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추구합니다. 부흥과개혁사는 부흥과 개혁이 이 시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조국 교회의 부흥과 개혁의 방향을 위한 이정표이자, 잠든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을 촉구하는 나팔소리요, 깨어난 교회에는 부흥과 개혁의 불길을 지속시키는 장작더미이며, 부흥과 개혁을 꿈꾸며 소망하는 교회들을 하나로 모아 주기 위한 깃발이고자 기독교 출판의 바다에 출항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작업은 다른 이의 협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데, 원 고의 일부나 이 원고에 앞서 내가 발표한 여러 논문을 기꺼이 읽고
논평해 준 여러 자발적인 협력자에게 감사를 표하려 한다. 앤디 에
인절, 앤디 바이어스, 필립 처치, 카일리 크래비, 레이첼 댄리, 윌 폴 저, 이언 갤러웨이, 저드슨 그린, 리지 헤어, 로버트 헤이워드, 루크
1) “Heaven and Temple in the Second Temple Period: A Taxonomy,”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Pseudepigrapha 33, no. 1 (2023): 75–93, CC BY 4.0 라이선스에 따라 전재함.
2) 3장: “‘God’s Sanctuary in Heaven Was Opened’: Judgment, Salvation, and Cosmic Cultus in Revelation,” Neotestamentica 55, no. 2 (2021): 409–430, 허가를 받아 전재 함. 6장: “‘He Saw Heaven Opened’: Heavenly Temple and Universal Mission in Luke- Acts,” New Testament Studies 68, no. 1 (2022): 38–51, CC BY 4.0 라이선스 에 따라 전재함.
xi
어윈, 스콧 매키, 사라 밀리컨 존스, 루카스 믹스, 월터 모벌리, 제프
무어, 제임스 모건, 필립 플라이밍, 세브 랩, 또한 고대 자료 색인을
만드는 데 귀중한 도움을 준 크리스 드 스티터에게 감사한다. 이 책
에 남아 있는 모든 결함은, 그것이 설계와 관련된 것이든 실행과 관
련된 것이든, 오로지 내 책임이다.
학문적 환경과 함께, 우리 교회와 가정은 이 책의 저술에 귀중한
배경이 되어 왔는데, 특히 이 모든 것이 왜 중요한지를 내게 상기해
주었다. 내 아내 베카는 이 프로젝트를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고, ( 더
중요하게는 ) 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었다. 나는
우리 아들 시므온과 프랜시스에게 감사한다. 그들은 나와 함께 영화
를 보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든, 나로 하여금 현실에 발붙이게
해 주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한 대화는 “에덴동산은 어디에 있어 요?”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내가 몇 분 동안 더듬거리며 이론적
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들은 후에, 내 아들 중 하나가
끼어들어 물었다. “에덴동산이 하늘이에요?” 그런 질문은 내가 여기
서 하는 것보다 더 직접적이고 더 예리하게 내 주제의 핵심으로 곧
장 나아간다! 또한 나는 우리의 셋째 아들 피닉스에 대해 우리가 공
유하고 있는 기억을 기록하는데, 하늘에 대한 그의 지식은 이미 내
지식을 훨씬 능가한다. 내 부모님이신 앨리슨과 제프는 마치 하늘이
실재하는 것처럼 사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가르쳐 주셨고, 계속
그런 삶을 모범으로 보여 주고 계신다. 내 사랑과 감사의 표시로, 이
책을 내 부모님께 헌정한다. 끝으로 이 모든 독서와 사유와 저술은
비록 보잘것없지만, 우리로 하여금 “하늘 높은 곳을 응시하게”( 클레멘
스1서 36.2 ) 해 주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 의 헌물이었다.
영국 더럼 2023년 고난주간
서론
이 책은 하늘에 대한 것이고, 또한 성전에 대한 것이다. 이 조합은
고대 세계에서 어떤 의아함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고대 세
계에서는 성전은 하늘을 반영한 것이었고, 하늘은 성전이었기 때문
이다. 둘 다 신의 거처였다. 이 개념은 모든 곳에 있던 것은 아니지
만, 광범위하게 있었다. 이 개념은 고대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근
동 전역에서 발견되고, ( 비록 덜 두드러지기는 했지만 ) 헬라와 로마 사상
에서도 발견된다. 또한 이 개념은 모든 곳에서 같지 않았다. 이 기본 주제에 많은 변형이 있었다. 예수의 가장 초기의 추종자는 이 개념
을 자신들의 더 넓은 문화적 맥락, 특히 자신들이 거주했던 제2성전
기의 유대적 환경과 공유했다. 따라서 이 개념이 시간이 지나 나중 에 신약성경을 형성하게 될 많은 본문에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책에서 나는 신약 본문에 나타난 하늘 성전 개념을 탐구 하는데, 이 개념은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에는 분명하게 나타나고, 복음서와 사도행전에는 덜 분명하게 나타난다. 나는 하늘 성전에 대 한 언어가 단지 하나님이 계시는 위치와 예수의 사역, 죽음, 부활, 승 천을 이해하기 위한 비유적인 표현 방식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보여 주려 한다. 오히려 하늘 성전에 대한 언어는 우주가 실제로 어떤지, 1
그리고 하나님이 지상의 인간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이해
를 반영한다. 초기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일어난 일을 이해하기
위해 하늘과 성전에 대한 이해를 빌려 사용했다. 또는, 더 정확히 말
하면, 그들은 우주 및 우주와 성전의 관계에 대해 자신들이 이미 알
고 있던 것 안에 예수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을 위치시키려 했다. 다
시 말해, 이 연구는 하늘 성전만이 아니라, 우주, 제의, 그리스도가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 관심을 가진다. 초기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성
전이 예수의 지상 사역과 관련이 있고, 승천 후 예수의 사역 무대가
되었다고 단언했다. 또한 그들은 예수 때문에 하늘이 변화되었다고
믿었다. 따라서 하늘 성전은 그들이 이해하고 표현한 복음, 즉 예
수가 구현하고 그들에게 맡긴 바로 그 복음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줌과 동시에, 이 복음은 하늘 성전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변화시 켰다.
하늘, 성전, 초기 기독교의 배경
이 서론에서 나는 내 주제를 공간과 장소에 대한 연구라는 맥락
속에 위치시키고,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제시하려 한다. 그 전에
우리는 배경을 설정하고, 몇 가지 용어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영어
단어 “heaven ( s )”은 모호성을 반영하고 있고, 고대 언어들도 이 모
호성을 알고 있었다. 하늘은 창공을 가리킬 수도 있고, 하나님의 영
역을 가리킬 수도 있다. “하늘이 열렸다”라는 표현이 신적인 보좌에
서 임하는 계시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폭우가 쏟아지는 것을 가리키
는지를 알려면 맥락이 필요하다. “하늘”은 가시적인 창공, 또는 그
너머에 있는 피조 질서의 더 높은 부분, 또는 하나님이 있는 피조 되
지 않은 영역을 가리킬 수 있다. 고대 우주론에서 우주는 세 부분으
로 나뉜다. 하늘, 땅, 바다다.1) 하늘은 단단한 궁창, 즉 창공의 둥근
천장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땅은 평평한 원반 모양의 육지로, 물로
둘러싸여 있고, 뗏목처럼 물로 떠받쳐지고 있거나, 지하에 있는 기둥
들로 지탱된다. 바다는 땅 주위와 땅 아래의 물이다. 고대 근동에서
신은 이 세 층 중 어디에나 거할 수 있었지만, 하층이나 상층에 거처
를 두는 경향이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신은 상층에 거했다. 시간
이 지나면서, 우리는 궁창 위의 이 하늘도 피조 된 것이므로, 창조주 하나님도 이 하늘 너머에 있는 피조 되지 않은 거처를 가지고 있음
에 틀림없다는 인식을 발견한다.
