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K-방역
노동자가 만드는
상공인들의 노동을 찾아서 2인 1조 근무가 만든 안전한 일터 일터를 살아내는 말들, 『임계장 이야기』 통권 195호┃2020. 05
발행인 최민 발행기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 영우, 경희, 기형, 지안, 혜인, 현석, 채은, 한소, 세은, 승종, 지나 만평 박원종 편집·표지 언제나봄그대곁에 인쇄 동광문화사 발송 산재공동체 발행일 2020.05.08 전화 서울 02-324-8633, 수원 031-247-8633, 부산 051-816-8633 팩스 서울 02-324-8632, 수원 031-247-8632 이메일 kilshlabor@gmail.com 홈페이지 www.klish.or.kr
독자에게
사회적 불평등을 드러낸 코로나19, K-방역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금방 끝날 것으로 예상되었던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에서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 퍼져버렸으며 종료시점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한국은 현재 코
로나 바이러스의 신규 발생자수가 하루 10명 안팎으로 잠잠한 상태입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는 ‘K-방역’의 성공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방역의 성과 이면에는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새벽 배송
에 투입됐던 ‘쿠팡맨’이 사회적 거리를 메우기 위한 과도한 노동으로 지난 3월 숨졌습 니다. 그리고 경북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 환자를 돌보던 간병인이 환자가 코로
나에 감염된 사실을 모른 채 시급 4200원을 받으며 6일간 간병하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좁은 공간에서 일하며 집단감염 위험에 노출되었던 구로 콜센터 노동자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코로나바이러스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불 안정한 노동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역사적으로 역병은 늘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했습니다. 흑사병에 유럽 인구 20%가
쓰러졌지만, 사망한 인구 대부분은 하층민이었다고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노인 빈곤층 등 사회적 불평등으로 차별받는 모든 이들에게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절실합니다. 나아가 역병의 창궐은 해당 사회의 불평등을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K-방역’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
한 감염을 예방하는 것만으로 제한될 수 없습니다. 코로나19로 드러난 불안정한 노동환 경을 바꿔내는 일까지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 선전위원장
일터 1
사진으로 보는 세상
SPANISH FLU & COVID 19 출처: National Archives / Getty Images 04 2
노동자가 만드는
특집 04
문화로 읽는 노동
코로나19와 K-방역
39
상공인들의 노동을 찾아서 : 청계천 사람들의 노동을 기록한 작가들의 사진
■코로나19가 촉발한 물음, 노동안전보건의 뉴노멀, ‘K-산재예방’은 가능한가?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42
■코로나 이후, 재난자본주의를 경계한다 ■평등한 생존 : 'K-방역'이 말하지 않은 것
코로나19 대응시 근로자건강센터가 노동자 건강을 지켜줄 수 있을까?
지금 지역에서는 14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
롯데케미칼 폭발사고가 던지는 질문들
44
일터에서 자존감 살리는 방법, 평등한 조직문화 만들기
일터 정신질환 짚어보기 16 노동자 건강 상식
정신질환과 자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47
항문질환
연구 리포트
19
발칙 건강한 책방
노동시간에 관한 사회학 연구 동향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
조직의 변화가 정말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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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쿵저러쿵
52
일터를 살아내는 말들, 『임계장 이야기』
노동시간 제한이 부재한 과로사회, 일본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50
26
안전보건동향
54
한노보연 이모저모
56
뉴미디어 산업은 MCU 히어로처럼 멋지기만 할까?
현장의 목소리
30
2인 1조 근무가 만든 안전한 일터
백아흔다섯번째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자 건강권 쟁취, 조금 더 담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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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일터 3
코로나19와 K-방역
특집
코로나19가 촉발한 물음, 노동안전보건의 뉴노멀, ‘K-산재예방’은 가능한가? 박기형 상임활동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리 사회 불안정 노동
코로나19 이후 도래할 세계의 과제, 가치의
의 면면들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사회적(물리
재정립
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면서, 체계적인 방역 시
그러나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
스템을 가동했다. 하지만 거리두기가 삶에서 확
다는 사람들도 많다. 우선 세계 전체 차원에서
보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다. 확진자들의 동
보면, 여전히 코로나19 사태는 심각한 수준이
선이 한때 이슈가 되었다. 장거리 녹즙 배달을
다. 계속해서 확진자 증가 추세가 이어지며, 미
하는 구로 콜센터 직원이나 슈퍼마켓 배송과 음
국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는 사망자 증가
식점 서빙 등 투잡을 뛰던 이들은 생계를 유지
추세 또한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욱
하기 위해 ‘잠시 멈춤’을 할 수 없었다. 직장에
이 프랑스와 같이 G20에 속하는 국가들에서조
서 거리두기를 하자며 장려한 재택근무 및 유
차 마스크 지급 등 방역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급 휴직, 유급 돌봄 휴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하지 않아 혼란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나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사업장의 노동자들 에게는 먼발치의 얘기였다. 더욱이 물류·운송이
이는 100여 년 전인 1918년에서 1920년 사
늘어남에 따라 오히려 노동강도가 증가하는 곳
이에 발병했던 스페인 독감과 가장 큰 차이로
들이 생겨났고, 심지어 코로나19 사태 초기 급
지적된다. 스페인 독감의 경우엔 흑사병처럼
작스러운 배송량 증가에 과로사한 쿠팡맨도 있
엄청난 사망자를 내고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
었다. 이렇게 코로나19는 늘 우리 사회에 존재
등 사회변화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상
했던 불안정 노동의 문제를 조금은 다른 방식으
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에서 피해가 컸다. 하
로 드러냈다. 그럼에도 강력한 방역 조치를 취
지만 코로나19는 한 사회 내에서 불안정 노동
한 결과, 지난 5월 6일 다행히도 사회적(물리적)
을 드러낸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과 유럽 등
거리두기의 기간을 끝내고, 생활방역 체계로 전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에 타격을 가
환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여전히 감염 및 확산
했다. 그로 인해 곳곳에서 국제 질서의 변동, 나
의 위험이 존재하지만, 일상으로의 복귀, 즉 일
아가 이 세계를 오랫동안 떠받치던 사회 시스
상의 회복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템 자체의 변화를 전망하거나 요구하는 사람들
4
노동자가 만드는
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로 유지되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기존 시스템이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는 위기의
이에 더해,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얘기하는
식, 이대로는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더욱더 강
사람들은 불확실성의 증대를 지적하기도 한다.
하게 심어주었다. 결국 우리는 사회적 가치 자
이는 정부의 재정투입, 정부 지출 증대와 관련
체를 문제 삼게 되었고, 가치를 재정립하지 않
한 논쟁에서 두드러졌다. 이전 경제 시스템에
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였다.
서는 인과성을 중시했다. 일정한 제약 조건에 서 어떤 변수가 달라질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 지 예측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어떤 정책을
노동안전보건에서의 (뉴)노멀
어느 수준에서 시행할지 정할 수 있었다. 예컨
코로나19로 촉발된 이러한 뉴노멀에 대한
대, 정부 지출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부터, 정부
요구는 노동안전보건영역에서도 유효하다. 혹
지출의 수준을 일정하게 예측해서 제한할 수
자는 한 번이라도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노멀’
있었던 것이다. 실업률, 인플레이션율 등의 경
인 적이 있었냐고 되묻기도 했다. 노동안전보
제 지표를 놓고서 수많은 데이터를 활용해 지
건 영역에서는 산업재해가 일상이었다. 매일같
표의 변화를 예측·통제하는 등의 경제관리 정
이 7명이 출근했다가 퇴근하지 못했다. 늘 삶의
책을 펼칠 수 있었다.
위협을 감수하고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 다. 누군가 한국의 일터에서 정상적인 것은 무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말미암아 경제 시
엇인지 묻는다면,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하지 않
스템의 변화가 더는 계산불가능한 상황에 이르
을까. 만약 정상적인 것이 항상 일어나는 어떤
렀다는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위기를 일
것을 가리킨다면, 만연한 죽음이라고 답했을
으킬 경제적 위험들이 무엇인지, 그것이 언제
것이고, 만약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규범적 상태
어디서 실현될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한 마디
를 의미한다면, 한 번도 정상적이었던 적은 없
로 계산불가능한 위험, 즉 불확실성이 증대했
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일상으
다. 이로 인해 이제는 주식시장의 주식가격, 외
로의 복귀, 정상으로의 회복이 무슨 의미가 있
환시장의 환율 변동 등 경제지표를 적정 수준
단 말인가. 이미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일상 곳
으로 관리하기가 점차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곳에 잠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언제나
변화는 경제 위기에의 대처 방식 자체를 변경
위험은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 등
할 것을 요청한다.
차별받는 이들에게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었 다.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이 이러한 문제를
이 비판에 따르면, 어느 수준으로 위험을
더욱 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내 주었을 뿐이다.
관리할 것인가, 어떤 관리 수단이 적합한가 하 는 질문은 의미 없어질 것이다. 이제는 불확실
그렇다. 산업재해는 언제나 극적인 방식으
한 위험에 맞서 무엇을 가장 우선해서 지켜야
로만 주목받았다. 사망사고라는 형태를 띨 때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 무엇이 사회
야 비로소 회자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사람들
적으로 가치 있는가라는 질문이 대두된다. 물
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더구나 산재사망사고
론 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시스템의
는 작업자 개인의 실수로, 안전보건관리자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현장 책임자 몇몇의 책임으로 축소되거나 심지
그럼에도 기존의 경제 시스템을 구성 및 운영
어는 은폐되었다. 산재사망사고의 원인은 제대
해온 논리, 즉 리스크 관리의 관점은 지속적으
로 규명되지 않았고, 조사하더라도 물리적 요
일터 5
인, 직접적 원인에만 집중하는 한계를 보였다.
비용이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위험의 외주화, 장시간 노동 등과 같은 일터의 구조적 위험은 그대로 남겨졌다. 안전설비 미
결국 현장 관리·감독이 부실했기 때문만이
설치와 같은 물리적 예방책조차 제대로 시행되
아니다. 물류창고 건설 현장도 다른 건설 현장
지 않는 곳이 허다했다.
과 마찬가지로, 최소 비용으로 빠른 기간 내에 공사를 완료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기
그렇다면, 코로나19와 ‘K-방역’이 노동안전
때문이다. 공사 기간 연장, 해당 자재의 사용금
보건 의제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참으로
지, 다른 물품으로의 대체 등이 현실적으로 어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노동자들은 죽음의 일터
렵다는 걸 이유로 위험을 눈감아줬기 때문이
라는 ‘일상적 재난’ 상황에 처해있다. 코로나19
다. 그래도 그냥 눈감아준 것은 아니다. 위험을
에 대한 한국 정부의 신속한 대응, 체계적인 검
완전히 제거할 수 없으니, 위험 정도와 사고 발
사·조사는 다른 국가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생 가능성을 계산해서 관리하면 된다고 보았
그런데 왜 철저한 방역조치만큼 산업재해에 대
다. 그러니 관리부실이 먼저 지적되는 것이다.
한 철저한 예방조치가 취해지지 않는가? 위험
하지만 정말 관리만 잘하면 되는 문제인가? 코
으로부터의 거리두기와 잠시 멈춤은 가능하면
로나19 이후, 위험은 예측하고 관리할 수 없는
서, 왜 일터에서의 작업중지는 이뤄지지 않는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사회에서 위험은 복잡
가? 재난에 맞선 국가와 정부의 책임 있는 행동
다단한 관계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위험은
은 왜 일터의 문턱 앞에서, 노동자들의 목숨 앞
여러 요인의 복합적 작용을 통해 실현된다. 그
에서 늘 멈추는 것일까? ‘K-산재예방’은 정녕
에 따라 참사·사고·위기의 원인을 특정하기가
불가능한가?
점차 어려워진다. 이럴 때 위험을 예방하는 우 리의 자세는 특정 원인을 통제하는 것만으로
생활방역으로의 전환을 앞둔 지난 5월 2일,
충분하지 않다.
이천 물류센터 건설 현장에서 화재로 인해 38 명 노동자가 사망했다.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이천 물류센터에서 불이 난 것은 폴리우레
중이지만, 계속해서 비교되는 또 다른 참사가
탄폼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가 화기 작업으로
있다. 바로 2008년 이천 물류센터 화재다. 동일
인해 폭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리적 원인
한 지역이면서, 작업 현장 상황과 40명의 노동
을 밝혔다고 해도, 왜 동일한 사고가 반복되었
자가 사망한 점 모두 유사했다. 당시에도 폴리
는지 답할 순 없다. 나아가 이들의 죽음에 대한
우레탄폼 작업에 따른 폭발·화재 위험과 샌드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이러한 죽음이 다시는
위치 패널로 인한 상황 악화가 지적되었다. 법
반복되지 않기 위한 대책을 내놓을 수 없다. 위
제도 상으로도 폴리우레탄폼 작업과 용접·용단
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관점을 바꿔야 한
등 화기 작업을 분리해서 진행할 것, 부득이할
다. 어떤 위험을 어느 수준으로 어떻게 예측·통
시 비산 방지 커버 등 안전조치를 취할 것을 규
제할 것인가라는 위험관리의 질문에서 벗어나
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어떤 변
야 한다. 그 질문은 이윤과 안전을, 삶을 저울질
화도, 어떤 예방 조치도 없었다. 공정 분리는 전
하는 것이다. 이제는 무엇을 사회적 가치로 삼
혀 지켜지지 않았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
을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 생명과 안전을 가치
해서였다. 샌드위치 패널이 타면서 뿜어내는
있는 것으로 내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사회를
유독가스를 예방하기 위해서 샌드위치 패널의
재구성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노동안전보건
사용금지 등의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자재
의 (뉴)노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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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코로나19와 K-방역
특집
코로나 이후, 재난자본주의를 경계한다
최민 상임활동가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은 「문재인
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정부 코로나19 대응 비판」을 통해, 정부가 천문
경영계 건의”,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학적 규모의 기업지원 조치를 발표했지만, 그
경제계 긴급제언”을 통해, 일상 해고를 포함한
에 비해 고용·실업 및 노동자 지원대책은 매우
노동유연화와 법인세·소득세·상속세 인하 등
부실하다고 비판했다. 금융시장 안정화에 100
기업 비용 축소, 규제 완화 등을 요구했다. 코로
조원 이상, 코로나19 피해 수출입해외진출기업
나 19를 핑계로 대고 있지만, 사실상 재계가 지
에 대한 긴급 금융지원 20조, 36조 이상의 수
속적으로 요구하던 규제완화 내용이다. 경총과
출활력 제고 방안, 2.2조 원 규모의 스타트업·
전경련의 제안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어, 전
벤처 지원방안이 발표됐다. 이에 비해, 고용·실
경련의 경제계 긴급제언 중 노동자 건강 및 안
업 및 노동자 지원대책에 새롭게 증액된 예산
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조항들을 살펴보면
규모는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인 재난지원금(14
다음과 같다. (다음 장)
조 가량)을 제외하면 1조 5,783억 원에 불과하 다.1) 게다가 고용충격에 대비한 대책도 기존의 고용유지지원금과 일자리안정자금을 확대하
코로나19 빙자한 노동시간 연장 시도
는 방식이어서, 해당 제도의 문제점이 그대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노동시간과 관련
반복된다. 예를 들어, 고용보험 미가입자, 특수
된 규제 완화 요구가 대거 들어있다는 점이다.
고용 노동자,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2018년 주 52시간까지로 노동시간을 제한하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법적 혹은
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있었지만, 300인 이상
실질적으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남
사업장에만 먼저 시행됐고, 겨우 올해부터 50
아 있게 되는 것이다.
인 이상 사업장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런 데 이 노동시간 제한의 예외가 되는 특별연장
그런데도 경총과 전경련은 지난 3월 말 “경
근로 인가 대상을 확대하라는 요구가 포함돼 있다. 그리고 노동부 장관은 코로나19와 관련
1) 민주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 2020-06, 문재인정부 코로나19 대응 비판, 4월 13일
한 지원 때문에 바빠진 금융기관의 경우 특별
일터 7
전경련의 요구
진행 상황 법 적용 대상 업종 확대, 자금 지원 강화 방안 검토 중 기업활력제고 특별법 적용대상 모든 업종으로 확대 (4.11 서울경제신문 보도) 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적용을 한시적으로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화평법) 상 완화하고 화학물질 배출권 보고 및 제출 의무를 유예 화학물질 등록기간 1년씩 유예 (4.8, 환경부) 금융기관, 특별연장근로 인가 허용 주 52시간 근로 예외 확대 (4.6 고용노동부 장관 발표) 탄력적 근로시간제도 최대 단위기간 연장 (3개월 → 1년) 대형마트 의무휴업 한시적(1~3년) 폐지 안동시, 대형마트 의무 휴업 한시 철폐 추진했으나 부결 화물차 안전운임제도 유예기간 연장 (코로나 사태 종료시까지) 규제당국의 기업대상 행정조사 한시적 1년 유예 ▲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긴급 제언(2020.03.25). 출처: 전경련
연장근로 인가를 빠르게 추진해주겠다고 발표
이후의 세상은 아마도 과로와 실업이 공존하
했다.
는, 일자리 때문에 과로도 감지덕지하는, 그래 서 노동시간 제한이 필요 없는 사회인 것 같다.
정부는 지난해 말,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특 별연장근로가 가능한 사유를 대폭 늘릴 수 있 게 준비해두었다. 원래 인가 대상이던 ‘자연재
안전도 상생도 뒷전으로
해,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의 수습’과 같은
그 외에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폐지하라
제한적인 경우뿐 아니라, ‘통상적인 경우에 비
는 요구나 화물차 안전운임제도 유예기간 연장
해 업무량이 대폭 증가한 경우로서 이를 단기
요구 역시 해당 산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간 내에 처리하지 않으면 사업에 중대한 지장
늘리고, 노동환경을 악화시키게 된다. 대형마트
이 초래되거나 손해가 발생되는 경우’까지 포
의무휴업일 지정의 주요 근거는 소상공인 살리
함시켜놓았던 것이다. 이 개정 내용이 코로나
기였지만, 그 덕에 마트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국면에서 방역업체, 마스크 생산 업체로 적용
도 단축되었다. 특히 남들 쉴 때 쉬는 ‘사회적
되더니, 이제 금융기관까지 확대되려는 것이다.
