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6
기고
2017년 7월 22일 토요일
조선일보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토요 기고 <182>
쏘렌토의 이발사 이야기
김유훈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이태리는 유럽 최대의 고대 국 가로서 역사적,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라이다. 그리고 그 곳 의 도시들은 이름만 들어도 유명 하다. 로마, 나폴리, 베니스 등등 은 언제라도 가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이곳 밴쿠버에도 오래전 에 정착한 많은 이태리 이민자들 이 살고 있어 그들의 고향 지명을 그대로 쓰고 있어 나름대로 향수 를 달래고 있다. 특히 밴쿠버 시 내 Commercial이나 E. Hastings St.에는 지금까지 이태리 교민들 이 많이 살고 있다. 특별히 내가 말하고 싶은 분은 Nanaimo와 E. Hastings근처에 는 이발관 “SORENTO”에서 일하
는 한 이발사의 이야기이다. 모두 이태리 출신의 이발사들이 40년 을 넘게 일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중에 제일 연장자는 85세의 Vince 라는 분이다. 금년 9월이면 86세 가 되신다. 벌써 4년전 그분은 이 미 TV방송에도, 그리고 Vancouver Sun 신문에 소개가 된 분이다. 이 분은 지난 해까지 일주일에 닷 새 일을 하였다. 그러던 작년 여름 가게가 다른 사람에게 팔려 그분은 일하는 날 이 이틀로 줄었다. 그러자 그분은 이력서를 만들어 써리 랭리 근처 의 이발관을 돌아다니다가 랭리에 서 하루 더 일하게 되었다고 자랑 하셨다. 세상에, 85세의 나이에 이 력서를 들고 다닌 분은 처음보았 다. 내가 그 분을 잘 알게 된 사연은 바로 그 근처에서 아내가 작은 스 모크 샵을 하고 있어 그곳의 단골 손님인 그분과 친하게 되었다. 물 론 내가 트럭일을 쉬게 되는 날에 아내를 도와 핼퍼를 하며 여러 손 님들과 친하게 되었다. 특히 Vince 는 집이 써리 Freser Heights에 있 어 자주 왕래하며 더욱 친하게 되
었다. 5500SF, 그리고 3층 대저택 에 주말농장 수준의 정원에서 각 종 야채는 물론 아주 큰 무화과 나 무까지 잘 관리하고 있다. 4년 전 그가 무화과 나무 몇 가 지를 우리집에 갖고 와 심었는데 그중 두 가지가 잘 살아서 작년부 터 우리집에도 무화과 열매가 열 리고 있다. 지난 2월, 그 분은 전립선 수술 을 하느라 한달 가량 일을 쉰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몸이 회복되자마 자 다시 일하러 나온 모습을 보고 주변사람들이 많이 놀랐다. 이발 일은 하루 10시간을 서서 하는 직 업이다. 그럼에도 85세 되신 그분 은 조금도 흔들림없이 자신의 단 골 손님들의 머리를 깍아주며 일 하는 모습에 놀라지 많을 수 없다. 지금 내 나이 70을 바라보는 이때 에 그를 보며 “나도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일해볼까?”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자신은 없다.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모든 것에 확신을 갖고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내 나이에 건강하여 미 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일할 수 있 음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뿐