BC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에서 확립되었고, AD 2세기 프 톨레마이오스가 정교화한 고대 헬라의 천문 관측을 통해, 우주를
3층으로 된 구조로 설명하는 것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땅이 구형
이라는 개념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하늘은 여러 동심원으로 이루어
진 일곱 행성의 천구로 구분되었는데( 태양과 달 및 수성에서 토성까지 다섯 행성 ), 이 일곱 행성 위에 별로 이루어진 고정된 천구가 있었다. 그 너
머에는 최고천이 놓여 있었다. 최고천은 불의 원소와 부동의 동인의
영역이었고,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은 부동의 동인을 하나님과 쉽게 동일시했다. 천문 예측의 정확성에서 이루어진 모든 진보에도 불구
하고, 이 묘사는 고대 우주론에 근본적으로 도전한 것이 아니었고, 단지 수정만 했을 뿐이다. 두 체계 모두에서 땅은 중심에 놓여 있었 고, 고정되어 있었으며, 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행성으로 이루어진
천구들은 단지 세 번째 하늘의 층 안에 여러 층위와 구분을 추가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헬레니즘 시대와 제2성전기의 저자가
우주나 하늘을 구분할 때 3과 7 ( 및 다른 숫자도 ) 둘 모두를 거리낌 없
1) 고대 우주론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개론서로는 다음을 보라. Parry, Biblical Cosmos; Greenwood, ScriptureandCosmology
이 사용하는 것을 발견한다. 이 묘사는 16세기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있을 때까지 온전하게 유지되었는데, 이 혁명은 지구는 우주의 중심
이 아니라, 태양 주위를 도는 또 다른 행성임을 규명했다. 이 책에서
나는 “하늘”이라는 용어를 피조 질서의 상부를 가리키는 데 사용하
고, 때로는 하나님이 거하는 피조 되지 않은 영역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한다. “우주”( cosmos 또는 universe ) 는 전체 피조 질서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우리의 본문은 종종 하늘, 하늘의
일부, 하늘 안의 장소나 건물, 또는 다수의 하늘을 신전이나 신전의
방이라고 말한다. 이 본문은 어떤 때는 신전을 우주 전체와 연결하
거나, 낙원의 동산이나 우주적 산 같은 우주 전체를 대표하는 태초
의 중심적인 부분과 연결한다.2)
고대 세계에서 종교 활동은 거룩한 장소, 의례와 관련된 일련의 과
정, 전문 인력을 포함했다.3) 이 삼중의 구분은 오경의 최종 형태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거기서 하나님의 명령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세 가지 각각을 차례로 마련하도록 지시한다. 성막이라는 거룩한 장
소( 출 25-40장 ), 제사 의례와 관련된 일련의 과정( 레 1-7장 ), 제사장
이라는 전문 인력, 특히 아론의 가문( 레 8-9장 ) 이다. 제사장은 종교
의례의 수행을 감독하고, 거룩한 장소를 돌보았다. 제사 때 드리는
제물은 동물, 곡물 또는 물, 포도주, 그 밖의 다른 액체의 전제였다.
이 제물들은 먹는 것, 태우는 것, 붓는 것, 제단이나 다른 성물에 의
례적으로 바르는 것, 이것들을 조합한 것 등 여러 방식으로 신에게
2) 1장과 2장에서 분명해지겠지만, 이 모티프들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다루는 본 문 안에서 성전과 명백하게 연관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자체를 따로 다루지는 않을 것 이다. 동산 모티프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Bockmuehl and Stroumsa, Paradise in Antiquity.
3) 메나헴 하란(Menahem Haran, TemplesandTemple-Service, 1)은 시간이나 기회를 제 의 활동의 네 번째 ‘차원’으로 구분한다. 내가 ‘과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제의의 시간 적 측면을 포함하기 위한 것이다.
바쳐질 수 있었다. 나는 “제사장”과 “제사”라는 용어와 함께, 명사
“제의”( cult 또는 cultus ) 와 형용사 “제의적”을 의례 과정과 관련된 것
을 가리키는 전문 용어로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장소, 과정, 전문 인
력을 신이 정한 방식대로 모두 올바르게 배치했을 때, 신들이나 특
정 신과의 좋은 관계가 보장되었고, 날씨와 재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포함한 좋은 우주적 질서가 촉진되었다. 이 연구의 관심은 일
차적으로 거룩한 장소에 있지만, 종교 활동에서 이 세 가지 모두가
수행하는 필수적 역할은 내 논의가 자주 전문 인력과 의례 과정도
포괄할 것임을 의미한다. 내 논의는 장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아래에서 나는 내 논의를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공간
이론가의 작업을 다룬다.
우리가 사용하는 “temple”( 성전, 신전 ) 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템플
룸’( templum ) 에서 유래하는데, ‘템플룸’은 원래 새점에 위해 구획된
창공의 일부를 의미했다. 이 단어는 나중에 거룩하게 구별된 장소를
가리키게 되었고, 거기서 더 확장되어, 그 안의 어떤 신전이나 건물
을 가리키게 되었다. 대부분 나는 신에 대한 예배와 섬김을 위해 따 로 구별된 구조물을 가리키는 데 “temple”( 성전 ) 이라는 용어를 “sanctuary”( 성소: “거룩한”을 의미하는 라틴어 ‘상크투스’에서 유래해 고대 프랑
스어를 거쳐 생겨난 단어 ) 와 상호교환적으로 사용했다. 여러 다양한 건물 과 기구를 포함하는 더 넓은 구역과 중심적인 건물 자체를 구별하는
것이 때로 중요하다. 이 경우에 나는 전자를 가리키는 데는
“temple”( 성전 ) 을 사용했고, 후자를 가리키는 데는 “sanctuary”( 성 소 ) 를 사용했고, 이 구분이 특히 중요한 곳에서는 구별을 더욱 명확 하게 했다( 예컨대 “성전 본체”, “성전 건물” 또는 유사한 표현과 “성전 복합체”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 마찬가지로 성전 내부에 여러 구획된 부분이 있 는 곳에서는, 그 부분들을 가리키는 데는 논의 중인 본문에 나오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방” 또는 “구획”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제의적인 영역과 우주적인 영역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을 가리키
는 데는 편의상 “하늘 성전”을 사용했고, 때로는 문체의 다양성을 위
해 “하늘 성전”과 같은 뜻의 다른 여러 용어( 예컨대 “우주적 성소” ) 를 사
용했다. 고대 세계 전체와 여기서 관심 있는 초기 기독교 텍스트에
서 특정 개념화의 변이는 이 책 전체에 걸쳐 분명해질 것이고, 2장에
서 나는 여러 가능성의 스펙트럼에서 네 가지 핵심 지점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더 정확한 분류법과 용어를 소개할 것이다. 많은 경
우 하늘 성전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결정되어 있지 않거나 양가적일
것이고, 어떤 지점에서는 아마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할 것이지만, 모
든 지점에서 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전후 맥락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하늘 성전이 명시적이지 않거나, 즉각적으로 명백하
지 않지만 관련이 있을 수 있는 텍스트를 찾아낼 때, 나는 두 축 중
하나( 하늘 또는 성전 ) 가 분명하게 언급되는 지점을 찾아냈고, 거기서부
터 다른 축을 향해 작업해 나갔다. 어떤 텍스트를 포함했다는 것은
내가 다른 축의 존재에 대해 충분한 근거가 제시될 수 있다고 믿
는다는 것( 및 내 논의에서 보여 주려 한다는 것 ) 을 나타낸다. 즉, 여기서( 특
히 5-8장에서 ) 다루는 텍스트는 하늘에 대한 것인 경우에는 제의적으
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표지가 있는 것이고, 성전에 대한 것인 경우
에는 우주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표지가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그
러하듯이, 이 접근법의 타당성은 실제 결과가 증명해 줄 것이다.
이제 초기 기독교라는 구체적인 배경으로 눈을 돌려보자. 제사를
드리기 위한 종교적 장소는 고대 세계에서 어디에나 있었지만, 건물
이 항상 요구되지는 않았다. 이스라엘 성막이나 실로와 기브온의 성
소처럼 이동 가능하거나 임시적인 신전 구조를 갖춘 것만으로도 제
사를 드리기 위한 종교적 장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성전 건물이 건축되어 있는 경우에, 성전 건물은 돌이나
그 밖의 다른 견고한 재료로 된 값비싸고 영구적인 건축물이었는데,
이것은 성전의 사회적・문화적・종교적・정치적 중요성을 보여 주
는 것이었다. 고대 이스라엘은 특이했는데, 자신의 수호 신을 위한
성전 건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특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고대 근동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이했던
것은 성전에 제의를 위한 신상을 두지 않았고, 오직 한 장소에서 제
사를 드려 오직 한 신만을 예배할 것을 역설한 것이었다( 물론 그 강도
와 성공의 정도는 시대마다 달랐지만 ). 이스라엘의 역사가 전개되는 동안
이스라엘의 경계 안에 다른 신을 위한 성소, 산당, 신전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충분한 증거가 있고, 또한 유대인들의 다른 성전에 대한
기록도 있는데, 특히 그런 성전은 이집트의 엘레판티네와 레온토폴
리스에 있었고, 그리심산의 사마리아 성전이 있었다. 하지만 히스기
야와 요시야 같은 왕의 중앙집권화 개혁을 통해, 포로기와 그 이후
의 유대 사상과 실천의 주류는 오직 하나의 합법적인 성전, 즉 거룩
한 도시 예루살렘의 시온산에 있는 성전, 여호와가 자신의 이름이
거하도록 선택한 장소만이 있다는 것이었다.4) 하나의 성전만을 갖는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유일성과 그 하나님의 보편적 주권에 대한
적절한 반영으로 여겨졌다.
