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일한 10년 세월을 놓고 보니, 벌써 그 사이에 저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바쁜 아빠지만 행복한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제가 하는 이 일에 감사하며, 타 비즈니스에 비해 현저히 낮은 비용으로 시작한 JAN-PRO는 빠른 시일 내에 일을 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또, 청소 특성상 하루를 마치고 저녁시간에 아무 때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보니,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고 낮 시간을 이용해 가족의 미래를 더 다양하게 그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JAN-PRO는 가장 큰 청소 회사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Mark, Shinal, Angus, Tom 그리고 Chrissie 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많이 성장했고 업무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경험을 공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기꺼이 수락했습니다
청소 경험이 없어도, 저녁시간 잠깐 이용해 운동 삼아 하는 세컨잡으로도 너무 좋기에
주위에 추천해 왔고,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일을 늘리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만약 프랜차이즈 청소회사에 관심 있으시다면
JAN-PRO Mark(0413 600 899)와의 상담을 적극 추천합니다.
- David 권 Kwon -
"엄마 뭐 해?"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가 있는
방에 목소리를 높여 엄마를 부
르곤 했다. 헉헉댈 만도 한데
어린 우리의 목소리는 낭랑
했고 힘이 넘쳤다. 호기심이
늘 산재해 있고 언제라도 옆
집 선희가 부르면 뛰쳐나갈 기
세였다.
그 집은 아빠가 처음이자 마
지막으로 산 집으로, 집에 올
라가는 것은 산꼭대기를 올라
가는 것 같았다. 끝이 안 보이
는 골목을 다리 힘을 꼭 주고
엄마의
찬찬히 걸어 올라가면 거의 동 네의 제일 꼭대기에, 우리 집 이 나온다.
그리고 그 좁은 집에는 책을 둘 곳이 없었다. 안방과 건넌 방 사이에 부엌이 있고 거실은 없다. 그렇기에 할 게 없어 드
러누워 호기롭게 올려다본 장
롱 위엔 여느 때처럼 빽빽하게
책이 꽂혀있었다.
틈도 없이 꽂힐 법한 게, 장롱 위엔 기껏해야 책을 가로로 눕
히면 네 권 정도 들어갈까? 눕
힌 책이 옆으로, 옆으로... 열을
맞춰 몇 번이나 들어차 있다.
책장은 사치인 작은 안방이
었다. 방에는 기다랗고 색이
바랜 작은 이불 장롱 하나, 작
은 옷장 하나. 엄마가 혼수로
준비해 온 원목의 다갈색 삼
단 서랍장 한 칸. 그리고 그와
세트인 키가 낮은 화장대 하나 가 꼭 들어맞았다. 그 위엔 화
장에 관심 없는 엄마의 단출한
화장품이 올려졌다. 붉은 립스
틱 두 개, 허여멀건한 분 한 팩,
불투명한 로션 한 병, 투명한
스킨 한 병.
엄마는 그 낮은 화장대에서 책
을 많이, 많이 읽고 무언가를 써내려 나갔다.
쓰는 모습도 본적이 많지는 않 은 것이, 엄마는 늘 녹색지대
테이프를 틀며 쓸고 닦고, 밑
반찬을 하고 고등어를 바삭히 구워 저녁을 해내고, 바느질 삯을 찾아 악착같이 어깨뽕을
꿰매고, 내가 연필을 사각거리 며 깎아 숙제하는 모습을 매의 눈으로 감독했다. 예의 바쁜
주부의 삶이었다.
엄마는 22살 봄에 결혼해서 신혼여행에서 나를 가졌다.
그리고 23살 1월 말, 벌써 엄 마가 되었다.
엄마의
엄마의 공책 2화 치열한 엄마의 일상
by 다마스쿠스 / 브런치
콩나물 500원, 두부 500원, ㅇㅇ씨 용돈 2000원...
처음 본 엄마의 글자는 참 정
갈했다. 검은 볼펜으로 써 내 려간 단출한 가계부에 나와있 는 목록은 특별할 것 없는 주
부의 그것이다. 열살이 안된
나는, 그 공책을 사라락 넘겨
보다가 비슷한 내용에 있던 곳
에 다시 내려놓았다.
가계부는 한권이 아닌 몇 권이
함께 보관되어 있었는데, 엄마
는 몇년간 가계부를 쓰며 아빠
의 월급을 관리했던 것 같다.
엄마는 그렇게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집에서 살
림을 하는 주부였다. 아빠가
아침 일찍 나가 밤에 들어오기
에 우리는 학교를 다녀오면 늘
엄마와 같이 있었는데, 종종
바느질 삯을 벌기 위해서 어
깨뽕을 정신없이 바느질로 이
어붙혔던 기억이 있다. 집에서
도 작업하고, 미싱을 몇 대 가
지고 있는 옆동네에 일감주는
아줌마네 집으로 우리를 끼고 가서 바느질을 쉬지 않고 해냈
다. 그 곳에는 우리랑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달고 일하고
오는 아줌마들이 몇 분 계셨
다. 삼삼오오 모여서 부업을
하며 어떻게 해서 든 돈을 만
들어 내려는 엄마였고,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빠는 종 종 말씀하셨다.
"네 엄마는 너무 똑똑한데 아
빠 만나서..."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대를 가고 싶었지만 한번 본
수능 점수가 아쉬웠다. 재수
를 해서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홀로 식당을 하는 외할머니와
두 여동생 때문에 공부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
까, 우리가 하고 싶다는 공부
를 엄마는 할 수 있는 만큼 끝
까지 서포트 해주셨다. 엄마는 대학을 가지 않고 할머니 일을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의
도와드리다가 21살때 교회의 집사님의 시동생인 우리 아빠 와 중매로 결혼하게 되었다.
이처럼 내가 아는 것은 얼마 안되는 정보인데, 엄마는 공 부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집안 사정때문에 계속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얼른 시집가서 집에 입하나 덜어주는 것... 그리고 작은 가게 뒷방에서
엄마의 공책 3화
세련된 소설을 좋아하던 엄마였다
by 다마스쿠스 / 브런치
세상에서 처음 소설책을 들춰 본 날은 빈둥거리며
없고, 더군다나
오후 두세시 에는 아무 프로 그램도 하지 않는다. 동생은 태평하게 낮잠을 자고 있고, 집에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
았다. 고요하고 따뜻한 한낮 의 오후, 난 안방으로 들어가 누런 장판위에 벌렁 들어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다 이불장 위
켜켜이 쌓여있는 책들 중 하
나를 골라 들었다. 그리곤 손
이 가는 아이보리 표지의 책 을 사사락 폈다. 지금까지도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를 유독
좋아하고 책 특유의 냄새를 좋 아한다.
그리고 책장을 펼쳐 들었던 그 곳에서 난 내 생의 첫 레모 네이드를 만나게 된다.
책의 제목이 기억나지는 않지 만, 그 첫 장면은 생생하다.
주인공은 멋진 여성으로, 운 동을 한 후 시원한 레모네이드
를 마신다. 레모네이드의 달
고 신맛을 책은 묘사하고 있었 고, 나는 그 순간 레모네이드
가 무엇인지 모르는 9살 달동
네 소녀에서 세련되고 우아한
여성이 되어 레모네이드를 음
미하고 있는 것이다. 태어나 한번도 맛보지 못했지만 느낄 수 있었다.
맛있었다. 달고 시원하고 갈증 을 한번에 날려주는 맛이다.
엄마의 책은 이처럼 나를 상상 하게 만들었다. 엄마가 읽는
그 소설은 두권으로 나뉘어 있 었던 것 같은데, 결국엔 그 책
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나는 초등학생 주제에
어른 소설에 입문하여 즐겨 읽 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소설이 주는 상상의 세계에 푹 빠졌다. 책속에서
는 나는 달동네의 할 것 없는
아이가 아니라 누구든 될 수 있었고 그 주인공의 마음과 상 황 등을 절절하게 느끼며 시간 이 잘도 갔기 때문이었다.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엄마는 왜 그렇게도 좁은 집에 욱여 넣듯이 책을 쌓아 올렸 던 것일까. 넉넉치 않은 살림 에도 책을 늘 읽고 밑줄 긋고, 뭔가를 써 내려간 엄마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상상해본다.
내가 그 책을 읽을 당시가 엄 마가 일을 시작하실 때 쯤인지 전인지 몰라도 엄마는 서른 언 저리의 나이였다.
서른이라니! 내가 지금 서른 다섯인데, 엄마가 겪고 있던
서른은 어떤 모습인지 상상 해본다.
어린 나이에 준비없이 엄마가 되어 딸 둘을 이년 차이로 출 산하고, 남편이 주는 월급을 관리하며 가계부를
고소영과
오연수
엄마의 공책 4화 엄마는 내가 예쁘게 크길 바랐다 by
내 태어나 첫 이름은 "연수"
것이, 엄마는 두 여배우가 나
일 정도로 엄마는 당시 최고
의 청춘스타였던 오연수 배
우를 좋아하셨다. 그에 쌍벽
을 이루는 고소영 배우도 굉
장히 좋아하셨던 것도 같은
오는 신문 속 사진들을 물풀과
가위를 들고 스륵스륵 잘라 꼼
꼼히 스크랩 북에 붙이곤 하셨 다. 그리곤 자랑스레 어느 날 나를 불렀다.
"예쁘지? 엄마가 너 예쁘게 크 라고 예쁜 여배우 사진을 모이 서 스크랩하고 있어!" 이미 그 스크랩북은 꽤 진행되
있다. 엄마는 아
이처럼 순수하게 기뻐하며 나 의 예쁘게 큼을 기원하고 있었
다. 그런다고 예쁘게 되는 것
도 아닌데...
그 사진 속의 배우들은 상큼하 고 청순하고 예쁘고 날씬하다.
우리는 허름하지만 정갈하게
니스칠을 깔끔히 해놓은 내 방
에서 그 스크랩북을 펼쳐 구경 하고 있었다.
엄마의 또 다른 희망의 공책
이었던 고소영 오연수가 살
던 스크랩 북은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았지만 이건 확실하
다. 엄마는 두 딸인 나와 동생 이 예쁘고 밝게 크길 원하신 것. 희망적이고 낙천적인 엄 마는 당시 그 배우들처럼 20 대였다.
같은 20대였지만 엄마는 이미 딸 둘의 가정주부, 부업을 하 며 어찌어찌 딸들을 키우고 유
장사일지
엄마의 첫 장사는 인사동 길가 한복판에서 이루어졌다.
그곳은 아빠가 가게를 하는 곳
에서 걸어서 5-7분 거리에 있
었다. 뒷길을 이용하면 4분으 로 줄일 수도 있는 번잡한 거
리거리 사이를 지나가면 엄 마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었다.
아빠는 종각의 작은 한지가 게를 하셨고, 엄마는 아빠의 사촌이 하는 가게 앞에 매대 를 하셨다. 말이 매대 지, 그전 글에서 말했던 넓고 기다란 나
치원에 보내고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악착같은 모습이다.
신문 속의 그녀들은 엄마의 속
은 알지 못한 채 환하게 웃고 있다. 밝고 아름답고 싱그러 운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의 모습을, 엄마는 엄 마의 스크랩북에 모아놓으며
무 판때기에 잡다한 물건을 놓 고 현금장사는 하는 것이었다. 아침 9-10시부터 늦게는 저녁 10-11시까지 엄마는 쉬지 않 고 장사를 해댔다.
