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3 by Gregory K. Beale
Originally published in English under the title Union with the Resurrected Christ by Baker Academic, A division of Baker Publishing Group
P.O. Box 6287, Grand Rapids, MI 49516, U. S.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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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d and translated by the permission of Baker Publishing Group through rMaeng2, Seoul, Rep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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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국어판의 저작권은 알맹2를 통하여 Baker Publishing Group과 독점 계약한 부흥과개혁사에 있습 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
발행일 2025년 8월 1일
지은이 그레고리 빌
옮긴이 신윤수
펴낸이 김은주
펴낸곳 부흥과개혁사
편집 권대영 디자인 박슬기 기획 이승영 마케팅 권성직
인쇄소 영진문원
판권 Ⓒ부흥과개혁사 2025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6길 9-20, 2층(서교동)
전화 Tel. 02) 332-7752 Fax. 02) 332-7742
홈페이지 http://rnrbook.com e-mail rnrbook@hanmail.net
ISBN 979-11-94295-95-2 (93230)
등록 1998년 9월 15일 (제13-548호)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서문┃
이 책은 나의 『신약성경신학』( 2011,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3 ) 의 후속이다.
이 책에 실린 자료는 비록 수정과 재구성과 요약을 거쳤을지라도 상당
히 많은 부분이 『신약성경신학』에서 나온 것이다. 그보다는 덜하지만
2011년 전후에 출간한 나의 다른 저술에서도 많은 부분을 끌어왔다.
새로운 자료도 상당 분량 추가했다. 2011년 저서 『신약성경신학』에 비
해 거기서는 다루지 않았던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초점을 맞
추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뿐 아니라 신
자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일시되는 측면도 언급하는 성경 본문을 살
핀 점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단행본이나 논문은 지나치게
바울서신의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어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신자의 부활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의 목적은 『신약성경신학』 원자료의 중요 부
분이 종말론적 새 창조 왕국의 시작으로 신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라는 개념과 직접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려는 것 이다. 『신약성경신학』이 어떤 발전 과정을 거쳐 이 책에 이르게 되었는
지에 대해서는 서론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신약성경신학』을 저술할 때도 그랬지만, 이 책을 작업하면서 전에 는 명확하게 보지 못했던 주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특히 부활하신 그
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개념이 신약 성경의 핵심 주제이자 그리스도
인의 삶에서도 중심이 되는 사상이라는 것을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성경신학적 관점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비추어 교
회가 자신을 이해하려는 동기에 불을 지피는 데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이 책의 신학에 대해 나와 함께
토론하고 이 주제에 대해 나만큼이나 흥미를 보여 준 아내 도린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내는 내가 이 주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주요 조력자다.
베이커 아카데믹 출판사 직원들의 세심한 편집 작업, 특히 여러 가지
실수를 보완해 준 에릭 샐로의 세심하고 신중한 편집에 감사 드린다.
집필을 독려하고, 출판을 수락했으며, 이 프로젝트가 발전하고 성장하
는 동안 유연하고 지속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은 수석 학술 편집자이자
학술 출판 담당 부사장인 짐 키니에게 감사 드린다.
이 책의 연구를 돕거나 원고를 거듭 확인하고 편집해 준 연구원 조
엘 시엔키에비치, 캐머런 스파크스, 크리스 해틀리에게도 감사를 표
하고 싶다. 2021년 가을에 매주 만나 이 책의 여러 장에 대해 토론한
댈러스 리폼드 신학교의 “신약성경신학” 세미나 수강생들( 조지프 놀런, 조 시 긴즈버그, 랜들 맥도널드, 드마이런 헤인즈, 엘리엇 새뮤얼스 ) 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그들의 통찰과 의견은 매우 귀중했으며 이 책을 더 나은 책으로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 책을 끝까지 읽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점도 감 사 드린다.
무엇보다도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노력 위에서 이 책의 아이
디어를 구상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이 책을 읽음으로 써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크게 드러나기를 기도한다.
이 책의 문체상 몇 가지 측면에 대해 순서대로 해명해야 하겠다. 영 어 번역본은 별도로 ‘사역’으로 명시하지 않는 한 New American Standard Bible ( 1995, NASB ) 을 따랐다(우리말 성경은 별도로 언급이 없는 한 개역 개정4판이다). 모든 고대 문헌의 번역에 있어 일반적으로 참고되는 표준판 과 다른 경우 별도로 표시하였다. 헬라어 신약 성경 참고 본문은 『노붐 테스타멘툼 그라이케』( Novum Testamentum Graece ) , 28판 ( 이하 NA 28 ) 이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 참고
본문은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스투트가르텐시아』 (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 다. 구약 성경 헬라어 역본을 참고할 때는 알프레트 랄프
스( Alfred Rahlfs ) 가 편집한 70인역을 사용했다. 70인역의 영어 번역본은
달리 명시되지 않는 한, 알버르트 피테르스마( Albert Pietersma ) 와 벤저민
라이트( Benjamin J. Wright ) 가 편집한 『70인역의 새로운 영어 번역』( A New
English Translation of the Septuagin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 을 사용했
으며, 때때로 랜슬럿 브렌턴 경( Sir Lancelot C. L. Brenton ) 이 번역한 『구약
70인역과 외경 및 영어 번역』( The Septuagint Version of the Old Testament and Apocrypha with an English Translation, 1851; repr., Grand Rapids: Zondervan, 1972 ) 을
참고했는데, 후자는 새뮤얼 백스터사( 런던 ) 와의 특별 계약에 의해 출판
된 바티칸 사본에 의존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구약 헬라어 역본은 헬라
어를 모르는 사람들도 70인역을 쉽게 영어로 접하고
도와준다. 위의 두 판본과 일치하지 않는 헬라어 구약 번역은 내가 직
접 번역한 것이다.
사해 두루마리는 주로 플로렌티노 마르티너스 ( Florentino Garc í a
Martínez ) 의 『사해 두루마리 번역』( The Dead Sea Scrolls Translated, Leiden: Brill, 1994 ) 을 참고했고, 때때로 플로렌티노 마르티너스와 에이버르트 티흐
헬라르( Eibert J. C. Tigchelaar ) 가 편집한 2권으로 된 『사해 두루마리 연구
판』( The Dead Sea Scrolls Study Edition, Leiden: Brill, 2000 ) 을 참고했다. 또한 사
해 두루마리의 다른 번역본도 참고했고, 때로는 인용을 선호하기도
했다( 예. Andr é Dupont-Sommer, The Essene Writings from Qumran, trans. by G éza Vermes [Oxford: Basil Blackwell, 1961] ). 때때로 마르티너스의 본문과 번역본이
다른 것은 내가 직접 번역한 것이다.
헬라어로 된 고대 문헌, 특히 필론과 요세푸스의 작품( 영어 번역본 포
함 ) 은 로엡 고전 문고( Loeb Classical Library ) 를 따랐다. 사도 교부의 작
품과 일부 영어 번역본은 The Apostolic Fathers, trans. by J. B. Lightfoot and J. R. Harmer, ed. by Michael W. Holmes ( Grand Rapids: Baker, 1992 ) 를 참고했다.

이 책의 논지는 그리스도가 부활과 승천을 통해 새 창조 왕국의 종
말론적 성취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1 )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리
스도는 다음과 같은 구약의 종말론적 기대( 괄호 속에 나열된 단원에서 다룸 ) 의
최초 성취자다. (1)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 하나님의 아들,
참된 이스라엘이다( 3장 ). (2) 그는 성전이다( 4장 ). (3) 그는 참된 이스라
엘이었다( 5장 ). (4) 그는 의롭다 함을
받았고( 의롭다고 선언되었고 ), 거룩했
으며( 완전히 성결하게 되었고 ), 구속되었다( 6장 ). (5) 그는 종말의 환난을 성
공적으로 견뎌 낸 자격을 갖춘 왕과 제사장이었다( 7장 ). (6) 그는 유배
에서 돌아와 온 땅에 말씀을 전하는 선교 지향적 귀환자였으며, 하나
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8장 ). (7) 그리스도는 성령과 동일시되고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 9-10장 ). (8) 그리스도는 의를 이루고
율법을 성취한다( 11-12장 ). (9) 그리스도는 영광과 동일시된다( 13-14장 )
(10)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세상과 구별된 분이다( 15장 ). (11)
다시 살아난( 다시 태어난 ) 그리스도는 새 창조다( 16-17장 ). 2 ) 그리스도는 지
1 ) 바울은 때때로 부활과 승천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이 둘은 기술적으로 구별되지만 분리되 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이라는 더 큰 신학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최선이다”(동의. Crowe, Hope of Israel, 112, 그러나 크로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누가의 관점에 대해 말하던 중 이었다). 부활과 승천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관계”에서 자세히 살펴 보라.
2 ) 이런 기대 중 다수는 Beale, New Testament Biblical Theology(이하 NTBT, 『신약성경신학』,
상 사역에서도 이런 것들을 성취하기 시작했지만, 부활 때에 이렇게 되
었다.3 ) 승천을 통해 지상에서 사역할 때 그리스도의 기능적 정체성( 하나
님의 아들, 마지막 아담, 메시아 왕, 성령으로 충만함 등 ) 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림 I.1 종말론적 새 창조 왕국의 시작인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특히 부활에 있어 성취의 현실과 은택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3), 115에서 논의하며, 위에 나열했지만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다른 기대는 대부분 하위 범주로 관련되어 있다. 3 ) 이런 종말론적 현실은 더 많을 수 있지만,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주요한 내용은 이것들이다.
논지의 또 다른 부분은 전술한 개시된 종말론적 현실이 부활하고, 승
천하신 그리스도와의 동일시( 또는 연합 ) 를 통해 신자에게 귀속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부활과 승천에서 그리스도에게 참된 것
은 그의 부활과 연합한 신자에게도 참되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의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신자의
이런 관계는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묘사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종말
론적 왕국과 새 창조의 시작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다이아몬
드의 각 면은 그리스도가 이룬 구체적 종말론적 현실4 ) 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신자에게도 은택으로 발생하고 귀속된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신자에게는 그리스도가 부활/승천하
실 때 소유하셨던 모든 은택이 각인된다. 혼합 비유를 사용하자면, 다
이아몬드의 각 면( =승천 당시 그리스도의 속성 ) 은 인장의 면이 물체의 표면에 각인되듯이 신자에게 각인된다. 이것은 생명 없는 각인이 아니라 그리 스도와의 살아 있는 연합으로 이루어지는 각인이다.
