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일한 10년 세월을 놓고 보니, 벌써 그 사이에 저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바쁜 아빠지만 행복한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준 제가 하는 이 일에 감사하며, 타 비즈니스에 비해 현저히 낮은 비용으로 시작한 JAN-PRO는 빠른 시일 내에 일을 해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또, 청소 특성상 하루를 마치고 저녁시간에 아무 때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보니,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고 낮 시간을 이용해 가족의 미래를 더 다양하게 그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JAN-PRO는 가장 큰 청소 회사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Mark, Shinal, Angus, Tom 그리고 Chrissie 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많이 성장했고 업무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 경험을 공유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기꺼이 수락했습니다
청소 경험이 없어도, 저녁시간 잠깐 이용해 운동 삼아 하는 세컨잡으로도 너무 좋기에
주위에 추천해 왔고,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일을 늘리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만약 프랜차이즈 청소회사에 관심 있으시다면
JAN-PRO Mark(0413 600 899)와의 상담을 적극 추천합니다.
- David 권 Kwon -
우측에 명시된 3가지 직책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Phoebe Fan(phoebe@timesventure.com.au)에게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내주세요.
/
등급의 뷰티 서비스 경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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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Food Oceania, Riverside Dental, Westpac.
부끄러움 이라는
이름의 뱀
부끄러움 수집가 – 1화 by 피어라 / 브런치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
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잔인 하다. 타고나길 이기적인 인
간이 얼마나 본성을 거스르며
처절하게 노력해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단 말인
가? 이런 불가능한 가르침을
인간에게 주다니 예수는 정녕
신(神)이다. 예수의 말에 비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
다’는 우리 옛 속담은 쉽고 예
리하다.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이 아닌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촌이 땅을 사서 부럽고 약이
올라 배까지 아프다. 솔직해서
귀엽기까지 한 고백이다.
이십년 전 쯤, 나는 유학중인
남편과 함께 외국에서 생활
하고 있었다. 그때 자그마한
한국인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활동 하며 친하게 지내던 한국
인 유학생들이 몇 있었다. 외
롭고 힘든 타국에서 서로 돕고
먹거리를 나누며 가까이 지냈
다. 한국에서 갓 대학을 졸업
하고 온 K는 유학초기라 아직
외국 생활이 낯설고 행정적인
도움도 많이 필요했다. 유학생
커뮤니티를 통해 당시 내가 다
니던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나와 나이 차이는 꽤 나지만
금방 가까워졌다. 관계가 더
욱 두터워질 무렵, 모임에서 K 가 좋은 일이 생겼다며 얘기를
꺼냈다. 어찌어찌하여 자신이
모 장학재단 장학생으로 뽑히
고 진학에도 유리한 자격을 얻
게 되었다는 거다. 남편도 지
원했다 떨어진 적 있는, 이름
만 대면 다들 아는 유명한 장 학재단이었다. 유학 오자마자
선배들도 타기 쉽지 않은 장학
금을 탔다고 모두들 부러워하
며 축하해주었다.
좋은 분위기에서 훈훈하게 모
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습하고 뜨거운 몸을 식히러 욕
실에 들어가 샤워기부터 틀었
다. 쏟아지는 차가운 물줄기에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난데없
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
하라’는 성경구절이 내 머릿속
으로 세차게 떨어졌다. K가 장
학생이 되었다고 웃으며 말했
을 때 입으로는 잘 됐다며 축 하를 전했지만, 사실은 ‘K가
떨어졌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냄비 속에서 뭉근히
끓는 팥죽처럼, 지저분한 진창
에 고여 있는 흙탕물처럼, 겉
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속
에서는 시샘과 질투가 차 올랐 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떤
감정이 몰아치며 온 몸에 소 름이 돋았다. 한참을 샤워기 밑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 으며 서 있었다. 그건, 부끄러 움이었다.
이후로도 부끄러움은 때때로
나를 찾아왔다. 조카가 우수 한 성적으로 특목고에 진학하
고 외국 명문대로 유학을 떠났 을 때도, 돈 잘 버는 남편을 둔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경제력을 드러낼 때도, 나보다
훨씬 낮은 연차의 직장 후배가
비싸고 좋은 집을 장만했을 때 도, 나는 내 부끄러움을 목격 했다. 겉으로는 축하하지만 속
으로는 약이 올랐다. 내 안에 뱀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 같았다. 표리부동했던
자신에 대한 연민과 지극히 인 간적인 감정이라고 신에게 항
변하고 픈 욕구가 뒤엉킨 모습
을 한 뱀. 어쩌다 그 뱀과 마주 한 날이면 내 머리 위로 쏟아 지던 차가운 물줄기와 머릿속 으로 떨어지던 성경 구절이 떠
올라 가벼운 몸살을 앓았다.
질투와 시샘으로 괴로워하고,
음을 위해 노력하는 힘도 생겼 다.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이기는 거였다.
여전히 타인을 완벽히 긍정하 지는 못하지만, 물론 평생 도 달하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젠 예전처럼 뱀에게 먹히지 는 않는다. 불쑥불쑥 머리를 쳐드는 뱀을 달래서 다시 재 울 수 있다. 오래도록 부끄러 움에 시달린 후에 부러움을 찾 았다. 제법 평온하다.
때로 파괴적이다.
지난 가을, 지역의 도서관에서 소설가
부끄러움 수집가 – 2화 by 피어라 - 브런치
도서관 사서의 작가 소개가 끝
나고 작가님이 마이크를 잡으
셨다. 차분하고 담담하게 읽어
주시자 듣는 내 마음도 흔들렸
다. 소설이 클라이맥스를 향
해 달려가는데 몸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뱃속에 발길질하는
태아가 있는 것처럼 점차 격렬
한 움직임이 느껴지며 옆 사람
에게 들릴까 걱정될 정도로 꾸
르륵 거리는 소리마저 났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대장의
꿈틀거림! 가스가 차오르고
있었다. 여기서 발사할 순 없
다, 최선을 다해 항문에 힘을
주고 버텨야 했다.
소설의 감동적인 대목 사이사
이로 미세하게 근육을 조정하
며 힘조절에 성공했다. 뱃속에 서 난리가 나고 있었지만 감동 과 몰입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
다. 훌륭하다 나 자신.
작가님의 낭독이 끝나고 자신
의 소설이 과거와 어떻게 변화
되었는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
로 나갈 것인지 이야기가 이어
졌다. 과거로부터 벗어나 미래
의 다정함에 대해 얘기하는 대
목에선 여기저기서 눈물을 닦
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현실
을 뛰어넘어 이유없는 다정 함으로 미래를 맞이하는 사람
들의 세상을 떠올려보니 마음
이 절로 따뜻해졌다. 작가님의
다음 소설을 같이 기다리게 될 것 같았다.
두 편의 소설 낭독과 작가님
의 이야기가 끝난 후 질문과
답변 시간이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팬심과 존경심을 담아
질문을 던졌고 작가님은 섬세 하게 답변을 고르셨다. 늦가
을 감성에 다정함을 더하고 감
동과 아름다움까지 담은 맑은
차 한 잔 마신 것 같은 자리였 다. 그동안에도 눈치없는 대장
은 연동운동을 계속하며 차곡
차곡 가스를 만들어냈다.
드디어 준비된 시간이 모두 끝
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 았다. 가스가 폭발할 것처럼 가득찼다. 본능이 위험신호를 보냈다. 작가님께 사인을 받고 싶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는 데 피난민 틈에서 헤어진 혈육 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오로 지 나만 재빨리 뒤로 달려나갔 다. 외로운 엑소더스, 서둘러 야했다.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열린 칸 을 찾았다. 문을 잠그고 자리 에 앉자마자 미친듯이 두 시간 동안 쌓아놓은 가스가 분출되 기 시작했다.
"뿌아아아아아아파아아아아 아아아휴푸르르르하아아아 아아으응"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과 격한 소리에 부끄러워 고개
를 들 수 없었다. 공중 화장실
인데, 이렇게 큰소리를 내도
되는 걸까 걱정될 정도의 데
시벨을 기록하며 기나긴 배출
을 끝내고 심신에 평화가 찾아
오려던 순간, 난데없이 말소리 가 들렸다.
"저.......거기 휴지 없던데...."
쯤 걸린 것 같다. 아! 이해의 순 간 발 밑으로 옆 칸에서 내민 손이 보였다.
"이거 쓰세요."
손바닥 위에 둘둘둘둘 가득 쌓 인 휴지를 본 순간, 머릿속에 서 고등학교 시절 외웠던 시 한 구절이 휘몰아쳤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어 쩌고 저쩌고...오로지 맑고 곧 은 이념의 푯대 끝에...아아 누 구던가...공중에 달 줄을 안 그 는!!!!!
그랬다, 나의 우렁찬 아우성을 듣고 큰 일을 치루는거라 짐작 한 옆 칸의 누군가가, 그 곳에 휴지가 없음을 알기에 어려움 에 처했을 이를 위해 자기 칸 의 휴지를 뜯어 건내 준 것이 었다.
