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201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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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 과로(사·자살), 통치 기술의 산물이다 공항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인력 부족 소설은 땀을 흘린다

통권 184호 / 2019.6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www.kilsh.or.kr

노동자의 힘

노동안전보건 감수성

권리 을 받 치료 리 알권

거부할 권리 참여할 권리



‘죽음의 일터’를 ‘안전한 일터’로

지난 2019년 5월 2일 고용노동부는 2018년 산업재해 현황을 발표하였습니다. 지난해 산재로 인한 사망자는 2142명으로 전년에 비해 9.4% 늘었다고 합니다. 산재사망자를 3년 내에 절반 으로 줄이겠다는 현정부의 목표가 무색합니다. 고용노동부는 산재 신고자가 증가했기 때문 에 산재 사망자가 증가한 것이지만, 산재사망자의 비율은 감소했다고 주장합니다. 통계수치 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산재사망자가 지난 10년 동안 체감할 정도로 줄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산재사망자 비율은 여전히 OECD 국가중에서 단연 1등이고 건 설현장, 조선소, 에어컨을 수리하는 장소에서 하청노동자들의 중대재해는 끊이질 않고 있습니 다.

이번 달 특집은 중대재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인 위험의 외주화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인 기업의 책임과 처벌강화는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중대재해 사건이 터질때 잠시 여론의 관심을 받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에서 멀어집니 다. 그렇기 때문에 비슷한 재해가 반복되지만 실질적인 해결은 지지부진합니다.

고용노동부는 5월 19일 작업중지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작업중지 지침을 마 련해 전국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알렸습니다. 그러나 작업중지권을 현장 노동자들이 제때에 발 동할 수 있을지 우려됩니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입니다. 예나 지 금이나 여전히 이윤추구 논리가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기업 활동을 통 해 이윤을 얻는다면 안전에 대한 책임 또한 당연히 동반되어야 하겠습니다.

- 선전위원장

독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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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재해,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재해, 부상자 또는 직업성질병자가 동시에 10 발행인

명 이상 발생한 재해를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서 ‘중대재해’라 정의

최민

하고 있습니다.

발행기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

결코 가벼운 일들이 아니기 때문에 붙은 중대재해란 이름이 무색할 정

경희, 승종, 영우, 종호,

도로 너무나 쉽게 노동자들의 사고사망 소식을 접합니다. 작년 11월 사

나래, 지나, 채은, 경미,

망한 김용균 님을 비롯 미처 이름조차 알려지지 못한 노동자들의 소식

지안, 기형 만평

은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박원종 편집·표지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보면 노동안전보건 문제의 빈 지점들이

언제나봄그대곁에

보입니다. 우리 사회가 주목할 것은 바로 이들의 목소리 아닐까요.

인쇄 동광문화사 발송 산재공동체 발행일 2019.06.07 전화 서울 02-324-8633, 수원 031-247-8633, 부산 051-816-8633 팩스 서울 02-324-8632, 수원 031-247-8632 이메일 laborr@jinbo.net 홈페이지 www.klis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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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특집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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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당장 멈춰! “중대재해 없는 사회, 부산 엘시티 사고를 다시 기억해봅니다” 중대재해 트라우마 대응 실태와 개선 방향


14 지금 지역에서는

41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경기지역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개최

미운 오리도 산재가 되나요?

16 국제안전보건비교기준검토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43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與) ILO협약 비준을 추진한다는데…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 ⑧

19 연구리포트 과로(사·자살), 통치 기술의 산물이다

23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강사는 왜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가?

28 사진으로 보는 세상 30 현장의 목소리 공항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인력 부족

34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동료의 죽음을 안고 시작한 노안 활동

45 노동자 건강 상식 대상포진 48 문화읽기

연극 <은하계 제국에서 랑데부>

50 발칙 건강한 책방 “나, 조선소 노동자”를 읽어야할 이유 52 이러쿵저러쿵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삶을 꿈꾸며 54 안전보건동향 56 한노보연 이모저모

출처 : 한노보연

38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소설은 땀을 흘린다 - 노동 문학 선집 『땀 흘리는 소설』

차례

03


특집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

중대재해, 당장 멈춰! 당장멈춰TV 제작팀 대담

박기형 상임활동가

대담 참여자: 푸우씨(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당

소개 부탁드립니다.

장멈춰상황실), 미디어뻐꾹, 이태진(금속노조 대전 충북지부 노안부장), 손익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푸우씨 저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당장멈

진행 및 기록: 박기형(상임활동가)

춰 상황실 멤버로, 미디어뻐꾹과 함께 유튜브 콘텐츠인 “당장멈춰TV”를 함께 만들고 있습니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지난 5월 19일 일요일

다. 그동안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당장멈춰

오후의 더위를 견디며 사무실 한쪽에서 당장멈

상황실을 중심으로 작업중지권의 실효성을 갖

춰TV의 유튜브 영상 촬영이 진행되었다. 중대

추기 위한 노력해왔는데요, 현장에서 노동자 스

재해와 작업중지(권)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

스로 작업장 내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하고 있었다. 최근 태안화력발전소, 한화 대전

위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장, 제천화학공장, 한솔제지 장항공장 등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했다.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

미디어뻐꾹 당장멈춰TV는 일하는 모든 사람이

사고와 화학물질 누출 및 폭발사고가 끊이지 않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서 관련 정보를

고 있다. 사고 발생에 관한 소식만 전해질 뿐, 현

드리는 국내 유일의 노동안전보건 전문 프로그

장에서 사고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램입니다. 당장멈춰TV 시즌1에서는 노동안전

사고 이후 재발방지 대책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

보건 의제 중 중대 재해와 작업 중지에 대해 집

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이런 한계를 넘어

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이

서, 모든 일하는 이들이 스스로 중대 재해의 위

당장멈춰 상황실에서 고민하고 정리한 내용을

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당장멈춰TV

접할 수 있도록 하고자 영상을 만들게 되었습니

제작팀을 만나, 중대 재해 대응에 관한 대담을

다.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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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작업중

작업중지가 노동자의 권리로 규정되었다고는 하

지와 관련한 조항이 수정 및 신설되었습니다. 이

지만, 말씀해주신 것처럼 실제로 작업중지를 행사

에 대해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하는 데는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현장에 서 노동자들이 중대재해 대응 시 맞닥뜨리는 문제

이태진 작년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님이 중

는 무엇인가요?

대재해로 돌아가신 이후, 중대재해 재발방지를 위한 투쟁이 거세게 일어났었죠. 이를 계기로

푸우씨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중대재해 발생 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 전면 개정되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점이 가장

죠. 개정 이전 산안법 제26조에서 근로자의 작

큰 문제점이에요. 이는 대응 경험이 파편화·개

업거절을 규정하면서, 작업중지 및 대피 등 필

별화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형식적인 수준에서

요한 조처를 할 것을 사업주의 의무로 두었죠.

라도 대응 매뉴얼을 갖춘 곳도 없고, 실제 대응

이번 전면개정안에서는 제26조 제2항을 분리

경험도 적죠. 비정규직의 증가가 이런 상황을

하여, 제52조(근로자의 작업중지)로 신설하면

악화시켜요. 비정규직은 작업장 내 위험을 거의

서, 작업중지 및 대피가 사업주의 의무를 넘어

공유 받지 못해요. 그러니 위험을 인지하지 못

노동자 스스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

하죠. 이 때문에 대응하기 점점 어렵게 되는 거

이 있을 때, 즉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

예요.

는 권리가 명확히 규정되었습니다. 이태진 빈번히 사고가 일어나는 곳들이라고 해 손익찬 개정 이후 사업주뿐만 아니라 근로자가

도, 작업장의 일상에서 안전사고에 대해서 보

작업중지권의 행사 주체로 인정되었다는 점에

고·관리하는 시스템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에요.

서 진전된 측면이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근로

그러다 보니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해당 사업장

자의 작업중지 행사 요건과 관련해 모호한 부분

에서만 일어난 일들로 치부되면서, 대응 경험

이 많고, 하위법령도 없어요. 특히 “산업재해가

이 공유되거나 축적되지 못하는 거죠. 사고 상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가 가장 논쟁

황 자체도 다른 사업장에 전파되지도, 해당 산

적이죠. 위험성 판단이 노동자, 사업주, 고용노

별 노조에 공유되지도 않는 상황이니까요. 그래

동부, 법원 사이에 상이할 수 있어요. 이를 사용

서 다른 사업장에서 동종유사 상황이 발생하더

자 측이 악용할 경우,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라

라도, 그에 대한 조사나 대처 등의 조치가 체계

주장하며, 업무방해로 작업중지한 노동자에게

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워요. 그러니 중대재해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어요. 더욱이 고용노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

동부가 해당 요건에 대한 예시 규정으로 든 것

왕하게 되죠.

들이 재래형 안전사고에 국한되어 있어서, 작업 중지를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범위가 여전히 제

미디어뻐꾹 언론에서도 중대재해 대응 과정에

한될 수 있는 우려도 있죠. 작업중지 강화의 취

관해서는 관심이 거의 없죠. 사고가 발생했다는

지를 살리기 위해선 제52조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실 자체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죠. 이는 중대

요건과 절차, 즉 시행령, 시행규칙이 마련될 필

재해 대응 과정에 대해 알려야 할 필요가 없기

요가 있어요.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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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

때문일 수도 있어요.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이태진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 이후 트라

단신으로 처리되면서, 순식간에 잊히는 상황이

우마를 비롯해 노동자들의 복귀 및 치유의 문제

잖아요. 사고가 이미 일어났으니 어쩔 수 없다

가 주요한 의제로 떠올랐죠. 이에 따라 정부도

는 인식 때문이기도 한 거 같아요.

근로자건강센터를 중심으로 정책을 내놓고 있 지만,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관련한 재활·치료

손익찬 대응 경험이 축적되지 않으니까, 작업중

의 체계가 제대로 갖춰진 상황은 아니에요. 현

지를 행사할 수 있는 역량도 높아지지 않는 것

재 근로자건강센터가 충분한 시설과 인력, 적합

같아요. 사고가 일어난 후, 작업중지하고 진상

한 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에요. 보다

조사에 들어가고 안전보건 조처를 하는 등 일련

근본적으로는 노동자의 치유와 복귀가 근로자

의 과정에서 노동자들 스스로 작업중지와 개선

건강센터만의 몫인지도 물어야 할 필요가 있어

요구를 권리로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잖아

요. 사업장 내 다른 노동자나 회사, 그리고 해당

요. 하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우왕좌왕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 차원에서 공동의 노력을

하는 상황이 반복될 뿐이죠. 사고가 일어나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관점에서 점차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 조치는 제대로 취해지지

시스템을 갖춰나갈 필요가 있어요.

않고, 노동자들은 작업중지권을 권리로 인식하 지도, 행사할 역량을 축적하지도 못한 채 위험

푸우씨 이에 더해, 사고 현장에 있던 분들을 피

상황에 여전히 노출되는 악순환이 지속하는 것

해자화하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어요. 상담·

같아요.

치료가 트라우마 치유의 전부가 아니니까요. 작 업장 자체가 안전해져야만, 제대로 된 복귀가

미디어뻐꾹 중대재해 중 여전히 재래형 안전사

가능하죠. 이를 위해서 사고의 당사자들도 진상

고가 계속되고 있지만, 최근 산업구조 변화로

조사과정과 개선 및 예방 조치 마련 과정에 참

화학물질 누출과 관련한 안전사고도 증가하는

여할 수 있어야 해요. 피해자로 대상화되어서는

추세잖아요. 하지만 삼성반도체처럼, 영업비밀

안 되는 것이죠.

이라고 화학물질 정보를 숨기는 경우가 많죠. 이게 중대재해를 은폐하고 재발하게 만드는 주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요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화학물질 누출 및 폭발 사고는 지역 사회에도 큰 위험을 초래

손익찬 사회에서 어떤 권리를 인정받는 것은 매

할 수 있죠. 노동자뿐만 아니라 시민 안전을 위

우 중요해요. 권리를 얻게 되면, 정당하게 요구

해선 알 권리가 보장되어야 해요.

할 수 있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중대 재해를 예방하기

작업중지의 발동 및 해제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

위해서는, 작업중지권이 사업주의 의무뿐만이

것만큼, 사고 당사자와 동료들의 복귀 및 치유도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로 명확히 자리 잡을 수

중요한 문제잖아요. 이에 대한 대처 및 관리가 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이

되고 있나요?

것을 자신의 권리로 인식하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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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중대재해 없는 사회, 부산 엘시티 사고를 다시 기억해봅니다” 전국건설노조 강한수 토목건축분과위원장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지난 4월 24일,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이 진행됐다.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에 선정된 곳 은 바로 포스코건설이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가 10명에 이르는 곳이다. 게다가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작년 3월 2일 사회적으 로 큰 충격을 줬던 부산 해운대 엘시티 신축공 사 현장에서 자재가 떨어져 건설노동자 4명이 숨진 사건 역시 포스코건설에서 일어난 사건 이다.

문재인 정부 역시 산재 사고 사망자를 임기 내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상황 이 심각한 곳이 바로 건설현장이다. 특히 추락 ▲ 작년 11월 28일, 강한수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이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의 지역사무실이 위치한 경기도 안성에서 산업안 전보건법 전부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했다.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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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

같은 재래형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인 만

지명한 공공기관장 6명 가운데 2명이 엘시

큼 위험이 제대로 관리감독 되지 않고 있는 우

티 쪽으로부터 명절 때마다 선물을 받은 사

리 사회의 노동안전보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게다가 엘시티 추락

다. 그렇다면 사고가 발생 된 뒤 현장 개선, 피해

사고가 발생한 이후 특별감독에 나선 관계

자에 대한 조치 등은 얼마나 잘 이행되고 있을

공무원들이 성 접대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까? 이후에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무

알려지면서 충격을 더했다. 한 마디로 비리

엇보다 발생했던 일들이 어떤 과정에서 해결되

의 총체적 합작품이라 불릴 정도였다.

었는지, 혹 해결되지 않았다면 어떤 점들이 그 러한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엘시티 사고

석연치 않은 점 투성이인 공사는 계속됐

당시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지부 교선부장을

고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 신축현장 A동 유

맡았던 강한수(현 토목건축분과위원장) 씨를 지

리외벽 부착과정에서 54층에 설치돼 있

난 5월 24일 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던 4개의 안전 작업 발판(SWC, Safety

나눴다.

Working Cage) 중 2번째를 55층으로 올리 는 작업을 하던 중 SWC를 고정하고 있던

“사고 발생일은 2018년 3월 2일이었습니다. 당시

슈브라켓 4개가 원인 불상의 이유로 이탈된

에도 공사가 꽤 진행된 상태라 저희 조합원들은 많

것으로 경찰 조사에 따라 확인됐다. 강한수

이 빠진 상태였어요. 그래도 200여명 정도는 됐죠.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은 애초에 이 사고가

그런데 당일은 건설노조 창립일로 유급휴일이라서 조합원들이 현장에 없었어요. 처음엔 기자가 저에 게 연락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현장에서 작업했

왜 발생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 했다.

던 팀장, 간부들에게 연락을 돌렸고 오후 4~5시경 사고현장에 갔어요.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도 사고

“SWC는 자동 유압장치로 올리는 거에요. 이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깐 그때까지도 수습을 못 하

작업대의 경우 자동 유압 방식이기 때문에 타

는 상황이더라고요.”

워크레인으로 올리거나 하지 않거든요. 저층에 서 사용하는 안전 작업 발판은 크레인으로 이

부산 해운대구 중동에 들어서는 엘시티(LCT) 는 해수욕장변에 지어지고 있는 101층 초고층 건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엔 아파트와 고

에서 충돌이 있다거나 신호가 맞지 않아 사고 가 자주 발생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엘시티의 경 우 타워크레인과 상관없이 위에 고정해놓고 자

층 건물이 들어설 수 없었지만, 부산시가 2009

동 유압 방식으로 쭉 올리는 형태라 안전하다

년 12월 규정을 바꾸고 이어 2011년 10월 호

고 주로 얘기됐죠. 상식적으로 지금까지 SWC

텔과 아파트 건축을 허가했다. 이어 부산시는

를 인상하면서 떨어진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

2013년 엘시티를 부동산 투자이민제 대상지역

로 알고 있습니다. 이 구조물은 외국에서 제작

으로 지정해 달라며 법무부에 건의까지 했다.