이 거룩한 장소에 솔로몬왕이 성전을 건축했고, 포로기 후에 재건
되었으며, 시대의 전환기에 헤롯 대왕에 의해 개조되고 확장되었다.
헤롯이 손본 이 마지막 성전이 예수와 그의 초기 추종자가 알고 있
던 성전이고, 자주 방문한 성전이다. 유대 민족의 정체성과 종교적・
정치적・경제적 실천과 관련해 이 성전의 중심성은 제2성전기 때 쓰
여져 지금도 남아 있는 많은 유대 텍스트에 반영되어 있는데, 거기
에는 당시 성전의 지위나 종교 지도부를 부정하거나 부패한 것으로
4) 낙원이나 에덴 개념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 도성도 여기서 자세히 다룰 수는 없고, 단지 성 전과 관련해서만 언급할 것이다. 더 자세한 것은 다음을 보라. Walker, Jesus and the Holy City
여겨 거부한 자들이 쓴 텍스트도 포함되어 있다. 신약성경도 여러
방식으로 성전이 지닌 이 중심성을 증언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복음
서와 사도행전에서 두드러지고, 제의 언어는 바울과 베드로전서에
서 사역의 실천에 적용된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성전으로 묘사하고,
바울은 그의 추종자 공동체를 성전으로 묘사하는데, 이것은 사해 문
서에 반영되어 있는 쿰란 공동체의 자기 이해와 여러 면에서 서로
병행을 이루는 특징이다. 신약성경이 예루살렘 성전을 다룬 것과 성
전 언어를 예수, 사역, 교회와 관련해 확장해서 사용한 것은 광범위
하게 주목되어 왔고, 연구되어 왔다. 이것에 비추어 보았을 때, 신약
성경이 성전과 하늘을 광범위하게 결부시키는 것이 흔히 간과되거
나 경시되어 온 것은 놀라운 일이고, 그 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이 책
의 의도다. 이 책의 결론에서 나는 이 질문으로 되돌아가, 그런 경시
를 초래한 여러 가능한 이유를 탐구하겠다.
하늘, 성전, 공간 이론
장소와 공간이 이 연구의 주된 관심사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처음
부터 내 논의를 공간 이론( 종종 “비판적 공간성”이라 불리는 ) 의 맥락 안에
위치시키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는 더 폭넓
은 철학적 경향을 반영해, 시간이 공간에 비해 우위를 점해 왔다. 공
간과 지리에 비해 시간과 역사에 특권을 부여하거나 심지어 지배적
인 것으로 여겨 온 경향에 대응해, 최근 수십 년 동안 많은 공간 이
론가는 공간을 시간의 부정적 대립물로 개념화하는 것에 이의를 제
기해 왔다.5) 이것은 흔히 “공간적 전환”, 즉 시간과 역사 중심에서
장소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 불린다. 시간에 특권을
5) 이 비판을 표명하는 주요 연구로는 다음이 있다. Soja, PostmodernGeographies
부여한 한 예는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작업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공간을 시간의 재현과 지배를 위한 영역으로 보았고, 따라서 공간을
고정성, 정체, 폐쇄성과 결부시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리학자
도린 매시는 공간은 시간성만큼이나 “똑같이 생동적이고 똑같이 도
전적”이라고 단언한다.6) 성경학 안에서 공간에 비해 시간을 우선시
하는 한 예는 “묵시적”( 장르와 세계관 둘 모두의 의미에서 ) 이라는 것은 흔
히 단지 “종말론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 즉 현세의 끝과 다가올 시
대의 시작을 다루는 것이라고 보아 온 것에서 볼 수 있다.7) 그런 관
점은 일부 성경학계에서 자동으로 공간적 요소를 플라톤주의적이거
나 헬레니즘적인 것으로 분류하도록 이끌어 왔다. 하지만 실제로 많
은 묵시록과 묵시론적 텍스트는 시간적 측면만이 아니라, 공간적 측
면도 포함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아래에서 반복적으로 보게 될 것 이다.
공간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어떤 것이고, 장소는 “의미가 부여된 공간”이라고 흔히 구별한다.8) 이것은 지정된 공간의 존재와 공간을
의미 있는 장소로 구별하는 과정 둘 모두에 주목하게 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성전과 관련해 의미는 물리적 위치의 경계 설정, 자원의 수집, 건축 작업, 봉헌과 개관의 의례, 지속적인 제의적 섬김에 따라
부여된다. 이스라엘의 성막의 경우에 이 민족의 거룩한 장소는 광야
안에서 이동할 수 있었고, 성막이 세워진 곳은 어디든 거룩한 장 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성막은 진영과 관련해 고정되어 있어서, 항상 열두 지파의 중심에 위치해, 더 넓은 민족적 공간에 의미를 부
6) Massey, For Space, 14. 베르그송에 대한 그의 비판은 20-30쪽을 보라.
7) 이것은 SBL 장르 프로젝트에서 자주 인용되는 정의가 양쪽에 같은 비중을 두고 있다는 사실 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즉, 묵시문학은 “종말론적 구원을 상정한다는 점에서는 시간적이 고, 또 다른 초자연적 세계를 포함한다는 점에서는 공간적이다”(J. Collins, Apocalypse, 9). 종말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다음을 보라. Open Heaven, 23–48.
8) Carter, Donald, and Squires, SpaceandPlace, xii.
여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간과 장소를 구별하는 것과 관련해 주의
해야 필요가 있다. 최악의 경우에 마치 공간과 시간이 서로 대립물
인 것처럼, 공간을 단지 시간을 위한 부정적 배경으로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매시는 “지구 전체라는 장소도 그중 한 지역만큼이나 구
체적인 장소일 뿐이다”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것은 장소를 평가절
하하는 것이 아니다. “내 주장은 장소가 구체적이지 않고, 근거가 없
고, 실재적이지 않고, 살아 있지 않다는 것 같은 것들이 아니라, 공간
도 그러하다는 것이다.”9) 이것은 중요한 지점이다. 성전과 우주의
연결 관계는 어떤 면에서 우주 전체를 거룩한 장소로, 따라서 의미
있는 장소로 규정한다. 하지만 공간으로 해석될 때조차, 우주는 여전
히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다.
한 무리의 사상가는 공간에 대한 이원적 해석에 만족하지 못하고,
삼중적 구분을 활용해 왔다.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의 세 차원을 제
시했고, 이것을 데이비드 하비가 받아들였다.10) 그는 “물질적 공
간”( 또는 경험 ) 은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물리적 상호작용을 위한 곳
이고, “공간의 재현”( 또는 지각 ) 은 우리가 물질적 공간에 대해 이해하
고 말하는 방식이며, “재현의 공간”( 또는 상상 ) 은 우리가 “공간적 실
천을 위한 새로운 의미와 가능성을 상상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11)
최근의 저작에서 로익 바캉은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상에 서 공간의 “삼원변증법”을 확인했다.12) 바캉이 제시한 “물리적 공
간”, “상징적 공간”, “사회적 공간”이라는 세 범주는 하비의 것과 직
접적으로 대응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같은 관심사를 보여 준다.
특히 부르디외는 권력 투쟁을 통한 공간의 지속적인 재협상을 강조
9) Massey, For Space, 184–185. 다음도 보라. 101-103, 140-141.
