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Years Living as Freemen 자유인으로 산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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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신일고등학교 1회 동기회 졸업 50주년 기념

2020년 신일고등학교 1회 동기회 졸업 50주년 기념

1970 - 2020

1970 - 2020


차례

신일의 꿈

1965년 1. 학교법인 신일학원 설립

7

2. 신일학원의 설립목적

9

1966년 1. 본관 기공식

17

2. 본관 공사

22

3. 교명 제정

34


자유인으로 산 50년

노스탤지아

1967년

1. 첫 입학전형

41

2. 입학식

46

3. 1학년 반별 명단

50

4. 학생회 조직

52

5. 교가 제정

59

6. 개교 1주년행사

60

1968년

1회 동기회 역사

1. 2학년 반별 명단

65

2. 동계 및 하계수업의 시작

74

3. 체육관과 과학관 건립

76

1969년

1. 3학년 반별 명단

85

2. 대학입학 예비고사

92

1970년

1. 제1회 졸업식

101

2. 신일의 첫 아들들에게

114

1971년 127


신일의 꿈


19 65 – 19 6 6


19 6 5

6


학교법인 信一學園 설립

1

이영수李永守, 이인수李仁守, 이봉수李峯守, 이광수李廣守 네 형제의 선친인 이사홍씨는 한학을 많이 한 분이었다. 그리고 조부께서도 선비였으므로 조부와 선친께서는 네 형제에게 ‘평소에 영재를 양성하는 교육이 이 세상에서 매우 가치 있는 일’임을 늘 강조하셨다. 모친께서도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 돈을 옳게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가훈으로 삼으셨다.

이러한 어른들의 가르침을 가슴깊이 간직한 네 형제는 세속적인 명리나 영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진실된 열정으로 이 땅에 훌륭한 학교를 세우겠다는 뜻을 모아 1965년 11월 8일 학교법인 신일학원 정관을 제정하고 이사회를 조직한 후 이봉수씨를 이사장으로 선출하고 1966년 3월 10일 문교부에서 법인설립 인가를 받았다.

현판

신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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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네 형제를 소개하시는 장윤철 교장선생님, 이봉수 이사장님, 이영수, 이인수, 이광수이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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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입지 조건 및 학교 건축 종합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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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분 설립자들이 매입한 대지의 총면적은 약 6만평에 달하였다. 1958년경 이 지역은 논으로 뒤덮인 녹지대였으며 장차 주거 계획지구로서 아직도 완전히 주거 지구를 형성하고 있지 않아 황량한감마저 주었으나, 우이초등학교, 인창초등학교, 성암여자상업학교 및 한국신학대학이 이 지대에 있었고, 교사 전면에는 서울의 산세를 자랑하는 백운대와 인수봉이 우뚝 자리하여 바라보이는 문자 그대로의 명당에 자리 잡아 지리적 위치부터 앞날의 무한한 발전을 기약하는 곳이었다.

중동의 국빈國賓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아카데미하우스에 들렀던 일이 있었다. 산을 좋아하던 그 국빈은 거기서 북한산 연봉과 도봉의 수려한 경관에 매료되어, 공식일정을 마친 뒤에 양해를 구하고 일정을 연장하여 그 산에 올랐다.

그렇게 수려한 경관이 조망되는 신일학교터는 1959년 9월에 1차로 약 3만평을 1억 원에 매수하였다. 평당 3천여 원이었는데, 그 당시 지금의 서울대학교 부지 80만평이 매물로 나와있었는데 평당 25원을 호가하였다. 그런데 현재의 교지를 택한 것은 환경을 중히 여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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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대

신일고등학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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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대, 인수봉, 도봉의 장엄한 모습이 기상을 드높이며, 그 기슭에 묻혀있는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들과 애국선열들에게서 뜨거운 나라사랑과 사명감, 영도력을 물려받게 되는 이런 천혜의 입지 여건이 어디 또 있는가? 설립자들은 학교 교사를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하여 다각도로 검토하며 해외의 유수한 학교들을 방문하였으며, 이상적인 학교 설립을 위한 설계를 김중업(金重業) 건축가에게 의뢰하였다. 김중업은 프랑스에서 당시 근대건축의 거장인 르 꼬르비제에게 서양의 현대건축을 사사 받은 당시 한국 근현대 건축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건축가였다. 그로 하여금 서구라파 일대의 훌륭한 학교를 약 2개원 간에 걸쳐 순방케 하고 난 뒤에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학교 설계를 위하여 150여 만원의 거금을 들였다. 당시 1960년대 물가는 쌀 1말이 300원이고 경찰공무원 월급이 3,000원이었으며 1인당 GNP는 $100 시대였다.

본교 본관 건물의 건축 구조상의 우수성은 다음과 같은 기록에서 입증되고 있다. 『韓國現代文化史大系(1)』(민족문화연구소 간행, 1975년) ‘현대건축’편에 의하면 ‘60년대의 갑작스러운 건축 수요의 팽창은 이념이 굳지 못한 상태에서 당돌히 받아들여진 관계로 시행착오와 혼란한 점도 있었으나, 한국의 건축이 적어도 형태상에서 크게 발전한 시기였다‘고 기술한 다음 ’특히 1966년의 뛰어난 건축물로서 신일중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유네스코회관, 조흥은행 본점, 한국체육회관, 삼성빌딩, 서울시외전화국 등을 들 수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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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一학원의 설립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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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재단에서 오랫동안 구상하여 오던 信一학교가 세워진 지도 어언 삼개성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일들을 돌아볼 때 결코 순탄한 길만을 걸어 온 것도 아니었고 앞으로의 걸어갈 길도 어려운 점이 많이 있을 것이 예상됩니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에 누구나가 다 그러하듯이 우리도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信一을 세울 때에 다짐했던 설립 목적을 다시 상기함으로써 우리 信一가족이나 또 우리 信一학교를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信一학교의 설립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봉 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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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바른 민주 시민의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를 세운 것입니다. 조그마한 땅덩이 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려면 아무래도 자신이 바로 서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한 걸음 나아가서는 남을 위할 줄 아는 올바른 민주시민의 양성이 우리의 급선무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바른 민주 시민의 양성”을 위하여는 다시 몇 개의 세부적인 목표가 설립되어야 했습니다.

1)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신앙인의 양성

오늘날 방향 감각을 잃은 고독한 현대인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너」와 「나」의 관계가 분명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올바른 신앙의 소유라고 하겠습니다. 2천 년전에 이 땅에 와서 몸소 보여 주신 그리스도의 生의 길을 체득할 때에 「너」와 「나」의 관계가 분명하게 되고 한 걸음 나아가서는 「나」와 「이웃」까지도 살 수 있게 되는 놀라운 기적 아닌 기적이 우리에게도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봉사와 협동 정신이 깃 들인 시민의 양성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하면 너무나 이기적인, 개인주의적인 경향으로 흐르기 쉬운 법인데 아무래도 우리 삼천만이 잘 살기 위해서는, 아니 전 인류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협력해 주는 봉사와 협동의 정신인 것입니다.

