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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코리안 페스티벌’이 10 월 23일 맨해튼 유니온스퀘어파 크에서 개최된다. [뉴욕일보 9월 20일자 A2면-’뉴욕한인회, 10월 23일 코리안페스티벌 개최’제하 기사 참조] 이 자리에 한국을 대 표하는 수준 높은 전통 문화 공연 을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 가 마련된다.세종대왕기념사업회 채향순 세종전통예술단(대표 채향순)이 오는 10월 23일 개최되는 뉴욕일 원 한인사회 최대 축제‘2022 코 리안 페스티벌’특설무대에 오른 다. 채향순세종전통예술단은 한 국 전통 예술을 기반으로 창의적 이고도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 는 단체로 이번 공연은 미동부국 악협회(회장 음갑선)의 준비와 추 진으로 인해 이뤄졌다. 이번에 선 보이는 공연은‘천강에 춤추는 달’로 세종대왕의 위업인 한글의 아름다움을 전통의 요체인 춤과 타악, 소리로 재구성해 민족혼의 정수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공연은 안무는 채향순 대표 가, 소리는 송재영 전주대사습놀 이보존회 이사장이 맡아 진행하 며 1부와 2부로 나뉘어 선보이고 한국에서 20여 명이 넘는 채향순 세종전통예술단 단원이 함께 한 다. 1부에서는 궁궐 안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하고 화려함이 돋보이 는 태평무를 비롯해 국가중요무 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승무, 고도의 기교가 특징인 시나위춤, 무녀들이 복을 비는 마음을 새롭 게 풀어낸 푸너리춤, 움직이는 북 을 통해 신명나게 우리 가락을 풀 어낸 동고무, 그리고 탈춤과 기악 연주 등 다양한 전통춤의 향연이 펼쳐진다2부에서는 한민족의 토속적 인 민속 가락과 흥겨운 민속놀음 으로 구성된 엿가위춤과, 어사가 돼 춘향의 집으로 찾아가 월매와 만나는 판소리 춘향가 어사상봉 대목,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멋과 흥을 해학의 몸짓으로 표현한 한 량무, 화려한 색채의 감동적인 아 름다움을 창출한 부채춤 이외에 도 검무, 진쇠춤, 풍물의 소리 등 이 당일 현장을 아름답게 수놓는 다. 채향순 대표는“이번 공연은 한국의 국격을 높이고 세계에 감 동을 전할 브랜드 공연으로, 한국 의 그윽한 정서와 신명이 내재돼 있다”고 소개했다. 또“이번에 선 보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은 이미 한국에서 많은 찬사를 받은 검증 된 작품으로 관람객들께 큰 감동 을 선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 했다. 공연을 위해 주도적인 노력 을 한 뉴욕한인회 차석부회장이 기도 한 음갑선 미동부국악협회 장은“이번 공연은 한국 전통 예 술을 보존하고 선양하는 채향순 세종전통예술단이 함께 하는 것 으로 한국의 대표하는 예술성 높 은 다양한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라 고 전했다. 찰스 윤 뉴욕한인회장은“좋 은 문화 공연이 마련된 만큼 많은 동포들이 함께 하여 이날을 즐기 고 한국 문화의 정수를 만끽했으 면 좋겠다”며,“이를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후세들의 관심 과 성원이 더욱 커지고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공연은 행사장을 찾는 관람객 이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한편 뉴욕한인회(회장 찰스 윤)는 10월 23일 2022 코리안 페스 티벌 행사의 부스 신청을 받고 있 다. 부스 참여는 가로 및 세로 10 피트 사이즈가 1,500 달러며, 부스 이외 행사 후원도 할 수 있다. 관련 내용은 뉴욕한인회 웹사 이트 www kaagny org 또는 뉴욕 한인회 전화 212-255 6969, 이메 일 office@nykorean org로 확인 할 수 있다. ▶ 관련기사 A5(미국1)면, A8(한국2) 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 도(Fed·연준)가 21일 기준금리 를 또 0.75%포인트 인상했다. 가파른 금리 인상에도 인플레 이션이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자 이례적으로 3번 연속 자이언트 스 텝(한 번에 기준금리를 0.75%포 인트 인상하는 것)에 나선 것이 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기준금리가 3.00 3.25%로 오르게 돼 한 달 만 에 다시 한국 금리를 크게 넘어서 면서 한국 경제에 자본 유출 등에 따른 피해가 우려된다. 연준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 원회(FOMC) 정례회의 뒤 성명 을 내고 기준금리를 0.75% 포인 트 또 올린다고 밝혔다. 이에 따 라 현재 2.25~2.50%인 기준금리 는 3.00 3.25%로 인상됐다. <A3면에서 계속> 美, 이례적 3연속 자이언트 스텝… 韓美 금리 한 달만에 재역전 뉴욕한인회, 10월23일 맨해튼 유니온스퀘어파크서‘코리안 페스티벌’개최 한국서 온 채향순세종전통예술단‘천강에 춤추는 달’특별공연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1일 기준금리를 또 0.75%포인트 인상 했다. 사진은기자회견 하는 파월 연준 의장 10월23일 맨해튼 유니온스퀘어파크에서 열리는‘코리안 페스티벌’을 알리는 포 스터 채향순세종전통예술단 채향순 대표 한미 기준금리 추이 채향순세종전통예술단 올해말 금리 4.4% 전망… 올해 최소 한 차례 더 자이언트 스텝 올해말 물가상승률 5.4%로 상향… 성장률 1.7%→0.2%로 대폭 하향 美 금리 3.00~3.25%로 2008년 이후 최고… 韓, 금리 인상 불가피할듯 < 미국COVID-19 집계 : 9월 21일 오후 6시30분 현재 Worldometer발표 97,721,71947,8431,080,356>6,249,4734,02472,0002,719,3583,73834,694 최고 71도 최저 55도 9월 24일(토)9월 23일(금) 최고 64도 최저 51도 1,433.041,383.76 1,422.20 1,394.60 N/A1,392.68 9월 22일 오후 12시 기준(한국시각) 9월 22일(목) 최고 74도 최저 50도 비 흐림 2022년 9월 22일 제보목요일 문의 대표전화 (718) 939-0047/0082THEKOREANNEWYORKDAILYThursday September 22, 2022 <제 5295호 > www.newyorkilbo.com 맑음
