요성과 향기로 본서를 판단하십시오. 버나드는

이 점에 대해 훌륭한 규칙을 남겼습니다. “독서할 때는 문장 기술

보다 책의 맛을 음미하라”( In legendis libris, non quaeramus scientiam sed saporem ). 그러면 본서가 여러분에게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

를 풍길 것입니다. 이 책을 접한 사람 모두에게도 말입니다. 이것이

내 간곡한 바람입니다.

1667년 10월 7일, 슬랩턴 레이에 있는 서재에서

존 플라벨

마음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

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마음은 그의 가장 악한 부분이 되지만 거듭나면 가장 좋은 부분이 됩니다. 마음은 본질의 장소이자 행동

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당연히 그렇겠지만 그리스도인의 시선도 주로 마음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회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회심하고 나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마음을 유지하기가 가장 어렵

습니다. 여기에 신앙의 어려움과 곤란함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생 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하늘로 인도하는 문은 협착합니다. 이

일에 필요한 지도와 도움이 본문이 다루는 내용이자 핵심입니다.

본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권고: “네 마음을 지키라.”

2. 권고하는 이유 또는 동기: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본문에서 다음 사항을 탐구하려 합니다.

1. 의무의 내용,

2. 실천 방식.

1. 의무의 내용은 “네 마음을 지키라”입니다. 여기에 언급된 마

음( heart ) 은 철학자들이 “생명이 들어오는 첫 장소이자 죽음이 찾아

오는 마지막 장소”( primum vivens, et ultimum moriesn ) 로 말하는 것, 곧

신체의 고상한 부분에 해당하는 심장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부적절합니다. 여기서 마음은 성경이 영혼의 고상하고

특정한 기능으로 언급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로마서 1장 21절에서

성경은 마음이 어두워진 상태를 말하면서 이해의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으로 마음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

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시편 119편 11절에서는 마음이 기억

하는 기능으로 언급됩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

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요한일서 3장 20절에서는 양심

을 표현하는 것으로 마음이 쓰였는데, 이는 마음이 이성의 빛을 가

질 뿐 아니라 기억하는 것을 인식하는 기능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

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즉, “마음이 책망한다”

는 구절은 양심이 책망하는 것을 고유한 기능으로 삼고 있음을 보

여 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본문에 언급된 마음을 영혼 전체 또는 속

사람을 나타내는 것으로 다루어 좀 더 일반적인 의미로 보려 합

니다. 심장이 몸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보십시오. 영혼과 인간이 갖

는 관계가 그러합니다. 다시 건강이 심장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보

십시오. 거룩함과 영혼의 관계가 그러합니다. 몸의 전체 상태는 심

장이 얼마나 건강하고 활력이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이 처

한 영원한 상태는 영혼의 상태가 선한지 아닌지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일을 통해 거룩한 규례와 의무를 부지런히 그리고

꾸준하게 1) 선용하고 개선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십시오. 이는

죄로부터 영혼을 보존하고 하나님과 나누는 달콤하고 자유로운 교

제를 유지하는 길입니다. 리바터 2)는 바로 이 말을 적에게 포위된

요새에서 듣게 될 것입니다. 요새가 밖으로는 많은 적에게 둘러싸

이고 안으로는 미덥지 않은 시민에게 배신당할 위험에 처했습니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 사병들이 깨어 경계근무 설 것을 명령받습

니다. 어기면 여지없이 사형입니다. 반면, “마음을 지키라”는 표현

은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의무로서 주어졌긴 하나, 그렇다고 그 의

무를 행할 충분한 능력까지 우리가 가졌다고 암시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마음을 지배하고 규제할 기술과 능력이 있다면 태양을

1) “꾸준하게”라고 말하는 이유는, 본문이 마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로 언급한 내용 이 이 의무를 그리스도인의 생명이 처한 모든 상태와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것

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마음을 지키는 의무는 항상 이행해야만 한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오므로 마음을 지켜야 한다면, 우리가 그와 같 은 명제 아래 있는 한, 마음을 지켜야 한다.

2) 플라벨과 다트머스 성도 사이에 익히 알려진 인물로 보인다-옮긴이.