3) 신용과 신의의 사람 양성

너무나 거짓과 사리사욕과 무책임이 편만한 우리 사회 정말 남을 믿기 어려운 시대, 아무래도 이를 바로잡으려면 자라나는 제2세들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으리라 봅니다. 친구지간에, 이웃 간에, 사업의 場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용과 신의입니다. 우리 信一학생들에게는 이 중요한 것을 꼭 가르쳐서 밝고 명랑한 우리 사회의 역군들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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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올바른 사립학교 본연의 자세 구현”입니다. 국공립학교의 수가 부족하므로 오늘날 사립학교의 설립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립학교들이 참다운, 보람 있는 사립학교로서의 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재단에서는 좀 더 알차고 뜻 깊고 보람 있는 사립학교의 설립을 꾀한 것입니다. 이에는 또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목표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1) 교육에 지장이 없는 좋은 시설

상당수의 학교들이 학생들은 많으나 시설이 잘 안 되어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여 우리는 충분한 시설을,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여, 정말 잘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불편함이 없이, 구김살 없이, 마음껏 공부하게 해 주자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이루어진 것이 본 교사와 체육관이요, 온실, 보일러실, 과학관 등의 제반 설비인 것입니다.

2) 특성을 살리는 교육

앞에서 말한 여러 가지 교육 목표를 염두에 두고 가르치고 배우면서 또 하나의 중요한 목표를 세운 것은, 많은 좋은 시설을 통하여 개개인의 특성을 살려가는 학원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특성을 살리는 교육, 이는 곧 信一학교의 특성도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이 실현될 때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립학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우리 信一학교를 통하여 불식되리라 믿어지며 우리 信一을 거치는 학생들은 하나 하나가 다 슬기롭고 용감한 역사의 창조자가 될 것을 믿어 마지않습니다.

(이 글은 1967년 「신일」 창간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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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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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기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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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건축 기공식이 1966년 3월 18일 서울특별시 성북구(지금은 도봉구)

미아동 산13번지 학교 부지에서 거행되었다. 이날은

신일역사의 첫 장을 여는 날이었다. 심한 우중에도 불구하고 약 300명의 인사가 모여 비를 흠뻑 맞으면서도 삽자루를 힘껏 잡고 엄숙한 마음으로 흙을 다졌다. 이날의 기공식 예배는 김세진金世鎭 목사의 사회로 김동수金東銖 목사의 기도, 한경직韓景職 목사의 설교, 최복현崔福鉉 서울시 교육감의 치사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김동수 목사는 이 학원이 이 땅 위에서 광명과 방부제의 역할을 다하여 줄 것을 간절히 기도하였고,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는 교육의 정신적 기초를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 위에 세울 것을 강조하는 뜻 깊은 설교가 있었다. 또한 이 자리에 참석한 다수 인사들은 한결같이 거대한 포부와 높은 이상을 안고 새로 출발하려는 신일학원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한경직 목사의 설교 후에 초대 교장인 장윤철張允哲 이사의 경과보고, 박희경 양의 축가, 이봉수李奉守 이사장의 인사에 이어 강신명姜信明 목사의 축도로 기공식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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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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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각 일간신문들은 신일학원의 출범에 관한 기사를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신일학원(이사장 이봉수)에서 새로 세우는 신일중고등학교(성북구 미아동)

기공식이 18일 하오 3시에 있었다. 4천8백

평에 세워질 이 교사는 실외에 관리실, 체육관, 생활관 등이 세워질 설계 총부지가 5만 평이다. – 한국일보 1966년 3월 19일자

신일학원(이사장 이봉수)은 18일 오후 신일중고등학교의 신축기공식을 본교 대지인 미아동 산13번지에서 거행했다. 5만평 대지 안에 2천여 평의 4층 본관의 보통교실과 도서실, 생활관, 특별교실, 강당 등을 5개년 계획으로 세울 예정인 이 학교는 67년부터 신입생을 뽑는다. – 조선일보 1966년 3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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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는 이봉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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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직 목사 설교, 뒤로 김세진 목사, 최태섭 이사

기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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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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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현장을 응시하는 이봉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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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식 후 이봉수 이사장은 매일 신일학교를 방문하여 공사현장을 감독하며 인부들을 독려하는 열성과 정성으로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건물은 살아있는 건물로 그때와 변함없이 건재하고 있다.


초기 건축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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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현장 초기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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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공사

건축현장을 돌아보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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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건축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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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건축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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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현 서울시 교육감 방문

건축현장을 설명하는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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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현장을 시찰하는 방문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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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을 드러낸 본관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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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건물과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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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의 꿈

공중에서 바라 본 신일학교 초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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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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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명校名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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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네 분 설립자들이 이름 있는 한학자, 교육자 등에게 의뢰하여 교명을 제정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사업의 가장 기본이며 목표인 ‘信用’이 첫째라는 점에서, 이들 네 형제가 일생을 바쳐서 노력한 결실로서의 교육기관은 맨 먼저 ‘信義’로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에 따라서 ‘信一’이라는 교명이 정해졌던 것이다.

아울러 이 학교의 교육이념은 기독교 신앙에서 이루어지고 불신의 이 사회를 믿음과 신뢰가 넘치는 사회로 개조시키는 데 마땅히 일익을 담당하여야 한다는 강한 신념에서 ‘신일’이라는 교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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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아 Nostalgia


19 67 – 19 70


19 67-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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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학교는 대한민국 교육법에 명시된 ‘국가에 유익한 중견 인물을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교육’하는 것을 이념으로 하였다. 이러한 信一의 교육이념을 구현하기 위하여 기독교 정신에 의하여 기독교적인 인격을 함양하려 하였던 것이다. 개교 전 張允哲 초대 교장에 의하여 교육학자, 신학자, 철학자 등의 의견을 널리 수렴하고 검토한 후, 다시 설립자와의 협의를 거쳐서 교훈이 제정되었다.

믿음으로 일하는 自由人

처음에는 믿음의 사람, 자유의 사람, 일하는 사람 등과 같이 일종의 덕목의 나열이었으나, 이념 구현에 실효를 거두기 위해 이 3개의 덕목을 한데 합하여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으로 하였다. ‘믿음으로’란 말은 기독교적인 교양인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며, 결코 종교 교육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었고, ‘일하는’이란 말은 勞作(노작)하는 생활인의 양성을 뜻하는 것이고, ‘자유인’은 민주주의적 교육으로 추상적인 관념의 교육이 아니라, 학교생활을 통하여 몸에 밴 민주주의를 터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봉수 이사장님은 학생들을 친자식처럼 아끼셨고, 교정의 풀 한 포기도 소중히 여기셨으며, 신일학원을 위해 아낌없는 투자로 고교 최고의 시설과 교육여건을 마련해 주시며, 학생과 선생님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셨고 평소 좀처럼 나서지 않으시고 항상 끝에 서 계셨으며, 매일 학교에 들르셔도 교직원이 불편할까 또 학생들 수업에 방해될까 조용히 다녀가시곤 하였다. 그리고 이봉수 이사장님과 장윤철 교장선생님은 세심하게 배려하여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선생님들을 초빙하였다. 50년 전 우리가 신일에 입학하여 방과 후에 청소를 하지 않고, 스팀에 도시락 데워먹고,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호강을 만끽했던 그 옛날의 추억이 살아있다.

