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 능력있는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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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owered Witness

Copyright ⓒ 2024 by Alan D. Strange

Published by Crossway, a publishing ministry of Good News Publishers Wheaton, Illinois 60187,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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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있는 증인

발행일 2025년 7월 1일

지은이 앨런 스트레인지

옮긴이 신윤수

펴낸이 김은주

펴낸곳 부흥과개혁사

편집 권대영 디자인 박슬기 기획 이승영 마케팅 권성직

인쇄소 영진문원

판권 Ⓒ부흥과개혁사 2025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6길 9-20, 2층(서교동)

전화 Tel. 02) 332-7752 Fax. 02) 332-7742

홈페이지 http://rnrbook.com e-mail rnrbook@hanmail.net

ISBN 979-11-94295-93-8 (93230)

등록 1998년 9월 15일 (제13-548호)

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 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서문┃

2023년 여름,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열린 총회에서 미국장로교

회(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PCA ) 는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기념행사의 하나로 총회 대의원들은 “미국 장로교 총회가 전 세계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제목의 문서를

전문적으로 제작한 복사본을 선물로 받았다. 이 문서는 1973년에

PCA ( 당시는 National Presbyterian Church라고 불렸음 ) 창립을 맞아 발간

된 것이다. “모든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는 이전 문서에 대한 의식

적인 반향으로 명명되고 작성되었다. 1861년 제임스 헨리 손웰은

미국남부연합장로교회( PCCSA ) 창립 당시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에

게 보내는 연설”을 발표했다. 사실 PCA는 1973년 12월 4일 의도적 으로 앨라배마주 버밍엄에서 교단을 창립했는데, 이는 PCCSA가

1861년 12월 4일 조지아주 오거스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기원은 여전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축하의 원천이 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혹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사실 PCA는 창립 당 시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스스로 남장로교 교단의 신실하고 정통적인 가지로 여긴다. 그런데 틀림없이, 남장로

교의 유산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예를 들어 손웰을 생각해 보라. 그

는 능력 있는 교육자, 설교자, 작가로서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신

학자이자 교회 지도자로 기억되어야 할까? 아니면 노예제를 옹호하

고 남부 동맹의 탄생을 도운 인물로 기억되어야 할까?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이 모든 것이었다.

손웰의 복잡한 개인사 때문에 최근 수십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가장 강력한 신념 중 하나를 대체로 무시해 왔다. 1861년 손

웰의 취임 연설의 첫 번째 요점은 교회의 영성을 설명하고 옹호하

는 것이었다. 성경을 믿는 장로교인들과 다른 보수적인 그리스도인

들을 포함한 오늘날 대부분의 청중에게 교회의 영성은 한 가지를

의미한다. 그것은 노예제에 대한 잘못되고 부끄러운 옹호다. 그리고

손웰과 다른 장로교인들이 남부의 이 ‘특이한 제도’를 지지하기 위

해 이 교리를 사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의 영성에 대한 교

리가 노예제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한 편리한 방법으로 남북전쟁

이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명시적

인 교리는 적어도 스코틀랜드의 2차 규율서 ( 1578 ) 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씨앗 형태로는 그보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도 교회의 영성을 옹호한 사람은 손웰만이 아니었다. 한

가지 중요한 예를 들면, 찰스 하지는 손웰이 이 교리를 적용하는 방

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교회의 영성의 한 가지 버전을 믿었다.

PCA는 1973년 창립 당시부터 교회의 영성에 대한 지속적인 충

성을 선언했다. “모든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명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교회가 여전히 본질적으로 영적인 유

기체라고 믿는다. 따라서 교회의 권위와 동기, 능력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그는 교회

를 위한 그의 규칙서,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교회의 임무가 입법이나 치리권이 아니라 주

로 선언적이고 목회적인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의 의무는

그가 자신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제시하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메시지를 고안하거나 우리 자신의 법을 제정하

는 것이 아니다.1)

이것은 교회의 영성에 대한 훌륭한 요약문이다. 교회 권력의 본질

은 목회적이고 선언적인 것이다. 이는 모든 교회 권력( 전체 몸에 의해

행사되든, 강단에서 선포되든, 대표적인 직분자들에게 맡겨지든 ) 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어야 하며( 사역적 ),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시행하는

것( 선언적 ) 과 관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는 남성과 여성에게 중

요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선언할 능력이나 권한이 없다. 교회

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영적이고 영원한 것이다. 개혁주의 역사의

대부분을 통해, 교회의 영성은 모든 정치적 문제에 대한 침묵이 아

니라 오히려 교회의 사명의 고유성에 대한 헌신과 교회의 영원한

관심사가 국가의 현세적 관심사에 삼켜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적인

1) “모든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Message to All Churches), PCA Historical Center, 1973년 12월 7일, https://www.pcahisto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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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을 수반해 왔다.