"어..어머, 감사합니다. 오호 호호호호"
무나 많은, 큰 일 치르기에도 넉넉한 양의 휴지였다. 부끄러워할 새도 없이 서둘 러 일어났다. 혹여 옆 칸에서 건너온 손의 주인공을 만날 세라 얼른 손을 씻고 뛰듯이 화장실을 벗어났다. 때로 타 인에게
응? 무슨 얘기지? 내게 하는 말이라는 걸 깨닫는데 3.5초
무안함과 민망함을 웃음소리 로 덮으면서 휴지를 받았다.
작은 일 뒷처리에 쓰기에는 너
그때 내 엉덩이에
닿았던 것은
오래전, 아마도 여덟살 쯤으 로 기억한다. 5층짜리 주공아 파트 단지 안에는 아이들이 몰
려다니며 놀 곳이 많았다. 어
린아이부터 큰아이들까지 항
상 아이들로 가득한 놀이터와
어딘가 위험하고 으슥한 공터
까지, 아이들은 누가 만들었는
지 모르지만 서로 통하는 이름
으로 부르는 곳들을 돌아다니
며 놀곤 했다. '거기'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아파트 어느 동 구석에 돌벤
부끄러움 수집가 – 3화 by
/ 브런치
치 서너 개를 둔 작은 휴식 공
간, 조경수가 울타리를 두르고
지붕에는 등나무가 덮여 있어 오붓하지만 어딘가 으슥한, 그
래서 묘하게 아지트 같은 느낌
을 주는 곳이었다. 밤에는 아
저씨들이 앉아서 담배를 태웠
으며, 낮에는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이 술래잡기와 얼음땡
을 하며 놀던 곳.
그 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또래 여자아이들 너댓명이 같
이 모여 돌벤치 위를 건너 뛰
며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원래 같이 놀던 친한 친구들은
처음보는 아저씨였다. 키가
컸고, 허여멀건한 피부에 코
가 길었다. 눈에 검은자위가
빛을 흡수하는 느낌, 투명한
생기가 보이지 않는 느낌이라
어딘가 어색한 인상이었다. 머
리카락이 약간 길었고 트레이
닝복을 입고 있었다. 놀고 있
던 우리에게 다가와 아저씨가
말을 건냈다. 어떤 말이었는지
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누구에
게 말했는지는 정확히 기억한
다. 우리 중 가장 예쁜 아이였
다. 긴 파마머리를 양갈래로
높이 묶고 레이스가 붙은 하
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
다. 어린 마음에 나와 다른 세
상에 사는 아이라고 생각할 정
도로 그 머리모양과 옷을 부러 워했다. 어른들이 칭찬하고 또
래들도 귀여워하는 아이니, 낯
선 아저씨라도 그 아이에게 손
을 내미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 했다.
아마도 예쁘다, 이리 와 볼래, 정도로 말했을 것이다. 그런
데 그 아이는 무언가 기분이 상한 듯, 아저씨 때문에 불쾌 해졌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은 표정으로 싫다면서 그냥 나가
버렸다. 어린 마음에도 콧대
높은 공주님 같다고 생각했
다. 어딜 감히.
놀이의 중심이었던 아이가 떠
나자 같이 놀던 아이들도 따라
서 아지트를 나가기 시작했다.
순간, 아지트 안에는 더 놀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미적
거리던 나와 아저씨 둘만 남게
되었다. 그 사실을 눈치채고
나도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다정하게. 안녕, 이리 와 볼래.
왜 그랬을까. 강압적이거나
무서운 말투였다면 도망쳤을
까. 친근하고 다정한 말투라
서, 예쁘지 않은 내게 보여주
는 관심이 기꺼워서, 낯설지만
나에게 호의를 나타내는 어른
이 있다는게 기뻐서, 나도 누
군가에게 선택당했다는게 뿌
듯해서. 그 모든게 다 뒤섞여
서 나는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나를 들어
올렸고, 자신의 무릎 위에 앉 혔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 로 말을 걸어왔다. 몇 살이니, 어디 사니, 이름은 뭐니 같이
통상적으로 처음 보는 아이에
게 어른들이 할 법한 이야기들
을. 하나씩 답을 하는데, 입고
있던 원피스 아래로 무언가 따
뜻하지만 물컹한 것이 닿는 느 낌이 들었다. 순간 불편하고
불쾌했다. 어딘가 이상했다.
본능적으로 아저씨 품에서 벗
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벌
떡 일어났다.
"나, 갈래."
그리고 등나무와 조경수로 뒤 덮인 아지트에서 바깥세상을 향해 뛰어갔다. 그래봐야 몇
발짝이었을 것이다. 후다닥
뛰어가다 입구에서 한 번 뒤
를 돌아봤다. 왜였을가? 아저
씨는 여전히 벤치에 앉아있
었고, 앉은 자세 그대로 바지
를, 추켜 올렸다. 고개를 숙이
고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
지만 아저씨의 목소리는 또렷
이 들렸다. 아저씨가 말했다.
"에이 씨"
그곳에서 내게 있었던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의미 인지, 저 사람이 누군인지 같
은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다
만 빨리 그 곳을 벗어나야 하 고, 저 곳은 좋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입구에서
돌아본 아지트의 모습이 지금 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선명하
다. 어둡고 그늘 진 벤치에 앉 아 고개를 숙이고 옷을 정리하 던 아저씨.
그 곳에서 있었던 일을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왠지 기분 좋지 않은 일, 위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말하면 안될 거라는 느낌이었 다. 누군가에게 말하기 부끄
러웠다. 그래서 말할 수 없었 고, 이내 지워버렸다. 하지만
다시는 그 아지트에서 놀지 않
았고, 이후로 두 번 다시 그 아 저씨를 본 기억은 없다.
그때, 내게 닿았던 것이 무엇
인지를 깨달은 것은 한참 뒤
의 일이었다. 거의 십여 년이 흘러서야 그 뜨듯하고 물컹 한 것의 '정체'를 깨달았고, 내 가 당한 것이 유아 성추행이었 다는 것을, 분명한 폭력이었
다는 것을 인식한 것은 그보다 또 한참 뒤의 일이었다. 나는 왜 부모님에게도 말을 하지 못 했을까. 어째서 부끄럽고 무서 운 기억으로 묻어뒀던 것일까. 세상의 다른 수 많은 여자들처 럼, 내 잘못도, 내 실수도 아닌 데. 무엇이 내 입을 막았을까. 그 억압과 검열을 이제는 안 다. 내 입을 막았던, 내
김치도둑
부끄러움 수집가 – 4화 by 피어라 / 브런치
김장철이라 여기저기 집마다
김장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브런치에서도 김장관련 글들
이 연이어 메인을 장식했다.
김장이라는 거사를 치뤘고 그
에 관한 글도 썼지만 사실 김
장철마다 떠올리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 40년이 지나도록
에는 어린아이 셋이서 저녁을 차려 먹어야 했다.
늙으신 부모님과 함께 김장을
하며 노동보다 화합을 느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겨
울 김치에 관한 이야기다.
는 글부터 독립군처럼 자신의
손으로 김장을 치뤄낸 뿌듯해
하는 글, 먹을 수 없는 김장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는 타국살
이 글, 이제는 김장을 하지 않
는다는 젊은 세대의 글까지 다
양한 글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하나씩 읽어가며 김장이 얼마
나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
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나 역
시 김장을 하며 일 년 먹거리
를 준비하는 친정 엄마와 함께
어린 날, 번번이 사업이 망하
고 하는 일이 잘 안되던 아버
지 대신 엄마는 하루 종일 가
게를 꾸리며 다섯 식구 생계를
책임져 왔다. 아빠는 일 찾아
보름이나 한 달씩 지방 현장에
내려가 있는 일이 잦았고 엄마
는 이른 아침 집을 나서 늦은
저녁에야 돌아왔다. 일이 많
으면 한밤중에 돌아오는 일 도 심심찮게 있었다. 그런 날
Aust r alia Queensland Tour s
여행 가이드 (남,여)
버스 운전기사 (12,21,25,38,55 인승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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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방법: 아래 이메일 주소로 지원해 주세요.
진료 시간
월-금 8:00am-6:00pm 토 8:00am-1:00pm
일반치과
서 김치를 보관해야 했다. 우
리가 세들어 살던 5층짜리 주
공 아파트(지금의 LH) 사람들
은 김칫독 대신에 작은 항아리
에 김장김치를 넣어 계단참에
올려두고 꺼내먹었다. 저녁 무
렵 계단을 올라 집에 가는 길
에 층마다 작은 바가지를 들고
나와 항아리에서 김치를 꺼내
가는 엄마들을 목격할 수 있었
다. 그럴 때면 집마다 다른 손
맛과 양념 덕에 다른 냄새가
풍겼다. 어느 층은 젖갈의 강
한 향이 나고, 어느 층은 시원
하고 달큰한 향이 났다. 김치
들은 항아리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것 같았다.