휴일’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인간다운 삶을 위 해, 필수적인 업무가 아닌 다음에야 불필요한
재계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연장
야간 노동, 휴일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주52시간으로 노동시
측면에서의 작은 성과를 없던 것으로 하자는
간 연장이 제한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요구해
주장이다. 유통업계에서는 대형마트가 더 이상
오던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 기간 동안에는
유통업계의 강자가 아니라고 하지만, 코로나19
주당 최대 64시간까지 일할 수 있는데, 그 단위
로 대형마트의 온라인 매장 매출액이 오히려
기간이 늘어나면 연달아 64시간까지 일하는
증가했다. 일부 유통재벌만의 욕심은 아닌 것
기간도 늘어난다. 단위기간이 6개월만 돼도, 3
이, 안동시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한시 철폐
개월 연속 주당 64시간 일할 수 있어 뇌심혈관
가 추진되기도 했다. 생필품 품귀 현상을 막는
질환이나 정신질환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 특
다는 명분이었다. 결국 부결되었지만, 논의가
별연장근로 인가 확대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
진행되는 동안 유통업계와 경제지들은 안동시
위기간 연장 요구는 모두 노동시간 제한을 무
에서 규제가 풀리면 다른 지자체까지 확대되기
력화시키려는 시도다. 자본이 꿈꾸는 코로나
를 고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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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자본의 공격은 2020년 1월 1일부터 시작된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에도 닿았다. 안전운임
회로 규제완화의 ‘뉴 노멀’을 만들고 싶은 모양 이다.
제는 낮은 운임으로 인해 과로, 과속, 과적의 위 험에 내몰리는 화물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
어떤 사회로의 회복을 요구할 것인가?
선하기 위해 제안됐다. 화물노동자가 지급받는
이런 기업들의 요구에 정부가 적극 호응하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하고 지키지 않을 시 과
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노동부에서 노
태료를 부과하는 제도다. 화물노동자들의 과로,
동시간 제한을 완화하고, 환경부는 화학물질
과속, 과적으로 인한 사고 발생이나 도로 손상
관리 책임을 느슨하게 해 준다. 기업활력제고
등 사회적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재
특별법 적용대상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라는 요
시행되는 안전운임제는 3년 한시적으로 전체
구에, 정부가 법 개정을 고민하고 있다는 기사
화물노동자 40만 명 중 6.5%에 해당하는 수출
도 나왔다. 원샷법이라고 불리는 기업활력제고
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만 적용되고 있을
특별법은 기업 인수합병을 쉽게 하는 법인데,
뿐이다. 적용대상이 훨씬 넓어져야 한다는 서
정부 스스로도 이 법에 따라 사업 재편을 위한
명 운동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2월까지였던 유
기업 인수합병이 활발해지면 중장년층 실직자
예 기간을 코로나 사태 종료 때까지 연장하자
들이 양산될 수 있다고 말해왔다. 한국판 재난
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펼쳐질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계기로 2013년 제정
전쟁, 자연재해 등과 같은 재난이 사회를 덮
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
쳐,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공포에 빠져 있을 때,
하 화평법)도, 재계가 무슨 일만 있으면 완화
자본이 즉각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높이기 위
와 유예를 요구해왔다. 이번에도 역시 화학물
한 약탈 행위를 재난자본주의라 한다. 97년 외
질 등록 기간을 1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다. 환
환위기도 한 예다. 국가 부도라는 초유의 사태
경운동연합 등은 이에 대해 “올해 들어서도 서
로 ‘쇼크’를 받은 한국은, “개방하고 민영화해
산 롯데케미칼 폭발사고 등 전국 곳곳의 화학
야 국가 부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신자유주
물질을 다루는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있고
의를 ‘쇼크 독트린’으로 받아들인다. 외환위기
여전히 노동자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위험에
이후 비정규직 확대, 상시적 구조조정과 불안
노출되고 있는 상황”인데, 가당찮은 요구라고
정 고용이 한국사회의 ‘정상’이 되었다. 구조조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의 생각은 달랐다. 4월 8
정 후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높아졌
일 열린 제4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환경부는 화
다. 1998년 크게 증가한 자살률은 이후로 20년
학물질관리법상, 화평법상 일부 조치를 유예하
째 떨어지지 않고 있다.
거나 완화해주었다. 내년 12월까지 한시적으로 화관법상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인허가 패스
지금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로 인한 감염자
트트랙 품목을 늘리고, 화평법상 연 1톤 미만으
수, 재난지원금만 바라보다 지난 과오를 되풀이
로 신규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기업이 환경
할 수 있다. 경기활력 제고를 앞세운 규제 완화,
부에 제출해야 했던 시험자료 제출생략 품목을
일자리를 볼모로 한 노동권 후퇴, 노동관계법
크게 확대해주는 것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개악이 슬금슬금 진행되고 있다. 고통분담이냐
폐지 요구나 안전운임제 유예 연장, 화평법 완
노동자 사이의 연대냐 또 기업 살리기냐 고용
화 등은 모두 안전과 상생은 뒷전으로 하고 싶
유지이냐, 어떤 기조로 이 시기를 넘어서느냐에
던 기업들의 속내를 보여준다. 재난 상황을 기
따라 앞으로 한국사회가 마주할 20년이 달라질 것이다. 일터 9
코로나19와 K-방역
특집
평등한 생존 : ‘K-방역’이 말하지 않은 것
전주희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앞으로의 세상은 코로나 전(BC:Before
문제 이전에 정보 기술과 이러한 활용을 둘러
Corona)과 후(AC:After Corona)로 규정지어질
싼 사회적 합의의 문제였다. 그러니까 한국의
것’이란 말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 코로나19는
질병관리본부는 개인정보의 유출이 일반화된
정치, 경제에서 일상적 삶의 풍경까지 전지구
한국사회에서 개인정보를 국가가 ‘위기상황’에
적 차원에서 우리 모두 공동의 시간대를 경험
서 취합하고 사회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곧 민
하게 만들고 있다. 집, 학교, 도시, 국경 등 울타
주주의적 방역이라고 간주할 수 있었던 조건에
리가 있는 곳들은 봉쇄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서 활동할 수 있었다.
직접적인 이동이 제한되었지만, 반대로 그 빗 장을 자유롭게 넘고 이동하고 교통하는 것은 바이러스와 디지털화된 정보들이다.
코로나19와 N번방은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정보가 어떤 경로를 통해 자본화되며, 권력이 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들이다. 동시에 개인정보를 둘러싼 권리의 문제가 복잡
국가의 통제인가, 보살핌인가
할 뿐만 아니라, 코로나를 통과하면서 변화하
한국사회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한
고 있다는 것 역시 보여준다.
국인들만의 이슈가 아니었던 것처럼, 코로나 정국 와중에 일어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위
한국사회에서 가뜩이나 ‘사생활 침해’가 젊
시한 디지털 성폭력은 디지털화된 정보의 불법
은 여자들의 깐깐함 정도로 치부되는 상황에서
적, 탈법적 활용이 일반화되고 암묵적으로 용
‘K-방역’은 개인의 권리보다는 생명의 안전이
인된 사회에서 개인정보를 활용한 성착취가 어
우선한다는 광범위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것
떤 형태로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극단적 사
은 적어도 두 가지의 권리를 둘러싼 쟁점을 낳
례일 뿐만 아니라, 이미 ‘초국적’인 사안이라는
는다. 하나는 권리의 주체가 누구인가의 문제
점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다. 지금까지 권리는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 되었다. 근대사회 이후 ‘시민’의 권리는 재산권
한편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은 의료기술의
10
노동자가 만드는
을 기본으로 한다. 개인의 권리 역시 ‘나’에게
귀속된 것이었다. 하지만 권리는 개인적인 것
지구적인 네트워크에 대한 진보적인 믿음이다.
을 넘어 상호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 권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해진 만큼, 연결된 만큼
리로 환원될 수 없는 집단적인 권리들이 존재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종 코로나와 같
한다. 가령 노동권이 그렇다.
은 재난을 전쟁에 비유하곤 하지만, 재난이 전 쟁과 다른 점은 국가의 역할에 있다. 즉 ‘폭력의
감염을 둘러싼 감각은 모두 다르다. 어떤 사
주체’냐 ‘보살핌의 주체’냐의 차이다. 물론 감
람은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어떤 사람은 교통
염병 확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고에 걸릴 확률과 비교하며 일상의 위험으로
면, 근대 국가가 자연에 가한 자본주의적 침략
치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사회적
과 약탈이 지목될 수 있지만, 이것이 과연 국가
압력이 모두에게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강제했
만의 문제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다. 사회적 압력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했다. ‘내가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곧 타인과 공동
아무튼, ‘국가 대 개인’이라는 대립구도에서
체의 안전’이라는 것, 또 하나는 ‘타인에게 마스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존재
크를 강제하는 것이 곧 나의 안전을 보장한다
라는 오랜 통념이 해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는 것’이다.
권리를 둘러싼 투쟁의 장소가 다름 아닌 국가 안이라는 점이다. 권리는 국가에 대항하는, 국
미세먼지에 대한 대응으로 ‘마스크’는 위험
가의 바깥에 존재하는 권리가 아니다. 고용보
의 개인화라는 맥락에서 비판받았다. 미세먼지
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 시설에서 격
를 감축하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 노력을 개인
리된 무연고자들, 이주노동자들처럼 국가에서
의 마스크 착용으로 환원하면서 마치 개인이
배제된 자들이 행사하는 권리조차 늘 국가 안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을 강화했다는 점
에서 보장된 권리를 근거로 행사된다. 즉 이동
에서 그렇다. 반면 코로나 시기의 마스크는 ‘공
권, 거주권, 노동권, 생존권 등은 국가에 새겨
적 마스크’라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공동의 안
진, 헌법이 보장한 권리이지만, 이들 권리가 불
전을 위한 상호간의 윤리적 약속이 되었다. 이
평등하게 적용되도록, 나아가 무권리의 상태로
러한 집단적인 경험은 권리를 둘러싼 감수성을
배제하도록 구조화된 것이 국가이다. 따라서
변화시켰다. 그런 한에서 ‘전자팔찌’ 논란 등으
국가를 둘러싼 권력투쟁은 국가에 대항해서가
로 드러난 정보인권의 문제가 자리한다. 개인
아니라 이러한 불평등의 구조를 평등의 구조로
정보의 문제이든, 확진자의 지나친 동선 공개
전환하는 것이다.
의 문제이든 이것이 ‘프라이버시권’이라는 맥 락에서 주장된 개인의 권리는 코로나 정국에서
그러므로 코로나 정국에서 권리를 둘러싼
사회적으로 설득되지 못했다. 향후 권리는 개
쟁점은 개인정보 보호냐, 생명의 안전이냐의
인이 아니라 집단적인 것이라는 차원에서 이해
문제, 프라이버시권과 안전권의 문제가 아니라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한에서 개인정보나 사
방역과 보살핌, 생명의 보호를 둘러싼 조치들
생활 침해의 문제 역시 집단적이고 상호 교통
이 불평등한 조건 위에서 적용되고 있는가, 아
하는 권리들인 한에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니면 평등의 조건들이 새롭게 창출되는가의 여 부다. 그리고 그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켰다’라
다른 하나는 이러한 권리들이 국가를 매개 하여 작동하고 조절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
는 성공적인 K-방역에서 ‘누가 죽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나로 인해 깨지고 있는 환상 가운데 하나는 전
일터 11
생명이냐, 생존이냐 : 문재인 정부의 통치성
고 본다’라는 주장이 정당화되려면, 살릴 수 있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코로나에 취약
는 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어
하다’라는 것만큼 탈정치화된 진술이 있을까?
야 한다. 생존권은 불평등한 생존 조건에 대한
일반화된 노인에 대한 혐오가 코로나 시기 의
평등한 생존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생존권의
학적인 진술과 겹쳐지면서, 코로나 시기에 빈
기본축이 바로 서려면, ‘100% 재난수당’이라
곤하고 불우한 노인들은 자가격리인지, 사회적
는 임시적, 간헐적 수혈 이전에 노동권의 강화
감금인지 모를 상태에 놓였다. 국가의 안전문
및 확대가 근본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
자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반복적인
론 최근 고용 대책들이 속속 제출되고 있다. 하
‘염려’의 말들에 의해서. 취약한 신체를 가진 노
지만 핵심은 재정 규모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
인들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이 사회의 안전을 위
가 코로나 이전부터 지속해서 후퇴했던 노동정
해 격리되었다.
책의 기조 변화다. 동시에 IMF위기 대응에 대 한 노동계 내부의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신
우리 모두 기꺼이 격리를 감수했다고 항변
자유주의에 반대한다면서도 노동의 분할과 배
할 수 있지만, 격리를 버틸 수 있는 경제적, 사
제에 대항하는 실천, 즉 평등의 실현을 얼마나
회적 자원과 정보력이 현격히 다르다는 것 또
구체화시켰는가?
한 사실이다. 사회적 격리를 못 견뎌 하는 것은 혈기왕성한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사회 적으로 고립된 사람들, 신체적일 뿐만 아니라
평등한 생존을 위한 노동권의 재구성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코로나
미국 클린턴 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냈
와중에 죽었거나, 죽고 있다. 생명이 유지된다
던 로버트 라이시 교수는 코로나19 사회에 새
고 해서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로운 4개 계급이 출현했다고 분석했다. 첫 번 째 계급은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The
코로나 시기에 생명에 대한 보건의료적 조
Remotes)들이다. 두 번째 계급은 ‘필수적 일
치로 인한 ‘생명권’과 사회적인 삶의 영위를 의
을 해내는 노동자’(The Essentials)로 의사·간
미하는 ‘생존권’이 확연하게 구분되었고, 국가
호사, 재택 간호·육아 노동자, 농장 노동자, 음
는 생명권에 대한 선별적 조치를 우선했다. ‘해
식 배달(공급)자, 약국 직원 등이다. 세 번째 계
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로 상징되는 생존권
급은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The Unpaid)
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조치는 코로나 이전과
들 소매점·식당 등에서 일하거나 제조업체 직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살게 하고, 죽게 내버
원들이고, 마지막 계급은 ‘잊혀진 노동자’(The
려 둔다’라는 차원에서 생명은 보장하되 생존
Forgotten)들로 미국인 대부분이 볼 수 없는 곳,
은 각자도생의 몫으로 여전히 남겨두는 것, 기
이를테면 감옥이나 이민자 수용소, 이주민 농
업의 생존이 노동자의 생존보다 우선해야 한다
장 노동자 캠프, 아메리칸 원주민 보호구역, 노
고 주장하는 것 모두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정
숙인 시설 등에 있는 사람들이다. 라이시 교수
국을 경유하면서 구축한 통치성의 본질이다.
는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코로나19로 인해 생존이 위태로운 계급들
앞서 말했듯이, 권리는 집단적이고 상호적
이라고 말한다. 노동 내부의 분절화와 불평등
일 뿐만 아니라 분할될 수 없다. 생존권이 보장
이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심화하고 있으며 이
되지 않는 생명권이란 기껏해야 생명을 국가통
는 노동권에 대한 집합적인 권리행사가 더욱
치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불과하다. ‘우선 살리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이시 교수의 분석은 날카롭지만, 다분히 ‘미국적’이다.
12
노동자가 만드는
▲ 출처: pixabay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재택근무는 더 확대
실현이란 환상에 불과하며, 코로나로 인한 노
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기업들은 재택
동 내부의 격차와 더욱 강화될 디지털화된 정
근무의 노동효율성과 통제가능성을 실험할 기
보력은 노동권보다는 개인의 능력을 통한 생존
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제 기업들은 경영 방식
을 추동한다. 즉 노동이 분할되고 노동권에서
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되
배제된 노동자 계급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안
었다. 재택근무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뿐만 아
전한 노동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안전
니라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투자를 전제한다.
한 개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기업이 사무실과 OA시스템, 휴게시설 등에 대한 투자를 개인이 부담하도록 자연스럽
따라서 생존을 위한 요구로서의 노동권은
게 이전한다. 즉 재택근무는 노동자들을 생산
집단적이고 상호적인 권리에 토대를 두고서 평
수단을 보유한 유사 자영업자의 형태로 전환하
등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으로 재구성되어야 한
게 하는 물적 토대의 변화를 가져오며, 이는 향
다. 이주노동자의 생존을 말하지 않은 채, 노동
후 ‘프리랜서’의 이름으로 일반화될 불안정노
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생존을 말하지 않은 채,
동자로의 ‘갈등 없는 지위변화’의 위험을 초래
주장하는 ‘나’의 노동권은 사회적으로 정당화
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리고 이것은 디지털 사
될 수 없다. IMF 위기 이후 20여 년간 나의 생
회라는 기술진보의 이름으로 더욱 촉진될 뿐만
존을 위해 다른 노동자들의 해고와 불안정노동
아니라, 불안정노동이 일반화된 사회에서 타인
을 수용했던 경험을 성찰하지 않는 이상, 코로
의 노동권을 보호하지 않으면 나의 노동권 또
나 이후 경제적 위기에서 노동자 ‘계급’은 노동
한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권과 함께 소멸할 것이다. 평등한 생존은 국가 가 보장해야 할 것이 아니라 국가 안에서, 국가
노동의 분할은 노동권의 약화가 아니라 소
를 둘러싼 투쟁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멸을 야기한다. 분할되고 개별적인 노동권의
일터 13
지금 지역에서는
롯데케미칼 폭발사고가 던지는 질문들 최진일 운영집행위원
▲ 지난 20년 3월 6일 사고 이후 처음 열렸고, 관련노동조합 및 지역단체이 참석한 고용노동부 서산출장소에서의 간담회. 출처: 새움터
지난 3월 5일 대산석유화학공단 내 롯데케 미칼 NCC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다
업장’이라는 경계는 여러 가지 의미로 질곡으 로 작동하고 있다.
행히 사고시간이 새벽이었기에 사망자가 나오 지는 않았지만, 폭발력으로만 보면 국내 화학 공장 폭발사고 중에서는 전례 없는 강력한 폭
해당 사업장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발이었다. NCC공장 전체가 파괴된 것은 물론
대산석유화학단지에는 60여 개의 크고 작
이고 인근 상가와 주택들이 크게 파손되었고
은 석유화학 사업장들이 입주해 있고 각 공장
공단 노동자들과 주민들 60여 명이 부상당했
들은 경계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복
다. 개중에는 유리파편이 안면부나 두개골에
잡하게 얽혀있다. 그리고 각 공장에는 약 1만여
박힌 중상자들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특별
명의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주하고
근로감독은 마무리되고 국과수 감식이 끝나면
있다. 건설작업과 보수작업으로 하루 2천~7천
사고원인조사도 진행될 예정이지만 이번 사고
명의 플랜트건설노동자들이 출퇴근하고 있다.
