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AR vol 23,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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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2. 하늘과 땅 그리고 바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3. 행위가 시작된다. 4. 나무 전체를 가릴 만한 큰 흰색 천이 준비된다. 5. 크레인과 비계를 사용하여 비워진 캔버스를 설치한다. 7. 풍경과 나무가 분리된다. 8. 카메라의 셔터가 눌려진다. 이명호의 <나무(Tree)> 연작은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그래서 하 찮게 생각되는 나무 한 그루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게 한 다. 공사 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비계와 크레인을 이용한 그의 구 축 행위는 풍경의 일부였던 나무를 장소와 분리시키며 동시에 장 소와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낸다. 일상적인 풍경에 묻혀 있던 객체로서의 나무는 작가의 이성적 사고를 통해 소외되었던 가치

큰 스케일로 자신을 드러내며 관객을 압도하는 방식보다 작은 대

를 드러내며, 최소한의 개입으로 이전부터 거기에 있음을 새로움

상을 통해 압축적으로 관객과 소통하려는 작가의 의지이기도 하

으로 탈바꿈시킨다. 이는 예술의 근원인 ‘재현’이라는 거대한 담

다. 작업 과정에서의 이런 일관된 태도는 언어의 수식을 통해서가

론을 너무나 단순한 방식으로 풀어나감을 의미한다.

아니라 그의 사진 속 나무 한 그루를 통해 드러나게 된다.

절제하다 ⓦ 이명호의 나무는 단순하다. ‘단순하다’라는 건 흔히

행위하다 ⓦ 그렇지만 정작 이명호 자신은 보이는 결과물, 즉 한

무언가가 과하지 않아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이다. 이는

장의 사진보다는 그것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 더 소중하다고 말

외부 세상과의 최소화된 관계로 인해 분석되고 해석되기보다는

한다. 그런 연유로 자신의 작업을 사진-행위(Photography–Act)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명호는 자신이 보여

라고 명명한다. 나무, 바다 연작을 포함한 그의 작업 전체를 아우

주고 싶은 것을 온전하게 보여 주기 위해 덜어 내고 또 덜어 내서

르는 이 언어는 세상과 작가 사이의 관계 설정일 것이다. 이는 외

더 이상 덜어 낼 게 없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부 세상에 대한 일련의 창조적 행위가 단순히 사진 찍는 행위 너

그리고 이를 절제라는 단어로 압축한다. 나무 한 그루를 찍기 위

머의 작업 방식임을 드러낸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해 벌이는 한바탕 소동을 하얀 캔버스에 응축시키는 행위는 그의

생긴다. 사진가의 ‘행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전통적으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을 극명히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로 우리는 사진가에 대한 매우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어쩌

미학적인 관점 너머 삶의 태도와 작업 방식 더 나아가 대중과 소

면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는 행위는 이제 더 이상 사진가의 영

통하는 방식으로 확장시킨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발표한 <나

역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또한 카메라를 매개체로 결과물을 만들

무(Tree)>는 총 15작품이다. 이러한 많지 않은 작업을 통해 그는

뿐이지 사진이라는 규정된 틀로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고 이야기

의도적으로 관객과 거리를 두고 작품이 숙성되고 충분히 음미되

한다. 오히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진이라는 결과보다

기를 기다린다. 또한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요구되는 사고의

는 사고하고, 실행하는 과정이며, 더 나아가 그 행위 자체를 결

과정과 물리적 행위의 큰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진은 전시

과로서 인식한다.

장의 큰 벽면을 채우지 않는다. 이는 현대 사진의 특징 중 하나인

모호하다 ⓦ 그가 이토록 중요시하는 행위라는 게 사진가 이명호

이명호, <Sea #1>, 종이에 잉크, (H))840×(W)2580mm, 2009.

Wide AR no.23 : 09-10 2011 Depth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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