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AR vol 31,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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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이 떠나간 빈자리가 커다란 공백이

만, 이들은 서구 근대건축을 ‘선택적으

었는데, 해외에서 밀려오는 포스트모더

로’ 취했다고 할 수 있다. 로스에서 출발

니즘과 해체주의의 흐름, 그리고 거대 자

한 점이야 세기말에 대한 인식으로 인한

본과 권력이 잠식하는 대형 프로젝트나

귀결이며, 코르뷔제와 칸의 탁월한 업적

도시 난개발로 인한 현란한 상업 건축물

을 생각하면 두 거장에 대한 천착은 자연

의 자극적 몸짓은 이들의 정체성을 위협

스런 일이다. 특히 이들의 작품이 진하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갓 독립

게 발산하는 빛과 침묵의 메타포, 그리고

한 3,40대의 젊은 건축가들은, 전 세대

건축의 본질과 영속적 가치는 4.3의 건

의 선배 건축가들과 구별될 자신들만의

축가들을 고무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여기엔 필연적으로

❹ 4.3그룹이 서양의 모더니즘, 혹은 근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도드라지게 부

대건축을 선택적으로 취했다는 사실은

각시킬 배경, 혹은 타자가 수반돼야 했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비록 서양 건축

다. 그것이 바로 그 ‘시대’다. 그들은 그

전반에 대한 이들의 인식과 수용에 한계

[1]

시대를 세기말의 혼돈적 상황으로 ‘진하

가 있었고 개인의 편차도 상당했지만,

4.3그룹의 모더니즘

게’ 채색한다. 그런데 그 세기말은 건축

여기서 세계의 주요 흐름에 대한 주체적

김현섭(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가 개인의 외적 조건만이 아니었다. 각

수용의 의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개인의 건축관의 불명확한 혼돈과 불안

들은 발터 그로피우스의 표준화된 생산

❶ 4.3그룹 건축가들은 여러 세미나에서

역시 이들이 등을 돌려야 할 내적 세기말

이나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제안한 강철

의 상호 크리틱과 전시 출판을 통해 각자

이었던 것이다.

과 유리의 고층 건물을 논외로 했다. 이

의 건축을 개념화하고 건축관을 피력했

❸ 이미 암시된 바지만, ‘또 다른 세기말’

런 류의 건축은 오히려 그들에게 극복해

다. 개인의 상황과 역량에 따라 큰 차이

에 대해 4.3그룹은 근대건축에 대한 학

야 할 대상이었다. 4.3그룹의 건축가들

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나, 여기서 우리

습과 천착으로 대응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은 이미 근대화 이후 빈약하나마 ‘한국

는 그들이 인식했던 세계 건축사, 특히

모더니즘을 제대로 경험하지 않은 채로

적 모더니즘’을4) 거친 토양에서 자라난

서양 모더니즘의 양상과 이에 대한 비판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하는 것, 해체할 대

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근대화의 결실

적 대응을 일정 정도 엿볼 수 있다. 본고

상이 없는데도 해체를 논하는 것은 그들

을 누렸지만 그 폐해를 맛본 건축가들이

는 이 지점을 착목한다. 즉, 그들의 모더

에게 온당치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다

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의 서양 근대건축

니즘에 대한 천착과 인식과 대응을 고찰

시 근본으로 돌아가길 원했고, 모더니즘

수용에는 당연히 여러 겹의 필터가 작동

함으로써 그들이 과연 역사의 어느 지점

이 그 출발점이었다.2) ⓦ 상당 부분 체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 “근대건축은

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간략하게나마 가

험과 직관에 근거했던 4.3그룹 건축가들

비인간적이므로 실패했다는 주장은 소

늠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1990년

의 모더니즘 인식에 이론적 토대를 마련

위 국제주의 양식의 건축과 모더니즘 건

대의 한국건축을 세계사적 흐름과 소통

해 준 이는 김광현이다. (그러나 김광현

축을 동일시하는 시각이다. 재해석의 첫

시키기 위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은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한정적으로

대상은 모더니즘이다. 여기서 얻은 결론

주제 발표문 1 │ 시대와 4.3그룹 [1] 4.3그룹의 모더니즘│김현섭 [2] 정체성과 시대의 우울│박정현 [3] 세기말과 시대정신│우동선 [4] 동시대 4.3그룹 밖의 건축적 지평│ 송하엽 [5] 4.3그룹과 건축 교육│전봉희

3)

은 비판적 모더니즘이나 비판적 전통 건

❷ 1990년대에 진입한 시점에서 4.3그

만 사용했다.) 그는 4.3의 멤버들에게

룹은 자신들의 시대를 세기말로 규정했

근대건축에 대한 철저한 학습을 요구했

축으로 대응하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포스트모던이든

(4.3그룹, 1992 / 1994년) ⓦ 이 인용문은

을 상당 부분 공유한 듯하다. 4.3그룹

해체든 현대적 상황에 맞는 비판적 건축

각각 서로 다른 세 건축가의 문장을 가져

의 건축가들이 자신의 시대를 세기말로

가로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돌프

다 조합한 것이다. 첫 문장은 근대건축

규정한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근거가 있

로스와 르 코르뷔제는 그 학습의 첫 관문

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채 외래 사조를

다. 대외적으로라면 세계화의 진취적 분

이었고, 변하지 않는 건축의 본질에 대

무분별하게 수입한 한국 현대 건축의 혼

위기가 시장 개방 압력과 함께하며 우리

한 탐구는 루이스 칸에 대한 학습과 답사

란을 꼬집은 이종상의 말이고(「1992.12

건축계의 미성숙에 대한 열등감을 자극

로도 이어진다. ⓦ 4.3그룹의 학습과 성

서울」, 1992년), 민현식의 둘째 문장은 ‘

했다. 그리고 김중업과 김수근이라는 두

찰을 고찰컨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

주체적 재해석’이 요구되는 기성 가치의

으며, 건축계 전반에서도 그러한 인식 1)

Wide AR no.31 : 1-2 2013 Report 4.3그룹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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