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근대 문학의 개척자”

강승호 목사
필라 순복음교회
고국에서 즐겨 부르던 가곡이 생 각난다.
“가고파, 가고 파,
내 고향 남쪽 나 라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적 함께 놀던 그 동무들 그리 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가고파라 가 고파.”
세월은 흘러 어느덧 낙엽 흩날리는 추절이 되었고, 인생의 덧없음이 초 로처럼 느껴진다. 낯선 이국의 하늘 아래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생존 경 쟁에 뛰어드는 동포들의 모습은 고단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따뜻한 애 정이 담겨 있다.
이 대목에서 러시아의 국민 시인 ** 알렉산드르 푸슈킨(1799~1837)**이 떠오른다. 그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 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노라면 머지않아 기쁨 이 돌아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덧없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푸슈킨은 러시아 문학의 거두로서 1799년 모스크바의 가난한 귀족 집 안에서 태어났다. 학창 시절부터 시
를 써 주목을 받았고, 졸업 후 외무성
에서 근무하며 농노제와 전제정치를
비판하는 작품을 발표하다가 남러시
아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그 고독과
시련 속에서 오히려 예술적·사상적
성숙을 이루며 러시아 민중의 삶을 깊
이 성찰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서사시 <루슬란과 류드밀라>
로 새로운 문학적 경지를 열었고, 이
후 <예브게니 오네긴>, <청동 기마상
>, <벨킨 이야기>, <시베리아에 바치
는 노래> 등 걸작들을 남겼다. 말년에
는 <스페이드 여왕>, <대위의 딸>을 발
표하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기초 를 확립했다. 비록 귀족과의 결투로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러시아
문학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은 불멸
의 시인으로 추앙받는다.
푸슈킨이 역사의 아픔 속에서도 희
망을 노래했듯, 이민 사회를 살아가
는 우리에게도 언어와 글, 그리고 신
앙 속에 담긴 희망의 유산이 필요하
다. 한 시대를 살다 가는 우리 동포 사 회에도 2세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말과 삶이 일치하는 문필가들이 더 욱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성경은 말합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 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7:4)

이오영 자서전 - 51 “아내의 치마폭을 잡고”

필자이오영씨는ROTC출신장교,월남참전유공자가되어 전후방에서 복무를 마치고 도미, 전직 필라 한인회장을 거쳐, 전미주 한인회 총연합회 이사장 및 총회장, 필라 평통회장 및 상임위원, 대학동창회 및 필라지역 초대 재향군인 회장을 각 각 역임하고, 미국 사회 발전을 위해 수고한 사람들에게 수여 하는‘EllisIslandMedalofHonor2009,USA’을수상한바 있다. 이 글은 필자 이오영씨가 지난 83년간의 일생을 진솔하 게 기록한 자서전이다. 필라 유일의 일간지인 한국일보에 “아 내의 치마폭을 잡고”라는 제목으로 매주 수요일자에 연재합 니다. -편집자 주-
8. 군 생활과 군이 내게준 혜택에 감 사
가). 부산항을 떠나 전선 없는 월남전쟁 터로
부두에 운집해있는 많은 환송객 중에 한 사람도 아는 얼굴이 없었지만 잘다녀 오겠 습니다. 마음속으로 뇌이며 환송객을 향 하여 손을 흔들었다. 우리를 실은 함선이
어느 정도 부두 에서 멀어질때까지 나는
한참 동안 갑판 모서리에 서서 멍하니 위
아래로 솟구치며 나래 짓을 하는 갈매기
떼에게도 손을 흔들면서‘과연 내가 살아
이 땅을 다시 밟을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묻고 있었다. 아마도 막연한 불
안감이 솟구치나 보다. ‘하나님! 부모님의 만수무강과 사랑하
는 나의 여인의 건강과 안녕을 지켜 주시어 흔들림 없이 학업에 열중 할 수 있게 해 주 심은 물론 외롭지 않게 붙들어 주옵소서, 기도했다. 그리고 전선으로가는 부족한 저 의 앞길도 하나님께 맡기오니 장중에 붙들 어 주옵소서. 전선에선 어떠한 상황 에서 라도 용감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설사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항이 오면 남자답게 죽겠사오나 어떤 위기가 닥쳐 오더라도 결
코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여 주옵
소서!’
이렇게 나 스스로를 다지는 기도를 마지
서 벗어나 보려고 만취 했던 사병이 보고 싶었다. 나는 갑판에서 아래층 사병들의 내무반을 찾아 갔다. 어지러울 정도로 혼 잡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