멈추게 하거나 강을 거꾸로 흐르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스

스로가 ‘지키는 자’가 될 수 있다면 ‘구원하는 자’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솔로몬이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한 것은 충분히 타당한

일입니다. 의무를 지킬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오나 의무 자체는 우

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은 의무를 지킬 능

력이 없지만, 은혜 입은 그리스도인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지킬 능

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지닌 능력은 그리스도가 깨우고 돕는

힘에 따라 달라집니다. “은혜는 은혜를 요구한다”( Gratia gratiam postulat ) 라는 이 말은 우리 안에 있는 은혜가 우리 밖에 있는 은혜에

서 도움을 받는 것을 나타냅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 이 의무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2. 실천 방식은 ‘전심전력’3)입니다. 히브리어 원어에는 매우 강조

된 표현이 쓰였습니다. ‘철저하게 지키는 자세로’( Cum omni custodia ),

즉 매일 지키고 지켜 또 지키라는 말입니다. 이중으로 망을 보고 지

켜보십시오. 마음은 또 다른 곳을 찾아갈 것입니다. 본문에 쓰인 강

한 어조는 마음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또 마음을 방

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암시해 줍니다.

3.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도록 이끄는 이

유 또는 동기는 논란이 될 여지도 없이 매우 중요한 사항입니다. 즉, 마음은 호흡 있는 모든 행동과 작용이 나오는 원천이자 근원입

3) 저자가 인용한 KJV 성경 본문에서는 “with all diligence”라고 되어 있고, 옮긴 이는 이를 “전심전력”으로 번역했으나 개역개정은 “더욱”이라고 번역했다-옮 긴이.

니다. 히에로니무스는 말합니다. “여기( 마음 ) 에 선한 것의 원천과 일

어날 죄의 발단이 있다”( Hinc fons boni et peccandi origo ). 마음은 선과

악 모두가 흘러나오는 샘이자 근원입니다. 시계태엽이 시계 안에

있는 모든 톱니바퀴를 움직이듯 말입니다. 손과 입이 보물을 진열

한 가게라면 마음은 보물 창고에 해당합니다. 가게에 진열된 물건

이 창고에서 나오듯이 손과 입은 언제나 마음의 끝자락에서 움직이

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책략을 세우고 몸의 지체는 시행합니다. 누

가복음 6장 45절을 보십시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

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마음이 자기 일에서 잘못을 범하면 손과

입도 자기 일에서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마음의 잘못

이 일의 처음 구성 단계에서 나타나는 오류와 같아 나중에 교정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그것은 인쇄 과정에서 우표 그림이 거꾸

로 되거나 글자가 잘못 배치되는 경우와 같습니다. 그런 경우 인쇄

된 복사본은 오류로 가득하게 됩니다. 오, 그러니 다음 교리에 포함

된 의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겠습니까?

교리 매사에 마음을 바르게 먹고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살면서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느 철학자가 물을 설명하면서 한 말은 마음에도 적용됩니다. “물은 경계를 두고 한곳에 머물기가 어렵다”( Suis terminis difficile continentur ). 경계를 긋고 그 안에 물을 가두어 두는 일이란 어렵습 니다. 비슷하게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경계와 한계를 정해 주셨지만, 사람은 은혜와 신앙만이 아니라 이성과 일상적인 정직에서조차 하

나님이 정하신 테두리를 너무 자주 범합니다. 이것이 지치고 힘든

일입니다( Hic labor, hoc opus est ). 4) 이것은 죽음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수고와 두려움, 공포를 더하는 요소입니다. 손을 씻

어 낸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위선자도 그리

스도인을 따라 자기 손을 깨끗하게 내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리스도인의 본질은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감찰하여 바르게 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일 때문에 수많은 고충을 감내하고

한없이 탄식하며 뼈아픈 눈물을 흘립니다. 히스기야가 티끌 가운데

앉아 여호와 앞에 엎드린 것은 마음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히스

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

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대하 32:26 ). 다윗도 위선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침투한

두려움으로 울었습니다.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들에 완전하게 하

사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시 119:80 ). 다윗은 하나님

을 경배하다가 마음이 나뉘고 혼돈에 빠졌습니다. 이런 괴로운 경

험 때문에 다윗은 마음을 쏟아 간구했습니다. “일심으로 주의 이름

을 경외하게 하소서”( 시 86:11 ).

