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1 - 폴리아모리란 무엇인가?

여러

Vol.1

폴리아모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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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

폴리아모리란 무엇인가?

목차

들어가며

다른 사랑의 방식, 폴리아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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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에세이

이제 ‘연애’가 아니라 ‘사랑’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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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춤을 출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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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서베이1 “나에게 폴리아모리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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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인터뷰 여러 회원 승은, 지민, 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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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서베이2 “어떤 계기로 폴리아모리를 알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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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콘텐츠

폴리아모리가 뭔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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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정보

논모노가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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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서베이3 “나는 폴리아모리 경험이 있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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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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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 Polyamory Network

들어가며

다른 사랑의 방식, 폴리아모리

연애와 사랑을 말할 때 보통은 일대일 독점적 관계를 떠올린다. 이를 ‘모 노아모리(monoamory)’라고 한다. 모든 드라마, 영화, 뉴스 등에서도 당 연히 이러한 독점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가끔은 이런 의문을 갖는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왜 다른 사람에게 끌리는 걸 까?”, “왜 꼭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하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 내가 나쁜 사람일까?” 폴리아모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폴리아모리(polyamory)는 ‘여러’, ‘다자’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폴리 (poly)’와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 ‘아무르(Amor)’의 합성어다. ‘여러 사람 과의 사랑’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한국에서는 ‘비독점 다자연애’로도 부른 다. 동시에 여러 사람과 사랑을 하거나 가족을 꾸리며 살아가는 연애 형태 이다. 폴리아모리가 전제하는 중요한 개념은 ‘상대방을 소유하지 않는 것’ 이다. 그렇기에 폴리아모리는 독점적 일대일 연애가 당연한 사회에서 ‘문 제적 사랑’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폴리아모리가 최근 한국에서 주목받게 된 계기는 성소수자,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과도 이어진다. 자유로운 섹슈 얼리티와 다른 사랑의 방식,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 해 노력하는 태도는 연결되기 때문이다. 폴리아모리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세 명의 파트너들이 서로 관계를 맺 는 ‘트라이어즈’(Triads), 한 명을 중심으로 두 명이 양 옆에 붙어 있는 형 태의 ‘비이’(Vee), 세 명 이상이 모여 집단을 이루어 사랑을 나누는 ‘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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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리티’(Polyfidelity) 등등 다양하다. 몇 명을 어떻게 만나든 폴리아모 리스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바로 ‘상호 합의’이다. 내가 다 른 연인을 만난다는 사실을 나의 파트너에게 미리 말하고 이에 대해 합의 해야 한다. <여러 Vol.1>의 주제는 ‘폴리아모리란 무엇인가’이다. 폴리아모리에 대한 궁금증과 오해에 대해 알아보거나 수정하고, 실제 폴리아모리스트의 삶을 접하면서 이 사랑이 모노아모리와 무엇이 다르고 또한 같은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폴리아모리를 두고 어떤 이는 ‘바람’을 정당화한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새로운 사랑의 방식’이라고도 한다. 또 어떤 이는 한국에는 ‘진정한 폴리 아모리’가 없다고도 한다. 분명한 건 지금 한국에는 폴리아모리로 살아가 는 사람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 외에도 폴리아모리스트라고 본인을 정의하기 위해 알아가는 단계이거나, 모노아모리스트임에도 폴리 아모리를 지지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이들이 폴리아모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폴리아모리 네트워크 ‘여러’에서는 앞서 말한 사람들이 모여서 내는 소 리들을 담고자 이 매거진을 발행하였다. 앞으로 더 많은 ‘폴리아모리’에 대 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2020년 봄, <여러> 편집팀 5

여러 에세이

이제 ‘연애’가 아니라 ‘사랑’을 하겠다 나슬리 힘겹고 지난했던, 그 지옥 같은 연애가 끝났다. 예전에도 연애라는 걸 몇 번 종료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엔 더더욱 허탈하고 공허하다. 아니 유독 그 러하다. 연애의 시작이 그저 그랬기 때문일까. 그저 꽤 오랫동안 연애를 못 한 채 지내다 보니 외롭다고 느끼기도 했고,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 고… 그래서 시작한 연애라 그런 걸까. 나는 그래도 동등한 인격체로서 마주하려고 노력했다고 여겼다. 대화 를 끊임없이 시도했고 관계를 정상적으로 이어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내 가 생각했던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그(녀)는 연 애도 처음이었고 섹스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나에게 정서적으 로 의존하는 경향도 있었고, (내가 생각하기에) 사소한 것 가지고 시비를 따지기 일쑤였다. 아니 사소한 것에 대한 사람의 가치관은 다를 수 있으 니 그것은 둘째치고, 언어를 통해, 대화를 통해 해소하려는 태도보단 당 연하다는 듯 ‘알아서’ 내가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고 행동해주길 끊임없 이 바랐다. 이러한 일들에 기인한 갈등과 싸움 그리고 해소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섹스로 인한 정전. 나의 욕망과 논리와 그(녀)의 욕망과 논리가 끊임없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내가 잘못된 연애를 한 것일까, 아니면 연애라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물론, 최악의 ‒ 최근의 연애가 아니더라도 이전의 모든 연애란 것들이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연애의 시작이 흡사 시장에서의 상거래와 유사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예산(연애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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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는 자신의 매력)과 나를 충족시켜주는 만족의 정도(연애에 있어서는 상대의 매력)를 비교하여 가장 최적의 상품을 거래하는 행위. 그것이 아 니었을까. 매매계약을 끝내고 난 이후에 다른 더 매력적인 상품을 보며 내심 아쉬워하고 부러워하다가 결국 인지부조화의 덫에 걸려 허우적대 며 이미 거래를 끝낸 상품(연애 상대)에 대해 불평하거나 실망하면서 불 행을 자초하는 연애와 이별. 그렇다. 연애란 것이 본질적으로 한계가 명 확한 것이로구나! “이제 이런 연애는 그만하겠다. 아니 연애는 원래 이런 것이다. 연애를 안 하겠다.” 이런 생각에 미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과연 우리가 통상 말하 는 연애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둘 이 과연 일치하는 것인지, 별개의 것인지. 스스로 생각을 정립하기 시작 했다. 지금부터는 그것에 대한 내 나름의 해석이다. 연애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연결되는 코드는 당연히 일대일 독점적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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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이다. 나만 상대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또한 나를 독점한다는 계약을 전제로 관계가 시작된다. 왜 우리는 독점적 연애를 당연하다고 여길까. 독점적 연애 즉, 모노아모리는 사실 현대 사회의 보편타당한 결 혼 형태로 여겨지는 모노가미에 그 바탕이 깔려있고, 모노가미는 전근대 적 일부다처제 사회의 여성에게만 강요하던 정절을 근대 자본주의 시대 에 와서 남성에게까지 확대시킨 개념에 불과하다. 부부관계의 중요한 가 치라고 하는 소위 ‘정절’을 ‘여성만 지킬 것이 아니라 남성들도 함께 지 키는 것’이 이른바 오늘날의 ‘진정한 사랑’으로서의 절대적 전제조건이 며 보편적 사랑관념의 기본 토대이다. 그런데 한 남편(배우자)만을 ‘섬기 는 것’을 가치있다고 여겼던 전근대적 가치를 왜 현대인들이 당연하다는 듯 답습하고 있는 걸까? 핵가족화, 개인주의화된 근대사회에서 파편화된 개인들이 그야말로 ‘배신당하지 않을’ 끈끈한 (성적)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도 있겠지 만, 무엇보다 신분제가 붕괴되고 능력주의가 강조되는 현대 자본주의/자 유주의 시대에서 자기 결핍이나 열등적 요소를 성애적 결합을 통해 극복 혹은 만회하려는 나약한 개인들의 미성숙한 욕망 때문이기도 하다고 나 스스로는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과 시도들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 은 확고하게 내렸다. 인간은 결코 독점적으로 소유될 수 없으며 소유되 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들은 궁극적으로 실패할 것이다. 이 미 현대사회의 불완전한 결혼제도가 ‒ 엄청난 이혼율, 비혼의 증가 등 ‒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몇몇의 성공사례도 충분히 존재하겠지만, 모두가 절대적으로 따라야 할 본보기라고 가르치고 강요할 필요는 전혀 없다. 왜 한 사람만을 선택하여 그(녀)에게 모든 기대와 요구를 충족하려 는 무망한 기획에 동조하는가. 나는 이제 ‘연애’는 하지 않고 ‘사랑’을 하 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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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연애가 아니라 사랑을 하리라.” 나는 이렇게 정의 내렸다. 사랑이라는 것은 한 사람만을 선택할 필요도 없고, 그(녀)에게 나만을 바라보고 나만을 아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 이다. 사랑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고, 내가 더 가치있는 인간이 되고 성숙해지고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다. 내가 정의 내린 사랑과 유사한 형태의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외국에선 이른바 ‘폴리아모리’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 을 몇 년 전부터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떠한 용어보다 나에게 중요한 것 은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마음이, 자존감이 나 자신에게 있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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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에세이

