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GAK #artsmagazine jul./AUG. 2020 vol.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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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리뷰잡지 사각

Gallery in Paper 정익현 이우석 조미향 박두 아트포커스 박철호 인터뷰 현대미술작가 박종규

2020 juL. aug. VOL.26

2020 07_08 Vol.26



그래 세상살이 더도 말고 딱 이만큼만 모자라도 귀신마저 업신여긴다니 누구도 고개 돌리지 않도록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와 위치에서 지나치면 뭐든 산사태 물사태 사랑사태 이별사태 7월 거센 장마처럼 폭우로 쏟아지려니 과거는 흘러가고 미래만 눈 앞에 있다

-나명욱 <7월의 장마> 중에서


문화예술리뷰잡지 사각

서기 2020년 07 08월 호 (통권 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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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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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로 보는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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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FOCUS

NO.26 표지사진 좌) 홍명섭 작 [ 을 갤러리 ] 우) 박철규 작 [ 인당미술관 ] PHOTO by dot.k

박철호 세계의 지평 , 그 차안 ( 此岸 ) 의 회화

18 INTERVIEW 현대미술작가 박종규 시인 이하석

2016년 11월 7일 재등록 대구중, 마00007 격월간지 발행일 2020년 7월 15일 발행인 및 편집장 강금주 관리총괄 조성희 발행처 사각출판 디자인 사각출판 인 쇄 (주) 경북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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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38 29 Gallery in Paper 작가 정익현 이우석 박두 조미향

38 특별기고

대구근대미술사 | 화가의 꿈을 못다 이룬 요절화가 김용조 대구음악사 | 이기홍, 대구지역 오케스트라의 창시자 격동기의 대구미술 | 서석규 연극만들기 | 소극장의 탄생

56 Review 전시리뷰 이우림초대전 공연리뷰 J.MASSENET MANON 마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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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작가 릴레이 2 정인희전

2020. 6.22. - 7.18. 어울아트센터 갤러리명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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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호 기획초대전 ‘Spielraum’ 2020. 6.19. - 7.30. 인당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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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섭 개인전 topological level 2020. 6. 9. - 7.11. 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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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oul's View Project

2020. 6. 8.- 7. 4. 어울아트센터 갤러리 금호


ARTFOCUS 작가와 비평 박철호: 세계의 지평, 그 차안(此岸)의 회화 'Spielraum

2020' 유진상 (미술평론가)

'Spielraum'은 주체로부터 세계의 지평에 이르는 공간을 가 리킨다. 다른 말로는 ‘활동역’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태 어난 것은 그것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까지를 자신의 세계로 삼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후설(E.Husserl)은 세계의 지평에 대한 인식을 외적이고 수용적인 것과 내적이고 자발적인 것 사이의 상호작용 내지는 구성체로 보았다. 주어진 조건으로서 의 객관적 세계와 주체가 자발적으로 생성하는 것으로서의 개 별적 세계 사이에서 예술가는 끊임없이 양자를 오가면서 그 공간을 자신의 집으로 삼는다. 예술은 세계의 지평을 비-가시 적인 영역, 언어의 한계 너머로 넓히는 활동이며 예술가가 재 현하는 것은 사물이 아닌 그것의 좌표에 이르는 노정이다. 박철호의 작업은 신체적 운동과 그것에 대응하는 세계의 관 계항들로 이루어진다. 예술가의 의식은 절대적으로 자신의 신 체를 토대로 하여 외부로 연장한다. 그 형식은 자신이 들고 있 는 붓, 연필, 목탄과 그것이 닿는 종이 캔버스, 벽면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구성된다. 예술가의 신체가 이 화면 위에 일으키는 사건을 ‘호출’, 혹은 하이데거의 개념을 빌면 ‘부 름(rufen)’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술가의 신체가 손짓을 하면 잠재성의 심연, 세계의 경계 너머로부터 대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때로는 새이고 때로는 그것의 날개짓이며, 잊혀진 사람들의 얼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것이 방 금 스쳤던 꽃 혹은 나뭇잎이기도 하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석판와 에칭과 같은 판화로 이루어져 있다. 해먹의 강렬한 먹색 얼룩과 에칭의 날카로운 선들은 초기의 작품들을 특징 짓는다. 90년대 초의 작품들은 매우 거칠고 강한 붓질과 선묘로 이루어진 흑백의 드로잉을 보여 준다. <형Shape>은 빠른 순간 동안 화면에 남겨진 신체의 움직임과 그로 인해 파생된 우연적 사건들 위에 날카로운 선들이 그어지며 생겨난 다양한 ‘글쓰기’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Shape'은 마치 한낮의 풍경 속의 떠오른 짙은 심연과도 같 12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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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기원을 알 수 없는 형태를 가리킨다. 이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운 그림자는 이후에 <절망과 희망 Despair & Hope> 연 작에서 새 혹은 새의 날개로 나타난다. 작가는 이 연작이 ‘존재에 대한 회의와 실존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일컫는 데, ‘새’와 ‘날개’가 갖는 상징성은 충분히 그가 의도한 서사를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작은 이전의 연작 에서 볼 수 있었던 강렬한 신체의 운동과 그것의 기록으로서의 화면, 그리고 그것이 함축하는 세계관을 그대로 발전시키 고 있다. 여기서‘새’는 추상적 제스추어와 상징적 기표 사이의 모호한 간극을 드러낸다. 그것은 얼룩이면서 동시에 강력 한 지시체다. 이 연작들이 다소 극적인 것은, 작가가 그리는 새들이 주로 추락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새들의 추락은 그 것들이 있던 자리에서 전락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한 작가는 ‘희망’을 언급한다. 90년 대 말의 한국 사회의 정황은 IMF사태로 대표되는 사회적 붕괴로부터 일어서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었다고 말할 수 있 다. 그러나 여기서의 비극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존재하는 것들 모두가 자신들에게 부여된 합당한 실존의 장소를 상실한 것이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박철호의 회화는 이런 관점에서 역사적 서사로 읽히기 된다. 2000년대의 시작된 식물을 주제로 한 작업은 표현적이고 상징적인 기호로부터 드로잉의 즉각적 ‘글쓰기(écriture)’로 이어지는 전개로 보여준다. 여기서 ‘글쓰기’ 란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언어로부터 출발하여 세계 안에서의 태도의 선택으 로 이어지는 주체적 행위를 가리킨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전제가 되는데 그것은 작가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체와 그것 의 운동을 긍정하는 것, 그리고 세계, 사회, 자연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자발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을 가감 없이 기록하는 것이다. 이 연작에서 식물의 생장과 군생,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시점과 시공간의 추이에 따라 수없이 많은 ‘텍스추어’들을 파생시킨다. 예술가는 의미의 관계망 안에서 시시각각 조합되는 새로운 ‘텍스트’를 읽어나가면서 그것을 자신의 화면에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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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는 <원숭이 문 법학자>에서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무한 히 변용하는 기호들의 우주를 ’나무-덤불(la maleza)'이라고 불렀다. 식물들은 세계의 철 자들이다. 원숭이 신 하누만(Hanuman)은 나 무들로 표상된 수없이 많은 우주의 차원들을 가로지르며 순식간에 그것의 텍스트들을 읽어나간다. 이러한 작가의 세 계관은 나중에<순환>에서 나타나는 수면의 파동과 그 입자들이 나타내는 표상에서 다시 엿볼 수 있다. 2007년부터 시작한 <꽃>연작에서 작가는 마치 빠르게 지나치면서 본 꽃을 다시 기억 속에서 떠올리기 위해 노력할 때처럼 흐릿한 윤곽과 커다란 색의 얼룩이 거대하게 확대되어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꽃은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핵심적인 주제인 동시에 마치 인물화처럼 내면과 자의식을 지닌 독자적 주체로 그려져 있다. 나중에 그려진 <숲>연작 과 더불어, 이 작품들에는 ‘속도’라는 요소가 부가되어 있다. 초기의 표현적 회화 속에서 신체적 운동이 드러나는 방식 을 속도를 통해 강조했다면, 이 작품들에서 속도는 일종의 ‘사진적’요소다. 사진기의 셔터 속도(기억, 기록의 속도)보 다 더 짧은 순간 동안, 혹은 더 빠르게 대상을 바라봤다면 대상은 흐릿해진다. 특히 대상을 기억(혹은 기록)속에서 더 확대하여 떠올렸다면 대상은 더 흐릿해진다. 다만 이 흐릿한 빛의 잔상, 혹은 기억의 얼룩은 그것의 불분명한 세부들 로 인해 나에게는 기필코 불분명한 , 끝내 밝힐 수 없는 존재들로 남게 된다. 삶의 시간 속에서 존재들의 ‘인연’은 이렇 듯 불가사의한 흔적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세계의 지평 안쪽은 삶의 영역인 동시에 수많은 기어고과 상념의 얼굴들 로 가득한 , 잘 읽을 수 없거나 미쳐 못 읽은 문장들로 채워진 숱한 실패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ㅂㄹ구하고 몇 개의 잔상들, 얼굴들, 순간들이 사진으로 기록되어 남아있다. 이것을 작가는 삶의 단면, 혹은 세계의 단면이라고 부른 다. <꽃>연작 이후에 그리기 시작한 <벌집>연작에 대해 작가는 ‘순수한 사유의 공간과 공존의 집’이라는 부연을 하였다. 그렇게 해서 그려진 것은 역시 얼룩들처럼 그려진 검은 육각형들이다. <벌집>(Beehive)은 기독교를 비롯한 많은 고 대 종교에서 새로운 삶과 구원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벌집의 육각형(hexagon)’은 우주에 편재하는 이상적 조화와 균형을 나타낸다. 육각형은 벌집 뿐 아니라 주상절리와 같은 연결과 힘의 분배를 함축하는 다른 자연적 형태들 속에 서도 발견된다. 박철호의 작품들 속에서 벌집의 단위들은 ‘신의 은총’에 의해 내적으로 언제든지 소통과 결합을 이룰 수 있는 단자(momad)들과도 같은 것이다. 육각형은 꽃은 형태들에서도 나타나는데, 그것들은 ‘집’이므로, 존재가 자 리 잡는 물리적 장소이자 그것의 정신적 거처이기도 한 것이다. 하이데거가 언어(die Sprache)를 ‘존재의 집(das H 면 des Seins)이라고 부른 것처럼 이 얼룩들은 각각 그것들로 회귀하는 존재들의 말(parole)들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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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는 시점에서 본 것은 꽃들만이 아니다. 2012년 이후의 <숲>연작은 맑은 날 숲을 거닐면서 고개를 들고 역광으로 바라본 나뭇잎들을 보여준다. 흐릿한 입자들의 흐름처럼 보이는 숲의 모습은 세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의 덧없는 조우와 광활한 공간의 끝없는 이어짐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시야각의 확대, 혹은 ‘줌아웃(Zoom-Out)'이다. 이제까지의 그의 작품들 속에서 작가의 시점은 대상에 근접한 것으로 표상되어왔다. 그는 꽃을 다가가서 바라보거나 벌집을 세세히 응시하면서 그것들을 근접화면으로 담아내었다. <숲>은 개별적 주체 혹은 단위들이 아닌, 그것들이 이루고 있는 풍경을 다룬 것이다. 물론 <꽃>에서처럼 여기서도 작가의 시점은 숲속을 이동하면서 스쳐지나가는 나무들과 수많은 나뭇가지들과 그것들에 서 돋아난 헤아릴 수 없는 나뭇잎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 개별자들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도도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공 간의 흐름 속에서도 그것의 배후로부터 뚫고 들어와 숲속을 비추는 빛을 간과할 수 는 없다. 어쩌면 이 연작의 주제는 ’ 숲‘이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의 전체로 이어주는 ’빛‘이 아닐까 한다. 불교의 ’인드라망‘이 모든 개체들을 전체와 동등한 것으로 인식하는 세계관이라면, 이 빛을 통해 교감하는 개체들의 네트워크 또한 그에 준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 면 그 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근래의 연작인 <순환(Circulationt)>에서 작가는 수없이 많은 군상들과 사건들을 각각 독립적인 개체들로, 혹은 얼룩 들로 그려냄과 동시에 그것들이 공존하고 있는 공간을 수많은 부분들로 나뉜 화면(장소)들의 연결로 나타내고 있다. 어떤 화면에서는 좀 더 근접한, 또 어떤 화면에서는 더 멀리서 바라본 풍경들 이 결국 하나의 화폭으로 이어져 다-시점적 옴니버스이자 거대한 묵시적 서사 로 구성되어 있다. ‘수면’을 다룬것으로 보이는 좀 더 최근의 작품들 속에서 얼 룩들은 점차 물결 위의 일렁이는 빛의 단위들로, 먼 곳에서 바라본 수면의 미 세한 반짝임들로, 극미의 찰나적 존재들로 재해석 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전 제-개체’의 상호-주체적 네트워크는 이 연작에 이르러 일종의 음악적 ‘해결 (resolution)’에 이르고 있다. 마치 이 찰나적 존재들에 빛을 ㅂ여한 그 원천이 지평의 바깥인 것처럼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시(微視에서 거시 巨視의 세계로 도도하게 ‘줌-아웃’ 해온 작가의 이 인상적인 세계-지평(spielraum)에 대해 그 개관을 논하는 것 은 아직 이르다. 작가의 여정은 이제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뿐이다. 다만 지금 으로부터 그의 세계관이 어떤 운동성을 보여줄 것인지는 매우 흥미로운 논제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인당미술관 동의 하에 실었습니다 . 사진 do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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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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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JongKyu 현대미술작가