나 투사되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추상적인 공간이고, 개념적이고, 인지적이며, 상징적인 세계다. 제2공간은 담론이나 실천을 통한 지
식의 투사 또는 생산을 포함하고, 따라서 흔히 제1공간에서 마주친
실재에 대해 고정성과 질서를 부과하려는 시도의 한 방식이다. 하지
만 이 공간은 반드시 제1공간에서 파생되거나 의존하는 것이 아
니라, 그 자체로 독립성, 심지어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지배력을 가 진다.16) 제3공간은 우리가 실제로 살면서 경험하는 공간, 즉 있는 그
대로의 공간과 우리가 해석하는 공간 사이의 이원적 관계를 교란하
는 예측 불가능한 또 다른 공간이다.17) 소자는 제3공간을 다음과 같 이 설명한다.
13) 바캉(“Rethinking the City,” 820–821)은 상징적 공간을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을 형성해 우리의 아비투스(habitus)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규정하지만, 사회적 공간은 부 르디외의 장 개념의 상위 범주로 본다.
14) Massey, For Space, 9, 117–125.
15) Soja, Journeys.
16) Soja, “Expanding the Scope,” 266.
17) 제3공간은 “또 다른 타자를 도입함으로써 속박하는 거대 이분법에서 탈피하려” 한다(Soja, “Expanding the Scope,” 268).
타자인 한 세계, 모든 것이 발견될 수 있는 급진적 개방성을 지
닌 메타-공간, 새로운 발견과 정치적 전략의 가능성이 무한한
곳, 그러나 우리가 항상 쉼 없이 자기비판적으로 새로운 장소와
통찰로 나아가야 하고, 과거의 여정과 성취에 따라 전혀 제한받
지 않으며, 항상 차이, 타자성, 현재 알려져 있고 당연시되는 것
“너머”의 전략적이고 이단적인 공간을 찾는 곳.18)
소자가 설명하듯이, 제3공간은 “우리가 실제로 살면서 경험하는
공간, 모든 공간을 동시에 포괄하고, 이해하며, 잠재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전략적인 장소”다.19) 따라서 제3공간은 제1공간과 제2공간
을 교란하는 공간이지만, 새로운 이해가 형성되는 건설적인 공간이
기도 하다. 이 공간은 “변증법적 순서와 논리 전체를 어지럽히고, 해
체하며, 잠정적으로 다른 형태로 재구성하려 한다.”20) 많은 점에서
소자의 제3공간은 공간의 재상상을 위한 정신적 구성물인 하비의
“재현의 공간”을 더 예리하거나 더 강화한 형태일 뿐이다.21)
특히 소자의 이론만이 아니라 공간 이론 자체가 성경 본문을 읽는
데 생산적이라는 것이 발견되었다.22) 여기서 나는 위에서 개괄한 공
간 이론의 관점에서 우주와 성전의 개념을 해명하겠다. 이후의 여러
장에서는 공간 이론을 명시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논증은 역
18) Soja, Journeys, 34.
19) Soja, Journeys, 68 (강조는 원래의 것).
20) Soja, “Expanding the Scope,” 269.
21) 소자에게 파괴적인 측면은 포스트모던한 것이지만, 여기서 연구되는 텍스트에 대해서는 묵 시적인 것으로 특징짓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22) 특히 AAR/SBL의 ‘고대 공간의 구성’ 세미나와 그 결과물로 나온 5권짜리 Constructions of Space를 주목하라. 유용한 개론 및 개관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Stewart, “New Testament Space/Spatiality”; Schreiner, “Space, Place and Biblical Studies”; Sleeman, Geography and the Ascension, 22–56. 슬리먼(Sleeman, “Critical Spatial Theory 2.0”)은 공간 이론이 가치중립적인 도구 상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 없이 수용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의를 준다. 나는 고대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발견을 설명하기 위한 유용한 틀로 이것을 활용한다.
열린 성소
사적이고 문헌학적인 석의를 위한 통상적인 도구를 사용해 진행될
것이고, 이 책 결론에서만 다시 짧게 공간 이론으로 되돌아갈 것 이다.
성전의 제1공간은 성전의 물리적이고 지리적인 위치, 성전의 경
내, 담, 방에 의해 제한된 공간이다. 하지만 이미 여기서 우리는 제
1공간과 제2공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본다. 예컨대 헤롯 성전의 물리
적 공간인 제1공간은 성전을 둘러쳐진 담에, 이방인이 들어오면 사
형에 처하리라고 경고하는 문구를 새겨 둠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
의 구별이라는 관념적 공간인 제2공간을 실체화했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5.417 ). 하늘을 포함한 우주 전체도 제1공간이다. 고대 우주론
에서 하늘은 궁창 위 “저 위에” 있고, 문자 그대로 위아래를 가리키
는 그런 수직적인 용어로 해석되지 않을 때조차, 여전히 또 다른 구
체적인 장소다. 대다수 사람은 거기에 가지 않지만, 하늘과 땅 사이
를 오가는 신과 천사뿐 아니라 높임을 받은 자 같은 일부 사람은 거
기에 갈 수 있고 실제로 간다.
고대 근동의 신전은 하늘 또는 피조 질서 전체를 재현한다는 점에
서 제2공간이다. 특히 2장에서 나는 제2성전기 유대인이 자신들의
성소가 하늘 또는 우주를 재현하는 것으로 이해한 다양한 방식을 추
적하겠다. 우주에 대한 이해가 성전 건축에 영향을 미쳤고, 성전에 대한 이해가 우주 이해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이 둘의 관계는
상호적이다.
또한 고대의 신전은 수평적 차원에서도 해당 민족의 개념적 세계
에 근본적이었다. 세계의 중심 또는 배꼽인 옴팔로스, 바벨론의 마르
둑 신전 같은 고대 도시국가의 신전, 델포이 신탁소는 우주의 지리 만이 아니라, 해당 민족의 국가적 삶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역할을 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의 일상생활 윤곽을 결정했다. 즉, 음식과 정결 규례, 이방인과의 교제, 기도 시간 등에서다. 이 제2공
10
간적 기능은 바리새인의 가르침에서 특히 집약적인 형태에 도달하
는데, 그들에게 일상생활은 성전 정결의 기준을 반영해야 했지만, 이
것은 성전의 개념적이고 상징적인 권력을 만든 것이 아니라, 단지
확장한 것일 뿐이다.
제3공간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 공간을 우리가 실제로 살면서 경
험하는 실재로 받아들인다면, 다른 두 공간에 대한 이해를 형성하고,
때로는 그 두 공간에 대한 재상상을 형성하는 성전 공간과의 지속적
인 만남이 있다. 소자가 제시한 더 예리한 형태의 제3공간은 교란을
포함한다. 헤롯의 성전 재건축같이, 이것은 계획될 수 있다. 헤롯은
왕으로서 자신의 권력과 명성을 확립하기 위해, 헬레니즘 시대의 건
축을 확장된 성전 복합체에 통합했기 때문이다. 그의 계획이 사람들
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그가 유대 민족에게 자신은 그 일을
실행할 의도만이 아니라, 수단도 있다고 안심시켜야 한 것에서 분명
하게 드러난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5.380-425 ). 또한 재구성은 더 급
격할 수 있고, 이것은 제1성전과 제2성전의 파괴에서, 또는 쿰란 공
동체의 의의 교사와 성전 기득권층의 악한 제사장 사이의 균열에서
볼 수 있다. 이 사건들은 제3공간과 관련해 성전에 대한 새로운 개념
화를 강제하는 역할을 하고, 이것은 에스겔의 환상에서, 또는 쿰란
공동체가 자신을 성전으로 이해하고, 유토피아적인 성전 두루마리
를 만든 것에서 볼 수 있다. 아래에서 탐구될 여러 텍스트에서 그런
제3공간적 재상상은 흔히 하늘의 환상, 승천, 천사의 방문으로써 촉 발된다. 무엇보다도 재상상은 예수 생애의 핵심적 순간으로 촉발 된다. 즉, 예수의 탄생, 수세, 변모, 십자가 처형, 부활, 승천 등이다.