대응은 몇 가지 숙제를 남기고 있다. 일반적으
즉, 대산석유화학공단은 정규직, 사내하청, 일
로 재해상황에서 해당 사업장 노동조합은 피해
용직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는 하나의 거
당사자이자 대응의 주체로서 그 중요성과 권리
대한 공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건 초기
가 강조되어왔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해당 사
노동부는 해당 사업장의 부상자가 10명 미만이
14
노동자가 만드는
라는 이유로 중대재해 규정을 거부했다. 중대
중대재해 당사자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재해 규정 어디에도 그 10명이 한 사업장 소속
재해 상황에서 해당 사업장 노조의 태도는
이어야 한다는 문구는 없지만, 노동부는 산업
사고대응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안전보건법은 사업장을 기본단위로 한다는 제
없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우리는 이미 작
멋대로의 해석을 고집했다.
업중지명령을 해제해 달라고 집회를 하는 노동 조합도 본 적이 있고, 지금 와서 사측과 이해를
끈질긴 항의 끝에 사고발생 1개월이 지나서
같이하는 노동조합이 있다는 사실이 놀랄 일
야 중대재해로 규정했지만, 여전히 뒷맛은 씁
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고와 같이 그 피해 범
쓸하다. 부상당한 수십명의 주민들은 여전히
위가 공장 밖까지 확대되고 여러 주체가 얽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이 일으
있는 사건의 경우에도 사고발생 사업장 노조의
킨 재해로 인해 공장울타리 밖의 사람들이 피
권한이 존중받아야 할까? 해당 노조가 당사자
해입는 사건은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산업
로서의 지위를 활용해 공동대응에 참여하고 협
안전보건법과 그 집행기관은 이 문제를 직면할
력한다면 큰 힘이 되겠지만 이번 사고와 같이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단지 규정해석의
역효과를 내고 오히려 공동대응에 균열을 내는
문제를 넘어 재해상황에서 피해자를, 사람을
역할을 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중심에 두는 상식이 통하는 것은 언제쯤일까?
하는가? 이 고민에 앞서 질문을 조금 바꿔보고 싶다. 만일 폭발사고가 주간에 일어났다면 가
한편 지역에서는 계속되는 화학사고에 대
장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플랜트노동자들은 이
응하기 위해 2018년부터 노동조합, 노동단체,
사고의 당사자가 아닌가? 플랜트노동조합은 해
시민사회단체와 지역주민들이 함께 화학물질
당 노동조합이 아닌가?
안전관리조례를 만들고, 협의체를 구성해 화 학사고에 공동대응하는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특별근로감독 참여가 제한된 이후 플랜트노
2019년 한화토탈의 SM유출사고 당시에도 이
조 충남지부와 지역 동지들은 다시 노동부 항의
러한 공동대응을 통해 플랜트노동자들의 특별
방문을 통해 플랜트노동조합의 당사자로서의
근로감독 참여와 민관합동조사단 구성이라는
독자적이고 온전한 권리를 주장하고 남은 일정
성과를 남길 수 있었다.
이나마 제대로 된 참여를 보장받았다. 그 결과 특별근로감독에는 플랜트 노동자들의 안전과
이번 NCC폭발사고 이후에도 지역에서는
관련된 개선요구와 제안이 대거 포함될 수 있었
긴급하게 관련 단위들이 대책을 협의하고 공동
다. 여전히 이번 사고에 대한 대응은 많은 논란
대응을 진행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에 없
을 남겨놓았고 원인조사와 민관합동조사 등의
던 곤란한 상황을 맞이했다. 노동부 면담을 통
과제도 남아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던 간에 당
해 화섬노조, 플랜트노조, 지역명예산업안전감
사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하는 단위노동조합의
독관 등이 특별근로감독에 참여하는 것을 관철
문제에 대한 해법 역시 노동안전보건운동이 계
시켰지만, 롯데케미칼 노동조합은 참가인원과
속해서 고민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한
범위, 기간을 축소하기를 원했고 이 요구는 매
가지 확실한 것은 사고의 영향을 받는 사람 누
우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관철되었다. 노동부로
구나, 특히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들 역시 독
서도 ‘해당 사업장’ 노동조합의 의견을 적극적
립적인 주체로 인정받고 온전한 권리를 보장받
으로 반영한다는 명분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축
아야 한다는 원칙일 것이다. 노동부의 행정행위
소할 수 있는 먹기 좋은 밥상이 차려진 것이다.
안에서든 우리 운동 안에서든 말이다.
일터 15
일터 정신질환 알아보기
정신질환과 자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정여진 노동시간센터 업무상정신질환연구팀
▲ 출처: Picabay
▲ 출처: pixabay
1. 들어가며
2. 신체 질환과 다른 정신질환 진단의 특징
정신질환과 자살 모두 논란이 많은 영역이
정신질환의 증상과 징후는 단순히 개인의
다. 현재 정신질환 자체를 부정하는 고전적인
생존 기능에만 머무르지 않고, 대인 관계나 직
반정신의학적 도전은 잦아들었다고 하더라도
업적 수행을 포함한 사회적 기능의 변화를 통
일부 질환에 대해서는 그 타당성에 대한 논란
하여 그 실체를 드러낸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이 끊이지 않는다. 정신질환에 대한 공식적으
꼽아볼 수 있다. 그런데 생물학적 현상보다 심
로 내려진 명쾌한 정의는 없다. 그러나 필자가
리학적 현상, 그보다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더
보기에, 임상가들은, ‘상당기간 지속되는 인지
높은 층위에 자리할수록 더 복잡한 기제들의
적, 정서적, 지각적(perceptual), 행동적, 기타
조합에 노출이 되며, 의도를 갖고 실천하는 인
심리적인 역기능적 변화’의 의미로 사용하고
간에 의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개방된 체계
있고, 이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그
에 가까워진다.1) 이러한 이유로 정신질환의 원
런데 신체질환보다 정신질환에 대한 논쟁이 더
인부터 증상의 발현까지 여러 층위의 무수한
욱 활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필자는 정신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하여, 경우에 따라서는
질환의 특수성, 특히 분류와 진단에 있어서의
무엇이 직접적인 원인인지 알기가 대체로 (신
특수성을 간략하게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자
체질환보다) 어렵다. 더구나 사회적 규범에 따
살과 정신질환과의 연관성과 그 논란에 대해서
라 문화적 배경에 따라 이러한 정신과 행동의
도 덧붙이고자 한다.
변화는 달리 평가될 수도 있다. 1) 베르트 다네마르크 외 저. 이기홍 역. 2005. 『새로운 사회과학방법론 :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파주 : 한울아카 데미.
16
노동자가 만드는
다음으로는 정신질환의 개념과 기준이 모
그런데 정신질환의 진단 분류는 자연과학
호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
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가 정신병적(psychotic)이라면, 현실적으로 ‘정
다른 자연과학적 근거들이 등장한다면 한 질환
의’를 내리기보다 ‘어떤 때’ 정신병적이라고 하
이 두셋으로 나뉘거나 분류 체계상 거리가 멀
는지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현실 검증력이
어질 수도 가까워질 수도 있음은 물론이고, 사
손상되었다고 판단될 때 어디서부터 ‘현실검증
회 환경적 변화로 인해 ‘더이상 아무런 문제가
력(reality testing)’이 손상되었다고 볼 수 있는
없게 되어’ 폐기된 진단도 적어도 일부 생길 수
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신체질환 역시 정
있다. 덧붙여 병인론적 기제가 밝혀지지 않은
의와 진단기준을 둘러싼 무수한 논의가 벌어지
점들이 많아 신체 질환에 비해 월등히 현상학
고 있는 데다, 자료와 근거(유전학, 역학 등의
적인 방법을 많이 쓴다는 점도 상기한 불확실
연구결과)가 축적되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임
성에 더 기여하고 있다. 증상은 각기 특정한 패
상적 지침 역시 개정과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고
턴으로 군집하여 나타나므로, 우리는 서로 다
있다. 관건은 신체질환이건, 정신질환이건 당시
른 정신질환을 논할 수는 있다.3)
2)
의 과학적 근거들에 뒷받침된 최선의 결론이었 는지 여부일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진단기준이
그렇다면 정신질환은 왜 생기는가? 가장 간
나 척도상 절단점을 단지 잠재적인 합의로 받
단한 대답은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결과라
아들여야 한다.
는 것이다. 여기서 유전이라는 말은, 가족력이 있다는 뜻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현재까지 적
끝으로 정신질환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불
지 않은 유전학적 성과들이 진단분류학에 기여
확실성을 지닌다. 뚜렷한 예측 인자들이 부재
하고 있는데, 흔한 오해와는 달리 유전학이 곧
하는 데다, 당사자의 성향이나 인지기능, 사회
결정론은 아니다. 반대로 환경의 영향을 강조
적 자원 등의 상호 작용으로 증상의 결과를 예
하는 결정론도 있을 수 있다. 최근 환경적인 영
측하기 어렵고, 증상이 고정적이지 않은 경우
향이 유전자 일부를 활성화하거나 억제한다는
가 허다하다. 더구나 사회적 관계는 의도를 갖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주목을 받고 있다.4)
고 행동하는 사람들 간에 형성되어 상호작용이
사족으로 유전적 영향이 크다고 하여 치료가
일어나는데, 정신질환의 증상이 여기에 영향을
불가능하거나 생물학적 치료만 가능하다는 뜻
끼칠 수 있고, 거꾸로 사회적 상호작용이 증상
은 더더욱 아니다.
의 발현이나 중증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연히 진단명은 전문가들끼리도 의견이 엇갈
한편, 환경적 요인에는 초기 생애적 환경(대
릴 수도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
개 정신치료는 여기에 초점을 둔다)도 있으나,
다. 그렇다고 하여 진단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
출생 전 태내 환경, 물리적/화학적, 사회적 환
다. 진단은 자의적인 딱지 붙이기(labelling)을
경 등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물론 정신질환이
지양하고, 치료에 있어 체계적인 도움을 주고,
나타나는 이유는 생물학적 변화로 설명할 수
사회적 지원, 법적 배/보상 등의 사회적 개입의
있는 여지가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
준거를 마련하여 이를 정당화해주는 역할도 하
어, 증상이 발현되는 것은 물리적, 화학적 뇌손
기 때문이다. 2) Fulford, B. 2004. Insight and delusion: from Jaspers to Kraepelin and back again via Austin In X. Amador Ed, Insight and Psychosis, Awareness of illness in Schizophrenia and related disorders 2nd ed, pp. 5178.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3) Sims, A. 저. 김용식, 김임렬, & 정성훈 역. 2003. 『마 음의 증상과 징후(제3판)』 서울 : 중앙문화사. 4) 그리고리 L. 프리키온, 애너 이브코비치, 앨버트 S. 융 저. 서정아 역. 2017. 『스트레스, 과학으로 풀다 : 더이상 스트레스에 반응하지 않는 방법』 서울 : 한솔아카데미.
일터 17
상 때문이기도 하고, 이른바 신경전달물질 간
실검증력의 저하와 동의어인지도 의문이 남는
의 불균형과 조절실패에 대해서도 익히 잘 알
다. 앞서 현실검증력 저하 상태의 기준이 모호
려져 있다. 그러므로 의학적 처치의 표적이 된
하다는 것은 언급하였다. 또한 정신질환의 결
다. 그러나 과연 이들을 문제의 원인이라고 일
과로서의 자살이 틀림없다고 할지라도 그 개인
컫는 것이 온당한가? 차라리 질환을 구성하
의 동기는 고통으로부터의 탈출, 타인에 대한
는 결과가 아닌가? 조현병, 우울장애, 자폐증,
복수, 자기 징벌 등 여러 양상을 보일 수 있기에
ADHD 등 환자들의 뇌발생상의 기능적, 구조
개인의 의도가 어디까지인지를 고려한다면 더
적(비특이적) 이상의 근거들 역시 마찬가지다.
욱 복잡하다.
5)
환경적 요인들에 대한 개입이 무척 중요할 법 한데도, 정신질환에 대한 1차적 예방-질환 발생
물론 질병에 의한 결과로 간주하는 것은 장
의 결정 요인에 대한 개입-은 신체질환에 비해
점이 있기는 하다. 남겨진 이들에게 적잖은 위
서도 거의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안을 주며, 업무상 자살에 대한 보상을 비교적
리고 정신질환만큼 개인화, 의료화가 문제인
쉽게 합의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럼에도 자살
영역이 있는데 바로 ‘자살’이다.
의 의료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은 작지 않다. 어려운 철학적인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지금까 지 정신질환의 사회적 관리나 예방에 관한 주
3. 자살과 정신질환, 그리고 논란
류의 행보를 본다면 충분히 우려할만 하다고
먼저 자살과 정신질환과의 연관성을 부인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자살의 원인은 ‘운 나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공의 수련 과정에
게’ 정신질환이 걸린 탓으로 되어, 고위험군 대
서 기본적으로 쓰이는 교과서인 Synopsis Of
상으로 한 정신질환에 대한 조기발견과 전문가
Psychiatry를 보면, 최대 95%의 자살 성공자들
에 의한 개인 치료가 강조되기가 십상이기 때
에게 정신질환이 있었으며, 우울증(80%), 조현
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살이 발생한 사회적 경
병(10%), 치매나 섬망(5%), 알코올 의존(25%)
제적 맥락은 삭제되어버리고 만다.
이 차지한다고 한다. 정신과 환자는 그렇지 않 은 경우보다 3~12배가량 자살 위험도가 올라가 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사실에 기반
4. 맺음말
하여 현 산재보상보험법 상 원칙상 자살을 고
분명한 것은, 우리의 최종적인 목표는 일터
의적 자해의 일부로 보고, 산재 보상의 대상 범
의 정신건강 증진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정신적인
는 우리가 질환과 질병이라고 부르는 결과에
이상 상태에서 실행했을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이르기 전에 각종 위험요인들, 특히 환경적 요
는 예외로 하고 있다.
인을 통제하는 1차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신체 건강에 대한 사회환경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요인의 중요성도 인정하지 않는 의사나 기타
남는다. 정신질환으로 자살을 고려할 때 대부
전문가들이 대다수인데, 정신적 건강에 대해서
분은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지 때문이라고 생
는 말할 것도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왜곡된 인지가 현 5) Sadock, B., Sadock, V., & Ruiz, P. 2015. Kaplan& Sadock's Synopsis of Psychiatry: Behaviora Sciences/ Clinical Psychiatry (11th ed). New York: Wolters Kluwer.
18
노동자가 만드는
연구리포트
노동시간에 관한 사회학 연구 동향 신희주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 출처: pixabay
이 글에서 소개할 노동시간의 건강관련성
사회학을 학문으로 정착시키는데 선구적
을 다루는 논문들은 노동시간에 대한 사회학
으로 기여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
적 접근이라 필자가 분류한 것들이다. 사실 노
(Emile Durkheim)은 이미 130여 년 전에 우울
동시간은 배타적으로 사회학적인 주제만은 아
과 자살이 정신병리학적이거나 심리적인 현상
니며, 다양한 사회과학과 의학·보건학적 주제
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요소들에 의해 이루어지
이기도 할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현대 사
는 사회적 현상임을 강조하며, 사회에 따라 다
회학의 수많은 연구 주제들이 실제로 경제학,
르게 나타나는 자살의 현상을 사회적으로 연구
역사, 철학, 정치학 등 사회학보다 등장이 빨
하기도 했다. 따라서, 사회학은 어떤 면에서 보
랐던 오래된 학문들에서 다루어 왔던 것들을
면 의학과 심리학의 영역과도 처음부터 밀접하
재구성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
게 교류하던 학문이었을 것이다.
가 대부분의 학문들은 학문 자체의 정통성을 유지하기보다는 변화된 요구에 맞는 학제 간
이 글에서 소개하는 세 편의 ‘사회학적’ 논
(interdisciplinary)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사
문들은 노동시간을 구성하는 구조적이고 체
회학 역시 인접학문과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
계적인 사회적 배경에 대한 고찰을 기반으로
요할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별개의 영역이라
노동시간이 개인의 건강, 그리고 그들이 속한
여겨지던 과학기술, 의료·건강 분야까지 학제
사회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
간 연구가 이루어진 지 오래되었다.
서 학제 간 연구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논 일터 19
문들이 수록된 학술 저널들(Social Science &
일상적으로 구조화하고 체계적으로 보낼 수 있
Medicine,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게 할 뿐만 아니라 직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
medicine, 보건과 사회과학)의 제목들은 그 자
회적 접촉, 구성원들 간 공유된 목적의식, 노동
체로 사회과학과 의·보건학을 접목하고 융합시
자의 정체성 형성 등의 잠재적 기능 역시 있다
키는 중요한 시도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논문은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직업이 어떤 의미 를 가지며, 보다 직접적으로는 일하는 사람들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노동시간이
이 최상의 건강상태를 누리기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가?
의 주당 노동시간이 필요한지를 규명하고자 하
소개할 첫 번째 논문은 “주당 근로시간
는 것이다.
의 단축: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얼마의 노동시 간이 필요한가?(A shorter working week for
영국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본 논문의
everyone: How much paid work is needed for
몇 가지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실업
mental health and well-being?) 이다.
상태였거나 비경제활동상태였다가 고용상태가
1)
된 사람들이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최소 이 논문은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많은
한의 근로시간은 주당 1~8시간, 즉 일단 고용되
사람이 일자리 없는 미래에 대해 갖는 불안감
어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 일을 하는 것만으로
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오랫동안 영
도 심리적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2) 삶의 만족
화나 소설의 소재로 쓰여 왔던 인공지능의 개
도는 주당 8시간 근무까지 지속적으로 증가를
념은 이제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하고 일상화되
하지만, 8시간 이상의 근무는 특별히 삶의 만족
었으며, 노동의 공간까지 침투하여 비교적 단
도와 관련이 없다, 3) 이전에 실업이었거나 비
순한 형태의 직업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직업까
경제활동상태였다가 고용된 여성들은 20시간
지 위협하는 불안정노동의 새로운 개념을 만들
이상 일할 때 높은 삶의 만족도를 나타낸다.