어둠 속에서 춤을 출래 새벽 그날 아침 집을 나서려는 나에게 아빠는 백여덟 번째 신신당부를 했다. “승은아, 네가 어떻게 살아도 상관은 없는데 제발 폴리아모리인지 뭔지 하는 글은 쓰지 마라. 나중에 정말 어떻게 되려고 그러니?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 대답하지 않으면 아빠가 끝내 나를 놓아줄 것 같지 않아서, 오랜만에 보는 아빠와 논쟁하기 싫어서 마지못해 알았다고 답하고 서둘러 집을 나 섰다. 몇 시간 뒤, 나는 카메라 앞에서 섹스와 오르가슴, 폴리아모리에 대한 이 야기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 다큐영화 <휴먼>의 후속작 <우먼> 촬영이 있 는 날. 촬영은 종로의 호텔 꼭대기 층에서 진행됐다. 방에는 영화의 한국 촬영감독과 프랑스 감독, 연출자가 있었다. 암막 커튼을 친 어두운 방에는 의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 의자에 앉으니 하얀 조명과 카메라가 오로지 내 얼굴에 집중됐다. 마치 연극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인터뷰가 시작됐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엄마, 아빠에 대한 기억으로 가볍게 시작된 인터뷰는 점차 폴리아모리와 인공 임신중절, 오르가슴과 섹스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 로 나아갔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쭈뼛댔는데, 꿈같은 분위기에 취해서 나 는 카메라가 찍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신나게 떠들었다. “섹스 판타지는 뭔가요?” “음, 쓰리썸이요? 언젠가 여러 명과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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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오르가슴이란?” “나를 잊고 온전히 육체에 집중하는 시간이요.” (이때 나는 눈꺼풀까지 파르르 떨었다.) 두 시간의 촬영이 끝나고 서로 수고했다고 인사하는데, 프랑스 감독 프 랑이 자신도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나는 불어를 하 지 못하기 때문에 중간에서 한국 촬영 감독이 통역을 해주었다. 프랑은 자 신은 오픈 메리지 관계이며, 아들이 있는데 남편과 합의하에 각자 애인을 만난다고 말했다. 프랑은 한국에서 폴리아모리스트를 만나니 반갑다고 웃 으며 악수를 권했다. 비록 말은 한마디도 안 통했지만, 우리는 깊은 연대감 을 느끼며 진하게 손을 맞잡았다. 생전 관심 없던 불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 각이 들 정도로 촬영과 이후 식사 자리가 즐거웠다. 암막커튼을 친 어두운 방. 하얀 불빛 하나만 존재하던 그 공간에서 나는 무척 자유로웠다. 아빠의 눈살이 끼어들 틈도, 어떻게 그렇게 더러운 걸 욕 망하고 말할 수 있느냐고 비난할 목소리도 없었다. 암흑 속에서 나는 꽁꽁 싸매고 있던 옷을 한 겹씩 벗어던지고 무대를 활보하는 연극 배우였다. 인터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거리에는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 다. 아빠는 우리 자랑스러운 장녀가 그런 촬영도 하고 다닌다고 나를 칭찬 했다. 나는 웃으며 아주 즐거운 촬영이었다고 말했고, 아빠는 어떤 촬영인 지에는 관심 없이 그냥 자신의 딸이 무언가 일을 한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나는 그런 아빠를 보며 조금 찔리면서도 아빠가 부디 영화를 볼 일이 없기 를 바랐다. 딸이 스크린 앞에서 각종 금기를 말하는 모습을 본다면 아빠의 당부에는 단지 ‘‛ 글 쓰지 마’가 아니라 ‘말하지 마’가 추가될 것 같아서. 아빠에게는 비밀이지만, 폴리아모리를 드러내려고 시도한 적은 많다. 지 금 관계가 알려지면서 각종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고 나는 그때마다 최대한 피하지 않고 수락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너무 특별하게(이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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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취급되는 내 일상과 사랑을 특별하지 않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 금 더 익숙해진다면, 한 번이라도 본다면 깜짝 놀라서 무턱대고 손가락질 하는 반응이 줄어들까 싶어서. 하지만 아쉽게도 몇 번의 시도는 무산으로 돌아갔다. 이유는 내가 너무 평범하거나 너무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방송국에서 ‘우리 결혼했어요’와 비슷한 포맷으로 소수적 관계를 맺 는 사람들의 일상을 찍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나와 애인들은 포항 에 살고 있었는데, 작가님과 담당 피디가 직접 국내선을 타고 포항까지 올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먼 길을 날아온 두 사람을 집으로 초대해서 방송의 취지를 오랜 시간 묻고 들었다. 동성애 커플, 폴리아모리 커플 등 다양한 커플의 일상을 찍어서 ‘이런 관계가 있다’는 걸 자연스레 알리겠다는 취지 였다. 취지는 좋았지만, 막상 방송에서 일상이 드러난다면 어떤 후폭풍이 닥칠지 우려돼서 망설였다. 우리는 혹시 거절하게 되더라도 한국에도 꽤 많은 폴리아모리스트가 있으니 꼭 다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담당 피디가 말했다. “안 그래도 폴리아모리 커뮤니티에도 나가봤어요. 그런데 저는 뭔가… 너무 소수자 같지 않은 사람들을 찍고 싶었어요.” 피디는 우리가 다른 성소수자에 비해 평범해 보이는 남녀 커플이기 때문 에 꼭 우리로 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우리 각자의 성별 정체성과 옷차림 과 머리색을 비롯한 생김새, 직업 등이 포함된 말인 듯했다. 음, 저희 중에 한 명은 논바이너리인데…. 순간 어색해진 우리의 표정을 눈치챘는지 피디 는 대중의 눈높이에서 폴리아모리가 잘 전달됐으면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 다. 그 말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도 했지만,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평범한 폴리아모리, 건전한 폴리아모리라는 말은 마치 ‘이유식 불닭’같 이 이질적이다. 특히 공격받는 포인트가 주로 ‘난교’이기 때문에 지레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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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요, 저희는 난교는 안 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에요!”라고 답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올라온다. ‘아니 설사 난교 면 어떻고 문란하면 어쩔 건데! 난교한다고 뭐 하늘이 무너지나?’ 결국 방송 출연은 거절했다. 우리 스스로 편집권을 가지지 못할 거라 는 불안감과 ‘평범한 폴리아모리’라는 이름표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후 방송이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하지만, 종종 궁금하면서도 마음 한 편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가 한다고 했어야 조금이라도 다양한 관계를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지 않았을까, 우리 기준이 너무 까다 로웠던 걸까.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한 매체에서는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내 출연 이 목전에서 엎어진 적이 있다. 비혼, 비연애, 동거하는 사람들 특집의 영 상 제작이었는데, 영상을 지원하는 국가 기관에서 ‘폴리아모리’는 대중에 게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에 위험부담을 안을 수 없다고 거절했기 때문 이었다. 이번에는 평범하지 않다고 거절당했다. 심지어 우리는 셋 다 비혼 주의자이고, 연애의 정상성을 해체하는 비연애주의자이고, 동거하는 사람 들인데! (이처럼 주제에 딱 맞는 인간들이 어디에 있다고….) 그때 나는 비 연애, 비혼 담론에서 혼자 사는 1인 가구나 피가 섞이지 않는 공동체는 환 영받지만, 로맨스와 성애가 결합된 다른 형태는 언급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답답한 마음에 폴리아모리 커뮤니티 정기 모임을 찾았다. 사람들과 세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어려움(노출이나 애정 표현)에 대해 나누는데, 폴리 씨가 말했다. “제 경험인데요, 세 분이 쓰리썸을 해보면 어때요? 그럼 관계가 훨씬 편 안해지더라고요.” “크하하학. 그거 저도 조금 바라는데, 아마 지민은 되더라도 우주는 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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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을 거라서 저희 셋은 안 될 것 같아요.” 폴리 씨는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말했다. “아쉽네요. 그럼 정말 좋을 텐데….” 폴리 씨와의 대화는 내 옷을 훌훌 벗겼다. 이곳저곳을 유영하는 마음으 로 모든 가능성에 몸과 마음을 열었다. 아, 이 대화는 평범할까, 평범하지 않을까? 더러울까, 더럽지 않을까? 나는 자주 어두운 방과 환한 낮의 세상의 경계를 걷는다.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어둠의 시간과 무화과 잎을 꼭 둘 러야만 내가 존중받을 수 있는 낮의 시간. 나는 어두운 걸 무서워하는 사람 이지만, 때로 어둠은 나를 훨씬 자유롭게 한다. 그 어둠이 잠시 동안 주어 지는 무대가 아니라 매일 가능한 무대이면 좋겠다. 모두에게 가능한 일상 이면 좋겠다. 평범한 폴리아모리와 평범하지 않은 폴리아모리. 그 중에 너는 무엇이냐 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쓰리썸을 꿈꾸지만 아직 하지 못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평범하다고 불리는 평범하지 않은 폴리아모리라고 소개하겠다. 내 가 쓴 문장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딱 그 만큼이 내가 느끼는 혼돈이라는 걸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의 아빠 몰래 쓰는 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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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서베이 1

“나에게 폴리아모리란 ○○이다.”

※ 본 이미지는 [여러 : Polyamory Network] 회원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찾아가는 인터뷰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여러’ 회원들의 다채로운 사랑과 실천, 고민 그리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당연하다는 듯 독점성 배타성이 전제되는 감정적·성적 관계에 답답함을 느끼고 의문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비슷한 지점을 발견하거나 자신과 닮은 모습에 반가울 것이다.

여러 회원 승은, 지민, 해달 2019년 11월 끝자락, 폴리아모리 관계 안에서 생활공동체를 꾸린 달걀부리마을 식구들(승은, 지민, 해달)을 만났다. 세 명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자연스레 ‘따로 또 같이’란 말이 떠올랐다. 놓칠 이야기 하나 없었던 인터뷰 현장을, 최대한 생생하게 전한다.

구성 및 진행: 모호포니, 정글

Q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해달 우주해달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우주’라고 부를 때도 있고 ‘해달’이 라 부를 때도 있어요. 여러에서 1기, 5기 스텝을 맡았죠. 하고 싶은 게 많 은 사람이라 이곳저곳 발 걸치길 좋아하는데, 제 옆의 두 분을 만나 관심사 가 더욱 확장되었어요. 회사에 다니고요, 과거 본업이었던 연구, 강의뿐만 아니라, 여러 인권 운동 단체들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 턴 번역에 손을 댔는데,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영 진도가 안 나가는 상황이 에요. (웃음) 되도록 무해하고 덜 폭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많이 보고 듣고 만나려고 노력하다보니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아졌네요. 두 분과의 관계를 시작한 지는 벌써 4년 되었고, 승은과 만난 지는 6년이 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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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도 제가 ‘진정한’ 폴리아모리스트인지는 확신할 수 없어 남들 에겐 저를 주로 ‘논모노가미스트’라고 소개하는 편이에요. 승은

집필노동을 하고, 글쓰기 수업을 하는 홍승은이라고 합니다. 저는

최근에 여왕벌이라는 별명이 생겼어요. 저희의 폴리아모리 인터뷰가 떴을 때 여왕벌이라는 악플이 많이 달려서…. (웃음) 저는 세상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에 관심이 많아요. 그 경계를 질문하고 해체하고 횡단하는 공부와 삶을 지향하고요. 폴리아모리도 일대 일 이성애 중심의 정상 연애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소위 비정상 연애로 불리잖아요. 애인들과 지내면서 자주 느끼는데, 소란스러운 바깥의 반응과 다르게 저희 내부는 고요해요. 정상/비정상의 구분 짓기가 얼마나 허접한 지 살면서 매번 깨닫는 것 같아요. 요즘 저는 표준적인 몸의 기준에서 벗어난 아픈 몸, 장애가 있는 몸들의 이 야기에 관심이 있어요. 저에겐 폴리아모리라는 이정표보다 아픈 몸이 더 큰 이슈이기 때문이에요. 참고로 저는 공황장애, 메니에르, 우울증, 황반변 성을 앓고 있습니다! 지민