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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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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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첫 입학 전형

1

고교 첫 입학전형을 위해 조선일보에 신입생 모집공고를 게재하였고, 다음 날인 1월 16일에는 같은 내용을 동아일보 지상에 공고하였다.

2월 19일 입학원서의 접수를 마감한 결과 모집인원 360명의 배를 넘는 761명이 지원을 하여 2.1:1의 지원율을 보였다.

2월 11일에는 서울시 교육위원회로부터 고교 입학고사 문제를 인수하여 시흥 별장에서 문제 작성 작업에 착수하여 2월 13일에는 학력고사, 14일에 체능검사를 실시하여 성적이 우수한 장학생 19명을 포함한 360명을 선발하였는데 합격권은 94.7점(170점 만점)이었다.

67년 학교전경

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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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소집일

예비소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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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소집일 운동장과 주변 모습

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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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입학시험 당일 학교 앞 모습

2월 13일 입학시험 후 귀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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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자 발표

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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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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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하여 모집된 학생들로 제1회 입학식이 중고 합동으로 1967년 3월 7일 오전 10시 아직 칸막이가 되지 않은 본관 5층에서 거행되었다. 당시의 입학식순은 다음과 같다.

사회 (교무과장)

1 개회사… …………………………………………………… 사회자 2 애국가 제창…………………………………………………  다함께 3 찬송… ………………………………………………………  다함께 4 기도… …………………………………………… 이귀선 목사(교목) 5 성경 봉독………………………………………………  김종렬 선생 6 설교… …………………………………………………  한경직 박사 7 신입생 선서……………………………………  입학생 대표 이길 8 축가… …………………………………………………  교직원 일동 9 훈화 … ……………………………………… 학교장 장윤철 교장 10 치사 … ………………………………………………이사장 이봉수 11 교직원 소개…………………………………………………  학교장 12 학부형 인사 …………………………………… 대표 박동엽 장로 13 교가… ………………………………………………………  다함께 14 축도… …………………………………………………  김세진 목사 15 폐회사 … …………………………………………………… 사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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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하시는 이봉수 이사장님

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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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입학식 낯익은 친구들의 앳띤 얼굴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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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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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년 명단

3

◎ 담임 선생님 명단 1반

2반

3반

4반

5반

6반

7반

이현택

이종신

강수일

오장은

장정남

김권호

정태만

◎ 반별 명단 권순배 권오형 김기호 김덕승 김만식 김명석 김수곤 김수훈 김연태 김영육 김익희 김인철 김중곤 김창순 노배영 맹흥재 1반

박영상 방상국 배원근 백인형 서능제 성연호 신동표 신학주 심재동 오진택 유흥종 윤장한 윤진평 이경탁 이두원 이설호 이선홍 이선희 이용길 이태근 이해성 장규혁 장두이 장성식 정상무 정일원 조건호 조대현 주정환 최병권 최병헌 최윤규 한영상 황수현 강성수 강신교 강재현 김상천 김세현 김영길 김윤수 김인중 김제훈 김종욱 김충선 김흥수 박 건 박남용 박일경 방기헌

2반

백언기 백은기 손영로 송재성 송희락 신철호 안병문 우창영 유광성 윤세진 이병노 이선흥 이성훈 이태헌 이형규 임형도 장무철 정경인 정경준 정기재 정용석 정해운 조덕인 조명춘 조삼열 조상래 조영호 진영주 최용병 최진열 허명윤 강성동 고영학 고인범 김성혁 김어룡 김영달 김영배 김정규 김창권 김형곤 김혜성 김화열 김 환 라재수 백남식 변수복

3반

선창규 손재춘 신필로 안대식 엄태후 유재경 이병현 이상호 이재영 이준희 이창욱 장승일 장인근 정광일 정광현 정승찬 조명제 조재유 최광수 최요섭 최윤석 최인황 최한용 한동희 현광석 홍달선 홍승근 홍영칠 김동준 김순중 김재구 김종욱 김형무 남상화 모종인 박광식 박노선 박인순 박현철 백선희 소호성 신동석 안봉선 오 영

4반

유만선 윤종식 이규옥 이규현 이상현 이영섭 이조영 이진웅 이충구 이형준 임태욱 장계원 장일민 전광남 정봉교 조규진 진용권 최정하 한성수 함상운 황영수 황종권 고중희 김병직 김재경 김재수 김항균 김흥배 노훈호 박종헌 박효식 예충열 오염진 원광희 원종성 유정곤 윤완식 이남찬

5반

이병갑 이성윤 이용천 이춘식 임명환 임성호 임금재 임상빈 장달순 전영호 정광철 정락용 정자룡 조용태 조항복 최성규 최영길 추희경 한성구 허정회 허 진 황근중 강성원 경광현 고진해 김관동 김문열 김영명 김 철 박봉근 박종학 박찬영 송윤수 신승규 이민창 이종상 이헌배 임태순

6반

장승훈 장신철 장화영 전상배 전상우 정병주 정해영 조근호 조철주 회시여 최용덕 최익완 최종서 최진묵 최찬희 최태근 하영길 한창균 홍우창 곽인수 권오규 김광수 김대성 김수원 김수창 김영채 김왕중 김은섭 김헌일 김형곤 김홍겸 나덕진 노영문 박경신 박상규

7반

백봉태 백선기 백진규 손영진 안은섭 안일준 양상진 이경만 이도선 이상우 이영수 이영우 이재명 이재웅 이정구 이현기 장지영 전성윤 전영봉 조동수 조병현 조영원 최상국 최원근 최중경 추명길 한우빈 함동일 홍세용 홍윤기 황규성 황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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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4반(담임 오장은 선생님)

1학년 1반(담임 이현택 선생님)

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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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학생회 조직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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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의 학생회(1975년부터 고등학교는 학도호국단이라 칭하였다.)의 조직과 활동은 먼저 교훈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과 회훈 ‘자주, 협동, 봉사’ 그리고 ‘새 역사 창조의 역군’, ‘신일의 맏아들’ 등의 기치 아래 1967년 4월 29일 제1대 고등학교 학생회 정부회장의 선거를 실시한 결과, 회장에 조항복(고1) 부회장에 손영진(고1)이 각각 당선되어 같은 해 5월 10일 애국 조회 시 취임식을 가졌다.

당시는 중고 신입생(1학기)만 있었기 때문에 회장단을 우선 고1에서만 뽑았고, 이듬해인 1968년에 중학교 학생회 회장단을 선출하였다.

본교 학생회 정·부회장 선거의 특색은 교사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은 가운데 학생들 스스로의 손에 의해서 선출된다는 민주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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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초대 학생회 조직이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첫걸음이었기에 일거수일투족에 매우 신중을 기하였다. 그것은 이들의 ‘리더십’에 따라 700명의 신일의 학생들이 승리의 고지로 향하느냐, 그 반대의 방향으로 가느냐의 문제도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 초대 회장단은 학생회 지도를 맡은 강수일姜秀一 선생의 친절하면서도 엄격한 가르침에 따라, 700명 신일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였다.

초기(1967년도) 행정부 임원 및 대의원회는 다음과 같다.

