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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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반복되는 노동자 자살을 멈추기 위하여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을 위한 투쟁 아동·청소년 연기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방송노동현장 몸에 대한 우리의 상상, ○○다움에 대한 문제제기

통권 192호 / 2020.2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www.kilsh.or.kr



살아남은, 살아내는 이들의 몫을 돌아보며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습 니다. 자살은 질병을 포함한 한국인의 사망원인 중 5위에 속하기도 합니다. 치열한 경쟁과 장 시간 노동, 가족의 해체, 경제적 빈곤, 정신적 스트레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지금도 매일 38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자살이 우울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타살이 라는 점은 IMF 등의 경제 위기 이후 자살자 변동을 보면 충분히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사망자 스트레스 요인 발표(2018)에 따르면, 노동자가 자살자에 이르기 까지는 평균 5개월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차라리 아예 일을 안 했으면, 도중에 그만두었으면 죽음까지는 이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을 쉽 게 그만두지 못했던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차라리 그만두지 그랬냐고’ 묻기 전 에 우리는 노동자가 일하다 극단적인 생각을 품게 하는 ‘나쁜 일터’를 바꾸는 것이 더 먼저일 것입니다.

이 정부에서도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환경, 불합리한 직장문화, 일터괴롭힘이나 직장갑질 등으로 인한 노동자의 자살이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개선을 위한 제도적, 사회적 노력 이 지속적으로 필요하겠습니다.

-선전위원장

독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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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공화국. 한국 사회를 부르는 많은 이름들 중 가장 비극적인 이름입니다. 수 많은 이들을 자살로 내모는 건 비단 가난, 즉 경제적 빈곤만이 아닙니다. 일터에 서의 노동착취는 자살에 이르게 하는 다른 요인들을 조건 짓는 주요 요인입니 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매일 같이 소진되어 가는 이들은 삶 자체가 빈곤해집 니다. 그러다 어느 날 살아갈 힘을 잃어버립니다. 삶의 빈곤을 견뎌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 곳이 정녕 사회입니까. 발행인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죽음을 개인의 정신적 나약함으로 바라보거나, 조금은 반

최민

성하는 자세로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르며, 사회적 지원의 부족을 이야기합니다.

발행기관

소진된 삶을 걱정하고 지원하기 이전에,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활력이 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일터를 바꿔내야 하지 않을까요?

선전위원 경희, 승종, 영우, 나래, 지나,

이 겨울의 추위를 떠나보내며, 이번 <일터>에서는 반복되는 노동자 자살의 문제를

채은, 경미, 지안, 기형

살펴보았습니다.

만평 박원종 편집·표지 언제나봄그대곁에 인쇄 동광문화사 발송 산재공동체 발행일 2020.2.7 전화 서울 02-324-8633, 수원 031-247-8633, 부산 051-816-8633 팩스

특집 반복되는 노동자 자살을 멈추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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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저항의 몸짓

서울 02-324-8632, 수원 031-247-8632 이메일 kilshlab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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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호

문중원을 대하는 정부와 공기업의 자세 : 노동자 자살로 본 자살예방정책

홈페이지 www.klish.or.kr

노동자 자살, 일터에서의 인간적 삶이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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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겨진 구조 신호


14 지금 지역에서는

41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반월시화공단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와 고민

야간작업 노동자의 검진과 사후관리

16 산재보험 톺아보기 산재보험제도의 선순환 체계 마련을 위하여 : 예방 기능을 중심으로

19 연구리포트 배전 전기 노동자 노동강도 평가사업 최종보고서

43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與) 2곳 이상 사업장에서 근무한 경우 업무시간 산정기준 45 노동자 건강 상식 바이러스 48 문화읽기

23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우리는 서로의 꿈을 꿀 수 있을까?

불평등한 일터에서 ‘자율성’은 어떻게 압박이 되는가

28 사진으로 보는 세상 30 현장의 목소리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을 위한 투쟁

34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안전은 환경개선에서 비롯됨을 온몸으로 보여주다

50 발칙 건강한 책방 몸에 대한 우리의 상상, ○○다움에 대한 문제제기 52 이러쿵저러쿵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바람 54 안전보건동향 56 한노보연 이모저모

출처: 고(故)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원회

38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아동·청소년 연기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방송노동현장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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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반복되는 노동자 자살을 멈추기 위하여

노동자 자살, 일터에서의 인간적 삶이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비극적 저항의 몸짓

김영선 회원,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

7명의 자살이라는 강렬한 몸부림의 의미

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예요 … 이제는 그런 쳇바 퀴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같이 기수, 말관리사들

부산경마공원에서 7번의 자살이 이어졌다. 7번

의 유서는 이미 다단계 위계 구조의 모순과 경쟁

이나 반복된 자살 사건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장치의 폭력성을 여러 방식으로 문제 제기하고

점은 죽음을 통해 ‘이곳의 문제’를 ‘밖으로 알리

있었다.

려는’ 몸부림이 강렬한 흔적으로 남아있다는 것 이다.

유서의 메시지는 문제 지향적이었고 타자 지향 적(탄원형)이었다. 자살을 일종의 의사소통 과정

‘이제는 고통도 없고 편히 숨 쉴 곳엘 가기 위

으로 읽은 <자살, 차악의 선택>01의 저자 박형민의

해’, ‘경마장은 참 많은 것들을 잃게 만드는구나.

논의를 참조하면, 일곱 번의 자살은 (무엇으로부

… 내 자존심 또한 남아나질 않게 밑바닥으로 떨

터의) 탈출을 위한 실천이자 (무엇에 대한) 분노의

어뜨리고 떨어뜨린다 … 도대체 부산에서 몇 번

신호로 저항적인 의사소통의 하나였던 것이다.

의 자살 시도냐 … 경마장은 내 기준으로는 사람 이 지낼 곳이 못 되는구나’, ‘한 달에 많이 서면

노동자 자살을 ‘정치화’하기

12번의 당직을 섭니다. 이게 어찌 사람 사는 일 입니까 … 이제 조금은 쉬어야겠네요. 극단적인

<죽음의 스펙터클>02의 저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했는데, 너무 많 이 힘들어 이제는 내려 놓으려고요. 너무나 많은

01 『자살, 차악의 선택 : 자살의 성찰성과 소통 지향성』. 박형민 저. 2010. 이학사.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정말 제가 정신병자가 되

02 『죽음의 스펙터클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범죄, 자살, 광기』. 프랑 코 비포 베라르디 저. 송섬별 역. 2016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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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 자살이 결합되는 양상은 신자유주의 시대

꽤 닮아 있는 일상 통념들은 노동자 자살이 역사

에 두드러지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매일 같이 서

적이고 구조적인 착취적 생산관계에 따른 산물임

로 간에 전쟁을 벌이도록 하는 경쟁 구조는 극도

을 은폐하는데 복무하게 된다. 자살 사건 그 자체

의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무기력, 절망감과 같이

의 정치성을 개인적이고 예외적인 일탈로 탈정치

정서를 사막화하는 등 노동자들의 삶을 한없이

화하려는 자본의 시선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파

나락으로 내몬다고 한다. 모욕감과 비참함을 강

고들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화하는 일터에서는 자살이라는 죽음의 행렬이 이 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신자유주의 시

노동환경을 비추는 렌즈로서의 반복 자살

대의 ‘쌔끈한’ 경쟁 이데올로기들이 사실은 폭력 과 모욕을 그럴싸하게 합리화하는 수단일 뿐이라 고 일갈한다.

노동자 자살을 개인 문제로 환원해 업무와의 연 관성을 끊어내려는 자본의 프레임에 대항하는 ‘한시적인’ 방법론으로 자살의 반복성에 주목할

동시에 노동자 자살은 오래된 모순이 관통하는

필요가 있다. 반복 자살을 통해 대한민국 노동자

지점으로 발전국가 이후 고착된 제도 지체, 정상

들이 얼마나 어떻게 막 취급되고 있는지에 대한

화된 장시간 노동, 권위주의적 조직문화, 취약한

증거로써 읽을 수 있을 것이고 개인 문제로 협애

노동권 등의 역사적 병폐들이 중첩되면서 발생하

화하는 통념들이 얼마나 조약한 이데올로기에 불

는 비극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노동

과한지를 확인할 수 있다.

자의 자살은 오래된 구조적 병폐들이 관통하는 동시에 신자유주의 이후 경쟁 장치들이 덧대져 발생하는 결과다.

반복 사례는 큰 관심을 들이지 않더라도 여러 형태로 발견된다. 앞서 언급한 마사회 말관리사· 기수의 자살부터 넷마블 개발자를 포함한 IT노동

노동자 자살은 이렇게 발전주의의 잔재와 신자

자, 방송노동자, 우편집배원, 사회복지공무원, 도

유주의의 현재가 교차하는 어느 곳에서나 되풀

시철도 기관사, 대한항공 승무원, 간호사를 포함

이될 수 있는 일반화된 구조적 위험으로 읽혀야

한 병원노동자, 현장실습생, 증권노동자, 이주노

한다. 그럼에도 노동자 자살을 ‘나약한’ 개인의

동자들의 자살까지.

특수한 문제인 양, 타자화하는 통념들이 난무한 다. 이는 많은 노동자 자살 사건에서 사측이 보이

일터의 은어는 노동의 상태를 경험적으로 파악

는 공통적인 첫 번째 반응이자 의외로 강력한 프

할 수 있는 렌즈라고 볼 수 있는데, 노동의 고통

레임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자기 관리의 실패로

을 표상하는 언어들은 반복 사건의 현장 속에서

연결 짓기도 하는데, 노동자 자살에 대한 해석이

주로 발견된다. 간호노동자의 ‘태움’, 방송노동자

‘자기 관리’ 담론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꼴이

의 ‘디졸브’, 사회복지공무원의 ‘깔때기 현상’, 우

다. 이런 식의 통념은 노동자 자살을 개인적인 이

편집배원의 ‘겸배’, 화물운송노동자의 ‘따당’, 근

유나 예외적인 일로 환원하는 자본 친화적인 언

로기준법 59조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자무제

어들에서 전형적으로 발견된다. 자본의 언어와

한이용권’, 게임노동자를 포함한 IT노동자의 ‘크

반복되는 노동자 자살을 멈추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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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반복되는 노동자 자살을 멈추기 위하여

과로 사회에 남겨진 자들의 몫

야만의 상태에서도 노동자들은 ‘조금만 더 버틸 것’을 요구하는 주 문을 받는다. 사회적으로도 그렇 고 일상적으로 그렇다. ‘52시간으

출처: pixabay

로 근로시간을 줄인 것은 아직 과 도하다’며 ‘대한민국도 좀 더 일해 야 한다’, ‘100시간 일하고 싶은 사람은 100시간 동안 일할 자유가 런치모드’, ‘구로의 등대’, “갈아 넣다”, 서비스물

주어져야 하는데 그럴 자유를 빼앗

류노동자의 ‘클로프닝 등이 그러하다. 은어들에

는 것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설교들이 대표적이

나타난 업무 프로세스나 관행, 노동자 태도나 인

다. 한편 ‘원래 그래, 관행이야’ ‘옛날에는 말이야

식은 상당히 자조적이고 냉소적이다. 또한 자유

더하면 더 했어’ ‘이 정도도 못 버티면 어디서 뭘

와 권한을 잃은 상태, 고갈된 느낌, 무력감, 불만

할 수 있겠어’ ‘유리멘탈이다’ 등은 일상 차원에

족, 관계 철회, 심신의 회복력 저하 등의 소외 상

서 반복되는 감내의 언어들이다. 이는 과로+경

태를 내포하고 있다.

쟁 체제에 복무케 하는 효과를 낳고 노동자의 삶 을 질식시키고 만다.

반복 사건들에서 보여지는 노동자 자살의 공통 원인을 추려보면, 과도한 업무량, 빠듯한 인력,

‘도대체 얼마나 버티고 참아야’ ‘얼마나 더 감내

권위주의적인 조직 체계, 자존감을 갉아먹는 직

의 한계치를 끌어올려야’ 한단 말인가? 반문하지

장괴롭힘, 버틸 것을 무한정 요구하는 감내 문화,

않을 수 없다. 감내를 주문하면서 과로 체제와 경

느슨한 관리감독, 솜방망이 처벌, 위계적인 기업

쟁 시스템을 재생산하려는 자본의 어법이 새로운

관계, 취약한 노동권리, 과도한 경쟁 장치, 반인

화법은 아니더라도 여전한 힘으로 작용함을 주

권적인 실적 압박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두세

지하고 ‘더 이상 이대로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는

개의 원인들이 얽히면서 노동자의 자존감, 희망,

파국적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존엄을 극한까지 파괴하는 지점에서 자살은 발생 한다. 문제적인 원인들이 중첩되면서 야기하는

노동자 자살은 일터에서의 인간적 삶이 불가능

고통은 필연적이고 구조적인 비극을 유발하는 것

한 비상상태를 보여주는 행위이자 ‘더 이상 이렇

이다. 예외적이거나 우연적인 비극이 아니란 얘

게는 취급당하지 않겠다’는 비극적 저항의 표식

기다. 지금까지의 반복된 자살 사례에서 어렵지

이다. 남은 자들의 몫은 ‘살아가는’ 삶이 아닌 ‘죽

않게 확인되는 바다.

어가는’ 삶으로 우리네 삶을 내모는 비참의 상태 에 대해 망자들이 알리려 했던 그 목소리의 결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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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호


문중원을 대하는 정부와 공기업의 자세 : 노동자 자살로 본 자살예방정책

최민 상임활동가

2018년 자살에 의한 사망자는 총 13,670명.

라는 한국 포함 8개, 자살률이 10명 이상 증가한

10만 명 당 자살률은 26.6명이다. 이미 널리 알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는

려져 새로울 것도 없게 느껴지는 이 숫자를 어떻

이미 2004년부터 <국가자살예방 5개년 기본계

게 설명하면 좋을까?

획>을 수립하고 있다.

하루 37명이 자살한다. 2시간에 3명꼴이다. 같 은 해 교통사고 사망률의 2.9배다. 자살은 10대

그렇다면 왜 한국의 자살예방정책은 자살을 줄 이지 못하는가?

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 순위 1위이고, 40대, 50대에서는 사망원인 순위 2위다. 연령을 표준

우리나라 자살예방대책의 흐름

화하여 비교했을 때, OECD 평균 자살률의 2배 가 넘는다. 자살률이 높고, 자살자 수가 많기도

2003년 OECD 가입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10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자살률이 줄어들지

만명 당 24명)을 기록한 뒤, 정부는 2004년 <국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가자살예방 5개년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 기 본계획에서는 자살의 원인에는 생물심리학적 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교통사고 사망률이

인과 사회경제적 요인이 있으나, 결국 80%는 우

14.7명에서 9.1명으로, 38% 줄어들 때 자살은

울증을 거쳐 자살하므로 “현대 의학이나 경제적

오히려 2.4% 증가했다. 1985년부터 2013년까

여건상 변화시키기 힘든 생물심리학적 요인이나

지 28년 동안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증가한 나

사회경제적 요인보다 자살에 이르는 길목에 있으

반복되는 노동자 자살을 멈추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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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반복되는 노동자 자살을 멈추기 위하여

▲ 20년 2월 5일 오전 <7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마사회의 구조와 노동실태 조사 보고회>가 열렸다.

면서 조기발견을 통한 치료가 가능한 우울증을

었다고 처음으로 진단하였다. 특히 이전 계획에

주요 사업대상으로 하는 것이 자살예방에 효율

언급되지 않았던 실업률, 소득양극화, 가계부실,

적”이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우울증 상담 및 치

사회적 지지망 약화 등 다양한 자살의 사회경제

료율 증가, 자살시도 및 충동률 감소, 자살사망률

적 원인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복

을 2010년까지 18.2명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것

지부에서 주도하던 자살예방 대책을 국무총리실

이 목표였다01. 한국에서 자살률이 IMF 사태와 신

주도의 범정부적 대응으로 전환하고, “개인의 정

자유주의 도입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기본적

신보건분야와 사회환경적 접근”을 통해 자살예

인 배경을 무시한 채, 아예 처음부터 의학적이고

방대책을 수립하겠다고 선언했다02.

정신건강적 문제인 ‘우울증’에 집중한다는 것이 었다. 당연히 효과는 없었다. 2003년 24.0이던 자살률은 2007년 24.8명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종합대책에서 선포했던 사회환경적 접 근은 본격적으로 시도되지 못했다. 이후 매년 발 간되는 <자살예방백서>는 경제위기, 사회안전망

2008년 12월 발표된 <제2차 자살예방종합대

약화, “경쟁심화로 인한 상대적 스트레스의 증가”

책>은 이에 대해 스스로 정신보건사업위주의 활

의 문제는 본격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대신 ‘우울

동이었고, 자살의 다양한 사회환경 요인을 포괄

증 등 정신질환 증가’의 요소는 연령별, 성별, 지

하지 못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시적 성과를 내

역별로 세분화하여 분석하고 있다03. 이후 발표된

는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대신 <제2차 자살예

<3차 자살예방기본계획(2016~2020>과 문재인

방종합대책>은 한국에서 자살률이 급증한 것은

08

“97년 경제위기 및 03년 신용카드문제” 때문이

02 보건복지가족부(자살예방대책추진위원회), 제2차 자살예방종합 대책(2009~2013), 2008.

