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GAK artsmagazine 9-10월호 SEP. / OCT. NO. 32 :Bi-Monthl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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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586-2197

9 772586 219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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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원 2021 Sep/Oct VOL.32

2021. 9/10 Vol.32

ARTS | ARTIST | ARTICLE

인터뷰 현대미술가 권정호 기획 우리는 메타버스로 미술관 간다.



PHOTO ESSAY

Photo by dot. K

백리를 달려 남도로 달려가면

신은 자신의 사랑을 전할 길 없어

절뚝거리며 마중 나오는 성자가 산다.

고향에는 성자가 산다

비가 새어들고 바람이 들이치는 옛집에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는 그 사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주고도

이 땅에 그를 대신 보내 주셨다

발을 절며 서울 가는 나를 마중하는 늙은 예수가 산다

더 못 주어 안타깝다던 그 사람 그가 있어 세상은 살 만했고

생은 축복이라고 생각해도 좋았다 수백 번 자신이 팔렸음에도

한 번도 못난 자식을 탓하지 않았다

- 김용원 作 `고향에는 성자가 산다`


2021년 9*10월호 통권32호

1 PHOTO ESSAY 포토에세이 4 HEAD COULUMN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6 EXHIBITION 전시화보 12 INTERVIEW 현대미술가 권정호 김수경 예술감독, 유슬아 제작감독

27 명사가읽어주는 문화예술이야기 대구음악사- 손태룡 대구근대미술사 -김태곤

40 Gallery in PAPER

12

참여작가 이봉수 전영남 문순덕 정영철 안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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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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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메타버스와 미술 우리는 메타버스로 미술관 간다!

60 60 미니인터뷰 -박정현작가 65 ARTICLE 연극이야기 클래식읽어주는여자 뮤지컬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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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Check ARTS Schedule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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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D COULUMN 독자에게 보내는 편지

‘근거’란 무엇인가

가을이다. 일 년 중에 내가 제일 기다리는 계절이다.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니나 어느 정도 설렘이 있는 것은 진실이다. 사실 나는 여름과 겨울보다는 봄과 가을을 좋아한다. 봄과 가을 중에서도 가을을 더 좋아한다. 그런 데 ‘왜 그렇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딱히 ‘근거’는 없다. 한 마디로 그냥 좋은 것이다. 그러나 누군 가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 중에서 어느 계절이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다양하리라. 더욱이 ‘가을에 대한 느낌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반응도 각양각색 일 것이다. 혹여 누군가 나더러 “왜 가을이 좋냐?”고 묻는다면, 일단 “그냥 좋다!”고 하겠지만, 짓궂게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묻는다 면 대략 난감일 듯하다. 그래도 배운 사람이 ‘그냥 좋다’ 하면 남들이 욕할까 싶어 그 ‘근거’를 생각해 본다. 그런 내 생각이 어디서 왔을까. 생각이 머문 곳을 닦달하고 문질러대면 그 무언가가 또렷해질 까. 내 생각의 근거는 이렇다.

‘봄’은, 따뜻하지만 너무 화사하고, 뭔가 생동감이 있지만 부품해보이고, 시작하는가 싶지만 후딱 지 나가는 듯하다. 그래서 좋아하나 썩 좋지는 않다. ‘여름’은, 내가 추위를 많이 타기에, 일단 간편한 복 장을 해서 좋다. 하지만 싫어하는 에어컨, 선풍기를 수시로 틀어야 하니 얼른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 음 간절하다. 겨울은, 일단 춥고 몸과 마음이 위축된다. 바람이 썰렁하고, 먼지와 나무이파리 쏠려 다 니는 거리는 참 을씨년스럽다. 그래서 ‘언제 봄이오나?’며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이래서 그다지 좋 아하지 않는 편은 아닌 셈이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과 느낌으로 싫거나 썩 좋아하지는 않는 것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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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나가면, 마지막 남는 계절이 ‘가을’이다. 가을은 일단 맺을 것 맺고, 떨어질 것 떨어지고, 차분히 무언가 정리하는 듯하다. 더위와 추위 사이에서, 활동하기에 적합하고 옷 입기에 여유롭고, 더위로 잠을 설치지 않 아도 된다. 책 읽고, 글 쓰고, 놀러 다니고, 놀기에도 딱 좋은 시기이다. 물론 가을에 비 내리고 바람 불면, 약간의 서글픔도 쓸쓸함도 느낀다. 그래도 싫은 것들 보다 좋은 것들이 더 많다. 이런 정도로 내 생각과 느 낌을 정리한 것이 내가 주장하는 ‘근거’이다. 그런데 근거란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요즘 젊은이들이 ‘당근’ 즉 ‘당연한 근거’라고 쿨 하게 말하지만 사실 현실 삶의 근거를 그렇게 쉽게 내뱉 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거란 무엇인가?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면 대략 이렇다. 먼저 근본이 되는 거점 즉 활동이나 세력의 기반이 되는 바탕 말이다. 사회적 현실적 차원에서 무언가를 위해 활동하는 거점이다. 다음으로, ‘어떤 일이나 의논이나 의견-판단-주장-사태에서 그 근본이 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철학 에서 말하는 근거, 즉 좁은 의미로는 ‘결론에 대한 전제나 결과에 대한 원인’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존재의 기초가 되거나 어떤 사상이 진리라고 할 수 있는 조건’을 말하다. 다시 말해 무언가를 결론짓기 위한 전제나 원인이라는 것이다. 아, 그런데 사실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우리가 학술적 논문이나 책을 쓸 때 흔히 ‘각주’(脚註, 脚注, footnote)라는 것을 단다. 각주란 본문 아래 따로 달아 놓은 풀이 혹은 근거를 말한다. 내가 쓰는 글, 혹은 하고 있는 말의 근거를 밝히려는 의도에서이 다. 그러나 그 근거가 100% 맞다는 근거는 사실 없다, 따지고 들면 모두 현재의 그것이 확실하다는 근거는 없다. 왜, 왜, 왜 라고 캐들어 가면 거지반 ‘알 수 없음’ ‘잘 모름’이라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 삶 의 대부분은 은유로서 객관적 근거는 불명확하다. 그래도 근거를 찾고, 거기서 출발해야 인간의 삶과 사회 가 유지된다. 정치도 예술도 종교도 모두 그렇다.

글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시인 choijm@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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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을 긋다

오모크갤러리 2층

2021. 9. 1. - 10.31. WED

SUN


This- able

대구예술발전소

2021. 7.14. -9.26. WED

SUN



porosity_결, 바림, 켜 021갤러리

2021. 9. 14. - 10. 27. TUE

WED


강수진_untitled_2018_wild silk,linen and pine,cotton_ 230x150cm


SAGAK INTERVIEW 1

작가의 작업실 가다

현대미술가 권

정호

죽음이 위대해지려면 삶이 위대해져야하고, 위대한 삶은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인생은 칠십이 되면 몸은 더디지만, 사고가 무르익는다고 한다. 미국의 모지스가 국민화가가 된 것이나,

괴테가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을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권정호 작가는 일흔을 넘은 나이지만 후회스러운 것은

못 느꼈다고 한다. 단지 국제적인 작품을 못 했다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한적한 시골 오르막을 한참 달리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는 그의 작업실, 문을 열자마자 크기가 어마한 대작들이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현대미술의 개념작업을 하셨나요?

내가 대학을 들어갈 그때는 서양문물이 들어와서 근대는 아니고, 현대라는 말은 없었지만, 당시 유행 하는 작품을 동경했었다. 특히 주경선생이나, 정점식 교수님의 작품을 보면서 인상파 적인 그림보다는 추상, 형상, 비 형상 이런 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았다. 앵포르멜 적인 추상화에서 문자・점・선・면 등에 관심을 가졌다.

# 점・선・면・설치작업・미디어아…,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오래 하셨는데,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셨습니까?

개념을 갖고 있다.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 없이 비 형상의 그것을, 형상을 통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해골인가요?

해골에 대한 것은 포비아에 관한 것이다. 우리 집이 칠성의원이다. 6·25 이후 사회가 혼란스러운 시기에 세상이 먹 고사는 것이 어려웠던 시기에 그 조그마한 병원 옆에 딸린 집이다 보니 교통사고 환자나 시체를 마주치는 경우가 많 았다. 한번은 집에 가보니 두개골이 방안에 놓여 있어서 엄청나게 놀란 적이 있다. 의대 다니는 형님이 공부를 위해 갖다 놓은 것이다. 형님은 학업의 대상으로 갖다 놓은 것인데, 나는 사람 뼈를 갖 다 놓은 것이니 거기에 대한 충격이 컸다. 그리고 뉴욕에 갔을 때 내셔널뮤지움 한국관에 있었다. 한국의 생활상을 표현하는데 담뱃대를 들고 있는 나를 형상으로 본떠서 전시한 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옆이 뉴기니관이었다. 뉴기 니는 뼈를 가지고 별난 장신구가 만들어 전시했다.


권정호, Sound 85 142.2x156.5cm, Acrylic on canvas,1985 백남준 ,존배, 김구림, 권정호 등 뉴욕에서 재미작가전에 출품 하였다

아! 그것도 작품이 되는구나. 그때 가능하다고 느꼈다. 그 전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중세성당에 도 뼈를 가지고 실제로 장식을 해놓고 했다. 우리가 보는 모든 대상이 오브제다. 두개골도 가능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사람의 두개골은 임팩트도 강하고 그래서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형태로 뉴욕에서 전시했고, 스피커 작품도 거기서 나왔다. 스피커 역시 오브제다. 말하자면 해골도 메시아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이면서 두개골 사용해서 음과 양을 교차한 상태를 갖다 두었다고 세계 적인 평론가가 평을 하기도 했다. 해골의 이빨과 포비아, 무서움의 상징적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된 것이다. 나로서는 그 당시에는 표현방법이 신표 현주의이고 형상 비형상을 동시에 결합시키고, 구상과 추상을 같이 결합해서 상징적이고 전달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 했을 뿐만 아니라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도록 확산 시켰던 것이다. 뉴욕에서 재미 작가전 할 때 그 스피커 작품을 전시했고 백남준, 김차섭도 참여했다. 한국에 와서도 두개골을 많이 그렸다. 나는 두개골에 이빨도 그렸다. 이가 갈린다고 할 때 상징적으로 생각하면서 전 두환 시절 항거하는 의미로 그렸다.


나 스스로 영향을 많이 준거다. 그래서 두개골을 많이 그리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아직 좋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 예술가로서 작업한 작품 중 인생 작을 꼽는다면, 그리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미국에 가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와서 첫 작업을 한 것이 흔히 해골이라고 말하는 작품이다. 국립현대미술 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그 시대의 저항, 우리의 아픔, 슬픔, 그리고 인간이 견디어야 하는 울분과 감정적인 내용이 작 품 속에 담겨 있다. 그 작품이 지금까지 내 작품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또 대구미술관에 소장된 있는 미래를 통하는 문 작품과 함께 나의 상징적 작업이다.

