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호 코람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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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SPRING Vol.49 코람데오에는 서울시민교회 공동체의 믿음과 삶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한예수교 장 로 회

서울시민교회


o PHOTO ESSAY

o CONTENTS 목차

02

포토 에세이

03

목차

04

생명의 말씀

한나의 기도

| 권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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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또 다른 꿈을 꾸며

| 이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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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심기섭 장로를 찾아서

| 권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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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괜찮다 괜찮다

| 김윤희

18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

| 김강숙

20

졸업과 입학

| 안희국

24

믿음의 자유인

| 박길용

27

곁에서 본 미국인들의 기독교

| 장무현

30

내 속에 정한마음을 창조

| 임정자

32

고향

| 조용환

35

고 강병은 집사를 추모하며

| 허성수

양화진

| 이돌연

44

간송미술관

| 편집실

46

남대문 패밀리

| 이강순

39

VISIT

단기선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 홍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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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 신앙열전

하나님이 진짜 계시겠어?

| 김종현

큐티의 생활화

| 조예빈

60

‘족자비안 나이트’를 읽고

| 최예찬

작은예배는 지금 생방송

| 백운길

65

탁구 동아리

| 이응천

66

동행

| 이나빌래

68

고신 언론사 사장 취임기

| 허성수

62

The grass withers and the flowers fall, but the word of our God stands forever.

● 사진 | 석하균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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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AM DEO

| 석하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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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사야 40:8)

2011 SPRING

우리교회 핫이슈

70

신앙강좌

문맥으로 신약읽기

| 권오헌

78

Book Review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 오경석

80

Food Recipe

안동찜닭

| 김순화

발행인 권오헌 | 편집인 오경석 | 편집장 이강순 | 기자 허성수, 백운길, 이나빌래, 김강숙, 이돌연, 권구슬, 박정화 | 표지사진 석하균 발행일 2011.4.16 | 발행처 서울시민교회 . 서울시 광진구 능동 247-5 T.444-4385 www.seoulshimi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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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SERMON 생명의 말씀

통해서 자녀를 낳았기 때문에 한나의 불임은 남편 탓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책임이 됩니다. 엘가나는 브닌나를 통해서 자식을 얻었으므로 자녀의 문제는 더 이상 엘가 나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한나의 기도 사무엘상 1:1-28

한나는 무자했습니다. 당시대의 형편으로 본다면 자녀가 없는 것은 인력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창세기 30장에 보면 야곱의 사랑을 받은 아내 라헬이 자녀 가 없으므로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 장면이 나오는데 라헬이 자녀를 구할 때 야곱 이 대답한 말도 그러합니다.“야곱이 라헬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창30:2) 그녀는 남편이 자식을 얻은 후에도 더 고독했습니다. 남편의 사랑은 받았으나 여호와의 은 총을 입지는 못했습니다. 브닌나가 낳은 자식을 자신의 자식으로 생각했으면 좋으 련만 한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사랑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자녀 문 제는 자신도 남편도 해줄 수 없는 것입니다. 2) 초월할 것인가 변화시킬 것인가?

● 권오헌 | 서울시민교회 담임목사

엘가나는 레위족속으로 에브라임 또는 에브랏에 살고 있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 이라고 번역한 에브랏티는 에브랏 사람이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에브랏은 베들레 헴의 다른 이름이며 레위 지파들이 살았던 촌락입니다. 사사기 17:8에 보면 레위 소 년이 베들레헴을 떠나서 에브라임으로 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사시대에 레위지 파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는 이러한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항상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고 이러한 문제를 만났을 때 우리의 태도는 체념하는 것이거나 도전하는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초월 또는 체념도 믿음의 한 표현일 수 있는데 욥처럼 자신의 상황을 변화시키려 하기보다 수용하는 것입니다.“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 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 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1:21). 내가 자식은 없지만 남편의 사랑 을 받으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은가 하고 자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런 자족과 체념의 신앙형 인간이 아니었다. 한나는 자신의 괴로움과 격동됨을 인하여 울부짖는 여인이었습니다.

1. 아들 없는 여인 1) 한나의 현실 브닌나는 자녀가 있으나 한나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아마 엘가나는 한나가 무자하 기 때문에 브닌나를 둘째 아내로 얻은 것처럼 보입니다. 당시에는 후손에 대한 기 대가 컸고 자식이 없는 것은 수치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남편이 브닌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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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현실을 인정하고 초월하고 사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입니다. 한나는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체념하거 나 초월하고 지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브닌나는 자식이 있으나 나는 남 편의 사랑이 있지 않은가 하고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결코 자포자기하지 않 았습니다. 그녀에게는 분명한 자신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형편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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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나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산다면 이 또한 하나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 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소원이 있다면 한나를 본받아 응답받는 기도의 사람이 되 기를 원한다.

로울 때 주님의 얼굴을 봅시다.

2. 응답받은 한나의 기도 1) 오래 기도한 한나

3) 한나를 괴롭히는 브닌나 브닌나는 자식은 낳았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 는 브닌나는 자신의 이러한 고통을 한나에게 화풀이합니다. 브닌나는 자식 없는 한 나를 격동시킵니다. 두고봐라 지금은 남편이 잘해주니 좋지만 늙으면 자식이 최고 다. 브닌나의 격동에 한나도 브닌나를 얼마든지 약올릴 수 있을 터인데 한나는 그 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브닌나도 한나도 다 마음이 괴롭지만 브닌나는 한나에게 퍼 붓고 한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브닌나는 한나를 대적함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에게 퍼붓는 것은 전혀 문제를 해결하 는 방법이 아닙니다. 잠간 기분이 좋을는지 모르나 나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한나에게 퍼붓는다고 해서 엘가나의 사랑이 내게로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괴로움을 당하는 한나에게 남편의 마음이 더 기울게 됩니다. 4) 여호와께 호소하는 한나 브닌나의 격동쯤은 우습게 여길 수도 있지만 한나는 울고 먹지 않았습니다. 항상 현재의 상황에 자족하는 마음과 현재의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 다. 어느 것이 더 믿음의 행동일까? 자신의 감정에 정직하게 반응하되 그 감정에 함 몰되어 낙심하거나 발광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의 형편을 정직하게 아뢰는 것이 바른 태도입니다. 브닌나가 격동해도 전혀 격동함이 없다면 문제가 아닙니다. 격동 이 되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하든지 해결을 하는 것이 옳습니 다. 여호와께 아룀으로 해결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께서도 자족하라고 하신다면 자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먼 저 여호와께 자신의 심경을 아뢴 이가 한나입니다. 남편 의 사랑을 열 아들보다 더 받으면서 마음이 괴롭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사치한 감정이라고 여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나는 자신의 심경을 정직하게 하나님께 아뢴 것입니다.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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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는 오래 기도했습니다. 오래 기도하다 보니 말할 힘이 없어서였을까요? 한나는 입술만 달삭거리고 음성이 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하늘을 울리고 하나님이 들으실 만큼 큰 기도였습니다. 목청이 큰 기도가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도가 응답받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하나가 술에 취한 것으로 생각하고 꾸지람을 합니다. 이는 술기운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옳지 않음을 말합니다. 신약에서도 술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고 계 시지 않았습니까? 한나가 왜 오래 기도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짧고 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으면 나의 기 도는 길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할 말이 많으면 기도시간이 길 것입니다. 기도란 응답을 위한 것이므로 응답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엘리를 통한 응답 이 떨어지자 한나는 즉각 기도를 마칩니다. 엘리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집으로 가 고 근심 빛을 지운 한나의 행동에서 우리는 한나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는 대제사장이고 그의 직분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의 중계자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나는 엘리의 말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았고 상황이 전혀 변화가 없 어도 말씀이 떨어지면 믿음으로 아멘하고 기뻐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소원을 헤아리게 된 한나 한나가 받은 응답은 무엇입니까? 한나는 오랜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바라보 게 된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이 오랜 기도를 통해서 한나는 불임이 자신만 의 문제가 아닌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스 라엘에 수많은 불임여성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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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서 굳이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더욱이 한나의 남편은 이미 브닌나를 통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한나는 자녀는 없 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브닌나에게 아들을 주신 것이 오히려 공평해 보입니다. 기도하는 중에 한나는 자신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많은 이스라엘 여성들의 불임문제를 거쳐서 하나님의 소원을 헤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한나의 기도를 들어주고자 한다면 한나도 하나님의 소원을 들어야 합니 다. 당시대는 사사시대 말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의 나라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들 자신의 소견을 따라 행하던 시대였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악은 이어지는 장 들에서 잘 나타납니다. 당시의 종교가 어떻게 타락했는가는 성막의 핵심부터 타락 했고, 직분의 핵심부터 타락한 것으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방의 한 레위인 엘가나는 해마다 성막을 향하는 걸음을 계속했습니다. 때로 소망은 변방에 있습니 다. 예수께서도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당시의 예루 살렘 사람들은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겠느냐 하는 조소로 갈릴리 사람들을 대했 습니다. 우리가 시대의 문화의 중심부, 경제와 정치와 교육의 중심부에 있느냐 아 니냐가 하나님의 역사의 중심에 쓰임 받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디서나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이 제정하신 규례와 율법을 따라서 행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참된 기도란 야웨 앞에 자신의 심정을 통하는 것입 니다. 나는 하나님과 통하였습니까?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고 응답하셔야 하겠는가에 대한 조건을 건 것입니다. 한나는 자식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드리겠다고 서원을 하는데 모세 오경에 이미 나실인에 관한 규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을 나실인으로 주께 드리지 않았고 자식을 나실인으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엘 리의 두 아들들처럼 버릇없고 무신하게 자녀를 길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이 없 던 삼손의 부모에게 가서 자식을 줄 터이니 나실인으로 기르라고 한 역사를 한나는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나실인의 서원을 하면서 아들을 구합니다. 하나님 나실 인이 필요하시지 않으십니까? 제게 아들을 주십시오, 나실인으로 기르겠습니다. 4)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한나를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생 각만 하셔도 불임여성의 태가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드러나는 것 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면 말씀하시는 대로 천지가 창조되고 말씀하신 대로 무엇이든지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도 뜻 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한 나의 몫이고 하나님께 기도한 후에 이제 공은 하나님께 넘어간 것입니다. 기도했으 므로 이제 자식을 갖던 아니 갖던 하나님의 뜻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나 의 서원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한나가 먼저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 응답받은 후에 3) 한나의 서원기도 / 하나님이 자식을 주신 경우가 있었는가? 한나는 기도하면서 자식이 없는 여인에게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신 경우를 깨닫게 됩니다. 곧 삼손의 경우인데 이 경우에 하나님은 삼손의 어 머니에게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자식을 줄 테이나 나실인 으로 내게 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먼저 한나를 찾아오셨을까요? 서원기도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의 괴로움을 주께 의탁하면서 주님이 이 간구를 들 어주실 수 있도록 조건을 단 것입니다. 세상에 괴로움을 당하는 이는 항상 어디에나 있기 마련입니다. 주님께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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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때보다 응답받은 후에 더 우리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문제가 있을 때는 간 절하다가도, 응답받고는 하나님의 은총을 까마득하게 잊을 수 있는 것 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1) 기억하고 아들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지음 한나의 참 믿음이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은 혜로 아들을 얻은 후입니다. 한나는 아들의 이 름을 사무엘이라고 짖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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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LOVE LETTER 러브레터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잊지 않 았습니다. 한나는 하나님이 자신을 기억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아들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응답받 은 후에도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2)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원을 지킨 한나 젖을 떼자마자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약속대로 여호와께 드립니다. 일반적으로 유 대인들을 세 살까지 젖을 먹입니다. 세 살이면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한나는 약속 을 변개치 않고 세 살 된 사무엘을 데리고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습니다. 먼저 하나 님께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이어서 자신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준 엘리에게도 은 혜를 나눕니다. 그리고는 사무엘을 하나님의 성막에서 나실인으로 바치고 자신만 돌아옵니다. 응답받았으면 하나님께 감사함이 마땅하고 함께 기도에 동참한 이들 에게 응답의 기쁨을 나누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 한 약속이 있으면 이를 지키는 것 까지가 기도의 완성입니다. 이 아들을 드리는 헌신을 통하여 한나는 사사시대를 끝 내고 왕국시대로 들어가는 구원역사의 진전에 공헌하게 됩니다. 3) 보너스로 받은 여러 배의 축복 사무엘을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드리자 하나님은 한나에게 아들 셋과 딸 둘을 주십 니다. 한 사람을 드리고 다섯을 받았습니다.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서원을 지 켰기 때문에 이런 보너스를 받았습니다. 이는 신약에서“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 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19:29)고 하신 약속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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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꿈을 꾸며 ● 이강순 집사 | 본지 편집장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며 산다. 꿈의 크기와 모양은 다 르겠지만 저마다의 목적이 이끄는 방향대로 각자의 성 향에 따라 사는 모습을 본다. 꿈이 있기에 살아가는 이 유가 되고 당당한 구실이 되며 목적이 되기도 한다. 내 꿈의 기초가 된 것은‘어깨동무’라는 어린이 잡지였 다. 도시의 문화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던 촌뜨기인 내게 군대를 제대하고 새로운 임지로 발령을 받은 큰오빠가 과월호 어깨동무를 보내줬다. 한 달 내내 그 책은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책이 다 닳아 너 덜너덜해질 만하면 다시 또 다음 호가 내 손에 전해졌다. 책을 읽는 동안은 즐거웠고, 일기장의 글이 달라졌다. 연재되던 동화‘쌍무지개 뜨 는 언덕’은 눈물샘을 자극했고,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이야기가 정말인 줄 알고 동화 속 주인공에게 편지를 써서 담임선생님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늦둥이인 내게 그 이야기는 알리바이가 통했다. 정말 주워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자 들길을 헤매기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부모님은 들로 나가 집은 텅 비어 있었고, 나이 차이가 많은 언니 오빠들은 모두 객지에 나가 있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 다. 책 읽는 습관은 그때 자연스럽게 들었다. 큰애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다.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데리러 갈 때면 언제나 어둑 어둑했다. 더러는 업고 돌아오기도 하고 더러는 손을 잡고 함께 걷기도 했다. 어느 날엔가 일찍 퇴근 했던 날이었다. 환한 골목길을 둘이 손을 잡고 걷는데 기분이 좋아 진 아이가 느닷없이 엄마는 꿈이 뭐에요? 하고 물었다. 꿈, 꿈? 그러며 의아함에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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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INTERVIEW

와 눈이 마주치는데 다시 하는 말은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요? 그러는 거였 다. 글쎄 엄마 꿈이 뭘까? 우리 서정이를 예쁘고 건강하고 지혜롭게 잘 키우는 거지..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듯 말을 했다. 아니 얼버무렸다기보다 정말 그랬다. 열심히 돈 을 벌어 내 아이를 그렇게 키우는 것이 그 당시 나의 꿈이었다. 이듬해 둘째를 낳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정신없이 보낼 때였다. 소꿉놀이 하던 큰 애가 달려오더니 엄마는 꿈이 무엇이냐고 정색을 하며 또 물었다. 한갓 유치원에서 배운‘나는 나는 이 다음에 OOO가 될거야’로 시작하는 노랫말의 한 소절에서 비롯 된 생각쯤으로 알았던 그 말이 하필 그날 내게로 달려와 확 꽂히다니! 꿈이 무엇이냐 는 질문은 수시로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글을 쓰는 사람, 좋은 엄마, 등등 적절히 형 식적인 대답으로 얼버무렸다. 일터와 가정을 오가며 그야말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았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내 손에서 책이 떠난 지는 오래됐고, 유치원 아이 수준 에 맞는 동화 읽어주기에 급급하며 살고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이유식을 만들어 작은애를 맡기고, 큰애 유치원 보내고 출근하는 그것만으로도 너무도 벅찼다. 인생 에 대한 회의감과 내 삶에 대한 자책에 몸과 마음은 따로 놀고 있었다. 그런 내게 그 날의“엄마는 꿈이 뭐예요?”라는 질문은 내 심장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나를 빤히 올 려다보며 대답을 기다리는 아이를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한참 동안 바라봐야 했 다. 그래 내게도 꿈이 있었지, 지금 내가 사는 이 삶이 정녕 내 꿈은 아니었지, 내가 해야 할 일은 이게 아니었단 말이지…. 나는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던‘꿈’이라는 그 단 어가 원자핵에 중성자를 집어넣어 핵분열을 일으키듯 순식간에 나를 흔들어 깨웠 다. 사는 데 급급했던 내가 다시 책을 펼쳤고, 한갓 사치로만 여겼던 글쓰기를 위해 시간을 쪼개기 시작했다. 엄마는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대던 아이가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끈질기게 질문하 던 그 꿈의 의미를 정작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통해 나는 마음을 다스리 며 산다. 생각지도 못했던 코람데오 편집장이 되었다. 내 사전에 없던 직함이다. 하긴 촌뜨기 내가 서울로 올라와‘남양주’라는 작은 도시에서 살게 될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의 무기록사로 논술교사로 수필가로 살아온 이 길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 결과이다. 나도 모르게 품어 온 꿈이라는 작 은 씨앗 덕분이다. 씨앗은 물과 햇빛, 적당한 온도만 주어지면 언젠가 싹을 틔우기 마련이다. 꿈이 있다는 것은 변화하는 삶을 기대한다는 뜻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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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초등학교 교감 심기섭 선생님 “기독교적 세계관을 지닌 능력 있는 리더양성”의 꿈을 실현하시는