01 보건복지부, 자살예방대책 5개년계획, 2004.

03 전주희, 과로자살의 사회적 인정과 배제를 넘어:‘과로’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다, 2007.

2020년 2월호


정부에서 3차 자살예방기본계획의 보완계획이라

다. 특정 직업군에서 자살위험이 높다는 것은 직

고 2018년 발표한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 역시

업과 일터에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며, 예

모두 같은 선상에 있다.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

방활동은 거기서 출발해야 한다는 뜻이다.

>에서도 우리나라 자살의 특성을 실업률에 크게 영향을 받고, 경제적 문제가 자살의 직접적 동기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의 자살예방대책에서 노

중 23.4%를 차지하고, 조선업 구조조정 등 “지역

동자는 빠져있다시피 했다. 1, 2차 자살예방정책

경제 침체”도 큰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에서는 ‘직업’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매년 발

하지만 이를 반영한 추진과제는 복지대상 등 자

간하는 <자살예방백서>에서도 직업군에 대한 분

살고위험군에 대한 지원체계를 구축한다는 것 외

석은 매우 단순하여, 직업군별 사망자수만 제시

에는 없다 .

될 뿐, 사망률도 분석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04

산재를 신청하고 승인되는 자살 노동자의 숫자가 2003년부터 현재까지 국가의 자살예방정책은

계속 늘고 있다.

사회적 원인에 대한 해결보다 자살에 대한 인식 개선, 자살예방을 위한 홍보와 정신보건 서비스

이제야 정부가 심리부검을 실시하고, 경찰청 조

강화, 우울증 등 정신의학적 고위험군 관리에만

사 기록을 확보하는 등 자살의 원인에 대해 심층

맞춰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정책 방향은 실제로

적인 접근을 시작하면서 외면할 수 없는 결과가

한국사회 자살의 특징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에

나타났다. 「2018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에

서 비과학적이다. 문제의 구체적 특성과 원인을

따르면, 자살사망자는 사망 전 평균 3.9개의 스

외면한 정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당

트레스 사건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아 사망에

연하다.

이른다. 스트레스 사건 중 정신건강 관련 문제가 84.5%로 가장 많았지만, 직업 관련 스트레스 사

자살 예방 대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

건이 68%로 뒤를 이었다05. 자살자의 70%가량

노동자 자살

은 사망에 이르는 여러 요인 중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이 직업적 스트레스 사건이라는 것이다. 직

자살 예방 대책의 한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 내 대인관계, 퇴직 및 해고, 이직 또는 업무량

것이 노동자 자살이다. 세계 어디서나, 자살 사

변화 등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살 경로

망자의 상당수가 경제활동인구이며, 자살로 사

의 시작점인 첫 번째 위험 요인에서 가장 빈도수

망하는 많은 사람은 사망 당시 직업을 가지고 있

가 높았던 것이 ‘업무부담’이었다는 점이다. 직접

다. 그래서 일터에서 자살의 원인을 찾거나, 자살

적인 자살 동기는 정신적 건강 때문일지라도, 그

예방활동을 벌이는 것은 자살예방정책의 관심사

정신적 건강 문제가 시작되는 요인이 업무일 수

다. 특히 자살 위험이 높은 농부, 경찰, 소방관 등

있다는 얘기다.

의 직업군에서 자살예방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진 04 관계부처 합동,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 2018.

05 중앙자살예방센터, 2018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 2019.

반복되는 노동자 자살을 멈추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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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반복되는 노동자 자살을 멈추기 위하여

심리부검은 <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에서 얘

성공한 일본의 자살대책기본법의 기본이념 조항

기했던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전략적 접근”을

이다. 일본이나 한국 모두 1998년 경제위기와

위한 시도 중 하나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전략

신자유주의 도입 이후 자살률이 증가했고, 이에

적 접근이 되려면, 자살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스

대한 대응으로 제정된 법이지만 기본 이념과 정

트레스 사건 중 하나로 밝혀진 직업 관련 스트레

책 방향이 다르다. 일본은 2010년 이후 자살률

스에 대한 개입이 자살예방정책의 핵심 과제로

이 감소세로 돌아섰고, 한국은 여전하다.

제시돼야 한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당위가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당위성 대신 근본적인 접근을

서도 자살예방정책은 훨씬 폭넓어져야 한다. 특 히 노동자의 권리와 건강을 증진하는 내용이 반

설날 아침, 세종로에서 차례상을 받은 42세 고

드시 포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로

문중원을 보라. 문중원은 지난 11월 말, 마사회

부터 안전한 건강한 사회(자살예방국가행동계획

의 부정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

추진방향)”는 요원할 것이다.

을 끊은 40대 초반의 경마기수다. 그러나 공기업 마사회는 꼼짝도 안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일 터괴롭힘에 대해서는 특수고용노동자까지도 특 별근로감독을 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이 문제 는 외면하고 있다. 마사회 관리감독부처인 농림 축산식품부에서도 아무런 대응이 없다.

일본 자살대책기본법 제2조 기본이념 1) 자살이 개인적인 문제만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 라 그 배경에 여러 가지 사회적인 요인이 있다는 것 을 전제로 사회적인 대처로서 실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가 뭔가 배우고 달라졌다면, 벌써 7명이 스 스로 목숨을 끊은 부산경남경마공원의 문제를 이 렇게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는 경마 성 적이 좋지 않아서, 누구는 빚이 많아서, 누구는

2) 자살이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 및 배경을 가지 고 있는 점이라는 사실에 입각, 단순히 정신 보건적 관점뿐만 아니라 자살의 실태에 즉각적으로 대응되 도록 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06.

성격이 충동적이어서라는 핑계 뒤로 숨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부의 자살예방정책이란 제대로 살기 위해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제공하려는 노력이 아니다. 인간답지 않은 삶도 참아내라는 알약을 제공하는 것뿐이다. 지 금과 같은 접근으로는 자살을 줄일 수가 없다.

아래 표는 2006년 세계 최초로 <자살대책 기 본법>을 제정하고, 이후 자살률을 감소시키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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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호

06 일본 자살대책기본법. 보건복지가족부(자살예방대책추진위원회), 제2차 자살예방종합대책(2009~2013), 2008에서 재인용.


우리에게 남겨진 구조 신호 - 노무법인 필 유상철 노무사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삶에 정해진 때가 있을까. 우리는 오늘을 살면

자 자살 사건을 다뤄왔다. 지난 1월 29일 수요일

서 동시에 내일을 살아간다. 내일을 준비하고, 챙

오전 노무법인 필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겨 나가기 위해선 많은 것들이 필요로 하다. 더

이야기를 나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바로 그것이 다. 이 확신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자

유상철 노무사는 2012년에 노동자 자살 사건

신 또는 내가 속한 공동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을 처음 접했다. 바로 당시 서울도시철도 기관사

수 있는 경제적 상황이 갖춰져야 하며 더불어 신

의 죽음이었다. 2012년 3월 12일 오전 8시 5분

체적, 정신적, 사회적 더 나아가 영적 건강까지

쯤 서울도시철도 5호선 왕십리역에서 사상사고

유지·증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노동자의

가 발생했다. 열차 선로에서의 사망 사고가 잇따

삶은 위태롭다. 작년 산재 사고 사망자 수 855명

르자 2004년부터 스크린도어 설치가 시작됐다.

으로 하루 2~3명이 안전사고 문제로 삶을 마감

그로부터 7년이 지나 발생한 스크린도어 사상사

한다. 업무상 질환 사망자 수도 1,171명으로 지

고였다. 사망자는 도시철도를 운전하는 기관사

난해보다 178명이 증가했다. 어디 그뿐인가. 노

였다. 선로는 지하철 노동자에게 아주 상징적인

동자들은 살기 위해 스스로 ‘죽는 선택’을 한다.

장소다. 그곳에서 기관사 스스로 자신의 일터에

이 모순된 상황은 무엇 때문에 발생할까.

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자신의 작업복인 제복을 입은 채로 말이다.

20년 경력의 공인노무사로 활동하고 있는 노무 법인 필의 유상철 노무사는 노동자 자살 문제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암담했다. 상황을 알아

관련해 그 지점에 착목했다. 실제 그는 여러 노동

보니 그는 2011년 6월 열흘간 휴가를 내고 병원

반복되는 노동자 자살을 멈추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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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반복되는 노동자 자살을 멈추기 위하여

라, 민원처리 및 장애조치까지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이 같은 노동조건은 정신건강을 훼손한다. 이처럼 매일 어두컴컴한 터널 속에서 온종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안고 일해 온 기관사들에게, 공황장애를 앓고 있던 그에게 열차 는 바로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사실 기관사들 의 정신질환 문제는 2003년부터 노동조합에 의해 ▲지하철 기관사들의 자살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제기되어 왔다. 2012년 사건 발생 후 진행된 기자회견의 모습이다.

적극적으로 제기됐다. 그 결과 국내 최초로 이뤄

치료를 받았다. 바로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기 때

이 일반인의 7배나 많은 수가 공황장애에 시달리

문이다. 2월엔 어지럼증, 구토를 호소하며 전직

는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당시 노동조합은 기

신청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전직 신청은 끝

관사의 정신질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노

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보냈던 구

동조건의 문제라며 1인 승무 폐지를 강력히 요구

조 신호였을 텐데 말이다.

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

진 도시철도 기관사 정신건강진단에서 기관사들

았고 결국 또다시 죽음으로 이어졌다. 요즘엔 유명 연예인들이 공황장애가 있음을 밝 혀 사회적으로도 많이 알려진 병이다. 이 정신질

물론 이전보다 노동자의 자살 문제를 개인의 탓

환은 생물학적 원인과 환경적 원인 등에 의해 발

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바뀌긴 했지

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증상으로 곧 죽을

만 그런데도 개인 원인, 책임을 강조하는 인식과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강한 공포를 느낀다고 한

제도적 장치는 여전하다. 당시의 사건 자료를 아

다. 맥박이 빨라지거나 심장 박동이 심하게 느껴

직도 보관하고 있는 유상철 노무사는 서류를 살

지며 가슴에 통증, 불쾌감, 숨이 답답하여 질식할

펴보면서 그때 경험했던 문제들이 이후 다른 사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광장공포증이 있는 공황

건을 살펴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장애의 경우 탈출이 불가능하거나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장소를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우선 사건을 조사하며 만났던 동료와 유족들이 느꼈던 부채 의식, 책임 의식이 느껴져 안타까웠

지하철 기관사들은 어두운 지하터널에 근무한 다. 지하철을 타본 사람이라면 어두운 터널을 달

건의 동료, 유가족들에게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리다 환한 구간으로 빠져나올 때의 느낌을 알 것

모습이었다. 유가족은 마음과 상황을 추스를 시

이다. 답답했던 순간에서 벗어난 것도 잠시 금세

간도 없이 산재 입증하려고 애를 쓰지만 정작 회

어두운 터널로 다시 빨려 들어간다. 게다가 어둡

사는 자료 제출을 거부하기 일쑤다. 개인이 회사

고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같은 일을 해야만 하

라는 거대 조직에 대응하기에는 너무나 벅차다.

는 환경에 혼자서 운전을 해야 하는 것뿐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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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했다. 이때만이 아니라 이후에 만난 다른 사

2020년 2월호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노동자의 고의·자

에서 핵심은 바로 노동환경, 즉 회사의 구조적 원

해행위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인이다. 따라서 사실을 밝히려는 데에 큰 부담을

그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

가질 수밖에 없다. 진술자가 안전함을 느끼기 위

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

해선 더 나아가 진실을 담은 사실로 인해 고인의

생한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 근로복

죽음 원인을 규명하고, 필요한 조치가 취해지기

지공단에서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사건 발생 이

위해선 무엇보다 진술자에 대한 불이익 처분을

전의 정신병적 상태를 기준으로 위험요인이 있었

금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관련한 조

는지 판단한다. 하지만 자살을 하는 노동자 모두

치는 별다른 게 없는 형편이다.

가 사건 발생 이전에 병원을 가긴 쉽지 않다. 병 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것은 그나마 증상을 인

두 번째는 즉각적인 심리상담 조치다. 자살 사

식하고 해결 의지를 보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

건이 발생한 사업장의 직원들이나 해당 유가족,

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와 차별, 정신건강

친구들에겐 매우 큰 충격이다. 미국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낮은 사회적 조건에서 스스로 혹은

전문가 오드라 니퍼는 ‘한 사람의 자살이 최대

주변에서 증상을 인식하고, 병원에 가 진단/진료

28명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하

를 받기까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도 했다. 즉, 한 사람의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

기준을 근거로 업무상 연관성을 밝히려 하다 보

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 사회적 안

면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최근 근로복지공단도

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근로복지공단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은 가이드를 통해 정신건강 고위험군 관리에 심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현실에서 부딪

리상담 프로그램 제공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하

히는 벽은 여전히 높다.

지만 사건이 발생한 해당 사업장에 즉각 심리상 담 프로그램이 시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과

유상철 노무사는 우선 자살 사건이 발생한 사업

정을 통해 고위험군을 조기 발견할 수 있고, 한편

장에서 진술하는 동료들에게 불익 처분을 금지하

에선 자살에 대한 이해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에

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자살과

중요함에도 말이다. 무엇보다 산재 인정 여부를

관련된 유족급여가 청구되면 기초조사를 거친 후

떠나 고위험군에 대한 관리 문제를 소홀히 여겨

재해조사 계획에 대한 전문가 자문을 거쳐 본조

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사에 들어간다. 이때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 및 근 무내용 등을 파악한다. 본조사를 마치면 업무상

‘운 좋게’ 살아남은 우리에게 과제가 산적하다.

질병판정위원회에 심의 의뢰한다. 스트레스 요인

하지만 먼저 간 이들이 남긴 구조신호를 우리는

을 파악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함께 일한 동료들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일하는 사람의 정신건강 문

의 진술이 중요하다. 그러나 동료를 급작스럽게

제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님을 계속해서 강조하

떠나보내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진술

고, 밝혀내야 할 것이다.

을 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노동자 자살 문제

반복되는 노동자 자살을 멈추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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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역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국가산업단지로 일컬어지는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은 업체당 평균 고용인원이 25명일 정도로 소규모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전

반월시화공단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와 고민

체 25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지만 대다수가 원청 대기업에 납품하는 하청업체 소속이거나 파견·계약직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상시적 고용불 안과 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를 낳고, 나아가 일터 괴롭힘의 구조적 원인 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즉, 비정규직이라는 조건과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규모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조건에서 더 거리낌 없이, 더욱 빈번하 게 일터 괴롭힘은 발생하고 있다.

2015년 봄, 월담은 민주노총을 비롯한 전국 8개 산업단지공단 조직화 단위와 함께 노동환경실태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조사 결과 반월시화공 단 응답자의 55.74%가 인권침해를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특히 거의 매일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응답도 19.7%나 됐다. 이들이 겪 는 인권침해의 양상은 감시와 통제, 폭언과 폭행, 노동법상의 기본적 권 리 제한, 불합리한 작업지시, 따돌림, 차별, 성추행, 모욕 등으로 다양했 다. 인권침해는 이처럼 다양한 괴롭힘의 형태로 나타났고 매우 오랜 기간 관습처럼, 견고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었다. 법이 가지는 한계에 도 불구하고 어찌됐든 최소한 괴롭힘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근 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공단 내 입주 기업 의 90%가 근로기준법조차 지키지 않는 마당에 의무를 강제할 처벌조항 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이 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월담은 현장을 조금이라도 바꿔내기 위해서는 일터에서의 괴롭힘 실태를 파악하고, 법의 빈 지점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 2019년 8월부 터 10월까지 <반월시화공단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 다고 응답한 비율은 47.66%로 절반에 가까웠다. 괴롭힘의 형태는 공개적 모욕이나 폭언, 불합리한 작업지시, 개인적 심부름, 일 떠넘기기, 휴가 제 이미숙 반월시화공단노동자권리찾기모임 월담 운영위원

한 등으로 노동자를 통제하고 길들이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비정 규직의 상황은 더 심각했는데, 기간제 응답자의 60%와 파견제 응답자의 66.67%가 괴롭힘을 경험한 바 있다고 답했다. 파견제와 기간제 등 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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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호


이 불안정한 노동자 일수록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제든 인 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파견시장은 일하는 사람을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도구로 전락시켰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은 괴롭힘에 대해 대응하거나 문제제기를 할 수 없도록 작동하고 있었다.

괴롭힘의 행위자가 누구였냐는 질문에는 ‘직장상사(52.94%)’와 ‘사장(23.53%)’이라는 답이 절 대적으로 많았고,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37.25%가 ‘아 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상사에게 알리거나(11.76%), 고용노동부 등 공공기관에 신고 (1.96%)하는 등의 적극적인 대처는 극소수였다. 괴롭힘의 가해자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직장 상사인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개별 노동자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퇴사를 각오할 정도 로 큰 결심이 따를 수밖에 없다. 가해자가 사용자일 경우에는 문제는 더 커진다. 자신의 괴롭힘 피 해를 가해자에게 신고하고 적절한 조치를 요구해야한다는 것인데, 이는 누가 봐도 현실적으로 가 능한 일이 아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러한 사용자 등 사장에 의한 괴롭힘은 주로 소규모사업장 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정작 이 법은 5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보호를 외면하고 있 다는 것이다.

