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여정은 회복력, 권익 옹호 및 커뮤니티의 힘에 대한 확고 한 믿음으로 정의되었습니다 권익옹호, 커뮤니티 조직화 및 봉사를 통해 우리는
뉴욕과그너머의이민자, 아시안및코리
안아메리칸저소득층커뮤니티의권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오늘 밤, 우리는 40
년 동안의 공동 회복력과 공동 승리를 기
념합니다.
오늘 저녁은 단순히 민권센터의 과거 업
적만을 반영하지 않습니다. 우리 커뮤니
티의 가장 큰 자산인 회복력, 힘, 단결도
조명합니다. 이는 갈라 초청위원회 공동
의장인 저희의 매우 개인적인 경험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2세 코리안 아메리칸
으로서 우리는 우리 커뮤니티의 많은 사
람들과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문화적
정체성의 균형을 맞추고, 새로운 시스템
을 탐색하며, 외국에서 소속감을 찾는 복
잡한 문제와 씨름했습니다 이민자로서의
경험은 투쟁과 승리의 경험이며 이러한
여정이 계속 민권을 지원하려는 우리의
열정에불을지폈습니다
실제로민권센터는구성원의총합보다더 큰존재였습니다. 단체가성장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협력한 놀라운 자 원봉사자, 후원자 및 동맹 네트워크의 힘 이 민권센터를 움직였습니다. 바로 이 중
요한 여정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함께라면 우리는 더 강해지고, 여러분의변함없는지원을통해민권센터 는 중요한 서비스를 계속 제공하며, 우리 지역 사회의 목소리를 증폭하여 지속 가 능한변화를만들어냅니다. 우리는 민권센터의 4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더욱 강하고 포용하는 미래를 건 설하고, 모든 이민자가 존엄성을 보장받 으며, 안전한기회의삶을건설할수있는 사회를건설하고자계속노력하려는희망 과결의로가득차있습니다 따라서우리 는 여러분을 환영하며 우리 커뮤니티의 역량을 기념하고, 더 밝고 정의로운 내일 을위해일하기로다시한번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스티븐 최
문유성
회장
민권센터를 대표하여 오늘
존 박
사무총장
40년 전인 1984년, 오늘과 비슷한 가을
중순의어느날, 고윤한봉선생님과헌신
적이고 유능한 몇몇 젊은이들이 뉴욕 퀸
즈에 모여 오늘날 민권센터로 알려진 뉴
욕청년봉사교육원을설립했습니다
이 작은 그룹은 이웃, 동료, 그리고 동포
이민자들을 위한 열린 공동체 센터(마당
집)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 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모든 이사, 직원, 자원봉사자는우리설립자들이제시한모
토인 '바르게 살자, 더불어 살자, 뿌리를
알자'를실천하고자노력해왔습니다. 지난
두해동안우리의갈라주제는이모토들
을 반영해왔습니다: '사회 정의에 뿌리 내
리기' , '운동에 뿌리 내리기' , 그리고 올해
의 갈라 주제인 '커뮤니티에 뿌리 내리
기'로이어졌습니다.
그 소박한 시작 이후로 민권센터는 한인
뿐만 아니라 뉴욕과 뉴저지의 광범한 아
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를 위한 진보적
변화를 이끄는 주요 단체로 성장했습니
다 우리의다섯가지프로그램분야 – 권
익옹호및조직화, 사회봉사, 시민참여, 청소년, 문화 – 를통해우리는우리커뮤 니티를직접지원하고, 정부행정과정책
40주년 기념 갈라 “커뮤 니티에 뿌리 내리기”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 에게 감사드립니다.
환영사
분야에더광범한참여를확보하며, 이민 자 권리, 기회, 접근성 및 자원을 위해 싸 우고, 궁극적으로는 차세대 젊은 리더들 을양성하고있습니다. 오늘 밤, 우리는 지난 40년 동안 이루어 진 모든 성과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다가 올 40년을 기대합니다. 40주년 축하의 일환으로 우리는 2024년 '정의구현상' 수상자들을 기쁘게 기립니다 – 아시안아 메리칸법률교육재단의 스탠리 마크, 제레 미 린 재단,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아시아 청각장애인협회. 모든수상자들은가장 도움이절실한사람들의필요를충족하는 데 중점을 둔 민권센터의 가치를 보여주
며, 우리는 그들의 활동, 리더십, 그리고 공동체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깊 이감사드립니다
민권센터가오늘우리의공동체의뿌리를 기리며 축하하면서40년 전 이 운동을 시 작한 풀뿌리 열망에 다시 헌신하는 여정 에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후 원에 감사드리며, 모두를 위한 정의롭고 번영하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여정에 동반자가 되어 주셔서 깊이 감사 드립니다.