탁월한 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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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의 굵직굵직한 행사시에 재치 있는 입담과 매끄러운 진행으로 성 도들의 기억 속에 유쾌하게 자리 잡고 있는 분이 있다. 바로 은혜초등학교의 교감으 로 재직 중인 심기섭 장로이다. 인터뷰하고 싶다는 했을 때“점심 때 놀러 와서 밥이 나 먹읍시다.”라고 편안하게 답해줘서 편집장과 가벼운 마음으로 불광동 은혜초등 학교로 향했다. 그날은 봄날 같았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 지겨워질 즈음 봄날 같은 날은 2월의 조용한 교정을 더욱 아름답게 했다. 아이들이 없는 빈운동장에 펼쳐지는 햇살이 아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 봄을 재촉하고 있었다. 은혜초등학교는 한 학년 당 2학급의 작은 규모의 사립초등학교로 아담하고 깔끔했 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겉모습과는 다르게 세련됨이 엿보였다. 공립의 일반초 등학교에서 찾아볼 수 없는 교감실이 따로 있어 편안하게 만나 뵐 수 있었다. “은혜초등학교 ”이름만 보고 기독교재단의 학교라고 생각했는데 종교와는 아무 상 관없는 학교였다. 이사장은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의아한 표정에 서로 마주보며 한 참 웃었다. 역시 교육자다운 그의 위트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또 다른 내일의 희망을 건질 수 있다는 믿음, 바로 그것이다. “교인들 중에는 제가 아직도 경복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줄 아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2003년에 학교를 옮기게 된 이야기부터 해볼까요?”미리 준비하셨던 것처 럼 초보기자의 질문이 이어지지 않아도 대화를 술술 풀어나갔다. 경복초등학교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통일교재단이다. 평교사로 근무할 때는 통일교 행사에 반드시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관리자 즉, 교감이나 교장이 되면 반드시 행사에 참석해 야하는 것이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이렇게 경복초등학교의 교감제의가 들어왔을 때 ‘아, 이제 이 학교를 떠날 때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벽기도를 다 니며 이 기도제목으로 기도하며 고민하던 중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학교를 옮겨야 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바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던 네 본토 친척 아비 집 갈 대아우르를 떠나라는 말씀이셨다. 확신을 갖고 여기저기 수소문 하던 중 시흥동의 동광초등학교의 개교를 알게 되어 도전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연구부장 제의를 받 았으나 나중엔 교감자리로 가게 되었다. 순탄하게 이어질 것 같았던 동광초등학교에서의 교감 생활은 어려움이 많았다. 교 육적인 의미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많은 활동들에 이사장과 행정실장의 지나친 간섭이 점점 시작되고, 교육활동에 재정이 큰 의미를 차지하는 학교의 분위기에 마 음속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이곳 역시 내가 있을 곳이 아닌가요? 주님, 저는 어 떻게 해야 하나요? 이 학교를 떠나고 싶습니다.’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이런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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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이 점점 구체화 되어가던 2009년 가을, 신종플루 관련으로 동광초등학교에 KBS에 서 취재 요청이 들어왔었다. 간단한 인터뷰가 진행되고 취재를 정리하던 기자가 갑 자기“교감선생님께서도 한말씀하시죠?”하며 마이크를 들이댔고 별다른 준비가 없 었던 그는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에 임했다고 한다. 그 장면이 공중파를 타게 된 것이다. “지금의 이 학교로 오게 된 생각지도 못했던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9시 뉴스에 나온 제 인터뷰내용을 보고 은혜초등학교의 이사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은혜초등학교에 와달라는 이야기와 함께 학교상황이 좀 어렵다는 말을 덧붙였습니 다. 기도해보고 결정하겠다는 제 대답에 이사장이 본인도 기도하겠다고 대답해서 ‘이사장이 그리스도인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절에 가서 기 도했다더군요.” 작정하며 기도하던 중“네가 가고 싶다고 했잖아? 학교를 옮기고 싶다고 했잖아?”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셨고 학교를 가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결정을 하게 되었 다. 가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도대체 학교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여 김 숙경 권사와 함께 학교를 찾아갔다. 처음 본 학교의 초라한 모습에 실망 감이 몰려왔다.‘아, 내가 너무 성급 한 결정을 내렸나?’라는 생각에 고 민을 하던 중 좀 더 좋은 조건의 다 른 학교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이미 가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갈등 을 하고 있던 즈음 하나님께서는 주 일 설교말씀을 통해 이런 그의 갈등 을 한방에 해결해주셨다. 담임목사님께서 여호수아가 기브온 족속과 약속하는 장면 을 설교하시면서 그리스도인이 사회생활에서 약속을 지키는 모범을 보이라는 강력 한 메시지였다. 고민을 접고 어려운 상황의 은혜초등학교로 결정을 했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은 한번 더 말씀으로 위로를 주셨다. 성찬식 준비로 분주하게 보낸 송구영신예배를 마치며 집에 가다가 교회 로비에서 우연히 집어들은 말씀카드가 바로 그것이었다.“내가 네게 명령한 것 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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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일로 세상을 다 잃은 듯 마음에 두려움이 엄습했을 때 괜찮다 괜찮다 하시며 따스한 눈빛으로 나의 온몸을 녹이셨다

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최근 몇 년간 입학생이 미달이었던 이 학교에 제가 부임하던 그 해 몇 년 만에 추첨 으로 입학생을 선발했습니다. 2011년도 마찬가지구요.” 그리스도인의 삶은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세밀하게 묻어있음을 느끼게 해준 간증이었다. 새 학기를 준비하느라 바쁜 업무 중에서도 진솔한 이야기로 감동 을 전해준 장로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장로님의 평생을 풍요롭게 할 꿈을 여쭈었다. “은혜초등학교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지닌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는 장이 되었으 면 합니다. 사실 올해 새로 교사를 임용하면서 기독교사를 몇 명 뽑았습니다. 뜻밖에 이사장도 그리스도인들은 긍정적인 마인드가 마음에 든다며 기독교사 임용에 호의 적이었습니다. 영성과 전문성이 삶에서 온전히 연합된 그런 교사가 우리 학교에 많 아지고 저 역시 그런 교사가 된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은 이사장이 본인 의 입으로‘저도 이제 교회에 가고 싶습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 다. 다시 말하자면 제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늘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우리 교회가 유아부부터 시작되는 신앙교육에 좀더 특별 한 관심을 가져서 교회교육이 체계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다음세대를 기독교적 세계관을 지니고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으며 자신이 속한 영역을 복음화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세워가는 그런 교회교육을 꿈꾸는 것이 너무 욕심인가요?” 교육자로서의 교회 교육에 대한 진심어린 충고가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시민교회 의 교회학교 출신들이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지닌 글로벌 리더가 되길 바라는 꿈은 그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우리의 꿈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충만히 임 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 인터뷰어: 권구슬 집사 | 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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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더 큰 것을 주시기 위한 시련일까 입으로만 믿는다 고백하던 내게 괜찮다 괜찮다 하시며 눈물로 기도해주시는 많은 분들의 위로를 통해 희망을 주셨다 이제는 희망이 아닌 현실이 되어 괜찮다 하신 의미를 깨닫는다

Essay 괜찮다 괜찮다

● 김윤희 집사 | 루디아 3

수없이 흘렸던 갈등의 눈물 속에서 내 계획과 욕심대로 아이들을 이끌어갈 때 괜찮다 괜찮다 하시며 부모인 나를 먼저 변화시키시고 아이들을 위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기대하고 기도하게 하셨다 나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께서 나에게 위탁하신 자녀임을 깨닫게 하셨다 혼자 있는 여유로운 시간에도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이웃집 아줌마에게 하듯 주님과 주저리 주저리 수다를 떨고 하소연을 한다 인자하신 부모님처럼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는 주님 괜찮다 괜찮다 하시며 오늘도 마음의 위로와 살아갈 의미를 내게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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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내겐 너무 아름다운

그녀

● 김강숙 집사 | 뵈뵈 4

해성이가 사는 섬에는 고구마 밭이 참 많다. 육지에야 지을 사람이 없어 노는 땅도 많지만, 땅이 한정된 섬은 손바닥만한 땅도 그냥 두는 법이 없다. 봄이면 마늘에다 고추, 보리밭이 초록의 물결이 이루고, 가을이면 섬은 고구마 밭 천지가 된다. 내가 해성이 가족을 안지는 2년 전 가을 남도로 여행 갔을 때다. 나는 해성이 집에서 3일 동안 민박을 했다. 숙박료를 받지 앉아 숙박료 대신 일을 거들어 주기로 했다. 요즘 농촌 에는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다 떠나고 노인들만 농사를 짓는 다는 소식은 매스컴을 통 하여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까지 심한 줄은 몰랐다. 그러니 해성이가 사는 섬마을은 오 죽 할까. 해성이 아빠와 엄마는 섬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그리고 결혼도 했다. 한 번도 섬을 떠나 본적이 없다고 했다. 해성이 엄마는 참 부지런하다. 농사도 짓고, 채소도 가꾸고, 틈틈 이 돼지도 기른다. 학교 급식소에서 잔반을 얻어다 돼지를 먹이고, 돼지 막도 청소하고, 또 아이도 넷이나 키운다. 섬에서 유일하게 돼지를 키우는 집이기에 동네 궂은일과 좋 은 일을 먼저 알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해성이네 마당 입구에 걸어둔 대형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어오르고, 돼지 의 멱따는 소리가 온 동네를 들썩인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나보다 훨씬 가녀린 몸매 의 그녀는 거의 쉴 틈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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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의 늦가을은 고구마 캐느라 분주하다. 멀리 산등성이 너머까지, 여기 저기 고구마 순 을 걷어놓은 모습이 들어온다. 특히 해성이네는 동네의 빈 밭이란 밭에는 모조리 고구 마를 심었기에 그녀의 가을은 더욱 바쁘다. 고구마를 캐는 데는 소가 하는 일이 반이다. 먼저 고구마 순을 걷어 한쪽에 모아둔다. 소는 쟁기를 멘 채“기라 죽 ,자라 죽”하는 주 인의 명령에 따라 고구마 이랑을 갈기 시작한다. 주인과 호흡이 잘 맞는지, 안 맞는지는 높아지는 주인의 목소리로도 알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미처 손 빠진 부분을 호미로 일구며,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고구마를 날 라서 한곳에 모으는 일이다. 몇 이랑 일구며 캐지도 못했는데 금세 허리가 아파 왔다. 엉 덩이를 내리자니 호미 쥔 손이 천근이고 엉덩이를 올리자니 온 몸이 뻐근하다. 장갑을 끼었음에도 손바닥은 금세 빨개지고, 호미를 오른손에 쥐었다 왼손에 쥐었다 휴우, 세 상일이 만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고구마는 종자용과 수매용으로 가려진 후 경운기도 못 들어가는 경사진 밭고랑 사이를 요즘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지게를 이용해 큰길까지 져 나른다. 그걸 다시 트럭에 싣고 잔교(배가 닿는 부두)에 몇 날이고 쌓아두 면 이 섬에서 드물게 보는 큰 배가 날 잡아 수매를 하러 온다. 이맘때쯤이면 하루 두 번 , 배가 들어오는 시간 말고는 인적 뜸한 잔교가 시끌벅적해진다 했다. 작년에 해성이 엄마는 삼백 가마를 넘게 수매 했다. 재작년엔 한 가마니에 칠천 원, 작년 엔 육천 원 이었다면서 올해는 얼마가 될지 모른다고 한숨짓는다. 그렇게 부부가 힘들 여 삼백 가마를 수매해봐야 벌어들이는 수입은 얼마 되지 않는다. 여름내 종종거리며 고구마 순을 품 얻어 심고,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면 일일이 물을 주고, 가을에 캘 때 하 는 수고에 비하면 너무 작은 수입이다. 웬만한 도시의 월급쟁이 월급에도 마치지 못하 는 것을 위하여 수없이 많은 날들을 억척스럽게 일하는 그녀를 보면서, 농민의 어려움 이 피부로 느껴졌다. 앞날이 나으리라는 희망이 없다면 얼마나 팍팍한 세상일까, 그래 서 모두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면서 살아간다. 옆구리에 성경책을 끼고 육지 교 회로 떠나간 전임 목사님 대신 좋은 목사님 주십사 철야기도 하러 교회로 향하는 부부 의 모습은 평화롭다. 선한 웃음 속 그녀의 어느 곳에 그런 강함이 숨어 있는지 모르겠다. 힘든 노동은 지울 수 없어 나보다 연상으로 보이는 그녀의 뒷모습은 그래도 아름답기만 하다.

앞날이 나으리라는 희망이 없다면 얼마나 팍팍한 세상일까, 그래서 모두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면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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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졸업과 입학

● 안희국 권사 | 뵈뵈 3

던 터라 저는 그 짓을 즐겨 해왔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딸 나라를 임신하고는 왠지 이건 생활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로 밤을 새우곤 했습니다. 거의 날밤을 새우 고 아침이면 아이들을 챙기고 출근을 했습니다. 자꾸만 마음속에 나는‘결혼과 동시에 모든 것 포기했는데 당신은 뭐하는 거야’라는 원망과 함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 작했습니다. 아이를 지우고 이혼을 할까 밤이면 혼자 무수한 생각을 하며 헛된 망상에 사로잡히곤 했습니다. 그러나 여명이 밝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웃는 얼굴로 출근 을 하는, 어릴 때부터 받은 훈련에 길들인 특히 명랑한 직원이었습니다. 엄마의 엄한 바 른생활 교육이 이 시기를 넘어가게 한 힘이었습니다. 임신 8개월 즈음, 퇴근길에 아는 권사님으로부터 조용기 목사님의 책과 설교 테이프를 건네받고는 다음 날 수요예배부터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도 집 옆이고 성탄 절 즈음이라 수욜, 금욜, 주일, 거의 날마다 불뚝한 배를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주일학교 아이들의 간식을 만들며 사찰 아닌 사찰 노릇까지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들고 외롭고 어려울 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임을 이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평안도가 고향인 의지가 강하신 홀어머니의 교육으로 초등 1학년 부터 살림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고3이 되기 전까지 취업이 되어 야 한다는 엄포로 타자, 주산, 부기로 전국경진대회에서 상을 받곤 했습니다. 그 결과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이 되었고 청년의 소중한 시간을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나 아픔 을 위로받으려 엄마와 마주앉기만 하면 시시비비를 따져가며 소리 지르곤 했습니다. 하 나님이 없었던 저희들의 삶은 인간의 힘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지 못했으니 까요. 결혼 적령기가 되었고 남편을 만났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의 두 딸과 시누이, 저희 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주고 간 딸 셋, 갑자기 여자만 저까지 일곱이 되 었습니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어릴 때부터 받은 훈련으로 몸으로 하는 건 쉬웠습니다.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은 마음씨 좋은 남편의 생활태도였습니다. 퇴근시간은 있었지만 근무처가 병원이고 사람을 유난히 좋아하는지라 병원 영안실이 거의 집이었고, 어쩌다 집에 오는 날엔 어울리던 직원들과 함께 와서 잔치국수로 모임 종료를 했으며, 새벽이 되면 흩어지곤 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몸 밖에 튼튼한 게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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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교회는 아침 일찍 가면 저녁에나 귀가하는, 꼭 출근하는 개념이 었습니다. 주님은 못 고칠 병이 없는 분이란 걸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제 입술 에서 원망과 불평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게 되었고 남편의 실수에도 너그러워지며 그때 마다 잠든 남편의 다리며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주안에 있을 때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고 바른 삶으로 이끄시는 것을 알게 된 저는 얌전 히 교회만 다니는 것으로는 성이 안찼습니다. 학교에 근무하면서의 가장 큰 보람은 그 곳에서 직장동료와 학생들과 교수님들과의 신앙공동체로 연합하면서 많은 도전을 받 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전도훈련에 가입하면서 가슴 벅찬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저는 온 힘을 기울여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을 언약의 백성으로 삼아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 도록 기도하며 양육했습니다. 어떤 잘못과 실수보다 주일예배나 교회 수련회를 불참한 다면 혹독한 벌로 교회교육을 최우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던 저의 청년시절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하나님께 부르 짖어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당대가 아니라도 응답되듯이 가문에 부족한 저를 통하여 목 사사위, 장로사위, 전도사 딸을 허락하여주셨습니다. 처음 예수를 만난 뒤 모태신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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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이나 몇 대째 이어오는 신앙의 유전이 많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29년이 된 지 금 오래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며 주님으로 기뻐할 수 있느냐가 소중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제, 자녀 나라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어 바른 배우자를 주실 줄 믿습니다. 저는 더욱 겸손하게, 소명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말할 것을 준비하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므로. 1970년 11월 고3의 단발머리로 시작한,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학도서관에서의 공무원 시작은 2010년 12월31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41년 동안 감사와 기쁨으로 마감하게 하 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을 이제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퇴직하면서 신우회 예배에 선포한 것이 있습니다. 이제 가정으로 돌아가서는 제일 먼저 남편과 친해지는 아내가 되기로 노력하겠으며 또 한 주부로서의 역할도, 노모님도 성경대로 잘 섬기겠노라 하며 퇴임을 했습니다. 막상 퇴임하고 나니 며칠은 불안하고 안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편 그동안 교회에 출 석은 했지만 힘과 정성을 다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노모님도 잘 모셔야 겠다는 생각과 함께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이 자꾸만 교회에 올인 하기 보다는 노모님을 요양원에서 다시 집으로 모셔와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습니다. 직장이라는 핑계로 많은 것들이 이해되 고 느슨했던 것이 갑자기 노출되는 저의 모습에 두려운 마음도 들었으니까요. 노모님을 모셔왔습니다. 이틀을 하다 보니 한 시간, 한 순간도 눈을 돌릴 수가 없고 어 머니도 제가 부엌이라도 가면 불안해하시면서‘우리 큰 집으로(요양원) 가자’고 했습 니다. 기도하는 중에 저의 마음을 읽은 성령님은 회개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한 분이 아니라 너에게 준 은사와 믿음의 표현이 필요하시다는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든 편안한 것 내려놓고 복음의 첨병대로 떠나가는 선교사님들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 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 (고전 15:10) 이 말씀을 통해 다시 힘주시고 도와주시는 주님을 기억하려 합니다. 여러 가지 주신 직분에 입학생의 마음으로, 힘껏 충성하는 자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 쁘시게 함과 동시에 저를 기쁘게 하는 삶인 것을 퇴임과 동시에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까요.