엄마의 널빤지에는 다양한 물 건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작 고 색이 진한 중국풍 소품이었 다. 작은 보석을 넣는 보석함, 자개, 반짇고리, 열쇠고리, 손 가락 두 마디만 한 소품들... 그
러다가 장사가 잘되자 엄마는 옥반지, 산호반지, 작은 보석
들을 가져와서 팔기도 하였다.
물건을 보는 눈이 있었던 엄마 였던지, 어느 날 안 자고 엄마 를 기다린 날이 있었는데, 검 은 가방 안의 꾸깃한 비닐봉지 안에서 무더기로 돈이 쏟아져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기뻐하며 돈을 세던 엄마의 입 에서 만, 십만, 백만, 천만이 나 온 날을 잊지 못한다. 길거리 에서 하루 소품 팔아 번 돈이 천만 원이라면 누가 믿을까.
엄마의 딸들인 우리가 그들처 럼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기를 바랬으리라 짐작해 본다. 우 리의 찬란한 20대를 그려보 며 말이다.
나는 내 자식의 미래를 생각 하며, 밝은 미래를 빌며 스크 랩 북을 만들어본 적이 있었
하지만 외국인의 발걸음이 막 닿기 시작한 인사동은 굉장히 활발한 경기로 현금 흐름이 원 활했고, 엄마는 그 덕에 돈을 긁어 모았다.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 어 엄마는 이제 시장에서 물건 을 사지 않고, 중국에 직접 가 보기 시작했다.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 김포 공항으로 허름하고 간단한 옷을 꿰어 입고, 검은 이민가 방 두 개를 질질 끌고, 머리를 잘 쓴 묶은 채 동동거리며 출 발했다.
그렇게 엄마나 떠나고 없던 첫 날, 나는 학교 다녀와서 엄마 가 처음 없었다.
기깔나고 번지르르하게 엄마
던가? 엄마처럼 간절하게 더 나은 모습, 멋진 모습을 내 아 들들에게 선물해 줄 각오가 되어 있은 적이 있었나? 부끄 럽지만 없다... 엄마는 악착같 고, 목표가 뚜렷했고, 멋진 것
가 청소를 싹 해놓고 간 노란 니스 칠한 방바닥에 누워 눈 물을 흘리며 "엄마가 없네.." 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 다. 아홉 살 동생은 유치원 종일반 이라 아직 집에 오지 않은 시 간. 다섯 시까지 오지 않는 동 생을
어마 무시한 크기의 이민가방 두 개를 달동네 집까지 아빠와 둘이 엉금엉금 끌며 외친다 "엄마 왔다!!!"
4811
모두 "솔-드아웃"
엄마의 공책 6화 "SOLD"라는 말을 엄마가게에서 배우다
by 다마스쿠스 / 브런치
엄마가 인사동 길거리에서 물 건을 늘어놓고 팔다가 삼성동
코엑스에 3일에 4000만 원짜 리 부스를 빌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5년 남짓이었다. 그동안 엄마는 남의 가게 앞 에서 하던 소품 장사대신, 가
구를 사기 시작했다.
그 즈음 '중국 고가구'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보는 눈이 뛰
어난 엄마는 중국과 국내 이
곳저곳에서 고가구를 사모아 팔기 시작하였는데, 어린 내 눈에는 전-혀 매력적이게 보 이지 않았다.
어느 날, 엄마는 우리가 사는 집에 부엌 식탁 하나를 가져 왔는데, 어두운 갈색의 투박 한 디자인의 직사각형의 식탁 과, 마찬가지로 사각의 불편 한, 쿠션도 하나 없는 식탁 의 자 6개를 들여놨다.
너무 불편해서 엄마 이건 왜
바꿨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엄마는 너무 바빠 얼굴 못 본
지 이미 한참이었다.
엄마의 장사가 대성하고 내
용돈이 오르고 가진 물건은
점점 더 많아졌지만 엄마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중학 교 내내 일대일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대신, 우리를 돌봐주고 어여
삐 여겨 오신 외할머니는 우
리 집에 매일 오시며 엄마대
신의 역할을 해주셨다.
엄마를 엄마처럼 어린 나이에
점점 장사가 잘 되어가는 엄
마의 소식은 신문이나 잡지에 서 종종 볼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고소영, 오연
수 배우의 인터뷰 내용을 오
렸었지만, 우리 할머니는 신
문에 나온 엄마의 사진과 이
야기를 부엌가위로 슥슥 오리
며 "느이 엄마 좀 봐라. 얼마
나 대단하냐. 어미 같은 거 불
쌍한데, 엄마한테 잘해라..."
엄마를 대단하다고 하면서 왜 엄마가 불쌍하다고 하는 걸 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 나이가 엄마와 같 이 30대 중반이 되자 어렴풋 이 느껴질 때도 있다. 엄마가 여자 혼자 몸으로 그 사업을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었을지 말이다.
어찌 됐던 엄마는 5년 안에 코 엑스에서 하는 가구 박람회에 참가하게 되는데, 그 부스를 설치하기 전날인가에 나를 데 리고 갔던 거 같다.
그리고 그날 보여주는 공간이 3일에 4천만 원짜리라고 자 랑스럽게 말했다. 2002년의 사천만 원.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 페어 에 도착한 나는 사실 깜짝 놀 랐다. 비었던 그 부스가 맞는 건가?
부스에는 정말 빽빽하게 가구 가 놓여있었는데,
낳으신 할머니는 젊으셔서 그
런지 아직 에너지가 넘치셨 고, 우리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관리해 주시고 늘 함께
있어 주셨다. 그런 할머니 덕
인지 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잘 못 느끼며 자라났다.
팔은 것 같다. 결과는 말 그대로 "솔도 아 웃". 4천만 원의 페어에서 거 의 2억이 가까운 매출을 달 성한 엄마의 의기양양한 뒷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속으 로 크게 박수를 쳤다. 대단하 네. 엄마 정말, 대단한 사람이 구나. 반질반질하게
나로서는 그 큰돈의 가치를 모르기에 허공에 대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단하네-라고 읊 조렸다. 엄마는 내게 페어기 간 동안 나와서 엄마 부스에 서 소품 파는 것을 용돈 줄 테 니 도우라고 했다.
3개국어를
장사를 시작한 지 1년여쯤 되
자 엄마는 외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이유은 즉슨, 중국에서 말이
안 통하기 때문에 현지인 가
이드와 늘 함께 다니며 물건
을 사곤 했는데, 그분은 한국
어와 중국어에 능통하지만 엄
마는 아예 알아듣지 못했기 때
기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가끔
은 사기(?)를 당하는 느낌을 지
울 수 없었다.
게다가 중국인들은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거래처를 매우 신
뢰하기 때문에, 중국어를 배
워놓으면 거래도 더욱 수월하
고 가격 흥정도 잘 될 것이라
는 게 엄마의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엄마는 틈날 때마다
중국어를 배우며 중국을 한 달
에 두세 번씩 왔다 갔다 했다.
장사를 하는 인사동에는 일
본 관광객이 많았으므로 엄
마는 역시 일본어도 같은 시
기에 배우며 장사를 준비해 나갔다.
이꾸라 델까(얼마인가요)라
는 말은 수십 년 후에도 내 머
릿속에도 남아 있을 정도로 엄
마는 열심히 공부했고, 우리
자매는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
았다. 어느 날 언어공부 노트
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꼼꼼
하게 정말 많은 양이 써져 있
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에 사
는 것도 아닌데 공부를 왜 하
는 건지..라고 생각했던 9살의 나였지만, 점차 엄마의 모습을 보며 공부의 재미와 가치를 알 게 되었다.
이처럼 엄마가 가르쳐준 것은 비단 언어 배우기 뿐만이 아니 었다.
무슨 일을 할 때 열과 성을 다
하는 모습, 장사치로서 물건 만 파는 것이 아닌 어떻게 하
면 고객과 더 소통하면서 장사
를 할지, 그리고 거래처를 뚫
고 신뢰를 쌓는 모습까지, 엄
마는 내게 늘 배움을 지향하는
여자로 남아있다.
그리고 결국 엄마는 칭화대학
교 대학원에 진학을 하여 2년
후 학위를 따게 된다.
대학원 조찬을 간다며 신나 하
던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
다. 그것은 엄마가 중국어 공
부를 시작한 지 5년 후의 일 이었다.
칭화 대학이 어떤 대학인지, 어디 있는지 잘 몰랐지만 엄
마가 공부의 결실로 어떻게 코
스를 마치고 학위를 취득했는
지, 나는 엄마가 너무나 자랑 스러웠다.
3개국어를 원하던 엄마는 우
리에게 영어를 무척이나 가르
치고 싶어 하셨고, 기회가 생
기자 우리 자매를 유학 보내시 며 꿈을 이뤘다.
그리고 나는 엄마에게 말해주
고 싶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떤 유학생처럼 영어를
그저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공부에 열중하기보다 쇼핑이 나 먹으러 다니면서 시간을 보
냈을 것이라고.
엄마 덕분에 나도 밤새도록 공
부하는 재미를 배웠노라, 공
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어릴 때
접한 것이 우리에게 정말 좋은 선례였다고 말이다.
엄마 엑셀도 할 줄 알아?
엄마의 공책 8화 어느샌가 컴퓨터를 배운 엄마였다
by 다마스쿠스 / 브런치
따닥, 따닥..
엄마는 느린 손으로 독수리 타 자로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어디서 노트북 하나를 구해오
더니 우리에게 몇 번 물어본 후, 혼자 더듬더듬, 연습을 하 더니 어느샌가 워드와 엑셀을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중국의 거래처에서 보 내온 물건 리스트를 엑셀로 받 아서 그것을 하나하나 보고, 한국말로 번역해서 고치는 작
업을 느리지만 꾸준하게 해 나 갔다.
끝도 없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작은 사진 때문에 무 슨 물건인 줄 모를 때는 줌을
써가며... 본인이 하나하나 검 열하고 가격을 체크하고, 도
매가와 소매가를 나누고 제
품명 오타를 찾아내며 시간 을 보냈다.
엄마는 가게를 이태원으로 옮 긴 후에는 9-10시 전후에 퇴근
을 하고 집에 와 작업을 더 하
는 일이 있었다.
하루는 안 힘든가 싶어서, "엄마, 안 힘들어?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왜 또 하는 거야?"
라고 물었더니 짱짱한 목소 리로 "내 일이고 내 물건인데 뭐가 힘드니? 하나도 안 힘들어, 재 밌어."
라며 빙글거리며 웃었다.
엄마는 에너지가 늘 넘쳤고, 눈빛이 초롱초롱했고, 의지가 대단한 사람이었다.
씩씩한 엄마는 눈썰미와 수완 이 좋아서 늘 새 제품 고민 중 이었다.
그리고 컬렉션 느낌으로 중국
에서 제작을 하거나, 한국에서 정교한 작업을 끝내기도 했다. 내가 엄마에게 배운 것은, 직 원을 써도 되는 일도 본인이 늘 해보는 것이었다. 엑셀 같
은 경우 더 젊은 직원이 하는 일인데, 엄마는 그것을 하나 하나 체크하고 늘 보고 싶어 했다.