괴롭힘을 겪었을 때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기구나 제도가 있는지의 여부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포기하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이다. 그러나 실태조사 에서는 법 시행 전후로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회사의 조치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57.01%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회사 규모별로 보면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66.67%가,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45.31%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답했 다. 공단의 기업들은 노동 관련법은 안 지켜도 되는 법이라거나, 지키면 회사는 망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 기업들에게 자발적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방치에 가깝다. 기업이 자신들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게 할 법적 강제가 필요한 이유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일터에서의 괴롭힘은 여전하다. 물 론, 법 자체가 촘촘하다고 해서 괴롭힘이 근절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 는 구조적 맥락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방과 조치는 공염불일수 있다. 절대 다수의 노동자가 열악 한 노동조건과 상시적 고용불안의 상태인 공단의 현실을 바꿔내지 않는다면, 직장 내 괴롭힘은 여 전히 침묵되거나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일터 괴롭힘을 개별의 상처로 끌어 않고 혼자 감 내해야만 하는 일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한다. 노동자 집단의 목소리를 내고, 작게라도 움 직여야 만 한다. 월담은 이번 실태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과정을 통해 일터에서의 괴롭힘이 용인 되서는 안 되는 것임을 환기시키고, 노동자의 권리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모색해보려고 한다.

지금 지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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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 톺아보기

산재보험제도의 선순환 체계 마련을 위하여 : 예방 기능을 중심으로

박기형 상임활동가, 노동시간센터 산재보험연구팀

산재보험의 선순환 체계: 보상-재활-예방

제도로부터 점차 재활과 예방의 기능까지 갖춘 다양한 기능으로 확장된 산재보험 제도로 나아가

산재보험이라고 하면, 해당 제도를 규정하는 법

기 시작했다.

률인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라는 이름에서도 확인 할 수 있듯이, ‘보상’을 흔히 떠올린다. 산재보험의

이러한 두 차원의 변화는 한편으로는 재활을 통

여러 기능 중 요양급여와 현금급여를 중심에 놓게

해 재해자의 직업복귀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높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보상 문제는 재해자가 당분

기 위함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업주의 예방

간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해, 사회적

활동 강화를 통해 산재와 직업병 발생을 줄임과

차원에서 생계를 보장하고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동시에 산재보험재정 운용의 효율을 높이기 위함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해주기 위함이었다.

이었다.

이후 제도를 운용해가면서, 산재 발생 후에 금전

산재보험 예방 기능의 효과

적 보상을 해주는 소극적인 대처를 넘어서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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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요구가 제기되었다. 이에 보상 자체도 좀 더

산업재해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위험과 피해를

재해자에게 실질적인 요양/치료를 제공해주는 문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사후적 대처보다는 사전적

제로 확장됨과 동시에, 사업주의 예방활동을 강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은 근본적인 원칙이다. 다

화함으로써 사후 보상과 사전 대응 간의 선순환

양한 급여제도를 통해 보상과 치료를 지원한다고

체계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하지만, 재해자가 받은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휴

보상을 중심에 둔 전통적 의미에서의 산재보험

유증, 그리고 가족을 비롯한 재해자를 둘러싼 사

2020년 2월호


회구성원들이 입는 피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지

청 구조나 다단계 하도급의 심화, 비정규직 증대

속된다.

등의 변화 속에서 개별실적요율제는 위험을 외주 화한 대기업/원청들에게 산재보험료 절감해주고

더욱이 산업재해는 재해자와 사회구성원 각자 에게 피해를 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보험을

정작 산재에 취약한 소규모 사업장들에게는 비용 부담을 증대시키는 역설적 효과를 가져왔다.

운영하는 해당 사회에도 영향을 미친다. 재해자 를 지원하는 것에만 제한될 경우 산재보험제도

다른 한편, 사업주의 산재보고 의무를 강화하기

운영에 있어서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산업재해 발

위해 2013~2014년에 걸쳐 산업안전보건법 및

생이 줄어들지 않고 더욱 늘거나 유지된다면, 재

해당 법령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요양급여신청 등

정상 막대한 비용을 계속해서 지출해야 하는 부

으로 산재발생 보고를 대신할 수 없도록 하고 보

담이 시간이 갈수록 가중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

고대상도 ‘사망자 또는 3일 이상 휴업재해’로 변

유로 산재보험제도의 예방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

경했다. 하지만 노동부 해석지침 중 휴업일수 산

다는 요구가 있는 것이다.

정에 대한 비판이 있었고, 무엇보다 최근 2019년 산안법 개정에서도 보고의무 미이행에 따른 처벌

예방 기능의 강화를 위한 선행과제 :

은 과태료 수준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로 인해 여

산재통계의 정확성/분석력 증진

전히 산재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산 재통계 자체의 정확성도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산재보험제도와 관련해 재해자를 비 롯한 사회구성원의 피해와 산재보험제도의 재정 적 부담을 최소화하고 사전적으로 산재 자체를 줄 여가나기 위한 예방기능 강화를 위해선 무엇이 필 요할까? 무엇보다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산업재해 발생 현황과 원인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예방기능 강화의 선행조 건은 정확하고 체계적인 산재통계 및 분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산재통계는 사업장에 만연 한 산재 은폐와 산재보험 처리 기피 등으로 인해 정확성이 떨어진다. 그동안 징벌적 제재 중심의

▲ 출처 : Pixabay

정부 관리감독으로 인해 사업장에서 보험료 인상 및 행정감독 증대를 우려하기 때문이었다. 그렇

더구나 어렵게 취합된 산재통계 데이터를 가지

다고 개별실적요율제를 통한 경제적 유인책 제공

고서 목적의식 없는 분석만을 내놓는다는 비판도

도 산재 은폐를 줄이거나 산재보험 처리를 높이

제기된다. 기초통계 수준의 단편적인 분석만을

는 데 충분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원하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재현황 및 원인을 분

산재보험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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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하는 데 있어서 보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시스템 마련이 전제될 필요성이 있다는 말이다.

서, 다른 통계와의 비교 및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 복합적-종합적 분석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이렇

또한 유의해야 할 것은 예방효과라고 할 때, 해

듯 산재보험제도를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산재통

당 효과에 대한 정의와 그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계의 정확성 및 분석력을 강화해야만, 산업재해

지표가 무엇인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

가 발생하는 구조와 원인을 명확히 드러낼 수 있

다. 현재 클린사업·검진지원·국고사업·근로자건

고, 이를 바탕으로 예방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

강센터운영·작업환경측정사업지원·기술지원 등 안전보건공단의 예방사업이 여러 방면에서 진행

예방 효과성 검증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

되고 있지만, 정작 우수사례 중심의 평가 보고서 로만 그치고 있다. 검진이나 조사, 재활치료, 보

장기적으로는 산재보험제도의 선순환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서 예방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으로는 현장의 변화와 예방사업의 효과를 제대로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선순환의 흐름을 만

검증할 수 없다. 업종 내 사업장별 위험특성, 업종

드는 일과 이러한 흐름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평

간 위험특성을 고려한 적합한 예방사업이 이뤄졌

가하는 일은 분리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한국

는지, 사업장에서 산재현황이 제대로 파악되고

의 산재예방사업과 산재보험 사업은 명확히 업무

있는지, 현장에서의 안전보건조치가 얼마나 개선

상 분리되어 있다. 전자는 고용노동부 산재예방

되었는지 등을 보험사업에서의 활동 및 데이터와

정책과가 정책입안을 하고 산업안전보건공단에

예방사업에서의 활동 및 데이터를 상호연계함으

서 집행하고 있고, 후자는 고용노동부 산재보상

로써 면밀히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과가 정책입안을 하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집 행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안전보건공단과 근로복 지공단이라는 두 축으로 분리 운영되고 있는 것 이다.

이러한 기능상의 분리는 산재보험을 통한 보상· 재활과 사업장 현황 파악을 각종 안전점검·보건 관리 등 예방 정책과 체계적으로 연계하지 못하 는 한계로 작용한다. 물론 산재보험 지출 예산의 8% 이상을 매년 산업안전보건사업과 안전보건공 단에 출연하도록 하고 있지만, 보상과 예방의 체 계적 연계 없이는 산재예방 사업에 대한 투입 비 용 대비 산출 효과가 충분히 담보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예방사업을 운영하기 위한 기금이 부족하다 는 지적에 앞서, 예방사업의 효과성을 검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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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료 지출 절감 등의 양적 성과만을 보여주는 것

2020년 2월호


연구리포트

배전 전기 노동자 노동강도 평가사업 최종보고서*

선전위원회 편집

1. 연구의 배경 및 방법

건설노조 산하 전기분과위원회 조합원들의 노동강도와 건강 실태를 설문조사, 면접조사, 현장조 사, 생체지표 측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사하고, 배전 전기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높이고 건강을 위협하는 원인을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조사 사업을 수행하였다.

2. 설문조사

2,558 명이 설문에 참여하여, 이 중 2,189명의 답변을 분석했다. 40~50대, 장년 노동자가 다수 를 차지하고, 전원이 남성이었다. 활선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했다. 하루 노동시간은 8시간 이내라 는 응답이 75%였지만 준비와 이동, 정리 시간을 제외하고 응답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작 업 도중 점심시간 외에 따로 충분한 쉬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비율이 높았다. 일반 취업자에 비해 물리적 유해요인에 근무시간 내내 혹은 거의 모든 근무시간 동안 노출되는 사람의 비율은 9~20배, 인간공학적 유해요인에 근무시간 내내 혹은 거의 모든 근무시간 동안 노출 된다는 응답은 1.8~7배 많았다. 저온노출과 중량물 취급이 가장 차이가 컸다. 68.6%의 응답자가 육체적으로 종종 혹은 항상 지친다고 응답했고, 65.3%의 응답자는 정신적으로 종종 혹은 항상 지 친다고 응답했다. 현재의 작업량에서 약 33%가량의 노동강도/작업량 감소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 * 위 보고서는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전기분과위원회에 제출된 2019년 배전 전기 노동자 노동강도 평 가 사업의 최종보고서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전국건설노동조합이 함께 조사 및 작성한 것입니다. 전문은 한국노동안 전보건연구소와 전국건설노동조합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구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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났다. 노동강도를 가장 크게 호소하는 직종은 활 선공이었다.

본인의 일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인식은 일반 인구에 비해 5배 이상 높았으며, 현재 일로부터 건

NIOSH 기준에 따라서 기준1에 해당하는 증상

강에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인식도 1.9배 높

자는 1,670명(76.3%)이며, 기준2에 해당하는 증

았다. 업무는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건

상자는 1,489명(68.0%)이고, 기준3에 해당하는

강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경

증상자는 691명(31.6%)이었다. 이는 그동안의

향이 엿보였다. 상용직에 비해 일용직 노동자들이

건설노동자 대상 조사와 비교하면 훨씬 높은 것이

안전보건 정보 접근이나 건강검진 수검율에서 떨

다. 설문 응답자의 1/3 가량이 치료가 필요한 기

어지고 있어 노동조합에서 관심이 필요하다.

준3에 해당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하

간접활선에 대해서 탁상 행정의 결과라는 인식

다. 지난 1년간 한 군데라도, 한 번이라도 다친 적

이 컸다. 이에 대해 한전에게 적극적으로 대화와

이 있다는 응답은 설문 응답자의 45.9%에 달했

대안 마련을 요구해야 한다. 조합원들이 제안하

다. 부위별로는 손/손가락/손목, 팔/팔꿈치, 어깨

는 노동강도 완화를 위한 과제는 인원 충원, 고용

순이었다. 4일 이상 다친 적이 있다는 응답은 전

안정, 휴게시간 확대였다.

체 설문 응답자의 24.6%였다. 이 중 산재와 공상 치료를 모두 합친 처리 비율도 57.1%에 불과했

3. 면접조사

고, 자비로 치료하지 않았다는 응답자 중에도 산 재 처리 비율은 세 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사고

배전 전기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크게 배전산

의 유형은 부딪힘, 넘어짐, 물체에 맞음 순이다.

업의 구조적 요인, 문화적 요인 두 가지에 의해 강 화된다. 한전과 민간 하청업체, 배전 전기 노동자 로 이뤄진 원·하청 구조는 배전 전기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을 저해하여, 고용과 임금을 보장받기 위해선 높은 노동강도를 감내하도록 한다. 이는 민간 하청업체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선 배전 전기 노동자에게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일하 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높은 노동강도 로 인해 사고 발생 위험과 직업병 발병 위험이 높 아짐에도 불구하고, 원청인 한전은 안전보건관리

▲ 활선공이 탑승한 절연고소 활선작업차량 중심으로 여러 명의 배전 전기 노동자가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

책임을 민간 하청업체와 배전 전기 노동자들에게

지난 1년간 아픈데도 나와서 일을 한 경험이 있

로 이뤄지지 않으며, 각종 산업재해는 배전 전기

다는 응답은 46.5%였고,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는 답변은 34.5%였다. 특히 활선공

노동자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겨진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배전산업의 구

과 기계운전자는 아파도 쉬지 못하고 참고 나와

조적, 문화적 요인들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뤄

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였다. 업체별로

져야 한다.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현황 및 강화 요

인원이 부족한 것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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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하고 있다. 그로 인해 안전보건관리가 제대

2020년 2월호


인에 대해선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

쉬는 시간은 점심시간 1시간가량이었다. 실제 이

지만,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해

1시간도 점심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30분 내외

서는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

이고 이마저도 배전 노동자들의 피곤함을 풀 수

므로 본 연구에서 제안한 대안들을 놓고 조합원

있는 안정된 공간이 아니었다.

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다각도의 토론이 이

이는 배전 전기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겪는 추

뤄질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조합원들과 현 상

락, 감전사고 위험과도 연결된다. 빠른 속도로 여

황 및 대안에 관해 충분히 공유하고 논의할 필요

러 작업이, 여러 명에 의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은

가 있다. 이를 토대로 배전 전기 노동자의 노동강

그만큼 사고 발생 위험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전

도를 완화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일치단결된 요구

기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작업하는 무정전공법을

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상황에선 사고의 긴장도를 낮출 수 없다. 활

▲ 스마트스틱으로 작업하는 활선공

4. 현장조사

선공, 사선공은 고공 작업이 기본적이며 이때 안 전 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는다면 언제든 추

4일 동안 현장조사를 시행했다. 활선공을 중심

락 위험이 있다. 무정전이 아닌 상태에서 감전사

으로 사선공, 조공도 함께 관찰했다. 이들 모두 쉬

고 위험은 항시 존재한다. 저압선에서도 감전 사

는 시간 없이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있었다. 여러

고 노출 위험이 있다.

개의 전주에 여러 명의 활선공이 공정 흐름에 맞

고공, 상지부담, 중량물 취급은 모두 근골격계

춰 연속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작업이 끊임없이

질환을 발생시키는 부담작업자세에 해당된다. 활

이어진다. 이에 따라 활선공은 물론 사선공과 조

선공, 사선공, 조공 모두 종일 서있는 자세를 취

공을 비롯한 노동자들은 모두 쉴 새 없이 일하게

하며 각종 전선, 공구, 자재 등 무게가 나가는 중

된다. 빠른 작업속도를 유지해야 하고 작업을 중

량물을 취급한다. 또한 손과 어깨, 목을 뒤로 젖

지할 수 없다는 상황은 사고 위험을 높인다.

히거나 꺾거나 비틀거나 여러 작업에 필요한 반

또한 제대로 쉬는 시간과 공간이 없는 것도 문

복 작업을 종일하기 때문에 증상 호소자도 상당

제다. 실제 관찰하는 시간 내내 모든 작업자들의

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각종 방안 모색이 시급

연구리포트

21


하다. 옥외작업이기 때문에, 날씨 영향이 크다. 자

나 표적장기손상의 위험성이 높고 심혈관계 합병

외선 관련된 질환 위험, 폭염으로 인한 건강 영향,

증이 증가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데, 이번 조

한랭 작업으로 인한 안전 사고 위험 증가와 근골

사에서 14명 중 7명이 비저하자로 나타났다. 건

격계 부담 증가 등이 우려된다.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배전 전기 노동자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스마트스틱도 배전 전기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높이는 주요 요인 중 하 나다. 팔과 어깨에 과도한 힘을 사용하게 된다. 흐

들이 뇌심혈관질환 위험군에 속한다는 것이 확인 된 것이다. 이번 조사는 단 1회의 24시간 활동 혈압 측정을

름공정과 빠른 작업 속도의 문화가 함께 개선되

기반으로 했고, 일한 날만 조사해 쉬는 날과 비교

지 않는다면 안전이란 명목으로 스마트스틱을 사

하지 못 한다는 제한점은 있다. 또, 주간 활동 시

용하게 하더라도 실제 실효성을 거두기 쉽지 않

간에 전체적으로 측정률이 낮은 것도 아쉬움이

아 보인다. 따라서 감전사고 위험을 최소화 하는

다. 향후 유사한 조사를 반복 측정하고, 이후 보건

방법 모색이 필요한데, 이는 현장 노동자와 노동

관리 활동과 연계하여 배전 전기 노동자들의 뇌

조합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이뤄져야 적정한 공구

심혈관질환 예방에 기초 자료가 될 수 있기를 기

개발 시간도 줄이고 현장에서 안착화에도 긍정적

대한다.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불어 실효성이 없다고 지 적된 것이 바로 안전 관리 시스템이다. 작업 날마

6. 제언

다 안전회의를 진행하는데 매우 형식적인 것에서 그치고 있었다.