박종규

화가 박종규가 부산 데이트갤러리에서 올해 첫 개인전 ‘~Kreuzen[크루젠]’(순항하다 / 6. 11.~7. 25.)을 개 막했다. 박종규 작가는 2017년 아트바젤 홍콩 아트페어의 인사이트섹터 부문에 유일한 작가로 선정되었다. 아트페 어 관계자, 갤러리스트, 콜렉터 등이 박종규를 주목하면서 신문, 잡지에 그의 작업이 소개됐다. 2018년에는 미국 최초 국제 현대미술전으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아트페어인 뉴욕 아모리쇼에서 오늘날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를 선보이는 포커스 섹션에 선정되기도 했다. 박종규는 2009년부터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을 연상시키는 점과 선의 이미지를 코드화한 '노이 즈'를 작업의 주요 구성 요소로 삼아 화면에 표현했다. 작가에게 노이즈는 주류 사회나 예술에서 배제된 어떤 것이었고, 이를 작업 요소로 삼으면서 옳고 그름이나 흑과 백처럼 이항 대립적 구조의 해체를 시도한다. 비평가 이진명(전 대구미술관 학예실장)은 박종규에 대해 “이국에서 만난 스승들은 모더니즘의 신화를 벗겨 내고 싶었던 이코노클라스트, 즉 성상파괴자들이었다.”며 특히 “브라코 디미트리에빗의 세계에 대한 태도와 예술을 수행하는 방법론을 메타적으로 이해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모더니즘의 미적 순수성과 세계를 바 라보는 혁신성을 동시에 구유하고 있는 박종규 작업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획기적인 기획의 산물이다.”라고 평했다. 박종규는 계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의 에꼴드보자르에서 회화와 복합매체를 전 공했다. 1996년 귀국, 광주 비엔날레와 대구미술관, 시안미술관, 인당미술관, 벤브라운 파인 아트 홍콩 등 국내외 30여 회 개인전 및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2019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Kreuzen’(6. 4.~9. 15.) 이후 순항을 멈췄다가 다시 항해를 시작한 박종규 작가를 대구 앞산 밑에 있는 그의 작업실 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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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창궐한 시절인데 근황이 궁금하다.

올해 많은 전시들이 연기되고 취소됐다. 최근에 홍콩 바젤이나 스위스 바젤도 온라인 전시로 대체됐다. 내 경우도 네덜 란드 전시가 확진자가 생기면서 사흘 만에 막을 내렸고, 5월 뉴욕 전시도 취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전시 중간에 외국 여 행 계획도 잡았는데 다 취소했다. 작업실을 하나 더 만들고 있는데 이거는 계획대로 진행하고 있다. 원로작가까지는 아닐 테고(웃음) 중견작가로서 코로나 시대를 진단한다면. 화가 부산 데이트갤러리에서 올해사진 첫 개인전 ‘~Kreuzen[크루젠]’(순항하다 6. 11.~7. 25.)을 개막했다. 제가 박종규가 하는 작업들은 영상, 페인팅, 설치, 등 다양하지만, 지금 진행하고 있는 /페인팅 종류의 작업들은 작업 방식에 박종규 작가는 2017년 아트바젤 홍콩 아트페어의 인사이트섹터 부문에 유일한 작가로 선정되었다. 아트페어 관계자, 갤러리 서 크게 바뀌는 게 없을 거 같다. 스트,화가 박종규가 부산 데이트갤러리에서 올해 첫 개인전 ‘~Kreuzen[크루젠]’(순항하다 / 6. 11.~7. 25.)을 개막했다. 그런데 앞으로 전시방식은 많이 안 달라지겠나. 페인팅 작업들은 실제로 보면서 감상해야 될 그런 종류의 작업이라면,

영상이나 설치 같은 작업들은 틀림없이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감상이 때문에선정되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옛날보다 좀 박종규 작가는 2017년 아트바젤 홍콩 아트페어의 인사이트섹터 부문에가능하기 유일한 작가로 아트페어 관계자, 갤러리 더 많이 섞이면서 전시가 진행될 것신문, 같다. 스트, 콜렉터 등이 작업 박종규를 주목하면서 잡지에 그의 작업이 소개됐다. 2018년에는 미국 최초 국제 현대미술전으로 역 대학들도 강의로 진행됐고, 같은 개인 방송들이 굉장히 활성화됐지 않았나. 포커스 작가들도 앞으로 온라인 전 사와 권위를온라인 자랑하는 아트페어인 뉴욕유튜브 아모리쇼에서 오늘날 가장 주목할만한 작가를 선보이는 섹션에 선정되기도 했 다. 시에 신경을 써야할 시대가 오지 않겠나. 어떤 것도 다 마찬가지지만 미술이란 실제로 보는 거랑 분명 차이가 있는데, 온 라인 비중이 앞으로 좀 더 커지겠다. 박종규는 2009년부터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을 연상시키는 점과 선의 이미지를 코드화한 '노이즈'를 작업의 주 요 구성 요소로 삼아 화면에 표현했다. 작가에게 노이즈는 주류 사회나 예술에서 배제된 어떤 것이었고, 이를 작업 요소로 삼으 미술관을 찾는 관객들이 없다. 면서 옳고 그름이나 흑과 백처럼 이항 대립적 구조의 해체를 시도한다. 오늘 인당미술관에 다녀왔는데, 거기도 국공립미술관들처럼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고, 방역절차를 지키면서 입장시켰 는데 관객들이 너무 적더라. 작가들의 그림박종규에 판매도 대해 굉장히 위축됐다. 어려워지고, 다 어려워 비평가 이진명(전 대구미술관 학예실장)은 “이국에서 만난화가들은 스승들은점점 모더니즘의 신화를예술가들은 벗겨내고 싶었던 이코 질 것 같다. 저 같은 경우도 서너 작품의 판매가 취소되기도 했다. 정부도 어렵기 때문에 문화 예산이 제일 먼저 축소될 노클라스트, 즉 성상파괴자들이었다.”며 특히 “브라코 디미트리에빗의 세계에 대한 태도와 예술을 수행하는 방법론을 메타적 가능성이 있다. 으로 이해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모더니즘의 미적 순수성과 세계를 바라보는 혁신성을 동시에 구유하고 있는 박종규 작 업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획기적인 기획의 산물이다.”라고 평했다. 비평가 이진명이 한국과 프랑스 화단의 계보를 말하던데. 박종규는 계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파리의 가운데 에꼴드보자르에서 복합매체를 1996년 귀국, 광 파리는 저한테는 잘간 유학이었고, 거기서프랑스 만난 선생들 내가 만나고회화와 싶었던 선생들이 전공했다. 있었다. 86년도인가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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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비엔날레와 대구미술관, 시안미술관, 인당미술관, 벤브라운 파인아트 홍콩 등 국내외 30여 회 개인전 및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다. 2019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Kreuzen’(6. 4.~9. 15.) 이후 순항을 멈췄다가 다시 항해를 시작한 박종규 작가를 대구 앞산 밑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콜렉터 등이 박종규를 주목하면서 신문, 잡지에 그의 작업이 소개됐다. 2018년 에는 미국 최초 국제 현대미술전으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아트페어인 뉴욕 아모리쇼에서 오늘날 가장 주목할만한 작가 를 선보이는 포커스 섹션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9년부터 디지털 이미지의 최소 단위인 픽셀을 연상시키는 점과 선의 이미지를 코드화한 '노이즈'를 작업의 주요 구성 요 소로 삼아 화면에 표현했다. 작가에게 노이즈는 주류 사회나 예술에서 배제된 어떤 것이었고, 이를 작업 요소로 삼으면서 옳 고 그름이나 흑과 백처럼 이항 대립적 구조의 해체를 시도한다. 비평가 이진명(전 대구미술관 학예실장)은 박종규에 대해 “이국에서 만난 스승들은 모더니즘의 신화를 벗겨내고 싶었던 이 코노클라스트, 즉 성상파괴자들이었다.”며 특히 “브라코 디미트리에빗의 세계에 대한 태도와 예술을 수행하는 방법론을 메타 적으로 이해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모더니즘의 미적 순수성과 세계를 바라보는 혁신성을 동시에 구유하고 있는 박종규 작업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획기적인 기획의 산물이다.”라고 평했다. 그는 계명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의 에꼴드보자르에서 회화와 복합매체를 전공했다. 1996년 귀국, 광주 에 ‘공간’ 잡지에서 끌라드 비알라(Claude Viallat)의 쉬르파스(Support-Surface) 미술을 처음 단체전에 알게 됐다. 비엔날레와 대구미술관, 시안미술관, 인당미술관, 벤브라운쉬포르 파인아트 홍콩 등 국내외 30여 회 개인전 및 다수의 참 내가 접근하려 했던 평면과 입체라는 작업에 너무 잘 맞는 거다. 그때 학교에서 개념적인 작업을 하는 유명한 브라코 디 가했다. 미트리에빗도 만나고. 그러면서 지금 내 모든 작업 기법은 그때와 관련이 있다. 그때 관심을 가졌던 게 입체와 평면, 과 2019년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파리국립미술학교 개인전 ‘~Kreuzen’(6. 4.~9. 15.) 관계 이후 속에서 순항을 자연스럽게 멈췄다가 다시 항해를 해결해 시작한 줄 박종규 작가를 거와 현재라는 시간들이었다. 선생님들하고 궁금증을 수 있는 수 대구 앞산 밑에 있는브라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포스트 모던 가운데 포스트 히스토리 쪽이다. 역사를 뒤집는 작업을 했는데, 업들이 진행됐다. 디미트리에빗은