# 현대 작가로서 흔치 않은 호를 갖고 계십니다. 학산은 어떤 뜻인가요?

아버지 고향 밀양에 화악산이 있고, 동네 마을 연정이 있다. 거기 정자가 있는데, 학산이라는 호가 있다. 그것은 아 니고 화악산을 보고 학이 자유스럽게 날아다니는 뜻으로 학산을 지었다.

작업실에서 권정호


Gate through the future(미래를 통하는 문, Circle the space of purification), 410x440x315cm, Dak-paper in Acrylic case. 2010_대구미술관 소장


From line -98-5

권정호 작가는 해체된 문자의 본성을 필획의 일회성을 강조하여 음양의 분리 이전의 세계 즉 動靜이

발생하는 임계점에서 삼라만상이 어떻게 具足해지는가를 살피고 있다. 動과 靜은 진실과 사실의 경계 이다. 동시에 無爲와 有爲의 일체성이기도하다. 動으로서 靜을 확인하고, 靜으로서 動을 존재하게 하 는 그 경계를 작가는 심미적 판단으로 포착하고 있다.

# 성산아트홀에서 열리는 전시되는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2000년 초에 그 당시 작품이다. 조형요소 점・선・면・입체뿐만 아니라 동양적이고 말하자면 오히려 한국적이라 할 수 있는 유불선에서 시작해 음양 사상, 이원일기론, 음과 양이 결합하여서 나오는 예부터 갖고 있던 문화적인 정 신, 그것을 어떻게 하면 개발해볼까 연구했던 것이 선의 작품이다. 선은 처음에는 점에서 시작해서 선으로 조형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선을 가지고 있는 특성을 어떻게 하면 한 국적이고 동양적이고 세계적인 것으로 모습으로 바꿔 나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음양에 대한 작품은 사람과 같아 서, 감정과 지적인 것과 결합하였다고 생각했다. 감정과 지적은 서로 보완관계이다. 형상과 내용이 들어 있어서 이


권정호, 해골들-87(resentful skeletons 87), 135.0x195.0cm, Acrylic on canvas, 1987, National contemporary museum소장

것을 어떻게 표출해볼까 싶어서 음양에 대한 이원일기, 그 이전에 무희와 유희 그 두 개의 상황을 선으로 표현한 작 품이다. 내 작품은 음양에 관계를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괘 -태극기의 괘, 석줄-를 가지고 그림으로 형상을 해체해서 그것 을 풀어서, 그 속에 형상이 들어가도록 구상적이면서 새롭게 만들려고 노력을 했다. 우리 생활 속에 굉장한 인간의 슬픔이라든지 예를 들어 가까운 사람 -죽은 제자-도 있다. 현실을 가져오면서 어려 움을 형태는 다르지만 아픔을 어떻게 현대적 틀로 만들어볼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죽음에 대 한 것인데 죽음을 어떻게 승화, 재해석할까? 죽음이 위대해지려면 삶이 위대해져야 한다. 위대한 삶은 의미 있는 삶 을 살아야 한다. 죽음은 허무하지만, 의미 있게 하려면 삶을 의미 있게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작가는 문화적으로 무 엇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해골은 형상의 해골이지 내면에 대한 죽음도 생명의 갈구이고 삶에 대한 갈구 그 자체다. 삶은 일이다. 그 일은 살 아 있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작업도 그런 것이다. 그런데 어렵다. 일들을 하 나하나 의미 있게 만들고 성의 있게 해야 형상이 바로 만들어지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그게 삶이다. 그런데 어렵다 자기를 초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말은 그렇게 해도 안 될 때가 9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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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경계라는 것은 달콤함을 너무 맛보면 거기에 빠져버린다. 작가는 항상 변해야 된다. 또 너무 눈 에 보이는 것에 기취취기라든지, 돈과 관련되는 무엇을 만들면 그것은 거기서 끝이다. 그렇게 가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어렵다. 나도 못했으면서 이런 소리하는 것이 부끄럽다.

# 한국에서 전임 강사직을 받고도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유학 당시 에피소드를 들려주신다면?

전수천 작가와 가까이 지냈다. 김차섭 선생, 백남준 선생도 계셨고 그때 김구림 선생도 있었다. 뉴욕에 있을 때 2년 마다 하는 쇼가 있었다. 거기 가면 백남준 선생을 포함해서 한국 작가를 볼 수 있다. 또 해머링 맨의 브로프스키, 당시 젊었던 키스 해링, 등 같은 시간 그 장소에 있었다. 이렇게 보면 모두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장소와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 사람들의 활발한 환경 때문에 같이 재미가 있었고 그런 열정이 나에게 스며들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환경이라는 어떤 분위기를 타면 바깥의 환경과 달라서 그 시간 속에서 같이 호흡하고 달라지고 빨라지게 된다. 뉴욕이라는 환경에서는 서로 충격과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다른 사람보다 돌아가는 인생 바퀴가 역동적이고 더 빨라 져서 나중에 보면 굉장한 차이가 난다. 사람이 성장하는 것이 그런데서 성장한다. 자신은 모른다. 대구도 이제 과거 분위기 달라져서 서로 주고받는 작업 활동에 있어서 경쟁을 하면서 자기를 성장시키는 환경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것은 계기를 만드는 제도나 국제 페어,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다른 부류의 미술관, 그 속에 끼어 작업하면 서 발전하는 것이 서울 부산 광주보다 부족하다. 그런 점은 시정과 우리 예술인들이 요구하면서 성취를 해야 한다. 이건희미술관도 같은 맥락이다. 단지 미술관 하나뿐 아니라 시민과 작가도 좌충우돌해서 작업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언젠가는 될 것이다. 촘촘한 무언가가 생기고 만들어 낼 것이다.

아직도 좋은 작품을 하지 못했다고 손사래 치면서, 작업실에서 열정을 쏟고 있는 원로 화가라는 말 보다 가장 다이나믹한

작가가 더 어울리는 예술가 권정호와의 만남이었다.

인터뷰 강금주 정리 사각편집부


SAGAK INTERVIEW 2

최재혁의 tea:터뷰

해야청청 얼쑤~

김수경 예술감독, 유슬아 제작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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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남구청년예술제 '해야청청' 을 만들고 있는 김수경 예술감독, 유슬아 제작감독을 만나 티타임과 함께 인터뷰를 가졌다.

문화예술리뷰 사각의 예술인(in)과 티타임의 최재혁(이하 최) 입니다. 반갑습니다.! 제1회 남구 청년예술제에 초대

예술 감독 김수경(이하 김수경)님과 제작감독 유슬아님(이하 유슬아)을 만나 뵙게 되어 반갑고 앞으로 많은 기대가 됩 니다. 제가 오늘은 고생하고 계시는 두 분을 위해 맛있는 핸드드립 커피를 대접하면서 청년예술제에 대한 이모저모를 여쭈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두 분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수경:네 소리꾼이고요, 국악 밴드 나릿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수경입니다. 이번 남구청년예술제 첫 번째 예술 감독직을 맡게 되어서 감독님과 유슬아선생님과 함께 열심히 준비 하고 있습니다. 유슬아: 저는 이번 청년예술제에서 제작 감독을 맡은 유슬아입니다. 저는 대구에서 공연, 축제, 전시, 다원 예술 영 역에서 활동하면서 사람들에게 현대적 신명을 전달하고 싶어 하는 기획자입니다.

최: 네. 두 분의 소개 잘 들었습니다. 두 분이 지금 열정적으로 추진하고 계시는 남구 청년예술제 소개와 함께 현재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문화예술계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코로나에 대비해서 청년예술제만의 어떤 새 로운 공연문화 콘텐츠로 예술인들과 시, 구민들에게 다가서는지에 대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유슬아: 청년예술제는 대구를 기반으로 여기 남구에서 굉장히 활발히 활동을 하는 청년예술인들과 함께 만들어가 고 있는 축제입니다. 예술 감독님이 한 분 한 분 만나가면서 이런 지금 시대를 대변할 수 있는 축제를 같이 만들어 보자고 제안을 했고, 그 제안에 응해주신 청년예술인들과 함께 지금 팬데믹 시대이지만 지치지 않고 공연을 이어 나감으로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싶은 그런 제1회 축제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위드코로나의 어려운 시국이라서 설 자리도 줄어들고 저희 공연예술이 비대면으로 활동을 작년부터 이어오 면서 관객의 없는 무대가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관객에게 우리가 어떻게 다가가고 있을까 하는 큰 고민이었 습니다. 그래서 이번 축제에는 100인의 감상단과 함께 공연 시작과 끝을 함께 하면서 공연이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소통하는 부분을 이번 축제의 재미난 프로그램으로 제작해보려고 합니다. 김수경: 저도 지금은 예술 감독이라는 첫 무거운 짐을 지고 새로운 도전을 나름하고 있는데, 사실은 소리꾼으로 무대에서 활동하는 저 또한, 뼛속 까지 예술가입니다. 그래서 청년예술제를 통해 녹여내고 싶었던 것은 청년! 젊어 서 할 수 있는 도전과, 젊어서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예술가들의 깊은 뿌리를 박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예술 가들이 예술제를 통해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씨앗을 잘 심는 과정을 통하고, 예술제를 거치고 나서 그 씨앗은 움터서 숲을 이루고, 거대한 대자연을 이루어서 젊은 예술가들이 서로 우거지고 기대고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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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AK INTERVIEW 2

지할 수 있는 남구, 그리고 남구를 넘어서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그런 기반이 될 수 있도록 또한 꿈꾸고 있습니다. 위드코로나 라는 쉽 지 않은 상황을 거치면서는 어쩌면 더욱 더 효과적이고 더욱 우리의 삶 에 가깝게 와닿을 수 있는 결과를 낼 것인가 깊이 고민을 하고 있습니 다.

최: 저 역시 일선에서 현재 공연기획자로 활동을 하고 있기에 두 분의

고충과 애환을 잘 알고 있고 공감대가 잘 형성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청 년예술제 추진하시면서 코로나 시대의 대응과 소감,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여쭙고 싶습니다.