평가에서 나타난 이와 같은 노동강도는 조합원 들의 심각한 근골격계 증상 유병율로 나타났다.

5. 생체지표 측정

앞으로 근골격계질환 예방과 치료받을 권리 확보, 휴식권 및 기초위생권 보장을 위한 투쟁이 필요하

24시간 활동혈압은 뇌심혈관질환 합병증의 유

다. 최근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는 주요 요인 중 하

병률, 사망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알려져 있

나로 지목되는 간접활선 전환의 일방적 추진을 중

고, 특히 야간 혈압이 고혈압의 합병증 및 사망률

단하고, 현장 노동자가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

을 잘 예측하는 지표로 알려져 있다. 이번 연구에

색해야 한다. 더불어, 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

서 14명 중 10명이 숨겨진 고혈압이었고, 특히

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 중 9명은 모두 야간 활동 혈압이 고혈압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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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지적한 근골격계질환 산재 승인 투쟁과 치

당했다. 많은 배전 전기 노동자들이 본인의 기초

료받을 권리 쟁취, 근골격계질환 예방활동, 휴식

질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앞

권과 적정 노동강도 쟁취, 안전보건체계 구축 등

으로 일상적인 보건관리가 강화돼야 함을 확인할

은 매우 시급한 과제로 노동조합의 본격적 활동

수 있었다.

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야간 중 적절한 혈압강하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

강화하여, 인원 충원이나 고용 안정 등 구조적으

것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었다는 증거로

로 노동강도를 높이는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방

볼 수 있다. 야간혈압 비저하자의 경우 뇌졸중이

안을 모색해나가야 한다.

2020년 2월호


불평등한 일터에서 ‘자율성’은 어떻게 압박이 되는가 [인터뷰] 출판사 편집자 차소영 님 지안 상임활동가

인턴·실습 노동이란 다른 형태의 임금노동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특이한 방식의 노동 이다. 해당 기업에 정식으로 고용되는 것이 아닌데다가 교육·경험 제공·경력의 이유로 보조금 수준의 저임금 지급 또는 무임금도 정당화 된다. 또 인턴·실습 노동자는 교육과 경험, 경력, 고용 가능성이라는 명목 하에 저임금과 각종 열악한 처우를 감내해야 한다. 이러한 불안정 일자리는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자체로도 문제적이 지만, 나아가 ‘경력·경험’과 노동조건, 권리의 문제들이 상호 교환되는 것처럼 생각하도 록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비판이 필요하다. 인터뷰를 통해서 일하는 과정에서 인턴·실 습 노동자들이 어떤 위치에 서게 되는지, 그 위치는 어떤 감정적 문제들을 낳는지를 중 심으로 인턴 노동문제를 볼 수 있었다.

지난 호 인터뷰이들의 경우에는 방학 기간을 통해 졸업 의무사항인 대학생 현장실습 을 나갔던 상황이었다면,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만난 출판사 편집자 차소영님은 대학 졸 업 이후 첫 직장으로 대형 출판사의 계열사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졸업 이후 일자리를 구하는 입장인 만큼 인턴 일을 하게 된 배경과 동기 측면에서 차이가 있 다. 4대 보험도 없었으며, 연차·병가도 없어 눈치를 보며 부탁을 해야 했지만, 워낙 저 임금 일자리였지만 신입직원을 잘 뽑지 않는 출판업계에서 경력을 쌓으려면 어쩔 수 없 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하는 과정에서도 직장 내 관계들, 이 일자리가 정식 고용으로 이어질 것인지 등등의 문제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지난 1월 30일 첫 직장에서의 인턴 경험과 현재 출판노동자로써의 노동경험을 듣기 위해 2015년부터 4~5년 간 출판사 편집자로 일해 온 차소영 님을 합정역 인근에서 만났다.

자율성과 마감기한 사이, 출판노동자의 업무 스트레스

차소영님은 a출판사 인턴으로 10개월을 근무한 이후 계약연장으로 6개월 정도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23


더 근무를 했다. a출판사를 그만둔 이후로

“저는 인턴으로 일했던 당시에 기존 인턴 업

는 b, c출판사의 정규직 직원으로 일했다.

무를 한 게 아니라 일반 사원과 똑같이 책임

인턴으로써의 노동경험의 특성을 비교하

편집도 맡았어요. 당시 낮도 밤도 없고, 주말

기 위해 우선 편집자들의 노동에 대해 들

도 없이 야근을 정말 많이 했죠. 그런데 이게

어보았다. 먼저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참 까다로운 부분인 점이 편집 일이란 오역

편집자들이 어떤 노동과정을 거치는지 물

을 잡으려고 한번 원서 대조를 하면 한도 끝

었다.

도 없는 일이예요. 한 문장 한 문장 단위로 확 인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이상한 문장 정도

“편집자가 하는 일은 소속 출판사나 분야에

만 골라서 확인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적당

따라서 조금씩 다르긴 해요. 예를 들어 문학

히 교정을 보고 시간 내 마감만 맞추는 편집

분야의 경우는 저자와 관계를 맺고 쌓는 일

자들도 있죠. 그만큼 편집자 개개인의 역량과

이 중요하다면, 인문사회 분야는 번역서가 절

노력에 기대는 부분이 커요”

반이기 때문에 해외 신간 서적을 조사·검토 하고, 역자를 찾는 일이 중요하죠. 제가 일하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자율성이

는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 원고가 들어오면 아

크지만 책이 예정된 시기에 원활히 출간되

주 기본적인 오탈자·오역 잡기부터 사실관계

기 위해 필요한 마감기한이 엄격히 정해져

를 찾고 검토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역사

있기 때문에 이 ‘마감’에 대한 편집자들의

서 같은 경우는 사실관계 확인이 매우 중요해

스트레스가 극심하다. 실제로 마감 기간은

요. 교정 단계 이후에 책이 만들어지면, 마케

가장 바쁜 시기이기도 하며 양적으로도 노

팅 자료를 마케터에게 넘겨주고 디자인 컨셉,

동시간이 늘어난다. 특히 편집자들이 사무

표지, 책의 판형 등 발주를 넣죠.”

직 직군 중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대표적 인 직종이라는 점에서 업무 연관 스트레스

출판사 편집자들은 2~3개에서, 많게는 4 개 정도의 원고를 각자 담당하는 시스템이

나 장시간 노동에 따르는 건강장해 문제도 질문했다.

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작업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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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번에 1권씩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교정 작업이예

한 편집자가 여러 개의 원고를 각각의 진

요. 총 3번의 교정 작업을 거치는데, 1교가

행 단계에 맞춰서 작업해야 하는 시스템이

끝나면 검토한 내용을 저·역자에게 보내요.

다. 그리고 서로의 교정본에 대해 편집자

이 코멘트를 얼마나 관철시키느냐가 해당 편

간 크로스 체크를 하는 과정이 있긴 하지

집자의 역량이라고 볼 수 있죠. 3교까지의 교

만, 기본적으로 편집일이 담당 원고를 가

정 작업이 끝나고, 마지막 최종 체크를 하는

지고 각자 작업하는 업무 특성이 있기 때

‘마감’ 기간은 마지막 체크 단계라고 보면 돼

문에 일의 자율성이 대단히 크다.

요. 특히 차례나 소제목, 쪽수 등에서 오타가

2020년 2월호


나면 큰일이잖아요. 이미 3번에 걸쳐서 확인

서 교정본을 본 저자가 새 강의록을 보냈는

한 원고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놓치는 경우가

데, 교정 이전으로 싹 다 되돌린 내용인 거예

생겨요. 그래서 마감 시기에 긴장하면서 한번

요. 토씨 하나 고치지 말라는 거죠. 그 날 내

확인한 걸 두 번, 세 번씩 보는 거죠. 책의 내

가 일한 것에 대한 완전한 부정을 당했다는

용을 읽는 게 아니라 그 안의 글자들을 전부

마음에 화장실 가서 울기도 했고, 큰 스트레

확인하는 단계예요. 얇은 책은 그나마 다행인

스를 받았어요.”

데, 제가 인턴 때 편집했던 책은 무려 1400 쪽에 달하는 역사서였어요. 그럼 확인하는 데 만 이틀은 꼬박 봐야 하는 거죠.”

종합하면 편집자의 업무란 저자와의 관 계, 일의 자율성, 마감기한 등등 스스로 상 황에 대응하고 조절해야 하는 역량이 중요

한편, 분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다는 업무의 특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저·역자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

이러한 특성들이 노동자 개인에게 부담이

고 관리하는 것도 편집자의 중요한 업무

되기도 하고 압박감으로 작용한다. 그렇

다. 그렇지만 출판사 직원인 편집자와 저·

지만 일을 조율할 권한이나 대응력이 없는

역자의 위치란 이미 위계적으로 구성되기

신입 직원이 이런 일을 담당해야 한다면

쉽다. 특히 경력이 얼마 안 된 편집자와 이

어떨까? 또는 정식 직원도 아닌 인턴 노동

미 많은 책을 집필한 저·역자의 관계에서

자가 담당했다면 어떨까? 직원도, 외부인

는 더 수직적인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도 아닌 애매한 지위와 더불어, 고용승계

높고, 그런 점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평가 속에서 편집

서 책에 대한 코멘트 및 교정 작업을 진행

자의 자율성에 맡기는 업무들은 대단히 좋

해야 한다는 어려움 때문에 업무스트레스

은 성과를 내야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를 호소하는 편집자들이 많다. 차소영 님

밖에 없다.

역시 편집자로 일하면서 경험한 건강 문제 중 업무 스트레스를 첫 번째로 꼽았다.

인턴 노동경험의 감정들: 불안, 경쟁, 굴욕감, 압박

“한번은 당시 일했던 출판사에서, 원로인 저 자와 함께 주 1회 강연을 하고, 그 강의록을

차소영님이 일했던 a출판사는 매년 2명

가지고 묶어서 책으로 출판한 적이 있어요.

의 인턴을 뽑아 책의 보도자료를 작성하거

담당 편집자인 제가 매주 강의록을 교정해야

나 편집장을 보조하는 역할을 10개월 동

했는데, 강의록이 강의 전 날 밤에 도착하는

안 시킨 뒤, 2명 중 1명을 정직원으로 채

경우엔 밤새 교정을 보고 인쇄를 진행 했어

용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규직 전환의

요. 그런데 그렇게 교정한 원고를 원로인 저

가능성은 채용공고나 구두를 통해서 전달

자가 맘에 들어 하지 않은 적이 있어요. 그래

되지도 않았고, 관례처럼 해왔다는 모호함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25


속에서 당시 함께 인턴을 하게 된 2명은

이 막연한 불안감은 10개월의 인턴 생활

자연스럽게 비/자발적인 경쟁 구도에 놓

이 끝난 후에도 관례와 다르게 계약직으로

이게 되었다.

채용되면서 지속되었다. 그리고 결국 6개 월 만에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많은 업

“이번에도 똑같이 두 명을 채용했으니 한 명

무량과 경쟁 속에서 열심히 일한 결과로

을 정직원으로 고용승계하지 않을까 싶은 마

계약연장이 되었음에도 스스로 관두게 된

음이 당연히 들었죠. 같이 채용된 인턴과의

이유를 물었다.

관계에서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갈등 의 이유는 개인적 문제나 성격 차이 등일 수

“일차적으로 계약직으로 고용된 것에 대한 불

있지만, 서로 경쟁하는 구도에 놓여있었다는

안감이 컸고,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라는 막

게 보다 근원적인 원인이었어요. 이미 경쟁관

연한 고민과 희망을 또 다시 견디는 게 너무

계 속에 있다는 스트레스로 다른 사람과는 그

힘들고 굴욕감이 컸어요. 계약연장 과정에서

냥 넘어갈 수 있는 일들도 더 곡해하게 되는

편집장이 ‘당시 인턴 공고에 명문대 출신자들

거죠.”

도 많이 응시했는데, 그들이 원하는 일을 줄 수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안 뽑았다, 학

인턴 기간 동안 인사평가 등 고용승계와

벌이 낮으니까 너 뽑은 거다’ 이런 식으로 말

관련된 평가제도가 있었는지 물었으나, 오

했어요. 근데 그 말은 사실도 아니었어요. 그

히려 그런 평가 기준이 마련되어있지 않았

전해에 인턴을 거쳐 정직원이 된 선배 한 명

고 편집장과 대표의 주관과 잣대에 고용승

도 편집장이 말한 그 대학 출신이었거든요.

계가 달렸다는 점이 더 막연한 불안감을

아무튼 저는 그 출판사의 유일한 계약직이 되

느끼도록 한 원인이라고 답했다. 기준이

었고, 임금도 인턴 때보다는 올랐지만, 신입

없다는 점에서 오히려 일 외적인 요소까지

사원 초봉보다 못한 돈이었어요.

신경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정작 일하는 과정에서는 편집장은 제 역량을 의심한 적이 없어요. 학술서 같이 어려운 책

“다른 인턴 분은 성격이 아주 좋아서 모든 직

들은 항상 다 저한테 넘겼었거든요. 그런데

원들과 친하게 지냈어요. 그런 게 절대 채용

이렇게 정규직이 다시 될지 안 될지 처분을

여부에 결정적일 리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신

기다리는 신세가 되는 게 너무 참담했어요.”

경이 쓰이더라고요. 미래를 생각해봤을 때 내 가 고용승계가 되면 과연 다른 직원들이 좋아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원래 인턴

할까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럼 인턴이니까 다

의 직무는 편집장, 편집자들의 보조적인

른 직원들이랑 더 잘 지내야 하는 걸까 하는

역할로 정해져있었으나, 차소영님은 채용

정말 막연한 불안감도 들고요.”

이후 인턴 직무에 배치된 것이 아니라 책 임편집·외주한 결과물 최종 확인 등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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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호


편집자들과 동일한 업무에 배치된 것이다.

는 폭언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지적되었다.

심지어 처음 실무를 경험한 상황에서 인턴

이 문제는 인턴, 실습이라는 제도가 일터

들에 대한 교육은 물론 기본적인 업무 인

에서 공식적으로 불평등한 관계를 만들어

수인계조차 없어, 첫 편집을 하면서 옆자

낸다는 점에서 심화되고 있다.

리 사원에게 물어가며 일을 시작했다. 게 다가 원래 편집 과정에서 필요한 ‘크로스

물론 어느 직장이나 그 안의 관계가 평

체크’ 과정도 없었다. 책 한권에 대한 책임

등하기란 어렵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사

이 온전히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는 생각은

내 직급 간 격차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

강한 압박감으로 작용했다.

와 하청 노동자 간의 차별들은 뿌리 깊은 일터의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연장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마감기간에는 밤에 불

선에서 ‘인턴’이라는 제도와 지위 역시 위

을 켜놓고 잘 정도로 큰 압박감에 시달렸어

축감과 압박감, 배제의 문제, 그리고 그것

요. 제가 더욱 과도하게 긴장을 느낀 부분도

과 연관된 감정적 손상을 낳는다. 그러나

있는데, 그건 처음부터 전혀 훈련이나 교육

인턴노동의 경우 이런 모든 요소들이 ‘불

이 안 된 채로 실무에 투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완전한 노동’ ‘경험, 경력의 기회’라는 언

생각해요. 실무 용어들도 하나도 못 알아듣

어를 통해 정당화된다는 점이 가장 문제적

는 상태에서 옆 사원에게 물어가며 엄청난 부

이다. 이런 기제와 더불어 인턴노동자들은

담감에 시달리며 진행을 했어요. 그게 습관이

어떤 경우에는 (노동조건 또는 불평등한

돼서 마감할 때마다 큰 불안감을 느낀 것 같

대우) 인턴이기에 감내해야하는 불공평함

아요. 마감 기한이 항상 촉박한 것도 한 가지

이 전제되고 어떤 경우는 (업무량, 장시간

원인이고요. 출판사고에 대한 불안이 컸는데,

노동) 동일한 한명의 직원으로 받아들여지

누가 크로스체크라도 해줬으면 부담이 좀 덜

고 있었다. 이런 지점을 통해 어떻게 인턴

어졌을 것 같아요.”

이 저임금 인력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기 업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인턴제도를 유지

일터에서의 불평등한 관계가 인턴·실습이라는

하는지 차후의 인터뷰를 통해 더 밝히고자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게 문제

한다.