어내고 있다. 산업사회 이후에 늘 존재해왔던 불안감이었지만, AI의 발전은 광범위한 분야에
2, 3번의 결과에 대해 저자는 개인의 삶의
서의 직업의 상실로 대규모 실업 사태를 야기
만족도가 단순히 일자리 여부나 높은 수준의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시간 노동 대(對) 과
임금과 단선적으로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수
소 노동 혹은 실업이라는 노동의 양극화라는
당 등의 사회복지 체계가 그들의 노동조건과
새로운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어떻게 맞물리는지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해석한다. 즉, 연령이
실업은 정신적 스트레스와 사회적 소외, 음
나 가족구성에 따라 결정되는 노동시간에 대한
주, 흡연 등의 생활습관으로 인한 여러 가지 건
수당(benefits) 수입이 노동시간 만족도를 결정
강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며, 수입의 감소나 부
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재로 인한 빈곤의 확대, 사회적 불평등과 관련 된 요소이다. 이런 점에서 직업은 개인에게 수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논문은 야심차게 던
입을 보장해주는 명시적 기능 이외에도 시간을
진 “삶의 만족도와 정신적 건강을 최대한 누릴
1) Kamerāde, D., Wang, S., Burchell, B., Balderson, S. U., & Coutts, A. (2019). A shorter working week for everyone: How much paid work is needed for mental health and well-being?. Social Science & Medicine, 241, 112353.
수 있는 적정 노동시간은 얼마인가?”라는 질
20
노동자가 만드는
문에는 일관된 결과를 확보하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몇 가지 결과들로부터 삶의 질의 향상
과 심리적 부담을 가장 적게 느끼는 노동시간
스, 수면장애, 우울증, 병가의 가능성을 높이며,
은 주당 8시간이라는 추론을 할 수 있다. 이를
사회적으로는 생산성을 저해하여 고비용을 발
바탕으로 저자들은 ‘정상적 풀타임 노동시간이
생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일-생활 갈등을 발생
라 여겨지는 40시간 노동이 정말 정상적인가’
시키는 노동시간 형태는 교대제 이외에도 장시
라는 상당히 공격적 문제를 던지는 한편, 노동
간 노동, 야간노동이나 주말노동 등과 같은 비
자들의 정신건강과 사회적으로는 생산성 향상
표준화된 근로시간, 혹은 비상 대기업무(on-
을 위해 장기 휴가 후 단시간 노동하는 업무로
call) 등이라 할 수 있다.
의 복귀 등의 혁신적 정책 또한 실험적으로 시 도해볼 수 있다는 점도 제시한다.
이 연구의 결과들은 비표준적 노동시간의 영향성을 연구한 다른 논문들과 대체적으로 일관된 내용을 보여주는데, 우선 교대제의 경
병원노동자의 일·삶 균형을 위한 근무시간
우 오후(evening)근무나 야간(night)근무 비율
변화
이 증가할수록 일-생활 갈등이 더 빈번하게 나
두 번째 논문은 “근무 시간의 변화가 교대
타나며, 주말 근무가 빈번해질수록 역시 갈등
제 근무를 하는 병원 노동자들의 일-생활 갈
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근무를 끝낸 지
등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Are changes
11시간 이내의 업무 복귀를 뜻하는 급속복귀
in objective working hour characteristics
(quick return)와 48시간 이상의 장시간 근무 역
associated with changes in work-life conflict
시 교대제 밤 근무와 마찬가지로 부정적 건강
among hospital employees working shifts? A
영향성을 갖는다.
7-year follow-up) ”인데, 이 논문은 핀란드의 2)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서베이
우리 사회에서도 병원은 사회적 요구에 의
를 이용한 병원 근무자들의 일-생활 균형에 관
해 경찰, 소방서 등과 함께 교대제 노동이 필요
한 연구다.
한 곳이라 인식된다. 그러나 공공서비스 분야 라 하더라도 야간노동은 신체리듬을 교란시켜
우리 사회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고, 가족생활이나
는 워라밸의 대조적인 개념인 일-생활 갈등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에는
(work-life conflict)은 노동자들의 심리적 안정
변함이 없다. 따라서, 야간노동의 환경 개선, 인
을 저해하는 가장 큰 심리사회적 위험요소로
력과 예산의 충분한 확보, 그에 따른 합리적 근
꼽히는데, 그 중에서도 일과 가족생활 간의 불
무 스케줄의 구성 등을 통해 이러한 위험을 최
균형이 가장 대표적인 일-생활 갈등일 것이다.
소화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들이 반드시 마련
특히 어린 자녀를 둔 사람들(특히 여성들)의 경
되어야 할 것이다.
우 자녀 양육 문제는 노동시간의 문제와 중첩 되어 이중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갈등은 그들의 삶의 질을 낮추고, 직업 스트레
노동시간 불일치와 노동자 건강 세 번째 논문은 보건사회연구에 게재된 “노
2 ) K a r h u l a , K . , Ko s k i n e n , A . , O j a j ä r v i , A . , Ropponen, A., Puttonen, S., Kivimäki, M., & Härmä, M. (2018). Are changes in objective working hour characteristics associated with changes in work-life conflict among hospital employees working shifts? A 7-year follow-up.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 75(6), 407-411.
동시간 불일치와 근로자의 건강과의 관계 분 석”3)이다. 노동시간 불일치는 기본적으로 노동
3) 이용관. (2015). “노동시간 불일치와 근로자의 건강과의 관계 분석”. 보건사회연구, 35(3), 135-165.
일터 21
자가 선호하는 노동시간과 실제 노동시간이 차
강영향을 띤다. 초과노동의 경우에는 장시간
이가 나는 것을 뜻하며, 이러한 불일치의 발생
노동이 노동자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미
원인은 장기계약, 일자리 불안, 규제, 정보의 비
치는 부정적 영향력의 설명과 맥락이 일치한
대칭성, 소득불평등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 과소노동의 경우에는 실제 노동시간은 짧
한국의 경우, 임금 노동자들의 실제 노동시간
지만, 그만큼 원하는 임금 수준에 도달하기 어
은 46.5시간이며, 선호 노동시간은 45시간가량
려워지기 때문에 삶의 만족도가 낮아지게 되
으로 원하는 시간보다 1~2시간 더 일하는 것으
고, 나쁜 습관(알콜, 흡연, 신체활동의 제한 등)
로 나타나며, 노동자들의 28.5% 가 과잉노동을
에 의한 건강 악화를 경험할 가능성이 많다는
그리고 과소노동을 하는 비율은 11.4% 수준인
설명이 흥미롭다.
것으로 나타난다. 과소노동과 과잉노동에 대한 연령효과도 노동시간이 사용자와 노동자들 간의 동등
주목할만하다. 주로 가정을 가진 연령대인 30,
한 교환관계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라는 신고전
40대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과잉노동에 대해
주의 경제학의 전제와는 달리, 노동력을 판매
수용적인데, 이는 승진 등의 고용상 보상동기
하여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실제로
가 강해 금전적 보상이 없어도 장시간 노동을
는 노동시간을 선택의 자유가 거의 없기에 개
수용하는 경향이 나타나며, 보상이 있는 경우
인이 원하는 시간보다 적은 시간 혹은 많은 시
장시간 노동과 건강 간의 부정적 관계는 완화
간 일을 하게 된다.
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작업량이 많거나 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때, 고용상태가 불안하고 작업
노동시간연구가 더 활발히 이뤄지길
성과에 대한 압력이 증가할 때 장시간 노동을
누구에게나 시간은 늘리거나 줄일 수 없는
하게 되고 이는 노동자 개인의 건강과 생활뿐
제한된 자원이며 삶 자체이다. 노동시간은 근
만 아니라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
본적으로 인간들이 자신들의 삶을 구성하는 데
편, 과소 노동은 비정규 및 시간제 노동을 하는
에서 자신의 욕구와 사회적 필요에 의해 노동
사람들의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저임금, 직업
하는 사람 스스로에 의해 자율적으로 배분되어
안정성의 저하, 삶의 예측 불가능성 등으로 인
야 한다.
해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많 은 경우 우울 등의 정신적 문제를 겪으며 알콜
그러나 자본주의적 사회관계 속에서 규정
의존성 역시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연
되는 노동시간에 의해 삶의 위협을 받는 사람
구의 목적은 한국에서의 노동시간 불일치와 노
들은 바로 그 삶의 위협 때문에 노동하게 되는
동자 건강 간의 관계를 분석하여 노동시간 정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 노동시간에 대한 학제
책에 대한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간 연구들이 더욱 활성화되어 노동시간과 삶의 질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도 다양한 주제들에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주당 44~49시간보다 적게 일하거나 많이 일하는 경 우 모두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으며, 특히 자신이 선호하는 노동시간보다 실제 노동시간 이 적어지거나 많아지는 경우 모두 부정적 건
22
노동자가 만드는
대해 논의할 수 있길 바란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노동시간 제한이 부재한 과로사회, 일본 이와하시 마코토 POSSE
일본은 과로사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있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달에 100시
과로가 심각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2019년까
간 이상의 연장 노동을 하거나, 2~6개월 동안
지 의미 있는 법적 노동시간 제한이 없었습니
한 달에 80시간 이상의 연장 노동을 한 경우에
다. 이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1년 동안 하루 24
만 과로사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시간, 365일 일을 시켜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가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있는 사례들은 빙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은
일각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합니다. 자신
고용주들이 한 달에 100시간 이상의 연장근무
의 가족 중 한 사람을 잃은 유가족들이 나서, 그
를 시킬 수 없도록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여
죽음이 업무와 관련됐다고 ‘증명’하는 것은 매
전히 ‘과로사 역치’라고 불리는 월 80시간의 연
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과로사 사
장근무보다 20시간이나 많은 장시간 노동이 가
례가 아예 보고되지 않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
능하다는 뜻입니다.
는 ‘급성심장사’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일본 정 부는 이런 점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과 로 때문에 자신의 삶을 잃고 있는지 제대로 정
일본의 과로사 현황
보도 모으지 않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노동법률가, 의사, 노동운동가 들이 함께 ‘과로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 한 이후, 직장에서의 일 때문에 발생하는 죽음
일본의 블랙기업과 과로자살
과 질병의 숫자는 극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일
과로자살은 말 그대로 과로에 따른 자살이
본 정부의 과로사 백서에 따르면, 2018년 과로
라는 뜻입니다. 과로자살은 장시간 노동이나
에 의한 뇌혈관, 심혈관질환 혹은 그 사망으로
업무의 양적, 질적인 변화에 따른 정신질환 때
산업재해보상보험에 보상을 신청한 사례는 모
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2018년 자
두 877건입니다. 이 중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승
살을 포함해 과로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산재
인된 것은 238건 뿐이고, 이 중 82건이 사망 사
보상을 신청한 건수는 모두 1820건으로, 역사
건이었습니다. 2017년에는 업무상 과로에 의
상 가장 많은 숫자였습니다. 이 중 정부가 산재
한 질환으로 승인된 것이 253건, 이 중 92건이
로 인정한 것은 465건이고, 이 중 76건은 노동
사망 사건이었습니다. 2002년 이후, 일본에서
자의 자살 혹은 자살 시도였습니다. 과로사 피
는 매년 100여건의 과로사가 계속해서 발생하
해자들이 주로 40대~50대의 남성 노동자들인
고 있고, 이는 4일에 한 명씩 과로로 사망하고
데 비해, 과로자살은 성별에 관계없이 젊은 노
일터 23
▲ 일본에서 과로사는 1980년대부터 꾸준히 문제제기되었다. 그럼에도 2015년 일본의 대기업 광고회사 덴츠에서 일하던 다카하시 마쓰리 씨 가 과로자살로 유명을 달리했다. 여전히 장시간 노동과 블랙기업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출처: ANN 방송화면 캡쳐.
동자들 사이에서 많이 발생합니다. 과로자살이
극심한 장시간 노동이나 일터괴롭힘 혹은 다른
매년 늘어가는 이유는 노동자를 일회용품 취급
어떤 이유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심하게
하는 ‘블랙기업’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
받았다는 믿을만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과로
다. 일본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과 일터 괴롭힘
자살로 보고되는 데 필수적이라는 뜻입니다.
을 생각해보면, 465건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 은 아주 명확합니다. 경찰청에서 자살 사건을
많은 고용주들은 직장 내 정보를 공개하지
수집해 분석한 결과, 2천여 건의 자살은 업무와
않으려고 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연장근무를 강
관련해서 발생한다고 합니다. 매년 2천여 명의
요해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두
노동자가 업무와 관련된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려워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터 괴롭힘과 관
던지고 있는데, 정부는 이 중 100건도 안 되는
련된 많은 경우에서, 자살의 원인이 업무와 관
사례에 대해서만 보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련돼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 니다. 유가족들이 중요한 증거를 성공적으로 수집한다 해도, 정부가 그 죽음을 업무와 관련
산재인정을 위해 넘어야 할 난관들
되었다고 승인하고 보상을 제공할 가능성은 높
이렇게 많은 사례들이 보고도 제대로 안 되
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가족들이 그 질
는 이유는 1) 과로사라고 생각하는 경우, 가족
병이 과로 때문이라고 생각한 사례는 877건이
을 잃은 누군가가 자료를 모아 산재보상을 신
었지만, 그 중 238건만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청해야 하고 2) 유가족이 스스로 과로의 증거
승인되었습니다. 수백 명의 노동자, 유가족 들
를 충분히 모았을 때에만 정부로부터 산재 승
은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남겨졌습니다.
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노동자 가 족들이 산재 보상 신청을 하지 않으면, 이 사건
일본의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은 그대로 숨겨지게 됩니다. 그 죽음이 과로에
노동을 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노동
의해 발생했거나, 다른 업무 관련 문제와 관련
자들은 수백시간에서 심하면 수천 시간에 해당
이 높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노동자나 유가
하는 자신의 삶을 일하느라 빼앗기게 됩니다.
족이 신청하지 않으면, 정부나 지방 노동 관서
이를 멈추기 위해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들은 노
에서는 먼저 나서 회사를 조사할 권한이 없습
동자들과 가족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니다. 그러니까 유가족이 최소한 그 죽음이 업
정부나 회사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무와 관련되었다고 의심을 하고, 이 노동자가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24
노동자가 만드는
사진으로 보는 세상
▲ 지난 5월 2일, 38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 현장. 출처: 호나라
일터 25
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뉴미디어 산업은 MCU 히어로처럼 멋지기만 할까? 자유로운만큼 불안정한 뉴미디어 산업의 과제들
박기형 상임활동가
지난 4월호에서는 온라인 방송 산업의 구조
과 모니터링이었으며, 그 외에도 기술적, 인프
와 MCN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번 5월
라적으로도 지원한다. 기획에 따라 평소와 달
호에서는 파트너쉽 매니저와 크리에이터들이
리, 외부촬영을 하게 될 경우, 장소섭외를 도와
노동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소개하고, 신산업
주거나, 외부촬영장비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별
으로 주목받는 온라인 방송 산업이 제대로 된 산
한 컨셉의 촬영 시 MCN이 보유하고 있는 스튜
업으로 자리 잡고 발전하기 위해선 어떤 문제들
디오를 빌려주기도 한다. 이러한 지원 서비스
이 해결되어야 하는지 검토해보고자 한다.
들이 크리에이터들에게 제공될 때에는 파트너 쉽 매니저가 중간에서 소통 역할을 담당한다.
뉴미디어의 특성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
이렇듯 파트너쉽 매니저가 컨설팅과 기획
뉴미디어 컨텐츠는 크리에이터 각각의 특
등을 주된 업무로 한다고 해도, 늘 중심에 놓인
성이 자유롭게 드러난다. 그렇기에 MCN이나
것은 다수의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이다. 즉 업
광고회사 등이 컨텐츠 생산 자체에 깊숙이 개
무 전반에서 사람을 상대하는 게 빠질 수가 없
입하기 시작하면, 뉴미디어의 강점이 사라질
다. 이는 크리에이터들도 마찬가지다. 뉴미디어
수 있다. 크리에이어터의 색깔이 사라져서, 컨
의 특성 중 상호작용이 빠르고 활발하다는 것
텐츠의 독특성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
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부정적인
래서 MCN에서는 기본적으로 크리에이터들의
피드백도 빠르고 자극적으로 전달된다는 의미
창작을 자율성에 맡기고, 도움을 통해 그들이
이기도 하다.
강점을 살릴 수 있을 때나, 도움을 통해 더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가 제작될 것으로 기대될 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4월호에 살펴봤던 기획 26
노동자가 만드는
“연예인들처럼 크리에이터들도 온갖 악플과 위협 등에 노출되어요. 그러다보니 크리에 이터들도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게
▲ 뉴미디어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다양성이 실현되는 매체가 될 수 있을까? 출처: pixabay
되죠. 소통 과정 자체가 늘 수반되다보니, 피
정노동과 관련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할 수도 없죠. 여러 방식으로 예방하기 위해
위한 상담지원도 도입했다. 이러한 사후적 대
노력하죠. 그럼에도 받는 스트레스가 있죠.
처뿐만 아니라, 매니저 등 직원의 감정노동에
이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나누게 되는
대한 사전적 예방 조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담당 매니
질 필요가 있다.
저에요. 매니저가 직접적으로 공격을 당하 는 것은 아니지만, 크리에이터와 협업을 하 는 관계이기 때문에, 크리에이터가 악플로
뉴미디어의 발전, 특성에 맞는 사회적 보장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
뒷받침되어야
죠. 이는 상당히 힘든 일이에요. 매니저가 해
“악플 등으로 인한 감정노동 외에 또 다른
결할 수 있는 영역 바깥의 일이지만, 업무에
어려움은 모든 게 자유로운 만큼 아무것도 정
상당한 부담을 주죠. 크리에이터들은 말할
해져있지 않아서 생기는 어려움도 있어요. 내
것도 없고요.”
가 하고 싶은 컨텐츠를 내가 만드는 것이다보 니 규칙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없어요. 그런데
최근 MCN에서도 대면 업무에서 발생하는
시청자들의 요청과 피드백은 끊이질 않죠. 그
갈등상황이나 악플 등에 대한 대처 등 파트너
러다보니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
쉽 매니저들의 감정노동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다. 기획, 출연, 촬영, 편집을 다 하는 상황에서
고 한다. 이러한 문제를 분명히 인지하고서 대
1일 1업로드, 1주일 1업로드를 한다는 건 정말
책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한다. 직원 전체를 대
힘든 일이에요.”