아마도 12월이나 1월 즈음, 김
장이 끝나고 난 한 겨울이었을
거다. 기다려도 엄마가 오질
않고 배는 고파서 동생들과 같
이 밥을 차려먹어야겠다고 생
각했던 것 같다. 밥은 있는데, 집에는 반찬이 보이질 않았다.
김치라도 있으면 밥을 먹을 텐
데,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어
쩌나 고민하던 그때, 앞집 김
치 항아리가 떠올랐다. 고민 은 짧았다. 잠시 후 나는 다른
아주머니들처럼 한 손에 주황
색 플라스틱 바가지를 들고 현
관문 앞에 서 있었다. 소리나
지 않게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맨발로 계단을 내려갔다. 조용
히 항아리 뚜껑을 들어 옆으로
치워놓고, 비닐을 풀었다. 안
에서 달큼하고 매콤한 김치 냄
새가 확 끼쳤다. 한 쪽 팔의 소
매를 걷고 팔을 넣어 항아리에
서 김치 한 쪽을 꺼내 바구니
에 담았다. 양념이 묻지 않은
다른 쪽 손으로 최대한 원래
처럼 수습한 뒤 후다닥 집으
로 뛰어들어갔다. 다행히 들 키지 않았다. 그 날 먹은 김치
는, 아삭하고 시원했다. 정말
로 맛있었다.
그 뒤로도 조그만 김치도둑의
도둑질은 몇 번 더 계속되었
다. 나중에는 과감해져서 옆
에 있는 작은 항아리 속에서
양념이 잘 베인 총각김치도
집어오고, 안 쪽으로 팔을 뻗
어 양념이 잘 베인 배추를 골
라 꺼내오기도 했다. 여전히
동생들은 내가 문밖을 나가 꺼
내오는 김치의 정체를 몰랐다.
어디서 생긴 김치인지도 모르
고 그저 잘 먹었다. 훔쳐온 김
치는 맛있었지만 먹는 내내 얼
굴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김
치를 훔치러 가기 전에도, 훔
치면서도 그랬다. 나쁜 짓이
라는 걸 알고 있었고, 들킬까 봐 마음 졸였다. 저녁에 옆집
아주머니가 김치를 가지러 나
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면
흠칫 놀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고 마음을 쓰기도 했다.
간 큰 김치도둑의 범행은 오
래가지 않았다. 겨울이 깊어
가면서 김치는 점점 맛이 들어
갔고, 김치가 익을수록 앞집 항아리 속의 김치는 줄어들었 다. 그리고 어느 저녁, 여기서
김치를 가져가면 없어진 티가
확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 다. 도로 뚜껑을 닫았고 더는 앞집 김치 항아리 뚜껑을 몰래
열지 않았다. 김치도둑이 손을
씻은 것은 크리스마스의 기적
도 뒤늦은 양심의 활약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더 하면 위험 하겠다는 약삭빠른 계산의 결 과였던 거다. 그렇게 어린 김 치도둑은 자신의 잘못을 기억
에서 덮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앞집 아주머 니는 김치가 없어지고 있다 는 사실을 알고 계셨을 것 같 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어린아이가 하는 짓인데, 김
치를 꺼내며 양념국물을 흘
렸을 수도 있고 뚜껑이나 항
아리에 고춧가루를 묻혔을 수
도 있었을거다. 살림하는 사람
이 자기가 정리해 두었던 비닐
이 다르게 풀어헤쳐져 있는 것
을 보고 모를 수가 없을 것 같
다. 충분히 이상하다 생각했
을 것 같다. 아무리 어린 아이 손이라 해도 김치양이 줄어드
는 것도 알았을거고 그러니 분 명 어느 정도는 눈치챘을 거라 고,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알 고도 눈감아 주신 걸지도 모
른다고.
어릴 때, 앞집 김치를 훔쳐 먹은 적이 있다. 부끄러움과
용띠 동생과
소띠
부끄러움 수집가 – 5화
새 나무 책상과 중고 철제 책상의 깨달음 by 피어라 - 브런치
나는 소띠다. 한 겨울에 태어
난 소라서 일도 안하고 외양간
에서 여물만 먹는다는 말을 들 었다. 세 살 밑에 여동생은 용
띠다. 내게 게으른 겨울 소라
고 말하던 부모님은 동생에
게는 10월의 용은 태풍이 지
난 다음이라 기운이 세고 사
납다고 하셨다. 올해가 푸른
용의 해라는데, 청룡이건 흑
룡이건 모르겠지만, 어려서부
터 기가 세고 카리스마가 넘쳤
다. MBTI도 안 믿는데 띠별 운
세나 성격을 믿을리 없지만, 초식동물인 소띠 언니보다 훨
씬 더 야무지고 똑똑한 성격의
동생이 강렬한 이미지의 용띠
라는 건 너무 잘 어울렸다.
한 번은 동네에서 관상을 보던
아주머니가 지나가다가 '남자
로 태어났으면 장군감'이라고
얘기하셔서 기분 좋아진 엄마 가 달라고도 안한 복채를 쥐어
주신 적도 있다. 그 아주머니
말처럼 장군은 되지 못했지 만, 대장은 확실했다. 이 동네
저 동네로 동네 꼬마들을 다
몰고 놀러다닌 '골목대장'이
었으니까.
동생은 대여섯살 무렵부터 동
네 아이들 사이에서 대장 노릇
으로 유명했고, 어른들한테도
할 말을 똑부러지게 다 해서
어른들한테서도 유명했다. 엄
마 가게가 있던 시장사람들은
다 우리 엄마를 동생이름을 붙
똑부러지고 사람들을 휘어잡던 동생이 드디어 학교 에 입학했다. 그때 나는 4학년, 이젠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 학 년이었다. 하지만 공부도 못하 고
'아싸'였다. 숙제를 제대로 해 간 적도 없고, 수업
여 '무니엄마'라고 불렀다. 보 통 엄마들끼리 서로를 부를 때 큰 애 이름을 붙여 부르는데, 우리집은 반대였다. 다들 둘 째 이름만 알고 내 이름은 몰 랐다. 그 정도로
지들이 다 모여있는데! 당황
하고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다음 날 친척들에게 놀림받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수치
스럽고 걱정이 됐다. 어떻게
든 수습하고 싶었다. 작은 방
에서 자고 있는 부모님을 깨
울 수는 없었다. 그때,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고모가 보
였다. 그리고 동시에 감쪽같
은 계획이 떠올랐다. 얼른 젖
은 옷을 벗고 새 속옷과 내복
으로 갈아입은 후, 고모를 내
가 누워있던 자리, 젖은 이불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고모
가 누워있던 자리로 쏙 들어갔
다. 완벽했다. 안심해서 였을
까, 곧 잠이 들었고 오래지 않
아 아침이 되었다.
눈을 뜨니 다들 일어나 이부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어
린 아이들은 마루로 나가 자기
들끼리 놀고 있었고, 어른들은
부엌에서 분주히 아침준비를
시작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
로 앉아있는 고모를 보며 눈치
껏 일어났다. 슬그머니 마루로
나가려는데, "유니야." 고모가
불렀다. 고모가 손으로 방바닥
을 가볍게 두드리며 여기 와서
앉아보라고 말했다. 나는 주춤 주춤 무릎으로 걸어가 고모 옆 에 얌전히 앉았다. 고모가 심 각한 표정으로 이을 열었다.
"있잖아, 고모가 일어나보니 까 이불이 젖어있는거야. 그
런데 고모 옷은 안 젖어있거 든. 혹시 싶어서 물어보는데, 네가 자가다 오줌쌌니?"
아마도 고모는 웃음을 터트렸
던 것 같다. 어쩐지, 이상하다
생각했다, 내가 아침에 얼마
나 놀랐는지 아냐, 너는 어쩌
면 그럴 수가 있냐, 요 깜찍한 것 등등의 말을 퍼부으며 고모
는 내 코를 쥐어뜯었다. KBS
주말드라마 속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실컷 나를 골려먹은 고모는 나를 안아준 뒤 이불을 둘둘 싸서 세탁기에 넣고 빨래 를 했다. 다행히 동생들에게는 얘기를 흘리지 않아 체면을 지 켰으나 아침 내내 온 식구들에 게 내 만행을 떠벌렸다. 엄마 와 아빠도 웃었고, 할아버지
와 할머니도 웃으셨다. 오죽 이나 부끄러웠으면 사랑하는 고모에게 뒤집어 씌울
아, 비록 계획범죄를 저질렀
지만 내게는 양심이 있었고, 남에게 뒤집어씌울 정도로 교 활했지만 거짓을 꾸며댈 만큼
악랄하지는 않았다. 고개가 절
로 수그려지고 온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귀 끝까지 뜨거워지는 것이 분명 새빨개졌을 터였다. 나는, 순순히 자백했다.
"네......"