소개는 역시 늘 어렵네요. 안녕하세요, 지민입니다. 저는 염치 혹은

부끄러움을 알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고 있어요. 지금은 달걀부리마을에서 사람 셋, 강아지 넷이 함께 살고 있고요. 늦은 밤 혼자 집에 있을 때 맛있는 안주를 만들어 혼자 술 먹는 시간을 좋아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과 수다 떠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2년 전에는 다니던 대학교에서 무기정학을 당했어요.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고 페미니즘 강연을 열었다는 이유로요. 현재도 계속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올해 1월 30일, 징계무효확인 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요즘에는 여러 인권단체에서 사람들과 함께 공부 하고 활동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장신대에서 저와 유사하게 부 당한 징계를 받은 학생들과 ‘갓길 - 같이 걷는 길’이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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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한편으로 노무사 시험을 준비 중인데 수험생인 척 하면서 딴짓을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Q 자신의 입장에서 다른 관계에 대한 호칭이나 소개를 부탁드려요. 또 현재 사 는 생활 모습도 궁금합니다. 승은 저희 셋을 소개할 때는 함께 밥 먹는 사이라는 뜻으로 ‘식구’로 불러 요. 평소에 해달, 지민이라고 이름을 부르는데 해달 같은 경우는 ‘내 우주’ 라고 저장되어 있고, 지민은 ‘여보’라고 저장되어 있어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는 폭군 ‘티라노’라고 불리기도 해요…. 해달 포악한 공룡. 지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승승, 스미스미, 해달림, 디민 등등

애칭도 늘고 있어요. 2년 전부터는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집을 구해서 한 지붕 아래에서 월세에 허덕이며 지내고 있어요. 2층은 해달이, 1층 안 방은 가부장인 승은이, 1층 부엌 옆방은 제가 써요. 처음 같이 살기 시작했 을 때는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각자의 사생활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 지가 꽤 중요한 화두였어요. 각자에게 맞는 방식은 무엇이고, 각자가 바라 는 생활은 어떤지 끝없이 이야기하고 수정하고 합의해가면서 지금의 생활 을 찾았어요. 물론 지금도 여전히 변화 가능성은 있고요. 저는 혼자 자는 걸 좋아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해서, 컨디션에 따라 같이 자기도 하고 따로 자기도 하면서 지내요. 해달

저희가 처음부터 같이 살았던 건 아니에요. 고양시에 와서 함께 살

기 전엔 춘천(해달의 집)과 포항(지민의 집)을 승은이 왔다 갔다 했어요. 제 가 포항으로 이사한 후론 그 거리가 짧아지긴 했지만 승은이 두 집을 오가 는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죠. 따로 지냈던 기간이 길어서 한 공간에서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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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겠다는 결심을 했을 땐 걱정이 많았어요. 메타무어들 간의 질투심과 경 쟁심이 채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개인이 모여 살았을 때 갈등 이 생기지는 않을까, 사생활은 잘 보장될 수 있을까 등의 걱정이 생겼죠. 승은

새삼 떠오르네요. 셋이 함께 살기 전에는 해달과 지민이 표현하는

질투가 훨씬 컸어요. 아마 다른 상대와 있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아서 그랬 겠죠? 같이 살고 나니까 안정돼서 그런지 그런 불안감이 확실히 덜해졌다 고 말하곤 하더라고요. 지민

꼭 함께 살아서 안정된 건 아니고 다양한 요인이 있는데, 저와 승은

의 관계도 안정되었고, 저와 해달 사이의 관계도 친밀감이 생기면서 가능 했던 것 같아요. 해달

따로 지냈을 때에는 질투가 컸는데, 같이 살면서 그 감정이 엄청 누

그러진 것 같아요. 지민도 나와 비슷한 불안감과 질투심을 가진 인간이라 는 걸 느껴서. 지민 저도 거의 비슷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아까 현재의 생활 모습에 대한 답변 중 빠진 게 있는데, 저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식구회의를 열어서 일주일의 나눔, 서운했던 일, 가사노동 분배를 얘기해요. 각자 역할 이 있는데, 우선 승은이 대외협력, 제가 회계, 해달이 고용노동…? 승은 생활비 같은 경우엔 제가 프리랜서라서 매달 똑같은 금액을 내진 않 아요. 월마다 상황을 보고 조절해요. 지민과 해달은 고정수입이 있어서 두 사람이 많이 부담하고 있어요. 해달 두 분께서 많은 돌봄을 제공해주시고 계시니. 승은 함께 지내면서는 질투 같은 감정보다 가사노동이나 생활 패턴과 같은 아주 생활적인 부분에서 갈등을 겪게 돼요. 가령, 저에게는 보이지만 상대에 게는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의 격차 같은 걸 깨닫고 화들짝 놀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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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사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예전 얘기도 나오는 것 같아요. 폴리 관계망 안에

있거나 노력하는 분들에게 미리 질문을 받아봤는데, 세 분 관계의 시작이 궁금 하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볼게요. 그때의 상황, 얼마나 어 려웠는지, 현재까지의 과정 중 어떤 공부와 노력이 있었는지. 가사분배도 같은 맥락일 텐데 현재 모습이 될 때까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해달의 이야기] 해달 2013년 승은이 춘천에서 인문학카페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저는 손 님으로 갔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승은의 첫인상이 너무 아름다웠죠. 승은 을 처음 본 날, 인문학카페 배경음악이 들국화 노래였어요. 대중적이지 않 은 음악을 틀어놓고선 초상화를 ‘써준다’는 이벤트를 하고 있더라고요. 처 음 본 사람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것도 생소한데 그걸 ‘써준다’고 하니 더 욱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죠. 타지 생활로 외로웠던 시기에 우연히 찾아간 낯선 곳에서 만났던 분이 무척 예뻤고, 그때 마침 카페의 배경음악도 좋았 고, 이벤트로 받은 초상화 글도 좋아서 그날 카페를 두 번이나 방문하게 됐 고, 우연히 승은의 아버님과 동생분까지 만나서 인사도 드리고 왔어요. 그 이후에는 인문학카페에서 여는 모임들에 성실하게 참여했죠. 자주 얼굴도 장을 찍으면서 승은에 대한 제 마음을 나름대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마침 인문학카페 근처에 제 집이 있었고, 제가 술을 좋아한다는 핑계로 승은을 포함한 사람들을 매일 불러 모아 밥과 술을 먹었는데, 그 초대에 승은도 곧 잘 응해주었어요. 뒤늦게 승은이 연애 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에도 개의치 않고 자주 만나려고 노력했어요. 애인이 있든 없든 외로운 나 와 잘 놀아주는 승은이 고마웠고, 혹시 승은도 나를 좋아하게 돼서 그 애인 과 헤어지고 나랑만 만나게 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 같아요. 그 렇게 어떻게든 친해지려고 애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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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승은을 좋아한다는 마음을 고백했던 날부터 승은의 깊은 고민이 시작 됐어요. 내적, 외적 갈등의 신호탄이었죠. 양쪽에서 서로 자기를 선택해달 라고 승은을 보챘어요. 갈팡질팡하다가 결국엔 제가 승은의 유일한 애인이 되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폴리아모러스한 지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 고, 그런 단어나 개념조차 몰랐어요. 다만 승은에게 애인이 있어도 그의 관 심을 얻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을 뿐. 그것도 당시엔 독점욕에 기반한 마 음이었죠. 이런 경험을 거치고 나니, 승은과 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 어요. 새로운 관계방식에 대해 알아보고, 폴리아모리 관련 책, <아내가 결혼했다> 같은 영화, <독신으로 살겠다> 같은 웹툰을 찾아보고 서로 시 뮬레이션도 해봤어요. 그렇게 폴리아모리라는 관계방식을 머리로 조금 씩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걸 실천하면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 적 은 없었어요. 그저 ‘괜찮은 관계방식일 수 있겠다’, ‘평등하고 서로의 성 장을 제약하지 않는 관계를 맺을 수 있겠다’는 인상을 가지는 데 그쳤을 뿐, 당장 시도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죠. 폴리아모리를 실천할 기회가 그렇게 빨리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승은과 만난 지 2년 후 승은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고, 그렇게 저는 얼떨결에 폴리아모리에 발을 들이게 되었죠.

Q 지민님과의 만남은 어땠나요? 해달 지민과는 포항 한동대 강연에서 처음 만났어요. 먼 곳에서 찾아오는 승은을 위해 포항 맛집 정보 같은 걸 알려주신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지민 이라는 걸 저는 뒤늦게 알았어요. 강연 다음 날 춘천으로 돌아가야 할 새벽 시간, 어떤 젊은이가 승은에게 빵을 주고 가더라고요. 그때부터 뭔가 심상 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처음엔 승은의 팬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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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은이 끌림을 느낀 사람이 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 빵 주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아차’ 싶더라고요. 승은은 제게 지민이라는 사람을 만 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봤어요. 제가 평소에 폴리아모리 는 페미니즘적 가치에 부합하는 정의로운 관계방식이라고 떠벌리고 다녔 던 까닭에. (웃음)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승은의 새로운 연애를 반 대할 명분이 없었고, 명색이 전직 도덕 교사가 언행 불일치를 할 수도 없어 승낙을 하고 말았죠. 그후 지옥 같은 나날들이 펼쳐졌어요. 지민이 저희 관계 안에 들어오면서 제 시간표는 승은이 포항에 가서 지내는 날과 승은이 춘천에 와서 지내는 날로 재편되었어요. 둘이서 오순도순 보내는 시간은 반으로 줄었고, 저에 게 쏟는 에너지와 노동의 공백이 정말 크게 느껴졌어요. 당시에 제 직업이 대학강사였기 때문에 비교적 유연하게 시간을 쓸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승은이 지민을 만나게 되면서 그 시간이 남아돌게 된 거죠. 한편으로는 제 가 돈 벌고 밥을 먹여 충전시킨 에너지와 빨래하고 다림질해서 옷장에 개 어둔 옷을 가지고 얻은 매력자본을 모조리 지민한테만 쏟아붓고 있구나. (웃음) 내 노동의 결과가 다 지민에게 돌아가는구나 악심이 들고 그랬죠. 지민에 대한 질투가 폭발했고, 승은이 나에게서 얻을 수 없는 만족감을 지 민을 통해 충족한다고 생각하니 자존감도 떨어졌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술 도 많이 먹고 점점 초췌해지는 저 자신을 보면서 또다시 침잠하게 되는, 그 런 반복적인 우울감을 경험했어요.