다른 그림으로 표현하면, 신자에게 전달되는 그리스도의 속성이 가
진 관계는 바퀴 축에 바큇살이 연결된 바퀴로 나타낼 수 있다. 바퀴 축
은 각 바큇살이 시작하는 새 창조의 핵심으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각 바큇살은 다이아몬드의 한 면에 해당한다. 바퀴 축은 위 에서 다이아몬드의 면에 기술된 것 같은 종말론적 현실로 세분화하며, 각 바큇살은 이런 현실 하나에서 나와 신자에게 적용된다.
4 ) 다이아몬드는 19개 이상의 면을 가지고 있지만, 부활 당시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나타내는 “면” 이 몇 개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두 그림 모두 이 책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각각 장단점이 있다. 다이아몬드의 면은 그리스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더 분명하게 보
여 준다. 바퀴 그림은 그리스도 및 그의 속성과 신자의 실제 관계를 보
여 준다. 그러나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다이아몬드 그림을 사용 할 것이다. 각 장의 시작 부분에서는 이전 장에서 다루었던 그리스도
속성의 특정 측면을 요약한 다음, 해당 장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내용
을 소개할 것이다. 각 장의 이 지점에서 다이아몬드 이미지가 소개될
것이다. 이전 장에서 다룬 다이아몬드의 면은 진한 음영으로 표시했다.
해당 장에서 다룰 면은 밝은 음영으로 표시했다. 이후의 장들에서 다룰
면에는 음영 표시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다이아몬드 이미
지를 반복하는 목적은 독자가 책의 논의를 더 잘 따라오고 다양한 장의
세부 사항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이 점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라보는 바울의 사상에 대한 리
처드 개핀의 영향력 있는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개핀은 바울이 그리스
도의 부활을 그의 “구속”, 즉 죽음에서의 구원으로 보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적용된 “칭의, 입양, 성화, 영화는 별도로 구
별된 행위가 아니라, 각각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구속함을 받는다
는 한 행위의 다른 측면 또는 양상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5 )
신자가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동일시되고 연합할 때(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와 그 면들로 표현되는 것처럼 ), 그들은 또한 다이아몬드 및 다이아몬
드의 이런 동일한 면들과 동일시된다.6 ) 사실, 다이아몬드 그림에서 이
런 면들은 이 책의 각 장 또는 장의 주요 부분을 구성한다. “그리스도와
의 연합”에 대한 대부분의 책과 논문은 그리스도의 부활과의 연합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지만, 개핀은 ( 비록 간략하게나마 ) 이에 초점을 맞춘 극소
수의 사람 중 한 명이다. 이 주제에 대한 그의 간략한 통찰은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의 요점
마이클 호튼은 라이트( N. T. Wright ) 의 저서 한 권을 검토하면서 내가
이 책에서 제안하고자 하는 논지의 핵심 아이디어를 잘 요약했다. 그리스도가 새 창조의 시작( 첫 열매 ) 이시며, 그의 할례-죽음으 로 그와 연합하여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으며,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나의 구원이 하
5 ) Gaffin, ResurrectionandRedemption, 127.
6 ) 자세한 논의는 Gaffin, ResurrectionandRedemption, 114–134를 보라.
나님의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구속과 의가 거하는 새 창조
의 장소 안에서 마무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해방감을 느
꼈다.7 )
호튼의 훌륭한 진술에서 내가 수정하고 싶은 주요 내용은 “그리스도
의 할례-죽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뿐 아니라 특히 그리스도
의 부활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과거에
우리에게 일어났고, 지금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것
이라는 점이다. 어떤 구절은 신자와 그리스도 속성의 연합에 초점을 맞
출 것이며, 그 속성에 의해 신자는 그리스도의 해당 속성과 완전히 동
일시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가 신자를 대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가 ( 그리스도와 연합한 ) 신자가 어떤 사
람인지에 대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고전적인 칭의 교리( 신자가
의롭다고 선언됨 ) 의 경우, 신자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그의 완
전한 의를 인정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신자는 완벽하게
의롭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로 대표되며, 신자는 완벽하게 의로운 것으
로 간주된다. 또는 성화( 신자가 세상과 분리됨 ) 의 경우, 신자가 부활하신 그
리스도와 연합하면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옛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신자도 세상과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간주된다. 반면에 우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부활하여 성화된 그리스도의 지위와 연
결되기 때문에 옛 세상과의 결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단절, 즉 완전 하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성화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성화의 지속적 또는 점진적 측면
을 경험하기 시작하며 이로써 신자들이 점진적으로 성화 곧 세상과 구
별된다. 따라서 때에 따라 신자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속성과 연합
하면 그 완전한 속성으로 인해 완전하거나 완벽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또 때로는 그리스도 속성과의 연합은 그 속성의 결정적인 시작
경험이나 점진적인 경험을 초래한다.
7 ) Horton, “N. T. Wright Reconsiders the Meaning of Jesus’s Death.”
나는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성취
하는 다양한 측면에 대한 이 중요 개념을 상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할 것
이지만, 나의 탐구 범위는 개핀이 간략하게 논의한 구속, 칭의, 입양, 성 화, 영광의 주제를 넘어설 것이다. 또한 나의 탐구 대상은 바울 자료를
넘어설 것이다. 그 이유는 이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부활하신 그리스
도와의 연합”이라는 바울 신학의 개념과 그 연합에 수반하는 신자에
의 결과적 귀속이 신약 전체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
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물론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 바울서신만큼 자
주 또는 공식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없다( 예. “그리스도 안에서”는 전체적으로
찾을 수 없지만 그 개념은 찾을 수 있다 ) 8 ) 나는
안에” 또는 “그리스도
와 함께”라는 용어를 넘어 “그리스도와의 연합” 개념을 전달하는 다른
언어로 넘어갈 것이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이 주제에 대한 일부 과거의
연구가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기술적 언어
에 지나치게 국한되어 “단어-개념”의 실수를 범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
이다. 나는 모든 주제를 다루려고 하지 않고 각 주제에 대해 요점을 증
명하기에 충분한 선택적 예시를 제시하려고 한다. 모든 신약 저자에서
그런 예가 항상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예가 있을 때마다 가능한 한
많이 논의할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설명
콘스탄틴 캠벨은 “연합 상태” 개념을 잘 요약했다. 캠벨은 신자와 그
리스도와의 밀접한 “관계됨”을 연합, 참여, 동일시, 통합이라는 네 가지
용어를 통해 최선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연합 ( union ) 은 그리스 도와의 신앙 연합, 상호 내주하는 삼위일체적, 혼인적 개념을 요약한다.
8 ) Macaskill, Union with Christ in the New Testament도 비슷한 작업을 시도했고, 그의 작업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신약 본문의 실제 석의 분석과 관련해서는 짧은 편이다.
참여 ( participation ) 는 그리스도 내러티브의 여러 사건에 참여하는 것을 의
미한다. 동일시 ( identification ) 는 그리스도의 영역에서 신자의 위치와 그리
스도의 주권에 대한 신자의 충성을 의미한다. 통합 ( incorporation ) 은 그리
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라는 공동체 차원을 요약한다.9 )
신자가 동일시되는 속성의 시간적이거나 논리적인 순서는 인식할
수 없다.10 ) 모든 속성은 믿음이 시작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하면서 동시
에 임한다. 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그리스도에의 참여”, “그리스
도 안으로의 통합”, “그리스도와의 동일시”라는 개념을 포괄하는 용어
거나 그 개념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의 여러 지
점에서 이런 표현이 매우 적합하거나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될 경우 이
표현을 사용할 것이다. “동일시”의 경우처럼 때때로 이런 용어를 구별
하기가 어려울 수 있어, 동일시는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 또는 두 개
이상의 사물과 동일하게 만들거나, 동일하게 간주하거나, 동일하게 취 급하는 것……감정, 관심, 행동에서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거나 하나로
만드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11 ) 따라서 “~와의 연합”과 “~와의 동
일시”는 의미로나 개념으로 쉽게 겹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는
“연합” 개념에 구약의 배경이 있는 것을 볼 것이며, 유대교의 일부 분
야와 어쩌면 그리스-로마 환경에도 배경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12 )
특히 다음 장들의 일부 석의적 연구에서 논의의 대상인 연합 개념 일부
에 대한 구체적인 구약 배경을 살펴볼 것이다. 참여인지 통합인지 연합
인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동일시라는 일반적인 의미가 사용되는 경
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도 다른 개념 하나를 암시적으로 수반할 가능
성이 크다.
9 ) Campbell, PaulandUnionwithChrist, 413.
10 ) Campbell, PaulandUnionwithChrist, 414와 다르다.
11 ) OED, “identification” 항목에서, 위에 주어진 정의는 다른 의미 범위에도 해당한다.
12 ) 구약의 배경은 보지만 묵시적 유대교나 그리스-로마 사상의 배경은 보지 않은 Campbell, Paul and Union with Christ, 415–417을 보라. 나는 유대교에 대해 충분히 살펴볼 수 없었기 때문 에 유대교 배경이 일부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여기서 살펴볼 수 있는 유대교의 가장 잠재적인 분야는 유대교 묵시론에 속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쿰란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파악 할 수 있는 한, 그리스-로마 배경은 연합 개념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 것 같다(하지만 이러한 배 경이 작용할 수 있는 예에 대해서는 Jipp, “Sharing the Heavenly Rule,” 269, 271을 보라).