정의 구현상
스탠리 마크
아시안아메리칸 법률교육재단
스탠리 마크 변호사는 민권센터 설립 당
시부터의 오랜 친구로 노동자 센터와 이
민자 주도 단체에서 무료 법률 권리 클리
닉을 관장해 왔습니다. 그는 이민 혜택과
미국시민권을추구하는아시안아메리칸
가족을 대변하고 지원하고, 노동자들이
최저 임금과 초과 근무 수당을 제대로 지 급받으며, 차이나타운과 로어 이스트 사
이드에서 9/11 이후 생존자를 위한 의료 서비스를 확보하도록 헌신했습니다. 마크
변호사는 9/11 환경 건강 문제에 대해 의 회소위원회에서증언하여 9.11 테러의모 든 생존자를 위한 의료 서비스 법안과 의 학 연구 기금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전시
이주 및 민간인 수용 위원회에서 관한 증
언을했으며 1991년관련활동에대한공
변호사
로상을수상했습니다
뉴욕 아시안변호사협회는 1991년과 2004년에 창립 이사인 마크 변호사에게 지역 사회 봉사 공적을 기려 공로상을 수 여했습니다. 2017년 퀸즈 아시안 아메리
칸센터는지역아시안아메리칸커뮤니티 를 위한 사회 정의 활동에 감사를 표하며 공로상을 수여했습니다. 시튼홀 법학대학
원을 수료한 마크 변호사는 중국인 계약 노동자, 한국인 식당 종업원, 필리핀인 호 텔 노동자, 파키스탄인 택시 운전사, 방글 라데시인저임금노동자, 동남아시아인병 원노동자, 제2차세계대전중미국강제 수용소에수용되었던일본계미국인등을 망라한다양한배경을가진아시안이민자 들의인권보호에평생을바쳤습니다
메트로폴리탄
아시안 청각 장애인 연합 (MADA)
뉴욕 일원에서 활동하는 MADA는 아시
안 청각 장애인 커뮤니티를 위해 문화적 가치를강화하고보존하고, 포용성을조성 하며, 평등한 기회를 촉진하는 단체입니
다. MADA는포괄적인지원서비스, 문화
보존 및 커뮤니티 참여를 통해 아시안 청 각장애인이민자와아시안아메리칸의삶 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합니다. MADA는 청각을 비롯한 다양한 장애를 가진아시안들이단체의활동목표에따른 지원을받도록계속연구를멈추지않습니
다. 또한민권센터가주관하는아시안정치 력신장연맹(APA VOICE)의 회원 단체 로뉴욕시아시안아메리칸커뮤니티의시
민참여촉진활동에도공헌하고있습니다
2002년여름, 뉴저지의 Candice Hsu
와 뉴욕의 Jennifer Ayque-Cho라는
두 명의 아시안 청각 장애인이 뉴욕 일원 을포괄하는새로운아시안계청각장애인 조직을 만드려고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2002년 9월, 일군의아시안계청각장애 인들이뉴욕시의한말레이시안식당에서 만나 식사를 하며 서로에 대해 배우는 시 간을 가졌습니다. 그 자리에서 다른 청각 장애인들과도교류하고함께즐거운시간 을보내기로의기투합한그들은뉴욕의쿠 퍼 유니온에 소재한 스타벅스에서 “첫 번 째 아시안 청각 장애인 회합”으로 알려진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 11
월 1일, 뉴저지 저지 시티 소재 허드슨 커
뮤니티칼리지에서열린첫이사회에서단 체의공식명칭을출범시켰습니다
제러미 린 재단은 프로 농구 선수 제러미
린이 설립한 비영리 단체입니다. 재단은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를 둔 풀뿌리 프로
그램과협력하여저소득아시안아메리칸
청소년 및 여러 유색인종 청소년을 지원 합니다. 재단의지원은식량불안, 정신건
강문제, 청소년권한부여등과연관된광
범위한장벽을해소하고자집행됩니다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제러미의 개인
적 경험과 농구 코트 안팎에서의 관계 수
립에 기초하여 설립된 재단은 간과되고
소외된 아시안 아메리칸 단체 및 여러 인
종을 포괄하는 단체를 지원하는 데 중점
을둡니다 재단기금의수혜단체들은프
로그램 대상의15~75%가 아시안 아메리 칸 청소년이며, 대부분은 다양한 인종의 청소년을 포용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재단의 목표는 다인종 차세대의 공동 번 영을위한지원입니다. 재단은 소외되고 취약한 계층을 위해 봉 사하는 지역 사회 리더에게 권한을 부여 하고, 조직과 협력하여 인종적 불의와 소 득 불평등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간과되고과소평가된청소년에대한편견 섞인 이야기를 바꾸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며그들의요구가충족되도록돕습니 다
제러미 린 재단
공연자 소개
지미 변
지미 바이른 씨는 경상남도 하만군에서 조윤호 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뉴욕 맨리우스에서 자란 한국계입양인입니다. 그는현재일리노이주시
