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가 ART KIM, 김화영 뉴욕전이 3월 22일(수)부터 26일 (일)까지 맨해튼 첼시 지역에 있



는 메트로폴리탄 파빌리온(125 W. 18 St. NY, NY)에서 열린다.
김화영 뉴욕전은 1999년 이후
매년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뉴
욕 어포더블 아트페어의 일환으로
열린다. 뉴욕 어포더블 아트페어
는 올해도 재미있고 영감을 주는 다양한 이벤트로 많은 관람객들과
컬렉터들이 예술과 사랑에 빠지도
록 할 것이다. 수묵화가 김화영은 목원대 회
화과와 단국대 일반대학원을 졸업
하고 뉴욕, 로스엔젤레스, 마이에 미, 런던, 햄튼, 싱가폴, 홍콩, 쾰른 등 해외 여러 도시에서 개인전을
한 중견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 필법의 맥 락을 이어 구사하면서도 그것을 활용한 새로운 조형양식, 새로운 감각과 정서를 화면에 발현시키고 자 하는 의지가 돋보인다. 이전의 수묵 산수화가 이념에 치중하고 관념중심의 전통성을 중 시했다면, 김화영 작품은 사실적
W. 18 St. NY, NY)dptj dufflsek/이다. 뉴욕 어포더블 아트페어는 1999년 이후 매년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아트페어 이다. 영아트갤러리 부스는 2층 A-9 이며 참여 작가는 CHUL CHUNG, KOOKHYUN GA, CHUNOH RYU, HwAN KIM, ART KIM, YOUNGHEE JUNG, HYESEON JUNG, MYUNGJUN AHN EMD 10명이다. 영아트 갤러리 연락처: 010-3228-6546, hykim3410@naver.com www.youngartgallery.kr
자연대상을 관찰하는 자연대상의 접근에 입각해 구도와 화면을 보 다 집약적이고 농축적으로 화면을 재해석한다. 무엇보다 전통적 수묵양식을 화면 전체 농묵을 바탕으로 담채 선염을 응용한 새로운 기법의 실 험을 통해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현대적 변용을 시도한다. 또한 구 도의 특징에 있어서 화면전체 여 백이 많지 않으면서도 시원한 공 간감을 형성하는 것은 그만의 독 특한 표현방식이다.
그는 관찰자 입장에서 자연을 소재로 대상을 연구하여 자연 그 대로의 이미지를 살린 작업을 통 해 작가 자신만의 인생관을 점 하 나, 한 획의 선으로 표현해 내고있 다.
이는 자연환경을 단순히 보여
지는 것이 아닌 자연의 특성을 살
리되 작가의 내면 속에 담긴 주관
적 형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그림들은 주로 소나무를 모티브로 하여 전체 화면을 구성
하며 변화하는 자연의 분위기를
화면 속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림 속 소나무들에는 그가 홀로 견 뎌온 강인하고 굳센 시간들과 자 연의 사랑이 담겨있다.
김화영은 여전히 작품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사색을 통한 의 식의 전환을 추구한다.
김화영은 2007년 이후 꾸준하
게 뉴욕을 비롯해 전세계 도시들 에 작품을 전시해오며 현지 다양 한 컬렉터를 구축하고 있으며 2023년 봄에 뉴욕에서 신작을 선 보인다.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문
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建三郞)가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교도통신이
13일 보도했다. 향년 88세.
고인은 개인적인 체험 만연
원년의 풋볼’로 1994년 노벨문학
상을 탔다.
‘설국’으로 1968년 노벨문학상
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
어 일본인으로는 두 번째 수상이
었다.
1935년 에히메현 산골 마을에
서 태어난 작가는 도쿄대 불문학
과 재학 중인 1958년 단편소설 사
육’으로 당시 최연소인 23세에 일
본 최고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했
다.
고인은 일본 사회의 불안한 상
황과 정치적 문제에 대한 비판 천
황제와 군국주의, 평화와 공존, 지
적 장애를 가진 장남과의 공생, 고
향 시코쿠 숲 마을의 역사와 전통
등을 주제로 수많은 글을 발표했
고, 국내외 여러 사회 문제에도 적
극적으로 참여했다. 오에는 과거 자기 작품을 3개
시기로 나눠 설명했다.
1기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
면서 봤던 일본의 모습으로 사회
적 담론을 반영하는 소설을 주로
썼다. 이어 2기는 장남 히카리가 청
력, 시력, 사고력 없는 장애인으로
태어나면서 아이와 부모의 성장
과정을 담은 사소설을 주로 썼다.
그는 자신의 아이가 눈이 보였으
면 좋겠다는 희망으로 아이 이름 을 히카리(빛)로 지었다고 말했 다.
마지막 3기는 30대 후반 이후로
사소설적인 경향을 담으면서도 일 본 사회에 대한 비판을 포괄하는 객관적인 소설을 쓴 시기였다.
고인은 작품뿐 아니라 사회 문 제에 참여하는 지식인으로서도 존 경받았다.
2004년 군대 보유 금지와 전쟁 과 무력행사를 영구 포기하는 내 용이 담긴 헌법 9조 등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기 위해 다른 석학 들과 9조의 모임 을 결정해 개헌 에 반대했다.
또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일본 정부의 원전 재가동 정책 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석해 자신
의 인생 최종 과업은 핵 없는 세계
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며“원전


문제를 젊은 세대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 판하기도 했다.
고인은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 했으며 한일 역사 문제에 대해서 도 자신의 소신을 뚜렷이 밝혔다.
그는 2차 아베 신조 정권 때인
2015년 3월 연세대에서 열린‘연

세-김대중 세계미래포럼’에 참가
해 일본은 아무리 사죄해도 충분
하지 않을 만큼 막대한 범죄를 한
국에 저질렀다. 그런데 아직도 한
국인들에게 일본은 충분히 사죄하 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에는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
와 관련해“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
당화한 일본의 후진성을 인정해야
한다 며 일본 정부나 국민이 충
분히 사죄했다고 보기 어렵다. 일
본 국가가 사죄해야 한다 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한국 소설에 대해서는
“현대소설을 애독하고 높이 평가
한다”며“그중에서 황석영은 현대 의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는 큰 소 설을 쓴다. 개인의 내면을 그리면 서도 사회로 이어지는 인간을 묘 사한다 고 높이 평가했다. 1970년대 김지하 시인이 투옥 됐을 때는 단식투쟁까지 하며 항 의했다.
“일본은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