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중국을 알려주는 주간소식지-
제11-01-751호
WEDNESDAY JOURNAL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 시편 57:11
수요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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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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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와인시장, 뉴욕을 눌렀다
중국 부자들이 와인에 탐닉하면서 홍콩이 뉴욕을 제치 고 세계 최대 와인 시장으로 부상했다. 29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세계 1위 와인 경매업체인 애커 머렐&콘디트(Acker Merrall&Condit)의 올해 매출 총 액은 9850만달러를 기록했다. 2위 소더비(Sotheby's)는 8800만달러, 3위 크리스티(Christie's)는 7100만달러다. 애커의 존 케이폰(Kapon) 사장은 "9850만달러 가운데
뉴욕 시장은 작년보다 55퍼센트가 늘어난 2800만달러를 기록했으나, 아시아 시장은 무려 206퍼센트나 급증한 6350만달러를 기록하면서 아시아 매출이 뉴욕 매출을 크 게 앞질렀다"고 말했다. 홍콩이 종전에 40퍼센트이던 주 류세를 2008년부터 0퍼센트로 낮추고 '세계 와인 허브'로 키우겠다고 선언한 지 불과 2년 만에 런던과 뉴욕을 차례 로 제치고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것이다.
홍콩 민주화 원로 세토화 지병으로 사망 평생을 중국과 홍콩의 민주 쟁취를 위해 투쟁해 온 전 입법회 의원이자 홍콩의 민주화 단체인 지련회의 세토화(司徒華) 주석이 지난 2일 오후 지병인 폐암으 로 인해 향년 79세에 사망했다. 1931년 출생한 세토화는 홍콩 민주계의 원로로 한 달 전 지련회의 주석에 취임했다. 세토화는 교사로 9
년간 재직하다 그 후 31년 동안 초등학교 교장으로 활 동했다. 그는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로 있던 70년대부 터 사회운동에 뛰어들었고 1985년에는 교육계를 대 표해 홍콩 입법회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같은 해 베 이징 정부로부터 기본법 초안 위원회 위원으로 임명 되었다. 1989년 중국에서 톈안먼 사태(6.4사태)가 발
케이폰 사장은 "올해 와인 경매업체들은 전 세계적으로 3억5000만달러 이상의 와인 판매를 기록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면서 "내년에도 세계 와인시장은 성공적인 한 해가 될 것이고 특히 아시아 지역의 성공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와인 전문가들은 홍콩에서 낙찰된 와인의 약 80퍼센트 가 중국 부자들에게 유입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중국 고객들은 유명 브랜드의 비싼 와인들을 특별히 좋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프랑스 1989년산 샤토 페트뤼스는 병당 24만2000홍콩달 러(약 3500만원), 2005년산 로마네콩티는 병당 15만2000 홍콩달러(2200만원)에 낙찰되는 등 수천만원짜리 와인들 이 100퍼센트 낙찰률을 기록했다. 한편 미국의 경제전문 지 포브스(Forbes) 중문판은 중국건설은행과 함께 28일 '2010 중국개인재산 백서'를 발표, 올해 중국의 1000만위 안(17억원) 이상 재산가가 38만3000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중국의 1000만위안 이상 재산가는 2007년 28만 7000명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24만8000명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33만1000명에 이어 계속 늘어나는 추세 다. 지역별로는 광둥(廣東)성이 8만명으로 가장 많다. 생했을 당시 세토화는 '홍콩 민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틴 리(李柱銘)와 함께 기본법 초안 위원회에서 탈퇴 하여 오늘 날의 '지련회'를 결성하고 중국과 홍콩의 민 주개혁 문제에 적극 참여해 왔다. 2008년 12월 세토화는 폐암 말기 선고를 받았으나 민주 개혁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작년에는 중 국의 '6.4사태' 희생자 애도를 위한 촛불집회에 참석 하여 홍콩의 구의원 선거, 정치개혁 방안 등 뜨거운 정치적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