졸업을 2주 앞둔 지난 12월 22
일, 드디어 작은아들에게 핸드 폰이 생겼다. 6학년이 끝나가
는 지금까지 작은아이는 핸드 폰이 없었다. 핸드폰을 사달라
고 조르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
만 아이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
는데 동의하고 있어서 그럭저
럭 없는 채로 지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집과 학교가 유
일한 동선이라 따로 연락할 일
도 없고, 게임은 집에서 엄마
아빠 핸드폰으로 하고 있어서
없는대로도 살만했기 때문이 다. 가끔 자조적으로 자기는
'폰없찐'이라고 말하며 친구
들과 카톡해보는 게 소원이라
고 말하기는 했지만 딱히 조른
적도 없었다.
사실 아이 말이 아니어도 졸
업 즈음에는 사줄 생각이었
다. 중학교는 학교생활에 폰
이 필수일테고, 졸업하고 나
면 친구들과 연락도 하고 싶
을 테니 말이다. 해서 졸업 전
에는 핸드폰을 해주겠다고 아
이와 합의를 했었고 이제 때가
온거다.
남편이 가장 저렴한 요금제와
통신사별 혜택을 비교 분석한
후 고르고 골라 아들 명의로
가입했다. 기기는 채소마켓에 서 적당한 기기를 골라 중고로
냈다. 산타마을에서 일년 동 안 크리스선물을 만드는 산타 할아버지처럼 남편은 착실히 선물 준비를 마쳤다. 그 길고 복잡한 과정을 나는 모른다. 그저 입력하라는 곳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고, 내라고 하 면 돈만 냈을 뿐.
드디어 크리스마스 전전날이 왔다. 장난감을 받고 환호하며
좋아하던 어릴 때처럼 아이가 좋아하겠지? 나도 핸드폰이 생겼다고 신나하며 엄마아빠 를 안아주겠지? 남편과 나는 서로 말은 안했지만 내심 이런
아이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 다. 심장이 작고 단단하게 뛰 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폰을 내밀었다.
"짜잔, 유니 핸드폰! 크리스마 스랑 졸업이랑 축하해!"
내민 손길이 무색하게 아이는 폰을 보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울트라가 아니잖아."
울트라? 솔직히 나는 아이한 테 듣기 전까지 울트라가 뭔지
도 몰랐다. 울트라가 뭐냐고
되묻기도 전에 아이는 울먹이 며 말했다. "갤럭시 노트 울트 라로 사달라고 했잖아아." 남 편과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 이 말을 듣고서야
지금 그런 고가제품을 사달라 고 울고 있는건가? "이런거 쓰 면 애들이 놀린다고, 창피하 다고, 왕따당한단말이야아." 아들은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이런 핸드폰은 필요없다고 말 하고, 아버지는 그런 비싼 폰 은 사 줄 수 없다고 못을 박았 다. 아들은 폰을 챙기지도 않 고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쇼 파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핸 드폰을 바라보며 남편이 말했 다. "아니, 이게 어때서? 이게 뭐가 창피하다는거야? 어이 가 없네.", "애들은 그럴 수 있 어. 남들 시선 신경쓰는 나이 잖아." 황당해하는 남편에게 아이 마음을 대신 전해주었다. 최신폰이 아니라고
고싶을 만큼 부끄럽다. 또 누
군가에게는 엄청나게 부끄러
운 일이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기도 하다. 부끄러움은 그
런거다. 지극히 지극히 개인적
이다. 옳고 그름이 들어갈 틈
이 없다. 그냥 그런거다.
지금은 부끄러워했다는 사
실이 부끄러워 말하기 껄끄
럽지만 내게도 그런 부끄러
움이 있다. 남들은 부끄러워
하지 않는데, 나 혼자 부끄
러워 말도 못 꺼냈던 일.(부
끄럽다는 말이 도대체 몇 번
이나 나오는거냐아!) 웃지마
시라, 친구어머니 소개로 남
편을 만났다는 점이다. 소개
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다
니! 자연스런 만남을 추구하
는 기존의 내 연애관과 부합
하지도 않는 만남이었거니 와, 열정적인 사랑을 최고의
선으로 두었던 내 가치관과 어
긋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래
서 세 번째 만남에서 결혼하자
고 한 남편을 믿을 수가 없었
고 이후로 2년을 더 꽉 채우
고 나서야 결혼을 결심했다.
그러고도 소개로 만나서 한 결
혼인지라 혹시나 내가 사람의
조건을 보고 한 결혼인걸까 스
스로 의심하느라 부끄러웠다.
서로 끌려서 자연스럽게 사랑
에 빠져서 한 결혼이 아니라
적당한 사람 둘을 붙여 세운
인위적인 만남으로 결혼했다
는 게 자존심 상했다. 그야말
로 젊은 날의 치기와 허세였
다. 지금은 확실히 말한다. 조
건 보고 결혼했다면 이 남자와
안했지...... 그럼그럼.
이런 편견 가득한 부끄러움도
지니고 있었는데, 최신 기종
이 아니라 친구들한테 부끄럽
다는 아이 마음도 충분히 이해
되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다
시 폰을 사줄 수도 없고, 게다
가 그 비싼 폰을 사줄 생각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그저 기
다리는 수 밖에.
아이는 집에서 게임용으로만
핸드폰을 썼고, 절대로 학교에
가져가지 않았다. 졸업식 당일
까지. 하지만 부처님은 손바닥
위에 손오공을 올려놓고 있지
않은가. 내 아이 성향은 내가
안다. 기회를 잡아야 했다. 졸
업식에 가는 큰 애 주머니에
얼른 작은아이 핸드폰을 넣어
줬다. "졸업식 끝나고 이따가
유니 주머니에 얼른 넣어줘."
내 계산은 이랬다. 다른 사람
들 앞에서 안 가져간다고 실랑
이 벌이는 건 부끄러워할테니
어쩔 수 없이 챙겨갈 것이고,
친구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보
면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고,
친구와 놀다보면 자연스레 자 기 핸드폰을 꺼내 사용할거다.
졸업식이 끝났다. 후다닥 사 진을 찍고 후다닥 인사를 나
누는 사이, 큰 애는 엄마의 미 션을 충실히 이행했다. 아이 는 주머니에 새 핸드폰을 넣고
친구와 사이좋게 학교를 나섰
다. 그날 오후, 아이에게서 카 톡이 왔다. 친구들이랑 같이 핸드폰 게임하면서 놀고 있 다고. 내 계산이 맞았다. 기분 좋게 아들에게 카톡 이모티콘 을 선물로 보내줬다. 자기 핸
드폰이 다른 아이들보다 떨어 지는 기종이라서 썩 내켜하지
는 않지만, 거부하지 않고 이 제는 잘 쓰고 있다. 아이가 자 신의 핸드폰을 친구들 앞에서 꺼냈을 때, 상대의 반응을 걱
정하며 몸이 위축되었을 때, 생각만큼 무시당하지 않는 것 을 알고 조금 편안해 졌을 때, 그때마다 아이 마음에는 어떤 화학작용들이 벌어졌을까? 자신의 부끄러움을 마주하고 흘려보낸 것은 아니지만, 조 금은 해소되는 경험을 통해 마
음의 벽이 더 튼튼해졌기를
자 신에게는 천근의 무게로 다가 오는 부끄러움이 있다.
멸치따위 죽어버려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립스 틱도 공들여 발랐다. 전 남친
예식장에 가는 구여친 정도 의 비장함은 아니었어도 평소
보다는 좀 더 차림새에 신경을
썼다. 어쨌든 옛날 남자친구와
만나는 거니까.
약속장소는 그 친구 덕분에 알
게 되고 둘이 자주 찾았던 홍
대에 있는 작은 바였다. 좁고
긴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었
다. 몇 개 없는 테이블과 가늘 고 긴 카운터, 어둑한 조명과
인디밴드들의 음악까지, 어
두운 푸른 빛으로 꾸민 작은
공간은 여전히 내 취향이었다.
마주앉은 사람은 그다지 달라
진 점이 보이지 않았다. 둘 다
크게 어색해하지 않았고, 소소
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작은 병
맥주를 한 병씩 마시고 헤어졌
다.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뭐였
는지는 전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분명 시덥잖은 이야기들
이었을 거다. 단 한 장면을 제
외하고. 자리에 앉고 얼마되지 않아 기본 안주로 중간크기 멸
치와 고추장이 나왔다. 별 생
각없이 먹으라고 권했는데, 그
남자가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 멸치 싫어하잖아."
끝난 사랑은 멸치와 닮았다
스물일곱에 만난 사람과 스물
아홉에 헤어졌다. 최악의 이별
이었다. 먼저는 오래전 첫 사
랑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고 했 고, 다음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스스로 의심하고 있다고 했다.
정확히는 양성애자인 것 같다 고 했다, 남자를 좋아한다고.
그래서 결혼할 수 없으니 헤어 지겠다는 얘기였다.
지금이라면 미친놈, 하고 뒤도 안 보고 돌아설 거 같은데, 그
때는 꽤나 힘들어했고, 구질구 질하게 굴기도 했다. 어쨌거나
동안은 진심으로 좋아 했으니까.