유슬아: 작게는 예술인으로 4인 이상 모이면 되나 안 되나? 하는 고민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질의, 응답을 통해서 알아보니 전문예술 자로서 생업 활동을 해나가 는 예술가는 4인의 사적 모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응답을 받고 우리 자신도 최대한 방역을 철저히 하면서 준비했습니다. 큰 것은 사실 코로 나는 누구나가 단정지울 수 없다 보니, 지금 이 시기에 해야 되느냐, 비 대면으로 하면 어떠냐, 이런 질문에 저희는 그런데도 부분 대면이라는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저희들의 이야기는 나중에 전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이야기, 지금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우리를 믿 어달라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이 많았지만, 현재는 10월 8 일, 9일 10일 진행할 수 있게 허락을 받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수경: 하느냐 마느냐 조율하는 과정이 현실적으로 힘들었지만, 예 술을 생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심적으로 다른 어려움을 직면했던 시간 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작년부터 이어져 오는 코로나 상황에서 취소되 고 연기되는 많은 일정을 감수하고 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던 시간 이 짧지 않았기 때문에 예술제를 준비해주시기로 흔쾌히 마음을 열어 준 예술인들께는 감수와 인내를 요구하거나 바라지는 않았습니다. 저 희는 직접 만나서 호소도 하고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 하면서 약속된 날 짜에 제대로 잘 치러내기로 한 지금의 상황이 마음이 찡하고 뭉클했습 22 S A G A K


니다. 지금 시대의 어려움이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살아있는 에피소드 라는 생각이 들고, 개인적으로는 저는 전통예술을 하는 젊은 개인 예 술가로서 컬래버레이션을 많이 해오기는 하지만 타 장르 예술가와 개 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하거나 각자의 사정을 들을 수 있는 상황 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술제의 감독을 맡으면서 한 분 한 분 만나서 개인의 사정을 듣고 ‘다른 사정이지만 우리는 같은 입장에 있 는 지역의 청년예술가이구나’를 살로 느끼면서 마음으로 와 닿은 적 이 많아서 또한 개인적으로 아주 큰 에피소드이고 깊이 가지고 가고 싶은 저의 뭔가가 되고 있습니다.

유슬아: 축제가 이뤄지는 장소가 대덕문화의 전당입니다. 저희 처음 이 공간을 방문했을 때 여기는 남구 백신 예방접종 센터로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2020년 되었을 때부터 코로나 제1 전방 에서 예술 인력들이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은 때, 쉬고 있는 것이 아니고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느 분야 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고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랐습니다. 저희 공연이 이루어지는 10월8일부터 10일까지 그날에도 백신 예 방접종 센터를 그대로 운영되고 있으며, 축제 때문에 일부러 가리거 나 덮지 않고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시대의 모습을 같이 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마 첫날 오시면, 예방접종 하시고 나가시 는 분들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최:청년예술제 세부내용과 작품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수경: 이번 청년예술제는 ‘해야청청’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 야청청은 홀로 푸르다고 알고 계시지만 이번 축제에 빗대어 봤을 때 홀로 푸른 것도 좋지만 함께 푸르러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이 들 어서 함께 푸르다는 의미로 ‘해야청청’을 타이틀로 했습니다. 그래서 예술제를 관통하는 대 주제는 컬래버레이션입니다. 타 장르, 타 예술 가와 만나서 컬래보를 통해서 도전하고 시도하는 작업입니다. 작품성 이나 예술성과 완성도를 보기 보다는 만남, 과정 자체를 큰 가치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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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무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참여하는 분이 약 60여 명, 작품 수는 일곱 작품입니다. 일곱 개의 작품은 다양하고, 섞이고, 숲을 이루는 작 품이 될 것입니다. 일정은 어떻게 되죠? 유슬아: 조심스러운 것은 코로나 자체가 워낙 변동이 커서, 그때 가서 상황이 커지면 취소가 될 수도 있지만, 그런데도 진행하는 것을 말씀 을 드리면, 10월 8일 개막식과 함께 100인의 참석 단과 공연출연진 60여 명과 제작 인력들

김수경_국악 밴드 나릿 공연모습

이 같이 서로에 대한 소개와 응원을 하면서 축제가 시작됩니다. 9일,10일 양일간 일곱 개의 작품을 선보이게 됩니다. 마지막 피날레에는 100인의 감상단의 몇 분의 리뷰와 함께 공 연 참가자들이 소감 등을 GV형식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마치고 나면 100인 감상단과 함께 올해의 작품을 선정합니 다. 코로나 때문에 대덕문화전당 드림홀에 100인만 초청할 예정이며, 시작부터 끝까지 축제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축제가 끝난 후에도 다시 볼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김수경: 예술가들이 비대면을 거치면서 느꼈던 부족함, 아쉬움을 최대한 상쇄시킬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결 과만 보고 끝이 나는 폭죽과 같은 공연이 아니라 예술가의 과정을 기록해서 후작으로 영상을 완성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예술제 상영회를 한 해 준비해서 지역의 예술가들은 어떻게 작품을 만드는지, 참여 했던 예술가나 시민들이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고 있는가를 영상으로나마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구상 중입니다.

최: 남구 청년예술제의 작품소개와 세부적인 내용을 듣고 보기 규모가 생각보다 크고 지역의 청년예술인들이 대축제

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됩니다. 끝으로 두 분 전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는지요?

유슬아: 예술제가 넉넉하지 않고 청년이라는 기회를 만들고 열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예산 이 충분하지 않지만, 같이 마음 내주시고 하는 분들에게 저희가 최대한 지역 내에서 이것이 회자가 되고 기록 자체가 다음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저희가 만들어가야 하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축제라는 것이 청년이라는 타이틀을 붙음으로써, 그냥 청년이기 때문에 한 번 하고 지나가는 일회성 축제가 아니고 저희 선배가 해왔던 공연예술의 패턴과 그리고 다음 세대가 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는 어떤 그런 불안함, 궁금증, 해 결되지 않은 어떤 것 들을 저희 이십 대, 삼십 대 청년이라는 허리들이 굳건히 이어질 수 있게 저희가 부족하지만, 허리 되기 위해서 청년예술제를 통해서 시험해보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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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예술 감독이라는 이름이 저에게 맞는 이름인가 하 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하는 과정에서 이 고민의 답 을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 예술가로서 바라봤던 예술 감독은 저와 거리가 있는, 나의 어떤 것을 규정하고 길을 만 들어주는 역할이 아닐까 막연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청년예술제 감독은 함께 가는 것, 지켜주는 울타리라는 생 각이 들어서 예술제를 만들어가고 계시는 많은 청년예술가 분이 마음껏 활개를 치고 정말 해보고 싶었던 것을 무대에

유슬아_어린이 예술놀이 진행중

서 펼쳐 보일 수 있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그런 예술 제가 되도록 큰 노력을 하겠다는 각오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술제가 또 저의 예술제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청년예술가이기 때문입니다. 내년, 후 내년, 나중까지 남구가 청년 예술제의 메카가 되어서 우리 예술가들을 지지하고 응원해줄 수 있는 그런 토대가 될 수 있는, 숲을 단단히 지지하 는 토양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유슬아: 이번 준비하면서 자부심을 느낀 것이 남구라는 곳이 예술가들이 많은 공간이기도 하고 대구시 자체도 사실 은 예술가인 시민들이 매우 많은 도시라고 합니다. 예술가라는 사람이 섭외가 되어서 갑과 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축제라는 것이 만들어가는 사람, 참여하는 사람, 보러오는 사람, 행정적, 서류상, 기술적 모든 사람이 수평적으로 서 로에게 만족감과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1회 남구청년예술제 해야청청 얼시구 좋다!!를 마지막으로 함께 외치는 두 젊은 문화인을 보면서 대구문화계 와 국악계가 밝다는 것을 느꼈다. 가을하늘처럼 푸르른 '해야청청' 공연이 되길 바라본다 .

기획인터뷰 최재혁 / 사진·정리 강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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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of Music Designated UNESCO Creative City in 2017


명사가 읽어주는 문화예술기행 대구음악사이야기 - 손태룡 대구근대미술사-김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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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악史13

진주 개천예술제에서의 독창_1962년

독일가곡을 알린 장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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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


초창기 대구에서 음악활동을 한 분은 박태원(1897-1921) 을 비롯하여, 추애경(1900-1973), 김문보(1900년생), 박태 준(1900-1986), 현제명(1903-1960) 등을 손꼽을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성악가가 바로 안동 출신 의 테너 권태호(權泰浩, 1903-1972)이다. 그는 해방 후 대 구에 정착하면서 대구음악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많은 곡을 작곡하였으며, 대구음악학원 설립, 국민가요합창단을 조직 하여 음악보급에 힘쓴 음악가이다.

권태호는 1903년 9월 16일 안동 율세동 13번지(일명 밤샛 골)에서 아버지 권중한과 어머니 김귀행의 2남2녀 중 장남으 로 태어났다. 종교적 환경으로 안동예배당(현 안동중앙교회) 에 다니게 되어 오르간을 배우면서 서양음악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충실히 교회를 다니면서 안동우체국에 근무 한 그는 일본에 유학하기 위해 동경으로 갔다. 1925년 동경 에 있는 청산학원 중학부 속성과(야간부)에 입학하여 졸업하 고, 1927년 3월 3일 일본고등음악학교 성악과 선과(選科)에 입학하게 되어 3년간 유학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특히 1928년 2학년에 재학 중 일본청년회관(日比谷 소재) 에서 독창회를 열어 네 번의 앙콜을 받았으며, 또한 와세다 (早稻田)홀과 시고꾸(四國)회관에서 두 차례 독창회를 더 가 지면서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안동예배당 오르간연주(1920년) 수정

이어 그해 5월 12일 서울기독청년회관(서울YMCA)과 7월

하얀 눈 하얀 눈 어째서 하얀가 마음이 맑으니 하얗지 빨강꽃 빨강꽃 어째서 빨간가마음이 예쁘니 빨갛지 파랑새 파랑새 어째서 파란가 파란 콩 먹으니 파랗지 동요 눈꽃새 _ 모기윤작사, 권태호작곡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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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악史13

왼쪽부터 1. 대구독창회 소개_1928년 / 2.대구최초독창회_1928년

/ 3.평양 백선행기념관에서의 독창회(1930년)

14일 대구심상제일소학교 강당에서 각각 독창회를 개최하면서, 슈베르트의 ‘세레 나데’ 등 독일가곡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대구독창회에서는 당시 계성학교 음악교사인 박태준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2부 로 나누어 12곡을 박태준의 피아노 반주로 불렸다. 아울러 찬조출연으로 동생 권 태희의 테너독창, 유회우의 바이올린독주, 여류음악가 견신희의 피아노연주가 있 었다. 이러한 독창회를 계기로 그해 9월 14일 오후 8시부터 서울기독청년회관에 서 중앙기독교청년회 주최로 박태준의 작곡발표회를 가진 바 있다.

여러 곳에서 독창회를 개최한 권태호는 일본음악학교를 3년간 다녀 1930년에 졸업하자 귀국하였다. 평양에서 활동하던 그는 이듬해인 1931년부터는 평양 광 성고보에 재직하면서 박태준의 피아노반주로 대구공회당에서 독창회를 가졌으며, 1932년에는 평양음악협회 설립을 주도하면서, 봉천·무순·용정 등 만주지역에서 독창회를 가진 바 있다. 1939년 다시 도일(渡日)하여, 1942년에 동경 명치청년회 관에서 제3회 독창회를 개최하였다.

