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중국을 알려주는 주간소식지-
제 09-21-675호
WEDNESDAY JOURNAL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 베드로후서 2:9 Publisher : Park Bong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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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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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사태 추모행사에 15만 명 모여
역사의 수레가 다시 한번 돌았다. 천안문(톈안먼) 사태 가 발발한 바로 다음해인 1990년 빅토리아공원을 가득 메웠던 홍콩 시민은 20주년을 맞아 또 다시 한마음을 보 여줬다. 지난 4일, 빅토리아 공원에는 15만 명이 넘는 시민이 모여들어 촛불을 들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올해 빅토리 아 공원 기념식장에 참가한 사람은 오히려 20년 전 그 때 보다 더 많아 수 천 명은 아예 행사장 안으로는 발도 들 여놓을 수 없었다. 행사 주최 측은 약 5만 여명이 공원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고 전했다. 오후 이른 시간부터 공원을 찾기 시작한 사람들은 빅
토리아 공원의 6개 축구장을 빠르게 채워나갔으며 오후 8시 경이 되자 빅토리아 공원에서 넘쳐난 사람들은 인근 도로마저 가득 메웠다. 이 때문에 행사장에서 바로 코앞 에 있는 틴하우 MTR역까지 걸어가는 데만 20여분이 넘 게 걸리기도 했다. 민주계 인사들은 이만한 군중이 밀집한 것은 지난 2003년 홍콩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50만 명의 7.1 거리 시위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군중의 대부분은 젊은 층 으로 학생이 주축을 이루었다. 손에 촛불을 치켜들고 20 년 전 자유와 민주화를 외치다 군화발에 짓밟혀간 젊음 을 추모했다. 행사가 진행되면서 촛불을 손에 든 사람 상
당수는 흐느끼기도 했다. 천안문 사태와 관련해 중국에서 달아나 외국으로 망명 한 시위 지도자 중 한 사람중 처음으로 홍콩에 발을 들여 놓은 숑안은 행사에서 "홍콩은 모든 중국인의 자존심이 다. 여러분 모두가 자유를 위해 함께 나서고 있음을 보여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생 시위에 동정을 보였던 고 자오쯔양 중국 당서기 의 육성 녹음과 천안문 시위로 사망한 자녀들의 부모 모 임 대표 딩쯔린의 육성 메시지가 장내에 방송될 때는 모 두 숙연해졌으나 반면, 천안문 유혈사태를 있게 한 책임 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된 이붕 총리와 천안문 사태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얼마 전 곤욕을 치른 도날드 짱 행정 장관의 모습이 함께 행사장의 대형 스크린에 비춰지자 군중들은 일제히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주최 측이 주장하는 행사 참가인원은 경찰의 발표와는 항상 차이가 큰데 경찰은 올해 참가자가 6만2천8백 명이 라고 추정했다. 지난해의 경우, 주최 측이 참가자를 4만8 천명이라고 발표한 데 반해 경찰은 1만5천700명이 라고 주장했었다. 행사 주최 측은 천안문사태가 일어난 1989년 이후 태 어난 학생을 비롯해 젊은 층의 참여가 두드러진 것은 민 주화 정신이 새로운 세대로 계승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홍콩의 범시민적인 추모행사와는 반대로 20년 전 사태의 진원지인 베이징에서는 삼엄한 사전 경계 속 에 조용한 날을 보냈다. 중국 중앙정부는 이미 사전에 천안문 근처를 완전 봉 쇄해 일반인의 출입을 최대한 막았고 사망자의 부모나 당시 사건 관련자들을 일찌감치 자택에 구류하거나 관련 행사에 일절 참여하지 못하도록 일정 장소에 구류했다. 천안문 광장에는 대단히 많은 공안과 사복 경찰들이 배치돼 일대를 순회 감시했다. (2면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