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서문
나는오랫동안구약을연구해왔다. 하지만나는많은학자처럼나무
들만보았지숲을보지못했다. 1993년에갖게된안식년을맞아나는세
부적인것이아닌전체윤곽을찾기위해히브리성경을읽기시작했다.
그러한새로운관점은히브리정경에대한일련의연구라는결과를낳았
고, 그것을계기로성경자체가어떤전반적인성경구조와해석전략을
제공하는지를탐구하게되었다 (S. G. Dempster 1997; 2001) . 이것은또다른
논문 (성경신학분야로의첫번째모험) 으로이어졌고, 이논문은2000년도에휘
튼대학교에서개최된학술대회인‘성경신학: 회고와전망’에서발표되 었다. 이책은그논문을더발전시킨것이다. 이책은완전함과는거리 가멀지만앞으로나아갈길을가리키며더많은연구를제시한다.
저술하는동안동료들과친구들이많은조언과도움을주었다. 이시 리즈의편집자인D. A. 카슨은필요한격려와값진비평을제공해주었 다. 카슨과함께끝없이참아주고도움을준IVP의신학서적편집장인필 립두스에게감사를표하고싶다. 두사람은이프로젝트를믿어주었고
나는단지그것에대해그들에게감사할따름이다. 나는피터젠트리의 언어학과신학분야의전문지식, 맬컴엘리엇 - 호그의비평적인시각, 덕과아일린맨츠의편집기술, 릭토머스의경청과격려의말, 존세일해
머와댄굿윈의조용한격려와존홀트, 브렌트허드슨, 브루스핀리와데 이브해트의중보기도의힘을통해커다란유익을얻었다. 고레이딜라 드, 팔머로버트슨, 폴디온, 존레벨과존웨버즈같은이전의멘토들에
게도항상도움과도구를제공해주신것에대해감사드린다. 나는나에
게처음으로‘성경이야기’를가르쳐주신아버지와어머니에게가장감 사를표하고싶다.
지난몇년동안참고인내해준나의자녀들 (제시카, 조애나, 네이선, 마이클, 홀리, 빅토리아) 에게감사하고싶다. 아버지는너희들이있음으로인해측량 할수없는복을받았다!
이프로젝트를끝까지완성할수있도록힘과은혜를주신하나님께 감사하고싶다. 끝은정말단지시작일뿐이다.
나는이책을나의아내예후디에게바치고싶다. 모든것에감사하오!
네가현숙한여자인줄을나의성읍백성이다아느니라 (룻3:11)
스티븐뎀프스터
저자서문 │ 11

01.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구약신학에대한문학적접근
구약신학: 다른시각을통해보는성경
성경신학은성경자체의독특한신학을발견하는것을그목표로하기 에종종다른신학분야의주관성을피하는학문으로여겨져왔다.1 ) 본 문이의미했던것과본문이의미하는것을구별하는것 (비록고지식하게근대 적인것이라할지라도) 은훨씬더다룰만한과업으로보인다 (Stendahl 1962) . 2 ) 하지만지난한세기동안쓰인약60개의성경신학가운데, 거의성경신 학만큼이나많은신학자가있다는것은여전히사실로남아있다 (Lemcio 1997: 361) . 3 )‘성경자체의신학’은해석자자신들의신학으로드러났다.
1 ) 처음부터이것이성경신학의특징이었다(Gabler 1787). 현대신학자들은이런근본적인차이 를받아들이는경향을보인다. 예로Stendahl 1962를보라. 에블링은성경신학과조직신학의 차이를성경속에포함되어있는신학대성경에일치하는신학으로정리한다.
2 ) 이견해를최근에용감히변호한Barr 1999: 188~208을보라.
3 ) 롤프렌토르프(Rolf Rendtorff 1997: 10)는20세기에만60가지의구약신학이나왔음을언급한 다. 필자가읽을수있었던가장최근의신학은스피커만(H. Spieckermann 2000)의것이다.
확실히서로다른신학자들이사용한서로다른해석학의관점이이런 결과를보장해주었다. 통시적이고역사적인관점은성경본문에나오는 신적구원사건들의연대기적순서는강조했지만지혜문학과다양한시
편에표현되어있는지속적인하나님의섭리적활동은경시했다. 조직적 인관점은본문의자료들을신론, 인간론, 구원론과같은교리신학에서
차용한주제별범주를통해본다. 단일한혹은복수의고유성경개념들
을강조하는주제별관점은종종다른중심주제들을간과한다. 실존주
의관점은거의해석자들에게그들자신들의관심사들을비추어주는거 울과같다. 게다가잊지말아야할것은심지어해석자들이동일한관점 을사용할때조차도다른신학이생겨날수있다는점이다.4 ) 베스터만이
말하는것처럼“구약이말하라고요구하는이야기는서로다른연구자 들에게모두다르게보인다”(Westermann 1963: 11) .
비록이런관찰이일종의포스트모던적인냉소주의로이어질수도있
겠지만그렇게결론내릴필요가없다. 현대서구문화의바다에서항해 하는신학자들은두가지의상반된오류를피해야한다. 즉, 신학자들은
모더니즘의괴물과포스트모더니즘의소용돌이사이를항해해야만한 다. 모더니즘의오류는‘객관주의’다.
이객관주의는개별적주체들이
사물을조사할때가치중립적인온전한진리를확보할수있다는것으 로, 사물을실제있는그대로볼수있다는것이다. 반면포스트모더니즘
의오류는‘주관주의’다.
주관주의는관찰자들은결코가치중립적이거
나객관적일수없기때문에주관적관점에따라, 즉있는그대로가아닌 자신들에게보이는대로본다는것이다 (그러므로결코제대로볼수없다) . 참된
유대 - 기독교인식론은급진적인객관주의와급진적인주관주의사이를 항해할것이다.
인간은진리가계시되기때문에진리를알수있지만그
4 ) 다양한관점을위해서는Vogels 1998을보라.
16 │ 하나님나라관점으로읽는구약신학
진리는항상인간의이해력에맞춰지며, 자신들의독특한상황을통해 여과된다. 문화와장소, 시간, 사회, 교육, 경험의요소들과죄가정신에 미친효과들이진리에영향을미친다. 바울은고린도전서에서기독교신
자들이현생애에서유리를통해어렴풋이본다고언급한다. 바울의관 찰은긴장관계에있는모더니즘과포스트모더니즘의진리를잘보여주 는한편, 이두사상의오류를피한다. 즉, 우리는 유리 (포스트모더니즘) 를통
해 어렴풋이본다 (모더니즘) . 5 )
성경본문을적절하게읽기
포스트모더니즘이제공하는통찰중의하나는각사람이개별적인해 석의렌즈를통해세상을본다는것이다.
어떤면에서그결과생겨나는
다양한관점들은단순히인간조건의일부분이다. 각인간은특정견해 를가지고실체를본다.
공관복음서를읽으면서알수있듯이다양한견 해는해석과정을방해하기는커녕오히려더나은이해에도움이된다.
모든참된학습은상호교환과확증과수정이일어나는공동체속에서 생겨난다.6 ) 해석자가‘사각지대’를인식하게되는것은종종바로이런 상황속에서다.
그럼에도이것은어떤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말하는것 처럼, 주어진본문에대한모든해석이다똑같이타당하고, 그렇기때문 에다똑같이유효하지않다고말하는것은아니다. 저명한구약신학자
브루그만이모든관점을적법한것으로간주하는듯이보일때, 브루그 만은바로이런포스트모더니즘의오류에위험할정도로가깝게접근해
6 ) 공동체내에서의해석의중요성을위해서는Fowl & Jones 199를보라.
01.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구약신학에대한문학적접근 │ 17 5 ) 고전13:12. 모더니스트와포스트모더니스트에의해생겨나는상이한해석에대한유익한결 과를위해서는Wright 1992: 6~10을보라. 여러기독교학자들가운데라이트(Wright 1992: 33~120)는자신이‘비평적사실주의’라고부르는, 기독교가설에기초한단계적인인식론을 발전시킨다.
있다 (Brueggemann 1997a: 4~8) . 이것은불가피하게해석학상의유아론으 로이어지는데, 브루그만은확실히그런유아론에동의하고싶어하지는 않을것이다.7 ) 이런상황은해석상에있어사사기의유명한구절과같다 고할수있다. 즉, 그때에이스라엘에왕 (참된독해가없음) 이없으므로사람
이각기자기의소견에옳은대로행하였더라 (읽었더라) . 8 )
앤더슨의관점은해석학상의무질서를바로잡아준다. 인간조건의한
계를인정하면서앤더슨은“본문을적절하게읽어내는방법, 즉장르와 구조에충실하게읽어내는방법이분명히있다.”고말한다 (Anderson 1986: 55. 참조, Suhlmacher 1995: 1, 64, 80)
극단적인예를들어이점을설명하자면, 몇십년전에어떤사람이세
상의신비한현상들뿐만아니라구약의여러측면들은오래전에우주밖 에서온외계인들이지구를방문했다는견해를받아들이기만한다면설
명될수있다고주장했다 (von Däniken 1968) .
한예로이견해를가지고왜
웃사가언약궤를만졌을때죽었는지가설명이된다 (삼하6장) . 웃사는당
연히전기와같은것들에대한선진지식을갖고있는외계인들이고안
한기계에의해감전되어죽은것이다. 최근에이와유사한많은책이대 중문화속에등장했다. 특히한책은언약궤가있던출애굽기의성막과
7 )
브루그만은두가지의견을다가지고싶어하는것같다. 브루그만스스로도해석이참으로잘 못될수있는지의여부를질문하면서(Brueggeman 1997b: 100~102) 동시에어떤학자들(예, Clines 1995)이완전히포스트모더니즘에넘어간것에대해맹렬히비난하는것을보라 (Brueggeman 1997b: 63 n. 7). 하지만모순적이게도브루그만은끊임없이구약읽기를“거대 한편집”내지는“본문의오독”(誤讀)으로평가한다(Brueggeman 1997b: 92, 95). 비록클라 인스가포스트모더니즘에완전히넘어갔다하더라도모든사람이클라인스의작품을읽고이 결론에도달했다는것은모순이다. 아마도클라인스의작품(그리고모든작품)이스스로부인 하는것을가정하고있기때문인지모른다. 또한독자들은포스트모더니즘의발흥이전에덴 탄(Dentan, 1963: 90)이성경신학을위한오토아이스펠트의주관적인프로그램에대해평한 것을주목해야할것이다. 덴탄의평의예로는“교리와교회의수만큼많은구약신학이존재할 것이다.”“이런견해는지적논의를배제하는일종의유아론적인비합리주의를포함하는것 같다.”가있다.
8 ) 삿21:25. Brueggeman 1997b: xv~xvi, 61~64를보라.
18 │ 하나님나라관점으로읽는구약신학
솔로몬의성전은궤도를돌고있는우주선과통신하는극초단파송수신 기였다고주장한다 (Jones 2001) . 많은성경학자가이런특정성경해석을 따르지않는이유는명백하다.