Q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어요? 해달

승은이 제가 곤두박질치지 않도록 곁에서 엄청 많은 노력을 기울여

줬어요. 둘 사이를 오가면서 감정 조율을 잘 해줬죠. 이따가 승은 파트에서 들으시겠지만, 저 못지않게 승은이 엄청 고생했어요. 승은의 노력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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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전히 승은에게 사랑받고 있구나, 이 관계를 유지해도 되겠구나’ 확 신했던 것 같아요.

Q ‘지옥과 같은 나날’의 풍경이 어떻게 바뀌게 되었나요? 해달 지민은 포항에서, 저는 춘천에서 출발하여 저희 셋이 대구 퀴어문화 축제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날이 있었어요. 일전에 빵을 받은 뒤 지 민을 만나는 첫 공식 자리였기 때문에 엄청 긴장이 됐는데, 결과적으로 그 이후부터 저희 사이의 딱딱한 관계가 조금씩 허물어졌던 것 같아요. 물론 그 이전에 영상이나 SNS를 통해서 지민의 뉴스를 확인하긴 했었어요. 지 민이 TVN 대학토론배틀 우승자였거든요. 저는 원치 않았는데 승은이 굳 이 지민의 활약상을 틀어줘서 제게 알려주더라고요. 승은 지민의 토론 내용 정해지면 해달과 토론 전략을 논의했었어요. 통화 로. 해달

원래는 도와주고 싶지 않았어요. 지민이 승승장구해서 너무 빛나면

반대로 내가 못나 보일 테니까. 승은에겐 언제나 내가 제일 ‘똑똑이’여야 하는데. (웃음) 지민이 얼른 떨어졌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한편으론 ‘내 애 인이 만나는 애인인데, 그래도 기본 이상은 올라가야지’ 하는 이중적인 마 음도 들었어요. 승은 애인들 간의 유대감이랄까? 우리 식구라면 우승 정도 는 해줘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그래서 진심으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어 요. 그러고서 돌아서면 ‘내가 왜 적을 도와줬지….’ 그런 양가감정이 있었 죠. 대구 퀴퍼 때 셋만 모인 건 아니었어요. 서로에 대한 어색함을 감추고자 각 자 동료들을 잔뜩 데리고 행사에 참여했고, 실제로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저희들끼리는 별로 말을 나누지 못했어요. 그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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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지민과 가까운 곳에서 자주 부대끼다보니 미운 정 고운 정이 잔뜩 들어버렸죠. 이런 과정을 돌이켜보면 폴리아모리가 어떤 성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어요. 제가 지민과의 관계 초기에 상당한 심리적 부침 을 경험했던 걸 보면, 오히려 저는 성향상 다자관계가 잘 안 맞는 사람이었 거든요. 저는 사실 소유욕이 강하고 질투심이 센 사람이에요. 여러 갈등을 해소하려는 세 사람 공동의 노력 끝에 우연히 공존 가능성을 찾았던 것뿐 이죠. 무수한 이야기를 나눈 끝에 저는 지민이 손쉬운 판단을 내리는 대신 세심하게 고민하고 성찰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서로에 대한 믿음을 서서히 쌓아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존에 갖지 못했던 경 쟁의식이 누그러지고 컴퍼전(compersion; 상대의 연애를 보며 같이 즐거 움을 느끼는 감정)이 조금씩 생겨나게 된 거죠. 지민을 이겨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에 접었어요. ‘외모와 팔팔함에 서는 내가 안 될 것 같으니, 오히려 다른 부분을 갖춰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달까. (웃음) 지금 제게 지민은 이겨야 하는 상대가 아니에요. 마치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부모 마음이랄까? 지민은 제게 그런 사람이에요.

[지민의 이야기] 지민 승은을 실제로 처음 만난 건 4년 전이었는데, 그전부터 승은의 존재 는 알고 있었어요. SNS나 언론을 통해 승은이 활동하던 인문학카페를 알 고 있는 팬이었어요. 그러던 중에 승은이 제가 다니던 학교에 강연을 오게 됐어요. 페미니즘 강연이었죠. 승은이 강연자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엄청 설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당시에 어떻게 부담스럽지 않게 말을 걸 수 있을까 싶어서 제가 포항 지역 주민이니, 카페나 숙박 등의 정보를 A4 용지 4장 넘게 준비해서 전달했는데, 그게 인상을 남겼던 것 같아요. 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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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2박 3일간 있었는데, 첫날 강연 이후 한 번 더 승은을 보고 싶어서 엄청 고민을 했어요. 친구한테도 물어보면서. 어떻게 하면 부담스럽지 않게, 이 상하게 보이지 않고 연락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빵을 많이 샀다고 연 락을 했어요.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데, 춘천으로 돌아가는 길에 요기거리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제가 빵을 많이 샀다고,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보냈어요. 사실 빵도 안 샀으면서. 그래서 승은이 춘천으로 출발 하는 아침 7시에 맞춰서 빵과 우유를 사서 전해드렸죠. 그렇게 승은에게 인상을 남기려고 했던 것 같아요. 팬심과 사심을 섞어서.

Q 그때 승은 씨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지민 이전부터 승은의 글과 활동을 봐왔기 때문에 실제로 봤을 때도 정말 신기했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난 느낌. 아름다웠어 요. 끌림을 느꼈고요. 근데 그게 혹시 부담이 될까봐 티를 안 냈어요. 당시 엔 해달이 연인인 줄도 몰랐고, 폴리아모리라는 단어도 몰랐어요. 해달 만약 연인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지민 그럼 조금 더 조심했을 것 같아요. 끌림을 더 통제하려고 했을 것 같 고요. 강연이 끝난 뒤에도 계속 승은이 떠올랐어요. 연락을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어요. 또 한참 고민을 하다가, 승은이 강연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그때 이런 말을 하셨잖아요. 공감이 돼요.’ 이런 식 으로 연락을 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승은에게서 친절한 답변이 왔고 종종 연락을 주고받게 됐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간간이. 그러면서 단풍 사 진 보내고, 풍경 사진 받고. 묘한 기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강연 이후 만난 건,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집회였어요. 집회 가기 전에 승 은에게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고 미리 연락을 했는데, 마침 승은도 서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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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만나자고 말을 했죠. 결과 적으로는 승은의 서울 일정은 펑크났지만, 춘천에서 만나게 됐어요. 제가 집회 끝나고 밤늦게 승은의 인문학카페에 갔죠. 물론 미리 약속은 하고요. 그리고 포항을 가는 첫차를 탈 때까지 밤새도록 대화를 나눴어요. 둘이서 는 아니고, 제 친구와 승은의 동생 승희를 포함해서 총 네 명이서요. 그때 는 솔직히 승은이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대화를 하면서 그 런 느낌을 못 받았고, 돌이켜보면 제가 너무 조심스럽고 긴장해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만나고 바로 다음 날, 승은이 이야기했어요. 지금 함께 사는 애인이 있다, 폴리아모리 지향한다. 이런 관계도 괜찮냐는 의사를 물어보셔서, 전 ‘잘 몰라서 공부하겠다’라고 답변을 보냈죠.