본인이 사 오는 제품의 재고 도 궁금했고, 이제 언제 선박
대신 패 션마케팅은 어떠냐며 패션을 하시던 주변 지인을 만나게 해 주셨다. 옷을 잘 디자인하려면 고급을 입어봐야 한다고도 말 해주고 가구디자인 전공을 해 서 같이 일을 하자고도 하셨 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디자이너가 되었고 8 년이 지난 지금은 알 것 같다. 왜 엄마는 그런 말을 하셨는 지... 마케팅이 재밌던 엄마는 그 비법을 엄마의 사업에 특출 나게 적용하셨다.
시절 30억 만든 엄마의 마케팅
엄마의 공책 9화 디테일을 중요시하던 엄마였다
by 다마스쿠스 / 브런치
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 았다. 그 사람 자체가 브랜드 인 셈이다.
8년 전 결혼 한 달 전, 한국을 방문했다.
뉴욕에서 모든 짐을 싸들고 한
국에 들러 우리 부모님과 시간
을 보낸 후, 파라과이에 이민
을 가는 코스였다.
엄마는 그때 나에게 엄마가 가
진 모든 소중하고 비싼 물건을
다 주었는데, 남편에게는 "디
테일의 힘"이라는 책을 선물
해 주셨다.
엄마가 늘 즐겨 읽고 사업에 썼던 책이었다.
30억의 매출을 올렸던 엄마는
마케팅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
이셨던 것 같다. 무려 24년 전 이야기다.
첫 번째는 엄마의 "고객관리" 였다.
구매한 고객의 이름과 주소,
무엇을 구매했는지, 전화번
호, 이메일을 가진 엄마는 신
제품이 나올 때마다 고급스러
운 컬렉션이 나올 때마다 카탈
로그를 제작하여 고객의 집에
보내던가 직접 전화를 걸어 안
부를 물었다.
보통 나이대가 조금 있는 그분
들과 친분을 쌓기에 이르렀다.
엄마의 솔직하고 상냥한 성격
두 번째는 "방송협찬" 이었다.
소셜미디어가 없든 그 시설, 대중은 티브이 안에 배우가 바
르는 립스틱이 마음에 들면 방
송사 게시판에 문의하기까지
하며 알고 싶어 했다. "그 드
라마 그 장면에서 바른 그거 뭐냐고."
확실한 PR이었다. 800만 원이 호가하는 가구세트를 엄마는
드라마에 협찬했다. 고급스러
운 저택에 어울리는 그 세트를 찾던 고객들은 엄마의 브랜드
에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잡지와 신문에 홍
보"하기 였다.
엄마는 기자들과의 관계도 돈
독했다. 주 타겟층인 주부들이
보는 잡지에 제품을 홍보했고, 신문사에서도 직접 나와 엄마 를 인터뷰했다. 할머니는 엄
마가 나온 신문을 오려 보관 했다. 엄마는 이름을 검색하 면 기사가 나온 사람이 되었 다. 자꾸만 브랜드 인지력을 높여나가며 브랜드는 성장해 나갔다.
네 번째는 "매장과 쇼룸" 이 었다.
가구 특성상 사람들이 실제로 보고 만지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쇼룸을 그 당시 핫 했던 일산과 분당에 각각 내어 신도시로 이사를 온 고객들에 게 적극 어필했다.
형편이 넉넉하고 자녀를 위해 이사오던 신규 고객들은 고급
철저한
그리고 그런 엄마는 리서치
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대학을 졸업하자, 엄
마는 왠일로 마음을 크게 먹고
내 대학 졸업식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대학 졸업식만이 엄마
의 목표는 아니었다.
엄마는 리서치가 하고 싶었 다.
몇달 전부터 가고 싶었던 가구
점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 같았
고, 그곳들의 주소를 내게 보
내어 어디쯤 인지, 어떤 가게
인지 보고 오라고 한적도 있 었다.
졸업식 당시 나는 너무나 몸이
갑작스레 아파져서 거동도 못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몸이 너무 아파서 정신이 나가
는 것 같았고, 5월의 따스한 날
을 즐기지도 못한 채 졸업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 을 정
도로 병이 나버렸다.
그러나 엄마를 위해서라면...
나는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내어 엄마가 원하는 부띠크를 하나, 하나... 돌기 시작했다.
아픈 나를 당연히 걱정했지만, 엄마는 눈치를 보며 가구 구경 을 해 나갔다.
그리고, 엄마의 눈은 반짝이기 시작했다.
뉴욕에 없는 것이 어디있으
랴...
최고급 가구부터 빈티지 가구
까지, 총망라한 도시에서 엄마
는 꿈을 꾸듯 돌아다니며 하는
말이 있었다.
"너 그거아니... 엄마 중국에
하루걸러 출장 다닐 때 말이
야... 그때 사람들이 엄마 빨
간 신발 신은 발발이라 그런
거... 빨간 단화 신고서 안돌
아다닌 가구거리가 없었다..?
그때는 정말 신나서 물건 보러
다녔어... 하나두 피곤하질 않
았다구..."
눈은 그대로 가구에 두고 슬쩍 만져보며 엄마는 과거를 회상 했다.
"그래, 엄마? 엄마 대단하네!! 멋지다."
"그리구.. 엄마가 해주고 싶
은 말은 말이다. 리서치를 해 야 돼, 뭘 할때는 말이야... 디 자인도 뭐 다 머리에서 나오는
거다? 뭘 알아야 제품을 만들 지. 내 눈에 이쁜거는 남 눈에 도 이쁘다구."
엄마의 눈은 예리했고 아름 다운 가구를 보는 안목은 뛰 어났다.
막 33 -
엄마의 편지
엄마의 공책 11화 바빴던 엄마였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다
by 다마스쿠스 / 브런치
엄마는 점점 더 바빠졌다.
물건을 컨테이너에 꽉꽉 해오 고, 가구를 디자인하고, 바잉 을 하고 회사를 점검했다. 미 팅을 자주 했고, 대학원에 다 녔으며, 중국을 시도 때도 없 이 다녔다.
엄마는 장사를 위해 태어난 사 람처럼, 날아다닌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다채 로운 삶을 살아냈다.
나는 엄마를 많이 존경했고, 어려워하기도 했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서 8년 동
안 꼬박 가정주부였고, 한 번 도 직무유기를 한 적이 없었 다. 뭘 하든지 간에 잘 해냈다.
22살부터 31살 무렵까지 우 리는 외식을 잘하지 않고, 콜
라 한번 입에 대지 않고 집 밥
을 먹고 끓인 결명자와 보리차
를 마셨다. 젊은 나이였지만
자식을 어떻게 키울지 끊임없
이 고민했다.
아빠가 하루 12시간 일한 월 급으로, 엄마가 고개 숙여 바 느질해 부업을 한 돈으로 어 린이 연극 연간 이용권을 끊
어 매달 연극을 보여주었고, 집 앞 피아노 학원에서 체르 니와 베토벤을 쳤다. 여름이 면 미술 캠프, 한국 문화 캠프 에 보내서 재미있게 보내게 해 주었다.
내가 18살 성인이 될 때까지, 농담 한번 하지 않고 늘 엄마 같이 위엄과 사랑을 섞어 엄마 는 우리를 키워냈는데, 일까지 하고 사장님으로 이삼십 명의 직원을 거느리니 엄마는 정말 어려워졌다.
그러나 엄마는 엄마였다.
내가 글 읽을 나이가 되자 생 일 때 카드를 써서 안방 서랍
장 위에 올려놓았다. 내용은
기억 안 나지만 꽤 길고 사랑 이 담뿍 느껴졌다. 엄마는 아
무리 바빠도 어떤 미팅이라도 낮에는 꼭 내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가 거의, 나 피자헛 시 켜도 돼? 여도 늘 받았다. 한 번 도 안된다고 한 적이 없다. 엄마는 엄마다.
아무리 바빠도, 시간이 없어 도. 사랑이 느껴졌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엄마는 내게 생 일 카드를 써주며 사랑을 전했 고, 나는 엄마의 시간과 사랑 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 렴풋이 느꼈다. 엄마의 사랑의 언어는 "선물"이다.
우리의 교육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 너희는 대학에 가 라며, 어려운 시기에도 늘 유 학 학비를 마련했다.
이것을 어른이 되어 깨닫자 난 엄마를 더욱 이해하고 감사하 고, 깊이 통감하게 되었다.
엄마의 희생을, 어려움을, 그 리고 단단한 내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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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공책 12화 희망을 놓지 않는다
by 다마스쿠스 / 브런치
어느 덧 마흔이 훌쩍 넘은 엄
마였다. 2014년이었나... 모
든 것을 잃게 된 엄마는 나갈
가게가 없게 되었다. 3년만에 한국에 나갔는데, 내가 보았던
으리으리한 강남의 가게는 없
어지고 엄마는 설상가상 아무
가게도 없이 건물에서 나오게
된 것이다. 엄마는 빈 땅에 건
물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8년 간 건물 수익금을 받았다. 그
아이디어를 누가 줬는지 모르
지만 솔직히 원망스럽다. 건
물 임대라는 것이 쉽지만은 않
다는 것을 삼십대 중반인 지금
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은데...
엄마는 그 당시 강남의 건물주
가 되고 싶었고, 가진 전재산
을 털어 남의 건물을 지어주고
8년간 그곳에 머물렀다. 그 시 간동안 임대가 잘 되어서 건물
짓는 값 본전을 뺄 것이라 생 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
치 않고, 나올 때에는 아무것 도 가진 것이 없었다...
공실이 있을 수도, 수금이 안 될 수도. 생각보다 보수가 많 은 신축 건물일수도 있는 것인 데 말이다. 누구의 잘못도 아 니다. 어떤 때는 일이 생각같
이 안될 때가 있다. 엄마는 그
럴 때일수록 더욱 생활을 놓지
않기로 했다.
1억이 넘던 엄마의 꿈의 차, 열 심히 타고 다니던 흰색의 애마 또한 어려운 가운데 이별을 고 해야 했고, 집은 원룸으로 이 사해야 했지만... 십년 넘게 대 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던 엄마 는 씩씩하게 버스카드를 충전 하며 오랜만에 본 내게 희미하
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됐어. 하지만 엄만 포 기하지 않아."
엄마는 열정으로, 힘을 다해, 정말 앞만 보고 달려온 사업을
임시적으로 접으며 내게 말했
다. 다른 말을 딱히 없고 지금
은 가게가 없지만, 사업자는
아직 살아있으며, 다시 꼭 일 어설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엄마를 믿었다. 누구보다 굳 게 믿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먹고 살만큼 어렵지 않
게 다시 일어나게 해달라고.
금전적인 어려움이 나아지기 를 계속해서 빌고 또 빌었다.
내게 주어진 휴가는 단 일주일.
그동안 엄마의 집에 머무르며
본 모습은 놀랄 정도였다. 엄
마는 아침 7시부터 작은 식탁
에 앉아 책을 펼쳐 읽었다. 그 리고 인터넷으로 다음 가구 디 자인 영감을 얻기 위해 각 나 라의
는 이미지를 찾아 저장했다. 언제 다시 가게를 하게 될지 도 모르고, 가게도 없고. 돈도 잃었는데. 엄마는 리서치 하는 것에 필사 적으로 매달리며 다음 제품 디 자인을 하고 거래처에 이메일 을 보내고, 견적을 냈다.