해온 거에요. 그러다보니 사고가 난 후 특별안

이런 상황에서 2018년 당시 오거돈 부산시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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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하기 때문에 협업하게 돼요. 그럼 이 과정

2019년 6월호

전 점검을 할 때도 이 작업대에 대한 걸 안전보 건공단에서 잘 모르니깐 외부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을 불러온게 제작업체 관계자였어요. 그러다

끼는 위험들이 있어요. 그런 걸 발견하고 실제 제안

보니 제작업체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는 거고, 현장

해서 개선하는 게 중요하죠. 특별근로감독을 한다

에서 정말 잘 이해하고 관리감독 해왔겠느냐는 생

는 건 위험성을 확인하고 바꾸자는 거거든요. 그렇

각이 들더라고요.

기 때문에 현장의 위험성은 무엇인지 일하는 사람 의 의견을 많이 들어야 해요. 그런 게 노동자 참여

결국 작년에 그렇게 큰 사고가 난거 죠. 워낙 고층

보장의 중요성이에요.”

건물에 규모도 크다 보니 조사를 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어요. 외벽이다 보니 밖에서 살펴보기 힘든거

4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7명의 사상자가 나온

죠. 국과수나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들도 사고 위치

엘시티 사고. 사고 이후 유족과 목격자에 대한

지점에서 확인하려고 하니 모두가 위험한 상황이었 죠. 아마 조사자들도 아주 불안했을 거에요.”

사고 현장을 조사하는 사람들조차도 위험한 상황에 놓였던 엘시티 사고. 중대재해가 발생한

조치는 어떻게 취해졌는지 물었다.

“위에서 작업하다 추락했던 분들이 있고, 그 밑이 통제가 되어야 하는데 통제가 안되서 사고를 당한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 분들 모두 업체가 달랐어

경우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진상규

요. 아마 하부 통제라도 됐으면 한 명이라도 사고가

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과정엔 노동조합이

덜 났을 거라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원청의 안전

직접 참여해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의견을

총괄책임이 중요하죠. 요즘 말로 컨트롤 타워 역할

전달하고, 제대로 조사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을 시공사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당시 대응 과정에서 얼

에 있어요. 아무리 각자 잘하려고 해도 많은 하청업

마나 노동자 참여가 보장됐을까.

체가 별도로 작업하는 상황에서 종합적으로 시공사 가 컨트롤 해주지 않으면 사고 위험 확률은 확 높아 지는 거죠.

“사고 발생일 이후 일주일 정도 있다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현장 전체 특별근로감독이 실시됐어요. 노동조합이 계속 요구했죠.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노동부 말로는 포스코건설 측에서 반대 가 워낙 심하다고 설명하더군요. 그래서 노동조합 참여보다 현장에서 일 하고 있는 조합원, 간부 중심 으로 참여하는 걸로 했어요. 3개 팀으로 나눠서 지 하부터 옥상까지 점검했죠. 그때 다들 많은 고생을

사실 돌아가신 분들이 조합원이 아니다보니 깊게 대응하긴 쉽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우리 입장에선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규명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그래야 유족들이 제대로 된 사과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가 사고 책임을 정확 히 져야하는 것도 중요했고요. 노동조합의 역할이 쉽지 않았지만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든 노동부, 안전보건공단 사람들이 와서 위험한 것을 전반적으로 훑을 수 있 게 됐고, 조합원과 간부들 역시도 본인들이 일을 하 면서 잘 보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확인할 기회이기 도 했죠.

죽음의 원인을 철저히 밝히는 것과 함께 살아 남은 자가 제대로 치료 받고 일상생활에 복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사고가 일어나면 언론에서 잠시 시끄러울 뿐 살

일을 하다 보면 법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피부로 느

아남은 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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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

그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으며 원상복귀까진

강한수 토목건축분과위원장은 사고를 예방하

어렵더라도, 안정된 생활로 다시 돌아갈 수 있

기 위한 노력과 함께 중대재해가 발생한 이후

도록 무엇이 필요한지 사회적으로 얘기되는 것

기업을 처벌하고 책임을 제대로 묻는 것도 중요

들이 필요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 터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물었다.

“조합원들만 두고 보면 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없었 죠. 작업중지가 한 달 넘게 진행되서 4월 10일 경

“우리나라 건설회사만 놓고 보더라도 노동자에게

작업이 재개됐어요. 조합원 중엔 없었을지라도 최

권한을 주지 않고 책임만 전가하는 식이에요. 회

소한 목격자들에 대한 트라우마 치료는 노동조합도

사가 이윤을 가져가듯이 책임 또한 마찬가지로 져

중요하게 생각했죠. 그래서 노동부에 적극적으로

야죠. 권한과 책임이 함께 담보되어야 합니다.

트라우마 치료를 포함한 조치들을 취하라고 요구했 어요. 당시에 당연히 하겠다고 하긴 했는데 얼마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하는 건

잘 됐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런 이유에요. 우리나라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 을 때 사망자 1명 당 평균 벌금은 얼마 되지 않아

건설 현장의 경우 고정된 제조업 사업장과 다르게

요. 다행히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발생한 이윤은

시시각각 변화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 위험요소

기업에게 돌아가죠. 회사가 잘해서 사고가 안 나

를 상상력을 갖고 긴장감 있게 해야 하는데 잘 안되

는게 아니에요. 위험 부담을 갖고 일했던 노동자

죠. 시스템적으로나 체계적으로 우리나라 건설현

들에게 전가 되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실제 책임

장의 빨리빨리 문화가 여전히 심각하죠. 게다가 불

을 져야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처벌을 해야 합니

법 하도급 문제도 있고요. 건설 현장에 가보면 ‘선

다. 그래야 사고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기업

안전, 후시공’이란 문구가 붙어 있어요. 무엇보다

들이 어떤 노력이라도 하지 않을까요.”

안전이 우선이란 거죠. 실제 현장에서 안전관리자 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심각성을 깨달아요. 97년 IMF 이후 안전관리자는 정리해고 1순위었어요. 결 국 안전이 제일 먼저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 닌 거였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실제 포스코건설이 안전관리자 80%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돌려막기한 사실이 작년에 밝 혀졌다. 안전관리자 315명 중 정규직은 56명 (18%)에 불과했따. 100대 건설사 안전관리자 정규직 비율(37.2%)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이 다. 안전관리자와 건설 노동자의 비정규직 문제 가 결국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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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중대 재해 트라우마 대응 실태와 개선 방향

장경희 회원, 충남노동인권센터 노동자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 상임활동가

책임을 전가, 축소, 은폐하려는 가해자

니다.” “근로자들은 어떻게든 놀고 싶어 하기 때 문에 자기 보고식 설문지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중대 재해 그 자체로도 그렇지만, 중대 재해 이

“고용노동부 트라우마 매뉴얼에는 2차, 3차 피해

후 트라우마를 바라보는 태도와 시각은 천차만별

자에 동일 부서를 명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 많

이다. 최근 충청남도 모 대기업에서 발생한 사망

은 사람을 다 만나봐야 한다면 공장은 누가 돌립

사고 이후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

니까?”

여한 적이 있다.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노사 간의 합의과정도 그

모르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과오로 발생한 사건에서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렇지만, 합의 이후 회사와 근로복지공단의 태도

그것의 직간접 피해가 퍼지고 있는 상태에서 자

에는 기가 막혀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트라

신의 책임을 전가하고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시도

우마 예방 활동을 위해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기

는 분명한 죄다. 더불어 불특정 다수에게 낙인을

관 중 하나였지만, 회사는 두리공감을 배제하고

찍어 원래 그들은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하는 것

싶어 했다. 배제하려는 마음이야 전부는 아니어

은 전형적인 가해자 레퍼토리다. 중대 재해 사망

도 일부는 이해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예의 바

사고 현장에서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회사는 위

르게 배제하고 싶어 했던 과정에서 확인된 회사

와 같았다. 위 사건 당시 회의에 참석한 근로복지

의 태도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공단 담당자는 회사의 말이 맞다는 말 외에는 하

“이 사람들은 직접 목격자가 아닙니다.” “저 사

지 않았다.

람들은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인데 힘들다고 합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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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

고통의 근원을 모른 채 자신을 탓하는 피해자

진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매뉴얼 시행 이 후 많은 중대 재해 사업장에서 실행돼 왔다. 반면

반면, 중대 재해를 경험하거나 동료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노동자들은 스스로 죄인이 된다.

매뉴얼과 그 시행과정에서 몇 가지 한계와 문제 들도 나타나고 있다.

‘내가 좀 더 일찍 발견했더라면’, ‘내가 혹시 스위 치를 잘 못 누른 것은 아닌지’, ‘평소에 문제가 많

첫째, 중대 재해 사건 처리 자체와 트라우마 예방 프

았던 곳인데 주저하지 말고 개선을 요구하며 싸

로그램의 분리 문제다.

웠더라면’ 등이 첫 번째 동료의 죽음을 대하는 살 아남은 동료들의 마음이다.

자연재해나 사회적·인적 재난의 원인, 사건처리 절차 및 과정, 재발위험의 방지와 안전대책 등이 심리적 위기 수준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중

그들은 자신에게 찾아오는 죄책감, 두려움, 도 망가고 싶은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대 재해 현장에서는 이러한 통합적 접근이 이뤄 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 차라리 이 상황을 만든 회사에 분노하며 고함

“안전의 확보”라는 것은 사고 위험으로부터의

을 치고 통곡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동

안전, 사고를 재경험하도록 만드는 장소·사람 등

료와 자신이 당한 이 비참한 고통을 고스란히 가

으로부터의 안전, 자신이 경험한 피해를 제기하

슴에 묻으며, 일상의 공포를 재경험하면서도 가

고 시정을 요구하며 사고위험을 인식했을 때 배

해자들의 지시를 받으며 일하고 살아내야 한다.

치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안전을 모두 포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불면

함한다. 또한 사건처리 과정 전반에서 노동자들

의 밤을 지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

의 참여를 보장하고 처리 결과에 동의 여부를 묻

한 채 ‘못난’ 자신을 탓한다. 이것이 트라우마다.

는 것은 원칙적 절차를 넘어 통제권과 자율성의 회복이라는 심리적 위기를 완화하는 주요한 기제

정부의 중대 재해 트라우마 대응 실태와 문제점

가 된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매뉴얼에는 이와 같 은 관점이 결여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산업재해 트라우마 관

중대 재해 사고와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을 종

리 프로그램 운영 매뉴얼’을 만들고 현재는 직업

합적으로 안내하지 않는 문제가 나타난다. 사고

적 트라우마 전문 상담센터까지 운영하고 있다.

의 원인과 처리 과정과 더불어 트라우마 예방 프

중대 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 트라우마 위기에

로그램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지, 누가 오는지

대한 검토를 거쳐 고용노동부가 사업주에게 트

등을 전혀 안내하지 않는다. ‘해 주는 거니까 잠

라우마 프로그램 시행 명령(권고)을 내리게 된다.

자코 해’라는 식이다.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결정

그러면 사업주는 각 지역의 근로자건강센터, 직

권과 통제권을 빼앗아 오히려 위기를 부추기는

업적 트라우마 전문 상담센터 등과 연계하여 재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해의 직간접피해자를 대상으로 트라우마 관리 프 로그램을 시행하게 된다. 노동 현장에서 물리적 으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고들과 그로 인한 신 체적 손상, 사망 등에 대한 대응에서 정신적·심리 적 대응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실행한다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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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두 번째, 트라우마 예방 프로그램 자체의 한계다. 고용노동부 매뉴얼은 중대 재해 직후 직간접 피 해자들에 대한 사건충격도 검사를 거쳐 고위험


군에 대한 상담 및 전문기관 연계 등을 밝히고 있 다. 많은 전문가가 주장하듯이 외상을 경험한 사

마지막으로 트라우마 위기의 완전한 극복은 “신뢰” 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람들의 심리적·정신적 고통의 수준을 객관적 지 표로 측정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마다, 시 간의 흐름에 따라 그 증상과 발현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갖는 효과성을 확인하기 위해 사전 사후 검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 심리상 담의 경우도 각 지역의 근로자건강센터가 확보한 상담 인력의 부족, 1개소뿐인 직업적 트라우마 전문 상담센터 등의 한계도 있지만, 심리 상담만 으로 급성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문치료기관 연계가 매뉴얼에 나와 있으나 그에 따른 비용이나 시간 등을 노동자 개인이 책 임져야 하는 시스템도 개선이 필요하다.

분명한 가해자, 외부로부터의 위해적 상황 등 은 ‘신뢰의 상실’을 초래한다. 중대 재해를 경험 한 피해 및 생존자들은 회사와 정부기관을 불신 하며 때로는 자신을 보호해주리라 기대했던 노동 조합에 대해서도 신뢰를 잃는다. 세상과 주변이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경험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대 재해 트라우마 예 방에서 중요한 고리는 피해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피해 및 생존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제대로 사과하며 그들의 요구를 알 아차려 수용하고, 안전을 위해 스스로 결정할 권 리를 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신뢰 회복의 실마리다. 이러한 과정이 트라우마 치유의 핵심 이라고 하는 ‘사회적 지지’의 시작이다.

세 번째, 사고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철저한 현장 개선으로 안전한 현장을 만드는 과정이 트라우마 예

사람이 죽을 수 있는 노동은 이미 강제노동이다.

방매뉴얼에 포함되어야 한다.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위기 개입은 보통 1개월 에서 3개월 단기개입으로 이뤄지며, 고용노동부 매뉴얼 역시 그와 같은 기간을 명시하고 있다. 이 경우 두 측면의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우선 트 라우마 예방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기간에 철저 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 완전한 현 장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트라 우마를 완전히 예방할 수 없다. 다음으로 설사 위 와 같은 개선이 모두 이뤄지더라도 이미 발생한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증상들이 이후에도 계속될 경우 치료방안이 수립되고 제공되어야 한다. 급

자동차 자율 안전주행처럼 소비자 또는 고객의 안전을 위한 기술은 나날이 발전한다. 하지만 그 소비자가 노동자로 살아가는 현장에서의 안전은 답보상태이거나 후퇴하는 듯하다. 그러니 관점 과 태도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이기 때문에 죽게 된다.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 개인의 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이 나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의 예방은 노동자가 죽 지 않고 일하는 구조를 바꾸는 과정과 함께 가야 만 한다.

성스트레스 증상이 2개월 이상 경과되면 외상후 스트레스로 봐야하며 이는 보다 더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 재의 매뉴얼에 이 같은 내용들이 빠져있다.

노동자의 힘으로 중대재해 없는 일터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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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역에서는

경기지역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 개최

지난 4월 30일 오전 11시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 소, 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경기공동행동준비위원회는 고용노동부 경기고용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기도 최악의 살인기업’을 발표 했다.

경기도 지역에서 개최된 최악의 살안기업 선정식은 산업재해와 안전보 건의 취약함,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 화를 촉구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로 올해 첫번째로 진행된 행사이다. 이들 은 “경기지역은 우리나라 최대 인구와 공장이 밀집한 지역으로 산업재해 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며 “시민감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첫 시 작으로 경기도 최악의 살인기업을 3곳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최악의 살인기업은 지난해 경기도내 기업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와 사망 사고 건수, 동일 유형의 산재 반복, 대중의 인식 정도를 반영한 ‘사회성’ 을 고려해 결정됐다.

경기도 최악의 살인 기업에는 ‘kcc 여주공장’이 1위로 선정됐다. 2위에 는 이산화탄소 누출로 2명의 협력업체 노동자가 사망한 삼성전자 기흥공 푸우씨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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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장이, 3위에는 에이치오 건설이 선정됐다.


1~3위 기업 모두 가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반복성에서 는 모두 점수가 같았 지만, kcc여주공장은 2019년에도 또 다 시 사망사고가 반복 발생한 점 등을 고려 해 선정위원들의 만 장일치로 1위에 올랐 다.

한편 서울반도체 공장은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에 선정됐다. 서울반도체는 악성림프종 판정을 받고 투병 중 사망한 고(故) 이가영님(27)을 상대로 산업재해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동료의 죽음을 추모하고 작업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한 노동조합을 상대로 “회사 와 임직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회사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라” 고 요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해 논란을 일으킨 기업이다. 서울반도체가 고 이가영님을 상대로 진행한 산업재해 취소 소송은 망인의 죽음과 함께 사안이 널리 확대되자 급히 취소 됐다.