상으로 하는 심리치유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감
일터 27
▲ 급속도로 변하는 미디어 환경은 서로 다른 삶을 연결시켜준다. 이러한 관계망을 바탕으로 한 뉴미디어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는 무엇이 뒷받침 되어야 할까? 출처: LIUC.it
모든 콘텐츠를 언제까지고 혼자 만들 수는
직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
없는 노릇이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
야기가 있다면, 안정적으로 창작을 이어나갈
도 한다. 대표적으로 편집자와 썸네일러가 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
다. 크리에이터들은 이들을 프리랜서 등의 형
해주고 싶어요. 나도 저렇게 성공하고 싶다
태로 고용한다. 이렇듯 뉴미디어에서도 간단하
는 막연한 동경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 삶
고 단순한 형태의 분업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
이 보장되는 산업이 절대 아니니까요.”
데 문제는 뉴미디어 산업 자체가 아직 초기 단 계라는 점이다. 업계 표준이나 법적 규정이 마
필자가 상상해보건대,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련되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의도하든 그렇
될 수 있는 세상은 참으로 흥미롭고 재밌지 않
지 않든, 편집자들과 썸네일러들을 고용할 때
을까 싶다. 이런 상상이 실현되기 위해선 아무
여러 사건·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런 분석이나 대책 없이 장려할 것만이 아니라, 누구나 안심하고 이 산업에서 활동할 수 있도
“이렇게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하든, 혼자서 만들든, 열심히 컨텐츠를 만들어도 반드시 고소득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에요. 1달에 수 천만원씩 버는 유튜버들이 주목받으면서, 많은 사람이 유명 크리에이터를 꿈꾸게 되 었죠. 하지만 마치 자영업처럼 내가 열심히 일하는 거랑 대중이 나를 선택하는 건 별개 의 문제에요. 그래서 크리에이터들의 주된
록 관련 인프라를 탄탄하게 만드는 일부터 이 뤄져야 한다. 더불어 안정적인 노동환경을 만 드는 일도 이뤄져야 한다. 새로운 산업이 등장 하고 발전하는 과정에는 새로운 노동형태가 등 장하고 안정화되는 과정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사회정책을 시행하고자 한다면, 뉴 미디어 산업의 자유로운만큼 불안정하기도 한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고충이 규정되지 않는 노동시간과 소득 불 안정성이에요. 뉴미디어에서 인기가 급상승 하는 것과 급하락하는 것은 순식간인데, 이 를 예측할 수도 없고, 명확한 이유를 알기도 힘들죠. 이를 직업으로 삼게 되면, 누구라도 큰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뉴미디어와 함께하고 싶은 이유 그렇다면, H씨가 파트너쉽 매니저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뉴미디어 산업이 갖 는 매력이 분명히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4 월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뉴미디어는 레거시 미디어와 달리, 쌍방향 소통이 내재해있다. 기
“그래서 관련 업계 종사자로서 크리에이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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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존의 창작활동들은 일방향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아무리 소통하려고 해도, 사후적이거나 제한적인 영향만을 행사할 뿐이라는 것이다.
H씨는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이유에 대해서 사회 전반의 변화에 뉴미디어의 특성이 잘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더욱이 H씨는 뉴미디어 산업은 기획부터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의사결정구조가 단순 하고 빠른 게 강점이라고 보았다. 그로 인해 때 론 영상의 질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누구나 쉽 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얘기했다. 문턱 이 낮아지면서,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되어 다 양한 컨텐츠를 더 쉽게 만들고 즐길 수 있는 것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점점 ‘공감’과 ‘소통’ 그 리고 ‘자기표현’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된 것 같아요. 사회에서 이런 가치들을 잘 구현 할 수 있는 매체를 찾게 된 것이죠. 뉴미디어 야말로 컨텐츠의 다양성과 독특성뿐만 아니 라, 제작과정 자체가 적합한 매체 같아요.”
이다. “이런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리 “그게 저에게는 큰 매력이었어요. 저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누구나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각자의 독특성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뉴미디어 산업은 혁신적인 소 통의 수단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죠.”
에이터의 인간적인 매력과 자기만의 재능이 각자의 콘텐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 죠. 이로 인해 크리에이터가 사람들의 주목 을 받게 되는 거죠. 그래서 매니지먼트의 차 원에서 본다면, 크리에이터 각자가 가진 장 점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은 매 니지먼트라고 생각해요.” 물론 뉴미디어를 이윤을 낼려는 수단으로
“전문가가 아니어도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만 생각한다면 트렌드를 쫓고 어떻게 조회수와
미디어 산업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영
구독자를 늘릴지 고민할 수 있다. 그 연장선에
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고, 거
서 유명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이 느는 것
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의견을 덧붙이고,
만큼, 레거시 미디어들이 뉴미디어 산업에 투
나아가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이 계속 자
자하거나 자회사 등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
리를 바꿀 수 있는 상호연쇄 작용이 빠르고
럼에도 H씨는 앞으로도 뉴미디어가 뉴미디어
자유롭게 일어나는 게 너무 좋았어요. 거기
답기를 바라고, 자신도 그에 기여하고 싶다고
서 함께 웃고 떠드는 게 즐거웠죠.”
얘기했다.
“이 즐거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었고, 뉴
“뉴미디어가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우리
미디어의 세계를 더 자세히 알고, 그 세계가
생활의 중심에 들어왔죠. 산업이 발전하면
더 발전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어요. 매니저
서, 여러 문제들도 수반되고, 이 매체만의 특
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크리에이터로도 활
성도 약해질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뉴미디
동하는 바람도 있어요. 이미 때때로 취미와
어 세계에서 우리 모두가 크리에이터로서
일의 경계, 매니저와 크리에이터의 경계가
자신의 창의성을 자유롭게 발휘하고, 사람
흐려질 때도 종종 있고요(웃음).”
들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존중하며 공감 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일터 29
현장의 목소리
2인 1조 근무가 만든 안전한 일터 울산 경동도시가스 안전점검원 투쟁 이후를 인터뷰하다
지안 상임활동가
2019년 4월, 한 노조 조합원이 한 고객의 집
동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었다. 주요하게 조
에 감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작년 5
합원들은 올해 1년 간 탄력적 2인1조와 성과제
월부터 시작된 울산 경동도시가스 노조의 파업
폐지를 잘 시행하고, 이후 산재 중인 동료 조합
은 약 5개월 간 이어졌다. 관할 지자체인 울산시
원이 복귀할 수 있는 노동조건을 만들고 싶다는
와 원청인 경동도시가스 모두 안전점검원들의
말을 전했다.
안전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던 와중에 3명 의 조합원이 울산시청 옥상에 올라가 고공농성 을 벌였고, 바로 경찰에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했
위험을 키운 성과제, 97% 점검율의 문제점
다. 9월에 들어서야 노조와 사측은 성과제 폐지
울산 지역 도시가스 안전점검원들의 가스
와 2인1조 시행을 두고 합의를 하게 되었다.
안전점검 업무는 검침, 고지서 송달 업무와 달
이 투쟁의 성과로 조합원들은 작년 10월
리 가스누출을 확인해야 하기에 고객의 집 안
부터 2인 1조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고, 위험
에서 이루어지는 대면 업무다. 박근혜 정부 당
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던 성과제도 폐지되었다.
시 ‘안전점검’ 업무를 도급하지 말라는 지침에
2020년인 올해는 1년간 성과제 폐지와 ‘탄력적
따라 원래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하던 도시가
2인1조’를 시행한 뒤 적합한 방문 세대 수 등 노
스검침원들이 업무 내용에 따라 안전점검원과
동조건을 결정한다. 울산경동도시가스 노조에
검침원으로 분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안전점검
게 작년 투쟁만큼이나 올해를 잘 보내는 것이 중
원들은 경동도시가스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하
요한 까닭이다.
청업체 소속으로 직고용이 되었지만 검침원들
지난 4월 23일, 울산의 한 바닷가 동네에서 울산경동도시가스노조 조합원 네 분을 만났다.
은 오늘날까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하며 각 종 법적 보호 밖에 있는 형국이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 대화 사이에서 도 조합원들의 안전과 건강 문제에 관해서는 진
한편 안전점검원들은 분리 과정에서 검침
지하고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지난 투쟁의
파트보다도 인력이 적어졌다. 인력 부족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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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 바다가 보이는 울산의 어느 카페에서 울산 경동도시가스 동울산센터에서 일하는 도시가스안전점검원 네 분을 만났다. 왼쪽부터 김정희 여성 부장, 권미순, 이신자, 안미선 조합원. 출처: 지안
검율 등의 경영 정책 때문에 더욱 부담이 가중
의 문제점도 있지만 나아가서 점검율을 채우기
되는 문제였다. 워낙 점검 업무 자체가 건물 밖
위해 빨리 다음 가정을 방문해야 한다는 압박
에서 업무가 이루어지는 검침, 고지서 송달보
감이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고, 안전문제
다 까다로운 일이다. 고객의 집 안으로 들어가
가 발생해도 단순히 위험 상황을 모면하고 넘
가스누출 등을 체크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빈집
기도록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의 경우 방문 약속도 잡아야 하고, 대면업무 특 성 상 감정노동도 발생하며, 그런 와중에 점검
김정희 예전에는 남자들이 속옷만 입고 문
율을 100%에 수렴하게 맞춰야 하니 이 부담감
을 열어도 일단 들어가서 점검하기 급급했거든
때문에 밤이고 낮이고 일에 매달려 있어야 했
요.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은 하루 중에 굉장
다. 그래서 안전점검원들은 담당 구역에 속한
히 제한적이죠. 이른 오전이나, 주로 저녁 시간
여러 동들을 몇 번씩 회전하면서 빈집들을 확
대예요. 그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가정을 돌아
인하고 재확인하며 일해왔다.
야 점검율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저녁에는 특 히 정신없이 일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일하는
이신자 성과제는 얼마나 누락 없이 전 담당
과정에서 안전에 위협을 느끼더라도, 혹은 고
세대 점검을 완료했느냐를 말하는 점검율을 의
객과의 관계에서 성희롱 등 위험이 발생해도
미해요. 파업 전에는 저희가 일하는 경동도시
그냥 모른척하며 들어가서 빨리 해치우고 나오
가스 동울산센터의 점검율 기준이 97%에 달했
는 거였어요.
어요. 그런데 지금처럼 1인 가구도 증가한 사회 에서 97% 점검율을 달성한다는 게 가능한 일 일까요. 저희도 어떻게 해왔는지 모를 정도로 밤낮없이 일에 매달려서 겨우 채워왔던 거죠.
이때, 성과제 문제는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들의 노동시간이 ‘간주노동시간’으로 되어있다 는 점 속에서 더욱 가중된다. 간주노동시간이란 정해진 노동시간이 없고, 하루에 정한만큼의 시
이 점검율이 특히 문제적인 지점은, 노동강
간을 일했다고 간주한다는 의미다. 안전점검원
도의 증가나 점검율과 연동되는 임금 삭감 등
들의 경우 하루 8시간 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
일터 31
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게 된다. 즉 정해진 시간
서 일을 했을 경우에 어느 정도의 점검율이 나
대가 없으니 이 노동시간이 어떻게 배치될지,
오는지 실험해보기로 했다. 97%라는 터무니없
얼마나 늘어나게 될지 그 일을 하는 노동자 말
는 점검율을 폐지할 근거를 사측에 제시하기
고는 알 수가 없게 된다. 이 점이 회사로 하여금
위함이었다.
노동시간제를 얼마든지 악용할 수 있도록 만든 다. 보통 오전에 출근을 하거나 일을 보러 나가
이신자 안전점검원들이 정상적인 근무를
서 저녁쯤 들어오는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생각
했을 때 도대체 몇 세대를 점검할 수 있고, 점검
해보았을 때 이 간주노동시간제가 얼마나 그 자
율은 어느 정도가 되는지, 노동량은 어떻게 되
체로 노동시간을 악화시키는지 알 수 있다. 파
는지 그걸 테스트를 해보자고 했어요. 이전까
업 전 안전점검원들은 사람들이 집에 있을 8시
지는 한번도 사측은 물론 노조에서도 데이터화
반 쯤 담당 구역을 돌고, 대개 빈집일 오후 시간
를 해본적이 없었죠. 전 조합원이 오전 9시부터
대는 집에 돌아가 오후부터 저녁에 이르는 방문
오후 6시까지만 근무를 하기로 했죠. 한달 동
약속을 잡고 오후 근무의 동선을 짰다. 그리고
안 실험해본 결과 점검율이 70%정도 나오더라
오후부터는 사람들이 퇴근해서 집에 있을 저녁
고요. 나머지 30% 가까이의 점검율 부분은 조
시간 대부터 많게는 밤 10시에 이르는 시간까지
합원들이 자기 시간들을 들여서 채우고 있었던
집중적으로 점검을 해왔다.
거예요. 결과적으로 파업을 하게 되면서 다른 국면으로 흘러갔지만, 점검율에 대한 노조의
한편 이 지점은 안전점검원들의 노동을 제
비판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죠.
대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심화된 다. 종종 사측은 비는 시간대에는 쉬고 사람들 이 있는 시간대에 가서 일을 하라고 말하기도
2인 1조 시행 이후 현장의 변화
했다.
2인 1조 시행 이후 조합원들은 근무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1인당 1200 세대를 방
김경희 그런데 중간 비는 시간에 쉰다고 해
문하던 이전보다, 2인 1조로 2060세대를 방문
도 그게 쉬는 건가요? 어떤 고객은 1시에 오라
하는 지금이 방문하는 세대가 두 배 가까이 되
고 하고, 어떤 고객은 3시에 오라고 해요. 그러
어 양적인 강도 자체는 높아졌다. 반면 안전하
니 늘 대기하는 상태로 있는 거죠. 또 오후 시간
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점은 가
대에도 전적으로 휴식을 취할 수도 없어요. 고
장 중요한 변화점이다. 이후로는 문답 형식으로
객들과 방문 약속을 잡고 동선을 짜는 등 끊임
조합원들이 체감하는 현장 변화를 전한다.
없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회사에서는 그 시간들을 인정을 안 하고 있지만요.
노사 간 합의 내용이 ‘탄력적 2인 1조’라고 발표가 되었는데요. 어떤 방식으로 2인 1조가
노조에서는 이 간주노동시간제와 성과제
이루어지고 있는 건가요?
로 인해 조합원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일에 매 여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해 진작 문제의식을 가
이신자 우선 두 명이서 근무를 하는 것이기
지고 있었다. 파업을 시작하기 직전인 작년 4
때문에 노동시간을 9시부터 6시로 정했어요. 2
월에는 전 조합원이 점검율을 맞추기 위해 고
인이 함께 움직이게 되는데요. 모든 세대에 2인
무줄처럼 노동시간을 늘리는 식으로 일하는 게
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방문한 가정에서 여
아니라, 제대로 된 노동시간과 배치를 정하고
성 고객이 나오면 1명만 들어가서 점검을 진행
32
노동자가 만드는
하고 나머지 1명은 다른 가정으로 가는 거죠.
해졌다는 점이 큰 변화예요.
이런 방식으로 운영을 해서 효율적이면서도 미 연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안미선 주로 고객들이 집에 있는 시간인 저 녁시간대에 점검을 하러 가면, ‘고객님 죄송합
안전점검 업무를 어떻게 2명이 할 수 있는
니다. 1분이면 됩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이렇게
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효율적인 방식인 것
비굴하게 들어가곤 했어요. 사실은 고객들이
같아요. 하지만 1명이 소화하는 세대 수 자체는
낮에 집에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개인 시간을 들
많아졌으니 그만큼의 부담은 없으신가요?
여서 저녁에 점검을 하러 다니는 건데도, 항상 우리가 죄인이었죠. 2인 1조를 하고 있는 지금
이신자 저희도 직접 시행해보기 전에는 2인
은 옷을 제대로 입지 않고 문을 여는 고객이 있
1조를 하면 인력도 배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생
더라도, ‘고객님, 옷을 제대로 갖춰입고 나와주
각했어요. 막상 해보니 이전에 인당 1200세대
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라고 안내를 해요.
를 담당했다면, 현재는 둘이 2060세대를 담당
두 명이서 일을 한다는 것이 스스로도 놀랄 정
하니 사실상 큰 차이가 없는 거죠. 몸의 무리가
도로 일할 때의 당당함을 주더라고요.
오긴 하지만 2명이서 일을 한다는 게 훨씬 장점 이 많아요. 제일 중요한 건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여전히 남은 과제는 많다. 가장 중요하게는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특히 성과제를 폐지했다
성과제 폐지와 2인 1조 근무가 올해를 거쳐 제
는 점이 주요한 성과입니다. 15년 넘게 가스검침,
대로 안착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외에도
점검 일을 해왔는데요. 항상 사고가 급할 때 나
감정노동자 보호 매뉴얼을 보급하고 예약점검
더라고요. 정상적인 속도로 일할 때는 사고가 안
을 늘려나가는 것과 같은 다른 합의사항들이
나는데, 마음이 급하고 시간에 쫓기면 그때 사고
1/4분기가 지나간 지금까지 진행되지 않고 있
가 나요. 그러니 안전점검원들을 몰아세우던 성
다. 약속된 합의 내용이 모두 지켜지는 일이 필
과제가 없어졌다는 것도 안전문제에 있어 중요
요하다.
한 변화였죠. 마지막으로 도시가스안전점검원들의 노동 2명이 방문을 하니 아무래도 위험에 대한 대응력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어떤 변화들
환경이 성과제 폐지를 넘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물었다.
을 가장 체감하시나요? 권미순 일하다 아플 때 쉴 수 있도록 인력을 김정희 가장 먼저 물리적으로 안전이 확보
충원하는 일도 필요해요. 지금까지는 병가 사
된다는 점이 중요할 것 같아요. 두 번째로는 혼
용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지 구체적으로 논의
자 근무를 할 때 고객 집에 들어가면 주눅이 들
가 안 되었어요. 2인 1조 근무인 만큼 그런 부분
때가 많았어요. 꼭 성추행 등 위험뿐만 아니라
들이 중요하게 보강이 필요할 것 같고, 이후로
고객과의 트러블이 발생했을 때 회사에서는 무
는 산재 중인 피해자가 복귀할 수 있도록 안전
조건 안전점검원들이 사과하도록 요구했어요.