( 실제로 그가 그것을 언급한다고 쳐도 ) 캠벨이 강조하지 않는 한 가지 측면
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어떤 사람은 “신비로운” 연합이라고 부를 수
도 있으며 그리스도와의 생명력 있고 살아 있는 관계를 수반한다는 것
이다. “이것은 다름 아닌 생명의 연합, 그리스도와 공유하는 생명 가
운데의 연합……그리스도와의 생명 가운데의 연합이며, [이것은] 또 한 영적인 연합”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성령의 활기찬 역
사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13 )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이를 강조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
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마찬가지 로 골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
리라” ) 14 ) 이 연합에는 “본성의 혼합이라는 개념이 없으며, 오직 남편과
아내의 결합 같은 인격적 결합( 엡 5:31-32 참고 ) 인 신비”가 있다.15 ) 따라서
이 인격적 연합은 그리스도의 인간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정체성, 지위, 역사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한다.16 )
최근 케빈 밴후저는 그리스도와 연합의 또 다른 측면을 제시했다. 밴 후저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그들은 그와 “친하게 사귄다/ 교감한다”, 즉 “그와 친밀하게 소통”하게 된다고 말한다. 또한 밴후저
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라는 공동체 안에서 그
리스도 및 다른 구성원과 친하게 사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17 ) 밴후
저는 “사귀다”라는 용어가 “참여라는 “행함”과 연합이라는 “존재”를
포함하는 좋은 용어”라고 생각한다.18 ) 밴후저의 제안은 그리스도와의
13 ) Gaffin, In the Fullness of Time(『사도행전과 바울 성경신학 입문』, 부흥과개혁사 역간, 2024), 287.
14 ) 이 두 본문은 Gaffin, In the Fullness of Time, 287, 290에서 생명력 있는 연합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다. 또한 엡 2: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와 롬 8: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 이라”)를 이에 추가하고자 한다.
15 ) Vanhoozer, “From ‘Blessed in Christ’ to ‘Being in Christ,’” 8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칼빈의 견해를 요약한 글의 일부다.
16 ) Vanhoozer, “From ‘Blessed in Christ’ to ‘Being in Christ,’” 26은 여기서 한스 뷔르허 르(Hans Burger)를 따른다.
17 ) Vanhoozer, “From ‘Blessed in Christ’ to ‘Being in Christ,’” 28.
18 ) Vanhoozer, “From ‘Blessed in Christ’ to ‘Being in Christ,’” 28.
연합을 이해하기 위해 고려할 가치가 있는 제안이다.
우리는 위에서 논의한 연합의 이런 측면이 “그리스도와 연합”의 핵
심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에는 물론 더 많은 것을 포함하여
논의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의 관계
논의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부활과 승천의 관계다. 우리
는 앞서 바울이 때때로 부활과 승천의 구분을 모호하게 표현한다고 언
급했다. 이 둘은 구별되지만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높아지심
이라는 개념의 일부다. 신약에서 이 두 가지가 종종 합쳐진다는 것은
로마서 1장 1-4절을 보면 알 수 있다.
1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
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
셨고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 것은 승천하신 상태에서도 사실이
었기 때문에 여기서 “부활”은 “승천”과 합쳐진 것이 분명하다.19 )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라
는 구절은 아마도 시편 2편 7절(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 을
암시하는 것 같다.20 ) 이는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
19 ) 예. 히 1:2-6 참고. 20 ) 역시 “롬 1:4는 아마도 이 시편 구절(2:7)을 암시하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Moo, Epistletothe Romans, 48을 참고하라.
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 1:2 ) 라는 서두와 일치한다.
마찬가지로 사도행전 13장 30-39절도 이 두 구절을 합친 것으로 보 인다.
30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31갈릴리로
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32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33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
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
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시 2:7 인용] 하셨고 34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가
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그리고] 확실한 복을[개역 개정. “미쁜 은사”]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35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
니라 36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37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38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
이라
사도행전 13장은 예수의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을 하나님이 예 수를 메시아로 선포하신 시편 2편 7절의 예언을 성취한 것으로 묘사 한다. 그러나 예수가 특히 시편 2편 7절의 성취로서 다윗 자손 왕이자 하나님 아들의 직분으로 높아지신 것이 그의 승천에 대해서도 사실임 은 다른 곳에서도 분명히 한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1장 2-5절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2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그가]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
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시 2:7-8 암시]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이는 하나님의 영
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
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4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
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5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 시 2:7 )
하셨으며 또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삼하 7:14, 시 2:7을 암시 )
하나님이 메시아를 자기 “아들”이라고 선언하신 시편 2편의 예언은
여기서 예수의 승천에 적용된다. 실제로 신약 성경은 일반적으로 메시
아 왕권에 대한 시편 110편 1절의 예언 성취를 예수의 승천에 돌린다.
예를 들어 골로새서 3장 1절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
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예수는 시편 110편 1절
의 예언과 동일시되며, 따라서 그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간주된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 롬 8:34; 고전 15:25; 엡 1:20; 히 1:3, 13; 8:1; 10:12 등도 마찬가지다. ) 사도행전 2장
33절 또한 예수가 승천하실 때 시편 110편 1절을 성취하셨다고 기
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 2장 32-33절은 예수의 시편 110편
1절 성취를 묘사하면서 예수의 부활과 승천을 매우 밀접하게 연결하
여 후자는 전자의 절정 단계로 간주해야 하며, 따라서 이 둘은 한 덩어
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 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시 110:1 ) 그가 약속 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
셨느니라
예수가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은 부활하셨고( 행 2:32 ), “높임을 받으셨으 며”, “약속의 성령을 받았다”라는 것이 근거다. 여기서 부활과 승천은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방금 구분한 것을 염두에 두고
“부활”과 “승천”을 동의어로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거의 모든
내용은 부활의 절정인 승천을 정확하게 다룰 것이다. 요한복음 20장
17절에서 알 수 있듯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40일 동안 지상에 계셨던 것은 더 위대한 상태를 기다리는 일시적인 기간이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 간다 하라 하시니
승천은 부활의 절정이고, “부활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의 첫
21 ) Bavinck, ReformedDogmatics(『개혁교의학』,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1), 3:419.
로 이 부활의 절정이었다. 따라서 “승천은 그리스도의 높아지신 몸이
땅에서 하늘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22 ) 그리스도는 승천으로 완전
한 영화에 이르렀으며,23 ) 이때 그의 왕권과 같은 복이 절정에 달했다.
“절정”이라는 말은 이런 복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으며 에베
소서 1장 4절(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에 따라 영원하고24 ) 변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25 )
사실 이 서론의 시작 부분에서 논의한 종말론적 기대는 예수가 지
상에서 사역하고 부활 후 지상에서 존재하는 동안 예수에게 임한 복이 었다. 나는 이런 복의 대부분이 예수의 승천 시점에 확대되었다고 주장
하며, 그중에서도 (1) 영광스러운 왕인 아담의 형상, (2) 아들의 신분, (3) 메시아 왕권, (4)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함, (5) 참된 이스라엘이 되
심, (6) 하나님과의 화해, (7) 성전이 되심, (8) 성령을 받고, 성령에 의
해 변화하고, 성령에 의해 제자들에게 보내심을 받음, (9) 땅끝까지 말
씀을 보내심( 이방인을 향한 선교 ) 등을 꼽을 수 있다. 상세한 것은 이 책에
서 설명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예수의 메시아 직분의 기능적 측면( 예.
왕으로서의 기능, 제사장으로서의 역할,26 ) 성령을 받고 성령을 보내는 역할, 참된 이스라엘 역 할 ) 에 대한 복이 확대된 것이다. 높아지심은 그의 신적 존재나 인격의
변화( 존재론적 변화 ) 가 아니라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의 순종의 보상으로
얻은 상태, 즉 진정한 변화”였다.27 )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높아지심은 그의 중보 사역의 영광을 강화한다……그리스도
22 ) P. Schreiner, AscensionofChrist, 109.
23 ) 이에 대해서는 P. Schreiner, Ascension of Christ, 6을 참고하라. 이 책 전체는 부활과 승천의 차이점을 잘 보여 주지만 후자에 대한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4 ) Gaffin, IntheFullnessofTime, 418.
25 ) Gaffin, “Work of Christ Applied,” 282-283, 287을 따른다.
26 ) 예수는 분명히 성령을 받아 지상 사역의 권능을 부여받았으며(눅 3:21-22), 이는 수태될 때 이 미 받은 성령을 강화한 것이었다(눅 1:35). 예수는 오순절에 욜 2:28-29의 성취를 시작하면서 “아버지로부터 성령의 약속을 받았다”(행 2:33; 요 7:39도 보라!). 그리스도가 승천하실 때 성령 을 받으신 것은 지상에서 사역을 베풀 때보다 성령의 은사가 더욱 강화되거나 확대되었음을 나 타낸다(이에 대해서는 Gaffin, In the Fullness of Time, 122–124 참고).
27 ) Bavinck, ReformedDogmatics, 3:418.
는 새로운 상태에 들어가시며, 이제는 중보자로서 영광의 우편
에 계신다. 그는 낮아지심의 상태에서도 참으로 하나님이셨지만
영광은 숨겨져 있었다. 높아지심의 상태에서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신성한 영광이 바깥으로 발산되며,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은 예수를 주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28 )
따라서 승천은 예수의 기능적 중보 사역의 확대를 의미할 뿐 아니라
신자에게 현재 예수가 어떤 분인지에 대해 더 큰 계시를 나타낸다. 예
수가 승천하지 않으셨다면 그의 영은 제자들에게 보내지지 않았을 것
이다( 행 2장의 전체 맥락에서 요 14:18, 28;29 ) 행 2:32-33을 보라 ). 예수와 그의 제자
들에게 더 큰 복이 임할 것임은 요한복음 14장 12절에 분명히 나와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
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 께로 감이라.” 예수가 이 땅에 계실 때 하지 않으셨던 일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예수는 지상에서 사역하는 동안 성령을 보내 자기 백성에게
은사로 충만하게 채워 주지 않으셨다. 물론 이방인에게 직접 복음을 전 하지도 않으셨다. 사도행전 전체는 예수가 승천하신 후 행하신 “더 큰
일”의 이런 측면에 대해 말한다. 즉 성령을 통해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 되었다.30 ) 예수가 부활 후 지상 사역의 마지막에 제자들에게 “모든 민
족을 제자 삼아”라고 명령하신 것은 이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
[예수]게 주셨기 때문”( 마 28:18-19 ) 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승천과 신자의 관련성에 대한 요점은 좀 더 다듬을 필
요가 있다. 승천에는 진정으로 실존적이거나 경험적인 의미가 있다. “신자에게 승천은 신자의 실제 삶이 [즉, 땅에만 거주하는 불신자로부 터] 옮겨졌다는 의미에 해당한다.”31 ) 이제 그리스도가 높아지셨으므로
28 ) Bavinck, ReformedDogmatics, 3:419.