고 나면 부끄럽지만 그때는 멋 지다고 생각하는 그 병을 나도 앓았다. 이름하여 '쿨병'. 한때 좋은 인연이었고, 앞으로 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 이 궁금해서, 괜시리 연락을 했고(뭐하러!) 쓸데없이 약속 을 잡았고(그러니까 뭐하러!!) 바보같이 만났다(다시 한 번 말한다, 뭐하러!!!) 그리고 멸 치를 만난거다. 말라비틀어져 버석거리는 멸치, 바다의 흔 적은 비린내로만 남은 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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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를 싫어한다는 말은 듣
고, 나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잠시 뒤 내 둔한 뇌가 삐그덕
대면서 어떤 의도에서 나온
말인가를 추측했고 뇌 한편에
치워둔 기억을 하나 끄집어냈
다. 아, 이 남자는 멸치를 못 먹
었다. 나는 멸치를 싫어하는
사소한 취향 따위 까맣게 잊
었는데, 이 남자는 내가 여전
히, 당연하게 자신의 취향을
기억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러길 바란건가? 어째
서? 왜?
멸치 덕분에 추억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머리가 차
가워졌다. 이별의 순간도 떠
올랐다. 그 날 이후로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지난 사랑은 부끄럽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몇 마디 나눠
보지 않아 저 사람은 나를 좋
아하겠구나 직감했고, 직감처
럼 얼마 뒤에 연인이 되었다.
이전의 지지부진한 연애들은
열외로 친다면, 첫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사랑이었다. 나
의 진통제. 어느 날은 일기에
이렇게 적기도 했던 그런 사
랑이었다. 하지만 이별의 순
간은 조금 부끄럽다. 그냥 사
랑이 식었어, 혹은 다른 사람
이 생겼어, 라고 말했으면 되
었을 것을 굳이 자신의 성정
체성 운운하며 헤어지자고 말
하는 방식으로 이별을 선고당
했던 내가. 다시 생각해보자고
울먹일 것이 아니라 핑계대지
말고 솔직해지라고 소리쳐주
지 못한 내가.
덕분에 나는 작은 부끄러움과
함께 오래도록 술자리 안주가
될 이야기를 하나 얻었다. 누
구나 듣고나면 남자를 비난했 고, 비겁하다며 욕했다. 청중
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쯤, 나
는 술 한 모금 마신 뒤 이야기 를 계속한다.
"그 남자, 몇 년 뒤에 딴 여자 랑 결혼했잖아."
입에 칼을 문 소설가와의 합평
부끄러움 수집가 – 9화 by 피어라 / 브런치
숫자에 약한 내가 그 날이 언 제였는지 정확히 기억한다. 우연히도 그 날은 내 생일이었 으니까. 22년 12월 22일. 그 날
은 내 생애 첫 소설 합평이 있 는 날이었다.
그 해 가을, 지역의 한 서점에 서 시의 지원을 받아 독서모임 과 글쓰기모임을 열었다. 둘
이지
이 넘는 서울나들이를 다녔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나부랭 이는 마냥 들떠 첫 수업시간에
30분 전에 도착했다. 좁은 나
무계단을 올라 3층 강의실에
들어갔다. 두 줄로 나란히 책
상이 늘어서있고 맨 앞자리에 는 음료와 간식이 준비되어 있 었다. 초콜릿과 사탕 몇 알을
집어 앞자리에 앉았다. 펼쳐 놓은 책을 읽는 둥 마는 둥하 며 가져간 커피를 찔끔찔끔 마 셨다. 차례로 사람들이 강의실
다 관심있었지만 독서모임은 시간이 맞지 않아 4회차 글쓰 기 모임을 신청했다. 금요일 밤마다 모여 선생님의 리드 에 따라 써온 글을 나누는 모
임이었다. 네다섯명이 모이
는 작은 모임이었지만 큐레이
션이 확실한 서점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서로의 내밀한 글
들을 읽고 나누는 시간은 정겹
에 도착하고 어색한 공기가 가
득한 가운데, 각자 자신의 노 트북, 패드 등등을 책상위에 올렸다. 20명 남짓한 사람들
가운데 책상위에 연필과 노
트를 올려둔 사람은 나 하나였
등단한 사람과 투고하고 기다리면서 감을 잃 지 않으려고 신청했다는 사람 도 있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다들 습작은 두세 편에서 여섯 편까지 다양하게 써본 경험들 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사람 들 틈에서 마지막, 내 소개 차 례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자기 소 개였다.
고 아름다웠다. 2번째 시간이
끝나고 주어진 글감은 내가 아
는 누군가를 객관적인 시선으
로 써보기였다. 일주일간 고심
하며 써보았더니 꼭, 소설속의
한 장면 같았다. 소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에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나로서도 이해
가 가지 않는 황당하게 느껴질
법한 충동. 그리고 운명처럼
우연히, 인스타 피드에서 소
설창작교실광고를 보았다. 합
정에 있는 모아카데미에서 열
리는 8회차 수업이었다. 유료
였지만 고민하지 않고 등록했
다. 무슨 용기였는지 지금도
의아할 정도다. 그렇게 11월
부터 12월 마지막 주까지 8주
간 매주 목요일에 퇴근하고 저 녁도 먹지 못한 채 왕복 3시간
다. 곧 수업을 진행할 선생님
이 들어오셨다. 등단하고 소
설집을 내고 활발히 작품활동
을 하고 있는 젊은 작가였다.
잠시 적막이 흐른 뒤에 선생님
의 인사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평소보다 요 란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럼, 간단하게 자기 소개부
터 해볼까요?" 피할 수 없는
자기 소개의 시간이 다가왔 다. 어떤 말을 하면 좋을 지 생 각하는데 선생님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습작을 몇 편 쓰셨는지 같이 얘기해주세요."
습작? 써 둔 소설이 몇 편이나 되는지를 말하라고? 무슨 말
"안녕하세요, @@@입니다. 소설은 한 번도 써본 적 없고 왕복 3시간 걸리는 경기도에 서 전철로 와서 수업 끝나면 바로 가야하지만 그래도 뒷풀 이가 있으면 열심히 참여하겠 습니다."
그러니까
가는 다소 빡빡한 커리큘럼이
었다. 그러려면 3주차에는 이
미 단편소설 한 편을 가지고 있
어야 했고, 나는 그야말로 '멘
붕'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다
행인 건 내 순서는 6주차(7주
였던가)? 였다는 정도.
환불을 신청하는 게 옳았을
까? 다른 강의를 찾아야 했을
까? 써 본적도 없는 소설을 나
혼자 끙끙대고 써본다는 게 말
이 되나? 분량도 지금껏 써 본
적 없는 분량이었다. 최소 A4
7장 이상. 그러나 한 번도 그
만둔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
다. 매주 다른 분들이 올린 글
을 출력해서 열심히 밑줄 그
어가며 읽고 내가 느낀 좋은
점을 이야기했다. 부족하지만
어색하게 느껴진 점도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땅굴을 파
서 브라질에 가서 예수상 밑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어야 한
다. 도대체 내가 뭘 안다고 나
불댔을까? 내가 하는 말들이
말이기는 했을까? 부끄러움
을 넘어서 수치스럽다. 어쨌
거나 시간은 흘렀고, 나는 간
신히 A4 7매 분량의 짧은 소설
비스무리한 것(소설이라 부르
기 민망한!)을 완성했다. 그리
고 12월 22일 생일날. 퇴근하
자마자 부지런히 전철을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 날 합평자는 세 명이었고
나는 두 번째 순서였다. 내 앞
사람도 많이 지적 받은터라 분
위기가 조금 무거웠다. 먼저
다같이 돌아가며 윤독을 하
고 합평이 이어졌다. 아마 지
금까지 이 수업에서 단 하나의
칭찬도 듣지 못한 사람은 내가
유일할거다. 부끄러워할 여유
도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지적
사항들을 정신없이 받아적으
며 대쉬보드 위의 고개 흔드는
인형처럼 고개만 끄덕였다.
아동문학으로 이미 등단하신
분이, 비판만 받는 내가 안쓰
러우셨는지 어쩔줄 몰라하시
며 "아니, 좀 너무한거 같은
데, 아유, 그래도, 열심히 쓰
셨어요. 너무 상처받지 마시
고......"라고 명백히 나를 달
래주려는 의도로 말을 돌리셨
다. 아, 어설픈 연민이 더 상처
라는 걸 그때 또 체감했다. 모
두의 한 마디가 끝나고 말투
는 조곤조곤하지만 내용은 날
카로운 선생님이 입을 여셨다.
"내가 잘 안 그러는데, 오늘 입
에 칼을 물었네요."
그랬다. 정말 선생님은 입에
칼을 물고 나를 난도질 하셨
다.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조
로처럼 쌍칼에 이어 입에 한
개의 검을 더 문 검객처럼 무
자비하게 칼을 휘두르셨다.