행정부

대의원회의

회 장

조항복

의 장

홍순성

부회장

손영진

부의장

경광현

총 무

김왕중

회 계

함동일

봉사부

손영로

장학부

김주인

종교부

이 인

보도부

배원근

학예부

차정진

음악부

정광철

체육부

나덕진

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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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고등학교 1대 학생회장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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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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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화원에서 식수하시는 장윤철 교장선생님

1967년 초기학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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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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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가 제정

5

개교에 앞선 사전 준비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교가를 제정하는 일이었다. 무릇 교가는 그 학교의 정신과 기상을 표현하며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이 항상 부름으로써 정서를 도야하고, 학생으로서의 자부심과 애교심을 고취하는데 없어서는 아니될 중요한 요소임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이 교가를 제정하기 위하여 1966년 11월에 주요한朱耀翰 선생에게 그 작사를 의뢰하고, 12월에는 김동진金東振 선생에게 작곡을 의뢰하였다. 특히 교가 제정 때에는 작사, 작곡자 두 분이 내교하여 본교를 두루 돌아 본 후에 작품 창작에 임했다.

작사, 작곡을 한 주요한, 김동진 선생은 모두 사계의 권위자로서, 널리 알려진 분들이다. 주요한씨는 문장가로 시인으로, 또 정치가(민주당 張勉 內閣의 商工部 장관 역임)로서

너무나 유명했다. 그는 한국 근대

자유시의 효시가 되는 ‘불놀이’라는 시로써 활달대도豁達大度한 시상詩想을 펼쳤듯이 본교의 신일 정신을 형상화하는 본교의 교가를 작사하였다.

58


교가

1

동트는 하늘 찬란한 빛이

백운대 위에 퍼져 날 때

주요한 작사 / 김동진 작곡

젊음의 노래 메아리치는

우리의 자랑 신일 동산.

굳세게 서자 배움의 벗들

새로운 때는 열렸나니

자유의 깃발 펴드는 곳에

그 앞을 누가 막을소냐.

믿음을 쌓고 슬기를 길러

겨레를 위해 몸바치면

신일의 영광 신일의 영광

하늘과 땅에 날리리라.

2

북한산 기슭 훤칠한 터에

너나의 포부 서려있고

저 원산가도 백두산까지

위대한 소망 이어 준다.

솔잎은 청청 향기를 내고

종소리 얼려 가슴 뛸 때

인생의 새벽 청춘의 꿈을

해마다 여기 겹쳤노라.

사랑의 맺음 다정한 추억

세월을 따라 깊으리니

신일의 영광 신일의 영광

억천만 해에 날리리라.

노스탤지아

59


개교

6

1967년 10월 27일 개교기념행사에는 많은 내외빈 손님들과 기념식을 갖고, 고등학생인 우리들은 반 별로 기상천외한

주년 행사

— 60

1

아이디어로 가장행렬을 하였고, 체육행사로는 기마전과 단축마라톤이 있었는데 단축마라톤에서는 이형준이 1등으로 테이프를 끊었다.


67년 학교에서 본 도봉산

노스탤지아

61


조회사진

62


이귀선 목사님 설교

노스탤지아

63


19 6 8

64


2

학년 명단

1

◎ 담임 선생님 명단 1반

2반

3반

4반

5반

6반

이경준

이 찬

박태남

주명갑

정태만

성우경

◎ 반별 명단 강성동 고인범 김광수 김덕승 김만식 김명석 김병직 김완구 김은섭 김재경 김재구 김종욱 김중곤 김형곤 김흥수 모종인 1반

박 건 박노선 박인순 박일경 박찬영 박현철 백봉채 서능제 신필호 신학주 안은섭 안일준 오 영 유만순 윤명술 윤진평 이도선 이선희 이영우 이정구 이해성 이현남 임상빈 장두이 장승일 장신철 장지영 정봉교 정일원 조근호 조동수 조명춘 조상래 조명재 조철주 조항복 최요섭 최인황 최정하 최진묵 한성수 허정회 강성수 곽인수 권순배 김성배 김영채 김익희 김정규 김제훈 김창순 김흥배 라재수 노훈호 박봉근 방상국 백선희 백인형

2반

백진규 서명택 신성재 안병문 엄태후 유창익 이성윤 이영수 이창욱 이철기 이춘식 이충구 이태근 이헌배 임금재 정광일 정락용 정승찬 조영원 최광수 최익완 최진열 최찬희 최태근 하영길 한성구 한영상 함상운 황수연 황용일 황종권 권오규 김성혁 김수곤 김영달 김왕중 김윤수 김재수 김치훈 김형무 김홍겸 박광식 박종학 백언기 백은기 손영로 손영진

3반

신동석 신철호 심재동 오진택 우창영 윤정훈 이규현 이민창 이상호 이재웅 이조영 이현기 장달순 전영봉 전영호 정광현 정상무 정자룡 정해영 조병헌 주정환 최용덕 추명길 한동희 허 진 현광석 홍우창 홍윤기 강신교 강재현 고영학 권오형 김관동 김동준 김상친 김수훈 김순중 김인중 김종욱 김 철 김충선 김항균 김혜성 김 환

4반

명계현 박남용 박용범 박종헌 배원근 변수복 성연호 소호성 손재춘 송윤수 송재성 안대식 안봉선 원광희 유재경 유지수 윤세진 윤응준 이경탁 이규옥 이병갑 이병덕 이병현 이선흥 이영섭 이용길 이재영 이형규 이형준 임성호 임태욱 장규혁 장화영 전상배 전상우 정경인 정기재 정해운 조삼열 조영호 진영주 최영길 최윤석 함동일 허명윤 홍달선 강성원 고중희 고진해 김세현 김수창 김어룡 김연태 김영육 김의동 김창권 노영문 맹홍재 박상규 박영상 선창규 신승규

5반

양상진 오성환 오염진 원종성 유재두 유정곤 유흥종 윤완식 윤장한 이남찬 이두원 이병노 이상우 이상하 이상현 이설호 이선흥 이성훈 이선효 이용천 이재명 이종상 이진웅 임태순 장무철 장성식 장승훈 전성윤 정경준 정병주 조건호 조덕인 조용태 조재유 진용권 최병헌 최시영 최용병 최원근 최종섭 최한용 홍승근 홍영칠 황근중 황영수 경광현 김기호 김대성 김문열 김수원 김승우 김승주 김영명 김영길 김영배 김인철 김철호 김학규 김헌일 김형곤 김화열

6반

나덕진 남상화 노배영 박경신 박효식방기헌 백남식 백선기 송회락 신동표 예충열 유광성 윤재하 윤종식 이경만 이상태 이준희 이태헌 임명환 임형도 장계원 장인근 장일민 전광남 정광철 정용석 정철희 조규진 조대현 최병권 최상국 최성규 최윤규 최종서 최중경 추희경 한우빈 한창균 함영호 홍세용 황규성

노스탤지아

65


2학년 2반(담임 이찬 선생님)

66


2학년 6반(담임 성우경 선생님)

노스탤지아

67


조회 모습

68


채플시간

노스탤지아

69


1968년 2월 선생님들

70


봄소풍, 선생님들

노스탤지아

71


테니스장의 선생님들

추수감사절 (좌로부터)이귀선 목사, 이영수 이사, 이봉수 이사장, 김삼열 중학교교장, 이일천 교감, 장익성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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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수양회

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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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및 하계수업의 실시

2

무명의 신일에서 수년 내에 일약 사학 정상의 명문고로 급성장을 가져다 준 원동력에는 여러 제도적인 뒷받침과 우수한 선생님들의 열성적인 지도와 동계수업과 하계수업 때문이었다.