이 모든 이유와 앞으로 소개될 다른 많은 이유로 나는 이 책에 감

사하고 있다. 앨런 스트레인지는 이 분야에 대한 상당한 전문 지식

을 동원해 교회의 영성에 대한 접근하기 쉬운 소개서를 집필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앨런과 크로스웨이에 이 책을 함께 만들라고 촉

구하기 시작했다. 이제 드디어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기도한다. 앨런은 교회의 영성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

용되고 남용되어 왔는지를 훌륭한 솜씨로 보여 준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교회에서 이 교리를 활용해야 한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는 점이다. 책의 분량에 현혹되지 말라.

『능력 있는 증인』은 배울 것이 많은 중요한 책이다. 교회의 영성이

정치나 문화 참여와 관련된 모든 질문에 답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

은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교리이며, 우리는 교회의 영성을 소홀히

하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케빈 드영

2023년 6월

능력 있는 증인

2017년에 출판해 주었던 내 논문, “찰스 하지의 교회론에 나타난

교회의 영성 교리”를 이 책으로 전환해 출판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허락해 주신 P&R 출판사에 감사한다. 이 작업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이 책의 연구와 집필을 위해 안식년을 허락해 준 미드아메리카

리폼드 신학교의 지원에도 감사를 표하고 싶다. 안식년 동안 나를

대신해 책임을 맡아 준 동료들 외에도 바트 보스쿠일의 연구 지원

과 레이첼 루트제보어의 기술 지원에도 감사를 표한다.

또한 이 책 내용의 일부를 들어준 학생, 교구민, 콘퍼런스 참석자 ( 평신도, 목회자, 학자 ) 들의 인내심과 친절함, 피드백에 감사드린다. 학 계와 교회에서 동료들과 나눈 많은 대화도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이

책을 집필하도록 격려해 주고 그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크로스 웨이의 저스틴 테일러에게 감사드린다.

이 책이 나올 수 있게 도움을 준 저스틴의 크로스웨이 여러 동료

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특히 내가 이 책을 작업하는 동안 데이비드

바싱거가 내게 제공해 준 귀중한 편집 지원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그는 수많은 방식으로 나를 도왔고, 나와 함께 원고 작업을 하며 보

낸 모든 시간에 대해 전투수당을 받아야 마땅하다. 또한 에이미 크

루스의 편집 도움과 매트 툴리, 댄 부시, 커스틴 포트, 댄 파렐, 그리

고 각각 마케팅, 영업, 조판, 디자인 분야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도움에 감사드린다. 이 훌륭한 팀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가족에게 늘 감사하며, 특히 항상 지지해 주는 아내에게

항상 감사한다. 아내의 도움과 사랑이 없었다면 이 책이 나오기 어

려웠을 것이고, 내가 하는 모든 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심각한

암 진단을 받고 수개월 동안 혹독한 항암 치료를 받은 후에도 아내

는 무엇보다도 구세주의 선하심과 사랑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으로 모든 일에 나를 격려해 주었다. 그 와중에 올해 첫 손주들이 태어났다( 페트라, 레오, 거스, 로잘린드 ).

손주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것이 사실이다. 손주들에 대한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을 손주들에게 바치며

우리 가족이 주님 안에서 성장하는 만큼 교회가 점점 더 영적 소명

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앨런 스트레인지

2023년 12월

교회의 교회로서의 소명, 즉 사명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

이지, 단순히 ( 또는 주로 ) 정치적·사회적·경제적 기관이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온전한 존재로서 그 사명에서 비롯되는 정치적·경

제적·사회적 관심사를 가질 수 있지만, 그런 측면들이 교회를 주로

특징짓고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의 머리이며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에 대한 행진 명령, 즉 우리가 지상명령이라

고 부르게 된 것을 통해 교회가 모든 민족( 종종 “열방”으로 번역됨 ) 에게

가서 그들을 복음화하고 제자로 삼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 마

28:18-20 ). 또한 그들을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닌”( 요 18:36 ), 자신의

나라로 끌어안으라고 하셨다. 그의 나라는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

원한 것이 그 중심에 있는 나라다( 고후 4:18 ). 정해진 수단을 통해 그

의 교회를 모으고 온전하게 하시는 분은 우리의 하늘 왕이신 그리

스도 자신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3 ). 그리스도는 지금도 성령으

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고전 15:45 ).

