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아내, 시영 김준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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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내 시영 김준 Shadow of Poetry, Jun Kim

2018



시인의 아내 시영 김준 Shadow of Poetry, Jun Kim


시인의 아내, 시영詩影 김준展을 기획하며

25세의 경성사범학교 물리 선생 조병화와 23세의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졸업반 김준은 해방되고 한 달이 채 안 되는 1945년 9월 13일에 결혼하였습니다. 신부가 받 은 예물은 시어머니 진종여사가 끼시던 은가락지가 전부였습니다.“둘이 다 고급교 육을 받았기 때문에 두 손, 두 손 합하면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해방 직후의 혼란과 열악한 연구 환경에 절망한 자연과학도 조병화는 시에서 새 길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첫 시집『버리고 싶은 유산』(1949.7)을“이 작은 시집을 삼 가 김준님께 드리나이다”라고 적어 아내에게 헌정하였습니다. 아내의 호는 시영詩影 이었는데, 진명여학교 시절 지리선생님이 지어 주셨다 합니다. 아마도 여의사 김준 은 운명적으로 시인의 아내이었나 봅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성격차로, 취미차로, 인생관차로, 서로 강한 자존심으로 많 이도 싸웠지만, 서로 인내로, 인내로, 한 집안을 지켜왔습니다 … 실로 아내와 나와 는 현실과 꿈의 싸움이었습니다. 물질과 정신의 싸움이었습니다 … 현실이 주는 고 독은 나의 시를 다산시킨 겁니다 … 내 개인적인 운명이 주는 고독과 내가 처하고 있 는 한국적 역사의 비극이 주는 고독 등이 범벅이 되어 나의 존재는 시로서 응결되어 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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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먼저 간 아내에게 용서를 빌면서“나는 시를 쓰면서 아내에게 참으로 아 픔도 많이 주었습니다. 아내의 호號대로 아내는 나의 그늘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어서 눈물이 납니다.” 살면서 당신에게 사랑이 아니라 눈물이었다면 용서하소서 살면서 당신에게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었다면 용서하소서 살면서 당신에게 그리움이 아니라 미움이었다면 용서하소서 살면서 당신에게 사랑이 아니라 노염이었다면 용서하소서 내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당신의 외로움이 되었습니다 내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당신의 아픔이 되었습니다 내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당신의 상처가 되었습니다 내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당신의 노염이 되었습니다 조병화문학관은 시영 김준(1923.4.13∼1998.3.13)의 20주기를 맞이하여 사진 속 에서, 유품 속에서, 그녀가 시인의 아내로, 4남매의 어머니로, 여의사로 살아온 여정 을 더듬어보며 그녀의 헌신적인 생을 기리기 위하여 이 전시를 기획하였습니다. 우 리 문학사에 우뚝 선 한 시인의 그림자로 살다 간 시영 김준展에 함께하여 주시기 바 랍니다. 2018년 초여름 조병화문학관 관장 조 진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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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가족 (1937) 뒷줄 왼쪽부터 김준, 오빠 김재항과 부인, 언니 김혜자 앞줄 왼쪽부터 어머니 윤동성, 아버지 김기정과 조카 김관현, 둘째 어머니


table of

contents 07

학창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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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내 시영 약혼·결혼 인천시절 부산시절 서울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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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중심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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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김준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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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타원 김정해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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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영을 떠나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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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의 흔적들



학창시절


성광강습소에서, 1930년대 초. 충남 예산 (4번째 줄 오른쪽에서 3번째가 김준)

김준,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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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공립보통학교 친구들과, 1935. 충남 예산. (오른쪽에서 2번째가 김준)


예산공립보통학교, 1936년. 충남 예산 (3번째 줄 오른쪽에서 5번째가 김준)

예산공립보통학교 수학여행, 1936. 경성 (2번째 줄 왼쪽에서 5번째가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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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공립보통학교 졸업기념, 1937. 충남 예산 (2번째 줄 오른쪽에서 2번째가 김준)

예산공립보통학교 졸업증서, 1937.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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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고등여학교 친구들과 스케이트를 타고, 1940. 서울 (가운데가 김준)

진명고등여학교 육상팀과, 1940. 서울 (앞줄 가운데가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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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고등여학교 육상팀과, 1940. 서울 (뒷줄 오른쪽 네 번째가 김준)

육상부 원반던지기 선수 시절, 1940.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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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고등여학교 졸업 앨범 사진, 1941. 서울