그들이‘외계인’틀을구약자료에억지
로끼워맞추고있기때문이다. 확실히그런해석들은‘성경본문을제 대로읽는것’ , 즉‘장르와구조에충실하게성경을읽는것’이아니다.
오히려본문은획일화의대명사인고대프로크루테스의침대를꽤봐줄 만하게보이게만드는해석상의침대에끼워맞추어져버렸다.
물론이런예들이극단적이라는것을인정한다. 하지만외계와일상
사이의선이애매해지고있다.
최근한학자는바울이로마서1장18~24 절에서동성애를확증하고있다고주장했고 (Hornsby 2001) , 또다른학자
는인간타락의이야기는인류의타락이아닌, 오히려인류의발흥에대 한것이라고주장했다 (Carmichael 1992) .
확실히이런예들은성경본문을제대로읽지못했다는것을보여준 다. 하지만다소덜극단적인예들은편견이그렇게명백하지않고, 종종 본문을이해하는데상당한도움을주기때문에더욱더위험할수있다 는것을보여준다. 예를들어구약을마르크스주의의관점으로읽을때 자본주의의관점으로읽을때는 강조되지않을요소들이강조되며, 그반
대도마찬가지다. 9 ) 해방신학이출애굽을구원의패러다임사건으로초 점을맞추는것은우연인가? 아마도그렇지않을것이다. 부유한서구개
신교가지난2백년동안고리대금에대한구약의비난에대해이상하게 침묵한것에대해아담스미스의유산은할말이있는가? 아마도있을것 이다. 그러나요점은양측다서로의의견을들을필요가있다는것이며
9 ) 이것이어떻게레25장에대한해석에영향을미치는지주목하라. 과거몇세기동안많은서 구주석들은이장을유토피안적이고비현실적인포로기이후이상주의자들의작품이라고여 겨왔다.“명백히서구자본주의사회구조의영향을받은이런학자들은다른경제및사회구 조의실제성을전혀모르고있었다”(van Selms 1976: 497). 그결과레25장은심각하게받아 들여지지않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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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양측은가능한한장르와구조에적합하게본문을읽도록많은노 력을기울여야한다.
이것은직관적으로다른분야에서도인정된다. 뇌전문의가목수의연
장을사용하는것은적합하지않고 그반대의경우도마찬가지다. 각
자는반드시자신의전문직에‘맞는’연장을사용해야한다. 한유명한
성경학자가구약성경을공부하는학생들에대해비슷한말을했다.
“자신은종교인이아니면서도종교서적에대해평하고자하는주석가”
는음악성이없는음악역사가와같을것이며,“종교가단지병리학적인
관심사에대한현상이라고생각하는사람은그역사를이해할수있는 입장에있지않을것이라는점은분명한사실이다.”10 )
그러므로해석자들은특정본문의기능을잘이해하고본문자체가제 공하는렌즈를사용하기시작해야한다.
만일성경을정치용소책자, 지 식의교과서, 윤리학사전, 비밀암호내지는UFO를이해하는암호로생
각하고접근한다면그의미가왜곡될것은두말할여지가없다. 해석자
들이부적합한도구들을사용하고있는것이다. 사이츠 (Seitz 1998: 81~82)
가언급하듯이,“골프선수가샌드웨지골프채나골프신발을신고아무 리스쿼시를하려고해도스쿼시코트는고무밑창신발과스쿼시라켓과
스쿼시를하러온선수를기대한다.”아니비유를다시바꾸어서말하자 면본문을보는데적합한렌즈가반드시사용되어야한다는것이다.
그렇다면그런렌즈를어떻게구할수있는가? 한가지방법은본문에
지속적으로노출되는것이다. 즉, 읽고또읽는것이다. 롱 (Long 1994: 34)
은어떤한시대의문서들을연구하는데너무나깊이몰두하여서결국에
는그시대의범주들과가치들을전부다흡수해버렸던어떤역사가에 대해말한다. 성경해석도그것과비슷하다. C. S. 루이스는기본적으로 20
1 0 ) 레벤틀로프는헤르만궁켈을인용한다(Reventlow 1985: 8). 또한덴탄의중요한관찰을보라 (Dentan 1963: 114~117).
성경학자는아니었지만문학훈련을통해시편에대한영향력있는연 구서를쓸수있었다. 루이스는다음과같이조언했다.
성경본문에는원재료의인간적인자질이드러난다. 순진함, 실수, 모 순, 심지어사악함(저주의시편들에서와같이)이제거되지않는다. 그 전체적결과는각구절그자체가흠잡을데없는과학이나역사를제공 한다는의미에서의‘하나님말씀’이아니다. 성경본문은하나님말씀 을담고있고, 우리는(은혜아래서, 전통과우리보다더현명한해석자들
에게주의를기울이면서, 우리가가지고있을수있는그러한지성과학 문을가지고)
하나님말씀에서나온그구절을받아들이는데백과사전 이나순회편지로사용함으로써가아니라그어조나기분에우리자신들 을흠뻑적셔그전체의메시지를배움으로써받아들이는것이다(C. S. Lewis 1961: 94).11 )
독자들이성경본문전체의메시지를알게되는것은바로‘그어조나
기분에우리자신들을흠뻑적실’때다. 그럼으로써우리는본문의윤곽 과시적인세부사항, 구성, 익살과뚜렷한논리, 전체의형태와구상등 과친숙해진다. 이러한일들은새로운지역의지도를만드는탐구가들이 하는것과아주똑같다. 탐구가들은평지와계곡과언덕을조사함으로써 주위의형세를살핀다. 즉, 탐구가들은지형으로써지세를알게되는것 이다. 이런초기의평가작업이있었다고해서과업이끝난것은아니다. 아직갈길이멀다. 가장정확한지도를만들기위해탐구가는그지세 를공들여서반복조사해야한다. 다르게말하면읽고또읽어야한다.
1 1 ) 루이스의작은책자자체를반복해서읽는것또한값어치있는일이다. 이특정인용문과관 련해로드니위태커의도움을받았다. 루이스가말하는문학적인부분에대해서는동의하지 만신학적인부분에대해서는의문의여지가있다. 성경의정경은단지하나님말씀을담고 있는것이아니다. 그자체가하나님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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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인지형도작성작업도이와같다. 이것이바로믿음의비유해석 학법칙이의미하는바다. 해석자는전체본문의관점에서개별구절들 을이해해야하며, 전체의이해는개별부분들을반복해서읽을때만가 능하다.12 )
구약: 다수의책인가아니면단일책인가
얼핏보면구약또는히브리성경은표지와첫장과끝장이있고, 그
사이에약1,500쪽이있는하나의책이지만, 13 ) 기억해야할것은초기의
성경은결코이런기술적인의미에서의책이아니었다는사실이다. 그것
은신성한장소의기록보관소나도서관에소장된책들, 정확히말하면 두루마리모음집이었다.14 ) 바르 (Barr 1983) 와바톤 (Barton 1985) 은확실한
서론과고정된순서와특정결말과함께자체적으로보유하고있는물리
적통일성이라는현대적의미에서의성경을한권의‘책’으로보는생각
은후기에더해진것이기때문에, 통일성은‘본문에서읽어내는것’이
아니라‘본문에없던것을집어넣은’것처럼보인다고지적하며이사실 을강조한다. 바르는다음과말한다.
책들은독립된개별두루마리들이었다.‘성경’은한손에들수있는 단권이아니라벽장아니면작은칸들이있는대형상자혹은많은개별 두루마리들이있는하나의방이나동굴이었다. 성경과성경이아닌다른 거룩한책들의경계선은구분하기가더어려웠고, 마찬가지로그것은
1 2 ) 실바의통찰력있는평을보라(Silva 1987: 93~94).
1 3 ) 예를들면내책상에있는히브리성경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에는1,574쪽까지있다.
1 4 ) 책이나사본은주후1세기가되어서야발명이되었고그한참후에야폭넓게사용되었다. Roberts & Skeat 1954를보라.
22 │
다른책들의순서와정경의구성(만일있다면)의경계선도구분하기가 어려웠다(Barr 1983: 57).15 )
그렇기에바르는개별책들이나두루마리들아니면아마도일련의두 루마리들 (예, 모세오경) 의순서에대한연구가있을수는있지만, 그것을넘 어가면문제가생긴다고믿는다. 그러나물리적인통일성의결여를채워 주는다른방법들이있다. 바르가인정하듯이모세오경이바로그런경 우다. 완성된문서를다담을수있는두루마리가없었기때문에물리적 인통일성은없다. 그결과모세오경은다섯개의다른두루마리에쓰였 다. 하지만가장급진적인문학비평가라도두루마리의올바른순서가 해석에중요하지않다거나, 전체 (하나의성경) 가개별적인다섯부분 (즉, 성 경들) 의총합보다더크지않다고감히주장하지는못할것이다. 비록기 술적인한계들이물리적인통일성을배제했지만언어학적, 문체적, 주제
별장치들은개념상의통일성을확실히세웠다.
이론적으로볼때현대도서관책꽂이에있는여러권으로된작품을
얼핏보면알수있듯이물리적인분리가반드시개념상의비통일성을 의미하는것은아니다.
마찬가지로고대이스라엘에서성경의물리적인
분리가개별성경들로구성된하나의성경이없다는것을뜻하지않았 다. 여러권의책을한기록보관소에두는것은이미그책들의개념적 인통일성을의미하는한가지수단이었다. 예를들어메소포타미아에
서『창조서사시』와『길가메시서사시』는글로쓰이기이전선사시대 에는구두본문으로존재했다.
이책들이점토라는물리적인매개체위 에쓰였을때, 기술적인한계는이런구두및개념적‘서적들’을물리적 으로분리시킬것을요구했다.『창조서사시』의경우7개의점토판이
1 5 ) 순서의비관련성에대한유사한견해들을위해서는Barton 1985: 83~91; Barton 1997; Swanson 1970: 321; A. Jeffery 1952: 139; Ryle 1898: 238을보라.
01.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구약신학에대한문학적접근 │ 23
사용되었고,『길가메시서사시』의경우12개의점토판이사용되었다.
사르나 (Sarna 1971) 와할로 (Hallo 1991) 는이런책들의중요한개념적순서
는고대기록보관소들에있는‘책꽂이’와동일한곳에고정된순서로
점토판을저장함으로써유지되었다고주장한다. 여러권으로된작품들
이현대도서관에있는동일한도서관책꽂이에특정순서에따라보관
되어있는것과매우똑같은방식으로개념적인통일성을유지하기위해 물리적인통일성이만들어졌다.16 )
정경이완성되었을때유사한종류의통일성이생겨났다. 정경의책들
은정경이아닌다른작품들과구별되었고정경이아닌다른작품들과 독립된그룹으로묶였다.
그순서는아마도단순한물리적병렬을통해 유지되었을것이다. 적어도확실한것은비록많은본문으로구성되었지 만히브리성경은그런이유때문에하나의본문이라는분류에서배제되 지않는다는사실이다.
비록물리적인분리가개념적인비통일성을의미하는것은아니지만
많은사람들은많은본문을하나의본문으로통합하는문학적주제별통
일성을발견하는일이어렵다고믿는다.