이지 놀라웠다. 절망하고 우 울하고, 슬퍼할 수 있는 상황 이었지만 엄마는 이 시간을 재 충전의 시간으로, 충분한 리 서치와 휴식의 시간으로 보내 고 있었다. 게다가 가구와
제 작 서 비 스
다시 일어날 힘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도전 안 해본 사람은
실패조차 할 수 없기에 그만
큼 소원하고, 도전하고, 부딪
쳐보는 것은 값지다.
추운 겨울, 출근을 할 가게가
없어 버스 타고 남의 가게 일
을 봐주기로 한 엄마였지만 꿈을 잃지 않았다. 2016년 결 혼 직전 다시 찾은 엄마는 어
느 대형 아웃렛에 가게를 얻은
상태였다. 8층 가구 섹션에 자
리 잡은 매장은 전에 있던 가
게만큼의 크기였지만 사람이 없었다.
살짝 외진 곳에 있는 아웃렛의
위치 때문이었는지 손님은 적
었지만 엄마는 틈틈이 인터넷 블로그를 이용하여 물건을 알 음알음 팔아갔다.
고급 가구도 여전히 다루었지
만 이번에는 주 고객층을 중산 층으로 잡아, 더욱 대중적인 가구를 사서 되팔았다. 사람
이 하도 없길래 엄마, 손님이
안 오는데 어떻게 먹고 살아?
라고 물어보니 엄마는 신기하 게도 전화로 많이 판다고 이야 기했다.
엄마에게 [다시 일어날 힘]이 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에게는 이제 두 자녀 다 손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우 리는 이미 경제적으로도 완전
히 독립하여 일절 지원을 받지 않았다. 나는 2012년부터, 동 생은 2014년부터 전혀 도움 을 받지 않고 있다. 육체적, 정 신적으로 둘 다 독립한 우리는 엄마에게 늘 고마워한다.
엄마의 공책
엄마의 글씨는 바르고, 각이 져 있다. 꼭 엄마처럼.
엄마가 가게문을 열러 출근하
는 시간은 9시쯤. 쇼핑몰에 매
장이 있기 때문에, 그 시간에 나가신다고 한다.
엄마는 15일에 한번, 화요일, 단 하루 쉴 수 있다. 벌써 그렇
게 된 지가 3년도 넘었다.
나는 엄마가 이해가 안됐다.
"직원 쓰면 되지 왜 그렇게 일
을 많이 하고 건강을 상하게 하는 거야?"
그러면 엄마는 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냥 "그래도
엄마가 해야지..." 라며 웃어
넘긴다. 몇 번이나 내가 말했
는데도... “니가 뭔데 상관이
냐”고 할 만도 한데, 이런 말을
아예 하지 않는다... 설명을 많
이 하지 않는 엄마다.
자라오면서 지금까지, 엄마는
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
지 않는다. 설명도 구구절절
하는 스타일도 전혀 아니다.
그냥, 몸으로 보여줄 뿐이다.
철저한 성격의 엄마는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는 철칙을 목숨처럼 여기며 살
아왔다. 모든 일을 처리할 때
바로 처리하기 때문에 남은 일
이 없다.
오랜 시간 경제적으로 힘들었
던 엄마지만, 요즘 다시 책을
읽고 더욱 많이 책 읽기에 빠
져들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
고 엄마는 언젠가 자신의 이야
기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오랜 생각 끝에
도달한 새로운 꿈이었다.
책을 구매하는 횟수도 많이 늘
은 반면, 독서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매일 일찍 일어나는
엄마는 일이 끝나는 밤 8-9시
나 아침 일찍 출근 전에 도서
관에 들러 책을 빌린다.
유익한 자기 계발 책을 무엇보
다 좋아하는 엄마는 그 책들을
빌리거나 사면 나에게 종종 추
천을 해주곤 했는데, 이번에
동생을 통해 파라과이까지 책
을 보내준 엄마기도 하다.
자녀교육 책을 보내준 엄마의
심정은, 아마도 내가 아들들을
잘 키워내기를 무엇보다 바라 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것만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딸인 내가 35살이 되
었어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엄마의 공책을 상상해 본다.
지금은 어떤 공책을 가지고 계
실까? 벌써 한국에 못 들어간 지가 8년째. 엄마의 책상을 다 시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엄마의 책상은 엄마가 일하 는 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작은 아파트에도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노랗고 분홍의 포스 트잇이 붙여져 있을 것이고, 아마 중요한 내용,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정겨운 정자체로 적혀 있을 테다.
엄마의 책상에는 책이 놓여 있 을 것이고, 그 옆엔 엄마가 좋
아하는 믹스커피가 있을 것이
다... 작은 노트북에는 일하는 모든 것들이 담겨있고, 그리 고 그 곁엔 지금 쓰는 공책이 한권 있을 것이다. 그 공책에 있는 내용은 분명, 큰 가치가 있는 것일 것이다.
원 프로와 나누는 골프이야기
높은 스윙과 낮은 스윙
by 티칭 프로 원성욱 (0402 598 961)
매일이 쓰여있는
사람은 각각 다른 얼굴과 다른 체형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체형에도 유연함은
다 다릅니다. 각자 자신의 몸에 맞는 옷
을 찾아 입듯이 스윙도 자신의 몸에 맞
는 스윙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
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누구는 손목을 일찍 꺾으라고 하고, 누구
는 꺾지말고 옆으로 길게 빼라고 하고,
누구는 백스윙의 톱이 높아야 잘 맞는다
고 하고 누구는 팔꿈치를 벌리라고 합니
다. 모든 경우가 다 공이 잘 맞는 방법이
라고 하는데,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가
엉망이 되기도 하고, 아예 처음부터 공
이 안 맞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방법을 정확하게 따라하지도 못했을지
도 모릅니다.
몸이 유연한 사람들은 어떤 동작을 따라
해도 별 어려움 없이 할 수 있습니다. 하
지만 유연한 사람에게도 알맞는 동작이 있기 마련이죠. 많은 성인들의 몸은 유연 하지 못합니다. 꾸준히 스트레칭을 해 온 사람이라고 해도, 스윙 동작은 유연함만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 문이죠.
나의 몸이 유난히 뻣뻣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몸을 꼬아주는 느낌을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뻣뻣한 골퍼는 상체와 하체가 시간 차이를 두며 회전하 여 꼬임을 만드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두 발과
나이 많아서 갈 데도 없잖아?
by 슝 shoong / 브런치
웅장한 자연을 품은 곳,
도야마
by트래비 매거진 / 브런치
도야마현은 남북으로 뻗어 있는 일본열도의 중심, 혼슈(本州, 일본에서 가장 큰 섬)의 중앙 북부에 위치한다. 3면이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험준한 고산이 너른 평야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도야마를 직역하면 ‘높은 산’을 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도야마현을 찾은 여행자라면 해발 3,000m에 달하는 다테야마 연봉의 웅장한 자태에 눈길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다테야마는 후지산, 하쿠산과 함께 일본의 3
대 영산 중 하나로 예부터 숭배의 대상으로 여
겨 온 명산 중 명산이다. ‘다테야마, 구로베, 알 펜루트’는 3,000m급의 산들을 케이블카, 로프
웨이, 버스 등 다양한 이동수단으로 횡단하는, 국제적인 산악 관광 루트다. 봄이면 높이 20m
에 달하는 ‘눈의 대계곡’을 탐험할 수 있고 여
름에는 신비로운 고산식물과 청량한 풍경, 가 을에는 눈 두는 모든 곳이 형형색색으로 물든
천혜의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일본 제일의 V자 협곡, ‘구로베 협곡’과 그 협곡 위를 달리는 ‘도롯코 열차’도 있다. 이 모든 도 야마의 아름다움은 결국 ‘웅장함’으로 요약된
다. 일본에서 가장 깊고 진한, 그리고 높디높은 자연을 품은 현이기 때문이다.
도야마는 도쿄, 오사카, 나고야 일본 3대 도시 권에서 거의 같은 거리에 위치해 접근성도 상
당히 좋은 편이다. 일본에서 가장 웅장한 자연
을 탐험하고 싶다면, 도야마가 정답이다.
신이 만든 촌락 아이노쿠라 갓쇼즈쿠리
도시는 사람이 만들고 촌락은 신이 만든다. 도
야마현 서부 난토시의 고카야마 깊은 산기슭 에 자리한 작은 마을, ‘아이노쿠라 갓쇼즈쿠리 (Ainokura Gassho-Zukuri Village)’를 바라보 며 생각했다.
‘갓쇼즈쿠리(合掌造)’는 ‘합장가옥’을 뜻하고 ‘아이노쿠라(相倉)’는 20여 채의 합장가옥을 품은 마을의 이름이다. 합장가옥은 뾰족한 지 붕 모양이 마치 합장한 손을 닮았다고 하여 붙
은 이름인데, 주로 일본의 대설지역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가옥구조다. 지붕은 금속과 못
을 사용하지 않고 억새와 주변에서 나는 나무
를 단단히 엮어 만든다. 정삼각형에 가까운 가
파른 지붕의 경사도가 특별하다. 눈이 많이 내
렸을 때 눈의 하중 때문에 지붕이 무너지는 것
을 막고 억새로 된 지붕에 물이 스며 젖는 것
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혹독한 자연환경을 인 간의 지혜로 유연히 대처한 것이다.
두께가 70cm에 달하는 억새 지붕은 대략
2~30년마다 한 번씩 교체한다. 집을 짓고 지
붕을 이는 모든 과정에는 마을 사람들이 품앗
이로 동참한다고 한다. 재밌는 점은 각각 가옥
마다 ‘유스케, 소시치, 산고로’처럼 사람의 이
름을 붙여 부른다는 점이다. 깊은 산기슭, 매해
혹독한 겨울을 나는 외딴 마을에서는 자연도, 사람도, 집도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삶을 영위
하는 친구인 셈이다.
자연과 동화되어 환상적인 풍경을 이룬 합장 마을은
있는 가옥도 있다.
마을 곳곳에는 ‘아이노쿠라지누시 신사 (Ainokurajinushi Shrine)’, 사찰인 소넨지 (Sonenji) 등 종교시설도 자리한다. 마을 주차 장 뒤편으로 오르면 하이킹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15분 정도 천천히 코스를 거닐다 보면 마을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포인트를 만나 볼 수 있다. 산을 너무 깊이 들어가면 곰을 만 날 수도 있다. 높은 산과 산을 닮은 가옥. 그 가
옥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이 돌보는 가옥 과 산. 순수한 관계가 만든 일본의 어느 동화 같은 마을이다.
Ainokura Gassho-Zukuri Village
주소: Ainokura, Nanto, Toyama 939-1915, Japan
운영시간: 매일 08:30~17:00
전화: +81 763 66 2123
일본의 북알프스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
일본에는 ‘알프스’라고 불리는 3개의 산맥이 있다. 히다산맥(飛山脈)과 기소산맥(木山脈)
그리고 아카이시산맥(赤石山脈). 19세기에
이곳을 조사하던 영국의 광산기사, ‘윌리엄 가
울런드’가 험준한 산맥과 경치가 마치 유럽의
알프스를 닮았다 하여 붙인 별명이다. 사실 그
가 처음 명명한 일본의 알프스는 오직 ‘히다산 맥’뿐이었다고 한다.