민권센터가 가입해 함께 활동 하고 있는 전국 한인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권익단체(NAKASEC)’는서류미비자합법화를위한이민법개혁촉구로비활동을줄기차게벌이고있다.NAKASEC은△뉴욕민권센터△펜실베이니아우리센터△버지니아함께센터△일리노이하나센터△텍사스우리훈또스가지역단체로가입해함께활동하는전국단체이다.NAKASEC은최근지역단체들과함께지난7월연방하원에상정된‘7년이상미국거주서류미비자’에게영주권신청기회를주는‘1929년이민법이민규정 갱신 법안’지지 촉구 로비활동을 펼치고이법안은있다. 1972년으로 묶여 있 는 영주권 등록 제도의 조항을 바 꿔 7년 이상 미국에 계속 거주한 서류미비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영 주권 신청 기회를 주는 내용을 담 고 있다. 현재는 1972년 1월 1일부 터 미국에 거주한 서류미비자들 이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는데 만약 이 법이 올해 제정되면 2015 년부터 미국에 거주한 서류미비 자는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적어도 서류미비 자 1100만 명 가운데 800만여 명이 합법 신분을 얻을 수 있다. 뉴욕과 뉴저지주에서는 민권 센터가 주축이 돼 로비활동을 펼 치고 다른 주들에서도 가입단체 들이 NAKASEC과 협력해 온라 인으로 각 지역의 의원 또는 의원 보좌관들과 만나고 있다. 지난 19 일까지 연방하원의원 13명에게 법안 지지를 NAKASEC촉구했다.만난 의원들은 △그레고리 믹스(뉴욕) 톰 수오 지(뉴욕) △하킴 제프리스(뉴욕) △캐슬린 라이스(뉴욕) △도널드 패인 주니어(뉴저지) △빌 파스 크렐(뉴저지) △미키 셰릴(뉴저 지) △수잔 와일드(펜실베이니 아) △마델레인 딘(펜실베이니 아) △크리시 호울라한(펜실베이 니아) △드와이트 에반스(펜실베 이니아) △셰일라 잭슨 리(텍사 스) △알 그린(텍사스) △콜린 올 레드(텍사스) △엘리자베스 플레 처(텍사스) △돈 베이어(버지니 아)현재등이다.이 법안은 연방하원의원 58명이 지지하며 공동 발의자로 참여하고NAKASEC은있다. 의원들의 지역 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꼭 초대 해서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의원들이 지역구 주민들이 지지하는 이 법안에 더 신경을 쓰 도록 만드는 것이다. 로비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한인은 민권센터 로 연락하면 된다. △문의: 민권센터의 여러 활동 에 대한 문의는 전화(718-4605600) 또는 카카오톡 면K)에(http://pf.kakao.com/_dEJxc채널가입한뒤1:1채팅으로하된다. 9월 20일은‘전국 유권자 등록 의 날’이었다. 민권센터는 이날을 맞아 뉴욕, 뉴저지 일원에서 유권 자 등록운동을 민권센터는펼쳤다.“정치 과정에 주 민들의 목소리가 전달되게하려면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한다. 뉴욕주 에서 다가오는 11월 8일 본선거에 참여하려면 오는 10월 14일까지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한다. 민권센 터는 유권자 등록에 대한 문의에 도 답해드린다.”고 말하고 시민권 이있는 한인들의 유권자 등록을 권고했다.뉴욕주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웹사이트 https://voterreg.d mv ny gov/MotorVoter에서 유 권자 등록을 할 수 있다. 9월 20일‘전국 유권자 등록의 날’ 꼭 등록하고 투표하세요 “윤석열 대통령님 뉴욕 방문 을 환영합니다!”20일 뉴욕시 맨 해튼 유니버시티클럽(1 W 54 St. University Club of New York) 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동포 간 담회에서 뉴욕베트남참전유공자 전우회(회장 백돈현, 앞줄 오른쪽 일곱번째), 미국월남참전총연합 회(총회장 홍종태 앞줄 오른쪽 여덟번째), 펜실베니아월남참전 전우회(회장 남성복, 둘째줄 오른 쪽 네번째)및 전우들이 유니버시 티클럽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다. 베트남 참전전우 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하다 전사 한 전우들의 명복을 빌며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 통일 완수를 위 해 모두 힘을 합칠 것을 다짐했 다. 미국베트남참전전우회는 고 엽제(Agent Orange) 피해로 타 계 또는 합병증에 시달리는 모든 전우들과 자녀들을 위해 미국 정 부에서 재향군인서비스 에이젼시 에 기금을 지원하여 치료를 할 수 있도록 신청을 해 놓고 있다. △연락처: (917)917-257-4108 백돈현 회장 베트남전 참전 한인 용사들, 윤석열 대통령 뉴욕방문 환영 미주한인청소년재단(KAYF Korean American Youth Foundation)은 10월 리더십 프로 그램‘와플’을 실시한다. 이번 ‘와플’은 10월에 시작하여 2023년 5월에 마친 △문의:다.929-322-4454 www.kayf.org/apply 미주한인청소년재단,‘와플’프로그램 10월 실시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오후 6시 맨해튼 유니버시티클럽 7층 대연회장에서 뉴욕 동포 간담회를 열 었다. [뉴욕일보 9월 21일자 A1면-윤석열 대통령 뉴욕 동포간담회…”한인 동포 권익신장·안전에 美당국 관심 촉구, 자부심 갖도록 최선 다할 것”제하 기사 참조] 이 자리에는 뉴욕일원 동포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뉴욕한인들은 동포청 설립, 한인사회 후원 요청과 2023년 뉴욕에서 열리는 미주한인체육대회에 대한 한국정부의 관심을 요청하는 등 한인사회의 다양한 의견에 대한 질 의응답 시간이 있었다. [사진 제공=최윤희 뉴욕한인학부모회장] 윤석열 대통령, 뉴욕일원 한인 200여명 초청 동포간담회 9월 20일은‘전국 유권자 등록의 날’포 스터 윤석열 대통령 초청 뉴욕동포 간담회장 앞에서 베트남전 참전 한인 용사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다. [사진 제공=뉴욕베트 남참전유공자전우회] 민권센터가 가입해 함께 활동하고 있는 전국 한인 권익단체‘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는 서류미비자 합법화를 위한 이민법 개혁 촉구 로비활동을 줄기차게 벌이고 있다. “이민법 개혁, 서류미비자 합법화하라” 민권센터 등 연방의원들 상대로 로비 활동 박차 A2 THURSDAY, SEPTEMBER 22, 2022종합뉴욕일보 THE KOREAN NEW YORK DAILY