이런본문들은천년이넘는기 간동안다른많은저자에의해쓰였고, 실제로만화경같은다양한장르 로구성되었다. 프레이는다음과같이말한다.
유행어로표현하면, 성경은우선적으로모자이크다. 즉, 성경에는계
명, 격언, 속담, 비유, 수수께끼, 인용구, 평행대구, 공식과같은구절, 민 간설화, 계시, 현현, 장르, 그리스도의말, 약간의특별구절, 여백의해 설, 전설, 역사문서에서취한단편들, 법, 편지설교, 찬송, 황홀한환상, 24 │ 하나님나라관점으로읽는구약신학
1 6 ) 헤로도토스의긴『역사』는두루마리의기술상의한계가주요단위들내지는‘책들’의물리 적인분리를요구했던예다. 비록때때로숲과나무들을구분하는것이어렵긴하지만이책 에하나의개념적이고문학적인통일성이있다는데는의심의여지가없다. 이책의여러곳 에서필자가언급한평을보라. 1:1, 2:122~123, 3:60~62, 4:85~86.
의식, 우화, 족보와그외끝없는유형으로되어있다(Frey 1983: 206).
하지만프레이역시인정했듯이다양성은통일성을배제하지않으며,
또한통일성이획일성을의미하지는않는다. 무지개의다른색상들은엄 청난아름다움을창조해낸다.
마찬가지로작가는문학상의무지개를만
들기위해다른장르와자료들로이루어진모자이크를사용할수있다.
편집장이나편집팀은정보를선택하고, 배열하고, 자르고, 수정하고, 더 하고, 빼고, 개별적인본문만을위해서가아니라더큰본문모음이나그
룹을위해수정할수도있다.
심지어일련의본문들안에한개별본문을
단순히포함시키는일은독자가그개별본문을새로운방식, 즉전체의
일부분으로읽게만드는편집상의결정이다.
신앙공동체에전수된히브리성경또는‘타나크’가하나의통일체로
여겨졌다는것은의심할여지가없다. 다양한문학모음집은신학적인
이유때문에통일체로간주되었다. 많은저자가개입되었지만또한단 한명의작가가있는것으로믿어졌다. 하지만이것이문학적인의미에
서통일체인가아니면인위적으로부여한통일체인가라는질문은여전 히남는다. 결과물은단순히옛종교전통의뒤범벅 (최악의경우) 인가아니 면고대문학선집 (기껏해야) 인가?
모든사실은개념적인통일성을가리킨다. 이점은뒤에서더포괄적 으로다룰것이다. 하지만문학적인이질성에도불구하고동시에놀라운 구조상의동일성이존재한다.
왜냐하면이엄청나게다양한장르들은창 조로시작하고포로생활과유대인들의귀환으로끝나는비범한이야기 개요안에위치한책속에담겨있기때문이다. 이야기줄거리는창세기 에서열왕기하까지이며, 창조로시작하여그다음유다의바벨론포로 생활로이동한다. 그런다음이야기는주로예언과시편과지혜문학으 로이루어진시적본문들때문에중단되고, 그런뒤다니엘서에서다시
01.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구약신학에대한문학적접근 │ 25
바벨론에있는이스라엘로돌아가이야기를재개하고, 그런다음포로들
의유다로의귀환으로이동하고, 그후열왕기에서창조부터포로기로
이어지는이스라엘의전체역사의이야기를요약하면서끝난다. 본문들
의이놀라운다양성은통합적인문학적이고도역사적인정황을제공하 는, 포괄적인이야기의틀속에위치한다.
그리하여많은작은본문들은
함께더큰본문의틀에일조하고그안에서자기들의의미와중요성을 발견한다.
예를들면사사기에나오는개별영웅담들은특정시기의다양한지파 들을위한하나님의구원의예들로써그개별적인‘지엽적’인의미를갖 고있다.
하지만그이야기들은이제는더큰민족이야기 (사사기) 안에위 치하고, 이민족이야기자체는더큰이야기 (전기선지서) 의일부분이며, 더큰이야기는우주적인이야기 (창세기에서열왕기까지) 의일부분이다. 이것 은그림1.1과같이예시될수있다.
‘타나크’의더큰문학적배경에는상당한해석학적의미가내포되어 있다. 예를들면‘타나크’는출애굽기가아니라창세기로시작되는데,
개별적인이야기들
옷니엘, 에훗, 삼갈, 드보라, 기드온, 아비멜렉, 입다, 삼손
여호수아사사기사무엘상하열왕기상하
토라예언서성문서
정경이야기 (=창세기에서열왕기까지)
그림1.1. 이야기안의 이야기들
이것은이스라엘의민족사가세계사에종속된다는것을뜻한다. 해석학 적으로볼때,
이것은국가로서이스라엘의탄생과그존재이유가세상 과피조물을향한하나님의더큰목적안에놓여있음을뜻한다. 시편이
아니라창세기로시작하는것은이스라엘의찬양을이해할수있는역사 적배경을제공한다. 창세기의아담이아니라역대기의아담으로시작한
다면역대기에나오는다윗의위치를이해하는데필요한주요배경정 보를생략하는꼴이될것이다.
사사기끝에나오는“그때에이스라엘 에왕이없으므로사람이각기자기의소견에옳은대로행하였더라.”(삿 21:25) 라는단조로운후렴구는그다음책인사무엘서에나오는왕권의 부상을해석하는데필요한정황을제공한다.
룻기는“민족경계를넘어
모든사람을친족으로만드는친절의법칙”을강조하는낭만적인단편 이야기로이해될수있지만,17 )
족보가나오는룻기의결론은시편이그
기능을강화시키기이전에룻기를성경의포괄적인역사적, 문학적정황
과위치에견고히안착시킨다.
게다가창세기부터열왕기까지의이야 기의주된흐름을끊어놓는시문학은이야기가다니엘서에서다시재
개되기전에중요한신학적해설을제공한다. 더큰본문과선지서와같 은이런주해의일부를독립적으로읽는것은그메시지를심판과암흑
의메시지로불가피하게곡해하거나선지자들의역할을회개를외치는 설교자들로정해져있다. 주해를그문학적정황속에서읽는것은그것 들이과거 (심판으로서의포로생활[나무를잘라그루터기만남는것]) 를회고하는한 편, 미래와그가능성들 (그루터기에서나는한싹) 을고대하고있음을보는것 이다.
01.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구약신학에대한문학적접근 │ 27 1 7 ) 하비(Harvey 1962: 133)는이스라엘베탄(Israel Bettan)의말을인용했다.
본문에대한문학적접근의중요성
읽고듣는행위는성경의첫청중들에게는중요했다. 따라서오늘날의
청중이본문들을읽고또읽는행위에주위를기울이고, 그결과‘그어
조나기분에자신들을흠뻑적셔그전체의메시지를배움으로써’전체
본문을이해하게되는것이중요하다. 일찍이1965년에굿 (Good 1981: 9)
은성경에대한좀더문학적인접근법을촉구했다.“우리는성경을해
석하는데너무나열심이어서종종성경을읽는것, 즉우리가『신곡』이
나『오셀로』나『황무지』를읽는것과마찬가지로성경을읽는것을망 각해버렸다.”성경속의책들은정경으로서의통일성과문학으로서의
장르때문에문학적인관점을요구한다.
이것은성경이성서이며‘단순한’문학이아니라는사실을무시하는 것이아니다. 차일즈 (Childs 1979) 나쿠켈 (Kugel 1981) 이지적했던것처럼,
성경은성스러운책이며주의해서들을것과순종하는마음을요구한다.
이런종교적인영역때문에성경은『신곡』과같은책과는달리그자체 로별개의범주에속한다. 엘리엇의말로하자면“성경은영문학에문학 적인영향을주었는데, 그이유는성경이문학으로간주되어왔기때문 이아니라성경이하나님말씀의보고서로여겨져왔기때문이다”(T. S. Eliot 1975: 98) .
성경이“문학적인우수함때문에성서로받아들여진것이아니다.” 라는주장 (Carroll 1993: 89) 은사실이지만, 성경의문학적인특징에대한 무지는이해를방해한다.
이것이신학좌파나신학우파와같은근본주
의가갖는문제의일부다. 본문을단순히사용하기만하고연구는하지 않는다. 그것은일차원적인본문이다.
한편으로성경은‘성령’의언어를 담고있고, 예를들면과학에서와같이발전을기대하는통찰력의보고를 제공하는철저히영적인문서다. 또다른한편으로성경은인간정신의
28 │ 하나님나라관점으로읽는구약신학
갈등과진화를다루며, 입에덜맞는부분들은버리거나‘모호하게만들 면서’현대의시대정신 (Zeitgeist) 에부합하는본문부분에만초점을맞추 는최근의문화적인유행을승인하는데사용될수있다. 두가지견해
모두문학으로서의전체, 즉인류와피조물이상실한운명의회복을목 표로하는구속이야기로서의본문에대한이해가없다.18 ) 이데올로기적 인의제가해석을이끌어간다.
큰본문안에결코이상적이아닌것을
대표하는작은본문들이확실히있다. 하지만창세기3~11장이드러내 는것처럼세상은이상적이지못하고때때로급진적인조치가요구된다.
하지만그런본문들에대한관점을제대로가질수있게해주는것은전 체에대한의식이다.19 ) 인간의부패와하나님의심판과같은것들도있 지만하나님의은혜도있다. 아니면비극적인요소들이궁극적인코미디 의이야기상황속에놓이기도한다.
결국성경을문학적인관점에서더
연구함에따라이야기와저자들의시적기술에대해더잘이해할수있 게되었다. 작가의기교에대한이해가부족할경우독자들이의미를이 해하지못하지만, 그기교를이해할경우에는그의미가향상된다. 엘리
엇은성경을문학으로연구하는것을반대한것이아니라성경을 단순 히 문학으로만연구하는것을반대했다.20)
피할수없는사실은성경이또한하나님 말씀이라는것이다. 즉, 성경
은문학이며메시지에귀기울이기에반드시이해되어야한다. 랍비이 스마엘의말에따르면“‘토라’는인간들이언어를사용하는것처럼언어 를사용한다.”21 ) 달리말하면성경이하나님의말씀일수있지만, 그것은
1 8 ) 이런관점의상실에대한탁월한설명을위해서는Frei 1974를보라.
1 9 ) 이것이캐럴(Carroll1993)과클라인스(Clines1995)의오류와같은분석상의주된오류다.
2 0 ) 종교문학의즐거움을논하면서했던이평에주목하라.“필자는이즐거움의합법성을인정하 지만그즐거움을학대하는것또한잘인식하고있다. 이런작품들을 오직 그문학적인장점 때문에즐기는사람들은필연적으로기생충들이다”(T. S. Eliot 1975, 필자의강조). 또한Silva 1987: 9~10을보라. 엘리엇이비판하는입장을힘없이변호하는것을보고자한다면, 문학적인 성경연구가“학문적노력의시작과끝이다.”라고믿는D. Robertson 1976: 548을보라.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구약신학에대한문학적접근 │ 29
단순히신비로운‘하늘의언어’가아니라평범한인간의언어로표현된 메시지일뿐이다.
