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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리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영어로 우리를 소개하자 동시에 두 가지 언어로 통역되어 아이들에게 전해졌다. 코소보 프리슈티나에서 열린 ‘아동평화구축사업’ 클럽 모임에 알바니아계 학생들과 세르비아계 학생들이 모인 자리다. 코소보월드비전 직원 가운데 알바니아계인 로레타와 세르비아계인 올기타가 각각 알바니아어와 세르비아어로 아이들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는 서로 다른 민족일 뿐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 오랜 시간 반목해온 깊은 갈등의 역사가 있는 두 민족이다.

코소보 분쟁과 아동평화구축사업

유럽 발칸 반도에 위치한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자치주로 있다가

1998 코소보 전쟁

2008년 독립을 선언했으나 일부 나라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지 못했다. 코소보 전체 인구의 90%에 달하는 알바니아계 주민이 세르비아로부터 분리독립을 바라고 있다. 1998년 알바니아계의 자치권 요구를 세르비아계가 묵살하며 유혈분쟁이 일어났고, 세르비아 정부군이 ‘인종청소’ 명목으로 알바니아계 주민을 대량 학살하면서 내전은 격렬해졌다. 이 전쟁으로 주민 1만 5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30만여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가족을 떠나보냈다. 마을이 불타고 집과 학교가 무너졌다. 나토NATO군의 개입으로 78일 만에 전쟁은 끝났지만 2004년 다시 유혈충돌이 일어나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의 자치권 요구를 세르비아계가 묵살하며 유혈분쟁이 일어났고, 결국 알바니아계 주민을 대량 학살하며 전쟁이 일어났다. 지속된 전쟁으로 대량 난민이 발생했으며, 이후 나토군이 개입해 잠정적인 평화협정을 맺었다.

1999 월드비전 긴급구호 시작 월드비전은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 난민을 위한 긴급구호 및 재건복구 사업을 시작했다.

200여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코소보에서는 여전히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두 민족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언제 전쟁이 다시 발발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부서진 집은 전쟁 후 다시 지었지만, 두 민족 간에 벌어진 관계는 다시 잇지 못했습니다.” 민족충돌의 중심에 있었던 코소보 북부 미트로비차 시의 초등학교 교사 하사니가 이야기했다. 월드비전은 이런 코소보에서 아동평화구축사업을 시작했다. 두 민족 간의 뿌리 깊은 갈등으로 상처받고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평화’를 심어주기 위해서다. 지역 내 학교와 협력해 아동 및 청소년 클럽을 조직하고, 평화와 화합을 위한 교육을 하며 다양한 사회 주제를 정해 옹호활동을 펼쳤다.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의 아동 및 청소년 클럽들은 문화 교류

2004 미트로비차 시 유혈충돌 발생 전쟁 이후 두 민족 간의 분쟁이 계속되었으며, 2004년 미트로비차 시에서 유혈충돌이 일어나 200여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2004 월드비전 아동평화구축사업 시작 코소보 아이들에게 평화를 알려주기 위해 아동평화구축사업을 시작했다. 코소보의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아동은 ‘평화 클럽’을 통해 평화와 화합을 배웠다.

현재 아동평화구축사업 확대 현재까지 3000명 이상의 코소보 아동이 아동평화구축사업에 참여했고, 5만 명 이상의 주민이 간접 영향을 받았다. 평화 클럽을 통해 화합을 배운 아이들이 스스로 클럽을 형성해 사업의 영향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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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Vision Korea Magazine 201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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