이날 진행된 살인기업선정식 기자회견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경기본부장은 “경기지역에서 매년 240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으며 공식적 통계에 빠진 사망자를 비롯해 질병·상해까지 포 함하면 무수히 많은 노동자들이 질병과 고통으로 고생하고 있다”며 “이는 안전보다 이윤을 내세우는 기업의 잘못된 관행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관할 고용노동지청과 해당 자치 단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산재 예방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사후 관리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는 입장을 밝혔다.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장은 “일상생활에서 시민이 사람을 다치게 하 거나, 죽게하면 엄중한 처벌을 받는데, 살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산재사망을 저지른 기업은 예 외”라며 “사고가 발생하면 노동자의 책임으로 몰거나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사고가 줄지 않는다”며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경기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은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4월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을 맞아 진행될 예정이다.

지금 지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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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비교 연구팀에서는 2018년 9월부터 독일 산업안전보 건법과 체계를 공부하면서, 한국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계정안에 주는 메시지 ⑧ - 더 넓고 참여적인 위험성 평가가 되어야

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여덟번째 글은 연구팀의 마지막 글로 독일의 위험성 평가에 대해 다룬다. <머리말>

위험성평가, 한국에도 있지만

독일은 산업재해 사망 십만인율로 볼 때 한국의 6~7분의 1 수준 (2015년 기준 한국 10.1 독일 1.5)밖에 되지 않는 나라이다. 이는 산 업구조의 차이 등을 감안하더라도 너무나 큰 차이다. 어떻게 독일은 훨씬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을 던지면서 지난 8개 월 동안 우리 연구팀은 독일과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을 비교해왔다.

독일 산업안전보건법 공부를 마치는 시점에서 보니, 독일과 한국의 차이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 첫째로는 독일에는 한국에 전혀 존재 하지 않는 제도들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노동자 참여권을 강력 하게 부여한 사업조직법이라든가, 사업장 산업안전보건 인력의 독립 성을 규정해놓은 산업보건의 및 산업안전전문인력에 관한 법률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로는 한국에도 있는 제도지만 독일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기사로 다룬 산업안 전보건법의 적용범위와 사업주의 의무나, 이번에 다루는 위험성평가 가 이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다양한 위험성을 평가할 수 있어야

구체적으로 보면 독일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위험성평가가 진행되 는 것일까? 먼저 독일의 위험성평가는 한국보다 더 다양한 위험성들 을 고려한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위험성평가를 사업장의 ‘건설 물, 기계ㆍ기구, 설비, 원재료, 가스, 증기, 분진 등에 의하거나 작업행 동, 그 밖에 업무에 기인하는 유해ㆍ위험요인’을 평가하는 것으로 규 조승규 반올림 활동가, 노무사

정한다. 이 문구만 보자면, 그 밖의 유해 위험요인이 포함되어 있으므 로 모든 위험성을 평가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앞에 나열되어있는 건설물에서부터 작업행동까지의 요소만을 평가할 뿐 그 이상을 다루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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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그에 비해 독일의 위험성평가 사례를 보면 훨씬 더 넓은 위험성을 고려한다. 아래 사례를 보면 평가항목 중 시간적 압박이 있는지, 일을 통한 성장가능성이 있는지, 자유롭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위험성은 한국에서는 아직 위험요소로 대두되 지 않았기에 매우 생소한 것들이다. 이렇게 더 다양한 위험요소까지 살펴볼 수 있을 때, 한 국의 위험성평가도 사업장의 전반적인 위험을 총괄하는 평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행위 영역: 협력

4.1

정규적으로 업무상 대화가 이루어 진다.

매우

매우

그렇다 그렇지않다

4.2 경영진이 귀하의 동료에게 수행한 작업/일에 대해 정규적으로 건설적인 언급을 한다. 4.3

제외(배제), 불이익, 갈등(분쟁)에 대한 이의가 제기된다.

4.4

취업자들이 상호간에지지/원조한다.

4.5

취업자가 작업에 대해 제안과 아이디어를 제출할 가능성을 갖는다. 다음과 같은 대책이 제안된다:

4.에 대해

대책 다음과 같은 대책이 합의된다: 담당자

언제까지

해결

효과?

[표] 베를린시 공공부문 산재보험조합(UKB)의 심리적부담 위험성평가 항목 일부 (윤조덕 번역) UBK(Unfallkasse Berlin)(2019), Handlungshlife Geährdungsbeurteilung psychischer Belastungen, Anhang III

현장 노동자가 평가할 수 있어야

다음으로 독일의 위험성평가는 노동자가 평가주체가 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위험 성평가 제도는 작업을 하는 현장 노동자가 위험성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인식에서부터 출 발했다. 그러므로 한국의 위험성평가 제도에도 노동자 참여가 들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을 보면, 해당 작업을 하는 노동자의 참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참여하게 할 것’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참여를 배제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 또 한 해당 규정은 노동자의 참여를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거나 감소대책을 수립하는 경우’ 로 제한하고 있어서 위험성평가의 핵심인 위험성을 계산하고 그것이 현재 조치가 필요한 위험인지 결정하는 단계에서는 배제하고 있다. (참고로 이번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에서 노동자의 참여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명시되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것은 이 지침에 위임되어 있으므로 해당 지침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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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에 대해

대책 다음과 같은 대책이 합의된다: 담당자

언제까지

해결

효과?

(위와 같은 자료)

독일은 이 연구팀의 세 번째 기사에서 살펴보았듯이 노동자평의회를 기반으로 산업안 전보건에 있어서 노동자의 참여권이 잘 보장되어 있다. 독일의 위험성평가 제도에는 별 도의 노동자 참여 규정이 없으나, 실제 사례를 보면 ‘현장 작업자에 의한 평가’라는 위험 성평가의 취지가 잘 구현되는 방식으로 평가가 진행된다. 위의 독일 위험성평가 사례를 보면, 현장 노동자는 위험성을 평가할 수 있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으며, 사업주는 제안 한 대안이 타당하면 구체적인 이행대책까지 세우도록 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현장의 목 소리가 잘 반영되도록 위험성평가 제도와 평가방식을 고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이 더 나아가려면

독일의 산업안전보건법을 보면서 우리는 위험성평가 뿐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법 전체 에서 기본정신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도도 쉽게 바뀌지 않는데, 그 안에 있는 원리는 도대체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유럽에서 위험성평가 를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기존제도로는 더 이상 작업장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진 단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현행 제도로는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하는데 분명한 한계지점 이 있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확인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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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연구리포트

과로(사·자살), 통치 기술의 산물이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개인적인 것? 문화적인 것?

과로(사·자살)를 ‘권력 장치’로 풀어내는 푸코주의 분석. 생경하지만 궁금증을 유발한다. 여기 서 다룰 텍스트는 Governing Employees: A Foucauldian Analysis of Deaths from Overwork in Japan(Yoshio Shibata, 2012, Global Asia Journal, 12)로 저자인 요시오 시바타는 뉴욕시티대 문 화인류학 박사로 현재 리츠메이칸대에서 사회학을 강의하는 연구자다.

논문을 세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과로(사·자살)의 원인에 대한 문화적 설명과 개인에 기 초한 설명은 권력 장치의 착취 효과를 은폐하는 결과를 낳는다. 개인환원론은 권력 문제를 탈각시 키고 문화적 설명은 권력 문제를 모호하게 흐려 버린다. 2) 완벽주의 성향 등의 개인적 특성이나 소 속감 등의 문화적 태도 모두 사실은 ‘통치 기술’로서의 ‘작업장 장치’에 기인한 것이다. 3) 그 장치 들에 관철된 통치 기술을 드러내 이에 대항하는 집합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저자는 “일본 노동자들은 왜 힘든데도 일을 계속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과중

연구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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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회사 충성심’, ‘집단주의’, ‘소속감’때문이

때까지 자발적으로 일하도록 내모는지를 분석한

라고 여기는데, 과연 그런가?” 두 번째 반문이다.

다. 여기서 통치성은 ‘품행의 통솔’로 ‘개인들이

마지막으로 완벽주의 성향이나 개인 선택·자발성

무언가를 하게 유도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말한

으로 보는 개인 차원의 설명에 대해 비판한다.

다.

일본 노동자는 회사에 ‘속해 있’는 것(belong to)

‘전체적인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평가

으로 설명되곤 하는데, 대표적으로 로널드 도어 (1982)는 일본 노동자가 회사에 추가 노동을 제

일본 기업처럼 평가 기준이 암묵적이고 모호한

공하려는 의지는 회사에 대한 소속감, 멤버십 동

경우에, 사실상 평가 대상은 ‘전체적인 인간’ 그

기에 따른다고 보았다. 이렇게 일본인에게 존재적

자체가 된다. 노동자가 가진 능력이나 기술에 대

인 것처럼 전제된 소속감이나 멤버십 동기는 일본

한 것이 아니다. ‘사회성’, ‘일하려는 의지’, ‘열

인론(nihonjinron)과 연결된다. 일본인은 개인적

심’, ‘희생’, ‘회사에 대한 충성심’ 등의 모호한 기

인 것이나 전문가적 특성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한

준들은 ‘삶의 태도’ 전체를 평가 대상으로 위치시

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인론이 많이 사그러들었음

킨다. 그렇기에 노동자는 회사를 중심으로 자신의

에도 이러한 문화주의 프레임은 과로 현상을 분석

삶 전체를 조직할 것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기대

하는데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들은 회사 모토나 계명, 로고송, 배지, 심지어 콘 도나 명절 선물세트 등의 회사 의례나 상징적인

이에 반해, 저자는 멤버십 동기나 소속감이 동원

장치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유통된다.

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문화주의 담론은 통상 어 떤 에토스를 국민적 특수성으로 여긴다. 이런 프

그간 작업장에서 암묵적인 평가 장치로 역할을

레임은 많은 경우 사회적 실재를 관통하는 권력

한 건 일본인론이었다. 관리장치로서의 일본인론

관계를 간과하곤 한다. 그는 과로(사)가 집단주의

은 직무에 대한 교육보다는 ‘좋은’ 샐러리맨의 ‘바

나 공동사회적 응집성에 기인한다는 설명을 거부

람직한’ 태도를 학습시키는데 집중했다. 신참자

하면서, 문화주의 담론을 ‘관리 장치’의 일부라고

가 ‘회사 공동사회’에 소속감을 갖기를 바랐고 자

본다. 문화주의 담론은 과로(사) 현상을 정당화하

신의 직업에 헌신을 다하면서도 집단에 충성을 다

는 관리 장치라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자발적 과

하길 유도했다. 일본인론은 일종의 ‘규범화하는

로가 과로사의 원인일 수 있겠지만, 문화적 설명

담론(normalizing discourse)’인 것이다.

은 권력 작용을 놓치고 만다. 규범화하는 담론은 판옵티콘적 효과를 생산하 저자는 노동자들의 자발적인 과중 노동을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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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언제나 감시 또는 평가되

관계 밖에 놓여 있는 ‘문화적인 에토스’로 설명

고 있다고 인식하게 만든다. 회사 밖 활동에서도

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고 비판하면서, 미셸 푸코

‘열정적’이길 요구받고 노동자 스스로도 그런 점

(2003, 2007)의 통치성(governmentality) 개념

을 잘 인식하고 있다. 판옵티콘적 시선의 확장이

을 가져와 관리 장치가 노동자들을 어떻게 죽을

다. 이러한 규율 메커니즘은 일터의 모든 층위에

2019년 6월호


효과적인 노동비용 절감 수단이 된다. 이러한 노 무관리 기술들은 간접적으로 작동하기에, 노동자 들이 그 권력의 작동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동료 경쟁과 MBO

일본에서 판옵티콘적 시선은 철저한 동료 경쟁 을 통해 설계된다. 동료 경쟁은 노동자들이 게임 에 참여토록 하는 의지를 발휘하게 하는 신자유 주의적 통치 기술이다. 노동자들은 동료 경쟁의 과정에서 게임에 승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비 출처 : Pixabay

스잔업이나 충성심, 소속감을 멤버십 쌓기의 일 환으로 여기고, 그것을 증명하려 한다. 물론 멤버 십의 기준이 명료하지 않기에, 동료 경쟁의 한계 는 따로 없다. 은행원을 대상으로 한 요코타 하마 스며들어 있다. 여기서 개별 노동자는 권력의 대

오(1997)의 연구는 노동자들이 서비스잔업 같이

상인 동시에 권력의 행사자가 된다. 판옵티콘적

‘자기 희생’을 전시하는 게임에 참여하는 풍경을

권력관계망은 하라스먼트의 주요 원인으로 작동

보여준다. 실제로 평가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한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정시 퇴근과 휴가 신청

행동들이기에, 노동자들은 타자의 평가적 시선에

은 야루키(열정, 헌신)의 부족으로 비춰지는 것이

상당히 민감하게 되고 의식적으로 ‘열심히 일하

다. 물론 많은 하라스먼트의 사례에서 보듯이, 가

는’ 것처럼 행동한다. 일종의 ‘인상 관리’를 위한

해자 자신 또한 노무관리의 희생자에 불과하다.

‘연극적’ 행위인 것이다.

기업들은 ‘의무’와 ‘자발적인 것’ 그리고 노동

그렇지만 저자는 경쟁 게임이 노동자를 ‘통치될

과 비노동 간의 구분을 흐리는 전략을 구사해 노

만한’ 대상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지적한다. 개별

동자들을 무급 초과노동으로 유도한다. 노동자들

노동자는 경쟁에서 이길 때도 있겠지만, 게임의

이 ‘자발적’이라 이름붙인 회사의 활동들에 참여

판에서 노동자는 또 다른 경쟁에 배치될 뿐이라는

한다는 것은, 기업이 아주 손쉽게 막대한 노동비

것이다. 혹시 누가 경쟁 게임에 거부감을 가지더

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노

라도 그 게임에서 발빼기는 어려워진다. 경쟁에서

동자들의 과로(사)를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노

의 이탈은 ‘불행’으로 미디어화되어 있기에 ‘추락

동’으로 분류조차 할 수 없으며 관리감독 하에 있

의 공포’는 더욱 경쟁 게임을 추동한다.

던 것도 아니라고 주장함으로써 과로(사)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거부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무급 초과노동을 유발하는 간접적인 관리기술은 매우

한편, 1990년대 중반 이후 새롭게 부상한 경영 담론은 정규 고용을 줄일 것, 연공성을 줄일 것,

연구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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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중심적인 평가체계를 구축할 것, 노동자의

산하도록 또한 더욱 높은 직무 목표를 달성하도록

책임성을 중시할 것, 전지구적 경쟁에 맞선 창발

요구받는다. 업무 성과의 실패는 자기 통치의 실

성과 성과평가 등을 강조했다. 새로운 경영담론

패와 연관되어야 한다.

은 자기주도성, 자립성, 위험감수, 결과에 대한 책 임성 등을 내세워 복지국가에의 의존문화(culture

MBO는 ‘자아 기술’을 도입한 통치 기술의 전형

of dependency)를 공격했던 대처, 레이건의 기업

이다. (1) 직무 목표를 확인하고, (2) 어려운 목표

문화 담론과 상당히 흡사하다. 일본의 경영담론

를 성취하게 하며, (3)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4)

또한 안정성으로 상징됐던 정규 노동자의 것들을

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비난을 감수하고 책임을

‘의존성’으로 규정하고 제거되어야 할 것으로 공

져야하며, (5) 도전 목표를 달성하면, 다음 라운드

격해 나갔다.

에선 더 높은 목표치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치는 ‘무리한’ 목표까지도 수용케 할 수 있다. 만약 쿼터를 달성하지 못해 그에 따른 손실 을 노동자 개인이 감수하도록 하는데, 실업의 공 포가 일상화된 맥락에서는 초과노동의 수용이나

출처 : Pixabay

책임성을 높이는 기제로 작동한다.