이 상상적 작업은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제1공간의 파괴 이전 과 이후에 제2성전기 제2공간에 대한 초기 기독교 운동의 재구성을 촉발한다.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여덟 장으로 구성된다. 1장과 2장에서는 초기 기독교 텍
스트에 대한 우리 연구를 위한 배경을 설정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나는 먼저 고대 근동 텍스트, 구약성경, 헬라-로마의 저자들에 나타
난 하늘과 성전의 관계를 제시한다. 이 모든 문헌 집합은 성전을 하
늘과 연결하는데, 거기서 우리는 이미 둘을 관련시키는 다양한 방식
을 볼 수 있다. 그런 다음 나는 제2성전기로 나아간다. 이 시기에 이
둘의 연관성이 더 충만하고 더 풍성해지는데, 그 이유는 더 많은 텍
스트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본 개념의 많은 발전과 정교화 때
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나는 그 시기에 발견될 수 있는 하늘과 성전
을 관련시키는 네 가지 주요 방식의 스펙트럼을 도표화하는 새로운 분류법을 제안한다. 이 네 가지 주요 방식은 1장에서 다루어진 자료
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3장과 4장은 신약성경에서 하늘 성소의 개념을 가장 명시적으로
다루는 책들인 요한계시록과 히브리서로 눈을 돌린다. 요한계시록
은 하늘 성소의 보좌 위에 희생 제물이 되었다가 이미 영화롭게 된
어린양으로 시작한다. 요한계시록은 심판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이
발산되게 하려고 성전이 열리는 인상적인 개념을 제시하지만, 또한
성전과 제단을 신실한 순교자의 피난처로 본다. 종말의 때에 하늘
성전은 예루살렘의 거룩한 도성에서 땅과 연합하는데, 이 도성은 입
방체 모양의 지성소이고, 그 열린 성문은 종말론적 평화와 안전의
성취를 상징한다. 히브리서는 하늘 성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해
모세의 성막의 본이었던 하늘 성막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 원형-모 형의 관계는 이번에는 대속죄일의 제사장이자 희생 제물인 예수의
사역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예수의 승천은 휘장을 걷어제
치고, 하늘을 이제 신자에게 도움과 확신을 주기 위해 열려 있는 단
일한 방을 지닌 성소가 되게 함으로써, 하늘 공간을 재구성한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복음서, 사도행전, 그 밖의 다른 초기 기독
교 문헌으로 눈을 돌리는데, 거기서 하늘 성전의 개념은 더 약화해
있다. 5장은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을 탐구하는데, 둘 다 열린 하늘을
성전과 관련된 개념과 용어로 표현한다. 마가복음에서 이것은 세례,
변모, 십자가 처형을 서로 관련되게 배치하는 문학적 구조 안에 통
합되어 있다. 마태복음에서 이것은 하늘과 땅에 대한 그의 묘사와
거룩한 산의 모티프에 대한 그의 활용을 통해 표현된다. 6장에서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이 예수의 승천이라는 중추적 서사를 통해 하
늘 성전의 개념을 어떻게 진전시키는지를 보여 준다. 거기서 예수는
하늘에 확고히 배치되고, 거기서부터 그 도의 확장을 지휘하는 일을
계속한다. 그런 확장은 제의적인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늘의 일련
의 개입을 통해 일어난다. 7장은 요한복음으로 눈을 돌리고, 거기서
나는 하늘 성전의 개념이 요한의 독특한 성전 기독론과 경쟁하는 것
이 아니라, 오히려 그 토대가 되고 있음을 논증한다. 끝으로 8장에서
나는 초기 기독교의 발전하는 흐름 안에서 하늘 성전의 개념을 추적 하기 위해 신약 정경 안팎에서 그 밖의 다른 초기 기독교 텍스트를 탐구한다.
결론에서 나는 각 장의 논증을 요약한 후에, 성경학과 성경신학이
둘 다 하늘 성전보다 성전으로서의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
여 온 이유에 대한 성찰을 제시하고, 초기 기독교의 재구성된 우주
지도의 관점에서 이 연구가 이바지한 바를 설명한다. 하늘 성전은 더
넓은 맥락인 제2성전기 환경과 공유한 개념이어서,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에 걸쳐 전제된다. 하지만 하늘 성전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독 특하게 재구성된다. 그리스도의 사역이 하늘 성전과 관련해 의례적
차원을 넘어 구조적 차원의 변화를 불러왔고, 이 변화는 이런저런 방
식으로 신적 영역의 개방성 및 접근 가능성이 관련되기 때문이다.
1장 고대
우주적 중심
성전과 하늘을 연결하는 것은 아주 오래되었고 광범위하게 행해
졌다. 서로 길이가 다른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장에서는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어질 제2성전과 신약 문헌에 대한 더 상세한 탐
구를 위한 배경과 맥락을 설정한다. 첫째, 우리는 고대 근동 문헌에
서 하늘 성전 개념을 탐구한다. 성전과 하늘을 서로 연결하는 것은
비록 충분히 발전되지는 않지만, 흔한 것이고, 통상적으로 창조 신화
와 관련해 행해진다. 둘째, 우리는 구약성경으로 눈을 돌리는데, 거 기서 하늘 성전 모티프의 존재와 중요성은 논란이 되어 왔다. 창세
기 1-3장에 대한 검토는 이 장들이 성막의 건축 및 그 밖의 다른 성
전 본문과 흥미로운 상호텍스트적 관계가 있지만, 그 자체로는 우주
나 에덴동산을 성소로 제시하지는 않음을 시사해 준다. 그럼에도 하
늘과 성전을 연결하고 있는 것은 강조의 정도는 서로 다르지만 여러 구약 텍스트에서 증명된다. 구약성경에서 우리의 마지막 기착지는 에스겔의 성전 환상인데, 이 환상은 하늘 성전을 계시하고, 고대 근 동의 기원론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 종말론의 질문을 도입한다. 이
장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그리스와 로마의 제의 실
천을 간략히 검토한다. 다양한 신을 위한 많은 성전이 모든 도시에
서 발견되었지만, 그리스-로마 종교는 신전보다 제단과 제단이 속해
있는 신성한 구역, 즉 성역( ‘테메노스’ ) 을 중심으로 한다. 신전 건축과
우주를 결부시키는 것은 설득력이 없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저자들
의 글에는 비록 지속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주가 곧 신전”이라는 모
티프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고대 근동
현존하는 텍스트와 고고학적 유물에서 고대 근동의 신전 이데올
로기에서 두드러진 공통성을 감지할 수 있다.1) 창조 신화는 신 또는
신들이 피조 세계를 성전으로 확립하는 것을 묘사하고, 신이나 인간
왕이 이 우주적 실재를 반영하기 위해 지상의 신전 건물을 건축
한다.2) BC 3천년기 말에 만들어진 수메르 구데아 원통은 닌기르수
신에게 봉헌된 기르수의 주요 신전 건물을 묘사한다. 약 61센티미터
길이의 이 두 개의 원통( A와 B로 표시됨 ) 은 둘 다 신전을 재건한 라가
시의 통치자 구데아가 설치했다.3) “구름처럼 하늘 한가운데” 떠 있
고, “언덕처럼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이 신전은 “하
늘을 끌어안고 있는 거대한 집과 같다”( 원통 A, 578-590 ). 4) 이 신전의
규모는 “큰 산만큼 높고”, 이 신전의 터를 이루는 말뚝들은 땅속 깊
이 박혀 있어, 태초의 물의 근원인 압수와 연결되어 있다( 602-616 ).
1) Lundquist, “Common Temple Ideology,” 54. 헌들리(Hundley, Gods in Dwellings, 131n2)는 “고대 근동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흔히 영광스러운 과거 로의 회귀였다”고 지적한다.
2) Kapelrud, “Temple Building”; Van Leeuwen, “Cosmos, Temple, House.”
3) Kramer, “Temple in Sumerian Literature.”
4) 수메르 문학 전자 텍스트 자료집(https://etcsl.orinst.ox.ac.uk/.)에서 가져온 텍스트.