그렇다면 복음은 어떤 적절한 의미에서도 세속적 성공에 대한 것

이 아니라, 오히려 형벌과 권세와 궁극적으로 죄의 존재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것이며, 이 메시지는 복음에 의해 변화된 사람들의 삶

전체를 관통하게 된다. 우리는 교회의 메시지가 영적인 것으로, 모

든 땅의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다가와 그들을 현재와 미래에 그

리스도 왕국의 영적 실재로 인도한다고 올바르게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

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고전 7:24 ) 라고 권면한다. 바울은

종이 자유의 기회를 이용할 수 있고 또 이용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

한다( 고전 7:21 ). 그러나 그는 또한 어떤 상황에 있든, 심지어 결혼 여

부와 상관없이,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직업이나 삶의 환경이 아니라, 그리스도 께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 즉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바울의 관심은 독자들이 그들의 삶이 어떤지

와는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바울의 관심은

주로 영적인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 전할 특권을 받은 영적인 메시지(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 ) 이며, 복음 ( gospel ) 의 의미인 좋은 소식( good news ) 이다. 즉, 복음 없이는 좋은 소식이 있을 수 없다. 아담의 타락 이후

세상 이야기는 복음의 좋은 소식 없이는 모든 것이 죄와 어둠, 절망

뿐인 나쁜 소식일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복음은

최악의 상황을 최고의 상황으로 변화시키는 좋은 소식, 특히 십자가에서 나타나는 좋은 소식으로, 최악에 빠진 인간은 십자가에

서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킬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

의 그런 시도를 우리 구원의 가장 중심 사건으로 사용하셨다. 그리

스도가 세상을 이기셨다. 이것이 교회가 세상에 기쁘게 전하는 메 시지다. 교회는 자신을 전파하지 않으며, 이 시대에 달성되어야 할

어떤 정치적·사회적·경제적·문화적 유토피아를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교회는 우리가 이 시대에 이 시대를 위해 살 것이 아니라, 이 시대

를 뚫고 들어왔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을 기다리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우리를 부르는 다가올 시대를 위해 살아야 한다

고 설교한다. 이것은 ‘초영성주의’( superspirituality ) 도 아니고 확실히

어떤 형태의 영지주의도 아니며, 단지 중심적인 것( 복음의 영적 메시

지 ) 을 인식하는 것이며, 그 중심적인 것에서부터 다른 모든 것이 퍼

져 나가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그에 따른 모든 결과가 나타

난다. 이것이 세상에 선포하도록 교회에 주어진 위대한 메시지다.

즉,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오직 믿음( faith alone in Christ alone ) 의 메 시지다. 이것은 이 세상과 관련되나 다가올 세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일들만 다루는 하찮은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메시지가 아

니다.

복음은 세상을 위한 영적 메시지다.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은 죄로부터의 구속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이라는 영적인 것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복음의 효과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아

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교회가 지상명령

에 순종하고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될 때, 복음의 효과는 신자들에 게 가르쳐진 포괄적인 순종을 통해 열방 가운데 ( 근본적으로 ) 신뢰하

고 ( 결과적으로 ) 순종하는 사람들을 낳았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과 그

열매는 실제로 세상을 심원하게 변화시킨다. 복음에 감동받은 사람

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그 영적 거듭남이 그들과 주변 사람에

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 전체나 그 안의 어떤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

이 아니다. 교회의 사명은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즉, 성령의 능력

으로 은혜를 방편 삼아 적용되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서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와 의롭다 함을 얻고, 양자 되고, 거룩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은혜의 선물이다. 이렇게 변화된 삶은

성도들이 속한 다양한 사회 속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전반적인 영

향을 미친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교회로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 그들은 깊은 영적 곤경에 처해 있다 ) 에게 우리 안에 있는 소망( 주로 예

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 의 이유에 대해 설명할 준비가 확실하게 되

어 있어야 한다( 벧전 3:15 ). 그러나 우리가 주로 주변 사람들의 영적

인 활력에 관심을 둔다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변 사람들의

비영적인 필요와 고통에 무관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한 것처럼( 눅 10:25-37 )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그들을 사랑하고 도와야 하며, 이는 최후의 심판에서도 반영

되는 책임이다( 마 25:31-46 ).