왼쪽부터 1. 광성고보에서의 독창회 _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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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양음악협회 회원_1936년

3. 제3회 동경독창회_1942년

동요 눈꽃새 작곡_1933년


왼쪽부터 1. 승리의 노래 작곡_1951년 2.제1회 경북문화상 수상_1956년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완전히 귀국한 권태호는 대구에서 본격적 인 음악활동을 시작하였다. 그것은 1946년 5월 22일 대구음악학원 설립 및 운영과 1957년 10월 9일 청구대학 강당에서의 독창회, 그 리고 1959년 9월 28일 효성국민학교에서 국민가요합창단을 조직 하여 노래보급에 힘썼다. 국민가요합창단은 1963년 6월 28일 이성 수의 지휘와 조강심의 피아노반주로 창립음악회를 개최한 바 있다. 또한 그는 많은 곡을 작곡하였다. 동요 ‘눈·꽃·새’(1933년)를 비롯

하여 국민가요운동에 직접적으로 사용할 여덟 곡을 모아 󰡔국민가요

집󰡕(1949년)을 발간하였다. 또한 1950년부터는 국방부 정훈국(이

선근 국장) 전문위원이 되어 ‘승리의 노래’(1951년), ‘포문은 열렸 다’, ‘전선500리’, ‘보병의 노래’, ‘호국의 노래’를 비롯하여 ‘3사단 가’, ‘9사단가’, ‘22연대가’ 등 군가를 많이 작곡하였다.

이후 1957년 10월 9일 청구대학 강당에서 은퇴독창회를 열었으 며, 1963년 회갑년을 맞이하여 DBS방송국(동아라디오방송국)에서 제작한 <듣고싶은 노래> 프로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1964년부터는 노래관계에 손을 떼었으며, 1970년 9월부터 고향인 안동 동부동에 서 음악연구소를 개설하고 있던 중, 1972년 2월 29일 예안면 선양 동에서 작고하였다. 그는 생전에 수많은 독창회를 포함한 연주와 많 은 곡을 작곡한 선구자적인 음악가이다. 또한 평양 광성고보에서의 음악교육과 평양음악연구소, 대구음악학원의 추진, 그리고 대구시 민들에게 노래보급을 위해 국민계창운동을 벌린 음악교육가이기도

위에서부터 1. 국민가요집 앞뒤표지 _1949년 2. 경주독창회_1958년 3. 국민가요합창단 음악회_1963년

하다. 글 손태룡 음악사학자 husb@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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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미술史

열정적 삶과 치명적 아름다움, 서진달

서진달, 나부입상, 1934, 캔버스에 유채, 90x70.5cm, 대구미술관 소장


동경 유학시절 화실에서

지난 여름 대구미술관에서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인 《웰컴 홈: 향연饗宴》이 2개월간 진행되었다. 삼성 이건희 회 장이 작고한 후 유족들은 대구·경북과 연관이 있는 8명의 작가 작품 21점을 대구미술관에 기증함으로써 기업의 사 회적 역할과 문화유산을 국민과 함께 향유하려는 취지로 깊은 관심을 모았다.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작가인 이인성 과 이쾌대를 비롯해 대구의 초기 서양화단을 형성했던 서동진, 서진달과 현대미술로의 전환기에 추상 조각의 거두 김종영, 한국적 추상회화의 대표작가인 유영국, 문학진, 변종하의 작품들이 한자리에서 선보임으로써 그들의 예술 적 삶을 되돌아보게 해 준 의미 있는 행사가 되었다. 그리고 이번 전시와 함께 정부에 기증된 2만3천여 점의 미술품 을 전시할 가칭 이건희미술관 건립을 둘러싼 서울과 지방간 갈등이 더욱 심화 되는 결과를 낳았다. 연일 사전예약이 마감된 배경에는 21점의 기증작품과 함께 이건희미술관을 대구에 유치코자 하는 지역민들의 간절한 바람의 반영으 로 보인다, 이번 기증작품 중 서진달의 〈나부 입상〉(1934, 캔버스에 유채, 90x70.5cm) 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나부〉(1937, 캔버스에 유채, 71x51cm)와 함께 동 경미술학교에서 누드 수업을 통해 서양화 기초를 충실히 익혔음을 엿볼 수 있 다.

도풍 서진달(稻風 徐鎭達, 1908-1947)은 대구의 부호였던 서철균과 최실경 사이에서 태어났다.

서진달, 1940, 종이에 수채 도풍 서진달(稻風 徐鎭達, 1908-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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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미술史

서진달, 나부, 1937, 71x5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서진달, 종이에 연필, 21x14.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서진달, 손을 뒤로 한 나부, 1930년대, 캔버스에 유채, 100.5x47.6cm,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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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달, 서있는 나부, 1938년, 대구미술관 소장 서진달, 종이에 연필, 41x26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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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미술史

계성중학교 미술부원들과 함께(앞줄 왼쪽부터 김우조, 서복섭, 추연근, 백태호 뒷줄 왼쪽부터 김창락, 변종하, 서진달)

그의 할아버지 서병규는 지역의 뛰어난 재력가로서 1907년부터이며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던 인물로 아들 3형제 와 손자 모두를 일본에 유학을 시킬 만큼 교육열이 남달랐던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을 대구에서 보낸 서진달은 부산 동래고보(현 동래고등학교)로 진학해 1930년이 되어서 졸업을 했다. 당시 동래고보에는 동경미술학교 출신의 일본인 미술 교사 이치이 다메지로(市井爲次郞/一井爲次郞)가 있었다. 그로부터 서양화를 처음 접하게 된 서진달은 졸업과 함 께 일본 유학길에 올라 동경의 미술연구소에서 데생과 수채화 등 기초수업을 3년간 받으며 본격적인 입문기를 거치게 된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이하 ‘조선미전’으로 칭함)에 〈시장의 일각〉(市場の 一角)을 출품한 후 1934년 제13회 조선미전까지 연이어 입상했다. 그리고 제5회 부산미술전람회(1933)와 제6회 부산미술전람회(1934)에서도 입상하며 일본에서 익힌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1935년에는 일본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해 전문화된 미술교육을 받으며 본격적인 화가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 동 경미술학교에서 그는 가가와현(香川懸) 출신으로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다양한 서 양화 기법을 익히고 귀국해 교수로 재직 중이던 고바야시 만고(小林萬吾, 1870-1947)를 만나게 된다. 그의 작품은 외광파 경향의 밝은 색채와 온건한 화풍으로 일본 양화의 정통파라고 할 수 있으며, 주제는 일본의 정취 있는 풍속이나 풍경을 많이 그렸던 화가였다.1 1 강성욱, 「서진달과 그 제자들」, 『격동기의 예술가』, 대구문화예술회관, 2018,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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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구미술관 기획으로 마련된 《때와 땅》에 출품된 고 바야시 만고(小林萬吾)의 작품을 보면 자연주의 화풍의 감각 적 미의식이 서진달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서진달은 동경미술학교(1935-39)에서 전통적인 서양식 조 형 어법을 체득해 가며 화가의 꿈을 조금씩 이루어 나갔다. 특히 인상주의 대표 화가인 세잔의 화풍 연구와 아카데믹한 실기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었 다. 재학 중 그는 제16회 조선미전(1937)과 제19회 조선미 전(1940년)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1940년 졸업과 함께 대구로 돌아온 서진달은 계성중학교 미술 교사로 2년간(1941-42) 근무하며 김우조, 백태호, 김 창락, 추연근, 변종하, 이서우 등과 같은 제자를 길러냈다. 주중에는 계성중학교에서 주말에는 인천 소화 여고에서 학 좌) 영남일보, 1947.3.7, 천재화가 서진달씨의 최후기(1) 우) 영남일보, 1947.3.8, 천재화가 서진달씨의 최후기(2)

“나의 X여, 그대는 只今(지금) 있는 處所(처소)를 안니지도 외않느

냐 南道(남도)는 않일것이지 平壤(평양)에 살고 있느냐 日本民族(일

본민족)이였든냐 혹은 머-ㄹ니 佛蘭西(불란서) 閑村(한촌)에서 크고 있느냐 그대의 나라도 몰으는 그러나 國境(국경)도 民族(민족)의 別

(별)도 超越(초월)한다. 나의 畫家(화가)요 그대의 나요 結局(결국)은

생들에게 미술 수업을 진행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나는 동 경에서 10년 동안 3만 원을 들여서 세계적 수준의 미술 공부 를 하고 왔다. 너희들이 열심히만 공부하면 몇 개월 동안에 전부를 가르쳐 주겠다.”라는 교육자로서의 포부를 여러 차례 밝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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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끝난다. 아-實在把握(실재파악)을 爲(위)하여 余(여)로 하여 금 本然(본연)의 自我(자아), 眞實(진실)한 個性(개성)을 불너께워 오

직 實現(실현) 할지어다.” 김병욱, 「천재화가 서진달의 최후기(2)」, 『영남일보』, 1947.3.8

당시 계성중학교 제자였던 김우조는 “열정적이었던 선생 으로부터 ‘데생’과 ‘수채화’를 배우며 그의 지도에 큰 감화를 받았는데 그즈음에 미술반 동료였던 백태호와 함께 장래 화 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라는 회상은 제자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느끼게 해준다. 2 이일환, 「보헤미안의 화가-서진달」, 『대구미술 70년사』, 도서출판 왕자, 1995, P.80

영남일보, 1947.9.16, 불우의 서진달씨 유작전, 내월중순에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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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미술史 위에서 1. 서진달, 언덕이 있는 마을, 1940년경, 종이에 수채, 20.8x35.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2. 서진달, 정물, 24x33cm, 목판에 유채, 개인소장 3. 서진달, 정물, 1930년대, 캔버스에 유채, 23.5x33.0cm 4. 서진달, 정물, 1940, 24.5x28.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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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본 유학을 끝나갈 무렵 가세가 급속히 기울기 시작해 그의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탓이었을까? 1942년 만 주로 이주한 그는 하얼빈 공과대학에서 미술 강의를 맡으며 새로 운 터전을 일구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30여 점 의 작품으로 개인전을 개최해 전업 화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나 갔다. 이젤 앞에 선 서진달