In search of a better life, freedom from tyrannical governments controlled by the militia, political strife, and economic issues, Koreans started to migrate to Brazil in the 1960s. The catalyst was a military coup in 1961 in which many Koreans were forced to leave the country. In addition, the Korean government was scrambling to send people out of the country in order to decrease the major overcrowding issue. I’m here today to celebrate Brazlian Koreans by educating others about their story.

Today, Brazil is home to the largest Korean population in Latin America at around 50,000 people. With the Emigration Law of 1962, the Republic of Korea supported and promoted emigration to South America, creating a government-sponsored program in the hopes that they would find better lives and be able to provide for the Korean economy by spreading the wealth. According to official documents, 103 Koreans departed from the port of Busan, and arrived in Santos, Brazil on February 12th, 1963. A couple times a year with this program, Koreans would travel to the Brazilian agricultural sector. These immigrants were given small plots of land that ended up being unsuitable for agriculture or too small for a home. On some occasions there was no land at all, as the Koreans were cheated by Brazilian brokers. To top it all off, the Koreans didn’t have the knowledge required to maintain farmland upon their arrival, and due to this, most weren’t able to make anything of the land that was granted to them. But, in actuality, most Koreans didn’t really want to work in the agricultural industry, so they moved to more industrial, city areas for work. In the 1970s, the Brazilian government really only wanted more