저는 어머님을 집에 모시고 그 물질을 선교헌금으로 사용할까하는 계산이었지요. 그러나 어머님을 24시간 혼자서 돌볼 힘도 없고 주일예배나 그 어떤 예배에도 참석할 수 없는 실정이 되는 것을 주님은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을 바꿨습니다. 기관에 모시고 이전보다 더 부지런해서 그동안 부족했던 전도나 성 도의 교제에 힘쓰고 날마다 어머님을 찾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임을 알게 해주셨습 니다. 일 할 수 없는 날이 속히 오리라는 말씀이 자꾸만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홀연히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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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믿음의 자유인

● 박길용 집사 | 바나바 2

우리는 하나님을 왜 믿는가? 이는 곧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한 분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겠고 인간을 통해 하나 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을 것이다. 인간을 통해 무엇을 하시려고 하는 것일까? 하 나님은 인간을 하나님 형상(image)대로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허락하신 축복과 명령이 있다. 이것은 내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말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축복과 명령을 통 해 인간 간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고 했고, 자연에 대해서는 정복하고 다스 리라는 청지기의 소명을 주었다. 이 두 축복과 명령을 잘 지킬 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 이 달성되고 이를 통해 세상은 감사와 찬양으로 그를 영화롭게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이 천지를 처음 창조할 때는 홀로 전 과정을 계획, 집행, 평가하셨지만 창조활동 은 태초에 단 1회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손을 빌려서 이 세상의 끝 날까지 계속된 다. 특히 피조물 가운데 인간은 서로 사랑하고 자연을 관리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와 책 임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유 한 자였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범죄, 즉 자유를 잘못 사용한 책임으로 인간에게 죄가 들어왔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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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관계를 끊어버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인간에게 끝 없는 사랑과 용서를 부어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자요. 또한 그는 인간 을 향한 그의 계획과 약속에 영원히 신실하기 때문에 인간은 영원히 하나님의 형상이 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에게 부여된 지위와 책임의 실패로 하나님에 대한 관계를 파괴 시킬 수 있다. 그래서 구약의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과 계시를 통해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토록 하여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돕게 하시고, 신약의 역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서 제 2의 창조가 시작된다. 제 2의 창조는 역사 속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져 나간다. 십자가의 사건은 예수님이 우리 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이를 믿는 자에게 자유 함을 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날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죽고), 그의 영과 더불어 연합되므 로 성취되어 가는 것이다.“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 5:13)

하나님의 뜻은 처음부터 고정된 율법 같은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현 실상황과 더불어, 즉 일정한 상황에 있는 인간에게 그 상황을 통해서 전달된다. 우리는 이 같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행위를 결단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 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특권을 하나 님 뜻에 맞게 주체적으로 살려서 책임적으로 행하여야한다. 그러나 그 권리, 그 자유는 아버지 앞에선 아들인 것이다. 우리들의 정체성 위기는 죄의 구속으로부터 탈출의 결단 을 못 내리는 부자유인 이라는데 있다. 이는 믿음의 결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믿음은 모리아 산의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한 결단에서......즉 백세에 얻은 이삭에게 칼을 댄 것은 자기에게 칼을 대는 것이며 미래의 약속의 줄에 칼을 대는 것이다. 믿음이 란 단순히 미래 또는 피안에 낚시 대를 던지고 기다리는 고기잡이 같은 행위가 아니다. 믿음은 삶의 역사적 현장 속에서 철저한 죄의 쇠사슬을 끊는 결단의 행위를 통해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하는 인격적인 만남이다. 이는 십자가의 고난의 길에 참여함을 의 미하며 내 자신을 모두 그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일마다 예배를 드린다. 예배 를 통해 무엇을 구하고 찾는가? 이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 순종은 결단을 통한 행함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이다. 즉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다. 성육신이 없고 머리에만 남아있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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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생명이 없다. 말씀에 내가 죽어버리면 하나님께서 간섭하신다. 이 간섭은 우리의 삶 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세속적인 기준이 배설물처럼 되면서 구속사적인 창으로 세상을 보게 만든다. 이를 성경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이요, 거듭난 자라고 한다. 이 순간순간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우리의 삶이 말씀과 다르 면 사도의 길을 포기한 것이고, 우리의 예배와 모든 교회모임은 종교행사에 불과하다. 이를 보고 예수님께서는 외식한자요, 회칠한 무덤이요, 독사의 새끼라고 했다. 우리 그 리스도인은 날마다 말씀의 순종과 예배를 통해서‘부르심’을 받고 세상에 나아가 말씀 대로 사는‘보내심’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의 통로에 증인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는 시대물결에 편승하는 자에게는 결코 오지 않는다. 십자가는 대결이다. 어느 한쪽으로 결단하는 자의 앞에 십자가가 있다. 하나님의 선한 의지에 결단하는 것은 자 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다. 자기부인은 철저한 참회를 통해서 이루어져 나간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광야에서 물질, 명예와 권력의 시험을 이기고 갈릴리 호숫 가에서“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 4:17)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삶의

Essay 곁에서 본 미국인들의 기독교 ● 장무현 집사 | 가이오 2

광야에서 물질과 명예와 권력과 정욕에 자유 함을 위해 밤낮 참회의 기도로 결단의 씨를 뿌려야 한다. 우리는 신앙인을 자처하면서 세속적인 욕망 의 기준으로 얼마나 내 이웃에게 아픔을 주었던가? 가진 것, 배운 것, 세속적 지위와 외 모로 얼마나 교만했던가? 하나님 앞에는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오직 십자가를 지 는 자만이 자유롭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성령으로부터 은사와 능력을 받아 자신의 삶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 봉사할 수 있는 믿음의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사역의 정점인 고난의 십자가를 피하라고 유혹을 하였을 때,“사 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태 16:23)고 했다. 사탄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인간의 욕망으 로 바꾸게 하는 악한 존재이다. 내 십자가는 역사적인 하나님의 소명을 가진 자에게 온 다. 역사적 현실에서 도피하는 자에게는 십자가가 없다. 역사적 소명을 가진 자는 내가 선 구체적인 관계에서 하나님의 선한 길을 결단한다면 내 골고다는 예루살렘 밖이 아니 라 내가 선, 바로 여기 가정, 학교, 직장, 사회, 국가, 세계에서 성취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십자가의 선택의 결단이고 십자가는 우리의 죄악으로부터 구원이요. 부활이 다. 이 부활은 말씀에 순종이요. 이 순종은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 에서 믿음의 결단을 통해 내 이웃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으로 세밀 히 보살피고, 세속사의 불의에 항거하며 하나님의 공의가 하수처 럼 흐르도록 창조질서에 따라 사도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날마 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소원이 창조섭리의 부르심을 받고 응답 하는 믿음의 자유인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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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시작 미국 다녀온 이야기를 간단히 써 달라는 편집장의 부탁이 있었다. 요즈음은 누구나 평 범하게 다녀오는 곳이어서 별다르게 쓸 만한 것이 없다. 다만 미국의 기독교가 오늘날 에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혹자들의 비판이 있어서 이들을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비록 코끼리 다리 만져보기 식이지만 보고 느낀 점들을 한 번 써 보고 신앙생활에 참고 가 되었으면 한다.

| | | | | 한 달 가량 펼쳐지는 크리스마스 축하행사 나와 집사람은 두 달 가량의 체류기간 중 하루만 빼고는 매주 미국남서부 애리조나 주 피닉스시에 있는 미국 팜코롭트(palm croft) 고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우리가 간 때가 11월 하순인데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일고 있었다. 백화점들은 세일에 들어갔 고 시가지에는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군데군데 세워 졌으며 캐럴도 울려 퍼지고 있 었다. 교회마다 크리스마스 행사가 실시되고 있는데 우리는 집사람의 시차증(jet lag)등 으로 당초보다 적게 3곳만 참석하게 됐다. 맨 처음은 미국선교사 주선으로 구성된 1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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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미녀 선교단이 크리스마스 캐럴과 애교 깃든 쇼를 펼쳐서 위로하고 다과회도 가 졌다. 즐겁고 보람된 하루였다. 두 번째는 우리가 다니는 교회의 초청으로 연극, 오케스 트라연주, 크리스마스 캐럴 등으로 예배를 드렸다. 세 번째는 피닉스제일(Phoenix first : 교회이름)에서의 축하공연이었다. 간단한 예배 후 2부 순서로 들어갔다. 동방박사가 탄 세 마리의 낙타와 인도코끼리의 축하인사 그리고 공주에서는 8명의 흰옷 입은 천사 가 50m 높이의 공중을 날아다니며 경배하였고, 게다가 레저빔 (laser beam:광선)의 현 란한 조명에 우리는 그저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약 50m 높이의 인간 크리스마스트리 를 이룬 300여명의 찬양대원이 나무속에서 부르는 캐롤, 질서정연한 5000여명의 관중 (신도), 정녕 그들은 2010년 전에 오신 아기 예수 탄생을 온몸을 던져 경배하고 축하하 는 것 같았다.

| | | | | 기독교 뿌리가 깊은 나라 이들의 기독교는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건전하고 뿌리가 깊어 보였 다. 결코 사양길에 접어든 게 아니었다.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식은 지구의 지표 속에 살짝 가려져 있는 마그마라고나 할까? 또 친절하고 겸손하며 양보할 줄 알면서도 솔선 수범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프랑스 격언)의 실천가들이었다. 교회에서도 교역자와 신도의 유기적 융합으로 모든 일을 운 영하고 수행하는 모습들이 참 평화스러워 보였다.

| | | | | 기독교 정신에서 비롯된 관습 미국도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가 아니고 종교자유의 나라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취임선서나 헌법의 기본정신및 의회 운영 등은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다. 또 개인 관습 또한 이웃사랑으로 연유된 것이 많다. 그 짧은 한 예를 들어보자. 한 사람이 재채기(Sneeze)를 하고는 옆 사람에게“실례했습니다(Excuse me).라고 하면 상대방은“하나님의 축복이 있으시기를!(Godbless you!)”하고 빌어준다. 이러한 관습 은 아직도 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 | | | | 기독교와 자동차 문화 기독교 정신이 미국인에게 사랑과 양보의 문화를 일궈냈다.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 자 동차가 마주칠 때는 한참동안 서로 먼저 가라고 웃으면서 손짓을 하거나 지나치리만 큼 기다려주는 여유는 외국인인 나에게도 깨닫게 하는 바가 컸다. 건널목 혹은 신호등 앞에서 방향지시등을 위반하는 차량을 거의 못 본 것 같다. 출구나 입구에서 새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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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꾸준히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가히 신사국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질문화의 발전에 따른 문화지체 현상(cultural lag)과는 대조적이었고 괴리 가 있었다.

| | | | | 미신이 적은 나라 변호사가 많은 나라 미국은 합법과 합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거기에다 과학적 사고방 식이 생활화 되어있어 샤머니즘(Shamanism:무속신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기 불순한 위약효과(Placebo effect)를 쓰거나 기복신앙을 미끼로 하는 사이비 기독교가 판을 치는 사례를 아직 못 들어본 것 같다.

| | | | | 미국의 기독교는 가정과 함께 때마침 성찬식이 있는 날이었다. 기도 후 약 2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신도들이 일사불 란하게 열을 지어 재단 앞에 차려놓은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 후 제자리에 돌아오고 있었다. 그 중간에 가장인 듯한 장년 남자가 큰 쟁반에 빵과 포도주를 가져와서 우리 주 위에 앉았다. 5~6명 쯤 되는 가족이 원형으로 머리를 맞대어 기도를 하더니 먹고 마셨 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부모는 모름지기 본이 되고 자녀와 함께 신앙심을 키 워나가는 방법이 마치 유전되어진 것 같았다.

| | | | | 마무리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후 (1884년) 미국 기독교는 선교사를 통하여 교리전파, 국 민계몽, 학교설립과 교육, 선진과학기술의 전수 등으로 믿음의 선배 역할을 해 왔으며 전도의 노하우(Know-how)도 전수해줬다. 그런데도 일부 식자들은 미국 기독교를 일 별 정도하고는 마치 전체를 본양 판단하는 경우가 아직까지 더러 있다고 보아진다. 올 해도 새 출발을 위하여 산과 들, 심산유곡에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진달래, 벚꽃이 어 김없이 피는 새봄이 가까이서 기다리고 있다. 차제에 내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알아보 고, 반성하며 회개하여 생활이 이제부터 새롭게 출발하는 행진과 걸음이 되었으면 하고 기원해 본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 잠언 1:7을 묵상하면서 두서없 는 이 글을 마친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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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싫어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남편을 따라 놀러는 다녔지만 저는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 집사가 숨이 막히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 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진찰을 해도 아무 병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정 집 사는 너무 힘들어 했습니다. 또 입원하여 진찰을 해도 역시 똑같은 진단이 나왔습니다. 정 집사가 그때야 깨닫고 병원 문을 닫고 혼자서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의 기도를 했다 고 합니다. 숨쉬기 힘들었던 목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 시는 분, 치료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회개하는 자녀는 안아주시고 감싸 주시고 용서해주시는 사랑이 풍성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Essay ● 임정자 권사 | 도르가 3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 를 사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1서 1:9)”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라는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온 것 되돌아보면 모든 것이 주님의 사랑과 돌보심이었습니다. 기 쁠 때나 슬플 때나 애통할 때도 주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

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했습니다. 저는 서울시민교

부족한 저를 간증자로 세워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립니다. 저는 온유하고 착하신 부모를 주신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도 알지 못하고 주님이 이 땅에 우리를 위하여 오셨다는 것도 듣지도 못하고 살아왔습니 다. 학교 다닐 때, 이북에서 내려온 가까운 친구가 있었는데 주일날이면 온가족이 교회 를 갔습니다. 저는 그때 그 모습이 참 부러웠습니다. 친구는 아 번도 교회에 같이 가자 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교회는 특별한 사람만 가는 곳인 줄 알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교회에 가게 된 것은 정순구 집사(남편)를 만나고 나서였습니다. 저를 데리고 영락교회(한경직 목사 시무할 때)로 갔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거룩한 모습과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풍기는 신실한 모습에서 교회는 이렇게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 게 되었습니다. 나도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 참 기뻤습니다. 그 날의 기쁨은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결혼 후 삼남매를 키우면서 교회를 멀리하게 되 었습니다. 주일이면 가족과 함께 산으로 들로 놀러 다니기에 바빴습니다. 어느 날 혼자 집에 있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다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빨리 교회에 나가 감사를 해야 한다는 그 생각이 내 마음에 가득 찼 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교회에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 집사가 교회 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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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에서 믿음 생활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자녀들이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고 손자손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거룩하고 복된 주일에 하나님을 만나고 가족과 믿음의 형제의 얼굴을 보면서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입술로 고백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가정에 보화를 준비해 두신 줄 믿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 와 그 의를 구할 때 이 기도의 파이프를 통해서 주님이 준비한 축복이 우리의 모든 가정 에 흘러 넘쳐 들어올 줄 믿습니다. 기도는 모든 축복의 통로이고 원천입니다. 부모는 자 녀들의 몸까지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운 일 에 순종하여서 우리의 후손이 빛의 자녀답게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삶을 살아서 보배 롭고 존귀한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의 후손이 되기를 오늘도 기 원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보존이 되는 줄 믿습니다. 주님이 내 마음 속에 기쁘게 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 제목을 가지고 올 한해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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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답변하기가 막 연하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태평양전쟁 하의 일본 도쿄에서 그리고 폭격을 피하여 잠시 피난 간 야 마나시켄 니라사키에서 자랐으며 그곳에서 종전 을 맞기까지 16년을 일본에서 지냈고 종전이 되 던 해 11월에 아버지를 따라 해방된 조국에 난생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Essay 고향

● 조용환 장로 | 가이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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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나시껜에서 지낸 1년여의 기간을 빼면 도쿄 에서 어린 시절을 지냈다. 그러니 도쿄는 어린 때 의 추억이 간직된 곳이다. 내가 포스코에 재직시 신일본제철에 연수생으로 약3개월 파견된 일이 있다. 어린 때의 추억을 더듬어 내가 살던 곳 골목 을 찾아간 일이 있다. 그곳에서 수소문 끝에 국민 학교 동창을 찾았고 담임선생 집도 방문하고 동 창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실로 27년만의 만 남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따스한 추억거리가 되 어 가꿈 흐뭇하게 회상되기도 한다. 가끔 TV에서 일본 소식이 전해질 때는 유심히 본다. 어릴 때의 추억이 많지만 좁은 집에서 어머니의 따?한 품과 형들의 배려 속에서 천진하게 웃고 지내던 소박 한 행복감은 두고두고 그리워진다. 국민학교 5학 년 때 아버지가 농촌에 갔다 오시는 길에 갖다 주 신 벼이삭을 생전 처음 보면서 신기해하던 생각 이 난다. 야마나시로 피난 가서 후지산의 수려한 모습을 오른 편에 야쯔가타게의 위용을 왼편에 바라보면 서 맑은 타키가와천의 흐름 옆에 위치한 아담한 중학교에서 공부한 1년반은 내게 보다 더 진한 추 억을 심어주었다. 양잠의 고장인 그곳에서는 넓 은 뽕나무밭이 있었는데 뿌리에서 바로 자란 가 지를 직접 자른 채로 어린 누에들 위에 올려놓으