이 신전은 식물의 문양으로 가득 차 있고, 들보는 “아브주( 압수의 수메
르어 표기-옮긴이 ) 의 용처럼 보였다”( 591-592 ). 닙푸르 도시의 에쿠르
신전은 수메르에서 가장 중요한 신전이었는데, 주신 엔릴의 거처였
고,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끈이라는 뜻을 지닌 ‘두란키’라는 이름으
로 알려졌다. 신전이나 신전이 있는 도시가 대지의 배꼽으로 여겨
졌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어느 정도의 증거가 있다. 신전/도시가 배
꼽이라는 개념은 나중에 지중해의 다양한 우주론에서 대중화되 었다.5)
BC 2천년기에 아카드어로 쓰인 바빌로니아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시는 혼돈의 괴물 압수와 에아 신 사이의 우주적 전투를 묘사 한다. 에아 신은 승리한 후 압수 위에 “자신의 거처를 세웠다.” 에아
신은 자신이 쉬는 “신성한 방”에 압수라는 이름을 붙이고, 거기에 신
전을 배치한다. “바로 그 장소에 그는 자신의 제의 오두막을 세
웠다”( 1.69-77 ). 6) 나중에 에아 신의 아들인 마르둑 신은 압수의 복수
를 추구하던 티아마트를 물리친 후 다른 신들에 의해 “우리 성소의
수호자”로 추대된다. 마르둑은 압수 위에 자신의 신전 건축을 명령
하는데, 이 신전은 신들이 압수에서부터 올라오거나 하늘에서부터
내려올 때 그들을 맞이할 집이고( 5.113-130 ), “바벨론”이라는 명칭은
“위대한 신들의 집”을 의미한다. 여섯 번째 토판에서 마르둑은 하급
신들에게 바벨론을 자신의 보좌와 방으로 건축하고, “성소”라고 명
명하도록 명령한다. 이 신전의 규모는 “압수[가 깊은 것]만큼
높다”( 6.47-72 ). 여섯 번째 토판의 후반부에는 “그[마르둑]가 하늘에 서 만든 것의 모형을 땅에 만들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 6.113 ).
5) Kramer, “Temple in Sumerian Literature,” 7; Burrows, “Cosmological Patterns in Babylonian Religion,” 28–30.
6) 다음에서 텍스트를 가져왔다. Pritchard, Ancient Near
이 텍스트를 연구한 학자들은 반복되는 여러 특징을 찾아낸다. 첫
째, 신전은 우주적 산을 나타내는데, 이 연결 관계는 특히 신전의
터가 산에 있다는 것과 산의 형태를 모방한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
트의 다층 구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7) “지역의 신성한 산은……
인간이 예배하는 신의 진정한 거처를 형성하는 우주를 나타내는 상
징 또는 표상이었다.”8) 둘째, 신전은 우주의 중심, 즉 태초의 심연의
물( 이집트에서는 ‘눈’,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아브주’, 이스라엘에서는 ‘테홈’이라 불
린 ) 에서부터 하늘의 높은 곳까지 우주적 범위를 연결하는 세계의 축
이었다.9) 이런 맥락에서 신전이나 신전이 있는 성역은 태초의 언덕, 즉 혼돈의 물에서 솟아오른 첫 번째 장소로 규정될 수 있었다. 셋째,
신전과 심연의 물의 연결 관계는 신전을 생명의 물과 연결하는데,
이것은 신전 근처나 아래에서 발견되는 샘이나 저수지로 표현된다.
우리는 신전 의례에서 정화와 전제를 위한 물을 사용하는 것에서 이
둘의 연결 관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끝으로 신전은 흔히 생명나
무, 풍요로운 초목, 동산과 연관된다.10) 우주-신전 관계에 대한 다양
한 해석( 피조 세계의 모방, 위에서 만들어진 것의 모방, 우주적 중심 ) 은 그 자체
로 고도로 정교화되지 않았고, 따라서 그 해석들은 날카롭게 구별되
어서는 안 된다.11)
7) Clifford, “Temple and the Holy Mountain.”
8) Lundquist, “Common Temple Ideology,” 57; Clements, God and Temple, 3. 가나안 의 거룩한 산인 자판산과 관련된 증거 및 구약성경에 나타난 그 반향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Clements, GodandTemple, 6–9.
9) 우주의 중심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Eliade, MythoftheEternalReturn, 6–11, 21–34. 엘리아데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J. Smith, Map Is Not Territory, 88–103.
10) 이 점들은 다음에 잘 기술되어 있다. Lundquist, “Common Temple Ideology,” 60–70; Levenson, Sinai and Zion, 111–137. 이 관점에서 겔 28:11-19에 나타난 에덴과 거룩 한 산 사이의 연결은 주목할 만하다. 여기 사용된 창조 표상에 대한 변증은 다음을 보라. Strong, “Cosmic Re- creation and Ezekiel’s Vocabulary,” 246–249.
11)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 Sacred and the Profane)는 훨씬 더 광범위한 고대 문화 전반에 걸친 공통성을 시사하는 폭넓은 자료를 제시하지만, 이것들을 너무 성급하게
고대 근동의 신전은 신을 나타내는 제의 조각상을 모셨다.12) 신이
하늘에서 기원했다는 것과 세계의 큰 부분을 지배한다는 것을 고려
했을 때, 신이 자신의 성전에 거한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신은 지상
의 단일 장소에 국한될 수 없다는 것, 둘 모두가 인정되었다.13) 특정
한 신전이 특정한 신의 일차적인 지상 거처로 지정될 수 있었고, 같
은 신을 위한 다른 신전들은 중앙 신전과 관련되었다. 이 점에서 종
교적 권위는 정치적 권력과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되
어 있었다.14) 신의 진정한 거처는 여러 곳에 똑같이 존재할 수 있었
고, 지역 신은 보편적 신의 형태로 이해되었으므로, 이 둘은 서로 날
카롭게 구별될 수 없었다.15) 신적 창조 행위의 모방이자 신이 거하
는 집인 “신전은 두 세계를 혼합시켜 놓은 것, 사실상 지상의 하늘이
었고, 둘 모두의 요소가 건축 자체에 구현되어 있었다.”16)
구약성경
고대 근동의 신전 이데올로기의 문화적 연속성은 헬레니즘 시대
후기까지 지속되었으므로,17) 그런 이데올로기가 구약성경에 반영되 어 있는지 아닌지를 묻는 것은 자연스럽다. 슈무엘 사프라이는 “하
늘의 예루살렘이나 하늘 성전에 대해 말하는 어떤 증거가 성경에서
융합해 버릴 위험을 안고 있다.
12) 제의 봉사의 본질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Levavi, “Sacred Bureaucracy of Neo-Babylonian Temples.”
13) Clements, GodandTemple, 1–3.
14) Root, “Palace to Temple.”
15) 이와 관련해, 마르둑은 자신의 모든 역할에서 신을 지칭하고, 벨은 구체적으로 바벨론의 수 호신 역할을 함과 동시에, 제의 신상으로 구현된 동일한 신을 지칭한다는 최근 논문인 다음 을 보라. Heath- Whyte, “‘Bēu’ and ‘Marduk’ in Neo-Assyrian Royal Inscriptions.”
16) Hundley, GodsinDwellings, 131.
17) Lundquist, “Common Temple Ideology,” 54. 구약성경과 고대 근동 사이의 더 폭넓은 공통점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Stavrakopoulou, God:AnAnatomy
발견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라고 말함으로써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수많은 텍스트가 이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에 열려 있고, 실제로 제2성전기와 그 이후에 이런 방식으로 읽혔다고 지적한다.18)
어떤 측면에서 이 연구에 중요한 것은 제2성전기의 다양한 장르와
출처의 많은 수의 텍스트에 일련의 하늘 성전 개념이 나타나 있다는
사실이다. 이 텍스트들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유사한 개념을 조사하
기 위한 적절한 맥락을 형성하므로, 아래 2장에서 어느 정도 상세히
검토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전에, 제2성전기 저자들에게 이 텍스
트 모음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구약성경 안에서 그런 개념이 발
견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발견되는지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19)
피조 세계와 에덴동산은 성소인가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를 신이 자신이 거할 성전
으로 우주를 창조했다는 우주 기원론적 신화의 이스라엘 판본이라
고 보았다.20) 하지만 피조 세계를 ‘엘로힘’을 위한 신전 또는 거처라
고 명시적으로 지정했다는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위의 고
대 근동 기사들에서 본 묘사와 두드러진 대조를 보여 준다.21) 어떤 사람들은 창세기 1장 1절-2장 3절과 성막 건축을 묘사한 출애굽기
18) Safrai, “Heavenly Jerusalem,” 13.
19) 나는 구약성경 텍스트와 제2성전기 텍스트 사이의 날카로운 구분을 제안하려는 의도가 아 니다. 왜냐하면 전자의 많은 부분이 제2성전기(BC 516년경 포로 귀환으로 시작되는 것으 로 정의됨)에 최종 형태를 갖추었거나, 심지어 그 시기에 저술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다수 학자가 BC 2세기로 연대를 추정하는 다니엘서를 제외하면, 여기서 다루는 텍스트 는 2장에서 다루는 텍스트보다 시기적으로 앞선다.