메시지에순종하기이전에, 우선적으로구문과형태와
구조에신경을쓰면서일상언어가들려지는것과동일한방식으로들려
져야한다.
성경은반드시읽고또읽어야한다. 대표적인문학비평가인 알테르는비슷한점을언급한다.
후대의종교전통은대체로성경을즐기기보다는심각하게받아들이 도록조장했다.
하지만그문제의모순적인진리는성경이야기를보다
더이야기로서즐기도록배움으로써성경이야기가하나님과인간과 역사라는위험하고중요한영역에대해우리에게무엇을말하려고의 도하는지를우리가더잘이해하게될수있을것이라는점이다(Alter 1981: 189).
문학비평의선구자인아우어바흐는바로자신의연구결과때문에대
부분의사람들보다성경의종교적주장을더선명하게볼수있었다. 아
우어바흐는히브리문학과헬라문학의차이점에대한자신의고전적인 수필에서다음과같은결론을내린다.
성경의진리주장은호메로스의진리주장보다훨씬더긴급할뿐아 니라더전제적이다. 성경의진리주장은다른모든주장을배제한다.
성경이야기의세계는역사적으로참된실재라는주장에만족하지않 는다.
성경이야기의세계가유일한참된세계이며, 독재정치를하게
되어있다고주장한다……성경이야기는호메로스의이야기처럼우리 의호의를구하지않는다. 우리를즐겁게하고유혹하려고우리에게
2 1 ) Sandhedrin 64b. 이인용문은Berlin 1982: 324의도움을받았다.
아첨하지않는다. 성경이야기는우리를통치하려고하고, 만일우리가 거부한다면우리는반역자가되는셈이다(Auerbach 1953: 14~15).
아우어바흐의통찰력은그의문학연구의결과로생겨난것이다. 독자 들이성경을즐기고성경을문학으로이해하는법을배우는데심각해야 하는것은성경이성스러운문학이기때문이다. 성경이‘단순한’문학 이아니기때문에성경이해가필수다. 신자들의필수과업은당연할뿐 만아니라신성한것이다.22 )
성경과성경의해석학적의미에서발견되는다양한장르의풍성함에 대한언어학적인민감함이몹시중요하다. 비유를역사적인사건의해설 처럼읽어서는안된다. 시편의시를열왕기의연대기처럼읽어서는안 된다. 다니엘서의환상을문자적인이야기로읽어서는안된다. 게다가
문학적인접근법을주도하는것은단순히작은본문들을올바르게이해 하는것이아니라, 큰본문아니면C. S. 루이스가불렀던‘전체메시지’ 를올바르게이해하려는필요다.
숲을놓치지않기
이것은앞서제기된질문으로연결된다. 즉, 성경이단순히취사선택 해서모은흥미로운고대본문전집이아닌, 위에서말한의미로서의하 나의본문인가라는점이다. 그런‘전집’은줄거리, 일관성내지는통일 성을담지못할것이며, 많은사람의판단으로존재할수있는그어떤 통일성도엄격히인위적일것이다. 그런견해에서큰본문은‘정치적인
2 2 ) 이전의주석가들은이점을이해했다. 이전세대의탁월한신약비평가였던호스킨스는“사 전속에파묻힌다음하나님의임재가운데서일어나라.”라고종종말한것으로유명하다. 성 경신학에대한호스킨스의공헌에대한평가를위해서는Fuller 1985를보라.
결정’에기인하는문학적이고역사적인우연이다.
이런견해는문학비평가에게는중요한데, 그이유는그런견해가한 편으로는본문을통일성이있는것으로이해했고, 또다른한편으로는
모든작은본문 (나무들) 때문에큰본문 (숲) 의전체메시지를종종보지못 했던, 교회와회당의여러세대신자들의성경읽기경험과모순되기때 문이다. 해석의역사에서지속적인문제점중의하나는전체를이해하는 데실패해왔다는점이다.
예수님은박하와회향과근채의십일조와같
은작은문제들에초점을맞추면서율법의더중한문제인정의와긍휼
과믿음을잊어버린것에대해종교지도자들을비판하셨다.23 ) 그런가
르침은여러가지율법이상호간의관계에서이해될수있고그법들의
상대적인중요성이구분되는큰그림에대한지식이있음을가정한다.
이혼문제를다루면서예수님은신명기24장에나오는모세율법의작은 본문을초반에남자와여자의첫연합 (창1~2장) 24 ) 으로시작되는성경이
야기라는큰본문의정황속에서보셨다. 결과적으로신명기의이혼법
은긍정적인관점이아니라부정적인관점에서이해되는데, 이것은타락
한세상속의이스라엘사회의상황들에대한슬픈주석이다. 그러므로
작은본문들은훨씬더큰전체를다루는큰본문의틀에서보아야한다
는신학적인명령이있다.
그러나이런일이어려운일이라는사실은여전히남는다. 광범위하고
다양한성경문학에서큰본문의통일성을보기란쉽지않다.25 ) 실제로
많은성서학자들은실제로콜라주와같은본문들속에서하나의큰본 문을보는것이불가능하고, 수많은작은이야기속에서연결된거대한
2 3 ) 마23:23.
2 4 ) 마19:1~2.
2 5 )“구약성경은독자들을처음에는다양성으로질려버리게만든다. 산문과운문, 지혜와예언, 분노를표현하는연해시와시가가있다. 개별적인이야기들의미로속에서구약전체의이야 기를놓치기가쉽다”(Ryken & Longman 1993: 102~103).
이야기를찾는것은불가능하기때문에, 문학적인통일성은하나의환상 일뿐이라고결론내렸다.
문학적인증거에서하나의통일성을찾기란불가능할뿐아니라바 람직하지도않다. 이것의증거는그어느누구도주장되는통일성을찾 아내는데성공하지못했다는사실이다. 실제로모든사람이인정하는
문학의엄청난다양성이그이름에걸맞은통일성을막고있다. 천년이
라는기간안에쓰인구두전통과기록전통으로이루어진문학에서통 일성을기대할수는없다(Murphy 2000: 82~83).
언뜻보면이결론은성경의문학성을객관적으로본데서생겨난것 처럼보인다.
하지만필자의판단으로그결론은성경이라는엄청나게다
양한문학작품을이해하지못한결과일뿐아니라, 특히작은본문들을
확대하고큰본문을축소시키는전제들을 사용한지난몇세기의성경학 문해석학상의근시안적인결과다.
이런상황을만들어낸철학적인가정
2 6 ) 마크스(Marks 1987: 207)는이대안을“호환불가능한것을받아들이고병렬되어있는사건 들을하나의독특한전체로변형시키는, 신적의도성내지는신성을가진최고의소설”이라 고학구적인문체로묘사한다.
2 7 ) 원인은주로성경연구의점진적인세속화였다. 그러나저작상의신적통일성은하나가전체 의의미를담고있다는것을의미할필요는없다.
그것은영감있는세부사항들에대한매료 를뜻할수있으며, 심지어그것은히브리본문의글자들과모음기호들에대한매료를뜻할 수도있다. 그럼에도현대에이르러신적저자에대한개념을상실한것은본문에대한줌렌 즈식접근법(세분화)과성경의인간저자들과본문들을만들어낸기관들에대한관심(유전
중하나는성경이하나님말씀이라는믿음의감소다. 즉, 저작상의통일성 을기대하는것은너무많은것을요구하는것이며비평시대이전의구 식견해로서포기되어야한다는것이다.26 ) 이런특정한신학적인판단은 사실상 존재할수없는훨씬더전체적인특징들보다성경본문의작은 세부사항들에매료되는일과밀접하게연결되어있다.27 ) 성경본문의 01.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구약신학에대한문학적접근 │ 33
더작은부분들을연구하는것에대한관심과언어학과형태론의세부 사항들을연구하는학자들의지속적인세분화가전체적관점의상실이 라는결과를낳았다.
사진술분야에서나오는비유를들어보겠다. 만일
누군가가러쉬모어산과같은조각품에줌렌즈를지속적으로사용한다 면, 몇몇암석들의퇴색된표면과다른암석들의침전된윤곽을볼수있 을것이다. 하지만광각렌즈를갖고한걸음물러서서‘전체그림’을찍 지않는다면, 산을찍는다는의미는상실되어버린다.28 )
본문의줌렌즈적특징들 (배경, 역사적상황, 문법특징, 언어학등) 에대한관심
과함께일어난역사비평이광각렌즈관점의상실과일치한다는것에 는의심의여지가없다.
역사비평은본문에대한부분적이해에일조했
고그결과그어떤통일성도하나의환상일뿐이다.
예를들어많은학 자는성경의홍수이야기 (창6~9장) 속에서두개의개별자료의융합을 계속해서보고있다. 하나님에대한두개의다른이름이반복적인스타
일과상호간에충돌하는몇가지의특징과함께전체에걸쳐사용되고 있다. 줌렌즈이야기는이제그만하도록하자. 하지만본문을광각렌
즈로볼때줌렌즈를갖고보는해석자가완전히알아차리지못하는조 화를목격한다. 웬함 (Wenham 1978) 과앤더슨 (Anderson 1978) 은노아에대
한하나님의은혜라는중심주제를강조하는홍수이야기에나오는복잡 하게고안된교차 (거울구조) 를광각렌즈를사용하여독립적으로본다.
성)을강조함으로써성경의다양성을계속적으로역설하고그런종류의더큰문제들을제외 시키는결과를낳았다. 또한본문에나오는신적저자의목소리를들을수있는능력의상실 이라는, 상응하는결과를가져왔다. 덴탄은이런염려들을구약신학에대한자신의고전적이 고체계적인연구에서언급하고있다. 하지만덴탄은저자에대한어떤고려도하지않음으 로써명백한것을보지못하고있다. 예를들면덴탄은“많은현대성경연구의과도한세분 화”가개인의경건성을계발시켜주는자료로써의성경을잃게된이유라고간주한다. 그러 나그런세분화는질병의증상이지원인은아니다. Dentan 1963: 104를보라. 포스트모더니
즘이표방한‘작가의죽음’은그논리적결과다. 바로이런현상에대한설명과기독교의대 응에대해서는D. L. Jeffrey 1996을보라.
2 8 ) 이비유는제이웰스(Jay Wells)가들려준것이다.
학자들은이교차가홍수이야기와같은어떤단락뿐아니라책의순서
와성경속의개별책에도적용이된다는것을보여왔다. 클라인스 (Clines 1978) 의모세오경에대한혁신적인저작이그러한연구다. 나무들때문에
숲을볼수없는세분화된주석을애도하면서, 클라인스는모세오경이 아브라함에게주시는하나님의세약속 (땅, 자손, 관계) 에의해어떻게연결 되는지를보여준다. 각기다른책들은한약속의여러측면을다양하게 다룬다. 창세기는자손을강조하고, 출애굽기와레위기는하나님과의관 계를강조하고, 민수기와신명기는주로땅을강조한다 (Clines 1978: 45~60)
이미언급한요인들뿐만아니라줌렌즈적특징들은아마도언어학과 역사에대한지나친강조에서생겨났을것이며, 그것은성경의최종편 집자들에대한결론으로이어졌을것이다. 달리말해편집자들은그들이
적고있는본문을전혀이해할수없었고단순히기계적으로받아적었 다는것이다. 거듭하여알테르는기술한다.