본 교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겠습니다.

4) 기원전 1세기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의 서사시 ‘아

이네이스’(Aeneid)에서 예언자가 아이네아스에게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서사 시의 문맥에서는 저승(아이네아스의 아버지가 있는 죽음의 땅) 곧 지옥으로 내 려가는 것은 쉽지만 거기서 돌아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예언자가 “이것은 일이고, 이것은 노역이로다”(hoc opus, hic labor est)라고 말한다-옮긴이.

마음을 지키는 일이 전제하고 함축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 살면서 이 의무를 가장 중요한 자기 일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음을 특별히 부지런하게 지켜야만 하는 시기는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전체 내용을 여러 가지로 적용하겠습니다.

지키기 위한 전제

마음을 지키는 의무가 전제하고 함축하는 바를 살펴보겠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일에 앞서 절대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사항은 성령

이 먼저 영혼을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입니다. 성령의 사역으로 마

음에 새롭고 신령한 성향이 생기면 마음은 바른 상태가 됩니다. 마

음이 은혜로 말미암아 바르게 되지 않으면 마음의 습관적인 성향

때문에 의무나 규례는 마음을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도저히 이끌

수 없습니다. 자아는 성화되지 않은 마음의 추( 錘 ) 로서 사람이 계획

하고 행하려는 모든 일에서 마음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듭니다.

마음이 그렇게 편향적으로 있는 한, 외적인 수단으로 마음이 하나

님과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창조 당시 인간은 영혼의 구조와 성질이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곧고 초지일관했습니다. 생각이나 영혼의 기능 하나조차 흥청거리

거나 혼란스럽지 않았습니다. 정신은 하나님 뜻을 이해하고 아는

일에 완전한 빛을 가졌고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 뜻에 온전히 맞출

수 있었습니다. 왕성한 식욕은 물론 다른 저급한 능력들도 완전히

복종시킬 수 있었습니다.

반면, 타락한 인간은 극도로 무질서와 반항심이 가득한 피조물로

전락해 자신을 지으신 창조자를 대적하고 그분과 싸웁니다. 자신이

첫 번째 원인자가 되어 자아를 의존하고, 자신이 최고의 선이 되어

자아를 사랑합니다. 지극히 높은 주인이 되어 자아의 고집대로 하

고, 궁극적인 목적이 되어 자아를 추구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지극

히 무질서해졌고 모든 행동이 들쭉날쭉해졌습니다. 빛을 지녔던 지

성은 무지로 어두워졌고 유순했던 의지는 반항심과 고집으로 똘똘

뭉쳐졌습니다. 저급한 기능들은 고상한 기능에게 지배받고 다스림

받는 것을 내팽개쳤습니다.

이와 달리 거듭난 사람은 그 무질서했던 영혼이 바르게 돌아옵 니다. 성령이 영혼을 거듭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사역은 영혼을 교정하고 그 구조를 마땅히 있어야 할 모습으로 만듭니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영혼을 변혁시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엡 4:24 ). 여기서 자아를 의지하던 것이 믿음을 통 해 제거되고 자아를 사랑하던 일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통해 제거됩니다. 자아의 고집이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일을 통해 제거 되고 자아를 추구하던 일이 자기 부인을 통해 제거됩니다. 어두웠

던 지성이 다시 조명을 받습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엡 1:18 ). 고집 셌던 의지는 고분고분하게 순복합니다. “주

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

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 110:3 ). 하나님께 반

항하여 품었던 욕심과 정욕이 차츰 극복되어 갑니다( 참고. 로마서 6,

7장 ) 죄 때문에 철저히 타락했던 영혼이 이렇게 다시 은혜로 말미암

아 회복하고 교정을 받습니다.

이런 중생을 전제하면 마음을 지키는 일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생한 사람이 꾸준히 그리고 부지

런하게, 은혜로 들어가게 된 거룩한 마음 구조 안에 영혼을 머물게

하고 매일 그렇게 되기를 애쓰는 것입니다.

비록 은혜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지고 그 안에 거

룩한 성향이 심겨질지라도 영혼은 다시 죄 때문에 어지러워집니다.

