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 신약

Page 1


일러두기

지난 2021년 11월에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내놓은 뒤로 구약 번역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여 드디어 2024년 12월에 『새한글성경』 신구약 완역을 출간하게 되 었습니다.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출간할 때, 마가복음 본문에 나오는 새로운

번역어와 번역 특징에 대한 해설집을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신구약

완역 출간에 따라 신약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는 번역의 과정과 특징에 대해 간단 한 해설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모든 과정에 대해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

고, 우선 두드러진 변화에 대해 보기를 들어 간단히 설명하고자 합니다. 더 자세하

고 광범위한 해설 자료집은 앞으로 차차 시간을 두고 계속 준비하여 온라인으로 보

충 제공할 예정입니다.

이번 번역 해설에서 거듭 강조되는 내용은 두 가지로, 이는 『새한글성경』의 주요

번역 특징과 관련됩니다. 하나는, 원문에 더 가깝게 번역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말

은 신약의 본문이 되는 그리스어 최신 원문을 바탕으로 원문의 어순과 어원까지 깊

이 파고드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하나는, 다음 세대 젊은이들이 조금 더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번역어를 찾는다는 원칙입니다. 기존 번역에 남아 있는 어려운

한자어나 요즘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은 다음 세대 젊은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바꾼다

는 뜻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한 가지는, 『새한글성경』은 기존 번역들과 나란히 두고 함께 읽을 독자들을 고려하여 가능하면 기존에 사용되지 않

은 새로운 표현을 찾아 번역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기존 번역들에 도 각각 고유한 특징과 장점이 있고, 그러므로 기존 번역들을 『새한글성경』과 나란 히 두고 함께 읽을 때 더 깊은 본문 이해가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점들을 염두

에 두시면서 아래의 번역 해설을 읽으신다면, 『새한글성경』의 번역 과정과 최종 번 역 결과물에 대해 더 쉽게 다가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제공되는 번역 설명 외에도 2024년 12월에 발간된 「성경원문연구」 55호 별책에서 여러 학자가 연구한,

118 | 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더 많은 번역 특징 설명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1. 신약 번역 해설은 대체로 구약과 마찬가지로 원어 성서 어떤 부분이 기존 한 글 공인번역본, 2000년대 영어 번역본, 독일어 번역본들에서 어떻게 번역되고 있는

지, 최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에서는 해당 원어 낱말을 어떻게 풀이하고 있는지, 『새 한글성경』에서는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밝히는 식으로 합니다.

2. 기존 한글 공인번역본으로는 1998년판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001년판 『성 경전서 새번역』, 1999년판 『공동번역 성서 개정판』을 참조합니다.

3. 서양 외국어 성서 번역본으로는 2000년대 영어 번역본 세 가지, 독일어 번역 본 세 가지를 주로 참조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프랑스어 번역본들도 함께 살펴봅 니다. 영어 번역본으로는 2016년판 <영어표준번역>(English Standard Version),

2004/2005년판 <새영어번역>(New English Translation), 2021년판 <새표준개역개

정>(New Revised Standard Version Updated Edition)을, 독일어 번역본으로는

2007년판 <취리히성서>(Zürcher Bibel), 2017년판 <루터성서>(Luther Bibel), 2021 년판 <기초성서>(BasisBibel)를, 프랑스어 번역본으로는 1988년판 <에큐메니칼성

서>(French Traduction Oecuménique de la Bible), 1997년판 <프랑스어현대어성

서>(French Bible en français courant)를 인용합니다.

4. 최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으로는 1988년판 발터 바우어(Walter Bauer)/쿠르트

알란트(Kurt Aland)/바바라 알란트(Barbara Aland)의 <신약과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 사전>(Griechisch-deutsches Wörterbuch zu den Schriften des Neuen Testaments und der frühchristlichen Literatur)과 2000년에 나온 그 영어판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에서 알아보았습 니다. 영어판은 프레드릭 댕커(Frederick William Danker)가 수정/증보한 것이어 서 그 내용이 독일어판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이 해설에서는 이 둘을 하나로

묶어 최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Bauer )이라고 부릅니다.

해설 목차

02 마 1:1 출현의 기원에 대한 책

책장절 내용 범주 쪽

16 막 16:6 그분은 일으킴받아 살아나 셨어요!

17 눅 1:1 이루어 놓으신 일들 원문 시제 반영 136

18 눅 1:5 아론의 여자 후손으로 이름 은 엘리자베스 누가의 신학적 강조 점 반영

19 눅 1:13 스가랴한테 말했다.

20 눅 5:5 스승님

21 눅 5:26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 원문

22 눅 10:42 그런데 부족한 것이 하나 있 군요.

23 눅 23:21 소리를 질러 댔다.

24 요 1:43 필립을 찾아가신다.

25 요 1:51 아멘 아멘 그대들에게 말합 니다. 새로운

26 요 5:39 성경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새로운 번역어 143

27 요 10:22 성전다시바친명절( 수전절 ) 달라진 절기이름 144

28 요 11:33 화가 치밀고

29 요 13:38 답변하신다.

있으세요. … 머물러 있지 … 머물러 있지

31 요 20:31 믿게

간추린 번역 해설 | 121

35 행 15:39 바르나바 … 키프로스 달라진 음역 151

36 행 19:38 지방 총독들 원문의 특수 용법 반영 152

37 롬 1:1-7

서신의 서두 형식이 잘 드러 나도록 하는 번역 문학적 갈래와 원문 어순 반영 153

38 롬 6:23 죄의 품값은 죽음이고

39 롬 8:26 무엇을 두고 마땅히 어떻게

40 롬 11:36

41 롬 15:1 우리는,

42 고전

| 새한글성경

번호 책장절 내용 범주 쪽

50 엡 5:21

51 빌 4:13

그리스도를 두려워함으로 서 로 자기를 상대방의 아래에 두십시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 서 나는 어떤 상황에도 대처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번역어 164

새로운 번역 166

52 살전 2:7 젖먹이가 되었습니다. 최신 원문 반영 167

53 딤전 1:1 바울이네. 그리스도 예수님 의 사도라네.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과 우리의 희망 그리 스도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사도가 되었지.

54 딛 1:9 가르침대로 믿을 만한 말씀 을 꽉 붙잡고 있어야 하네.

55 히 1:13 그대의 발받침대로 삼을 때 까지.

마침꼴의 다양화 168

56 히 5:14 거듭된 연습을 통해서 새로운 번역어 171

57 히 9:1 섬겨 예배하는 규정 새로운 번역어 172

58 히 11:1 믿음은 우리가 희망하는 것 들을 현실이 되게 합니다. 우 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증명 합니다. 새로운 번역어 172

59 히 13:2 낯선 손님 대접하기를 새로운 번역어 174

60 약 1:3 여러분의 믿음을 검증해 보 는 일이 새로운 번역어 175

61

62 벧전 1:1 체류자

63 벧전 3:8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64 벧전 4:16 이 일로

65 벧후 2:18 실제로

66 벧후 3:10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175

번역어 177

178

178

179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23

번호 책장절 내용 범주 쪽

67 요일 2:26 속여 헤매게 하는 사람 새로운 번역어 180

68 요일 5:18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지킵니다. 최신 원문 반영 180

69 요삼 1:13 잉크와 펜

복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

70 계 1:3

외래어의 활용 및 원문 어순 반영 181

들을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사 람, 듣는 사람들, 거기에 적 힌 것들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원문 어순 반영 및

72 계 8:13 자리 잡고 사는 사람들

번역어

74 계 22:2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75 계 22:21 주 예수님의 은혜가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존칭 어미 추가 185

마태복음

01. 마태복음 1:1 …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분의 …

1) 『개역개정』, 『새번역』, 『공동개정』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 손/후손’이라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분”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정보와 다윗

의 자손이라는 정보가 소개되는 순서를 바꾸었습니다.

2) ESV, NRSVUE, NET 등 대부분의 영어 성경에서도 ‘다윗의 자손’이라는 내용

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내용보다 먼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그리스어 원문에 그런 순서로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3) 기존의 우리말 번역본들이 원문의 순서와 달리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

라 번역한 것은, 우리나라 정서로 볼 때 윗대부터 순차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자연 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가 우리나라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4세기의 신학자 암브로시아스터가 Questions and Answers on the Old and New Testament라는 책 153쪽에서 마태복음 1:1과 관련하여, 아브라함이 다윗보다 윗대인데도 마태가 복음서를 쓸 때 왜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 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먼저 언급하는지 질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암브로시아스 터는 다윗에게 하신 약속(시 132장)대로,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따라서는 다윗왕의 계보에서 나시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4) 『새한글성경』은 그리스어 원문의 어순대로 번역함으로써, 암브로시아스터가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독자들이 가져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마태복음의 중요한 기록 동기를 짐작해 볼 수 있 습니다.

5) 마태복음은 유대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주요 독자로 삼고 기록된 복음서입 니다. 마태복음 1:17은 예수님의 족보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14대씩 끊어서 세 시기

새한글성경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25

로 구분합니다. 14라는 숫자를 강조하는 것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14는 ‘게마트리

아’ 기법(알파벳에 숫자값을 부여하여 그 숫자값이 숨겨진 상징 의미를 띠도록 하

는 것을 가리킴)을 고려하면, 다윗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

수님이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데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먼저 강조하여 언급하

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02. 마태복음 1:1 출현의 기원에 대한 책

1)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계보”로, 『공동개정』은 “족보”로 번역했는데, 『새한 글성경』은 “출현의 기원에 대한 책”이라고 번역했습니다.

2) ESV는 “the book of the genealogy”, NRSVUE는 “an account of the genealogy”, NET는 “the record of the genealogy”로, LB는 “das Buch der Geschichte” (역사/이야기책)로, ZB는 “Stammbaum”(계보)으로, BB는 “Das Buch vom Ursprung”(기원의 책)으로, 1993년에 개정된 Elberfelder는 “Buch des Ursprungs” (기원의 책)으로, TOB는 “Livre des origines”(기원의 책), BFC는 “la liste des ancêtres”(조상들의 목록)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표현 ‘비블로스 게네세오스(Βίβλος γενέσεως )’에 대한 번 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Bauer)에 따르면, ‘게네세오스’는 ‘생성, 기원’을 뜻하고, ‘비블로스’는 ‘책’을 뜻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계보’는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혈통과 집안의 역사를 적은 책.”을 뜻하고, ‘족보’는 “한 가문의 계통과 혈 통 관계를 적어 기록한 책.”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하기 때문에, 기존의 “계보” 또는 “족보”라는 번역은 잘된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새한글성경』은 다음 세대 젊은이들을 주된 독자층으로 삼았기 때문에, 조금 더 쉽고 직관적인 표현을 찾아 본 것입니다.

4)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변화는 『새한글성경』의 번역이 문장이 아니라 제목 형 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최근 주석들에 따르면 마태복음 1:1은 17절까지 이어지는 족

보에만 관련되지 않고, 마태복음 전체의 책 제목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새한글성경』은 해당 표현을 “출현의 기원에 대한 책”이라고 번

역하여, 1절의 문구는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뿐만 아니라 메시아로 출현하신 예수님

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는 마태복음 전체의 책 제목으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03. 마태복음 1:18 성령님

1) 기존 공인 한글 번역본들에서 “성령”으로 번역했던 것을 『새한글성경』에서는 “성령님”으로 번역했습니다.

2) 신약성경에서 ‘성령’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과 더불어 삼위일체 하나님

의 한 위격이신 분을 가리키기도 하고, 하나님이 세상에서 활동하실 때 나타나는 능력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기존 번역에서는 두 경우 모두를 “성령”으로 번역하였

으나, 『새한글성경』에서는 그 내용에 따라 성령님의 인격성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는 “성령님”으로, 성령님의 능력을 강조하는 문맥에서는 “성령”으로 각각 달리 번 역하였습니다.

04. 마태복음 5:1 그 산

1) 『개역개정』, 『새번역』, 『공동개정』 등 기존 역본에서 그냥 “산”이라고 번역했던 것을, 『새한글성경』은 “그 산”이라고 번역했습니다.

2) 마태복음에서는 ‘산’을 뜻하는 ‘오로스(ὄρος )’라는 낱말이 총 16회 사용되는

데, 그중에 정관사 ‘토(τό )’와 결합하여 ‘토 오로스(τὸ ὄρος )’ 형태로 쓰인 곳은 여섯

곳입니다(마 5:1; 14:23; 15:29; 21:1; 26:30; 28:16). 마태복음 21:1과 26:30에서는

‘톤 엘라이온(τῶν Ἐλαιῶν )’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명확하게 ‘올리브산’을 가리킵니

다. 나머지 네 곳에서는 산 이름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어느 산인지 확정하기는 어

렵지만, 마태복음 저자는 특별히 이 네 곳에 정관사를 붙임으로써 특정한 산을 염

두에 두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마태복음 28:16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 지상

명령을 받는 ‘그 산’이 산상 설교를 하셨던 ‘그 산’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면, 지상 명령에서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 28:20)라고 하신 말씀에서 그 가

르침의 내용은 산상 설교에서 가르치신 내용과 연결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3) 『새한글성경』은 마태복음 저자의 독특한 문체와 그 문체를 통해 암시하는 숨

겨진 의미를 더 잘 묵상하도록 돕기 위해 ‘산’이라는 낱말에 정관사가 붙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정관사와 함께 쓰인 표현은 같은 산

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05. 마태복음 5:3 복 있습니다, 영이 가난한 사람들은!

1) 여기서는 번역의 내용이 아니라, 번역의 어순과 마침꼴에 주목해 보고자 합니 다. 굳이 기존 번역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새한글성경』에서 기존 번역과 달 라진 점 두 가지를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복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원

새한글성경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27

문 어순대로 문장 첫머리에 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분의

마침꼴에 존대법을 적용한 것입니다.

2) 이번에 『새한글성경』에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다양한 상황에 맞추어 그

때그때 마침꼴을 달리하였습니다. 무리들에게 말씀하실 때에는 존대법을 적용하

여 하십시오체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마 23:2-12; 막 12:38-40; 눅 20:45-47)

에는 친밀감을 주는 해요체를 주로 사용하시고,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을 꾸짖으실 때(마 23:13-36), 성전에서 논쟁하실 때(마 22:18-21; 막 12:15-17; 눅 20:24-25)에는 긴장감이 느껴지는 하오체를,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에 말씀하실 때

(마 28:18-20; 막 16:15-18; 눅 24:36-49; 요 20:19-23; 행 1:7-8)에는 부활의 주님

으로서 권위 있게 말씀하시는 상황을 고려하여 해라체를 사용하는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마침꼴을 썼습니다.

3) 다양한 대화 상황에 맞춘 다양한 마침꼴에 주의하면서 복음서를 읽는다면 아

주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대중을 향해 말씀하실 때 하십시오체

로 말씀하시는 예수님, 제자들을 향해 친밀한 해요체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을 듣고 읽으면서, 사람들을 존중하며 따뜻하게 대하시는 사랑 많으시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깊이 묵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06. 마태복음 5:19 (계명을) 실행하고

1) 『개역개정』과 『새번역』에서는 “행하며”로, 『공동개정』에서는 “지키고”로 번역 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실행하고”로 번역했습니다.

2) ESV, NRSVUE는 “does”로, NET는 “obeys”로, LB와 ZB는 “tut”(행하다)로, BB는 “befolgt”(따르다)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동사 ‘포이에오(ποιέω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리 스어 사전(Bauer)은 ‘포이에오’ 동사의 기본 뜻이 ‘make, do’라고 풀이하고 있습니 다. 우리말 역본들에 사용된 ‘행하다, 지키다’라는 표현도 뜻으로 볼 때 좋은 번역에 해당합니다. 굳이 뉘앙스 차이를 따져 보자면, ‘행하다’가 ‘지키다’보다는 조금 더 능 동성을 띠고 있는 듯합니다.

4) 그렇다면 ‘포이에오’ 동사의 뜻은 ‘행하다’라는 번역어로도 충분히 소통될 수 있을 법합니다. 그런데 『새한글성경』이 굳이 ‘포이에오’ 동사를 ‘실행하다’로 바꾼 까 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새한글성경』이 마태복음 전체의 신학적 강조점을 조금 더 부각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5) 마태복음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삶이 아닌, 행동하는 믿음을 강조하는 책입니

| 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다.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은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말하는 사람마다 하늘나라

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아버지 곧 하늘에 계신 분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이 들어갈 것입니다.”(마 7:21)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아들 비유(마 21:28-32), 양과 염소의 비유(마 25:31-46) 등 여러 비유 말씀들도 행동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 합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병든 사람들에게 한 일이 곧 주님께 한 일이며, 그런 일을 실행한 사람이 천국에 합당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6) 마태복음의 문학적 구조도 행동하는 믿음에 대한 마태의 강조를 엿보게 합

니다. 마태복음 4:23과 9:35는 서로 대응을 이루며 5-9장을 감싸 주는 수미상관 (inclusio)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5-7장은 산상 설교로 예수님의 말씀 사

역을, 8-9장은 10개의 기적 모음으로 예수님의 행동하시는 사역을 집중적으로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5-7장)과 예수님의 행동(8-9장)이 나란히 배치되도

록 함으로써, 말씀과 실행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오도록 의도적 배치를 한 것입니다.