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일에 힘쓰고 싶어요. 저
특히 고객들이 가스요금이 많이 나왔다고 항의
희가 경험하는 현장변화가 타 센터와 다른 지
할 때 가장 먼저 대면하는 게 안전점검원들이
역 안전점검원들에게도 꼭 전해져 도시가스안
죠. 그로 인한 감정노동도 많았고요. 2인 1조 시
전점검원들이 더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행하고 나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당당
있으면 좋겠어요. 일터 33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노동자 건강권 쟁취, 조금 더 담대하게! 반올림 이상수 활동가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인터뷰 하러 가는 길, 마치 헤어졌던 친구를
저에게 뭘 많이 물어봤어요. 제가 일했던 곳
만나러 가는 길인 것 마냥 들썽거렸다. 5년 넘게
에서 사람이 병에 걸리고, 심지어 죽기까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이하 연구소)와 동고
했으니까요.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몇 번 자문
동락했던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
도 하게 됐죠. 법정 증언도 했어요. 이후 농
킴이)은 올해 1월 말 각자 둥지를 틀게 됐다. 오
성을 하게 되면서 농성장에 직접 가기도 했
랜 시간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해 묵묵히 걸어
어요. 그렇게 인연이 시작됐죠. 안하면 안
온 이들이 독립 공간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아프셨
지난 4월 22일 오후 구로구 반올림 사무실에서
던, 돌아가신 분들을 제가 개인적으로 알았
2017년부터 상임활동가로 일해 온 이상수 씨를
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현장에 대해선
만나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그리고 노동안전보
잘 안다고 할 수 있었죠. 자세히 들여다보니
건 활동가로서의 고민들을 나누었다.
PCB(인쇄회로기판)을 만드는 게 LCD(액정 표시장치) 못지않게 유해하다는 걸 배웠어 요. 중요한 계기가 됐죠.”
반올림과의 만남, 다시 만난 세계 가장 첫 질문으로 반올림에서 상임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상수 씨 본인 역시 삼성전기에서 PCB(인쇄회로기판)를 연구, 개 발하는 일을 했다. 99년에 입사해서 11년 조금 넘게 일을 하고 퇴사했다. 이때의 경험이 상수 씨를 반올림 투쟁에 함께 하게 만들었다.
그곳의 모습이 상수 씨에겐 아직도 선명하 다. 다양한 색깔의 화학물질이 목욕탕 크기의 어딘가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기도 하고, 거대 한 기계들이 돌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소음 등 일단 공장에 들어선 순간 압도된다. 하얀 방진 복을 입고 ‘클린룸’에 들어선 순간 누구나 멍해 지는 걸 느낀다. 기압 자체가 다르다. 온도, 습
“반올림의 이종란 활동가를 만나게 됐는데
34
노동자가 만드는
도, 불빛 등 환경적 요인으로 전혀 다른 세상에
▲ 지난 4월 22일 구로구에 새로 둥지를 튼 반올림 사무실에서 이상수 활동가의 모습. 출처 : 나래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제공한다. 반도체 산업
산업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를 전사회적으로 알
은 '굴뚝 없는 산업'으로 불린다. 환경오염도 없
리게 된 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 씨가 백혈병
고 더불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위험하
으로 세상을 떠난 지 11년, 중재가 시작된 지 4
지 않은 듯한 이미지를 풍긴다. 하지만 올해 2
년 만에 일군 의미가 큰 성과였다.
월 기준 삼성 계열사(전자산업 분야)의 직업성 질환 제보현황을 보면 총 588건, 그 중 사망은 179건에 달한다. 상수 씨가 일했던 삼성전기에 서도 제보가 25건, 사망은 17건에 달한다.
“너무 기뻤어요. 사실 2015년 10월부터 시 작한 농성에 대해서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2015년 10월 7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이 있 는 강남역 8번출구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는
“반올림 운동 그 자체가 인상적이에요. 개인
데 삼성전자, 반올림, 가족대책위가 수용해
적으로 이전에 거쳤던 전업활동가는 아니지
서 만들어진 조정위원회가 열렸지만 삼성전
만 활동가로 살아오면서 이래저래 받았던
자는 조정위 권고가 아닌 자신들이 만든 보
좌절, 상처가 치유되는 기간이기도 했어요.
상위원회로 인해 조정위 권고안을 미루자는
반올림의 운동은 산재피해가족운동이기도
입장을 발표했어요. 저희는 '직업병 피해자
하면서 활동가, 시민, 의사, 법률가, 언론인
에 대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요구
등 각자 자기 몫을 해냄으로서 불가능했을
하며 농성에 들어간 거예요. 2016년엔 삼성
과제를, 다들 버거웠을 과제를 끌어안고 성
전자가 옴부즈만 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어
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노력
요. 이런 과정을 거치며 사회 전체 인식은 삼
을 신뢰하게 됐죠.”
성전자 직업병 문제 해결된 거 아니냐였어 요. 전혀 아니었는데 말이죠.
촛불 투쟁 그리고 희망 반올림과 인연을 맺게 된 이후부터 상임활 동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가장 기뻤던 때가 언
그런데 2016년 11월 말부터 광화문에서 촛
제였는지 떠올려 달라고 했다. 그는 2018년인
불이 벌어지면서 완전히 뒤바뀌었어요. 당
2년 전 삼성전자와 맺은 협약을 떠올렸다. 전자
시 광장에서 황상기 아버님이 중앙 연단에
일터 35
서 연설도 하셨죠. 그때 우리가 맨날 하는 방
내용의 사내 뉴스를 내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진복 다잉 퍼포먼스를 했는데, 사실 사람들 이 되게 낯설어했거든요. 그런데 해가 바뀌 고 연초에 퍼포먼스를 사람들이 알아보고 낯선 이에게 설명도 해주시더라구요. 사람 들이 우리를 알아 봐준다고 느꼈어요. 촛불 을 거치면서 생긴 힘이 농성을 지속할 수 있 게 했고, 그렇게 버틴 힘으로 협상까지 갔다 고 생각해요. 사회 변화에 대한 희망을 다시 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2019년 7월에는 서울반도체에서 대학생 현 장실습생 방사능 피폭 사고가 있었다. 안전장 치가 임의로 해제된 반도체 결합검사용 X선 발 생장치에 손을 넣고 작업을 하다 피폭을 당한 것이다. 이들 역시 현장실습 첫날부터 하루 10 시간 이상 근무한 것이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이 사건은 서울반도체 및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안산·시흥지역 네트워크가 유족과 함께 대응하면서 학교와 업체 측에 사
반올림의 시작은 삼성반도체 백혈병으로
과, 보상, 재발방지 대책 등 합의와 이행을 앞두
사망한 황유미 씨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고, 진
고 있다. 특히 현장실습 나가기 전 안전보건 교
실에 다가 갈수록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님이
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애쓸 예정
밝혀졌다. 황유미 씨 산재 신청을 준비하면서
이다.
미국의 IBM, 타이완의 RCA 공장 등 암으로 죽 어나간 젊은 노동자의 이야기가 한국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08년 본격적으로 반올림 이름을 사용하면서 활동 목표를 ‘직업병과 환경오염이 라는 반도체 산업 세계화에 대한 폭로와 저항’ 으로 설정한 것도 그 까닭이다.
담대함으로 나아가는 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꿈꾸다
”서울반도체 사건은 악랄한 기업의 문제고, 방사선 피폭 사고입니다. 반도체 전자산업 에서 유해화학물질을 주된 주인공으로 얘기 해왔는데 방사선도 등장한 거죠. 게다가 피 해자로 현장실습생까지 생긴 거예요.
저는 대학생도 현장실습을 한다는 걸 이번 을 계기로 알았어요. 고등학생만 하는 줄 알 았거든요. 사실 서울반도체에 노동조합도
최근 상수 씨와 반올림에게 전환점이 된 사
있었지만 노조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조사
건이 있다. 바로 서울반도체의 이가영 씨 산재
결과를 보고 뒤늦게 산재 사고를 알게 될 정
사망과 대학교 현장실습생 방사능 피폭 사고,
도로 회사가 완벽하게 사건을 감추려고 했
그리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어요. 이후에도 서울반도체의 행동은 경악
법률’(이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이다. 이가영
스러웠습니다. 회사는 이가영 씨가 산재 인
씨는 서울반도체에 2015년 2월 입사했다. 그
정받았을 때 그걸 되돌리겠다고 취소 소송
리고 2년 뒤 악성림프종을 진단 받았고, 2018
을 냈어요. 고인이 살아있을 때 그 소식을 듣
년 9월 림프종이 재발됐다. 그는 유해물질에 대
기까지 했고, 결국 돌아가시면서 장례 투쟁
한 교육, 보호조치를 제공받지 못했고 주야 2교
까지 해서 비로소 소송 취하가 됐죠.
대로 장시간 근무했다. 어렵게 산재 인정을 받 았지만 회사는 산재 취소 소송까지 냈다. 게다 가 회사는 올해 1월 14일 직원 잘못으로 사고가
산업기술보호법 개악도 저희에겐 매우 중요
발생했으며 설비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한
한 사건이에요. 개정된 걸 알고 나서 분노와
36
노동자가 만드는
▲ 작년 8월 27일 안산시청 앞에서 '서울반도체 및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건강권 회복을 위한 안산시흥지역 네트워크 발족' 기자회견이 열렸다. 안산시흥지역의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곳이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 출처 : 반올림
허탈이 뒤섞였어요. 노동자의 알권리가 어
정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려운 과정을 거쳐서 간신히 진전이 되는 와
판결했다. 직업병 피해노동자의 산재 입증, 나
중에 누군가 반칙을 써서 바꿔놓은 느낌이
아가 작업장의 안전보건 조치를 사전에 할 수
었죠. 한혜경 씨가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왜
있는데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기업의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냐’는 거에요. 회사 다
영업비밀이라는 주장에 내몰린 것이다. 우려가
닐 때 극기훈련을 가서 나무에 매달려 떨어
현실이 된 것이다. 결국 3월 5일 반올림과 산업
지면 혼나고, 물에 들어가서 숨 차는 훈련을
기술보호법 대책위는 헌법소원 투쟁에 돌입했
받았었데요. 말도 안 되는 복종훈련을 받은
다. 이 싸움은 한국 사회의 노동자 알권리가 얼
거죠. 그런 걸 가르칠 시간은 있었으면서 정
마나 진전될 수 있느냐의 촌각을 다투는 중요
작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
한 싸움이 될 것이다.
해 반드시 필요한 정보는 알려주지 않았던 거죠. 그런 배경이 있어 산업기술보호법 대 응 활동에 특히 한혜경 씨와 김시녀 어머니 가 활동을 열심히 하셨어요. 저는 알권리라 는 건 기본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단지
상수 씨는 마지막으로 노동안전보건 문제 에 대해 훨씬 담대하게, 꿈을 같이 꾸면 좋겠다 고 이야기를 전했다.
일하는 사람에게만 공개하면 되는 문제인가 싶어요. 당연히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 2018년 김용균 죽음
청소년, 청년들에게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이후 한국사회의 안전에 대한 감수성 자체
까요.”
가 바뀌었다고 봅니다. 지금은 이전의 성과 를 기반으로 담대한 진전을 할 수 있는 조건
반올림은 개정 산업기술보호법이 유해물질
이 마련된 것 같아요. 노동안전보건 문제가
에 대한 알권리, 사업장의 유해환경 공론화할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가 됐다는 것은 전체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
사회 운동 속에서 유기체적으로 놓일 수 있
다. 실제 개정법 시행 바로 이틀 전 2월 19일 서
다는 것 아닐까요. 함께 성과를 만들어 나가
울행정법원은 ‘작업환경보고서 일부 비공개 결
면 좋겠습니다.”
일터 37
상공인들의 노동을 찾아서 : 청계천 사람들의 노동을 기록한 작가들의 사진 최혁규 문화사회연구소
노동자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 가? 우리는 노동자를 어떻게 상상하는가? 지
를 사진 이미지로 기록해 보여주고자 할 때 흔 히 취하게 되는 전략이다.
금까지 우리 사회는 노동자를 어떤 방식으로 문화로 읽는 노동
재현해왔는가? 노동자를 기록한 대부분의 사 진은 노동 현장을 포착하거나 노동자들이 연
노동자에 대한 지배적인 재현과 상상
대하여 투쟁하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전자든
노동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르포르타
후자든 포토제닉한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 노
쥬의 목적으로 찍은 사진부터 예술 작품으로서
동자의 손과 얼굴 표정 그리고 땀을 사진적
촬영된 사진까지, 일상적인 삶을 포착한 사진
표현의 중심에 놓곤 한다. 이를 통해 투박하
부터 투쟁의 모습을 담은 사진까지 다양하다.
고 강인한 노동자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일종
대표적으로는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출간한
의 숭고미를 그려낸다. 이는 비단 노동자라는
『사진과 함께 보는 노동자역사 알기』에 수록된
대상을 다룰 때만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행위
사진들이 있다. 이 사진집은 노동자들의 투쟁
▲그림 . 『사진과 함께 보는 노동자역사 알기』(노동자역사 한내, 2015, 한내), 『연장전: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노순택·박점규, 2017, 한겨레 출판), 『어제와 오늘 2』(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 2007, 눈빛).
38
노동자가 만드는
을 기록한 사진들을 집대성한 자료로서, 노동
성격 때문이다. 이러한 소상공인들은 우리의
운동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시적으로
일상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식당과 카페 같은
살펴볼 수 있다. 노순택이나 정택용 같은 작가
곳에서부터 시장의 상점이나 공방과 공업소
들의 사진은 노동자들의 일상과 노동자들의 투
같은 곳들까지 다양하다.
쟁 현장에 밀착해 예외적인 일상 속에서 발생 하는 사건과 그들의 희비를 포착한다. 또한 20
하지만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주요 담론에
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과 눈빛출판사가 출간한
서 소상공인들의 문제는 중요한 쟁점이 되지
사진집은 일반적인 민중들의 생활을 담았다.
않는다. 물론 정부는 필요시 소상공인들을 항 정작 이들이 처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살펴보기에 충분하지 않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정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노
공장 자동화를 도입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을
동자 운동은 소상공인의 애매한 계급적 위치
지향하는 포스트포드주의로 전환되었고, 노동
때문인지, 아니면 노동조합법 바깥에 있기 때
력에 이어 인간의 생각과 감정도 교환될 수 있
문인지, 이들을 노동운동의 주체 혹은 노동운
는 상품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노동은 육
동에 연대하는 주체로 인식하지 않는다. 임금
체노동과 지적노동 그리고 감정노동 등 다양한
문제만을 두고 본다면, 소상공업 사장과 노동
방식으로 세분화되었고, 노동을 구획하는 시공
자는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간적 경계도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 경제가 대기업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는 점에서 소상공인들은 착취와 수탈에 노출
상황이 이렇다면, 노동자에 대한 상상과 재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노동을
현은 기존의 공장 노동자의 형상에서 그 이상으
다룰 때 이들의 노동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의 노동 현실을
다. 그러한 점에서 보자면, 이들은 노동문제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언어를 발명하는 일도 중
에 있어서 어디에도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요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는 자들이다.
있는 이미지들을 기록하거나 우리가 놓쳤던 노 동의 역사적 이미지를 발견할 필요가 있다. 청계천 일대 상공업, 그곳에서 포착한 삶으 로서의 노동 어디에도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소상
이들의 모습과 역사를 볼 수 있는 대표적
공인의 노동
인 공간은 서울의 주요 상공업 지역인 청계
소상공인 집단의 계급적 위치가 모호하기
천 일대이다. 청계천 일대는 서울 도심 한복
때문일까? 소상공인 혹은 소상공업 노동은 제
판에 위치한 중심업무지구이면서 역사적으로
대로 다뤄진 적이 없는 것 같다. 대개 소상공인
오래된 상공업 지역이다. 이 지역의 근현대적
은 혼자서 일하거나 한두 명의 직원들을 둔 채
형성은 전후 도시빈민들의 역사와 함께 한다.
일하고, 한 사업체의 경영자이지만 동시에 노
6.25 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청계천변에 판자
동자로서 쉬는 날 없이 일한다. 그리고 업체에
촌을 형성해 살기 시작했고, 이들은 넝마 줍
고용된 임노동자들은 때로는 사장 이상으로 업
는 일을 하거나 불하된 식민지기 물품이나 미
체 경영에 신경 써야 하는 위치에 처하기도 한
군부대에서 나온 군수품 등을 변형하거나 분
다. 일종의 소규모 업체가 가진 운명공동체적
해해 파는 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들에게
일터 39
잊혀진 상공업 노동자들의 모습
상 국가의 중요한 경제적 주체로 호명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로 노동의 풍경을
문화로 읽는 노동
▲ 그림 . 『다시 보는 청계천 1965-1968』(구와바라 시세이, 2017, 청계천박물관), 『노무라 리포트: 청계천변 판자촌 사람들 1973-1976』(노 무라 모토유키, 2013, 눈빛), 『청계천 사람들: 삶의 투쟁의 공간으로서 청계천』(최인기, 2017, 리슨투더시티).
노동은 생존과 직결된 삶 그 자체였다. 1960년
했다. 이렇게 담아낸 사진은 그 누구도 기록하
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판자촌 강제 철거에도
지 않았던 청계천 사람들의 노동을 찍은 역사적
불구하고, 노점에서 시작된 상공업 행위는 점
증거물이자, 도시빈민과 상공인의 삶을 증명하
차 주변 주거 지역으로 확산되어 지금과 같은
는 투쟁의 무기였다. 이는 현재 청계천·을지로
광범위한 상공업 상권을 만들었다. 이 상권은
일대 재개발 반대 투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청계천을 따라 신설동과 황학동 일대에서 동 대문을 지나 을지로입구까지 길게 이어진다. 과거의 기록이자 다가올 미래를 향해 있는 일찍이 청계천 일대의 도시빈민과 상공인
이미지
에 주목한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은 청계천
노동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지만, 우리가 노
주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
동을 기록하고 표현하고 상상하는 방식은 꽤
졌다. 1960년대 중순의 청계천 일대의 모습
단순하다. 청계천 사람들을 찍은 사진들은 우
에 주목했던 일본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구
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노동의 모습을 담고 있
와바라 시세이, 1970년대부터 청계천 일대에
다. 이 사진들은 그 동안 우리가 노동을 이야기
서 사역하면서 도시빈민들의 삶을 기록한 목
할 때 잘 떠올리지 않았던 소상공인들의 노동
사 노무라 모토유키,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이다. 또한
정치인이자 빈민운동가였던 이원 故 제정구,
플랫폼 노동자, 긱(gig) 노동자 등 노동의 형태
80년대 말부터 청계천을 따라 걸으며 이 일
가 점차 파면화되고 다양해지면서 노동자를 상
대의 상공인들을 기록한 사진작가 이한구, 청
상하는 다양한 방식을 고안해내야 한다. 그러
계천 일대 상공인들의 노동과 투쟁을 기록한
한 점에서 청계천 사람들의 노동을 기록한 작
빈민운동가이자 사진작가인 최인기 등이 있
가들의 사진은 과거의 기록이지만 다가올 미래
다. 어떤 이는 청계천 도시빈민들의 삶을 개
를 향해 있는 이미지이다. 어쩌면 이 사진들은
선하고자 노력했고, 어떤 이는 개발이라는 명
청계천 사람들의 현실을 기록하기 위해서만이
목 하에 강제 퇴거의 위기에 놓인 청계천 상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찍혔는지도 모른
공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기도
다.