1945년 만주에서 해방을 맞아 귀국한 서진달은 대구가 아닌 부산 에 정착해 미술연구소를 열었다. 부산 대청동 용두산공원과 중앙성당 인근에 개설한 ‘서진달 미술연구소’는 일반인 들에게 생소했던 서양화 보급하는 미술학원으로 부산미술의 선각자 역할을 했다. 이후 안타깝게도 가정 파탄으로 무질서한 생활 속에 방황하다가, 1947년 결핵에 걸려 40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1948년 대구 공회 당에서 유작전이 열렸다. 1947년 지역 일간지에 김병욱이 실은 「천재 화가 서진달의 최후기(2)」에는 동경미술학교 재학시절 서진달의 일기 한 대목이 담겨 있는데 폴 세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담겨 있다. “나의 X여, 그대는 只今(지금) 있는 處所(처 소)를 안니지도 외않느냐 南道(남도)는 않일것이지 平壤(평양)에 살고 있느냐 日本民族(일본민족)이였든냐 혹은 머ㄹ니 佛蘭西(불란서) 閑村(한촌)에서 크고 있느냐 그대의 나라도 몰으는 그러나 國境(국경)도 民族(민족)의 別(별)도 超越(초월)한다. 나의 畫家(화가)요 그대의 나요 結局(결국)은 여기에 끝난다. 아-實在把握(실재파악)을 爲(위)하여 余(여)로 하여금 本然(본연)의 自我(자아), 眞實(진실)한 個性(개성)을 불너께워 오직 實現(실현)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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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새로운 미술을 수용하는 것에 적극적이었던 서진달은 특히 세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풍경화, 인물화, 정 물화 등 다양한 작품들에 그의 조형 요소들을 도입했다. 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주로 동경미술학교 재학시절 제작된 누드화들로 대담한 구도와 힘이 넘치는 거친 터치, 볼륨이 강한 인체의 표면 처리 등이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8년 대구문화예술회관 기획으로 마련된 《격동기의 예술가전》에서는 단편적이지만 현존하는 그의 작품들 과 계성중학교 제자들의 작품들이 한자리에서 소개되는 기회가 있었다. 인상주의와 아카데미즘이 절충된 조형 어 법으로 제작된 그의 작품(유화, 수채화)들을 통해 우리는 1945년 해방 전후 단절되었던 대구미술의 단면을 조명해 볼 수 있었다.

3 김병욱, 「천재화가 서진달의 최후기(2)」, 『영남일보』, 1947.3.8

글 김태곤 대백프라자갤러리큐레이터 art006@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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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 in Gallery


기획자의 의도를 담아전시를 전시를개최하듯 개최하듯 기획자의 의도를 담아 오프라인 전시 모양새를 옮겨 지면에 전시를 담아 개최합니다. 오프라인 전시 모양새를 옮겨 지면에 전시를 담아 개최합니다. 이 가을에 어울리는 그림들을 모아봤습니다. 여행도 쉽지않은 요즘, 이번 호의 주제는 수채화로 표현한 '풍경' 입니다. 그림 한점 집안에 들여놓는 것으로도 기분전환이 되겠지요. 수채화 한 점 집안에 걸어두시는 건 어떨까요? 그림에 대한 문의나 구입은 sagaknews@naver.com에서 받습니다. 그림에 대한 문의나 구입은 sagaknews@naver.com에서 받습니다. * 작가선정 전업작가회 이봉수화가 ddaagon@naver.com


이봉수 LEE BONG SU 역사에남을 2021 펜데믹의 광풍속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해주는 작금의 현실이다 예전의 여름이면 바캉스다 차캉스다 마음이 들떠있을 이계절에 지나간 휴가의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그런 것이 오늘의 하루이다. -2021년 여름 작가노트 中에서

대구예술대학교 서양화과졸업. 개인전13회 (서울. 대구. 포항)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 심사위원역임 및 초대작가 대구미술대전 초대작가상수상 우리시대 삶과 해학전 (2003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대구미술대전. 경북미술대전. 신라미술대전 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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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솔2015-3 _65.7 x 90.9cm _ oil on canvas


전영남 JEON YOUNG NAM 일 년 동안 전국을 여행하며 일궈낸 조형회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하며 전국 곳곳의 자연과 벗하게 되었다. 참으로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한 1년을 보냈다. 더도 덜도 아닌 받아주고 품어주는 자연의 품에서 인생을 깨닫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작가로서 회화의 깊이를 끌어내어 새로운 작품을 조형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 작품 한 작품 할 때마다 즐거움과 희열은 어떤 것으로 표현할 수 없다. 나 혼자만 느끼는 행복이다. 저의 작품을 감상하는 분에게도 저와 같은 자연으로부터의 아름다움을 공감하고 간직하여 삶의 여백을 하나씩 채워가길 바라며 "자연유희" 신작 발표에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작가 작업노트 중에서

개인전 11회 (대구, 서울) 대한민국 미술대전 3회 입선 KPAM 미술제 우수작가상 수상 (2012) 단체전 320여회 출품 한국미협회원, 대구미협기획이사, 대구미협 초대작가, 달성 마술협회원, 예성회원, 대한민국현대한국화회원 미술학원운영, 초등학교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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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유희 _ 65x53cm _ 천,채색,돌_2021


문 순 덕 MOON SOON DUK 평범한 가을날의 한 장면을 그렸다. 나의 감성은 항상 고향 미대동의 풍경 그리고 누렇게 익은 벼들의 향연을 생각하며 여유로움과 인간의 삶을 유추 해 본다. 내가 보고 느낀 마음속의 풍경에는 순수함이 있고 그 순수함 속에 한국적이며 서정적 아름다움을 줄곧 화폭에 펼쳐보고 있다. -작가 작업노트 중에서

계명대학교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7회 대한민국미술대전외 다수 입상 그룹전 및 초대전 다수 팔공문화예술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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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뜨락 _ 8P _ 한지,수묵담채


정 영 철 JUNG YOUNG CHUL 수묵화는 단순히 표현하는 기법의 능란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내용의 여하에 있으며 개성있는 표현을 함 으로써 한층 더 오묘함을 느낄 것이다. 수묵화를 그리고자 할 때 표현하는 기법은 그것을 위한 수단에 불과 하다고 하겠다. 실질적인 묘사만이 주가 아니라 이상적인 표현. 요컨대 사의 (寫矣)를 말함이다. 한 가지만의 그리는 방식을 흭득한다면 단순히 묘사형식에만 의존하게 되는데 이를 벗어나서 수묵화가 지 닌 특색을 충분히 발휘하여 새맛이 나는 작품을 만드는 일은 작가가 바라는 목적일 것이다.

-작가 작업노트 중에서

개인전- 정영철한국화전 17회 그룹전 및 초대전500여회 한국현대미술협회 대구지부장 팔공문화예술협회 회장 경북대학교 교육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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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곡 _ 53X40.9_한지,수묵담채


안 정 균 AN JUNG KYUN

개인전 및 부스전 14회(한국,미국, 일본 등) 롯데화랑(서울)대백프라자갤러리(대구) 등 단체및 초대전 대구 아트페어 (EXCO) 부산국제아트페어(부산문화예술회관) 코리아아트페스티벌(세종문화회관) 초대전 250여회참가 한유미술공모전 운영 심사위원, 대구미술대전운영위원역임 대구미술대전초대작가 현 한국미협,KPAA, E-mail: jkan12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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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 - 도토리 _ 20호 _ 2008년작


기획 이달의테마 메타버스와 미술

우리는 메타버스로 미술관 간다!

이제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미술전시장을 구현하고 거기에 그림전시를 하며 그림을 사고파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퍼포먼스로 사라진 그림을 디지털화해서 또 그 그림을 파는 시대가 되었다. 대형그림이나 설치미술 집에 두기 번거로운가? 이제 디지털화 해서 소장하는 시대이다.



기획 이달의테마 메타버스와 미술

‘메타버스 타고 가상 전시회로 떠나자!’

메타버스(Metaverse)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메타버스는 ‘가상’ 혹은 ‘초월’을 뜻하는 ‘meta’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 세계와 유사한 활동이 가능한 가상세계를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사용자가 인터넷을 통 해 접속하여 3차원으로 만들어진 그래픽 가상세계에서 현실과 유사한 활동들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가상공간이다. 그

래도 쉽게 와 닿지 않는다면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원조 메타버스 ‘싸이월드’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사람들은 싸이월드 가상화폐 ‘도토리’로 자신의 아바타 ‘미니미’와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미니홈피’를 꾸몄으며 ‘파도 타기’를 통해서 타인과 소통했다.

사실 최근에 많은 이슈를 만들고 있는 메타버스는 그 용어 자체가 익숙하지 않을 뿐, 개념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카

카오톡이나 페이스북처럼 특정 앱을 통해 여러 사람과 소통하며 자신의 정보를 공유하는 것처럼 나의 분신인 아바타 를 통해 더욱 다양한 비대면 활동을 할 수 있는 메타버스 기술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시킨 비대면 문화로 인해 사 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이는 미술계에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개최되는 온라인 미술 전시회는 기존 웹에서의 단순 작품 게시를 넘어 현실 세계의 전시 공간과 유사한 환경에

서 진행된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구축된 가상의 전시장에서 관람객은 마치 실제 갤러리처럼 능동적으로 이동하며,

몰입하여 작품을 감상하고 다른 관람객과 교류할 수 있다. 이는 미술 작품 전시를 통해 공유되는 예술적 담론, 커뮤니 티 형성 등 전시 본연의 기능이 펜데믹 상황에서도 불구하고 메타버스 세계에서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큰 의미가 있다. 메타버스를 통한 공간의 확장을 통해 미술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실제 세계에서와 동일한 감상 54 S A G A K


2021년 3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비플(Beeple)의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가 6,930만$(약 780억 원)에 낙찰됐다. 이는 생존작가 작품 중 세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작품 제목대로 매일 그린 5,000장의 디지털 그림을 한데 모은 작품으로 낙찰가가 이슈가 되었다.

활동이 가능하다.

메타버스는 MZ세대의 디지털 친화적인 성향, 가상‧증강현실을 위한 기술의 발전,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문

화의 확산 등으로 인해 큰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미술시장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메타버스 내 경제활동 을 가능하게 하는 대체 불가능 토큰(NFT, Non-Fungible Token)은 디지털 아트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금도 실제 미술작품이 아닌 디지털 형태의 수많은 무형의 작품들이 NFT를 통해 거래되고 있다. 진품이 단 하 나인 전통적인 미술작품이 가지는 고유성(uniqueness)과는 달리 디지털 작품은 복제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특 성 때문에 꾸준히 저작권 이슈가 있다. 그러나 ‘NFT 아트’는 NFT의 소유권을 확인하기 위해 디지털 서명을 파일

과 함께 생성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구매자의 소유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그림 은 디지털 파일 형태로 존재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NFT라는 소유권이 적힌 디지털 서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실제로 기존 예술작품을 디지털화한 후 NFT로 제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이미 NFT 미술 작품은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거래되고 있다.