면 누에가 기어가며 뽕잎을 먹게 되어 있었다. 학교에서는 농번기에 우리를 이런 농촌 에 근로봉사를 보냈다. 땀 흘려 낫질을 하고 난 후 주인집에서 제공하는 점심에 입맛을 다신 일이며 일을 마친 저녁에 풋풋한 다다미 냄새를 맡으며 푹신한 이부자리에 누워 푹 잠을 자던 일 등, 그리고 옆집의 또레 여학생이 내게 책을 빌려 달라고 할 때 가슴이 무척 설레던 일 등 아기자기한 추억들이 선명한 그림처럼 뇌리에 각인이 되어있다. 나처럼 도쿄에서 피난 온 고미라는 친구와 특별히 친했고 1945년 8월 15일의 천황의 항복성명을 우리 집에서 나와 같이 듣다가 큰 충격을 받고 급히 자기 집으로 달려가던 그를 보면서 나는 내게도 조국이란 것이 생기는 것인가 하는 기쁨이 섞인 말할 수 없는 감격으로 가슴이 메어지도록 흥분되는 것을 가누기 어려웠던 일이 회상된다. 태평양전쟁이 종전이 되면서 아버지와 함께 귀국한 나는 새로 개교된 서울중학교 3학 년에 편입했고 언어 때문에 무척 힘든 학창생활을 보냈다. 한국어가 서투르던 나는 늘 발음에 조심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말수가 적은 소심한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다. 오로 지 공부에만 전력투구를 하던 시절이었기에 여행을 한다거나 친구끼리 어울러 놀 여유 가 없었다. 그래서 서울에서의 추억거리는 그리 많지 않다. 내 조그만 방에서 책과 씨름 하던 시절이다. 그러나 방학이 되면 외가가 있는 가평군 설악에 꼭 갔었고 그곳에서 나 또레의 외사촌 을 비롯한 친구들을 사귀어 소박한 ?냄새 짙은 교제를 하니 동창들보다도 더 진한 우정 을 맺기도 했다. 그들과 함께 개울에 천렵도 가고 산에 나무하러 다니기도 하면서 나무 아래 함께 누워서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콧노래를 부르기도 한 즐거운 추억이 있다. 외조부와 또 장차 처조부가 되실 할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지금의 처와 약혼 까지 맺게 되는 등 방학 때의 설악 나들이는 내게 많은 추억을 안겨준다. 그래서 설악은 외가가 있고 처가도 있어 오히려 내 고향이라고 할만한 곳이다. 대학 2학년의 어린 나이 에 지금의 처와 결혼을 했다. 조고마한 그 마을에서 우리의 결혼은 마을의 큰 잔치였다. 결혼하고 두 달 만에 6.25가 터졌다. 나는 아버지의 권고로 의용군을 피하여 처가에 피 신했다. 그래도 외사촌과 친구들이 있어 피난 생활은 그리 고달프지는 않았다. 이어 피 난 오신 어머니를 통하여 아버지가 폭격에 돌아가신 일이며 어머니가 흙더미 속에서 동내 사람들 도움으로 살아나신 일을 듣고 슬픔 속에서도 다행이라 여겼는데 어머니도 오래 사시지는 못하셨다. 그곳에서 9.28의 서울 탈환 소식을 들었다. 서울의 기억은 이 렇듯 슬픈 추억을 안겨 주었다. 1.4 후퇴로 부산 대구 등지를 전전하다가 군에 입대했고 17년간 전 후방을 전전하면서 군대라는 조직 안에서 통제된 나그네 생활을 했고 1968년도에 포항제철이 창설되면서 제대하고 포철에 입사하여 주로 포항에 정착했다. POSCO 퇴사 후에도 포항에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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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협력회사 임원으로 근무하는 등 포항에서 무려 24년간 살았다. 그리고 1992년도에 회사를 은퇴 후 서울에 온 지 오늘까지 벌써 19년이 흘렀다. 포항에서 사는 동안 직장의 부하직원 중에 독실한 기독교인이 있어 그의 전도로 교회 를 다니게 됐고 장로로 장립 받기까지에 이르렀으니 포항은 내게 기독교 신앙의 씨앗 을 심어 준 곳이고 나를 신앙인으로 양육해 준 귀한 곳이다. 직장생활에서의 추억보다 교회생활을 통한 추억이 더 진하고 그 때의 교회 집사님들과의 교제는 지금도 계속되 고 있다. 자, 내 고향은 어디일까? 해마다 설이나 추석에 고향을 찾는 많은 사람들로 교통이 대 혼잡을 이룬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이 학수고대하는 고향, 조상 묘들이 있어 함께 참배하는 고향. 스 스럼이 없는 가족들의 오랜만의 재회를 기뻐하는 웃음이 있는 고향. 이러한 고향을 사 모하는 정은 객지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언제나 짙은 애정으로 간직된다. 그런 모습들 이 내겐 먼 타국의 일처럼 아무 상관없는 영상으로 비추어진다. 더구나 설악에서 친했던 외사촌도 친구들도 다 가고 일본의 친구들도 하나 없이 다 떠 났다. 조카 집에서 형수가 아직 계시니 명절에는 찾아뵙고 하지만 형님이 안 계신 큰 집은 허 전하고 설렁한 느낌을 준다. 어차피 이 세상에 내가 사모하고 얼른 달려가고 싶은 고향은 없다. 어머니의 따뜻한 웃 음이 기다리는 아늑한 고향, 어린 때 천렵하고 장난치고 했던 친구들이 반기는 그런 고 향은 이제 없다. 이제는 오히려 우리 부부가 자녀와 손자들에게 그런 고향이 되어 주어 야 할 때인 것이다. 그들에게 따뜻하고 아늑한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의 향기를 맡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잔잔한 물소리같이 찬송이 들려온다.“돌아갈 고향은 주님의 나라, 주께서 예비한 주 님의 나라”라고. 내 진정 사모할 본향은 하늘나라라고 생각할 때 허전함도 사라진다. 정말 나의 고향은 주님이 계시는 하늘나라인 것이다. 찾아오는 자녀와 손자들에게도 우리를 통하여 이런 따뜻한 고향을 느껴주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찬송가를 켜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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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기독교유적지 답사에 동행한 강병은 집사(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Essay 고(故) 강병은 집사를 추모하며 ● 허성수 집사 | 본지 기자

강병은 집사, 그대가 벌써 그립습니다. 지난 1월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 을 들었을 때는 항암치료를 받고 생명을 연장 받아 당연히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뒤 들리는 소식은 어둡기만 했습니다. 문병을 다녀온 성도님들은 계속 상태가 안 좋 다고,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나도 한번 병문안 가서 위로를 드리고 싶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끝내 당신의 부고 를 받고 말았지요. 바로 그날 토요일이었지요. 2011년 2월 19일 오전 나는 이렇게 주말 오후 스케줄을 짜고 있었습니다. ‘오늘 오후에 일찌감치 건국대병원에 가야겠다. 강 집사를 만나 위로한 후 교회에 가서 반석의 밤을 준비하는 중고등부 아이들을 격려해야겠다. 그러고 나서 6시에 저녁식사 를 겸한 고등부 교사 월례회를 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전 10시 무렵 휴대폰으로 당신의 근황이 전달되어 온 것입 니다.‘강병은 집사 소천’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나중에 듣기로는 그날 새벽 2시 무렵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이제 나이 만 52세밖에 안됐는데, 한참 살 나이에 대학 에 다니거나 다닐 아이들 셋과 아내는 어떡하라고…. 그날 오후 나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건국대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진작 문병을 가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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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막 우정을 나눴어야 했는데, 뒤늦게 나의 게으름과 아픈 친구의 사정을 헤아릴 여유 를 갖지 못한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럽고 유가족들에게 죄송했습니다. 병원 빈소에 도착하니 낯이 익은 성도들이 벌써 여러 명 와 있었습니다. 검은 상복차림 의 세 남매가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문상객을 맞고 있더군요. 새 학기에 고등학교 2학 년에 올라가는 막내 진호는 두 누나들보다 키가 훨씬 커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맞상주 역할을 의젓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키가 제일 작은 큰딸 진실은 쉴새없이 쏟아지는 눈 물을 감추지 못한 채 초췌한 모습이 애처롭기만 했습니다. 갑자기 미망인이 된 민완기 집사님과 둘째 딸 진현이는 고인과의 이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지 냉정을 되찾은 모습으로 문상객들을 맞아 대접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주위의 성도님들을 통해 듣기로는 고인이 떠나기 전날 자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고 합니다. 강 집사는 힘이 없어 말할 수조차 없었지만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다 듣고 눈빛으로 의사표시를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떠나는 자나 보내는 가족들도 준비된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불행한 죽음은 죽는 날을 알지 못한 채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아 무 준비 없이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 아닐까요? 갑자기 교통사고나 천재지변에 의해서 세상을 떠나는 일인데, 얼마나 다반사로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강 집사님은 병상에서 건강할 때 충분히 읽지 못했던 성경을 많이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도 많이 가진 것으로 압니다. 그런 종을 부르셨으니 하나님은 그 영혼을 가장 기뻐하며 맞아주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태어난 순서대로 데려 가시지 않고 왜 더러는 일찍 부르시고 더러 는 장수의 축복을 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걱정 근심 없는 천국에서 일찍 안식 하게 하시기 위한 그 분의 계획이 있으시기 때문이라고 이해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각 생으로 맨 나중에 천국에 가는 것보다 일찍 하나님 곁에 가는 것이 고인에게는 더 큰 축 복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땅에 남겨진 가족과 다정한 벗들에게는 큰 슬픔을 주는 데 어떡합니까? 이제 그의 빈자리는 성도들이 채워야겠지요. 유족들을 돌아보고 위로 하며 사랑을 베푸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몫이 될 것입니다. 고인에 대해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날렵한 몸에 착 달라붙은 스포츠 웨어를 입고 짙은 선글라스를 낀 모습입니다. 못하는 운동이 없었던 그는 특히 인라인 스케이트를 좋아 했습니다. 한강 자전거도로를 서울 동쪽 끝부터 서쪽 끝까지 수십 km를 왕복할 만큼 거의 프로에 가까운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만 나면 운동 을 생활화하는 그가 늘 부러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에서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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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에게 열심히 전도하여 교회로 인도하는 등 세상 속에서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실 천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신앙도 좋았고 장립집사로 선택받은 종으로서 주일마 다 열심히 중등부 교사와 부장으로 섬겼습니다. 그렇게 체력이 좋았고 신실했던 그가 2년 전이었던가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고, 병 원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무서운 병을 발견했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그렇 게 빨리 갈 줄은 몰랐습니다. 생명을 훨씬 더 연장할 줄 알았는데…. 지난 해 5월 강 집사는 몸이 다소 좋아진 상태에서 하루 4남전도회 회원들과 같이 서해 안새만금까지 다녀오기도 했고, 여름철에는 2박3일 강화도에서 열린 서울시민교회 공 동체훈련에 같이 참여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공동체훈련 마지막 날 기관별 발표 회가 끝날 무렵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당신은 플루트 연주를 하겠다고 자청했지요. 교 회 문화교실에서 배운 실력이었지만 막상 무대에서 혼자 독주를 하기에는 역부족이었 습니다. 픽, 픽…, 하면서 쇳소리를 내기도 하고 틀린 음을 불거나 곡조가 끊기곤 했지 만 당신은 끝까지 더듬거리면서 연주를 했습니다. 당신이 선택한 찬송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사회를 본 최승현 집사님은 당신의 서툰 연주가 끝난 후 자신이 대학생 시 절 일찍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마지막 병상에서 즐겨 들으셨던 찬송가였다고 목 메인 소리로 말하며 당신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게 했지요. 당신은 얼마 남지 않은 자 신의 생명을 분명히 예견하고 있었기에 서툰 솜씨나마 마지막 송별인사를 미리 당겨서 모든 성도들에게 한 것이 아니었는지 지금 생각해 봅니다. 최승현 집사님의 아버지도 당신과 같은 나이에 그와 비슷한 병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일찍 떠나셨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 당신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뛰어난 운전실력이었 습니다. 같은 남전도회 회원으로서, 혹은 한때 중등부 교사로 같이 섬기면서 교회 승합 차로 이동할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당신은 운전을 자신의 일인 것처럼 거의 혼자서 도맡아 안전하게 일행들을 목적지까지 인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총알처럼 빠른 질주 본능도 당신의 특기였습니다. 특히 남전도회 회원들 가족 중에 장례가 빈번해 장거리 문상을 갈 때가 많았죠. 경상도 부산으로, 남해로, 영덕으로 그 먼 거리를 하루 밤 다녀 오는 일은 매우 벅차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들은 슬픔을 당한 유족의 빈소를 직접 찾아가서 위로하기 위해 야간 차량운행으로 땅 끝이라도 달려갔고 다음날 새벽에 돌아 와 출근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한속도를 지키기는 것이 사실 힘들었습니다. 당 신은 요령껏 속력을 냈고, 우리 일행은 당신의 특별한 은사를 신뢰했기에 편안하게 잠 도 자며 이른 아침 서울로 돌아오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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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VISIT 양화진 탐방

사실 당신은 서울시민교회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성도들의 경조사를 가장 성실하게 챙 기며 웃는 자와 함께 웃고 우는 자와 함께 울기를 즐겨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전국으로 앞장서 문상을 다니던 당신이 이제는 조용히 누워 성도들의 문상을 받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실에 나는 당신의 빈소에서 망연자실하게 앉아 슬픔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과 같은 분량의 세월을 살아온 저도 50의 문턱을 넘게 되니 벌써 갈 때가 되었나 싶 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친구의 부고를 접한 후부터는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 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 인지 새삼 깨닫고 매일매일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여, 이 땅에서 모든 아픔과 시름 이젠 잊어버리고 편히 쉬소서. 그리고 당신의 몫을 우리가 감당하겠소. 당신의 가족들도 우리 성도들이 함께 돌아보고 사랑할 것입니다. 홀로 서야 할 민 집사님도 힘내세요. 진실이, 진현이도 이젠 눈물을 그치고 주님 다시 오실 날 부활의 몸을 입고 올 아빠를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살기를 바랍니다. 특 히 진호 군, 고등부 예배에 잘 나와야 돼요.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면 천국에 계신 아빠 가 슬퍼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알겠죠?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을 찾아서

고통 속에 사랑이 있다 ● 이돌연 집사 | 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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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눈부시다. 매서운 추위는 여전하지만 역시 2월은 봄 이다. 누가 2월을 마음으로 느껴지는 봄이 라고 그랬던가. 묘원 입구에 서 있는 쫑긋 거리는 플라타너스 가지도, 비석에 떨어 지는 사금파리 같은 햇볕도 봄빛이 가득 하다. 쨍한 바람과 쨍한 하늘 사이에서 봄 을 몰고 오는 저 빛! 그래, 분명 그랬으리라. 100여 년 전 그들 이 조선 땅을 밟았을 때도 봄을 몰고 오는 저 환한 빛으로 희망의 땅 조선을 짐작했 으리라. 그들이 뿌린 사랑의 씨앗이 지금 이 땅에 떨어져 죽었으니 우리 지금 이렇 게 그들을 기리며 감사할 수 있지 않은가. 양화진은 우리 역사 속 흔적과 함께 그들 이 뿌려 놓은 사랑의 불씨를 확인하는 곳 이다. 조선말 고종 때부터 조선을 위해 공헌한 언론계, 교육계, 종교계, 외국인 인사들 500여명이 묻혀 있는 묘역을 돌아보며 100여 년 전 그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왜 가난한 땅, 조선을 찾아왔을까. 무엇 때문에, 어떤 꿈을 꾸며. 이국땅을 찾았을까, 이방인 눈에 비췬 조선은 어땠을까. 서양귀신 양귀 신이라 부르며 불신하는 조선인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느꼈을 절망을 생각해본다. 차마 코로 숨쉬기 힘든 악취들과 발 한번 디디 기 힘든 질퍽한 땅, 조선! 이름도, 위치도 모르던 그 작고 작은 나라에 몇 달을 걸쳐 배를 타고 일본과, 중국을 거쳐 조선이라 는 낮선 땅에 오신 선교사님들...모두들 하 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조선에 왔고, 하나님의 뜻대로 숨을 거둬 이 땅에 묻혔 다. 아니 그들은 죽어서도 이곳에 남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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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잔뜩 웅크리며 묘원을 돌아본다. 휑한 몸을 드러낸 나목들 사이로 이국적인 비석이 촘 촘히 자리하고 있다. 복음의 씨앗을 들고 꿈과 청춘 을, 열정과 결의를, 믿음과 사랑을 이 땅에 베풀고 잠 든 그들의 침묵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묘원들 사이로 길게 뻗은 가로수는 꺾이지 않고 옆으로 누워 푸른 잎을 간직하고 있다. 한강의 차가운 바람을 참고 견디며 푸르름을 빛낸 것이 마치 선교사님들이 세상 의 변방이던“Corea"에 복음의 빛을 나누기 위해 헌신 한 모습처럼. 한국의 암흑기였던 1900년 전후에 일본의 탄압 속에 억울한 민중의 눈과 귀 역할을 하기 위해“대한매일 신보”를 창간한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 "나는 웨 스트민스터성당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고 한 헐버트 박사의 묘비명을 보며 한 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그리운 고 향을 두고 낯선 타국 땅 양화진에 잠든 그의 숭고한 삶 앞에 새삼 머리를 조아 린다. 양화진에 최초로 묻힌 의료선교 사 J.W.헤론, 결핵 퇴치와 한국의 의료 선교를 위한 2대에 걸쳐 헌신한 홀가, 한국여성들이 복음 안에 새롭게 되기를 힘쓴 J.P.캠벨, 백정과 가난하고 억눌린 백성을 휘한 전도에 더 힘쓴 S.F 무어, 선교와 성경번역에 큰 공 헌을 한 선교사 W.D.레이놀즈, 한국선교의 개척자로 4대에 걸쳐 조선 기독교 대학(연세대학교)에서 헌신한 언더우드가 등 많은 선교사의 묘 원을 차례로 돌아본다. 유독 나의 맘을 뺏은 묘지들이 있다. 유아 때 사 망한 자녀들의 묘지다. 부모를 따라 이국땅에 왔으나 풍토병이나 알 수 없는 질병을 통해 하루만에...그리고 일주일 만에 두세 살 나이로 하늘나 라로 간 어린 영혼들! 사랑하는 자녀들이 죽어가는 슬픔을 겪으면서도 변방의 가난한 영혼들을 위한 그들의 헌신을 무엇으로 보답하며 답할 수 있겠는가. 어찌 후회가 없었으며 어찌 원망이 없었으랴. 그러나 그들은 이 땅을 져버리지 않았다. 끝까지 가난한 땅 조선을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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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차가운 바람과 쌩쌩 달려대는 자동차 행 렬을 뒤로 한 채 양화진홀 안으로 들어섰다. 제 일 먼저 마음에 새긴 글귀가 나를 반긴다. “하나님이 조선을 이처럼 사랑하사” 두 손 가득 말씀의 사명을 받아 들고 험난한 물 길을 건너 낯선 땅으로 찾아온 그들. 한국의 복 음화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선교사들의 신앙 과 고귀한 삶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무지한 조선의 백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한 글 성경번역을 하며 1910년“번역 다 되었소”라 고 전보를 치며 행복해 했을 선교사들, 이 복음 짐을 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말씀의 씨앗 을 뿌렸다. 병으로 죽어 가는 조선 백성들을 그 들의 의술로 고쳐 주기위해 병원도 세웠다. 무지 를 깨우기 위해 학교를 세우고 전국을 전도하는 선교사들의 사진 속 모습은 희생 속에서 피어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참으로 감동적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 는 연표로 보는 교회사, 한국 개신교 최초의 한 글 성경사본 등, 다양한 한국 교회 복음을 위해 수고 하신 선교사들의 사진들과 자료들 이 주제별로 다양하게 전시 되어 있는 것을 자세하게 보았다. 양화진 홀은 우리의 역사 와 복음의 시작을 공부 하게끔 만들어 놓은 곳이다. 선교기념관에서는 매주 목요일 저 녁 8시에 목요강좌도 열린다. 날로 심 각해지는 한국 사회의 계층, 세대, 빈 부, 성별, 이념 간의 갈등을 뛰어 넘어 어떻게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것 인가를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인사를 모시고 강좌를 연다고 한다. 아, 4월은 선교기념관이 문을 닫는다. 리모델링을 위해 잠시 닫는 것이다.