특히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는 이런 불평 등이 인턴 노동자 개개인에게 어떤 감정적 문제를 주는지, 감정적 손상의 문제를 들 어볼 수 있었다. 정규직 사원 앞에서 들었 던 위축감, 사원복지와 회의구조에서의 소 외로 인한 배제감, 인턴에게 쉽게 가해지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27


사진으로 보는 세상

28

2020년 2월호


217일 간의 시간.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의 투쟁 기록입니다. 이 숫자가 이들이 겪었던 모든 시간을 보여줄 순 없을 것 입 니다. 그 이상의 결의를 모아나갔고 싸워왔습니다. 자회사와 기간제를 선택하지 않으면 해고한다는 도로공사의 폭력적 입장에 맞서 싸운 노동자들은 쉼 없이 달려온 투쟁을 마무리하고, 현장으로 복귀합니다. 현장을 바꿀 힘은 노동자들에게 있습니다.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힘을 모아나가는데 <일터> 독자 분들도 함께 해주세요. 글 선전위원회 사진 호나라

사진으로 보는 세상

29


현장의 목소리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을 위한 투쟁 금속노조 시그네틱스 분회 윤민례 분회장 인터뷰

정재현 상임활동가

시그네틱스(주)는 1966년 9월 12일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전자산업을 한국에서 처음 시작한 기업이자 최초의 외국인투자기업이었다. 한국에서 반도체 사업 이끌었던 사업장이다보니 삼성전자, 엘 지전자 등이 기술을 배우러 올 만큼 시장에서의 영향력이나 높았고,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자부심 역시 상당했던 현장이었다. 그런데 1975년에는 필립스가 1995년에는 거평 그룹이 지분을 인수했다가 기업 부도로 2000년 영풍 그룹의 계열사로 넘어가면서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18년의 세월동안 3번의 해고를 당하며 소소하고 평범했던 일상은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고 눈물겨운 투 쟁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는 희망 : 시그네틱스 노동자 18년 투쟁의 기록>이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반도체 전자산업 현장의 어두웠던 이면

사에서 면접 보고 국영수 시험을 봤다. 반도체 공장 설비가 미국에서 사용하던 것들이라 키가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윤민례 분회

157CM 이상 넘어야 하고 영어를 아는 여성 직

장은 1988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원만 선발하는 게 기준이었던 거다. 1차 모집은

3월 서울 염창동에 있는 시그네틱스에 입사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사람만 선발해서 떨

했다. 윤민례 분회장에게 시그네틱스 현장은

어졌고 2차 모집에서 합격했다. 이후 6차까지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인데 2001년에 해

모집이 이어졌다.”

고 되어 지금껏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윤민례 분회장과 같은 시기에 입사한 노동

30

“서울 화곡동에 언니가 살고 있었는데 동네에

자들은 시그네틱스가 새로운 제품 제작을 시

서 시그네틱스가 굉장히 유명했다. 언니가 나를

작하면서 만들어진 공정에서 일했는데 그해

입사시키려고 직원 모집하는데 접수를 했고 회

연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2020년 2월호


“1년 내내 일했는데 갑자기 12월 연말이 되니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을 불행하게 한 거평과 영풍

까 회사에서 사람을 해고한다는 이야기가 나왔 다. 지금 미리 사직서를 제출하면 1달치 월급을

1995년 건설업과 부동산업의 성공으로 갑

주고 아니면 그냥 나가야 하니까 미리 제출하라

자기 덩치를 키운 거평 그룹은 필립스로부터

고 사람들을 압박했던 거다. 그래서 나도 사직

시그네틱스를 인수했는데 이후에도 무분별

서를 썼는데 같이 일하던 언니들이 이거는 월급

한 계열사 확장으로 경영이 어려워졌다. 게

많이 받는 선배들 나가라고 하는 거니까 너는

다가 염창동 공장 부지를 담보로 융자를 받아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게다가 우리는 황산을

파주에 땅을 사들여 새로운 공장을 짓기로 하

온종일 쓰면서 일하는데 누가 오려고 하겠냐고

면서 부채 비율이 높아지면서 경영은 더 어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는 필립스 자본이었

워졌고,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 진행한

는데 이런 식으로 매년 사람을 뽑고 정리하는걸

직장폐쇄에서 노동조합은 패배했다. 결국 거

알게 됐다.”

평 그룹은 워크아웃 상황에 놓였고 노동조합 은 임금 동결, 상여금 반납 등 위기를 벗어나

윤민례 분회장은 일하면서 노동조합을 만

기 위해 많은 권리를 양보하면서 2000년 워

나고 새로운 세상을 눈을 뜨게 되었다. 입사

크아웃 상태를 벗어났다. 노동자들은 회사와

당시 1988년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

의 상생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는데 영풍

장에서 노동운동이 활발했고 시그네틱스가

그룹은 이런 노동자들을 탄압했다. 안산으로

유니온샵이었기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을 자

공장이전하기 전 이주불가자라는 이름으로

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희망퇴직을 받으면서 190명이 사직하게 된 것이다. 2000년 거평 그룹을 인수한 영풍 그

“현장은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열기가 남아있을

룹은 거평 보다 더 악날했다. 본사가 있는 파

때라 아주 활동이 활발했다. 개인적으로는 대의

주에 모든 노동자들을 데려가는 것으로 사람

원을 할 때 같이 일하던 부서 사람들이 황산을 사

들은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기도 안산에

용한 것 때문인지 부인과 질환으로 수술하거나

공장을 만들고 모두 이곳으로 내쫓으려고 한

유산한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관리자들에게 적

것이다.

어도 임신 중에는 직접 황산을 사용하지 않는 다 른 부서로 배치해달라든지, 특수건강검진을 요

영풍 그룹은 안산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구하고 받도록 하는 것, 위험수당 도입 이런 것들

최대한 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노동조합

을 제안하고 요구하는 활동을 했다. 나도 나중에

역시 무력화 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파주공장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다른 부서에 배치 받았

은 노동조합이 없는 100% 비정규직 공장으

다가 다시 돌아왔다.”

로 만든다는 것이 큰 계획이었다. 파주공장 은 노동조합이 없는 100% 비정규직 공장으 로 만든다는 큰 계획이 있었다. 이후 영풍 자

현장의 목소리

31


본은 끊임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3

다. 4월 3일부터 책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고 저

번의 해고를 비롯해 노조파괴를 일삼았다. 윤

희가 12월 7일에 조합원들과 연말 송년회를 앞

민례 분회장은 노동조합 간부로써 2007년부

두고 있다고 하니 이때 우리에게 선물로 꼭 주

터 현재까지는 분회장으로써 시그네틱스 투

고 싶다며 작업을 진행하셨다.”

쟁을 승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어깨 에 지고 살아야 했다.

윤민례 분회장에게 이번 책 작업에서 느낀 점,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어떤 조합원들은 제가 장기 집권한다고 이야 기들을 하는데 워낙 현장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

“우선 글이 너무 좋았다. 작가님이 제가 하나를

갔기 때문에 지금까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

표현하면 열을 담아주신 것 같다. 다른 동지들도

지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해고 싸움해서 이기

역대 투쟁 사업장 백서보다 이번이 훨씬 좋은 책

고 현장으로 복직하면 출근을 못하게 하고, 하

이다, 하루 만에 쭉 읽을 수 있었다는 분들이 있

청 회사로 들어가라고 하고 또 싸우다가 해고되

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이 책을 꼭

고 복직하면 몇 년째 일을 안주고 휴업해버리고

저희한테 사시라. 한 권 사면 저희한테 투쟁 기

늘 전쟁을 치루는 상황이었다.”

금이 들어온다. 그리고 꼭 읽어 봐주셨으면 좋겠 다. 왜냐하면 영풍 자본이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빼앗긴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던 투쟁

했지만 견디었고, 지나간 세월을 기억해주는 것 만으로도 어쩌면 우리는 승리했다고 생각하기

오랜 기간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투쟁에

때문이다. 영풍 자본의 만행을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을 기울여왔던 박일환 작가는 18년이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꼭 기억해

는 기나긴 시간동안 왜 이들이 싸움을 멈출

주기를 바란다.”

수 없었는지, 오늘도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노동조합에 책 작업을 제안했다.

이번 책 제목인 <빼앗긴 노동 빼앗길 수 없 는 희망>은 어떻게 정해졌는지, 어떤 부분이 와 닿았는지 궁금했다.

“작가 선생님께서 우리 투쟁에 관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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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들었고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만나면서 책을

“가제목으로 몇 개 주셨는데 처음부터 이 제목

쓰고 싶다는 연락을 주셨다. 우리는 그렇지 않

이 확 와 닿았다. 우리는 빼앗기고 버림받은 사

아도 지금까지의 투쟁을 백서로 남기고 싶은데

람들인데 이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그

그럴 예산이나 여력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고 말

네틱스 투쟁으로 희망을 만들어보고 싶다. 저희

씀드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저기 찾아서 나

는 노동조합도 있었고 정규직이었는데 영풍 그

오는 기록들 말고 뭐랄까 조합원들이 직접 겪었

룹은 노동조합을 없애려 단체협약 해지 통보와

던 경험이나 기억이 잊혀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

해고를 반복했다. 그러나 19년간 투쟁사업장으

2020년 2월호


로 지내오면서 3번의 해고도 이겨서 극복해왔

“매일 출근은 하는데 일이 없어서 대기하다

다. 2001년600여명의 조합원에서 2020년 25

가 퇴근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2주에 한

명이 되었지만 저는 그 숫자가 적지 않다고 생

번씩 임단협 교섭을 하고 있는데 회사는 늘

각한다. 영풍은 우리의 것을 다 뺏어가려고 탄

사정이 어렵고 무급휴직, 희망퇴직, 구조조

압했지만 버티고 견디었다. 다시 되찾고 싶고.

정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흘린다. 이렇게

못 되찾더라도 이를 알려내는 것이 남아있는 과

하는 게 법원에서 노동조합과 충분히 협의하

제라고 생각한다.”

고 있는데 상황이 어려워서 공장 가동이 어렵 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우리도

윤민례 분회장은 분회장 역할과 함께 금속

회사가 뭔가 꾸미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

노조 경기지부 가)안산시흥지역지회에서 안

같으니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후 대응을 할 것

산반월시화공단에 있는 영풍전자, 코리아써

이다. 만일 다시 해고한다면 싸워야 할 것 같

키트, 인터플렉스, 테라닉스 등 영풍 그룹 산

고 지금과 같은 무한정 휴업이 계속 길어지면

하의 전자 계통 계열사 노동자들에게 시그네

그것에 맞는 판단을 다시 할 것이다.

틱스 투쟁 상황과 영풍 자본의 악독함을 알려 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훗날 이들과 함께하 게 될 날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윤민례 분회장에게 지금까지 옆에서 함께 싸워준 조합원들에게 한마디 말씀을 부탁드 렸다.

여전히 끝나지 않는 싸움 “조합원들이 예전에는 파업 몇 일인지 계산하 시그네틱스는 2016년 폐업 수순을 밟았고

다가, 해가 바뀌면 파업 몇 년 하다가 그것도 지

위로금을 받고 퇴사한 조합원을 제외한 9명

나니까 이제는 투쟁 20년이라고 한다. 지금껏

이 끝까지 남았고 해고 되었다. 이후 소송을

3번의 해고 싸움을 하면서 많이 지쳤고 고생도

통해 해소 무효 판정을 받았다. 판정 이후에

많이 했지만 조합원들이 함께 싸웠기에 여기까

도 영풍 그룹은 경기도 광명에 있는 아파트형

지 올 수 있었다.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으니까

공장으로 이전하고 공장 설비를 갖추지 않고

조금만 힘내서 같이 가면 좋겠다.”

일을 시작할 수 없다며 1년 넘게 휴업을 시켰 다. 이후 노동조합은 영풍 그룹이 위장휴업을

인터뷰 이후 윤민례 분회장에게 연락이 왔

하고 있으니 즉시 고용해달라고 다시 소송을

다. 2020년 2월 3일 전면휴업 공고문이 붙었

걸었고 2019년 9월 20일 위장휴업과 강제휴

단다. 무기한 휴업이 시작 된 것이다. 조합원

직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에서 또다시 승리했

들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며 또 다시 가보

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들은 일을 하지 못

자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하는 상황이고 영풍 그룹은 다시 항소를 했고 2심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현장의 목소리

33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안전은 환경개선에서 비롯됨을 온몸으로 보여주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유진기공분회 김기원 노동안전부장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낯선 곳에서 낯선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기대와 걱정이 함께 한다.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5km를 남겨둔 시점에 문을 닫았다는 연락을 받고,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재설정하였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비교적 널찍한 열람실과 사무실과 교육실이 자리한 ‘좋은이웃 작은도서관’이 있었다. 1월 15일 오후. 마침 한적한 시간이라 인터뷰 장소 로 안성맞춤이었다.

인터뷰 일정을 정할 때 금속노조 경기지부 차 원에서 평택지역 연대투쟁을 다녀오신다는 일정

사람이 다치면 힘든데, ‘네 책임이다’라고 얘기할 때 가장 부당하게 느껴

을 들었다. 어떤 내용인지 먼저 들어보았다. 부산 한국노총 사업장에서 일하다 안산 유진기

단체협약 사항을 어기고 사측에서 일용직을 고용

공으로 옮겨 일한 지 28년. 노동조합 설립은 1년

하여 노조에서 문제제기한 현대위아사업장이 있

6개월. 오랜 세월 무노조 사업장에서 일하다 현

어요. 노조에서 법원에 제소하여 2심까지 승소하

장관리자 반장인 그가 노동조합을 만든 계기가

였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중인데, 사측에서 오히려 직장폐쇄를 운운하며 고소 취하를 종용하 고 있어서 항의 연대투쟁을 다녀왔어요. 고용불안 상황은 어디든 비슷한 것 같아요. 노조 설립 후 단협에 최소 계약직을 고용하자는 내용이 있어 회사에서는 일용직보다 최소 6개월~1년 계 약직을 고용하고 있는데, 그분들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하고 산재처리도 함께 진행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34

2020년 2월호

궁금했다.

노조 만들기 전에는 저도 어쩔 수 없는 말단 현장 관리자니 반원들 압박도 했을 텐데 당시 현장 안 전관리업무도 했었는데, 다쳤을 때 많은 부분이 부당하다고 느꼈어요. 사람이 다치면 힘든데 ‘네 책임이다’라고 얘기할 때 젤 기분이 안 좋았고, 반 원이 다쳤을 때도 쉬어야 한다고 얘기하면, 회사


▲ 김기원 유진기공분회 노안부장(오른쪽) 출처 : 유진기공분회

에서는 하루 쉬고 다음날 출근할 수 있게 하라고

현장이 1공장, 2공장으로 나눠져 있고, 대기업처

했을 때 많은 부담감을 가졌어요. 물론 회사에서

럼 사업을 가족들이 쪼개서 만들었어요. 유진전

병원도 보내고 공상도 하지만 부당하다는 것을 느

기, 유진차량 등 대여섯 개 정도 되는데 유진기공

꼈어요. 오버타임 근무를 해도 어느 정도껏 해야

이 모체예요. 1공장, 2공장, 유진전기까지만 한

하는데, 밤 12시~1시까지 할 때도 있었고요.

노조로 만들어서 현장조합원은 104명, 사무직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중 고민하다가 회사에서

20여 명 조직되었으나, 현재는 103명으로 과반

200~300m 거리에 민주노총 안산지부가 있었어

수는 아직 안 되죠. 사업주는 모체인 유진기공 대

요. 점심시간에 가서 면담을 했는데, 현장 반장이

표이사와 협상하고 있어요. 현장직은 100% 가입

와서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한 상태이기 때문에 쉽게 흔들지 못해요.

인지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더라고요. 두 번째 가서 사실적으로 얘기했을 때는 터놓고 말씀해주시더 라고요. 노조 만드는 기틀이 있었고, 노동조합활 동과 안전에 대해 ‘좋은이웃 작은도서관’과 비정 규직센터의 노무사님들 도움도 받고, 노동조합 설 립을 하게 되었어요. 140명이 과반인데 현재 조합원은 103명. 사무 직이나 연구직은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고

평균연령이 50세 전후인 전형적인 금속사업장 유진기공분회는 임단협 시 조합원이 가장 원하 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임금 인상이죠. 만 50세가 되면 임금피크제를 실 시해서 재작년까지만 해도 58세가 정년이었기 때 문에 8년간 임금동결을 하고 2년 동안 더 근무하 겠다는 서약을 했었어요. 작년에 임단협에서 60

하니 위협을 느껴 탈퇴하기도 했다는데 굳건하

세로 조정되었고, 금속노조의 단협안을 가지고 교

게 지키는 동력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섭해서 그만큼은 아니지만, 성과는 많이 봤어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35


근무시간은 8시 출근 5시 퇴근이지만 잔업을 많

병원에서 진료받고, 오후에 공상 중인 조합원과 상

이 했는데, 이번 단협에서 주 52시간 쟁취할 것

담이나 병원 방문을 하고 있죠. 물론 회사에서는

같아요.

별로 안 좋아하지요. 그래도 산보위위원장이고 분 기별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니까 현장에 들어가

회사 측의 좋지 않은 선례는 조합원의 마음 깊 숙한 곳에 새겨진다

는 것에 관해 별다른 간섭을 받지 않고 있어요. 요즘 산보위 주요 안건은 안전을 우선으로 하고 있 어요. 산재를 당하거나 옆에 사람들이 아프다고 했

근골격계질환이 다발하는 금속사업장에서 산 재 신청하면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는 얘

을 때는 문제가 있는 것이니까 금속노조에서 지침 내려오는 대로 근무환경 개선을 먼저 하고, 위험성 평가도 할 수 있게 했어요.

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여 쭤보았다.