개교 첫해 겨울방학인 1968년 1월 3일부터 25일까지 처음으로 실시한 동계수업은 전교생(고1,중1)을 대상으로 기초과목인 영어, 수학을 중심으로 기초학력 배양에 주안점을 두고 실시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학교는 40여일의 긴 겨울방학을 가졌으나 신일은 난방시설을 최대한 활용하여 겨울방학을 10일로 단축하고 동계수업을 실시하여 학생들의 학력을 높였다. 1969년 1월 3일부터 1월 23일까지 실시된 두 번째 동계수업에서는 이듬해에 배출될 제1회 우리들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 예년과 같이 기초과목 수업을 재단에서 부담하여 밤마다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수업을 받게 하였고 마지막 날은 이봉수이사장님을 비롯한 재단이사들이 마련해준 Buffet대접을 인상 깊게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또한 제2운동장에서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공부에 전념하는 우리들이 때때로 스케이팅으로 공부에 지친 몸을 단련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많은 배려를 해 주었다.

74


교내 스케이트장

노스탤지아

75


체육관과 과학관 건립

3

전국적으로 그 규모나 시설 내용면에 있어서 가장 우수한 건축물이 신일학원 교정에 새로 건립되었다. 체육관은 용만관이라 하여 이영수 이사장 아호를 따서 1969년 12월 10일 준공하였는데 주요 시설은 농구장, 유도장, 탁구장, 음악교실, 소연주실, 음악 개인연습실, 선수 합숙실이 있고, 과학관은 이인수 이사의 아호인 향산을 써서 1969년 10월 3일 연건평 1,501평에 준공하였다.

체육관 공사

76


체육관 공사현장을 방문한 이사장 일행

노스탤지아

77


학교봄전경

78


체육관 준공시 모습(1969. 12. 10) 민관식 대한체육회 회장 참석

노스탤지아

79


준공식

참석가족들

80


준공식에 참석한 선생님들

과학관 공사

노스탤지아

81


82


노스탤지아

83


19 6 9

84


3

학년 명단

1

◎ 담임 선생님 명단 1반

2반

3반

4반

5반

6반

명노걸

최창열

김용해

이 찬

이영환

주명갑

◎ 반별 명단 곽인수 김성배 김영채 김윤수 김익희 김치훈 김홍겸 박광식 박봉근 박종학 방상국 손영진 신성재 신필호 윤정훈 이규현 1반

이민창 이재웅 이창욱 이충구 이태근 이헌배 이현기 이형규 임성호 임금재 전영호 정상무 정승찬 정자룡 정해영 조병헌 조영원 최광수 최용덕 최태근 추명길 한동희 한영상 홍윤기 황용일 강성수 권순배 권오규 김만식 김성혁 김영달 김왕중 김재수 김정규 김종욱 김형무 김흥배 노훈호 모종인 백선희 백언기

2반

백은기 백진규 서능제 서명택 손영로 신동석 신철호 심재동 안병문 안은섭 오 영 오진택 우창영 이상호 이성윤 이철기 이춘식 이형철 임상빈 장달순 장지영 전영봉 정광일 정광현 정락용 조근호 조명제 최요섭 최진묵 최진열 하영길 한성구 함상운 현광석 황수현 황종권 강성동 고인범 김광수 김덕승 김명석 김병직 김수곤 김완규 김은섭 김재경 김재구 김제훈 김중곤 김형곤 김흥수 라재수

3반

박노선 박일경 박찬영 백봉태 백인형 신학주 유만선 유창익 윤진평 이도선 이선희 이영수 이영우 이정구 이조영 이해서 이현남 장두이 장승일 장신철 정봉교 정릴원 조동수 조명춘 조철주 조항복 주정환 최익완 최인황 최정하 최찬희 한성수 허정회 허 진 홍우창 경광현 김기호 김대성 김문열 김수창 김승우 김영육 김창순 김철호 김학규 김항균 김형곤 나덕진 남상화 노배영 맹홍재

4반

박 건 박상규 박영상 박인순 박현철 박효식 백남식 백선기 소호성 송희락 신동표 신현종 오염진 윤명술 윤재하 윤종식 이경만 이상태 이준희 이태헌 임명환 임형도 장계원 전광남 정광철 조대현 조삼열 조상래 진영주 최병권 최상국 최성규 최윤규 최종서 최중경 추희경 한창균 함영호 홍세용 고영학 고중희 권오형 김수원 김수훈 김영배 김의동 김인중 김인철 김종욱 김창권 김충선 김헌일 노영문 명계형 배원근 선창규 성연호 송윤수 안대식 안봉선 안일준 양상진 엄태후 예충열 원종성 유재두 유정곤 유지수 윤완식 윤장한 이 경

5반

이규옥 이남찬 이두원 이병갑 이병덕 이병현 이상우 이상하 이설호 이선흥 이성훈 이신효 이재명 이재영 임태순 장무철 장인근 장일민 전상배 전성윤 정경인 정용석 정철희 정해운 조규진 조덕인 조용태 조재유 최용병 최원근 최종섭 한우빈 함동일 황영수 강성원 강신교 강재현 고진해 김관동 김동준 김상친 김세현 김순중 김어룡 김 철 김혜성 김화열 김 환 박경신 박남용

6반

박용범 박종헌 변수복 손재춘 송재성 신승규 오성환 원광희 유광성 유재경 유흥종 윤세진 윤웅준 이병노 이상현 이선흥 이영섭 이용길 이용천 이종상 이진웅 이형준 임태욱 장규혁 장성식 장승훈 장화영 전상우 정경준 정기재 정병주 조건호 조영호 진용권 최병헌 최시영 최영길 최윤석 최한용 허명윤 홍달선 홍승근 홍영칠 황규성 황근중

노스탤지아

85


강성동

강성수

강성원

강신교

강인구

강재현

경광현

고영학

고인범

김관동

김광구

김기호

김대성

김덕승

김동준

김만식

김명석

김문열

김순중

김승우

김승주

김어용

김형무

김혜성

김홍겸

김홍빈

김화열

김인중

김왕중

김인철

김은섭

김의동

김의섭

김익희

김재경

김재구

김충선

김치훈

김학규

김향균

김헌일

김형곤(A) 김형곤(B) 김흥배

김흥수

박 건

박경신

박광식

박남용

박노선

박봉근

박용범(민부)