진명고등여학교 개근상장, 1941. 3. 22

개근상 부상 화병

진명고등여학교 졸업증서, 1941. 3. 22

경보대회 합격증서, 1940.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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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교우들과, 1945. 서울 (오른쪽 첫번째가 김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교정에서, 1945.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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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재학시절, 1945. 서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졸업증서, 1945.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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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내 시영


약혼·결혼

총각 조병화 맞선 사진, 1945. 서울

약혼시절, 1945.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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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김준 맞선 사진, 1945. 서울

결혼식날 친구들과, 1945. 9. 13. 서울 태고사


결혼식날 양가 가족, 신랑 신부 들러리들과, 1945. 9. 13. 서울 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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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절

『버리고 싶은 유산』 1949.7. 1, 산호장

헌사 이 작은 시집詩集을 삼가 김준金埈님께 드리나이다. 준埈께 질서와 방향을 잊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하나 살지 않는 이 세상에 이 소포가 님이 계신 벽촌까지 잘 찾아 들어 갈는지 불안하여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이 말 저 말 묵묵한 이 소 포를 대신하여 몇 자 적어 올릴까 합니다. 여러 가지로 주저스러운 심정을 다듬어 안고 긴 세월 호올로 소소素素한 몇 작품들을 주워 모아 당돌하게도 포장을 다 끝마치고 보니, 넣었더라면 아니 넣었더라면 이러한 미련과 후 회가 잔물결같이 연거푸 밀려 들어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무슨 양심에 거리끼는 그러한 일이라도 저질러 놓은 사람 같기도 합니다. 이 소품들은 모두 어느 뚜렷한 혈통과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고향을 가지지 못한 어 느‘시대의 기형아’같은, 혹은 어느 유전병 환자 같기도 한, 태양의 조류에 뒤떨어진 그러 한 미개한 지역에 방황을 하고 있는 어색한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시대의 기형아’또다시‘시절을 잃은 의상’그것이라도 나에게 끝없는 위안과 휴 식을 봉사하였기에 나만이라도 무한히 사랑하고 싶었고 아끼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나’그 자체였기에.... ‘나’그것의 긍정과 부정 그리고 그의 조화로운 타협 - 아 그렇습니다. 희망과 절망의 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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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운명의 파동을 타고 나를 괴롭히던 날의 흥분 권태 허무 그리고 호사스러운 체념에 잠기 어 영원의 안식을 무한히 호흡하던 그러한 날의 고독한 자화상이었기에……. 고독과 우울과 표박漂泊, 또한 언제나 혼란과 고뇌로 나의 모든 어린 신경을 짓밟아 놓은 생 의 위협 그리고 그의 공포, 그러한 것의 간헐적인 내습…, 그런 날의 농회색 바다와 하늘이 얼마나 원한이었고 위안이었던가. 바다와 소라와 나 - 나의 허전한 운명. 그러나 해와 달이 가고 가던 어느 날 내가 소라의 갑라甲갥를 벗어버리고 대도시 한가운데 어린 담수어와 같이 헤엄치길 배워가던 날 나는 새로운‘그 무엇’의 예고를 떨리는 가슴에 홈빡 안고‘나’를 잊어버릴 지경이었습니다. ‘무거운 유산을 버리자.’ ‘불안한 안식일의 그 유산을 버리자.’ 준埈이 나는 다만 내 자신 속 깊이 자연히 생성生成하여 가는 그것을 살려고 애쓸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그리 어려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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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의 위안』 1950. 4. 13 산호장

후기 제2신, 준埈에게 유산遺産을 버린 나는 인생의‘제로’로 돌아 와서 시간과 같은 중량을 느꼈다, 중량 속에서 생명과 나 사이의 사랑문을 왕래하며 가끔 쫓겨난 향수처럼 유산遺産을 그리 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불안할수록 접근해지는 생명을 비비고 생명의 탈피脫皮처럼 나 의 시는 모였다. 호올로는 살지 못할 나는 밤새 다시 편지를 쓰고 이 탈피들을 다듬 어 꼭 꼭 묶었다. 이 소포가 다시금 준埈의 가는 손으로 풀릴 때 준埈이 - 시詩보다 꽉 찬 나의 숨소리는 이 소포와는 또 다시 먼 어느 곳에 파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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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진형 첫돌날 인천중학교 제자들과, 1947. 11. 8. 인천

인천박물관 앞에서, 1949.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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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시인의 친구들과, 1950. 인천

인천중학교 교사들과, 1950.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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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절