삶을 헌신해 불을 밝혔던 푸른 눈의 선교사들이 이 곳 양화진에 잠든 것은 너무도 의미심장한 일이 아 닐 수 없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온다. 홀 앞에 우뚝 서 있는 목련꽃망울이 부풀어 올랐다. 그 추위도 아랑곳 않고.

우리 근대사의 격랑이 소용돌이쳤던 곳 양화진, 암흑기의 이 땅에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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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VISIT 문화재 소개

로, 일본인에게는 `나라도 없는 주제에 골동품을 모으는 놈`으로 손가락질 받았다. 하 지만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ㆍ1906~1962)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문화민족이라고 당당히 밝힐 수 있다. 나라 잃은 설움에 빠져있던 시절, 간송은 일본으로 흘러갈 뻔한 귀한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전 재산을 쏟아 부었다.

간송미술관

● 편집실

탁자 위엔 탁자 위엔 고려청자 한 점이 놓여 있었다. 조그만 주둥이 밑으로 학 날 개처럼 우아하게 펼쳐진 어깨 선, 풍만한 가슴과 늘씬하게 흘러내린 하부의 선. 흰구름 넘실 떠다니고 수십 마리의 학이 날갯짓 하는 비췻빛 하늘. “2만원!”주인은 더 입을 열지 않았다. 살테면 사고 말테면 말고. 1935년이었으니 경성 에서 기와집 한 채가 1000원, 쌀 한 가마니가 16원 하던 시절이었다. 흥정은 사라지고 침묵만 흘렀다. 조선인 청년이 입을 열었다.“그렇게 하리다.” ‘식민지 애숭이가 설마 …’싶어 불렀는데, 낭패였다. 고려청자 최고의 명품으로 꼽히는‘청자상감운학문매 병’(국보 68호)은 이렇게 간송 전형필에게 넘어왔다. 간송은 장안의 유명한 갑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세창 선생의 영향으로 일본 와세다 대 법대를 졸업하자마자, 서울 관훈동에‘한남서림’을 세우고 우리 문화재 수집에 나 섰다. 추사의 글씨,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의 그림 등 조선 후기 진경시대 문화의 우수성과 고유성을 입증해준 작품들은 여기서 수집됐다.

위는 간송 전형필의 문화재 사들이기의 한 일화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 손으로 넘어간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 오는 데 평생을 바친 간송 전형필 선생, 그 당시 지식인이었던 간송 전형필은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 서 식민지 민족으로서 나라를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문화재 수집을 위해 노력한 그는 우리의 얼과 혼이 담긴 문화유산을 지켜내는데 혼신을 다한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거부들로부터 문화재를 되찾아오는 과정이 자랑스럽고 감동적이다. 그가 되찾은 문화재는 간송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다. 간송미술관은 성북구 성북동에 자리 잡고 있다. 1년에 두 차례 문을 연다. 5월 중순에 2 주간, 10월 중순에 2주간 무료로 개방한다. 그 기간이 아니면 관람할 수가 없다.

"아무리 저것들이 소중하다 해도 어떻게 공주에 있는 전답을 죄다 처분할 수 있느냐. 남들이 뭐라는 줄 아냐? 문전옥답 팔아 사금파리 사는 미친 사람이란다." 1937년 어느 날, 간송 전형필이 고려청자 수점을 인수한다며 공주의 5000석 전답을 팔아치우자 보 다 못한 어머니가 불호령을 내렸다. 서른 한 살의 간송은 어머니에게 한사코 이해를 구 했다. "어머님! 제가 하는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니 믿어 주십시요." 당시 간송은 영 국인 변호사 개스비가 수 십 년 동안 모은 청자를 처분한다고 하자 도쿄로 날아가 이를 서둘러 인수했다. 이런 처사는 조선인에게 `금싸라기 땅을 팔아 사기그릇을 사는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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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VISIT 남대문 패밀리

장 시 문 대 남 들,

! 가 인 사람 은 누구 그들

● 이강순 집사 | 본지 편집장

편집기획안은 분명히‘특집기사’였다. 막상 남대문시장에 가보니 생각과는 판이하다. 도무 지 처음 의도와의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어떡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짧은 만남, 방문만으로는 글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남대문시장 사람들, 그 일터가 주는 장 인 정신이 엄청난 에너지와 유서 깊은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은 빗나갔다. 영업시간이라 제대로 된 만남도 가질 수 없었으며 인터뷰는 거의 전무했다. 남대문 시장, 나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다. 결혼 후 서울에 올라와 채 한 달이 되기 전 남편과 함께 시티 트래블 중 한 곳이 남대문시장이었지만 특별한 기억 은 없다. 두 번째는 지난해 봄 조카랑 둘이서 남대문 시장을 방문했었고, 이번이 세 번째인 셈이다. 편집회 의 때 남대문시장을 선택한 것도 지난봄 방문이 마음 에 많이 남았고, 마침 교회 성도 중 남대문시장 상인 이 제법 된다는 소문도 들었던 터, 그 속에는 그들만 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 듯했다. 수많은 사람이 붐비 는 남대문시장, 발 디딜 틈이 없는 상가 내 좁은 통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집고 걸어 다니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 니었다. 그랬기에 그 속에서 만들어가는 그들만의 삶

과 철학은 남다를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일을 어 찌하랴. 신세계백화점에 주차해 놓고, 오 목사와 함께 한참을 헤매다 겨우 명희순 권사의 일터를 찾았다.‘오빌 사’이다. 귀금속 전문 명품 매장이다. 정확하게 말하 면 삼호 우주 명품관 82호이다. 82년도에 입주해 지금 껏 그곳을 지키고 있다. 일흔의 연세가 무색하리만큼 커리어우먼의 당당함이 역력했다. 그건 자부심이다. 일할 수 있다는,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이고, 삶에 대한 자신감이 내포된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만큼의 장사는 되지 않아요. 지금처럼 이리 힘들 면 자식들 공부 못 시켰죠.” 한 평 남짓한 매장, 매장과 매장 사이 그 좁은 공간에 간이용 의자를 두고 잠깐 마주 앉았다.“장사는 잘되세 요?”라는 나의 질문에 의한 명 권사의 짧은 답변이다. 그러니까 저 작은 공간에서 홀로 삼십여 년 한결같이 일하여 자식들 공부시키고, 삶을 일구고, 집안을 일구 고, 지금 이렇게 당당하게 살고 있다는 뜻일 게다. 오빌사는 성보사와 마주 보고 있다. 성보사는 김형 웅 장로의 매장이다. 매장에는 자부가 그 자리를 지키 고 있었다. 놀랍다. 명 권사의 말씀처럼 이곳에서 역사는 이뤄지 고 있었다니!! 쉬운 표현으로 저 작은 공간에서‘돈을 많이 벌어’집안을 일구고 반듯하게 삶을 세워나갔다 는 것이다. 처음 매장에 들어서며 나는 깜짝 놀랐다. 이 좁은 공간에서 이뤄진 일들이 놀라워서이고, 남대문시 장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하다니 하는 감탄이다. 그 작 은 공간이 그들을 키우고 삶을 살찌우고 당당하게 교 회를 세우며 버텨나간 모토가 되었다니!! 쉴 공간도 없 이 한 사람 겨우 앉을 수 있는 좁은 내부, 손님이 와도 여유롭게 차 한 잔 나눌 수 없는 그런 공간에서 이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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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의 맥이 새삼 놀라웠다. 남대문시장의 생리를 모르 던 나로선 엘레강스한 매장을 상상했다. 그러나 나의 상 상은 빗나갔다. 아, 유통시장의 메카 남대문시장이란 말 이 거저 나온 말은 아니구나. 이 좁은 공간에서도 유통의 핵심을 거칠 수 있구나. 유명세는 당연하였구나. 나의 상 상은 거기까지 미쳤다. 비단 나만의 생각일까? 명품매장에서 나와‘광원사’ 로 향했다. 중앙상가 C 동 지하 양품 70호가 이순림 집사가 운영하는 상가이다. 명품매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걷기만도 어려운 상황이다. 손님 네 댓 명이 집사님과 마주하고 있다. 손님들과 마주한 모습 을 보는 순간 아, 이건 아니구나, 얼마나 무모한 결정인 가, 싶었다. 그 순간, 이순림 집사와 눈이 마주쳤다. 이런 상황을 짐작도 못 하고 인터뷰를 하러 왔다니! 다시 오겠 다는 눈인사를 대신하고‘유미랑’ 으로 향했다. 물론 남대문의 생리와 지리를 잘 아는 권사님의 안내로 쉽게 찾아다닐 수 있었다. 유미랑은 대도상가 E동 지하 별 20 호이다. 오하영, 장수경 집사의 일터이다. 앞서 가는 권사 님과 목사님을 뒤쫓아 가는 것조차 나는 너무 힘겹다. 무 거운 카메라와 가방을 메고 그 많은 사람 틈을 비집고 나 가는 것에는 요령이 필요했다. 그러나 요령도 없이 무작 정 달려간 내 모습이 상상이 되는가. 이리 치이고 저리 치 이고…. 유미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앉을 자리도 공간도 없다. 엉 거주춤 서서 매장을 둘러보고 깊은 이야기는커녕 간단한 이야기조차 나눌 형편이 못됐다. 끊임없이 손님들은 매 장 앞을 오가고, 서 있는 동안도 오가는 사람들 때문에 이 리 걸리고 저리 치이고.

다.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몇 마디 나눴지만, 상황은 정리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계속 머릿속은‘이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만 가득하니 그 어떤 이야기도 저장되지 않았다. 점심을 마치고 광원사로 다시 행했다. 상황은 조금 나았지만, 매장 앞 에 서서 조용조용 기도만 하고 돌아 나왔다. 광원사는 가방과 핸드백을 주로 판매하고 있다. 만 남았 이제 남대문시장 마지막 방문 장소, 김덕현 집사의 일터인‘실버프렌즈’ 다. 오빌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 있으니 청년 같은 스마트한 외모를 지닌 김 집사 환하게 웃으며 들어선다. 곧바로 일어나 북창동 강남빌딩 3층으로 향했다. 실버프렌즈 는 전통 공예품을 만드는 작은 공장이다. 직원 대여섯 명이 수작업으로 공정에 따라 열 심히 갈고 닦고 있었다. 궁금함에 여기저기 공정마다 유심히 구경은 했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할 뿐 어떤 질문도 던질 수 없었다. 뭘 알아야 궁금한 것도 생길 것이 아닌가. 김 집사는 공예에 대해 특별히 배운 적은 없지만, 순전히 눈썰미로 보석과 은제품 등 공 예품 디자인을 20여 년 해오고 있다고 했다. 어렵고 힘든 고비도 넘겼고, 올해 목표를 향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김 집사, 번뜩이는 눈 속에 포부가 대단했다. 인사동 장인 들이 만들던 공예를 실버 프렌즈가 새롭게 디자인해 작년에 드라마 선덕여왕에 협찬했 다는 이야기, 현재 CJ 카탈로그에 입점했다는 이야기, 중국 태국시장을 넘어 유럽 미주 시장까지 꿈꾸고 있다는 이야기 등등을 들으며 잠깐의 여유를 누렸다. 미안하다. 거창하게 탐방 인터뷰를 하겠노라 해놓고, 정작 제대로 된 그들의 에너지를 표현하지 못해 그렇고, 깊이 있는 남대문시장만의 이야기를 펼칠 수 없어 아쉽고 안타 깝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들만의 유서 깊은 이야기는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짐작만 할 뿐이다. 삼십 여년 쌓아올린 그들만의 역사를.

짐작만으로 글을 마무리 지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 다. 오하영 집사와 함께 근처 식당으로 갔다. 점심시간 식 당도 분주했다. 겨우 우리 네 사람이 앉을만한 자리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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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MISSION 단기선교