그러나 그런 순종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공동체적 또는 제도적 교회의 삶에서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한편으로는 제도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기체로서 다양하게 개념화될 수 있다.1) 세계 열

방 가운데 모든 구성원을 복음화하고 제자로 삼는 것이 제도로서의

교회의 사명인 반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독교 신앙을 구현하는

것은 제도로서의 교회의 사명이 아니다. 유기체로서의 교회 구성원

들의 소명은 신앙과 순종의 관점에서 삶 전체를 살아가는 것이며,

예를 들어 교회에서 가르친 윤리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사업, 정치,

문화 등에서 기독교 윤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제도로서의 교회는

교회로, 즉 영적 실체로 머물러 있어야 하며, 시민적 실체인 국가나

생물학적 실체인 가족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심지어 교회 구

성원들이 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에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으로 행할

수 있는 일을 제도로서는 하려 하지도 않으며, 이 후자의 명령은 유

기체로서의 교회가 해야 할 임무다.2)

1) Abraham Kuyper, Collected Works in Public Theology,vol.3,Common Grace: God’s Gifts for a Fallen World, ed. Jordan J. Ballor and J. Daryl Charles, trans. Nelson D. Kloosterman and Ed M. van der Maas (1904; repr., Bellingham, WA: Lexham, 2020), 36–43. (이중 Christian’s Library press사에서 출간한 Vol. 1이 일반 은혜1로 역간되었다. 부흥과개혁사, 2017).

2) 조나단 리먼은 그의 저서 Political Church:The Local Assembly as EmbassyofChrist’sRule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16)에서 제도로 서의 교회와 유기체로서의 교회 사이의 이런 구분의 여러 측면을 비판하 며(378-388), 교회 권력의 본질과 관련된 교회 정치에서 더 유용한 구분을 찾 는다(380-382).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리먼은 카이퍼가 궁극적으로 기관 으로서의 교회를 희생시키면서 유기체로서의 교회 개념을 발전시켰다고 생각 한다. 비록 리먼 자신은 특정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정치적 입장을 나보다 더 뚜렷하게 고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카이퍼도 이런 경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혁주의 신앙고백의 범위 안에 상당히 많은 정당한 정치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통틀어, 그리고 다시 우리 시대에도 교회로서의 교회, 또

는 방금 언급한 대로 제도로서의 교회는 다양한 곳에서 도전을 받

아 왔다. 교회는 그렇게 되라고 부르심 받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도

록 압력을 받아 왔다. 어떤 이들은 교회가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

으려면 정치적·사회적 또는 경제적 실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

한다. 월터 라우셴부시와 워싱턴 글래든 같은 인물들이 사회 복음

을 전파했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미국 교회의 일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3) 교회가 다른 세상 기관이나 제도처럼 되어야 한다

는 이런 압력은 교회가 부르심 받은 목적이 아닌 다른 어떤 의제가

실제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결론에서 비롯된다.

교회의 진정한 소명을 경시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나 다른

경제·사회 이념을 현재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에 가장 필요한 것으

로 여긴다. 이런 포괄적인 이념들은 가족, 대학, 국가 및 다른 모든

기관과 마찬가지로 교회가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면 자신들이 기치

로 내건 확신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경우

에 그런 확신은 모든 현실이 성적/심리적이라는 것이며, 칼 마르크

스의 경우에는 경제적이라는 것이며, 찰스 다윈의 경우에는 생물학

적이라는 것 등이다. 특히 프로이트의 유산으로 남은 유동적 젠더

주의( fluid genderism ) 는 따라잡으려는 최선의 우리 노력을 능가하는

3) 호의적인 견해에 대해서는 Christopher H. Evans, The Social Gospel in American Religion: A History (New York: New York University Press, 2017), 특히 107–134를 보라. 비록 긍정적으로 제시되었다 해도, 사회 복음이 당시 교회에 미친 영향의 순효과는 내가 보기에 교회의 진정한 소명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서론 23