또한 노동시장이 분절되어 있고 자본의 분할 지 배 전략이 구사되는 맥락에서 노동자는 잔업을 더 해야 하는 압력에 내몰린다. 비정규 노동자 또한 정규직이 되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압력을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끌어내고 자신을 스스 로 통치하게끔 만드는 새로운 방법으로 성과지향

받는다. 노동가격을 낮추는 경쟁 압력, 즉 노동 덤 핑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적인 평가체계가 도입됐는데, 대표적인 것이 목 표관리(Management By Objective, MBO)다. MBO는 (1) 개인별 특정 업무를 연차별, 분기별,

과를 문화적인 것, 개인적인 것으로 오독하지 말

월별로 구체화하고, (2) 업무 목표의 성취도를 수

아야 할 것을 주문한다. 권력 장치의 효과로 외화

시로 평가하며, (3) 기업목표와 연계해 개인 업무

된 장시간 노동만을 문제화하는 접근 또한 작업장

목표를 설정하고, (4) 업무 목표를 수량화해 기업

에 가로지르는 권력 장치의 폭력성을 대면하기에

이익과 연결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자들은 연

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문제의 해결은 작업장에

공성에 기대지 않는 ‘기업가적’이길 요구받는다.

관철된 통치 기술들을 문제화하지 않고서는 어렵

‘책임있는’ 사람으로서, 할당된 직무 목표를 성취

다. 저자는 통치 기술에 대항하는 집합적인 대응

해 나가는데, 실패에 따른 결과(낮은 임금, 심지

수단을 마련해 투쟁을 전개해야 함을 강조한다.

어 해고까지)를 수용해야 한다. 회사를 비난하는 게 아니고! 노동자들은 이익과 비용을 스스로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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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과로(사·자살)로 내모는 권력 장치의 효

2019년 6월호


강사는 왜

‘노동자’가 되지 못하는가? [인터뷰] 시간강사 A와 비정규직 교수 B 지안 상임활동가 고등교육법, 일명 강사법 시행을 약 3달 앞둔 지난 5월 10일,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A씨와 B씨를 신림역 인근 에서 만났다. A씨는 201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시간강사로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B씨 역시 시간강 사로 많은 대학에서 강의를 해오다가 최근 임용되어 모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로 일하고 있다.

강사법은 지난 2011년 12월 처음 발의가 된 이후로 약 8년 정도 유예된 법이다. 법의 원 취지는 ‘시간강사’라는 열악한 일자리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서 마련된 것이지만, 오히려 이 법을 근거로 많은 대학은 시간강사 일자리를 줄이 고 정교수들의 수업 시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개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4일 교육부에서 발표한 시행령 일부 개정안은 이러한 악용을 방지하고자 하는 일정 정도의 합의점을 끌어냈다.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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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서 시간강사라는 직업의 열악함

책정된다는 점이다. 임금은 수업시간으로

을, 고학력자가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

책정되는데 실제 이들이 수행하고 있는

며 심지어 강의 자리를 포기하고 아르바

업무는 수업 시간 안에 종료되는 것이 아

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을 통해 설명하는

니다. 수업에 대한 준비부터 학생들의 과

방식이 있다. 이러한 설명은 저임금 일자

제를 피드백하고, 수업에 대한 공지를 메

리와 또 다른 저임금 일자리가 비교될 수

일링하고, 시험지를 채점해서 시스템에

있는 것처럼 상황을 오도한다. 대학 강사

입력하는 일 등등 한 학기의 대학 수업 동

의 일자리가 문제인 이유는 고학력자의

안 필수적으로 진행되는 절차들이 있다.

일자리가 이토록 열악하다는 것이 서글프 기 때문이 아니라, 강사들의 노동을 온전

A “먼저 수업 준비 시간이 있어요. 반복해서

한 노동으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

진행하는 과목과 새로 맡게 되는 과목에 소

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초단시간 일자리

요되는 시간이 다르긴 해요. 물론 기존에 해

가 늘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이 대학이

왔던 수업들도 새로 자료를 업데이트해야 하

라는 위계적인 공간과 만났을 때, 강사들

긴 하지만요. 보통 강의를 받고 나서 방학 동

의 노동이 어떤 방식으로 은폐되고 있는

안 수업 자료를 어느 정도 완성을 시켜놔요.

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이 번 <일터>를 통해 법적 보장을 둘러싼 여 러 가지 입장들에 대해서 살펴보기보다는 강사의 노동을 ‘노동’으로 인식하기 어렵 게 만드는 노동조건을 조명하려 한다.

그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려요. 한 번은 잘 모르던 분야의 강의를 제안받은 적이 있어서 거의 방학 내내 그 분야 공부를 하고 강의 준 비를 했던 적도 있었어요. 또 중간고사와 기 말고사 시험지 채점이라던가, 수업에 대한 공지를 메일링 하는 것, 학생들이 해온 과제 에 대한 피드백이 있을 것 같아요.”

주목되지 않는 시간강사의 노동시간, 강도, 환경

이러한 진행 절차는 모두 강사의 업무이 지만 임금은 수업 시수로 책정되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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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육자들이 어떤 노

다. 시간강사들이 일반적으로 받는 시급

동을 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짐작하기 어

은 4.5만원에서 8만 원 정도까지 대학마

렵기도 하고, 또 강의를 누군가의 ‘노동’으

다 다르다. 강사들의 시급이 법정 최저임

로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한 이유로는 우

금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점이 이 노동을

선 이 노동이 가지고 있는 ‘누군가를 가르

더욱 말하기 어렵게 하고 보이지 않게 만

치는 일’이라는 특수성이 있겠지만 그 외

든다. 시급이 높기 때문에 수업과 연관된

에도 시간강사를 노동자로 인식하기 어렵

기타 노동들은 감수할 수 있는 일이 되고,

게 만드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첫 번

또 강사들의 노동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

째는 임금이 수업 시수에 따라 시급으로

을 노동의 문제로 생각하지 못하게 된다.


B “사람들은 시간강사 시급이 높은 이유가

200명이 조금 안 됩니다. 그리고 저 같은 경

그런 부가적인 노동들이 포함되기 때문이라

우에는 시간강사 때보다는 불안성은 덜하죠.

고 해요.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보면 많은 금

최소한의 계약 기간이 정해져있으니까요. 하

액이기는 해요. 그렇지만 측정되지 않는 노

지만 학회를 관리한다던지 하는 업무들이 있

동이 너무나 많습니다.”

고, 또 학과의 각종 사업들을 처리해야 해요. 이 업무들이 너무 과중해서 거의 매일을 아

그렇다면 이들의 노동강도는 어떨까. 많

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또

은 사람 앞에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행위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정년을 확정해준 정

자체가 긴장을 유발하거나 감정소모, 소

교수들을 제외한 모든 교수가 주기적으로 재

진 등을 야기하지 않을까.

임용 심사를 받아요. 논문을 투고 하거나 학 회 업무를 맡아 봉사 시간을 채우는 것 등등

A “강의를 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든 건 사

을 통해서 실적을 계속 관리해야 해요.”

실이에요. 일단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심 해요. 요즘에는 학생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그렇다면 시간강사들의 경우에는 수업

않을 수가 없거든요. 맨 처음 강의를 시작한

과 다음 수업 사이에 쉬거나 수업을 준비

시기에는 내가 하고 싶은 강의를 한다는 게

할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있는지도 물었다.

있었어요. 그런데 강사법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나오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논의된

A “강사실이 있지만 일단 공부를 할 수 있다

이후로는 학생들의 반응을 살피게 되더라고

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학교마다 다르긴

요. 그리고 요즘 대학들이 국가지원금을 받

하지만 비치되어있는 물품이나 복사기, 컴퓨

으려고 외국인 반을 많이 개설하고 있어요.

터 같은 것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제한적입

저도 전담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어 능력이

니다. 컴퓨터가 6대 있는데 고장이 나도 고

완벽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전공수업, 어려

치질 않아서 2대를 나눠 사용한다든지 하는

운 이론 수업을 가르치는 것이 정말 힘들었

식이에요. 수업 준비를 하려면 거의 1시간

어요. 물론 상황에 맞춰서 커리큘럼을 짜고

전에 가야 인쇄라도 해갈 수 있었던 학교도

진행을 하지만 외국인 학생들은 1:1로 붙어

있었습니다. 또 사소한 건데 비참했던 건 학

서 케어 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기 초에 강사실에 있던 벌레 사체가 학기 말

수업을 하고 나면 몇 시간 되지 않더라도 완

까지도 치워져 있지 않는다든가 하는 경우가

전히 탈진 상태가 돼요. 감정적 소모도 크고

있었어요. 그때 여기가 치워지지 않는 공간

요.”

이구나 하는 걸 느꼈죠.”

B “저는 학기당 10학점~15학점 정도를 가 르쳐요. 수업의 특성상 학생들을 피드백 해 주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많은데 한 학기에 인 당 1시간은 걸리는 것 같아요. 학생 수는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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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불안정성과 불안을 지목할 수 없는 문제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받 은 적이 있어요.”

앞서 시간강사들이 노동자로 자신을 인 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건으로 높은 시 급이 지급되지 않는 노동들을 견디도록 만듦으로써 가려지는 부가적인 노동에 대 해 들어보았다. 두 번째 조건으로는 대학 이 편의와 비용 절감의 이유로 양산한 단 시간 일자리와 고용의 불안정성 문제가 있을 것이다. 시간강사들이 일하는 일자 리란 대부분 단시간, 혹은 초단시간 일자

B “제가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교수 자리는 1년씩 계약연장을 해요. 만약 재계약이 안 되면 학교를 나가야하는 상황이에요. 당장은 고용 불안에서 약간 벗어난 것은 맞지만 강 사법이 시행 돼서 학교의 모든 강사 일자리 가 3년 고용 보장으로 세팅이 되고 나면, 그 시기 이후 계약이 종료되는 비정규직 교수 들은 시간강사로 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될 거예요.”

출처 : 미디어뻐꾹

리들이다. 또 학기 단위로 고용계약을 하 고, 고용의 전 과정이 매우 비공식적으로

A “한 학기가 4개월이에요. 1년에 두 학기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이들을 개인화하고 고

모두 계약된다는 전제 하에도 8개월만 임금

립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일자

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저라는 사

리의 처우가 문제가 되자, 역으로 인력감

람에게 들어가는 한 달 고정 지출은 있죠. 그

축을 시도하는 대학이라는 노동 현장에서

래서 월급을 쪼개서 쓴다고 해도 방학 때는

시간강사와 비정규직 교수들이 체감하는

빚을 질 수밖에 없어요. 방학 기간에 빚을 지

문제점들은 무엇일까.

고 그걸 갚는데 2달 정도 지나고 아무리 쪼 개서 쓴다고 해도 금방 또 방학이 와요. 실업

A “국공립, 사립대학 모두 포함해서 4개 정 도의 대학에서 강의를 해왔고, 적게는 3학점 부터 8학점까지 강의를 해왔어요. 1학점을 주당 1시간 수업이라고 보시면 돼요. 보통 3 월에 시작하는 학기의 수업은 1월 정도에 강

급여 같은 경우는 3학기당 1번씩 받을 수가 있어요. 실업급여의 조건인 180일 근무를 채 워야 하는데 1주일에 제가 실제로 수업을 하 는 날은 2일이기 때문에 수급 조건을 채우려 면 3학기는 되어야 하는 겁니다.”

사에게 메일로 제안이 와요. 그 시기에 연락 이 안 오면 그냥 그 학교는 잘렸구나 생각을

대학 내 비정규직 교수 직함들은 겸임,

하는 거예요. 만약에 전에 수업하던 학교에

초빙, 객원, 연구, 대우 등등 업무 내용을

서 연락이 안 왔다면, 어떤 기준에 미달해서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끝없이 양산되고

수업을 못 받은 것인지 전혀 알수가 없어요.

있었다. 계약직으로 대학교수들이 임용되

예전에 개강하고 난 이후의 수업을 갑작스럽

고 있는 한편에서 시간강사들은 학기 방

게 소개받은 적이 있는데, 학교가 지방에 있

학마다 다음 학기 계약을 기다려야 한다는

어서 이동시간도 만만치 않았고 3학점인 수

불안감을 견디고 있다. 여기서 8년 동안

업이었는데 혹시나 다음 학기로 연결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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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유예되고 있던 강사법은 법 시행을 2달 앞

A “일자리가 불안정하다는 것에 더해서 기본

둔 지금에서야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나왔

적으로 시간강사라고 하는 것이 소속감이 없

다. 이 법이 실제로 대학으로 들어왔을 때

어요. 자신을 시간강사인 노동자로 정체화하

어떤 식의 효과를 낳을지, 대학이 마련하

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요. 오히려 연구

고 있는 구체적인 계획들을 누구도 예상하

자로 정체화하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여러

기 어려운 상황에서 강사 개개인에게 어떠

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시간강사들이 한 대학

한 정보도 차단되어있는 것도 불안을 가중

의 소속된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렵고,

시키는 문제점이다.

대학에서도 그런 소속감을 부여해주지 않아 요. 그래서 더 뭉쳐야 하는 건데 이런 어려움

B “저도 비정규직이다 보니 앞으로 대학이 어떤 계획을 가졌는지 정보가 없어요. 창구 도 없는 데다가 정보가 차등적으로 들어와 요. 비정규직 교수에게 공개된 정보도 강사 들에게 공개하면 안 된다는 단서가 붙고요.”

속에서 저 자신을 소극적인 주체로 만드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학생이기도, 연구자이기도 하면서 강사 인 이중적인 정체성이 노동자로 정체화하 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있지만 그

A “학부의 한 영역에 소속되어 강의한 적이

에 앞서 이 이중성을 통해서 불합리한 일

있는데 여기 소속된 강사의 숫자가 100명은

자리의 처우를 개인들이 감당하도록 만드

넘었어요. 3~4년 전부터 매 학기에 선생님들

는 대학의 노동구조가 있을 것이다. 마지

이 없어졌어요. 갑자기 자르면 눈에 보이니

막으로 두 분은 이러한 어려움을 이야기하

까 순차적으로 잘라나간다는 느낌이 강했어

면서도, 앞으로 한 대학의 소속이라는 자

요. 근데 누가 없어진다는 걸 사실 느낌으로

격이나 소속감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 일을

만 아는 거죠. 우리끼리 연락망이 있는 것도

지금 하고 있다는 교육 노동자로서의 접근

아니고 공식적인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기

을 통해 연대할 필요성을 덧붙였다. “이 일

때문에 내 지인이 잘렸는데 나는 아니구나,

을 노동으로 접근했을 때 노조가 훨씬 강

이런 식으로밖에 알 수 없었어요.”

해질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 해요. 노조에 가입해야겠네요.”

이중적인 정체성의 문제 그렇다면 어떻게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만들 수 있을까? 인터뷰 이인 두 분은 노조 활동을 하거나 적극적 인 목소리를 낼 계획을 가지고 있는 지 물 었다.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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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세상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 겨우 마주하는 잠깐의 빛. 시민들의 고단한 출퇴근 길을 책임지는 지하철 기관사에겐 간절한 빛이 기도 합니다. 서울 지하철 하루 이용객수만 798만 3000명이지만 시민들의 안전과 기관사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엔 여전히 역부족인 인력 문제는 혼자라는 부담감을 더욱 가중시키킵니다. 그들이 잡은 운전대가 노동자 안전과 건강이란 종착지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만큼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지하철을 타보면 어떨까요. 글·사진 선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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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사진으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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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목소리

공항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인력 부족 인천공항지역지부 양문영 조직부장, 정해진 수하물지회장, 박상민 탑승교지회장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핵심 공약 대상 사업장 제1호가 바로 인천국제공항공 사(이하 공항공사)였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약속은 자회사 전환으로 축소되었고, 심지어 자회사 전환마 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과 안전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에 인천 공항지역지부는 인천공항 제1터미널 3층 8번 출구 앞에서 천막농성을 4개월여 넘게 이어가고 있다. 지 난 5월 22일 인천공항지역지부 양문영 조직부장, 정해진 수하물지회장, 박상빈 탑승교지회장을 만나 현 투쟁 상황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정규직 전환 피하려는 채용비리의혹으로 인

인 대통령이 처음 인천공항을 방문한 17년 5

한 경쟁 채용은 해고의 구실에 불과

월 12일 이후 입사한 3000여 명을 경쟁 채용 한다고 명시했다. 해고의 위험에 내몰린 것이

17년 12월 26일 공항공사와 정규직 전환을

다. 그렇다면, 공항공사가 17년 5월 12일 이

합의했지만, 18년 12월 26일 한국노총과 공

후 입사자들에게 경쟁 채용을 요구하는 이유

항공사가 다시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문제가

는 무엇일까?