Q 폴리아모리 얘기를 듣고 어떠셨나요? 지민

약간 멍했어요. 이건 무슨 말이지? 싶었고. 분노가 일어나거나 싫진

않았어요. 무슨 상황인지 모르니까. 바로 인터넷으로 조사를 했어요. 당시엔 워낙 레퍼런스가 없어서, 기사 한 개랑 웹툰 <독신으로 살겠다>, 영화 <아내 가 결혼했다>가 거의 유일했어요. 조사를 한 이후에는 특별한 감정은 없었어요. 와, 이런 개념이 있구나. 이 런 방식도 있구나. 비독점이라니. 매력적이다. 추구하면 좋겠다. 이런 정 도? 특히 당시에는 페미니즘과 퀴어 담론에 대해 공부하던 중이어서 더 와 닿는 점이 있었어요. 소유와 통제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에도 공감 이 됐고요. 한편으로는 승은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이 폴리아모리 개념을 쉽게 수용할 수 있게 했어요. 처음에는 개념이 저를 압도했던 것 같아요. 통제와 소유가 아닌 비독점과 평등을 실현해가는 방식. 정말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개 념에 제 감정과 생각을 구겨 넣으려고 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믿었고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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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들어, 승은이 포항에 왔다가 춘천에 가서 해달과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 고 드라이브를 간다고 하면,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요. 승은이 해달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저도 행복하다고. 그게 일상이든 섹스든 무엇이든요. 돌이켜보면, 분명 어떤 질투나 시기, 불안감이 있었음 에도 ‘원래 폴리아모리는 이러해야 해’라는 생각이 있어서 얘기를 안 했죠. 근데 3개월이 채 안 갔어요. 승은에 대한 사랑과 기대가 커질수록 부대끼 는 감정들이 점점 커졌어요. 나에게 이만큼의 관심, 사랑, 물리적인 시간을 쓰면 좋겠다는 어떤 바람들이요. 그때부터 해달의 말처럼 지옥 같은 시간이 시작됐어요. 불안, 서운함, 우 울, 질투와 시기 같은 것들이 밀려왔죠. 예를 들어, 일주일 7일 중에, 승은 씨가 포항에 오는 날들은 정말 행복한데 춘천으로 돌아가는 날이 다가올수 록 서서히 불안해졌어요. 결국엔 춘천 가는 버스를 타는 승은을 보면서 몇 번을 울었는지 몰라요. 영화를 몇 편 찍었어요. (웃음) 또 춘천에 가면 최대 한 연락을 안 하고 싶은데 견디지 못하고 연락을 하고, 밤마다 술 마시고. 둘이 어떻게 보낼지 상상하면서 우울해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한 트 럭인데, 여하간 그런 시기가 8개월 정도 반복되었죠. 정말 눈물의 시기. 그 때도 저는 구체적으로 힘든 걸 얘기했어요. 그게 제가 그 시기를 버티는 방 식이었어요. 예를 들면 “내 앞에서는 해달 이야기를 안 했으면 좋겠어”라 든가 “춘천에서 4일 포항에서 3일 말고, 포항에서 4일 보내면 안 돼?” 이 런 식으로 정말 사소한 것까지 최대한 솔직하게 표현하고 정확하게 요구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서 대화를 많이 했죠. 그때 승은이 정말 고마웠 어요. 본인도 힘들었을 텐데 제 이야기에 하나하나 귀 기울였고, 조율할 수 있는 부분은 조율했고, 공감과 위로할 수 있는 부분은 계속 노력해줬어요. 근데 어느 순간은 제가 제 감정에만 무척 충실하고 매몰되었던 적도 있어 요. 그땐 승은도 정말 힘들어했어요. 제가 힘든 게 정말 다 폴리아모리 때 문은 아니었을 텐데, 온통 폴리아모리 때문이고 승은 때문인 것처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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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감정을 표현할 때가 있었던 거죠. 너무 많은 것들의 책임과 감정을 다 상대에게 전가하는 거예요. 사실 제가 소화하고 관리해야 할 영역도 있는 건데요. 이건 이후에 제가 다른 폴리아모리 관계들을 상담하면서도 많이 발견되는 함정 같아요. 본인의 문제일 수도 있고, 둘 사이의 관계 문제일 수도 있는데 마치 이게 다 폴리아모리 때문인 것처럼 탓하거나 자신이 소 화해야 할 감정을 상대에게 전가하거나, 혹은 꼭짓점에 있는 사람을 누리 기만 하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 이런 건 정말 조심해야 하는 부분 같아요. 여튼 저도 승은도 폴리아모리가 처음이었으니 그런 어려움이 있었죠. 다행 히 승은이 솔직하게 이야기해줬어요. 본인도 이런 부분은 힘들다고. 그래 서 저도 알게 됐고, 저를 돌아보게 됐죠.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이 흘러서… 2017년 대구 퀴어문화축제를 못 잊는 게, 그때 해달을 처음 만났어요. 정말 긴장을 많이 했어요. 혼자 온갖 안 좋 은 상상을 하고, 불안해하고. 둘은 이미 2년의 연애와 동거를 해왔고, 그만 큼의 친밀감과 유대감이 쌓였을 텐데 제가 낄 수 있을까. 소외되지는 않을 까. 지레 겁을 먹고 만났죠. 결국 저 혼자 엄청난 방어기제를 쌓고 있다가 사고를 쳤어요. 뒤풀이 자리에서 술을 진탕 먹고 취했죠. (웃음)

[포항에서의 이야기] 지민 승은과 해달이 포항에 오게 된 건 정말 즉흥적이었어요. 어느 날, 승 은과 승희, 승희의 애인이 포항에 놀러 온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포항 안 내를 하면서 예쁜 바닷가도 보여주고, 바닷가 근처의 고즈넉한 주택가도 보여줬죠. 근데 갑자기 승희가 바닷가 근처에서 살고 싶다고 집을 보여 달 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부동산을 불러서 정말 집을 몇 군데 봤죠. 그리 고 바로 계약. 그렇게 승희와 승희 애인이 먼저 춘천에서 포항으로 이사 오 게 됐어요. 정말 한순간에. 승은도 고민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동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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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훅 가버리니까 갑자기 포항으로 이사를 추진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승은과 동거하던 해달도 포항으로. 이 부분은 해달이 따로 이야 기하는 게 맞겠죠? (웃음) 여하간 저는 정말 좋았어요. 거리가 가까워졌잖 아요. 자주 만나고 자주 데이트하게 됐죠. 하지만 동시에 이제 해달도 자주 마주하게 됐어요. 승은이 소위 두 집 살림 을 하고 있었고, 해달이 바로 옆 동네에 살았거든요. 아마 저만 기억하고 있을 텐데 아직도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두 분이 이사를 온 직후 집들이 를 할 때예요. 우연히 저와 해달 단둘이 편의점에 가게 되었어요. 그전까지 단둘이 한 공간에 있었던 적이 없었는데, 편의점 다녀오는 길의 어색함이 기억나요. 그땐 묘한 관계였어요. 완전히 경쟁자이거나 친구도 아니고. 한 참 동안 그런 관계가 이어졌죠. 그러다 점차 친해졌어요. 둘 다 술을 좋아해서 자주 술을 마시고 자주 만 나고 대화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비교적 집이 넓은 해달의 집에 일주일에 4~5일을 놀러갔어요. 자고 온 적도 있고, 정말 자주 만났죠. 그러다가 한 동대 사건이 터졌는데, 그게 친밀감이 커지는 계기가 됐어요. 학교에서 페 미니즘 강연을 열었다는 이유와 제가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는다는 이유로 저를 무기정학 시킨 사건인데, 이때 다 같이 분노하고 싸웠죠. 뭔가 외부의 적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웃음) 해달과 승은 둘 다 소싯적 여기저기서 투 쟁하던 실력을 한껏 보여줬어요. 정말 든든한 지원군이었어요. 우리 편! 그 러면서 점점 서로를 받아들이고 가까워지게 됐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는 지난한 투쟁 과정이 있었지만 축약하면, 이사를 가게 됐어요. 학교에서 그런 일을 겪고 나니 포항에 더 있을 수가 없었어요. 때마침 해달 도 직장을 옮겨야 했고요. 그래서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됐습니다. 근데 사실 이때도 셋이 함께 살 거라고는 생각을 안 했어요. 포항에서처럼 같은 동네 다른 집에 살겠거니 생각하면서 같이 집을 알아보러 돌아다녔는 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보게 된 거죠. 우선 집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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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살아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승은 집에 홀려서 결정하게 된 거였어요. (웃음) 지민 근데 솔직히 걱정은 엄청 많았죠. 우리가 정말 같이 살 수 있을까, 사 생활은 어떡하지? 섹스는 어떡하지? 질투는 안 날까? 데이트는…. 이사하 기 전날 밤까지도 계속 걱정했던 것 같아요. 근데 정작 이사하고서는 생각 보다 큰 동요나 감정이 없었고, 가사노동, 집 꾸미기, 방 분배 같이 셋 이상 이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뤄졌죠. 해달 노출도. (지민 저격) 지민

혼자 살 때는 속옷과 티셔츠만 입고 지냈는데, 이제는 바지를 입어

야 됐어요. 몇 개월은 챙겨 입었는데, 해달과 친해질수록 바지가 짧아졌어 요. 그러다가 요즘엔 서로 신경 안 쓰고, 노출이 서로 가능해졌죠. (웃음)

[승은의 이야기] 승은 해달을 처음 만난 건 6년 전이었어요. 당시 저는 3년 만난 애인과 동 거 중이었어요. 처음 연애라는 관계를 맺었던 게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그때부터 쭉 연애를 해왔던 것 같아요. 공백기가 많이 없었을 정도로. 당시 운영하던 카페에서 해달을 처음 만났어요. 저는 상대에게 호기심을 쉽게 느끼고, 매력을 금방 찾는 편인 것 같아요. 문득, 저희 어머니가 모태신앙 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우리 아이들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하 셨다는데 정말 그렇네요. (웃음) 3년 만나던 애인과의 관계는 위태로운 상 태였어요. 그 애인을 만나면서 임신중절수술을 받았고, 수술 이후에 우울 해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그 친구가 “적당히 하라”고 말해서 상처를 받기 도 하고, 다투다가 밀쳐지기도 하고. 여러 문제가 있었어요. 경험과 감정이 뒤섞이면서 질긴 인연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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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해달이 호감을 표하기보다 차근차근 다가오니까 편안함을 느꼈 고 저도 점점 호감이 커졌는데, 이전 애인과의 관계에서 애착이 뒤섞이다 보니까 엄청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이전 애인한테 헤어지자는 얘기 를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해달에게 헤어지자고 말하곤 했어요. 서너 달을 힘들어했어요. 한번은 동생 승희가 저한테 언니가 의지할 수 있고, 새 로운 세계를 열어줄 것 같은 사람은 해달인 것 같다고 말했어요. 확신은 없 었지만, 엄청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해달을 만나기로 결정했어요. 그 과정 이 되게 힘들었어요. 전 애인이 저와 헤어진 뒤에 직장을 그만두고, 개명까 지 했거든요. 전 애인과 제대로 이별을 한 뒤에 해달과 둘이 되었을 때는 둘 다 상처투성이였어요. 자연스레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아요.

Q 전 애인과 해달 님 두 분을 동시에 만난다는 생각은 안 하셨어요? 승은

협상이 어느 정도 통하는 구석이 있어야 해보는데, 전 애인은 제 모

든 과거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사람이었어요. 과거 흔적이 조금만 보여도 분노를 넘어서 폭력을 휘둘렀기 때문에 실제로 얘기할 수 있는 상 황은 아니었어요. 그때는 저도 언어를 몰랐으니 그렇게도 가능할 거라는 관계의 상상력이 없기도 했고요. 만약 알았다면 얼마나 달라졌을지 궁금하 기도 해요. 해달과 2년쯤 만나고 지민을 만났죠. 지민이 저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니까 강연에서 만나기 2년 전, 1년 전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그리 고 강연 소식을 듣고 연락을 준 거죠. 처음엔 이 사람 뭔데 꾸준히 연락하 나 싶어서 조금 경계도 했어요. 그런데 포항 맛집을 알려준다고 A4용지에 정리해서 주니까 고마운 감정이 커지더라고요. 강연장 객석에서 오른쪽 끝 에 앉은 지민이 눈에 띄었어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이미 호감을 받았기 때문인지 지민이 계속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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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에 대한 감정이 확실한 게 아니었으니, 만약 지민을 만나고 싶은 의지 가 생기면 얘기해야겠다 싶었어요. 지민과 처음 사적으로 만난 뒤에 바로 해달에게 얘기했죠. 지민과 사적으로 만났던 날에 해달에게 바로 솔직하게 는 말하지 못했어요. 솔직함이라는 게 관계윤리에서 내 죄책감을 덜어버리 는 방식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거짓말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지만 시시콜 콜 모든 얘기를 다 하기가 초반엔 어렵더라고요. 지금은 웬만하면 다른 가 능성에 대해 솔직하게 터놓고 있지만, 그때는 어렵게 느껴졌어요. 해달 이후에는 저도 이런 방식에 동의하게 되었어요. 완벽한 정직함이 어 떤 면에서는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저해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승은