29 ) Bavinck, ReformedDogmatics, 3:33–34.
30 ) P. Schreiner, Ascension of Christ, 37도 보라. 승천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Bavinck, ReformedDogmatics, 3:442–447, 475–482도 참고하라.
31 ) Gaffin, In the Fullness of Time, 288.
신자는 그 높아진 부활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연합
한 존재의 수직적 차원이지만 성경의 지상적 차원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시고 그들이 그
와 연합되어 있기에 실제로 승천하신 그리스도와 같은 위치에 있다.32 )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이 서론적 부분은 리처드 개핀
의 다음과 같은 말로 잘 요약할 수 있다.
이 연합은 매우 중심적이고 중추적이어서, 연합이 없다면 그
리스도의 구원 사역, 즉 그가 성취하신 단번에 이루어진 구속은
“아무 쓸모도 없고 가치도 없다”라고 할 수 있다. 연합은 구원
의 적용에 있어 모든 것이 달려 있는 모 아니면 도의 실체다. 내
게는 그리스도가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내게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스도는 다른 모든 것의 근간이 되고 원인이 되기 때
문이다. 연합이 없다면 거기에서 비롯되는 은택은 존재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
또한 이 연합은 다른 은택 없이 어떤 일부만 공유할 수 있는 그런 부분적 연합이 아니다. 내가 그의 모든 은택을 공유하지 않
는 한, 나는 그 어떤 은택도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 온전한
그리스도가 없다면 내게는 그리스도가 없는 것이다. 또는 칼빈
이 다른 곳에서 기억에 남을 정도로 표현했듯이 그리스도는 “조
각으로 나눌 수 없다”……
그러므로 적용된 구원의 핵심, 구원의 서정( ordo salutis, ‘오르도
살루티스’ ) 의 핵심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의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와 연합하는 것이다.33 )
32 ) Gaffin, In the Fullness of Time, 288. 33 ) Gaffin, “Work of Christ Applied,” 284-285.
이 책의 구속사적 맥락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에 실린 자료의 상당 부분은 나의 『신약
성경신학』에서 발췌한 것이고, 다른 저술에서 발췌한 양은 다소 작다.
대부분 핵심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
이라는 주제에 얼마나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신약성경신
학』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일반적으로 지적하거나 강조하지 않았던
부분도 재구성하거나 재배치하거나 수정 또는 요약했다. 이렇게 고쳐
쓴 것은 이 주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내가 쓴 많은 내용을 돌
아보면서 관련 개념이 이 주제를 다룬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독자들이
『신약성경신학』으로 돌아가서 이런 논의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논의의 일부는 그 책 전체와 나의 다른 저술에서 심도 있는 논의
의 틈새에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이 속편을 쓰게 된 동기 하나는 이 원
래 자료가 그리스도와의 연합, 특히 종말론적 새 창조 왕국의 시작으로
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개념에 어떻게 직접적으로 관련
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서다. 한편, 이 책에는 바울서신을 비롯
하여 신약의 여러 곳에서 이 주제에 대해 새롭게 연구하고 탐구한 내용
도 실었다. 일부 구절은 “연합”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동일시”
개념을 표현하여 승천하신 그리스도에게 참된 것을 신자에게 귀속시킬
수도 있다. 이것은 정확히 “연합”은 아니지만, 그에 가까운 개념이며,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았더라도 나는 연합이 아마도 동일시의 바탕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은 『신약성경신학』을 발판으로 삼아
내 생각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된 임무는 종말론적 새 창조 왕국의 시작으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주제를 신약에서 연구하는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신약의 다양한 표현을 다루기 전에, 우리는 이 주제를 연구하게 된 동기와 원동력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 나타난
성경신학적 이야기를 추적한 결과 이 주제에 이르게 되었다. 내 경우를
보자면 나는 『신약성경신학』에서 성경신학 줄거리를 연구한 다음 이
런 줄거리가 신약에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를 연구했다. 특히 내
책의 2-3장에 나오는 구약 줄거리를 구성하는 주제들이 6장에서 기술
한 신약 줄거리의 기초가 되었다. 신약 줄거리는 구약 줄거리를 발전시
키고 그것이 갖는 예언적 특징을 성취시킴으로써 변형된 것이다. 신약
줄거리의 구성 요소는 이전 책의 나머지 부분( 7-28장 ) 을 구성하는 개요
역할을 했다. 각 장은 신약 전반에 걸쳐 줄거리의 주제적 구성 요소를
논의하고 추적했다.
내가 신약 줄거리의 기초로 제시한 구약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구
약은 약속과 언약과 구속을 통해 말씀과 영으로 죄 많은 백성 위에 자
신의 새 창조 왕국을 혼돈에서 점진적으로 재건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
로, 그 결과 믿는 자들에게는 복 가운데 이 왕국을 진전시키라는 전 세
계적 사명을 낳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 ( 패배 또는 추방 ) 을 낳아 그
의 영광에 이르게 한다. 이와 같은 진술의 공식화에 대한 귀납적 근거
는 이전 책의 2-3장에서 찾을 수 있다. 거기서 우리는 아담에게 주어
진 사명, 그가 어떻게 그 사명에 실패했는지, 그리고 그 사명이 아담 이
후 다른 사람들( 노아, 족장들, 이스라엘 ) 에게 전달되었지만 어떻게 성공하지
못했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또한 우리는 “마지막 날”( 개역개정은 “말세”로도
옮김 ) 이라는 개념이 아담의 사명을 완수할 아담 자손 왕이 오실 것을 예
언하는 구약의 핵심 주제라는 점도 살펴보았다.
내가 제안한 구약 줄거리의 신약 변형은 다음과 같다. 예수의 삶, 시
련, 죄인을 위한 죽음, 특히 성령에 의한 부활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주
어지는 종말론적 “이미-아직 아니”라는 새 창조 통치의 성취를 시작했
으며, 그 결과 믿는 자에게는 이 새 창조의 통치를 진전시키라는 전 세
계적 사명을 낳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낳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한다. 이 줄거리를 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은 신약의 “이미-아직 아니”의 종말론에 대한 연구( 특히 “마지막 날”과 같은
구절에 대한 연구 ) 였다. 구약에서 예언한 것이 신약에서는 성취되기 시작하
는 것을 본다. 또한 신약 줄거리의 주요 경첩 또는 핵심은 성령으로 말
미암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그의 개시된 종말론적 통치이자 새 창조
통치의 시작이라는 것을 보았다. 그다음에 나는 신약의 주요 신학 사상
은 새 창조와 왕국이라는 이 중요한 종말론적 줄거리의 틀 안에서 완
전한 의미를 얻지만, 이런 사상들은 단지 그 한 측면에 불과하다고 주
장한다. 이 종말론적 “원리[와] 관점”에서 바울 설교의 모든 개별 주
제가 이들의 통일성과 서로에 대한 관계 속에서 이해되고 관통될 수
있다.”34 ) 나는 심지어 신약신학을 이해하기 위해 다이아몬드의 이미지
에 호소하기도 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삶, 특히 그의 죽음, 부활하신 왕권을 새
창조의 통치를 상징하는 다이아몬드로 생각할 수 있다. 다양한
신학 사상은 다이아몬드의 한 면이며, 다이아몬드 자체와 분리 할 수 없다. 이 책은 이것이 어떻게 그런지, 다양한 교리의 종말
론적 강화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에 이런 교리를 실제로 적
용하는 데 통찰을 주는지에 대한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예시를 제
공하려는 시도다.35 )
이 책은 첫 번째 책의 이런 목표를 구체화하고, 다듬고, 발전시키려
는 시도다. 특히 신약 성경에서 종말론적 새 창조 왕국의 시작으로서 부 활하신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분석하는
것이 우리의 주요 과제다.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어떤 측면이 그와
연합하는 사람에게 귀속되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 도와의 연합과 그 결과 신자에게 무엇이 귀속되는가라는 주제는 첫 번
째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이 초점이 될 것이다.
최근에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다룬 책과 논문이 많이 출간되었지만, 대
부분 바울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또 대부분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
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해 논의
34 ) Ridderbos, Paul, 44, 57.
35 ) Beale, NTBT, 24.