배원근

백남식

백봉태

백선기

백선희

백언기

86

박상규

박영상


고중희

고진해

곽인수

권순배

권영삼

권오규

권오형

김 철

김 환

김병직

김상친

김성배

김성혁

김세현

김수곤

김수원

김수창

김수훈

김연태

김영길

김영달

김영대

김영명

김영배

김영채

김완규

김윤수

김재수

김정규

김제훈

김종욱(A) 김종욱(B) 김중곤

김창권

김창순

김철호

나덕진

나재수

남상화

노배영

노영문

노훈호

맹홍재

명계형

모종인

박인순

박일경

박종학

박종헌

박찬영

박현철

박효식

방기헌

방상국

노스탤지아

87


백은기

백인형

백진규

변수복

서능재

서명택

선창규

성연호

소호성

신승규

신철호

신필호

신학주

신현종

심재동

안대식

안병문

안봉선

우창영

원광희

원종성

유광선

유만선

유재경

유재두

류정곤

유지수

윤종식

윤진평

이경만

이경탁

이규옥

이규현

이남찬

이도선

이두원

이상호

이석호

이선흥

이선흥

이선희

이성윤

이성훈

이신호

이영섭

이조영

이종상

이준희

이진웅

이창욱

이철기

이춘식

이충구

이태근

임명환

임상빈

임성호

임태순

임태욱

임형도

88


손영로

손영진

손재춘

송윤수

송재성

송회락

신동석

신동표

신성재

안은섭

안일준

양상진

엄태후

예충렬

오성환

오염진

오 영

오진택

유창익

유홍종

윤명술

윤세진

윤완식

윤웅준

윤장한

윤재하

윤정훈

이민창

이병갑

이병노

이병덕

이병현

이상우

이상태

이상하

이상현

이영수

이영우

이외갑

이용길

이용천

이재명

이재영

이재웅

이정구

이태헌

이해성

이헌배

이현기

이현남

이형규

이형준

이형철

임금재

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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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두

장계원

장규혁

장달순

장두이

장무철

장성식

장승일

장승훈

전영봉

전용호

전경인

정경준

정광일

정광철

정광현

정기재

정락용

정해운

조건호

조규진

조근호

조대현

조덕인

조동수

조명춘

조병헌

주정환

진영주

진용권

최광수

최병권

최병헌

최상국

최성규

최시영

최정하

최종서

최종섭

최중경

최진묵

최진열

최찬희

최태근

최한용

한창균

함동일

함상운

함영호

허명윤

허정회

허 진

현광석

홍달선

황용일

황종권

90


장신철

장인근

장일민

장지영

장화영

전광남

전상배

전상우

전성윤

정병주

정봉교

정상무

정승찬

정용석

정일원

정자룡

정철희

정해영

조삼열

조상래

조영원

조명제

조영호

조용태

조재유

조철주

조항복

최영길

최요섭

최용덕

최용병

최원근

최윤규

최윤석

최익완

최인황

추명길

추희경

하영길

한기승

한동희

한성구

한성수

한영상

한우빈

홍세용

홍승근

홍영칠

홍우창

홍윤기

황규성

황근중

황수현

황영수

노스탤지아

91


The Legend of 1969

2

우리나라 대학시험은 그 세월만큼이나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1969년부터는 대학 본고사에 앞서 대학입학 예비고사를 실시하였는데, 제1회 1969학년도 대학입학 예비고사(시험실시는 1968년 12월 19일)가

실시되었다.

1969년 1월 4일자 동아일보의 사설에 따르면, 총 응시자 11만 2천여

명 가운데 대학 총 정원의 1.5배수인 6만 1천여 명을 합격시켜

대학입학 예비고사와 신일고

대학 본고사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주었는데 합격율은 50%를 약간 상회하는 정도였다. 당시 컷오프는 340점 만점에 210~220점 정도였다.

제2회 1970학년도 대학입학 예비고사는 1969년 11월 19일 화요일에 시험이 실시되었는데 신일고는 316명이 지원하였다. 개교 후 첫 시험이었다.

그런데 문교부에서 발표한 1970년 제2회 대학입학 예비고사에서 전국 우수고교 10선選에서 그 당시 이름도 생소한 신일고등학교가 당당 전국 5위를 차지하게 된다.

“뉴스를 들었을 때 솔직히 말씀드려서 정신이 아득했습니다. 너무나 좋아서였죠. 하지만 당연히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 왔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교사는 물론 학생 모두가 보통 열성이 아니었으니까요.” – 장윤철 교장선생님의 말

92


이 때 학교 밖에서는 의아와 경탄을 금치 못하였으나, 신일학교 안에서는 노력의 대가를 당연하게 받은 데 대한 축제의 분위기였다. 평소에 재단이 충실한 재정적 뒷받침을 해주고 교사들의 열정어린 가르침과 이를 신뢰하고 따르는 학생들의 학습열의가 이와 같은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문교부 발표에 의하면 ‘신일고’는 경기고의 7명에 이어 낙방생은 단 8명으로 전국에서 제2위를 과시하였다.

전국 총 응시자의 합격률이 불과 45.43%에 불과하여 단 1명의 합격자도 내지 못한 학교가 150여개 학교에 달하였던 사실에 비하면 그 당시 신일고가 거둔 성적은 그 동안의 노력과 열정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개교한지 3년 밖에 되지 않는 무명의 신일고가 ‘전국5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보이자 그 당시의 세인들은 다소 미심쩍은 눈빛으로 “운이 좋아 어쩌다가 한번 그렇게 되었겠지”하는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다음해 71학년도 제3회 예비고사 성적도 신일고는 전년도의 전국 5위를 계속 유지하였을 때 일약 명문고로서의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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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남자고 합격률 순위

학교명

지원자수

합격자수

불합격자수

합격률

불합격자최저순위

1

경기고교

864

857

7

99.19%

1

2

제물포고교

454

444

10

97.80%

3

3

서울고교

939

918

21

97,76%

4

4

경복고교

960

936

24

97.50%

7

5

신일고교

316

308

8

97.47%

2

6

경남고교

757

736

21

97.23%

5

7

서울사대부고

678

655

23

96.61%

6

8

부산고교

868

838

30

96.54%

8

9

경북고교

910

869

41

95.49%

10

10

경북사대부고

639

608

31

95.15%

9

◎ 전국 여자고 합격률

94

순위

학교명

합격자

합격률

1

경기여고

607

99.02

2

숙명여고

529

98.69

3

이화여고

542

98.37

4

경남여고

572

97.78

5

경북여고

501

97.28

6

전남여고

386

96.74

7

부산여고

557

94.41

8

진명여고

515

93.64

9

인천인일여고

257

92.78

10

정신여고

394

91.63


신문기사 우수고교명단

노스탤지아

95


대학입학 예배고사 수험생에게 승차 편의제공하는 경찰들

96


대학입학 예비고사장

노스탤지아

97


대학입학 예비고사

98


대학입학 예비고사

노스탤지아

99


1970

100


동트는 하늘 찬란한 빛이

1

회 졸업식

1

백운대 위에 퍼져날 때, 젊음의 노래 메아리치는 우리의 자랑 신일 동산.