성경비평가들은종종원시문화에서의본문전달에대한어떤둔한
선입관에서비롯된가정을하게되는데, 그가정은편집자들이미치광 이같은부족적충동에빠졌고, 이충동은편집자들을관련성이보이지
않는전통적인자료단위들을계속해서포함하도록몰아갔다. 이이유 때문에편집자들은설명할수없었다(Alter 1981: 20).
만일학자가그런이론에얽매이지않았다면사람들은그러한비일관 성이“졸음”과같은인간의실수의결과였을것이라고믿었을것이다.
이런가능성이야항상있는일이지만, 어떤경우에이것은작업을하다 가단지졸음에빠진것이아니라“깊이잠들어있는”사람의작품으 로보인다는것이문제다.29 ) 통찰력있는알테르의성경연구는만일 성경신학자들이자신들의시각을넓힌다면그들을놀라게할어떤것을 01.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구약신학에대한문학적접근 │ 35
볼수있을것이라는자신의요점을증명해보인다.
성경본문은전근대유대- 기독교전통이상상했던원단이아닐수
있다. 하지만그런초기의견해들을바꾸기위해학문이발견한혼란스 러운본문의패치워크를더자세히조사해보면원래의도되었던유형 임이었음이드러날것이다.30 )
아니면비유를조금더섞어보자. 성경학자들은본문이라는오믈렛
을풀어버리려애쓰는동안본문이“정말잘만들어진오믈렛”이라는 사실을발견하지못할것이다 (Alter 1987: 25) . 성경을연구한또다른문학
자인요세포비치 (Josipovici 1988: xii) 는이에동의한다.
날카로운질문과함
께요세포비치는단지많은개별적인본문들에대한것뿐만아니라하나
의본문으로서의성경에대한알테르의요점을다음과같이요약한다.
“성경은어떤놀라운이야기와시들의보고인가아니면그것은하나의 전체, 아마도하나의이야기아니면시적전체인가? 짧게말해성경은하
나의책인가아니면잡동사니인가?”
히브리성경이읽혀지고또읽혀질때 (달리말해광각렌즈로보면) 산의얼
굴속에있는‘본문의패치워크’가아닌성경이라는러시모어산의여러 얼굴 ( ‘의도된패턴’ ) 이명확하게보일것이다. 알테르와요세포비치의비유 를이용해서말하면, 성경이라는러시모어는‘잡동사니’가아닌한권의
책, 즉‘정말로잘만들어진오믈렛’으로보일것이다. 알테르가인정하
듯이전근대전통은본문이다양한문서들의콜라주가아니라상호연결 된통일체라고가정했기때문에그유형을더잘볼수있었다.
2 9 ) Alter 1981: 148. 알테르는삼상16장과17장에두번나오는다윗에대한‘모순된’이야기들 의병렬에대한그로스루이스의평을인용한다.
3 0 ) 일찍이1947년에이루어진카수토(Cassuto 1973: 1~6)의중요한발견또한보라.
본문통일성의분명한신호들
게다가성경저자/편집자들의정경의식의방향으로가리키는증거가 늘어나고있다. 정경의식이란성경의개별책들이더큰전체에속했다 는인식이다. 특히이것은고대이스라엘의포로기와포로기이후시대 에적용된다. 로핑크의평은적절하다.“정경을쓰고사용한사람들은 개별적인책들을철학적인의미에서의책, 즉그자체로완전한의미체 로여기지않았다”(Lohfink 1965: 35) . 이런의미에서그들은오직하나의 책으로서의전체를정경으로간주했다. 성경을반영하는초기의입증된 외경자료들을보면성경의개별책들은전체, 즉한권의책의일부분으
로여겨진다.‘성경’이란단어가헬라어‘타비블리아’에서유래하고문 자적으로‘책들’을의미하지만이런책들이한통일체, 즉한권의책의
일부분이라는것은명확하다.‘책들’이라는이표현이구약을가리키는
데사용된것은『아리스테아스의편지』(주전250~150) 에서인데, 그목적
은다른책들이아닌신적으로영감을입은책들을헬라어로번역하는
것을설명하고정당화하기위한것이었으며, 알렉산드리아의도서관에 서사용하기위해서였다 ( 『아리스테아스의편지』316) . 모든말을한권의완성
본, 즉현대적인의미의책으로출판하는것은기술적으로불가능했지 만, 개별책들의다양성은신적저자의말들의개념적인통일성을반영 하는것으로여겨졌다는사실이다른본문에서도명확하게나타난다 (S.
G. Dempster 2001: 23~45) . 31 ) 앞에서언급했던것처럼두루마리는여러성 경책중에서한권이상을담을정도로충분히크지않았으며, 사본 (코덱 스) 도아직발명되지않았었다 (Haran 1993) .
3 1 ) 비록증거는세부분으로된정경을가리키지만이자료가하나의정경(신적으로영 감을입었기때문에개념적인통일체로서간주되는일단의책들)을가정한것은분명 하다.
01.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물론이역사적인사실은수많은인간저자뒤에유일한저자, 즉하나
님이있기때문에책들이개념적인통일체로믿어졌다는신학적인전제
에기인한다.
이런개념에대한고전적인주해에서요세푸스는자신의
헬라독자들에게유대인들에게는서로모순되는여러권의책들이있지 않고부조화가없는단22권이있는데, 그이유는그책들이유일한신
적저자에게서나온것이기때문이라고설명한다.“우리에게는서로불
일치하고상호모순이되는여러권의책이있는것이아니라신적인것
으로올바르게믿어지는모든과거의기록들을담고있는22권만이있 다”(Contra Apion 1.8) . 수많은본문은단하나의본문으로이해되었고때 때로단순히“성경들”,“성경”,“토라”,“언약서”내지는심지어“하나 님의책”으로불렸다.32 )
앞에서언급한것처럼성경본문자체속에개별책들이하나의통일 체라는의식이존재했다. 엄청나게풍부한본문상호간의관련성이존재 하며, 관련성때문에성경전체에걸친수많은언어적, 개념적메아리들 이있게된다. 성경의후기책들은의식적으로앞서쓰인책들속에나오
는사건, 개념, 언어를반영하고모방한다 (Fishbane 1989) . 창조, 추방, 때 때로의귀환은성경이야기구조에새겨진반복되는유형을형성한다.
태초에아담과하와의창조와아담과하와를에덴동산에두심과추방과 죽음의심판이있다. 곧가인이태어나고, 그형제를살인한것때문에 추방의심판을경험한다. 열방이강국으로성장하는것은바벨에서의죄 와추방으로이어지는데, 이것은그들이온땅에흩어지는심판을받을 때에나타난다.
아브라함은어떤땅으로가라는부르심을받는데, 아브
라함은믿음의부족으로때때로그땅을떠나곤하지만, 후에는결국돌 아온다.
아브라함의자손들은애굽에서타향살이를하고그땅으로다시
3 2 ) 그런지명의전체목록을위해서는Beck 1984: 105~109를보라.
돌아간다. 귀환은최초의창조와인류최초의부부를에덴동산에둔사 실을반영하는언어들로빈번하게묘사된다. 창조언어가귀환을알리기 위해종종사용된다.
하지만이런모형론적인유형은그러한주요주제뿐만아니라세부적 인사항에서도생겨난다. 사사기끝부분에나오는레위인첩의강간이
야기는소돔과고모라및롯을방문하던천사들의집단강간을시도하려 던이야기를반영한다.33 ) 정경을인식하고있는독자는사사시대말미 에이스라엘이소돔이되었다는사실과‘연결’한다.34 ) 만일일말의의혹
이라도있다면이사야서는다음과같이이스라엘을언급함으로‘연결한 다.’“너희소돔의관원들아여호와의말씀을들을지어다너희고모라 의백성아우리하나님의법에귀를기울일지어다”(삿1:10). 이와같은문 학적인통일성은잡동사니같은책에서는가능성이아예없다.35 )
게다가성경본문의최종편찬자는본문이확실히하나의통일체로서 이해되도록만들었다.36 )
개별책들을주요그룹으로묶은것도있지만 책의주요그룹들을서로연결시키는편집상의접합도존재한다. 그러므
로신학적인의미와문학적인의미가동시에생겨난다. 예를들어보자. 히브리성경의주요부분의서두는하나님말씀을특별히강조한다. 성 경은실체를창조하시는하나님 말씀으로시작하고, 그첫작업은빛을
3 3 ) 창19:4~5; 삿19:22.
3 4 ) 예를들어주석가들중에서예외적인건(Gunn 1987: 119)은“이스라엘의기브아가새로운 소돔으로드러난다.”고기술한다.
3 5 ) 로핑크(Lohfink 1965: 85)는모형론이단순히성경본문에부과시키는인공적인구성이아니 라본문그자체의고유한특징이라고주장한다. 통찰력있는로핑크의출15장연구는 고대 시자체내에서 기대되어왔던가나안정복이홍해를통한탈출의또다른표현으로간주됨 을보여준다. 홍해의수벽들은이제가나안인들에의해대표된다. 수벽들은정복자이스라 엘인들의양쪽에돌로된벽으로고정되었다.
3 6 ) 다른관련문학과일반적인논의의인용을위해서는S. G. Dempster 2001을보라.
창조함으로써낮과밤의리듬을확립하는것이다 (창1:3~5). 본문은최초의 인간들과에덴동산에있는인간의거처를묘사하는데, 이것은하나님이 01.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구약신학에대한문학적접근 │ 39
말씀을중심으로인간의삶을구성함으로써만유지된다 (2:4~25). 성경의
개별책들의두번째주요그룹인선지서가시작되는여호수아서에는이
스라엘의가나안정복성공과새로운에덴의열매들을즐길수있는것
을보장하기위해새로운이스라엘지도자가‘토라’를주야로묵상할것
을요구하는권고의말씀이담겨있다 (수1:8~9). 개별책들의세번째및
마지막그룹인성문서의시작부분에서이스라엘백성은형통하고시냇
가에심은나무처럼되기위해‘토라’를주야로묵상할것을권고받는 다 (시1:2~3) .이런연결고리로써성경은다른글들과개념적으로구분되
는데, 그이유는성경이하나님말씀이기때문이다. 하지만이글은또한
문학적으로도구분되는데, 그이유는내재된통일성이명백하게표현되 었기때문이다. 즉, 그것은또한하나님 말씀이다.
이본문이창세기부터역대기까지하나의통일체로서이해되었다는 것이놀라운가?
그것은에덴동산에있는인류의창조이야기로시작되 어, 불순종때문에하나님이거하시는에덴동산에서추방당하는것으로 이어지고,
불순종의결과로가나안땅에서다시추방당하지만하나님임
재의최고의상징인성전재건의과업에착수하도록유다지방으로다시 소환되는국가로서의이스라엘로끝난다.