카고에 거주하며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 (미교협, NAKASEC)의 재정부장으로 봉직하 면서 한인과 아태계 주민을 조직하여 인종, 경 제, 사회적정의를달성하고자활동하고있습니 다. 그는 또한 미교협의 “입양인을 위한 정의”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여 해외 입양인의 시민 권 취득 권리를 위한 조직과 권익 옹호 활동을 전개하고있습니다. 지미변씨는웨스트민스터 코어 칼리지에서 음악 학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심포닉 코어의 일원으로 리버사 이드 교회에서 개최된 뉴욕 필하모닉의 헨델의 메시아공연에서노래를공연했습니다
조앤 현
조앤 현 씨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코리 안 아메리칸 멀티 악기 연주자이자 공연자입니
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밴쿠버에서 태어난 그녀
는오하이오클리블랜드와캘리포니아새크라멘 토에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베닝턴 칼 리지에서 음악과 연극을 공부하면서 2013년부
터 뉴욕에서 공연 예술을 사랑하는 여정의 길을
열었습니다 현재는 브루클린 인디 사이키 팝 5 중주단인 Toebow의 베이시스트입니다 또한
전 뉴욕 기반 밴드인 Zula와 Peel Dream Magazine의녹음및투어멤버이기도합니다
이교혁
이교혁 씨는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재능있는
한인클래식기타리스트입니다. 15세에기타리스
트인 삼촌으로부터 처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꾸준한 노력으로 자신
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습니다. 2013
년, 그는 음악적 지평을 넓히고자 스페인 마드리 드 왕립 음악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클래식 기
타연주공부를시작했습니다. 이는그의음악인
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그의 예술
적성장은더욱가속화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을 무대로 활동하며 이교혁 씨의 섬세 한기타연주는한국과스페인은물론캐나다, 태 국,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나라의 관객들을 매료 시켰습니다 특히 서울 주재 스페인 대사관 초청
공연과리여석기타오케스트라와의협연은그의 음악적재능을국제무대에알리는중요한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교혁의음악적여정에는뛰어난성과도함께했 습니다. 2016년 “Concurso Arriaga”에서 인 기상을수상했으며 "호세루이스로드리고" 영재
기타 페스티벌 출연을 비롯해 다양한 무대 경험
을쌓으며그의음악적깊이를더해갔습니다. 15세에 시작된 그의 음악 여정은 세계적인 기타
거장들의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
해 왔습니다. 이교혁의 연주는 뛰어난 기술적 완
성도와 함께 깊이 있는 음악적 해석으로 청중들
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어린 시절 삼촌에
게 배운 첫 음계부터 지금까지, 이교혁의 음악은
끊임없는성장과열정의결과물로청중들의마음 을사로잡고있습니다
커뮤니티에 뿌리 내리기
BECKY BELCORE
BYUNG HO KANG
CHARLENE HONG
CHUL PAK
JEEHAE FISCHER
JENNIFER HEEJIN KIM & ROBERT TUNG
JOHN PARK & SYLVIA SHIN PARK
JUNGWOO KIM
KYONG HUI LEE
LINA LEE
MEE EUN CHANG
MICKEY KIM & JIN LEE
MYOUNGMI KIM
REV. WONTAE CHO
ROGER PARK
ROVIKA RAJKISHUN
STEVEN CHOI 공동위원장
SUNGOK LEE
SUNGYEON PARK
KYONG HUI LEE
SUSSAN LEE
YANG SUN PARK
YONG CHUN RIM
YU SOUNG MUN & HEESOOK KIM
BYUNG HO KANG
JENNIFER HEEJIN KIM
LINA LEE
부회장, 서기이사
MEE EUN CHANG
SUNGOK LEE
SUSSAN LEE
YANGSUN PARK
재무이사
YONG CHUN RIM
YU SOUNG MUN
제휴 기관
NAKASEC
미주한인
봉사교육
단체협의회
회장 함께센터
애난데일, 버지니아
하나센터
시카고, 일리노이
민권센터 팔리세이즈 파크, 뉴저지
민권센터 퀸즈, 뉴욕
우리센터 랜스데일, 펜실베이니아
우리 훈또스 휴스턴, 텍사스
AJIN CHO Social Services Fellow
ASHLEY CHANG, ESQ.