7) 성경은 은혜와 믿음으로 받는 구원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믿음의 중

요성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실천하는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실행하

다’라는 번역어 변화를 화두로 삼아 깊이 묵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07. 마태복음 6:2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들

1) 『개역개정』은 “외식하는 자”, 『새번역』과 『공동개정』은 “위선자들”로 번역했는 데, 『새한글성경』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2) ESV, NRSVUE, NET는 “hypocrites”로, 독일어 번역본 LB와 ZB는 “die Heuchler”(위선자들, 독실한 체하는 사람들)로, BB는 “die Scheinheiligen”(위선 자들)으로, 프랑스어 번역본 TOB와 BFC는 “les hypcrites”(위선자들)로 번역했습 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휘포크리테스(ὑποκριτής )’의 복수형인 ‘호이 휘포크리 타이(οἱ ὑποκριταὶ )’에 대한 번역입니다. 『개역개정』은 단수 복수를 엄밀히 구분하 지 않는 우리말 어법을 따라 단수형으로 번역했으나, 다른 번역본들은 모두 원문대

로 복수형으로 번역했습니다. 그리스어 낱말 ‘휘포크리테스(ὑποκριτής )’는 본디 그 리스 비극에 나오는 비극 배우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기할 때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습니다. 무대에 서는 배우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 람의 역할을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29

4) “외식(外飾)”이라는 번역어는 한자로 보면 그리스어 원문 낱말의 뜻을 잘 전 해 줍니다. 그러나 ‘밖에 나가 밥을 먹는 것’을 가리키는 동음이의어도 있어 한자를 잘 모르는 세대에게는 이해에 어려움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더 쉽게 이해되도록 『새번역』과 『공동개정』에서 고른 “위선자”라는 표현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5) 『새한글성경』은 한자어를 피하면서도 위의 “06. 마태복음 5:19 (계명을) 실행 하고”에서 설명한 마태의 신학적 강조점, 곧 행동하는 믿음의 중요성을 조금 더 직

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을 찾아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으로 옮겨 보았습 니다.

08. 마태복음 6:32 아등바등 찾는

1)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구하는”으로, 『공동개정』은 “찾는”으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아등바등 찾는”으로 번역했습니다.

2) ESV는 “seek after”로, NRSVUE는 “seek”로, NET는 “pursue”로, 독일어 번 역 LB는 ‘trachten nach’(열망하다)로, ZB는 ‘kümmern sich um’(돌보다, 신경 쓰 다)으로, BB는 ‘dreht sich um’(회전하다, 향하다)으로 번역했습니다.

3) 이는 그리스어 동사 ‘에피제테오(ἐπιζητέω )’에 대한 번역입니다. 이 동사는 ‘제테오’라는 동사에 ‘에피’라는 접두어가 덧붙은 합성 동사입니다. 이런 경우, 접두

어는 동사의 의미를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제테오’만 해도 ‘구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에피’라는 접두어가 붙었으니 그 의미가 강화됩니다. 『새한글 성경』은 이런 어감을 최대한 살려서 번역한 것입니다.

4) 비슷한 보기를 몇 개 더 소개해 보자면, 마태복음 12:13에 나오는 ‘에크테이

노(ἐκτείνω )’ 동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테이노’라는 동사에 ‘에크’라는 접두어가 덧 붙었습니다. 그래서 『새한글성경』은 접두어 ‘에크(ἐκ )’를 살려서 그냥 ‘뻗다’로 번 역하지 않고, ‘쭉 뻗다’로 번역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3:54에 나오는 ‘에크플레쏘 (ἐκπλήσσω )’ 동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레쏘’라는 동사에 접두어 ‘에크(ἐκ )’가 덧 붙었습니다. 이런 접두어의 강조 의미를 살려서 그냥 ‘놀라다’로 번역하지 않고 ‘몹 시 놀라다’로 번역했습니다. 마태복음 27:24에 나오는 ‘아포니조(ἀπονίζω )’ 동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니조’라는 동사에 접두어 ‘아포(ἀπό )’가 덧붙었습니다. 접두어의 강조 느낌을 살려서 그냥 ‘씻다’가 아니라, ‘싹싹 씻다’로 번역했습니다.

09. 마태복음 9:13 한결같은 사랑

1) 『개역개정』은 “긍휼”, 『새번역』은 “자비”, 『공동개정』은 “이웃에게 베푸는 자

130 | 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선”으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한결같은 사랑”으로 번역했습니다.

2) ESV, NRSVUE, NET는 “mercy”로, 독일어 번역 LB, ZB, BB는 “Barmherzigkeit”(자비)로, 프랑스어 번역 TOB는 “miséricorde”(용서, 연민)로, BFC는 “la bonté”(호의)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엘레오스(ἔλεος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리 스어 사전(Bauer)은 ‘mercy, compassion, pity, clemency’로 그 뜻을 풀이합니다.

4) 그런데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구약성경인 칠십인역에서는 보통 히

브리어 ‘헤세드’를 그리스어 ‘엘레오스’로 번역합니다. 최신 구약 히브리어 사전 (HALOT)에서는 ‘헤세드’를 ‘faithfulness, graciousness, (God’ s) proofs of mercy ’ 로 풀이합니다. 이에 근거하여 『새한글성경』 구약에서는 ‘헤세드’를 “한결같은 사

랑”으로 번역하였고, 신구약 통일성을 고려하여 신약에서도 ‘엘레오스’를 “한결같 은 사랑”으로 번역하였습니다.

5) 그리스어 ‘엘레오스’와 히브리어 ‘헤세드’가 우리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하나님 이 베푸시는 한결같은 사랑, 우리 주변 사람들의 어떠함에 상관없이 우리가 베풀어

야 할 한결같은 사랑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우리 삶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하나 님의 본뜻에 잘 따르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10. 마태복음 15:30-31 장애 관련 표현에

1) 『새한글성경』에서는 『개역개정』에 나오는 장애 관련 표현들을 공식적으로 통 용되는 말로 바꾸어 번역했습니다.

2) “다리 저는 사람”을 “지체장애인”으로, “맹인”을 “시각장애인”으로, “말 못하 는 사람”을 “언어장애인”으로 바꾼 것이 그러한 보기에 해당합니다.

3) 참고로, 질병이나 환자를 가리키는 표현 가운데서도 당사자에게 상처를 남길 만한 표현들은 번역 표현을 바꾸었습니다. “간질”을 “뇌전증”(마 4:24)으로, “나병” 을 “심한피부병”(마 8:2)으로,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자”를 “척추장애인 이었고, 몸을 똑바로 펼 수가 없었다.”(눅 13:11)로 개선한 것 등이 그러한 보기에 해당합니다.

11. 마태복음 21:28-32 최신 원문을 따른 새로운 번역 1) 『개역개정』에서는 ‘두 아들 비유’에서 첫째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겠다 고 대답한 뒤에 실제로는 따르지 않고, 둘째 아들은 처음에 싫다고 했다가 나중에

따른 것으로 나옵니다.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31

2) 한편 『새번역』과 『공동개정』에서는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에 관한 내용이 뒤

바뀌어 나옵니다. 첫째 아들이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나중에 아버지의 말씀대로

실행한 것으로 나옵니다. 둘째 아들은 그 반대입니다. 이는 그리스어 신약성경의 본

문 연구 결과를 새롭게 반영한 것입니다. 우리말 『개역개정』을 제외한 전 세계의 거

의 모든 성경이 최신 원문을 따라 번역하고 있습니다.

3) 『새한글성경』도 이에 따라 첫째 아들이 처음에는 아버지의 말씀에 따르고 싶

어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따른 것으로 번역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성경 번역

이 최신 본문 연구 결과를 따르고 있는 것과 결을 같이한 번역입니다.

마가복음

12. 마가복음 1:10 하늘이 찢어지고

1) 기존 공인 한글 번역본들이 모두 ‘하늘이 갈라지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 경』은 “하늘이 찢어지고”로 번역했습니다.

2) ESV는 “torn open”으로, NRSVUE는 “torn apart”로, NET는 “splitting apart”로, 독일어 번역 LB는 “sich … auftat”(열리다)로, ZB는 “sich teilen”(나뉘다) 으로, BB는 “aufriss”(열어젖히다, 찢어 상처를 내다)로, 프랑스어 번역 TOB는 “se dechirer”(=tear apart)로, BFC는 “s ’ouvrir”(=open)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동사 ‘스키조(σχίζω )’의 수동 분사인 ‘스키조메누스’에 대한

번역으로, 이 동사는 직역하면 ‘찢어지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이 동사는 마가복음

에서 두 번(막 1:10; 15:38)만 나옵니다. 마가복음 15:38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거룩한곳(성소)의 나눔막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둘로 찢어졌다는 내용 을 전달하는 문맥에 위치합니다.

4) 거룩한곳(성소)의 나눔막이 찢어진다는 표현은 자연스럽게 들리지만, ‘하늘

이 찢어지다’라는 표현은 어색하게 들립니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개역 성경은 ‘스 키조메누스’ 동사를 ‘갈라지다’로 번역한 듯합니다. 나름대로 병행 본문에 나오는 ‘열다’를 뜻하는 ‘아노이고(ἀνοίγω )’ 동사와 차별화시키는 신중한 번역어 선택으로 보입니다.

5) 그런데 사실 ‘하늘이 찢어지다’라는 표현은 우리에게만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 64:1에 나오는 ‘찢다’는 뜻의 ‘카라([r;q' )’ 동사를 칠십인역에 서 ‘열다’를 뜻하는 ‘아노이고’로 번역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이 찢어진다는 표

현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어색한 표현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마가복음의 저자가 굳이 ‘하늘이 찢어지다’라는 표현을 썼다면, 마가복음의 단어 선

택은 특별한 의도를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원저자의 의도를 흐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33

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듣기에 불편하더라도 ‘스키조메누스’를 ‘찢어지다’로 번

역해 주어야 합니다.

6) 이렇게 마가복음 1:10과 15:38의 수미상관 관계를 드러내도록 번역하면, 예수

님의 십자가 사역을 통한 대속의 의미를 강조하는 마가복음의 신학적 의도를 이해

하는 길이 더 쉽게 열릴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긴 서론이 붙은 수난 사화’라고 도 불립니다.

13. 마가복음 1:31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 일행을 섬겼다. 1) 『개역개정』에서 “수종드니라”로, 『새번역』과 『공동개정』에서 “시중을 들었다.”

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 일행을 섬겼다.”로 번역했습

니다. ‘수종들다’라고 번역되었던 동사를 ‘섬기다’로 바꾸어 옮긴 것입니다.

2) ESV, NRSVUE, NET는 “serve”로, 독일어 번역 LB는 “diente”(섬겼다)로, ZB 는 “bewirtete”(대접했다)로, BB는 “sorgte für”(돌보았다)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디아코네오(διακονέω)’에 대한 번역입니다. 기본 뜻은 ‘섬기다’이고, 『개역개정』에서도 다른 문맥에서는 자주 ‘섬기다’로 번역되었습니다 (막 10:45; 15:41; 롬 15:25; 히 6:10 등 참고). 그런데 이곳에서는 ‘수종들다’로 번역되 었습니다. 외국어 번역들을 참조해 보면 우리말 성경의 기존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닙 니다. 본문의 맥락과 그 섬김의 내용을 고려해서 ‘대접하다, 돌보다, 수종들다’ 등으 로 번역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종들다’라는 번역어는 ‘섬기다’와는 완전

히 다른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섬김’이라는 단어가 제자도의 핵심 가치로 강조되면

서, 섬기는 일은 모두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가 하면, 수종 을 드는 일은 그저 허드렛일이나 하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을

고려하여 『새한글성경』은 ‘수종들다’로 번역되었던 낱말을 ‘섬기다’로 번역했습니다.

4) ‘섬기다’로 번역해 두고 본문을 읽어 보면, 베드로의 장모는 예수님께서 중요 하게 생각하셨던 제자도의 핵심인 ‘섬김’을 실천한 사람으로 새롭게 이해될 수 있 습니다.

14. 마가복음 2:3 데리고 온다. … 들고 온다.

1) 『개역개정』은 “메워 가지고 … 올새”로, 『새번역』은 “데리고 왔다.”로, 『공동개 정』은 “들고 왔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두 문장으로 끊어서 “데리고 온 다. … 들고 온다.”로 번역했습니다. 기존 역본들은 분사와 주동사를 연결해서 번역 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주동사와 분사 부분을 각각 하나의 문장으로 나누어 번역

| 새한글성경 간추린

한 것입니다.

2) ESV, NRSVUE, NET는 “came, bringing”으로, 독일어 번역 LB는 “kamen einige, die brachten”(몇 사람이 들고 왔다)으로, ZB는 “kommen einige, die … bringen”(몇몇이 온다. 그들이 … 데리고 온다)으로, BB는 “brachten”(데리고 왔다)

으로 번역했습니다.

3) 『새한글성경』 번역에서 눈에 띄는 점은 동사의 시제입니다. 같은 단락의 다른

문장에 들어 있는 동사들은 과거형으로 되어 있는데, 마가복음 2:3의 두 동사만 현

재형으로 번역되어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ZB도 『새한

글성경』처럼 이 구절에서 동사를 현재형으로 번역했습니다. 과거형 동사가 쓰이다 가 갑자기 현재형 동사가 나올 때, 이런 현재형 동사는 ‘역사적 현재 시제 동사’라

고 불립니다.

4) 최근 주석에 따르면, 역사적 현재 시제는 내용으로 볼 때 과거의 일을 전하지

만, 내용 묘사에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 저자가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번역문에서도 그리스어 원문을 읽을 때의 느낌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원문의 시제를 그대로 살려서 번역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국내외 많은 번

역이 내용상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역사적 현재 시제를 살리지 않고 과거 동사로 번

역한 경우가 많았는데, 『새한글성경』은 과감하게 역사적 현재 시제를 원문대로 번

역한 것입니다.

5) 이렇게 할 때 한 가지 더 유익이 있습니다. 이 구절의 병행 본문(마 9:2; 눅 5:18)에서는 역사적 현재 시제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역사적 현재 시제를 살려서

번역할 때, 우리는 병행 본문의 비교를 통해서 각 복음서 저자의 문체적 특징도 파 악할 수 있게 됩니다.

15. 마가복음 10:22 모은 재산

1) 『개역개정』은 “재물”, 『새번역』과 『공동개정』은 “재산”으로 번역했는데, 『새한 글성경』은 “모은 재산”으로 번역했습니다.

2) ESV와 NRSVUE는 “possessions”로, NET는 “rich”로, 독일어 번역 LB와 ZB 는 “Güter”(재산, 소유물)로, BB는 “Vermögen”(자산)으로 번역했습니다.

3) 기존 공인 한글 번역본들이나 외국어 역본들의 번역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 닙니다. 다만 『새한글성경』은 몇 차례 강조한 것처럼, 그리스어 낱말의 어원을 깊이 파고들어 번역어 표현에 담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스어 신약성경에는 ‘재산’ 관련하여 몇 가지 서로 다른 낱말이 쓰이고 있습니다. ‘크테마타(κτήματα ), 크레마

새한글성경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35

타(χρήματα ), 휘파르콘톤(ὑπαρχόντων ), 비온(βίον )’ 등이 있습니다. 큰 틀에서는

모두 ‘재산/재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들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존 역본들은 이

단어들을 모두 ‘재산/재물/소유’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기존 번역어들은 표현에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어원을 고려한 선택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새한

글성경』에서는 ‘크테마타(κτήματα, 막 10:22)’를 “모은 재산”, ‘크레마타(χρήματα, 막 10:23)’를 “쓸 재산”, ‘휘파르콘톤(ὑπαρχόντων, 눅 8:3)’을 “있는 소유물”, ‘비온 (βίον, 막 12:44)’을 “먹고살 돈”으로 각각 어원에 따라 달리 번역했습니다. 원문에 쓰인 단어가 다르다는 것을 구분하여 드러냄과 동시에 그 어원을 감지할 수 있도 록 한 것입니다.

16. 마가복음 16:6 그분은 일으킴받아 살아나셨어요!

1)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살아나다’로, 『공동개정』은 ‘다시 살아나다’로 번역 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일으킴받아 살아나다’로 번역했습니다.

2) ESV는 “he has risen”으로, NRSVUE와 NET는 “he has been raised”로, 독 일어 번역 LB는 “Er ist auferstanden.”(그가 일으킴받으셨다)으로, ZB는 “Er ist auferwecket worden.”(그가 깨어나게 하셨다/일으키셨다)으로, BB는 “Gott hat ihn von den Toten auferweckt.”(하나님이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깨어나게 하셨다/일으키셨다)로 번역했습니다.