한다.36 ) 이 책들에 대해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의 각 장에서 논의할 주요 본문
은 연합과 관련 있다. 이 연합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부활하신 그리스
도의 어떤 측면에 대한 신자의 연결과 직접 관련되기 때문이다. 또한 첫
번째 책의 장들과는 달리 이 책의 각 장에는 일반적으로 초점을 맞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구체적인 측면을 실제로 “적용”하는 단원을 두
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이런 적용은 거의 예외 없이 각 장의 마
지막에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죽음과 부활의 관계
이 책이 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초점을 맞출 것임은 이 서
론의 앞부분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출판 전에 이 책의 내용을 읽어 본
사람의 일부는 그리스도의 구속 죽음이 신약 성경 전체에서 매우 중요
한데 왜 부활과 승천은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느냐고 질문했다. 예
를 들어,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서 복음을 다음과 같이 요약 한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 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36 ) 연합에 대한 가장 최근의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합”이라는 단어보다 “참여”라는 단어
를 선호하는 Gorman, Participating in Christ를 보라. 고먼(xvi-xxiv)은 또한 유익하게도 “참 여”에 대한 해석사를 제시하는데, 특히 에드 샌더스(E. P. Sanders)의 획기적인 연구에서 시작 하여 최근 현대 학계에서 제임스 던(James D. G. Dunn), 톰 라이트(N. T. Wright), 리처드 헤이 스(Richard Hays), 더글러스 캠벨(Douglas Campbell), 토드 빌링스(Todd Billings), 그랜트 매캐스킬(Grant Macaskill), 콘스턴틴 캠벨(Constantine Campbell)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 양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연합에 대한 최근의 다른 저작에 대해서는 Thate, Vanhoozer, and Campbell, “In Christ”in Paul과 그 안에 수록된 논문도 보라. 마찬가지로 연합에 대한 가장 최 근의 저작을 나열한 Vanhoozer, “From ‘Blessed in Christ’ to ‘Being in Christ’”도 보라. 그 리스도와의 연합을 다룬 최근의 모든 책과 논문을 정리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사업이 될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작품을 다 읽은 척하지 않겠다. 이 주제에 대한 곧 출간될 책으로는 Bowsher, Life in the Son이 있는데, 유망해 보이는 책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 이 책도 포함할 여유가 없었다.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보다 죽음을 더 많이 다루지만, 다음 절
들에서는 그리스도의 다양한 부활 현현에 대해 서술한다( 고전 15:5-8 ). 일
반적으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모두 복음의 핵심으로 간
주한다. 로마서 4장 25절에서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
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라고 분명
히 밝힌 것처럼 이 둘은 분리할 수 없는 관계다. 이 책에서 그리스도의
부활로 초점을 좁힌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중세부터 현대 교회에 이르기까지 신학자들이 부활 신학
보다 속죄 신학을 훨씬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속죄 측면에 훨씬
큰 비중을 두고 연구를 펼쳤다. 일부는 보속과 화목의 차이를 명확히
하려고 했다.37 ) 교부들은 속전 이론을 발전시켰다. “구원”이라는 단어
는 사실상 그리스도의 속죄 죽음과 동일시되었다. 특히 20세기에 이르
러 부활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신학적인 이유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변
증의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부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가 갖는 보속과 화
목의 본질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며, 부활을
강조하지 않으려는 시도도 아니다. 또한 부활의 변증적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려는 시도도 아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학적 의미에 대한 연구가
지금까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부활의 신학적 함의
를 끌어내려는 시도다.38 )
주로 그리스도의 속죄에 초점을 맞추는 오랜 추세에 대한 한 가지
주요 예외는 1978년에 부활 신학에 대한 책을 처음 출간한 리처드 개 핀이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박사 학위 논문을 약간 수정한 것 ). 39 ) 개핀은 이 책의 후
속작을 저널과 두 권의 책으로 발표하면서 이 책을 추적하고 발전시
37 ) 속죄(atonement)는 단순히 죄를 없애는 보속(expiation)이었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사 람들의 죄에 대해 형벌을 대속하는 희생인 화목(propitiation)이기도 했는가?
38 ) 이 마지막 두 단락은 Gaffin, In the Fullness of Time, 302-303에서 영감을 받았다.
39 ) Gaffin, ResurrectionandRedemption
켰다.40 ) 마찬가지로 김세윤 박사도 바울의 신학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
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경험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 주었다.41 ) 내 책
『신약성경신학』에서도 신약에서 부활의 중심성, 특히 부활이 종말론적
새 창조의 한 측면이라는 점을 보여 주려고 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다양한 교리와 개념이 어떻게 칭의, 화해, 성화, 성전, 성령, 참된
이스라엘 등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갖는 여러 측면이
되었는지를 살펴봤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내가 이전에 쓴
책을 다듬고 발전시키려는 시도다.
이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조언
나는 이 책에서 광범위한 독자층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책은 주로
학자가 아닌 교회 신자나 대학 및 대학원 학생, 교사 등 진지한 기독교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또한 이 책이 학자에게도 흥미를 일으키고 신약
성경신학을 더 잘 이해하는 데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기를 바란다. 평신
도 독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도 내가 제기하는 다양한 주장을 뒷
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논거를 제공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각 장의
광범위한 논증에 더 집중하고 싶은 사람은 각주를 읽지 않아도 된다.
여러분이 이 낡고 적대적인 창조 세계와 겹치는 새 창조 세계의 한가운
데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원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설명과 예시를 위해 종종 성경을 인용하지만 때로는 성경 본문
을 인용하지 않기도 하고 전부 다 인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성
경을 옆에 두고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인용만 하고 내용을 제시하
지 않은 성경 구절을 찾아보면 내 주장을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이 책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일종의 백과사전도
40 ) Gaffin, ByFaith,NotbySight, and, most recently, In the Fullness of Time in 2022.
41 ) S. Kim, OriginofPaul’sGospel
된다. 서론과 처음 두 장은 나머지 부분의 기초를 제공한다. 독자는 이
장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 3-17장 ) 은 부
활하신 그리스도와 신자의 연합에 있는 다양한 측면에 대한 ( 20개 정도
의 ) 성경적-신학적 주제를 다룬다. 이 장들은 서로 겹치지 않으므로 기
초가 되는 첫 두 장을 읽은 후 나머지 중에서 골라 읽을 수 있다. 따라
서 독자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 없이 선택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신자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더
잘 이해하는 데 사용되는 일종의 도구다. 그런 다음 부활하신 그리스도
와의 연합의 여러 측면을 검토하기 위해 책으로 돌아가 몇 번이고 반복
해서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성경
신학을 담고 있지만 조직신학에 대한 책과 다소 비슷하게 기능한다.

1부
신약신학의 틀로서
개시된
종말론적 부활과
새 창조 왕국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줄거리, 1부

나는 서론에서 구약과 신약의 성경신학적 줄거리에 대해 언급했다. 이 장에서는
내가 『신약성경신학』에서 성경신학의 줄거리를 어떻게 구성했는지를 요약했다.
이 줄거리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한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 신학적 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1 )
I. 구약의 구속사적 줄거리
A. 아담의 사명
『신약성경신학』에서 나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부과한 언약 의무에 아
1 ) Beale, NTBT(『신약성경신학』,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3), 29-185 및 뒷받침하는 각주들도 참고 하라.
담이 충실했다면 영구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성격의 더 높은 상태를 경
험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누적된 증거를 제시했다. 나
는 이런 의무를 “행위 언약”이라고 불렀다. 창세기 1장 26-28절의 명
령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특히 1장 28절에 요약
되어 있다. (1)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 (2) “생육하고 번성
하라”, (3) “땅에 충만하라”, (4) “땅”을 “정복하라”, (5) “온 땅을 다스
리라.”
또한 하나님이 아담을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신 것은 아담 이 사명의 특정 부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
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아담을 창조의 면류관으로 창조하신 것은 아
마도 28절 초반에 나오는 “복”의 내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온 땅
을 다스리라”, “정복하라”라는 말은 아담의 왕권을 표현하는 것이며,
아담이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기능적 정의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기능적 측면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
었다는 의미의 초점일 것이다. 이런 형상의 기능적 관점은 고대 근동의
신상 이미지에서 알 수 있고, 이 이미지들은 주로 신의 실제 모습이나
신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포함되기도 했지만 ) 신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복을 전하는 장소였다. 고대 근동의 왕을 신의 형상으
로 여겼을 때, 그 왕을 통해 신이 정복하고 통치한다는 생각이 있었으
며, 이것이 창세기 1장 26-28절에서 왕이자 하나님의 형상인 아담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배경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신의 형상을
닮았다는 것은 왕이 신의 영광을 반영한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고대 근
동의 왕들이 자기들의 신의 형상을 닮았다고 말하는 것은 왕권을 공식
적으로 확립하는 과정에 있었으며, 신이 제정한 통치와 왕의 이상적인
속성에 대한 사상을 형성했다. 따라서 신의 형상인 왕은 자신의 직책에 서 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이해되었으며 구체적으로 신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J. 리처드 미들턴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고대 근동의 왕들을 신의 형상으로 묘사한 것은 애굽 및/또는
메소포타미아 왕권 이데올로기의 필수 요소로 이해될 때 창세
기 1장의 하나님의 형상, 즉 ‘이마고 데이’( imago Dei ) 를 해석하기
위한 가장 그럴듯한 유사점을 제공한다. 그러한 텍스트가……성
경의 ‘이마고 데이’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는 인간이 비인간 피
조물에 대해 고대 근동에서 왕이 신민에 대해 가졌던 지위 및 역
할과 유사한 것을 갖는 존엄한 존재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창세
기 1장은 고대 근동 왕권 이데올로기의 진정한 민주화를 구성 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에서 이마고 데이인 인류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복을 대표하고 중개하는 존재로 부름 받은 것 이다.2 )
마찬가지로 고대 근동의 왕들이 영토의 여러 지역에 자신의 형상을
세웠을 때, 그 형상은 일반적으로 그 특정 지역에 대한 주권적 존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하나님이 아담을 자신의 형
상으로 지상에 세우신 것에 대해 통찰을 제시할 것이다. 즉 아담은 지
상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임재와 통치를 상징한다.3 )
그럼에도, 인류가 기능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할 수 있게 해 준
그 “형상”에는 추가적인 존재론적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
담은 하나님의 의지적, 이성적, 도덕적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도덕적 형상과 관련하여 의로움, 지식, 거룩함, 정의, 사랑, 신실함, 성 실함 같은 도덕적 속성을 반영해야 했으며( 하나님 형상의 일부인 처음 세 가지
속성에 대해서는 엡 4:24; 골 3:10 참고 ),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해야 했다.
일부 주석가는 에덴에서 아담의 역할이 창세기 1장 26-28절에서
아담이 받은 명령의 초기 수행 가운데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하나님
이 창조의 초기 작업에서 혼돈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나아가 모든 종류
2 ) Middleton, LiberatingImage, 121.
3 ) Middleton, LiberatingImage, 104–108.