발생했다. 17년 합의서에는 자회사 두 곳에

30

서 각각 인원 3000명씩을 고용하되, 고용 형

양문영 17년 합의 당시 일하는 인원은 7000

태에 관해서는, 직접고용 시 4급 이상은 경쟁

여 명이었고, 18년 1월에 제2터미널이 개항

채용하고 4급 이하는 전환 승계하기로 했다.

예정이라 3000여 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

그리고 자회사는 대상 인원 전체를 전환 승계

었어요. 그래서 17년 합의 과정에서 제2터미

하기로 했다. 하지만 18년 합의서에는 문재

널 인원까지 포함한 1만여 명에 대해 정규직

2019년 6월호


전환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죠. 하지만 18

유가 있다고 한다.

년 합의 전후로 채용 비리를 문제 삼았어요. 당시 공공기관 채용 비리가 사회 이슈로 떠

박상민 탑승교 사업장의 경우, 지난 1년 동안

오른 때였죠. 공항공사와 한국노총은 정규직

TO를 채워서 근무한 적이 없어요. 실제 지원

전환 발표 이후 입사자에 대해 채용 비리 의

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처우가 열악하기 때문

혹이 있다고 문제 제기하며 경쟁 채용 방식을

이죠. 더욱이 채용 방식이 변경되면서 인력

도입하기로 합의해버렸어요. 저희는 정규직

충원 기간이 늘어났어요. 용역회사의 경우,

전환 약속을 전후로 입사자 간 차별을 둬서는

절차가 단순해서 채용 기간이 짧아요. 그런

안 되며, 17년 합의서를 지키라고 주장하고

데 자회사인 공항운영서비스나 시설관리 경

있어요.

우, 공기업에 준하는 채용 절차를 거치죠. 모 집 공고, 입사 지원, 면접 심사 등을 진행하는

정해진 공사는 전환 약속 이후 대상자 중 정

데 최소 1달 이상이 걸려요. 더구나 지원자도

규직들도 시험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하

적어서 채용 인원에 늘 미달이거나 지원자 중

다고 변명하지만, 5월 12일 이후 입사자 모

떨어진 사람이 있으면 재공고 절차를 밟아야

두에게 의혹이 있다고 전제하는 건 부당하죠.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인력충원 기간이 길

공항공사 정규직과 용역업체 비정규직의 처

어져요.

우가 명백히 다른데, 5월 12일 이전에 입사한 전환 승계 대상자들의 근무환경이나 조건이

정해진 설령 긴 채용 절차를 거쳐 인원이 충

기존의 용역업체 시절과 달라진 게 없어요.

원되었다고 해도, 처우가 열악해서 하루 일하

무엇보다 채용 비리를 시험으로 거른다는 게

고 그만두는 사람, 일주일하고 그만두는 사람

말이 안 되죠. 채용 비리는 불법이니까 경찰

도 많아요. 지원할 때에는 자회사라고 생각했

조사나 감사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경쟁

는데, 막상 와보니 용역회사와 다를 바 없다

채용하겠다는 것은 비리를 적발하겠다는 게

는 걸 깨닫기 때문이에요. 자회사라 채용 기

아니죠. 시험에서 떨어진 인원은 전환 승계하

준이 올라가고 지원하는 분들의 스펙도 올라

지 않고 해고하겠다는 구실을 찾는 거죠.

가는데, 근무환경과 조건이 개선되지 않았죠. 일은 힘들고, 처우는 열악하고. 그러니 크게

인력 부족 해결을 위해 열악한 근무환경부터

실망하게 되는 거죠.

개선해야 교대제 개선 위해 3200여명 충원해야 현장의 인력 부족 문제는 갖가지 문제를 발 생하고 있지만, 공항공사와 용역업체가 계약 한 TO조차 채우지 못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

교대제로 인한 높은 노동 강도도 인력 부족 을 야기하는 주요한 문제였다. 공항은 24시

현장의 목소리

31


간 돌아가는 사업장의 특성상, 교대제를 시행

은 항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런데도 공항공

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이 충분하지 않아 교

사는 제2터미널이 개항하면서 전체 근무 인

대제로 인한 어려움이 컸다.

원이 늘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업무량 증가 대비 인력충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로 인

양문영 사업장 대부분에선 3조 2교대를 운영

해 야간 노동 시 연속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

하고 있어요. 하지만 인력 부족으로 교대제

으며, 연월차 사용을 제한받고, 안전 및 보건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청소 노

교육도 형식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동자분들은 3조 2교대를 서면서도, 7시간 30 분씩 주6일제로 근무하고 계세요. 이 때문에

박상민 탑승교 근무 인원은 18년 1월 제2터

주5일제 전환을 요구하고 있어요. 이에 더해

미널 개항 전까지는 여객터미널 108명, 탑승

교대제에 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도

동 80명이었는데, 개항 이후 각각 87명, 63

있어요. 정규직은 4조 2교대를 하고 있기 때

명으로 줄었어요. 인원 부족으로 매뉴얼대

문이죠. 그래서 저희도 4조 2교대 전환을 요

로 근무하지 못해요. 매뉴얼에 따르면, 비행

구하고 있죠.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공공

기 착륙 30분 전에 점검하고 착륙 후 항공기

운수노조에서 진행한 2017년 연구보고서의

와 접연하고 승객이 내리고 정비와 내부 청

분석을 현재 인원에 적용해볼 때, 교대제 개

소가 끝나 항공기와 이연할 때까지, 근무자가

선에 필요한 인원은 약 3200여 명 정도로 나

한 시간가량 대기하면서 탑승교 오작동 등 비

와요. 이 정도 인력이 충원돼야 장시간 노동,

상상황에 대처하게 되어있어요. 하지만 인원

야간 노동, 높은 노동 강도로 인한 과로와 산

이 부족하니, 핵심 업무만 해요. 여기서 잠깐

재를 예방할 수 있겠죠. 하지만 공사는 관심

접연하고서 다른 데 가서 잠깐 이연하는 식이

이 없어요. 최근 보안검색대의 경우엔 주52

죠.

시간제를 도입하기 위해 인력충원 없이 교대

더구나 장비가 인천공항 개항할 때 설치한

근무를 12조 8교대로 전환하여 운영하겠다

거라 20여 년 가까이 되었어요. 그래서 노후

고 했죠.

상태가 심각하죠. 하루에도 수십 건씩 장애가 발생해 민원이 끊이지 않아요. 그런데 공사는

제2터미널 개항 이후 업무량 증가 대비 인력

최근 장비 사용 연한을 10년으로 늘렸어요.

부족으로 근무자, 승객 안전 위협해

설비 투자 없이 이윤을 늘리겠다는 거죠. 이 때문에 근무자 과로만이 아니라 승객 안전에

32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계속해서

도 위협받을 수 있어요. 정해진 지회장도 수

상대적으로 TO를 줄여왔다. 반대로 제2터미

하물 장비 노후로 고장이 빈번하다고 지적하

널 개항과 저가 항공사 출범으로 운항 편수가

며, 2016년 1월에 발생한 수하물 대란을 언

증가하여 업무량은 갈수록 늘었다. 그러다 보

급했다. 당시 30분가량 업무가 지연되어 승

니 연휴나 휴가철마다 운항 편수와 이용 승객

객의 불편함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3000

2019년 6월호


개가 넘는 30~40kg의 수하물을 근무자가 직

이동이 많고 접근성이 좋으며 쾌적한 2~3층

접 옮기다 보니, 노동자들은 부상과 사고 위

은 항공사와 면세점, 상업 시설에 임대하는

험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반면, 열악하고 눈에 띄지 않는 1층과 지하 에 용역업체 사무소, 노조 사무실, 휴게·대기

자회사 전환은 인력 부족, 열악한 처우의 근

실을 배정한다. 정 지회장은 공항공사가 노동

본적 문제

자들의 사무·휴게공간을 제공하지 않고, 운영

인력 부족으로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 모두

설비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위협받는 상황에도 공사가 인력을 충원하지

더구나, 수하물작업 대부분이 지하에서 이

않는 이유는 공공기관 총액인건비제 때문이

뤄져 직업병의 위험도 크다. 각종 폐기물, 오

다. 양문영 조직부장은 자회사의 인건비를 절

수 처리 시설과 함께 컨베이어벨트가 작동하

감하고자, 간접고용을 늘리고 용역계약 시 인

고 있어, 각종 분진과 유해물질에 노출된다.

건비를 사업비에 포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20년 가까이 근무한 조합원이 폐암을

박 지회장은 사업비가 기재부 승인을 받는 사

진단받고 산재 인정받은 사례도 있었지만, 컨

항인 데다 공사의 성과공유금 비중과 연관되

베이어벨트 주변 안전설비가 설치되지 않은

어, 인건비 항목을 수정하거나 사업비를 늘리

곳이 다수며, 면적 대비 환풍기 설치 대수도

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족한 실정이다. 정해진 지회장은 운영 설비

심지어 자회사 전환 사업장의 용역계약이

도 개선하지 않는 상황이니 안전설비는 뒷전

완료되면, 운영서비스, 시설관리와 수의 계

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양 조직

약 하는 것으로 변경되는데, 이때 대부분 최

부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실효성 있는 공

저낙찰률이 떨어져 낮은 사업비가 책정되기

항공사와의 안전근로협의체 세부 운영지침

때문이다. 자회사 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되지

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않거나 용역계약 시 전환 승계하면서 노동자 들의 실질 급여가 하락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긴 인터뷰를 마치고 보니, 공항공사의 태도

도 했다.

는 한 마디로 비용 최소화로 요약될 수 있었 다. 인건비와 시설투자비를 아껴서 이윤을 최

시설임대수익을 위해 안전설비, 노동자 사무·

대한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력 부

휴게공간은 뒷전

족과 시설 노후로 인해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 은 위협을 받고 있다. 부푼 마음을 안고 공항

공항 설계 시, 근로자 1명당 적정 사무·휴게

을 오가는 시민들과 공항을 일터로 삼아 삶을

공간 면적이 배정되지만, 공항공사의 전체 이

영위하는 노동자들. 그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

윤 중 시설임대수익이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

키기 위해선 속히 인력충원이 이뤄져야 하며,

다. 공항 3층에 위치한 편의점 한 곳의 1년 임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정규직 전환, 그 취

대료가 약 30억에 달할 정도다. 그러니 승객

지가 지켜져야 할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

33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동료의 죽음을 안고 시작한 노안 활동 금속노조 sjm지회 이현옥 노안위원

나래 상임활동가

격동의 시기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열기 속에서 탄생한 금속노조 SJM지회는 이현옥 노안위원에게 노동 운동의 시작이자 마침표가 될 곳이기도 하다. 그 역시 근무를 시작한 20대 시절엔 노동조합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회사가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은 결코 그를 가만히 두 지 않았다. 그 생각으로 시작한 활동이 조직부장, 체육부장, 부지회장을 거쳐 가장 최근엔 노동안전부장을 4년 간 역임했다. 그에게 노안홛동의 의미를 물으니 “가장 힘들었고,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이었다고 웃으며 대답했 다. SJM지회는 2012년 용역업체를 동원해 직장폐쇄를 단행했던 노조파괴 사업장이기도 했다. 이 투쟁을 계기 로 노조는 공장 담벼락을 넘어 지역과 함께 살기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현옥 노안위원 역시 안산노동안전센터 운영위원, 마을 협동조합 마실의 이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22일에 그를 직접 만나 공장 담벼락을 넘 어선 노안활동의 고민을 들어봤다.

후배의 죽음과 본인의 아픔으로 시작한 노안활동

어가는 플랜트 사업을 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장 시간노동 철폐, 심야노동 철폐를 위해 주간연속

“제가 활동하게 된 계기요? 투쟁하신 분들이 가열

2교대제 전환, 주40시간 노동 쟁취 투쟁 활동에

찬 투쟁 열기만으로 활동했던 건 아니고, 살펴보면

집중했다. 그 활동 가운데 노동안전보건운동을

가족, 친지, 그 분들을 도왔던 누군가의 죽음을 목

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격하면서 함께 했던 것도 있어요. 저 역시도 노동조 합 활동을 옆에서 보면서 저 활동이 정말 필요하고 정당한 활동이라고 생각해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겁니다. 일터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죠.” 반월공단과 시화공단 두 곳에 있는 SJM은 각 각 자동차 와이어 생산과 발전소, 조선소 등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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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저에겐 두 가지 계기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종 엽이란 후배 때문이었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 니다. 제가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관심이 없을 때, 노동조합도 노안홛동보다 조직화 문제에 관심이 많 을 때 그 친구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아주 아팠어요. 저희가 플랜트 용접 일을 하다 보니깐요. 산재 신청


2004년 11월 5일, 31세의 젊은 나이로 자살 한 여종엽 씨는 10년 넘게 조립작업을 해오다가 2001년 목과 어깨에 근골격계 질환을 얻어 산 재 요양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일을 다시 시작 하면서 통증이 재발했고, 2003년까지 산재와 공 상 치료 그리고 복귀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 국 2004년 4월엔 허리에 근골격계 질환까지 얻 게 됐다. 허리치료를 위해 산재 요양을 신청했지 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승인 여부를 계속 미뤘 고, 그 과정에서 고인은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우울증까지 발생해 정신적 건강마저 크게 훼손 됐다. 산재로 인한 고통을 멈추기 위해 극단적 선 택을 한 그의 죽음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사회 출처 : 이현옥

적으로고 큰 충격과 아픔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이후 노동조합은 노동강도, 근골격계질환 등 다 양한 의제로 노안활동을 벌여나갔다.

을 하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고.. 그게 반복됐죠.

“근속이 오래되다 보니까 제가 노안부장 포함해서

그러다 보니 업무 강도가 높은 상황에서 아픈 동료

노안활동만 10여년 가까이 했는데, 사실 우리 사업

에 대해 따뜻한 마음으로 잘 위로해주질 못했어요.

장 100%가 근골 질환자들이에요. 치료 안받아본

관리자나 주변 동료들이요. 그 친구가 얼마나 아팠

사람이 없고 공상, 산재를 안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는지 몰랐으니깐요. 기억나는 게 종엽이가 날 좋을

다 아파요. 그래서 종엽이가 많이 아팠던 거고 그

때 공장 담벼락에 앉아서 혼자 있는걸 보고 가끔 같

친구가 가고 나서 현장 개선 사업에 집중했죠. 근골

이 이야기도 나누고 했었어요. 그러다 얼마 뒤 그

격계유해요인 조사도 하기 시작했고요. 증상이 있

친구가 자살했어요. 노조에서 함께 산재 투쟁을 벌

으면 동행 진료해서 진단이 나오거나 증상이 있으

였고요. 결국 산재로 인정이 됐죠. 그 계기로 노동

면 근무 중 치료를 하거나 휴업 치료를 받게 하거나

조합도 노동안전보건활동에 눈을 뜨게 됐어요.

단계별로 면담을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저의 산재 경험 때문이에요. 8년 전쯤에

공상 없는 일터의 중요성

일을 하다가 다쳤어요. 위험했죠. 큰 쇳덩어리가 넘 어져서 저를 쳤는데, 쇠붙이에 머리를 부딪혔는데 이마가 오픈됐죠. 인생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다행 히 치료가 잘 됐죠. 저 역시 산재를 당하고 보니 노

이현옥 노안위원에게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 는 사업은 어떤 것이었는지 물었다.

동안전보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노안부장을 하면서 가장 문제의식을 느낀 건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35


출처 : 이현옥

▲ 공장 담벼락을 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우리동네 안전지도 화학물질 알권리'사업을 거리에서 진행하는 모습이다. (왼쪽 이현옥 노안위원)

‘공상’ 문제였어요. SJM이 공상 제도가 얼마나 잘

회사도 노동조합 탄압의 구실로 삼겠다 싶더라고

되어 있었냐면 무조건 증상 있어서 요구하면 진료

요. 노동력 상실 문제는 자본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

를 통해 휴업치료를 받을 수 있었어요. 아파서 일

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2012년에 직장폐쇄

못 하겠다고 얘기하면 2~3주 휴업을 했죠. 급여도

가 있었다고 봐요. 직장폐쇄 전 압박이 많았거든요.