히다산맥은 ‘북알프스’라고 불리는데 3,000m
고봉이 20여 개가 분포되어 있고, 다채로운 트
레킹 루트가 있어 전 세계 산악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지역이다. 그중 단 한 곳의 산악
관광 코스를 꼽아야 한다면 역시 다테야마를
지나는 ‘다테야마 구로베 알펜루트(Tateyama
Kurobe Alpine Route)’ 산악 관광 코스가 대 표적이다. 총 길이가 무려 37.2km에 달한다. 워낙 고산지역이라 늦은 봄까지 새하얀 설원
나가노현 오기자와역 → 트롤리버스 → 구로 베댐 → 케이블카 및 로프웨이 → 다이칸보 → 무로도 → 고원버스 → 비죠다이라 → 도야마 현 다테야마역
일본 제일의 댐 구로베댐
구로베댐(Kurobe Dam)은 일본에서 가장 크 고 높은 댐이다. 간사이 전력이 구로베강 상류 에 댐을 건설하며 자재 운반용 터널과 기반 시 설을 이곳에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알펜 루트의 일부가 된 셈이다. 나가노현 오기자와 역에서 구로베댐까지 운행하는 트롤리버스가 과거 자재 운반용 터널을 오고 가며 여행자를 실어 나른다. 구로베댐의 남쪽으로는 한없이 잔잔한 호수
가, 북쪽으로는 깊은 협곡 사이로 거칠게 물
이 방류된다. 해가 좋은 날에는 협곡 가득 무
지개가 가득 핀다. 해발 1,479m에 위치한 구
로베댐의 높이는 무려 186m, 저수량은 대략 2
억톤에 달한다. 댐 전망대에 올라서면 웅장하
고 폭발적인 방수 모습과 댐 준공으로 만들어
진 구로베 호수의 잔잔함을 동시에 즐길 수 있
다. 구로베 호수에서는 유람선을 타고 다테야
마와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댐의 상부
는 폭이 8.1m로 상당히 넓고, 492m를 걸어 이 동할 수 있다.
구로베 댐
주소: Ashikuraji, Tateyama, Nakaniikawa District, Toyama 930-1406, Japan
알펜루트 최고의 전망대 다이칸보
다이칸보(Daikanbo)는 해발 2,316m에 자리 한 전망대다. 옥상 전망대, 테라스 전망대에
서 구로베 호수와 알펜루트의 경관을 만끽
할 수 있다. 구로베댐에서 다이칸보까지는 약 1.7km의 로프웨이(공중 트램)를 타고 이동하 면 된다. 로프웨이가 운행되는 동안 중간에 어
떠한 기둥도 없어서 이동 내내 파노라마로 전
경을 구경할 수 있다. 대략 7분 정도 소요되고, 고도는 500m 정도를 오른다.
다이칸보
주소: Ashikuraji, Tateyama, Nakaniikawa District, Toyama 930-1406, Japan
하늘 위 천국
무로도
무로도(Murodo)는 다테야마의 정상 중 하나
인 ‘오야마’를 비롯해 여러 산봉우리가 분지
형태로 둘러싸고 있는 고원이다. 구로베에서
다테야마에 이르는 알펜루트 전 구간 중 가장 높은 2,500m 지점. 무로도는 길이 워낙 잘 조
성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짧은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무로도에 도착해 10분 정도 걸으면 화구호
인 ‘미쿠리가이케’에 도착할 수 있다. 둘레 약
630m, 수심 약 15m의 거대한 화구호 ‘미쿠리
가이케’는 영롱한 푸른색을 띠고 있다. 보통 7
월부터 10월 사이에는 눈과 얼음이 없어, 거울
처럼 선명한 반영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다.
그 옆 언덕 너머에 있는 온천지대에서는 이따
금 유황 냄새가 밀려온다. 어느 곳에서는 연기
가 펄펄 뿜어져 나오기도 하고, 어떤 곳은 산
화철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붉은색을 띤다. 무
로도의 겨울은 엄청난 적설량을 자랑한다. 그
래서 겨울에는 입산이 통제되고, 눈이 슬슬 녹
기 시작하는 봄부터 입산을 허용한다. 길목 옆
으로 엄청난 눈이 쌓여 마치 눈으로 만든 거대
벽을 지나가는 듯한 풍경, 다테야마의 ‘눈의 대
계곡’은 봄의 무로도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설
벽의 높이가 무려 18m에 달하는데, 이토록 높
은 설벽은 전 세계에서 오직 무로도에서만 만
나 볼 수 있다.
무로도에서 해발 977m에 자리한 비죠다
이라까지는 고원버스로 이동할 수 있다. 약
1,500m의 표고차를 구불구불 내려간다. 비
죠다이라에는 커다한 삼나무 2그루가 나란히
자리한다. 이곳에서 표지판에 적혀 있는 노래
를 3번 읊으며 빌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 설이 있다.
무로도
주소: Ashikuraji, Tateyama, Nakaniikawa District, Toyama 930-1406, Japan
협곡을 가르는 열차 구로베 협곡 도롯코 열차
구로베 협곡은 일본에서 가장 크고 깊은 V 자 대협곡이다. 북알프스에서 발원하여 길이
86km, 해발 3,000m를 흐르는 구로베강의 상
류 유역이기도 한데, 풍경이 워낙 아름다워서
일본 3대 계곡, 일본의 비경 100선으로 꼽히기 도 했다.
이곳은 강우량이 많고 협곡이 워낙 험준해서
연중 하천에 물살이 거칠게 흐르는 지형이다.
그래서 수력발전을 통한 전력원 개발에 적합 한 곳으로 꼽혀 1923년부터 발전소가 이곳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때 건설 자재 운반용 철
도로서 ‘도롯코 열차’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후 산업이 점점 쇠퇴하던 1953년, 도롯코 열
차는 여객 운송용으로 이행되었고 현재는 구
로베 협곡을 찾는 여행자들을 실어 나르는 최
고의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겨울철
에는 눈이 워낙 많이 내려 운행하지 않고 보
통 4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우나즈키역에 서 게야키다이라까지 약 20.1km 구간을 달린
다. 현재는 구간이 부분 부분이 공사 중이라 일
부 구간만 왕복한다.
열차 객실 타입은 2가지인데, 창문이 아예 없 는 오픈형 열차와 창문이 달린 릴렉스 열차가 있다. 크고 작은 계곡이 이룬 시원한 절경이 눈 앞을 스친다. 옥빛의 우나즈키 호수와 붉은 아
치형의 신야마비코 다리, 야생 원숭이를 위한
다리 등 볼거리가 가득한 여정이다.
쿠로베협곡 토롯코 열차
주소: Unazukionsen, Kurobe, Toyama 9380282, Japan
산을 품은 바다 도야마항 전망대 & 이와세하마 해변
이와세하마 해변(Iwasehama Beach)은 도야 마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다. 도야마역 북쪽 출구에서 트램(포틀램)을 타고 30분 정도 면 이와세하마 해변에 도착할 수 있다. 파도치 는 바다 너머로 다테야마 산맥의 장엄한 위용 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높은 산과 넓은 바다, 장관이다. 이와세하마 해 변 주변으로는 도야마시의 해상 관문 역할을 했던 ‘도야마항’과 해상무역으로 번창했던 역 사 거리, ‘히가시이와세마치’가 자리한다.
도야마항을 한눈에 내려다보려면 20m 정도 높이의 도야마항 전망대가 제격이다. 신사에 있는 탑을 모티브로 디자인되었으며 360도로 뚫려 있어 이와세하마 해변을 파노라마로 바 라볼 수 있다.
전망대 안쪽에는 어업에 사용되는 그물과 부 표 등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중앙에 자 리한다.
Toyama Port Observation Deck
주소: 富山市東岩町, Kaigandori, Toyama 931-8358, Japan
운영시간: 매일 09:00~16:30
전화: +81 76 437 7131
Iwasehama Beach
Iwasehama Beach, 이와세코시마치 도야마 시 도야마현 931-8378 일본
글·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일본정부관광국, 도야마현, 이시카와현, 후쿠이현, 니가타현
이 나
평균적으로 하루에 6시간 동안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Key Points
• 딜로이트 보고서, 호주인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소비 전년 대비 10% 가량 감소
• 가구당 월평균 지출액은 전년 대비 10% 증가한 63달러
• 호주인 대부분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길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 떤 형태로든 미디어 가장 먼저 소비
여러분은 매일 몇 시간이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고 계십니까?
최근 발표된 딜로이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인들은 매일 6시간 이상 디지털 엔터테인먼트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딜로이트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소비자 인사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호주인은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길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떤 형태로든 미디어를 가장 먼저 소비하는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생활비 압박에도 불구하고 호주인들은 요금이 인상된 스트리 밍 서비스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었습니다.
qldkoreanlife.com.au qldkoreanlife
하지만 호주인의 전체적인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소비는 2023년에 비해 10%
가량 감소했습니다. 특히 16세에서 24세 사이 젊은 층에서 소비 시간이 약 4분 의 1 가량 줄었습니다.
한편 16세 이상 호주인 4명 중 3명은 일어나자마자 미디어를 소비하고 있으며, 5명 중 4명은 잠들기 직전에 미디어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딜로이트 수석 파트너인 피터 코벳은 “하루 중 특정 시점에 미디어 소비가 정점 에 도달한다는 생각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며 “2024년에 스트리밍 서비스가
전통적인 무료 TV 방송의 인기를 앞지르고 있으며, 하루 중 다양한 시간대에 다 양한 포맷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싸움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호주인들은 평균적으로 매주 스트리밍 플랫폼을 시청하는 데 8시간 20분, 무료 TV 방송을 시청하는 데 8시간 20분, 유튜브와 같은 무료 비디오 스트리밍 플랫
폼에서 평균 3시간 40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평균 7시간은 음악과 라디오를 듣고 있으며, 소셜 미디어에서 6시간 20분, 비디오 게임을 하며 3시간을 소비했습니다.
호주인들이 작년에 비해서 올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미디어는 팟캐스트와 오
디오북이었습니다. 지난해 1시간 50분을 기록했던 팟캐스트와 오디오북 소비
시간은 올해 2시간 15분으로 늘었고요, 뉴스와 잡지를 보는데 사용한 시간은 지
난해와 올해 모두 2시간 50분을 기록했습니다.
조사 결과 호주인들은 미디어에서 다양한 표현을 원하고 있었는데요, 특히 16세 에서 24세 사이 젊은이 중 64%는 소비하는 미디어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적극적 으로 찾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전반적으로 호주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페이스북이
었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뒤를 이었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유튜브와 틱 톡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연방 정부가 16세 미만 어린이에 대한 소셜 미디어 접근을 금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요. 호주인의 약 90%는 어린이의 소셜 미디어 접근을 더 많이 제한해 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16세 미만의 계정 소유 자체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응답자의 56% 만이 찬성 입장을 밝혔으며, 특히 16세에서 24세 사이 청년 가운데는 36%만이 찬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한 응답자의 44%는 플랫폼이 소셜 미디어 사용 극대화를 위해서 데이터, 개인 화, 알고리즘을 사용하는 방식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데 찬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출처 : SBS뉴스
말해봐
by 피어라 / 브런치
인간은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라고 별 수 있겠 는가. 내 기분만 나빠질 수 있
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확
20년 전 연인의
이름을 잊어버리다
by
수 있는 것을 굳이 찍어보고 얼 굴 찌푸린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여보, 내 장점 세 가지 말해 봐."