신일의 첫 열매를 맺는 뜻 깊은 이곳 배움의 터전에 와서 3년간의 형설의 공을 쌓고 빛나는 졸업장을 받는 이 날의 주인공들이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교가 소리는 우렁찼으며, 이들 어린 벗들과 신일 초창기의 갖가지 희로애락을 함께한 설립자 네 분과 장윤철 교장이하 전 교직원들은 뜨거운 감격 속에서 잠시 눈시울을 붉히고 추수 후의 농부의 심정과 같은 감회에 젖었던 것이다. 1970년 1월 17일 이 날은 신일이라는 배움의 요람지에서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 첫 열매가 맺어지는 뜻 깊은 날이었다. 이 날의 식장에는 다수의 학부모들과 내외 귀빈이 참석하여 졸업생 제군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졸업생들은 한결같이 암탉의 품을 떠나는 병아리의 심정인 양 모교 은사들에 대한 감사의 생각으로 시종일관하였으며 졸업한 후에라도 자신들의 활동과 삶의 자세가 모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보다 큰 분발과 노력을 다짐하는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교육사상 처음으로 시행된 제2회 예비고사에서 전국 5위를 기록함으로써 모교에 대하여 귀중한 선물을 남겼던 것이다. 당시 개척자적인 존재로 명예롭게 이 학원의 문을 나선 신일의 맏아들은 331명이었다.

노스탤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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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모교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넘쳤고, 자신들이 디딤돌을 놓기 시작한 아름다운 전통이 그들의 후배들에게 영원토록 계승되기를 간절히 소원했던 것이다.

당시 재학생 대표 羅建雄군은 송사를 통하여 빛나는 업적을 쌓고 교문을 나서는 졸업생 형들의 앞날을 충심으로 기원했다.

“(전략) 새 역사의 기수로서 이 황량한 대지 위에 놓은 이 결심은 그 무엇으로 더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크나큰 발자취로서 영원토록 남아있을 것입니다. 역사의 머릿돌이 새겨질 때까지 3년이라는 세월은 진정 피눈물나는 고통과 괴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자리를 빛낼 수 있는 불멸의 등불이 되어 끊임없이 타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후략)”

이 날의 졸업식은 장윤철 교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그 식순은 다음과 같다.

제1회 졸업식 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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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악(졸업생 입장)……………………………………… 신일 밴드

2

애국가… ………………………………………………… 일 동

3

국민교육헌장 ……………………………………… 부 교 장

4

찬송가(305장) … ………………………………………… 일 동

5

기도… …………………………………………… 이귀선 교목

6

성경 봉독………………………………………… 이일천 교감

7

찬양… …………………………………………… 신일 성가대

8

설교… …………………………………………… 강원룡 박사

9

축가… …………………………………………… 윤치호 선생

10 졸업장 수여……………………………………………학 교 장 11 상장 수여………………………………………………학 교 장 12 훈화… …………………………………………………학 교 장 13 치사… …………………………………………………이 사 장 14 송사… …………………………………………… 재학생 대표 15 답사… …………………………………………… 졸업생 대표 16 졸업… ………………………………… 졸업생・재학생 대표 17 교가… …………………………………………………… 일 동 18 축도… …………………………………………… 홍동근 목사 19 주악(졸업생 퇴장)……………………………………… 신일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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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 졸업가 박목월 작사 / 나운영 작곡

1 / 졸업생

스승님이 뿌려 주신 진리의 씨앗 마음의 터 밭에 고이 가꾸어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으로 가지마다 꽃이 필 그날을 향해

떠납니다 떠납니다 오늘은 날개를 펴고

신일의 영광을 길이 빛내리

2 / 재학생

길어 내도 끝이 없이 고이는 샘물 신앙과 신의와 신념의 동산

서로서로 깨우치고 정성을 다해 사람의 참된 길 바르게 배워

따릅니다 따릅니다 우리도 그 뒤를 이어

신일의 영광을 길이 빛내리

3 / 모두함께

볼수록 새로워라 정든 백운대 날마다 자라나는 기쁨의 동산

정의와 자유와 굳센 의지로 겨레의 앞날에 불을 밝히는

되렵니다 되렵니다 사회의 빛과 소금이

신일의 영광을 길이 빛내리

쩌렁쩌렁 울리는 졸업가는 끝없이 높고 넓은 백운대 위 푸른 하늘 위로 메아리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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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살 동안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다정다감했던 소년 시절, 생애의 한 중요한 시기를 신일이라는 배움의 동산에서 보낸 졸업생들이 입을 모아 부르는 찬송가 305장의 낭랑한 음성과 상기된 표정들은 때마침 신선한 아침 공기와 함께 스며든 햇살로 하여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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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2월 4일, 이 날은 신일을 설립한 네 분 설립자들과 장윤철 교장 이하 직접 일선에서 지도한 교사들이 필생의 첫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감격어린 날이었다.

이 날의 식장인 체육관에는 스탠드의 좌석을 꽉 메운 학부모들과 영광된 졸업생들을 축복해 주기 위해 참석한 내외 귀빈 및 학생들로 뜨거운 열기가 장내를 휩싸고 있었다.

이봉수 재단이사장은 치사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졸업생들의 영광된 졸업을 축하해 주었다.

“(전략) 아직 한 번의 졸업생도 내보내지 못한 전통이 없는 학교, 아니 학생이란 단 한 명도 없이 건물만 지어놓고 학생 모집을 하던 3년전, 여러분들은 다른 많은 전통 있는 학교를 제쳐놓고 자진해서 신일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안이한 생각을 가지지 않고 황막한 벌판에 맨주먹으로 달려들어 피땀을 흘려 가며 새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3년 전의 그 용기와 투지가 오늘 여러분들의 영광스러운 졸업을 가져오게 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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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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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졸업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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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날 최인황 한성수 허정회

부모님과 최진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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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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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과 정광일 하영길 김흥배

교장선생님과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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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열 담임선생님과 정광일 하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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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의 첫 아들들에게

2

졸업생 여러분은 신일의 맏아들들이다. 이 말은 여러분이 신일에 들어온 첫 날부터 너무나 많이들은 말이여서 이제는 싫증이 날 정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은 맏아들로서 여러분의 책임을 강조하는 말만은 아니다. 여러분의 모교 신일이 여러분에게 대하여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는가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 가정에서 아이들을 기를 때에 어느 아이라고 소홀히 여기리오마는 첫 아기처럼 정성을 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부부 두 사람이 서로 믿고 의지하여 가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그 두 사람이 가정의 전부이었으나 첫 아기가 나면서부터는 어린아이가 가정의 중심이 되고 마는 것이다.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도 아기에게 있고 그들의 모든 소원도 애기를 통하여 성취될 것을 염원하고 있다. 따라서 부모는 아기의 양육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게 된다. 신일은 여러분의 교육에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아낌없이 제공하였다. 모든 사람마다 누구나 다 부러워하는 훌륭한 건물과 시설을 거액의 자금을 투입하여 단시일