잘 모르는 사람을 길거리에서 찍어서 대형 사진으로 전시하기도 했다. 한국의 모더니스트는 모더니즘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의미의 순수주의였다면 파리의 스승들은 파괴적인 순 수주의였다. 지난 대구미술관 전시부터 제목이 ‘~Kreuzen[크루젠]’이다.

이번 부산 데이트갤러리 제목도 같은 ‘~Kreuzen[크루젠]’이다. ‘크루젠’은 순항을 뜻하는 독어 'KREUZEN'을 영어 발음식으로 표기한 건데 독어의 본 발음은 이와는 다르다. 미술관에 독일에서 공부한 사람이 몇이 내게 발음의 한글 표 기가 틀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목은 일부러 조금 어렵게 만들었다. 관객들이 전시를 보면서 사전이라도 찾는 관심을 보일까 해서 그랬다. 너무 쉽고 너무 잘 읽히면 미술이고 텍스트고 재미가 별로 없으니까 살짝 노력이 필요하게 지었 다. 실제로 미술관 운영위원회에서도 제목이 어렵다는 사람들의 반응을 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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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팅 작업이 어떻게 이뤄지나.

순수한 의미의 페인팅은 페인팅만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내 작업은 기계와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기계의 작업을 이용 해서 프린팅 후 커팅하고, 뜯어내고 물감을 칠하는 등 기존의 방법과 새로운 파괴적인 방법을 같이 쓰는 작업이다. 컴퓨 터를 이용해 거의 작업을 다 만들어 놓고, 다시 이걸 시트 커팅기로 잘라 붙이고 다시 뜯어내고 칠하고 또 완전히 제거하 고 칠하고 한다. 페인팅은 물감이나 성분 때문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화들이 많고 그걸 극복해야 한다. 실제로 손으로 그리는 것만이 어렵구나 하는 것에서는 약간 편한 게 있지만, 내 작업이 그렇게까지 가는 데는 굉장히 힘들었다. 지역의 대표적인 중견화가로서 지속적인 작업을 이어온 박종규 작가는 지난해 2월 고성동 빌리웍스 개인전부터 9월에 끝난 대구미술관 전시까지 국내 개인전만 세 차례 진행했다. 인터뷰 일정을 잡지 못할 만큼 바쁜데도 창궐하는 역병을 피할 수 없었 는지, 네덜란드와 뉴욕의 전시가 무산됐다. 다행히 6월 부산 데이트갤러리 전시는 무사히 개막했다. 박종규 작가는 작품이 잘 팔린 덕에 작업에 더 투자했기에 또 여가를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근황을 밝혔다.

인터뷰 및 작가 사진 정용태 객원기자 | 작품사진 대구 미술관전시 사진 do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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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이하석

Lee Ha Suk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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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운영기관이 대구문화재단에서 <사>대구작가콜로퀴엄으로 바뀐 대구문학관 관장에 이하석 시인이 연임됐다. 4년 동안 공석이던 자리, 대구문학관 초대 관장을 맡았던 그에게 다시 대구 문학의 책임이 지워졌다. 코로나로 대구가 휘청대던 가운데 2년 임 기의 대구 문학관 수장을 다시 맡은 이하석 시인을 찾았다. 코로나가 가져다 줄 문학의 변화가 궁금했다.

우루루 내려와서 대책이 없어졌지 문총구국단에라도 종군작가단에라도 결쳤지 구호품을 타서 연명하던 문학사여 마해송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동리 최인욱 서정주 유주현 양명문 오상순 전숙희 황순원 최정희 김윤성 김송 김팔봉 구상 정비석 최태응 유치환 이호우 전봉건 김종삼이 향촌동에서 우굴거렸지 뽀얗게 흐린 술잔을 들었지 『향촌동 랩소디』(도서출판 시와반시, 2019) 가운데 「한국 피난 문단사」

재난 상황에서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당국의 대책이 마련돼야.

대구가 특히 코로나를 심하게 겪었던 곳이고 하니 대구 문인들이 좀 남다르겠죠. 대구시인협회나 대구경북작가회의 등 몇 군데서 코로나 관련 작품으로 앤솔로지를 엮었는데, 그때 물어보니까 당혹해 하고 당황해 하더라고. 과거에는 없었던 일이니까. 그래도 문학은 어떤 행사와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하는 거니까 좀 덜한데, 가령 연극이라든가 공 연예술 같은 것은 상당히 피해가 심했던 것 같아. 그 분야 사람들 같은 경우엔 생계가 달린 문제야. 문화예술인들의 재난에 대한 대책을 당국에서 마련돼야 않겠나 싶어. 그런 문제가 터지면 어떤 방식으로든 지원책이 강구되고 뭔가 지금처럼 이렇게 당황스럽게 모든 걸 내놓는 그런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챙기는 그런 것 이 됐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번에 문인들의 앤솔로지에서라든가 당황하는 모습이 보이고, 앞으로 전 망의 불안도 보였어. 과거 대면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그런 관계가 다시 복원될 수 있을까? 그런 의구심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심이 굉장하다

일종의 전쟁 같은 그런 상황인데, 과거 전쟁을 겪은 대구에서, 가령 전쟁 70주년 기념해서 전시도 하지만 공포심이 있거든. 과거의 전쟁은 그래도 인간적으로 뭔가 서로 부대끼면서 터놓고 관계를 맺을 수 있었는데, 코로나 이것은 고 약해가지고 사람을 격리시키고 자꾸 떨어뜨리고 떨어뜨리게 하고 이런 게 있으니까. 더구나 노인들 같은 경우에는 굉 장히 공포스럽겠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해서 새롭게 되돌아보게 하고, 뭔가 좀 겸손해져야 되고 그래. 세대별로 조금 반응이 다른데.

젊은 친구들은 아직 자신이 있다 이거지. 근데 그게 사실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은 한편으로는 자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서울 같은데 지금 확진자를 보면 대개 젊은 세대들의 자신감 속에 서 나오는가봐. 문학관 주변 식당에 가보면 나이든 사람들이 일하는데 다 마스크를 끼고 있어. 또 사람들이 밥을 먹으 25 sagak


면서 이야기하면 막 뭐라고 해. 지금이 어떤 땐데 그러냐고.

코로나 시대의 문학이 새로 나올 것인가.

그런 문학이 나올 거예요. 인간의 어떤 그 일종의 실존이라고 하나 이런 존재에 관 한 인식, 내가 살아가는데 삶이란 게 도대체 뭐냐. 이런 근본적인 것들이 나올 수 있 고, 그담에 우리가 관계했던 관계에 대한 문제들이 앞으로 어떻게 많이 바뀔 것 같 아, 여러 가지로. 그리고 또 하나는 환경에 대한 문제, 환경 관련한 인식들이 대두 가 좀 되겠고. 과거에는 일부에 의해 절실하게 얘기가 됐다면, 지금은 전반적으로 환경문제는 절박한 문제로 여겨진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은 그게, 어떻게 보면 환 경의 급습이거든. 우리가 괴롭혔던 환경에게 다시 급습을 당한 거라고 봐. 환경에 대한 어떤 새로운 인식 같은 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거대담론으로, 문학담론으로 나올 거야. 그런 작품들이 이미 나온 건 없나.

