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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에게 손전등을 건네주고 샘프슨 위로 몸을 숙였다. 두 손과 발목은 5 밀리 두께의 밧줄로 한데 묶여 있었다. 밧줄 한 끝은 벽에 박힌 스테이플에 잡아매어져 있었다. 다른 한 끝은 샘프슨의 목을 파고들어 왼쪽 귀밑에서 힘껏 잡아매어져 있었다. 나는 그의 몸 뒤를 더듬어 묶여진 손목 한쪽을 잡았다. 차갑지는 않았으나 맥은 이미 없었다. 붉게 충혈된 두 눈동자는 제가끔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생기를 잃은 두툼한 발목을 감싼 삼원색의 바둑판 무늬 양말에 어쩐지 가련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레이브스가 숨가쁘게 물었다. "죽었나?" "흠." 나는 온몸에서 맥이 빠지며 허탈감이 찾아왔다. "내가 여기 왔을 때는 틀림없이 살아 있었을 거요. 내가 얼마 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죠?" "지금은 7 시 15 분이야." "나는 6 시 45 분쯤에 여기 왔어요. 녀석들에게는 일을 벌일 시간이 30 분이나 있었군. 우리도 어서 움직여야지." "샘프슨을 이대로 여기 놔두고?" "경찰은 이 상태 그대로의 그를 원할 테니까요." 우리는 그를 어둠 속에 남겨놓고 떠났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내어 언덕을 올랐다. 내 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레이브스의 스튜드베이커는 교차로 건너편에 세워져 있었다. "어디로 가지?" 운전석에 오르자 그가 물었다. "부에나비스타. 고속도로 순찰대로 갑시다." 나는 지갑을 조사했다. 화물함 열쇠가 없어졌을 것을 예상하며. 그러나 그것은 명함꽂이에 그대로 끼워져 있었다. 나를 때려눕힌 자가 누구였든 그에게는 베티 프레일리와 정보를 교환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들은 돈을 포기하고 줄행랑을 놓기로 작정했는지도 모른다. 하기야, 있음직한 일은 아니었지만. 마을의 경계선을 지날 때 나는 그레이브스에게 말했다. "나를 버스 터미널에 내려주시오." "아니, 왜?" 나는 그에게 까닭을 말하고는 덧붙였다. "만일 돈이 그대로 있다면 놈들은 그걸 찾으러 돌아올지도 몰라요. 그리고 돈이 없다면 놈들이 십중팔구 이 길을 따라와서 화물함을 부숴 열었다는 이야기가 되지. 당신은 이 길로 고속도로 순찰대에 갔다가 나중에 날 태워주시오." 그는 버스 터미널 앞, 차도와 인도의 경계를 표시하는 붉은 포석 위에 나를 내려주었다. 나는 유리문 밖에 서서 장방형의 커다란 대합실을 들여다보았다. 작업복을 걸친 서너 명의 사내가 흠집투성이의 벤치에 웅크리고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원시인처럼 보이는 몇몇 노인이 포스터가 다닥다닥 붙은 벽에 기대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편 구석에는 멕시코 인 가족들이 있었는데, 부모와 네댓 명의 아이들로 구성된 그들은 마치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축구 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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