3) 그리스어 원문에 쓰인 동사는 ‘에게이로(ἐγείρω, to raise)’의 수동 분사 형태인 ‘에게르쎄(ἠγέρθη )’입니다. 그리스어 원문 단어의 일차적인 뜻이 ‘일어나다’라고 하

더라도, 굳이 번역에서 1차 의미를 살려서 번역할 이유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 니다. 오히려 기존 역본의 ‘(다시) 살아나다’라는 번역이 ‘부활’의 의미를 더 직관적

으로 분명하게 전달해 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30-31을 보면, 베드로의 장모님이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다가 고침받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때 고침받은 과정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 이 떠나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손을 잡아 ‘일으키다’라고 번역된 동사는 그리스어로

‘에게이로’입니다. 곧 예수님의 부활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던 그 동사입니다. 한 주

석가는 이런 관찰에 기초하여, 베드로의 장모님은 열병을 고침받을 때 부활의 능력 을 선취적으로(proleptically) 경험한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리스어 원문의 1차 의미를 살려 번역해 두었을 때 더 폭넓은 주석 가능성이 생기는 것을 관찰할 수 있 습니다. 그리고 ‘일으킴받아 살아나다’라는 표현은 부활 때에 죽어 있던 시신이 살 아 일어나는 생생한 그림을 그려 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누가복음

17. 누가복음 1:1 이루어 놓으신 일들

1) 『개역개정』은 “이루어진 사실”, 『새번역』은 “일어난 일들”, 『공동개정』은 “일어 난 그 일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2) ESV는 “the things that have been accomplished”, NRSVUE와 NET는 “the events that have been fulfilled”로, 독일어 번역 LB는 “den Geschichten, die sich … erfüllt haben”(성취된 일들), ZB는 “das, was unter uns geschehen und in Erfüllung gegangen ist”(우리 가운데서 일어나고 성취된 것)로, BB는 “die Ereignisse … die Gott unter uns geschehen ließ”(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 게 하신 일들)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플레로포레오(πληροφορέω )’ 동사의 현재완료 형태인 ‘페플레로포레메논(πεπληροφορημένων )’을 번역한 것입니다.

4) 외국어 역본들은 현재완료 시제를 번역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이 없어 보입니 다. 그러나 현재완료 시제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한국어에서는 현재완료를 단순한 과거 시제와 구분시키기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보통은 과거 시제와 구분 없이 번역 합니다. 우리말에서는 현재, 과거, 미래 시제가 주로 사용되며, 대과거나 완료 시제 를 따로 구분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한글성경』에서는 완료 시제의 느 낌을 번역에 반영하는 데에도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동사의 동작이 과거에 끝났으나 현재까지 그 결과가 이어지 고 있음을 내포하는 현재완료의 어감을 살려서 “이루어 놓으신 일”로 번역하였습 니다. 여기서 존칭 선어말 어미 ‘-시-’를 사용한 것은 이 수동태에 숨겨진 주체가 하

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신약 그리스어에서 수동태의 주어가 명시되지 않은 경우, 내포된 주어가 하나님인 경우들이 자주 나타납니다. 이를 ‘신적 수동태 (divine passive)’ 또는 ‘신학적 수동태(theological passive)’라고 부르는데, 우리말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37

로 번역할 때에는 이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꾸어 번역하면서 존칭 어미 ‘-시-’를 사

용하여 이 수동태의 숨겨진 행위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도록 했습니다. 원문

의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꾸어 번역하는 것은 개역 성경의 전통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본디 우리말에서는 능동태와 피동 형태가 주로 사용되고, 수동태는 잘 사용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국어 역본 가운데서는 BB가 『새한글성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주어로 하여 능동태로 번역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8. 누가복음 1:5 아론의 여자 후손으로 이름은 엘리자베스

1)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아론의 자손”으로, 『공동개정』은 “아론의 후예”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아론의 여자 후손”으로 번역했습니다.

2) ESV와 NRSVUE는 “the daughters of Aaron”으로, NET는 “a descendant of Aaron”으로, 독일어 번역 LB는 “von den Töchtern Aaron”(아론의 딸들에 속 한)으로, ZB는 “eine Tochter aus dem Geschlecht Aarons”(아론 가문 출신의 딸) 로, BB는 “Seine Frau stammte von Aaron ab”(그의 아내는 아론의 뿌리에서 나왔 다)으로 번역했습니다.

3) 그리스어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자면, ‘아론의 딸들에 속한’으로 번역한 LB가 가장 정확한 번역입니다. 그러나 이 번역은 직계 딸로 오해될 수 있으므로, 오히려 ‘후손’이나 ‘후예’로 의역하는 것이 독자에게는 더 친절한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런데 그렇게 할 경우, 저자가 원문에서 굳이 ‘딸’이라는 단어를 밝혀서 적은 의도가

약화될 수 있습니다. 앞뒤 문맥으로, 엘리자베스가 당연히 여성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여성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밝혀서 적은 저자의

의도가 있지는 않았을까요? 아랍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법일 수도 있으나, 누가

복음이 여성의 존재와 역할을 비교적 분명하게 밝혀서 드러내 주는 특징을 가졌다

는 점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치기에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여러 주석에서 잘 설

명하고 있는 것처럼,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상당히 독특하게 여성과

남성을 균형 있게 나란히 보여 주는 경향을 보입니다. 누가는 남성에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그에 상응하여 여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란히 보여 주곤 합니다. 물론 그

반대로 여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들려준 다음 그것에 짝을 이루도록 남성에 관 련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누가복음 2:25-38에서는 성

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난 예언자가 소개되는데 한 명은 시므온이고 다른 한 명은 한나입니다. 한 명은 남자, 한 명은 여자입니다. 누가복음 4:26-27에서 예수님은 구

약에서 두 인물의 이야기를 끌어오시는데, 한 명은 사렙다에 사는 남편 여읜 여자

138 | 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이고 다른 한 명은 나아만 장군입니다. 한 명은 여자, 한 명은 남자입니다. 누가복음

7:1-10에서 백명대장의 종을 고쳐 준 기적이 소개되고, 바로 이어서 7:11-17에서는

나인이란 도시의 남편 여읜 여자의 아들을 살리신 기적이 소개됩니다. 백명대장은

남자, 나인이란 도시에서 만난 사람은 남편 여읜 여자입니다. 누가복음 13:18-21에

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가 두 개 나옵니다. 하나는 남자와 긴밀하게 연결된 겨

자씨 비유이고(농사 관련), 다른 하나는 여자와 긴밀하게 연결된 누룩 비유(가정 관

련)입니다. 누가복음 17:34-35에는 인자가 다시 오실 때에 있을 일과 관련하여 두

가지 예시가 나옵니다. 하나는 같은 눕자리에 있던 두 남자 가운데 한 명은 데려가

시고 다른 한 명은 내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맷돌을 돌리던 두 여자 가

운데 한 명은 데려가시고 다른 한 명은 내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같은 취지의 보기

들인데, 한 이야기에는 두 남자가 등장하고 다른 이야기에는 두 여자가 등장합니다.

4) 이처럼 남성과 여성의 존재를 균형 있게 소개하려는 의도를 보이는 누가가 엘

리자베스를 ‘아론의 딸들에 속한’이라고 말할 때, 딸이라는 낱말을 허투루 사용한 것

은 아닐 듯합니다. 이런 누가의 의도를 어떻게든 반영하기 위해 『새한글성경』에서는

“여자 후손”이라는 번역어를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번역어의 차이를 실마리로 삼아

누가복음이 보여 주는 내러티브의 특성을 성경 공부나 설교에서 훑어보면서, 우리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균형 있는 관심을 기울인 누가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5) 또 『개역개정』, 『새번역』, 『공동개정』에서 “엘리사벳”으로 번역한 것을, 『새한 글성경』은 “엘리자베스”로 번역했습니다. 이는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 기준에

맞추어 음역을 개정한 보기에 해당합니다.

19. 누가복음 1:13 스가랴한테 말했다.

1) 『개역개정』은 “그에게 이르되”로, 『새번역』은 “그에게 말하였다.”로, 『공동개

정』은 “이렇게 말하였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스가랴한테 말했다.”로

번역했습니다.

2) 『새한글성경』에서 비슷한 표현이 어느 때는 ‘-에게 말하다’(예. 마 3:7)로, 어느

때는 여기서처럼 ‘-한테 말하다’로 번역되는 경우가 있어서, 번역의 일관성이 떨어 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번역의 차이는 그리스어 원 문의 차이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그리스어 원문에는 두 가지 서로 다른 표현법이 나 타납니다. 하나는 ‘여격 + 말하다’이고, 다른 하나는 ‘전치사(πρός, 프로스) + 대격 + 말하다’입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전자를 ‘-에게 말하다’로 번역하고, 후자를 ‘-한 테 말하다’로 번역하여 원문의 문체 차이를 번역문에서도 드러내도록 했습니다.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39

3) 『개역개정』과 『새번역』에서는 대명사를 사용하여 “그에게”로 번역하고, 『공동 개정』에서는 아예 대명사를 번역에서 생략했는데, 『새한글성경』에서는 실명사를 사용하여 “스가랴한테”로 번역했습니다.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그리스어 원문의

대명사를 구체적인 실명사로 바꾸어 번역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20. 누가복음 5:5 스승님

1) 『개역개정』, 『새번역』, 『공동개정』은 한결같이 “선생님”으로 번역했는데, 『새한 글성경』은 “스승님”으로 번역했습니다.

2) ESV, NRSVUE, NET는 “master”로, 독일어 번역 LB, ZB, BB는 “Meister”(스 승님)로 번역했습니다.

3) 누가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는 ‘에피스타타(ἐπιστάτα, 눅 5:5 등)’라고 하는 것에 반해, 호의적이지 않은 이들이 예수님을 부를 때는 ‘디다스칼레 (διδάσκαλε, 눅 7:40 등)’라고 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이 예수님 을 부르는 호칭을 보고서 그 사람과 예수님 사이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에피스타타(ἐπιστάτα )’는 “스승님”으로, ‘디다스칼레(διδάσκαλε )’

는 “선생님”으로 번역하여, 우리말 번역본으로 읽는 독자들도 누가복음 저자의 독 특한 언어 사용법을 구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4) 위에서 언급한 영어 역본들도 ‘디다스칼레’는 “teacher”로, ‘에피스타타’는 “master”로 번역하여 두 단어를 구분하였고, 독일어 역본 가운데서는 BB가 ‘디다스 칼레’는 “Lehrer”(선생님)로 번역하고, ‘에피스타타’를 “Meister”(스승님)로 번역하 여 두 단어를 구분했습니다.

21. 누가복음 5:26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

1) 『개역개정』은 “영광을 돌리며”로, 『새번역』은 “찬양하였으며”로, 『공동개정』은 “찬양하면서도”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에서는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로 번 역했습니다.

2) 그리스어 동사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반복되거나 계속된 동작을 나타내는 미 완료 시제와 단회적인 사건을 나타내는 부정과거 시제를 구분하여 번역하기는 쉽 지 않습니다. 굳이 용법을 구분하려고 하다 보면, 번역에 해석이 너무 가미되어 번

역문이 장황해지기 쉬워서입니다. 그러나 번역자로서는 이러한 차이를 그냥 지나 치자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여러 학자와 논의하여 가능한 경우

에는 최대한 시제의 차이를 번역에 담아 보려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 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3) 이 구절에 대한 그리스어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καὶ ἔκστασις ἔλαβεν(엘라벤, 부정과거) ἅπαντας καὶ ἐδόξαζον(에독사존, 미 완료) τὸν θεὸν καὶ ἐπλήσθησαν(에플레스쎄산, 부정과거) φόβου λέγοντες(레곤

테스, 현재분사) ὅτι Εἴδομεν παράδοξα σήμερον.

4) 기존 번역들은 문장 구분 없이 번역이 이어지고 있어서 시제의 차이를 변별하

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통상적인 한국어 어법에 비추어 볼 때, 연결 접사로 이

어진 동사의 시제는 마지막 동사의 시제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원

문에 쓰인 동사의 시제 차이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새한글성경』에

서는 ‘에독사존(ἐδόξαζον )’ 동사를 “영광을 돌리고 있었다.”로 번역하여 시제의 차

이를 반영하였습니다.

5) 이렇게 함으로써 병행 본문 사이의 차이까지 구분시켜 주는 효과도 따라 나옵

니다. 병행 본문인 마태복음 9:8에서는 미완료인 ‘에독사존(ἐδόξαζον )’ 대신 부정과

거형인 ‘에독사산(ἐδόξασαν )’이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최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Bauer)에 따르면, ‘독사조’ 동사는 ‘찬양하다’로 번

역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새한글성경』에서는 같은 뿌리의 명사 ‘독사’를 ‘영광’으

로 번역한 것을 고려하여 『개역개정』과 마찬가지로 ‘영광을 돌리다’로 번역했습니 다. 번역문으로 읽는 독자들도 그리스어 낱말 명사와 동사의 뿌리가 같음을 느끼도 록 한 것입니다.

22. 누가복음 10:42 그런데 부족한 것이 하나 있군요. 1) 『개역개정』은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로, 『새번역』은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뿐이다.”로, 『공동개정』은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에서는 “그런데 부족한 것이 하나 있 군요.”로 번역했습니다.

2) ESV는 “but one thing is necessary”로, NRSVUE는 “but few things are needed – indeed only one.”으로, NET는 “but one things is needed.”로, LB 와 BB는 “Eins aber ist not.”(그러나 한 가지가 필수이다)로, ZB는 “doch eines ist nötig.”(그러나 한 가지가 꼭 필요하다)로 번역했습니다.

3) NRS가 “there is need of only one thing.”으로 번역했던 것을, 최근 NRSVUE

가 “but few things are needed – indeed only one.”으로 개정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외국어 역본은 ‘몇 가지만 하든지’에 해당하는 부분을 포함하지 않습니 다. 이는 『새한글성경』이 번역 대본으로 삼은 최신 그리스어 신약성경 GNT5에서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41

‘몇 가지만 하든지’로 번역될 수 있는 부분(올리곤 데, ὀλίγων δέ )을 본문에 포함하 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올리곤 데’를 포함하는 사본도 있기는 하지만, 최근 본문비 평 연구 결과는 ‘올리곤 데’를 본문에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한글성경』은 ‘몇 가지만 하든지’에 해당하는 부분을 번역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이런 내용을 『개역개정』의 난외주에서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4) 『새한글성경』은 ‘헤노스 데 에스틴 크레이아(ἑνὸς δέ ἐστιν χρεία )’의 번역에

서도 차이를 보입니다. 다른 역본들은 ‘꼭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이다’라는 취지

로 번역하였으나, 『새한글성경』은 ‘부족한 것이 한 가지이다’로 번역했습니다. 여기

서 문제가 되는 낱말은 ‘크레이아’입니다. ‘크레이아’는 ‘necessary’로 번역할 수도

있고, ‘need’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새한글성경』은 기존 번역들에서 채택하지 않

는 또 다른 번역을 시도함으로써, 이 본문에 관해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묵상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1911년 『셩경젼셔』(“그러나 부죡 거시

나이 잇도다”)가 『새한글성경』과 같은 번역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23. 누가복음 23:21 소리를 질러 댔다.

1) 『개역개정』은 “소리 질러”로, 『새번역』은 “외쳤다.”로, 『공동개정』은 “소리질렀 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에서는 “소리를 질러 댔다.”로 번역했습니다.

2) ESV, NRSVUE는 “kept shouting”으로, NET는 “kept on shouting.”으로, LB 와 ZB는 “riefen.”(소리 질렀다)으로, BB는 “schrien”(외쳤다)으로 번역했습니다.

3) 이 번역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낱말은 ‘에페포눈(ἐπεφώνουν )’으로 ‘에피포네

오(ἐπιφωνέω )’ 동사의 미완료 형태입니다. 여기서 미완료 시제는 과거에 반복된 동 작을 가리킵니다.

4) 영어 번역은 이 의미를 살리기 위해 ‘keep + -ing’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기

존 한글 번역이나 독일어 번역에서는 미완료에 내포된 동작의 반복성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새한글성경』에서는 보조 동사 ‘대다’를 사용하여 그 의미를 살 려 보았습니다. ‘대다’는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에 따르면,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반복하거나 그 행동의 정도가 심함을 나타내는 말.”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5) 이 구절의 병행 본문에 해당하는 요한복음 19:6에서는 같은 뜻을 나타내는 다 른 낱말 ‘에크라우가산(ἐκραύγασαν )’이 쓰였는데, 그 시제는 부정과거형입니다.

따라서 누가복음 23:21에서 ‘대다’라는 보조 동사를 통하여 동작의 반복성을 나타냄

으로, 시제의 측면에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의 병행 본문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를

살리는 부수 효과도 생겼습니다.

요한복음

24. 요한복음 1:43 필립을 찾아가신다.

1) 『개역개정』은 “빌립을 만나”로, 『새번역』은 “빌립을 만나서”로, 『공동개정』은 “필립보를 만나”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필립을 찾아가신다.”로 번역했습 니다.

2) ESV, NRSVUE, NET는 “found Philip”으로, LB와 ZB는 “findet Philippus”(필 립을 찾아내다)로, BB는 “traf er Philippus”(필립을 만났다)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헤우리스케이(εὑρίσκει )’에 대한 번역입니다. 이 낱말 의 기본형 ‘헤우리스코(εὑρίσκω )’는 일차적으로 ‘발견하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

런데 문맥에 따라 그 발견에 의도성이 있는 경우에는 ‘찾아내다’로, 의도성이 없는

경우에는 ‘만나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4) 기존 한글 역본들은 모두 ‘만나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에서는 사전과

외국어 역본들을 참조하여 ‘찾아가다’로 번역했습니다. 이리하여 본문을 또 다른 관 점에서 이해해 보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이 필립을 의도적으로 찾아가셨다고 생각 해 보면, 이 본문은 우리가 이전에 생각하던 것과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 있습

니다.

5)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점은 영어 번역들이 “found”라는 과거 시제를 사용한 것

과는 달리 독일어 번역 LB와 BB는 “findet”라는 현재 시제 동사를 사용했다는 것입 니다. 여기에 쓰인 그리스어 동사 ‘헤우리스케이’의 시제는 현재입니다. 외국어 번

역본들이 원문의 역사적 현재 시제를 살리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 구절에서 LB 와 BB가 현재 시제를 잘 살려서 번역한 점이 눈에 띕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다 른 곳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역사적 현재 시제’는 할 수 있는 대로 원문 그대로 살려 서 번역했습니다.