지난 2021년 3월 11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디지털 미술가 비플(Beeple)의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 라는 작품이 무려 6930만 달러(약 785억)에 낙찰되었는데 이는 미술사에서 역대 세 번째로 높은 기록적 인 가격이다. 또한 같은 경매에서 트위터의 ‘불탄 뱅크시’ 팀은 뱅크시의 판화 작품 ‘멍청이’를 9만 5천달러(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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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달의테마 메타버스와 미술

억 700만원)에 구입한 후 이를 스캔하여 NFT로 전환하고 작 품 원본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온라인으로 생중계했는데 아

이러니하게도 디지털로 변환한 뱅크시의 작품은 NFT 경매에 서 원본의 가격보다 4배나 비싼 약 4억 3천만원에 판매되었 다.

NFT가 가장 활발하게 유통되는 공간은 메타버스이다. 많은 무형의 작품들이 NFT를 통해 거래되고 있으며 작품 하나를 여

러 개로 분할하거나, 여러 개의 판본으로 만들 수 있는 NFT의 특성을 활용하여 소수에게만 독점되던 미술 작품 거래 시장

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더 나아가 내가 소장한 디지털 그 림을 메타버스 전시장에 대여해주고 일정의 대여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의 투자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블록 체인 시스템의 법적, 제도적 문제와 NFT 작품을 둘러싼 저작

권 문제, 예술적 가치와 신뢰도 불일치 문제 등은 여전히 해결 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앞으로 메타버스와 NFT 경제는 지속 발전하면서 미술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위에서부터 1,2.'Burnt Banksy'(불탄 뱅크시)라는 이름의 유튜브을 통해 공개된 뱅크시의 그림 ‘멍청이’가 불타는 장면. 3.불타기 전 뱅크시의 ‘멍청이’ 실물 그림.- 이 그림은 ‘불탄 뱅크시’ 팀이 뱅크 시의 판화 작품 ‘멍청이’를 9만 5천달러(약 1억 700만원)에 구입한 후 이를 스 캔하여 NFT로 전환했다. 원본은 불에타소진됐지만 NFT 경매에서 원본의 가격 보다 4배나 비싼 약 4억 3천만원에 판매되었다. 참고) 원래 그래피티작가 '뱅크시'는 본인 작품경매에서 본인작품을 파쇄한 적 도 있었고 본인작품 경매가를 비꼰적도 있어서 이런 퍼포먼스는 놀랍지도않다.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빠른 변화에 대한 단편 적인 판단보다는 현명한 시각으로 빠른 변화의 특징적 징후를 읽어내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출처 'Burnt Banksy' 유튜브

글 정순기 경북대학교 공학교수 / 전재천 경북대학교 박사과정 skjung@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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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yptopunk #7523 NFT(Non-Fungible Token) _ CryptoPunks는 2017년 Larva Labs에서 만든 10,000개의 픽셀 아트 캐릭터 세트이다. Sotheby's에서 판매하는 "CryptoPunk #7523"은 청록색 피부에 의료용 마스크를 착용한 다양

한 외계인을 표현했다. Sotheby의 온라인 경매 "Natively Digital: A Curated NFT Sale"의 일부로 $11,754,000에 판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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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달의테마 메타버스와 미술

메타버스를 가까이 느끼게 해 줄 전시회 경매 뿐아니라 국내 전시에도 메타버스나 VR을 이용한 전시가 다시 화제가 되고있다. 아시다시피 이런 개념은 게임을 즐겨하는 10-20대들에게 먼저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있다. 게임에서는 마인크래프트, 플랫폼은 제페토가 인기를 얻고 있 다한다. 늘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면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피드백도 있기 마련이다. 아닌게 아니라 NFT코인으로 매매가 이뤄지고있고 디지털이미지라는 점에서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아이들은 벌써 '제페토'라는 플랫폼에서 직장을 구하고 명품을 사고 팔며 메타버스라는 세상을 살고 있다. 국내에 서로 메타버스나 VR 관련 전시가 이미 이뤄지고 있다. 최근 전시뿐 만아니라 메타버스를 쉽게 이해하고 리터러시하는 교 육 프로그램도 기획되어 더 이상 메타버스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최근 열린 전시 몇개를 소개한다.

해든 뮤지엄

헬로우 메타버스, 신나는 메타버스여행 해든뮤지엄은 지역 주민 어르신도 VR을 착용했을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메타버스 의 가상현실을 체험하도록 제공하는 '헬로우 메타버스'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재원으로 운영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 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로 기획된 이 행사는 인천 강화도 지역의 문 화소외계층 또는 사회적 배려 계층을 위해 따뜻하고 인간적인 감성의 메타버스 공간 을 경험해보고, 대중을 위한 예술과 과학문화의 확산에 주력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의 메타버스 구현을 담당하고 있는 감성놀이터의 최석영 대표는 VR_가상현실로 살펴보는 스트레스해소방법, 심리치유 VR을 통한, 백령도와 제주도의 가상현실을 해든뮤지움에서 구현해 볼 수 있도록 VR장비 들과 메타버스의 일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번 전시회 참여작가인 김창겸은 미디어협회회장으로서, 협외원들이 함께 참여한다. 작품<봄이 오는 이유>와 <찰나>를 선보이며, 김진우&소영으로 참여하는 김진우 작가는 2021년 강원트레엔날레 메인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 속에 메타버스 의 가상현실속에 태양광에너지로 만든 로봇트 키트를 제공함으로써, 아바타와 AI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드롭스로 알려져있는 오태원 작가는, 텍스트가 변형되어 실감체험형 컴퓨팅작업으로 미디어 설치 작업을 선보이며, 올 58 S A G A K


해든뮤지엄에서는 2021년 10월 1일부터 17일까지 아동 청소년을 위한 <신나는 메타버스 여행展>도 준비 중이다 . 김경민 개인전과 아울러 어린이, 아동청소년을 위 한 특별 AR체험과 메타버스 플렛폼 체험전등을 준비하였다. 전시 키워드는 표정. 캐릭터.아바타. 동물. 분해와 조립. 디지털리터러시. 인공지능로봇. 실감체험형. AR. VR. 메타버스로서, 메타버스시대를 준비하는 지금을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관점에 서 바라본 가상현실의 세계, 신나게 달려가 볼 미래사회에 대한 희망과 긍정의 메시 지로 도움을 줄 신나는 메타버스 여행展이 될 것이다. 해든뮤지움에서 특별 제작한 AR앱을 다운받아 보면 고흐의 별이빛나는 밤에와 사이프러스가 있는 풍경 작품이 김창겸 의 고화질 미디어영상으로 변화된 작품으로 AR체험 및 작품으로 감상 할수 있다.

아트센터 나비

메타버스를 아이들에게 ONTACT 아트센터 나비 미술관은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확장해가는 메타버스에 대 한 이해를 돕는 예술·기술 융합형 교육을 기획 및 개발하고 운영한다. 프로그 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메타버스와 관련된 정보, 일상 사례, 기술 등 대해 탐 색할 뿐만 아니라 관련 기술인 VR/AR을 활용한 디지털아트를 체험, 감상하 고 각자만의 가상세계를 창작한다. 이를 통해 참여하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동시대 문화와 기술을 이해하고 관 련 문화예술에 대한 흥미와 이해가 높아지며, 문제해결 능력을 지닌 창의적 융합인재가 되기를 기대한다.4차 산업 관련 기술의 발전과 언택트 기반 플랫 폼의 확장으로 가상공간과 이와 관련된 활동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또 한, 일상생활, 경제,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확장해가는 메타버스 환경과 함께 가상 인

간이 인플루언서로 활동하

는 등 어린이 청소년의 일상에서도 가상세계(디지털세계)가 확산되고 있다. 기존의 미디어 플랫폼은 사용자들이 기업, 개발자, 개인이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는 형식이었다면, 메타버스 플랫폼 안에서 사용자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뿐 아 니라 직접 제작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기도 하며 경제활동까지 가능하다. 가상세계에서 선택하고 행동한 모든 것들도 삶의 경험이자 일부가 되며, 이는 현실 세계의 삶(일상)과 연결된다. 가상환경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능력은 메타버스 환경을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미래 역량에 속한다. 따라서 일상에서 가상공간으로의 경계 확장을 자 연스럽게 접하며 자라나게 될 아이들을 위해 메타버스 원리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가상환경을 올바르게 활용하도록 돕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

인터뷰_사각편집부, 정리_조성희, 사진_해든뮤지엄 , 아트센터 나비제공


박정현 대구미술관 _ disturbing3 고무줄 선 야래로 들어갈려면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 불편함은 네거티브가 아닌 긍정적인 요소도 발견된다.


짧은 인터뷰 : YOUNG ARTIST

작품 표절 소송에 이기고 돌아온

작가 박정현

한지를 잘라 세우고 돌돌말고 꼴라쥬하고 작가들은 자기 철학과 생각을 담아 형상화 하여 작품을 만들어 낸다. 재료 가 같다고 표절일까? 앤디워홀의 '캠벨수프통조림'을 가져다가 다시 작품화 한다고 표절일까? 재료가 같다고 표절시비에 휩싸여 7년간 소송 끝에 승소하며 작가로서 자존심과 생명을 찾은 박정현 작가를 만나보 았다.

#2014년 사건의 발단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대구시립미술관초기에 젊은 작가들을 서포트한다는 취지로 '프로젝트 Y - ARTIST'라는 프 로그램이 있었다. 처음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2014년 전시를 갖게 되었다. 이 전시는 국내외 내노라하는 전문가들이 심사위원으로 선정되있었고 또 지원자들을 받아 선정하는 기획전시였다. 포트폴리오 에서 면접까지 꽤나 엄격한 심 사기준이 있는 행사였다. 그때 같이 선정 되었던 이완작가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대표로 선정될 정도로 실력있는 작가들이 참여한 프로그램이었다. 나도 여기에 선정되면서 작가로 뿌듯함과 동시에 젊은 작가에서 한 단계 성장해 나가는 전시 였다. 그러나 2014년 3월 10일 전시가 오픈되자마자 3월11일 대구미술관 게시판 및 SNS에 손몽주라는 작가의 작품과 흡사하다며 일방적인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앞뒤맥락없이 비슷하다며 박정현작가의 작품을 철수해달라는 게시글 이 올라왔다. 그리고 손몽주작가의 사과및 철수요청이 왔고 아닐시 언론확산 및 법정대응 하겠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이후 4월 22일엔 전시금지가처분 신청서가 미술관에 왔고 그 다음날 변호사 선임을 했다. 이틀 후가 재판심문날짜 였다. 그달 30일에 판결이 났고 작품철수명령이 떨어졌다. 전시 후 두달만에 재판 후 10일도 안되서 벌어진 일이다.