그가 일했던 부서는 꿰뚫고 있지만 다른 부서는 잘 몰라서 산보위원을 통해서 알아보고 직접 확인

어느 부서에서 어깨가 안 좋다고 상담을 해왔어 요. 금속노조 노안교실에서 교육받은 그대로 얘기 해주었어요. 산재신청이 가능할 것 같고, 원한다 면 비정규직센터 노무사와 면담을 해보라고 했고,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산재는 가능하다는 것을 다 시 확인했어요. 그런데 몇 년 전 산재를 원해서 그 만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안 하겠다고 했어요. 지금은 노조가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복귀 후 한 달 뒤에는 해고를 할 수 있을지언정 법적으로도 산재요양기간에는 해고할 수 없다는 것도 알려줬지만 결국 안 하겠다고 했 어요. 그래서 저도 어깨가 안 좋은 상태여서 산재 신청을 할 것이니 이후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어 요. 몇 년 전 결례가 있기 때문에 산재요양이 끝나 고 복귀하는 것을 보고 나면, 다른 분들도 산재신

하여 함께 의논한 뒤 산보위에서 제기한다며 구체 적인 활동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말로만 하다 요구한 것에 대해서 개선된 것은 개선안을 받고, 안 된 것은 언제까지 줄 수 있 는지 기간까지 요구하고 있어요. 금속노조 경기지 부 단톡방에서 오래 활동하신 분들이 조언을 해줘 요. 그걸 토대로 산보위에서 이야기도 하고, 현장 에서도 어느 회사에 사례가 있으니 우리도 하면 된 다고 이야기해줄 때 처음에는 ‘아이구 뭐 다른 회 사와 우리가 같냐’고 했지만, 지금은 조합원들이 조금씩 바뀌는 걸 느끼죠. 산보위원들이랑 현장에 들어와서 둘러보면 좋아하고, 이것은 좀 개선해달 라고 직접 얘기해요.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청을 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회사가 다치지 않을 환경을 만들면, 현재 산재요양 기간에 왕성하게 노동안전보건

안전은 분명히 따라온다

활동을 하고 계시는 김기원 노안부장님께 산업 안전보건위원회의 주요 안건과 일상 활동에 대 해 들어보았다.

물건이나 납품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교육을 받으면서 선입견이 많이 바뀌었다는 그는 회사 가 다치지 않을 환경을 만들면 안전은 분명히 따

요양 중인데 노조활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아침에

36

2020년 2월호

라온다며 노안활동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털어놓았다.

데,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인식이 사업장을 넘어 서 지역운동으로 발전한다면 그 파급효과는 매

현장의 안전은 꼭 지키고 싶어요. 계약직이 와서

우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 투입되거나 부서이동을 할 때 안전교육 을 의무적으로 하게 끔 했고, 앞으로 그렇게 할 예 정이에요. 분회 집행부가 다 같이 한 마음 한 뜻 이 돼야 가능한 일이어서 팀을 만들어 분담을 했 어요. 산보위원과 상집까지 현장 안전점검을 하는 일터팀을 만들었어요. 누구라도 안전하지 못한 위 험성에 대해 지적하고 이것을 회사에서 수용할 수 있어야 해요. 지금은 저나 분회장이 이야기하면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지는데, 특정 한 두 명이 아 닌 산보위원까지도 위험성을 지적했을 때 시정조 치가 빨리 되는 분위기가 됐으면 해요. 평균 연령도 높은 편이고 부장님도 정년이 얼 마 안 남으셨는데, 정년퇴임 이후는 어떤 계획을

‘좋은이웃 작은도서관’에서 50대 이상 모임을 추 진하고 있고, 안산노동대학의 재학생들, 비정규직 센터와 각 분회, 지회가 네트워킹이 잘 돼 있다면 퇴임 후에도 분명히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얼마 전 아파트 동대표를 맡았어요. 퇴임 이후 경비노동자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언뜻 했는데 거주 중인 아파트 종사자는 근무환경 이 어떤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입주민으로 물어봤 을 때는 별 얘기를 안 하셨는데 동대표이다 보니 저보다 형님들 애환도 듣고 이야기가 돼요. 일터 독자들도 각자 일하는 곳에서 안전했으면 한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갖고 계신지 들어보았다.

안산지역은 4·16을 겪었잖아요. 아직도 세월호 산재요양 중이지만 의사선생님들은 80% 이상 좋

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경우가 있는데, 팩트를 알

아지면 완치라고 보기 때문에 완치되면 현장복귀

지 못하면 말하지 않았으면 해요. 얼마 전 자살한

하고 안전을 먼저 생각하면서 안전하게 정년퇴직

유가족이 계시잖아요. 사람들은 트라우마에 대해

하고 싶어요. 늘 동료들에게 ‘아침에 출근한 몸 상

서는 생각을 못해요.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에게는

태로 저녁에 퇴근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계속 얘

지난 세월이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잖아요. 산재도

기해요. 그렇게 만드는 것이 제가 하고 싶은 것이

트라우마가 있잖아요. 각 분야에서 언제든지 다칠

에요.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옆 사람에게 안전에

정년퇴임 이후에 1년간 촉탁직을 하면서 노조활동

관해 얘기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은 계속하고, 저뿐 아니라 동연배들 대부분이 후배 들에게 안전한 일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많 이 도와도 주고 서로 소통해요. 퇴임 이후 지역에서 안전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활 동하면서 살고 싶어요

퇴임 이후 지역에서의 계획도 잠깐 밝혀주셨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37


노동시간 사람 노동시간읽어주는 읽어주는 사람

아동·청소년 연기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방송노동현장

▲ 20년 1월 14일 화요일 오후 <아동 청소년 대충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 선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출처: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성상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활동가, 문화평론가

“12시간 일하고 12시간 쉬자!” <일터>의 독자

의 일부였다. 다행히도 영화 노동은 10년 이상 지

들에게는 이 말이 무척이나 이상하게 들릴 수도

속된 영화산업노조의 투쟁과 활동의 결실로 표준

있다. 하루 12시간 일하는 것도 엄연히 노동법

근로계약서를 정착시키는 것은 물론 열악했던 노

에 위배되는 상황인데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

동 환경이 차근차근 개선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

까. 그러나 드라마 촬영을 비롯한 방송 노동에서

론 주 52시간 연장 제한 준수를 위한 움직임도 꾸

는 12시간 쉬는 것도 무척이나 감지덕지한 상황

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 오랜 시간 이어졌다. 본래 이 구호는 2005년

38

이렇게 영화 노동의 상황이 변화하고 있는 것과

결성한 전국영화산업노조에서 사용하던 문구였

달리 방송 노동은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다. 문화예술과 관련된 업계 중에서는 가장 빠르

열악한 상황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오랜 시간 관

게 노조가 생긴 편이었던 영화 영역은 다른 문화

행으로 정착된 ‘쪽대본 문화’는 방송 촬영에 충분

영역의 노동과 다를 바 없이 매우 열악한 노동환

한 여유를 들일 수 없게 만들었고, 2000년대 이

경에 놓여 있었다. 노동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무

후 방송업계에서 가속화된 프로그램 제작 외주화

리한 야간 촬영, 장시간 촬영도 척박한 노동조건

는 ‘방송 산업 전문화’와 ‘방송 프로그램 다양성

2020년 2월호


추구’라는 명분과 달리 전형적인 하도급 노동의

황에서 산재 사고는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업무

체제를 방송업에 그대로 정착시키는 계기를 만들

특성상 준비 작업과 철수 작업으로 다른 직군보

었다. 방송국이 충분한 제작비를 지급하지 않은

다 더욱 길게 일하는 세트나 소품, 분장 등의 미술

상황에서 외주 제작사조차도 자기들이 살기에만

분야팀은 출퇴근 과정에서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바빠 방송 노동의 문제는 등한시했다. 여기에 한

당하기 일쑤였다. 폭염이나 한파가 찾아와도 노

국의 경우, 방송을 비롯한 문화예술 영역의 노동

동 시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2018년 SBS에서

이 전반적으로 시장 규모에 비해 제대로 된 노동

방송한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 참

자 보호 제도가 정착되지 못한 것은 물론 노동자

여한 방송노동자 한 명이 그해 7월, 사상 유래 없

들의 조직화도 충분치 않다는 제반 조건의 문제

던 폭염 속에서도 76시간 촬영을 하다 집에서 잠

까지 존재한다.

시 수면을 취하던 중 과로사로 의심되는 돌연사 로 세상을 떠난 사건이 대표적이다.

방송국이 자신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제대로 된

‘하루 12시간 노동’은커녕 주 70시간, 주 80시

책임 의식을 지니지 않는 사이 방송국은 방송노

간 노동이 만연한 상황 속에서 방송노동자 대다

동자들을 쉽게 쓰다 버리는 휴지처럼 취급하는

수가 힘겨운 상황에서, 더욱 사각지대에 놓여 있

일이 만연했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다는 이

는 분야가 있다. 소위 ‘아역배우’라는 호칭으로

유 하나만으로 방송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식하

익숙한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이다. 많은 이들이

지 않은 사례는 무척이나 허다했다. 방송 노동에

알다시피 아동과 청소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

대한 감수성이 미비한 상황에서 ‘쪽대본 문화’가

으로 성숙하는 단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세심하게

겹친 결과는 초장시간 노동이다. 극히 일부의 프

접근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이 상식은

로그램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은 방

최소한 방송 노동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방송 노

송 예정 시간 하루 전, 심하면 몇 시간 전까지도

동에 만연한 초장시간 노동환경이 그대로 아동·

촬영이 계속된다. 또한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방

청소년 연기자들에게도 적용된다. 설사 등장하는

송국 사이의 경쟁 속에서 한국 드라마의 평균 방

장면이 단 몇 장면에 불과할지라도, 그 몇 장면을

송 시간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찍는 시간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이

길어졌다. 방송 시간은 세계에서 제일 긴데, 준비

다. 장시간 촬영, 장시간 대기가 고착화된 상황에

하는 시간은 세계에서 제일 짧은 기형적인 환경

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것은 물론 학교에 다

에서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한

니는 아동·청소년 연기자는 학습권을 침해받기까

스케줄 속에서 촬영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졌다.

지 한다.

시간이 없으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야간 촬영 장면이 있으면 최대한 밤 시간대를 활용해야 한

지난 1월 14일,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비

다는 이유로. 여기에 아무리 노동 시간을 길고 길

롯해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

게 만들어도 제동을 걸 존재나 제도도 없었다.

개혁시민연대 등 인권·노동·언론 영역의 단체들 이 모여서 결성한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제대로 된 수면이나 휴식을 취하기 어려운 상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팝업(Pop-Up)’이 국회 토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39


론회에서 발표한 아동·청소년 연기자 실태조사에

지속하기 위해 아무리 부당한 일을 겪어도 참는

의하면 이 실태는 더욱 명확해진다. 조사에 참여

것이 당연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9살 때부터

한 총 103명의 아동·청소년 연기자들 중 1일 최

연기 활동을 시작해 어느덧 배우로는 물론 가수

장 12시간 촬영을 경험한 이들은 63명으로 60%

로도 이름을 알린 양동근이 2015년이 되어서야

에 육박했다. 심지어 이들 중 3명은 24시간 이상

드라마 PD에게 정신적인 폭력을 받은 것을 고백

촬영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대답하여 충격을 주

한 것이 대표적이다. 청소년 시기를 지나 성인이

었다. 이러한 초장시간 노동에 아동·청소년 연기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심어진 침

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

묵의 기제가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에게 강력하게

물었다. 단 18명의 응답자만 야간 촬영를 진행할

작동한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때마다 제작사가 동의를 구했다고 답변했다. 자 연스레 이는 학습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단 2명의

여기에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한 인식과 감수

아동·청소년 연기자만이 드라마 촬영 기간 중에

성이 낮은 환경이 함께 영향을 미친다. 아동·청소

결석이나 조퇴를 한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년을 동등한 존재로서 대우하고 존중하기 보다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하거나 무

성인들도 제대로 쉬지 않고 일하면 피로를 느끼

시하는 것이 2020년 현재에도 한국에서는 만연

는 상황에서, 한창 성장기에 놓인 아동·청소년 연

한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방송 노동의 열악한 현

기자들에게 초장시간 촬영은 더더욱 큰 피해를 줄

실은 방송 노동 현장의 억압적인 문화와 열악한

것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아

인권 감수성이 결합하며 오랜 시간 동안 문제가

동·청소년 연기자들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있어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졌

환경에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엔

다. 아동·청소년 연기자의 초장시간 노동환경은

방송노동환경이 전반적으로 열악한 것이 그대로

연기자가 되기 위한, 또는 방송 환경에서 버티기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문제

위한 당연한 ‘통과의례’로 여기고 있는 셈이다.

도 크지만, 한국 사회가 아동·청소년 연기자를 바 라보는 시선도 함께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 통과의례는 과연 누구를 위한 통과 의례인가. 그저 시청률과 광고료에만 신경쓸 뿐,

어린 나이부터 연기자 활동을 하는 아동·청소

제대로 된 휴식이나 수면은 물론 학습권조차도

년들은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방송 영역의 노

보장받지 못하는 무법천지의 방송노동환경은 얼

동으로 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에서

마나 아동·청소년 연기자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는 아직도 방송노동자들을 위한 의무적인 노동

있도록 돕고 있는가. 방송사나 제작사의 이권만

교육도, 강고한 힘을 지닌 방송사나 제작사에 맞

을 신경 쓰는 방송 산업에서 한국의 아동·청소년

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나 단체

연기자는 열악한 방송 환경과 억압적인 방송 문

의 힘도 미비하다. 게다가 현장에서는 PD의 힘이

화, 척박한 아동·청소년 인권의 ‘삼중고’에서 오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아동·

늘도 시달리고 있다.

청소년 연기자 상당수는 연기 활동을 안정적으로

40 2020년 2월호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야간작업 노동자의 검진과 사후관리

필자는 직업환경의학 의사로 노동자 특수건강

안 있어 30대 중반의 야간작업 노동자가 특수건

검진도 하고 있지만, 외래진료실에서 지역사회

강검진에서 당뇨의심으로 정밀 2차 검사를 하러

환자와 노동자들에 대한 일반 진료도 하고 있다.

왔다. 2차 검사 채혈을 하고 며칠 후 검사 결과가

직업환경의학 의사임에도 막상 외래 진료를 하고

나오면 판정을 해서 우편으로 결과를 보내는 것

약 처방을 하게 되면, 일일이 직업을 물어 질병과

이 일반적인 검진기관의 방법이다. 하지만 의문

관련성을 유추하고 필요시 업무적 대책을 생각하

이 들었다. 그렇게 우편으로 결과를 받으면 이분

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는 특

이 실제로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이라도 내원을

수건강검진의 다양한 항목들이 기본적으로 주의

할지. 사업장 보건관리를 하면서 무수한 검진 유

하여야 할 직업적 위험요인이지만, 일반 외래에

소견자분들이 치료가 방치된 채로 지내는 것을

서는 특수건강검진 프로그램과 외래 프로그램이

목격했다. 다양한 이유가 섞여 있을 것이다. 검진

연동될 수 없어 이 환자가 특수건강검진을 받은

결과에 대한 적절한 대면 설명을 듣지 못해서일

분인지 또 그 결과 판정은 어떤지를 같은 기관 안

수도 있고, 야간작업과 같은 경우는 내원 시간을

에서라도 쉽게 확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외래 진

내지 못한 상태로 1, 2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가

료 시에도 말을 하다 보면, 쉽게 눈에 띄는 직업

기도 할 것이다. 또, 일반적으로 검진의사와 처방

적 유해인자가 있다. 바로 야간작업이다.

의사가 달라서 설명을 들어도 다시 진료하는 과 정이 번거롭거나 심리적 거리감이 있어 누락되는

야간작업노동자들은 뇌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분들도 상당할 것이다. 그래서 그 분은 2차 검진

높은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따라서 고혈압,

을 원내 당화혈색소로 검사하고 바로 외래로 접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기저 위험질환을 특수건

수해서 당일 치료를 시작했다. 당화혈색소 수치

강검진으로 파악해 이를 관리하여 야간작업노동

가 높아 환자도 놀라워했다. 건강검진의 판정은

자들의 뇌심혈관 질환을 국가적으로 예방하고

우선적으로 치료 시작 후 당일의 검사 결과를 가

자 하는 것이다. 특수건강검진을 시작하고 얼마

지고 추후 판정되어 배송될 것이다.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41


후관리에는 심각한 경 우에는 업무전환이 될 수 있지만, 일반적으 로는 치료적 관리로 업 무수행이 가능하게 된 다. 그리고 야간작업 만 성질환의 치료적 관리 는 우리의 보건의료 체 계에서 매우 쉽고 간단 히 수행될 수 있다. 하 지만 노동자 입장에서 ▼ 출처 : Pixabay

는 특수건강검진과 치 료적 사후관리의 사이 에 생각보다 큰 벽이 있 고, 이에 대해서는 그동 안 감독기관과 일선기관

역시 야간작업으로 특수건강검진에서 고혈압 의심으로 2차 검진을 위해 내원한 30대 초반의 환자가 있었다. 2차 검진에서도 혈압이 매우 높 아 야간작업을 유지하는 것이 걱정되었다. 판정 을 해서 결과를 보내고 그 이후에 노동자가 알아 서 치료를 하라고 하기에는, 치료가 누락되어 건 강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보였고 고생을 해서 검진을 한 의미도 없다고 느꼈다. 따라서 2 차 검진 시 우선적으로 외래 처방을 하고 추후에 판정결과를 보냈다. 그 외에 다른 상당수의 고혈 압 특수건강검진 유소견자분들도 필자의 기관에 서는 2차 특수건강검진과 동시에 치료를 시작하 고 있다. 특수건강검진 의사가 검진과 동시에 외 래 진료가 가능하도록 원내 시스템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두 무관심했었다고 생각한다. 일반건강검진 과 달리, 특수건강검진은 사업장 단위의 지속적 인 추적관찰 기능이 있는 검진 체계이며, 실제로 사업장보건관리 제도를 통해 사업장 검진결과를 지속관리의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속적인 사업장 관리에서 검진 이후 사후관리가 없거나 내팽개쳐져 있다면, 사업장 검진 자체는 그 의미 가 없을 것이다. 야간작업과 같이 치료적 관리가 가능하고 필요한 상황에서는 치료적 사후관리를 장려하고 이를 강화하도록 특수건강검진의 방향 을 잡는 것이 야간작업 노동자들의 건강에 실질 적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막대한 인력과 비용 을 들이는 국가사업의 성과 평가에도 중요한 부 분일 것으로 생각한다.