듣고만 있는데 불에 데인 것
같다는 심정이 무언지 절절
하게 깨달았다. 가장 아팠던
부분은 주제에 관한 대목이
었다. 문장이나 글의 표현, 묘
사나 구도 같은 문제가 아니
라, 주제를 지적하셨다. 주제
가 없다. 진부하고 고루하다.
글을 못썼다는 말 보다 이쪽이
더 상처였다. 선생님은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많이 읽
어보라는 친절한 조언으로 마
무리 지으셨다.
주제라니. 예상치 못한 지적
이었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
고 두리뭉술하게 좋은 게 좋
은거라고 살아왔던 내 삶의
태도와 끝까지 밀고 나가지
않는 내 태만에 대해 반성하
게 되었다. 내가 중요하게 생
각했던 부분이 요즘 사람들은
관심없는 주제라는 것도 많이
아팠다. 내가 늙고 고루한 사
람이 되었나 보다 싶은 충격 과 그나마도 내 생각을 분명 히 정리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너무도 선명했다. 어떻게 끝났
는지도 모르게 다음 합평이 지
났다. 수업이 끝나고 정리해서
나오는데, 약하게 눈발이 날리 고 있었다. 전철역까지 걸어가
는데, 눈물이 났다. 초등학교 1
학년 받아쓰기 시험 0점 맞은
날보다 더 부끄러웠다. 한 발
한 발 쌓인 눈을 밟는데, 이런
얕은 각오로는 희망을 주는 글
을 쓰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속상
해서 자꾸 눈물이 났다. 한강
을 지나고 두어 번 환승을 해 서 전철역에서 나왔을 때는 이
미 밤 11시가 넘어있었다. 한 파였고, 눈이 계속 내리고 있 었다.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마지막 수업 날, 선생님의 소 설집을 들고가서 사인을 받 았다. 이전에 그 소설집에 수 록된 글들을 읽으며 이런 글
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 지 궁금했었다. 어떤 사람이
(코디네이터 김영지) - 1/24 Expo Court, Ashmore Qld 4214 - 0435 806 828 - dudwl87@nate.com - 수업 : 토요일 오전 9:30 - 오후 12:00
0493 861 646
- 491 Waterworks Rd Ashgrove Qld 4060 - 수업: 토요일 오후 1:00 – 오후 4:00 - 0433 475 658 - 수업: 일요일 오전 10:30 - 오후 1:30
기에 이렇게 맑고,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 는 걸까. 이런 글을 쓰는 사람 처럼 아픔을 알고 나누고 싶 어하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 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수 업을 마치며 어렴풋이 이해 했다. 선생님이 말한 주제가 있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 이로구나.
나보다 훨씬 젊은 내 첫 소설 선생님은 내가 내민 책 면지 에 이렇게
꼴찌의 사정진짜 전교 꼴등
부끄러움 수집가 – 10화 by
TURBO 냉동
피로 시작하는 말, 피로 시작하는 날.
by
고작 gojak / 브런치
환절기에 일도 많고,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병원을 들러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갔다
처방전을 약사님에게 드리고 기다리고 있는데
먼저 와서 약을 기다리는 엄마와 아들이 보였다
엄마도 감기에 걸려 지쳐 보였고 아이도 힘이 없어
계속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엄마가 말했다
"엄마도 너무 힘들고 피곤해~"
아들이 말했다
"피곤해? 그럼 피 자로 시작하는 말하기 하자"라며
먼저 시작했다
엄마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 했다
아들 : 피카츄!
엄마 : 피곤해~
아들 : 피오나!
엄마 : 피로회복~
아들 : 뭐야 ㅠㅠ...
아들이 금방 할게 없어지자 나랑 눈이 마주쳤고,
내가 작은 소리로 "피노키오~" 했다
아들 : 피노키오!
엄마 : 피순대~
아들은 또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엄마는 묘한 눈빛으
로 나를 봤다
나 : (피자헛) 아들 : 피자헛!
엄마 : 피딱지~
나 : (피라미드) 아들 : 피라미드!
엄마 : 피뢰침!!
나 : (피지컬) 아들 : 피지컬!
엄마 : 피지섬!!
나 : (피자스쿨) 아들 : 피자스쿨!!
엄마 : 피해자
나 : (피콜로) 아들 피콜로!!
엄마 : 피해망상!!
아들이 다시 나를 쳐다보자 엄마가 약간 짜증을 내며
"이제 그만~ 아저씨 고맙습니다 해"
그리고 약을 받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약국을 나갔다
보라카이에서 한 달 살기?
얼마 전, 쉼이 절실하다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
눴다. 딱 한 달만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을 표
류하고 싶다는 이야기. 보라카이에서의 완벽 한 휴가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갑자기 떠오 르는 곳이 한 군데 있는데, 혹시 여긴 어때?”막
연히 떠나고 싶은 여행지를 떠올릴 때, 우리의 상상력은 풍부해진다. 매일 아침 고요한 해변
으로의 산책, 오후의 윤슬로 가득한 앞바다에 서의 짜릿한 액티비티, 저녁에는 싱싱한 해산 물과 시원한 맥주 한 잔. 이 상상의 끝에 보라 카이가 있었다.
길이 7km, 너비 1km. 여의도의 약 4배쯤 되
는 작은 산호섬이 세계적인 휴양지로 사랑받 는 사실이 문득 흥미롭다. 이 작은 섬을 연간 약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단다. 2023
년에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약 600
만 명 이상인 것을 고려한다면 정말 놀라운 수 치다. 보라카이의 매력을 지상낙원이라는 상
투적인 말로 대충 설명하고 싶진 않다. 고급 리
조트를 시작으로 다양한 가격대의 숙박 시설.
관광객과 현지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환경. 맑
고 투명한 바다와 기막힌 풍경을 자랑하는 산
도 있다. 그중 지금의 보라카이를 만든 장본인
은 단연 ‘화이트 비치’다. 이름처럼 하얗고 곱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보라카이는 한 달 살기 여행을 하기 좋다. 필
리핀의 칼 같은 ‘30일 무비자’ 때문이다. 90일
무비자 국가들도 많은데 왜 하필 필리핀이냐
고?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석 달이 되는 놀라
운 늘어짐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엔 한 달 살기도 일상으로 되돌아가기 위 한 여정이니까.
White Beach
White Beach, Boracay, Aklan, 필리핀
다음으론 ‘가까운 거리’다. 인천공항에서 편
도 약 4시간
넓다. 일본을 제외하고 한국에서 연결되는 가 장 가까운 무비자 국가 중 하나이니, 스테디셀 러일 수밖에. ‘언어의 편리성’도 한몫 한다. 필 리핀은 타갈로그어와 함께 영어를 공식 언어 로 사용한다. 무려 인구의 약 70% 이상이 영
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보라카이 같은 유명 관광지에선 오히려 영어를 못하는 사람을 찾
기가 어렵다. 따라서 비영어권 여행지보다 소
통이 훨씬 원활하다. 이 점을 활용해 그동안 미 뤄 온 영어 공부에 도전해 볼 수도 있겠다. 어
학원에 4주 코스가 마련돼 있으며 방학 기간
을 노려 아이의 주니어 영어 캠프를 함께 고려
하는 것도 좋겠다. 한 달 동안 먹고 놀기만 하
는 것 또한 쉽지 않으니까. 보라카이와 한국의
너무 다른 환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식
당, 한인마트, 한인교회 등, 시선을 두는 곳마 다 한글이 안 보이는 곳이 없다. 아예 간판이 한글로만 쓰인 곳도 많다. 한식 없이는 하루라 도 못 견디는 사람이라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다만 ‘저렴한 동남아 물가’를 기대하고 보라카 이를 선택한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보라카 이는 세계적인 휴양지 답게 필리핀 내에서 물 가가 높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보라카이도 사람 사는 곳. 중심가를 벗 어나면 현지인들을 위한 시장과 가게를 어렵 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특히 필리핀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싸리-싸리(Sari-Sari)’라고 불리는 작은 구멍가게는 현지인의 ‘참새 방앗간’이다. ‘모두-모두’라는 뜻처럼 물, 음료, 과자, 과일, 길거리 음식, 술, 샴푸, 린스, 치약, 약 등 없는 것 빼고 다 파는 만물상이다.
디자인 철학은 모던함이다. 편안한 침대와 50 인치의 TV를 비롯한 필수 요소들로만 깔끔하
게 구성했다. 더불어 감각적인 비즈니스용 테
이블과 푹신한 안락의자가 편리함을 더했다.
휴양지의 리조트는 자고로 맛있어야 한다. 현
지식을 비롯한 세계 요리를 선보이며 테이크
아웃이 가능한 페이스트리와 커피를 제공한 다. 개인적으로 눈길이 가는 공간은 로비 라 운지. 포 포인츠 바이 쉐라톤만의 시그니처 프
로그램인 베스트 브루의 엄선된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다.