서로가 폴리아모리 관계가 처음이니까 소통 방식에서 방황했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이 힘들다고 하면, 그럼 내가 둘 중에 한 관계를 정리해야 되는 건 아닌가 싶고. 특히 초반에 지민에 대한 좋은 감정이 생길수록 해달 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이 더 커져서 되게 혼란스러워지곤 했어요. 열정과 설렘보다 기존 관계의 복잡한 감정이 무겁게 느껴졌어요. 기억나는 게, 지민이랑 두 번째 섹스를 한 날, 지민이 “마지막 섹스 언제 했 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어젯밤”이라고 대답했어요. “그렇게까지 솔직했어 야 했냐”고 지민이 말하더라고요. (웃음) 솔직한 게 다가 아니고, 소통 방식 이 사람마다 다른데 어떻게 해야 오해가 커지지 않을까, 두 사람이 불행하 면 나도 불행할 수밖에 없으니 어떻게 관계를 조율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 어요. 아무래도 해달과 함께한 시간이 더 길었으니까 갈등 상황에서 해달 입장에 제가 더 이입을 하기도 했어요. 그럴 때 지민은 당연히 상처를 입었 고요. 아주 사소한 말과 시선도 아슬아슬한 상태였어요. 두 사람에게 고마웠던 것은, 지민 같은 경우는 세심한 편이에요. 힘든 걸 표현하고 오해를 없애기 위해 계속 말 걸었기 때문에 갈등이 금방 해소가 되었어요. 해달은 평소 잘 표현을 하진 않았어요. 말로 하지 않고 SNS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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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올리거나, 빈 소주병 3개로 감정을 표현하곤 했죠. (웃음) 그런 빈 자 리를 보면서 저는 해달의 어려움을 짐작하는 식이었어요. 언젠가 해달이 저에게 “승은이도 참 힘들겠다, 힘들지 승은아?”라고 묻는데, 눈물이 핑 돌 더라고요. V (Vee, 비이) 관계의 꼭짓점 위치에 있는 사람은 보통 이기적으 로 그려지는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가 나를 노력하고 노동하는 사람으 로 봐주는 점이 고마웠어요. 그때 당시 포항으로 가게 된 계기는 제가 많이 지쳐 있었기 때문이에요. 포 항과 춘천이 4시간 반의 장거리인데다 두 사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감정 노동이 반복되다보니까 몸과 마음이 지치더라고요. 방광염에 걸리고 얼굴 에 열꽃도 피고. 마침 20년 동안 살았던 춘천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도 커진 상태였고, 포항의 바다가 너무 좋게 느껴졌어요. 고맙게도 해달이 같 이 가겠다고 해서 이사를 하게 되었고요. 대구 퀴퍼에서 처음 만난 뒤에 세 사람이 따로 만났던 날이 떠올라요. 바닷 가가 보이는 카페에서 만났는데, 해달이 지민과 저에게 당시에 하던 일을 함께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카페에 앉아서 함께 시험지를 채점하면서 집중 했죠. 정말 어색했는데, 이제는 한 집에서 살게 되었네요.

Q 현재 시점으로 마무리하면서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현재는 세 분 의 관계에 문제가 없는지 궁금해요. 지민

특별히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누구나 함께 살

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갈등을 마주하고 함께 풀어가고 해결해나가는 정도. 그러다 보니 관심사나 해결해야 할 문제도 당연히 달라지는데, 최근 저희 관심사는 성병과 피임이었어요. 이제는 성병을 비롯한 정관 수술 및 피임 이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 얘기 하고 수술을 하거나 검사를 받고 합의해나가는 과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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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달 사실 오늘 정관 수술을 하고 왔습니다. 지민

최근에 하는 또 다른 고민은 상대가 다른 상대와 섹스를 할 때는 어

떻게 해야 할까. 섹스 파트너를 만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에게 영향 을 끼치는 부분은 무엇이고, 그래서 서로에게 관여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 이며, 관여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등등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 요. 승은 섹스를 하게 되면, 무조건 서로 최근 3개월 이내 성병 검사를 서면으 로 확인하고 공유하자는 쪽으로 논의하고 있어요. 해달

맞아요, 그런 정보들을 주기적으로 공유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평

소 섹스에 그리 큰 에너지를 쏟지 않는 편인데, 근래 어떤 플레이들에 관한 정보들을 접하고 나서 식구들과 공유하고 있어요. 승은 네, 저희 집 식구들은 요즘 BDSM에 관심을 갖고 있거든요. 이 관심 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웃음)

Q 세 분 말고 다른 파트너십이 있나요? 해달

저는 언제나 항상 매우 열려 있어요. 하지만 지금 다른 파트너십은

없어요. (시무룩) 저는 아직 저를 탐구해가는 중이에요. 로맨틱한 관계든 섹슈얼한 관계든 열어두고 시도해보려 하고 있어요. 승은 열려 있기만 하고 노력을 안 하지 않나요? 배우고 싶은 게 많은 걸로 아는데…. (웃음) 지민 그래도 나름 노력했던 게 있잖아요. 해달 노력한 게 별로 없긴 하네요. 데이팅 어플들을 깔아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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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

저는 지금은 딱히 다른 관계에 의지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시기인

가 봐요. 생길 수도 있겠죠. 그래도 관심은 있습니다. (웃음) 해달

저는 다른 분과의 관계가 잠깐 있었어요.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

을 자꾸 마주하게 되면서 기존의 관계와 새로운 관계에 모두 충실하지 못 했어요. 관계 확장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나눌 겨를도 없었고, 그래서 균형 있는 소통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죠. 당시 그분들께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 음이에요. 그 이후로는 새로운 분과 만나는 게 조금 더 조심스러워진 것 같 아요. 순간적인 끌림에 몸을 맡기기보다 좀 더 숙고하는 편이 되었어요. 하 지만 조심스러워진 것일 뿐, 닫아둔 것은 아니라는 거!

Q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승은 내년에 전세로 가는 걸 목표로. 그 다음엔 매매나, 집을 짓거나. 지민 (코웃음) 해달 셋이 노력하면 될 것 같아요. 승은

사실 저희 관계를 기준으로 미래를 계획하진 않는 것 같아요. 한 공

간에 함께 살거나 같은 동네에서 가까이 있어서 서로 돌봐주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느슨한 공동체를 꿈꿔요. 지민 10년 뒤에는 다시 서울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갈까 싶기도 해요.

▹ p.43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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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서베이 2

“어떤 계기로 폴리아모리를 알게 되었나요?”

※ 본 이미지는 [여러 : Polyamory Network] 회원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p.39에서 이어집니다.

Q

다른 주제로 넘어가서, 가족구성권 같은 제도권의 문제나 폴리아모리로서

부당함을 느꼈던 이야기, 세 분이 집을 구할 때 혹은 여행을 할 때의 어려움 같 은 얘기도 있을까요? 개별적인 이야기뿐 아니라 차별적인 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폴리아모리로 살면서 느끼는 다양한 고민도 있을 거고요. 승은

저는 폴리아모리 관계에 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하기도 해요. 한번

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비정규직, 백수, 비혼주의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 어요. 한 친구는 최근에 데이트 폭력을 당했고, 한 친구는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서 그만두었어요. 그 친구가 스스로를 ‘밥충이’라고 부르더라고요. 비 혼을 꿈꾸지만, 경제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에서 온전히 혼자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때 결혼 제도에 떠밀리게 되는 환경에 놓이는 누군가의 얼굴들을 상상하게 되었어요. 한 친구는 썸 타던 상대에게 폴리아모리 이야기를 했더니, 단번에 “내 여 자가 그러면 패버려야지”라고 말했대요. 저는 폴리아모리를 비교적 편하 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걸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요? 여전히 ‘감히 다른 남자를 만나!’라며 데이트 폭력, 살해가 빈번한 사 회에서요. 제 위치를 되돌아보게 돼요. 평등한 협상력은 어디에서 비롯되 는 걸까, 질문하다보면 폴리아모리는 단지 ‘다자연애’가 아니라 성평등, 계 급, 가족구성권 같이 제도나 인식에 대해 얘기하는 하나의 운동이라고 생 각해요. 그래서 저는 폴리아모리를 단지 ‘자유로운 만남’으로만 얘기하면 누락되는 것이 많다고 생각해요. 해달

폴리아모리스트가 아닌 분들도 그렇지만 폴리아모리를 지향하시는

분들도, ‘다자연애’를 유별난 관계방식이나 실천으로 보지 않으셨으면 좋 겠어요. 그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하나의 대안 정도로 다자연애를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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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면 어떨까 해요.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가족을 구성하는 이유가 뭘까 요? 안락함을 얻고, 돌봄을 공유하고, 특정한 사람에게 과도한 책무를 부 여하지 않으며, 공동체 결성을 통해 내 삶의 안전과 행복을 확보하기 위함 이잖아요. 내가 관계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목 적을 추구하는 방식들이 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일대일 연애일 수도 있고, 다자연애일 수도 있고, 비연애일 수도 있겠죠. ‘다자연애는 본 디 이런 것이고, 이런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는 규범에 맞춰 살아가기보다, 내가 원하는 관계 맺음의 방식이 무엇인지, 그렇다면 지금 내가 어떤 점을 바꿔야 하는지 파트너와 먼저 이야기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 자연애는 제 삶의 일부를 설명해주는 언어적 방편일 뿐, 그것이 제 모든 삶 을 규정하게 만들어선 안 돼요. 많은 사람들이 폴리아모리를 ‘자유로운 개인들의 결합’을 위한 담론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있어요.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승은의 말처럼 폴리 아모리를 이런 방식으로만 이해하면 자유로운 결합 이후의 ‘평화로운 관계 유지’에 대한 고민은 쏙 빠져버리게 되죠. 폴리아모리 내에서도 데이트 폭 력을 경험하고 구성원 간 경제적/사회적 불균형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 가 실제로 상당하거든요. 이 모든 고려가 폴리아모리 실천 내에서 함께 이 루어져야 해요. 자유로운 관계 맺음을 넘어 어떻게 하면 그 관계를 건강하 고 지속적으로 이어나갈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폴리아모리스트 분들께서 주거권, 가족구성권 등의 고민을 함께 이어 나가 주셨으면 좋겠어요. 폴리아모리스트를 혐오하는 방식이 성소수자 혐 오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법적인 가족의 틀에 묶이지 않아 주변화되는 성 소수자들의 주거권, 가족구성권의 문제를 폴리아모리스트들도 똑같이 겪 을 수밖에 없어요. 폴리들의 자유로운 결합이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는 조 건, 환경을 만드는 방법을 다른 소수자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함께 찾아나 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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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폴리아모리 토크쇼를 준비하고 계시는데, 어찌 보면 사회적 운동이잖아요.