의 살아 있는 것을 창조하고 그것들로 땅을 채우신 것처럼, 아담과 하
와는 동산에 거하는 동안 “온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생육하고 번
성하라”( 1:26, 28 ) 라는 명령을 이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세기 1장 활동 을 반영해야 했다. 따라서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담의 신성한 이미
지의 초점은, 아담이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는 속성으로 창조되었다
는 기본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의 활동이 하나님의 활동을 어
떻게 본받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장 15절에서 아담이 제
사장-왕으로서 “경작하고”( “섬기다”라는 의미 ) “지키라”라는 명령을 받은
것은 아마도 1장 26-28절에서 주어진 사명의 일부일 것이다. 따라서
2장 15절은 첫 번째 성전에 놓였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류가
땅을 정복하고 채운다는 주제를 계속 이어 간다. 아담은 물리적으로나 영적으로 자신의 동산 거처의 안녕을 유지하
는 데 있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종이 되어야 했으며, 여기에는 동산
성소에 악한 영향력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성실하게 막는 것도 포함되
었다. 사실, 창세기 1장의 명령과 관련하여 아담이 졌던 책임의 물리적, 영적 차원은 아담이 태고의 성전에서 섬기는 원시의 제사장과 같았다
는 인식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담은 물리적으로 성전을 보호하고
영적으로 토라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해석하고 적용하
는 전문가인 이스라엘의 후기 제사장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따라
서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양육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부모가 직접 기억 하고 전수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영적 가르침이었으며, 이는 창세기 2-3장 내러티브가 암시하는 바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 창세기 1장 26, 28절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한 불순종은 실패로 이어졌다; 참고. 2:16-17과 3:1-7 ). 따라서 하나님의 명령
말씀( 창 2:16-17 ) 에 표현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인류가 하나님의 형
상( 1:26, 28 ) 을 반영하는 기능적 방식에 속하며, 이는 아담이 그러한 명
령을 이해하고 수행할 이성적, 도덕적 능력을 가지고 창조되었다고 가
정한다. 최초의 두 인간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생각해야 했다. 따라
서 아담과 아담의 아내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는 2장 16-17절에서
아담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도 포함되었지만, 아담의 아
내는 3장 2-3절에서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2장 15절에서
아담을 동산에 두어 그것을 섬기게 하신 후, 아담에게 긍정적인 명령
과 부정적인 명령, 기억해야 할 경고 하나를 주셨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70인역: ‘기노스코’의 부
정사]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2:16-
17 ). 뱀, 곧 사탄에 맞닥뜨렸을 때 아담의 아내는 창세기 2장 16-17절을
인용하여 대응하지만, 적어도 세 중요한 곳( 창 3:2-3 ) 에서 그 문구를 바
꾼다. 이런 변화는 부수적인 것이며 단지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한 것
으로서 2장 16-17절과 동일한 의미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거나 자
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의도적으로 변경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
명백한 징후는 각 변경 사항이 신학적으로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
이다. 첫째, 하나님은 “너희는 마음대로 먹어도 좋다”라고 말씀하셨지
만 하와는 단순히 “우리는 먹어도 좋다”라고만 말함으로써 특권을 최
소화하고, 둘째, 하나님이 “정녕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지만 하와는
“죽으리라”라고 말함으로써 심판을 최소화하며, 셋째, 하나님이 원래
“먹지 말라”라고만 말씀하신 반면에 하와는 “만지지도 말라”를 첨언함
으로써 금지를 극대화한다.4 ) 하와가 2장 16-17절에서 하나님의 말씀
을 잘못 인용한 것은 죄의 첫 번째 징표였다.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바꾸었거나, 아니면 대제사장인 아담이
하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지 않았거나 하와가 그것을 기억하도
록 도와주지 않았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열매를 노골적으로
따먹음으로써 절정에 달하게 되는 죄에 이르는 과정의 출발이었다. 아
4 ) Ross, CreationandBlessing, 134-135는 하와가 창 2:16-17을 인용하는 데서 이 세 가지 차이 점이 나타난다는 것을 관찰했다. 11장의 “보충 설명 2”에서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꾼 것이 왜
죄악 된 것이었는지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담의 에덴동산 범죄에 대해 바울이 비난하는 이유는 아담이 동산에서
최고 책임자였기 때문이다.5 )
아담이 순종했다면 철회할 수 없는 최고조의 종말론적 복으로 이어 졌을 것이다. 이런 복에는 (1) 사악한 뱀을 물리치고 다스림, (2) 하나
님의 성품을 반영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닮음, (3) 비가역적인 영적 생
명 소유, (4) 다함이 없는 종말론적 “안식” 경험, (5) 육체적 썩어짐에
서 영구히 보호됨, (6) 마찬가지로 썩어짐에서 영원히 보존될 땅에서
사는 것, (7) 아담과 하와의 혼인 관계와 그들의 모든 자손의 혼인에서
예표된 것처럼 보이는 관계, 곧 그의 신부 된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마
지막 때의 완성된 관계를 누리는 것, (8) 땅의 왕으로서 영구적으로 통
치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아담은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여 이런 최고의 복을 받
지 못했다. 아담이 맡은 임무에서 실패한 것에는 적대적이고 부정한
존재의 동산 출입을 허용한 것이 포함된다. 창세기 2-3장에서는 아담
의 “다스리고 정복하는” 임무가 뱀으로 변한 사탄에게서 동산을 지키
는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1) 아담은 1장 26, 28절에 서 “땅에 기는” 모든 생물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사명을 받았다는 점, (2) 에덴은 성전이었고 거기서 아담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형상으로
그리고 부정한 피조물로부터 그 성소를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제사장
으로 세워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개념적으로 그것을 염두에 두었을 가
능성이 크다. 따라서 아담은 동산을 잘 다스리지 못했다. 아담은 동산 을 잘 지키지 못해서 성소와 아담과 하와의 삶에 죄와 혼돈과 무질서
를 가져온 더러운 뱀의 출입을 허용했다. 아담은 뱀을 “다스리고” 순종
적인 제사장으로 뱀을 동산에서 쫓아내는 대신 뱀이 자신을 “다스리도 록” 내버려 두었다.
아담과 하와는 동산 성소의 영광스러운 하나님 임재를 확장하는 대 신 그곳에서 추방되어 자기들을 위해 의도되었던 영생에서 제외되
었다. 결과적으로 아담과 하와는 창세기 1장 28절의 하나님 명령에 불
5 ) 11장의 “보충 설명 2”도 보라.
순종했고, 온전한 신실함에 수반하는 더 강화된 복의 단계를 물려받지
못했다.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아담이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후 하나님은 왕과 제사장의 사명을 물려받은 아담 같은 다른 인물을 세우
셨다. 우리는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결과로 그 사명에 몇 가지 변화가 일
어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도 아담과 마찬가지
로 실패한다. 인류를 대신하여 마침내 그 사명을 완수할 “마지막 아담”
이 나타날 때까지 실패는 계속될 것이다.
B. 아담의 사명이 후손에게 전해짐 6 )
일부 주석은 아담의 사명이 노아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전달
되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명령의 반복적인 적용에 대한 다음 관찰은
창세기 1장 28절이나 그 후의 재구성 중 하나를 실제로 암시하고 있음
을 식별한 것에 기초하고 있다.7 )
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
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
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9장 1, 7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복을 주
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중에서 번성하라하 셨더라
창세기 12장 2-3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6 ) 이 단원은 대부분 Beale, TempleandtheChurch’sMission, 93-96을 기반으로 한다.
7 ) 굵은 글꼴은 어휘 및 개념적 유사성을 나타낸다.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세기 17장 2, 6, 8절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
리라 하시니……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
게 하고
창세기 22장 17-18절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세기 26장 3절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창세기 26장 4절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 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세기 26장 24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 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28장 3-4절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
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
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창세기 28장 13-14절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땅을]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으로 퍼져
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
으리라
창세기 35장 11-12절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이와 같이 하나님은 창세기 1장 28절 사명의 본질을 아브라함( 12:2; 17:2, 6, 8, 16; 22:18 ), 이삭( 26:3-4, 24 ), 야곱( 28:3-4, 14; 35:11-12; 48:3, 15-16 ), 이
스라엘( 참고. 신 7:13 및 창 47:27; 출 1:7; 시 107:38; 사 51:2, 이 중 마지막 네 구절은 아브라
함에게 주신 약속의 이스라엘에서의 첫 번째 성취를 언급 ) 에게 맡겼다.8 ) 창세기 1장 26-28절의 명령에는 특히 1장 28절에 요약된 대로 (1) “하나님이 그
들에게 복을 주셨다”, (2) “생육하고 번성하라”, (3) “땅에 충만하라”, (4) “땅을 정복하라”, (5) “온 땅을 다스리라” 등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 음을 상기하라.
이 사명은 예를 들어 아브라함에게 반복된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8 ) 다른 사람들도 사실상 같은 관찰을 했지만(이에 대해서는 Beale, NTBT, 47-48 참고), Wright, Climax of the Covenant, 21–26에서 처음으로 이 사실이 나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정복하고 다스리리라”] 또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 리니” ( 창 22:17-18 ). 하나님은 아담을 동산에 두셨고 아브라함에게 비옥 한 땅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는 것”이 목표
임을 강조함으로써 그 사명의 보편적 범위를 표현하셨다.9 ) 그러므로
12장 1-3절의 첫 번째 진술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너의 고향과……집을 떠나……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고든 웬함은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은 창세기 1-2장에 제
시된 인류에 대한 비전을 새롭게 한다”라면서 “아브라함은 이전의 노
아처럼 두 번째 아담의 모습” 또는 “새로운 아담”이라고 설명한다.10 )
족장들이 반복적으로 받은 동일한 사명은 이후 구약 성경에서 이
스라엘과 종말론적 이스라엘에게 여러 번 반복해서 언급된다. 아담과 마찬가지로 노아와 그의 자손도 이 사명을 수행하지 못했다. 따라서 창
세기 대부분이 창세기 1장 28절의 사명을 약속에 따라 족장들에게 적
용하는 것을 반복한 후, 그 사명이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성취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창세기 47장 27절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창세기 48장 3-4절 11 ) 하나님이……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 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9 ) Wenham, StoryasTorah, 37 참고.