아직은 없어요. 코로나에 대한 1차적인 자료들이 나오고 있는 상태고, 대구 쪽에서 뭔가 코로나 관련 시들이나 문학작품들이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는 것 같고, 산문 쪽에서도 많이 안 나오고. 시 쪽은 보니까. 뭐 아직 특별히 눈에 띈다든가 이런 거는 안 보여. 대구에 살았으니까 그런 인식을 담는다는 그런 정도. 요 인식은 곧 아마 올해 지나가면서 서서히 작품으로 다가가지 않겠나 싶어. 이 상황은 어떤 면에서는 그 국가의 통제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 통제를 왜 따라야 하는가 하는 어떤 문제도 있고. 또는 가족 간의 어떤 병으로 인해 격리되는 상황 그 런 문제도 있고. 문학작품으로 그 가능성이 많을 거 같아. 그런 경험들이 수집되겠 지, 수집되면 내년쯤부터는 본격적으로 소설 쪽에서 작품이 안 나오겠나 하는 생각 이 들어요. 코로나의 위력이 여전한데.

전혀 안 끝났어요. 대구도 아직 끝났다는 생각은 아무도 안 할걸.다시 불안하고, 여전히 불안할 거야. 조심하고 있는 거야. 어떤 면에서는 대구의 질병본부와 방역

위에서부터 이하석 시집

체계에 대해서 기대하는 바가 많이 있고. 우리가 협력할 테니까 가능하면 그 경험

2. 향촌동 랩소디_ 도서출판 시와반시, 2019

살려가지고 어떻게 잘해라 하는 그런 생각이 있는 거 같아. 보니까 최근들어가지고 역시 죽는 사람은 죽고 사는 사람은 살고 결혼할 사람은 결혼하고 그렇게 이어지는 데, 그 복판을 흐르는 정서는 아주 미묘하더라고. 가령 과거에 직접 가서 부조를 전 하는 그런 것도 그래. 나 같은 경우도 계좌번호 좀 알려줬으면 좋겠더라고. 그런 식 26 sagak

1. 다시 고령을 그리다_ 만인사, 2020


으로 접촉을 자체하거나, 접촉의 방식이 바뀌는 거라. 대구문학관은 어떻게 대응하나.

대구문학관도 방역 매뉴얼에 따른 절차를 지키면서 운영해요. 기획전시할 때도 다섯 명만 허용이 될 정도로 통제를 했 고, 관람객이 나가면 다시 들어오게 했어. 한국시인협회에서 대구시민을 위로하는 그런 시낭송회를 수성아트피아에서 있 었는데, 거기도 보니까 300명을 받을까 하다가 70명만 입장시켰더라고. 대구문학관은 온라인 작가의 서재라는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는데, 내가 연습 삼아 먼저 출연했고 곧 황성희 시인편이 올라올 거야. 이렇게 갈 거야. 부러진 소나무 가지 그늘의 시선에도 혼자임을 확인하고 겨우 마스크를 벗어보이지만, 바위 사이 숨은 개울이 알아보고 소곤댄다 인간들과 함께 한 죄를 씻으려는데 개울은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숲을 나간다 -대구경북작가회의 앤솔로지 [마스크의 시간]에 실린 이하석 작 「마스크3」

1947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난 이하석 시인은 경북대학교 문리대 사회학과 3학년 재학 중인 1971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ㅁ투명한 속』,『김씨의 옆얼굴』,『우리 낯선 사람들』,『측백나무 울타리』,『녹』,『연애 간(間)』등을 펴냈다. 최근간으로『향촌동 랩소디』(도서 출판 시와반시)가 있고, 경주 남산을 중심으로 신라의 신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 및 사진 정용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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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아미술관 초대전

Beyond Generation 세대를 넘어 참여작가 권정호, 김진혁, 이점찬展

권정호 _ 선으로부터 162x130cm 2001 Acrylic on canvas 김진혁 _ 대한국인 2014 61 × 73cm 수묵혼합매체 이점찬 _ 달로부터 48.5x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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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24 - 8.23 수피아미술관


Gallery in Paper

지면으로 만나는 전시 -갤러리 인 페이퍼 두번째 주제는 Intentional and unintended harmony (의도와 비의도의 조화)입니다. 기

획 정익현

참여작가 정익현ㆍ이우석ㆍ박두ㆍ조미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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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익현

색다른 조화 , 블루와 골드

말을 할 수 없는 회화는 색채로 대화한다. 회화는 언어적 장애 때문에 색채로 추상적인 의미를 감성에 접근시킨다. “푸른 색채로 불확실한 미래와 더 넓은 미지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으며 풍요를 느끼게 하는 황금빛 과의 조화를 통해 불변의 욕망을 충족 시켜주는 환상의 극치를 표현하고 싶다. 색채를 통해 순수한 자아 를 찾아가는 기쁨을 느낀다. 희망적인 꿈들이 투영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험적인 작업에 임한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푸른색은 형이상학적인 근원으로 되돌아가도록 상기하게 하는 숨겨진 광채를 가지고 있다. 황금빛은 환희, 기쁨 등 긍정적인 요소가 많아 차가운 이미지의 푸른색과의 대척점에 있고 푸른색과 묘한 조화로 움을 선사한다. 넓은 바다에서 예민한 결을 만드는 바람과 같은 묘한 에너지와 차가운 바람속의 따뜻한 햇살 같은 온기가 느껴진다. -양정호평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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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THE FLOW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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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석

I am that I am

물질세계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의 원리에 관심이 있다 . 물질만으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을 나타내 는데 작업의 중심으로 삼았다 . 사람의 정체성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지문일 것이라고 작가는 상정한다 . 지문은 생체인식의 기초자료로 사용할 만큼 자신을 잘 표현하는 문양이다 . 단지 인간의 손끝에 그려진 무늬 정도로 알고 있는 지문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 많은 사물 직접 접촉하는 지문은 그 흔적 을 사물에 계속 남기게 된다 . 그 흔적들은 무수한 시간 속에서도 사물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 농부의 갈 라진 지문 , 화가의 물감 묻은 지문 , 삶이 묻어나는 지문 . 그리고 모든 만물이 지문의 문양처럼 파장으 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 넓혀서 말하면 인간은 우주 만물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작가는 그림으로 표현한다 . 그런 연결은 지문에서 더 원천적으로 나아가면 인간의 주변은 파장으로 넘쳐 난다는 작가의 생각이다 . 그 파장에는 빛이나 소리 , 파도 , 지진 등이 있다 . 그 예로 프리즘을 태양 빛에 갖다 대면 빛 의 파장 차이에 따라 무지갯빛을 볼 수 있다 . 온갖 악기는 귓속의 달팽이관을 적절히 자극하는 파장에서 기분 좋은 감동을 준다 . 작가의 작업은 지문 속의 삶 그리고 지문을 둘러싸고 퍼져 나가는 파장이며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에 서 빅뱅이 일어나 마치 분리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 인간 모두는 하나라는 것을 표현하고자 단 하나만의 지문을 그린다 .-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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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do you think I am 193.9 x130.3 x 8ea 가변설치 Acrylic on canva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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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 Wild and Pure

"거칠지만 속됨에 빠지지 않고 순수하지만 화려함에 빠지지 않는다." 자유스럽고, 힘찬 검은 기운이 내재미를중시하고, 함축성을 추구한다. 서예에 "서여기인"이 있다면 회화도 "화여기인"이 있다. 그 래서 작품을 하면서 살아온 부자연스러운 형상을 빌어 나의 내면의 현재 정신을 그리는 지도 모른다. 글로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표현 할 수 없고, 말로 가슴속 깊은 뜻을 모두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림만은 나의 내면을 다 표현할 수 있 다.진심을 담은 그림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그 뜻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작업은 마음의 붓을 따라 움직여 형태를 취하는데 미혹됨이 없어야 된다. 어쩌면 나의 작업은 격렬한 감정이 가슴속 형태와 색채로 신속하게 풀어 낸다. 뜻이 붓보다 먼저 있기에 생각하면서 작업 하기 보 다 작업하면서 생각한다.가끔은 의도 하지 않은 우연함, 의도 하지 않은 실수, 의도 하지 않은 미완성에 서 더 큰 만족을 얻기도 한 다. 그림 그리는 화가의 삶에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그 예정된 길을 꾸준히 따라 가다 보면 반드시 그 결말이 도달할 것이 다. 그러나그 길에서 이탈하면생의 결말도 바뀔 것이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 하면서 유언을썼다. "죽음을 맞이해도 이 길을 갈 것이며, 내가 좋아 하는 그림이기 때문에 행복하고, 재 능에 감사 하는 삶을 살았다."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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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my Memory, Oil on Canvas, 50X50Cm,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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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향 지도를 버리다

나는 붓질 (stroke) 의 개별적 정체성을 강조하며 , 면에 가까운 선까지도 포함한 다양한 선을 구사하려고 한다 . 아마도 그 행동적 붓질 (gestural stroke) 속에 생래적 ( 生來的 ) 자아의 모습 , 무의식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 색채에도 아무런 의무를 지우지 않는다 . 그 냥 그들의 재잘거림 , 혹은 웅얼거림 , 또는 폭언까지도 수용하고 들어주고 싶다 .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 마찬가지로 선과 색채도 내게 아무런 요 구가 없다 . 오직 나의 내적 맥박에 맡길 뿐이다 . 붓질은 붓질을 부르고 몸짓은 그 다음 몸짓을 부를 것이다 . 붓질과 몸짓들은 그저 그들의 의지 대로 겹치거나 얹히거나 , 부딪치고 또 비껴가면서 작업과정을 그대로 노출시키게 된다 . 이런 緣起的 화면은 나를 형식적 구조로부터도 자유롭게 한다 . 작업과정이 그대로 노출된 화면은 결과적으로 多層的이게 되는데 각 지층 내부 의 회화적 요건들 사이에도 , 층과 층 사이의 관계에도 형식적 구조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다 . 지층 아래의 두더지의 몸짓과 공중의 독수리의 궤적처럼 서로 무심하게 그러나 크게는 함께 존재하는 세계의 모습을 나는 그려내고 싶다 - 작업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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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shing pass, acrylic on canvas, 130X193, 20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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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근대미술사

김용조(1916-1944)

김 태 곤 | 대백갤러리 큐레이터 미술사

화가의 꿈을 못다 이룬 요절화가 김

용조

우리나라가 36년간의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되기 1년 전인 1944년 5월 대구 근대서양화가 김용조는 동산기독병원 의 병실 한 곁에 누워 거친 호흡을 힘겹게 몰아쉬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국내 최고의 관전(官展)이였던 조선미술전람 회(이하 ‘조선미전’ 이라 칭함)에 <어머니의 상>을 출품해 특선을 수상한 기쁨도 잠시 일본 유학시절부터 그를 괴롭히던 폐결핵을 이겨내지 못하고 생명의 불씨가 조금씩 꺼져 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담임 교사였으며 그가 화가로 성장할 수 있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창주 이응창을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 었다. “창주 선생님 발이 시리네요. 선생님의 양말을 신겨 주세요.”라는 부탁의 한 마디는 결국 그의 마지막 유언이 되 고 말았다. 김용조는 1930-40년대 한국화단에서 이인성과 함께 대구를 대표하는 화가로 부각되기 시작해 한국근대화단을 이끌 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스물아홉이라는 짧은 생을 통해 제작된 작품들은 그의 예술적 재능에 비해 너무 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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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화가로 성장할 수 있게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창주 이응창을 바라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창주 선생님 발이 시리네요. 선생님의 양말을 신겨 주세요.”