특수건강검진의 목적에는 검진 이후 사후관리 가 포함되어 있고 이의 실행이 매우 중요함을 누 구나 알고 있다. 야간작업과 같은 만성질환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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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호

이선웅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 (與)

2곳 이상 사업장에서 근무한 경우 업무시간 산정기준

노동자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어 제2의 직장

지난 12월 노동시간 단축 관련 교육을 하였다.

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2중 취업행위로 인해 소

노동시간 단축의 배경, 노동자의 건강권 등에 관

속 회사와의 근로계약 이행에 지장을 초래하거

해 설명하며 업무상 과로 인정기준을 곁들여 설

나, 소속 회사와 경쟁이 되는 사업에 취업함으로

명하였다. 여러 사업장에서 근무한 경우 산재보

써 소속 회사에 불이익을 초래하는 등의 이유가

험이 적용되는 사업장이라면 업무시간을 산정

있을 때 취업규칙, 근로계약 등에 겸업 금지를 규

할 때 모든 사업장에서 근무한 시간을 합산한다

정하여 사회 통념상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제한

는 기준을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2주가량 지나

할 수 있다. 다른 곳에 취업하여 근무하게 되는

서 당시 교육생이었다며 전화가 왔다. 지인이 뇌

경우 양질의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다는 이유 때

출혈이 발병하여 요양 신청을 하였으나 불승인된

문이다. 즉, 노동자의 노동력 재생산과 관련되어

상황에 대해 상담을 하였고 재심사청구를 진행하

있다.

는 상황이다.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고 비정형화됨에 따라 노

A노동자는 B편의점에서 23~07시까지 근무하

동자들은 고용 불안을 느끼고 노동시간이 줄어들

다가 23~06시로 근무시간이 변경되었다. 1시간

면서 저임금에 따른 생활상 어려움을 겪는 경우

근무시간이 줄어들자 A노동자는 07~13시까지 C

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회사에 다니면서 따로 사

편의점에서 주5일 동안 근무하였다. 그리고 2개

업자등록을 하여 개인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월이 지나 뇌출혈이 발병하였다. B편의점에서는

2곳 이상의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상당히

4대 보험에 가입하였고, C편의점에서는 사업소

많다. 사회적으로 ‘투잡족’이라는 말이 흔하게 사

득세를 납부하는 것으로 처리하였다. 재해 발생

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2곳 이상의 사업장

2개월 전부터 23~13시까지 14시간 중 12시간

에서 근무하던 중 과로성 질병이 발생한 경우 업

가량 근무하였던 상황으로 1일 12시간 이상 1주

무시간을 어떻게 산정해야 하는지 실무적으로 문

60시간 이상 근무하였다. 게다가 야간근무에 대

제가 될 수 있다.

해 30% 가산을 할 경우 근로복지공단의 만성과 로 인정기준을 초과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A노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 (與)

43


▼ 출처 : Pixabay

동자는 요양신청 조사 과정에서 4대 보험에 가입

노동부는 “2개 이상 사업장 취업자의 과로 여부

하였던 B편의점에서 근무한 것만 주장하고 C편

판단은 2개 이상 사업장의 업무시간을 합산 산정하

의점에서 근무한 것에 대해 주장을 하지 않았다.

고, 산재보험 적용되지 않은 사업장이 있을 경우 산

결국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에 미흡하다는 이유

재보험 적용사업장의 업무시간만으로 산정하여야

로 ‘불승인’ 되었다. C편의점에서 지급한 계좌내

한다(2014. 12. 08. 요양부-7472)”는 입장을 취하

역,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A노동자가

고 있다. 산재보험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는 판단

C편의점에서 재해발생 2개월 전부터 근무한 내

을 하고 있다. 고용형태가 다양해지고 비정형화되

역은 객관적으로 확인되었다. 상담을 할 무렵 재

면서 투잡족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산재법은 1인

심사청구 기간이 2주 정도 남은 상황이라 서둘러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된지 이미 오래 되었지만 여

재심사청구서만 접수하고 이유서는 보완할 예정

전히 1개 사업장을 기준으로 장소적으로 국한되어

이다. 물론 재해 발생 전 근무 장소 변경 통보, 작

판단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업무상 질병의 경우

업환경(편의점 주변에 노숙인이 많은 관계로 야

해당 노동자의 과거 직업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

간에 냉·난방을 하지 않는 상황), 근무인원 축소

여 업무관련성 여부를 판단한다는 점에서 재해 발

등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업무상 과로 및 스트

생 당시 실질적인 업무내역을 그대로 주장하는 것

레스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면 최초 요

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양불승인 처분이 ‘취소’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 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유상철 노무사, 노무법인 필

44 2020년 2월호


노동자 건강 상식

바이러스

요즘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매일 중국

기 초 전 세계에서 2500만명 이상 사망했던 스

에서는 감염자와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우

페인독감, 1968년 발병하여 약 100만명이 사망

리나라에서도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수가

한 홍콩독감, 수 년전 아프리카에서 유행했던 에

늘어나고 있습니다. 연일 코로나 바이러스 대한

볼라(Ebola), 2003년 사스(SARS), 2015년 메르

보도가 되고 있어 이번 호에서는 인류를 호시탐

스(MERS) 등이 모두 바이러스가 주범이었습니

탐 위협하는 바이러스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 이외에도 간염, 대상포진, 사마귀, 심지어 감

하겠습니다.

기나 식중독 또한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 가능하 기 때문에 인류는 늘상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되

바이러스는 라틴어로 ‘독(毒, virus)’을 뜻합니

어 있습니다.

다. 20세기 인류를 괴롭혔던 역병중 다수가 바이 러스가 주범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에이즈, 20세

바이러스는 크기가 작아 광학현미경으로 관찰

▲ 바이러스의 크기, 사진 출처:https://openstax.org

노동자 건강 상식

45


이 어려우며, 전자현미경으로 관찰이 가능합니

이러스는 원통형을 이루며 나선형으로 쌓인 단

다. 아래 그림에서처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백질 사이에 RNA가 깊숙이 박혀 나선을 그리

약 100nm 인데 1㎛(1㎛ = 1,000㎚)이 넘는 세

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담배모자이크

균에 비교해 보아도 매우 작은 크기입니다. 동물

바이러스 구조를 규명한 영국의 아론 클루그는

이나 식물세포는 바이러스에 비해 100배 이상의

1982년 노벨화학상을 받게 됩니다.

크기입니다. 바이러스는 이렇듯 세포에 비해 작 기 때문에 세포내에서 증식이 가능합니다.

바이러스의 기본구조는 유전물질인 핵산(DNA 또는 RNA)과 핵산을 둘러싼 단백질인 캡시드 (capsid)와 이를 둘러싸는 외피(envelope)로 이

인류가 최초로 발견한 바이러스는 ‘담배모자

루어져 있습니다. 바이러스에 따라 외피는 없을

이크 바이러스(Tobacco Mosaic Virus)’입니다.

수도 있습니다. 모양도 정이십면체, 끈 모양 등

1883년 아돌프 마이어가 담배모자이크병이 식

바이러스 종류에 따라 다양합니다.

물 사이에 전염이 된다는 것을 알아낸 이후, 과학 자들은 세균을 걸러내는 여과기를 써도 걸러지

바이러스와 세균과의 가장 큰 차이는 스스로 생

지 않는 물질이 담배잎을 전염시킨다는 것을 알

명활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게 됩니다. 실험을 반복한 끝에 1935년, 웬델 M.

입니다. 세균은 하나의 세포로 이루어진 단세포

스탠리가 세균보다 훨씬 작은 바이러스를 전자

생물이지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관을 갖

▲ 좌: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 우:확대한 모식도(단백질과 RNA로 구성, 사진출처 http://concerncrisis.blogspot.com

현미경으로 관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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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고 있습니다. 즉, 양분을 먹고 스스로 유기물을

이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를 초창기 연구했던

만들어 살아가면서 번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 바이러스가 단일분자인지 아닌지

앞선 그림에서 보듯 바이러스는 DNA와 RNA와

를 두고 논쟁을 했다고 합니다. 연구 끝에 이 바

같은 핵산과 단백질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조를

2020년 2월호


▲ 바이러스의 기본 구조, 사진출처 : https://www.khanacademy.org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생물들은 DNA 속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리보솜과 같은 기관들을 이용해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바이러 스는 리보솜과 같은 기관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필요한 에너지나 유기물을 만들어낼 수 없는 것 입니다. 그래서 바이러스는 온전히 생물의 범주

▲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2019 코로나 바이러스, 표면의 모양이 태양 의 코로나를 닮았다고 하여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림. 사진출처: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2020

에 속하지 못합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숙 주가 되는 생물의 세포속에 있을 때에만 그 생물 의 힘을 빌어 증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러 스의 증식은 숙주가 되는 식물이나 동물의 질병 을 의미합니다.

세균은 유전물질이 두 개의 사슬, 즉 DNA로 이루어져 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이 낮습니다. 반 면 바이러스는 DNA 한 가닥만 있거나 DNA보다 불안정한 유전물질인 RNA로 이루어져 있는 경 우가 있어 복제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자주 일어납 니다. 돌연변이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효과적 인 백신과 치료법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 에 발생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렇습니다. 원래 코로나 바이러스는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 스의 일종으로 병원성과 사망률이 낮은 바이러스 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변이가 자주 발생 하고 동물에서 사람으로 종간이동까지 가능해져 버려 2003년 사스, 2015년 메르스 그리고 지금 의 감염유행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장영우 선전위원장, 내과의사

노동자 건강 상식

47


문화 읽기

우리는 서로의 꿈을 꿀 수 있을까? - 영화 <윤희에게>(2019)

우리는 트랜스젠더 군인의 복무를 여군에 대한

념으로 편지의 발신지로 해외여행을 가자고 제안

잠재적 위협과 그들이 느낄 불안으로 설명하는 사

한다.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 모녀의 뒤에는 새봄의

회에 살고 있다. 왜 한 정체성을 가진 노동자에게

남자친구가 몰래 동행하는데, 그가 쥰의 집과 고모

주어지는 평등이 다른 정체성을 가진 노동자를 위

의 카페 등 동태를 살피며 새봄이 둘의 ‘우연적인’

협하는 것으로 상상될까? 왜 일터의 평등이라는

만남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주제가 그 안에 속한 모든 구성원의 권리와 평등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누군가에게 한정

<윤희에게>의 마지막 장면은 암전된 상태에서 윤

되는 특권 혹은 다른 누군가를 향한 침해로 한정되

희가 “나도 네 꿈을 꿔”라고 말하는 것에서 끝난

는 것일까? 영화 <윤희에게>는 이렇게 서로 다른

다. 이 말은 영화의 시작점에 나오는 쥰의 편지에

것처럼 보이는 정체성의 문제가 어떻게 한 사람의

대한 응답이다. 이 대사는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삶에서 나누어질 수 없는 문제로 엮여있는지, 그리

데, 첫 번째는 윤희가 이제껏 꿈이라는 무의식적이

고 삶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존재에게 한 가지 질문

고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서만 쥰을 상상해왔다는

으로 얽혀있는지를 보여준다.

것이고, 두 번째로는 억지로 자기 삶을 통제해왔던 친오빠를 떠나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고 쥰에게

<윤희에게>는 20년 전 연인이었던 윤희와 쥰이

‘나 역시 그렇다’라는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편지를 매개로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리는 영

것, 즉 윤희가 스스로 ‘형벌’이라고 표현했던 자기

화다. 그런데 이 재회의 과정은 윤희와 쥰 둘의 의

삶에서 떨어져 나올 용기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보다는 각각의 주변 인물들의 조력으로 성사되

48

는 대단히 수동적인 만남이다. 수동적이기 때문에

윤희가 ‘형벌’이라고 표현했던 자신의 삶은 어떤

오히려 운명적으로 보이는 이 만남은 심지어 한국

것이었을까? 일본에 있는 쥰을 만나기 전까지, 영

과 일본이라고 하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이루어

화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장면들에서 새봄은 계속

지는데, 일본에 있는 쥰이 부치지 못한 편지를 쥰

윤희에게 어떤 말들을 던진다. 어느 날 저녁을 먹

의 고모가 우연히 보고 우체통에 넣는다. 그리고

고서 새봄은 이런 저런 말을 거는 데, 이때 새봄이

한국에 도착한 편지를 윤희의 고등학생 딸 새봄이

윤희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들에서 문제가 되

먼저 발견하고, 엄마인 윤희에게 수능이 끝난 기

는 건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말이 전달되지 못하

2020년 2월호


는 상황이다. 윤희는 새봄의 말을 계속 듣지 못한

에게 보내진 편지란 얼마나 깊은 것이었을까. 윤희

다. 극 중에서 계속 윤희가 저녁거리를 치우며 설

는 우편함에서 오랜만에 일본어로 쓰여진 주소를

거지하는 물소리가 강하게 들리고, 이 세찬 물소리

보게 되고, 그대로 아파트 출입문 불이 꺼질 때 까

속에서 무어라고 말을 거는 새봄의 목소리가 몇 번

지 서서 글자들을 읽는다. 다음날, 윤희는 급식실

씩 들리고 나서야 윤희는 수도꼭지를 닫고 새봄에

영양사에게 휴가 관련 문의를 했다가 휴가를 가면

게 고개를 돌린다. “뭐?” “너 뭐라고 했니?” 새봄은

일자리는 남아있지 않을 거라는 냉대만 듣게 된다.

자신이 대학생이 되면, 서울로 떠날 것이고 한 번

성실하게 일해왔으나 가장 기초적인 요구도 묵살

떠나면 고향에는 잘 오지 않을 것이고, 엄마의 서

당한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낀 윤희는 그대로 일

운한 반응은 자신에게 마음의 짐이니 표현하지 말

을 관두고 떠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일본으로 무대

라는 내용을 전한다. 온 몸이 피곤한 와중에 이런

가 옮겨진 다음부터, 눈이 무릎까지 오는 마을에서

말을 듣고 서운한 윤희는 이내 출근을 위해 머리를

더 조용할 수 없을 만큼 고요한 나날이 시작된다.

말리고, 이번에는 엄청나게 큰 헤어드라이기 소리 가 화면을 다 먹어버리는데, 간간히 뭐라고 말하는

장남만 대학에 보낸 집안에서 엄마의 미안함으로

새봄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

진학 대신 필름카메라를 받았던 여성으로써의 삶,

에 새봄은 또박또박 말을 전한다. 수능이 끝난 기

쥰을 사랑한다고 말했던 고등학생이 집안의 반대

념으로 같이 일본 여행을 가자고, 다른 애들도 다

로 오빠가 소개시켜준 사람을 만나 억지로 결혼하

엄마랑 여행을 간다고. 정신없고 피곤한 와중에 이

게 된 퀴어로써의 삶, 다시 오빠가 소개시켜준 급

런 얘기는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 윤희는 머리를

식실에서 일하다 연차 한번 달라는 말에 냉대를 당

다시 말리고, 이내 침대에 누워 어떤 생각들을 한

한 비정규직 노동자로써의 삶, 이런 각각의 정체성

다.

들은 윤희가 자기 삶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연관 된 문제들로 만난다. 결과적으로 일본에서 돌아온

이렇게 영화는 딸과 먹은 저녁식사의 그릇들을

윤희는 대학 진학을 하는 새봄과 함께 고향을 떠나

설거지하고, 출근을 위해 밤에 머리를 말리고 하는

고 오빠와도 결별한다. 작은 식당을 내고 싶고 그

일상의 단계들을 시끄러운 소음으로 표현했는데

러기 위해 유명한 식당에서 일을 배울 거라는 목표

물론 밖에서도 이 소음은 지속된다. 공장 급식실로

를 세운 윤희가 자기소개서를 들고 식당 문을 두드

출근해 배식을 하는 장면에서도 윤희는 큰 소음 속

리는 마지막 장면에 와서야, 영화를 시작하게끔 한

에 놓인다. 물론 영화가 표현적으로 강조한 큰 소

쥰의 편지에 대한 응답이 음성으로 전해진다. ‘언

리들만 소음인 것은 아니다. 이혼한 전남편이 비타

젠가 딸에게 네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될까’, ‘나도

민이 든 봉다리를 손목에 걸고 집에 찾아오는 퇴근

네 꿈을 꿔’ 라는 마지막 말은 윤희가 새로운 삶에

길, 급식실로 가는 봉고차를 기다리는 무리 속의

서 이전의 ‘형벌’들에 대해 어떤 대답들을 만들어

윤희, 이런 장면들은 조용하게 흘러가더라도 윤희

낼지 기대하도록 만든다.

