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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후 처음으로 6% 벽을 넘었다. 1년 전과 비교하 면 두 배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모기지 대출 신청량을 측정하

일제시대 재일 조선인들의 고 난과 생애를 다룬 소설‘파친코’ 작가 이민진 교수가 뉴욕주 작가 협회에서 뽑은 작가 로서는 최고영예인‘명예의 전당 작가(NYS Writers Hall of fame)’로 선정

나, 전년 동기보다는 29% 감소했 다고 CNBC방송이 보도했다. 신 청 건수가 소폭이나마 증가한 것 은 생애 최초 주택 매수자에게 낮 은 금리로 제공되는 보훈부와 농 무부 등 정부 대출 수요가 늘어났 기 때문이다.이러한주택시장 한파는 연준 의 큰 폭 금리인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연준은 다음주 연방공개시장 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3 연속‘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인상)에 나설 것으로 유력시된다. 전날 발표된 8월 소비자물가 지수(CPI)가 예상을 뛰어넘는 8.3%의 상승률을 기록했다는 점 에서 1%포인트의 금리인상 관측 도 일각에서 나온다. 콜린스, 아메리칸 헤리티지, 딕셔너리 닷컴 등 세계 유명 영어 사전의 한국사 왜곡이 심각한 상 황이라고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 크가 11일 밝혔다. 반크는 최근 15개의 영어 사전 에서‘Korea’를 입력한 뒤 나오 는 검색 결과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15개 사전 중 11개 사전이 동 해(East Sea)를‘일본해(Sea of Japan)’로 단독 표기했다. 해외 지도 출판사, 세계사 교 과서, 온라인 지도사이트에서 동 해 병기 표기가 20년 전 3%였다 가 현재 40%로 증가한 상황이지 만, 영어 사전에서는 여전히 동해 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하고 있다 고 반크는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들 사전은 한국 역 사를 심각하게 왜곡했다. 아메리칸 헤리티지, 유어 딕셔 너리 닷컴, 워드닉 닷컴 등은 한국 사가 기원전 12세기부터 시작한 다고 축소 기술했다. 영국의 콜린스 영어사전은 “1876년 항구를 개방해 일본과 조 선이 무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한 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잘못 기술이했다.사전을 비롯한 다른 사전에 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사를 서술했고, 전쟁으로 분단된 내용 을 주로 다뤘다. 마치 한국사 대부분이 식민지 배, 전쟁 등으로 이뤄졌다는 잘못 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반크 는 지적했다. 룩웨이업 닷컴과 라임존 닷컴 영어사전은‘Korea’의 한국어 이름이‘Choson’(조선)이라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 바른 표기는 ‘Daehanmin guk’(대한민국) 또는‘Hanguk’ (한국)이다.박기 태 반크 단장은“이번 조 사를 통해 상당수의 영어사전에 서 한국사의 왜곡이 심각한 수준 이며 긍정적 기술보다 부정적 기 술을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 다”고 밝혔다. 그는“출판사들이 사전에 단 어를 실을 때 관련 정보가 왜곡되 지 않은 올바른 정보인지 확인하 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같거나 비슷한 오류가 검 출된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에 한류 열풍이 불어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Korea’에 대한 검색으로 이어 질 수 이에있다.반크는 잘못된 정보를 제 공하는 영어사전과 백과사전 출 판사에 올바른 자료를 제공하고, 항의와 함께 시정 요청서를 보낼 계획이다. 세계 유명 영어사전, 한국사 왜곡 심각 주택 모기지 금리 급등… 집 사려는 사람 급감 ‘파친코’이민진 작가,‘뉴욕주 작가’명예전당’헌액 10월 18일 헌액식 2008년 금융위기 후 첫 6% 돌파, 1년 전의 두 배 수준 모기지 수요 지수 1999년 이후 최저치 영국 콜린스 영어사전의“1876년 전까지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내용 [사진 출 처=반크 아메리칸제공]헤리티지 영어사전의 일본해 단독 표기 [사진 출처=반크 제공]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미국의 모기지(주택담보대 출) 금리가 치솟고 주택 수요는 빠르게 식고 있다. 사진은 매물로 나온 메릴랜드주 포토 맥의 한 단독주택. Korea의 한국어 이름을‘Choson’이라고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룩웨이업 닷컴 사전. [사진 출처=반크 제공] ‘Korea’검색하니… 11곳 일본해 단독 표기 “19세기 말까지 중국 속국”“12세기 시작”등 오류 수두룩 이민진 작가 ‘뉴욕주 작가’명예의 전당’헌액식 안내 장. < 미국COVID-19 집계 : 9월 14일 오후 6시30분 현재 Worldometer발표 97,340,01655,3981,077,477>6,214,8525,47571,8462,703,3402,31134,650 최고 80도 최저 67도 9월 17일(토)9월 16일(금) 최고 78도 최저 63도 1,419.001,370.20 1,408.20 1,381.00 N/A1,379.16 9월 15일 오후 12시 기준(한국시각) 9월 15일(목) 최고 75도 최저 56도 맑음 흐림 2022년 9월 15일 제보목요일 문의 대표전화 (718) 939-0047/0082THEKOREANNEWYORKDAILYThursday September 15, 2022 <제 5289호 > www.newyorkilbo.com 맑음