120%까지 줬고요. 사실 그땐 급여가 아주 낮았기

회사가 우리에게 했던 말이 환자가 너무 많다, 1년

때문에 처리해준 것도 있죠. 그러다 보니 치료를 많

에 의료비로 5억 이상이 든다, 근로 손실수가 어마

이 받기는 하는데 도리어 환자가 늘어난 거에요. 우

어마하다고 했거든요.

리 입장에선 아이러니했죠. 그러면서 공상이란 제 도가 정말 우리한테 좋은 것인가라는 고민이 들기

직장폐쇄 투쟁 승리하고 나서 노안부장이 됐어요.

시작했어요.

그 뒤에 임원들과 본격 논의를 시작해서 현장에서 공상을 없애고 산재로 집중하자고 했어요. 조합원

36

두 번째는 산재 은폐 문제였죠. 그래서 공상을 줄여

들의 반발이 거셌죠. 그 좋은 제도를 왜 없애냐고

야겠다고 판단해 노조 임원들과 상의했어요. 공상

요.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문제를 더 크게

문제를 짚어야 한다, 왜냐면 이 제도를 그대로 두면

봐야 했죠. 단순한 공상 문제가 아니었어요. 산재

2019년 6월호


은폐로 인한 사업장 개선 문제, 공상은 나가지만 재

“거창할 게 없어요. 미조직 노동자, 노동안전 사각

발 방지가 안 되는 문제 같은 거요. 그래서 금속노

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산재 받을 권리, 알권리

조 노안실에 문의를 해봤어요. 금속 사업장 중에 산

등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하자고 생

재하는 곳이 있냐고 하니 금호타이어, 유성 정도를

각했어요. 거리 상담, 산재 접수, 직접 방문해서 면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에 계획을 세워 재해

담도 하고요. 소책자도 만들어서 홍보도 했죠. 지금

가 발생하면 공상이 아닌 산재로 처리한다고 산업

그 정도로 사업을 하고 있어요.

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합의했어요. 그리고 지금까 지 온거죠. 그땐 잠을 못잘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우리가 SJM 직장폐쇄를 당하고 나서 탄압을 이길

받았어요. 다행히 잘 버텨온 것 같습니다.”

수 있었던 아주 중요한 힘은 사회적 연대의 힘이었 어요. 단사의 힘으로 버티긴 했지만 주변에서 도와

그는 획기적 변화가 단번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 지만 점진적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것, 조합원 마 음속에 각인되면서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시 일을 회상했다. 어려움이 많은 현실 속에서 노동조합이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주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거에요. 그래서 사회연대 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 죠. 그게 안산노동안전센터의 탄생 계기에요. 조합 원들이 기부금을 모아주기도 했죠. 저희 사업장뿐 아니라 안산지역의 금속노조 사업장, 화섬 사업장 도 함께 고민하고 힘을 모았습니다.”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 할지 궁금했다.

실제 SJM이 위치한 반월시화공단은 대부분 이 영세사업장이다. 그러다보니 아주 열악한 사

“노동안전은 권리라고 하죠. 생산의 도구로 활용되 어선 안돼요. 그렇기 때문에 알권리 사업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왜 문제가 되고, 어떤 이유로 이 렇게 해야 하는지를 모두가 알아야 하는 거죠. 노동 자가 시민이기도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공장이

업장이 많다. 손가락 절단 사고, 압착 사고가 흔 하기 때문에 수지접합 병원이 아주 잘 되는 지역 중 하나다. 각 사업장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없 기 때문에 이들은 본인들의 점심시간을 활용하

란 담벼락을 넘어서 시민과 아직 조직되지 못한 노

고 있다. 공단 중식 선전전을 통해 여러 노동조합

동자들에게 문제를 알려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의 보안부장들이 권리수첩도 배포하고, 직접 만

까요.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봐요.

나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사실 공장 담벼락 안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거든요. 노동안전보건운동을 노동조합만 있는 곳에서 할 건 아니잖아요?”

2012년 직장폐쇄 투쟁을 경험하며 이현옥 노 안위원은 연대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 러다보니 SJM이라는 일터만 바라보는 것이 아

전국에서 고군분투 하고 있을 노동안전보건 활 동가들에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지 물었다.

“안을 챙겼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을 챙기고 그들 과 같이 만들지 않으면 결국 고립될 수밖에 없어

닌 더 확장된 운동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고민

요. 그것이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

속에서 2년 전 안산노동안전센터가 설립됐다. 설

다.”

립 과정에 누구보다 애정과 힘을 쏟은 그였다.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37


노동시간읽어주는 읽어주는사람 사람 노동시간

소설은 땀을 흘린다 노동 문학 선집 『땀 흘리는 소설』 (창비교육, 2019)

이종찬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계자들에 대한 섭섭함”이었다고 엮은이들은 밝히 고 있다. 이 책의 편집 위원들은 모두 교육 현장에 서 직접 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로 구성되 어 있는데 이들의 문제의식은 “젊은 세대와 함께 읽을 만한 제대로 된 노동 문학 선집”이 마땅히 눈 에 띄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물론 한국 사회에 노동 문학의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70~80년대의 노동 문학에 치우쳐 있었던 데 편 집자들의 고민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의 청(소) 년 세대와 함께 ‘지금 여기의 노동 문학’을 이야기 하기에 그것들로는 시간의 이음매가 잘 맞지 않았 던 것이다. 그렇게 준비된 이 책은 “21세기에 새 출처 : 알라딘

롭게 일과 직업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 선 집”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노동의 구체적 양태는 시대에 따라 그 모습들을 달리해 왔다. 어제의 노동과 오늘의 노동이, 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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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리는 소설』(창비교육, 2019)은 “문학 수

아가서는 내일의 노동이 같은 형태를 띌 수는 없

업을 통해 노동을 공부할 방법”에 대한 하나의 답

을 것이다. 다만 인간의 노동 환경이 시대를 막론

변 격으로 기획되어 출간된 한국 단편소설 선집

하고 꾸준히 열악하였음을 따로 강조할 필요는 없

이다. 총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이 책의 출

어 보인다. 『땀 흘리는 소설』 속 이야기들에서 우

발점은 “문학을 업으로 삼은 평론가들과 출판 관

리의 시선을 끄는 건 여전히 비루한 노동 환경으

2019년 6월호


로 비롯된 감정의 어떤 무늬들이다. 노동의 조건

리를 하게 되면서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그 다음

이 가혹하다는 걸 ‘아는’ 것과 그 가혹함으로 인해

날 어비는 말없이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다. 간밤

초래된 마음의 무늬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전

에 지갑을 잃어버린 ‘나’는 그것이 어쩌면 어비의

혀 다른 문제다. 좋은 문학과 예술은 인간과 세계

짓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지만 그것을 확인할 방

를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우

법은 없다.

리를 이끈다.

먼저 김혜진의 「어비」를 읽는다.

도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어비’는 동료 직원들 사이에서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통한다. 소설 속 그의 모습은 자발적 유폐자의 형상을 닮아 있다. “그냥 별로 말할 게 없어요. 진짜요.” 그는 말하자 면 “여기까지라고 금을 그어 놓고 내내 그 경계를 지키는 데 필사적인 사람” 내지는 “있었나 싶으면 어느새 가고 없는 사람”이다. 여기까지 보면 자의 식 과잉의 인물로 보이지만 그것도 아니다. 어비 는 의식적으로 타인들과의 관계 맺음을 회피하는 유형이 아니라 그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물 출처 : 알라딘

쪽에 훨씬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공 간에서 근무하고 있는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이렇 게 말하고 있다. 어비는 “웃으려고 하는데 그게 맘 대로 안 되는 것 같았다.” ‘나’가 어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다시 보게 된 단체 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노출하던 어

건 인터넷 개인 방송 사이트에서다. 어비는 그곳

비는 어느 날 팀장으로부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에서 기괴한 형태의 1인 방송을 하고 있었다. 산

클레임의 원인 제공자로 부당하게 지목받는다. 어

더미처럼 쌓아 놓은 번데기를 숟가락으로 게걸스

비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이 아님을 주장하지만 받

럽게 떠먹거나, 싸구려 중국 음식들을 대량으로

아들여지지 않자 회사를 그만 둔다. “햇볕 한 줌

시켜 빠르게 먹어치우는 어비의 먹방을 본 접속

들지 않는 이 커다란 창고를 빙빙 돌면서 인생을

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별 풍선을 터뜨리기 시작한

낭비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나’ 역시 얼마 뒤

다. “어비가 벌어들인 돈과 앞으로 벌어들일 돈”

퇴사를 하게 되는데 몇 주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생

을 카운팅해 보며 ‘나’는 어딘지 모르게 종잡을

활용품 창고에서 어비와 다시 마주친다. 그 날 퇴

수 없는 기분에 빠져든다.

근 후 ‘나’와 어비는 처음으로 같이 저녁 식사 자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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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의 「어비」에서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노동의 형태가 다양하게 분 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이 가능 해진다. 어비의 인터넷 1인 방송은 노동일까 아닐 까. IT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플랫폼 공간에서 제공되는 이와 같은 ‘플랫폼 노동’은 우 리가 알고 있는 ‘노동’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다음으로 읽고 싶은 작품은 구병모의 「어디까지를 묻다」이다.

‘나’는 현재 카드 회사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고 출처 : 알라딘

있지만 원래 꿈은 아나운서였다. 한때는 자신의 목소리가 “언어의 잎맥을 살며시, 그러고도 단호 하게 켜는 활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품고 있던 그였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당장의 현실에 발이 묶여서는 지금의 직장에 취업해야만 했다. 그리고

통곡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끝이

규격화된 친절함의 언어로 점철된 그녀의 목소리

아니라 시작이었다. 통화를 이어갈 수 없는 ‘나’를

는 애초의 매력과 활기를 잃어버렸다. 언어 폭력

대신해 다른 직원이 임의로 전화를 당겨 받지만

과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감정 노동은 일상이 되

그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으로 전개된다. 그것을

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이어받은 직원 역시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 다. 그렇게 “울음은 우리 팀 전체에 염병처럼 퍼져

그런데 어느 날 걸려온 전화는 이전과는 결을 완

나갔어요.”

전히 달리 하는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 ‘고객님’ 의 목소리, 그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괜찮으

구병모의 「어디까지를 묻다」는 인간 내면의 심

세요?” ‘나’에게 그것은 “호미로 파헤쳐진 자리를

층이 지닌 복합적인 역설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보드라운 흙으로 덮어 다지기 위해 토닥거리는 손

폭언은 상담원의 마음을 허물지 못했다. 그렇지만

길”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말문이 탁 막힌 게,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친절함의 말 한 마디가 도

그 전까지 이어져 오던 콜의 무늬에서 한 조각이

리어 그들을 완벽하게 무너뜨려 버렸다. 인간의

삐끗 나가 버리니까. 그동안 퍼부어진 몇 톤 치의

마음이란 것이 이토록 허술하고 모순투성이다. 우

욕이 거의 자장가에 가까운 패턴을 이루어 왔는데

리는 아직 인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거기 갑자기 완전 5도 화음이 추가된 상황”. 바로

여전히 그럴 것이다.

그 때였다. ‘나’는 그만 “부모님 돌아가신 것처럼

40 2019년 6월호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미운 오리도 산재가 되나요?

“왜 너만 난리야!?”

“여태껏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 없었 는데 이번에 홍길동 씨에게만 문제가 생겼다. 그

“옆 사람들 다 멀쩡한데 왜 너만 그래?”

나름대로 운동을 좋아하고, 또 잘한다는 착각

러므로 산재가 아니다.”

이는 산재법과 산재보험의 취지를 완전히 몰

에 빠져 사는 필자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이해함으로써 나온 논리다. 산재보험의 목적은

그건 바로 중학교 체육 시간에 뜀틀 위에서 앞구

업무와 관련한 안전, 보건상의 위험을 함께 대비

르기 했던 기억인데, 반 친구들 전원(!!)이 자연스

하는 것이다. 산재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로

럽게 임무를 완수했음에도, 유독 필자만 뜀틀 위

지 “업무와 질병 발병 간의 상당한 수준의 인과관

에서 우스꽝스럽게 물구나무선 것 마냥 “1”자로

계”의 존재 여부지 노동자가 갖고 있던 “위험 요

서버렸던 아픔이다. 수차례 시도를 해도 공처럼

인”이 아니다. 설령 노동자가 위험 요인을 갖고

구르지 못하고 뜀틀 위에서 “1”자로 섰다가 고목

있었던 들, 자연적인 경과를 따랐을 때 발병했을

나무 쓰러지듯 고꾸라져 한동안 허리통증을 겪게

시점보다 업무로 인해 상당한 수준으로 빨리 유

되었다.

발되었는지가 판단의 핵심인 것이다.

업무상 질병(산재) 심의자료를 검토하다 보면

대법원에서도 업무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를 따

간혹 그 당시 선생님께 혼났던 기억이 떠오르곤

질 때는 보통의 평균인을 기준으로 생각할 것이

한다. 산재를 신청하는 노동자의 카운터파트를

아니라 당사자의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

자처하는 사업주 항변 중 단골로 등장하는 다음

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필부필녀를 기준

과 같은 논리 때문이다.

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해당 노동자 개개인의 입장에서 “신체 부담업무” 해당하는지, 유해요인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41


출처 : Pixabay

과 질병 간의 인과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병을 얻은 근로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 중 하 나일 뿐, 근로자가 잘못했다거나(고의가 아닌 이

앞서 뜀틀 얘기로 돌아오자면 당시 필자의 뒤

상), 업무능력이 미숙하다거나, 개인적 소인의 존

통수는 다른 친구들보다 납작했다. 납작한 뒤통

재 여부는 보장 여부 판단에 있어 중요한 고려점

수를 갖고 있음에도 선생님의 지배·감독하 실습

이 아니라는 것을 사업주든 노동자든 꼭 인지하

에 임했고, 이 과정에서 부상(질병)을 얻었다는

여 이로 인한 사회적 오해, 갈등이 줄어들었으면

것만 인정된다면 이후에는 둥근 뒤통수를 가진

하는 바람이다. 미운 오리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

친구들 기준이 아니라 “납작한 뒤통수”라는 위험

장 먼저 품어야 할 대상이 아닐까?

요인을 가지고 있는 나의 상황에서 앞구르기와 허리통증의 인과관계만 판단하면 되는 일이다.

또 한 예로 내 친구는 병뚜껑이나 참치캔을 딸 때마다 피를 철철 흘려 놀림의 대상이 되곤 한다. 대다수 사람은 이 같은 동작을 할 때 다치지 않는 다. 그렇다고 해서 이 친구가 참치캔 때문에 피를 안흘린 것은 아니므로 이 동작이 업무의 일환이 었다면 당연히 산재에 해당한다.

이처럼 산재보험은 쉽게 말해 “일과 관련하여 박승권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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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 (與)

ILO협약 비준을 추진한다는데…

한국은 1991년 ILO(국제노동기구)에 가입하였

작업 예외), 제105호(강제노동 철폐 협약)는 정

다. 그러나 27년간 핵심협약 비준을 미루고 있었

치적 견해 표명 및 파업 참가에 대한 처벌 등 5가

다. 노동계에서는 특수고용직 노동조합 설립, 전

지 형태로 부과되는 강제노동 금지 등을 명시하

교조, 전국공무원노조 법외 노조, 타임오프, 교섭

고 있다.

창구 단일화, 필수유지업무 등 사실상 노동3권이

ILO 핵심협약 비준에 관한 노동계의 요구에도

온전하게 보장되지 않는 문제의 해결 방안 중 하

불구하고 정부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았던

나로 ILO핵심협약 비준을 요구해 왔다.