Staff Housing Attorney
AUBREY KOO
Social Services Coordinator
DIANA WOOJUNG PARK
Immigrant Justice Organizer
EUNMI JI
Intake & Administrative Specialis
GWEN PHAGNASAY LE Youth Organizer GRACE CUI
Social Services Manager
HANNA JO
Health Policy & Programs Coordinator
HUANJIE LI
Organizer & Community Engagement Manager
HYEIN CHO Legal Services Associate
JAXIMUS HYUN PARK
Administrative & Operations Associate
JENNY EUM
Social Services Specialist
JOHN PARK Executive Director
JOO YOUNG JEON Health Outreach Fellow
JU-BUM CHA
Senior Consultant of Strategy & Special Projects
KAPSONG KIM Korean American Community Development Director
MATILDE C. RECALDE, ESQ. Senior Immigration Attorney
MICHAEL OH, ESQ. Supervising Immigration Attorney
MISUN MODELL NJ Program Associate
PETER LEE Legal Services Associate
SANDRA CHOI Civic Participation Director
SEONGWON KIM NJ Program Manage
SHUA JEONG Community Advocate
TRISHA KIM Community Engagement Associate
YOON JI KIM Managing Director
커뮤니티에
뿌리
내리기
민권센터의
40년여정
민권센터는 1984년에 설립된 커뮤니티
단체입니다. 설립당시명칭은뉴욕청년봉 사교육원이었으며그후청년학교로변경
했다가 2009년 설립 25주년을 맞아 현
재의 단체명인 민권센터로 개칭했습니다
민권센터는 권익옹호와 커뮤니티 조직화, 시민 참여, 사회 봉사, 청소년 프로젝트와
문화영역을중심으로활동합니다
바르게 살자
미국 사회의 커다란 변화를 불러온 민권
운동의 여파로 1965년에 이민법이 전면 개정된 후 한인 커뮤니티는 이전 대비 급
속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반면 대부분
이이민 1세인한인들은언어장벽, 인종차
별 등의 어려움으로 힘든 이민생활을 영
위하고있었습니다.
사진:
윤한봉선생과청년들이처음세운 커뮤니티센터인로스엔젤레스민족 학교
사진: 민권센터설립자고합수 윤한봉선생
사진:
해외동포대회에서의재미한청련 회원들과커뮤니티센터자원봉사 자들
민권센터의 역사는 ‘5 18 최후의 수배 자’로 불리던 고 합수 윤한봉 선생으로부 터 시작되었습니다. 선생은 1981년도에 미국으로 망명하여 해외 동포 운동을 일 구었습니다. 북미전역의청년들을규합하 여 조국의 평화통일, 민주화를 위해 활동 하는정치단체인재미한국청년연합(한청 련)을 결성하였습니다. 한청련은 지역 한 청련으로구성된전국연합단체였습니다. 그리고 1983년에 설립된 로스앤젤레스 민족학교를 필두로 각 지역에 한청련의 자매단체들로비영리단체인커뮤니티센 터(마당집)를 함께 설립했습니다 마당집 들은 한인 동포사회를 위한 봉사, 뿌리교 육, 청년교육, 문화활동에매진하는동포 들의열린마당의역할을수행했습니다
민권센터 역사 개요 1980년대: 이 땅에 뿌리내리기
커뮤니티 활동의 첫 걸음을 내딛은 민권 센터창립자들은놀라운헌신으로커뮤니 티센터를건설했습니다. 한청련의회원들 이담당한상근자들은무보수로봉사했습 니다. 그들은 동포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뿌리교육과장년, 성인들을위한사회봉사 활동에중점을두었습니다. 창립 이듬해인 1985년에는 ‘뉴욕한인문 화패 비나리’를 창단하면서 문화 활동의
족적을내디뎠습니다. 당시만해도동포사
사진: 1984년 10월 21일에퀸즈잭슨하이
츠에설립된뉴욕청년봉사교육원(민 권센터전신)의설립기념식
사진:
단체초창기의프로그램으로한 인이민자가정의자녀들을돌보 던어린이학교