20) 존 월턴은 논문, 단행본, 대중 서적을 통해 이 견해를 지지하는 저명한 학자다. 참고. John Walton, “Creation in Genesis 1:1–:3”; Genesis 1 as Ancient Cosmology; 부분적으 로 6일 창조론에 대한 반박으로 저술된 대중 서적인 The Lost World of Genesis One 다음도 보라. Beale, TempleandtheChurch’sMission, 60–80; Lioy, Axis of Glory, 5–16, 33–38.
21) 존 월턴 등에 대한 비판적 응답으로는 다음을 보라. Jenson, “Cosmic Temple? A Skeptical Assessment.”
25-40장( 주로 제사장 자료 P의 저작 ) 사이의 연결 관계를 주장해 왔다.
출애굽기 40장 2, 17절은 첫째 달 첫째 날에 성막이 세워졌다고 말 한다. 창조의 6일을 촉발하는 여섯 개의 발화 행위가 있는 것처럼,
성막을 건축하라는 여섯 개의 명령이 있다.22) 일곱 번째 명령은 마
치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쉰다는 듯이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고, 안식일은 창조와 연결된다( 출 31:17 ). 피터 커니는 이 명령들과 각각
의 날에 만들어진 것 사이의 더 많은 연결 관계를 확정하려 한다.23) 그의 도식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첫 번째 명령이 매우 길고 ( 25:130:10 ), 그 뒤로 상대적으로 짧은 일련의 명령이 나온다는 점에서 설
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일부 연결 관계는 빈약한데, 아론의 등잔을 하나님의 빛의 창조와 연결하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이 연결 관계
는 랍비 텍스트인 미드라쉬 탄후마( 페쿠데 2.3 ) 에 의해 고찰된 것이라
는 점에서, 엄밀하게 말해 오늘날의 학문적 성과는 아니다.24) 더욱이
조셉 블렌킨솝이 주목한 것처럼, 창조와 성막의 완성 서사는 서로 평행을 이룬다. 모든 일을 마치고, 복 주고, 거룩하게 한다는 표현( 창
부터 “나누기” 위한 궁창의 창조는 레위기 10장 10절에서 제사장이 거룩한 것을 속된 것으로부터 나누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는 것
과 같은 히필형 어간의 동사를 사용하고, 에스겔 42장 20절( lydbm , ‘마브딜’/ lydbh , ‘히브딜’ ) 에서는 담이 같은 역할을 한다. 이것으로부터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가 7번 나오는 것에 주목하라: 출 25:1; 30:11, 17, 22, 34; 31:1, 12.
23) Kearney, “Creation and Liturgy,” 375–378.
24) 이 비판들과 미드라쉬 탄후마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Levenson, Creation and the Persistence of Evil, 83–84, 97–98.
25) Blenkinsopp, “The Structure of P,” 280; Levenson, “Temple and the World,” 287.
후대 유대 해석자들이 어떻게 궁창을 성전 휘장과 동일시할 수 있었
는지를 쉽게 알 수 있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2장에서 살펴보겠다. 이
것 중 어느 것도 창세기 1장의 피조 세계가 성소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지만, 이것은 오경 편집자가 성막과 창조 서사를 서로와의 관련
속에서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 보여 주고, 후대의 저자들이 포착한
언어적 연결 관계의 종류를 예시해 준다.
비슷한 논증이 창세기 2-3장과 관련해 제기되어 왔다. 이 장들을
창세기 1장과 뒤섞어서는 안 된다. 이 두 부류는 서로 다른 출처로부
터 유래했고( 창 1장은 P로부터, 창 2-3장은 J 또는 비-P로부터 ), 이 질문과
관련한 각자의 대답은 우주-성전의 관계에 대한 상당히 다른 해석
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암시적인 논문에서, 고든 웬함은 성막과 성
전을 반영하는 에덴동산의 일련의 특징을 찾아낸다.26) 에덴동산에
서 하나님이 “거니신다”고 할 때 사용된 동사는 다른 곳에서는 하나
님의 제의적 임재를 묘사하는 동사다( 히트파엘형 어간 $lhtm, ‘미트할라크’,
창 3:8; 비교. 레 26:12; 신 23:15[영역본 14절]; 삼하 7:6-7 ) . “경작하며 지
키다”라는 동사는 오경의 다른 곳에서는 오직 레위인의 의무에 대해
서만 함께 사용된다( hrmvlw hdb[l, ‘레아브다 울레숌라’, 창 2:15; 비교. 민 3:78; 8:26; 18:5-6 ). 그리고 기혼강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산 아래의 샘
과 같은 이름이다( 창 2:13; 대하 32:30 ). 다른 연결 관계는 둘 다 동쪽에
서 접근하는 에덴동산과 성소의 입구에 있는 그룹, 그리고 ‘메
노라’( 등잔대 ) 와 같은 생명나무다. 다른 제안된 연결 관계는 좀 약한
데, 확실히 그 자체로는 그러하다. 귀한 보석과 하윌라의 금 ( 창 2:12 ) 이 성막 비품의 금, 대제사장 의복의 보석과 병행을 이루는 것,
선악을 아는 지식이 성전에 보관된 율법과 연결되는 것, 아담과 제
26) Wenham, “Sanctuary Symbolism.” 다음도 보라. Beale, “Eden, the Temple, and the Church’s Mission”; Beale, TempleandtheChurch’sMission, 29–122.
사장 둘 모두 “속옷”을 입는다는 사실( 창 3:21; 출 28:40-41 ) 등.
대니얼 블록은 모든 제안된 연결 관계를 정밀하게 검토한 후, 그런
연결 관계가 결여해 있음을 발견한다. 예컨대 “거니심”은 일반적으
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는 것과 관련되고, 특별히
성소에서의 임재와 관련되지는 않는다.27) 또한 그는 신의 거처와 관
련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고대 근동의 텍스트는 신 또는 신들이
피조 세계나 그 일부를 자신의 거처로 정했음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반면,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이 거처하기 위한 목적으로 피조 세계나
에덴동산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거의 없다.28) 요컨대,
창세기 1-3장이 히브리 성경의 다른 곳에 나타나 있는 제의 기능과
연결 관계가 있고, 이 연결 관계 중 일부는 의심할 여지없이 다른 후
대의 정경 텍스트와 함께 현재 형태의 창세기를 만들어 낸 편집 작
업을 나타내지만, 이 텍스트들이 우주적 성전이나 에덴동산-성전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지지할 만한 충분한 증거는
없다. 블록이 “성막, 예루살렘 성전, 에스겔이 구상한 성전이 지닌 에
덴동산적 특징은 명백하다……하지만 이스라엘의 성소가 에덴동산
적이었다는 사실이 에덴동산을 신성한 성전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이것은 상호적이지 않은 등식이다”라고 지적한 것은 그것
을 잘 표현한 것이다.29) 증거는 이스라엘의 성소가 에덴동산을 환기 한다는 것을 입증하지만,30) 이것이 에덴동산이 성소라는 것을 수반 하지는 않는다.
27) Block, “Eden: A Temple?,” 5–17.
28) Block, “Eden: A Temple?,” 21–27.
29) Block, “Eden: A Temple?,” 21.
30) Janowski, “Tempel und Schopfung.”
하늘과 성전을 연결하기
성막이 지닌 에덴동산적 측면에 더해, 출애굽기는 우리가 일부 고
대 근동 텍스트에서 주목한 상응 개념을 포함한다.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
양을 따라 지을지니라……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
로 할지니라……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
니라(출 25:9, 40; 26:30 ).
여기서 “양식”( tynbt, ‘타브닛’, παράδειγμα, ‘파라데이그마’ [25:40에서 τύπος,
‘튀포스’] ) 의 가장 자연스러운 읽기는 그것이 성소와 그 기구를 위한
계획이나 개요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세가 정확
히 신적 명령과 의도를 따라 성막을 건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일차적인 강조점과 함께, 이 출애굽기 본문은 위에 있는 것과 아래
에 있는 것 사이의 대응 원리를 정립한다( 비교. 에누마 엘리시 6.113 ). 우
리가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역대기
저자에 따르면, 솔로몬의 성전도 비슷한 신적 확증과 반영 기능을
가진다. 다윗은 자신의 후계자에게 원자재 건축 재료만이 아니라, 여
호와에 의해 문서 형태로 자신에게 계시된 “성전의 설계도( tynbt, ‘타
브닛’; παράδειγμα, ‘파라데이그마’, 대상 28:11-12, 19 ) 도 맡긴다.