준埈에게 알리는 글 간헐적으로 오는 자기분열 -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아무래도 허무와 같은 그것인데 - 그러한‘생의 종말적인 광 장’에서 많은 연령을 배회했다. 『버리고 싶은 유산』이고,『하루만의 위안』이고, 이러한 나의 작품들은 모두 그러한 과묵한 광장에서 자기부정을 위 주로 한 한 개의 자기긍정으로 빚어 낸 작은 내 신앙이었다. 이번 이『패각의 침실』을 다시 엮는 그 이유는 생리적으

『패각의 침실』 1952. 8. 18, 정음사

로 오는 고독감에서 그‘생의 종말적인 광장’을 이제 한번 정리하고 내가 그 어느 사람이 사는 장소로 이동을 해 볼까 하는 - 내 깐에는 그 마음의 준비라는 심산心算에 불과하다. 이러한 삼차적인 단계는 결코 그 어느 이론도 아니고 다만 내 생리에 있어서의 필연적 인 과정이었다. 나의 시는 내게 있어서 그 어느 생의 과장도 아니요 철학도 아니다. 다만 살아있는 생물 들이 그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작은 종교인 것이다. 현대를 진실로 살아가는 그 많은 생활인 의 생리적인 고백인지도 모른다. 나는 내 이러한 시의 광장을 무리無理로 확대시키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 광장에 자기도 모르게 휩쓸려 든 나의 친구 나의 벗 그 인간들에게 한 모금의 깊은 산중山中그 약수가 되었 으면 한다. 이 시집은 원래 1951년 가을에 출판되기로 되었던 것인데 출판계 사정으로 금일에 이 르렀던 것이다. 따라서 이 시집 속에 있는 작품들은 6·25동란 직전으로부터 『 ( 하루만의 위안』이후) 부산으로 피난을 한 송도 생활 즉, 1952년 6월까지의 작품들이다. 이 시집을 삼 부작으로 한 것은 내 생리적인 감각에서 온 것이다. 준埈에게 부탁하는 것은 이 시집을 간행해 주시는 최영해 형을 위주로 해서 이 시기에 있어 같은 체온 속에 하루 하루의 황혼을 맞이하던 김소운 선생, 이경성 형, 김은성 형, 김 중업 형…. 그리고 인생의 벗 주막의 여인곂人 김광주 형에게 마음의 뜻을 같이 합시다. 끝으로 여러 가지 곤란 중에 흔연히 이 시집의 조판인쇄를 맡아 주신 경향신문사 정만 봉 선생께 감사를 합시다. 1952년 초하, 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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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각의 침실(House of Shell), 1951. 부산

패각의 침실 문패 앞에서, 조병화 시인

패각의 침실, 1953. 송도, 부산

부산 송도에서 살던 집, 조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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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절

‘사랑이 가기 전에’출판기념회에서 왼쪽부터 김준, 신상초(언론,정치인), 조병화, 선우휘(소설가), 1956. 1. 8. 서울

유럽 여행 마치고 귀국한 조 시인을 마중하며, 1959. 여의도 공항,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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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자유문학상 수상 자축회에서 가족 친지들과, 1960. 1. 19. 서울

설악산에 올라, 1961. 강원도

『먼지와 바람사이』출판기념식에서 가족들과, 1972.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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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실리에서, 1973, 경기도 안성

제1회 조병화 유화전 개막식,1973, 신문회관, 서울

시인협회상 수상식장에서, 1974. 4. 20. 다보호텔, 경주

서울시 문화상 수상식장, 1981. 서울

샌프란시스코 세계시인대회 참석, 1981. 7

시어머니 진종여사를 위한“해마다 봄이 되면” 시비를 세우고, 1984. 5. 2. 안성 난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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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차 세계시인대회에 참가하고, 1984. 10. 모로코

세계시인대회를 마치고 몽마르뜨 언덕에서, 1984. 10. 파리

제30회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수상한 조시인과, 1985. 9. 서울

정년퇴임 기념문집 헌증식에서, 1986. 8.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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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시인의 유화전 개막식, 1986. 10. 4. 표화랑, 서울


괴테 박물관, 1989. 독일

모차르트 기념비, 1989. 오스트리아

‘3·1문화상’시상식에서, 1990. 3. 1. 서울

조 시인의 고희기념 미술전에서 가족과, 1990. 3. 27

‘편운 조병화 시인의 밤’행사를 마치고, 1994. 북촌 창우극장,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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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선, 병기, 병화 3형제 부부, 1969 한식날. 안성 편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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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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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진형과, 1950. 인천

