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AR vol 17,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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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은 폐교를 문화 공간으로 활용한 예이다. 별다른 기록 없이 여러 번 덧댄 흔적만이 남은 두 칸 규모의 건물을 군의 한정된 지원 예산으로 새롭게 변신시키는 일은 누가 봐도 녹록하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한편으로는 아프리카 분위기가 물씬 나고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 끄는 박물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다. 그림건축의 임근배 대표는 이 박물관의 수장인 조명행 관 장과 외도 보타니아의 최호숙 대표(그녀는 얼마 전 탄자니아 마콘데 부족의 목공예품들로 이 박물관 개관 1주년 기념전을 치르고 전시 품들을 기증했다) 등과 논의를 거쳐 기존 건물은 거의 유지하고 얼룩말 무늬의 외피를 뒤집어 씌우는 것으로 리모델링 방향을 정했다. “유공 철판에 실제 얼룩말 무늬를 페인트로 칠한 거예요. 엉덩이 부분에 해당하는 모서리는 자연스럽게 둥글리고, 북측 면 외벽도 엉덩 이 무늬 그대로 그려 넣었지요. 얼룩말 꼬리를 달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요.(웃음)” 대신 이 위트 넘치는 건축가는 교실 옆의 식당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아프리카 집 모양의 원뿔형 건물을 세우게 됨으로써 이 박물관 이 얻게 된 이야깃거리를 들려주었다. “얼룩말이 초가집에 얼굴을 들이밀고 뭔가를 하는 모습이지 않나요? 집 안에 고개를 집어 넣고 물 을 마시는 것일 수도 있고, 집안을 둘러 보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집안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원뿔형 건물의 고깔 형 태는 저 멀리 보이는 산의 모양과도 잘 어우러지도록 디자인됐다. 아프리카 문화가 담긴 건축이지만 우리 땅에 지어지는 건축이니만큼 낯설지 않아야 한다는 의도에서다. 결국 아프리카 집과 얼룩말의 조화로 영월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은 인근 고씨 동굴로 향하는 다리 위 를 비롯하여 근처 어디서 봐도 친근하고 돋보이는 존재가 됐다.

전시장 입구인 원뿔형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스파이럴(spiral) 계단을 가진 다목적 홀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정도 규모의 박물관/미술관 은 대체로 안내데스크를 지나면 곧장 전시 순로로 이어지게 마련인데, 이곳은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야외 데 크와 연결되어 있고, 또 대형 포스터를 걸어 놓을 수 있을 만큼 천장고도 높아 제법 여유가 있다. 전시 순로는, 홀을 지나 장신구, 가면, 공예품 등이 전시된 1층 상설전시실을 관람하고 기존 계단을 이용하여 2층 기획전시실의 전시와 각국 주한 아프리카대사관의 출품 전시물을 감상하고 나면 스파이럴 계단을 통해 다시 1층으로 내려오게 되는 형식이다. 전시가 끝나는 2층의 복도 끝에 스파이럴 계단을 매단 이유도 이처럼 한번에 돌아나올 수 있는 전시 동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복도와 기획전시실은 전시 관람을 하는 동안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이다. 라멘 구조가 아닌 조적식이어서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복도는 옛 시골 학교의 정취가 그대로 묻어 난다. 그것은 아마도 여닫을 수 있는 루버 창을 통해 따뜻한 빛과 신선한 공기가 드나들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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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때문일 것이다. “박물관은 빛과 습도 조절이 중요합니다. 더욱이 이곳은 나무로 만든 전시품들이 많아서 습도에 굉장히 민감하지요.

상설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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