25. 요한복음 1:51 아멘 아멘 그대들에게 말합니다.

1) 여기에서 주목해 볼 부분은 “아멘 아멘”입니다. ‘아멘’은 본디 히브리어 낱말 ‘아만’과 관련된 말로, ‘진실로’라는 기본 뜻을 지닙니다. 그래서 기존 한글 번역본들

에서는 ‘아멘 아멘’이 “진실로 진실로”(『개역한글』, 『개역개정』), “진정으로 진정으 로”(『새번역』)로 번역되었습니다. 『공동개정』에서는 아예 뜻풀이 번역으로 “정말 잘 들어두어라.”로 옮겼습니다.

2) 서양어 번역본들에서도 ‘아멘’을 ‘진실로 진실로’, ‘분명히’ 등으로 번역합니 다. 그런데 최근 독일어 번역본 BB는 ‘아멘 아멘’을 ‘아멘 아멘’으로 그대로 음역하 고 있습니다.

3) ‘아멘’은 기도가 끝날 때, 설교에서 선포된 내용에 동의를 표현할 때 주로 사

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처럼 지금 하는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점을 알 수 있도록 이번 『새한글성경』에서는 문장의 첫머리

에 “아멘 아멘”으로 그대로 음역하였습니다(“『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 번역 해설 집”, 45쪽 참조).

26. 요한복음 5:39 성경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1) 『개역개정』은 “연구하거니와”, 『새번역』은 “연구하는 것은”, 『공동개정』은 “파고들거니와”로 번역한 것을, 『새한글성경』은 “자세히 살펴봅니다.”로 번역했습 니다.

2) ESV, NRSVUE는 “search”로, NET는 “study … thoroughly”로, LB는 “sucht”(조사, 탐구하다)로, ZB와 BB는 “erforscht”(연구하다)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동사 ‘에라우나오(ἐραυνάω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Bauer)에 따르면, 이 낱말은 ‘탐구하다, 조사하다, 자세히 살펴보다, 연구하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4) ‘연구’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에 따르면,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하여서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진리를 따져 보는 일.”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개역개

정』의 번역은 원문 낱말의 뜻을 잘 살린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 이 낱

말이 사용되는 맥락을 살펴보면, 전문 연구자가 학문적으로 탐구하고 조사하는 것 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됩니다. 그래서 ‘연구’는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학문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하는 일로 오해되고, 이 말씀이 일반 독자들과는 관련 없

는 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목회자나 신학자가 이 본문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라

는 사실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습니다. 『새한글성경』은 이런 점을 고려하여 원문의

144 | 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뜻을 잘 살리면서도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는 표현으로 번역했습니다. 성경을 자세 히 살펴보고 깊이 묵상하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27. 요한복음 10:22 성전다시바친명절(수전절)

1) 『개역개정』은 “수전절”로, 『새번역』은 “성전 봉헌절”로, 『공동개정』은 “봉헌 절 축제”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성전다시바친명절(수전절)”로 번역했습 니다.

2) ESV에서는 “the feast of Dedication”으로, NET에서는 “the feast of the Dedication”으로, NRSVUE에서는 “the festival of the Dedication”으로, LB는 “das Fest der Tempelweihe”(성전 봉헌절)로, ZB와 BB는 “das Tempelweihfest”(성전 봉헌절)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엥카이니아(ἐγκαίνια )’에 대한 번역입니다. 이 낱말은 ‘새롭게 함’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무엇을 새롭게 하는 것인지

가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어 역본들은 ‘성전’이라는 말을 번역에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독일어 역본들은 문맥에서 새롭게 하는 대상이 ‘성전’이라는 사

실이 명백하므로, ‘성전 봉헌절’로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4) 『새한글성경』에서는 주변 강국 시리아의 강압 때문에 더럽혀진 성전을 다시 깨끗하게 정비하여 새롭게 바친 일을 뜻하는 배경을 고려하여, ‘봉헌’이라는 한자어 를 ‘바치다’라는 쉬운 표현으로 바꾸어 “성전다시바친명절”로 번역했습니다. “넘는 명절”, “누룩없는명절”, “다태우는제사” 등 한자어로 되어 있던 명절과 제사의 이름

들을 쉬운 표현으로 바꾼 것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그러면서도 전통 번역어를 괄호 속에 표기하여, 기존 번역에 익숙한 분들이 덜 낯설게 느끼도록 하였습니다. 특수 용어이기 때문에 띄어쓰기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28. 요한복음 11:33 화가 치밀고

1) 『개역개정』은 “비통히 여기시고”로, 『새번역』은 “비통하여”로, 『공동개정』은

뒤따라 나오는 동사와 묶어서 뜻풀이식으로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다.”로 번 역한 것을, 『새한글성경』은 “화가 치밀고”로 번역했습니다.

2) ESV는 “deeply moved”로, NRSVUE는 “greatly disturbed”로, NET는 “intensely moved”로, LB는 “ergrimmte”(격분했다)로, ZB는 “empört”(분개한)로, BB는 “zornig”(격분하여)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엠브리마오마이(ἐμβριμάομαι )’에 대한 번역입니다.

새한글성경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45

이 낱말은 기본적으로 ‘말이 힝힝거리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래서 주로 뭔가 격 앙된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이 낱말을 문맥에 따라 마 가복음 1:43과 그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 9:30에서 격한 어조로 ‘단단히 주의를 주다’ 로, 마가복음 14:5에서는 ‘거세게 나무라다’로 번역했습니다.

4) 이 구절에서는 사전과 외국어 번역들을 참조하여 예수님이 느끼신 ‘격분, 화, 분개’를 나타내도록 번역했습니다. 기존 번역은 슬픔의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뜻으

로 읽히는데, 『새한글성경』은 예수님이 느끼신 감정을 ‘분노, 화’로 번역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엇에 대해, 왜 분노를 느끼셨는지 질문이 생깁니다. 이 질문

에 대한 답으로 주석서들은 죽음의 세력, 죽음으로 사람들을 억누르는 사탄의 세

력에 분노를 느끼신 것으로 답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님의 공생애 활동은 눈에

보이는 차원을 넘어 우주적으로 사탄의 세력과 충돌하신 것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29. 요한복음 13:38 답변하신다.

1) 『개역개정』은 “대답하시되”, 『새번역』은 “대답하셨다.”로 번역하고, 『공동개 정』은 명시적으로 번역하지 않았는데, 『새한글성경』은 “답변하신다.”로 번역했습 니다.

2) ESV, NRSVUE, NET는 “answered”, LB는 “antwortete”(대답했다), ZB는 “antwortet”(대답한다), BB는 “erwiderte”(답변했다)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동사 ‘아포크리노마이(ἀποκρίνομαι )’에 대한 번역입니다. 이 동사는 대체로 『개역개정』에서 ‘대답하다’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굳이 여기서 『새한글성경』이 ‘답변하다’로 표현을 달리한 것은 그 쓰임새가 독특하기 때문입니 다.

4) 보통 ‘아포크리노마이(ἀποκρίνομαι )’는 수동태형인 ‘아페크리쎄(ἀπεκρίθη )’

나 그 분사형 ‘아포크리쎄이스(ἀπεκρίθεις )’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서는 중간태 형태인 ‘아포크리네타이(ἀποκρίνεται )’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원문의 어순, 어원, 쓰임새 등이 달라질 경우, 번역문에서도 최대한 그러한 차이를 반영하려고 하

는 『새한글성경』은 여기서도 같은 동사의 다른 쓰임새를 번역문에 반영하기 위해 ‘대답하다’가 아닌 ‘답변하다’라는 표현을 써서 번역했습니다. 5) 요한복음 13:36에서 실제로 ‘아포크리쎄’ 형태가 쓰였고, ESV, NRSVUE, NET는 “answered”로, LB와 ZB는 “antwortete”로 번역하여, 쓰임새의 차이를 번역에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게도 BB는 36절을 “antwortete”로 38절을 “erwiderte”로 달리 번역했습니다.

6) 시제로 볼 때, ‘답변하셨다’가 아니라 “답변하신다.”로 옮긴 까닭은 역사적 현

재 시제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ZB는 38절을 “antwortet”라는 현재 시제로 번역 하여 역사적 현재를 살리고 있습니다.

7) 『새한글성경』은 같은 동사의 다른 쓰임새도 살리고, 역사적 현재 시제도 살린

번역이라는 점에서, 어느 역본보다도 그리스어 원문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려고

애쓴 번역이라 하겠습니다.

30. 요한복음 15:4 머물러 있으세요. … 머물러 있지 … 머물러 있지

1) 이 구절에는 ‘메노(μένω )’라는 그리스어 낱말이 세 번 나옵니다. 이를 『개역개

정』은 각각 ‘거하다’, ‘붙어 있다’, ‘-안에 있다’로, 『새번역』은 두 번은 ‘머물러 있다’

로, 한 번은 ‘붙어 있다’로, 『공동개정』은 한 번은 ‘떠나지 않다’로, 두 번은 ‘붙어 있

다’로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새한글성경』은 세 번 모두 일관되게 ‘머물러 있다’로

번역했습니다.

2) ESV, NRSVUE는 “abide”로, NET는 “remain”으로, LB, ZB, BB는 “bleibt”(머 무르다, 거하다)로 세 번 모두 일관되게 번역했습니다.

3) 우리말 번역들이 같은 낱말을 조금씩 다르게 번역한 것은 문맥 때문입니다. 예

를 들어, ‘포도나무 안에 머물러 있다’라는 표현은 어색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개역 개정』, 『새번역』, 『공동개정』의 번역자들은 그리스어 원문 단어가 같더라도 우리말

번역문에서는 각각 문맥에서 자연스럽게 읽힐 수 있는 번역어를 찾아 번역한 듯합 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우리말로는 훨씬 자연스럽게 들리 기 때문입니다. 한편 『새한글성경』은 우리말로 다소 어색하게 들릴 수 있음을 모르 지 않지만, ‘메노’ 동사를 모두 똑같은 말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무 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4) ‘메노’ 동사는 ‘머물다, 거하다’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에서는 문맥에 따라 ‘머물다’(요 1:32, 33; 3:36 등)로 번역하기도 하고, ‘거하다’(요 1:39; 5:38; 6:56 등)로 번역하기도 하고, ‘유하다’(요 4:40; 11:6 등)로 번

역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메노’ 동사는 요한복음에서 매우 특징적으로 사용되 는 단어입니다. 공관복음에서는 ‘따르다’라는 뜻을 지닌 ‘아콜류쎄오(ἀκολουθέω )’

라는 동사가 자주 등장합니다(마태복음 25회, 마가복음 18회, 누가복음 17회). 예수

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나서는 제자들의

모습이 ‘따르다’라는 동사를 통해 매우 인상적으로 그려집니다. 그런가 하면 요한복 음에서는 ‘메노’ 동사를 자주 사용하여(총 40회. 참고로 요한문헌으로 묶을 수 있는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47

요한1서에서 24회, 요한2서에서 3회 사용됨)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1:39에 따르면, 요한의 제자 두 명이 예수님을 따라가서 예수

님이 머무시는 곳에서 함께 머물렀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예수

님이 메시아이신 것을 깨닫고, 자신들이 깨달은 내용을 자기 형제에게도 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머무른 시간이 가져온 놀라운 변화를 인상적으로 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4:39에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사마리아 여자의 증

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4:40

에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께 “자기들 곁에 머물러 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 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요청에 응하여 그들과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고, 결국에는 예수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고백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머무른 이틀의 시간이 가져온 놀라운 결과들을 볼 수 있습 니다. 그리고 위에서 살펴본 요한복음 15:4를 포함한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에서도

‘머물다’라는 동사가 높은 빈도로 반복 사용되고 있습니다. 내용상으로 보더라도 예 수님 안에,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합니다.

5)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우리말 번역문의 자연스러움도 중요하겠지만, 요한

복음에서 두드러진 신학적 강조점이 조금이라도 더 선명하게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번역어를 결정하는 것도 나름의 유익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새한글

성경』은 다소 어색함을 무릅쓰고 요한복음 15:4에 쓰인 ‘메노’ 동사를 모두 일관되 게 ‘머물러 있다’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동사가 반복 사용되고 있음을 관

찰하도록 돕고, 반복 사용된 이유를 묵상하는 가운데, 요한의 신학적 강조점에 다가

가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31. 요한복음 20:31 믿게 되도록

1) 『개역개정』은 “믿게 하려”로, 『새번역』은 “믿게 하고”로, 『공동개정』은 “믿고”로 번역한 것을, 『새한글성경』은 “믿게 되도록”으로 번역하고 각주에 “어떤 사본에는 ‘믿도록’”이라는 다른 번역 가능성을 밝혀 두었습니다.

2) ESV와 NET는 “so that you may believe”로, NRSVUE는 “so that you may continue to believe”로, LB와 ZB는 “damit ihr glaubt”(너희가 믿도록)로, BB는 “damit ihr festbleibt in dem Glauben”(너희가 믿음에 굳게 머물러 있도록)으로 번역했습니다.

3) 그리스어 원문으로는 두 가지 사본이 있습니다. 하나는 NRSVUE나 BB처럼 ‘너희가 계속 믿음에 머물러 있도록’을 지지하고, 다른 하나는 『개역개정』처럼 “너

148 | 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희가 믿게 하려 함이요”를 지지합니다. 『새한글성경』이 대본으로 삼은 최신 그리스

어 신약성경 GNT5에서는 전자가 학문적으로 조금 더 정확할 것으로 판단하지만, 후자로 읽어 온 전통을 존중하면서 후자를 비평 장치가 아닌 본문에 포함하되 꺾쇠

를 붙여 두었습니다.

4) 『새한글성경』은 이런 상황을 일반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감지할 수 있도록, “믿 게 되도록”을 본문에, “믿도록”을 각주에 넣어 두었습니다. 『새한글성경』은 관심 있

는 독자들이 번역문을 읽으면서도 그리스어 원문을 읽는 독자들이 경험했을 길을

뒤따라가도록 안내하려고 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32. 사도행전 1:4 함께 잡수실 때

1) 『개역개정』은 “함께 모이사”로, 『새번역』은 “함께 잡수실 때에”로, 『공동개정』

은 “함께 계신 자리에서”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함께 잡수실 때”로 번역하 고 각주에 “함께 계실 때”로도 번역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2) ESV와 NRSVUE는 “while staying with them”으로, NET는 “while he was with them”으로, LB는 “Und als er mit ihnen beim Mahl war”(그리고 그가 그들 과 함께 식사하실 때에)로, ZB는 “beim gemeinsamen Mahl”(함께 잡수실 때에) 로, BB는 “Als Jesus … mit ihnen aß”(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잡수셨을 때)로 번역 했습니다.

3) 국내외 번역을 참조하면 두 가지 번역이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원문의 해석 가능성이 두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쓰인 그리스어 동 사 ‘쉬날리조마이(συναλίζομαι )’는 ‘함께 있다’를 뜻할 수도 있고, ‘함께 먹다’를 뜻

할 수도 있습니다. 『새한글성경』은 이런 두 가지 해석 가능성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하나는 본문에, 하나는 각주에 소개했습니다. 때때로 번역본들 사이에 차이가

날 때, 그것은 어느 한 역본이 맞고 다른 역본이 틀려서라고 생각하는 것을 조심해 야 합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원문의 해석 가능성이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일 수 있습니다.

33. 사도행전 1:13 위층 방

1)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다락방”으로, 『공동개정』은 “이층 방”으로 번역했는 데, 『새한글성경』은 “위층 방”으로 번역했습니다.

2) ESV는 “the upper room”, NRSVUE는 “the room upstairs”, NET는 “the upstairs room”으로, LB와 ZB는 “das Obergemach”(위층 방)로, BB는 “im oberen

150 | 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Stockwerk”(위층에)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휘페로온(ὑπερῷον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

리스어 사전(Bauer)에 따르면, 이 낱말은 ‘upstairs room, upper part of the room, attic’을 뜻합니다. 그런데 고고학의 연구 결과, 중동 지역에서는 이 낱말이 집 위층

에 있는 널찍한 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위층 방은 집 바깥으로 난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4) 우리말 성경이 처음 번역될 당시 우리 문화에서 이런 공간에 가장 가까운 곳이

다락방이었기 때문에 『구역』이라고도 불리는 우리말 최초의 성경 『셩경젼셔』(1911)

에서 “다락”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 뒤로 계속 ‘다락’으로 이어지다가 1998년 『개

역개정』에서 “다락방”으로 개정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다락방이

없는 집들이 많으므로, ‘다락방’이라는 말에 익숙지 않은 다음 세대를 위한 『새한글

성경』에서는 고고학의 연구 결과를 반영하여 독자들이 더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위층 방”으로 번역했습니다.

34. 사도행전 10:36 예수 그리스도를

면서

좋은 소식으로 전해 주시

1) 『개역개정』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로, 『새번역』

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로, 『공동개정』은 “예수 그리스

도를 시켜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입니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예수 그리 스도를 통한 평화를 좋은 소식으로 전해 주시면서”로 번역했습니다.