이성전은종말론적인함축성
을갖고에덴의회복으로귀착되기때문에평범한성전이아니다. 에덴 의강은다시흐를것이며, 이제사해마저도생명력이넘쳐나는곳으로 바꾸어놓을것이다.37 )
이것과관련된탈무드에보전된초기본문이있는데, 이것은성경안 의여러책들의올바른순서의보전과관련있다. 첫다섯권 (오경) 은그
순서에대해어떤논쟁도없었기때문에언급되지않는다. 그후에나오 는책들의순서에대해서는온갖종류의이유가대두되는데, 학자들에게
3 7 ) 창2:10~14; 겔47:1~12; 욜3:18(마소라4:18); 슥14:8을보라.
40 │ 하나님나라관점으로읽는구약신학
인위적이라는느낌을주는것들이다.
우리의랍비들은‘예언서의순서는여호수아서와사사기, 사무엘서
와열왕기, 예레미야서와에스겔서, 이사야서와열두소선지서라고가 르쳤다. 이것을검토해보자……이사야는예레미야와에스겔보다앞서
활동했다’……그렇다면이사야서가제일앞에놓여야하지않겠는가?
열왕기는파괴의기록으로끝나고예레미야서는책전체에걸쳐파괴 를언급하고있으며, 에스겔서는파괴로시작하여위로로끝나고, 이사
야서에는위로의말씀으로가득차있다. 그러므로우리는파괴를파괴 옆에두고위로를위로옆에둔다.‘성문학의순서는룻기……’(Baba Bathra 14b).
이본문은수많은질문을제기한다. 특히중요한한가지질문은‘왜
이러한강조가중요하며, 심지어인위적인것일수도있는데, 정당화되 어야하는가?’라는문제다. 하란 (Haran 1993) 과같은몇사람은더긴두루
마리의기술적인발명때문에이제순서와배열이영구적인것이될수 있다는명백한이유때문에이제순서와배열이중요해졌다고주장했 다. 달리말하면‘바라이타’는더이전시대에는별의의가없었을순서 의창조를가리킨다는것이다.38 ) 그러나초기기독교와유대교의대안
적인배열과경쟁하면서더긴두루마리가소멸의위기를맞고있던이 미확립된순서의구성과보전을요했을가능성이훨씬크다. 순서에대 한이유들은보전에대한논리적근거를제공하며, 그순서에대한이유
가비록인위적이라고할지라도그이유는순서를보전하는데사용된다.
3 8 ) 자신의명제가타당하도록하기위해하란은주후200년전의도서관내지는기록보관소에 대한증거를무시해야만한다. 또다른가능성있는이유들을위해서는S. G. Dempster 2001: 51을보라.
01.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구약신학에대한문학적접근 │ 41
순서에대한이유는또한그순서가임의적이지않았다는초기의믿음을 가리킨다.
마소라학파가발명한모음표기가이런상황에어울리는비 유를제공해줄수있다.
이런인위적인표기체계가모음을계발한것은 아니다. 모음표기법은단지모음의발음을보전해주었을뿐이다.39 )
탈무드에이런전통이포함되었단사실은아마도받아들여지기위해 경쟁하고있던또다른‘비공식적인’순서들에대한인식을가리킨다.
이미언급했던것처럼특정한순서는해석학적인중요성을의미한다. 연
대기적순서가주석에의해자연스러운것으로기대되기때문에대안적 인배열은설명을요구한다.
비록그설명이인위적으로보일지라도순 서는의미를뜻한다.
아인슈타인을인용하면서세일해머는영화연구에
서프레임의다양한순서가상이한의미들을생겨나게하는데, 이것은
“유능한관객들은언제나전체라는맥락에서부분들을이해하고자하기 때문이다.”(Sailhamer 1995: 214) 라고말한다. 마찬가지로성경에서열왕기
와예레미야서를나란히배열하는것은하나의해석을뜻하는데, 그이
유는양쪽이모두재난과포로생활이라는심판을다루고있기때문이
다. 요셉이야기 (창37~50장)
속에유다와다말의이야기를삽입한것은 독자들을깜짝놀라게하겠지만그럼에도그이야기는독자들로하여금
어떻게든유다와다말의이야기를요셉의이야기에연결하게만든다. 다
른배열은다른의미를만들어낸다. 더큰관점에서히브리‘타나크’와 기독교구약의다른배열의해석학적의미는이미살펴보았다. 예를들
어사르나는다음과같이기술한다.
3 9 ) 그상황은초기기독교교회내에서의정경문제와유사했을것이다. 교회가마르키온에대 응하기위해정경을만들었는가아니면마르키온이교회가이미수용하고있던내재된정경 을명백히공식화하도록만들었는가? 신약의정경화와관련된중요한연구를위해서는캄펜 하우젠(Campenhausen 1962)의고전적인연구와트로비쉬(Trobisch 1996)와바톤(Barton 1997)의최근연구를보라.
역대기로끝나는히브리성경의결말은역사의완성이유대인들의 땅으로의귀환과유대의주권회복, 영적부흥의회복이라는이상을포 함한다.
말라기선지자의말로끝나는기독교인들이‘구약’이라고부
르는것의배열은엘리야와‘여호와의크고두려운날’의도래를세례 요한의역할과기독교메시아의도래가중추적인신약의예기적상징 으로해석한다(Sarna 1987: 12).40 )
기독교인들이‘구약성경’의배열에책임이있든지아니면이미존재 하고있는유대교의배열순서를채택했든지간에, 두‘책’의차이는중 요하며, 그차이는수많은학자에의해연구되었다.41 ) 가장오래된순서
는명백히히브리정경의순서로, 히브리정경의순서가예수그리스도 가사용한성경이라는강력한증거가있다 (Beckwith 1984) . 성경전체의
메시지를규명하는데도움이되기위해이책에서사용될것도바로이 배열이다.
현재의연구: 문학적접근과성경신학
필자와같은기독교학자가왜그런연구에자신의범위안에있는신 약성경을포함시키지말아야하는지에대한질문은중요하다. 더큰문 학적정황 (예,‘토라’ ) 과독립적으로개별책들의순서를보는것이많은유 익을가져다주는것처럼기독교인들이기독교창시자의성경을아마도
4 0 ) 또한Frye 1983: 207을보라.
4 1 ) 기독교인들이사용한배열은별도의알렉산드리아배열이있었다기보다기독교영향의결과 였을가능성이있다. 구약을포함하고있는모든헬라사본원고는기독교자료들에서유래한 다. 추가적인논의를위해서는S. G. Dempster 2000: 126을보라. 디렐라(Di Lella 1987: 452) 는율법, 지혜, 예언의관점에서나눈벤시락의구약논의에서70인역이기독교배열보다앞 설가능성을탐지한다. 하지만필자가주장했듯이(S. G. Dempster 2001: 24~25 n. 12) 이순 서는아마도문학적인정황에서지혜서가가져오는압박에서기인했을것이다.
그에게보였던대로보는일은확실히도움이될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너무나자주의미있게구약을연구하려는우선적인노력도없이신약이
구약해석을지배하게내버려두었다. 본회퍼의충고를다시되새길필
요가있다.“신약에너무급히그리고너무직접적으로접근하고싶어 하는것은기독교적인것이아니라고생각한다”(Bonhoeffer 1959: 50) . 게
다가필자는이런성경신학연구가이전에있었던모든연구보다더우 월하다고주장하려는것은확실히아니다. 필자는필자에게자연스러운 수단으로보이는것, 즉성경의보고에서‘옛보화뿐만아니라새로운
보화’를끄집어내기위해그저본문의이야기구조를사용하고자희망 하는것뿐이다.
필자는이연구가다른이들이이보물창고의‘깊이와
부요함’을조금이라도이해해서그들스스로그보물창고에들어갈수 있도록도와주는것이라고믿는다.
이큰본문은회당에의해‘타나크’로불리는데,‘타나크’는이자료
의내재된통일성뿐만아니라그자료의세가지주요하위부분을가리 키는두문자어다.
이세부분에는첫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
기, 신명기로구성된‘ 토라 ’(모세오경) 와여호수아서, 사사기, 사무엘서, 열 왕기,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이사야서, 열두소선지서로구성된‘느비
임’(예언서) 과룻기, 시편,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레미야애가, 다니 엘서, 에스더서, 에스라 - 느헤미야서, 역대기로구성된‘케투빔’(성문서) 이 있다.
많은학자들은본문들의더작은단위들을해석하는데문학적인접근 법을사용해왔다. 그접근법은이야기에는효과가있었다 (요세포비치) . 하
지만이미언급된몇가지이유때문에큰본문차원에서는거의사용되 지않았다.
문학적인접근법은특히도움이될수있기때문에이런관행 은확실히잘못되었다. 문학적인접근법의주요과업중하나가본문의 전체메시지혹은중심주제를알아내려고노력하는것이기때문이다. 44
또한이것은성경신학의주된과업인성경본문의개념적통일성묘사와 일치한다. 문학연구의가장중요한목적은구성과주제의분석을통해 큰문학적그림을이해하는것이며, 성경신학의목표는다양한성경본
문들의신학적인견해들을분석함으로써큰신학적그림을이해하는것 이다. 성경신학분야에서일하는많은학자들은이런과업을거의포기 했는데, 그이유는아마도단한가지의신학이아닌여러개의신학이있 기때문이라고시인하는데서기인하는것같다. 하지만문학적통일성
은아마도한권의책이라는개념의상실때문에거의고려되지않는데, 그것또한한명의저자라는개념을잃어버린데서생겨나는것이다. 아 마도이자료가내재된문학적일관성을갖고있을뿐아니라명백한통
일성도갖고있다는것을문학적수단을통해보여줄수있다면사람들 은성경신학을새롭게들어줄것이다.
이것이성경본문에대한문학적인접근법의많은열매를보여준성 경학자가주장한요점이다. 지타이 (Gitay 1980; 1981) 는성경본문을설명 하기위해고전적인수사학의원리일부를사용했다.
성경본문의저자
들이전달에관심을가지고있다는점을가정하고, 지타이는전달자의 원리와전략들을이해하는것이성경해석자들이본문, 즉전달의결과
물을이해하는데도움이될것이라고주장한다. 최근에지타이는그다 음단계의논리적질문을던졌다. 이런통찰력을성경이라는본문을이 해하는데적용하는것은어떤가?
체계적인논문에서지타이는성경신학
과문학적분석사이에는효과적인상호작용이있지만, 그것은성경신학
이중심주제를찾지못하는실수와자료를충실하게반영하기보다는 왜곡시키는관점을통해성경문학을보는학자들의경향에의해방해를 받고있다고주장한다.
지타이 (Gitay 1996b) 는욥기를시범사례로연구하는데, 이연구에서지 타이는본문의모든소리를들으려고노력하지만, 그방법자체는욥기가
01.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구약신학에대한문학적접근 │ 45
단지작은부분을이루는더큰본문에대한적용이라고외치고있다.
이것이구약의몇가지주제를연구하는데있어이책에서사용될방법 이다.