세 분의 대외적 활동인데 앞에서 얘기한 부분과도 연결되나요? 해달 토크쇼나 행사에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폴리아모리를 그저 널리 전 파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폴리아모리가 성향자들의 유별난 연애방식이 아 니라,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인식론에 가깝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예요. 앞서 제가 상태로서의 ‘다자연애’와 인식론으로서의 ‘폴리아모리’를 구분해서 쓴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폴리아모리를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 체성으로 삼고 살아가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 테지만, 저는 폴리아모리가 몇몇 조건을 갖춰 완성되는 고정된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평화롭고 비독점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자 부단한 실천의 자세라 고 생각하거든요. 비록 일대일 연애를 하고 계신 분일지라도, 파트너와의 평등한 합의와 동의에 도달하기 위해 평소에도 끊임없이 소통의 노력을 기 울이고, 비위계적으로 노동과 돌봄을 공유해야 한다는 지향을 공유하신다 면 저는 모두 다 폴리아모리라고 생각해요. 가령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한 어떤 완성된 조건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 자체를 인식론으로 파 악해야 한다는 말처럼요. 폴리아모리를 인식론으로 생각한다면 새로운 사 랑의 가능성, 새로운 가족 구성의 가능성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승은

해달이 말한 걸 포함해서 저는 연애의 정상성에 대해 얘기하고, 누

락된 노동을 더 강조하여 얘기하는 것 같아요.

Q 이러한 관계망이 개인의 삶에 끼친 영향이 있다면? 해달 소통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됐어요. 기존의 일대일 독점적 연애방 식, 낭만적 연애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서로의 의중을 묻지도 않고 관심법 으로 파악하는 게 오히려 미덕이었잖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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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심’ 같은 태도요. 이런 방식에선 ‘Yes means no’ 같은 오해가 양산되고 폭력이 빈번히 일어나죠. 하지만 폴리아모리는 합의와 동의를 매우 중요하 게 생각하잖아요. 공정한 합의와 동의를 위해선 그 당사자들이 동등한 위 치에서 충분한 정보를 공유해야 하죠. 거기서 필요한 게 끊임없는 소통이 에요. 합의, 동의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소통이 폴리아모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것 같아요. 승은 기존의 역할 모델을 학습하고, 예전 모습을 습관처럼 반복하는 패턴 이 있었어요. 이제는 특정한 역할 모델이 없으니까 셋이 합의해 나가면서 무엇이든 될 수 있었죠. 짐작하지 않고 소통하기. 이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 해서 치열하게 소통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노력을 안 하면 누군가 불편함 을 감수해야 한다는 걸 알고 서로 맞춰가려고 했어요. 또 하나. 지민이 트 랜스젠더퀴어라서 호칭이나 역할 기대가 이분법적인 젠더와는 달라요. 지 민과 생활할 때면 언어가 얼마나 성별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는지 실감하 곤 해요. 저도 모르게 뱉고선 깜짝 놀라기도 하고요. 성적 실천이나 기대하 고 의지하는 부분까지도 새롭게 관계를 맺는 느낌이에요. 해달

기본적으로 폴리아모리스트들은 인권 감수성이 있어야 하는 것 같

아요. 세 명이 사랑을 하는 트라이앵글 관계에선 애초에 이성애만 관철될 수가 없죠. 이런 형태만 봐도 폴리아모리는 태생적으로 퀴어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역사적으로 폴리아모리 개념을 창안하고, 폴 리 커뮤니티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페미니스트였고요. 그들은 폴리아모리 를 젠더 위계 해소를 위한 대안적 관계방식으로 활용했던 거죠. 그러니까 폴리아모리는 단순히 ‘여러 사람과 관계 맺자’는 라이프 스타일 운동 이전 에 인권 운동이었던 셈이에요. 폴리아모리는 친밀한 관계 내에 여러 사람 들이 참여하는 만큼, 다양한 정체성 및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고 이들을 배제하지 않는 퀴어 감수성을 필수적으로 장착 해야 합니다. 저 역시 항상 깨지며 배워나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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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지막 질문입니다. 각자에게 사랑이란, 그리고 폴리아모리란? 승은

(현재 폴리아모리 책을 집필하고 있는 과정에서) 두 사람을 인터뷰

할 때, 저도 물었어요. “사랑이란?” 그때 두 사람이 엄청 힘들어하더라고 요! 해달 평생 고민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것. 승은

사랑이란 ‘노동’이다. 감정노동, 돌봄노동이 될 수 있고, 같이 살면

가사노동이 될 수 있고. 폴리아모리란 ‘평등을 위한 노동을 멈추지 않는 일’이다.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해달

얼마 전 했던 인터뷰에서, 사랑에 대해 평생을 얘기해도 답이 나오

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했어요. 억지로 정의해본다면, 사랑이란 ‘기꺼 이’ 각자의 경계를 허물고 그 안으로 서로를 들이는 것. 억지로 들어가는 것은 침범이 되니 서로가 원했을 때 타자를 들이고, 누군가가 자기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원래의 공간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내면이 바뀌는 과정. 폴리아모리는 더 짧게 정의할게요. 폴리아모리는 평화로운 관계 맺기를 위 한 인식론이자 실천이다. 지민

사랑은… 잘 모르겠어요. 전에도 마지막에 답 안 하고 도망쳤거든

요. 사랑은… 음.

Q 무엇 때문에 어렵나요? 지민

정의되지 않은 것 같아서 어려운데, 해달의 정의가 가장 가까운 표

현인 것 같아요. 그래도 표현하자면, 그쵸! 기꺼이 타자를 내 세계에 들이 고, 내가 타자의 세계에 들어가는 과정. 폴리아모리도 그런 사랑을 평등하 고 평화롭게 구축해 나가는 방식. 그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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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민

사실 못 한 이야기가 많긴 하지만, 한 가지를 이야기하자면 꼭짓점

으로서 승은의 존재와 역할이에요. 저희가 지금까지 관계를 맺을 수 있었 던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승은의 역할에 대해 그동안 많이 얘기하 지 못했어요. 꼭짓점 승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승은이 복 잡하고 미묘한 관계 속에서 각자의 의견을 조율하고, 감정을 보듬고, 언어 를 통역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 관계가 가능했던 것 같아요. 폴리아모 리에서는 대화와 합의의 과정이 중요한 만큼 그 대화를 위한 통역의 역할 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해달

마지막까지 도덕 선생님 같은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폴리아모리가

많은 남성들에게 바람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소비되는 건 폴리아모리가 폴리들에게조차 주로 ‘자유’에 한정되어 이야기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이나 평등에 대한 감각이 없이 파트너의 수를 확장할 ‘자유’만을 상상하고 접근한다면 폴리아모리는 조선시대 처첩제도와 다를 바 없을 거 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폴리아모리를 지향하고 싶진 않습니다. 더 자세 한 이야기는 유튜브 채널 <폴리튜브>를 통해 확인해주시고요. 앞으로 저희 가 여기서 나눈 고민들뿐 아니라 더 깊은 이야기들이 많은 분들의 입을 통 해 터져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승은

지금의 관계에서 안전하고 평등하고 존중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데, 그 이유는 모든 걸 당연시하지 않고 대화로 수용하는 분위기, 논쟁하고 바꾸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노력을 이야기 하면, 피곤해서 어떻게 사냐는 질문도 받는데… 저는 이런 노력이 모노아 모리 관계뿐 아니라 많은 관계에서 필요한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서 로에 대한 노력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쉽게 무례해질 수 있고, 폭력적이 될 수도 있겠죠. 예의와 긴장. 그 필요를 느끼고 있어요. 연애뿐 아니라 평등 한 관계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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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콘텐츠

폴리아모리가 뭔지 궁금하다면 예전에는 폴리아모리의 이야기를 영화 또는 소설 속에서나 접할 수 있었다.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지금, 폴리아모리스트들은 책으로 방송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폴리아모리를 다루고 있는, 폴리아모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콘텐츠를 소개한다.

폴리아모리 -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 후카미 기쿠에 지음 / 곽규환, 진효아 옮김 해피북미디어(2018년)

일본인 인류학·사회학자 후카미 기쿠에가 미 국의 폴리아모리스트들을 만나 연구한 결과를 대 중서로 만든 책이다. 저자 당사자는 폴리아모리가 아니기에, 오히려 책은 설득력을 갖는다. 이 책은 폴리아모리의 배경과 역사를 설명하며 개념적 정 의들을 제시하고, 폴리아모리스트들의 생활과 연애 방식에 대해 구체적 사 례를 들어 소개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쉽고 정확하게 다른 사랑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여 폴리아모리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이 책에는 자주 언급되는 다른 책이 등장한다. 바로 미국 폴리아모리스 트들이 많이 의지하는 매뉴얼북이다. 관계를 시작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 는지, 서로 정보 공개를 어느 정도로 하는지에 따라 장단점을 알려준다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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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질투가 생길 때의 대처법이라든지…. 그래서 읽다 보면 왜 한국에는 그 런 매뉴얼북이 없나 아쉬워진다.

