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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저게 저금통입니까? 속이 텅 빈 것 같은데." 미유끼가 묻자 구로사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재밌게 만들어졌죠? 죽은 딸애의 물건입니다. 손님들에 게 잔돈을 받아 넣은 게 거의 가득 차서 유니세프에 헌금 하려던 참입니다." 보니까 상자 옆에 작은 종이 팻말이 붙어 있꼬 "혜택받 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사랑의 모금 상자" 라고 씌어 있 었다. "그렇군. 다시 말해 도박이 아니고 모금 활동을 위한 여 흥이라는 거죠. 으음, 과연 구로사와 씨, 말씀하시는 것에 빈틈이 없군요. 자, 그런 고로 걸 돈, 아니 모금액을 정하 도록. 나도 낄 테니까 각오들 해. 빈털터리로 만들어 주지. 왓하하하." 겐모치 경감이 그렇게 말하고 큰 입을 헤벌쭉 웃었다. 결 국 야단스럽게 도박은 안된다고 말한 것은 허세였다. 젊은 사라들 사이에 끼어들어 법석대는 것이 조금 겸연쩍었을 뿐이었다. 설교조로 말해 보호자인 척하고 싶었던 것이다. 김전일은 경감이라는 딱딱한 직함에는 어울리지 않는, 겐모치 경감 의 그런 사람 냄새 나는 점이 싫지 않았다. "그럼, 모두들 즐겁게 노세요. 저는 2 층 안쪽 방에 있을 테니 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간단한 인사를 하고 구로사와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곧 카드가 돌려졌다. 게임이 시작되고 나서 김전일은 아직 누군가가 식당 테 이블에 남아 있는 것을 깨달았다. 보니까 화가인 마쿠베였 다. 마쿠베는 테이블에 혼자 있었다. 식사 때 벗었던 마스크 를 다시 써서 여전히 기묘한 모습으로, 그저 아무 말 없이 카드놀이에 열중한 사람들의 모습을 스케치북에 연필로 데 생하였다. 물안경같이 생긴 안경의 갈색 렌즈 너머로 눈만 이 되록되록 돌아갔다. 카드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김전일은 극장에 걸려 있던 그 소녀의 그림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그 투명한, 너무나도 맑게 반짝이는 눈동자는 이 기묘한 사내의 화필에서 나온 것이다. 마쿠베의 연필심이 부러져 마른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 다. 팟하고 김전일은 마쿠베가 라운지에서 게임을 즐기는 멤 버 중에 '누군가' 한 사람을 보고 있음을 알았다. 마쿠베는 새로운 연필을 꺼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 했다. 그 시선은 역시 종이와 게임을 하고 있는 '누군가' 의 얼굴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마쿠베는 누구를 그리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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