2) ESV는 “preaching good news of peace through Jesus Christ”로, NRSVUE 는 “preaching peace by Jesus Christ”로, NET는 “proclaiming the good news of peace through Jesus Christ”로, LB는 “Frieden verkündigt durch Jesus Christus”(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다)로, ZB는 “als er die Botschaft des Friedens verkündigte durch Jesus Christus”(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의 복음을 전했을 때)로, BB는 “Er hat ihm die Gute Nachricht verkündet, dass er Frieden gebracht hat.”(그가 평화를 가져오셨다는 기쁜 소식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전하셨다)으로 번역했습니다.

3)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로 번역된 부분입니다.

그리스어 원문은 ‘유앙겔리조메노스 에이레넨(εὐαγγελιζόμενος εἰρήνην )’입니다. ‘복음을 전하다’라는 뜻을 지닌 ‘유앙겔리조마이’ 동사의 현재분사인 ‘유앙겔리조메 노스’에 ‘평화’를 뜻하는 명사 ‘에이레넨’이 덧붙은 꼴입니다. 동사 자체의 뜻에 이미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51

목적어가 포함된 꼴이다 보니 다른 목적어와 함께 쓰일 때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번

역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영어나 독일어 같은 외국어에서도 형편은 비슷해 보입 니다. 그래서 그냥 ‘평화를 선포하다/전하다’로 번역하든지, 혹은 ‘평화의 복음을 선 포하다/전하다’로 번역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사실 ‘유앙겔리조마이’ 동사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평화’, ‘하나님의 나 라’ 등을 목적어로 취하며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동사가 목적어를 취 하는 형태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이것을 번

역에서도 반영하기 위해 『새한글성경』에서는 ‘평화를 좋은 소식으로 전하다’로 번 역한 것입니다. 다른 역본들이 잘못 번역해서가 아니라, 『새한글성경』이 원문의 용

례나 형식을 번역문에 조금이라도 더 담아내기 위해 새롭게 시도한 번역 특징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35. 사도행전 15:39 바르나바 … 키프로스

1) 『개역개정』은 “바나바”와 “구브로”로, 『새번역』은 “바나바”와 “키프로스”로, 『공동개정』은 “바르나바”와 “키프로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바르나바”

와 “키프로스”로 번역했습니다.

2) ‘바르나바’에서 ‘바르’는 ‘-의 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후기 히브리어와 아 람어에서 ‘바르’가 아들을 가리키는 접두어로 사람 이름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 사

실을 번역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새한글성경』에서는 ‘위로의 아들’을 뜻 한다고 풀이되는 이 이름을 “바르나바”로 번역했습니다. 참고로, 마가복음 15:15, 사

도행전 13:6에서 『개역개정』이 “바라바”와 “바예수”로 번역했던 것을 “바르압바”와 “바르예수”로 번역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변화입니다.

3) “구브로”를 “키프로스”로 번역한 것은 외래어의 음역을 국립국어원의 외래 어 표기법과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표기법에 따르기로 한 번역 원칙에 기초한 것입 니다.

4) 『개역개정』에 나오는 사람 이름이나 지역 이름의 음역이 교과서에 나오는 음

역과 달라서 성경과 일반 역사의 연관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성경과 일반 역사의 연관성을 잘 이어 주고, 성 경의 역사성을 부각하기 위해 『새한글성경』에서는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과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의 음역 기준을 참조하여 인지명의 음역을 새롭게 바꾸었습니 다. 이런 시도는 기존 번역에서 일부 시도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새한글성경』에서

전면적으로 도입한 것입니다.

36. 사도행전 19:38 지방 총독들

1)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총독들”로, 『공동개정』은 “지방장관들”로 번역했는 데, 『새한글성경』은 “지방 총독들”로 번역했습니다.

2) ESV, NRSVUE, NET는 “proconsuls”로, LB, ZB, BB는 “Statthalter”(총독) 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안티파토스(ἀνθύπατος )’에 대한 번역입니다. 이 낱말 은 본디 원로원 관할 속주의 행정 책임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펠릭스(행 23:24, 26)를 가리켜 사용된 ‘헤게몬(ἡγεμών )’은 황제 관할 속주를 다스리는 사람에 대해 사용된 말입니다. 영어 번역들은 대체로 이 둘을 구분하여 ‘안티파토스’는 “proconsul”로, ‘헤게몬’은 “governor”로 번역합니다. 독일어 번역은 그런 구분 없이 ‘안티 파토스’와 ‘헤게몬’을 둘 다 그냥 “Statthalter”(총독)로 번역했습니다.

4) 『개역개정』과 『새번역』에서는 ‘안티파토스’와 ‘헤게몬’을 구분 없이 모두 “총

독”으로 번역했습니다. 『새한글성경』에서는 로마의 관직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분

석하여 황제 관할 속주의 통치자를 가리키는 말과 원로원 관할 속주의 통치자를 가

리키는 두 낱말을 구분하여 번역어를 달리했습니다. ‘헤게몬’은 “총독”으로 ‘안티파

토스’는 “지방 총독”으로 번역했습니다.

로마서( 로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

37. 로마서 1:1-7 서신의 서두 형식이

번역 1 바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부리시는 종입니다.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

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따로 구별된 사람입니다. … 7 나는 로마에 있는 여러분 모두, 곧 하나님께 사랑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 모두에게 이 편지를 보냅니다.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내리 기를 빕니다!

1) 신약성경에 나오는 서신의 전형적인 형식은 발신자, 수신자, 인사말입니다.

2) 그리스어 원문으로 볼 때 로마서에서 첫 번째로 나오는 낱말이 발신자를 밝히 는 ‘바울’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바울에 관해 설명하는 수식어들이 따라 나옵니다 (1-6절). 우리말로는 수식하는 말이 수식받는 말 앞에 오는 것이 통상적인 어순이기

때문에, 『개역개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새한 글성경』에서는 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그리스어 신약성경에서처럼 번역문에서도 발신자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오도록 번역했습니다.

3) 1절 두 번째 단어부터 6절까지는 발신자인 바울이 누구인지를 더 자세히 설명 해 주는 내용입니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세우지 않은 교회입니다. 자신이 세우지 않은 교회에 보내는 편지인 만큼 바울은 수신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발신자에 대한 긴 설명이 나온 뒤에, 7상반절에서 비로소 수신자가 나옵니다.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수신자를 밝히는 ‘-에게’에 해당하는 여격만 나오는데, 우리 말로는 그렇게 번역할 경우 수신자를 밝히는 원문의 느낌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 습니다. 그래서 7절에서는 원문에 없는 “편지를 보냅니다.”라는 어구를 보충하여 번 역했습니다.

5) 7하반절에서는 인사말이 나옵니다. 인사말도 원문의 어순을 최대한 그대로 살 려서 번역했습니다. 그 결과, 독자들에게는 기존의 역본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 올 수 있습니다.

6) 이처럼 『새한글성경』에서는 로마서의 서두인 1:1-7에서 편지의 발신자, 수신

자, 인사말을 모든 독자가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도록 했고, 그리스어 원문의 어순 에도 더 충실하게 번역했습니다.

38. 로마서 6:23 죄의 품값은 죽음이고

1) 『개역개정』, 『새번역』은 “삯”으로, 『공동개정』은 “대가”로 번역했는데, 『새한글

성경』은 “품값”으로 번역했습니다.

2) ESV와 NRSVUE는 “wages”로, NET는 “payoffs”로, LB와 ZB는 “Sold”(급료, 봉급)로, BB는 “Lohn”(보수, 대가)으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옵소니온(ὀψώνιον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

리스어 사전(Bauer)은 이 낱말을 ‘pay, wages, compensation’으로 풀이합니다. 따

라서 기존 역본들도 모두 잘 된 번역입니다. 굳이 기존 번역어 외에 다른 번역어를

찾아야 할 이유가 커 보이지 않습니다. 번역어를 달리한다고 해서 본문 이해가 크게

달라질 만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새한글성경』이 굳이 “삯”을 “품값”으로

번역한 데에는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일까요?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 구절에 적힌 “죄

의 삯은 사망”이라는 표현을 읽을 때, ‘죄를 지으면 죽음의 결과가 뒤따른다.’라고 은

유적으로 이해하는 듯합니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품값”이라고 하면, 그냥

어떤 사태의 결과라는 느낌과는 다른 의미가 떠오릅니다. ‘품값’은 보통 어떤 일을

한 대가로 받는 보상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4) 사전적 의미를 잘 생각해 보면, ‘삯’이나 ‘보상’도 어떤 일을 한 것에 대해서 받

는 대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죄의 삯”이라는 표현에서 보통 우리는 죄를 지으면

받게 되는 당연한 결과라는 의미를 떠올립니다. 본문이 전하는 의미의 측면에서 보 자면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로마서가 죄를 인격화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 을 잘 드러내 주지는 못합니다.

5) 로마서는 “죄”라는 단어를 매우 독특하게 사용합니다. 우리가 짓게 되는 잘못 된 행위를 가리키는 의미로 죄를 사용하기보다는, 우리를 다스리는 악한 세력이라

는 뜻으로 더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는 보통 “죄”라는 단어가 단수로 나옵니다. 로마서 6:23에서도 “죄의 삯”이라고 할 때, 여기서 “죄”는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의미보다는 우리를 자신의 종으로 만들어 우리를 부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55

려 먹는 악한 세력의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죄의 삯”은 우리가 저지른 죄

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를 부려 먹은 악한 세력 ‘죄’가, 자신의 지배에 노예 노릇 한

우리에게 치르는 품값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6) 물론 주의 깊은 독자라면, 『개역개정』 로마서 6장에서 “죄에게 종 노릇”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등 죄가 인격화되고 있는 특징을 바탕으로, “죄의 삯”이라는 표현

에서 그런 의미를 읽어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주인으로서 자기 종에

게 품삯을 치른다’라는 개념은 일상적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어서, 로마서의

이런 독특한 용례를 제대로 간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새한글성경』은 “품

값”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삯”이라는 표현이 이미 품고 있는 뜻이지만, 독자들이

놓치기 쉬운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볼 수 있도록 의도한 것입니다.

7) 참고로 로마서는 우리의 구원에 관해 설명하면서 두 가지 설명 모델을 동원하

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법정적(judicial) 모델이고, 다른 하

나는 참여(participation) 모델입니다. 법정적 모델에서는 마치 법정에서 판사가 판

결하듯이, 우리가 지은 죄를 하나님께서 무죄로 인정해 주셔서 죗값을 치르지 않아

도 되도록 해 주신다는 식으로 구원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때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우리가 치를 죗값을 대신 치른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참여

모델에서는 ‘죄’가 악한 세력으로 이해됩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악한 세력인 죄

는 우리 인간을 자기의 노예로 삼아,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의 뜻을 따라 살게 한

다고 봅니다. 우리는 그러한 죄의 지배로부터 스스로 벗어날 능력이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그러한 죄의 세력을 눌러 이겼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그러한 죄의 지

배로부터 풀려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악한 세력인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

의 뜻에 따라 살 수 있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로마서는 주로 3-5장에

서 법정적 모델을 사용하여 구원 개념을 설명하고, 6-8장에서는 참여 모델을 사용

하여 구원 개념을 설명합니다. 이 두 가지 모델에 대해 잘 숙지하면서 로마서를 읽 어 보면, 바울의 의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39. 로마서 8:26 무엇을 두고 마땅히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1) 『개역개정』은 “마땅히 기도할 바를”로, 『새번역』과 『공동개정』은 “어떻게 기도 해야 할지도”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무엇을 두고 마땅히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로 번역했습니다.

2) ESV는 “what to pray for as we ought”로, NRSVUE는 “how to pray as we

새한글성경

ought”로, NET는 “how we should pray”로, LB는 “was wir beten sollen wie sich’ s gebührt”(우리가 어떻게 마땅한 방식으로,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로, ZB는

“ was wir eigentlich beten sollen”(우리가 본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으로, BB는

“ was wir beten sollen. … wie wir unser Gebet in angemessener Weise vor Gott bringen.”(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마땅한 방식으로 하나 님 앞에 가지고 갈지)으로 번역했습니다.

3) 대체로 기존 번역들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또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로

번역하여, 기도의 내용(what)이나 기도의 방식(how) 가운데 하나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는 기도의 방법뿐 아니라 내용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한편, 독일어 LB나 BB는 이 본문이 기도의

내용뿐만 아니라, 기도의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도록 한다는 점을 살려서 번역했 습니다. 『새한글성경』은 그리스어 원문의 형식에 조금 더 가깝게 직역하여, 독일어

역본들처럼 이 본문에서 기도의 내용과 방법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묵상해 보도록 돕 는 번역을 선택했습니다.

40. 로마서 11:36 하나님으로부터 … 하나님을 통해서 … 하나님을 위해서 … 하나님께 …

1) 『개역개정』은 “주에게서 … 주로 말미암고 … 주에게로 … 그에게 …”로, 『새

번역』은 “그에게서 … 그로 말미암아 … 그를 위하여 … 그에게 …”로, 『공동개정』은 “그분에게서 … 그분으로 말미암고 … 그분을 위하여 … 그분께 …”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 하나님을 통해서 … 하나님을 위해서 … 하나님께 …”로 번역했습니다.

2)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3인칭 대명사 ‘아우토스(αὐτός )’의 변화형이 쓰였는데, 대명사를 실명사로 바꾸어 번역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여기서 대명사가 가

리키는 대상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새번역』을 제외한 다른 역본들은 평어체로 느 껴지는 “그”로 번역하는 대신 “주” 또는 “그분”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을 가리키는 대명사를 “그”로 번역했을 때,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존경 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으로 느끼는 분이 계실 수 있습니다. 『새한글성경』에서 는 종종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사람을 높여서 이르는 말”인 의존 명사 ‘분’을 붙여 서 “그분”이라고 번역하기도 했는데, 이 구절에서는 더 명시적으로 “하나님”이라 고 번역했습니다. 특히, 이 구절은 문맥에서 따로 떨어져 그 자체로 ‘송영’으로 읽 힐 수도 있어서, 이 한 절만 따로 읽힐 때도 뜻이 분명하게 이해되도록 한 것입니다.

41. 로마서 15:1 우리는, 우리 강한 사람들은

1)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믿음이 강한 우리는”, 『공동개정』은 “믿음이 강한 사람은”으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우리는, 우리 강한 사람들은”으로 번역 했습니다.

2) ESV, NRSVUE, NET는 “We who are strong”으로, LB는 “Wir … , die wir stark sind”(우리는, 우리 강한 사람들은)로, ZB와 BB는 “Wir, die Starken”(우리, 강한 사람들은)으로 번역했습니다.

3) 역본들을 비교해 볼 때 『새한글성경』과 LB가 인칭 대명사를 두 번 반복한 것 이 특이합니다.

4) 『새한글성경』과 LB가 인칭 대명사를 두 번 사용한 것은 그리스어 원문에서 인칭 대명사가 강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쓰인 ‘오페일로멘(Ὀφείλομεν )’

이라는 동사는 ‘우리는 -해야 한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동사 안에 이미 주어가

1인칭 복수라는 사실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어에서는 인칭 대명사를

강조하려고 할 때, 별도로 인칭 대명사를 다시 한번 써 주곤 합니다. 이 구절에서

도 ‘우리는’에 해당하는 대명사 ‘헤메이스(ἡμεῖς )’가 추가되어 ‘오페일로멘 헤메이스 (Ὀφείλομεν ἡμεῖς )’로 되어 있습니다. ‘헤메이스’라는 인칭 대명사가 없어도 뜻을 소통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강조를 위해서 인칭 대명사를 한 번 더 써 준 셈입니다. 『새한글성경』과 LB는 이런 인칭 대명사의 강조 용법을 살려서 번역한 것입니다. 『새한글성경』은 그리스어 원문의 뜻만 소통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리스어 원문의 뉘앙스까지도 번역에 담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고린도전서(코린트 사람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고린도후서(코린트 사람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42. 고린도전서 6:12 “모든 것이 나에게 허락되어 있다.”라고들 합니다.

1) 『개역개정』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로, 『새번역』은 ““모든 것이 내게 허용

되어 있습니다.””로, 『공동개정』은 “누구나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모든 것이 나에게 허락되어 있

다.”라고들 합니다.”로 번역했습니다.

2) 최근 주석은 이 구절을, 바울의 적대자가 바울에게 맞서서 외친 구호라고 풀 이합니다. 『개역개정』은 문장 부호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나타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새번역』과 『공동개정』은 문장 부호를 사용하여 이

본문에 대한 최근의 학문적 이해를 번역에 잘 반영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새한글

성경』도 최근 본문 이해를 반영하는 번역을 채택했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 가운데

는 아직 『개역개정』 이외에 다른 역본들을 참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 구절 을 매우 새롭게 느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짧은 번역 설명을 덧붙입니다.

43. 고린도전서 13장 세부 소제목 추가 1) 『개역개정』에서는 13장 전체에 “사랑”이라는 하나의 소제목을 붙여 두었는데, 『새한글성경』에서는 고전 13장을 전체 3개의 소단락으로 나누어, 각 단락에 소제목 을 덧붙였습니다. 1-3절 부분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이득이 없다”, 4-7절 부분 에 “사랑이 무엇인지 노래하다”, 8-13절 부분에 “으뜸은 사랑이다”라는 소제목을

덧붙여 본문의 세부 내용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소단락 구분은 그

리스어 원문에는 본디 없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중에 덧붙은 것입니다.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59

44. 고린도전서 13:5 나쁜 일을 당해도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1) 『개역개정』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로, 『새번역』은 “원한을 품지 않 습니다.”로, 『공동개정』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나쁜 일을 당해도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로 번역했습니다.