에 건강한 민족문화 보급이 미약한 수 이었으며 비나리는 풀뿌리 민족문화를 포사회에심고타민족에게우리문화를 리는역할을담당했습니다. 수민족인한인커뮤니티가미국사회에 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선 소수민족 연 활동이 꼭 필요했습니다. 민권센터는 립 초기부터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민자 권익 워크샵 참여, 인종차별과 경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에
습니다. 한편 자매단체인 재미한국청년연 합은 한국의 민주화와 평화 통일을 이루 고자 다방면의 캠페인을 펼치고 혼신의
노력을기울였습니다
타임라인
1985 (뉴욕청년봉사교육원) 뉴욕한인문화패 ‘비나리’ 창단
사진: 뉴욕한인문화패 ‘비나리’ 창립
1984년 1월 1일
재미한국청년연합결성
1988-89 (재미한국청년연합) 한반도비핵화를위한뉴욕-워싱턴디시
도보행진과10만명서명운동 사진: 워싱턴디시에서개최된반전, 반핵 집회에참여
1984년 10월 21일 민권센터를
1989 (재미한국청년연합)
국제평화대행진: 백두에서한라로
사진: 국제평화대행진을주관한재미한국 청년연합회원들과참가자들이북한의백 두산정상에서행진을시작
사진: 오랫동안민권센터이사장으로 헌신하신고김수곤박사님
사진: 워싱턴포스트광고캠페인을 위한한인마트앞 1인 1달러 모금활동
조직화
활동의 확대와
단체의
체계를 확립
1992년 LA 폭동은한인커뮤니티에겐전 환점이되었습니니다 한인커뮤니티는미 국 전체를 괴롭히는 사회, 인종과 경제적 문제에서벗어날수없는사실을냉정하
게 깨달았습니다 중간선거에서 의회를 장악한공화당의반이민정치인들은미국 의 사회 문제를 이민자의 책임으로 전개 하고비난하기시작했습니다
사진:
맨해튼연방청사인근에서개최된
이민자집회에참석한미주한인봉사 교육단체협의회와한인들
1990년대 초에 시작된 이민자 커뮤니티 를 향한 탄압은 이민자의 삶을 힘들게 했
지만 동시에 정치적 각성을 이루는 계기
도 되었습니다. 아직 이민자 커뮤니티의
조직력이전국단위에서발휘되지못하던
시절에한인커뮤니티는모범적인활동으
로 이민자 권익옹호 운동의 첨병에 우뚝 서는자랑스러운활동성과를남겼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백악관 앞뜰에서 이 민자의사회보장혜택의일부를복원하는 법안에서명하는서명식에민권센터의대 표가 초청되어 참여한 장면은 우리의 뿌
듯한기억으로남아있습니다.
민권센터는 1990년대에 들어와 이민자 권익옹호 활동을 비롯해 시민참여 활동 및 교육, 사회봉사, 청소년 프로그램을 확
대 운영하며 코리안 아메리칸의 대표 단 체의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이 시기에 민 권센터는커뮤니티활동과타민족연대를 양대 축으로 하여 이민자 권익옹호와 시 민참여활동에서중요한역할을담당하는 단체로자리매김했습니다
미국 사회에 이민자에 관한 진실을 제대 로 알리는 활동을 시작하고 인종에 상관 없이 모든 주민들에게 영향을 끼친 시정 부와주정부의사회복지예산삭감에반대 하는 캠페인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민권센터는이렇듯이민자커뮤니티를포 함해 모든 커뮤니티에 중요한 정책 사안 의해결을위해땀흘리며, 다인종이화합 하는 미국의 내일을 여는 전망을 세우고 모든이와함께하는커뮤니티단체로서의
해 반드시 필요한 이민개혁을 촉구하는 활동에집중했습니다.
사진: 연레한인전통놀이
사진: 노동권과이민자권리보호를요 구하는연례메이데이행진
아울러 뉴욕시 일원의 20여개 단체들을 규합하여 아태계 정치력신장연맹을 결성 하여 아시안의 정치력 신장과 주민들의 민주주의과정참여를증진했습니다. 모두 무료로 제공되는 사회 봉사 프로그램은 이민자 법률과 재정 혜택 영역에서 매년 다수주민들의삶을보살폈습니다. 팬데믹 의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지역 중 하나인 한인과 이민자 밀집 거주 지역의 서류미 비자와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해 스페셜 프로젝트를가동하여힘껏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