성경신학, 타나크구조와문학적접근법의등장
‘타나크’의구조와관련해서많은기독교구약성경학자들은그구조 가성경신학에그어떤긍정적인관련성도갖고있지않다고본다. 예를
들면군네벡 (Gunneweg 1978: 121) 은‘타나크’의해석학적관점이‘토라’의 해석학적우선순위를강조하는데, 이것은군네벡의견해에서볼때더
예언적인기독교관점과반대되는‘정경에대한율법주의적인이해’의 결과를가져온다고말한다. 군네벡은‘타나크’를율법에대한해석학적
관점을제공하는것으로이해하는일단의학자들을대표한다. 이해석학
적관점에는종종부정적인선입견이따르는데, 그부정적선입견은빛 으로충만한신약성경의경치의일종의어두운배경으로서구약성경을
보는것이다 (예, Bultmann 1963)
율법의우선순위를인정하면서도클레멘츠 (Clements 1978) 는예언서에
명백하게나타나는약속또한매우중요하다는점을강조하면서구약신 학을보다더건설적으로평가한다. 게다가클레멘츠는성경이세개의
커다란문학적통일체의순서대신습관적으로증거자료모음집으로검 토되는사실을애석해한다.
이런커다란본문단위들은율법과약속이라 는두개의주제를강조하는문학적정황을그린다. 유대인들은한가지
의주제를강조해왔고기독교인들은또다른주제를강조해왔다 (또한 Zimmerlie 1965를보라) .
베스터만 (Westermann 1982) 은‘타나크’의세부분으로된구조를자신 의구약신학을위한구성원리로취한다.‘토라’는하나님의행위 (구속 46
역사)를, 예언서는하나님의말씀을, 성문서는백성의반응을강조한다.
베스터만은구약의의미를풀어내기위해이구조의중요성을강력하게 확증한다. 그구조는‘객관적인출발점’이고“만일누군가가구약이하
나님에대해무엇을말하고있느냐고묻는다면이세개로된구조가그 길을보여준다”(Westermann 1980: 10) .
이런견해들의눈에띄는잘못은‘타나크’를단지세개가아닌하나 의본문으로보지못하는것이다. 종종정경의세번째부분인성문서가 경시되는데, 그이유는성문서가‘신약과더친화적인’예언서들보다
랍비유대교와더조화를이루는것으로보이기때문이다.42 ) 한학자는 “기독교신학은……마소라정경을결코인정할수없을것이다. 왜냐하
면그것은신약과의연결성을실제로잘라내버리는일이될것이기때 문이다.”라고말하면서이런암묵적인견해를명백하게드러냈다.43 ) 성
경신학이암묵적으로혹은노골적으로‘타나크’의구조를고려하건말 건간에, 랜토르프 (Rendtorff 1993: 55~56) 는기독교신학자들이구약을그 최종적유대교형태로서거의다루지않는다고결론내린다. 최종적유
대교형태가예수님과초대교회의성경이었을가능성이높은데도말 이다.44 )
유대교학자인프리드먼 (Friedman 1987a; 1995) 은‘타나크’의문학적통 합성에대한이런관심을처음으로다룬사람들중하나다. 프리드먼은 주석의사소한부분에대해훈련받은성경학자들이종종더큰문학 그림을놓친다고관찰한다.
종종실용적인이유들때문에주석가들은
4 2 ) 베스터만(Westermann 1982: 11)은이부분의지혜서가주로세속적이라는이유로(최소한원 래는그랬으므로)“구약신학의이기본구조속에그어떤자리도갖지못하는”것으로간주 한다.
4 3 ) H. Gese, Rendtorff 1993: 55에서인용함. 또한Gese 1981: 13~14를보라.
4 4 ) 성경의통일성에대한가장영향력있는문학적해석을제공하는최근연구는프라이(Frye 1983)에의해이루어졌다. 하지만프라이는‘타나크’와대조적인, 기독교의구약순서를특 히다루고있다.
줌렌즈를통해몇구절만본다. 반대로문학자들은여러본문을 하나의 문학작품으로통합시키는성경편집자들의의도를고려하기위해광각 렌즈를통해본다.
성경은도서관이나선집이라기보다는시작과끝이있 는하나의본문이다. 그것은‘토라’의하와로시작해서성문서의에스더 로끝난다 (Friedman 1987a: 211~212, 219) .
프리드먼 (Friedman 1992; 1993) 과세일해머 (Sailhamer 1995) 는이논의를 상당히진척시켰다. 프리드먼은‘타나크’가세부분뿐만아니라주된역 사,‘토라’ , 전기예언서 (15만단어) 로이루어진전반부와후기예언서와성
문서로구성된후반부의두부분의관점에서도보아야한다고주장한다.
최종작품은전반부를주로심판과비극으로구성하고후반부는복과희
망을강조하는자료에자신들의관점을남겼던편집자혹은편집팀의작 품이었다.
세일해머는그런편집자를‘정경편집자’라고부르면서자료가갖는 본문상의통일성에대한유사한결론에도달했다 (Sailhamer 1995: 239~252) . 이정경편집자는성경의개별적인책들의주요부분들을본문
의권위와종말론과연구대상으로서의중요성을강조하는문학적인솔 기로이으면서, 자료를보는명쾌한관점을제공해주었다. 성경본문의
더큰설계와그안에있는개별책들의순서역시중요한데, 그이유는 더큰설계와책의순서가본문을위한해석학적인관점을제공하기때 문이다.
본문을읽는독자들은항상‘전체의관점에서부분들을이해하 고자’하기때문에 (Sailhamer 1995: 214) 앞뒤내용은의미를구속한다. 게
다가세일해머는주어진‘타나크’구조가깔끔한세부분전체에적용 되는문학이야기형태로되어있다고말한다. 이야기틀은창세기에서
열왕기하로이어진다음성문서의후반부의이야기부분에서다시시작 하는성경본문에문학적인일관성을제공한다.
“믿음의이야기는주로다양한‘주해’(시편, 예언서, 지혜서) 와함께역사
48 │ 하나님나라관점으로읽는구약신학
적인순서 (창세기에서에스라까지)
로주로보전되었다.”고언급하면서차일즈
또한성경본문을위한이중요한이야기틀을언급했다 (Childs 1992: 97)
놀랍게도차일즈는깊이있게이특징을다루지는않으며, 또다른두개
의연구에서도 (Childs 1979; 1985) 구약의큰그림및개별적인책들과더큰 부분들간의관계를거의고려하지않는다 (Brueggemann 1982; Demmpster 1997; Barr 1999: 395~400).
매우다른유형의작품에서마일즈 (Miles 1996) 는하나님의정체성의점
진적인계시를이해하기위해‘타나크’의이‘이야기 - 주해 - 이야기’ 구조의중요성과씨름한다. 엄청나게인기를끈『신의전기』에서잭마 일즈는열왕기하의끝부분에있는이야기의중단과성문서에서재개되 는이야기를고려한다. 그구조는주해 (예언서) 에서하나님의직접적인말 씀을강조하는것처럼보이고, 하나님은‘타나크’의끝부분에서점차적 으로적게말씀하신다. 하나님과하나님의말씀은끝난것처럼보인다. 더이상말할것이없다.
‘타나크’의구조만으로 볼때이결론에는논란의여지가있다. 구조
적으로‘타나크’의중심은신적대화의중요성을 강조한다고동일하게 주장할수있다. 신적대화가중심이다. 게다가다니엘서에서재개되는
이야기때문에사람들은미래에신적대화와신적행동이예외가아닌 규범이될것이라고기대하게될것이다.45 )
마지막으로스위니 (Sweeney 1997) 는독특한유대성경신학구조의윤
곽을그린논문에서기독교구약성경의정경배열과히브리‘타나크’ 의정경배열간의몇몇차이를논했다. 스위니는고전적인예언서를정
경의끝부분에둔기독교배열이종말론을강조하는반면‘타나크’의
4 5 ) 그런결론을내는것은위험한일이다. 만일하나님이에스더서에서활동적이지않는것처럼 보인다면하나님은창37~50장과계승이야기(삼하9~20장; 왕상1~2장)에서도활동적이지 않은것처럼보인다.
구조는윤리를강조한다고주장한다.‘회복된유대공동체’를보여주는
‘타나크’의결론은‘토라’에표현되어있는모세의이상실현을위한가
능성을드러낸다 (Sweeney 1997: 371).‘타나크’는완성을보여주지만기
독교의구약은성취를기대한다.
이렇게스위니는다른배열에대한논의를분명상당히진척시켰지만 스위니의몇가지결론에는의심의여지가있다. 예를들어보자. 종말론
과윤리간의단순한대조는도움은되지만처음에보이는것보다훨씬 더복잡하다 (S. G. Dempster 1997 Part 2) . 그러나이작품의주된중요성은
‘타나크’의거대한구조에는성경신학을위한중요한의미가있다는것 을보여준다는점이다.46 )
위에서언급한것처럼최근에영어연구의수많은탁월한문학비평가 들이단일한문학단위로서성경의중요성을강조하면서성경을검토했 다.
이것이성경학자들의일부기여를자극했을수있다. 아마도프라이 의『위대한법전』(The Great Code, 1983) 이가장큰영향력을끼쳤을것이 다. 프라이는전체기독교성경을분석하고성경은그자체로하나의본
문이며창세기부터요한계시록에이르기까지그기본구조가서구문화 와사상을형성했다고주장한다.
하우스는『위대한법전』의“구약문학 비평과관련한가장큰공헌은성경은한권의책이며, 만일해석자가이 점을무시한다면책으로서의성경에는이해될수없는전체로서의의미 가있다.”(House 1992: 17) 라고주장했다.
4 6 ) 정경의책배열의해석적인중요성에대한이런관심이해석의역사에서완전히무시되어왔 다는점을언급하면서바르(Barr 1999: 307~309)는스위니의전체적인접근법을의문시한다.
하지만우리는정경의책배열이왜그렇게무시되어왔는지를물음으로써적절하게반응할 수있을것이다. 어떤특정해석전통에속한대부분의사람들에게, 구약이엘리야에대한말
라기의예언혹은고레스의칙령으로끝나는것이라고생각하는것은거의제2의천성이되 었다. 그들은그중요성을성찰하지않고그런범주안에서단순히생각하는것이다.
정경화와상황화
확실히이런견해에대한강력한저항이있다. 그견해는성경정경은
많은모순되는소리로구성된역사적인우연일뿐이라고주장해온많은 현대학문의원칙에어긋나는것이다. 차일드가정경을석의적연구의
영역으로서사용할것을처음제안한후부터이제안은바르의글주제 가되어왔다.
엄격히정경의범위안에서이루어지는주석은다른형태의주석에 도포함될수있다는가능성이확실히있다. 하지만그것이어떻게기본
적인신학적형태의주석이될수있는지는의문이다. 따라서최종본문
을지지하는차일즈의주장은창세기나모세오경혹은마태복음처럼개 별적인책들에대한중요한고려대상이지만, 전체성경으로이루어진
정경이개별적인책들을마치단일본문인것처럼규정할수있을정도 까지확장시키는것을유효하게하지는않는다(Barr 1976: 110~111).47 )
바르는정경을위한단일본문의개념이앞에서고려한기술적인제한
들때문에성경시대에는생각할수없는것이었을텐데어떻게단일본 문개념이가능한가라고주장한다 (Barr 1983: 57) . 그러나정경화는많은것 에서단하나의본문을 확실히 만들어낸다. 갬블은다음과같이말한다.