우리는 폴리아모리한다 - 왜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하는가? 심기용, 정윤아 지음 / 알렙(2017년)

폴리아모리에 관한 국내 첫 보고서이자 심층 탐 구서로 폴리아모리의 개념, 이해, 윤리, 오해와 수 정까지 다루고 있다. 자신을 폴리아모리로 정체화 하는 과정,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고 나아가 컴퍼전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성취는 한국인의 이름으로 된 실제 사례를 읽 을 수 있다는 점이다. “폴리아모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라고 외치는 듯하 다. 폴리아모리 자료 자체가 드문 한국 상황에서 나와 비슷한 이름과 상황 을 가진 이들의 사례는 큰 도움과 위안을 준다. 다른 폴리아모리스트와의 연결이 간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고 나서 폴리 아모리 모임에 찾아오면 더 좋을 것이다. 여러 사람과 사랑하고 있는 이들 을 실제로 만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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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튜브(유튜브) 폴리아모리로 살면서 신상을 공개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 이다. 모노가미가 지배적인 사 회에서 쉽게 공격과 비난을 당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폴리튜 브>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유튜브를 시작했다. 아직 초반이라 이 채 널의 방향을 예측하기는 이르지만 유튜브를 시작한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낸 다. “한국의 폴리아모리들을 둘러싼 다양한 경험들을 함께 풀어냅니다.”라 는 소개처럼, 앞으로 유익하고 알차고 재밌기까지 한 폴리아모리 콘텐츠로 꾸려지기를 기대한다.

Multiamory(유튜브/팟캐스트) “고루하고, 말은 안 통하고, 새로 운 열정 같은 건 없는 그런 삶이 정 말 좋은 거야? 흠, 그럼 여기는 널 위 한 곳은 아닐 수도….” <멀티아모리> 팟캐스트의 오프닝 시그널 멘트다. 폴리아모리 관계에 있 는 세 명이 진행하는 이 팟캐스트는 2015년(유튜브 업로드 기준)부터 약 250여 개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꾸준히 업로드하며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폴리아모리에 대한 기본적이고 간단한 소개부터, 정상연애담론 ‒ 사회적 기준 ‒ 바깥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예 민하고 풍성하게 풀어낸다. 영어 콘텐츠라는 치명적 단점(!)이 있지만, 꼭 체크해야 할 가치가 있는 팟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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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정보

논모노가미 지도 Map of Non-Monogamy

우주해달 폴리아모리 관련 서적 중 가장 많 은 판매고를 올린 《More Than Two》 의 저자, 프랭클린 보(Franklin Veaux)의 논모노가미 지도입니다. 보의 허락을 받아 번역하였으며, 상업적 목적이 아닌 온라인 페이지 및 지면에 출처를 밝히고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원본 이미지는 그의 홈페이지와 블로그1에서 확인하실 수 있 습니다. 논모노가미에 포함되는 다양한 관계방식들이 서로 중첩되는 영역과 대 비되는 영역을 지도의 형식으로 표현한 이미지입니다. 이 지도 안에 포함 되지 않은 관계방식들은 추후 다른 버전을 통해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이 지도를 통해 우리가 피상적으로 구분해왔던 여러 개념들이 사실상 매우 유사한 지점들을 공유하고 있고, 그 경계 역시 아주 모호하다는 점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폴리아모리를 고정된 정체성으로 구분짓는 정치화의 방식 이 어떤 실천 및 사람들을 누락시키고, 어떤 모습의 동질화를 부추기는지 교차성의 관점에서 고민하게 만드는 자료입니다. 예를 들어, 폴리아모리는 합의와 정직에 방점을 둔 관계방식이며, 이 규 범에서 벗어난 관계는 폴리아모리가 아니라고 구별하는 경우를 생각해봅 1 xeromag.com/franklin.html(홈페이지), blog.franklinveaux.com(블로그) 참조. 폴리 아모리뿐만 아니라 BDSM을 비롯한 여러 성적 실천에 관련한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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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다. 합의나 정직의 규범을 지키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겐 자발적 선택이 라기보다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존하는 사치스러운 특권일 수 있습니다. 모 노가미가 압도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사회에서 폴리아모리를 커밍아웃하는 것, 새로운 만남을 공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실제로 많은 폴리아모 리스트들은 바람(cheating)을 통해 폴리아모리를 처음 경험합니다.2 이런 사람들에게 바람은 폴리아모리와 확연히 구분되는 관계방식일까요? 바람 둥이에서 폴리아모리가 되는 시점은 언제부터인 걸까요? 그것을 선 긋듯 자를 수 있는 걸까요? 바람을 피우던 나와 합의된 다른 파트너를 만나는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던 걸까요? 비록 이 지도에선 두 개념의 영역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가장 극단에 있을 것 같은 바람과 폴리아모리조 차 우리의 경험 안에서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수많은 관 계방식들이 이 논모노가미 지도 안에서 얽히고설켜 있는 모습을 더 잘 이 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폴리아모리와 다른 관계들 사이의 차이성도 확인할 수 있습니 다. 파트너의 다른 사랑을 허용하는 개방적인 관계(open relationship) 가 폴리아모리(polyamorous relationship)와 상당 부분 중첩되어 있음 에도 불구하고 양자가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은 폴리아모리 개념 안 에 몇몇 규범적 속성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의 많은 폴리아 모리스트들은 폴리아모리가 ‘책임감 있는 논모노가미(responsible nonmonogamy)’라고 여기고 있으며, 그 ‘책임’ 안에는 사랑, 친밀감, 헌신, 합의, 정직 등의 규범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3 따라서 폴리아모리는 개 방적 관계를 맺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이는 폐쇄된 가족 관계를 추구하는 폴리피델리티(polyfidelity)가 폴리아모리의 2 Zhu, J, (2018). “We’re not cheaters”: Polyamory, mixed-orientation marriage and the construction of radical honesty. Graduate Journal of Social Science, 14(1), 57-78.

3 Klesse, C. (2006). Polyamory and its ‘Others’: Contesting the Terms of NonMonogamy. Sexualities, 9(5), 565-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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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형태로 포함되어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지도에서는 각 관계방식을 간명하고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일 상생활에서 쓰일 법한 비속어 및 은어들이 다수 사용되었습니다. 정치적으 로 올바르지 않은 단어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으나, 되도록 원저자가 사용 한 표현의 뉘앙스를 살릴 수 있는 번역어를 선택하였습니다. 마땅한 한글 번역어가 없는 개념은 음역하였습니다. 가령 드래곤콘(Dragon Con)처럼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미국의 유명한 코스튬 축제 등에서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섹스는 이를 표현할 마땅한 한국어가 존재 하지 않아 콘섹스(Con Sex)로 옮겼습니다. 스윙(swing)은 한국에서 주로 스와핑(swapping)이란 단어로 쓰이곤 하지만, 해외에서는 파트너를 도구 적으로 교환한다는 의미가 강한 스와핑보다 스윙잉이라는 표현을 더 선호 하여 스윙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캐주얼 섹스(casual sex) 역시 즉흥적이고 일시적이고 공개적인 특징을 모두 포괄하는 한국어가 없기에 그대로 음역 하였습니다. 원저자의 용어와 한국적 용어를 혼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프로돔(prodom)은 금전적 거래를 통해 돔 플레이를 제공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 이나, 한국에서 주로 쓰이는 유플돔이나 핀돔(fin-dom)과는 엄밀히 같은 의미로 보기 어려워 이를 함께 병기하였습니다. 한국의 상황에 맞게 의역 한 용어도 있습니다. 데이팅 어라운드(dating around)는 한국인들에게 더 친숙한 ‘문어발’로, DADT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기’로, 에스코트(escort) 성거래는 ‘조건만남’으로 옮겼습니다. 바람을 피우는 배우자의 모습을 욕 망하는 커콜드 페티쉬(cuckold fetish)는 고려 향가인 처용가(處容歌)를 차용하여 ‘처용 페티쉬’로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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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서베이 3

“나는 폴리아모리 경험이 있다? 없다?” 없 다 (17%)

있 다 (83%)

└＞ 없다 - 어쩐지 요즘은 사람을 쉽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폴리 상태가 두 렵기도 하고요.

└＞ 있다 - 내가 수용자 입장일 때도 있었고 꼭짓점일 때도 있었고 그 안에서 세컨 같을 때도 있고….

└＞ 있다 - 한 명. 비독점적 관계를 지향하는…. └＞ 있다 - 두 명. 비이 관계에서 꼭짓점. └＞ 있다 - 관계를 명명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꾸준히 만나며 데이트를 했던 경험. 서로의 파트너에 대해서는 얘기만 나누고 만나지는 않았다.

└＞ 있다 - 네 명이서 따로 혹은 다 같이 만나며 관계를 이어나간 경험. └＞ 있다 - V 관계의 꼬리였던 적도 있고, 꼭짓점이었던 적도 있다! └＞ 있다 - 동성 폴리 공동체. └＞ 없다 - 폴리아모리의 정신을 공유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눠준 느낌. 인 싸가 아니라 쉽지 않더라ㅎㅎ

※ 본 설문은 [여러 : Polyamory Network] 회원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여러 소개

여러 : 폴리아모리 네트워크 Polyamory Network 2017년 여름 SNS를 통해 모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해 10월 17일 다음 카페 에 ‘여러 : Polyamory Network’가 처음 개설되었다. 2020년 4월 현재 660 명 이상의 회원이 있으며 폴리아모리스트 외에도 폴리아모리 지지자 혹은 폴리 아모리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가입한다. 회원들이 자원하여 6개월씩 스태프를 맡는다. ‘여러’는 폴리아모리에 대한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구성원들 간 안전한 만남의 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등급제로 운영 중이다. ‘준회원’ 등업을 위해 몇 가지 절차를 거치고, 공식 오프라인 모임에 1회 참가하면 ‘정회원’으로서 번개 나 소모임 등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다. http://cafe.daum.net/Polyamory

원고 모집 폴리아모리 매거진 <여러>에 참여하기 원하는 분은 메일로 원고를 보내주세요. 에세이, 인터뷰, 고민 상담, 리뷰, 이미지 등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를 환 영합니다. 원고를 보내실 때에는 기재를 원하시는 필명도 함께 보내주세요.

＊유의 사항 <여러>의 편집 방향은 [여러 : Polyamory Network]의 회칙에 기반합니다. 특 히 차별적 표현이나 다른 이의 권리에 침해를 가하는 내용은 편집될 수 있습니 다. 또한 무료로 배포되고 자원 활동만으로 만들어지는 비상업적 매체이기에 원 고료를 드리기 어려운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 : polyamoryzine@gmail.com

발행일 2020년 5월 1일 발행처 여러 : Polyamory Network 디자인·편집 모호포니, 라떼독, 오디 담당 스태프 정글 다음카페 http://cafe.daum.net/Polyamory 이메일 polyamoryzine@gmail.com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이 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해당 글의 저작권자와 [여러 : Polyamory Network]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