좌) 김용조,창주선생상,27.5x22cm,종이에 파스텔,1930년대 우)창주 이응창실제 사진

유작으로 남아 있어 아쉬움을 더해 주고 있다. 자신의 예술적 멘토이자 친구였 던 이인성을 닮고 싶어 했던 김용조에 대한 연구는 이인성과 이쾌대를 비롯해 뚜렷이 밝혀지지 않은 대구근대미술사의 흔적들을 되찾은 중요한 과제가 될 것 이다. 대구 내당동 1222번지에서 가난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난 김용조(金龍祚, 1916~1944)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슬하에서 불우한 유년시절 을 보내야만 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달성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담 임교사였던 이응창(滄洲 李應昌, 1906~1973)의 도움으로 대구화단의 중심 이던 서동진의 대구미술사(大邱美術社)에 입사해 본격적인 미술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나이 17세 때 제11회 조선미전(1932)에 당당히 입선을 수상하고 제13회 조선미전(1934)에서도 입상함으로써 세간에 관심을 받기 시 작했다. 제11회 조선미전을 시작으로 마지막 전람회였던 제23회 조선미전에 출품 한 그는 두 번의 특선(14, 23회)과 한 번의 무감사 출품(15회) 등 총 9회 죽마고우 김용조 ( 좌 ), 윤복진 ( 중 ), 이인성 ( 중 ) 죽마고우 이인성(좌), 김용조(중), 윤복진(우),193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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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향토회 기념사진 (1931)

제 3 회 향토회전 기념사진

앞줄왼쪽부터 이인성 , 김용조 , 서동진 , 박명조 , 한사람 건너 이상화 뒷줄 최화수 , 배명학

앞줄 왼쪽부터 서병기 , 배병학 , 서동진 , 박명조 중간줄 이근무 , 맨뒷줄 최화수 , 김용조 등

(11,13,14,15,16,17,18,22,23회)의 입상을 기록했다. 제11회 조선미전에서 <풍경>을 출품해 입선을 수상한 그의 명 성은 당시 신문기사를 통해 확인 해 볼 수 있다. “금번 조선미전 2부 서양화에 입선된 조선 사람이 대구에서 열네 사람인데, 그 중에서 금년에 처음으로 입선된 사 람도 칠팔명 되는 바, 특히 세인의 주목과 촉망을 받고 있는 소년이 있으니 당년 십칠 세의 김용조 군이다. 군은 작년 봄에 달성공보(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즉시 양화를 전공하기 위하여 대구미술사 지배인 서동진씨 문하에 제자로 들어가서 공부한 결과 금번 조선미전에 무사통과되었다. 이에 대하여 대구미술사를 찾으니 그 선생 되는 서씨는 기 쁜 웃음을 금치 못하면서 김군의 재주를 칭찬키를 마지아니하며 장래를 매우 촉망하고 있는 가장 사랑하는 제자 중 한 사람인 것을 말하였다. 그리고 곁에 있는 김군은 ‘저야 무얼 압니까. 모두 선생님이 지도하신 덕이지요’ 운운 ”(조 선일보, 1932.5.28.) 그의 첫 입선작 <풍경>은 수채화인데, 당시 가옥 위주의 풍경을 주제로 그린 짜임새 있는 작품으로 화면의 하단부 에는 지붕들이 밀집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그 당시만 해도 새롭게 들어서는 서양식 건물을 부각시킨 작품이었다. 직 선적인 건축 윤곽선에다 명암을 선명히 한 이 작품은 신예작가다운 신선한 기량을 엿볼 수 있었다. 제13회 조선미전 (1934)에서는 3점의 유화 작품을 출품해 입선했는데, 견실한 기법을 구사한 정통적인 작품 <정물>, 교외의 숲이 있 는 <봄 어느 날>, <풍경> 3점이 동시 입선되었다. 그리고 제14회(1935)에는 여름 강가에 정박해 있는 나룻배를 그린 <여름 강가>와 <비온 뒤>를 출품하여 입선을 수 상하였고, 인물화를 제작해 처음 출품한 <그림책을 보는 소녀>가 특선을 차지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풍경화 작품 에 비해 화면의 구성력과 정교한 묘사력을 요구하는 인물화 제작이 미술을 독학으로 습득하다시피 했던 그에게 가능 했다는 점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확인시켜 주는 내용이다. 당시 형편으로는 모델을 구해 인물화 제작이 힘들었던 그에게 스승 이응창은 자신의 처제에게 모델을 부탁해 주기 40 sagak


上 ) 김용조 , 배 , 1939, Oil on canvas, 90.9 × 72.7cm, 제 18 회 조선미전 입선 (1939) 下 ) 김용조 , 어선 , 1938, Oil on canvas, 72.7x90.9cm,1938, 제 17 회 조선미전 입선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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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용조, 낙동강,1930년대, Oil on Wood pane ,23.5x33.5cm 2. 김용조,해경, 1930년대, 40.5x52.5cm, Oil on Wood panel 3. 제11회 조선미전 입선(1932), 풍경, 입선, 원작망실 4. 제13회 조선미전 입선(1934),봄의 어느날 5. 제14회 조선미전 입선(1935), 비온 후 6. 제16회 조선미전 입선(1937), 가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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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제14회 조선미전 특선(1935), 그림책을 보는 소녀 제15회 조선미전 입선(1936), 좌상 조선미전 특선작 기사 -김용조(조선중앙일보, 1935.5.22)

도 했다. 20호 크기의 유화로 그려진 이 작품은 댕기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흰 모시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은 소녀가 다소곳한 자태로 의자에 앉아 화집을 보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인물화를 처음 제작한 작가 답지 않은 섬세한 묘사능력과 뛰어난 색감 처리 능력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조선미 전에서의 연이은 수상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미술에 대한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로 평가되어지 고 있다. 제15회 조선미전에 <맥하(麥夏)>와 함께 무감사로 출품된 <좌상(坐像)> 역시 한복을 입은 소녀가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인물화 작품으로 사실에 충실한 묘사력과 교과서적인 대상의 해석 능력을 신예작가답지 않게 보여주었다. 한국근대미술사에 요절화가로 기록되고 있는 김용조는 서양화라는 예술의 꽃을 피우기 위해 청년기를 가파 르게 달려가다 미완의 삶으로 사라진 인물이다. 그의 실질적인 작품 활동 기라고 해 봐야 기껏 10여 년 남짓 이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1930년대 한국 화단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작가의 위상과 함께 뛰어난 기량으로 평가 받고 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보헤미안의 열정으로 살다갔던 그는 대구근 대미술의 또 다른 개척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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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대구음악史

대구교향악단 창립연주회 (1957.12.19. )

이기홍, 대구지역 오케스트라의 창시자

글 | 음악사연구가 손태룡 음반레이블/옹달샘 추억의 옛노래

이기홍(李琦洪, 1926-2018) 선생은 1926년 2월 5일 영천시 금호읍 냉천 리에서 태어나 2018년 12월 28일 대구에서 영면하였다. 그의 형님인 이경 홍은 일본 동양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였고, 자형 홍재기는 바이올린 을 전공한 음악가였다. 이러한 음악적 환경으로 13세부터 바이올린을 시작 하였다. 1951년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그는 해군정훈음악대(악장 박민종) 에서 제1바이올린으로 2년간 활동하였다. 이후 대구로 와 미8군에서 2년간 이기홍 생전 모습 _ 출처 대구문화 , 2005 년 2 월호

군복무를 하고 대구여중을 시작으로 영남고, 능인고, 경북여고, 대구공고 등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하면서 생활하였다. 아울러 자신의 바이올린 제자 들을 중심으로 현악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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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 이기홍제자들 - 이영애 , 심상균 , 구경자 , 손진헌 (1950) 우 ) 대구음악가협회발기인 (1956.1.8.) 원표시 이기홍