역시나 밥을 잘 먹어, 같은 뻘 소리를 몇 번하고 날카로운 원 투 펀치가 이어졌다. 다시.
"건강하지. 튼튼하고."
어, 그렇지. 나도 알아. 밥도 잘 먹고, 술도 잘 먹고. 그래. 장점 맞네. 그리고?
"애들한테 좋은 엄마지. 친구 같은."
어머, 당신 진짜 그렇게 생각 해? 난 애들한테 못해준 게 많
은 나쁜 엄마라고 항상 자책하
며 사는데. 감동이다.
"동생들한테 좋은 언니고 누
나지. 동생들이 찾아오는."
여기서 울 뻔했다.
그렇게 보였구나. ......동생들이
자주 와서 불편해 할 줄 알았는
는 버린 메일계정이라서 생각
도 못하고 그냥 살았다. 딱히
추억하거나 기억하려고 한 의 도는 아니었다. 편지는 잊혀졌 고, 나는 남편 손을 잡고 같이 늙어갔다.
그러다 어느 날,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었던 어느 날, 정리
나 해둘까 싶어 오래 전 메일계
정에 접속해보았고, 광고와 스
팸이 쌓여있는 메일함 제일 처
음부분에, 옛연인들과 주고받
았던 편지를 찾았다. 전체 선택
해서 삭제할 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클릭해서 몇 개 읽었다.
종오 편지였다면 욕하고 찢어
발겨도 시원찮을 편지도 있었
고, 내 젊은 날의 흑역사가 보
여서 파묻어버리고 싶은 편지
도 있었다. 조금 그립고, 살짝
웃기고, 많이 민망했다. 메일
답장인 경우에는 내가 보낸 편
지도 같이 확인할 수 있어서 더
그랬다. 그러면서 그때 얼마나
절실했던가도 떠오르고, 헤어 졌을 때의 (주로 내가 차였다.)
아픔도 아릿하게 기억났다.
문득 예전 내 모습을, 그 시절 내 감성을 남겨두고 싶다는 생 각이 들었다. 아예 보관함을 만
데, 그렇게 생각해줘서 정말 고 마워 여보.
길가에 굴러다니는 개똥일줄 알았는데 된장이었다.
그것도 명인이 담가 3대째 숙 성한 최고의 된장.
엉뚱한 소리 들을 각오하고있 었는데, 예상외로 제대로 내 장 점을 말해주어서, 게다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남편이 찾아주어서 놀랐다.
남편에게서 멋진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내가 소중한 사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왠지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가 뿌듯하고 자랑스러 웠다.
결혼 후 20년 가까이 지나는 동 안 진심으로 서로에게 고마움 을 표현하거나 칭찬하는 말을 한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장점으로 애정을 표현하기보 다 단점으로 서로를 찔러대
들어-차마 이름 붙이기 민망해 숫자로만 붙여서-메일들을 저 장해 두었다. 그게 몇 년 전인 지 기억도 안 난다.
다락방에 먼지 쌓인 짐을 발
견하고 치워둔 것 처럼, 그렇
게 저장한 후 당연히 잊어버리 고 살았다. 그런데 며칠 전, 어
떤 계기로 뜬금없이 그 옛날 연 인이 떠올랐다. 어떻게 살고 있
으려나, 궁금한 마음이 들었는
데, 동시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만화였다면 내 머리
위로 커다란 물음표가 떠올랐 을 것 같다.
그 사람의, 이름이, 생각 나지 않았다. 누구였지? 뭐였지? 갑
자기 잃어버린 이름을 떠올리
고 싶어져서 한참을 고민했다.
메일을 정리할 때만 해도 기억
하고 있었을 이름인데, 내 안
에서 풍화되어 사라진 걸 확인
하니 마음이 애매하게 흔들렸
다. 함께 나눈 대화도, 얼굴과
잡은 손의 촉감도 기억할 수 있
는데 어떻게 이름이 전혀 떠오
르지 않는지. 솔직하게, 서글 펐다. 애절했던 그 시절의 내
는 편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런 고슴도치 부부의 날들을 지나고 이제는 둘 다 돌 아와 거울 앞에 섰다.
함께 늙어가는 동지, 같이 술 마시는 친구, 공동으로 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부모가 되었다.
20년 남짓한 세월을 지내고 서 로를 사랑하게 하는 창조주의 섭리에(!!!) 감사(???)하는 지경 에 이르렀다.
그러니 엎드려 절을 받더라도 가끔 이렇게 확인해봐야겠다.
내 정신건강과 부부사이, 나아 가 가족의 화목과 대한민국의 국위선양, 더불어 세계평화에 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게 분명 하다.
다음에는 예쁜 데 세 군데라거 나, 사랑하는 이유 세 가지, 뭐 이런 걸 물어봐야 하나, 아주 잠깐 고민했다.
아니다, 선은 넘으라고 있는 게 아니라 지키라고 있는거다. 오 케이. 여기까지만 하자.
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너의 이름'은 결국 '나의 시절'이었 으니까.
내 안에서 이름을 기억해내고 싶은 마음과 뭐하러 찾아보냐 는 마음이 들쑥날쑥했다. '애 틋하고 소중했던 이름이니 기 억은 하자'는 마음과 '아이고 의미없다'는 마음. 작은 갈등 끝에 '찾아서 뭐하냐는 마음' 이 나를 설득했다. 이름을 잊었다고 누군가를 사 랑하고 사랑받으며 지냈던 젊 은 날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 시절을 지나 쌓아온 지금의 내가 흔들리는 것도 아니다. 살 짝, 아주 살짝은 안타깝고 조금 은 홀가분하다. 지나간 시간에
Roma Street Parkland Tour
가이드와 함께하는 로마 스트리트 파크랜드 투어
일시 : 2024년 11월 20일(수) 10:00AM - 11:30AM
장소 : Roma Street Parkland (1 Parkland Boulevard, Brisbane City QLD 4000)
행사 진행시간 : 1시간 30분 소요
경험이 풍부하고 지식이 풍부한 자원봉사 가이드가 안내하는
로마 스트리트 파크랜드(Roma Street Parkland) 투어에 초대합니다.
2001년 4월 6일에 공식 오픈한 로마 스트리트 파크랜드를 함께 거닐며 가이드가 공원의 매력적인 진화와 디자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해 드립니다.
각 구역의 공원, 식물, 야생동물, 숨겨진 보물의 역사에 대한 하이라이트 스폿을 소개하며, 다양한 사진 촬영 기회도 제공됩니다!
이 투어에는 열대우림(Rainforest) 지역과 스펙터클 가든(Spectacle Garden)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스펙터클 가든에서는 반려견이 출입할 수 없음을 유의하세요).
예약은 아래 QR코드를 스캔하세요.
가로 열쇠
1.아래팔
3.국경일. 10월9일
6.배 위로 들어 올려 옆으로 넘어뜨리는 씨름기술
8.대한민국의 국기
10.백 년을 단위로 하는 기간
11.예전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농작물의 종자
12.임금의 자리를 이을 임금의 아들
14.일반 국민의 생활 및 생계
15.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산
17.낙숫물이 얼어붙어 공중에 매달려 있는 얼음
18.산 둘레의 중턱
19.살이 붙어 있는 정도나 부피
세로 열쇠
2.설렁탕을 담을 때 쓰는 오지그릇
4.남의 물건을 잽싸게 채어 달아나는 짓
5.뒤쪽에서 본 몸매나 모양
7.기계, 기구, 자재
9.죽어서 극락에 다시 태어남
10.조선 제4대 왕
13.낙랑에 있었다고 하는 전설적인 북
14.나무가 없는 산
15.얼굴 피부가 노화하여 생긴 잔줄
스도쿠 SUDDOKU
16.산나물 낱말퍼즐
윤명훈 목사
골드코스트 비전장로교회
아브람의 장례 / 창세기15:1-6
이민자들에게 장례는 여러가지 고민을 줍니다.
한국에서의 문상이나 장례절차를 그대로 할 수
도 없고, 특히나 고향땅에서 묻히고 싶다는 바램
도 있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민자 아브라함은
타향땅에 묻혔습니다.
창세기 25장에는 아브라함의 죽음과 장례기사
가 등장합니다. 그의 향년은175세였습니다.
참 긴 세월이며 모진 세월이었습니다. 망막했으
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고
난 후의 100년 동안의 삶을 담은 창세기12~25
장은,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
는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모든 구도자들에게
빛을 주는 성경입니다.
특히 그의 장례식 기사는 저에게 아름답고 따뜻 하게 다가옵니다.
아버지의 아브라함의 장례식은 이삭과 이스마
엘, 이 두 아들에 의해 주관되었습니다.
이스마엘의 이름을 여기서 다시 만나는 것은 뜻 밖입니다. 그는 이미 어머니 하갈과 함께 광야에 버려진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빈소한번 보고
가는 손님으로 온 것이 아니라, 동생과 함께 아버
지를 잘 모십니다.
이것은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에게 준 사랑은, 언약의 상 속을 떠나서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깊이 이스마 엘에게 남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장자권을 주장해서 아버지 를 자신이 터 잡은 땅에 모셔야 된다고 주장하 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이삭의 친모 사라와 같이 막벨라 굴에 안장합니다.
사라는 아마도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에게 일생 을 두고 미움을 받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칫 자신의 가문의 역 사에 쓴 뿌리로 남게 될지도 모르는 아픔을 넘기 고 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인생의 전부였던 하나님과 의 언약에서, 이스마엘은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 를 인정하는 겁니다.
아마 아브라함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이스마엘 이 너무도 고마우며, 묵묵히 “장하다 내 첫 아 들!”이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숲속에서 만난
비행기 Lamington National Park
이강진 자유기고가
골드코스트(Gold Coast)로 이사했다.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는 한 평생 살
면서 이사를 몇 번 정도 할까.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
다. 나의 경우만 보아도 셀 수
없이 삶의 터전을 옮겨 다녔
다. 심지어는 호주까지 와서
국적까지 바꾸지 않았던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역마살이
끼었다는 소리를 수없이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골드코스트는 어느 정도 익숙
한 도시다. 호주에 정착한 이
후 제법 많이 찾았다. 브리즈
번(Brisbane)에서 월드 엑스
포가 열렸던 1988년, 시드니
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들렸
던 것이 첫 방문이다.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눈에
비친 끝없는 해변과 시월드 (Sea World)에서 보았던 각
가지 쇼는 나의 뇌리에 아직
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자그
마한 캐러밴에 의지해 호주를
여행할 때도 기착지로서 좋은
장소이기에 골드코스트 야영
장에서 머무른 적도 서너 번
된다. 따라서 골드코스트는
친숙하다.
퇴직한 삶이다. 골드코스트
가 마지막 삶의 터전이 될 확
률이 높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은 점칠 수 없는 것이 인생
아닌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이
야기가 떠오른다. 일단 골드
코스트의 삶에 충실하기로 마
음먹는다. 내일 이사를 하게
될지라도.