10 ) Wenham, StoryasTorah, 37.
11 ) 이 단원의 나머지 부분은 Beale, NTBT, 48–52를 기반으로 한다.
하셨느니라
출애굽기 1장 7절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출애굽기 1장 12절 ……더욱 번성하여 퍼져 나가니
출애굽기 1장 20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민수기 23장 10-11절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고……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그대가 오히려 축복하였도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반역적인 태도를 보인 사건 후에 그
리고 금송아지 사건에서 그 약속이 이스라엘 1세대 가운데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지는데, 그들이 이 사명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
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세는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
했다( 출 32:13 ). 그래서 창세기의 족장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 민
족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 그 사명을 완수할 것이라는 약속이 반복된다.
레위기 26장 9절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한 내 언약을 이행
하리라
신명기 7장 13절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
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참고. 신 6:3; 8:1)
신명기 15장 4, 6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네가 여러 나라 를 통치할지라
신명기 28장 11-12절(70인역) 여호와 네 하나님께서……네 몸의
소생……많게 하시며……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
니……네가 많은 민족을 다스리리라(사역)
신명기 30장 16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
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
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
실 것임이니라(참고. 신 30:5)
사무엘하 7장 29절(70인역)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을 다스리고
복을 주사……주 여호와의 복으로 말미암아 주의 종의 집이 영 원히 복을 받으리이다 하니라(사역)
미래의 복에 대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후 이스라엘 역사의 여러 지
점에서 창세기 1장 28절의 명령이 이스라엘의 개인이나 나라에 다시
적용되어 어느 정도 성취가 시작되었음을 나타낸다.
역대상 4장 10절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
로 나를 도우사 [이것이]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상 17장 9-11, 27절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내가……그들[이스라엘]을 심고……내가……
네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 [내가 너를 번성하게 하
리라, 70인역 추가 부분]……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니[다윗이
최초의 실현을 확인함]……이제 주께서 종의 왕조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두시기를 기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하니라
시편 8편 5-8절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일부 주석은 시편 8편을 이 범주에 포함하려 한다. 그럴 수
도 있지만, 이 시편은 바로 아래의 명백한 종말론 범주에 더 맞
는다.]
시편 107편 37-38절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시며
또 복을 주사 그들이 크게 번성하게 하시고
그의 가축이 감소하지 아니하게 하실지라도
이사야 51장 2-3절
……때에 내가……그[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
느니라
……그[이스라엘]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결론 문구는 미래에 대한 약속이며, 아래에서 이 본문이 반복
되는 것에 주목하라.]
그러나 왕과 국가가 그 사명을 불완전하게 성취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죄악 된 사건들이 발생한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아담과 자기 조상
들이 실패한 일을 시도하는 데도 실패한다. 그러므로 종말론적 이스라
엘과 그들의 종말론적 왕이 마침내 아담의 사명을 온전히 성취하는 일
에 성공할 것이라는 약속이 반복해서 나온다.
시편 8편 5-8절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시편 72편 8, 17, 19절
그[종말의 왕]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끝까지 다스리리니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니
모든 민족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창 12:2-3; 28:14; 무엇보다도 22:18에 대한 암시일 수 있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이사야 51장 2-3절
……때에 내가 그[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
느니라
……그[이스라엘]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이사야 54장 1-3절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
음이라……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지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마지막 두 문장은 창 28:4, 13-14에 대한 암시이며, 이는
1:28과 12:20에 대한 성경 내 암시 연결망에 속한다.]
예레미야 3장 16, 18절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
에는……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에
예레미야 23장 3절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갔던 모
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
이 번성할 것이며(참고. 렘 29:6; 30:19; 33:22).
에스겔 36장 9-12절 사람이 너희[약속한 땅]를 갈고 심을 것
이며 내가 또 사람을 너희[그 땅] 위에 많게 하리니 내가 너 희[그 땅] 위에 사람[이스라엘]과 짐승을 많게 하되 그들의 수가
많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그들은 너를 얻고(겔 36:27 참고)
다니엘 7장 13-14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그에게 권세……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할 것이니라
[그의 통치는 “짐승”의 통치를 대체할 것이다.]
호세아 1장 10절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C. 아담의 사명에 대한 결론 12 )
창세기 1장 28절은 인류에게 반복적으로 적용된 최초의 “지상 명
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명은 땅에 복을 주라는 것이었고, 이 복의
본질 중에 하나님의 구원 임재가 있다. 타락하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손을 낳아 하나님의 영광을 온 땅에 가득 채우
12 ) 이 부분은 Beale, NTBT, 57–58쪽을 기반으로 한다.
게 해야 했다. 타락 후에는 하나님의 회복된 형상대로 창조된 남은 자
들이 나가서 어둠에 빠진 나머지 인류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
를 전파해야 했다. 이 증언은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찰 때 까지 계속되어야 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증언은 집합적 아담인 그들
의 역할을 반영했으며, 이는 구약의 선교 개념을 강조한다.
예외 없이 아담 사명의 재적용은 노아, 족장들, 이스라엘, 종말론적
이스라엘이나 그 왕이 해야 할 일 또는 하기로 약속한 일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진술된다. 이 진술은 항상 실제로 땅을 정복하고, 인구를
늘리고 번성하며, 약속의 땅과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할 사람들
로 채우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 사명을 우리가 부정적인 행위라고 부를
수 있는 죽음에 의해 수행해야 한다는 암시는 없다. 물론 이사야 53장, 다니엘 9장, 스가랴 12장( 그리고 시 22편 같은 몇몇 다윗 모형론 본문 ) 은 메시아
의 죽음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루는 데 결정적이라고 예언하지만, 이
런 본문은 소수에 불과하며 아담의 사명이 반복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지는 않다.13 ) 따라서 아담의 자손으로서 품는 이스라엘의
족장, 국가, 왕에 대한 기대와 순종 약속은 항상 그들이 해야 할 일이나
하기로 약속된 일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에서 진술된다.
지금까지 이 장의 분석에서 한 가지 중요한 관찰을 할 수 있다. 즉 창
세기 1장 28절은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 다른 어떤 본문보다 창세
기의 나머지 부분 및 구약의 나머지 책과 더 많은 성경 내적 연관성이
있으며, 이는 그 본문이 창세기의 해당 초기 부분에서 시작하여 구약의
다른 곳에서 전개되는 가장 공식적인 가닥 또는 맥락임을 알려 주는 최
초의 신호 또는 지침이라는 것이다.
D. 구약
창조적 기대 새 창조의 아담 자손 왕에 대한 창세기 1장 26-28절의 개념은 정도 13 ) 창 3:15의 “상해”에 대한 언급을 통해 다가올 메시아의 죽음이 일찍 암시된다.
성경적-신학적
차이는 있지만 모든 다양한 구약 책에 걸쳐 중심 이야기를 형성한다.
특히 사무엘하와 열왕기상에서는 이 개념이 이스라엘 왕권의 성립 및
멸망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신약성경신학』14 ) 에서 구약의 여러
단계에서 새 창조의 엔진이 다시 가동하고, 새로운 선교적 확장이 시작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죄로 인해 정체되고 궁극적으로 무너진다는 것
을 발견했다. 이 왕권의 주제는 시편, 대선지서, 소선지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내용에서 구약의 주요 줄거리를 추려 보면 이스라엘( 과
그 왕 ) 은 새롭게 된 땅을 다스리는 아담의 사명을 완수하라는 명령을 받
았지만 거듭 실패하여 결국 심판과 유배를 당한다. 그럼에도 새롭게 된
창조 세계의 미래 회복에 대한 약속은 계속 반복되었다.
E. 구약의 종말론적 줄거리 15 )
앞 단원에서 나는 창세기 1-3장의 주요 주제, 특히 완성된 창조를
가리키면서 개시되고 새로워진 창조 세계의 왕권을 구약 전체적으로
내가 어떻게 추적했는지를 요약하려 했다. 거기서 탐구한 주제들은 본
질적으로 종말론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즉, 아담은 오염되지 않은
창조 세계에서 제사장-왕으로 세워졌지만, 그의 왕권도 창조 세계도
악에 대한 승리뿐 아니라 죄와 육체의 썩어짐과 창조 세계의 썩어짐을
당하지 않을 궁극적인 안전 확보라는 예정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일단
이 목표를 이루게 되면 아담과 피조물에게 영원한 상태가 시작되었을
것이며 태초의 적대자에게는 최종 심판이 선언되고 집행되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목표는 본질적으로 종말론적이었다. 따라서 에덴
에서 최초의 죄 없는 세계 질서가 시작했지만 그것은 아직 불완전했고
여전히 완성을 필요로 했다. 이 장의 서두에서 나는 제사장-왕으로서
아담의 목표는 에덴의 복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종말론적 창조 세계
14 ) Beale, NTBT, 63–88.
15 ) 이 부분은 Beale, NTBT, 88–112를 기반으로 한다.
를 다스리는 것이었다는 개념을 몇 번 언급했다. 아담의 목표는 종말론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종말론의 의미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담이 에덴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는 제사장-왕16 ) 으로
세워진 것이 최초 창조 질서의 시작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것이 종
말론적으로는 결코 완성되지 않은 과정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창세기 1-2장이 보여 주는 창조 상태는 종말론
에 근접한 것이거나 심지어 그 안에 종말론적으로 싹을 틔울 씨앗을 포
함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첫 번째 창조가 완성될 때까지 죄 없는
세상 질서 속에서 하나님께 충실하고 순종해야 하는 제사장-왕이 에
덴에 처음으로 세워졌다. 한편으로 죄로 오염되지 않은 첫 번째 창조 의 시작은 썩지 않는 최종 영광을 통해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과정의 시
작이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에덴과 인류의 죄 이후 종말론은 죄에
서의 회복과 완성을 모두 포함하는 구속적 종말론이 되어야 했다.17 ) 이
런 점에서 죄에서 회복의 시작은 후대에 들어 종종 에덴의 회복과 새
창조의 시작으로 묘사되며, 이는 예를 들어 이사야 65장 17절과 66장
22절, 요한계시록 21장 1절-22장 5절같이 종말론적 관념이 된다. 이
같은 에덴의 회복은 단순히 타락 전 상태의 조건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확대되고 영원히 완성된 썩지 않는 조건의 시작을 의미한다.