것으로 나타난다.4)

마르틴 루터의 신학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라”5)라고 가르

친다고 묘사되어 왔다. 이 책이 말하는 후렴은 “교회가 교회되게

하라”는 것이다. 다양한 경쟁적 주장들이 우리 시대에 제도적 교회

를 압도하고 압박하겠다고 위협한다. 주께서 교회에 주신 부르심,

주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이다. 교회가 그

사명을 잃는다면, 교회는 세상에 줄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또는

마틴 로이드 존스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것처럼, “교회는 세상과 가

장 비슷하게 되려 할 때 세상에 가장 적은 유익을 준다.”6) 세상은

교회가 모든 유토피아적 계획을 따라 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

는다. 세상은 교회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 그

복음이 신실하게 전파되고 받아들여질 때, 전 세계 사람들은 그리

4) 교회가 직면한 현재의 성적 위기의 역사적 뿌리를 조명한 최근의 가장 훌륭한

책 하나는 Carl R. Trueman, The Rise and Triumph of the Modern Self: Cultural Amnesia, Expressive Individualism, and the Road to Sexual Revolution (Wheaton, IL: Crossway, 2020,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 부흥과개혁사 역간, 2022)이다. 이 책은 장 자크 루소, 윌리엄 워즈워스, 프리드

리히 니체, 지그문트 프로이트 등 성 및 다양한 성적 일탈에 대한 현대적 관점을 형성한 인물들의 전방위적인 영향을 두루 살펴본다.

5) Philip S. Watson, LetGodBeGod!AnInterpretationoftheTheologyof Martin Luther (Philadelphia: Muhlenberg, 1949).

6) 나는 이 인용문이 수년 전에 마틴 로이드 존스가 한 말이라고 들었는데, 그 출처 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정서는 로이드 존스가 다른 곳에서 말한 것과 확실히 부합한다. “April 18 Daily Devotional: A First Book of Daily Readings, D. Martyn Lloyd-Jones,”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website), accessed March 22, 2023, https://opc.org/에 발췌된 D. Martyn Lloyd-Jones, A First Book of Daily Readings (Epworth, 1970)를 참고 하라.

능력 있는 증인

스도께 나아올 뿐 아니라 자신들 주변의 모든 것을 더 나은 방식으

로 살게 된다. 그러나 교회가 행하라고 부르심 받은 대로 행하지 못

한다면, 교회는 고통을 겪고 온 세상도 교회와 함께 고통을 겪는다.

교회가 주께서 되라고 부르신 바 참된 영적 몸이 되기를 그만두는

것이 어떤 시점에서는 매력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것은

교회가 무익한 존재로 후퇴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책은 이 주제를 둘러싼 모든 어려운

문제, 예컨대 교회와 국가의 관계,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 공적 또

는 정치적 신학의 위치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7) 예를 들어, 두 왕국론자들은 구원 영역과 세속 영역을 광

범위하게 구분하고, 신칼빈주의자들은 이 둘을 통합하려 한다.8) 두

접근 방식 모두 통찰력 있는 이바지를 하면서 다른 쪽에 대한 타당

7)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고전적인 진술은 H. Richard Niebuhr, Christ and Culture (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951), 190-229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스도와 문화 사이의 다섯 가지 입장에 대한 그의 견해와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로 보는 개혁주의적 견해를 담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재평가가 이루어졌는데, 두 가지 유용한 것으로는 Craig A. Carter, Rethinking

ChristandCulture:APost-ChristendomPerspective (Grand Rapids, MI: Brazos, 2006); D. A. Carson, Christ and Culture Revisited (Grand Rapids, MI: Eerdmans, 2008)를 꼽을 수 있다.

8) 대표적인 두 왕국 지지자인 데이비드 반드루넨의 저서 중 특히 LivinginGod’s Two Kingdoms:A Biblical Vision for Christianity and Culture (Wheaton, IL: Crossway, 2010, 『하나님의 두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기』, 부흥과개혁사 역 간, 2012)를 참고해야 한다. 사역의 맥락에서의 통합주의적 시도에 대해서는 Timothy Keller, Center Church: Doing Balanced, Gospel-Centered Ministry in Your City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2)를 참고하라. 니부어의 『그리스도와 문화』(Christ and Culture) 및 두 왕국 접근법에 대한 그 의 평가는 특히 194-234를 참고하라.