퇴직한 삶의 무료함도 달랠
겸 일주일에 한 번은 이곳저 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트위
드 헤드(Tweed Heads) 전
망대에 올라 태평양을 바라
보기도 한다. 바다를 끼고 끝
없이 펼쳐진 산책로를 걷기
도 한다. 예전에 캐러밴 야영
장에서 지내면서 아침마다
걸었던 벌레이 헤드 국립공
원(Burleigh Head National Park)의 산책로를 찾기도 한
다. 관광객이 아닌 주민의 시
선으로 주위를 바라보니 색다
른 기분이 든다.
골드코스트라고 하면 바다를 연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곳에 살면서 근처에
산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광객이 주로 찾는 탬버린 마 운틴(Tamborine Mountain)
은 관광객 신분으로 두어 번 가 본 적이 있다. 다른 곳은 없을 까. 지도를 보니 레밍턴 국립공 원(Lamington National Park) 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들어본 국립공원이다.
아침에 일어나 레밍턴 국립 공원을 찾아 떠난다. 구름이 낮게 깔려 파란 하늘은 보이
지 않는다. 그러나 비가 온다
는 예보는 없다. 내비게이션
에 의지해 운전한다. 처음 가
보는 도로다. 이름 모를 호수
도 지나고 언덕 위에 새로 조 성된 마을도 지나친다. 골드
코스트에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제법 큰
마을이 보인다. 카눈그라 (Canungra)라는 동네다. 공 원 옆에 주차하고 심호흡을
인다. 앞으로 100km 구간에 는 주유소가 없다는 경고판 도 도로변에 설치되어 있다.
조금 더 운전하니 대형차는
20km, 승용차는 40km라는
속도 제한 표지판이 보인다.
급커브가 많고 중간중간에 1
차선 도로도 많다. 속도를 낼
수 없는 도로다.
협소한 도로를 따라 산속 깊
이 들어간다. 차창 밖으로 보
하는데 작은 교회가 눈에 들 어온다. 호주 오지를 다니다
보면 작은 교회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교회를 볼 때마
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신
자는 몇 명이나 될까. 생활비 를 충당하기도 어려운 오지 교회를 지키는 목사님이 존경 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교
이는 풍경이 일품이다. 차를
세우고 멋진 계곡을 사진에
담고 싶지만, 도로변에 주차 할 공간이 없다. 아쉬움을 뒤
로 하고 좁은 도로를 계속 운
전해 올라간다.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한 가한 편이다.
회에서는 자식에게 대물림하 면 존경받을 것이다. 한국의 대형 교회에서는 물의를 일 으키지만.
다시 차에 오른다. 국립공원 까지 30km라는 이정표가 보
차에서 내려 크게 심호흡한 다. 산속 내음이 가슴 깊이 파 고든다. 조금 걸으니 뜻하지 않게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 다. 안내판을 읽어본다. 브리 스베인에서 시드니로 향하던
비행기가 1937년 래밍톤 국
립공원에 추락했다고 한다. 탑승객 7명 중 2명은 구조하 였으나 5명은 사망했다는 설 명이다. 당시에 추락했던 비 행기 모형을 전시해 놓은 것 이다. 안내판에는 구조대원 의 활약상을 사진과 함께 소 개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나무 위 에 조성한 산책로(Tree Top Walk)에 들어선다. 나무와 나 무 사이에 출렁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앞에 가는 청년들 때 문에 난간을 잡지 않으면 걷 기 어려울 정도로 다리가 심 하게 흔들린다. 다리 중간에
는 큰 나무에 올라갈 수 있도 록 사다리도 만들어 놓았다.
높이가 30m라고 한다. 튼튼
한 사다리와 함께 원통형 안 전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사
다리에 의지해 나무에 올라서 니 산야가 발아래 펼쳐진다.
힘겹게 올라온 보람이 있다.
오는 도중에 마을에서 잠시 쉬었기에 시간이 많지 않다. 그렇다고 산에 왔는데 좋아하 는 산책을 빼놓을 수가 없다.
예상했던 대로
것이라고 한다. 명상하는 마 음으로 주위와 하나 되어 산 책로에 몸을 맡긴다. 전망대에 도착했다. 폭포가 보인다.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진다. 낙차가 80m라고 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자연이 연출하는 공 연을 온몸으로 관람한다. 자 연과 하나 되어 지금 주어진 삶에 빠져든다.
어두운 과거와 걱정스러운 미래는 생각 속에만 존재하 는 것이라고 한다. 과거와 미 래에서 벗어난 ‘지금의 삶'에 빠져든다. 무엇을 더 바랄 것 인가.
짧은 산책로 중의 하나인 모 란 폭포 전망대(Morans Falls Lookout)를 걷기로 한다. 요 즈음 비가 많이 내려 폭포 수 량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한몫했다.
염증성 장질환은 명확한 원인도, 완벽한 치료법
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원인 모를 설
사와 복통이 반복되면서 일상에 크고 작은 문제 를 일으킨다. 그렇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그
간 여러 연구를 통해 다양한 치료제가 개발됐으
며 상당한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염증성 장질 환,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해 이겨낼 수 있는지 함 께 알아보자.
염증성 장질환,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대한장연구학회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66%의 응답자가 염증성 장
질환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이중 26%
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다’고 응답했다. 조사결과
는 염증성 장질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낮은 인지
도를 짐작하게 해준다. 이에 더해 염증성 장질환
발병률이 청년층에서 급증하고 있다는 점은 심
각성을 함께 일깨워준다.
염증성 장질환은 장 내부에 비정상적인 염증이
반복되는 만성 질환이다. 즉, 우리 몸을 보호하는
면역체계가 장 점막을 외부 물질로 오인해 공격
하면서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질환 종류
에는 크게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이 있다. 염증
성 장질환의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장내 미생물
과 인체 면역시스템 사이의 이상 반응 등이 복합
적으로 관여해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혈변과 설사로 고통 받는 궤양성 대장염
궤양성 대장염은 대장에 국한돼 염증이 발생하
는 질환이다. 대장의 벽은 점막층, 점막하층, 근육
층, 장막층 등 4개 층으로 구성돼 있는데 궤양성
대장염은 가장 안쪽 층인 점막층과 점막하층에
염증이 생기며 염증 부위가 연속된다. 연속된다
는 것은 염증 부위가 크든 작든 모두 이어져 있
다는 의미다.
증상은 대장의 침범 범위와 염증 정도에 따라 다
르지만 주로 지속적인 혈변, 설사, 대변 절박증(
대변을 참지 못함), 변을 보고도 시원하지 않은
후중감, 복통 등이다. 이러한 증상은 몸 전체에도
영향을 미쳐 발열, 식욕 부진, 체중 감소, 전신 쇠
약감, 구토 등의 전신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때
로는 장외증상이라고 하여 장 이외에 관절, 눈, 피
부, 간, 신장 등에 이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증상
정도 역시 환자에 따라 다른데, 증상이 거의 없
는 경우도 있고 심하면 응급수술이 필요할 정도
로 위중한 사례도 있다. 특히 환자들의 증상이 호
전과 재발을 반복하며 만성으로 이어지기에 지
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극심한 통증으로 일상을 흔드는 크론병
크론병은 식도, 위, 소장, 대장, 항문에 이르기까
지 소화관 전체에 염증이 나타날 수 있다. 크론
병이라는 이름은 질환에 대해 처음으로 논문을
작성한 크론 박사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과
거에는 주로 서양에서 많이 발병했지만 최근에 는 식습관, 생활환경 등이 서구화되면서 아시아
에서도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0~30대의 젊은 연령에서 환자 수가 늘고 있으 며, 그중 20대 환자가 가장 많다.
크론병은 궤양성 대장염과 달리 염증 부위가 연
속되지 않고 여러 부위에 떨어져 발생하는 경우 가 많으며 염증이 점막층, 점막하층, 근육층, 장막 층 등 장벽 전 층에 침범하는 특징을 지닌다. 염
증은 주로 소장과 대장에 많이 나타나는데 주요
증상은 설사, 복통, 식욕 감퇴, 체중 감소, 미열, 구 토 등이다. 장외증상으로는 관절, 눈, 피부, 간, 신 장, 항문 등에 이상이 발생할 수 있다. 증상의 종
류와 정도는 환자마다 다양한데 때로는 서서히, 때로는 급속히 나타난다. 크론병은 궤양성 대장
염에 비해 환자의 고통이 더 심한 경우가 많으며, 장기적인 경과와 치료에 대한 반응도 좋지 않아
수술에 이르는 사례가 많다. 크론병 역시 호전과 재발을 반복한다.
정상적인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염증성 장질환은 감염성 장염, 과민성 장증후군 등 보통의 장질환과 증상이 비슷해 초기에 증상 이 나타났을 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거나 다른 질환으로 오해하곤 한다. 때문에 질환이 악화된 후에야 병원을 찾아 진단 시기가 늦어지는 사례 도 많다. 복통, 설사, 혈변 등의 증상이 지속되거 나 관절, 피부, 눈 등에 이상이 동반되면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단은 병력과 증 상, 혈액검사, 대장내시경검사, 조직검사, X-선검 사, 초음파검사, 전산화단층촬영(CT), 자기공명 영상(MRI) 등의 소견을 종합해 이뤄진다. 염증성 장질환 치료는 염증 정도, 발병 부위, 합병증 등 을 고려해 진행되며 약물치료와 수술치료가 있 다. 특히 병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져 다양 한 치료법이 개발돼 있으므로 적절한 치료를 꾸 준하게 받는다면 증상 없이 정상적인 생활도 가 능하다. 하지만 증상이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 복하기 때문에 임의로 치료를 중단하면 재발 및 합병증
육류 등의 섭취 는 줄이는 것이 좋다. 염증성 장질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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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구 전 한인회장 가족 $50, 김은총, 김
태성, 최경식, 박세진, 설청우, 김진성, 김웅도, 김형남 한인회장 가족 $50, 김찬호, 고동주, 서정 가족 $50, 권정식 $40, 이종일 가족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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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Oomool Court, Pimp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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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 15 Victoria Avenue, Broadbeach Ground Floor에 위치함
5 Camberwell Circuit, Robina QLD 4226
9월 분기의 소비자 물가지수가 2.8%까지
전문가들은 호주중앙은행의 기준 금리
최소
올해 9월 분기의 소비자 물
가지수가 2.8%까지 떨어졌 습니다. 호주의 헤드라인 인
플레이션 수치가 호주중앙은
행이 목표치로 삼았던 2~3% 사이에 들어온 것으로, 분기 별 인플레이션이 3% 미만으 로 떨어진 것은 2021년 초 이
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직전 분기인 올해 6월 분기의 헤드 라인 인플레이션은 3.8%였 습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호 주중앙은행의 기준 금리 인 하 가능성을 최소 내년 2월 로 미루고 있습니다. 호주 4
2월로
대 은행 중 연말 안에 금리 인 하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 한 곳은 커먼웰스 은행이 유 일합니다.
지난주 미셸 블록 호주중앙 은행 총재는 호주의 인플레 이션이 호주중앙은행 이사 회의 목표치까지 지속적으 로 회복하는데는 1~2년이 걸 릴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습 니다.