4 7 ) 학자들가운데있는성경적인통일성개념의상실에대한바르의초기평을보라(Barr 1976: 109). 바르는케제만의인상적인평을인용한다.“우리가가지고있는신약성경은가장초기 문서들의부분적인모음집으로서대부분의자료는영원히사라졌다. 대체적으로내적일관 성은존재하지않는다. 모든곳에분명하게드러나있는긴장관계들은모순덩어리가된다.”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구약신학에대한문학적접근 │ 51
사건의성격상정경화는정경속에포함된문서들의재상황화를수 반한다. 그문서들은태어난전통적인환경에서취해진다음새로운문 학전체의일부분으로재배치된다.
한모음집의관점에서읽힌다.
이제부터재배치된문서들은이러
이런식으로그문서들의역사적인이차 적정황은그문서들의해석적인일차적정황이된다……여전히더중요
한것은정경이그내용속에통일성과일관성을추정하게만들고그것
은불가피하게그내용을개관적으로읽도록조장한다는것이다. 그리하
여개별문서가다른문서들과의관계에서, 또전체로서의모음집으로
읽힐때, 정경은개별문서들의의미를강화하는일을한다(Gamble 1985: 75).
비록역사적으로복음서가신약에서가장늦게만들어진문서들이라 고할지라도그문서들은정경에서의최초의위치때문에해석학적, 신 학적우선순위를갖는다.
또한이우선순위는원래문학적통일성을형 성했던누가복음 - 사도행전두책을떼어놓는다. 마찬가지로히브리성
경에서연대기적으로더초기의역대기를후기의에스라서 - 느헤미야서
다음에위치시키는것은정경의일관성뿐만아니라종말론적인결론을 만들어낸다.
성문서의예언서들을정경의끝부분에두지않고전예언 서뒤에두는것은전예언서들이이해되어야하는방식을바꾸어버린 다. 이전예언서들은하나님말씀이역사속에일하는예언적역사다.
게다가모든책에는중요한신학적의미가있다. 통일성에대한추정이 있다. 즉, 독자는본문을의심의해석학이아닌관용의해석학으로접근 한다.48 ) 그결과아가서의인간의성을축하하는내용은정경에나오는 인간의성의일반적인문맥과별개로이해되어서는안된다. 마찬가지로
4 8 ) 정경의본문들에대한이런해석학적인의미의추가적인발전을위해서는Halbertal 1997: 27~32를보라.
52 │ 하나님나라관점으로읽는구약신학
욥기는전통적인지혜에도전할수는있지만성경의하나님을모순적으 로부인할수는없을것이다.49 ) 이것은정경의개별적인책이서론, 본 론, 결론이있고다양한부분들이전체와관계를가지는본문으로읽힐
수있을뿐아니라그반대도가능한것처럼, 단순히정경역시같은방 식으로읽혀야한다는것을의미하는것이다.
이것은‘타나크’의전체설계가내용을볼수있는해석학의관점을 제공해준다는것을뜻한다.
정경화는많은본문에서하나의큰본문을 만들면서모든본문에대한문학적인정황을제공해준다. 히브리정경
이주해와함께일련의이야기로구성되어있다는사실은정경화가본문 을일차원적인획일성으로‘단조롭게하지는’않는다는것을뜻한다. 오
히려그것은다양한부분들이문학적인전체와관계를맺을수있는총 괄적인틀안에서진화, 다양성, 성장을제공한다.
이런문학적/신학적접근법의미래는밝은데, 그이유는히브리성경 이확실한서론, 본론, 결론과구성을갖고있는하나의큰본문이라면근 본적인주제를발견하는과업은부질없는연습이아닌책임있는해석학 을하라는명령이되기때문이다.
전통의단위와전통의성장및재형성에대한관심을가졌던위대한
구약신학자게하르트폰라트는이논의에서언급된많은학자들과문 학으로서의성경에대한이해를달리했지만단한번도큰그림을놓치 지않았다. 폰라트는자신의저서『구약신학』의끝부분에다음과같은 주목할만한진술을하고있다.
4 9 ) 예를들어욥기의저자가모순적으로하나님을조롱한다고주장하는로버트슨(Robertson 1973: 468)의글을보라. 쿠겔(Kugel 1981: 228)은그런해석이어처구니없는것이라고올바 르게지적하지만, 로버트슨의접근법을무효로만드는것이욥기의정경적정황이라는것은 충분히인식하지못한채그렇게평가했다. 쿠겔의접근법은욥기를정경적정황과별개로해 석했을뿐아니라서론과결론부분을잘라내고해석했다. 쿠겔이억지로끼워맞추려고하는 해석학적인판에욥기가강제로올려진것같다는인상을받지않을수없다.
01. 단권의책아니면잡동사니: 구약신학에대한문학적접근 │ 53
구약은역사책이다. 구약은천지창조에서마지막때, 즉세상에대한
통치권이인자에게주어지는그때에이르기까지이스라엘, 열방, 세상 과함께하는하나님의역사다(Dan vii. 13f). 성경에나와있는것처럼
창조자체가하나님의구원의행위로이해되기때문에역사는구원의 역사로묘사될수있다(G. von Rad 1965: 357).
줄거리가태초부터‘마지막때’까지이르고, 아담에서인자까지이르 는구약은문학적인유물을담고있는잡동사니가전혀아니다. 오히려
구약은모든본문을포괄적인틀에융화시키는놀라운이야기다. 구약은 태초에서부터시작한다.

02. 타나크의서론과본론과결론 줄거리개요(아담에서다윗까지)
계획, 목적, 구성
아리스토텔레스가한때말했던것처럼구성은이야기의중요한요소 (영혼) 다. 좋은이야기는서론, 본론, 결론, 즉이야기전체를요구한다.
“그러므로잘짜인구성은아무렇게시작하거나끝나서는안되고반드
시이런원리를따라야한다” ( 『시학』VII, XXIII를보라) . 특히‘구성’은처음부 터끝까지본문에나오는사건이나일들을의미있거나의도한대로구 성하는것을가리킨다. 아리스토텔레스는문학작품에있어당연한것을 말한다. 작품의시작과끝에대한분명한이해는독자가그것의계획과 구성을결정하는데도움을줄것이고, 또한작품의전반적인의미를명 확하게해준다.1 ) 서론은상황의윤곽을그려주고, 배경지식을제공해
1 ) 주제와관련된다양한2차문학을논하며이야기의본질에대해간략하게다룬Miller 1995를 보라. 성경이야기에적용되는논의를위해서는다른작품들중에서도Alter 1981; Berlin 1983; Brichto 1992; Josipovici 1987을보라.
02. 타나크의서론과본론과결론: 줄거리개요 │ 57
주며, 작품의주요인물들과주제들을소개한다. 서론은이어지는내용,
즉본론이무엇에대한것인지를드러내는작가의기회다. 현대문학에
서는중심주제를언급하기위해서론과함께제목이사용된다. 그러나
고대문학에서는이런관례가사용되지않았다. 그러므로해석자는기록
된문서의주제를발견하기위해다른실마리를찾아야한다.
문서의결말은사고의주된논지를한데모으고작가가중요하다고생 각하는것에다시초점을맞춤으로써종결의느낌을제공한다. 여러가
지면에서결말은그종결의느낌과함께전체의구성과통일성을보장 한다 (Kermode 1966: 45~47; Fiddes 2000: 8~15) . 결말은본문에있는일련의 사건들을종결짓고 (만일그것이이야기라면) , 전체적인구성과함께기록된사
건들이단지우연히연결된순간들이아니라더큰시간유형의일부로서 정확한기간들이되도록보장한다. 즉,“이야기가결말을향해나아간다
는의식은단순한‘크로노스’(시계의‘똑딱똑딱’ ) 를더큰완성의일부로서의
중요성으로가득한순간인‘카이로스’로변화시킨다는것이다 (Fiddes 2000: 9)
사람들은결말이문학작품에영향을미치는다른중요한방법들을생 각해낼수있을것이다.
살인미스터리의결말은책의서두에있는, 겉
으로보기에하찮은세부사항에새로운의미를부여한다. 심지어『반지 의제왕』의끝부분에가면골룸의기괴한생존조차새롭게조명된다.
『길가메시서사시』의끝부분에서길가메시가영생을얻는데실패하는 것은시두리 (Tablet X) 와앞서‘우연하게’가졌던만남에새로운의미를 부여한다.
룻기에서족보로끝나는결말은룻기에묘사된보통사람들의 상대적으로평범한행동들에특별한의미를더한다.
확실히본문의중간부분은최소한그구성이느슨해야한다. 그럼에 도작품의서론과결말은문학적인관점에서극히중요하다. 이것은작 가가현대적인의미의작가가아닌편집자라할지라도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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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초대 교회가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많은 성경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학자들은
구약을 최종적인 히브리 정경 형태로 거의 연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한 번 읽기
만 하면 히브리 성경의 더 큰 구조는 그 내용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광각 렌즈’를 제공해 준다.
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해설에서 스티븐 뎀프스터는 의심할 바 없는 문학적 다양성에도 불구하
고 히브리 성경은 놀랄 만한 구조적 개념적 통일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장르와 개
별 책들은 전반적인 문학적, 역사적 정황을 제공하는 포괄적인 이야기 틀 안에 위치한다. 많
은 본문은 더 큰 본문에 기여하며, 아담에서 인자로 그리고 다윗과 오실 다윗 계열의 왕에까지 이르는 ‘통치와 왕조’의 이야기 안에서 그 의미와 중요성을 발견한다.

뎀프스터 박사의 구약 줄거리 읽기는 신선하고 자극적이며 유익하고, 의심할 바 없이 많은 설
교와 강의의 자료가 될 것이다. 뎀프스터 박사는 마지막 장에서 구약과 신약을 결합시키는
몇몇 연결 고리들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분명 기독교 설교자와 교사들에게 시급한 목표다.
D. A. 카슨
지음 스티븐 뎀프스터(Stephen G. Dempster)
스티븐 뎀프스터는 캐나다 뉴브런즈윅에 위치한 애틀랜틱 침례대학교의 스튜어트 머리 종교학 교수다. 또한 그는 『새 성경신 학 사전』과 『성경신학: 회고와 전망』의 기고자이기도 하다.
옮김 박성창
경성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을 공부했다. 미국 텍사스 사우스웨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선 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Dallas Baptist University에서 강의하며 리더십 박사 과정에 수학 중이다. 역서로는 『목 회론』, 『설교론』(이상 부흥과개혁사), 하이테크예배(IVP), 재생산하는 교회(서로사랑) 등이 있다. 9 7 8 8 960 922884 03230 ISBN 978-89-6092-288-4 값 1 6 , 0 0 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