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작고한 안방마님들
故 박두을·변중석 여사 1세대 대표격 2세대 이정화 여사 돋보여…자살도 있어
지
금의 안방마
그런지 바깥 활동
님 총수 부
은 되도록 삼가고
인 이전에 이들을
집안일에만 전심
며느리로 맞아 가
전력을 다해왔다.
풍을 가르치고 곳
예의범절에도
간열쇠를 대물림
밝아 대소사가 두
한 1세대 안방마
루 화목하다. 지금
님들이 있다. 대표 적으로 호암 이병
故 박두을 여사
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부인 박두을 여 사,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부 인 변중석 여사가 있다. 이들은 공히 9남매의 엄마로서 남편 들이 세계 굴지의 대기업을 이끌 수 있
를 맞추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故 이정화 여사
까지 몸치장 얼굴 치장 한 번 제대
로 해본 적이 없고 사치와는 거리가 멀
또 명령만 존재하는 호암의 권위적
다. 그처럼 수신제가의 자세에 흐트러
인 태도를 감내하는 것은 그리 간단치
짐이 없는 내자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 여사는 묵묵
음이 있다”고 회고했다.
히 현숙한 양처의 길을 걸었다.
박 여사는 생전에 자식 문제로 가슴
도록 내치(內治)에 충실한 현모양처였
특히 자녀의 수가 4남5녀, 3남4녀 등
아픈 일을 많이 겪었다. 호암의 혼외자
다. 게다가 아프지 않은 게 없고 바람
들쭉날쭉 발표될 때면 속이 상할 만도
녀 문제를 시작으로 장남인 맹희 씨가
잘날 없는 ‘열손가락’의 교육과 훈육에
하지만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어찌 보
아버지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경영권
온몸을 던졌다.
면 ‘내 배 앓아 낳은 자식’의 수는 박 여
승계구도에서 탈락하는 모습을 지켜봐
사가 가장 정확하게 아는데도 불구하
야 했다.
삼성家‘내조의 여왕’박두을 여사
고 모든 것을 가슴에 담고 살았다.
또 둘째 아들 창희 씨가 일본인 여성
박두을 여사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
호암의 입에서 4남5녀란 소리가 나
과 결혼한다고 호암의 눈 밖에 나서 고
다. 그만큼 안방 내밀한 곳에서 내조
오면서 이에 대한 논란은 잠잠해졌다.
생한 일이며 사카린밀수사건을 책임
에만 몰두했다는 방증이다. 박 여사는
실제로 호암은 박 여사에게서 3남4년,
지고 구속되는 등 바람 잘 날이 없었기
1926년 호암과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일본인 처 사이에 1남1녀를 둔 것으로
때문이다.
결혼했다. 당시 호암의 나이 18세, 박여
알려졌다.
끝내 창희 씨는 박 여사보다 먼저
사는 21세였다.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
호암은 그의 자서전에서 “처음 본 인
세상을 등졌고 그가 이끈 새한그룹도
으로 경북 달성군 하빈면 산골마을에
상은 건강한 여성이라는 것이다. 슬하
1997년 IMF 때 모두 매각되는 비운을
서 태어났다.
에 4남5녀를 두고 반세기여를 서로 도
맞았다.
호암과의 결혼 생활은 결코 쉽지 않
우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호암 타계 후 외부에서 우려
았다. 하루에도 몇 번 씩 갈아입는 옷이
내자 역시 유교를 숭상하는 가문에
했던 가족 간의 갈등을 잠재우거나 또
며 시계초침보다 정확한 호암의 일과
서 전통적인 부덕을 배우고 성장해서
는 조화롭게 해결하는 등 그녀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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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변중석 여사
February 2014
2014-01-25 �� 12: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