됐다.뉴욕주 작가협회는 13일, 10월 18일(화) 맨해튼에 있는 알콘퀸에 서‘2022 뉴욕주 작가 명예의 전 당’헌액식을 개최하고 이민진 작 가를 헌액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어빙 벌린 작곡가,‘어메이징 브 루클린’의 저자 제임스 맥브하이 드, 오드리 로드 시인이 함께 헌

액된다.박윤용 한인권익신장위원회 전 회장은“이민진 작가의 명에의 전당 작가 헌액은 한인사회의 큰 자랑 이다. 이 자리에 많은 한인 들이 참석하여 이민진 작가를 축 하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회비는 1인당 350달러. 참석 희망자는 박윤용 씨 (John Park, 347-495 4004)에게 문의하면 된다. 연방준비제도(Fed·연 MBA는 밝혔다. MBA에서 경제·산업 예측을 담당하는 조엘 칸은“30년 고정 모기지가 는 지표인 MBA의‘시장종합지 수’(MCI)는 전주보다 1.2% 하락 한 255로 집계됐다고 마켓워치는 전했다. 이는 1999년 12월 이후 최 저치다. 전년 동기에는 MCI가 707.9에주택이르렀다.매수를위한 모기지 신청 건수는 전주보다 0.2% 증가했으

미국

준)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 여파 로 미국의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치솟고 주택 수요는 빠르 게 식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모기지은행협회(MBA) 에 따르면 대출 잔액 64만7천200 달러 이하인 30년 고정 모기지 평 균 금리는 지난주 6.01%로 집계 됐다. 전주 5.94%에서 소폭 상승 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진 2008년 이후 처음으로 6% 선을 넘 었다고

▶공공혜택대변. 서비스: 저소득층 무료 세금보고 상담과 대행(매년 연초부터 4월까지), 푸드스탬프 (SNAP) 신청과 갱신. 난방비 지 원 신청 ▶건강보험대행(겨울).서비스: 코로나19 백신 접종, 메디케이드(65세 이 하), 뉴욕주 어린이 건강보험과 필수 건강보험, 조건부 건강 보험, 저소득층 서류미비자도 신청할 수 있는 NYC케어 가입 상담. △문의는 전화(718-460-5600), 카카오톡 하면(sandra.choi@minkwon.org)로1:1com/_dEJxcK)에채널(http://pf.kakao.가입한뒤채팅을하가나,이메일된다.1만서스에거주을이는연맹이운타운ino)조셉(AAVA)아시안아메리칸유권자연맹테렌스박대표는13일살라디노(JosephSalad롱아일랜드오이스터베이시장을만나내년에있을타선거에아시안아메리칸유권자투표독려활동에참여하방안을논의했다.오이스터베타운은롱아일랜드싸이오셋중심으로약30만명의인구가하고있는데,2020년인구센의하면아시안인구는약5천명으로추산되고있다.AAVA는등