윗줄 조병화, 김준, 가운데 줄 큰 시아주버니 조병선과 아내, 시어머니 진종, 아랫줄 조카 수남, 수구, 아들 진형, 딸 원, 양, 1955. 명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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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들과, 1953. 서울

덕수궁에서 원, 양, 영과, 1956. 서울


친정오빠집에서 가족들과, 1950년대 중반 정월. 서울 한남동

시어머니 진종 여사 팔순잔치날, 1961. 서울 내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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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딸 양 혜화국민학교 졸업식, 1963. 서울

막내딸 영 혜화유치원 졸업기념, 1961. 서울

맏딸 원 경기여고 졸업기념, 1967.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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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진형 미국 유학기념, 1965. 서울

맏딸 원 연세의대 졸업식장에서, 1974. 서울


아들 진형 결혼식, 1972. 수운회관, 서울

둘째 딸 양 결혼식, 1973. 신라호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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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 원을 미국으로 떠나 보내며, 1975. 김포공항, 김포

막내딸 영 결혼식, 1977.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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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회갑연, 1981. 5. 2. 서울

김준 회갑 기념, 1983.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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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성환 손녀 성인과, 1984. 2. 14. 매디슨 위스컨신, 미국

친정아버지 묘소에서 왼쪽부터 조병화, 김준, 언니 김혜자, 형부 이남신, 1984. 충남 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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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 원 결혼식을 마치고, 1988, 미국

김준 고희 기념, 1993. 신라호텔, 서울

조병화·김준 금혼식, 1995. 신라호텔,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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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김 선생의 왕진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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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김준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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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각의 침실(병원 겸 살림집), 김중업 건축가의 첫 작품,1951. 부산 송도

경성여의전 친구들과, 1951. 송도의원,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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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의원 앞에서 조병화 시인, 1951. 부산


백중병원 원장, 김준, 둘째딸 조양, 1950년대

원금순 선생, 윤선생, 김준. 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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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107번지 병원 2층 서재에서, 1959. 서울

혜화동 107번지에 서울부인과의원을 신축하고, 1959.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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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여의전 친구들과, 1963, 서울

유럽여행, 1964. 스페인 톨리도

김인순 선생과 유럽여행, 1964. 이태리 베니스

쉔브런 궁전, 1964. 오스트리아 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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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로터리에 김산부인과의원을 신축하고, 1965. 서울

우석대학교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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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박사학위 취득기념, 1971. 서울


김산부인과의원 앞에서, 1979. 서울

국제 생식 내분비학 학술대회 참가자들과, 1988. 11. 2 ~ 6. 북경,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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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조수 임명장, 1945. 10. 1

인천 김산부인과의원 진료소 개설 허가증, 1947. 11. 8

부산 송도의원 개설 통지, 1952. 12. 9

의사면허증, 조선주둔미국군정청보건후생국. 1946. 7. 25

의사면허증 1973.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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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면허증 1974. 9. 24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증 1974. 10. 19


서울산부인과의원 원개설 신고필증, 1971. 6. 10

서울산부인과의원 의료기관 개설 신고필증, 1971. 6. 10

대한산부인과학회 정회원 인증서, 1966.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우회 이사 위촉장, 1983. 1. 1

인구 및 가족계획에 관한 전국 여의사대회 이수증서, 1975. 11. 9

전문의사기초훈련 과정 수료증, 1976. 3. 2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위촉장, 1986.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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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타원 김정해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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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타원 법호 수여식, 1982. 8

원불교 서울교구 합동회갑식,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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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하와이 교당에서, 1984. 2. 하와이 호놀룰루

원불교 본산을 찾아, 1987. 1. 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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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타원 김정혜 정사 장례식, 1998. 3. 안성

정타원 김정해 정사의 열반 계기로 신설된 원불교 안성교당, 2000. 7. 9.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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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타원 김정해 정사 발인식 책자, 1998. 3.15.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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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장례식, 1998. 3. 15. 안성 난실리 편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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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영을 떠나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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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방

지금, 아내의 방은 텅 비어 있습니다 병원으로 떠난 지 벌써 며칠 집으로 돌아올 기별은 멀고 매일 밤 들여다 보는 아내의 방은 어둠만 자욱히 깔리고 『아내의 방』 1997. 5. 2. 동문선