장 윤 철 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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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완성한 것도 여러분을 위함이었고 우수한 교직원 구하느라고 전국적으로 돌아다니면서 손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노력한 것도 여러분의 교육을 위함이었다. 여러분의 은사들도 여러분을 가르치느라고 그들의 정력을 다 경주하였다. 그들의 심신이 너무 피로한 나머지 자리에 누운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을 지금도 잘 기억하고 있다. 학과를 가르치는 일에만 아니라 여러분의 생활을 지도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썼는지는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다. 때로는 어리석은 부모와 같이 여러분의 자립정신을 해치지는 않을까 스스로 두려워 할 정도에까지 이른 때도 없지 않았다. 이렇게 여러분의 교육을 위하여는 무엇이나 아낌없이 다 바쳤고 정성을 들였던 것이다. 그러면 신일은 왜 여러분을 위하여 그렇게도 극성을 부렸을까? 그것은 여러분이 금후에 대학을 거쳐 사회에 나아가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여러분들의 실력과 생활이 신일의 교육이 어떻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세상에 알려주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여러분이 보여주는 능력과 모습을 보고 현재의 신일을 평가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의 후배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까지도 점치려고 한다. 신일 자신도 그 교육의 성과 여부를 금후의 여러분을 보고 스스로 평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여러분의 책임이 무겁다는 것을 재삼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이야 말로 신일의 영광을 길이 빛낼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은 신일의 영광만을 위해서 살라는 것은 아니다. 신일만을 위한다는 것은 오히려 신일의 영광이 되지 못한 것이다. 국가와 사회에 유익한 인재를 양성하여 민족의 이상을 실현하고 나아가서는 인간세계 전체를 위하여 크게 공헌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신일학교 설립의 목적이요, 염원이다. 이 목적의 달성이 곧 신일의 영광이요, 그 교육의 성공이다. 신일학교는 그 관계자들의 명예나 학교 자체의 영광을 세워진 학교가 아님과 동시에 신일이 배출하는, 그 아들들의 개인적인 출세나 영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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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만 세워진 학교도 아니다. 신일은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세워졌다. 세계 인간의 공명과 발전을 위하여 일할 일꾼을 양성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여기서 우리는 모교 신일의 교육이념과 교훈이 명시하는 바를 다시 한 번 상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희생과 봉사를 위주로 하는 기독정신에 입각하여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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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1반(담임 명노걸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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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2반(담임 최창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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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3반(담임 김용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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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4반(담임 이찬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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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5반(담임 이영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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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6반(담임 주명갑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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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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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으로 산

5년 0


19 70 – 2 0 2 0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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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0년 1월 17일 331명이 졸업하였다. 곧바로 총동문회가

회 동기회 역사

1

조직되었으나, 모두 대학생활과 사회생활로 분주하게 생활하던

시기였다. 1970년 졸업 후 26년 동안 1회 동기들이 총동문회 회장직을 밑아 신일역사의 기초를 다져 나갔다.

총동문회장이 1회 동기회장을 겸임한 까닭에 1회 동기회는 1976년 12월 총동문회(회장 배원근) 정기총회시 1회 동기회를 구성하며 회장에 김익희를 선출하였으나 사정상 회장직을 사임하여 1회동기회 구성이 무산되었다가, 5대 총동문회장직을 수행하던 신학주 회장에 의하여 1979년 3월 24일 서울관광호텔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1회동기회를 결성하였는데 초대회장에는 박종헌 동기가 선임되었고, 고문에 이경준, 주명갑 선생님이 추대되었으며 이날 35명이 참석하였다. 이때는 신일고 졸업생이 6,000명을 넘어 불가피하게 1회 동기회를 별도 조직한 것이다. 그러나 이 동기회는 2년간 지속하다 중단되었고, 다시 1990년 신일고 졸업생이 10,000명을 넘어서자 10대 총동문회장직을 수행하던 양상진 회장에 의하여 1회 동기회가 다시 결성되는데 2대 동기회장으로 임명환 동기가 선임되었다.

◎ 역대 총동문회 회장 명단 대 년도 회장

1

2

4

5

6

7

8

9

10

11

12, 13

1970~

1972~

1977~

1980~

1982~

1984~

1986~

1988~

1990~

1992~

1994~

1971

1975

1976

1981

1983

1985

1987

1989

1991

1993

1996

김왕중

조항복

배원근

신학주

박종헌

김철호

장인근

조영원

양상진

이영우

고인범

자유인으로 산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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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동기회 임원명단

128

연도

회장

부회장

1980

박종헌

이진웅

1990

임명환

손영로

1991~1993

원광희

1994~1999

장계원

손영로, 김인중

1999~2001

김인중

안은섭, 윤완식

2002~2005

김화열

박봉근, 윤완식

2006

조영원

윤완식

2007

장무철

윤완식, 김흥배

2008

장무철

윤완식

김제훈

2009

원광희

김동준, 윤완식

한동희, 김제훈

2010

원광희

김동준, 윤완식

진영주, 김제훈

2011~2012

김동준

2013~2014

윤세진

김명석

김제훈, 김흥배

2015

오염진

한동희

박영상, 김흥배

2016

정자룡

이재명

이현기, 김흥배

2017

최용병

정락용

이규옥, 김흥배

2018

정광일

변수복

김흥배

2019

변수복

이도선

이병현

2020

이도선

김학규

윤세진

총무

손영로

진영주, 김흥배


◎ 역대 동기회 사업내역 구분

회장

주요 활동내용

1대

박종헌

창립총회, 파랑새호 태평양횡단 축하모임 개최 (뉴서울호텔)

2대

임명환

Home Coming Day 주관 (장소: 신일고, 65명 참석)

3대

원광희

매달 동기모임 개최하여 40여명의 동기가 회합하기 시작

4대

장계원

많은 동기모임을 열정적으로 주관하며 5년간 활동하다 1999년 8월 작고

5대

김인중

‘다시가는 30년만의 수학여행’ 개최 (1박2일 딱따구리 수련원, 70명 참석)

6대

김화열

취약한 동기회 재정기반을 위해 크게 헌신하고, 동기들 애경사 적극 참석하여 모임

7대

조영원

개교40주년기념행사 개최 (청평마이다스호텔, 40명 참석), 동기수첩 제작

8대

장무철

연간 회비납부회원 100명 초과, 지방분회 결성, 1회 동기회장배 당구대회 개최

9대

원광희

졸업40주년기념행사 개최(제주도 기념여행, 사은회, 기념책자와 수첩제작 발간)

10대

김동준

졸업40주년기념행사 화보집 발간, 사은회, 야유회(청계산), 회갑선물 배송

11대

윤세진

소모임회장 초청모임, 반별모임 참석, 야유회(춘천, 청남대), 사은회

12대

오염진

소모임회장 초청모임, 야유회(산정호수, 일동), 사은회

13대

정자룡

소모임회장 초청모임, 야유회(부여 사적지), 사은회

14대

최용병

소모임회장 초청모임, 야유회(석모도), 사은회

15대

정광일

소모임회장 초청모임, 야유회(가락재), 사은회, 졸업50주년 기념행사 준비회의

16대

변수복

소모임 회장 초청모임, 야유회(마장호수), 사은회, 졸업50주년 기념행사 준비회의

17대

이도선

졸업50주년 기념행사, ‘신일고등학교 자유인으로 산 50년’ 발간

자유인으로 산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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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동기회장

1대 박종헌

2대 임명환

3대 원광희

4대 장계원

5대 김인중

6대 김화열

7대 조영원

8대 장무철

9대 원광희

130


10대 김동준

11대 윤세진

12대 오염진

13대 정자룡

14대 최용병

15대 정광일

16대 변수복

17대 이도선

자유인으로 산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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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신일고등학교 1회 동기회 졸업 50주년 기념

1970 - 2020

발행일

2020년 3월 17일

발행처

신일고등학교 1회 동기회

편집

김흥배

표지 제호, 그림

이 철 수(4회)

홈페이지

shinil1.net

총동문회

02)588-8206

총동문회 홈페이지

http://www.shinilhig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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