현악합주의 울림을 자아내다

1950년대 대구의 실내악은 불모지였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이기홍 선생은 자신의 바이올린 문하생을 중심으로 현 악단을 조직하였다. 1957년 3월 7일 바이올린 12명과 첼로의 전공자인 김응임과 조태석의 협조를 얻어 대구현악회 를 창단한 것이다. 단원은 제1바이올린에 악장 안종배, 손진헌, 심상균, 이영애, 강건, 강훈 등 12명과 제2바이올린 에 최영찬, 권상태, 천시권, 서성은 등 4명, 그리고 첼로에 조태석, 김응임 등 3명과 베이스에 김항기였다. 이들 20명으로 구성된 대구현악회는 그해 6월 2일 2회에 걸쳐 청구대학 강당에서 모차르트의 현악합주곡 ‘세레나 데’ 등을 연주하였으며, 아울러 첼로의 김응임, 피아노의 김종환, 바리톤 이점희가 찬조출연하였다. 대구현악회의 성공적인 창단연주로 이후 대구교향악단으로 확대되어 새롭게 조직된다. 이기홍 선생은 대구현악회를 중심으로 현악기 연주자와 2군군악대 관악 기 연주자의 협조로 대구교향악단으로 창단하게 된다. 발기인은 강영기, 김기우, 김종환, 김진균, 김흥교, 성기용, 이경희, 이기홍, 이상필, 이점 희, 임성길, 장안라, 최병선, 하대응이었다. 대구교향악단은 1957년 12 월 19일 문화극장에서 창립기념연주회를 개최했는데, 합창지휘에 임성 길, 작곡 및 편곡에 김진균, 피아노에 이경희・김종환・이재원이 맡았다. 창단연주회를 가졌던 대구교향악단에서는 1년도 안되어 심한 재정난 으로 말미암아 재정비의 고충을 겪는다. 그래서 하영수(한일미유주식 회사) 사장을 단장으로 추대하고, 명칭을 대구관현악단으로 바꾸어 활 동하면서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재탄생시킨다. 1958년 10월 6일 창 단공연을 시작으로 5년간 하영수의 후원은 대구관현악단의 명맥을 잇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대구현악회 - 포스터 (1957.6.2.)_ 출처 대구문화 , 2014 년 11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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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 7 8 1. 이기홍.바이올린독주(1957년) 2. 대구현악회 창립연주회(1957. 6. 2.) 3.대구방송관현악단 창단공연(1963. 2.20.) 4. 대구시향 창립공연(1964.12.17-18.) 5. 대구교향악단.창립연주회 팸플릿(1957.12.19.) 6. 대구관현악단 제3회공연 포스타(1959.12.1) 7. 대구방송관현악단의 4시도 공연 팸플릿(1963. 4.11.) 8. 대구시립교향악단 창립연주회 팸플릿(1964.12.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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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원로음악가회 모임 (1996 년 )

정기연주 4회와 임시연주 6회를 가진 대구관현악단은 또다시 재정난으로 운영이 침체되자 이기홍 선생이 주축이 되어 대구방송관현악단으로의 창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1962년 3월 12일 오후 7시 40분부터 대구방송국에 서의 제1회 방송을 시작으로 월 2회 정기연주회를 구상하였다. 대구방송관현악단에서는 1963년 4월 16일부터 4개 도시 순회공연을 하였는데, 소프라노독창에 윤춘자, 피아노독주에 류옥희와 권정희, 테너독창에 백남영이 각각 맡 았다. 대구시립교향악단을 출범시키다

1963년 2월 20일에 창단공연을 하였던 대구방송관현악단은 이듬해인 1964년 11월 25일 이기홍 선생에 의해 대 구시립교향악단으로 창설된다. 대구시향은 그해 12월 17∼18일 이틀동안 KG홀에서 창립기념공연을 가졌으며, 당 시 악기를 기증한 하영수 사장에게 감사장을 수여하였다. 창립공연에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1번 다장조’, 바리톤 이점희의 독창으로 현제명의 ‘그집앞’과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더 날지 않으리’, 최명자의 피아노협연으로 리스트의 ‘헝가리안 환상곡’, 관현악 연주로 김희조 편곡의 ‘천안삼거리’・‘베틀가’・‘방아타령’, 롯시니의 서곡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글린카의 ‘루스란과 루드밀라’가 연 주되었다. 이렇듯, 이기홍 선생은 대구지역 오케스트라의 창시자이다. 1956년 6월 자신의 바이올린 문하생들을 중심으로 대 구현악회를 조직하여 공연함으로써 현악의 울림이 시작되었다. 이 단체는 1957년에 대구교향악단으로 확대되었으 며, 1958년에는 대구관현악단으로, 1963년에는 대구방송교향악단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마침내 1964년에는 대 구시향으로 창단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모두 지휘자였던 이기홍 선생이 일구어낸 업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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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격동기의 대구

서석규 ( 徐錫珪 )

자연과 삶의여운을 그리다

서석규 , 난무 , 1978 년 , 캔버스에 유채 , 31.8 × 41cm,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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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삶의 터전을 파괴한 6.25 전쟁. 하지만 악몽같았던 전쟁 와중에도 예술가들의 창작혼은 식지 않고 불타올랐다. 특히 임시수도 부산과 더불어 피난지의 역할을 수행했던 대구에서는 역설적이게도 내지인과 더불 어 고향을 떠나온 많은 예술가들이 합류한 덕분에 새로운 문화예술의 장을 열게 되었다. 이번 호부터 시작되는 기획연재 “격동기의 대구를 빛내다”는 바로 그 때부터 대구를 거점으로 활동한 이른바 “대구화단의 2세대 작가들”을 작품과 자료로 정리 및 소개하고자 마련되었다. 이제는 모두 우리 곁을 떠난 작가들이지만 우선 지면으로 나마 그들이 남기고 간 발자취를 되돌아보려 한다.

사실 대구화단에서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2세대 작가들은 무수히 많기에 어떤 분을 우선 소개할지가 많이 고민되었 다. 그러다 출생부터 임종까지를 모두 대구에서 맞이한 대구 토박이였으며, 박명조와 서진달, 이인성 등으로 대표되 는 대구화단의 1세대에서 해방 이후 2세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비유하자면 1.5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인 일산(一山) 서석규(徐錫珪, 1924-2007)를 첫 번째로 선정하게 되었다. 특히 그는 총 12회의 개인전과 여러 단체전 등으로 활발 하게 작품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대구 지역 최초로 마네킹 공방과 입시미술학원을 운영하였고, 대구예총의 초대 회 장을 역임하며 대구문화예술회관 건립을 성사시키는 등 행정가로도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행적은 오 히려 그동안의 작업을 가리는 역효과를 낳기도 했다. 다행히도 현재 청년 시절인 1940년대부터 말년인 2000년대의 작품과 자료가 모두 풍부하게 전해지므로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렇기에 이번 지 면에서는 서석규의 삶과 예술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도록 시기별 대표작과 관련 자료들을 한 데 모았다.

<2003 년 조카 서영배와 함께 > : 말년에 서석규는 봉산동에서 법물동으로 아틀리에 를 옮겼다 . 이 시기 서석규는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100 호 이상의 대작을 제작하는 등 마지막 정열을 불태웠다 . 사진 속에서 함께한 조카 서영배는 현재 실험미술가로 활 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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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 1959

시계방향으로 1. 수녀원, 1943년, 나무판에 유채, 27×35cm, 개인 소장 2. 자화상, 1951년, 나무판에 유채, 24×16cm, 개인 소장 3. 상봉, 1950년대, 하드보드지에 유채, 18.6×24cm, 개인 소장 4. 귀로, 1950년, 캔버스에 유채, 24.2×33.4cm, 개인 소장

<수녀원> : 서석규는 청년 시절 도쿄의 카와바타미술학교(川端画学校)와 다이헤이요미술학교(太平洋美術学校)에서 미술 공부를 하였다. <수녀원>은 기름진 덧칠과 탁한 중간색 을 주로 사용한 사토미 카츠조(里見勝蔵, 1895-1981), 하야시 타케시(林武, 1896-1975), 이노쿠마 겐이치로(猪熊弦一郎, 1902-1992) 등 ‘일본식 야수파’를 표방한 작가들의 영향을 보여준다. 일찍이 작가가 모더니즘 화풍에 자극을 받았음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자화상> : 서석규는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여러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한국전쟁 중에 그려진 이 자화상은 거친 붓질로 가볍게 스케치하듯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역시 일 본식 야수파의 영향이 감지된다. <귀로> :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피난민들의 행렬을 그린 작품이다. 한국미술사에서 전쟁의 현장을 전쟁 중에 직접 그린 사례를 매우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 서 이 작품은 전쟁기의 화단을 증언하는 귀중한 의의를 지닌다. 배경에 드리워진 노을은 고향을 등져야만 했던 피난민들의 비애를 암시하는 듯, 극적인 비애감을 이끌어낸다. 이 작 품은 다른 이에게 판매된 것을 훗날 작가가 다시 되샀을 정도로 애착을 보인 것이기도 하다. <상봉> : 이 작품은 정확한 제작년도를 알 수는 없으나, 1950년대 초반의 <귀로>, <귀가> 등과 화풍이 유사하다는 점, 캔버스가 아닌 작은 하드보드지에 그려진 점을 보아 전후 (戰後) 물자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부둥켜안고 감격에 젖은 가족들의 모습으로 재회의 염원을 호소하듯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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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 1969

시계방향으로 1. 비계산, 1962년, 캔버스에 유채, 72.7×91cm, 개인 소장 2. 풍경, 1965년, 캔버스에 유채, 45.5x38cm, 개인 소장 3. 귀로, 1965년, 나무판에 유채, 27.3×41cm, 개인 소장

<비계산> : 한국전쟁 이후 서석규의 작품세계에서 산은 가장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졌다. 그의 호가 일산(一山)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사계절, 햇살 등 여러 가 지 요인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변화하는 산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진달래 또는 철쭉이 만개한 비계산을 그린 듯, 맑고 투명한 채색, 색채로 봄의 따사로움을 표현한 듯하다. <풍경> : 1960년대에 들어 서석규의 화풍은 구상성이 점차 약화되며 추상에 가까워진다. 이 작품은 <비계산>처럼 산을 그리고 있지만, 이제 풍경은 붓질 사이로 어렴풋이 드러나는 윤곽만으로 파악될 뿐이다. 하지만 구상성이 약화되었기에 파스텔 톤의 색채가 자아내는 서정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강조되어, 서정적인 자연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 다. <황소> : 1961년부터 1966년 사이 서석규는 대구 시내에 타일벽화 세 점을 설치하였다. 이 작품은 그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대중들에게 추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 과감하게 추상으로 타일벽화를 제작하였다는 점이 이채롭다. 한편 이는 1950-60년대 한국 화단을 강타한 추상미술사조 앵포르멜(Informel)과의 점점도 있 는데, 마침 당시 대구에서도 정점식(鄭點植, 1917-2009)과 장석수(張石水, 1921-1976) 등도 앵포르멜에 호응한 바 있어 서로간의 영향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귀로> : 1960-70년대 서석규의 작품은 추상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구상 작품도 여럿 제작되었다. 특히 물고기와 사람, 조개껍질 등이 많이 등장하는데, 작 가는 이러한 소재가 한국전쟁 중 제주도에서 피난생활을 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렇기에 이들은 피난지에서 마주한 삶의 현장이기도 하고, 전쟁을 겪은 세대로서 갈망한 평화로운 삶을 은유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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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 1989