#박정현 작가의 작품은 불편함에 대해 나는 일관성 있게 내 작품을 해왔다. 영국에서 디자인 할때부터 불편함을 추구해왔다. 일례로 기울어 진 책상이라던지... 불편함이라는게 관계나 생각에서 오는 정신적 불편함이 있고 생활이나 행동이 불편한 육체적 불편함이 있지 않은 가. 어릴때 할머니 집에 가면 문이 낮았는데 숙이고 들어간다던지 그런 소소한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그 불편함이 부 정적 요소만 있는게 아니고 오히려 겸손하게 만들더라 이런 긍정적 요소들을 나는 생각해 냈다. 그래서 '프로젝트 Y - ARTIST' 작품 출품도 주제가 '편함-불-편함(Comfortable-Un-comfortable)' 이었다. 아시다시피 이런 프로젝


출처 현대미술의 표절 논쟁에 관한 연구: 손몽주와 박정현의 사례를 중심으로 저자 오은실(Oh, Eunsil) 『미술이론과 현장』 제23호 (2017), pp. 152-188. 발행처 한국미술이론학회(The Korean Society of Art Theories) 발행일 2017년 6월 30일

트는 신작위주의 작품으로 하루이틀만에 작품을 뚝딱 만드는게 아니라 일년이라는 기간을 소요하며 전시공간을 생각하며 작 품을 만들어낸다. 아직도 나에게는 인터넷이라던지 인스타그램등 sns가 익숙치않은데 그 불편함이 도리어 긍정적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서 나는 내작품이 내마인드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문물이라는것이 내가 뒤처지는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반영하는 불편함이다. 내가 봤을때 정신적 불편함은 이 족쇄 같은 ' 휴대전화' 그리고 눈에 안보이는 많은 선들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를 못받아서 느끼는 불안함. 또는 받고싶지않은 불편함 그런 것을 선으로 표현한것이다. 그리고 그 선을 표현할때 제일 맞아떨어진 재료가 고무줄이었다. 나에게 고무줄은 친숙한 재료였다. 어릴적부터 머리를 질끈 묶는 고무줄, 고무줄놀이, 고무밴드로 하는 손장난등 가까이 있는 재료였다. 고무줄은 불편함이 네거티브한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라는 나의 철학과 맞아떨어지는 재료이기도 하 다.

#하늘아래 새로운 재료가 있을까? 지금에 와서 보니 송장을 받고 변호사를 구하고 이틀뒤에 재판을 받아야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기고 소송으로 7년을 허 비한 시간과 비용(소송비용뿐아니라 작품전시및 철거비용등 2천만원가량된다고 한다.) 대구시에서 하는 미술관인데도 불구 하고 개인이 법원에다 요구하고 또 법정에서 그걸 받아 철거명령을 내리고 그 과정도 어이 없어요. 그 대구미술관에서 계시던 관장님이 부산으로 이직하셨는데 그 지역 언론과 미술계에선 제 사건을 사과하지않으면 근무불가라는 여론이 일어났다고 할


출처 현대미술의 표절 논쟁에 관한 연구: 손몽주와 박정현의 사례를 중심으로 저자 오은실(Oh, Eunsil) 『미술이론과 현장』 제23호 (2017), pp. 152-188. 발행처 한국미술이론학회(The Korean Society of Art Theories) 발행일 2017년 6월 30일

정도로 그 지역은 탄탄한 미술협회라던지 조직화가 잘 되있었다. 하물며 박정현이 울며 와서 빌었다 라는 유언비어도 돌 정도로 이상한 음해도 있었다. 그래서 결혼도 안한 개인인 제가 대처하기란 버거웠다. 지금이라면 좀 더 유연하게 대처 할 수있었을텐데 그땐 더 어렸고 더 여렸다. 그래서 더 속상하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작가로서 깡으로 끝까지 철거안하고 전시기간까지 버텼을 것이다. 근 데 그때는 그것을 못한게 아쉽고 속상하다.

불을 이세상에 준 헤파이스토스가 아닌 이상 내가 최초가 될 순 없다. 누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 최초 판결 을 내린 법원은 원고가 제출한 사진만으로 판단해 잘못된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최초7년 동안 소송에 (비록 승소핻했더라 도) 시시비비가 걸린 작가는 작가로서 생명을 잃는다. 그 커리어가 단절된 것이다. 표절이란 담론으로 우리 미술계에선 여러 논의가 있었다. 일반적인 재판이 아니라 미술평론적, 미술논점에서 재판이 이뤄져야한다는 시각도 생겨났고 박정현 작가의 사건으로 논문도 발행되었다. 이 사건으로 좀 더 건강한 미술생태계가 되길 빌어보고 또 박정현 작가의 작가로 삶이 이어져서 다음 작품을 기대해본다.

인터뷰_사각편집부, 정리_조성희, 사진_박정현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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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야기 공연비하인드 클래식읽어주는여자 뮤지컬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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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연극이야기8

재미있는 연극이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 연극

재미있는 연극은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무대에서 배우들과 다양한 무대요소들(무대장치, 음 악, 조명, 의상, 분장 등등)이 어울려 관객들 앞에서 직접 재현해 내는 것이다. 그 재미있는 이야기는 희곡이 되겠다. 일단 희곡이 재미있으면 연극의 반은 성공이다. 그러나 희곡이 재미없으면 재미있는 연극을 만들기란 정말 어렵다. 물 론 연극에 있어 재미라는 말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통상적인 의미의 재미라고 한정하기로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구성된 희곡은 쉽고 설명이 필요 없으며 구태여 메시지를 담지 않아도 극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메시지가 가슴에 안긴다. 배우들의 연기도 물 흐르듯 거침없으며 관객들은 극에 집중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남녀노 소 누구에게나 거부감 없이 깊은 감동을 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연극에 이야기가 사라졌다. 연극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사라지고 상징과 메시 지 그리고 상황이 난무하는 희곡들이 등장해 관객들에게 재미와 이해를 강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실의 삶과는 다소 동떨어진 관념적인 연극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잘 쓰진 재미있는 이야기조차도 마치 생선의 살을 다 발라내듯 발라 내 버리고 대체 무슨 애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해체해 연극을 보는 내내 불편하고 보고 나서도 무엇을 봤 는지 기억할 수 없는 연극이 마구 등장한 것이다. 물론 연극의 다양성을 위해서 다양한 장르의 실험적인 연극이 창조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무대예술의 발전을 위 해 고무적인 것이다. 그러나 정통적인 연극 장르에서조 차 이러한 현상 즉 희곡의 중요성을 약화시킨 연극이 공 연되는 것은 무척 실망스럽고 연극의 재미를 상실시켜 궁극적으로 연극관객들에게 외면을 받는 결과가 초래되 는 것이다. 연극의 가장 기초가 되는 희곡이 재미있는 이 야기를 기반으로 하여 쓰질 때 비로소 연극은 재미있는 연극으로 탄생할 확률이 높으며 기초예술로서 또 대중예 술로서 관객의 사랑을 받고 연극은 계속 발전해 나갈 것 '굿-데이'_손호석 작 김태석 연출 극단예전 제작_ 이미정배우의 연기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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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미있는 연기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 한다. 비록 많은 요소가 결합되어있는 무대종합예술이지만 그만큼 배우가 가장 중요한 요 소란 말이다. 어떻게 보면 배우의 연기를 보기위해 연극을 보러간다고 할 만큼 배우는 연극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 희곡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바로 배우이다. 배우들의 말과 행동 즉 연기들로 희곡은 관객들에게 재현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로 구성된 희곡일지라도 배우의 연기가 신통찮으면 재미가 반감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재미가 별로 없는 희곡이라도 배우가 연기를 잘하면 기본은 가는 연극이 된다. 그만큼 배우연기의 중요성 은 연극에서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면 재미있는 연기-좋은 연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기초가 잘 되어있는 연기라 할 수 있겠다. 기 초가 잘 되어있는 연기란 정직한 연기라 말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배우의 연기-말과 행동 그리고 감정표현이 관객 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무대 위의 배우가 멋지게 연기를 하긴 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말 을 하는 것인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인지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즉 겉멋 만 잔뜩 든 진작 알맹이가 없는 연기를 보고 실망을 많이 한다. 이런 배우의 연기들은 재미있는 희곡을 재미없게 만 드는 주범이 된다. 배우가 무대에서 하는 말과 행동은 관객들의 귀와 눈에 쏙쏙 들어와야 한다.

이것이 일번이다. 여기서부터 배우의 연기는 출발이다. 그 다음 배우들은 절제된 연기를 통해서 관객들을 극 속으 로 빨아들인다. 즉 관객들을 능동적인 태도로 연극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배우들은 보편적인 연기 속에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절제란 연기미학으로 관객들과 교감하며 관객들을 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다. 극 속에서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배우는 다 표현하지 않는다. 항상 여지를 남겨둔다. 그 것은 관객의 몫인 것이다. 그리고 그 남는 에너지를 자신이 많은 역의캐랙터를 완성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배우가 창조한 캐랙터를 관객들이 인식하는 순간 배우의 연기는 재미있는 연기로 관객들에게 각인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연출

연극은 무대종합예술이다. 무대 메카니즘이 극도로 발달된 현대에 와서 무대종합예술이란 연극의 의미는 더욱 부 각되고 있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은 무대에도 엄청난 발달을 가져왔다. 그만큼 연극의 요소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 을 만큼 복잡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현대에 와서 재미있는 연극이란 얼마나 이렇게 복잡하고 고도로 발달된 무대요 소들이 창조적이고 조화롭게 어울려 총체적인 예술성을 만들어 내었느냐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연극은 무대종합예술이다. 다양한 요소들의 조화로운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예술이다. 각각의 요소들의 특징들이 잘 드러나면서도 궁극적인 하나의 에술적 리듬이 조화롭게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지휘 감독할 연출이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총체적 예술성 속으로 녹아내지 못하면 무대종합예 술로서 연극의 재미는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연출은 희곡이 표현하고자하는 것을 더욱 잘 표현하기위해 또 자신만 의 창조적이며 곡창적인 예술적 표현을 위해 다양한 요소들을 무대에 활용한다. 즉 이들은 자신의 예술적 표현을 위 SA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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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놈-에피소드4"_김태석 작/연출 극단예전 제작

한 수단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통제를 못하고 각 스탭들을 자신의 일관적 예술성을 이해 못시키면 이 무대요소들 이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고 궁극적으로 부조화를 이루어 자신의 연극적 예술성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재미있는 연출은 연극을 재미있게 그리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희곡이란 텍스트가 전달하고자하는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십분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연극을 보면서 이러한 재미있는 연출 방법들을 찾아내는 것 또한 관객들의 즐거움이 아닐까.