하늘은 여러 텍스트에서 하나님의 성전과 동일시되고, 특히 시편
에서 그러한데, 시편은 시적 병행법이라는 아주 경제적인 표현법을
통해 그 개념을 전달한다. 시편 11편 4절은 성전이나 궁전을 가리킬
수 있는 용어( lkyh, ‘헤칼’ ) 를 사용해, “여호와께서는 그의 거룩한 성전
에 계시고 /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ymXb, ‘밧샤마임’ ) 있음이여”라고
읽는다. 그 시대에서는 정치적 공간과 종교적 공간을 구별하는 구분
선은 명확하게 그어질 수 없었고, 신이 거처하는 공간이 항상 숭배
의 장소이기도 한 신과 관련해서는 확실히 그러했다.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이것은 왕권을 상징하는 보좌와 제의를 상징하는 궤가
동일시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31) 시편 150편 1절도 비슷하게 창
세기 1장 6절처럼 궁창을 가리키는 같은 용어를 사용해, “그의 성소
에서 ( wXdqb , ‘베코드쇼’ ) 하나님을 찬양하며 / 그의 권능의 궁창에
서( [yqrb, ‘베라키아’ ) 그를 찬양할지어다”라고 말한다.32) 이 텍스트들
이 병행을 표현하는 것으로 본다면, 궁창 위의 공간인 하늘을 하나
님의 성소와 동일시한 것이 된다. 또는 이 텍스트들이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의 유비를 표현하는 것으로 본다면, 신적 임재를 위한 두
중심인 하늘과 지상의 성소를 관련시키는 것이 된다.33)
다른 텍스트들은 성소와 피조 세계 사이의 유비를 보여 준다. 시편
78편에서 하나님이 유다를 택했다는 것은 시온산을 선택한 것과 다
윗 왕조를 세운 것에 의해 입증된다. 하나님의 “성소”( wvdqm , ‘믹다
쇼’ ) 는 “하늘의 높음같이 / 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어졌다( 78:69 ). 34)
여기서 강조점은 성전과 왕정을 통해 입증된 민족의 안전에 놓여 있
지만, 이 유비는 하늘과 땅 사이의 상응 관계가 자연스럽고 당연함
을 보여 준다. 출애굽기 15장 17절의 모세의 노래에서 성산과 성소
는 동일시되고, 이것은 후대 독자에게 지상 성소와 하늘 성소 사이
의 상응 관계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35) 시온의 세계적 중요성은 시
31) 다음도 보라. 보좌를 “우리 성소”라고 부르는 렘 17:12. 이것은 그런 모티프들이 오직 정치 적인 함의만으로는 생겨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하늘을 하나님이 보좌에 앉 아 있고, 천군이 조언자와 신하로 섬기는 왕의 법정으로 본 왕상 22:19-22의 이믈라의 아 들 미가야의 환상이 그런 경우인 것으로 보인다. 다음도 보라. 왕의 법정의 사법적 기능에 강조점이 있는 욥 1:6-12; 2:1-6; 단 7:9-14, 23-27.
32) ‘라키아’([yqr, 궁창)라는 단어는 마소라 본문(MT)에서 비교적 드물게 나타나는데, 창세기 1장(9회); 시 19:2[ET 1절]; 150:1; 겔 1장(4회); 10:1; 단 12:3에 나온다.
33) 앨런(Allen, Psalms 101–50, 322–24)은 시 150:1의 두 가지 옵션을 논의하지만 하늘의 성소로 결론짓는다.
34) 여기서 “높은 곳”(~ymr, ‘라밈’)은 하늘(NRSV)이나 시온산을 가리킬 수 있다. 참고. Tate, Psalms 51–100, 283.
35) 열왕기상 8장과의 강한 공명에 대해서는 아래를 보라. 출 15:17의 하늘 성전이 원저자의
편 65편에서 볼 수 있다. 이 시편은 시온과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리
는 찬양으로 시작하고( 1-4절 ), 땅끝, 아침과 저녁의 문에 대한 하나님
의 통제, 하나님의 주권 아래 피조 세계의 풍요를 묘사하는 것으로
매끄럽게 이동해 나간다( 5-13절 ). 성경의 한 책인 시편은 하늘에 있
는 하나님의 거처와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에 대한 언
급으로 가득 차 있고, 때때로 이 둘 사이의 경계는 흐려진다. 예컨대
시편 29편은 하늘의 존재들에게 하나님을 예배할 것을 촉구하고, 화
염과 홍수에 대한 하나님의 우주적 주권을 단언한다. 9절에서는 “그
의 성전에서( wlkyhb, ‘베헤칼로’ )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라고 말한다. 이 성전이 지상의 성전인지, 아니면 29편
1-2절의 거룩한 옷을 입은 “신들의 아들들”이 있는 곳인지를 확실
하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36)
또 다른 텍스트들은 하늘과 성전이 어떤 식으로든 기능적으로 서
로 연결된 것으로 여긴다. 이 개념은 상응 개념과 일치하지만, 완전
히 같은 것은 아니다. 신인동형론적 맥락에서 볼 때, 하늘에서 그룹
위에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은 땅에 “발등상”( wylgr ~dh, ‘하돔 라글라
이브’; ὑποπόδιον, ‘휘포포디안’ ) 을 가지고 계신다( 시 99:1, 5 MT; 98:1, 5 칠십인
역 ). 발등상은 일반적으로는 성전이나 시온산을 나타낼 수 있지만( 예.
애 2:1 ) 흔히 언약궤와 동일시된다.37) 역대기상에서 다윗은 성전을 건
축할 자신의 계획을 논의하면서, 성전을 “여호와의 언약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판을 봉안할 성전”( wnyhla ylgr ~dh, ‘하돔 라글레 엘로헤누’)으
로 묘사함으로써( 대상 28:2 ) 언약궤와 발판을 동격으로 놓는다( 비교.
시 132:7-8 ). 38) 언약궤는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나타내지만,
의도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Sarna, Exodus, 82.
36) Craigie, Psalms 1–50, 248. 그는 이 시편의 가나안적 요소에 주목한다.
37) 하란(Haran, TemplesandTemple-Service, 256)은 시 99:5; 132:7에서 “발등상”이 성 전 전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38) 대상 23:25-26에서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은 안식으로 묘사되고, 레위인들은 더
“발판”으로 지칭될 때는 모사나 재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늘 보
좌에 자연스럽게 수반되는 제의적이고 제왕적인 기구의 추가적 항
목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전에서 일어난 이사야의 환상도 언급할 수
있다. 이사야는 주님이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
은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았다( 사 6:1 ). 스랍의 목소리는 문지방을
흔들리게 만들고, 집은 연기로 가득 차는데, 이것은 성막과 솔로몬
성전이 봉헌되었을 때 있었을 것과 아주 비슷하다. 이 환상은 언약 궤가 발등상이라는 개념과 일치한다. 하나님의 옷자락이 땅에 떨어
져 성전을 채우고 있다고 한 것은 하나님이 성전 바로 위 하늘 보좌
에 앉아 계신 것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발등상 표상의 약간 다른 용례가 이사야 66장에서 발견된다. “하
늘은 나의 보좌요 / 땅은 나의 발판이니 /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66:1 NRSVue ). 이 말씀은
보좌의 범위를 하늘 전체를 포괄하도록 확장하고, 발판을 온 땅을
포괄하도록 확장함으로써, 하나님의 크심을 강조한다. 그 정서는
반( 反 ) 성전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희생 제사에 대한 이른
바 예언자적 비판의 예로 여겨지는 말씀 중 하나다.39) 하지만 구약
성경의 여러 다양한 예언자에게서 발견되는 그런 비판은 제의 체계
자체가 아니라, 제의의 불순하고 불성실한 실천을 겨냥한다.40) 호세
아 6장 6절(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 같은 예언자적 말
씀은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대조적임을 보여 주는 과장된 진술인데 도, 해석자는 흔히 너무 성급하게 그런 말씀을 절대화해 왔다. 이사 이상 성막을 운반할 필요가 없다.
39) 다른 예로는 시 40:6-8; 50:5-14; 51:16-19; 사 1:11-17; 렘 7:21-23; 암 5:21-26이 있다.
40) 반대 견해로는 예컨대 Watts, Isaiah 1–33. 이 구절들에 대한 예리한 분석은 다음을 보라. Ullucci, ChristianRejectionofAnimalSacrifice, 31–48; Giambrone, Bible and the Priesthood, 8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