민권센터는 13일 영어, 시민 교실 첫 수업을 시작했다. 영어, 시민교실은 12월 초까지 3개월간 영어와 함께 미국의 정치, 사회 제도를 배운다. 민권센터 산드라 최 정치력신장운동 국장과 콴지 리 정치력신장운동 활동가가 수 업을 이끌고 있다. 현재 3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수업은 매주 화요 일 오후 4~5시30분, 민권센터 (133-29 41st Ave 2층 플러싱) 회 의실에서 진행한다. 영어교실 등 민권센터의 모든 서비스는 무료 이다. △문의는 전화(718-4605600), 카카오톡 하면(sandra.choi@minkwon.org)로한kakao.com/_dEJxcK)에채널(http://pf.가입뒤1:1채팅을하가나,이메일된다. ◆ 민권센터 무료 봉사활동 영어교실 외에 민권센터가 펼 치는 여러 무료 봉사활동들은 다 음과 같다. 민권센터의 모든 서비 스는▶이민무료이다.법률 서비스: 영주권 신청(가족이민)/갱신, 시민권 신 청, 서류미비 청년 추방유예 (DACA)세입자갱신.법률 서비스: 노인 임 대료 인상 면제(SCRIE), 장애인 임대료 인상 면제(DRIE) 상담과 신청 대행. 강제 퇴거, 임대료 과 다청구, 수리와 난방/온수 요구, 소음, 주거 권리 침해, 임대 보증 금과 거주권리 승계권 등에 대한 무료 법률 상담과 주택법원에서 세입자

민권센터, 무료 영어·시민교실 개강

록된 뉴욕주 전체 유권자 명단을 뉴욕주 선거관리 위원회으로부터 전달받아 현재 롱아일랜드 나소 카운티에 등록 된 아시안 유권자 수를 분석 중이 다. AAVA는 뉴욕주에 등록된 초당파 정치기구로 아시안 커뮤 니티을 위하여 일하는 정치인을 돕고 아시안의 권익을 위해 일 하 는 정치기 △AAVA구이다.연락처 : iance.comwww.asianamericanvotersall917-440-8020 아시안아메리칸유권자연맹, 내년 선거 투표참여 독려 이민 법률 서비스 등 무료 봉사활동 등도 계속 미주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북 돋워 주고 있는 한국 풀꽃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제6회 해외풀꽃시 인상’공모전을 연다. 나태주 시인은“해외에서 모 국어로 문학활동을 하는 것이 쉽 지 않은 데도 열정을 갖고 창작활 동을 하고 있는 미주 시단을 격려 한다”며 올해부터 해외풀꽃시인 상 운영위원회 를 두어 계속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 혔다. 응모자격은 미주 지역에서 활 동하는 등단 10년 이상의 시인으 로 최근 2년 안에 발표했거나 신 작시 5편을 제출하면 된다. 제출 시에는 등단연도 및 간단한 이력 과 연락처를 명기해야 한다. 후보 자 추천은 본인 또는 타인 추천 모두 가능하다. 응모 마감은 9월 0 일까지이며 심사는 한국의 풀꽃 문학상 운영위원회에서 지정하는 심사위원 2인이 한다. 수상자와 시상식은 한국과 미국의 언론을 통해 추후 발표하고 수상자에게 는 상패와 3,000 달러의 상금이 주 어진다.이 번 공모전을 주최하는 한국 의 풀꽃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지 난 2014년 공주시가 공주풀꽃문 학관 개관을 축하하고 나태주 시 인의‘풀꽃’정신을 기념하기 위 해 제정된 풀꽃문학상을 운영하 고 있으며 미주에서의 풀꽃시인 상은 2017년부터 시행되어 오고 있다.△작품 보낼 곳 : pulflowerusa@gmail.com △문의 : (310)707-395 미국에서도 한국시가 풀꽃처럼 피어나길… 제6회‘해외풀꽃시인상’공모… 9월 30일 마감 등단 10년 이상 중견시인 대상, 심사는 한국서 민권센터는 13일 영어, 시민교실 첫 수업을 시작했다. 영어, 시민교실은 12월 초까지 3 개월간 영어와 함께 미국의 정치, 사회 제도를 배운다. [사진 제공=민권센터] 퀸즈빌리지 노인아파트에 거 주하는 불교신자 고복순 보살은 12일 미주한인노숙인 비영리전문 기관 더나눔하우스(대표 박성원 목사)에 후원금을 전달했다. 고복순 보살은 라디오 방송 을 듣고 나도 정부에서 보조 받으 며 어렵게 살고 있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한인 홈리스들을 위한 더 나눔하우스 비영리기관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겨 더나눔하우스 를 후원하게 됐다. 다음 달부터 작지만 마음을 담아 지속적으로 후원 하겠다”고 말했다. 더나눔하우스는 잠 잘 공간을 잃어버린 한인들에게 무료 숙식 을 제공하여 자립의 통로가 되어 더 좋은 환경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곳이다. 더나문하우스는 한인노숙인 들의 쉘터 구입을 위해 모금 중이 다. 모금 후원이나 식사후원과 봉 사를 협력하기를 원하는 한인들, 교회,기관, 단체는 박성원 목사 (718-683-8884)에게 연락하면 된 다. 고복순 보살, 더 나눔하우스에 후원금 전달 고복순 보살(오른쪽)은 12일 더나눔하우스 대표 박성원 목사(왼쪽)에게 후원금을 전달 했다. [사진 제공=더나눔하우스] ▶ 조셉 살라디노 오이스터베이 타운 시장 (왼쪽)과 만난 AAVA테렌스박 대표(오른쪽) [사진 제공= AAVA] 성 바오로 정하상 천주교회 (퀸즈성당) 한국학교는 10일, 한 국학교 입학식을 가졌다. 마침 이날이 추석이어서 학부 모들과 어린이들은 제기차기, 박 터트리기 등 민속놀이를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준비해 온 송편을 나누었다. 성 정하상 한국학교는 한국어 는 물론, 한국의 역사와 문화교육 을 통해 한민족의 뿌리와 정체성 을 깨닫게 하고, 동포사회 어린 꿈나무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자 긍심을 가지고 미국에서 떳떳하 고 당당하게 성공적인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초석이 되어주기 위 해 설립됐다. [사진·기사 제공 = 성 정하 상 천주교회(퀸즈성당) 홍보부] 나태주 시인 퀸즈성당 한국학교, 입학식… 한글·한국역사·문화 교육 A2 THURSDAY,SEPTEMBER 15, 2022종합뉴욕일보 THE KOREAN NEW YORK DAILY