재미있는 연극 보기

재미있는 연극들은 구태여 연극이론적인 평론을 거치지 않아도 관객들 스스로 알아차리고 많은 관객들이 모이게 된 다. 그리고 그런 연극은 희곡이란 문학 장르로 영원히 존속 유지시키게 된다. 즉 좋은 예술이라고 느끼고 판단하는 데 는 말이 필요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재미란 것이 단순히 웃기고 즐겁고 흥미진진한 것 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일차적인 재미를 넘어선 연극예술 본연의 의미인 창조적이며 예술미가 넘치며 무대종 합예술로서 조화로운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잘 찾아봐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자칫 관객들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차근차근 연극 이론과 실체를 느끼고 공부하면서 관극 훈련이 된다면 그 불편함은 어느 듯 사라지고 연극을 보는 재미를 더욱 느낄 수 있으며 연극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글 김태석 대구소극장협회장, 예전아트홀 대표 sisan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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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읽어주는 여자

OPERA IN CINEMA

영화 '전망 좋은 방'으로 듣는 아리아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E.M.Forster)’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 로 한 “전망 좋은 방”은 1989년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에 의 해 영화로 제작되었다. 지난 2020년 6월에 디지털화한 영상 으로 국내에 재개봉 되기도 했다. 오래된 영화임에도 여전히 찾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크래딧과 함께 푸치니의 아리아가 시 작된다. 이 매력적인 소프라노의 목소리로 이미 영화의 분위 기를 짐작할 수 있다. “O mio babbino caro(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라는 제목을 가진 이 아리아는 감미로운 멜로디, 극고 음도 극저음도 없는 편안한 분위기 때문인지 소프라노들의 입 문곡으로 많이 불려지기도 하고 로맨틱한 장면의 배경음악으 로도 종종 사용되곤 한다.

푸치니 오페라인 “잔니 스키키”는 잔니 스키키의 딸 라우레타 의 연인인 리누치오의 부유한 친척이 남긴 유산 문제를 둘러 싸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그린 오페라 부파이다. 제목만 보면 아버지를 애타게 그리는 아리아 같지만 사실은 라우레타가 리누치오와의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아버지인 잔 니 스키키에게 애원하는 노래이다. 말이 애원이지 결혼을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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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장면은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라는 그림 을 연상시키기도한다. 명곡들과 함께 미술적 요소도 있는 영화이다. 여행에 목마른 요즘 피렌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듯 하다.

락하지 않으면 뽄테 베끼오 다리에서 아르노 강에 떨어져 죽을거라고 아버지를 협박하는 내용이다. 사랑에 빠진 어린 아가씨의 객기어린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전반에 이 아리아가 흐르지만 영화 속 여주인공은 노래와는 다르게 자신의 내면의 진실을 찾아간다고 할 수 있다.

피렌체로 첫 여행을 떠난 루시와 사촌 샬롯은 원하던 전망 좋은 방이 아니라 창문 너머 벽밖에 보이지 않는 방을 배 정받았다고 투덜댄다. 전망이 좋은 방과 전망이 없는 방, 도입부에서 이미 두 세계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현실과 이 상이 충돌하는 장면이다. 식사 자리에서 그 얘기를 들은 에머슨 부자가 남자들은 전망이 중요하지 않으니 방을 바꿔 주겠다고 한다. 샬롯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방을 바꿔주겠다는 남자들의 호의를 무례하게 생각한다. 사람의 내면에 담긴 진실성이나 솔직함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그의 행동이나 직업에 의해 에머슨 씨는 교양 없는 사람으로 간주한 다.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막 설정도 재미있다. 베토벤을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여자 주인공 루시는 시대 배경 보다 진보 적인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위선으로 가득 찬 품위가 가리는 진실을 끝내 알아차린다. 품위 있는 이들의 위선과 거짓된 모습에 상반된 품위 없다며 경멸하던 에머슨 부자의 모습을 비교하며 관객들에게 소위 품위 있는 지식인과 귀 족들의 실체를 목도하게 한다. 호텔에서 함께 머물던 사람들과의 소풍. 붉은 개양귀비가 만발한 그림 같은 언덕 장면이 특히 좋았는데 푸치니의 “라 론디네” 속 아름다운 아리아 ‘도레타의 꿈’이 흐른다. 코티잔인 마그다가 1막에서 노래하는 이 아리아는 부족한 것 없 는 도레타이지만 그녀는 다른 무엇보다 진실한 사랑을 꿈꾼다는 내용이다. 푸치니의 아리아는 물론 베토벤, 슈베르트 등의 피아노 연주곡들도 영화 전반에 걸쳐 사용된다. 그림 같은 영상과 아름다운 음악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영화. 물론 주인공 남녀가 사회의 편견에 맞서 진실한 사랑을 찾는다는 행복한 결말도 마음이 촉촉해지게 한다. 가을과 함 께 기억될 따뜻한 영화였다. 글 박순선 사각객원기자, 블로거 pss215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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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속으로

‘나’ 다움을 되찾는 여정

뮤지컬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곱고 예쁜 마을 아가씨, 다들 바라는 게 많죠. 얌전하고 착한 딸로, 말 잘 듣는 애인으로 살면 그만이라 하죠. 다른 선택은 없 어”라는 가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프란체스카는 유년시절부터 여성의 역할에 대해 주입당하며 자란 이탈리아인이다. 그녀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여자는 이래야 해.’라는 구속에서 벗어나 본인이 원하는 삶과 자유를 꿈꿨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전쟁으로 인해 고향인 나폴리는 쑥대밭이 되었고, 항구에서 떠 나가는 배를 바라보다가 미군인 버드를 만나 그의 손을 잡고 미 국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그녀가 버드의 손을 잡은 이유는 미국 이란 곳은 자유의 나라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 희망과 기 대는 이른 새벽에 나폴리에서 배를 타 사나운 파도에 실려 뉴욕 항구에 도착하고, 그 곳에서 또 다시 기차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 서 트럭으로 갈아타 또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아이오와’, 온 통 옥수수밭으로 가득한 땅에 도착하며 무너져내린다. 뮤지컬 매디슨카운티의다리 공연장면

남편인 버드는 프란체스카를 가슴 깊이 사랑하지만 사랑을 표현 하는 것에 서툴렀다. 살아가야하는 것이 급급하여 옥수수 농사 에, 황소 키우기에 매진을 하다 보니 프란체스카가 무엇을 좋아 하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그녀를 살펴보지 못했다. 프란체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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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매디슨카운티의다리 공연장면

는 라디오를 일기 예보를 듣는 것 외에는 사용할 줄 몰랐고, 집에 있는 책들이라곤 온통 씨앗품종 카탈로그 뿐이 다. 심지어 남편과 자식들, 마을사람들은 이탈리아 음식을 잘 먹지 못하여 고향 음식을 해먹을 일도 잘 없게 되 며 이방인으로서, 엄마로서 외로움을 가진 채 살게 된 프란체스카. 그녀가 어렸을 때 꿈꾸던 삼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녀 앞에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 작가인 로버트가 나타났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 는 남자, 자유 그 자체인 사람이 나타나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그녀의 꿈과 잃어버린 자아를 건들게 되고, 늘 떠 돌아다니는 삶을 살았던 로버트는 전처와도 떠돌이 삶의 문제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런 그에게 프란체 스카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정착하여 사는 안전한 삶은 얼마나 이상적인 삶이었을까. 그들은 프란체스카의 남편과 아이들이 박람회를 가게 된 4일 동안 사랑을 나누게 되고 그 4일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이 작품은 불륜을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것으로 기피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정말 작품을 단면적으로만 바라보 고 있는 것이다. 둘의 불륜을 마을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며 남편과 아이들의 전화소리가 심장을 내려앉게 하며 심리적 압박감을 주고 있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두 사람의 사랑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짚어주고 있 는 요소이다. 결국 프란체스카는 가정을 지키고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의 선택을 존중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이는 단지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잃어버린 꿈과 자아, 가족과 집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에 대 해 말하고 있다.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서로의 삶이 서로의 꿈이라는 점이 두 사람이 평생을 잊지 못한 채 살아 가는 이유가 된 것이다. 글 김지영 공연칼럼니스트 danvers05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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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 ARTS Schedule 9.3 -10.1

9.15 -10.1

9.7 -10.2

10.2

9 월

박두영개인전 갤러리신라 서울

10.6-8

피아노위크 웃는얼굴아트센터

10 월

10.1-22

back to the 展開

(백투더전개)’전 수성아트피아

9.15-10.13

우연적 시점 웃는얼굴아트센터

10.1-28

윤종주전

을갤러리

10.15

대구시향 정기연주회 대구콘서트하우스

9.10-11.2

마음속 사거리 좌회전 어울아트센터 오봉홀

~10.18

김서울 - BE전 수성아트피아

9.10 -11.7

봉황래원전(변미영김원희)

동원화랑 가상의 층 - Imaginary Layer

환갤러리

대구사진비엔날레 봉산문화회관외

제18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대구오페라하우스

*보내주신 보도자료중 엄선하여 싣었습니다. 잡지용 보도자료는 sagaknews@naver.com으로 짝수달 말일까지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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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푸르러야겠다.

이젠 그만 서 있어야겠다.

너무 아이러니 합니다

........ (조태일님의 가을 앞에서)

누구나 시인이 되는 이 가을,

참 힘들게 또 한 걸음을 옮겨보지만 좀처럼 나아가질 않네요.

이번 호는 가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 메타버스를 다루었습니다. 우리아이들은 메타파크에서 뛰어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종이로 만든 잡지를 손에서 놓지를 않 고 있습니다.

여전히 최재목 교수님 사각을 열어주시고, 김태곤, 손 태룡 두 분도 자리해주시고, 한결같이 김태석 선생님 도 지면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비트코인이 시장의 통화로 인정되는 나라도 있습니다. 늘 같은 우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서 이번에도 종이로 잡지를 만들었습니다.

세상은 가상의 체험들이 현실과 혼재되어 점점 더 세상은 다양한

사람이 그립고 그립네요.

또 한 걸음 옮겨 깊은 가을로 걷고 있습니다.

모습으로 변해 가는데, 이 또한 우리가 만들어가는 미래가 가상에서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 어느 가을날 사각편집부 ----

서기 2021년 9,10월호 2016년 11월 7일 재등록 대구중, 마00007 격월간지

통권

발행일 2021년 9월 15일

32호

발행인 및 편집장 강금주 관리총괄 조성희 발행처 사각출판 디자인 사각출판 인 쇄 (주) 경북프린팅 -----------------------------------------------------------------------서울취재기자 박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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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달성대구현대미술제 김성복 作 _바람이 불어도 가야한다 스테인리스 스틸

편집위원 안중걸, 정기태, 김국현, 김인현, 장명수, 김미화



ISSN 2586-2197

9 772586 219008

09

8000원 2021 Sep/Oct VOL.32

2021. 9/10 Vol.32

ARTS | ARTIST | ARTICLE

인터뷰 현대미술가 권정호 기획 우리는 메타버스로 미술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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