에게 형벌처럼 겪어내야 하는 또 다른 소음이다.

소음 속에서 말을 들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사람

지안 상임활동가

문화읽기

49


발칙 건강한 책방

몸에 대한 우리의 상상, ○○다움에 대한 문제제기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 김명희 지음. 2019. 낮은 산.

“여전히 남성의 털에 대해서는 긍정적 인식과 부

소리 등으로 나누어 신체기관에 해당하는 일상적

정적 인식이 동시에 존재하며 선택의 여지도 크다.

인 성차별 현상이 어떻게 우리의 의식에서 작동하

겨드랑이와 가슴의 털을 드러내며 한껏 ‘짐승남’의

는지 이야기를 풀어나간 점이 독특하다.

매력을 과시할 수도 있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다리 로 ‘꽃미남’의 매력을 뽐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여

예전의 고대의 비너스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성이 털을 드러내며 야성적인 모습을 과시한다? 그

뚱뚱하고 지금도 태국의 어느 부족은 긴 목이 미인

녀가 설 곳은 여성의 못난 외모와 망가짐을 희화화

이라는 기준이 있는 걸 보면 미에 대한 가치는 사회

하는 철 지난 코미디 무대밖에 없다. 이래도 여성의

적으로 정해지며 사회의 문화에 따라 늘 변한다. 하

털 관리가 사사로운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

지만 중국의 전족, 서양의 코르셋의 사례에서 보듯

을까?” - <털> 중에서

이 가부장적인 남성의 취향에 맞춘 미의 기준이라 는 것이 문제이다.

이 책은 여성의 몸을 통해 본 우리 사회의 젠더고 정관념과 성차별, 여성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내용

요즘은 미디어를 통한 영향으로 여성의 미의 기

이다. 저자는 건강불평등을 연구하고 사회역학자

준이 상당히 획일적이다. 갸름한 얼굴, 오똑한 코,

이다. 이 책에서는 여성의 몸을 뇌, 털, 눈, 피부, 목

큰 눈, 하얗고 투명한 피부, 긴 생머리, 애교 섞인

50 2020년 2월호


하이톤의 목소리, 약간 마른 듯한 날씬한 몸매를 가

은 일을 하는 데도 불구하고 남성의 복장보다 여성

진 여성을 ‘예쁜 여성’이라고 말한다. 예쁜 여성을

의 복장은 립스틱 색깔에서부터 화장법, 옷까지 구

선호하는 남성과 사회에 이 기준에 들어가려는 여

체적으로 규정짓는 경우가 많다. 단적인 예로 2년

성들로 넘쳐나고 있다.

전 뉴스 프로그램의 여자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방송에 나온 모습이 세간의 화자가 된 경우가 있다.

억지로라도 들어가기 위한 몸부림은 시술 또는 수술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의 성형 시장은 연간 5

안경 하나 썼을 뿐인데......그동안 여자들의 눈은 보는 눈인 동시에 보이는 눈이었던 것이다.

조원의 규모로, 세계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활성화되어있다. 인구 1,000명당 연간 성형수술

저자가 언급했듯이, 법과 제도에서 그리고 일상

건수는 13.5건 정도로, 세계 1위로 ‘성형공화국’이

에서 점차 성차별주의가 완화되어 가고 있지만 화

다.

장하는 초등학생의 현실에서 보듯 여성 몸의 상품 화 또한 진행되는 현실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자본주의 사회에서 외모가 곧 경쟁력이라는 것이

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성역할의 고정에 대해

다. 하지만 규격화되어 있는 미를 추구하려는 여성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자다움’ 또는 ‘남자다

의 선택이 과연 온전한 자기 결정권에서 나왔을까?

움’이 과연 어디서부터 연유했으며 오늘날에서 무 슨 의미일까?

“뉴스 프로그램의 여자 아나운서가 안경을 쓰고 방송에 나온 모습이 세간의 화제가 된 것이 놀랍게 도 바로 작년 일이다.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나왔냐’ 는 질문이야말로 이 문제의 본질을 잘 보여 준다. 샤우론의 손아귀에서 절대반지를 되찾아온 것도 아니고, 전문 직업인으로서 그저 안경 하나 썼을 뿐 인데 ‘용기’라는 말이 등장했다. 가장 신뢰받는 언 론인으로 매년 꼽히는 손석희 아나운서의 경우, 젊 은 시절부터 안경 벗은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 다. 사실 그의 안경은 명석하고 냉철한 이미지에 크 게 기여했다.” - <눈>에서

‘젠더 고정관념과 성차별주의의 가장 뛰어난 부 분은 여성 스스로 이를 내면화 한다는 점이다. 머릿 속 남성의 시선으로 자기를 검열하고 수정하며, 스 스로를 성적 대상화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 리고 사회는 남성보다 여성을 더욱 대상화한다. 같

장영우 선전위원장, 내과의사

발칙 건강한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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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쿵 저러쿵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바람

지 않고 올해도 새해 목표를 세워본다. 후회 없는 한 해를 보내기 위해서는 ‘그래도 계획’이지라고 자신을 고무하며 신년계획을 고민하다 처음 한노 보연을 만나게 된 때를 생각해본다.

한노보연을 알게 된 데에는 노무사라는 직업의 공이 크다. 대학교 졸업반 시절, 위계가 싫어 회사 는 못 다니겠다고 마음을 먹고 정한 진로가 노무 사이다. 단순히 취업이 싫어 떠밀리듯 선택한 진 로였기에 실제로 노무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 로 알아보지도 않았고, 선배들을 통해 직무 소개 를 받았음에도 도통 감도 오지 않았다. 일단 노무 사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라 여기며 수험 ▲ 출처: 임혜인

2020년 새해가 밝았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

을 치렀고 운이 좋게 합격도 하였다.

합격을 확인하고 좋았던 기간은 딱 일주일이었 ▲ 출처 : 일과건강

소 회원으로서 두 번의 총회와 첫 번째 송년회에

다. 나름 힘들게 한 공부이니 성과가 있어 뿌듯했

참석하였고 노무사로서는 벌써 만 3년 차다. 연구

고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싶어 안도했던 기간이

소 회원과 노무사로서 부족한 점을 만회할 기회도

딱 일주일이다. 이후로는 너무 아무것도 모르고

주지 않은 채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직업을 골랐나 하는 마음에 두려움이 앞섰고 궁극

연초다.

적으로 어떤 노무사가 될지 생각해 본 바 없어 혼

매년 시도해도 매번 실패하는 일이지만 체념하

란스러웠다. ‘어떤 노무사’라는 주제의 정답은 없 지만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이윤이나

52

2020년 2월호


편리에 따라 움직이는 직업인으로 머물겠구나 싶

노보연이다. 노동자의 생명보다 임금이 중요하게

었다. 이는 적어도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따

다루어지는 현실에서 소외된 노동자의 권리를 위

라서 ‘나는 어떠한 노무사이다.’라는 문장을 완성

해 고민하고 연대하며 투쟁하는 연구소의 기풍은

할 수 있는 가치를 찾아야 했다. 그 문장을 완성하

나의 가치가 되었고, ‘이윤보다 노동자의 몸과 삶

는 과정에서 만난 인연이 한노보연이다.

을!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위해’라는 연구소의 문장은 나의 문장이 되었다.

현행 노동관계법령 중 대표 법령으로서 기능하 고 있는 근로기준법에는 노동자의 다양한 권리가

그러므로 2020년에는 ‘건강하고 안전한 노무사’

규정되어있다. 신체적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 정

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본다. 노동자의 건강과

당한 임금을 지급받을 권리, 휴식과 휴가를 요구

안전을 위해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도록 연구소

할 권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때, 근로기준법

의 회원으로서, 노무사로서 애쓰는 한 해를 보내

으로 보장되는 노동자의 권리란 쌍무계약인 근로

기로 다짐해본다. 연구소를 통해 발견된 가치가

계약에서 노동자로서의 주된 권리라고 평가되는

나뿐만 아니라 노동자 개인과 사업장 현장에 전

것 위주이다. 물론 일터의 안전성을 보장받을 권

해지길, 올해는 작년보다 더 노동자에게 건강하

리,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받을 권리 또한 별도 법

고 안전한 한 해가 되길 기원해본다. 더불어 만 2

령을 통해 규율하고 있지만, 근로계약에서 그러한

년 차, 만 3년 차 만 N년차 회원이 되어도 스스로

권리는 부수적인 권리로 여겨질 뿐이며 관계 법령

가 정한 가치를 지켜나갈 수 있는 내가 되길 기원

또한 노동자의 현실을 제대로 투영하지 못한다.

해본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아파도 병가를 권 리로써 보장받지 못한다. 작업장에 위험이 발생해 도 즉각적인 대피가 곤란하며 자칫하다간 손해배 상의 책임 또한 물을 수 있다. 일 때문에 아파도 그 원인에 대한 설명조차 제대로 들을 수 없다. 일하 다 다쳐도 실직의 위험 때문에 재해 사실을 스스 로 은폐한다.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되었을 때도 그러하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갓 합격한 신생아 노무사의 눈에도 너무나 도 선명하게 보이는 현실이었다. 조금 더 또렷하 게 감상하자면 선명하면서도 외면된 현실이었다. 누구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문젯거리로 삼지 않 는 부분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관한 면이고 이를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준 것이 한 임혜인 회원, 노무사 이러쿵 저러쿵

53


안전보건동향

[고용노동부, 20.01.15] 건설공사

경우 건설안전 전문가를 선임하

[고용노동부, 20.01.20] 중소벤처

계획부터 준공까지 단계별 안전보건

여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기업부-고용노동부-중소기업중앙

대장 작성 시행 - “건설공사 안전보

계획단계에서 발주자는 공사금

회, ’중소기업의 주52시간제 안착을

건대장의 작성 등에 관한 고시” 제

액.공사기간의 적정성, 주요 위험

위해 힘을 모은다’

정공고

요인 설계조건이 포함된 기본안 전보건대장을 작성하고 설계계약

“중소기업 노동시간 단축 업무협

고용노동부(장관 이재갑)는 2020

시 설계자에게 이를 제공하도록

의체” 구성, 핫라인 구축

년 1월 15일에 건설공사 계획부

하고 설계단계에서 설계자는 공

주52시간제 준비 애로기업 1:1

터 준공까지 단계별 안전보건대

사금액.공사기간 산출서, 시공 단

밀착지원, 현장과의 쌍방향 소통

장 작성과 관련한「건설공사 안전

계에서 고려할 위험요인 및 감소

활성화

보건대장의 작성 등에 관한 고시」

대책이 포함된 설계안전보건대장

생산성 제고, 일하는 관행.문화

를 제정, 관보에 공고하였다. 이

을 작성하여야 하며, 발주자는 이

개선을 위한 협력과제도 발굴.추

는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하

를 확인 후 건설공사 계약 시 시

는「산업안전보건법」에 신설된 건

공사에 제공하도록 하였다. 중소벤처기업부(장관 박영선, 이

설공사 발주자의 산업재해 예방 조치 의무(법 제67조)의 구체적인

공사단계에서 시공사는 설계안전

하 중기부)와 고용노동부(장관 이

이행방법을 규정하기 위함이다.

보건대장을 반영하여 공사안전보

재갑, 이하 노동부) 및 중소기업

건대장을 작성하고 발주자는 3개

중앙회(회장 김기문, 이하 중기중

2020년 1월 16일 이후 설계에 관

월 이내마다 이행여부를 확인하

앙회)는 중소기업의 주52시간제

한 계약을 체결하는 공사금액 50

고 시공사가 이를 이행하지 않아

조기 안착 등 지원을 위해 “중소

억 원 이상 건설공사의 발주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

기업 노동시간 단축 업무협의체”

계획·설계·공사 단계별 안전보건

이 있을 시 발주자는 시공사에게

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운영을 시

대장을 작성·확인하여야 하며 소

작업을 중단하도록 요청할 수 있

작한다고 1월 21일 밝혔다.

속 임직원의 지정을 통해 안전보

게 하였다. 고시의 자세한 내용은

건대장의 작성 및 확인을 수행하

고용노동부 누리집을 통해 확인

업무협의체는 본부와 지방 권역

여야 하고, 직접 수행이 어려운

할 수 있다.

별로 구성하게 되며, 본부는 3개

54 2020년 2월호


기관의 국장급을 공동단장으로 하

단위)하여 해결방안을 모색할 계

따라 기업들의 근무시간 관리에

여 구성, 월 1회 회의를 원칙으로

획이다.

대한 관심과 관리 필요성이 증가

운영하고, 지방도 2월초까지 8개

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일과 생

권역별 협의체를 구성하여 정례적

② 중소기업들이 각종 정부지원제

활의 균형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으로 협의할 계획이다. 업무협의

도를 알지 못해 도움을 받지 못하

있는 만큼, 이번이 “장시간근로 관

체에서는 올해부터 주52시간제가

는 일이 없도록 각 기관의 네트워

행을 개선”하는 동시에 “노동생산

적용되는 50~299인 기업에 계도

크를 최대한 활용하여 노동시간

성 제고”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절호

기간이 부여(1년)됨에 따라 계도

단축 관련 다양한 정보를 안내하

의 기회라는데 공감하면서, 적정

기간 동안 중소기업이 주52시간

고 교육 등도 실시한다. 우선 올해

시간 효율적으로 일하는 조직 문

제 준비를 신속히 마무리할 수 있

1월 9일부터 실시하고 있는 지방

화 형성을 위한 지원방안 모색 및

도록 총력 지원한다.

중기청별 “중소기업 시책설명회”

공동 캠페인 개최 등 적극 협력하

에 노동부 지방관서가 함께 참여

기로 하였다.

① 각 기관 지방조직(지방청, 지역

하여 주52시간제 관련 정보를 제

본부)에서는 현장에서 주52시간

공.설명하고, 앞으로도 각 기관이

제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

주최하는 기업 대상 설명회.간담

업에 대해 1차 상담 제공 및 정부

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적극 안내

지원제도 활용 연계 등 지원하고,

한다. 또한 중소기업연수원에 대

근무체계 개편 등 노무사 상담이

표자, 임원급, 인사담당자를 대상

필요한 기업에 대해서는 권역 내

으로 하는 주52시간제 관련 교육

노동부의 “노동시간 단축 현장지

과정도 신설한다.

원단” 과 즉시 연계하여 1:1 무료 상담(교대제 개편, 유연근로제도

③ 노동시간 단축 애로 해소 및 우

활용 등 근무체계 개편 지원)을 지

수사례집을 발간하여 유사한 어려

원한다. 또한, 현장에서 제기된 애

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벤치마

로.건의사항 중 즉시 해결이 어려

킹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운 사항은 본부 협의체에 보고(월

한 각 기관은 주52시간제 도입에

안전보건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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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보연 이모저모

20년 1월 18일 한노보연 제17차 총회가 열려 지난 1월 18일 용산역 부근 철도회관 6층 대회의실에서 한노보연 제17차 총회가 열렸습니다. 각자의 자리에 서 한 해 동안 힘차게 노동자건강권을 위해 활동한 동지들이 모였습니다. 이번 총회에서는 열린 조직으로의 전 환과 노동안전보건운동의 확장 사전프로그램에서는 주사위놀이를 통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고, 2020년 연구소가 지향할 활동방향에 대한 조별 주제토론도 진행했습니다. 본회의에서는 여성건강권 사업을 새 롭게 추진해보기로 결의했고, 노동안전보건교육의 확대 및 체계화를 위한 교안제작·정리의 중요성도 확인했습 니다. 그리고 창립 20주년인 2023년을 기점으로 열린 조직으로 전환하기 위한 단계별 준비를 시작하기로 했습 니다.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맞서 일터에서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더 날카롭게 이어가 야 할 것입니다. 한노보연과 함께 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올해에는 위험한 일터를 안전 한 일터로 싹 다~갈아엎을 수 있도록 해봅시다. 투쟁!

한노보연 사무실이 새롭게 단장했어요! 설연휴 전인 지난 1월 21일 10여 년의 세월 동안 함께 동거동락하며, 노동자건강권을 위해 투쟁해 온 반올림이 사무실을 대림으로 이전하게 되었습 니다. 한노보연은 현 사당사무실에 남고, 사무실을 새롭게 꾸며보았습니다. 회의실도 넓히고, 사무공 간도 재배치하고요. 상임활동가가 이제 5명이나 되 니, 북적북적하고 생기도 도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같이 고군분투한 반올림 동지들의 빈자리가 크네 요. 하지만 그 빈자리는 앞으로 한노보연 회원들과 함께 사당사무실의 회의공간을 가득 메울 수 있도록 활기찬 활 동으로 채워나가야겠죠?! 여러분의 방문과 새단장 선물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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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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