40
노동자가 만드는
사진으로 보는 세상
▲ 지난 4월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진행되었던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 출처: 호나라
일터 41
코로나19 대응시 근로자건강센터가 노동자 건강을 지켜줄 수 있을까?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강충원 후원회원, 서울서부근로자건강센터
코로나19 대응 과정은 “방역저지선이 뚫
기사, 자동차 정비업체, 분진노출 사업장 등에
렸다”, “전사, 영웅” 등의 단어부터 재난 극복
산업용 마스크를 전달하고 방역수칙을 전하는
을 위한 총동원 체제, 고양된 어조로 전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손씻기는 물론 방진
뉴스속보 등은 흡사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용 마스크 착용을 꺼려하던 분들이 이번 기회
전쟁과 같은 재난은 일상을 잊게 만들고, 상
로 보호구 착용이 일상화되는 변화가 생겼다.
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았던 ‘노동자’, ‘노동’이
소규모 사업장의 보건관리를 한다는 체면은 세
라는 단어는 자취를 감춘다. 필자가 속한 서
운 것이다.
울서부근로자건강센터를 찾아오는 노동자분 들의 발길 또한 끊어졌다. ‘사회적(물리적) 거
청도대남병원 정신과 폐쇄병동과 A보험회
리두기’로 인해 예정되었던 안전보건교육과
사 콜센터에서의 코로나19 집단감염은 환자로
운동교실, 집단상담, 찾아가는 이동상담이 모
서의 인권뿐 아니라, 노동자로서 건강하게 일
두 취소되었다. 국가적 재난에 모든 공공기관
할 권리와 아플 때 쉴 권리에 대해서 다시 고민
의 의료진들과 정신보건요원, 자원봉사자 등
하게 만든 사건이다. 2015년 우리는 메르스를
이 함께 동원되어 코로나19의 위험에 대응하
경험하면서, 서울삼성병원과 같이 큰 병원도
고 있지만, 내방과 출장 없이 멈춰버린 근로
감염관리가 되지 않으면 더 위험한 감염의 진
자건강센터(이하 근건센)는 위기에 대응하는
원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의료시스템
공공기관으로서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다. 안
을 민영화하는 것으로는 감염위기상황에 제대
전보건공단과 계약한 실적목표 이외에는 공
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 전반
공기관으로서 역할이 없는 만큼 책임도 없는
의 감염위기상황에서는 반드시 공공의료가 필
민간위탁사업이기 때문이다. 근로자건강센
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당시에는 병원이송노
터가 21곳이나 있지만, 그림자처럼 멈춰 있었
동자, 보안노동자 등 서울삼성병원이라는 대기
다. 그래도 50인 미만 사업장 중 ‘우리회사 주
업 원청에서 관리되지 않던 수많은 병원의 비
치의’ 관계를 맺은 사업장, 센터와 연결된 돌
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메르스 감염으로부터
봄노동자, 이동노동자, 항공 관련 업종, 문래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동 철강단지의 소공인 사업장, 대중교통 운전
근건센에서도 이전까지 3~4개의 콜센터사업장
42
노동자가 만드는
직원들의 심리상담을 지원하고 있었음에도, 조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일이 더
밀한 책상배치와 아플 때 쉬지 못하는 노무관
많아진 사업장도 있다. 52시간 근무제가 정
리 등 열악한 노동환경이 상담사들의 감염위험
착될 겨를도 없이 마스크 생산업체가 24시간
을 키울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없었다. 사업장
비상가동을 시작했다. 마스크 생산량 확보를
의 보건관리가 기초서비스 제공에만 그쳐서는
위해 정부는 사업체들에 추가고용지원금을
안 되고,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권 회복이 함께
제공했고, 근건센은 생산업체의 건강관리 긴
고려되어야 함을 재확인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급지원을 담당하기로 했다. 기존보다 몇 배를
재난지원금, 고용유지지원금 등 생활유지를 위
더 생산하게 된 노동자들은 피로누적과 과로,
한 논의와 더불어, 아프면 쉴 수 있도록 상병수
수면문제, 근골격계 문제를 겪기 시작했을 것
당제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은 참으로 다
이다.
행이다. 그러나 근건센 지원의 문제점은 사업주 요청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물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건강문제보다 실직문제
량확보가 중요했고, 정부의 눈치를 보는 사업
가 더 큰 고민인 노동자들도 있다. 서울·서울서
주의 납기일을 맞추기 위한 노력에 노동자 건
부 근건센 2곳에서 서울시교육청 산하 학교보
강을 관리한다는 구호가 허공으로 사라져버
건진흥원 소속의 학교급식종사자들의 작업환
렸다. 일부 지역에서 마스크제조업체의 건강
경개선과 보건관리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그
지원을 나갔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업장
동안 학교가 교육서비스업으로 분류되어 보건
과 근건센이 연결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관리가 이뤄지지 않다가, 2017년 학교급식소는
소규모사업장, 취약작업환경사업장, 건강실
“기관내구내식당업”이라는 유권해석으로 현재
태조사 고위험 사업장 등 이름도 어려운 서비
는 산안법이 적용되어 각 학교별로 급식설비의
스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한
개선과 함께, 건강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조리
사업장과 노동자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한 것
종사자의 직위도 교육공무직으로 변경되었지
같은 씁쓸함이 남는다.
만, 여전히 방학 기간에는 무급이다. 이번 코로 나19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며, 사실상 임금을
우리는 어쩌면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
받는 일자리가 사라진 상황이다. 이전에는 2달
을 시작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정도의 방학, 즉 실업 기간에 근건센에서 아픈
또 다른 판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사업장의 감
몸을 쉬면서 재활운동과 건강관리를 받는 분
염관리체계를 점검하는 게 중요하다. 고위험
들도 계셨는데, 개학이 연기되면서 보건관리사
사업장에 대한 실적 중심의 예방관리체계에
업도 함께 연기되었다. 5월부터 개학하기로 된
서 벗어나 급작스런 위험상황에도 잘 대처할
것은 다행이지만, 교육청에서 발표한 개학 이
수 있는 노동조건과 작업환경 조성과 공공보
후 학교급식 운영방안은 여전히 조리종사자들
건 지원체계 확립의 필요하다. 이러한 사회적
의 업무부담 증가와 감염관리, 환기관리 대책
전환 가운데서 공공서비스 제공기관으로서
이 부족하다. 인력충원 없는 부담 증가가 미치
근건센 또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는 정신적, 신체적 건강 영향, 급식종사자의 건
기대해본다.
강이상 발생 시 유급병가 부여와 대체인력 확 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일터 43
코로나19 대응시 근로자건강센터가 노동자 건강을 지켜줄 수 있을까?
건강할 권리와 함께 일할 권리도 중요하다.
일터에서 자존감 살리는 방법, 평등한 조직문화 만들기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
유상철 노무사, 노무법인 필
요즘 서점에 가면 ‘자존감’에 관한 책이
것이다. 함께 제주도에서 생활하면서 나무 의
한 코너를 차지할 정도로 수없이 쏟아져 나오
자를 만든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의자를 열심히
고 있다. 코로나19로 우울감과 피로감이 심해
사포질하던 중 이효리씨가 보니, 이상순씨가
지고 있어서 그런지, 가족끼리 상처주지 않고
의자 밑 부분까지 최선을 다해 사포질을 하고
서로의 자존감을 살리기 위해 ‘1절만 하기’,
있어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한다. “왜 보이
‘인정할건 인정하기’, ‘생색낼 건 생색내기’
지도 않는 부분을 그렇게 열심히 사포질을 하
등 자존감 살리기 프로젝트도 진행 중에 있다
냐?” 그러자 “보이지 않아도 이 부분이 제대로
고 한다.
마무리 되지 않은 건 내가 알잖아”라고 대답했 다고 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타인의 시선에서
‘자존감’이란 자신에 대한 존엄성이 타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도 나의 시
들의 외적인 인정이나 칭찬에 의한 것이 아
선으로 꼼꼼하게 챙겨나가는 모습이 곧 자존감
니라 자신 내부의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
을 살리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해 얻어지는 개인의 의식을 말한다. 즉, 자신 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존감은 자
그러나 내 생각과 나의 시선만으로 자존감
신의 능력과 한계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과
을 지킬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자
관련된다.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
존감’은 타인들의 외적인 인정이나 시선에 직
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자존감이
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 때문에 일터에서의
있다는 말은 인생의 역경에 맞서 이겨낼 수
환경이 중요하다. 자존감이 훼손당하지 않기
있는 능력이 있으며 자신의 노력에 따라 삶에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터에서 상호 존중하고 배
서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는 믿음, 일종의 자
려하는 조직문화가 필수적이다. 예컨대, 업무
기 확신이 있다는 의미다.
를 수행하다가 실수를 할 수 있다. 실수를 반복 하지 않도록 알려주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자존감’과 관련하여 TV에서 접했던 이야
고쳐나가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존감에 상처를
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효리씨가 한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실수에 대해 비
예능프로그램에서 이상순씨에 관해 말했던
난과 모욕을 가하고 인사권을 남용하는 등 작
44
노동자가 만드는
▼ 출처: pixabay
가량 이상체중감소, 불면 등으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병원에 입원하였고, 재해자가 입 원한 사이 근무지와 담당업무를 변경하는 인 사 조치를 단행하였다. 재해자 입장에서는 관 례적으로 실시하였던 근무지 변경 전 협의조 차 없이 입원으로 출근하지 못하였던 기간 중 갑작스럽게 근무지를 변경한 상황에 대해 제 초작업을 하는 허드렛일을 하라는 것으로 받 아들였다. 인사발령 된 근무지로 출근한 지 3 일 만에 재해자는 사업장 내에서 업무시간 중 목을 매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아직 접수 전 이라 업무상 재해 여부가 결정된 사건은 아니 지만, 사회적 신분 변경 후 발생한 각종 차별 과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사용자의 인사재량
에 큰 상처가 남을 수 있다.
권 남용 행위와 업무상 스트레스 사이 상당한 업무관련성이 인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진행하는 사건은 사회적 신분(고용형 태)이 변경된 후 다양한 차별을 경험하면서 업
매번 극단적 선택의 사건을 접할 때마다
무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허드렛일을
동일한 패턴을 발견한다. 업무와 관련된 불
시키고자 근무지와 담당업무를 변경하는 등 업
안, 우울, 자괴감, 모욕감 등 스트레스 요인을
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자살)한 사건이다.
해소할 수 있는 시간과 계기가 충분히 있었음
재해자는 용역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 된
에도, 모두가 이러한 상황을 무시한 경우 극
후 19년 6월 3일 정년퇴직하였다. 그리고 같
단적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왜 알아차
은 해 7월 1일부터 기간제로 재고용되었다. 정
리지 못하고, 챙기지 못했을까하는 안타까움
년퇴직 전 팀장으로 근무하였고 5개의 자격증
이 든다.
을 보유하고 있어 3개 분야 안전관리자로 선임 되었던 만큼 업무수행 능력을 인정받았던 상황
자존감이 약한 경우엔 자기 본 모습과는
이다. 그러나 불과 기간제로 전환된 후 4개월이
별개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전전긍긍하게
지난 19년 11월 실시한 근무평가에서 47점(불
된다.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열등감이 심
량등급)의 평가결과를 받았다. 내부적으로 항
해지기도 한다. 일터에서 자존감이 훼손되는
의도 하였지만 사용자의 인사권이라는 점에서
것은 직급체계, 조직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
부당한 결과를 수용하기로 하였다. 이 때부터
다. 이 때문에 혼자 힘으로 자존감을 지탱하
불안, 우울 증세가 심해져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권한이 있
약물 치료를 받았다.
고 높은 직급에 있더라도 또는 권한이 없고 낮 은 직급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지위고하
나중에 재해자는 불량등급 평가에 따른 모
를 막론하고, 상호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
욕감과 자존감 훼손에 대해 상당한 분량의 메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모를 남겼다. 다양한 형태의 직장 내 괴롭힘과
중요하다. 코로나19로 피로감이 극심해진 일
업무상 갈등이 지속되는 사이, 재해자는 4~5㎏
터에서 자존감을 살리는 방법을 찾아보자.
일터 45
일터에서 자존감 살리는 방법, 평등한 조직문화 만들기
장 내 괴롭힘으로 이어진다면, 개인의 자존감
항문질환
장영우 선전위원장, 내과의사
흔히 부끄러운 병이라 여겨 병원 가기를
항문의 기능과 구성요소
꺼려하는 경우가 많은 질환들이 있습니다. 항
대장은 소화된 음식물에서 수분과 전해질
문질환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항문질환
을 흡수하는 기능을 하고 있고, 항문은 소화기
은 고대 히포크라테스 시대에서도 기록이 있
관의 마지막 부위로 변의 저장과 배출을 적절
을 정도로 인류를 꾸준히 괴롭혀왔습니다.
하게 조절하는 기능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항 문은 항문연(항문과 주위 피부의 경계)과 치상
노동자 건강 상식
국내에서도 경제수준의 향상과 식생활 의 서구화 등으로 대장암, 염증성 장질환, 과
선(dentate line, 항문과 직장의 경계)사이를 말 하며 길이는 약 2.5cm~3cm 가량입니다.
민성장증후군 등의 대장항문질환이 증가하 고 있는 추세에 있습니다. 필자가 내과의사인
항문에는 괄약근이 존재하며, 이는 내괄약
지라 항문질환 환자를 직접보진 않기 때문에,
근과 외괄약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괄약
널리 알려진 수준에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근은 자율신경의 지배를 받으며 대변과 가스배 출 시 이완되면서 항문을 열리게 하고 평상시 에는 의식적으로 항문을 조이지 않아도 닫혀있 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외괄약근은 체성 신경
▲ 항문의 구조. 출처 :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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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의 지배를 받아 내 의지대로 항문을 수축하고
항문주위는 딱딱한 대변이 통과하기 쉽게
이완할 수 있게 하며 의식적으로 대변이나 가
혈관조직이 풍부한 일종의 쿠션이 마련되어
스배출을 참을 수 있게 해줍니다.
있습니다. 치질이라 흔히 불리는 치핵은 항문 안쪽의 정맥이 확장되고 그 정맥을 둘러싼 피
항문은 태생학적으로 장을 만드는 내배엽
부점막(쿠션)이 같이 늘어나서 생긴 덩어리를
과 피부를 만드는 외배엽이 만나서 형성되는
말하며, 심해지면 그것이 항문 밖으로 나오는
데, 그들이 만나는 부위인 톱니모양의 치상선
것을 말합니다.
을 경계로 상부 2cm는 직장에서, 하부 2cm는 피부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네 발로 움직이는 동물들은 심장과 항문 의 높이가 비슷하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지만, 직립보행하는 인간의 경우 심장과 항문의 높
3대 항문질환
이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압력의 차이로
치상선의 위(몸 쪽)는 자율신경의 지배를
애당초 치질이 생기기 쉽습니다.
받아 통증에 둔감하나 아래(바깥쪽)는 체성신 경의 지배를 받아 통증에 예민합니다. 그러므 치핵의 원인과 종류
지 않으나 치상선 아래에 생기는 외치핵은 통
치핵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변비인데,
증을 심하게 느끼게 됩니다. 치상선 근처에는
변비가 있으면 배변 시 무리한 힘을 주게 되
10여개의 항문선이 있는데 여기서는 미끌한
고 이는 직장 정맥압의 상승으로 이어져 치
항문점막액을 내보내 대변이 잘 배출되게 도와
핵이 잘 생깁니다. 그리고 임신후기에 이르면
줍니다. 이 항문선에 세균이 침범하여 염증을
복압이 늘어나게 되고 이로 인해 직장 정맥이
일으키면 치루와 항문주의 농양을 유발할 수
압박을 받게 되므로 치핵이 잘 생깁니다. 그
있습니다.
외에도 간경화나 복부종양 또는 직장암 등에 의해 혈액순환이 나빠지면 항문 끝에서 정맥 의 흐름이 차단되어 항문 정맥의 압력이 올라 가게 되고 결국 정맥이 부어오르게 되어 치핵 이 잘 발생하게 됩니다. 치핵환자들은 흔히 항문출혈 증상을 보고 의료기관을 방문하는데, 선홍색의 맑은 피가 변을 본 후에 ‘뚝뚝’ 떨어지는 양상으로 나오 면 대부분 이 질환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내치핵과 외치핵, 치상선을 경계로 분류. 출처 : https://www.sclhealth.org
하지만 항문출혈이 있다고 다 치핵은 아닙니 다. 대장암에서도 항문출혈이 생길 수 있고 궤양성대장염과 같은 염증성 장질환이나 아
항문에 발생되는 흔한 질환으로서는 치핵,
스피린 등의 약물에 의해서도 항문출혈을 발
치열, 치루(농양 포함)를 3대 항문질환이라고
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문검사에서도 출
하며 이 중에서도 치핵(치질)이 80%정도로 제
혈의 원인을 찾지 못하면 대장내시경을 해야
일 흔합니다.
합니다.
일터 47
항문질환
로 치상선 위에 생기는 내치핵은 통증이 심하
노동자 건강 상식
▲ 내치핵의 단계. 출처 : https://bilal-piles-clinic.business.site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치핵은 치상선 위/
보존적 치료 또는 증상 치료에 효과가 없고 3
아래에 생기느냐에 따라 내치핵과 외치핵으
도 이상의 치핵으로 손으로 밀어 넣어야 들어
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내치핵은 진행정도에
갈 정도로 진행한 경우,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
따라서 1도 치핵부터 4도 치핵으로 분류합니
는 경우에는 외과적인 수술을 하는 것이 좋습
다. 1~2도의 치핵은 비교적 가벼운 상태인 반
니다.