2) 그리스어 원문은 ‘우 로기제타이 토 카콘(οὐ λογίζεται τὸ κακόν )’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는 ‘-이/가 아니라’를, ‘로기제타이’는 ‘생각하다’를, ‘토 카콘’은 ‘악한 것, 나쁜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를 그대로 직역하면 『개역개정』처럼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직역할 경우, 스스로 어떤 악한 일을 생각해 내지 않는다 는 뜻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용은 자신이 당한 악한 일에 관

해 원한이나 앙심을 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 앞선 『새번역』이나 『공동개정』이 그런 취지로 번역하여, 본문을 오해할 여지를 없앴습니다. 그런데 『새번역』과 『공동개정』은 그리스어 원문에 나오는 ‘토 카콘’을 번역문에서 삭제했습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에 나오는 “악한 것을”이라는 표현이 사라졌습니다. 『개역개정』이 원문 직역에 더 중점을 두었다면, 『새번역』이나 『공동 개정』은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더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한편, 『새한글성경』은 “나쁜 일을 당해도”라는 문구를 덧붙여, 그리스어 원문

에 나오는 ‘토 카콘’이라는 요소를 번역문에 반영했습니다. 『새한글성경』은 그리스

어 원문에 나오는 요소는 최대한 번역문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반영하려고 했습니

다. 그런 점에서 『새한글성경』은 본문의 뜻을 정확하고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뿐 아니라, 원문의 형식에도 더욱 가깝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5. 고린도후서 5:17 새로운 창조물

1)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새로운 피조물”로, 『공동개정』은 “새 사람”으로 번 역했던 것을, 『새한글성경』은 “새로운 창조물”로 번역했습니다.

2) ESV, NRSVUE, NET는 “a new creation”으로, LB와 ZB는 각각 “eine neue Kreatur”(새 창조물), “das neue Schöfung”(새 창조물)으로, BB는 “neue Schöfung”(새 창조물)으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표현 ‘카이네 크티시스(καινὴ κτίσις )’에 대한 번역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낱말은 ‘크티시스’로, ‘창조하다’를 뜻하는 ‘크티조’ 동사와 같

은 뿌리에서 나온 명사입니다. 따라서 『새한글성경』은 ‘창조하다’라는 동사와의 관

련성을 살려서 “창조물”로 번역했습니다. 물론 최종적으로 가리키는 대상이 창조 의 결과물이므로 “피조물”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 강

160 | 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조한 것처럼, 『새한글성경』은 원문의 어순과 어원 등 원문에 있는 요소를 번역문에

반영하는 데에 깊은 주의를 기울여 번역을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창조”라는 표현 을 통해, “피조”라는 표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느낌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46. 고린도후서 10:17 자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자랑하기 바랍니다.

1) 『개역개정』은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로, 『새번역』은 “자랑하 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로, 『공동개정』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자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자랑하기

바랍니다.”로 번역했습니다.

2) ESV와 NRSVUE는 “Let the one who boasts, boast in the Lord.”로, NET는 “But the one who boasts must boast in the Lord.”로, LB와 ZB는 “Wer sich rühmt, der rühme sich des Herrn.”(자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자랑하십시오)으로, BB는 “Wer auf etwas stolz sein will, soll auf den Herrn stolz sein.”(뭔가 자랑하 고 싶은 사람은 주님을 자랑해야 합니다)으로 번역했습니다.

3) 여기서 문제가 되는 그리스어 표현은 ‘엔 퀴리오 카우카스쏘(ἐν κυρίῳ καυχάσθω)’입니다. ‘엔 퀴리오’를 ‘카우카스쏘’ 동사와 함께 ‘주님을 자랑하기 바라 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숙어적 표현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카우카스쏘’ 동사와 별 개로 ‘엔 퀴리오’가 ‘주(님) 안에서’를 뜻하는 부사구 역할을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 입니다.

4) 이 그리스어 표현은 예레미야 9:22-24에서 사용된 B. ll;h'(할랄 브)를 번역한

칠십인역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에서 이 표현은, 최신 구약 히브리 어 사전(HALOT)에 따르면, ‘-안에서 자랑하다’가 아니라 ‘-을/를 자랑하다’라는 뜻

을 나타냅니다. 이 표현은 『개역개정』에서도 로마서 2:17, 23; 고린도전서 3:21; 고

린도후서 5:12 등에서 이미 ‘-을/를 자랑하다’라는 뜻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새 번역』도 똑같은 표현이 나오는 똑같은 문맥에 해당하는 고린도전서 1:31에서는 “주 님을 자랑하라”로 번역했습니다. 5) ‘주님 안에서 자랑하는 것’과 ‘주님을 자랑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종종 간증할 때 사람들은 ‘주님 안에서 자랑한다’라고 하면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한글성경』은 기존 역본들에서 이미 인지하였 으나 체계적으로 적용하지 못한 본문 이해에 따라 이 구절을 새롭게 번역했습니다.

갈라디아서( 갈라티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

47. 갈라디아서 6:2 제대로 이루게 될 것입니다.

1) 『개역개정』은 “성취하라”로, 『새번역』은 “성취하실 것입니다.”로, 『공동개정』 은 “이루십시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제대로 이루게 될 것입니다.”로 번역했습니다.

2) ESV는 “and so fulfill the law of Christ.”로, NRSVUE와 NET는 “and in this way you will fulfill the law of Christ.”로, LB와 ZB는 “so werdet ihr das Gesetz Christi erfüllen.”(이렇게 하여 너희가 그리스도의 법을 이룰 것이다)으로, BB는 “So erfüllt ihr das Gesetz, das Christus gegeben hat.”(이렇게 하면 너희는 그리

스도께서 주신 법을 이루게 된다)로 번역했습니다.

3) 위의 국내외 번역을 보면 일부는 명령형으로, 일부는 미래형으로 번역하고 있 습니다. 그 배경에는 사본의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본은 명령형을 지지하고, 어떤 사본은 미래형을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최신 원문은 미래형을 지지합니다. 『개역개 정』, ESV는 명령(아나플레로사테, ἀναπληρώσατε )을 지지하는 사본을 따라 번역 하였고, 『새한글성경』, NRSVUE, NET, LB와 ZB는 최신 원문인 미래(아나플레로

세테, ἀναπληρώσετε )를 지지하는 본문을 따라 번역하였습니다.

4) 최신 원문을 따라 미래형으로 이해할 경우, 본문은 갈라디아서 6:1-2상반에 나오는 명령을 그대로 따르면 당연히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개역개정』, ESV, BB처럼 명령형으로 이해할 경우, 앞서 나 오는 명령을 다 실행하고, 그렇게 하여 마침내는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뜻으 로 볼 수 있습니다.

5) 『새한글성경』에서 새로운 점은 그리스어 동사에 붙은 접두어를 살려 “제대로”

라는 부사를 덧붙인 것입니다. 『새한글성경』은 합성 동사를 번역할 때, 접두어의 뉘

앙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48. 갈라디아서 6:12 그것은 다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박해받는 일을

면하기 위해서입니다.

1) 『개역개정』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

라”로, 『새번역』은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고

자 하는 것입니다.”로, 『공동개정』은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려고 그러는 것뿐입니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그것은 다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박해받는 일을 면하기 위해서입니다.”로 번역했습니다.

2) 『개역개정』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핍박을 가져오는 원인인지, 핍박을

면하게 해 주는 근거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번역』, 『공동개

정』, 『새한글성경』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그들이 핍박받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합니다.

3) ‘오직, 다만’을 뜻하는 그리스어 부사 ‘모논(μόνον )’을 『개역개정』은 ‘-뿐이라’

로 반영하였으나 일반 독자들에게 정확히 이해되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새번

역』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부사를 번역에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공동개정』은 “오 직”으로 번역하여 이를 잘 반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것뿐입니다.”를 덧붙여

우리말의 자연스러움을 더 끌어올리려고 약간의 보충 번역을 하였습니다. 의미 전

달에 더 중점을 둔 『공동개정』의 방향성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새한글성경』

은 이 부분에서 원문의 모든 요소를 번역에 반영하고, 최대한 의미를 분명히 살리면

서도 직역 원칙을 추구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49. 갈라디아서 6: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

기를 빕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아멘!

1) 『개역개정』은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

어다 아멘”으로, 『새번역』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 러분의 심령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으로, 『공동개정』은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여러분의 마음에 내리기를 빕니다. 아멘.”으로 번역했는데, 『새 한글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아멘!”으로 번역했습니다.

2) 18절은 서신의 맨 마지막 절로, 끝맺는 인사의 일부입니다. 은혜를 기원하는

인사말로 시작해서, 은혜를 기원하는 인사말로 서신을 마무리하는 바울의 특징을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새한글성경』에서 한 가지 새로운 점은, 호 격인 “형제자매 여러분”의 어순입니다. 우리말에서는 호격이 문장이나 진술의 앞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63

부분에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어에서는 화자의 의도에 따라 호격의

위치는 맨 앞이나, 중간이나, 맨 뒤 어디에든 올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호

격이 편지의 맨 마지막 절인 18절에, 그것도 18절의 맨 마지막에 자리하고 있는 것

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물론 서신의 마지막 낱말은 ‘아멘’이지만, ‘아멘’은 편지 전체

의 내용이 진실함을 긍정하고 강조하고자 따라붙는 말이라는 점에서, 편지의 내용

상 갈라디아서에서 맨 마지막 단어가 ‘형제자매 여러분’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갈라디아서는 잘 알려진 대로, 바울이 복음을 전한 뒤에 유대주의자들이 와서

은혜로 믿음 안에서 받는 구원에 더하여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

자, 갈라티아 사람들이 이 주장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에서 쓰인 편지입니다. 이런 상

황에 흥분한 나머지 바울은 통상적으로 편지 수신자에 관해 감사의 기도를 드림으

로 시작했던 다른 서신들과는 달리, 자신이 전한 복음과 다른 것을 복음으로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거친 말(갈 1:8)로 편지를 시작합니다. 또 갈라디아서 3:1에

서는 “아, 생각 없는 갈라티아 사람들이여!”라고 부르며, 격앙된 감정을 숨기지 않습

니다. 이런 바울의 감정과 편지의 정황을 고려하면, 편지의 맨 마지막에 수신자들을

‘형제자매 여러분’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이 매우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편지 수

신자들에게 큰 여운을 남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단호하고

거친 말로 꾸짖고 있지만, 그들의 구원을 향한 바울의 열정과 사랑이 고스란히, 강

력하게 전해지는 듯합니다. 이런 느낌을 최대로 살리기 위해서 『새한글성경』은 호

격을 원문 어순대로 18절의 맨 뒤에 자리하도록 번역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에페수스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

50. 에베소서 5:21 그리스도를 두려워함으로 서로 자기를 상대방의 아래에 두십시오.

1) 『개역개정』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로, 『새번역』은 “여러분

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로, 『공동개정』은 “여러분 은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정신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 경』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함으로 서로 자기를 상대방의 아래에 두십시오.”로 번역 했습니다.

2) ESV와 NET는 “submitting to one another ouf of reverence for Christ.”로, NRSVUE는 “being subject to one another out of reverence for Christ.”로, LB 와 BB는 “ordnet euch einander unter in der Furcht Christi.”(그리스도를 두려 워함으로 너희는 서로 자신을 아래에 두라)로, ZB는 “Wir wollen uns einander unterordnen, in der Ehrfurcht vor Christus.”(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우리는 서

로 자기를 상대방 아래에 두기를 원한다)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휘포타쏘메노이 알렐로이스 엔 포보 크리스투(Ὑποτασσόμενοι

ἀλλήλοις ἐν φόβῳ Χριστοῦ, )’에 대한 번역입니다. ‘엔 포보(ἐν φόβῳ )’를 영어 역

본들과 ZB는 『개역개정』과 같이 ‘경외함’으로 번역했고, LB와 BB는 『새번역』, 『새한 글성경』과 같이 ‘두려움’으로 번역했습니다. ‘두려움’은 직역에 해당하고, ‘경외함’은

전통을 존중하는 예배용 성경에 어울리는 번역어로 볼 수 있습니다.

4) ‘휘포타쏘메노이 알렐로이스(Ὑποτασσόμενοι ἀλλήλοις )’는 기존 역본들처 럼 “피차 복종하라”, “서로 순종하십시오.”, “서로 복종하십시오.”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만 『새한글성경』은 그리스어 낱말의 어원을 그대로 살

려서 이를 “서로 자기를 상대방의 아래에 두십시오.”로 번역했습니다. ‘휘포타쏘메

노이’에서 ‘휘포’는 ‘아래’를 뜻하는 접두어이고, ‘타쏘메노이’는 ‘정렬하다, 어떤 자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65

리에 두다’를 뜻합니다.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 ‘-아래에 두다’가 됩니다. 참고로 영

어 단어 subject, submit에서 sub-, 독일어 단어 unterordnen에서 unter-는 ‘아래 에’를 뜻합니다. 우리말로 ‘복종하다, 순종하다’라는 번역어는 뜻을 전달하는 데 아

무 문제가 없지만, 그리스어 낱말에 담긴 요소를 눈앞에 떠올리게 하지는 못하는 아

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남의 명령이나 의사를 그대로 따라서 좇음.”(『표준국어대 사전』)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복종’이라는 2차 의미로 바로 넘어가기에 앞서 원

문의 1차적 어원을 잠시 묵상해 보면 본문을 새로운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

을 것입니다.

5)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점은 단락 구분입니다. 에베소서 5:21이 『개역개정』에서

는 앞 단락의 끝에 위치하는데, 『새한글성경』에서는 새 단락의 처음에 위치합니다.

위에 언급한 독일어 역본들에서도 에베소서 5:21은 ‘아내들과 남편들에게 하는 권

유’ 단락의 첫 절로 구분되어 있고, 『새번역』이 이미 그렇게 단락 구분을 했습니다.

“서로 자기를 상대방의 아래에 두십시오.”라는 대전제 아래에서 이어지는 내용을

이해하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에 단락 구분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5:21-33을 한 단락으로 묶어서 읽는 것과, 5:22-33을 한 단락으로 묶어서 읽는 것은 큰 차이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빌립보서( 필리피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 51. 빌립보서 4:13 나에게 능력 주시는

나는 어떤 상황에도 대처 할 수 있습니다.

1) 『개역개정』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로, 『새번역』은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로, 『공동개정』은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로 번역했 는데, 『새한글성경』은 “나는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습니다.”로 번역했습니다.

2) ESV와 NRSVUE는 “I can do all things”로, NET는 “I am able to do all things”로, LB는 “ich vermag alles”(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로, ZB는 “Alles vermag ich”(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로, BB는 “Ich bin allem gewachsen”(나는 모든 면에서 성숙했습니다)으로, TOB는 “Je peux tous”(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로, BFC는 “Je peux faire face à toutes les difficultés”(나는 모든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표현 ‘판타 이스퀴오(πάντα ἰσχύω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

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에 따르면, 동사 ‘이스퀴오(ἰσχύω )’는 ‘have power, be competent, be able’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용사 ‘이스퀴로스’는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strong’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되 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낱말은 무엇을 능동적으로 수행해 낼 수 있는 능력보다는 어 떤 상황에서도 견뎌 낼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 볼 만합니다.

4) 다른 외국어 역본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존 한글 역본들에 특별한 문제 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프랑스어 번역 BFC와 독일어 번역 BB에서 시도한 것 과 같이 이 본문을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므로 『새한글성경』이 그것을 소개한 것입 니다. 『새한글성경』에서 소개한 방식으로 본문을 읽어 나갈 때, 빌립보서 4장의 앞 뒤 문맥도 조금 더 잘 통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 테살로니키 사람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

52. 데살로니가전서 2:7 젖먹이가 되었습니다.

1) 『개역개정』은 “유순한 자가 되어”로, 『새번역』은 “유순하게 처신하였습니다.” 로, 『공동개정』은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했습니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젖먹이가 되었습니다.”로 번역했습니다.

2) ESV와 NRSVUE는 “were gentle”로, NET는 “became little children”으로, LB는 “war arglos”(순진했다)로, ZB는 “wie arglose Kinder”(순진한 아이처럼)로, BB는 “waren liebvoll”(사랑스러운 자였다)로 번역했습니다.

3) 국내외 여러 번역본을 살펴보면, 표현이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보아 ‘유순한

자가 되었다’와 ‘젖먹이가 되었다’라는 두 종류의 번역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사본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순한 자가 되었다’는 번역은

본문을 ‘에피오이(ἤπιοι )’로 읽은 것이고, ‘젖먹이가 되었다’는 번역은 본문을 ‘네피 오이(νήπιοι )’로 읽은 것입니다. 『새한글성경』의 번역은 그 번역 대본인 GNT5와

NTG28이 채택한 ‘네피오이’를 따른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디모데에게 보낸 첫째 편지 )

53. 디모데전서 1:1 바울이네. 그리스도

사도라네. 우리의 구원자 하 나님과 우리의 희망 그리스도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사도가 되었지.

1) 여기서는 마침꼴에 주목해 보기를 원합니다. 『새한글성경』은 디모데전서를

포함한 목회서신(딤전, 딤후, 딛)에서 기존 역본과 달리 하게체 마침꼴을 사용하였 습니다.