which eventually was taken over by Romans. During Roman control, political control over the Jews increased, restricting their freedoms resulting in the Jewish diaspora increasing, despite the recent reunification under one empire. Consequently, Jewish people began to migrate to Europe, in which the second phase of Jewish diaspora took place, due to rise of Anti-Semitism and the Holocuast. The political oppression of the Jews led to a greater diaspora into the US, Argentina and more.

into Russia, Kazakhstan, Uzbekistan, and more, to escape political oppression. Finally, after this period came the third, and seemingly most major diaspora of Korean. This time period was after the Korean War, from the 1960’s -1970’s. After the Korean War, much of Korea was left in ruins and there were no established industries, consequently, no economy. The Korean government was left with no other option but to promote Koreans to Foreign nations to hire them into available specialized jobs. Miners and nurses were the initially most demanded jobs in Germany. While in Argentina, workers for the textile industry were highly necessitated. The economic drive that pushed this diaspora, especially by a government, cannot be seen in many other instances of diasporas. On the other hand, the Jewish diasporas was heavily driven by political oppression. Ancient Israel was the homeland to the Jewish people and was the hotbed of inter-empire conflicts. Clashes occurred between various empires for the control of Judah leading the diaspora starting in early 700 BCE. Subsequently, the Persians conquered this expansive area and Jews were under the rule of Persia,

한인 젊은이들‘세계 속의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삶, 창조적 역할 모색 경기여고동창회 경운장학회, 제12회 고교생 영어웅변대회 수상작 발표 [8] ResearchAward(연구상:)- TheOppressed- TheUnexpectedRelationshipBetweenTwoOppressedGroups

교육A4 THURSDAY,SEPTEMBER 15, 2022뉴욕일보 THE KOREAN NEW YORK DAILY

Additionally, the lack of connection with Korea was another factor that was damaging to their identity. While these workers, nurses, miners, and laborers, helped supply Korea with a source of income and drove the economy

During this, Koreans were forced to emigrate into Japan to be used as coerced labor. At the same time, Koreans who were heavily involved in the Independence movement migrated

Diaspora is “the dispersion of any people from their original homeland.” Interestingly, this word’s roots comes from ancient Greek and was used to refer to the Jewish after the collapse of Jerusalem in the early 6th Century BCE [Britannica]. The occurrence of Jewish Diaspora has happened over many centuries and is rich in history. On the other hand, the Korean Diaspora is quite recent, in comparison to Jewish Diaspora. Despite the short period, but continuing, period of the Korean Diaspora, we can compare the intriguing circumstances of these diasporas in terms of the motives and the cultural and geographical impacts.

