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1(금)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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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일본에 팔아 넘긴 매국노”

강승호 목사

필라 순복음교회

계절이 바뀔 때

마다 8월이 오면,

일제 36년 동안

고초를 겪으며 나

라를 빼앗긴 울분

을 삼켜가고, 힘없는

민족의 서러움 속에

눈물을 머금으며 나

라를 되찾겠다는 구국의 일념 속에

청춘도 부귀도 마다하고 조국의 독립

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며 투쟁했던

선열들을 떠올리게 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몸 바쳐 싸웠던 이들은, 폭풍설 한이 몰아치는 만주의 광활한 벌판 에서도 굶주림과 헐벗음을 개의치 않 고, 하늘을 지붕 삼고 그림자를 벗 삼

아 찬 이슬을 맞으며 일본군과 목숨 걸고 싸웠다. 그들은 조국의 해방을

목놓아 부르다가 아침 이슬처럼 사라 져갔다. 바로 그분들이 있었기에 오 늘의 조국이 존재하고, 우리가 이 땅 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반문하게 된 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라져간 애 국지사들의 발자취를 생각하며, 애 닯은 연민을 느끼게 된다.

8월이 되면 매국노 이완용(1858~1926) 을 비롯한 이름들이 떠오른다. 박제 순,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등과 함께 그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인 물 중 하나다. 이완용은 1882년 여러 벼슬을 거친 후, 1896년 고종의 아관 파천 때에는 친러파로 활동하다가 1901년부터 친일파로 변절한다. 1905 년 을사조약을 찬성하고 솔선하여 서 명함으로써 ‘을사오적’ 중 하나로 지 탄받는다. 그는 ‘헤이그 특사’ 사건 당

을 지냈고, 1911년에는 조선 귀족원

회원을, 1920년에는 후작 작위를 받 는다. 죽을 때까지 일본에 충성을 다 했지만, 조국은 그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오늘날 이민 1세대는 고국이 번영

할수록 더욱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

으며, 2세대에게 고국의 언어와 역사 를 올바르게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하

다고 본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 우 리의 뿌리는 코리아이다. 동포애로

하나 되어 유대인들처럼 미국 주류 사

회에 진출하고, 요셉, 다니엘, 에스더

처럼 절개를 지키며 한국의 얼을 심

어가는 동포들이 되기를 기원한다.

고국을 망각한다면, 얼굴은 한국인

이지만 사상은 이방인처럼 살아가게

된다. 그 모습을 아무리 감추려 해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세계화를 외쳐

도 자신의 근본까지 외면할 수는 없

다. 미국은 백인들이 세운 나라지만, 이 땅에서 흑인도 대통령이 될 수 있

는 차별 없는 사회이다. 그런 이 나라

에서 우리도 거대한 꿈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성경은 말합니다.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별할 줄 알

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별하지 못하느 냐?” (누가복음 12:56)

이오영 자서전 - 45 “아내의 치마폭을 잡고”

필자이오영씨는ROTC출신장교,월남참전유공자가되어 전후방에서 복무를 마치고 도미, 전직 필라 한인회장을 거쳐, 전미주 한인회 총연합회 이사장 및 총회장, 필라 평통회장 및 상임위원, 대학동창회 및 필라지역 초대 재향군인 회장을 각 각 역임하고, 미국 사회 발전을 위해 수고한 사람들에게 수여 하는‘EllisIslandMedalofHonor2009,USA’을수상한바 있다. 이 글은 필자 이오영씨가 지난 83년간의 일생을 진솔하 게 기록한 자서전이다. 필라 유일의 일간지인 한국일보에 “아 내의 치마폭을 잡고”라는 제목으로 매주 수요일자에 연재합 니다. -편집자 주-

8. 군 생활과 군이 내게준 혜택에 감 사 1). ROTC 3기, 임관후 마). 혹 한기, 동태 운반 트럭에 실려, 관대리에서 서울로---.

어제는 비상도 아닌데 기분 나쁜 일 이 있었던 모양이다. 중대장께서 나 때 문에 곤경에 처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죄송 하기 짝이 없었다. 일요일 밤 서울 에서 도착 하여 밤 11시경 부대로 도착 해보니, 중대장이 퇴근하지 않고 중대

장 실에서 야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부

대 분위기가 심각함을 짐작할 수가 있 었다. 당번에게 확인하니 막 잠이 드신 모양이라 했다. 수면을 방해하는 것 같 아 소대장실에서 의자에 앉아 비몽사 몽 새벽 6가 되었는데, 당번으로부터 중대장께서 기상 하셨다는 전갈이 왔 다. 단단한 각오를 하고 중대 장실로 들 어갔다.‘죄송합니다. 보고 없이 서울에 다녀 왔습니다.’부동자세로 용서를 구 했다.‘자네 사전 보고 없이 위수지구를 벗어나도 되는 거야?’’죄송합니다!’무 조건 사과했다. 그러나 중대장은 더 이 상의 질책도 기압도 없이 ‘원위치’하여 근무 하라는 것이다. 불 벼락이 떨어질 세라 잔뜩 긴장 하고 있던 나는 안도의 숨을 몰아쉴 수 있었 으나 미안한 마음

장에게 튀었던 모양 이었다. 그렇게 중 대장은 나대신 곤욕을 치르며 나를 커 버 해주고 관용까지 베풀었다.‘중대장 이 당신을 너무 봐 주는 거 아냐?’선임 작조계장인 백 중위가

병력을 차출하고 있었다. 이와 때 를 같이 하여 파월 장교들의 원활한 월 남근무능력을 돕기 위하여 월남어 교 육생을 모집 하고 있었다. 월남가는 것 을 전제로 3개월간 서빙고 정보 학교에 서 월남어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키기 위해서이다. 답답한 전방에서 그것도 변덕 많은 군단 부장밑에서 고생할 바에야 군인 으로서 전투 경험을 통해 담력과 견문 을 넓혀 장차 간성의 기초를 다지는 좋 은 기회라 생각되어 지원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월남 체류기간동안 부 수적으로 별도 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었다. 헌병감실 인사 처에 전화를 걸어 월남어 교육을 신청을 했 다. 그리고 한참후 에 중대장에게 월남 파병을 전제로 한 월남어 교육 신청을 했다고 보고 드리니.‘구태여 전쟁터를 지원해 갈 필요가 있나?’염려하시는 말 씀이외에 별다를 반대가 없어 다행 이 었다. 학훈장교 출신에다 월남지원자 가 많지 않을 초창기라 그러한지 쉽게 명령이 났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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