말레이시아

너를 이방의 으로 삼아 ... ● 홍준기 | 디모데 청년회

지난 1월 28일부터 2월 19일까지“이방의 빛”이라는 신앙 훈련 프로그램 을 통해 말레이시아 및 인도네시아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이방의 빛”은“...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라는 이 사야서 49장 6절 말씀을 바탕으로 한국인 청년들을 하나님의 자녀, 사랑의 전도자, 지 혜로운 용사로 헌신하게 하고 차세대의 지도자로서 지역교회를 건설하고 하나님의 나 라를 확장하는데 섬기도록 하는데 존재목적을 둔 청년 리더 훈련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여름에 다녀왔던 미국훈련과는 조금 다르게, 이번 겨울 훈련 은 선교의 최전선에서 여러 가지 사역과 현지의 상황들을 볼 수 있는 선교적 성격이 짙 은 훈련이었습니다. 훈련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신명기 29장 2절~4절 말씀을 주셨 는데, 그 말씀인 즉, 우리가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들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 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시지 않으면 모든 게 허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마음에 품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이 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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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첫 번째 종착지는 말레이시아였습니다. 제가 이전에 상상하던 말레이시아의 모 습은 동남아의 가난한 작은 나라라고 생각했었는데,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세계에서 서구화지수가 열손가락 안에 드는 이 나라에는 수많은 고층빌딩들과 외제차들이 자유 롭게 다니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과 문화, 종교가 공존하는 신비롭고 독특한 곳이었습니다. 내 예상을 보기좋게 빗나간 말레이시아의 다양한 요소들이 빚어 내는 매력적인 모습들은 저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와중에 문득, 마태 복음 11장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듯이, 광야에 나간 것 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기 위함이 아니요,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들을 보기 위한 것도 아니요, 선지자를 보러간 것이라는 말씀처럼 내가 이 말레이시아 땅에 온 것이 관 광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선교적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메마 른 땅에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기 위해 온 것임을 다시 한 번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매력적인 모습 이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구석들이 많았습니다. 말 레이시아는 세계에서 제일 열심히 이슬람을 전파하는 국가입니다. 이미 정부관료 및 사회지도층의 절대다수가 이슬람신도 이며, 비 이슬람신도일 경우 일정계층 이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사회시스템을 구축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정부 체제 나 법률 등 사회전반적인 부분들이 이슬람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실상 무 슬림이 아닌 이상 엄청난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더욱 이 중국화교들의 경제장악으로 인하여 실시된 말레이우대정책(부미푸트라)은 이러한 현상을 고착화시키고 있습니다.(※화교들의 경제장악으로 인하여 발생한 중국인탄압 폭동으로 인하여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우대정책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 우대정책 으로 인하여 말레이를 제외한 다른 인종들{인도계, 중국계, 오랑아슬리(원주민) 등등} 의 사회진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 되었다. 중요한 것은 말레이종족 같은 경우 태어나자마자 종교가 이슬람으로 정해지고, 개종하 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major종족인 말레이에 대한 복음 전 도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이러한 것들을 단속하는 종교경찰들 또한 활발한 움직 임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실들을 직접 경험해 보고, 그곳에 계신 분들께 직접 들으면서 참 많이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암담한 현실 가운데서도 조용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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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말씀과 비전으로 세우신 선교사님들을 통하여서 또 한 번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 셨습니다. 저희가 먼저 들렀던 페낭에서는 이 경근 선교사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이미 그 곳에서 오래전부터 사역을 하고 계셨던 선교사님께서는 주로 훈련사역과 빈민사역 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희가 주로 동참했던 사역은 빈민사역 이었는데, 그 지역의 고아 원과 지역교회에서의 봉사였습니다. 준비한 찬양과 율동, worship, 메시지를 담은 드라 마, 페이스페인팅, 풍선아트 등으로 아이들 을 섬겼습니다. 너무나 착하고 맑은 아이들 의 웃음을 보면서, 말씀을 들을 때에 초롱초 롱한 눈빛을 보면서 제가 오히려 위로받고 은혜를 받는 시간들이 되었습니다. 그런 아 이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에 품으며‘이 아이 들의 이 땅에 희망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되 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의 또 다른 일정들은 정탐훈 련 이었습니다. 페낭에 있는 조지타운과 박 종승 선교사님께서 계시는 쿠알라룸푸르의 시가지들을 조를 나누어 정탐하는 훈련이었습니다. 주어진 예산으로 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현지인들을 만나서 인터뷰도 해보고, 시장에서 서민들이 먹는 음식도 사먹 어 보고 하는 즐거운 일정이었습니다. 정탐훈련을 하면서 말레이시아의 독특한 문화들 도 느낄 수 있었지만 그 곳의 아픔들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이외에 헛된 우상들을 섬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더욱 절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흰두교와 이슬 람등 많은 이방의 우상들이 시내 곳곳에 위치해 있었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신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의미도 갖지 못하며 그냥 맹목적으로 섬기고 있었습니 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을 위해 많은 기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또 한편 으로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더욱 충만하여야 겠고, 그러기 위하여 부단 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정탐훈련을 다니면서 그 곳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아픔을 이해하며 이 땅에 대한 선교의 마음을 품고 말레이시아 일정을 마쳤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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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에서의 일정은 너무나도 즐겁고 유쾌했습니다. 바로“빠 홍”과“빠 킴”이 저 희 일행과 함께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어로“빠”는 Mr.를 뜻합니다. 즉 미스 터 홍과 미스터 킴이란 뜻이지요. 바로 인도네시아 말랑이라는 지역에서 사역하시는 홍 영화 선교사님과 김 재룔 선교사님이 십니다. 두 분은 말랑에 세워진 살렘신학교에서 교수진으로 계시면서 또한 여러 미전도종족 및 지역교회를 돕는 사역을 하시는 아주 귀 한 분들이십니다. 특히 홍 영화 선교사님께서는 살렘신학교 초창기부터 함께 시작하셔 서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함께 하시는 살렘신학교의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은 분이 십니다. 아무튼 이 두 선교사님들이 어찌나 재밌으시고 유쾌하시던지 두 분 덕에 빡빡 하고 힘든 일정가운데서도 즐겁게 웃 으며 훈련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와 바로 인접 한 국가이지만 말레이시아와는 너무나 다른 국가였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와 일본을 보는 듯 하였습니다. 서구화 율 이 높고 문호가 많이 개방되어 있는 말 레이시아와는 달리 인도네시아는 상당 히 닫혀있는 국가였습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말레이시아에 비해서는 더 보수적이고 고정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국가이념상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 지만 세계최대의 이슬람국가로서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이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 적 대적이고 배타적인 면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가운데서도 하나님 께서는 지혜로운 방법으로 일하고 계셨습니다. 바로‘교육’을 통해서입니다. 두 선교 사님께서 사역하시는 살렘신학교를 통하여 인도네시아 청년들을 말씀으로 훈련시키 시고 다른 지역의 목회자로 파송하여 또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효율적인 사역이었습 니다. 또한 지역의 기독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나 사람들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인도네시아에서 금기시되는 부분들이지만, 학교를 통하여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교육적인 의미가 있다하여 침해받 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말랑지역에 있는“와길 유치원”과 “와길 중학교”에서 어린이 사역과 바닥 보수 공사를 하였습니다. 더운 날 바닥공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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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힘들기도 하였지만 그 일을 통해 마을 주민들에게 크리스천의 좋은 이미지를 보였고 조금이나마 마음 문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떵그르족 이라는 미전도 종족 마을에서의 홈스테이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해발 2000m 이상 되는 고지대에서 살고 있는 떵그르족은 인구의 대부분이 힌두교를 믿 고 있습니다. 40만명 가량되는 종족 중 약 140여명 가량만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제가 계산을 해보니 약 0.035%가량 되더군요. 하지만 이렇게 복음이 황량한 곳에서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복음이 전파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곳에서 과연 어떤 식으로 예배를 드릴지 걱 정이 되기도 하였는데, 구역예배는 물론 가정예배도 드 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배 중에도 함께 찬 양하며 기도드리는 모습들이 어찌나 은혜롭던지 오히려 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믿음생활을 하시는 분들의 신앙생활과 저의 신앙생활을 생각해보니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 니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 가면서까지 하나님을 진정으 로 예배하고 찬양하는 모습에 비해 세상적인 것 앞에서 자주 넘어지고 안일했던 저의 모습을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시간에 저희와 함께 동행 하셨던 유 영업 목사님(現 샘물기독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전하신 말씀 중“.. 지금 이 시간 한국에서도 4만 여개의 교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 예배만큼이나 이 응아디 오노교회(떵그르족교회 이름입니다.)의 예배를 기뻐하 실 것입니다..”고 하신 부분이 아직도 감명 깊게 남아있 습니다. 떵그르족 홈스테이를 마치고 저희일행은 발리로 이동 하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발리라고 하면 유명한 관광지 라고 알고 계시지만, 실제로 발리에는 많은 빈민촌이 존재합니다. 주로 관광을 가신 분 들은 호화호텔이 자리잡은 Beach쪽으로 많이 가시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골목골목마 다 빈민촌들이 즐비한 곳이 또한 발리라는 곳입니다. 조금만 움직이면 호화로운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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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몇 백, 몇 천 달러씩 사용하고 가는 관광객들을 볼 수 있는 그 곳의 상대적 박탈감은 실로 엄청날 테지요. 아무튼 저희가 주로 사역을 하게 된 곳 또한 발리의 한 작은 빈민 촌이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오선희 집사님이라는 분이 사역을 하고 계신 곳이었는데 요. 그분의 삶속에서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시고 난 이후로 몸이 가만히 있는 것을 견 디기가 어려워 직접 빈민촌을 찾아가 아픈 사람들을 돌봐주시고 복음을 전하셨다고 합 니다. 물론 저희와 동행하셨던 홍 영화 선교사님께서도 집사님을 많이 도와주셨다고 하시더라구요. 두 분의 헌신적인 섬김으로 인해 그 빈민촌에는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 작했습니다. 원래 그 빈민촌은 너무 가난해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몸을 팔아 생계를 이 어나가는 허름한 창녀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집사님과 선교사님 두 분의 섬김과 기도가 5,6년간 지속되자 창녀촌이 사 라지고 당시 그 창녀촌 포주의 차고에 작은 예배당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인지 모르겠습 니다. 직접 본 일들이 아니었지만 옆 에서 듣는 간증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오르고 아멘소리가 절로 나오는 기적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아니시면 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습니 다. 그 교회의 이름은 베데스다교회 였습니다. 저희가 베델교회를 찾아간 그날 때마침 집사님과 동역하시는 한 자매님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하도 해주 고 맛있는 밥도 얻어먹었습니다. 저희가 본격적인 사역을 진행한 곳은 베데스다교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베델 교회라는 곳이었습니다. 그 곳 또한 집사님께서 사역하고 계신 빈민촌 내에 위치한 아 주 작은 교회였습니다. 저희는 그 곳에서 바닥공사 및 도로포장공사를 도왔습니다. 날 씨도 매우 덥고 일도 고되었지만 그 곳에 함께 계신 성도님들과 힘을 합쳐 교회를 건설 하는 일이 너무나도 신이 나고 좋았습니다. 비록 말한마디 통하지 않는 분들이었지만, 오고 가는 눈빛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응원해 주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서로 다르 지만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은 한분이심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잠깐 시간이 날때에는 그 곳의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찬양도 하고 했었는데, 어딜 가든 마찬가지 지만 이 아이들이 이 땅의 희망이라고 느꼈습니다. 가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하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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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하고 맑게 웃는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그렇 게 베델교회에서의 며칠간의 사역을 마치고 저희는 약간의 휴식 후에 한국으로 돌아옴 으로써 이번 선교훈련의 일정을 마쳤습니다. 23박 24일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하나님은 참 많은 것을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받은 은혜를 모두 정리하기도 전에 저희는 또 한 번 하나님 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실은 저희가 머물렀던 떵그르족 마을에 있던 응아디 오노교회가 어려움에 처해 있었습니다. 상황인 즉슨, 원래 응아디오노교회가 지어질 때 교회부지가 한 성도님께서 기부해주신 것이었는데, 그 성도님의 건강이 너무 악화 되셔서 수술을 받으셔야 하는데 재정이 부족한 관계로 그 교회부지주변의 땅을 팔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가까스로 교회가 있는 그 땅은 지킬 수 있지만, 교회주변의 땅 이 회교도들이나 힌두교인들에게 넘어간다면 교회가 어려운 일에 처할 것임은 불을 보 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어려움을 두고 저희 이방의 빛 10기 훈련생들과 저희를 인도해 주신 유 영업 목사님 내외분은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이방의 빛 훈련원장으로 계신 허 세은 목사님께 이 어려움을 전해 드렸습니다. 소식이 전해지 기가 무섭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허세은 목사님께서 담임목사님으로 계신 마산 성막교회의 제자반을 수료하신 성도님들께서 선교지에 작은 교회가 세워지면 그 것을 돕기 위하여 모금을 하신 헌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약 530만원 정도의 금액이었 습니다. 실제로 응아디오노교회에 필요한 금액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700만원 정도 였 는데 그 중 많은 부분이 이미 채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다음에 일 어났습니다. 저희가 한국에 귀국한 날, 이방의 빛 10주년 기념대회가 계획되어 있었습 니다. 그동안 이 훈련을 거쳐갔던 1기부터 10기 까지의 수료생들이 함께모여 자신들의 삶을 나누고 함께 식사하며 교재하는 아주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10주년 기념대 회때 이 응아디아노교회를 위해 헌금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모인 금액 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정확하게 170만원 + 100달러가 모였습니다. 성막교회 성도분들 께서 준비하신 530만원에 기념대회 헌금을 합친다면... 정확히 700만원 + 100 달러.. 정 말 소름끼치도록 치밀하게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준비된 재정으로 응아디오노교회는 지켜질 수 있었습니다.

든 것을 주께 드리는 삶, 말씀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그 분들의 삶속에 어려움들 또한 많았지만 그 분들의 사역하시는 모습에서 표정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것은 평안함과 감사함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께 나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온전히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훈련이 끝난지도 벌써 2주가량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인 것 을 알고 있습니다. 훈련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고 느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어떻게 내 삶속에 녹여 내느냐 인 것 같습니다.“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라는 고린도후 서 4장 10절 말씀처럼 예수님의 죽음, 그 사랑을 기억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이방의 빛”이 되어 널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사는 제가 되기를 결단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Trima Kasih, Tuhan Memberkati! (Thank you, God Bless you!)

정말 이번 단기선교 훈련은 하나님의 기적이 함께한 훈련이었습니다. 저희가 다녀갔던 한 교회에는 이런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참된 순종이 있는 곳에 하나님 의 기적이 있다.”맞습니다. 저희가 다녀간 곳, 그 곳에는 항상 하나님 앞에 참되게 순종된 사람들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자신들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닌 오직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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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NEXT GENERATION

하나님이 진짜 계시겠어?

Q.T의 생활화 ● 김종현 | 고등부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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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예빈 | 고등부 (1학년)

저는 김종현입니다. 저는 이번에 고등학교를 올라가는데요. 제가 교회에 나온지는 8

어느덧 열일곱 살이 되어 고등부에 올라왔다. 다른 장소, 처음 뵙는 선생님, 2.3학

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여러분께, 제가 만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나왔습니다. 저는 처음에 교회 나올 때 솔직히‘하나님이 진짜 계시겠어?’라는 마음으로 나왔습니 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내가 이 행동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좋아하실까? 양 심의 가책이 들기도 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소홀해진 것 같으면‘아, 요즘 내가 왜 이러지’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진짜 하나님을 믿게 된 계기는 정말 힘들고 지칠 때 아무에게도 의지하지 못할 때 하나님만이 제게 의지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나와 있는 분들 만큼은 아니어도 제 가 힘든 일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회개하면서 흘리는 눈물이 진심어린 눈물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이렇게 눈물 흘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이렇게 못난 내가 이런 영광스런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해 선다는 것도 감사합니다. 지금 이 말을 하면서 생각해보면 진규를 만나 교회에 온 것 그리고 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전에는 전혀 없었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점점 쌓여가고, 이렇게 멋진‘반석의 밤’에 참여 할 수 있게 해주신 것, 이 자릴 빌어서 진지하게 이런 얘기 하시게 하신 것 생각하면 하나님이 저에게 해주신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너무 감사합니다. 혹시 친구 따라서 하나님에 대해 잘 믿지 않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어서 꼭 한번 속는 셈 치고라도 나와 보세요. 지금 이 자리가 나중에 얼마나 감사한 자리인지 확실히 알게 되실 겁니다. 아직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고 생각되어서 이런 자리에 내가 나가도 될까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께서 주신 자리라고 생각하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가 아직 한없이 부족한거 잘 압니 다. 아니, 여기 앉아있는 중ㆍ고등부 모두가 다 부족한걸 압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부족 한 것이 있으면 채워주시고 많이 아껴주세요. 감사합니다.

년 언니 오빠들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중등부와는 사뭇 다른 모습들에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할지 걱정도 되었다. 모태신앙이라는 단어를 품고 교회를 다니 는 나였지만, 그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믿음의 크기는 겨우 작은 씨앗에 불과했다. 그런 내게 고등부는‘큐티’라는 기회를 던져줬다. 그럼으로 인해 큐티하는 것이 하루 의 일과가 되기 시작했다. 매일 한 구절의 말씀도 읽지 않으며 지내온 내가 그날그날 주 어진 말씀을 보고 기도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성경말씀이 완전하 게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이해하려 했고, 때론 무거운 눈꺼풀을 위로 치켜뜨며 몰려오 는 잠을 참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말씀 묵상은 나에게 새로운 습관으로 자리 잡 았다. 큐티 책을 읽고, 보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잘못 된 습관들을 고치지 못했고, 나쁜 말 쓰기를 고치지 못했고, 옳지 못한 행동들을 행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내가 큐티를 함에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점은 내가 말씀 을 삶에 적용시키려고 하루하루 노력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내게 무엇을 얘기하려 하시는지, 내가 오늘 하루 주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지냈는지, 오늘이 아닌 내일의 나는 어떻게 지내야 할지 생각하게 하신다. 비록 오랜 시간 동안 큐티를 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내 가 계속 큐티를 하고 주님께 기도한다면 언젠가 하나님의 계획대로 좋은 쓰임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큐티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항상 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이런 마음가짐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큐티를 접해보지 못한 친구들도 큐티를 통해 하나님께 한 발짝 다가 갈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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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자비안 나이트’를 읽고

● 최예찬 | 초등2부(6학년)

이 책은 내 첫 번째 신앙서적이자 첫 번째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재미있었

최근에

김강숙 집사님께서 사 주신‘족자비안 나이트'를 읽었다. 손창남 선교사님

던 이야기는 손창남 선교사님이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도중에 딸이 요즘은 대학생

이 족자카르타에서 직접 사역을 하시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쓰신 책이다.

들 데리고 와서 성경 공부 하지 않느냐고, 우리 너무 노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는 내용이

족자카르타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도시이다. 그곳은 아직 복음이 많이 전파되지 않은

었다. 그리고 각 나라사람들이 라면을 자기 방식대로 끓이는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전

곳인데 여러 선교사님들이 거기서 사역하신다고 한다. 영화'미션'을 보면서도 느꼈던

체적인 글의 내용 중에 이렇게 웃긴 이야기가 많이 있어서 긴장하지 않고 책을 읽을 수

것이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힘들고 때론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선교사님을 보

있었다.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배운 것은 기도와 인내심이다. 선교사님은 늘 간절

면 자랑스럽다.손창남 선교사님은 선교 사업을 하러 가시기 전에 대학교수라는 안정된

히 기도하며 계속해서 주님 앞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직장과 아파트, 신용카드 등 한국에서의 모든 익숙한 것을 정리하고, 하나님께만 의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점은 선교사의 길은 정말 힘들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하여 족자카르타로 나아간다. 기도하며 기다려서 하나님의 응답을 얻고 사역을 시작한

모든 고생을 보상해줄 순간들이 꼭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옆에 있는 누가

다. 거기서 '파자르'라는 사람을 처음으로 영접시켰다.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님께 시내

와 함께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에 있는 학교의 한 교실을 예비시켜 주셨다. 선교사님은 거기서 죠이(JOY) 사역을 시작 하셨다. 처음에는 인원도 적고 참여도도 낮았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그에 따른 장소 등도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다. 여기 서 나는 그저 기도하면 다 되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책을 점점 읽어가면 서 하나님께서는 진실된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죠이 모임 회 원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하나님을 진실로 영접하는걸 보니, 나도 예배시간에 진실 하게 열심히 참여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까지의 내 모습으로는 자신이 없지만, 앞으로는 열심히 예배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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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 작은 예배는 지금 생방송 中 ● 백운길 집사 | 본지 기자

“하나님의 말씀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지요. 늘 죄를 깨닫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며 옳은 길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시간을 간절히 사모합니다.”-바이블키(구약2)“말씀을 나누면서 나와 다른 생각과 깨달음, 느낌을 알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시간이 짧아 충분히 나누지 못하는 것과 궁금한 것들을 물어 볼 시간이 없어 아쉽답니다.”-바이블키(구약1)“신약 각권의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의미를 쉽게 가르쳐주시려고 열정을 쏟으시는 안 목사님께 감사드려요. 성경에 기록된 것들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의를 따라가지 못해 조금 안타깝지만 즐겁게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어 성경이 읽어지네(신약)-