시계방향으로 1. 윤회, 1977년, 캔버스에 유채, 33.3×24cm, 개인 소장 2. 해풍(海風), 1980년, 캔버스에 유채, 41×53cm, 개인 소장 3. 파리에서, 1986년, 종이에 수채, 25×45cm, 개인 소장 4. 유럽회상, 1981년, 캔버스에 유채, 72.7×91cm, 개인 소장

<윤회> : 앞서 언급했듯 제주도에서의 피난 생활은 서석규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특히 물고기를 안거나 해변에 앉은 여인은 해녀에게서 영감을 받았음을 밝힌 바 있 다. 이 작품은 아마도 해녀가 직접 잡아온 물고기를 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표현한 듯하다. <유럽인상>, <파리 풍경> : 1980년대에 서석규는 유럽 여행길에 올라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등 여러 국가를 다녀왔다. 여행지에서 인상깊었 던 곳을 한 데 엮은 <유럽인상>과 현장에서 그린 유럽 이곳저곳의 풍경 수채화들은 맑고 선명한 발색을 통해 작가의 세련된 감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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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 2007

시계방향으로 1. 바다와 산, 1993년, 캔버스에 유채, 71.5×115.5cm, 대구문화예술회관 소장 2. 설악계곡, 2001년, 나무판에 유채, 46×69cm, 개인 소장 3. 백악골 풍경, 2003년, 캔버스에 유채, 81×116cm, 개인 소장

<바다와 산>, <설악계곡>, <백악골 풍경> : 1990년대부터 서석규의 화풍에는 다시 한번 변화가 나타난다. 이제 서석규는 원근법에 구애받지 않은 채 다채롭고 몽 환적인 색채를 활용하여 자연 풍경을 추상에 가까운 환상으로 탈바꿈시킨다. 여기에 화면의 윤곽선도 점차 뭉개짐에 따라 화면에는 자연이 표출하는 변화무쌍한 생 명력, 즉 서정만이 남았다.

글 안태연 | 객원기자 * 작품사진은 작가유족의 동의 후에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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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공연

연극 만들기 소극장의

탄생 글 김태석 예전아트홀 대표·극단 예전 예술감독

"배우와 관객이 만나는 곳, 이 곳이 바로 극장이다." 현대인들에게 있어 일반적으로 극장이라 함은 잘 꾸며지고 아늑한 혹은 웅장한 실내에 무대와 객석을 분리하는 프로시 니엄이란 장치가 설치되어 있으며 무대 안과 위는 각종 기계장치들과 휘양 찬란한 조명시설과 검고 두꺼운 막들이 있으 며 많은 관객들이 어두움 속에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장관들을 보는 그런 멋진 곳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 에 와서 극장의 모습은 이러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시작 된 연극은 세월이 흐르며 문명의 발전과 이에 따른 인간 사고와 삶의 형태의 변화로 인해 연극의 표현방식 또한 다양한 사조로 나눠지고 이러한 변화된 연극의 표현 양식을 수용하기 위해 극장의 모습 또한 다양하게 변화되었다. 이러한 다 양한 극장의 의미와 형태는 현대에 와서 어떤 하나의 의미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고래로부터 현재까지 존재한 극장의 형태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원형 혹은 반원형극 장, 중세시대의 이동식 웨곤스테이지(마차 무대), 세익스피어 시대의 현대 극장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실내극장, 엄청 난 기계설비와 대단위 공연을 위한 야외 가설무대, 17~18세기 풍의 화려하고 웅장한 오페라하우스, 음악연주를 위한 콘서트홀, 뮤지컬 전용극장, 강연과 공연 등 다목적 공연장, 300~500석 규모의 중극장, 200석 이하의 소극장,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는 가변형 블랙박스 씨어터, 100석 이하의 연극전용 소극장, 마당극 전용 원형 극장, 시내 곳곳에 있 는 소규모 상설야외 무대 등 실로 다양한 형태의 극장이 존재한다. 따라서 작금에 와서 극장의 정의는 “관객과 배우가 만나는 곳”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연극 등 다양한 무대예술이 공연되어지고 이러한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 이 있을 때 그것이 어떤 곳이든 우리는 그 곳을 극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극장을 정의할 때 극장의 탄생은 연극의 탄생과 동시적이며 연극과 극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결국 연극의 표현 양식만큼 극장의 형태 또한 다양해지는 것이라 하겠다. 고래로부터 시작된 연극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와 함께 극장 또한 다양해지고 발전을 거듭해왔다. 즉 극장은 그 기능-무대에서 표현되어지는 것을 관객들에게 최대한 잘 전달하기 위해 계속된 진화를 해 온 것이다. 극장은 무대예술이 시연되는 무대와 그것을 보는 객석을 모두 포함한다. 무대는 무대예술을 표현하는데 최적화 되어야하고 객석은 그 무대표현을 관람하는데 최적화 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최적화하는 범위에서 극장은 변 화와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공연하는 곳-극장이 구조를 변경할 수 없는 곳이라면 행위자와 제작자들은 관 객의 관람을 최적화 하기위해 공연의 형태를 수정한다든지 다른 요소들을 첨가하여 관람을 최적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또 다른 공연예술 형태와 양식을 창조하게 되고 이는 또 다른 극장의 형태를 창조하게 되는 것이 다. 물론 어설픈 시도는 오히려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실패 속에서 또 다른 창조와 발전이 있을 수 있으니 54 sagak


예전아트홀 무대에서 김태석대표

무대예술가들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은 권장할 만 하다. 1960년대에 와서 연극을 대중화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연극인들에게서 이루어졌다. 연극에 대한 개념을 다르게 해석하 고 연극의 사회적 의식을 강화하고 연극이란 예술이 좀 더 관객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자 한 노력들이 다양하고 실험적 으로 시도되어졌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소극장 운동이었다. 그 전만해도 연극이 공연되어지는 극장이라 함은 중극장 혹은 대극장이었다. 그러니 관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가고 다양한 무대공연예술을 표현하고자하는 운동은 200 석이하의 연극전용 소극장이란 형태의 극장을 탄생시켰다. 이를 위해 소극장은 대극장 무대의 화려함과 가식적인 부분을 모두 제거했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것이 열악한 소극장의 관극환경 속에서 오히려 침체되어가던 연극의 활로를 찾고자 했 고 이를 통해 연극예술의 대중성과 연극의 정체성을 확립시키고자 하였다. 당시 시대를 풍미하고 있던 대중무대공연예술 과 영상공연예술 속에서 연극의 정체성을 특화시키고 이를 통해 순수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소극장 운동은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발전을 거듭해 세계 각 지역에 소극장 거리가 만들어져 그 지역 의 랜드 마크가 되고 수십 수백 개의 소극장에서 수십 수백 개의 다양한 공연이 막을 올리고 있으며 그 나라 무대공연예 술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라 서울의 소극장 거리인 대학로와 대구의 대명동 소극장 거리에 서 많은 다양한 양식의 공연이 매일 공연되어지고 있다. 이제 사람들에게 연극이라 하면 소극장을 연상할 만큼 소극장은 연극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극장 연극이 타 대중공연예술이나 영상예술에 비 해 대중화되진 않았다. 아직 매니아 층만 확보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소극장 공연이 상업성 있는 대중무 대예술이 되긴 힘들다. 객석수가 적어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선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소극장에서 로맨 틱 코미디류의 대중예술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예도 많이 있으며 몇몇 작품은 몇 년간 장기공연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순수 소극장 공연은 이런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렇지만 비록 연극의 대중화를 꿈꾸 지만 단순히 상업적 성공을 통해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닌 연극의 예술성과 그 정체성을 통한 연극의 대중화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소극장과 극단들이기에 현재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1960년대 소극장 운동이 벌어질 때 가졌던 초 심을 잃지 않고 순수연극의 활성화와 새로운 공연양식의 창조를 위한 무대실험에 매진하고 연극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 는데 혼신을 다한다면 언젠가 그 목적을 달성하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시대 전 시민이 원형극장에 모여 연극을 통해 그 당시 자신들이 속해 있는 사회와 삶에 대해 토론을 하였다. 이제 우리 현대인들은 소극장을 찾아 관객의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살아있는 공연을 통해 인생을 토론하자. 55 sagak


Review | 전시리뷰

이우림 초대전 Walking on the Edge 2020. 7. 3 - 7.19. 갤러리 토마 글 강금주 | 사각 발행인 및 기획자

선인장, 달팽이, 부엉이가 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부엉이는 도자기 패턴으로 옷을 입고 정면을 응시한다. 또 빽빽한 숲을 배경으로 화려한 색을 입은 새와 도자기 패턴을 입은 부엉이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마치 꿈속의 기억 을 토막으로 잘라 캔버스 위로 옮겼다. 갤러리 토마에서는 기획전으로 상상의 공간에 사실적인 그림을 배치하여 마치 현실과 비현실적인 경계를 재해석한 이우 림의 <Walking on the edge>전을 열었다. 이우림은 실존적 상황을 이상적 자연 속에 배치하여 애매모호함을 표현하고, 주로 직물의 패턴이나 도자기와 같은 패턴 을 넣어 상상의 세계와 현실과 거리를 두게 했다. 이번 전시는 주로 사실적 동물과 도자기패턴을 한 동물들을 같은 캔버 스 안에 둠으로써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56 sagak


빽빽한 숲속에서 부엉이는 도자기 몸을 하고 우리를 응시할 때는 꿈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이 들게 한다. 또 커다란 캔버스 에 숲속에 뿌려지는 빛을 마주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더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작가는 회화적 기법으로 현실과 상상을 절묘하게 배치하여 그림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경계에 서게 하여 긴장감을 준다. 어느 한 영역으로 치우치지 않은 그 경계의 영역을 작가는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입체와 평면의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꽃 패턴을 휘감은 조각도 만날 수 있어 더욱더 매력적이다. 무엇보다도 갤러리를 들어서는 순간 자신을 껴안은 모습을 하는 여성의 뒷모습이 눈길을 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한 번쯤은 나 자신을 안아보자. 그리고 경계에서 오는 긴장감을 두려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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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 공연 리뷰

J.MASSENET MANON 마농: 감미로운 관악에 새롭게 눈뜨다 리뷰어 박순선 | 공연객원기자

무관중공연으로 네이버 TV 클래식채널 VLIVE 로 생중계되었습니다 .