KPMG의 브렌든 린 수석 경 제학자는 SBS와의 인터뷰에 서 기본 금리가 인플레이션 압박이 지속됨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린 경제학자는 헤드라인 인 플레이션은 정부의 에너지
연방총리의 비행기 좌석 업그
레이드 요청 의혹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앤
서니 알바니지 총리는 콴타
스 항공의 전 CEO 앨런 조이
스 대표에게 전화해 수차례
항공편 업그레이드를 요청했
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새롭게 발간된 책을 통해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된 지 며칠
만에 알바니지 총리는 의혹
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해당
책에 따르면 알바니지 총리
는 콴타스 항공의 앨런 조이 스 전 CEO와 개인적인 연락
을 통해 항공편을 22차례 업
그레이드 받은 것으로 알려
졌습니다.
알바니지 총리는 그러나 이 같은 의혹을 부인하고 있습
니다. 벤 포담은 2GB에서 총
리와 나눈 대화를 인용하며
총리는 앨런 조이스에게 항
공편 업그레이드를 요청하는
문자나 전화, 이메일을 보낸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앨런 조이스에게 항공편 업
그레이드에 대해 문자를 보
냈나요? 총리는 '아니요'라고
답했습니다. 앨런 조이스에게
항공편 업그레이드에 대해 이
메일을 보낸 적이 있나요? 총
리의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앨런 조이스에게 업그레이드
를 구체적으로 요청하지 않고
항공편이나 여행 계획을 공유
한 적이 있나요? 총리는 '아니
요'라고 답했습니다. 콴타스
의 다른 관계자에게 업그레
이드를 요청했거나 여행 계
획을 공유했나요? 총리는 '아
니요'라고 답했습니다."
총리실은 ‘어떠한 잘못도 저
지르지 않았으며 모든 항공
편은 연방 의원 규정에 따라 등록되었다’는 단호한 입장 의 성명을 내놓으며 뒤따르 는 정치적 논란을 잠재우려는
모습입니다. 총리실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총리는 앨런 조 이스에게 업그레이드를 요청 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모든 여행은 적절하게 신고 됐으며 공개된 기록"이라고 성명에 덧붙였습니다. 야당
했습니다.
피터 더튼 당수는 알바니지 총리가 정치인이 업그레이드 를 요청하거나 권장하지 못한 다는 장관 기준을 위반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더튼 당수는 앨런 조이스 전 콴타스 CEO의 마지막 임기 몇 달 동안 총리와 조이스 대 표 간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알바니지 총 리는 Qantas CEO와 매우 중 요하고 가까운 개인적인 우 정을 맺었으며, 궁극적으로 본인이 내린 결정의 수혜자 가 되었습니다."
연방정부는
$26,888 2019 Ford Ranger XLT PX3
서부 시드니 교외인 블랙타 운과 버큼 힐스의 운전자들은
총 100만 달러 이상의 통행료 감면 혜택을 받은 것으로 집 계됐습니다.
민스 노동당 정부의 주당 60
달러 통행료 상한제도에 따라 블랙타운(Blacktown)은 지난 주 총 통행료 감면 혜택(Toll relief) 청구액이 100만 달러를
$429,000 +
돌파한 첫 서버브(suburb)가 됐고, 버큼 힐스(Baulkham Hills)가 그 뒤를 이었습니다.
오번(Auburn), 메릴랜드 (Merrylands), 마스든 파크 (Marsden Park)와 같은 자차 교통 수단에 의존하는 교외
매매
지역도 통행료 감면 혜택 청 구액이 100만 달러 돌파를 앞
두고 있으며, 20개 지역에 걸 쳐 총 1,300만 달러 상당의 3 만5,000건 이상의 감면 청구 가 접수됐습니다.
지금까지 블랙타운과 버큼 힐스에서 통행료 감면을 청 구한 운전자는 3,000명이 넘 습니다.
이는 노동당 정부가 제시한 주당 60달러 통행료 상한이 시드니에서 가장 통행료를 많이 내는 지역 거주자에게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는 증거라는 설명입니다.
지금까지 총 22만4,000건 이상의 청구가 접수되었고, 운전자들에게 이미 6,050 만 달러가 환급됐으며 1인 당 평균 환급금은 284달러 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후 11,000명 이상의 운전자가 분 기별 1,000달러 이상의 통행 료 감면 혜택을 받았습니다.
1월 1일 이후 통행료에 주당 60달러 이상을 지출한 적격 한 운전자는
호주의 국가 부패 방지 기 관(NACC)이 로보데트(Robodebt) 스캔들과 관련해 로
열커미션에 지명된 6명의 공
무원을 조사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재고할 방침입니다.
국가 부패 방지 위원회 나크 (NACC)는 이들 공무원을 조
사해야 하는지 여부를 결정
할 독립 패널을 임명할 예정
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번 결정은 조사하지 않기
로 결정했던 로열 커미션의 부패 의뢰를 재고하라고 권
고한 나크 감사관 게일 퍼니 스의 보고서에 따른 것입니 다. 퍼니스
에서 적절하게 감사하지 않 았다고 판단했습니다.브레튼 국장은6명의 공무원 중 한 사 람과 가까운 관계에 있기 때
문에 윤리적으로 이해충돌 (conflict of interest) 가능성이
있다고 선언하고 부국장에게
업무를 이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업무 이임만 했을 뿐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제외되
지 않고 회의에 참석했으며
공식적인 의사 결정 및 미디
어 성명에 참여하는 등 ‘공정
성을 침해’했을 가능성이 제
기되고 있습니다. 앞서 위원
회는 초기 결정에서 6명의 로보데트 관련 공무원에 대 한 조사 요청을 기각하면서 이미 로보데트(Robodebt) 위 NSW 블랙타운·버큼
제한하고 있습니다.
시드니 블랙타운에서 본 새로운 주거용 부동산크레딧: 조엘 캐럿/AAPIMAGE
부동산 정보업체 도메인(Domain)에 따르면 부동산 가 격 상승 속도가 둔화하고 있 습니다.
도메인의 니콜라 파월 경제
연구 책임자는 부동산 시
장이 집을 구매하려는 이들
에게 유리하게 바뀌고 있다
는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습 니다.
파월 박사는 공급이 증가하 고 있고, 시장에 나와 있는 기간이 길어지며 할인 관행 도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습 니다.
그는 “모든 지표가 전반적인 둔화를 가리키고 있고, 올 연
말까지 주요 도시에서 가격 하락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 였습니다.
9월까지 3개월 동안 부동산 가격은 여전히 상승했지만
상승 속도는 느려졌습니다.
시드니와 퍼스의 분기별 주
택 가격 상승 속도는 이전 분
Sushi Izu Southport Park
Sushi Izu Elanora
기의 절반에 그치며 더딘 상 승세를 보였습니다.
파월 박사는 시드니와 멜버
른에서 아파트가 주택보다
더 잘 팔리는 것은 주택 구입 감당 능력이 한계에 달했고, 구매자들이 더 저렴한 옵션 을 찾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 했습니다.
Key Points
• 부동산 가격 상승 속도, 둔화
• 높은 기준 금리→ 대출 능력 제한
• 구매자들, 금리 변동 신호 기다리며 관망세→수요 둔화
• 올 연말, 주요 도시서 가격 하락 가능성도 있어
는 겁니다.
파월 박사는 또 “가격이 계속 상승하면서 구매자 풀(pool) 이 점점 제한되고 있다”고 덧
늘어나긴 했지만 수요가 크게 증가하지는 않았다고 말 했습니다.
기사 출처 : SBS뉴스 인플레이션과 임금 상승은 견 고하지만 주택 시장을 따라 잡지 못하면서 수요가 둔화 하고, 높은 기준 금리가 대출 한도를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10월 29일 화요일 오후 2시 30분경 멜버른에 위치한 오 번 사우스 초등학교 앞에서 유턴을 시도하던 운전자가 학교 울타리를 들이받아 11
살 소년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멜버른 동부에 위치한 오번 사우스 초등학교에서 아이
를 데리러 간 40세 어머니가
차량을 돌리려다 실패했고, 이 차는 학교 울타리를 뚫고
아이들이 앉아있던 학교 테
이블 쪽으로 돌진했습니다.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된 호 손 이스트에서 온 운전자는 밤새 석방됐습니다.
이번 일로 병원으로 이송되
던 11살 남학생이 목숨을 잃
었으며, 10살에서 11살인 다
른 학생 4명도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크레이그 맥에보이 검사관
은 “지역 사회, 학교 커뮤니
티, 지역 주민, 응급 구조대 원, 구급차, 경찰 등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너무나도 힘 든 일”이라며 “사망과 심각 한
빅토리아주 경찰이
빅토리아주에서 실시 중인 새
로운 형태의 온라인 마켓플레
이스는 온라인 거래를 통해서
직접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사람들이 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갖 고 있습니다. 개인이 중고물품 판매를 위해
목록을 작성하는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의 이용자는 호주에 서만 수백만 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페이 스북 마켓플레이스를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잠재적인 사기 행위뿐만 아니라, 폭력 사건, 아이템 도난 사건까지
벌어져 안전한 온라인 거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빅토리아주 전역 에 온라인에서 거래한 물건을 24시간 내내 안전하게 교환할 수 있는 구역이 경찰서 앞에 설치된 겁니다.
도심 지역뿐만 아니라 지방 곳 곳에 설치된 35개 교환 구역은 집, 공원, 주차장 등에서 알 수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더 안전한 대안이 되고 있다는 평 가입니다.
지정된 교환 구역은 명확하게 빅토리아 경찰,
표시돼 있으며, 주변에는 조명 이 잘 켜져 있으며,
빅토리아주 경찰은
혔습니다.
빅토리아주
(AAP 이미지/AP 사진/상탄) 출처: AP
호주 여성 6명이 영국 백화점 해로즈(Harrods) 소유주였던 고 모하메드 알파예드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습 니다. 이들 피해자를 대리하는
변호사는 이들 중 5명은 백화
점 해로즈에 고용됐던 한편 다
른 1명은 공급업체에서 일했다
고 밝혔습니다. 알파예드 성범
죄 혐의에 피해를 주장하며 나
선 여성들은 현재까지421명에
달하며, 대부분이 영국인인 것
으로 전해졌습니다. BBC는 지
난 9월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
난해 94세로 사망한 알파예드
가 생전 자신이 운영하던 런던
의 고급 백화점 해로즈의 여성
직원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강제로 의료 검진을 받게 했으 며, 불만을 제기할 경우 보복하
겠다고 위협했다는 의혹을 제 기했습니다.
알파예드는 생전, 보도들에서
제기된 혐의들을 일관되게 부
인해 왔으나 해로즈 측은 이
미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피 해 보상을 원하는 전현직 직원 들을 위한 절차에 착수한 상태 입니다. 알파예드에게 성학대 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한 그 룹의 여성들을 대리하는 변호 인단은 해로즈 측에 서한을 보 냈습니다.
‘피해 생존자들을 위한 정의 (Justice for Harrods Survivors)’ 단체는 해당 서한이 피해 보상 청구를 위한 별도의 법적 절차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밝 혔습니다. 변호사 브루스 드러 몬드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들의 수가 상당하다는 점 이 성학대의 규모가 처음 예상 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 을 말해준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