2011년 서울시민교회는‘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라는 구호를 외치며 출 발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담을 새 부대로 거듭나기를 소 망하며 시도한 두 가지 큰 변화는 예배 패러다임의 전환과 전도회의 재구성이다. 기존의 오전・오후 예배 형식을 대예배와 작은예배로 나눈 것은 특정 시간대에 예배인 원이 쏠리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개개인의 관심을 따라 말씀의 토대 위 에 배우고 훈련하며 서로의 신앙과 삶을 나누는 작은 예배를 통해 대예배를 더욱 풍성 케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변화에 앞서 당연히 저항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었을 때 23개 강좌에 400명 이상의 성도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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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의 다짐과 열심이 식어지게 마련이지만 극소수를 제외한 400여 명의 성도들이 진지하고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흠뻑 빠져 갓 입학한 초등학생 같은 표정으로 강좌에 참여하고 있다. 몇몇 강좌에 인원이 몰리는 것이나 교역자 중심의 강 좌 진행, 짧은 시간 등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함께 고민하고 하나씩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어 간다면 그 모든 과정이 모든 성도들을 한 단계 성장시 키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어느새 작은예배가 출발한 지 3개월이 흘러 2학기가 시작되었다. 봄을 맞아 피어오르 는 꽃처럼 움츠린 몸과 마음에 기지개를 펴고 믿음의 근력을 다시금 키워가야 할 때다. 헌 부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하나님 은혜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 새 부대로 더 큰 은혜 를 경험하고 나누기 원한다. 여전히 핑계거리를 찾아 광야를 헤매고 있는 여러분들, 모 두 신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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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탁구 동아리에 대해 ● 이응천 집사 | 고넬료 1

누구나 사람은 건강을 생각한다. 그래서 운동을 하고 때로는 보약을 먹고 각자의 맞는 활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더 건강해지려고 노력한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 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 계획을 짜고 시간을 투자하고...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교회에서 동아리 활동을 한다는 소식에 난 정말 좋았다. 왜냐면 내가 좋아 하는 탁구 동아리도 있다는 것이다. 잘은 못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운동이기에 당연 히 신청을 했고 인원이 모집이 되어 토요일마다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신기 한 것은 운동이 힘들 것이란 생각을 매주 하면서도 한주도 빠짐없이 계속해서 참석하 게 된다. 힘들지만 같이 운동할 수 있는 분들이 있기에 더더욱 힘이 생기고 활기가 넘친 다. 만나면 반갑고 운동을 시작하면 누구나 열심히 하 고 지루함이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토요일이 너 무 기다려진다. 더 놀라운 것은 몇 달 전인가? 아침에도 항상 운동하는 분들이 생긴 것이다. 운동으로 시작한 몸은 하루하루가 더 생기가 있고 활동적이라고 한다. 작년 11월엔 기관별 대회까지 잘 치르고 난 다음 탁구 를 배우려고 하는 분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기 때문 에 앞으로도 더욱 기대가되고 또한 흥분이 된다. 더 좋 은 점은 부부가 함께 동아리에 참석해서 같이 운동하고 또 도와주며 사랑이 더욱 깊어 지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제 우리 동아리는 아마도 계속 번성할 것 같다. 등록 인원만 현 재 20여명을 넘기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참석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 간에 교재와 관계가 더더욱 가까워지고 또한 어려움이 있으면 서로 기도하는 중보에 동아리가 되고 어색한 관계가 회복되고 사랑이 풍성한 동아리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따뜻한 봄이 시 작되는 계절이 되었다. 몸은 나른하고 피곤한 계절이 되지만 우리 동아리 회원들은 더 더욱 열심히 동아리 모임에 참석할 것이다. 탁구에 관심 있는 분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초보자들과 더 실력을 키우고 싶어 하는 분들을 위해 레슨 강사가 매주 와서 지도 도 해주고 있다. 우리 시민교회가 이런 동아리 모임을 통해서 더 많은 성도가 하나님을 만나고 성도간의 교재가 깊은 관계가 되기를 바라며 성도님들의 가정의 행복과 평화가 그리고 하나님의 관섭하시길 영원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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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 ‘동행’

농어촌 지역을 돕기 위한 일일찻집

● 이나빌래 자매 | 본지 기자

“오늘은 팀별 모임 후 6시 30분에 5층에서 모이겠습니다.”“스토어팀은 오늘 6시 30분 에 신관 5층으로 와주세요.” ‘동행’을 앞둔 청년부 광고 시간에는 팀별 모임 후‘동행’의 맡은 팀별로 다시 모이자 는 광고이다. 3월 26일로 예정된‘동행’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주일 오후 6시 30분. 교회 5층에는‘동행’의 각 팀별 모임이 한창이다. 칠판을 동원하며 설명하고 여러 사업을 논의하는 스토어팀, 악보를 들고 각 파트별 연습에 집중한 합창 팀,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맺을지 머리를 맞대고 있는 꽁트팀……. 맡은 팀의 특성에 따라 준비도 제각각 열심이다. 청년들이 각자의 은사대로, 부르신 곳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 로 섬기고 있지만,‘농어촌 지역’을 돕기 위한‘동행’이라는 마음은 동일하다. 어찌 보 면‘동행’이 매년 진행되는 청년부의 큰 행사일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러한 이유로 청 년들이 움직이진 않을 것이다. 청년들을 움직이게 하시는 오직 하나의 동기이신 하나 님! 주님으로 인해 청년들이‘동행’을 기쁨으로 섬기게 된다는 당연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매년 청년부에서 준비하여 전교인이 참여하는‘동행’. 수익금의 전액을 지역아동 돕 기, 선교 헌금 등에 사용된다. 올해‘동행’의 초점은‘농어촌 지역’으로, 구제역이 불어 닥친 힘든 농어촌 지역을 돕기 위한 취지로써 수익금은 구제역을 당한 농어촌 지역 및 농어촌 미자립교회 지원 등에 쓰이게 된다. 드디어 3월 26일 토요일. 농어촌 지역을 돕기 위한 일일찻집‘동행’이 시작되었다. 맛 있는 음료와 샌드위치 등으로 이루어지는 카페와 유익한 책과 예쁜 액세서리,‘동행’ 로고가 새겨진 기념 우산 등이 판매되는 여러 스토어들 및 초빙 공연과 청년들이 열심 히 연습하여 올리는 공연 등……. “2번 테이블에 풍년 세트 하나요.” “핫케익 두 개, 유자차 두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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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님들이‘동행’을 방문하면서 청년들의 손길, 발길은 바빠졌다. 아이들부터 시작하 여 어른들에 이르기까지‘동행’을 통해 농어촌을 돕기 위한 마음들이 모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동행’을 준비하는 시간이 넉넉지 않았고 서빙과 공연을 함께 섬기는 청 년들이 있는 등 자칫하면 일로 느껴지고 지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빙과 주방, 스토어가 아무리 바빠도‘동행’에 모인 청년들과 성도님들의 표정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우리를 기쁘게 섬기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리라. 꽃피는 3월……. 봄을 알리는 3월에 다시금 우리 마음에 사랑을 지피는‘동행’. 눈에 보이는 섬김의 손길보다 더 크게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2011년‘동행’을 통해 어떻게 역사하실지 기대가 된다. 특히 청년들을 하나님 나라 확장에 사용하실 것에 감 사하며 기뻐하며 기대한다. 올해‘동행’이‘농어촌 지역과의 동행’의 의미와 함께‘하 나님과의 동행’으로의 의미가 더욱 커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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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ISSUE 최영석 장로, 고신언론사 사장 취임

60대,기독언론인으로 새로운 시작 ● 허성수 집사 | 본지 기자

우리 교회

최영석 장로가 고신언론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지난 2월 25일 서초동 우리 교단(고신) 총회회관 강당에서 고신언론사 사장 이취임식 이 거행됐는데, 총회장 윤현주 목사를 비롯해 많은 내빈들과 우리 서울시민교회 성도 들이 참석해 취임하는 최영석 장로를 축하했다. 총회 유지재단 서기 배기웅 목사의 사회로 시작된 이취임예배에서 최 장로와 함께 교 회를 섬기는 서울시민교회 장로들이 모두 나와‘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이라는 찬송으 로 특송을 했다. 이어서 총회장 윤현주 목사가‘마지막 고백’(딤후 4:6~8)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했다. 윤 목사는“믿음 의 사람이 하는 마지막 고백은 언제나 희망차고 소 망이 넘쳤다”며 퇴임하는 임성하 장로에게“바울 처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격려한 후 새 로 취임하는 최영석 장로에게도“영적으로 선한 싸 움을 싸우고 퇴임하는 날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마 지막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임성하 장로는 이임사에서“고신언론사 사장에 취 임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이 지나갔다”며“은퇴한 후에도 고신언론사의 발전을 위해 돕겠다”고 다짐했다. 최영석 장로는 취임사를 통해“저에게 직분을 맡겨주신 분은 하나님”이라며“아무도 내가 사장이 될 줄 몰랐고 확률적으로도 매우 어려웠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자 리에 서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또한 전임 임성하 장로에게 6년간의 노고를 격려한 후 “정직과 열정을 토대로 삼아 직원들과 독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일하겠다” 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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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교회를 담임하는 권오헌 목사는 축사에서 먼저 임성하 장로에게“대구에서 25년간 가까이 지냈던 사이로서 6년간 수고하셨다”고 격려한 후“후임으로 참 좋은 분 이 선택돼 물려주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또 최영석 장로에 대해서는 휴렛 팩 커드(HP) 영업부장과 상무 지낸 유능한 인물로 평가하면서“은퇴한 나이에 하나님께 서 고신언론사 사장으로 불러주셨으니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말로 덕담을 건넸다. 권 목사는 대외적인 행사 때마다 시민교회 여성들로 구성된 아름다운 목소리의 중창단 이 특송을 하는데 이날은 관례를 깨고 칙칙한 검은 정장차림의 남성들이 앞서 찬양을 맡았던데 대해“같이 교회를 섬기는 장로님들이 진심으로 최 장로님을 축하하기 위해 특송을 맡으시겠다”고 했다며 뒤늦게 해명하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한때 고신교단 총회장을 지낸 조재태 원로목사가 마지막으로 격려사를 한 후 박종수 목사의 축도로 이취임예배를 마쳤다. 최영석 장로는 1951년 생으로 2002년 HP사에서 은 퇴한 후 이번에 고신언론사 사장에 취임함으로써 60대의 나이에 기독언론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시 작할 수 있게 됐다. 임기는 3년으로 두 번 연임할 수 있다. 고신언론사는 우리 교단을 대표하는 주간 신문 기독교보와 월간 생명나무(구, 월간고신)를 발행하고 있다. 최 장로는 지난 해 12월말 고신언론사 사장 공개채 용모집에 지원했는데, 마감한 결과 지원자는 모두 3명이었다. 총회 유지재단 이사회에서 면접심사를 거쳐 최종후보 3인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투표하기 전에 1명의 후보가 후보사 퇴를 했다. 결국 2명을 놓고 1차 투료를 실시한 결 과 최 장로는 2등을 했다. 13명의 유지재단 이사들이 8대5로 다른 후보의 손을 들어줬 다. 다시 2차 투표가 실시됐다. 그러나 대반전이 일어났다. 이번에도 8대5였지만 다득 표자는 최영석 장로였다. 앞서 1차 투표에서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3명의 표가 최 장로 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이사들은 2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를 한 최 장로를 사장 당선 자로 확정하고 투표를 종료하기로 했다. 2차에서 패배한 후보도 깨끗이 승복했다. 최영석 장로는 처음부터 불리한 상황이 역전된 것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셨기 때문이라 며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거듭 고백했다. ● 사진 | 조경춘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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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LECTURE 신앙강좌

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은 그 앞뒤의 구절이 문맥인데 이를 연결해서 읽으 면 이 구절이 유대인들을 의식하고 기록된 것임이 분명하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 이 왕을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접만 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고 그 자녀 됨은 아브라함의 혈통이라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맥으로 신약읽기

3. 문단과 장 단위의 문맥을 따라서 읽기 범위를 조금만 넓히면 아주 다양한 문맥을 따른 성경읽기를 할 수 있다. 특별히 많은 성 경의 교훈들은 청중과 그 가르침이 주어진 이유가 있다. 곧 누구에게 하신 가르침인가?

● 권오헌 목사 | 서울시민교회 담임목사

왜 이런 가르침을 주셨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본다면 더 넓은 문맥이 보일 것이 다. 많이 사용되는 요절인 요한계시록 3:20의 말씀을 보자.“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

1. 성경 읽기와 성경 해석의 원리

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전도하면서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하면서 자주 인용하는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각자의 관점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면서 읽게 된다. 그러므로

너무나도 유명한 요절이지만 이 말씀이 기록된 문맥을 보면 이 말씀은 믿지 않는 자를

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은 어떻게 성경을 해석할 것인가와 같은 말이다. 성

향해서 하신 것이 아니라 교회를 향해서 하신 말씀이다. 14절부터 나오는 라오디게아

경을 해석하는 원리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원칙은 문법적, 역사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의 마지막 부분이다. 22절에도 분명히 교회들에게 하는 말씀

적, 신학적 해석이다.

이라고 기록했다.“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그러나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이들도 위의 원리를 포괄하면서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3:22) 교회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면 이 구절은 영접보다는 회개에 강조가 있어 보

있는 성경 읽기의 원리가 있는데 바로 문맥을 따라 성경 읽기이다. 문맥은 성경 해석의

인다. 이처럼 어떤 교훈이 기록된 부분을 읽을 때는 반드시 그 가르침의 전체를 보면서

왕이다. 문맥을 따라 성경을 읽는 법은 그 성경 구절이 기록된 바로 앞뒤의 구절을 살피

구절을 살펴야 한다.

면서 읽는 것이다. 좁게는 바로 앞의 구절과 뒤의 구절을 연결해서 읽으면 되고, 조금 더 넓히면 단락이나 장 단위로 성경을 살피면서 읽는 것이다. 문맥을 보는 눈이 더 넓어

4. 책 혹은 저자 단위의 문맥을 따라서 읽기

지면 성경 각각의 책을 한권 전체로 보게 되고 한 저자가 쓴 여러 권의 성경을 연결해서 읽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신구약 성경 전체를 한 눈에 조감하면서 읽게 된다. 이러한

문단이나 성경의 장 단위 정도의 문맥을 파악하여 성경이 보이기 시작했다면 이제 성

문맥을 따라 성경 읽기의 핵심은 항상 그 구절을 성경에서 뽑아내지 말고 그 구절이 기

경의 각 책을 관통하여 읽기를 노력해보자. 책 단위의 문맥은 저자의 의도가 중요하다.

록된 자리의 전후를 살피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요한은 요한복음 20:31에서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예수님을 소개함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함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

2. 절 단위의 문맥을 따라서 읽기

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 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그러므로 복음서를 읽을 때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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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 공부의 문제점은 요절이기 때문에 그 구절만이 너무 강조된다는 데 있다. 이를테

이 어떤 분인가에 집중하고 그분의 성품과 그분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시는 구원에 대

면 요한복음 1:12에 기록된“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해서 배우고 적용하는 것이 바른 읽기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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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한 사람이 기록한 책이다. 직

으로 비교되고 있음이 잘 드러난다.

접 저자의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교회의 전통을 따 라서 누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이 누가라고 한다면 사

5. 성경전체의 문맥

도행전 역시 누가가 기록한 책이 된다. 이 두 책은 저 자만 같을 뿐 아니라 수신인도 한 사람이다. 이것은 이 두 책을 조금만 주의해서 읽어보

이제 한 걸음 더 나가서 성경 전체의 문맥을 따라서 읽기를 연습해보자. 성경전체의 문

면 알 수 있다. 특별히 누가복음을 염두에 두고 사도행전의 처음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

맥을 따라서 읽으려고 할 때 주의할 점은 각각의 구절들을 먼저 구절단위, 문단과 장 단

면 분명하다. 바울의 전도여행에 동행했던 누가는 데오빌로라고 불리는 한 그리스도인

위, 책 단위로 맥락을 따라서 먼저 주의 깊이 읽고 좁은 문맥이 제대로 파악이 된 후에

을 위하여 이 두 책을 기록했다. 누가복음에서는 데오빌로 각하라고 존칭을 썼는데 사

넓은 문맥으로 나가고 마지막에 전체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행전에 가면 그냥 데오빌로라고 명칭을 쓴다. 이 변화를 유의한다면 우리는 사도행 전 전체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관점을 가질 수 있다. 곧 누가복음은 각하로 그

1) 신약의 구성을 생각하는 읽기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함이라고 했으니 복음의 내용의 핵심인 예수님의 삶에

신약성경은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서신서와 요한계시록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을

대한 정리가 누가복음의 기록목적이고 누가는 이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호칭

따라서 성경을 살핀다면 복음서에서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기쁜 소식인 복음이 전체의

의 변화가 보여주는 암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전제 하에서 본다면 사도행전은 복음과

문맥이 된다. 복음서를 이어가는 책은 사도행전인데 이 책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이해에 도달한 믿음의 형제를 양육하는 양육서신이라고 할 수

인 교회가 어떻게 능력 있는 증인 공동체가 되는가를 보여준다. 곧 성령이 임하셨을 때

있다. 곧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을 통해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알아야 할 내

교회는 말과 삶으로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공동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구원의

용인 그리스도의 천상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곧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것이 그리스

길이신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복음서를 읽어야 하고, 구원을 받았다면 자연스럽게

도인 공동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알려주고 동일한 은혜를 누리게 하고자 함이

사도행전이 강조하는 성령의 임하심에 따르는 권능과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어

그 기록목적이라고 하겠다.

지는 서신서는 구원과 성령의 경험이 있어도 우리의 성화에는 수고와 인내가 있어야

빌레몬서는 바울이 옥중에서 얻은 믿음의 아들 오네시모를 위해서 빌레몬에게 간구하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과정에 있는 이의 소망은 예수님의 오심으로 완

는 편지이다. 편지에 오네시모의 잘못을 용서하기를 청원하면서 바울이 직접 오네시모

성되는 구원과 하나님의 왕국이다.