만 아니라 쏘랜토의 이발사 Vince 그 분 역시 일하는 것을 보면 그분 에 비해 나는 청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주 나는 택사스에 다녀오 는 길에 시애틀 근교 이사콰에 사 는 딸의 집에 들러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애는 캐나다, 미국 회계사로 미국 대기업 본사에 서 부장으로 일하며 연봉이 대단하 다. 때문에 나는 가끔 딸에게 가정 사를 이야기를 하면서 무언가 기대 해 보지만 이곳에서 교육받고 자란 아이라 직접적으로 곤란하게 말하 지 않는다. 모처럼 두 부녀가 함께 하며 이 야기 할 기회가 되서 약간 불쌍모 드로 한마디 하였다. “수정아, 아빠 가 내년이면 70인데 트럭은 이제 좀 힘들구나. 열심히 일해서 은행 빚 다 갚으면 Retire 할까보다.”라 고 하니 딸애가 “아빠, 그래도 생활 비는 벌어야지,”… “그리고 뭐 놀면 뭐해, 일하는게 낫잖아”… 그리고 “ 아빠, 크루즈 빨리 예약해, 내가 보 내 준다고 했잖아…” 나는 사실 약 간 딸에게 기대하며 이야기 하다가 할 수 없이 계속 트럭운전을 해야
만 한다는 정답만 듣게 된 셈이다. 다음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 에게 딸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여보, 수정이가 아빠 Retire 하지말고 일
더 하래, 그리고 생활비는 벌어야한 대” 그 말을 들은 아내는 “그럼, 수 정이 말이 맞지, 당신 나이에 일이 있으면 고마운거 아냐? 그리고 놀
면 뭘해, 물 들어 올 때 배 띄우는 거 몰라?” “……”
봇짐장수 티브이에서 삶이 천형인 듯한 사람을 보며 나는 울었다
기역으로 꺾인 허리, 변형된 발로 하루 열 시간 걸어 생선을 판다 뒤로 넘어져 허리뼈가 부러졌는데 돈 없어 치료를 못 해 활처럼 휜 등 임현숙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가난이 아픔보다 더 무서워 발품을 판다는 고희 넘은 할머니 온종일 힘겹게 생선 판 돈 이만 팔천 원 삶이 가여워서 울었다 누군가 점심을 주면 터질 듯 배부르고 굶을 땐 한 없이 굶는단다 자식들에게도 가난을 물려주어 미안하다며 이다음에 자식 신세는 지지 말아야 하겠노라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생선 봇짐을 지겠다고 듬성듬성한 이 드러내며 하회탈처럼 웃는다
고달프다 여길 때 저 사람을 떠올려보라 몸은 지옥 길에 뒹굴어도 마음은 꽃길을 걷는 천사 같은 사람 나는 저이보다 젊고 허리도 꼿꼿하고 발도 튼튼하고 일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이 길은 꽃길
나는 흠뻑 울었다 너무너무 감사해서.
天國에서 먹은 32만원짜리 바나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 는 게 아니었어. 인천발 오클랜드 행 12시간 비행을 견디느라 그 우 울한 영화를 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악몽을 꾸었지 뭐야. 영 문도 모른 채 복면 괴한들에게 쫓 기는, 딱 개꿈 같은 상황이랄까? 비 행기가 출렁여준 덕에 잠을 깼는데 기분이 영 께름칙하더란 말이지. 근데 개꿈이 아니었어. # 명분은 ‘출장’이지만 목적은 ‘답 사’라고 말했었나? 만 쉰이 되면 지 상낙원 뉴질랜드로 날아가 텃밭에 키위 심고, 트레킹 다니며 자유인 으로 살리라 다짐했었지. D데이를 딱 3년 앞두고 출장 기회가 왔고, ‘ 이런 게 바로 운명이구나’ 벅차하 며 입국심사장으로 들어서는데 갑 자기 고릴라처럼 생긴 한 남자가 날 노려보며 따라오라 손짓하는 거 야. 배낭이 문제였어. 남자는 살인사건 현장을 조사하 는 국과수 직원처럼 양손에 비닐 장갑을 끼고 샅샅이 훑더군. 누군 가 내가 잠든 사이 마약 봉지를 넣 은 걸까? 하지만 잠시 후 남자 손에 들려 나온 건, 배낭 속에서 이리 치 이고 저리 치이다 짓물러 터진 바 나나였어. 고작 바나나 1개! 고릴라 아저씨는 왜 바나나를 신 고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어. 배고프 면 먹으려고 남겨둔 건데 깜박 잊 었다고 했지. 고릴라가 콧방귀를 뀌더군. “다들 그렇게 말해.” 그러고는 팸플릿 한 장을 던졌 어. “영어 읽을 줄 알지?”오호, 이 불길한 예감이라니. 숫자 하나가
