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 AR vol 5,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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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5호 | 와이드 칼럼 선진국 타령 | 임근배 WIDE ARCHITECTURE : WIDE Column no.5 :september-octobe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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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올림픽이 끝났습니다. 우리 나라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예

의대생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는 추세라는 말을

년에 비하여 다양한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내었습니다. 소위 선진국형으로

들었습니다. 성적이 좋은, 그래서 우선권이 주어진 순서대로 성형외과, 안

가고 있다고들 말합니다. 참 다행이며 희망적인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예전

과, 피부과 등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이 적은 쪽, 응급 환자가 없는 쪽, 돈이

에는 몇 가지 종목에서만 무더기로 메달을 따 조금은 억지로 목표를 이루고

좀 되는 쪽을 선호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자연스런 사회의 발전적 추

기쁨에 들떴었습니다. 올림픽의 성적 순위에 따라 국가 간의 서열이 정해지

세라 해야 할까요? 이렇게 가다가 언젠가는 어렵고 위험한 외과수술을 우

는 것처럼 거기에 온 힘과 정성을 쏟았었습니다.

리 나라에 취업해 온 후진국 의사들에게 맡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 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살 집도 외국인 취업자들이 설계하는 세상이

저희 사무소에는 설계직이 필요하여 오래 전부터 구하고 있는데, 도통 지원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게 우리가 그리는 선진국의 모습인

자가 없습니다. 일이 많은 것도 아닌데 그 나마 그 일을 처리할 인원이 모자

지 참 걱정입니다.

라 힘이 듭니다. 요즘 저희 사무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무소가 겪는 어 려움이라 합니다. 작은 데, 큰 데 할 것 없이 모두가 인력난을 겪고 있습니

선진국이란 ‘앞서 나아가는 나라’쯤으로 일컬어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 설계 전문직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예전에는 건축과를 졸업하면

선진국이란 힘 없는 사람도 여러 가지 혜택을 함께 누리며 살 수 있는 나라

설계 사무소나 건설 회사 그것도 아니면 연구소나 학교로 진로를 선택하였

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조금 앞선 사람들이 조금 뒤쳐진 사람들을 돌보며

습니다. 아주 단순한 직업 체계였습니다. 건축을 한다면 으레 설계를 하는

공동의 행복을 위하여 모두가 힘쓰는 사회이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최선의 선망이었습니다. 창작이라는 덕목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러나

천박한 경제 일변도의 동물적인 사회는 아닐 것입니다. 물론 지금의 소위

이제는 건축을 전공하면 할 일이 많습니다. 사회가 복잡하게 발전함에 따

선진국들의 그러한 노력은 자국민들을 위해서만 유효하고 인류라든가 세

라 설계 말고도 부동산 개발, 금융, 투자, IT 분야 등으로 진로의 선택 폭이

계라는 더 큰 대상에 대해서는 야만에 가까울 정도로 냉정하고 야비하기까

상당히 커졌습니다. 보수도 예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높아졌습니

지 한 것이 아쉽기는 합니다.

다. 건축 전문직도 선진화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박봉에, 격무에, 보장된 미 래도 모호한 과거의 건축 설계직에 비하면 상당히 나아진 조건입니다. 그

얼마 전 타계하신 소설가 박경리 선생께서『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

런데 젊은이들이 설계직을 마다하고 새로운 다른 분야를 선호하게 된 배경

게』 라는 책을 낸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은 강의록을 묶은 것입니다. 선생은

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창작의 범주에 들어가는 건축 설계가 이미 기피 직

그 강의에서 작가인 당신이 작가가 되려는 젊은이들에게, 문학을 왜 하는

업의 대열에 끼이게 된 것이라 보는 견해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

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하여 당신의 경험과 생각으로 젊은 지망생들에게 사

다. 건축은 어떤 소기의 행위를 담는 그릇입니다. 설계는 그 해법을 만들어

명과 동기와 희망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건축 또한 문학 못지않게 한 사회

내는 일입니다. 온갖 조건들과 그 목적에 대하여 가시적인 솔루션을 제시

의 삶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여건입니다. 사람 살 만한 나라를 만들어 가는

하는 일이 그 과정에서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일입니다. 세상의 일이 그렇

데에 건축인 또한 고유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의 미래의

게 풀어지지 않는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 왠지 설계라는 일을 기피하는 현

그릇을 지을 젊은 건축 지망생들에게 사명과 동기와 희망을 심어주는 일은

상이 두드러져 가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 노력에 비하여 대가가 따라 주

우리 건축인들의 몫입니다.

질 못하는 현실 때문일까요? 아니면 일의 특성상 예민하게 신경 쓰면서 끈 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하는 데에 대한 단순한 거부감일까요? 창작이라는 가

글 | 임근배(발행편집인 고문, 그림건축 대표)

치를 능가하는 새로운 가치 기준이 생긴 걸까요? 어렵고 고된 작업을 거쳐 잉태의 희열을 느끼게 되는 환희가 있다는 것을 우리의 젊은 건축 지망생 들에게 알려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앞으로 우리 삶을 담는 그릇은 누가 만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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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ARCHITECTURE REPORT no.5 : september-octobe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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