STAY
보라카이를
시중에서 판다면 금세 입소문을 탈 묵직한 짜 릿함이 매력적이다. 이외에도 24시간 운영되 는 피트니스 센터와 야외 랩 풀, 자쿠지, 풀 데 크 등의 여가 공간을 제공하고 최대 1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50m2 규모의 이벤트
이제 보라카이 한 달 살기가 얼추 그려진 것 같다. 집을 떠나서도 나만의
Four Points by Sheraton Boracay 주소: Boracay Island, Station 1, Malay, 5608 Aklan전화: +63 36 286 2399
차 이 나
나타났습니다.
호주에서 연소득 3만 달러 이하 저소득 가구의 거의
며, 한부모 가정이 특히 심각한 위험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자선 단체 푸드뱅크의 ‘2024 기아 보고서(2024 Hunger Report)’에서 340만 가 구가 식량 불안정(food insecurity)을 겪고 있고, 이 중 200만 가구는 그 정도가 “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주요 이유는 생활비 위기입니다.
이들 저소득층 부모들은 자녀가 주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식사를 거르거나 하루 종일 음식을 먹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보고서는 한부모 가정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들 중 3분의 2 이상이 식량 부족을 겪고 있다고 밝혔습 니다.
'푸드뱅크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리아나 케이시 대표는 생활비 위기에서 벗어나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우려를 표했습니다.
케이시 대표는 “올해 푸드뱅크의 기아 보고서에서 가장 심각한 우려 사항 중 하나 는 지난해에는 3명 중 1명이 친구나 가족에게 식량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반면 올 해는 4명 중 단 1명만 그것이 가능했다는 것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상당히 감소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우리는 생활비 위기로부터의 회복이 하룻밤 사이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 을 알고 있고, 몇 개월, 심지어 몇 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준비하고 있다”면서 “그 동안 지역 사회를 지탱할 수 있도록 식량 지원 단체에 적절한 자금과 지원이 제공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사 출처 : SBS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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콴타스 항공이 내년 6월 14일에 시드니~인천 노선의 운항을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콴타스 항공이 시드니~인천 노선의 운항을 내년 6월 14일에 중단한다고 발표했 습니다. 대신 콴타스는 저가항공사인 젯스타의 시드니~인천 간 운항을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콴타스는 또한 내년 항공 운항 일정을 밝히며 처음으로 팔라우행 항 공편을 운항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콴타스는 수요일 보도자료를 통해 브리즈번에서 팔라우로 향하는 항공편이 “앞 으로 몇 주안에 티켓 판매를 시작할 것”이고 “몇 달 안에 비행기가 이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브리즈번에서 비행기로 약 6시간 거리에 있는 팔라우는 인구가 2만 명도 채 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약 300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 며, 그중 8개 섬에 주민이 거주하고 있고 남태평양의 청정 휴양지이자 스쿠버 다
이빙의 천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팔라우의 수도는 가장 큰 섬인 바벨다옵에 위치한 응게룰무드입니다.
콴타스 그룹의 캠 월리스 최고 경영자는 콴타스가 “수요 증가에 대응하고 있다”며 “강력한 수요가 있는 다른 노선으로 항공기를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콴타스는 2025년 2월부터 12개월 동안 약 22만 개 좌석을 국제선
Roma Street Parkland Tour
가이드와 함께하는 로마 스트리트 파크랜드 투어
일시 : 2024년 11월 20일(수) 10:00AM - 11:30AM
장소 : Roma Street Parkland (1 Parkland Boulevard, Brisbane City QLD 4000)
행사 진행시간 : 1시간 30분 소요
경험이 풍부하고 지식이 풍부한 자원봉사 가이드가 안내하는
로마 스트리트 파크랜드(Roma Street Parkland) 투어에 초대합니다.
2001년 4월 6일에 공식 오픈한 로마 스트리트 파크랜드를 함께 거닐며 가이드가 공원의 매력적인 진화와 디자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해 드립니다.
각 구역의 공원, 식물, 야생동물, 숨겨진 보물의 역사에 대한 하이라이트 스폿을 소개하며, 다양한 사진 촬영 기회도 제공됩니다!
이 투어에는 열대우림(Rainforest) 지역과 스펙터클 가든(Spectacle Garden)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스펙터클 가든에서는 반려견이 출입할 수 없음을 유의하세요).
예약은 아래 QR코드를 스캔하세요.
가로 열쇠
1.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자 무인족
2.추어탕의 재료가 되는 물고기
4.윗사람의 명령을 아랫사람에게 전달함
5.작게 뭉쳐서 이루어진 것
7.가루에 물을 부어 이겨 갬
9.쓴 술이 든 잔. 쓰라린 경험
11.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14.부족한 것을 뒤에 추가하여 징수함
17.어두운 부분
18.집 안에서 주로 쓰는 세간
19.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어지는 비탈진 길
20.남이 노는 판에 거저 끼어드는 일
세로 열쇠
1.독일의 자동차 전용 고속 도로
2.어떤 한도에 미치지 못함
3.국민 총생산
4.굽이 높은 여자용 구두
6.이미 사용하였거나 오래됨
8.대나무 통속에 천일염을 넣어 구워 만든 가루
10.김치를 담그는 주 재료
12.닭고기 튀김
13.시험적으로 대충 그린 그림
15.개울에 돌을 드문드문 놓아 만든 다리
16.은하수. 용이 사는 시내
18.살아가기 위한 방도
스도쿠 SUDDOKU
유정훈 목사 골드코스트 온누리교회
우리는 한 해를 점검하는 시
간을 보통 12월이 되어서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 때가
되면 너무 늦은 때이다. 이미
한 해는 다 지나 마지막 달이
되었고, 이제 곧 한 해를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12월이 되어서야 올
한 해 세웠던 계획들이 제대
로 실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때가 늦었을 뿐 아니라, 확인을 하였다 하더라도 다
시금 목표한 삶을 살아가도록
삶에 변화를 일구기에는 시간
이 너무 촉박하다. 결국 12월
이 되어 한 해를 점검하게 되
면, 늘 후회만 남고, 삶은 변화
시키지 못한 채 내년을 맞이 하게 된다.
그렇기에, 11월, 12월 이렇게
남은 두 달 동안, 연초에 세운
계획과 목표하는 삶을 제대로
잘 살아 왔는지 돌아보아야한
다. 올 해 세운 삶의 목표대로
제대로 살아왔는지, 행여나
지금이라도 궤도를 수정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포
기할 것은 포기하고 내년에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로 정
리할 것인지 등에 대해 점검 과 선택, 결정과 추진을 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 의 신앙 생활을 돌아보고, 하
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깊어
졌는지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
야 한다. 한 해를 시작하며 이
루고자 했던 신앙의 목표치에
얼마나 도달했는지 살펴봄으
로써 반성해야 하는 영역은
반성하고, 늦었지만 지금이
라도 경건 생활에 도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말씀읽기나 기도생활 등등에 박차를 가해 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에 또다시 성경 1독하기 등, 올 해 하지 못한 신앙생활을 삶의 목표로 삼는 쳇바퀴 도 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자,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점검해야 될 영역은 어떤 것 이 있을까?
신앙인에게 가장 최우선 순 위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얼마만 큼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는
지, 신앙의 깊이에 대한 점검 이 필요하다. 하나님과의 관 계설정은 결국 말씀과 기도
생활이다.
말씀생활을 어떻게 해 왔는 가? 교회 출석을 넘어, 성경 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임 과 그룹에 참여하여 하나님과 복음을 알아가는 일에 힘써왔 는가? ‘성경을 나이만큼 읽자’
라는 말이 있는데, 신앙인으 로 1년에 1독하는 신앙생활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 길 원한다.
또한 기도생활을 점검해야 한
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친밀한 사귐과 누림을 가능
케하는 경건생활의 도구이다.
년 수의 오랜 기도, 절대적 시 간의 오랜 기도, 뚫어내고 돌
파하는 영성있는 기도의 삶 을 제대로 살아왔는가? 요즘
얼마나 기도에 올인하고 있
는가? 1시간 기도에 동참하여
날마다 영이 새로워지는 삶을 경험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아 야한다.
더 나아가, 신앙은 위에 계신 하나님과 수직적 관계 뿐만 아니라, 그렇게 경험하게 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분 의 영광을 다른 사람들과 나
누는 것이 신앙의 또다른 측 면이다.
영혼을 사랑으로 섬기며, 나 누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 한 해 동안 이웃에게 얼마나 사 랑을 실천하며 살아왔는지 를 돌아보아야한다. 남은 2 개월, 그동안 만나지 못한 사 람, 섬기지 못한 영혼들을 위 해 사랑을 실천하기로 결단해 야 한다.
어느 특정한 한 날, 특정한 시 간, 혼자 골방이든,
정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전 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권장합니다. 이를 통해 세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효율적인 재 무 관리를 하시기 바랍니다.
