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학생회 배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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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 보충 때 학생회를 소집했다. 역시나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두발 규제 완화’ 라는 분야에 한해서, ‘남학생 뒷머리 옷깃에 안 닿고, 옆머리 귀를 안 덮음 + 여학생 뒷머리 풀어서 겨드랑이 안 넘기’까지를 학생회 건의안으로 확정했다. 그때 규정은 남학생 스포츠 머 리, 여학생 어깨에 닿지 않는 머리였고 실제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님마다 그에 대한 단속 규정이 달라서, 어느 반은 규제에 걸리고 어느 반은 안 걸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학생회 임원들에게 내게, 두발 문제에 관해서는 전권을 위임해 달라했다. 물론 중도 제동 절 차와 같은 부분을 규정해두고, 그렇게 나는 대표로 나섰다. 초중등 교육법이나 관련 서적을 찾 으며 건의안을 만들었다. 조용히 학생회 임원들을 만나서 의논했고, 회의는 아예 소집도 하지 않았다. 우연히 다음 배너에 일주일간 뜬 ‘한고학연’을 알게 되었다. 2005년 8월 17일자로 가입했다. 서울에 산다는 선배님들에게 조언을 받았고, 설문지 배포 방 법을 쓰기로 했다. 전교생이 600장이었기 때문에, 학교 인쇄실에서 할 수 밖에 없었지만 학생 부에서 허가를 내줄 리가 만무했다. 과거 운동권이었다는, 스물여덟 살의 젊은 여교사 선생님께 하소연했다. 사실이 알려진다면 기간제 교사라는 특성상 직장이 위험할 수 있지만, 기꺼이 도와주셨다. 선생님의 심부름이라고 둘러대고, 보충 수업 교재라면서 결재 서류를 받아갔다. 그 걸로 학생부에 찾아가서 일종의 협 박을 했다. 나의 안을 들어주지 않으면, 이 설문지를 학생들에게 배포해서 공청회를 개최하겠 다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시간은 내 편이었다. 2주마다 진행되던 두발, 복장 규제를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학생회 건의안을 수용하기로 합의 보았다. 학교 운영위원회는 앞서 말했 듯 한참 멀었고, 나 역시도 그 정도면 성공이라 생각했다.

IV. 실패한 개혁 개혁주의자 교실은 축제 분위기였다. 나를 보고 대단하다는 선생님이 있을 정도로, 그렇게 학교는 열광적 이었다. 학급 회의도 다시 활성화되었고, 뭐든지 된다는 분위기가 깔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내 자신은 불행했다. 제도를 열어놓고 보니 악용하는 학생이 많았다. 깃에 안 닿 게 하려고 ‘샤기 머리’가 유행했고, 여학생들은 아예 허리까지 머리를 길렀다. 친구들이라 싫은 소리도 못 하고, 나중에는 우울해했다. 전교 7등까지 올랐던 내신 성적은 다시 두 자리대로 내 려앉았다. 10월의 막바지 어느 날이었다. 아파트 단지에 모여 학생들이 담배를 핀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소위 말해서 ‘날라리’ 학생들이었다. 하필 그 것이 경찰 순찰 중에 걸렸고, 담배를 피던 학생들 은 그대로 달아났다. 교복과 체육복이 우리 학교의 것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진노했다. 하긴 그럴 것이, 그 경고도 누적이 되어 ‘마지막 통첩’성이 짙은 강 력한 것이었다. 교무 회의 때 학생부 선생님들은 쥐가 되었고, 구두 합의를 깨고 다시 학생 규 제에 나설 것을 결정하였다. 나 역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제도를 악용하는 친구들에게 실망했고, 분노했다. 막상 제도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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