2) 『새한글성경』은 나이 지긋한 선배 목회자 바울이 젊은 후배 목회자(디모데와

디도)에게 목회에 관해 권면하는 편지인 목회서신의 마침꼴을 다른 바울서신의 마

침꼴과 달리했습니다. 로마서와 같은 바울서신은 수신자가 지역 교회인 반면, 목회

서신의 수신자는 특정 개인입니다. 그것도 나이가 한참 어린 후배 목회자입니다. 그

러나 바울이 나이가 많다고 하더라도 목회자인 디모데나 디도에게 편지하면서 반 말투인 해라체를 쓰는 것은 조금 무례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딱딱 한 존칭을 쓰는 것도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경우에 쓰기 딱 알맞은 마침꼴이 하게체입니다. 나이나 지위의 차이를 반영하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말투에 해 당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새한글성경』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마침꼴을 다양 화했습니다.

디도서( 디도에게 보낸 편지 )

54. 디도서 1:9 가르침대로 믿을 만한

있어야 하네. 1) 『개역개정』은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새번역』은 “신 실한 말씀의 가르침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공동개정』은 “교회가 가

르치는 진실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 경』은 “가르침대로 믿을 만한 말씀을 꽉 붙잡고 있어야 하네.”로 번역했습니다.

2) ESV는 “he must hold firm to the trustworthy word as taught”로, NRSVUE 는 “holding tightly to the trustworty word of the teaching”으로, NET는 “he must hold firmly to the faithful message as it has been taught”로, LB는 “er halte sich an das Wort, das verlässlich ist und der Lehre entspricht”(확실하 고 가르침에 어울리는 말씀을 그는 붙들어야 합니다)로, ZB는 “er muss am Wort festhalten, das zuverlässig ist und der Lehre entspricht”(믿을 만하고 가르침에 어울리는 말씀을 그는 단단히 붙들어야 합니다)로, BB는 “er muss für das Wort eintreten, das zuverlässig ist und der Lehre entspricht”(믿을 만하고 가르침에 어 울리는 말씀의 편에 그는 서야 합니다)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동사 ‘안테코(ἀντέχω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리 스어 사전(Bauer)에 따르면, 이 동사는 ‘딱 달라붙어 있다’, ‘꼭 붙잡고 있다’를 뜻합 니다. 영어의 “hold firm”이나 독일어의 “erhalten/festhalten”(보존하다/붙들다)

은 이런 의미를 잘 반영합니다. 우리말 기존 역본에서 ‘그대로/굳게 지키다’라는 번

역도 내용으로 볼 때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새한글성경』은 그리스어 낱말의 어원 에서 떠올릴 수 있는 그림을 번역문의 독자들도 함께 그려 보도록 해 본 것입니다.

4) 또 하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꽉 붙잡아야 할 대상’이 ‘가르침’인가 아니면 ‘말씀’인가 하는 것입니다.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가르침”을 붙잡아야 하는 것으 로 번역했는데, 이것은 조금 의역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국어 역본들만 참조

해 보아도, 『공동개정』이나 『새한글성경』이 직역에 가깝습니다. 계속 묵상해 보면, 가르침의 내용이 말씀이기 때문에 의미상 차이는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한 글성경』은 그리스어 원문의 형식을 최대로 유지하여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서(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

55. 히브리서 1:13 그대의 발받침대로 삼을 때까지.

1) 『개역개정』은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새번역』/『공동개정』은 “네 발 아 래에/아래 굴복시킬 때까지”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그대의 발받침대로 삼 을 때까지.”로 번역했습니다.

2) ESV, NRSVUE, NET는 모두 “footstool”로 번역했고, LB, ZB, BB는 모두 “Schemel”(발판)로 번역했습니다. 낱말의 뜻에 대해서는 논란될 것이 없습니다.

3) 우리말 번역의 경우, 『개역개정』은 직역을 했고, 『새번역』과 『공동개정』은 조 금 더 이해하기 쉽도록 약간 의역했습니다. 『새한글성경』은 원문에 충실하게 직역

을 하되, 이해하기에도 쉽도록 “발등상”이라는 표현을 “발받침대”로 바꾸었습니다.

“발등상”은 성경 외의 문헌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4) 인쇄용에 이어 준비하고 있는 『새한글성경』 온라인 버전에서는 『성서 속의 물 건들』에 나오는 설명과 그림을 첨부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것입니다.

56. 히브리서 5:14 거듭된 연습을 통해서

1) 『개역개정』은 “연단을 받아”, 『새번역』은 “경험으로”, 『공동개정』은 “훈련을 받아서”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거듭된 연습을 통해서”로 번역했습니다.

2) ESV는 “by constant practice”, NRSVUE와 NET는 “by practice”, LB와 BB 는 “durch den Gebrauch”(사용, 습관을 통해서), ZB는 “durch Übung”(연습을 통 해서)으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표현 ‘디아 텐 헥신(διὰ τὴν ἕξιν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Bauer)에 따르면, ‘헥시스’는 ‘a state of maturity, maturity’를 뜻하는데, 역본들은 이 낱말을 ‘exercise, practice’로 번역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4) 기존 역본들은 이러한 의미를 ‘연단, 경험, 훈련’이라는 낱말을 통해 잘 전달하

| 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고 있습니다. ‘연습, 훈련’이라는 말에는 이미 반복성이 내포되어 있으나, 『새한글성 경』은 그저 몇 번의 연습을 통해서가 아니라 체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반복된 훈련 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결과라는 뉘앙스를 직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거듭된 연습”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신앙은 목표한 성숙의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반복 훈련을 요

구한다는 점을 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57. 히브리서 9:1 섬겨 예배하는 규정

1) 『개역개정』은 “섬기는 예법”, 『새번역』은 “예배 규정”, 『공동개정』은 “예배 규 칙”으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섬겨 예배하는 규정”으로 번역했습니다.

2) ESV, NRSVUE, NET는 “regulations for worship”으로, LB와 ZB는 “seine Satzungen für den Gottesdienst”(예배를 위한 규칙들), BB는 “Vorschriften für den Gottesdienst”(예배를 위한 규정들)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라트레이아(λατρεία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Bauer)은 이 낱말을 ‘섬김/예배’의 뜻으로 풀이합니다. 같은 어근에 서 나온 동사 ‘라트레우오(λατρεύω )’는 제의적 성격의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것

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참고로, 『새한글성경』 히 12:28에서 ‘라트레우오’ 동사를 ‘섬겨 예배하다’로 번역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섬기다’는 “신이나 윗사람을 잘 모시어 받들다.”를 뜻합니다. 따라서 『개역개정』의 번역은 충

분히 좋은 번역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섬김이 예배 상황과 관련된다는 뜻을 직관 적으로 전달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새번역』과 『공동개정』은 ‘예배’라는 말을 사 용한 듯합니다. 『새한글성경』은 기존의 이 두 번역어를 통합하여 ‘섬겨 예배함’으로

옮겨서, 다음 세대 젊은 독자들이 조금 더 직관적으로 원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 도록 했습니다.

58. 히브리서 11:1 믿음은 우리가 희망하는 것들을 현실이 되게 합니다. 우리 가 볼 수 없는 것들을 증명합니다.

1) 『개역개정』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로, 『새번역』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로, 『공동개정』은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믿음은 우리가 희망하는 것들을 현실이 되 게 합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증명합니다.”로 번역했습니다.

2) ESV와 NRSVUE는 “Now faith is the assurance of things hoped for, the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73

conviction of things not seen.”으로, NET는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being convinced of what we do not see.”로, LB는 “Es ist aber der Glaube eine feste Zuversicht dessen, was man hofft, und ein Nichtzweifeln an dem, was man nicht sieht.”(믿음은 희망하는 것에 대한 확고한 신뢰요, 보 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로, ZB는 “Der Glaube aber ist die Grundlegung dessen, was man erhofft, der Beweis für Dinge, die man nicht sieht.”(믿음은 희망하는 것의 기초요,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증명이다)로, BB는 “Der Glaube ist ein Festhalten an dem, worauf man hofft - ein Überzeugtsein von Dingen, die nicht sichtbar sind.”(믿음은 희망하는 것을 붙드는 것이요, 보이 지 않는 것에 대해 확신하는 것이다)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원문 ‘에스틴 데 피스티스 엘피조메논 휘포스타시스, 프 라그마톤 엘렝코스 우 블레포메논(Ἔστιν δὲ πίστις ἐλπιζομένων ὑπόστασις, πραγμάτων ἔλεγχος οὐ βλεπομένων. )’에 대한 번역입니다. 여기서 번역하기 어려

운 그리스어 낱말은 ‘휘포스타시스(ὑπόστασις )’와 ‘엘렝코스(ἔλεγχος )’입니다. 『개

역개정』은 ‘휘포스타시스’를 “실상”으로, ‘엘렝코스’를 “증거”로 번역했습니다. 직역

이어서 번역상 문제는 없지만 뭔가 직관적인 의미 소통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번 역본이 각 구절의 의미를 길게 풀어서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특히

‘휘포스타시스’와 ‘엘렝코스’는 어느 언어로든 한 단어로 대응시켜 번역해서 뜻을 분

명하게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4) 『새한글성경』에서는 최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Bauer)을 참조하여, 최대한 원 문에 충실하면서도 직관적인 이해에 도움이 되는 번역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최 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에 따르면, ‘휘포스타시스’는 ‘the essential or basic structure/nature of an entity, substantial nature, essence, actual being, reality’로 풀이합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11:1에서는 ‘휘포스타시스’가 ‘realization’의 의미 로 이해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풀이합니다. 그러면서 ‘in faith things hoped for become realized’라는 번역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어색하지만 이 문장은 ‘믿음 안 에서 희망되는 것들(=사람들이 바라는 것들)이 현실화된다’로 옮겨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하여 『새한글성경』은 “믿음은 우리가 희망하는 것들을 현실이 되 게 합니다.”로 번역했습니다.

5) 최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Bauer)에 따르면, ‘엘렝코스’는 ‘the act of presenting evidence for the truth of something, proof, proving’이라고 그 뜻을 풀이하고 있 습니다. 이를 참조하여 『새한글성경』에서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증명합니

| 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다.”로 번역했습니다. 그리스어 원문은 본디 수동태로 되어 있는데, 수동태보다 능

동태를 선호하는 우리말의 자연스러움을 고려하여 능동태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

러면서 일반 사람을 가리키는 주어에 해당하는 “우리”라는 주어가 번역문에 추가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위에 제시한 외국어 번역들에서도 나타나며, 번역에서 종

종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59. 히브리서 13:2 낯선 손님 대접하기를

1) 『개역개정』은 “손님 대접하기를”, 『새번역』은 “나그네를 대접하기를”, 『공동개

정』은 “나그네 대접을”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낯선 손님 대접하기를”로 번

역했습니다.

2) 이것은 ‘필로크세니아(φιλοξενία )’에 대한 번역인데, 이 낱말은 ‘필로 + 크세

니아’의 합성어입니다. ‘필로’는 ‘좋아하다, 사랑하다’라는 뜻을 지닌 ‘필레오’ 동사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단어이고, ‘크세니아’는 ‘낯선’이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 ‘크세노 스’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크세노스’가 명사적으로 쓰일 때는, 낯선 곳

에서 온 사람 곧 ‘stranger, alien’을 뜻합니다. 그래서 어원으로 볼 때 ‘필로크세니아’

는 ‘낯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기’ 정도의 뜻을 떠올리게 합니다.

3) ‘나그네’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으로 뜻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손님’은 ‘손’의 높임말로 ‘손’은 “다른 곳

에서 찾아온 사람.”을 뜻합니다. 이렇게 볼 때 ‘나그네/손님 대접하기’라는 기존의 번

역도 원문의 뜻을 비교적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다만, 『새한글성경』은 그리스어 낱

말의 어원을 번역에 조금 더 분명히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잘 아는 사람만 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이나 손님들에게도 환대를 베풀라는 본문의 취지

를 조금 더 살려 보려고 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야고보가 써 보낸 편지 )

60. 야고보서 1:3 여러분의 믿음을 검증해 보는 일이

1) 기존 역본(『개역개정』, 『새번역』, 『공동개정』)에서 “믿음의 시련”으로 번역했던 것을 『새한글성경』에서는 “믿음을 검증해 보는 일”로 번역했습니다.

2) ESV, NRSVUE, NET는 모두 “the testing of your faith”로, LB는 “wenn er bewährt ist”(그것[=믿음]이 증명된다면)로, ZB는 “die Erprobung eures Glaubens”(너희 믿음의 검증)로, BB는 “Wenn euer Glaube geprüft wird”(너희 믿음[의 진실성]이 조사된다면)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도키몬(δοκίμιον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리 스어 사전(Bauer)에 따르면, ‘도키몬’은 ‘무엇인가가 진짜인지를 결정하는 수단이나

과정’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야고보서 1:3의 문맥에서는 믿음이 진짜인지 아닌지 검

증해 보는 일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 번역은 그것을 “시련”이라는 말로 번

역했고, 충분히 의미 있는 번역입니다. 어떤 사람의 믿음이 참된지 거짓된지는 시련

을 겪을 때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4) 그러므로 기존 번역과 『새한글성경』의 번역을 나란히 두고 읽어 보면, 우리가

당하는 시련은 우리의 믿음이 참된지 거짓된지를 알아보는 일종의 검증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묵상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새한글성경』은 이렇듯 기존의 다른 역본들과 함께 읽을 때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61. 야고보서 3:14 이기적 경쟁심

1) 『개역개정』은 “다툼”, 『새번역』은 “경쟁심”, 『공동개정』은 “이기적인 야심”으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이기적 경쟁심”으로 번역했습니다.

2) ESV와 NRSVUE는 “selfish ambition”으로, NET는 “selfishness”로, LB는 “Streit”(싸움)로, ZB는 “Rechthaberei”(독선, 완고)로, BB는 “Streitsucht”(투쟁심,

176 | 새한글성경 간추린

싸우기 좋아하는 버릇)로, TOB와 BFC는 “d’esprit de rivalité”(경쟁심)로 번역했 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에리쎄이아(ἐριθεία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에 따르면, ‘에리쎄이아’는 ‘strife, contentiousness, selfishness’ 등 의 뜻을 지닙니다. 기존의 국내외 번역들은 각기 나름대로 원문의 뜻을 잘 담아내 고 있습니다. 『새한글성경』은 기존 번역에서 사용된 표현을 두 가지 정도 함께 끌어

다 씀으로써, 젊은 독자들의 직관적 이해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다음 세대 젊은이

들이 쉽게 읽고 본문의 뜻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찾고자 노력한 보

기에 해당합니다.

베드로전서( 베드로가 써 보낸 첫째 편지 ), 베드로후서( 베드로가

62. 베드로전서 1:1 체류자

1) 기존 번역(『개역개정』, 『새번역』, 『공동개정』)은 “나그네”로 번역했는데, 『새한 글성경』은 “체류자”로 번역했습니다.

2) ESV와 NRSVUE는 “exiles”로, NET는 “those temporarily residing abroad” 로, LB와 ZB는 “Fremdlinge”(이방인)로, BB는 “die in der Fremde … leben”(외 국/낯선 곳에 사는 사람)으로, TOB는 “en étrangers”(이방인)로, BFC는 “en exilés”(망명자)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파레피데모스(παρεπίδημος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리 스어 사전에 따르면, ‘파레피데모스’는 ‘한동안 낯선 곳, 외국 땅에 머무르는 것’과 관련되며, ‘체류자, 일시 거류자’를 가리킵니다. 이와 비슷한 낱말로 ‘파로이코스 (πάροικος )’가 있습니다. 사전에 따르면, ‘파로이코스’는 ‘외국인 거류자’와 관련되 며, ‘이방인, 외국인 체류자’를 가리킵니다. 두 단어를 엄밀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 니다. 비슷한 뜻으로 번역될 수 있는 ‘크세노스(ξένος )’라는 낱말도 있습니다. 『새한

글성경』은 에베소서 2:19 등에서 ‘크세노스’를 “낯선 외지 사람”으로 번역했습니다. 4) 위에 설명한 것처럼, ‘파레피데모, 파로이코스, 크세노스’는 엄밀히 구분하기

가 쉽지 않아서, 기존 역본들도 세밀히 구분하여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반드

시 구분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새한글성경』에서는 그리스어 원문으로 볼 때 뜻이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낱말들이 쓰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파레피 데모스’를 “체류자”로, ‘파로이코스’를 “나그네”로, ‘크세노스’를 “낯선 외지 사람”으 로 구분하여 번역했습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 ‘체류자’는 “다른 나라에서 일정 기간 동안 머물러 있는 사람.”으로 풀이하고 있어서, 그리스어 원문의 뜻에 잘 맞습니다. 그리고 최근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 체류자가 늘

178 | 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어나면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여서 젊은이들에게 원문의 뜻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으로 판단되어 새롭게 사용한 번역어입니다.

63. 베드로전서 3:8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1) 『개역개정』은 “불쌍히 여기며”, 『새번역』은 “자비로우며”, 『공동개정』은 “자 비심을 가지고”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로 번역했 습니다.