바퀴벌레처럼 눈에 확 달려들었지. 400! 내 해석이 맞는다면 벌금으로 400뉴질랜드달러,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32만원을 안 내면 법정에 가야 한다는 뜻이었어. 짧은 영어 로 버벅거리며 항의했지. 고작 바 나나 한 개 때문에 이 많은 돈을 내 야 하느냐. 애걸도 했지. 뉴질랜드 여행이 처음이라 몰랐다, 갖고 있 는 현금도 없다…. 그러자 고릴라 가 명쾌한 해법을 일러주더군. “카 드도 돼!” # 비자카드로 눈물의 400달러를 긁고 나온 이방인을 반긴 건, 태풍 의 영향으로 오클랜드 전역에 불어 닥친 비바람이었어. 날은 또 왜 그 리 추운지. 홧김에 택시를 탔지. 인 도에서 왔다는 기사가 말했어. “아 주 비싼 바나나를 먹었군. 근데 오 클랜드는 모든 게 비싸. 담배 한 개 비도 1달러(800원)라니까?” 연일 먹구름에 비 뿌리는 날씨를 뚫고 업무를 처리했지. 눈 뜨고 빼 앗긴 32만원을 보충하려 끼니는 햇 반과 컵라면으로 때웠고. 살기 좋 은 도시 첫손에 꼽힌다더니 시내 에 노숙자는 왜 그리 많은지. 남은 하루는 그냥 발 닿는 대로 걸었어. 원래는 새들의 천국이라는 티리티 리마탕기 섬으로 여행하려던 건데, 도무지 의욕이 나야 말이지. 낯익은 통닭 그림을 발견한 건 어스름녘이었어. 식당 문 열고 들 어서니 “어서오세요”라는 한국말 이 들려오는데 눈물이 찔끔 쏟아 지더라.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먹어치우 며 바나나 설움을 토해내자, 이민 17년 차 주인장이 “그 정도라 천만 다행”이라고 했지. 호박씨 몇 알 때 문에 추방된 사람도 있다며. 청정 낙원에 사시니 좋으냐 물었어. 집 값은 서울의 두 배, 세금은 소득의 절반이라 돈 모일 틈 없는데, 노숙 자들은 한 달 800달러의 실업수당
을 받는 이상한 나라라고 하더군. “20억 정도 여윳돈 있나요? 아니면 그냥 한국에 사세요.” # 비 오는 날 동물원에 가본 적 있 니? 비가 오면 홍학 떼의 합창도, 긴꼬리원숭이의 재롱도, 수사자의 포효도 죄다 구슬프게 들리지. 명 치 끝에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던 불쾌감의 원인을 알아낸 건 오클 랜드 동물원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에서였어. 백인 운전사가 2명 의 중국 여성을 향해 고래고래 소 릴 지르더군. 왜 과자 봉지를 들고 버스에 탔느냐며. 그래. 단지 32만원 벌금이 억울 한 게 아니었어. 평생 목수로 성실 히 일해온 자신을 의료보험금이나 타내려 꼼수 부리는 양아치로 공무 원들이 낙인 찍자 ‘나, 다니엘 블레 이크’가 외쳐. “사람은 자존심을 잃 으면 모두를 잃는 거야.”난 자존심 을 다친 거였어. 그것도 아주 심하 게. 고릴라 아저씨가 날 잡범 취급 하며 손가락 하나로 오라 가라 지 시하는 대신, “정말 미안한데 이건 뉴질랜드를 여행하는 사람이 반드 시 지켜야 할 원칙이야”라고 설명 해 줬다면 비싼 수업료 낸 셈치고 쿨하게 받아들였을 거야. 버스기사 도 과자 부스러기는 차 안을 더럽 히니 휴지통에 버려달라고 정중히 부탁할 수 있었어. 나 또한 타인을 저렇듯 무례하게 몰아친 적 없는지 자책이 쓰나미처럼 밀려들더군. 모멸감! 어쩌면 이 세상 모든 부 부싸움, 테러, 전쟁의 씨앗은 모멸 감에서 싹트는지 몰라. 웬 오버냐 고? 옹졸하다고? 너도 32만원짜 리 바나나를 먹어보면 생각이 달라 질 걸? 지상에 천국은 없나니. 그래 도 꼭 가고 싶다면 신발 밑바닥부 터 확인하길. ‘천국’은 네 구두 뒤 축에 묻은 흙덩이도 결코 용납하 지 않아.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