Reference: ATO QC46004, QC46019, QC46027, QC46035 & QC46014
Disclaimer:이 칼럼은 작성일 당시의 정보들 을 토대로 일반적인 정보 공유 목적으로만 제 공되며, 전문적인 세법 또는 세무 조언을 대체 할
Written by: 김재미 공인회계사 (Sedley Koschel Financial Group)
개인 서비스 소득 (PSI)이란 무엇일까요?
개인 서비스 소득(PSI) 은 주로 개인의 노력이
나 기술로 벌어들인 소득으로 일반적으로 개인
의 전문성이 바탕이 되는 의료 종사자나 컨설
턴트의 소득, 전문적인 기술을 활용하여 발생
하는 스포츠 선수나 연예인의 소득 등 개인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 제공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왜 PSI를 이해해야 할까요?
PSI는 일반적인 사업 소득과는 다른 특징을 가
지고 있으며, PSI를 받는 납세자는 해당 소득을
얻기 위해 직접 관련된 특정 비용만 공제할 수
있어 일반적인 사업 비용은 전액 공제가 불가
능할 수 있습니다. PSI는 개인 소득으로 세금이
부과되며, 개인의 세금 신고서에 포함하게 되 는 등 신고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PSI vs. PSB: 두 개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비용 공제 범위입니다. PSI는 개인의 노력에 기반한 소득이므로 공제 가능한 비용이 제한적이지만, PSB는 사업 소득으로 인정되어 더 많은 비용 을 공제할 수 있습니다.
PSI 규정 적용 여부 판단 기준
해당 소득의 50% 이상이 주로 개인의 노동, 기 술, 지식, 전문성 또는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이 루어진다면 해당 소득은 PSI로 간주될 수 있습 니다. 이는 개별 계약에서 발생한 소득을 기준
으로 판단해야 하며, 계약의 조건, 청구서 및 작
성된 합의서 등이 소득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개인 서비스 소득 (PSI) 테스트
소득이 PSI인 경우 개인 서비스 소득이 PSI로
적용되는지는 다음 테스트들을 통해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1.결과 테스트 (Results Test): 해당 회계연도 에 PSI를 받았다면, PSI의 75% 이상에 대해
다음 세 가지 조건에 모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실행합니다. 첫째, PSI는 계
약서에 명시된 결과나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지급되었습니까? 둘째, 작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도구나 장비를 개인이 제공해야 했습
니까? 셋째, 개인은 작업의 결함을 수정할 책 임이 있었습니까?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면
PSI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약 위의 조건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다음
세 가지 개인 서비스 사업 (PSB) 테스트를 통
하여 PSI 가 PSB로 간주될지 아닐지 구분하
실 수 있습니다.
2.비관련 고객 테스트 (Unrelated Client Test): 해당 회계연도에 비관련 고객 테스트 를 통과하려면, 서로 연관되지 않은 둘 이상
의 고객에게서 PSI를 받아야 합니다. 이 경우, 인력 파견 업체나 유사한 기관에 등록하여
얻은 고객은 포함되지 않으며 공공에 (offer to the public) 서비스를 제공해야 합니다.
3.고용 테스트 (Employment Test): 고용 테
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해당 회계연도 동
안 한 명 이상의 견습생 (apprentice)을 6개
월 이상 고용했거나, 고용된 근로자나 하청
업체가 주된 작업의 20% 이상을 수행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4.사업장 테스트 (Business Premises Test):
4 PSB 테스트 중 하나인 사업장 테스트를 사
용하여 자가 평가하려면 80% 규칙을 먼저
충족해야 합니다. 80% 규칙이 충족된 상태
에서 사업장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소득 연도
동안 사업장이 PSI를 얻거나 생산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며, 전적으로 본인만 사용하고, 개인 주거지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고객의 사업장과도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
어야 하는 등의 조건들을 충족해야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ATO 웹사이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호주에서 PSI(개인 서비스 소득), PSB(개인
서비스 사업) 및 기타 사업 소득은 소득세 신 고 방식과 공제 가능한 비용등 규정에 차이
가 있을 수 있으므로, 소득에 대한 명확한 이
해가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소득의 정확한
이해는 세금 절감, 사업 구조 설계 등 여러 측
면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내 귀에 도청 장치가 있다?
실체 없는 소리, 이명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명이란 외부의 소리 자극 없이 귓속 또
는 머릿속에서 들리는 이상 음감을 말한 다. 사실 경미한 이명 증상은 대부분이 느 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방음이 완벽
하게 이뤄진 방에서는 약 95%가 20dB( 데시벨) 이하의 이명을 느끼지만 이는 임
상적으로 이명이라고 하지 않으며, 자신
을 괴롭히는 정도의 잡음이 느껴질 때를
이명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적당한 소음
이 있는 환경에서 외부로부터의 청각적
인 자극이 없이도 자신을 괴롭히는 실체
없는 소리가 들린다면 이명을 의심해 봐 야 한다.
이명은 전체 인구의 10~15%가 경험할 정
도로 흔한 증상이지만, 일시적 증상에 그
치거나 휴식을 취하면 쉽게 사라지는 경
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증상이 있어도 대
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병을 키우는 경우
도 적지 않다. 특히 일상과 수면에 장애를
느껴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중증 이명 환
자의 비율은 전체 이명 환자의 약 20%로
그 비율이 낮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의 발표에 의하면 이명으로 진료받은 사
람은 2002년 14만여 명에서 2017년 35
만여 명으로 15년 사이에 2배가 넘게 증
가했다. 특히 젊은 층에서도 이어폰 사용
이 급증하면서 이명을 겪는 이들이 많아
지고 있다니, ‘나는 예외’라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여름철 더위는
일시적인 이명 증상의 원인
현재 이명의 병태생리는 명확하게 밝혀
지지 않았기에, 이명에 대한 치료법 역시
뚜렷하게 정립돼 있지 않다. 약물요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는 이명 자체를 치
료하기보다 이명에 동반된 증상을 줄여
주는 역할에 국한된다.
그렇기에 지속적인 상담과 훈련을 통해
이명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긴장
감과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만으로도 이 명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
음 발생기를 사용해 이명의 강도보다 낮 은 강도의 음자극을 주어 이명에 익숙해 지도록 훈련하거나 상담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고 스트레스를 낮추는 것도 방 법이다. 궁극적으로 환자 자신이 일상에
서 이명을 잊고 지낼 수 있도록 꾸준히 노
력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모든 이명 증상이 병원 치
료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
나 건강 이상으로 인한 일시적인 이명 증 상은 누구나 흔하게 경험할 수 있다. 특
히 여름철 장시간 땡볕을 쬐면 체온조절
중추의 이상으로 이명 증상을 느낄 수 있 다. 체열이 머리와 얼굴에 몰리는 상열감
이 생기면서 내이신경으로 향하는 혈액 의 압력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혈액순환
에 일시적 장애를 일으켜 이명 증상이 발 생하는 것이다. 물론 정상 체온을 유지하 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증상 대부분은 사라지지만,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지
속적인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여름철에는 체온 유지와 스트레스 관리 에 각별히 유의하도록 하자.
이명을 예방하기 위한 생활습관
1. 이어폰을 사용하는 시간을 줄이고 적 정 음량을 사용하며, 되도록 시끄러운 장소를 피한다.
2. 이명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피하고,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 소법을 찾는다.
3. 과로를 피하고 적당한 휴식을 통해 면 역력을 높인다.
4. 커피, 콜라, 담배 등 신경자극물질의 과 도한 섭취를 피한다.
5. 이명은 심리적 요인이 크기 때문에 이 명에 대해 자꾸 생각하지 말고 관심을 돌릴 수 있는 다른 취미 생활이나 환경 을 만들도록 한다.
6. 여름철 더위로 인한 체온 상승이 일시 적인 이명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장시간 땡볕에 노출되는 것을 피한다.
YELLOW
02 9210 0200
02 9210 0216
주호주 한국대사관 02 6270 4100
한국관광공사 02 9252 4147
광복회 호주지회 0452 188 070
긴급전화(경찰, 앰블런스, 화재) 000
Police Liaison Unit(한국어) 3364 3217 - 경찰업무 관련 한국어로 통화를 원할 때
Police Link 131 444 - 일반 경찰업무, 비자 분실 등
가정폭력 1800 811 811
버스
교민단체
골드코스트 한인회 0418 763 186
대양주 한인회 총연합회 0427 566 474
월남전 참전자 전우회 퀸즐랜드지회 0411 378 391
재향군인회 퀸즐랜드 분회 0412 629 358
퀸즐랜드 주 한인회 3390 0024/ 0424 724 624
퀸즐랜드 한국 참전 유공자회 0414 295 709
퀸즐랜드 한인 골프회 0430 202 239
퀸즐랜드 한인경로회 0418 883 377/3345 1400
퀸즐랜드 ROTC 동문회 0415 695 635
총영사관-홍보 02 9210 0215 주시드니
02 9210 0218
주시드니 총영사관-민원 02 9210 0234 통화량이 많아 연결에 다소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관련 문의는 우선 총영사관 홈페이지 www.koreasydney.net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