The first major Korean diaspora was first documented in the mid1800’s to early 1900’s into Russia, China, and Hawaii. Most of these immigrants consisted of farmers or laborers who emigrated due to political oppression, from the ruling classes, as well as, economical needs, they needed land to work or jobs. This period was relatively short compared to the second period, which is during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upwards, they were not able to sustain their Korean identity. Additionally, Korean workers often moved with their families, resulting in a greater spread of assimilation. However, Koreans may have sustained their religious beliefs.

Catherine S. Park (Ward Melville High School, NY 11학년)

When these two groups settled into their respective locations, there were key differences that determined the sustainability of their culture and identity. When Koreans arrived in their respective locations, economic stability was prioritized and churches were established. Furthermore, when the Korean government began to send out Koreans into various countries, the emphasis on culture and more importantly language was low.

At the time, Korea was widely Christian and even Korean workers who went to Hawaii were scouted by missionaries with ties to a church in Korea. However, Korean culture was not based on Christianity, nor was Christianity a part of Korean identity, but rather an additional aspect to Koreans. As a result, Korean groups, mainly in Hawaii, assimilated into the US culture. However, in places like Russia, Koreans were steadfast to their identity for much longer, but also assimilated with Russians and their culture. On the contrary, Jewish people arrived in Europe, they fundamentally prioritized establishing a community center and synagogue. Conversely, religion is tied closely with Jewish identity, as their religion shaped their culture. By setting up these community centers, Jews created outlets for fellow Jews to come together and were able to hold on to their identities. These outlets helped successful Jewish people help others obtain jobs, and culture was

CatherineS. Park 최초의 주요 한국인 디아스포라는 1800년대 중반에서 1900년대 초에 러시아, 중국, 하와이로 처음 기록되었다. 이 이민자들의 대부분은 정치적 탄압과 지배계급, 경제적 필요, 일하거나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농민이나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2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았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인 들은 강제 노동으로 이용되기 위해 일본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이와 동시에 독립운동에 크게 관여한 한국인들이 정치적 탄압을 피해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 키스탄 등으로 이주하였다. 사진은 1919년 3월 13일 북간도 용정의 서전벌을 가득 메운 조선인들이‘조선독립축하회’라는 이름으로 만세운동을 벌였다. 군중 한 가운데에‘대한독립’과‘정의인도’라고 쓰인 오장기(五丈旗)가 모래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사진 츨처=규암 김약연 기념사업회 제공] (핍박받은자들- 두핍박받은민족의예기치않은연관성)

shared and enjoyed.

The main thing I have learned from the experiences of these Korean immigrants is the importance of community. When they were sent into an unfamiliar world with little to hold onto, their initial reaction was to establish economic security more than anything else. The resulting assimilation into existing cultures is not necessarily negative, but the loss of Korean culture is heartbreaking. The languages that our ancestors were persecuted for speaking are now foreign to some of my own Korean friends and the resplendent culture is vaguely known. The necessity for Korean community centers is more imperative than ever. While there may be few Korean community centers, there are no major community centers that are locally funded. These existing community centers are funded by few individuals and fail to reach out to a larger area and population of Koreans. We can take inspiration from the grassroot movement and apply it to our culture.One example of this successful application is the Korean Community Center of Greater Princeton (KCCP). Rather than only a few founding members to support their center, like most Korean Community Centers, KCCP compiled more than a dozen Korean Americans locally and reached out for their support. With an expansive support system, KCCP was able to expand their reach and support for other Korean Americans and provide programs, services, and activities, while cherishing the culture of Koreans. By setting up a community center with a larger “local” range and with a greater number of founding members, Korean Community Centers will be able to grow more successfully and my generation will be able to pass the cultural heritage to the next generation and help Korean Americans feel a sense of belonging.

A112022년 9월 15일(목요일)

A12 THURSDAY, SEPTEMBER 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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