서론 25

한 우려를 당연히 제기하고 있다. 이 두 학파와 그 변형들은 각자의

모델과 각자가 다양한 지점에서 가져올 수 있는 도움을 놓고 계속

싸울 수 있지만, 이 책의 핵심 관심사에는 동의하고 있다.

20세기 초 사회복음주의자들이 교회를 또 다른 공적 지원 단

체( 비록 종교 단체이기는 하지만 ) 로 만들었던 서투른 노력을 넘어, 최근

수십 년 동안 정치 신학이나 공공 신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자신

의 신념을 시민 사회 전반에 적용하려는 시도에서 일반적으로 더욱

미묘하고 정교해졌다.9) 그러나 궁극적으로 일부는 정치적으로 상당

히 자유주의적이었던 사회복음주의자들 못지않게 분파적임이 종종

드러났다. 물론 오늘날 정치 신학이나 공공 신학을 옹호하는 많은

사람은 복음주의 진영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정도로 진보적인 방향

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였지만, 정치 신학을 옹호하는 일부 사

람들은 더 온건한 태도를 보였다.10)

9) 올리버 오도노반(Oliver O’Donovan)의 저서들은 정치 신학에 참여하려는 현

대적 운동의 일환이며, 특히 The Desire of the Nations:Rediscovering the Roots of Political Theology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가 그렇다. 이 논의에서 또 다른 중재자는 James Davison Hunter, To Change the World:The Irony,Tragedy,and Possibility of Christianity in the Late Modern World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0)이다.

최근 여러 저자가 쓴 책으로, 중도 좌파적 입장에서 “온전한 복음은 인간 삶의

모든 차원으로 향해야 한다”는 리처드 마우(Richard Mouw)의 확신을 찬양하 고 확장한 Matthew Kaemingk, ed., Reformed Public Theology:A Global Vision for Life in the World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21), vii이 있다.

10) 제임스 헌터의 더 온건한 입장은 자신의 스승인 위르겐 몰트만과 함께 우파와 는 달리 좌파적 성향으로 보일 가능성이 높은 방향으로 상황을 전개하는 미로

슬라프 볼프와 같은 사람의 더 진보적인 입장과 대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편으로, 우리는 교회로서 당파적인 정치적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는데, 같은 신조와 신앙고백을 확언하는 사람들이 그런 입장에

대해 정당하게 의견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

리의 선포가 정치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여겨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가르치는 바를 확언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개혁주

의적 장로교계 안의 일부 사람들은 역사적 뿌리가 깊은 예수 왕의

세속 통치라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으며, 기독교 이후( post-Christian )

시대라고 대체로 인정되어 온 이 시대에도 다양한 분파가 어떤 형

태의 기독교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계속 경쟁하고 있다.11) 그럼에도

나는 가장 열렬한 언약주의자( Covenanter ) 일지라도 이 책을 읽을

Volf, Exclusion and Embrace: A Theological Exploration of Identity, Otherness, and Reconciliation (Nashville: Abingdon, 1996)과 더 최근에 는 Flourishing: Why We Need Religion in a Globalized World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2015)를 참고하라.

11) 장로교인 가운데 신정주의적 신념에 있어 언약파(Covenanters)만큼 열렬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언약파의 자세한 역사는 J. K. Hewison, The Covenanters:A History of the Church in Scotland from the Reformation to the Revolution, 2 vols. (1913; repr., Edinburgh: Banner of Truth, 2019)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언약파의 미국에서의 영향력, 특히 노예제에 반대하고 그 리스도의 시민적 왕권을 옹호하는 데 있어서의 영향력은 Joseph S. Moore, Founding Sins: How a Group of Antislavery Radicals Fought to Put Christ into the Constitution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제임스 렌윅 윌슨(James Renwick Willson)은 19세

기 미국의 언약주의자로, Political Danger: Essays on the Mediatorial Kingship of Christ over Nations and Their Political Institutions,1809–1838 (Pittsburgh: Crown and Covenant, 2009)에 실린 그의 글들은 미국 의 국교 폐지라는 상황에서도 “예수의 왕권”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근거를 제 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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