면, 3~4도의 치핵은 배변 시 치핵이 밖으로 나와 손으로 밀어 넣어야 들어가거나 잘 들어 가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치핵 치료법 치핵은 적합한 치료 방식으로 치료하면 100% 완치가 가능하나 증상과 정도에 따라 방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경도의 치핵은 비수술적 요법 등으로 증상을 경감시킬 수 있 습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변비나 설사 가 생기지 않도록 섬유질을 풍부히 섭취하며, 온수 좌욕으로 호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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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사진으로 보는 세상
▲ 지난 5월 1일, 130주년 노동절(메이데이)에 진행했던 <코로나 19 비정규직 긴급행동> 세종문화회관 앞 집회 현장. 출처: 5.1 비정규직공동행동
일터 49
조직의 변화가 정말 가능하다고? 『조직의 재창조』. 2016. 프레데릭 라루 지음. 박래효 옮김. 생각사랑. 임재우 향남공감의원 원장
반대쪽에 있다고 생각하는 ‘조직’이, 바로 인간 의 진화, 의식의 발달 단계와 동일하게 구성된
발칙 건강한 책방
다고 써놓다니요!
적색에서 청록색까지 저자에 따르면, 충동을 상징하는 적색 의식 구조에서는 두려움을 주는 권력에 기반한 적색 조직이 만들어집니다. 순응의 호박색에서 위계 적 피라미드 구조의 호박색 조직이, 성취의 오 렌지에서 실력주의에 기반한 오렌지 조직이, 다원주의에 기반한 그린 의식에서는 가치공동 체적인 그린 조직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그 리고 그 다음 단계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청록색” 의식과 조직인데, 그 내용이 워낙 풍 부해서 간단명료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 ▲ 출처: 알라딘
다. 우선 책의 전체 내용을 아주 거칠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겠네요.
조직의 재창조. 조직을 다시-만들기. 책을 처음 펼칠 때에는 요즘 유행하는 고만고만한
“청록색 의식에 기반하여, 자기경영, 전인
자기계발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성, 진화적 목적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진 청
지레 짐작하고 있었나봅니다. 웬걸요, 몇 페
록색 조직을 만들고 운영함으로써, 개인, 조직,
이지 넘기지도 않았는데 ‘이 책은 뭔가 다른
사회가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고, 인간성이 가
데?’ 하고 놀랐습니다. 우리가 보통 ‘개인’과
득 찬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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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청록색의 특징
가지 색깔로만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여기서 청록색 의식은, 에고에 끌려가지 않
설명합니다. 하지만, 곧 다가올 제로성장, 대
으면서, 내적 올바름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고,
안소비, 산업구조 재편 등의 사회변화에 대해
우리의 잠재력을 믿고, 역경을 지혜롭게 넘어
서 언급하면서, ‘당신의 조직은 어떻게 할 것
서면서, 인생을 살아가기 등으로 표현됩니다.
인가요?’라고 물어보는 것 같은 책의 마지막
명상수련이나 마음챙김, 자기성찰 등을 접해본
부분은 청록색 조직이라는 대안에 대해 다시
사람에게는 익숙할 수 있겠습니다만, 처음 이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네요.
런 표현들을 접하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소 추상적인 이런 의식단계를 실 제 조직의 운영에 직접 반영하여 관찰하고 있 다는 것이 이 책의 흥미로운 점입니다.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인가 사실 이 책은 생각보다 두툼하고, 많은 사 례와 의미들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어서, 읽 기에 쉬운 책은 아닙니다. 그리고 책에서 말
조직의 특징으로 자기경영, 전인성, 진화적 목
하는 청록색 조직을 실천하는 것도 쉽지만은
적을 제시합니다. “자기경영”은 자신과 동료와
않을 것 같고, 저자도 강한 의지와 많은 에너
의 신뢰관계에 기반한 시스템에 의한 조직운
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
영, “전인성”은 조직에서 내적 전인성을 회복하
자가 제시하는 여러 가지 사례들도 구체적인
도록 하는 관행, “진화적 목적”은 조직이 자체
연습과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해 보입니다.
의 생명력과 방향감을 갖도록 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하지만, “회의에 쏟는 에너지 낭비 줄이 기”, “시의적절한 의사결정”, “갈등해결 메커 니즘” 등의 말들은, 조직에서 속한 누구라도
여전히 남는 현실적인 고민들
솔깃하지 않을까요? 저자가 여러 조직형태의
이렇게 짧게 정리하면 역시 다소 추상적이
밝은 점과 어두운 점, 청록색 조직의 원칙과
라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오히려, 저자는 실
방향성까지 꼼꼼하게 적어주고, 책 중간 중간
제 조직-기업들에서 일어난 사실들에 대한 관
과 부록에는 친절하게 요약정리까지 해주고
찰에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
있으니,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책 어
미 현실에 존재하는 사례들을 다양하게 연구하
느 부분을 펴서 읽어보더라도 ‘어, 이런 거 괜
여 청록색 조직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내어
찮은데? 이렇게 해볼 수 있을까?’ 하고, 작은
놓는 것이지요. 그래서 기업구조에 대한 자세
실천에 대한 호기심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
한 관찰과 설명은 나에게 더 신선하게 다가오
런 책을 접할 때 코웃음 치게 되는, ‘이런 게
기도 했습니다. 기업의 CEO와 이사회, 일하는
가능해?’ 라는 우리 속마음에 대한 저자의 대
사람들이 청록색 조직에서 각각 어떤 역할을
답을 한번 들어보세요.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청록색 조직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 찬만 반복하지도 않습니다. 적색부터 그린에 이르는 조직에 대해서도, 각각의 색깔이 필요 한 순간들이 있으며, 어떤 개인이나 조직을 한
일터 51
조직의 변화가 정말 가능하다고?
저자는 이런 청록색 의식이 반영된 청록색
일터를 살아내는 말들, 『임계장 이야기』
최영철 후원회원, 서울근로자건강센터
기는구나.’ 만남이 이렇게 시작되면 대화랄 것 도 없이 모두가 아는 판에 박힌 조언을 늘어놓 고 건강상담 한 건이 마무리된다. 이런 대화 전 개를 피하려면 많은 이야기가 오가야 하고, 이 이러쿵 저러쿵
야기 가운데서 삶을 엿볼 수 있어야 한다. 사는 얘기라는 게 어떤 상황을 경험한 자신 만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에 대한 것이기에 이 를 쏙 빼놓고 주고받는 상담의 말들은 서로에게 전달되기보다는 공중으로 휘발되기 일쑤다. 드 물게 관심과 신뢰가 형성되면 어디에 쌓아 두 고 있었는지 무수한 이야기를 쏟아 놓고 대화가 잘 풀리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면 사람들이 자 기만의 길고도 풍성한 스토리를 이미 가슴 속에 써놓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안에는 내가 준비해 간 대화 주제인 ‘보호구’나 ‘야간작업’이 라든가 ‘흡연’이나 ‘뱃살’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 출처: 알라딘
일터로 찾아가 건강상담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듣고 말하는 일이 업인지라 마주 앉아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가 늘 고민이다. 기계적으로 혈압 재고 혈당 검사하면 검사받는 사람도 상대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나를 혈압, 혈당으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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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주제들은 사는 이야기의 복잡한 얼개 안에 있기에 따로 뽑아내 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자기만의 스토리를 자기 언어로 말하면서 이미 상담자가 전달할 수 있는 내용, 아니 전달할 수 없는 내용 마저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사 는 이야기를 기꺼이 풀어 내주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지만, 흔히 누릴 수 있는 호사는 아니다.
시간에 쫓기고 호젓한 공간이 없는 것도 문제이
재원을 이야기하지만, 그 무수한 말들은 문제
지만, ‘기관’에서 나온 낯선 이들과의 간헐적인
를 겪어내는 당사자의 말이 아니다. 그래서 자
짧은 만남에서 오가는 언어라는 게 늘 납작해지
주 법과 정책과 예산은 문제를 겪는 이들의 이
기 십상이다. 그래서 말을 나누면서도 말이 고
야기를 비켜가고 해결은 여전히 난망하다.
픈 적이 많다. 그래서 저자의 작업에 감사한다. 희소한 말들, 말하기 어려운 말들을 해주셔서 감사한
직접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그 경험의 방대한 양
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 주셔서 감사
과 다채로움에 비해 터무니없이 희소하다. 출간
한다. 글쓰기는 작가가 세계와 관계를 맺는 과
직후 『임계장 이야기』를 하루빨리 읽고 싶었던
정이고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도 그런 희소함에서 비롯되는 갈증이 아닐까
과정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경험에 관해 쓴다
싶다. 『임계장 이야기』는 자신의 경험과 능력
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라는 것
도, 선의와 근면도, 권리와 신념도 부정당하는
을 경험적으로 안다. 겪어낸 것들을 대면해야
일터의 하루를 기어코 살아내는 이야기이다. 멀
하고 차근차근 복기해야 한다. 동반되는 마음
찍이 물러앉은 무책임한 관리자들이 떠넘긴 현
과 몸의 힘겨운 반응도 재경험해야 한다. ‘자
장을 제일 큰 책임감으로 아끼고 보살펴 자신의
신의 언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언어 자체가
일터이자 자신의 세계로 만들어낸 이야기이고,
충분치 않아서 쓰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았을
그 세계로부터 너무 쉽게 쫓겨나는 이야기이다.
것 같다. 그리고 말해지지 못한 다른 말들이
모욕의 총알받이 역할과 ‘임계장’이라는 멸칭과
더 많이 말해지기를 빌어본다.
멸시를 하나하나 겪어낸 이야기이다. 직접 경험 한 이야기이고, 그 노동을 살아내는 말들이며,
일터에 찾아가서 먼저 말을 청하는 사람
그래서 자기 삶을 지어내는 말들이다. 이러한
은 언제나 나 같은 상담자인 경우가 많다. 『임
말들이 희소한 이유는 사람들이 ‘할 말을 잃게
계장 이야기』는 반대로 먼저 말을 건넨다. 책
만드는 현실 속’에서 말할 권리도 주어지지 않
은 현장을 고발하는 말들에 멈추지 않고, 한계
기 때문이다.
에 선 노동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말들에 머물 지 않는다. 자신이 사는 세계를 구석구석 보여
임계장은 버스회사에서 부상당한 후 자신
줌으로써 독자에게 응답을 청한다. 타인의 고
을 대하는 상무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고, 아파
통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공감
트에서는 ‘말로는 통하지 않아 목숨으로 대항한
이나 응원이 너무 손쉽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다’며 투신한 경비원의 뉴스를 듣는다. 말할 수
것은 그 불가능함 때문일 것이다. 이해 불가능
있는 권리가 주어질 때는 노동부 장관이 중심에
함은 그러나 고립과 단절을 당연시하는 알리
놓인 ‘애로사항 청취’였으며, 말하도록 강요받
바이가 될 수는 없다. 고통을 살아내는 경험은
을 때는 고객에게 사죄할 때나 시말서를 쓸 때
공유되고 접근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 살아낸
였다. 그래서 이 책은 할 말을 잃게 만들고 말을
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고 믿는
할 수 없게 만들었던 경험을 어떻게든 말로 풀
다. 저자는 출판사와 편집자를 만난 것이 “진
어낸 이야기이다. ‘취약노동자’, ‘사각지대’ 등의
실로 행운”이라고 했지만, 그 행운은 저자의
말에는 절대 담을 수 없는 경험의 폭과 깊이가
것이 아니라 그의 말을 만나게 된 나와 같은
있는 말들이다. 어떤 문제가 공론화되면 우리는
독자의 것이다.
해결책으로 법과 정책을 떠올리고 이를 실행할
일터 53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실습을 돌아보며
비단 이런 만남에서만이 아니라, 겪은 이가
이 달의 안전보건동향
[20.04.09. 고용노동부] 코로나19로 인한 노동시
선제적 대응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하면서 “재택·
장 위기 최소화 및 장•단기 대응방향 모색
유연근무 지원제도 신청건수가 일 평균 4.5개소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 9일 이재갑 장관 주재로 고용노동분야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하여 코로나 19 위기가 국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하 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고용노 동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장·단기적으로 사회·경
(2020.1.1.~2.24.)에서 60.5개소(2020.2.25~4.7.) 로 13배 이상 증가하는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비대 면·플랫폼 경제의 급속한 진행, 새로운 근무형태 확산 등과 같은 변화에 대해서도 대응방안을 고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제에 미칠 충격과 특히 영향이 큰 취약계층 등 노 동시장 문제점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공통적으로 노동시장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일
[20.04.20 산업안전보건공단] 50억 미만 건설현 장, 안전시설 설치 비용 지원
자리 유지가 가장 중요하므로 기업의 고용유지와 노동자 생계지원을 위해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
안전보건공단(이사장 박두용)은 50억원 미만 소규
할 필요가 있다면서 코로나19 이후 일자리 안전망
모 건설현장의 추락 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한 일체
확대, 새로운 고용노동 환경 대비 등 장기적 대응
형 작업발판(시스템비계) 임차비용과 안전방망 구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하였다. 특히 특수형
입비용을 지원한다.
태근로종사자, 영세자영업자 등과 같은 고용보험
건설현장 사고사망 재해의 65.8%를 차지하는 50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신속한 지원이
억원 미만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추락 사고를 예방
필요한데, 이들은 실업상태를 입증하는 것이 어려
하기 위해 진행하는 이번 사업은 안전한 일체형 작
우니 부분실업, 임금감소 등에 대해서도 지원이 필
업발판(시스템비계) 임차비용의 경우 설치 면적
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별로 2,000만원까지 정액 지원하며, 안전방망 구 입비용의 경우 공사금액별로 3억원 미만 현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이재갑 장관은 “코로나19가 세계
65%, 3억원 이상~20억원 미만은 60%, 20억원 이
적으로 확산되고 장기화되면서 노동시장에 미칠
상~50억원 미만 현장은 50%까지 지원한다. 이번
타격이 나타나고 있어, 이에 대한 정부차원의 신
건설현장 추락사고예방 안전시설 지원은 건설현
속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근로자
장 당 최대 2,000만원까지, 한 사업주가 여러 개 현
의 고용유지를 최우선과제로 추진하여야 하며, 산
장을 가지고 있는 경우 연간 3개소까지 지원받을
업현장에서 어려운 여건에서도 근로시간 단축이
수 있다. 지원 대상은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현장
나 휴업, 휴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고용을 유지할
이며, 총 554억원이 지원된다.
경우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라는 입장을 거
안전보건공단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듭 밝혔다. 아울러 “지금은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지원한 사업장 재해율의 경우 2.74%로, 미지원 사 업장의 재해율 3.05%보다 0.31%p 낮은 것으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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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타남에 따라, 금년도 지원 예산을 지난해 321억원
예방하는데 실질적 도움이 되는 비용지원으로 현
에서 232억원(72.3%) 증액된 554억원으로 편성
장의 안전성을 확보하여 노동자의 소중한 생명이
하였다. 또한 지원 대상의 경우 지금까지 원도급인
지켜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종합건설업체만 지원했던 것을 협력업체*인 전문 건설업체까지 확대하였다 협력업체의 경우, 철근· 콘크리트 공사업,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 면허를 동시 보유한 업체에 한한다.
[20.04.28. 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공단-서울 시, 콜센터 지원 확대. 감염병 예방 환경 개선비용 90%까지 지원
건설현장 안전시설 설치비용 신청은 해당 지역
안전보건공단과 서울시가 50인 미만 콜센터의 감
별 공단을 방문하거나, 클린사업 홈페이지(clean.
염병 예방 환경개선 등에 드는 비용을 긴급 편성하
kosha.or.kr)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자세한 사항은
여 소요비용의 90%까지 확대 지원하기로 했다. 이
문의전화 1544-3088로 하면 된다.
번 예산 편성은 감염병 예방을 위한 긴급조치로 간 이칸막이 설치, 공기청정기 및 비접촉식 체온계 구
한편, 2019년 11월 기준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
입, 마스크 및 손세정제 구입 시 최대 2,500만원까
면 건설업에서 발생한 사고사망자는 약 404명으
지 지원한다. 안전보건공단이 소요비용의 70%, 서
로, 이중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소규모 현장에서
울시가 20%를 지원하는 것으로 사업주는 전체 비
266명이 발생해 전체 건설업 사망자의 절반 이상
용의 10%만 부담하면 된다.
(65.8%)을 차지했으며, 그중 추락사망의 경우 50 억원 미만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183명(68.7%)이
콜센터 감염병 예방 환경개선 지원대상은 상시근
발생했다.
로자 50인 미만 중·소규모 콜센터이며, 안전보건 공단(1544-3088) 및 서울시가 위탁하는 서울노
구분 사고 사망 자 %
합계
50억원 500억원 1,500 50억원 ~500 ~1,500 억원 미만 억원 억원 이상 미만 미만
404명 266명
77명
분류 불능
동권익센터(02-376-0001)로 신청하면 된다. 안전보건공단 박두용 이사장은 “이번 서울시와의
33명
22명
6명
8.2%
5.4%
1.5%
협력으로 코로나19 감염병으로부터 콜센터 노동 자를 보호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향
100% 65.8% 19.1%
▲ 표. 2019년 건설업 공사금액별 사고사망 재해현황
박두용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소규모 건설현장
후 공단은 감염병 예방 및 노동자 건강보호를 위해 안전보건환경 개선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 다.”고 밝혔다.
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력이 부족하여 안전관리 를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라며, “추락 사고사망을
일터 55
한노보연 이모저모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운동에 함께 해주세요!
지난 4월 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매년 2,0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가 죽습니다.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운 기업의 영업행위로 시민들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습니다. 상황은 나아지 지 않고 산업재해와 대형사고가 반복됩니다. 그렇게 많은 노동자와 시민이 죽었는데, 어떤 기업이나 최고경영자도 책임을 지기는커녕, 처벌조차 받지 않고 있습니다. 살인을 저질러도 ‘고의’를 입증하기 힘들다는 이유입니다. 처벌받더라도, 말단 직원이나 현장관리자만 가볍게 처벌받을 뿐입니다. 더욱이 피해자들의 개인 책임으로 전가될 뿐입니다. 왜 이런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들이 반복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모순을 타파해야 합니다. 고의와 태만으로 노동자와 시민을 다치고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기업에 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위험을 예방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고자 합니다. 새롭게 출범할 21대 국회가 이 법을 제정하도록 요구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입법발의 운동에 함께 해주십시오. “오늘도 7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중대재해기업 처벌하라!” “생명존중, 안전사회를 위한 첫걸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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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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