가 끼친 손해를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부분에 가면 바울이 빌레몬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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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머물겠다는 말이 나온다. 22절이다.“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2) 신학적 관점을 가지고 읽기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이 말은 내가 방문할 터이니 나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5:39에서“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위해서 침대를 준비하라거나 방을 하나 비우라는 말이 아니다. 이 구절은 오네시모를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하셨다. 이 말씀을 따

용서하라는 말이다. 빌레몬서 전체 문맥을 따라 읽으면 네가 너를 보러 갈 때 만일 네가

르자면 성경을 읽는 자는 성경의 내용이 예수님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가를 살피면서

오네시모에 대한 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어찌 내 얼굴을 보겠느냐 하는 뉘앙

읽어야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예수님을 성경해석의 중심으로 두고 읽는 것은 예

스를 풍긴다. 이것이 느껴진다면 문맥을 따라서 성경을 읽는 안목이 상당해 진 것이다.

수님이 하신 구원사역을 중심으로 읽는 것이기도 하다. 마태복음 20:28에서 예수님은

히브리서 11장은 성경에서 믿음장이라고 하는 유명한 장이다. 11장 1절은 이렇게 시작

자신이 사람이 되신 이유를“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된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갑자기 튀어나온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요한일서

것 같은 이 말은 10장 1절과 연결해서 읽으면 뜻이 아주 분명해진다.“율법은 장차 올

3:8에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고 했다.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

이를 연결하자면 예수님이 오신 것은 마귀의

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곧 율법과 믿음의 대조가 그림자와 실상

지배 하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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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속물로 주시고자 오셨다는 것이다.“죄를 짓는 자는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고 한 대로 마태복음 3:3에는“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

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

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

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고 되어 있다.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것이

심이니라”(요일 3:8) 그렇다면 마귀의 일을 멸하시고

예언을 성취함이라고 한다면 왜 하나님은 요한에게 광야에서 외치라고 하셨을까?

우리를 대속하신 그 구원은 어떤 구원인가? 이런 식으로 성경의 각 부분들을 연결하면 서 읽는 것이다.

2) 삭개오 사건의 앞 / 바늘귀를 통과하는 부자

관점을 가지고 성경을 보는 좋은 방법은 이미 우리 앞에 성경을 연구한 많은 경건한 그

삭개오는 부자였고 여리고의 세리장이었다. 여리고는 물산이 풍부한 도시였으므로 세

리스도인들에 의해서 드러난 성경의 중심 주제를 가지고 성경을 보는 것이다. 이를테

리에게는 재정적으로 부를 보장하는 도시였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하나님께서 무너뜨

면 구원 역사의 진행,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언약 등과 같은 주제는 성경 전체를 관

리셨고 그 성을 다시 세우는 자는 아들 둘을 잃으리라는 예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하는 중요한 주제임이 이미 잘 밝혀져 있다. 그러므로 그런 관점을 가지고 성경의 각

성을 다시 세웠을까? 결국 벧엘 사람 히엘은 아비람과 스굽이라는 두 아들을 잃으면서

부분을 전체와 연결해서 보는 것이다.

까지 여리고를 재건하였다(왕하 16:34). 이러한 삭개오의 회심은 놀라운 일이었다. 문맥으로 본다면 본문의 바로 앞장에서 예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

3) 구원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읽기

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하신 말씀과 관련이 있다. 부자의 재산은 그의

이것 역시 관점을 따른 성경읽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따로 구분해 보았다. 성경은 우리

장점이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포기할 수

의 구원을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도행전에서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의

없는 장점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걸림이 된다. 반면에 자신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주

내용은 회개와 믿음이라고 했다.“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님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소경은 구원을 얻는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 20:21) 이처럼 구원의 과정에서 회

게 된 것은 그가 자신의 장점을 의뢰하여 예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약점에도

개와 믿음이 핵심적인 요소임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마태복음 1:1의 아브라함과 다윗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장애를 넘

의 자손 예수라는 표현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회개의 본이 되는 다윗을 발견하

어선 소원이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자신의 재물을 포기했다. 바로 앞장에서 천국에

게 된다.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힘들다고 하신 예수님은 그러나 하나 님으로 말미암아 부자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신 실례를 보이신 것이다.

6. 문맥 따라 신약 읽기의 예

앞장에 언급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반응 역시 삭개오 사건의 문맥이 된다. 자신의 종교적인 열심을 의뢰한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니라 자신의 연약

1) 세례요한은 왜 광야에서 외쳤을까?

함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한 세리가 응답받았다. 삭개오는 세리일 뿐 아니라 세리장이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길을 예비한다는 것은 도로를

었고 이는 당시의 유대인의 민족감정에 의하면 매국노였다.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가

닦는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예비하여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장 마지막까지 구원받지 못할 자가 있다면 세리장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의 가

뜻이다. 요한복음 1:12의 말씀의 앞부분에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언급한 것도 그런 점이

슴 속에도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고, 이러한 내적인 갈망을 진지하게 추

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하고자 한다

구한 삭개오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또한 자신의 영혼에 모시게 되었다.

면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외쳐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요한은 왜 사람이 없는 광 야에서 외쳐야 했을까?

3) 삭개오 사건의 뒤 / 므나 비유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이유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다. 이사야 40:3에

누가복음 19장에는 삭개오의 회심에 이어서 예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수님께서 므나 비유를 하신다. 항상 비유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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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과 관련이 있다. 비유가 사건을 해석하고 사건이 비

이나 안수하신 사건이다. 주님의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왜 두 번에 걸쳐서 소경을

유의 배경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이 므나 비유를 하신

고쳐주셨을까? 이 사건의 앞과 뒤에 있는 사건들이 그 이유가 된다.

까닭은 삭개오의 회심을 바라보는 유대인들의 인식을 교정하기 위함이었다. 곧 므나 비유는 삭개오의 집에

5) 예수님의 새 포도주 부대 / 마가복음 2:21-22, 3:13-15

구원을 선포한 예수님의 선언에 불만을 품은 이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들은 삭개오

마가복음 3:13-14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의문은 왜

를 대단히 눈치 빠르게 행동하는 기회주의자라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제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 아닌 갈릴리의 어부들을 부르셔서 제자를 삼으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백성들 중에는 이번에 예수께서 왕이 되실 것이라는 소문이

셨는가 하는 것이다. 이 사건의 문맥은 예수님을 거부한 유대인의 이야기가 기록된 앞

무성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로마에 붙어서 백성을 괴롭히던 녀석이 이번에는 새로

장에 있다.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신 예수님, 세리와 잡수시는 예수님, 금식하

정권을 잡는 예수께 자신의 재산을 바치느니 하면서 말을 바꿔 탄 것이다. 그래서 예수

지 않는 예수님을 자신들의 전통과 생각으로 거부한 바리새인 유대인들을 향해서 하신

께서는 므나 비유를 하셨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는다고 하신 말씀이 제자들을 부르신 사건의 문맥이 된다. 요

므나 비유에 따르면 삭개오의 회심과 결단은 왕의 백성으로 시작에 불과하다. 예수님

한복음 1:11-12처럼“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이 선포하신 삭개오의 구원은 이제 시작이요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이다. 이러한 태

고 재산을 팔아 구제하고 토색한 것을 네 배나 갚겠다는 그 헌신으로 삭개오에 대한 주

도는 복음을 전하라고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누가복음 9:5에서“누

님의 모든 평가가 끝난 것이 아니다. 다만 이제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므나를

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맡긴 주인이 왕이 되어 돌아와서 할 마지막 평가가 아직 남아 있다. 삭개오가 왕의 나라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하셨다. 마태복음 21:42-43에서도“예수께서 이르시되 너

의 백성으로 상급과 칭찬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이제부터의 그의 삶으로 결정될

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것이다. 삭개오도 왕국에서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그가 예수님의 왕국에서 성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공한 자로 남으려면 그는 왕이 오실 때까지 예수께서 칭찬하셨던 삶의 자세대로 살아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야 하는 멀고도 험한 길이 남아 있다. 한 때의 헌신이나 수고를 반추하기만 하면서 그냥

하셨다.

있는 자는 게으른 자로서 왕의 꾸중을 들을 것이고 그 때 받았던 인정이 다 헛것이 될 것이다. 삭개오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 대한 평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 곧 동

6) 능력주시면 모든 것을 한다? / 빌립보서 4:10-13

일하게 받은 므나를 어떻게 남겼느냐로 평가하실 것이다.

빌립보서 4:13의 바울의 고백인“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

그러면서 예수님은 자신이 왕이시지만 그 왕의 길은 일반의 기대와 다르다고 하신다.

느니라”는 말씀은 굉장히 유명하고 사랑을 받는 구절이다. 마치 불가능은 없다는 식의

그 왕은 고난의 왕으로 이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게 될 것이다. 이제 예수를 아는 것이

구호로 이 말씀은 종종 인용된다. 하지만 이 말씀은 앞의 몇 구절만 읽어보아도 전혀 다

출세가 아니라 핍박의 조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더구나 왕위를 받아 오는 길은 시간

른 의미로 읽혀진다. 바울 서신 전체와 바울의 삶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더 말할 나위도

이 걸리는 먼 길이다. 세상의 많은 기득권자들은 예수의 왕됨을 원치 않고 방해할 것이

없다.

다. 삭개오에게는 아직 기다려야 할 세월이 많이 남아 있다. 언젠가 예수님도 므나 비유 의 귀인처럼 왕으로 오실 것인데 너희는 나의 왕됨을 인정하느냐고 물으신다. 만일 예 수님의 왕권을 인정한다면 삭개오에 대한 주님의 태도에도 순복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4) 걸어가는 나무 / 마가복음 8:22-26 본문에 있는 여러 사건 중에 가장 우리의 눈을 끄는 사건은 소경을 고치느라고 두 번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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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BOOK REVEIW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박영돈 저, IVP

● 오경석 목사 | 1교구, 고등부 담당

IVP에서 발간되는 책은 무거운 느낌이 다. 더군다나 신학자가 IVP에서 책을 냈다면 전문도서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은 그리 무겁지 않다. 성령의 사역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평신도들이 읽기 쉽도록 간결하게 풀 어놓았다. 그렇다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다. 천천히 음미하며 곱씹어야 할 책이 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례도 특별하지 않다. 어쩌면 독자들이 책을 읽다가“어, 나도 거기 갔었는데”할지도 모르겠다. 그 만큼 우리 생 활과 밀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 쓰기를 망설였다고 한다. 심지어 누군 가 대신 써주었으면 하고 바랐다고 한다. 현 재 일어나고 있는 각종 신유집회, 성령집회를 평가하고, 성경적으로 논하기란 그 만큼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역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집회를 평가하는 책을 낸다는 것은 저자 뿐 아니라 출판사 에게도 부담되는 일이다. 저자는 세계적인 신학자이자 은사중지론자인 리처드 개핀의 제자다. 저자는 비록 은사 중지론의 줄기에서 공부를 하였지만 그것이 그를 지배하지는 못했다. 그는 성령의 초 자연적이고 신비한 역사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한다. 방언과 치유의 은사도 중지되었 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 다. 이 책에는 그러한 그의 중도적 입장이 잘 담겨 있다. 저자는 각 장에서 주제와 관련된 성령 운동의 문제를 꼬집는다. 해당 운동의 문제가 무 엇인지 날카롭게 지적하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것이 어떤 면에서 성경에서 어긋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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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기 쉽게 설명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문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한다. 성경적으로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 지 성경적 관점에서 생각하는 자세를 알려준다. 한 예로 요즘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 손기철 장로의 월요집회 참관기를 들려준 다. 저자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손 장로의 집회에 참가했다. 찬양과 기도로 시작한 집회 는 저자에게 잔잔한 감동과 평안을 주었다. 그렇게 한 시간 쯤 지나 손 장로의 설교시간 이 되었다. 손 장로는 설교하는 도중에 어디가 아픈 사람이 지금 치유 받았다는 감동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선포했다. 손 장로가 오른쪽 복사뼈가 아팠는데 통증이 사라진 사 람은 나오라고 하니 한 젊은이가 나왔다고 한다. 손 장로는 그를 단상 앞에서 뛰게 했 다. 그리고는 젊은이를 향해“주님, 영광으로 임하소서! 더! 더!”라고 나지막하게 말하 자 그가 뒤로 벌렁 넘어져 드러누워 버렸다. 그러자 회중의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다고 한다. 다소 진부한 설교가 계속되는 동안 지루함을 느끼던 사람들이 다시 열광하기 시 작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광경을 지켜보며“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은 말씀의 능력 이 아니라 신기한 현상의 위력이었다”고 진술했다. 저자는 집회가 끝난 후 집에 돌아오 는 중에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고 한다. 손 장로의 건전한 신앙적 배경과 대학 교수라는 독특한 이력 그리고 신사적이고 부드럽고 겸허해 보이는 그의 모습은 분명 여느 치유 집회 강사와는 사뭇 달랐다고 한다. 또 병들고 지친 이들을 돕기 위한 손 장로의 수고와 열정은 참으로 귀하고 칭찬할 만한 일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치유 사역이 한국 교 회에 널리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이제 그 사역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진단이 불가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득불 손 장로의 치유 집회가 안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을 본서에서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외에도 멀쩡한 이가 금니로 바뀐 이야기, 한국 교회를 다시 강타한 방언 열풍 에 관한 이야기, 내 생각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인 양 내뱉고 있는 영적인 폭력에 관한 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필자가 기억하는 저자는 학생들에게 매우 존경받는 스승이었다. 학문에 대한 정직함 과 성령에 대한 깊은 이해는 학생들에게 많은 감동과 영향을 주었다. 그의 수업시간은 늘 진지했으며, 때로는 마치 집회에 참석한 것처럼 성령의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오늘날처럼 성령의 사역이 대중화된 시대도 없을 것이다. 이러 한 때 신자가 성경으로 돌아가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옳게 이 해하고 그것에 순종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 출판된 것 은 참 다행한 일이다. 성도들이 이 책을 통해 성령의 사역에 대 해 바르게 이해하고, 성경이 그려내는 깊고 건강한 신앙으로 안내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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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FOOD RECIPE

순모임, 음식 속에 피어난 사랑 ● 김순화 집사 | 루디아 2

우리 집은 교회에서 3분 거리에 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자주 들려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신다. 그들을 위해 우리 집 냉장고와 싱크대 한켠에는 먹을거리 재료와 여러 가지 차가 준비 되어있다. 어느 때라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맛있게 먹이고 배부른 후에 여유를 만끽 하게 하기 위해 예쁜 찻잔도 준비해 놓고.... 이런 일들을 즐기며 사람을 참 좋아 한다. 작년부터 난 능동 1순 순장으로 섬기고 있다. 우리 능동 1순은 연세가 지극하신 어르 신들인데 제일 왕언니인 86세 한귀미 집사님, 둘째 언니 84세 한정숙 성도, 셋째 언니 84세 한순임 성도 그리고 나 ... 두세 명이 더 있지만 사정에 의해 참석은 잘 못한다. 우리 순은 수요일에 순모임을 하고 저녁을 맛있게 먹고 수요예배에 같이 동행한다. 지금 아이들보 다 더 순하고 믿음 안에서 순종하는 삶을 사시는 예쁘고 귀여운 할머니들이시다.(건방진 표현이지만) 나이 드신 어른들 사이에 젊은 내가 있어 너무 미안 하다 하시는 집사님들, 나는 넘 좋은데.. 친정이 없 는 나에게는 친정집 같은 편안함이 있다. 예배 후 우리들의 식사시간은 따스한 봄처럼 화사하 고 따뜻하고 사랑과 웃음이 넘치는 시간이다. 어 르신들은 예전에 음식을 맛깔나게 해서 주시 던 우리 외할머니를 생각나게 해주시고 배는 올챙이배로 만드신다.(한없이 먹이기 때문 에) 집사님들께 음식을 대접하면 젊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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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니 안 먹어본 음식을 먹어본다며 즐거워하신다. 그 모습을 바라볼 때는 피곤하지 도 힘들지도 않고 너무 행복하다. 지난 주, 순 예배 중에 집사님들 천국에 가실 때까지 능동1순 순장한다 했더니 아멘이 시란다. 이 찜닭은 하회마을 어느 고택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주인집 할머니께서 해 주신 그 맛 있었던 기억을 되살려 만들어 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나는 행복한 시간을 만끽한다. 뭘 대접해도 늘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는 우리 집사님들……. 올해는 우리 순에 허선애 집사님 안용희 집사님을 보내주셔서 더불어 어르신들을 섬 기며 작년보다 더 즐거운 능동1순이 되도록 도우시는 그 분께 감사드린다.

>>> 안동찜닭 (4인분) 재료 :

생닭~1.5 kg 1마리, 감자 2개, 당근 2/1개, 양파 1개, 대파 1뿌리, 불린 당면 400 g 조림장 만들기 :

진간장 1컵, 미림 1컵, 물 4컵, 물엿 2/1컵, 후춧가루 1T, 통마늘 1통, 생강 2/1개 마른 고추 2개, 사과 1개 ( 물을 약간 넣고 믹서에 곱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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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만드는 법

1. 닭을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삶아 기름을 빼고 찬물로 한 번 씻어준다. 2. 준비한 조림장 재료를 깊은 냄비에 넣고 한 소금 끓인 후 체에 거른다. 3. 한소끔 끓인 조림 장에 기름 뺀 닭을 넣고 닭이 어느 정도 익으면 감자와 당근을 넣 고 졸여준다. 4. 감자가 익어갈 때 양파 썬 것과 불린 당면 을 넣는다.

풍란화분으로

5. 마지막에 어슷하게 썬 대파와 참기름으로 맛을 낸다.

사랑을 전합니다 □ 주문상당 070-8846-4724 / 010-6556-7793 / 팩스 02-457-4386 서울 광진구 능동 247-5 501호 희망일터

□ 가격안내 풍란 미니화분 (토요) 개당 4,000원, 1세트(3개) 10,000원 풍접시화분 5,000원

□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5-801-693811 ( 예금주:희망일터 )

장애인과 함께하는 직업재활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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