2) ESV와 NRSVUE는 “a tender heart”, NET는 “compassionate”로, LB와 BB 는 “barmherzig”(자비로운)로, ZB는 “übt Barmherzigkeit”(자비를 베풀다)로 번

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유스플랑크노스(εὔσπλαγχνος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리스어 사전에 따르면, ‘유스플랑크노스’는 ‘누군가에 대해 부드러운 감

정이나 마음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어원으로 볼 때, 이 낱말은 ‘유’와 ‘스플랑크노

스’의 합성어인데, ‘유’는 ‘좋은’을 뜻하는 접두어이고, ‘스플랑크노스’는 ‘감정을 느

끼는 기관, 내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기존 번역들도 나름대로 원문의 뜻을 잘 살

려 번역하였는데, 『새한글성경』은 어원이 번역에서 조금 더 드러나도록 한 것입니

다. 그리고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은 불쌍히 여기거나 자비롭게 대하는 것과

는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64. 베드로전서 4:16 이 일로

1)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그 이름으로”(ὀνόματι, 오노마티)로, 『공동개정』 은 뜻풀이 방식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이 일 로”(μέρει, 메레이)로 번역했습니다.

2) GNT5나 NTG28을 이전 판본과 비교해 볼 때, 최신 판본은 공동서신의 경우 대

비평본(Edition Critica Maior) 작업을 반영하여 33곳에서 원문이 달라졌습니다. 달 라진 본문이 번역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도 하지만, 때로는 중대한 영향을 미

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최신 원문을 따르기로 한 번역 원칙을 존중하여, 『새 한글성경』은 달라진 본문을 기초로 새롭게 번역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그 이름 으로”를 “이 일로”로 번역한 것은 그러한 보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65. 베드로후서 2:18 실제로 1) 『개역개정』은 “겨우”(ὀλίγως, 올리고스)로, 『새번역』과 『공동개정』은 “가까스

새한글성경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79

로”(ὀλίγως, 올리고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실제로”(ὄντως, 온토스)로

번역했습니다.

2) GNT5나 NTG28을 이전 판본과 비교해 볼 때, 최신 판본은 공동서신의 경우 대

비평본(Edition Critica Maior) 작업을 반영하여 33곳에서 원문이 달라졌습니다. 달 라진 본문이 번역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도 하지만, 때로는 중대한 영향을 미 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최신 원문을 따르기로 한 번역 원칙을 존중하여, 『새 한글성경』은 달라진 본문을 기초로 새롭게 번역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겨우”를

“실제로”로 번역한 것은 그러한 보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66. 베드로후서 3:10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1) 『개역개정』은 “드러나리로다”(εὑρεθήσεται, 헤우레쎄타이)로, 『새번역』은 “드

러날 것입니다.”로, 『공동개정』은 문맥에 따른 뜻풀이 방식으로 “없어지고 말 것입니

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οὐχ εὑρεθήσεται,

욱 헤우레쎄타이)로 번역했습니다.

2) GNT5나 NTG28을 이전 판본과 비교해 볼 때, 최신 판본은 공동서신의 경우

대비평본(Edition Critica Maior) 작업을 반영하여 33곳에서 원문이 달라졌습니다.

달라진 본문이 번역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도 하지만, 때로는 중대한 영향

을 미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최신 원문을 따르기로 한 번역 원칙을 존중하 여, 『새한글성경』은 달라진 본문을 기초로 새롭게 번역하였습니다. 이 구절에서 “드 러나리로다”를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로 번역한 것은 그러한 보기 가운데 하나 입니다. 새롭게 결정된 원문에는 기존에 없던 부정어 ‘욱(οὐχ )’이 들어가 있습니다. ‘욱’은 ‘not’을 의미합니다. ‘헤우레쎄타이’는 ‘드러나다, 발견되다’라는 뜻인데, 여기 에 부정어가 들어가면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가 되고, 『새 한글성경』은 이를 능동형으로 바꾸어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로 번역한 것입니 다. 다른 곳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그리스어 원문의 수동태를 우리말로 옮길 때는 능동태를 선호하는 우리말의 특성을 고려하여 종종 능동태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 새한글성경

요한1서( 요한이 써 보낸 첫째 편지 ), 요한3서( 요한이 써 보낸 셋째 편지 )

67. 요한1서 2:26 속여 헤매게 하는 사람

1)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미혹하는 자”로, 『공동개정』은 “속이는 자”로 번역 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속여 헤매게 하는 사람”으로 번역했습니다.

2) ESV, NRSVUE, NET는 “deceive”로, LB는 “verführen”(그릇된 방향으로 인 도하다)으로, ZB와 BB는 “in die Irre führen”(나쁜 길로 이끌다, 속이다)으로 번역 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동사 ‘플라나오(πλανάω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

리스어 사전(Bauer)에 따르면, ‘플라나오’는 ‘cause to wander’ 곧 ‘헤매게 하다’라 는 뜻을 지닙니다.

4)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에 따르면, ‘미혹하다’는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

지 못하다” 또는 “정신이 헷갈려서 갈팡질팡 헤매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따라서 기 존 번역도 훌륭합니다. 다만, 『새한글성경』은 원문에 가까우면서도, 젊은이들이 이 해하기 쉬운 표현을 찾는 데 조금 더 중점을 두어 “속여 헤매게 하는 사람”으로 번 역한 것입니다.

68. 요한1서 5:18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지킵니다.

1) 『개역개정』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새번역』은 “하나 님에게서 태어나신 분이 그 사람을 지켜주시므로”, 『공동개정』은 “하느님의 아들이 그를 지켜주시기 때문에”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 람은 자기 자신을 지킵니다.”로 번역했습니다. 『개역개정』의 난외주에는 “어떤 사 본에, 난 자가 자기를 지키매”라고 하여, 『새한글성경』 본문처럼 번역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81

2) 『개역개정』의 난외주 정보에서 알 수 있듯이, 『새한글성경』의 번역이 기존 번

역과 달라진 까닭은 사본 문제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공동서신 33곳에서

그리스어 원문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번역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고 말씀드렸는데, 이 구절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3)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그리스어 원문은 ‘호 겐네쎄이스 엑 투 쎄우 테

레이 헤아우톤(ὁ γεννηθεὶς ἐκ τοῦ θεοῦ τηρεῖ ἑαυτὸν )’입니다. ‘호 겐네쎄이스 엑

투 쎄우’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로 직역할 수 있으며, 일반 신자를 가리킬 수도

있고 예수님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테레이’는 ‘지키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입니

다. ‘헤아우톤’은 3인칭 재귀 대명사입니다. 이 ‘헤아우톤’이 예전 그리스어 원문에

서는 3인칭 대명사인 ‘아우톤’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를 누

구로 볼 것인가, ‘헤아우톤’과 ‘아우톤’ 중 어느 것을 ‘지키다’ 동사의 목적어로 볼 것

인가에 따라 이 구절의 해석이 크게 달라집니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를 예수

님으로, 목적어를 ‘아우톤’으로 볼 경우 『개역개정』의 본문과 같은 번역이 가능합니

다. 또는,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를 일반 신자로 보고, ‘지키다’ 동사의 목적어를

재귀 대명사인 ‘헤아우톤’으로 볼 경우 『개역개정』의 난외주에 밝힌 번역이 가능합

니다. 『새한글성경』은 ‘헤아우톤’을 지지하는 최신 원문을 따라, 기존의 『개역개정』

난외주에 있던 해석을 본문에 올리고, 『개역개정』의 본문에 있던 해석을 난외주에

내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69. 요한3서 1:13 잉크와 펜

1) 『개역개정』과 『새번역』은 “먹과 붓”으로, 『공동개정』은 “펜과 잉크”로 번역했 는데, 『새한글성경』은 “잉크와 펜”으로 번역했습니다.

2) 여기서 번역 자체에 대한 논란은 없습니다. 번역어 표현과 관련하여, “잉크” 와 “펜”이라는 외래어를 번역에 사용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여러 차례 설명한 것 처럼, 『새한글성경』은 이미 널리 사용되어 젊은이들에게 잘 이해되는 낱말은 외래 어도 번역에 활용했습니다. 이 구절에서 “먹과 붓”이라는 예스러운 표현을 “잉크와 펜”으로 바꾼 것이 그러한 보기에 들어갑니다.

3) 『공동개정』이 외래어를 번역어로 활용한 선례를 보여 줍니다. 『새한글성경』은 『공동개정』과 달리 그리스어 원문의 어순에도 충실하게 “잉크와 펜”으로 번역한 점 이 독특합니다. 어순이 의미 이해에 큰 차이를 가져오지 않는 때도 있지만, 『새한글 성경』은 가능한 대로 원문 어순을 따르는 원칙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70. 요한계시록 1:3 복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들을

1) 『개역개정』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 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로, 『새번역』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 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

니다. 그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로, 『공동개정』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 일들이 성취

될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위에 제시한 것

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2) 『새한글성경』에서 새로워진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복 있습니다”를 원문

어순에 따라 문장 맨 앞에 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어떤 사람이 복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품고 뒤따라 나오는 내용을 읽게 되는 효과가 생깁니다.

3) 두 번째로 새로워진 점은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사람”이라고 번역한 것입니 다. 『개역개정』에서는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가 모두 단수로 되어 있 고, 『공동개정』에서는 전체가 복수로 읽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어 원문 에서는 ‘읽는 자’만 단수로 되어 있고, ‘듣는 자’와 ‘지키는 자’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 다. 보통 우리말에서는 문맥에 따라 잘 이해되는 경우에 단수와 복수를 엄밀히 구분 하지 않고 쓰기 때문에, 기존 번역도 용인될 만합니다. 한편, 『새번역』에서 “읽는 사 람”을 단수로, “듣는 사람들”과 “지키는 사람들”을 복수로 구분하여 번역한 것은 그

리스어 원문에 잘 맞아떨어집니다.

4) 그리스어 원문에서 단수와 복수를 구분하는 까닭은, 당시에 성도들이 모여서

성경을 읽는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사람이 성경책을 가질 수 없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83

었기 때문에, 함께 모였을 때 한 사람이 나와서 소리 내어 읽어 주고, 다른 사람들

은 함께 듣고, 들은 말씀대로 실행하는 방식으로 신앙생활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데 이런 배경 이해가 없는 상황에서 ‘읽는 사람’이라고 하면, 혼자서 성경책을 읽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새한글성경』에서는 초대 교회 당시의 교회에

서 성경 읽는 상황을 좀 더 잘 드러내기 위해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사람”으로 번역 한 것입니다.

71. 요한계시록 7:4 인증 도장을 받은

1) 『개역개정』은 “인침을 받은”, 『새번역』은 “도장이 찍힌”, 『공동개정』은 “도장을

받은”이라고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인증 도장을 받은”이라고 번역했습니다.

2) ESV와 NRSVUE는 “sealed”로, NET는 “marked with the Seal”로, LB는 “versiegelt wurden”(도장이 찍힌)으로, ZB는 “ein Siegel empfangen hatten”(도 장을 받은)으로, BB에서는 “das Siegel erhielten”(도장을 받은)으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스프라기조(σφραγίζω )’ 동사의 완료 수동태 분사인 ‘에스프라기스메

논(ἐσφραγισμένων )’에 대한 번역입니다. 이 낱말은 ‘도장을 찍다’라는 뜻을 지닙 니다. ‘인(印)’은 도장을 뜻하기 때문에, 기존 번역들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인’이라는 말이 단독으로 쓰였을 때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이해 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번역』이나 『공동개정』은 ‘도장’이라는 말을 사용 하여 그 뜻을 조금 더 분명히 하려고 한 듯합니다.

4) 『새한글성경』에서는 요즘 증명의 뜻으로 자주 사용되는 한자 ‘인증’이 일상적

으로도 널리 통용되고 있는 표현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인증 도장”이라고 번역하 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증명해 주신 표시로 도장을 받은 사람을 가리킨다는 뜻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72. 요한계시록 8:13 자리 잡고 사는 사람들

1) 『개역개정』과 『공동개정』은 “사는 자들”, 『새번역』은 “사는 사람들”이라고 번 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자리 잡고 사는 사람들”로 번역했습니다.

2) ESV는 “those who dwell on the earth”로, NRSVUE는 “the inhabitants of the earth”로, NET는 “those who live on the earth”로, LB는 “denen, die auf Erden wohnen”(땅 위에 사는 사람들)으로, ZB는 “denen, die die Erde bewohnen”(땅 위 에 거주하는 사람들)으로, BB는 “denen, die auf der Erde leben!”(땅 위에 사는 사 람들)으로 번역했습니다.

| 새한글성경 간추린 번역 해설집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카토이케오(κατοικέω )’에 대한 번역입니다. 이 낱말은

본디 상당한 시간 동안 일정한 장소에 자리 잡고 사는 것을 뜻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서는 부정적인 맥락에서 하늘의 소망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 마음을 빼

앗기고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4) 다른 한편, 요한계시록 14:6에는 비슷한 뜻을 지닌 다른 낱말 ‘카쎄마이

(κάθημαι )’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낱말은 다른 곳에서는 ‘앉다’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는데, 요한계시록 14:6에서는 물리적으로 거처를 두고 있을 뿐 마음마저 거

기에 빼앗긴 것이 아닌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새한글성경』은 이것을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번역했습니다.

5) 『새한글성경』은 이처럼 이런 두 낱말의 쓰임새에 주의하여, 독자들이 조금이

라도 그런 구분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살려 보려고 ‘카토이케오’는 ‘자리 잡고 살 다’로, ‘카쎄마이’는 그냥 ‘살다’로 번역한 것입니다.

73. 요한계시록 16:1 그릇

1) 기존 번역본들(『개역개정』, 『새번역』, 『공동개정』)은 “대접”으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그릇”으로 번역했습니다.

2) 영어(ESV, NRSVUE, NET)는 “bowls”로, 독일어(LB, ZB, BB)는 “Schalen”(쟁 반, 접시, 받침)로, 프랑스어(TOB, BFC)는 “coupes”(잔)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낱말 ‘피알레(φιάλη )’에 대한 번역입니다. 최신 신약 그리 스어 사전(Bauer)에서, 이 낱말은 ‘bowl used in offerings’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4) 『표준국어대사전』의 뜻풀이에 따르면, ‘대접’은 “위가 넓적하고 운두가 낮으며

뚜껑이 없는 그릇. 국이나 물 따위를 담는 데 쓴다.”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그러므 로 “대접”이라는 낱말은 원문의 뜻을 잘 살린 좋은 번역어입니다. 다만, 요즘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사용 빈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쉬운 “그릇”이라는

말로 바꾸어 젊은 세대의 본문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했습니다.

74. 요한계시록 22:2 열두 가지 열매를 맺는 1) 『개역개정』/『공동개정』은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맺는”으로, 『새번역』은 “열 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으로 번역했는데, 『새한글성경』은 본문에서 “열두 가지 열매 를 맺는”으로 번역하고 온라인 각주에 ‘열두 가지’는 ‘열두 번’으로도 번역될 수 있 다고 해 두었습니다.

2) ESV, NRSVUE, NET는 “twelve kinds of fruit”로, LB와 BB는 “tragen

신약 간추린 번역 해설 | 185

zwölfmal Früchte”(열두 번 열매를 맺는)로, ZB는 “zwölfmal Frucht tragen”(열 두 번 열매를 맺는)으로, TOB는 “produisant douze récolte”(열두 수확물을 생산 하는)로, BFC는 “donne des fruits douze fois par année”(연간 열두 번 열매를 맺 는)로 번역했습니다.

3) 이것은 그리스어 원문 ‘포이운 카르푸스 도데카(ποιοῦν καρποὺς δώδεκα )’ 에 대한 번역입니다. 직역하면 ‘열두 열매를 맺는’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열둘’이 ‘열두 종류/가지’인지, ‘열두 개’인지, ‘열두 번’인지 몇 가지 이해 가능성이

생깁니다.

4) 기존 역본에서는 ‘열두 가지’로 이해하여 번역했고, 『새한글성경』도 본문에서

는 기존 번역의 해석을 따랐습니다. 다만, 독일어와 프랑스어 역본에서 볼 수 있듯

이 ‘열두 번’으로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가능성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온라

인 각주에 표시했습니다. 온라인 각주는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이 나올 때 독자들에 게 소개될 것입니다.

75. 요한계시록 22:21 주 예수님의 은혜가 모두와 함께하기를 빕니다!

1) 기존 번역(『개역개정』, 『새번역』, 『공동개정』)과 달리 『새한글성경』에서는 예수 님을 부를 때, 그냥 “예수”라 하지 않고 “예수님”이라고 번역하여, 교회 생활에서 널 리 쓰이는 부름말의 용례와 신앙 정서를 번역에 반영했습니다.

2) 『개역개정』에서 “-에게 있을지어다”로 번역했던 것을 『새한글성경』에서는 “-와/과 함께하기를 빕니다!”로 번역했습니다. ‘-와/과 함께하기를’로 한 것은 그리

스어 원문에 ‘-와/과 함께’를 뜻하는 전치사 ‘메타(μετά )’가 있는 점을 번역에 드러 낸 것입니다.

3) 이 문장은 동사가 생략된 명사 문장입니다. 대체로 생략된 동사는 be 동사에

해당하는 ‘에이미(εἰμί )’ 동사의 희구법 형태인 것으로 봅니다. 이를 『개역개정』에서 는 “있을지어다”로 번역하여 강력한 선포 느낌을 담아냈는데, 『새한글성경』에서는 희구법의 기본 의미에 충실하게 “-하기를 빕니다!”로 번역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새번역』과 『공동개정』도 같은 결을 보여 줍니다.

4) 이 말씀은 신구약 전체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 말씀입니다. 여기에 적힌 말씀 대로 주 예수님의 은혜가 모든 분과 함께하여, 『개역개정』을 비롯한 기존 역본들과

『새한글성경』을 나란히 두고 함께 읽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더 깊이 새롭게 만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