텅 비어 고요하기만 합니다 암은, 저 세상으로 떠나는 순번이라는데 아내도 그 순번을 지나고 제 집, 제 방을 떠나서 남의 집, 남의 방, 멀리 낯 설은 곳에 누워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되어서, 이렇게 차례 차례 순서를 밟으며 헤어지며 아주 이 세상에서 멀리 헤어져 간다고 하지만 서로 같이 살던 세월이 아쉽습니다 사랑하며, 다투며, 참으며, 견디며, 정으로 살아온 세월 아, 세월은 이러한 것을 매일 밤 들여다 보는 아내의 방은, 지금 싸늘하게 어둠만 깔려 그저 텅 비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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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께서도

신께서도 불가능한 것이 있는지 아무리 소원을 올려도, 공들여 빌어도, 정성을 다하여 손을 비벼도,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인간의 소원엔 들어 줄 소원이 있고,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1997. 11. 27. 동문선

들어 줄 수 없는 소원이 있고, 가려서 가려서 처사를 하시는지 신은 말이 없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낮이나 밤이나 올리는 가련한 인간의 애절한 소원, 죽음을 가볍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것, 신의 뜻대로 하겠습니다만 신에게도 불가능한 일이 있을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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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노래·52 살면서 당신에게 사랑이 아니라 눈물이었다면 용서하소서 살면서 당신에게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었다면 용서하소서 살면서 당신에게 그리움이 아니라 미움이었다면 용서하소서 살면서 당신에게 사랑이 아니라 노염이었다면 용서하소서

『황혼의 노래』 1997. 10. 20. 마을

황혼의 노래·53 나에겐 너무나 외로움과 그리움이 많아서 그것을 다 살려다가 당신에게 소홀했습니다 나에겐 너무나 슬픔과 그리움이 많아서 그것을 다 살려다가 당신에게도 슬픔이 되었습니다.

황혼의 노래·54 내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당신의 외로움이 되었습니다 내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당신의 아픔이 되었습니다 내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당신의 상처가 되었습니다 아, 내 마음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당신의 노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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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연을 돌려보내는 기도

한 번 맺어진 인연도 하나 하나 고맙게 돌려보내기 위해서 남은 나의 생명을 고요한 기도로 살아가옵니다 참으로 많은 인연 그 인연을 서로 나누면서 그 인연으로 살아옴에

『먼 약속』 1998. 4. 30. 마을

서운한 점 있었다면 그것을, 깊은 그 인연에 깊이 보답치 못했다면 그것을, 인간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 너그러이 생각하시어 그것을 다 잊으시고 용서하여 주시길 비옵니다 나뭇잎과 바람 바람과 구름 구름과 하늘 천지만물 무상無常한 자리 무상한 인간의 인연 그 무상한 인연의 눈물로 용서하시길 비옵니다 아, 무명無明한 탓으로 변화무상한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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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장례식장, 1998. 3. 14. 삼성의료원,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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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관식을 마치고, 1998. 3. 15. 안성 난실리 편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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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영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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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준(1923.04.13 ~ 1998.03.13)

1923. 04. 13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산정리에서 부여 및 서천 군수를 지낸 부 김기정과 모 윤동성의 3남2녀 중 2녀로 출생

1937. 03. 31

예산공립보통학교 졸업

1941. 03. 22

진명고등여학교 졸업

1945. 09. 13

조병화와 결혼

1945. 09. 29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졸업

1945. 10. ~ 1950. 06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 외과조수

1946. 07. 25

의사면허증 취득

1946. 11. 08

장남 진형 출생

1947. 08.

서울 혜화동에서 인천시 관동으로 이사

1947. 11. 08

김산부인과의원 개원. 인천시 관동 3가 3번지

1949. 03. 11

장녀 원 출생

1950. 10. ~ 1953. 09

송도의원 개업 부산시 암남동 178번지

1951. 08. 15

2녀 양 출생

1953. 09.

서울 환도

1955

서울 혜화동에 김산부인과 개원

1955. 08. 13

3녀 영 출생

1956

서울 혜화동 107번지로 서울산부인과 이전

1956. 10 ~ 1959. 02

수도의과대학 부속병원 산부인과 수련의

1959. 02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증 취득

1968. 03 - 1970. 03

우석대학교 대학원 연구생

1971. 02

우석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학위 취득

1998. 03. 13

타계

1998. 03. 15

발인식(삼성의료원), 안성 난실리 편운동산에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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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ow of Poetry, Jun Kim

시인의 아내 시영 김준展 2018.6.16 ~ 10.31

기획 조진형·김용정

진행 오정교

발행일 2018.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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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내 시영 김준 조병화문학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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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아내 시영 김준 Shadow of Poetry, Jun Ki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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