immigrants that would take up work in agriculture and this wasn’t Koreans. So, they would therefore try to enter the country illegally. In 1976, Brazlian immigration laws were tightened up, making illegal immigration difficult. Then in the 1980s, immigration was opened up to Koreans once again, but by this time the desire to immigrate to Brazil decreased because the region was no longer as advanced as it was once considered to be.

When Koreans first arrived in Brazil, assimilation was difficult. They didn’t have the

necessary knowledge about the system, so they had to sell food, fix clothing, or sell some of the clothes they brought with them from Korea for a living. As they started to learn that this could be successful, Koreans started working in the textile and fashion industry. This also worked because a family could do this labor for free in small increments, so a capital network was not needed. Working with a capital network would equal wasted time and delays so for immigrants it was easy to just jump into this line of work. To make this an even more lucrative business idea, in

comparison to the Brazilian clothing industry, Korean clothes were of higher quality. Business grew and so they expanded, slowly outcompeting other stores in the area.

Wealth could now be quickly accumulated due to the fact that clothing prices in Korea were a fraction of the price that they were in Brazil. Business boomed until the late 1980s and at one point, about 90% of Koreans were a part of the textile and clothing industry in Brazil.

Today, Brazilian Koreans are large pillars in the fashion industry. 1 out of 3 pieces of clothing sold in Brazil are affiliated with Korean companies. From an article in the Los Angeles Times, Don Lee titled an article “Brazilian Koreans: a Force in Fashion”. They were able to expand the clothing industry to Brazil, bringing income back into Korea.

As Brazilian Koreans, they surely live up to their Korean counterparts. Koreans in general are deeply rooted in the homeland, keeping in touch with their rich culture and traditions. It is also said that Brazilian Koreans converse in the Korean language with much more ease than KoreanAmericans. I sat down with a Brazilian Korean, and she said that she was able to stay connected with her Korean identity because of her parents. Originally from North Korea both of her parents were able to escape before they closed the borders. Then, her parents decided to leave Korea, moving to Brazil where her parents met, got married and had her and her siblings. Feeling it was important to bring up her with knowledge of the Korean culture and language, her parents sent her to Korean school when she was young, spoke to her in Korean, and cooked Korean dishes. In a heartwarming and closing thought she said, “My mom always made miyuk gook, a seaweed soup, on our birthdays and we would celebrate New Years Day the Korean traditional way. No matter what, I was going to learn and speak Portuguese so my parents made sure I knew my identity as a Korean.” Today, now a mother of 3, she tries to pass on her Korean identity to her kids.

From researching and learning about the experience of the Brazilian Koreans, I’ve learned that I’m capable of more than I think. They fought and persevered, moving to an entirely new place, escaping conflict while still managing to be successful. Not only have I learned new things, but I’m left feeling inspired. I want to do more, be better, and make sure I stay in touch with my Korean identity.

교육A4 THURSDAY,SEPTEMBER 22, 2022뉴욕일보 THE KOREAN NEW YORK DAILY
한인 젊은이들‘세계 속의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삶, 창조적 역할 모색 경기여고동창회 경운장학회, 제12회 고교생 영어웅변대회 수상작 발표 [9] ParticipationAward(장려상:)- BrazilianKoreans(브라질의 한국인들) MeganYi(TenaflyHighSchool, NJ11학년) MeganYi 한국인의 브라질 이민 역사는 1962년 12월 18일 부산항을 떠난 네덜란드 선박 치차렌카(Tjitjalenka) 호가 2개월 가까운 긴 항해 끝에 1963년 2월 12일 브라질 산토스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선박에는 103명의 한인이 타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1962년 3월 해외이주법이 제정·공포된 이후 최초의 공식 이민이었다. 1차 이민 이후 1963년부터 1966년까지 5차례에 걸쳐 1천300 여 명의 농업 이민자가 브라질 땅을 밟았다. 1971년에는 1천400여 명의 기술 이민자가 브라질로 이주했다. [사진 출처=재외동포재단] 브라질 한인들이 2014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단을 환영하고 있다. [사진 출처=브라질 한인회 제공]
A112022년 9월 22일(목요일)
A12 THURSDAY, SEPTEMBER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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