유대교 묵시 문헌과 신약에서도 같은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창세기
1-2장을 새 창조의 시작과 완성이라는 후대의 성경 개념에 비추어 보 면 창세기의 첫 두 장에서 아담이 달성해야 할 목표가 완성에 이르게
하는 종말론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원래 종말론이 구원론보다 앞섰지만 이제 타락과 함께 종말론이 죄에서의 회복과 그
에 이어지는 영원한 새 창조의 완성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타락 전 에덴을 “반( 半 ) 종말론적” 또는 “개시된 종말론적” 상태라고
16 ) 성전인 에덴과 제사장 왕인 아담이라는 개념은 7장 I.A(“에덴의 왕 아담”)-E(“왕-제사장인 아담 의 실패”)를 참고하라.
17 ) 여기서 나는 Vos, EschatologyoftheOldTestament, 74–75를 따른다.
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타락 전 상태의 조건
과 복을 하나님이 영구적이고 파괴되지 않는 창조로 높이심으로써 종
말론적으로 완성되어야 할 상태다. 따라서 죄가 있기 전 에덴에 있던
아담과 하와의 원래 지복 상태는 “종말론적 잠재력”18 ) 또는 “[종말론
적] 충만함의 자존적인 전조”19 ) 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이는 그들이 복
받은 상태에 있음을 이들에게 영구적으로 확인해 줌으로써 실현되도
록 고안되었다.20 ) 특히 아담과 하와가 창조될 때 받은 하나님의 형상에
는 실현해야 할 종말론적 잠재력이 포함되어 있다.21 ) 죄는 없었지만 여
전히 죄를 지을 수 있었던 그들의 첫 삶은 영원한 생명으로 확인되어야
했다.22 ) 아담의 최초 왕권과 하나님 영광의 최초 반영은 “왕국 영광의
종말론적 진보”를 경험하는 것이었다.23 ) 불순종이 시작되기 전 에덴과
땅의 환경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원래의 에덴과 그 안에서
아담과 하와의 언약 질서의 목표는 그 복이 더 큰 복 가운데 종말론적
으로 완성되는 것이었다.24 ) 이 종말론적 완성의 다양한 특징에 대해서
는 이미 앞 단원에서 대략 설명했다.
이는 시원론( protology ) 은 종말론을 전제로 하며, 시작은 끝을 암시
한다는 말이다. 아담과 하와는 불충실로 인해 결코 끝에 이르지 못
했다. 그 후 성경에 나오는 타락 전 에덴으로의 복귀와 완성의 시작을
“개시된 종말론”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며, 그 상태의 최종 완성은
옛 창조가 파괴되고 새 창조가 영원히 확립되는 완성된 종말론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회고적 관점에서 볼 때 아담과 에덴의 원래
상태는 새 창조의 확대된 조건의 원형이 되며, 구약 시대의 특정 후속
역사 기록에서 반복적으로 소개되어 나타나는 것이 그러한 조건이다.
이렇게 나타난 개시된 종말론의 에피소드들은 완성된 마지막 때의 상
18 ) Kline, KingdomPrologue, 113.
19 ) Kline, KingdomPrologue, 111.
20 ) Kline, KingdomPrologue, 104.
21 ) Kline, KingdomPrologue, 101; 또한 96, 98, 111 참고.
22 ) Kline, KingdomPrologue, 114.
23 ) Kline, KingdomPrologue, 104.
24 ) Kline, KingdomPrologue, 101.
태로 구체화하지 않으며, 후대의 구약 저술가들은 이를 종말론적 원형
으로 간주하게 된다. 나중에 논하겠지만, 그리스도가 초림하실 때 이
미 개시된 종말론적 상태에 있었으며, 그 상태는 그리스도가 영구적으
로 영광스러운 새 창조 왕국에서 최종 재림하실 때 사실상 절정에 달할
것이다. 따라서 에덴에서 아담의 실패와 새 창조의 시작과 실패에 대한
구약의 다른 패턴은 그리스도 안에서 마침내 성공적으로 성취되는 것
에 대한 모형론적 예표가 된다( 예. 롬 5:14; 고전 15:45 참고 ).
에덴에 대해 바로 앞에서 설명한 것이 실현 가능한지를 묻는 것은
창세기 1-3장에서 종말론적 정점 또는 상태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과
정을 식별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거나 아담과 하와가 계속 신실했
더라면 완전히 동일한 조건에서 영원히 계속 살았을 것인지를 묻는 것
이다. 나는 전자가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혹자는 종말론을 “이 세상 시간의 끝이며……세계 역사의 범위를 넘
어서는 사건에서 역사 과정의 완성”이라고 좁게 정의한다.25 )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구약 종말론에 대한 정의는 대부분 이전의 죄악 된 역
사 과정과 중대하고 결정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불연속성이 있는 상태
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런 상태에서는 근본적으로 변화된 사람( 사
함 받고 새롭게 창조된 사람 ) 과 사회( 메시아적 인물이 이끌고 시온을 중심으로 하는 회복 된 이스라엘과 나라들 ) 와 자연( 새롭게 된 피조물 ) 이 존재할 것이다. 이것은 유용
한 정의지만 이는 종말론이 미래의 상황에 대한 것일 뿐이라는 의미다.
나는 구약 자체에 일시적인 의미의 개시된 종말론 또는 반종말론적 상
태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그러한 상태가 완성된 미래 상태 전에
존재할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명백히 종말론적인 상태는 그리스도의 초림까지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진정한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위의 종말론 정의에는 미래 의 상태가 진정으로 종말론적 상태가 되려면 그것을 되돌릴 수 없어야 한다는 개념이 추가되어야 한다.
구약 역사의 주요 에피소드는 새 창조의 시작에서 왕권이 시작하는
25 ) Von Rad, OldTestamentTheology, 2:114.
패턴이 반복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구약의 이런 후속 에피소
드는 결코 완료되지 않는 마지막 때의 과정을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을 나타낸다. 타락 전 에덴과 달리 타락 후 죄악 된 세계에서는 죄
에서 회복의 시작 과정이 종말론적 완성을 향한 시작 개념으로 가득 찰
것이라고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다. 이사야의 새 창조에 대한 예언( 예.
사 65:17; 66:22 ) 이 이스라엘이 유배에서 돌아오는 과정 가운데 묘사되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이사야는 이를 확장된 새 창조의 과정이 아닌 명백히 단일
한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 이스라엘이 유배에서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은
“말일에” 일어날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된다( 신 4:30; 31:29; 호 3:5; 아마
렘 23:20; 30:24도 여기에 포함할 수 있으며, 특히 후자는 31:1-40에 비추어 볼 때 그렇다 ) 그럼에도 종말론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이전 시대에 대해 상당
한 불연속성을 갖는 후기의 종말론으로 정의하는 것이 에덴의 원시 종
말론에 대한 나의 정의와 모순되지는 않을 것이다. 에덴의 완성 전 단
계는 죄의 오염은 없었지만, 위에서 자세히 설명한 다음과 같은 확대된
조건들로 인해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해야 했다.
1. 악에 대한 승리
2. 죄를 짓지 않게 해 주는 궁극적인 안전
3. 몸의 썩어짐을 막는 보호
4. 피조물의 썩어짐을 막는 보호
5. 결혼을 초월하는 것조차 인류가 영원한 상태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될 것이라는 예표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에덴 이후 다른 구약 에피소드도 에덴의 조건을 회복하고 최종 완성
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다. ( 비록
실패했지만 ) 이런 잠재적 종말론에 유사한 내러티브는 후대의 구약 저자
들과 신약에서 미래의 어느 시점에 마침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이루
어질 종말을 예표하는 패턴으로 여겨지게 된다.
을 연구하면 이에 대한
관념을 이해할 수 있다. 창세기 49장 1절, 민수기 24장 14절, 신명기
4장 30절, 31장 29절, 이사야 2장 2절, 41장 22-23절, 예레미야 23장
20절, 48장 47절, 49장 39절, 에스겔 38장 14-16절, 다니엘 2장 2829, 45절, 8장 17절, 10장 14절, 12장 4, 13절, 호세아 3장 5절, 미가
4장 1-4절.27 )
F. 종말론적 새 창조에서 아담 자손 왕에 대한 결론28 )
케어드의 저술 중에 “종말론의 언어”라는 제목의 유용한 단원이 있다.29 ) 케어드는 종말론에 대해 세 가지 범주로 정의를 내린다.
1. 성경 기자들은 세상은 과거에 시작했고 미래에는 끝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내용 그대로 믿었다.
2. 그들은 정식으로 “세상의 종말”이라는 말을 은유적으로 사용 하여 그것이 세상의 종말은 아니라는 것을 자기들도 잘 알고 있음을 알린다.
3. 다른 모든 은유 사용이 그런 것처럼, 청자 입장에서는 이를 글자 그대로 오해할 소지도 있고, 화자 입장에서는 매개체와 취지30 )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질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31 )
26 ) 하지만 구약에는 종말론 전문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종말론 개념을 나타내는 구절이 다수 있다.
27 ) 이런 종말론 언급 각각에 대한 분석은 Beale, NTBT, 92–111을 참고하라.
28 ) 이 부분은 Beale, NTBT, 112–116을 기반으로 한다.
29 ) Caird, LanguageandImageryoftheBible, 243–271.
30 ) 은유에서 “매개체”(vehicle)는 그림을 가리키고 “취지”(tenor)는 그림에 비춰진 피사체 또는 주 체를 가리킨다. 예. “헤롯[주체 또는 취지]은 여우[매개체 또는 그림]다.”
31 ) Caird, LanguageandImageryoftheBible, 2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