상황에서 2019년 2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 노위)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한다는 명목 하

결사의 자유 관련 ILO 제87호(결사의 자유 및

에 경영계의 의견을 대폭 반영하여 파업 시 대체

단결권 보호 협약)의 주요 내용은 ▲ 자발적인 단

근로 전면허용,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단체협

체 설립·가입 권리, ▲ 설립된 단체의 자유로운

약 유효기간 연장, 쟁의행위 찬반투표 요건 강화,

대표자 선출·활동 보장 등, 제98조(단결권 및 단

부당노동행위 처벌규정 삭제 등 헌법상 노동3권

체교섭 협약)는 ▲ 단결권 행사 중인 노동자에 대

을 부정하는 내용을 포함하여 공익위원 안으로

한 보호, ▲ 반노조적 차별행위로부터의 보호, ▲

논의가 이루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경사노

노사단체 간 상호 불간섭, ▲ 자율적 단체교섭 장

위 합의가 불발되었고 국회를 통해 노동 관계법

려를 위한 조치 등을 명시하고 있다. 강제노동 금

개정안이 논의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물론 일

지 관련 ILO 제29호(강제노동 협약)는 모든 형태

부 언론사의 보도처럼 식물 아니면 동물이 되는

의 처벌 위협 하에서 자발적으로 제공하지 않은

국회의 사정상 논의가 진전을 보이고 있지 못한

강제노동 금지(의무병역법에 의한 군사적 성격의

상황이다.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 (與)

43


이런 상황에서 2019. 5. 22. 정부는 ILO 핵심

원직복직 ▲ 노조설립신고제도 개선 ▲ 필수유지

협약 비준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

업무 개선 ▲ 근로시간면제제도 개선 ▲ 규약/결의

가 아직 비준하지 않은 4개 핵심협약 중 결사의

처분 시정명령 개선 ▲ 단체협약 시정명령 개선의

자유에 관한 87호와 98호,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7가지다. 민주노총이 제시한 7가지 선행조치들은

29호 조항의 비준절차를 진행하며 오는 9월 정

모두 시행령, 시행규칙 등이 규정하는 조항들로 국

기국회까지 비준동의에 필요한 과정을 거쳐 국회

회 동의 없이 정부의 권한으로 시행할 수 있는 조

에 동의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강제노동 금

치들이다. 정부의 진정한 ILO 핵심협약 비준의 의

지 제105호 협약은 형벌체계 등 추가적인 검토

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제외하였다. ILO핵심협약 의 국내법적 효력발생을 위해 국회 비준을 필요

정부는 “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과 관련하여 오

로 한다. 물론 법 개정을 통해 ILO 핵심협약 내용

랜 기간 형성된 법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에 대

이 반영되어야 할 사항이 있고, 법 개정 전에 시

한 현장의 우려가 크고, 어려운 길이라는 것도 잘

행령, 시행규칙을 통해 정부가 ILO핵심협약의 주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

요 내용을 현실에 실현시킬 수 있는 내용도 있다.

을 퉁 해 우리 경제가 당면한 통상 문제의 불확실

그런데 우려가 앞서는 것은 정부 발표에 따르면

성을 해소하고, 자율과 상생의 노사관계로 도약할

“경사노위 공익위원 최종 권고안을 포함해 사회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

번 ILO 핵심협약 비준 과정에서 노동이 존중받는

문이다. 경사노위 공익위원 안에 ILO 핵심협약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진정한 정책적 의지를

과 충돌하는 조항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영

확인할 수 있길 소망한다.

계는 부당노동행위 처벌금지나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 노동기본권 후퇴 등의 조건을 ILO 핵심 협약 비준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정부의 노동 관계법 개정안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를 지 울 수 없다.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다는 이유로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일이 발생해서는 아니 된다. 또한 정 부가 진정으로 ILO 핵심협약의 비준 필요성을 인 식하고 있다면 국회를 통한 개정안을 마련하는 데 앞서 선행적으로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을 통 해 ILO 핵심협약의 주요 내용을 반영하는 게 우 선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민주노총이 제 시한 정부의 선행과제는 ▲ 전교조 법외노조통보 처분 직권취소 ▲ 공무원, 교원, 공공부문 해직자

44 2019년 6월호

유상철 노무사, 노무법인 필


노동자 건강 상식

대상 포진

누구나 흔히 겪는 대상포진

을 때 수두에 걸린 경우, 성인이 되면 대상포진 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즘처럼 유아

대상포진은 우리에게 익숙한 질환입니다. 한

기에 수두예방접종을 하는 경우, 수두바이러스

해 약 70만 명이 대상포진으로 진단받으니 결

와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동일하니깐 수두예방

코 적지 않은 환자수입니다. 주위에서 대상포

접종이 대상포진에도 예방효과가 있지 않을까

진으로 고생한 분들의 이야기는 들어보았을 것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수두 예방접종이

입니다. 한자로 帶狀疱疹 즉, 띠 모양으로 물집

비교적 최근에 시행되어 오랜 연구결과가 축적

을 동반한 발진이 발생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되지 않았지만, 수두예방접종을 하더라도 수두

대상포진은 50세에서 70세의 연령대 많이 발

바이러스가 체내에 들어와서 무증상으로 잠복

생하지만 젊은 사람에게도 발생하는 경우가 적

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수두예방접종이 대상

지 않습니다.

포진을 예방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 이유 로 어렸을 때 수두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더라

대상포진은 바리셀라 조스터 바이러스

도 성인기에 대상포진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Varicella zoster virus, VZV)라는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병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어린이에게

대상포진이 의심된다면?

서 ‘수두’를 일으킵니다. 어른이 되어 이 바이 러스가 재활성화되면, 대상포진에 걸리게 되

수두바이러스(바리셀라 조스터 바이러스)가

는 것입니다. 수두 예방접종이 없던 지금의 청

피곤하다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는 요인으로 재

장년 이상의 세대에서 수두는 어릴 때 가볍게

활성화되면, 특정 신경을 따라 내려가면서 피

앓고 지나가는 질환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렸

부염을 발생시켜 신경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노동자 건강 상식

45


때문에 통증이 동반됩니다. 일반적으로 피부질

하고 아무런 피부 변화가 없다가 피부 부위에

환은 가려움으로 불편하지만, 대상포진은 심한

붉은 점이나 조그만 덩어리 같은 발진이 나타

통증이 발생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납니다. 이후 조그만 물집(수포)으로 변하고, 여러 개의 수포가 합쳐져 더 큰 수포가 됩니

그리고 대상포진은 피부 병변에 앞서 통증이 발생하는데, 이때 진단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

에도 짧으면 5일, 길면 보름까지도 수포성 병

니다. 가슴, 특히 왼쪽 가슴이 아프면 심장병을

변이 지속됩니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수포 안

의심하여 심장관련 검사를 하기도 하고 복부가

에 염증성 물질들이 채워져서 노랗게 변하고

아프면 소화기질환을 의심하여 소화기관련 검

가피(딱지)가 생깁니다. 결국 딱지가 떨어지

사를 하지만 환자는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다는

고 정상 피부를 회복하는데 보통 한 달이 걸

소견을 듣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증

립니다.

대상포진 초기 : 발진과 수포

은 지속됩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오른쪽 배

대상포진 후기 : 수포가 가피(딱지)로 변함

대상 포진의 특징은 여러 개의 발진과 물집

가 아프다고 병원에 오신 할머니가 있었는데,

이 몸 한 쪽에만 국한해서 넓은 띠처럼 분포

혈액이나 영상검사에 이상이 없다고 해서 환자

하며 통증을 동반합니다. 몸 어디에나 생길

에게 좀 지켜보자고 했다가 3일후 피부가 빨개

수 있지만 가슴과 배, 그리고 등 부위가 가장

지며 통증이 더 심해졌다고 다시 내원하신 적

흔하고 그 다음으로 얼굴, 어깨, 허벅지 등에

이 있습니다. 배를 다시 보니 전형적인 대상포

도 생길 수 있습니다. 통증을 동반한 발진과

진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통증만 있고

수포를 보이는 피부병변이 있으면 대상포진

피부에 병변은 없지만 대상포진 가능성이 있을

의 가능성이 높으며 육안으로 진단하게 됩니

때는 환자에게 피부에 발진이 생기는지 자주

다. 혈액검사를 통해 바이러스를 확인하는 것

확인을 하라고 설명합니다.

은 보조적인 수단입니다.

대상포진 초기 1~3일까지는 매우 아프기만

46

다. 이런 변화가 3~5일 동안 진행되고 이후

2019년 6월호

노인이나 면역 상태가 나쁜 사람들은 더 심


하게 앓아서 통증이 크고, 오랜 기간 지속되며,

최근에는 대상포진 백신이 많이 알려져 있습

피부 병변도 흉터가 생길 정도로 심하며 피부

니다. 대상포진 백신은 바이러스의 재활성화

병변이 호전된 이후에도 통증이 지속되는 ‘대

로 인한 대상포진이나 포진후신경통의 발생률

상포진후 신경통’이 후유증으로 남을 수 있습

을 감소시킵니다. 60세 이상의 성인 환자를 대

니다. 이 통증은 사람에 따라서는 몇 년 동안

상으로 시행한 대상포진예방연구에서 대상포

계속 되기도 합니다.

진예방접종을 시행한 그룹에서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대상포진과 포진후신경통 발생률

그래서 대상포진을 치료하는데 가장 중요한

이 각각 51.3%와 66.5%씩 감소하였습니다.

것은 항바이러스제의 조기 투약입니다. 통증

즉 대상포진예방접종을 받더라도 대상포진에

과 발진이 생기는 초기, 통상적으로 발진 시작

걸릴 수는 있지만 통증 감소에 효과적이라는

3일이내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면 통증의 기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60세 이상에

간이 줄어들고 대상포진후 신경통의 발생빈도

서는 개인부담으로 1회 예방접종을 할 수 있

도 줄일 수 있습니다. 항바이러스제를 조기에

습니다. 대상포진을 앓고 난 이후에도 백신은

복용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그 외에도 스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 1년 이상

테로이드와 같은 항염증제나 진통제를 잘 써서

경과한 후 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통증을 최대한 줄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물집 이 잡힌 부분은 특별한 약을 바를 필요도 없고 물집도 터트릴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세균감 염이 안 되도록 깨끗하게 소독해야 합니다. 진 통제는 따로 쓰는 것이 좋은데 아플 때마다 복 용하기보다는 일정한 시간마다 복용하는 것이 통증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통증이 심한 경우 가 많기 때문에, 일반적인 진통제로 호전이 없 으면 마약성 진통제를 쓰기도 합니다.

대상포진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대상포진환자와 접촉한다고 대상포진에 걸 리진 않습니다. 다만 바이러스가 많이 검출되 는 시점인 수포가 발생한 시기의 대상포진 환 자는 수두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신 생아나 면역력이 떨어지는 사람과의 접촉은 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장영우 선전위원장, 내과의사

노동자 건강 상식

47


문화 읽기

연극 <은하계 제국에서 랑데부> 각 직업병 피해자와 가족, 반올림 활동가들의 이야 기를 듣는다. 그리고는 한 구절씩 되풀이하기 시 작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말을 따라하다가, 나 중에는 자기 이야기인 양 마음을 실어서 표현하려 노력해본다. 아무리 감정을 실어도 배우와 배우의 말 사이의 거리가 확인된다. 여느 연극이라면 관 객들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대 사를 듣고 햄릿의 고뇌를 느끼지만, 이 연극에서 는 햄릿의 고뇌를 느껴보려는 배우의 노력을 느낀 다. 왜 배우가 한 인물에 합쳐지지 않도록 이런 거리 를 만들었을까? 4월 공연에서는 그 의도를 좀더 쉽게 알 수 있도록 했다. 배우들은 각자 자기가 겪 었던 어떤 충격, 어떤 슬픔, 어떤 기쁨을 이야기한 다. 모두의 이야기가 끝나면 이 배우가 저 배우의 이야기를 따라서 해본다. 그리고는 반도체 직업병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따라 너무 아스트랄한 거 아닐까? 연극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했던 생각이다. 삼성 문제를 다룬 연극 임을 넌지시 표현하려고 ‘갤럭시’와 ‘제국’을 합쳐

해본다. 나중에는 배우 자신의 이야기, 다른 배우 의 이야기, 반도체 노동자와 활동가들 이야기와 각 각의 희로애락이 뒤섞인다.

서 만든 말인가? 그럼 랑데부는 뭐지? 이 연극을 연출한 정성경씨는 반올림 농성장 지 2018년 12월 여행자 극장에서 한번, 2019년 4 월 한예종 연극원에서 또 한번, 두 차례 연극을 보 고 나니 그 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킴이로 오랫동안 연대해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반 올림 이야기를 넣은 연극을 만든다며 반올림 활동 가들과 삼성 직업병 피해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녔다. 나도 제작진과 만나 이런 저런 소감을 이

12월 공연에서는 배우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나왔다. 관객의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배우들은 각

야기했던 터라, 과연 내 이야기가 연극 속에 나올 라나 그러면 기분이 어떨라나 궁금한 마음으로 객 석에 앉아 있었다.

48

2019년 6월호


▲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관객으로 함께 했던 반올림 활동가, 자원활동가들이 무대에서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막상 내가 했던 수많은 말들 중 몇 문장들이 배우

라해 보면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도 있지 않을

의 입으로 표현되자, 그 느낌은 이루 표현할 수 없

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은하계 제국’처럼

이 복잡했다. 저 이야기가 그들에게 가 닿았구나,

광대하고 그런 우리가 우연히 만날 가능성은 거의

저 사람은 그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느꼈구나, 이

영(0)에 가깝지만, 어떤 방법을 통해 기적처럼 ‘랑

런 점은 나와 같고 저런 점은 나와 다르구나... 수

데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연극처럼 실험하고

많은 생각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사라지고난 뒤, 희

연습하다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미한 촉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강렬한 햇빛에 아 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누군가 손으로 눈 위에 그

이 연극 속에는 삼성 직업병 이야기와 함께 삼성

늘을 만들어주는 느낌. 휘청휘청 걸어가고 있을 때

에스디아이 해고자 이만신씨의 이야기가 흐른다.

누군가 양 옆에 가까이 걸으며 넘어져도 바닥에 쓰

삼성이 노동조합의 싹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치밀

러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느낌. 무덥던 한여름 농성

하고 비열하게 움직였는지, 이를 위해 삼성이 송두

장에 차가운 얼음물을 들고 온 사람의 땀냄새를 맡

리째 짓밟은 이만신씨의 청춘은 어떤 질감이었는

은 느낌.

지를 이야기한다. 그가 지금도 복직을 외치며 2천 5백여일이 되도록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는 현실도

지금의 자신과 끔찍한 일을 겪은 과거의 자신은

보여준다. 그의 아픔, 분노, 희망과 ‘랑데부’를 시

다르다. 하지만 찬찬히 기억을 더듬으면 그 다름

도해보지 않겠냐고, 연극은 넌지시 묻는다. 배우들

의 거리가 좁혀지고, 과거에 경험했던 아픔이 좀더

이 시도한 대로, 목요일마다 서초동 삼성 사옥 앞

생생해진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타인 사이의 거

에서 열리는 집회에 가서 이만신씨가 외치는 말을

리도 조금은 좁혀질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과거

따라해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를 이야기해보면서 가슴 속에 묻어둔 감정과 기억 을 소환한 것처럼, 타인의 이야기를 한 소절씩 따

공유정옥 회원. 반올림 자원활동가

문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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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 건강한 책방

“나, 조선소 노동자”를 읽어야할 이유 『나, 조선소 노동자』 ,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코난북스, 2019

크레인이 무너져 내린 것은 2017년 5월 1일, 노

“근로계약서는 K기업이랑 썼는데 실질적으로는 T물

동절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휴일이었지만 공기에

량팀 소속이라니요? 어떻게 저도 모르는 물량팀 소속

쫓기는 현장 하청업체와 물량팀 노동자들에게는

이 될 수 있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저는 T물량팀 소

언감생심. 그렇게 1,400명이 넘는 하청 노동자들이

속도 아니었어요. 거기에 또 새끼 물량팀이 있더라고

노동절 아침부터 거제 삼성중공업에 출근했다. 머

요. E라는 듣도 보도 못한 업체였어요.”

나먼 노르웨이의 바다에서 원유를 뽑아 올릴 해양 플랜트 마틴 링게 P블록 현장은 변함없이 굴러가고 있었다. 촛불 시민들이 부패한 정권을 끌어내렸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 8일 전이었지만, 조선

특별사법경찰관인가 하는 사람이 이야기했다는 ‘조선소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소속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어 일

소는 그대로였다. ‘은바가지(현장에 올 때 은색 안

하고 있었다. 위험은 일을 시작하는 고용 관계에서

전모를 쓴다고 해서 높은 분들을 이렇게 부른단다)’

부터 현장의 도처에 어디에나 있었다.