실제로 자주 그러합니다. 은혜를 입을지라도 마음은 악기와 같습

니다. 물론 아주 정확히 조율되는 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작은 문

제 하나로 음이 이탈합니다. 잠시라도 악기를 놔둬 보십시오. 또 다

른 연주를 하려면 다시금 조율이 필요합니다. 은혜 입은 마음도 똑

같습니다. 마음이 어떤 의무를 수행하는 데 조율되었다 해도 또 다

른 의무를 수행하려 하면 어찌나 무디고 메마르며 혼란에 빠지기

쉬운지 모릅니다. 각각의 의무를 감당하려면 마음은 의무에 따른

준비 과정이 필요합니다.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

여 손을 들 때에”( 욥 11:13 ). 이런 이유로 마음을 지키는 일이란 죄로

부터 마음을 세심하게 지켜 내는 것을 말합니다. 죄가 마음을 혼란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신령하고 은혜로운 상태를 유지하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과 교제하여 누리는 삶에 합당한 마음 상태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의무는 다음 여섯 가지 실천 사항을 포함합니다.

첫째는 마음 상태를 자주 관찰하는 것으로, 내면을 살펴보고 상황

에 따라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검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

음 지키는 의무에 포함된 한 부분입니다. 거듭나지 못하여 육신적

이고 허울만 좋은 사람은 이런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자

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자리로 인도받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사십 년 또는 오십 년을 살지만 그동안 자기 마음과 대화 하는 데 단 한 시간을 가질까 말까 합니다. 이런 이유로 어느 한 사

람을 자기 자아와 대면하게 만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반면, 거듭

난 성도는 자아를 대면하여 대화하는 일이 얼마나 유용하고 자기

영혼에 득이 되는지 압니다. 이교도조차 말합니다. “침묵 가운데 고

요히 거하면 영혼이 지혜로워진다”( anima sedendo et quiescendo fit sapiens ). 파산자는 자신의 회계장부 보기를 꺼리지만 마음이 정직한

사람은 자기 마음이 후퇴했는지 아닌지 알려 합니다. “밤에 부른 노

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시

77:6 ). 그런 마음을 소유한 사람은 마음이 처한 상황을 검토하고 알

아내기까지 절대 긴장을 놓지 않습니다.

둘째는 마음의 악과 무질서를 깨닫고 진심으로 낮아지는 것입 니다. 히스기야가 그랬는데, 그는 자기 교만을 깨닫고 자신을 낮췄 습니다.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

지은이 존 플라벨 (John Flavel, 1628~1691년)

영국 청교도 사상의 빛나는 별이자 뛰어난 영적 저술가였던 존 플라벨은

17세기 청교도 박해의 폭풍 속에서도 굳건히 복음을 수호한 목회자였다.

1628년 영국 우스터셔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다트

머스에서 목회하며 깊은 영적 삶과 실천적 경건을 강조했다.

1662년 통일령에 의한 “대추방”으로 목회직에서 쫓겨난 후에도 비밀리에

설교를 계속했으며, 때로는 변장을 하거나 깊은 숲속에서 신자들을 만나야

했다. 이러한 역경의 삶에서도 그의 영적 열정은 변함없이 깊었고, 『은혜의

방식』, 『마음 지킴』, 『섭리의 신비』 등 저서를 통해 일상의 경건을 위한 실

천적 지혜를 전했다.

특히 그의 글은 난해한 신학 개념을 일반 신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생생

한 비유와 따뜻한 어조로 풀어 내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 준다. 영혼의 상태

를 진단하고 치유하는 목회적 지혜로 많은 이에게 위로와 소망을 전했던

플라벨은, 오늘날까지도 그리스도인의 일상적 경건과 영적 성숙을 위한 귀

중한 안내자로 사랑받고 있다. 현재 다트머스에는 플라벨 교회와 플라벨

아트 센터가 세워져 그의 귀중한 유산을 기념하고 있다.

옮긴이 이심주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영어과정(KESA)을 졸업했으며, 청교

도 신앙 유산의 풍성함을 한국 교회에 소개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 『십자가를 설교하라』, 『우주와 인간의 시작』, 『꼭 알아야 할 기독교 핵심 용어 17』,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본 미술과 음악 스터 디 가이드』, 『신조를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 『이단을 알면 교회사가 보 인다』(이상 부흥과개혁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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