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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이야 어떻든 이렇게 학생과 교수 사이에 불신 경향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대학으로서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자제지간에 불신이 있다면, 교육 목적의 달성은 이미 기대할 수 없다. 학생이 미덥지 않고 사랑스럽지도 않으며 보기조차 싫을 때 교수가 정열을 기울여 그를 지도할 리 만무하다. 마찬가지로 학생 쪽으로도 교수가 미덥지 않으며, 교수를 동일시해 가며 본받으려고 하지도 않을 뿐더러 교수의 입장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또한 이때 대학생은 교수의 지도를 받아들이려고도 하지 않는다. 교수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제대로 수용될 리 없다. 여기에 인격적 지도의 실효는 더욱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불신 관계의 책임이 어느 쪽에 더 많든지 간에 이러한 경향성은 교수나 학생 모두에게 똑같은 불행이며 손실이다. 이런 풍조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수나 학생이 깊은 자기 성찰로써 불신을 바로잡아 나가는 길밖에 없다고 본다. 사실 사람을 못 믿는 것은 신용을 배반당한 경험이 많아서 생기는 수도 있지만, 자기 스스로가 타인에게 성실하지 못해 그러기도 한다. 즉 자신의 이러한 불성실을 그대로 타인에게 투사시켜 그가 자기를 속이리라고 보게 된다. 교수가 학생을 멸시하고 등한시한다면, 그것은 그 자신이 직면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결함(불성실)의 표출에 지나는 것이 아닌가. 또한 교수를 적대시하고 무시하는 학생이 있다면, 이는 자기 열등감의 투사이거나 교수에게 자기 불만을 전가시키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대학 풍토의 변질 내지 황폐화의 문제에도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정부 당국이나 대학 경영자가 명실상부하지 못한 대학 경영책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수가 지나치게 부직에 치우치고 있어 교수 본래의 소임에 충실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학생들이 자기가 해야 할 당면 과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다른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문제에 각기 깊은 반성과 성실한 노력을 집중시킴으로써 대학 풍토의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또 하나 반드시 성찰해야 할 학생 교수 사이의 문제점은 학생들이 교수들에 대해 갖는 기대에 대한 올바른 자세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대체로 초, 중, 고에서는 교사가 수업 시간뿐만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 관여하고 지도한다. 그러나 교사라면 언제나 이렇게 세심한 존재이겠거니 하다가 대학에 들어와 보면 사정이 다르다. 학생들이 강의 시간이나 특별 활동에서 교수와 접촉하지만, 교수가 학생들에게 일일이 간섭하거나 적극적으로 나오는 태도는 볼 수 없다. 그야말로 문의에 응하는 식의 교수를 대하면서 그들은 당혹감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무관심이라 할까 마치 소박이라도 맞은 듯해 주눅들고 교수와는 원인 모를 벽이 쌓여 간다. 필자는 대학에 갓 들어와 교수가 너무 쌀쌀하다느니, 고등학교 선생님의 고마움을 새삼 알겠다느니, 너무나 자유로워 오히려 불안스럽다느니 하는 학생들을 자주 만났다. 사실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이미 성숙한 인간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들에게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자기가 스스로 어련히 해 나가겠거니 하며 되도록 간섭하지 않는 태도를 취한다. 오히려 자상하게 일일이 관여하는 것은 주책없는 짓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성인 사회에서 너무 지나치게 남의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사생화 침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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