6월 25일 저녁 7시 30분. 평소 같았으면 러시아워를 뚫고 온 관객들이 예술의 전당 홀을 가득 메웠을 시간.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무관중 공연을 결정한 국립 오페라단은 온라인 생중계를 하기로 했습니다. 지방에 사는 저 같은 관객 들은 아마 더 목이 빠져라 기다렸을 텐데요. 코로나 19 사태 이후 세계 첫 오페라 전막 공연이라는 뜻 깊은 타이틀과 함 께 막이 올랐습니다. 오늘 공연 될 오페라 <마농>은 아베 프레보의 자전적 소설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작곡 가 쥘 마스네와 지아코모 푸치니가 각각 작곡하여 서로 다른 오페라로 만들었죠. 푸치니 특유의 유려한 선율들로 채워진 “마농 레스코”도 유명하지만 마스네의 오페라 “마농”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푸치니의 마농이 원작에 충실 했다면, 마농 의 팜므 파탈 적인 매력을 더 부각시킨 마스네의 마농은 훗날 탄생할 베르디의 트라비아타를 품기도 했죠. 얼마 전 뉴욕 매트 스트리밍에서 안나 네트랩코 주연의 마농을 관람한지라 장면들을 잘 비교하면서 봐야지 생각했는 데, 비교는 무슨, 몰입감이 최고였습니다. 뉴욕매트가 정말 무대와 카메라에 강하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우리나라 영상예술도 이미 세계급. 카메라를 정말 잘 다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연출가 뱅상 부사르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오페라를 연출하는 유일한 연출가가 됐다며 자랑 을 하기도 했는데 그의 열정 덕분인지……. 우리 오페라 가수들이 연기를 저렇게 잘했었나 싶을 만큼 클로즈업 카메라에 도 당당한 연기였습니다. 역시 국립~!!! 직관 할 때는 늘 감정연기가 아쉬웠었는데 말이죠. 시골 처녀인 마농은 집안 식구들에 의해 강제로 수녀원에 가게 되었어요. 아마도 1800년대 유럽엔 그렇게 수녀원에 들 어간 어린 여자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가족들에 의해 속죄양으로 결정되어지는 거죠. 주인공 마농 역시 사촌오빠인 레스코와 동행해서 수녀원으로 가게 됩니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잘생긴 유학생 인 기사 데 그리외를 만나게 되는데요. 데 그리외가 마농에게 첫 눈에 반했음을 고백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묻자 마농은 원하지도 않는 수녀원에 가는 길이라 대답하죠. 데 그리외는 마농의 대답에 분개하며 자기와 함께 떠나자고 합니다. 파 리에 가서 함께 살자고요. 함께 할 날들의 행복함을 노래하는 데 그리외와는 달리 마농은 파리? 파리! 만을 외치며 그와 함께 가기로 결정하죠. 그들의 어긋난 사랑은 이미 1막에서 품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파리의 작은 방에서 함께 하는 두 사람. 데 그리외의 아버지가 그를 데려가려 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레스코. 그리고 레 스코와 함께 떠나기로 결심한 마농. 사실 이 파리의 작은 방 장면은 너무 아름다웠어요. 두 주인공의 감정선과 맞아 떨 어지는 음악도 너무 좋았고요. 1884년에 초연된 작품임을 생각한다면 이 음악은 요즘 영화음악으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58 sagak


세련된 전개를 보여줘요. 얼굴 표정에 딱딱 맞아 떨어지는 음악이라니. 보는 내내 소 름이 돋았답니다. 2막에서는 코티쟌이 된 마농의 화려한 생활을 보여주는 파티장면들이 대부분을 이 룹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심도 있는 장면은 3막이 아닐까 싶은데요. 3막에서는 데 그리외 기사가 신부가 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마농이 그를 찾아가 유혹하는 장면입니다. 마농의 팜므 파탈적인 매력을 여지없이 보여주죠. 고혹적인 손지혜님 의 노랫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아요. 강렬하면서도 매끄러운 소리, 고음 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탁월한 안정감이 있는 소리였어요. 브라바~!!! 신부가 되지 말고 예전에 나를 사랑했던 기사로 되돌아 오라는 유혹에 흔들리는 데 그리외 기사의 갈등. 테너 국윤종님의 놀라운 연기와 노래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테너라기엔 묵직한 소리가 매력적이었던 국윤종님의 노래도 정말 좋았어요. 절제된 감정과 폭발하는 감정이 공존하는 어려운 장면인데도 두 분 모두 너무나 훌륭하게 클리어 하셨습니다. 공연장에 있었다면 목이 터져라 브라보를 외쳤을 텐데요. 너무 아쉽네요. 옛 사랑의 유혹에 결국 무너지고 만 기사 데 그리외는 다시 파리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생활에 물든 마농은 끝없이 그를 몰아 부칩니다. 그대는 어쩌면 이렇게 더 많은 금화를 원하는가? 하며 탄식하듯 노래하 는 데 그리외. 결국 그들은 도박으로 돈을 벌기로 합니다. 처음 하는 도박에서 큰돈을 따게 되지만 사기 도박꾼으로 신고 를 당하면서 마농의 인생은 파멸의 길을 걷게 되죠. 이 도박장을 배경으로 한 4막에서 레스코가 계속해서 돈을 잃는 장면 과 대비시켜 데 그리외의 행운이 불안함을 암시하고 있는데요, 그 덕분에 설정들이 훨씬 자연스러워졌어요. 결국 사기도박 혐의로 체포된 두 연인. 데 그리외는 아버지인 백작이 그를 구해 주지만 돈도 빽도 없는 마농은 유배지 로 떠나게 되죠. 백작역의 베이스 김철준님 목소리도 예술이더라고요. 풀려난 데 그리외는 그녀를 만나러 가지만 호송 길 에서 만난 그녀는 이미 병들어 죽어가고 있었어요. 절절한 세레나데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데 그리외와 그제야 자신의 잘 못을 뉘우치고 향락에 물든 삶을 돌아보는 마농. 그리고 끝내 자신의 삶을 후회하며 죽음에 이르는 마농과 절규하는 기사 데 그리외의 노래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줄거리만으로도 재미있지 않으세요? 전 5막이나 되고 두 번의 인터미션을 포함 한 공연 시간이 세시간 삼십분이나 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오페라였습니다. 사실 보는 내내 너무나 합이 잘 맞는 무대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오페라를 보면서 물론 음악도 함께 듣습 니다. 대부분은 아리아에 치중되어 있고, 그 외에는 배경음악처럼 듣는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이번 오페라에서는 아 리아가 연주되지 않는 부분에서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기가 막혔어요. 정말 최고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합창이면 합창 아리아 이중창 삼중창 할 것 없이 정말 최고였습니다. 변화무쌍한 주인공들의 심리에 맞춘 듯이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연 주. 음악을 다시 찾아 들었을 정도였답니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멋진 무대를 만들어 주신 국립 오페라단 여러 분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59 sagak


PREVIEW | 공연 프리뷰

극단 에테르의 꿈 제 7 회 정기 공연 , 연극 사이 ‘여러분들의 인생에는 사이가 있나요 ?’ 엄마와 아들 , 단 둘이 살고 있는 한 가정 . 아들과의 관계에서 소통의 문제가 있다고 느낀 엄마는 심리상담소를 찾게 되고 , 수년째 연애중인 남자와 여자는 오랜시간 문제 없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 그러던 어느날 . 서로간의 관계가 어긋나 있단 느낌을 받게 되는데… 반복되는 일상 , 계속되는 다툼 , 그들 사이에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 가까이 있는 누군가와 진정으로 가까워 질 수 있는 이야기로 자신 삶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연극 ' 사이 '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소중해지는 이야기로 바쁜 일상 속에서 여유를 얻어가는 이야기 , 마음과는 다르게 늘 다투게 되는 우리 가정 , 문제가 없다고 여겼지만 , 소통이 잘 안되는 한 커플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며 자신과 어떤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들여다보세요 . 대구 청춘 극단 에테르의꿈의 일곱번째 정기공연으로 대구문화재단의 연례지원사업 후원을 받아 이루어진다 . 제작 극단에테르의 꿈 후원ㅣ대구문화재단 연출 , 작가 , 조명디자인 l 김상훈 극단대표 , 총괄 PD ㅣ박지수 출연 이승재 ( 아들역 ), 이은채 ( 엄마역 ), 최인영 ( 여자역 ), 권도형 ( 남자역 ), 김근영 ( 사람역 ) 2020.07.21( 화 ) - 2020.07.26( 일 ) 주말 15 시 , 19 시 (2 회 공연 ) / 평일 20 시 (1 회 공연 ) 대구 남구 현충로 256 지하 1 층 우전소극장 일반 자유석 : 20000 원 인스타그램 ‘dream_of_ether’ 좋아요 , ‘극단 에테르의 꿈’ 카톡 플친 추가 : 160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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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전시정보는 사각테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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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AL LETTER 코로나시대 문화생활

7:00 아침에 누군가가 깨워서 눈을 떴다. 신문도 그가 읽어 주었다. 8:00 아침식사도 누군가 정해준 레시피대로 먹고 … 12:00 점심식사 후 잠간 짬을 내어 오페라음악을 라이브로 들었고 16:00 재택 근무가 끝난 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를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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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로 비대면 전시나 공연들이 성행 중이다. 그래서 왠지 미래공상영화에서 보던 일이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되었던 그렇지 않던

우리는 대면 즉 직접 만나지 않고 모든 일을 해결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 예술활동 즉 공연, 전시 이것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의 접촉에 의해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일일텐데, 어쩐지 아쉬어져만 간다.

2020 0708 SAGAK ARTS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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