들은 건재했고, 하청 바가지 수백명은 고작 10분의 휴식시간 동안 한 칸의 간이화장실과 정수기, 재떨 이를 이용하기 위해 수십미터를 내려와야 하는 것 도 그대로였다. 크레인이 꺾이고 무너져 내린 것은 바로 그 쇳덩어리 구조물, 변함없는 현실 위에 올라

“클리닝을 하라 그랬어요. 클리닝하고 있는데 옆에 서 뭐가 푸식거려요. 용접을 하는 거예요… 제가 그때 신나 걸레를 비닐봉지 통으로 들고 있었거든요. 안에 다 신나를 부어가지고 걸레를 집어들고 첨벙첨벙하는 거예요. 거기에 용접 불꽃 튀면 큰일 나요.”

앉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던 노동자들의 휴게 공 간이었다. 그 억울하고 아득한 사연이 지면으로 옮 겨졌다. 노동자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사 고의 연원까지 짐작하고 남는다.

50 2019년 6월호

그야말로 “진짜 개판인” 현장이었지만 위험한 혼 재 작업은 용인되었다. “용접하믄 안 되는데 하니까 ‘예? 저도 지금 오더받


고 하는 건데’카는 거예요. 그거 뭐지? 종이… 아, 작

산재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업허가서. 작업허가서 있어? 카니까 자기도 작업허가

서는 첫째로 산재 자체가 일어나지 않게 막는 것이

서 있다는 거예요.”

고, 둘째로는 산재로 다친 몸과 마음을 생계의 걱정

배 나갈 일정이 다가오면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

없이 충분히 치료하고 치유할 제도를 마련하는 것

다. 실제로 불도 났었고, 용케 소화기로 조기 진압

이며(2차 예방), 마지막으로는 돌아가야 할 현장이

한 노동자에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닌 욕설과 더

불안을 잠재울 만큼 안전하다는 것을 보장하고 노

불어 ‘이번 일은 없었던 일로 그냥 덮겠다’는 이야

동자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복귀를 돕는 것이다

기였다.

(3차 예방). 노동자들의 구술로만 정리된 이야기는

“말로는 안전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납기일에 쫓긴다 싶으면 위에서 용접하고 밑에서는 페인트 바르고, 그 러다 사고 나면 일하는 너그들 책임이다 하고. 우리가

죽음에 이르는 산재로 인한 고통만이 아니라 산재 가 빚어지는 구조적인 원인과 해결을 위한 개입지 점, 그리고 책임의 문제로까지 나아간다.

페인트 바르려고 오는데 용접하고 있으면 작업자들끼

“처벌이 명확했으면 좋겠어요. 책임도 명확했으면

리 싸워요. 위에서 이렇게 지시를 내려놓고는… 탱크

좋겠어요. 피해자에게 ‘니 잘못이 아니야’ 이야기해줄

안에서 불나는 이유도 다 그거예요. 불이 왜 나는데.”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어요. 피해자는 있는데, 피해

폭발하고 떨어지고 무너지는 진짜 이유를, 허무한 죽음의 진짜 책임자를 노동자들은 낱낱이 알고 있 다. 무너진 것은 크레인만이 아니었다. 6명의 생명

자는 힘든데, 가해자는 아무 책임이 없잖아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이 돌아가야 할 현장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을 것이다.

과 소우주가 사라져 버렸고 수십 명의 육체와 생활 이 망가졌으며, 또 얼마인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

“짓눌리고, 부러지고, 갈라지고, 터지고, 잘려나간

한 많은 마음과 정신이 다쳤고 여전히 아파하고 있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 활자로 남기는 일은 “크레

다.

인에서 끊어진 육중한 와이어가 활선이 되어” 기록 자의 “몸과 마음 여기저기를 휘갈기는 것”같은 고

“용돈 2만원(일주일 치) 받아와서는... 6일 동안 담뱃

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남겨져

값도 안 돼요... 그렇게 빠닥빠닥 살아서 아파트 전세

야 했고, 그 역할을 해내 고야만 분들에게 먹먹한

로 살다가 내 거로 바꿨다고 자랑했는데, 뭐 해요. 죽

감사를 보낸다.

어 뿌는데, 쎄 빠지게 일하던 놈은 디져 뿌고 허무하 죠….” 하지만 쎄 빠지게 일하다 디져 뿌는 인생이 허무 해도 생계를 이어 가야하는 가장으로서 버거운 삶 의 무게는 지탱해야만 한다.

일상의 삶이 존중받는 만큼 고통도 죽음도 존중받 을 수 있다. 노동자들의 삶을 존중하는 것은 노동자 건강권과 그것을 지키기 위해 일터 내외에서의 행 동할 권리를 지지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경험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위해서는 일들의 연원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이다.

“그람 뭐 먹고 사노? 와이프한테는 뭐라고 이야기해 야 되노? 사고 나고 1년 동안 그 때가 제일 두렵고 힘 들었어요. 진짜 가슴이 철렁하드라구요. 산재 이런 거 는 생각도 못 하고 당장 뭐 먹고 살아야 되노? 이런 생

류현철 소장, 직업환경의학전문의

각밖에 안 들더라구요” 발칙 건강한 책방

51


이러쿵 저러쿵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삶을 꿈꾸며 하지 않고, 비용절감을 위해 노동 자의 안전은 뒷전인 이 세상은 그 야말로 충격적이었다. 노무사 합격을 하고 수습노무 사 모임인 ‘노동자의 벗(노벗)’ 활 동을 하면서 노동법 하나하나에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묻어 있다 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손배가압 류, 임금체불, 장시간근로, 고용 불안, 산업재해와 안전 등 이 시 대의 노동자가 일을 하면서 견뎌 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았다. 이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할 때 나의 취업희망 1순위는 기업 인사팀이었다. 법대출신도 상경계

종란 노무사님이 노벗교육에서 ‘반올림’에 대해

열 출신도 아닌 문과생이 지원할 수 있는 사무부

강의하셨던 날에도 그 젊은 청년들의 목숨을 앗

서 중 가장 ‘있어’보이는 부서였다. 예전에 썼던

아간 삼성의 뻔뻔함과 무책임함에 분노가 절로

자기소개서에 “지원한 부서에 지원하게 된 동기”

치밀었다.

를 쓰는 칸에 이렇게 적었었다. ‘직원들이 하루의

그래서였을까. 그날 노벗 운영진이었던 동기노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 만큼 그 직원들이 회

무사에게 반올림 농성장 지킴이를 하고 싶다고

사에서 행복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

이야기를 했다. 2016년 8월 정말 더웠던 여름날

을 하고 싶습니다.’ 내가 왜 취직에 실패했는지

동기노무사와 강남역 8번 출구 앞 농성장 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누워, 더위와 사투를 벌였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아침에 평생 해보지 않았던 선전전을 하며, 지나

그 때의 나는 기업이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얼

52

가는 사람들에게 선전물을 나눠주고 마이크를 잡

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몰랐고, 노동자들이 행

고 시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복은커녕 그저 인간다운 삶을 살기위해 고군분투

사람들이 아쉽기도 했고, 야속하기도 했다. 그리

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노동조합이 뭔지도

고 지난 날 그 무심한 사람 중 하나였던 내 자신

잘 몰랐으니 말 다한 셈이다). 최저임금조차 지급

에 대한 부끄러움도 들었다.

2019년 6월호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농성장에서의 경험이 내

예전에 직접 나갔던 특성화고 노동인권교육에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해준 이정표의 역할을 했

서 급성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을 당했던 분들의

던 것 같다. 그 이후 한노보연에서 산업안전보건

사례를 바탕으로 한 ebs 프로그램을 보여준 적이

법 세미나를 시작한다고 하여 덥석 신청을 했었

있었다. 그렇게 수다스럽게 떠들고 장난치던 학

고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오다가 작년 연말에

생들이 한 순간에 집중을 하면서 비용절감을 이

활동회원이 되었다.

유로 메탄올을 사용했던 기업을 향해 일제히 야 유를 퍼부었다. 학생들은 노동자들의 신뢰를 처

얼마 전에 산안법 세미나 후속모임이었던 안전

참하게 부수는 기업들의 만행을 이해하지 못했

법 검토모임도 마무리를 맺었고, 산업안전보건법

고, 노동자가 알아야할 권리를 궁금해 했다. 현재

국제비교팀 모임도 일단락을 맺었다. 산업안전보

하고 있는 청소년플랫폼이 구축된다면 많은 청소

건법이 최근에 개정되었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많

년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기에 후속으로 이루어질 대안법 모임에서 그 부 족함을 채울 수 있는 방안이 나올 수 있도록 치열

한노보연에서 활동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쉽지 않은 여정이라

같은 부분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문제의식

예상되지만 함께하는 회원분들이 계시니 의지하

을 공유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

며 열심히 따라가야 할 것 같다.

날 수 있었던 것이다. 회원님들과 함께라면 노동 자들이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조금 더 빨

최근에 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는 청소년

리 올 수 있을 거라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노동인권교육이다. 예전에 노동인권에 무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지금 청소 년들이 노동을 시작하기 전에 본인의 권리를 알 고, 사회에 만연하게 나타나 있는 비인권적인 노 동을 더 이상 세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관 심을 갖고 있다. 한노보연의 청소년플랫폼구축 연구모임에도 참여를 하고 있는데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하는 작업이라 열심히 구글번역기와 친 해져야 할 것 같다. 하하. 조은혜 회원, 돌꽃 노동법률사무소 공인노무사 이러쿵 저러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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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건동향

[19. 5. 22, 안전보건공단] 반도

대적으로 건강할 가능성이 높

에서 혈액암 발생과 사망 위험

체 제조업 노동자 역학조사 결과

기 때문에 반도체 제조업 노동

비가 높은 경향을 보였으며, 현

발표

자와 전체 노동자 집단을 비교

재보다 유해물질 노출 수준이

-반도체 제조업 노동자 혈액암

하는 것이 정확한 평가를 반영

높았던 2010년 이전 여성 입

발생 및 사망 위험비 높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자에게서 혈액암 발생 위험 비가 높았다는 점, 그리고 국내

이번 역학조사는 2007년 반도

역학조사 결과는 반도체 여성

반도체 제조업에 대한 다른 연

체 제조업 노동자들의 백혈병

근로자의 백혈병 발생 및 사

구들에서도 유사한 암의 증가

발생에 따라 2008년 반도체

망 위험비가 일반 국민에 비해

와 여성의 생식기계 건강 이상

제조업 사업장에 대한 역학조

서 1.19배, 전체 노동자에 비

이 보고되었다는 점을 들어 반

사를 실시한 이후 당시의 부족

해서 1.55배 높은 것으로 나타

도체 제조업의 작업환경이 발

한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났고, 사망 위험은 일반 국민

병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발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

대비 1.71배 전체 근로자 대비

표했습니다.

년간 암 발생 및 사망 위험비를

2.3배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추적 조사한 결과입니다.

비호지킨림프종의 경우에는 일

이에 따라서 안전보건공단에서

반국민 대비 1.71배, 전체 노

는 반도체 제조업 사업장에서

역학조사는 반도체 제조업 사

동자 대비 1.92배 발생 위험이

자율적인 안전 및 보건 활동이

업장 6개사 전·현직 노동자 약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사망 위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니터링

20만명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험은 일반국민 대비 2.52배,

하고 전자산업 안전·보건센터

2008년 역학조사와 다르게 이

전체 노동자 대비 3.68배 높은

를 설립하여 협력업체 및 중소

번 추적조사에서는 일반국민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업체를 포함하여 반도체 등 전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 대비

자산업에 대해 직무별 화학물

반도체 제조업 노동자의 암 발

안전보건공단은 20-24세 여성

질 노출 모니터링 시스템 등 위

생 및 사망 위험비도 비교하였

오퍼레이터에게서 혈액암 발생

험 관리 체계를 운영할 계획이

습니다. 그러한 이유는 노동자

위험비가 높았고, 클린룸 작업

라고 발표했습니다.

집단이 일반국민에 비해서 상

자인 오퍼레이터, 엔지니어 등

54 2019년 6월호


한편 이번 조사 결과에서는 혈

제대로 되지 않아 암의 원인을

적기 치료와 조기재활 활성화

액암 외에도 위암, 유방암, 신

찾지 못한 점을 지적했습니다.

를 통한 원활한 직업 복귀를 지

장암 및 희귀암도 발생 위험비

원하기 위해 공단이 임명한 의

가 높게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19. 05. 09, 근로복지공단] 산

안전보건공단은 반도체 노동자

재노동자 전문재활·직업복귀 서

들이 일반국민에 비해 상대적

비스 제공을 위한 산재관리의사

산재노동자가 의료기관에 방문

으로 암 검진을 받을 기회가 많

확대

하면 상담을 통해 업무상 재해

아서 발견이 많이 된 것이 아

-30개 의료기관 전문의 91명 산

여부를 확인하고 산재보험 제

닌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해석

재관리의사 추가 임명

도와 서비스 등을 안내하여 향

했습니다. 혈액암 외의 암 발생

사입니다.

후 치료계획과 의료상담이 이

영향에 대해 정확한 분석이 이

근로복지공단에서 올해 1월 전

루어집니다. 이에 따라서 산재

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책

문의 39명을 산재관리의사로

관리의사는 전문재활치료를 통

임한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 아

임명했으며 보다 많은 산재노

해 산재노동자의 신체기능을

니라 반도체 공장에 다른 위험

동자의 전문재활치료 및 직업

향상시키고, 원직장이나 새로

성은 없었는지 추가적인 조사

복귀 서비스 제공을 위해 권역

운 직업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

를 통해 명명백백히 밝혀야 할

별로 산재관리의사를 확대했

이 이루어지는 전 과정을 단계

것입니다.

습니다. 5월 9일에는 추가적으

별로 관리 및 지원하는 역할을

로 종합병원 이상 30개 의료기

수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반올림은 논평을 통해서

관 전문의 91명을 산재관리의

위험 작업들을 외주화하면서

사로 임명하여 총 130명이 산

올해 말까지 산재관리의사는

더 큰 위험에 노출되었을 협력

재관리의사로 활동하게 되었

300명까지 확대될 예정입니

업체 노동자들이 역학조사에

습니다.

다. 산재노동자들이 산재 과정

포함되지 못한 점, 1998년 이

에서 방치되지 않고 신체적, 정

전 입사자가 역학조사에 포함

산재관리의사는 산재노동자의

신적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

되지 않은 점, 반도체 공장의

초기 치료단계부터 직업복귀

도록 실질적인 지원과 재활치

작업 환경과 화학물질 조사가

에 이르는 전 과정에 개입하여

료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안전보건동향

55


한노보연 이모저모

이주민 구술생애사 ‘담’프로젝트 두번째 북콘서트 열려 지난 5월 23일 목요일 저녁7시, 창 룡도서관 강의실에서 <담 허문자리 움트는 환대의 꽃> ‘담’프로젝트 두 번째 북콘서트가 진행됐습니다. 경 기이주공대위 이주민 구술생애사 ‘담’프로젝트는 한국에 살아가는 다 양한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오롯이 전달하고자 책으로 엮어냈습니다. 이번 책은 ‘공간과 장소’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연구소로 연락주세요!

산안법 하위법령 개정투쟁 농성장에 연 대 플랑 걸어 김용균 님의 죽음을 비롯 그동안 수 많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계기로 산 안법 전부개정, 뒤 이어 하위법령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입법 예고 된 하위법령은 한 해 2천여명 이 사망하는 현실을 바꾸기에 턱없 이 부족합니다.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하는 산안법을 쟁취하기 위해 지난 5월 20일부터 민주노총이 농성에 돌입했습니다. 한노보연도 이 투쟁에 적 극 동참하고자 농성장에 만평 연대 플랑을 게시했습니다. 계속 될 투쟁에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청소년 노동인권활동가를 위한 노동안전보건 워크숍> 열려 지난 5월 28일, 29일 이틀간 청소 년 노동인권활동가를 위한 노동안 전보건 워크숍 ‘똑똑, 노동안전보 건교육 하실래요?’가 청소년노동 인권네트워크, 한국노동안전보건 연구소 주관으로 열렸습니다. 노 동인권교육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 에서 ‘노동안전보건’이란 주제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관심을 갖고 함께 하고자 하는 청소년 노동인권활동가들과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향후 심화 과정을 개설해 더 많 은 분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56

201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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